소설리스트

달빛조각사 13권 : 9. 드워프 아트핸드 (26/520)

9. 드워프 아트핸드

토르 왕국의 야산에 와이번을 타고 내려서는 사내가 있다.

그의 정체는 다름 아닌 위드!

위드는 와이번들을 하늘로 올려 보내고 난 후에 조각칼을 들었다.

"좀 작은 바위를 찾아야 겠군."

오크 카리취를 조각할 때에는 크기가 커야 했지만, 이번엔 그럴 필요가 없다.

그런데 근처에서는 마땅한 바위를 구하기 어려웠다.

무성하게 자란 수풀과 울창한 나무들로 인하여 바위들이 깊이 파묻여 드러나지 않은 산인 것이다.

"그냥 나무로 해야겠어."

위드는 나무의 윗부분과 가지들을 쳐 내어 통나무로 만들었다.

조각술을 펼치기 위한 재료를 준비한 것이다.

그런 후부터는 세밀하게 조각칼을 움직였다.

먼저 전체적인 구도를 만들기 위하여 머리와 몸통, 다리의 비율부터 정했다.

"지금보다 30% 정도 씩 작게 만들면 되겠지."

위드는 허리를 굽히고 쪼그려 앉은 채로 작업을 해야 했다.

굵고 통통한 무다리를 조각하고, 허리가 없이 엉덩이에서 가슴까지 일자로 올라오는 몸매로 만들었다.

"통나무가 얇은 감이 있는데....."

근처에서 가장 굵은 나무를 재료로 했음에도 약간은 모자란 감이 있다.

위드는 어쩔수 없이 두 손을 들고 벌을 받고 잉ㅆ는 형상으로 조각을 해야 했다. 팔도 짧고 굵게 만들고, 나머지 부위는 머리를 조각하기로 했다.

"드워프. 드워프의 특성을 살려야지."

고집스럽고, 굴복할줄 모르는 드워프들.

몬스터와의 싸움에서는 물러서지 않는 호쾌함을 가지고 있어서, 직업으로는 주로 전사아 워리어를 택한다.

종족의 특성상 힘이 센 편이라, 체구는 작아도 무시하지 못할 수준이었다.

동시에 타고난 손재주를 가진 장인들이며, 투박한 손에서 빚어내는 작품들은 아름답기 짝이 없다.

드워프들은 대인관계가 그렇게 원만한 편은 아니다.

평생을 하나의 목표에 매진하는 경우도 많기에 자신들의 작업실에서 잘 나오지 않는 편.

그래서 굉장한 작품들을 만들수 있지만, 다른 종족들과는 잘 어울리지 못했다.

양질의 광석이나 보석, 미스릴 등을 유별나게 밝히고, 장비나 재료 들에 대한 욕심이 유별난 종족이다.

불과 쇳물을 사랑하고 꾸밈이 없는 순수한 종족.

위드는 땅딸막한 드워프의 형상을 조각했다.

고집스러운 입매와 축 처진 눈은 여지없이 상대방을 깔보고 있다.

가슴까지 내려오는 수염은 풍성하고 길었다.

한 가닥, 한 가닥이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이는 수염.

조각술이 경지에 오르지 않았다면 할수 없을 세밀한 묘사 였다.

여기에 짧고 굵은 팔과 다리.

위드는 스스로 만든 조각품을 보며 만족했다.

"이 정도면 꽤 괜찮은 드워프가 아닐까?"

오크 카리취를 만들었을 때처럼 적어도 한밤에 쳐다보기 무서울 정도는 아니다.

"이 정도면 나쁘지 않겠지. 조각 변신술!"

 - 조각 변신술을 사용합니다.

   조각술에 대한 무한한 애정은, 그 조각품과 조각사를 서로 닮게 만든다!

조각술의 비기를 사용함에 따라 위드의 몸이 변했다.

키가 작아지고, 다리가 두꺼워졌다. 몸통토 가늘어지고 팔도 두꺼워졌다. 반면에 머리는 커지고 수염이 길게 자랐다. 그리고 눈가의 거친 주름들은 나이를 알수 없게 만들었다.

 - 몸의 형태가 작아지면서 현재 착용하고 있는 장비들의 상당수가 쓸수 없게 되었습니다.

   판금 갑옷이나 중갑옷을 입으 실수 있습니다.

   종족이나 형태에 따라 필요한 장비를 새로 구하십시오.

 - 조각 변신술의 영향으로 인내력과 힘, 행운이 소폭 증가합니다.

   손재주 스킬의 효과가 5% 늘어납니다.

   예술이 대폭 상승합니다.

   조각 변신술이 풀릴 때까지 유효합니다.

"커허허험!"

위드는 드워프답게 길게 헛기침을 해 보았다. 그리고 목표로한 드워프 마을이 있는 방향을 향해 걸었다.

다리가 짧은 드워프인 탓에 무게중심을 잡기는 매우 쉬웠지만, 걸을 때마다 이동하는 거리는 한숨이 나올 지경이었다.

위드는 그럼에도 부지런히 걸음을 옮기면서 생각에 잠겼다.

"이번 드워프 이름은 뭐로 하지?"

머릿속에서 여러 이름들이 스쳐 지나갔다.

오크 카리취처럼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이름이 필요했다.

"아트핸드. 섬세한 예술의 세계를 표현할수 있는 이름일거야."

이현이 캡슐에서 나왔을 때, 학교 친구들은 휴게실에서 음료수를 마시며 방송을 보고 있었다.

베르사 대륙의 영웅들.

CTS미디어에서 하는 정보 프로그램 이었다.

새로운 소식들을 신속하게 알려 주고 성이나 마을들의 초보들을 위한 정보 소개, 심도 있는 분석을 위주로 했다.

진행자가 개그맨 출신으로 재치와 유머까지 있어서, 상당한 시청률을 가지고 있었다.

"오빠, 끝났어요?"

민소라가 친근하게 묻자, 이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사냥은 많이 하셨어요?"

"아니. 어딜좀 가느라 사냥은 전혀 못했어."

"어디로 갔는데요?"

최상준이 갑자기 호기심이 동한 듯이 물었다.

"토르 왕국."

"토르 왕국이라면, 그 드워프 왕국요?"

최상준이 놀란 듯이 반문했다.

다른 학교 친구들 또한 무척 궁금한 듯 저마다 떠들어 댔다.

"드워프 왕국이라면 저도 꼭 가보고 싶었던 장소인데."

"토르 왕국은 어떤 모습이에요?"

하지만 이현은 딱히 대답해 줄수 있는 말이 없었다.

"나도 이제 토르 왕국의 근처에 도착했을 뿐이라서..... 마을에는 아직 들어가 보지 못했어."

"아, 그러시구나."

이유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베르사 대륙이 너무 넓다 보니, 왕국 간의 이동을 위해서는 하루나 이틀로는 턱도 없을 정도였다. 말이나 마차를 타더라도 산을 넘어야 하고, 구불구불한 길을 가다보면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그러므로 아직 토르 왕국의 안에 들어가진 못한 것으로 알고 넘어간 것이다.

박순조가 걱정스러운 듯이 말했다.

"토르 왕국에는 저도 가 본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형, 직업이 상인이었던가요?"

"왜?"

"전투 계열 직업들은 토르 왕국에 잘 안가요. 마법이나 정령 계열도 그렇고요. 드워프들의 텃세가 심한 편이거든요. 그래도 상인이라면 토르 왕국의 물건들을 가져다가 팔면 이득이 크게 남으니까 괜찮을 거예요."

이현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난 조각사인데."

"......"

"......"

직업만 알려 주면 사람들의 입을 다물게 하는 효과가 있었다.

덧붙여 측은하고 불쌍하다는 눈빛까지!

그러고 보니 처음 만나 이야기 할 때 조각사라는 말을 들은 것도 같았다.

민소라가 애써 용기를 주려는 듯이 말했다.

"기운 내세요. 그래도 요즘에 조각사 중에 유명한 사람도 있잖아요. 아마 오빠도 들어보셨을 거예요. 위드라고요."

"......."

"어, 못 들어 보셨어요? 진짜 굉장한 조각품들을 많이 남기고, 뱀파이어의 세계도 여행한 유저라고 해요."

그러자 이유정이 웃으며 말했다.

"소라야, 그 위드는 조각을 위해 타고난 사람이라잖아. 생의 혼을 불태워서 예술을 퍼트리려는 사람이라던데. 그래서 로열로드에서도 굳이 조각사를 택한 것 아니겠어? 그 사람은 한 지방의 영주이기도 하고, 아무튼 그런 사람과 비교하는 게 오빠한테는 더 실례일 거야."

"크흠."

이현은 헛기침을 했다.

저들이 저렇게까지 이야기를 하니 당사자라고 밝히기가 민망하다.

위드로 뱀파이어 땅을 점령하는 것이 방송에도 나왔지만, 얼굴이나 장비들을 약간씩 다르게 해서 알아보기 어렵게 만들었다.

다크 게이머의 정체 그리고 혹시라도 전신 위드와의 연관성을 찾아내 버린다면 수많은 도전자들로 인해 그 후의 모험은 거의 불가능해 질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최상준이 간단히 말했다.

"조각사라면 토르 왕국에 가서 할게 많겠네요. 광물도 많을 거고 그럭저럭 의뢰들도 있을테니, 열심히 해 보세요."

던전 탐험에는 그리 도움이 안될것 같지만, 은연중에 경계하고 있던 이현이 조각사라니 마음을 놓은 최상준이었다.

'던전 탐험은 내가 이끌면 되겠군.'

최상준이 그렇게 흐뭇하게 웃고 있을 때, 광고가 끝나고 베르사 대륙의 영웅들 방송이 재개되었다.

이현은 별로 관심이 없었지만, 자신과 관련있는 내용이 나오니 저절로 방송을 보게 되었다.

"대진 씨, 북부의 변화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려면 모라타를 빼놓을수 없잖아요."

"네. 유담비 씨가 정확하게 짚어 주셨습니다. 눈이 녹은 이후로 많은 모험가들이 북부로 향했습니다만,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의견이 대다수였습니다. 알려지지 않은 땅에 정착하기란 매우어려운 까닭입니다."

"몬스터의 활동이 활발해 지면서 북부는 더욱 위험한 지역이 되었다고 들었어요."

"바로 그렇습니다. 그런데 모라타에 사람들이 모이고 급속도로 발전을 하게 되면서 어느 정도 정착할수 있는 기반이 조성되었습니다. 필드의 몬스터들도 언젠가는 토벌될 것이고, 점점 사람들이 늘어나면 북부에도 전면적인 개발의 시대가 올 것으로 예상됩니다."

"네. 그러면 1부에서는 북부와 모라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습니다. 그럼 2부에서는 어떤 내용을 다루게 되나요?"

방송의 1부에서는 북부에 대한 정보들을 알려 주었다.

모라타를 중점으로 이야기해 주고, 유저들의 동향이나 사냥터들을 소개하는 자리였다.

이현은 이를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좋은 말들을 많이 했어야 할 텐데. 방송을 통해서 더 많은 사람들이 북부로 오면 내 수입도 더 늘어나겠지.'

시청자들이 모라타로 와서 돈을 쓰면 그만큼 이현의 수입이 늘어나는 셈.

"그럼 2부에서는 갓 들어온 따끈따끈한 뉴스들을 시청차 여러분께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대진 씨!"

"네, 담비 씨."

"전신 위드의 새로운 모험이 공개되어서 게시판이 뜨겁게 달궈지고 있다는데요."

"최근 역사적인 팔랑카 전투에서의 대기록이 명예의 전당에 올랐습니다. 간추린 명장면들을 직접 보시죠."

방송의 화면은 다시 바뀌어서 위드가 해골의 모습으로 등장했다. 온통 적들로 아우성을 치는 전장에서 공주의 의로를 받아들이는 모습과, 백마를 타고 질주하는 모습들이 편집되어서 올랐다.

"어쩜....."

"가슴이 너무 두근거려."

민소라와 이유적은 두 손을 꼭 움켜쥐더니 방송 화면에서 눈을 돌릴 줄을 몰랐다.

이현이 보기에도 제법 멋들어진 장면들이었다.

KMC미디어에서 최초로 방송된 팔랑카 전투는, 금주의 시청률 1위에 올랐다. 닷새 후 명예의 전당에 팔랑카 전투의 원본 동영상을 올렸을 때에도 조회수 1위, 추천수 1위, 댓글 숫자 1위를 했다.

명실공히 최고의 인기였다. 그리고 이는 무성한 추측들을 양산했다.

"전신 위드가 올린 영상을 보면 알수 없는 점들이 참많은데요. 그로 인해서 논쟁이 벌어졌다고 들었어요."

"배경이 되는 장소가 팔랑카 전투라는 것은 국가들의 상징물이나 병사들의 외침으로 미루어 보아 확실합니다. 하지만 어떻게 이런 전투에 뛰어들 수 있게 되었는지는 매우 의구심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러 어떤 의구심일까요?"

"퀘스트에 대한 것들이겠죠. 연계 퀘스트가 확실한 것으로 보이는 이 전투가 과연 끝일지 아니면 그 후로 다시 이어질지에 대한 의문들이 굉장히 많이 남습니다."

KMC미디어에서는 팔랑카 전투 내에서 각 왕국 간의 역학 관계, 몬스터 무리의 우호도 조사, 그 외에 마법과 스킬 등에 대한 정보들을 방송에 내보냈다.

사전에 충분히 방송을 한 후에 이현에게 원본을 명예의 전당에 공개해도 좋다고 허락했다.

그러나 원본도 팔랑카 전투의 도입 부분에서부터였다.

중급 수련관을 통과해서 기사의 책을 꺼내드는 부분까지는 삭제되어 있었다.

이 부분까지 공개된다면 로열로드에 일대 파장이 일어날 것은 모두가 짐장할수 있는 사실.

알려진 다른 탑의 소유권을 두고 일대 전쟁이 일어날 것이며, 모두가 수련관을 통과하기 위해 몰두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모험은 스스로  빠져드는 자들의 것.

지나친 정보 공개로 인해 수련관마다 사람들이 줄을 지어 기다리는 상황은 로열로드의 즐거움을 이어 나가기 위해서도 옳지 않았다.

아직 끝나지 않은 이현의 모험을 위해서도 비밀을 유지할 필요가 있었으니, 방송사에서도 비밀을 엄수하고 있는 것이다.

"전신 위드의 들쭉 날쭉한 전투 능력에 대해서도 말이 많다고 들었어요."

"불사의 군단 전쟁. 그때에는 탁월한 지휘 능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오크와 다크 엘프들을 원활하게 다루었죠. 큰 고함을 지르는 지휘 스킬과, 굉장히 높은 것으로 짐작되는 통솔력, 카리스마. 당시에는 아마도 성기사의 직업을 갖고 있지 않았을까 추측됩니다."

"통솔력이나 지휘 스킬들을 키우기 위해서는 기사들의 직업이 가장 좋으니까요."

"진혈의 뱀파이어들을 잡았을 때까지만 해도 프레야의 성기사로 소문이 나 있었으니,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허나 한참 뒤 본 드래곤과 싸울 때에는 네크로 맨서 마법들을 사용했고, 놀라운 전투 능력도 보여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네크로 맨서 마법은 사용하지 않은 걸로 알아요."

"그 때문에 이 논란이 벌어지게 된 것이라고 봅니다. 어떤 이유에서 네크로 맨서 마법을 사용할수 없었거나, 혹은 일부러 사용하지 않았을 수도 있겠는데요."

"힘을... 일부러 공개하지 않았다는 건가요?"

유담비가 눈을 크게 떴다.

대체 얼마나 호쾨하고 자신감이 넘치기에, 마법을 쓰지 않고 육박전 만으로 싸운단 말인가.

이현이 네크로맨서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여서 어찌나 아쉬워했는지를 알지 못하기에 지을수 있는 표정이었다.

최대진은 그런 유담비의 표정이 너무 예뻐서 잠시 한눈을 팔다가 서둘러 말했다.

"흠흠. 그럴 가능성도 배제할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러기에는 너무 치열한 전장이었고...."

"그래도 전신 위드라면 일부러 마법을 사용하지 않았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유담비도 어쩔수 없는 위드의 팬이었다.

로열로드를 하면서, 그토록 흥분되고 가슴이 뜨거워지게 만드는 사람은 많지 않으니까.

길드의 마스터들이나 랭커들. 그들은 방송에 나오면 스스로를 자랑하기 바쁘다.

성주나 영주들은 말할 것도 없다.

길드 원만이 아니라 NPC 병사들을 실질적으로 거느릴수 있는 그들의 힘은 보통 유저들을 훨씬 넘어선다. 간계와 매수, 비열한 협박, 중상모략 등을 일삼는 경우도 많고, 초보나 약한 유저들은 사람 취급도 안하는 게 다반사였다.

좋은 영주들도 있지만, 베르사 대륙이 넓다 보니 그렇게 스스로를 내세우는 영주들이 훨씬 더 많다.

그런 사람들만 주로 대하다가 모험가들을 보면 존경심과 부러움이 들었다.

보물이나 약속의 증표를 찾기 위하여 끊임없이 도전하는 자들!

위드는 마법의 대륙 시절에서부터 전쟁의 신으로 유명했지만, 불가능하다고 알려졌던 퀘스트들도 참 많이 해결했다.

남들이 경험하지 못할 의뢰와 사냥을 하는 모험가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인 것이다.

"현재로서는 짐작만 할 뿐입니다. 육체적인 전투 능력은 지난번 보다 조금 더 탁월해 진 것 같고, 경악을 금치 못할 반사 신경이나 순간 판단력, 과감성, 전투의 정확도 등은 여전 합니다. 하늘에서도 균형감 있게 싸우는 모습들을 보면 현실에서도 무술인이 아닐지 의심스럽기도 하지요. 그런데 몇몇 유저들을 꽤나 신빙성 높은 의견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어떤 의견일까요?"

"특정한 조건이 갖추어 졌을 때에 전신 위드가 몬스터, 그것도 언데드로 등장할수 있다는 것인데요. 본 드래곤을 사냥할 때와 이번 팔랑카 전투의 모습이 외관상 큰 차이가 있다는 점에서 설득력을 얻고 퍼지고 있습니다.

"저도 해골의 모습으로 돌아다니는 유저를 본 적은 없는 것 같아요."

"상식적으로 그럴수가 없겠죠. 해골의 형태로 마을에 들어오거나 하면 금세 소문이 나거나 알려졌을 것입니다."

죽음을 거부할수 있는 힘은 네크로맨서의 상위 전직, 블러드 네크로맨서의 직업스킬이다.

네크로맨서가 된 사람들은 아직 별로 없고, 네크로맨서 자체가 마법사의 2차 전직이다. 즉, 3차 전직을 해야 블러드 네크로맨서가 될수 있으니 아직까지는 각종 추측들만 무성했다.

이때쯤 이현은 슬슬 자리를 일어서려고 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남은 방송도 그와 연관되어 있는 것이었다.

"이번에는 베르사 대륙에서 벌어지고 있는 칼라모르와 하벤 왕국 사이의 전쟁에 대한 소식이 되겠습니다. 파괴의 기사 콜드림. 그리고 그가 이끄는 무자비한 군대가 또다시 일을 저질렀다고 하죠?"

"네. 칼라모르 왕국의 대진격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던 하벤 왕국은 이번에 시스타인 요새를 잃어버림으로써 막다른 골목에 몰리게 되었습니다."

"시스타인 요새 공방전. 어떻게 된 일인지 보고 싶은데요. 동영상이 준비과 되어 있을까요?"

"방금 입수한 따끈따끈한 동영상이 당연히 준비되어 있습니다. 콜드림이 이끄는 칼라모르 군대의 위력과 기사들의 활약이 나와있는 동영상입니다. 시청자 분들도 같이 보시죠."

방송의 화면은 시스타인 공방전으로 바뀌었다.

푸히히힝!

말들이 거친 숨을 내뱉으면서 내달렸다.

"쳐라! 부숴라! 하벤 왕국의 주춧돌 하나도 남지지 않고 모조리 쓸어 버려라!"

"칼라모르 왕국의 영광을 위해!"

"명예와 승리 그리고 폐하를 위해 검을 들자!"

하늘은 금방이라도 굵은 빗줄기를 쏟아 낼 것처럼 회색빛 이었다.

사다리와 밧줄이 걸리고, 칼라모르 왕국의 병사들이 시스타인 요새의 성벽을 장악했다.

발석기와 충차들이 동원되어 성문을 두들기고, 후방에서는 궁수 부대와 마법사 부대까지 공격 마법을 퍼부었다.

시스타인 요새가 애처로워 보일 정도로 어마어마한 화력이 집중되고 있는 중이었다.

말 그대로 벽돌 하나 남겨 놓지 않을 작정으로 공격을 퍼 붓는 것이다.

"용기를 다해 싸우자!"

"왕국의 미래를 위해 여기서 죽자!"

하벤 왕국의 병사들이 분전을 펼치고는 있었지만, 누가 봐도 이미 승산이 없는 싸움.

잘 훈련된 칼라모르 왕국군은 점점 세력을 키워서 군세가 이미 15만에 이르렀다. 하벤 왕국의 주민들과 항복한 병사들을 노예군으로 삼아 선두에 내보냈던 것.

노예군의 징집이나 무작위 약탈.

기사들을 투입한 적진 교란, 유격전, 섬멸전, 포위 공격.

그리고 전투가 개시되면 단 1명의 투항자도 받아들이지 않는 잔혹함까지.

파괴의 기사.

전쟁을 위하여 태어난 인물.

총사련관 콜드림의 평가도 전투를 이김으로써 갈수록 높아지는 중이었다.

"아! 완전 대단해."

최상준이 감탄한 듯 말했다.

칼라모르 군대의 일사불란한 움직임 앞에 시스타인 요새가 무력화 되는 것이 보였다.

"대체 통솔력이 몇이기에 저렇게 많은 병사들을 완벽하게 다룰수 있지?"

칼라모르 왕국 병사들 개개인의 위력도 강했지만, 콜드림의 지휘 능력도 발군이었다.

지금의 상황은 금방 이루어진 게 아니었다.

콜드림은 먼저 주변 성채들을 쳐서 원군이 오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시스타인 요새의 주둔군만 2만이었으니, 원군이 온다면 성채의 특성상 그보다 3~4배 쯤 많은 군사를 막아 내는 것도 불가능은 아니다.

적어도 상당히 많은 시일을 지연시킬수 있으리라.

그래서 콜드림은 먼저 주변의 성채들부터 쳐서, 하벤 왕국의 수도로 가는 길을 활짝 열어 놓았다. 때문에 하벤 왕국의 군대는 사분오열되어 자신들의 거점부터 지켜야 했다.

하벤 왕국의 병력 또한 그리 적은 편이 아니었지만, 그것을 쓰지 못하도록 만든 것.

전쟁이 벌어지면 보통 공격하는 쪽이 훨씬 불리하지만, 오히려 적들을 집 안에 숨어 나오지 못하게 한 것이다.

처음 칼라모르 왕국이 선전 포고를 했을 때, 하벤 왕국의 유저들은 즐거워했다.

'선전포고? 공헌도를 올릴 좋은 기회잖아.'

'국가 간 전쟁. 재밌겠다. 나도 참여해야지.'

승리를 의심치 않고 참여한 유저들은 하벤 왕국군과 함께 방어전에 나섰다.

그러나 칼라모르 왕국은 기사의 나라였다.

하벤 왕국의 유저들은 평원에서 펼쳐지는 대규모 기사대의 돌격 앞에 소름이 돋았다.

9,000여 마리의 말에 타고 있는 기사와 기병들이 창을 높이 들었다. 그리고 먼지구름을 일으키며 전력 돌진한다.

그냥 서 있는데도 땅이 흔들리고, 그에 더해 고막을 찢을듯한 함성소리!

"뭐, 뭐야 이건."

"일단 피하고 보자. 앞에 있으면 무조건 죽을 것 같아."

"하지만 병사들이....."

"바보야! 네가 죽고 난 후에 병사들이 무슨 의미가 있어?"

뭐든 부숴버릴것 같은 그 기세에 선두에 있던 유저들은 당황해서 전장을 이탈했고, 그것은 하벤 왕국군의 사기를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백부장, 천부장, 심지어는 하벤 왕국의 기사로 있던 이들까지 칼라모르 군대의 돌격 앞에 몸을 뒤로 뺐다.

지휘하던 부대가 제대로 싸워보지 못하고 궤멸항한 것은 당연했다.

칼라모르 왕국의 기사들 사이에도 유저가 섞여 있었지만, 그들은 그러한 광경을 보며 더욱 힘을 얻었다. 그들은 공격을 하는 입장이었다. 무너진 적진을 유린하면 될 뿐이었다.

이윽고 기사들이 적진을 정신없이 휘저었다.

본대가 철저히 유린되고 있는 사이에 콜드림이 지휘하는 궁수 부대들은 전장을 멀찍이 우회해서 화살을 쏘았다.

포위한 채로 쏘아 대는 화살들은 제대로 된 지휘를 받지 못하고 있던 하벤 왕국군을 더욱 혼란에 빠뜨렸다.

평원에서 칼라모르의 기사들을 막아 낼수 있다고 믿었던 것은 굉장한 착각이었다.

칼라모르 왕국군은 그야말로 대승을 거두었고, 하벤 왕국의 군대는 참패를 당했다.

기사들의 추격을 뿌리치고 도주하기도 쉽지 않아서, 궤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었다.

마지막에 마법사들이 모든 마나를 태워서 항전하고, 최후까지 싸운 이들이 있었지만 전쟁에 미치는 영향은 극히 적었다.

전격적으로 움직이는 이동 속도, 한 부분에 공격을 집중해서 진영을 무너뜨리는 지휘 능력.

휘하 기사들과 함께 무자비하게 돌격하는 콜드림은 하벤 왕국 유저들의 넋이 나가게 할 정도였다.

그 후로 하벤 왕국은 변변한 공격을 하지 못하고 방어에만 급급한 형국이었다.

약탈을 통해 몇달은 버틸수 있는 물자까지 확보한 이후로, 콜드림은 전장의 사신이라고 불렸다.

지금 벌어지는 시스타인 전투도, 먼저 발석기의 공격이 며칠에 걸쳐서 이어졌던 것이다.

최상준이 화면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채 말했다.

"칼라모르 왕국의 기사들이 굉장히 강하고... 괜히 기사의 왕국이 아니야. 칼라모르 왕국군에 지원하는 유저들도 굉장히 많다고 하니....."

이유정과 민소라도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고 가만히 고개르  끄덕였다.

심정적으로는 이미 칼라모르 왕국을 응원해 주고 있었다.

하벤 왕국에는 유별나게 명문 길드들이 많았다. 길드들의 사냥터 독점과 과도한 세금으로 인하여 피해를 받지 않은 사람이 드물 지경이었다.

그처럼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에게는 콜드림의 통쾌한 공격이 대리만족까지 주었다.

하벤 왕국의 일반 유저들조차도 별로 잃을것이 없다면서 전쟁에 참여하지 않았다. 사실 모병을 하더라도 지원하는 유저들이 거의 없는 형국이었다.

칼라모르 왕국군이 하벤 왕국군을 압도적으로 제압하는 동영상이 이미 천지 사방으로 퍼졌다.

그런 방송들의 영향도 현재로써는 무시 못 할 정도였다.

전쟁의 흐름이 칼라모르 왕국으로 넘어간 데에는 그러한 근본적인 이유도 존재했다.

이현은 흐뭇했다.

'역시 저놈을 살려주기를 잘했군.'

뱀파이어에게 붙잡혀 있는 녀석을 살려 주었더니 파괴의 기사라면서 추앙을 받고 있다.

칼라모르 왕국군의 공헌도나 콜드림과의 친밀도를 떠올릴수록 뿌듯할 뿐이었다.

시스타인 요새의 외성 벾이 결국 칼라모르 왕국군의 진격을 막지 못하고 점령되었다.

내성 벽에서는 협소한 공간 탓에 공성 병기를 활용하기 어려웠고, 마법사 부대 또한 휴식을 취해야 한다.

"병사들이여, 진군하라!"

콜드림은 지체하지 않고 인해전술로 길을 뚫는 방법을 택했다.

불리한 전장에서 칼라모르 왕국의 병사들이 일제히 돌격을 했다.

"살려 줘!"

"안으로 들어가야 돼."

하벤 왕국군은 사기가 떨어질 대로 떨어져 있었다. 서로 내성으로 들어가기 위해 엉키고 엉킨 난장판.

그 뒤를 칼라모르 왕국의 병사들이 바짝 추격하면서 승리를 굳혔다.

그러고 나서 기사들의 대대적인 진입!

전투로 피로한 기사들이었지만, 다 이긴 전쟁을 굳히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시스타인 요새에서 하벤 왕국의 깃발이 내려지고 칼라모르 왕국의 깃발이 올라갈 때에는 뜨거운 함성이 터져 나왔다.

"이번 전투로 시스타인 요새가 무너지면서 하벤 왕국으로서는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전쟁의 양상은 어떻게 될까요?"

"말씀하신 그대로 입니다. 물러설 곳이 없어졌으므로 하벤 왕국의 유력 길드들이 참전하게 되리라 봅니다. 개입을 꺼리던 성주들도 더는 버티지 못하게 되어, 진정한 전쟁은 지금부터라고 할수 있습니다.

"어떤 던전을 탐험할지 그리고 무슨 모험을 할지 정해야 돼요."

방송을 다 보고나서 이유정이 또박또박 정확한 어조로 이야기했다.

장학금을 노리는 그녀로서는 중간시험을 대체하는 과제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싶었다.

"그럼 모두 각자의 직업과 레벨부터 맒해보는 게 어떨까요? 먼저 저부터 말할게요. 검사이고 데일왕국에 있어요. 레벨은 237이에요."

다음 소개는 민소라였다.

"전 유정이랑 같이 있고, 인챈터. 레벨은 144인데.... 지난번 보다 많이 안 늘었어요."

민소라는 낮은 레벨이 부끄러운 듯 혀를 살짝 내밀었다.

신입생 설명회 당시에 서로 인사를 나눌 때에도 140이었는데 그동안 레벨이 그다지 오르지 않은 탓이었다.

"검사 297. 흑사자 길드에 소속되어 있고, 현재 위치는 흑사자 길드의 영토인 네할레스 성."

최상준이 자신 있게 스스로를 소개했다.

어디에서도 인정을 받을수 있는 레벨과 영향력이었다.

박순조도 어색하게 자신을 밝혔다.

"도둑이고 레벨은 355. 지금 있는 장소는 수나 왕의 무덤인데....."

수나 왕의 무덤!

함정이 많고, 고대 미라들이 출몰하여 고레벨 유저가 아니고는 함부로 들어가지 못하는 장소였다. 무덤의 넓은 면적탓에, 대회랑을 지나면 왕이나 왕비의 방들을 포함하여 아직 발굴하지 못한 장소들이 많았다.

"수나 왕의 무덤이라니....."

"레벨도 저번보다 훨씬 더 높아졌잖아."

"거길 혼자 탐험해?"

"주력 스킬로 함정 해체와 기습을 전문적으로 키워서 그럭저럭 버틸만 하거든."

박순조가 관심을 끌고 있을 때에 이현은 슬그머니 자신을 소개했다.

"조각사. 레벨은... 뭐 그냥 그렇고. 현재 있는 장소는 토르왕국."

거짓말을 한 건 아니었다.

다크 게이머로서 밑천이라고 할수 있는 레벨이나 특성, 스킬 들을 그대로 공개할수 없어서 였다.

"아, 그렇구나."

이유정은 더 캐묻지 않고 넘어갔다.

그래도 원래 조각사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 따로 캐물을 필요는 없었다.

무시하지 않은 것은 인챈터로서 레벨이 낮은 민소라의 영향도 있었다.

"이현 오빠."

"응?"

"과제 매번 안하시는 거 알지만, 이번에는 꼭 다같이 해 주셔야 돼요. 어쨌든 2명을 더 모아서 7명이 다 함께 참여하지 않으면 제대로 성적을 얻기 어럽거든요."

"그래."

이현은 쉽게 고개를 끄덕였다.

보통의 과제들이야 안 하더라도 학점을 이수하는데 큰 지장은 없었다. 이현의 목표는 그저 기본적인 학점만 받아서 졸업하는 것이었으니까.

대학생들 상당수가 그렇듯이 놀고 먹기 위한게 아니라, 일을 하느라 시간이 없을 뿐이엉ㅆ다.

'하지만 로열로드라면 이야기가 다르지.'

로열로드는 직업이다.

생계를 꾸려 나가는 터전 같은 곳이니 던전을 탐험하는 일에도 최선을 다해야 했다.

이현이 수락을 했음에도 고민거리는 남아 있었다.

민소라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런데 우리의 직업이 너무... 던전 탐험에는 어울리지 않는 것 아닐까."

인챈터와 조각사.

검사 둘에 도둑 1명도 있지만 레벨 차이가 심하게 났다.

조합도 맞지 않을 뿐더러, 손발을 맞춰 본 경험도 전무했던 것.

"나머지 2명은 어떻게든 성직자나, 최소한 샤먼 정도는 영입을 해야겠어."

"응. 그러지 않으면 던전 탐험은 정말 힘들거야."

"다른 조들은 미공개 던전들을 탐험하겠다고 벼르고 있는데, 우리도 그나마 유명한 던전을 탐험해야 학점을 받을수 있을 테니까."

"던전의 난이도는 꼭 높지 않더라도, 조합 이나 협력에 따라서 그 이상의 힘도 낼수 있잖아."

"하지만 남은 사람들 중에 성직자나 샤먼이 과연 있을까? 그리고 이번 과제가 끝나고 나면 축제인다...."

"우리 과는 무슨 준비를 하는데?"

"구체적인 건 모르겠지만 학회 차원에서 대대적으로 준비를 하는 것도 같더라."

한국 대학교의 축제는 규모나 다양성 면에서 큰 인기를 누렸다. 타 학교 학생들을 비롯해 일반인들도 많이 오고, 가수와 연주가 들도 와서 소규모 콘서트를 벌인다.

학생들이 개최하는 주점과 발표회 등은 축제의 백미였다.

이현은 생각했다.

'이놈의 대학교는 귀찮은 일들이 끊이지가 않는군!'

MT를 다녀왔더니 과제들이 첩첩이 쌓이고, 그것을 해결하는 일도 까마득한데 그 다음에는 축제가 열린다.

'따지고 보면 인생도 로열로드의 연계퀘스트나 다를바가 없어.'

이현은 극히 우울해 졌다.

금쪽같은 시간을 축제나 학교 과제에 써야 하다니!

축제에 오는 예쁜 여성들이나 댄스파티, 콘서트 등으로 다른 학교 학생들은 한국 대학교를 부러워했다.

실컷 내뿜는 젊음의 활력.

하지만 이현에게는 귀찮은 일에 불과했다.

'빨리 끝났으면 좋겠군.'

축제는 자그마치 닷새에 걸쳐서 진행되고, 그 사이에 할 것들을 준비하자면 한참 전부터 바쁘다. 이현이 빠져나갈 구석을 이리저리 찾아보았지만 발견하기가 쉽지 않은 까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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