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쿠르소』
드워프의 대장간에도 등급이 있다.
실력이 낮은 축에 드는 드워프들은 마을의 아래쪽에 대장간을 차렸다.
물론 그들의 솜씨도 인간이나 다른 종족들보다는 훨씬 뛰어난 편. 파손이 심한 무기나 방어구의 수리 따위는 금세 해치워 버린다. 대장간에서 직접 생산한 물품들의 품질도 나쁘지 않아, 상인들의 손에 의해 베르사 대륙 전역으로 팔려 나갔다.
노블핸드의 대장간은 아이언핸드 마을에서도 가장 위쪽에 있었다. 그만큼 존중받는 드워프 장인이라는 뜻이다.
위드가 대장간으로 찾아갔을 때, 드워프 노블핸드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 도끼의 날을 세우는 중이었다.
:무슨 일인가, 어린 드워프!"
"데인핸드를 대신해서 철광석 20개를 가져왔습니다."
"그 어린 녀석이 이번엔 웬일로 약속을 지키는군. 혹시라도 내가 풀무질하는 것을 보고 싶다면, 구석에서 지켜봐도 괜찮아."
퀘스트에 성공하고 나서도 30분 정도를 기다렸다가 노블핸드의 의뢰도 받았다.
철광석에서 철을 추출할 시간이 없다면서, 알아서 녹여 철괴로 만들어 오라는 의뢰!
굳이 지정된 대장간에서 주문해야 하는 것이 아니기에 위드는 철광석에서 직접 순도 높은 철을 뽑아냈다.
대장장이 스킬 초급 3레벨만 되어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다.
"급했는데 일을 빨리 잘 처리해 줘서 고맙군. 그리고‥‥."
노블핸드는 철괴를 보더니 크게 놀랐다.
"어떤 드워프가 이 철괴를 만들었지?"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적단한 무게 배분에 크기가 일정핟고 순도도 높군. 이런 실력의 대장장이라면 100개의 검을 만들더라고 일정한 품질을 유지할 수 있겟어."
노블핸드는 위드가 만든 철괴를 크게 칭찬했다.
검을 100개 만든다고 하면, 아무래도 몇 개는 의도치 않는 실패작이 나오기 마련이다. 미세한 재료량의 차이, 불의 온도, 두드리는 강도에 따라서 말이다.
나무 조각품의경우에는 철보다 훨씬 적은 질량을 가지고 황금 비율을 맞춰야 하며, 조각의 세밀도도 훨씬 높다.
나무 조각품으로 단련된 덕분에 그리고 손재주 덕에, 철괴의 일정함을 유지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노블핸드가 정색을 하고 말했다.
"그런데 양이 40그램씩 모자란 것 같은데‥‥. 20개의 철광 석에서 이 정도의
철밖에는 추출되지 않았나?"
"‥‥‥."
"뭐, 이 정도의 차이는 크게 중요하지는 않으니 넘어가지. 혹시 자네도 모두가 놀랄 망한 엄청난 무기를 가지고 싶지 않나?"
다크 게이머 길드의 정보를 읽었을 때 여기서의 대답은 '그렇다.'였다.
"세상을 경악하게 만들 무기를 갖고 싶습니다. 드워프들이 만든 무기만이 그에 걸맞는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노블핸드는 만족스러운 듯이 웃으며 수염을 쓰다듬었다.
"그래. 우리드워프들만이 고아물을, 보석 들을 다룰 능력이 있지. 인간들의 실력은 절대 우리를 쫓아오지 못해."
드워프들의 끝을 모르는 자부심!
불을 다루는 일에서만큼은 최고로 정평이 나 있었으니 근거 없는 자만심은 아니었다.
:드워프의 무기라....자네는 얼마나 되는 무기를 구매하기를 원하나?"
비싸게 부른다고 해서 사야만 하는 것도 아니고, 일정 수준 이상의 가격만 부르면 된다.
위드는 당당하게 말했다.
"5천억 골드짜리 무기를 사고 싶습니다."
그러자 노블핸드는 버럭 짜증을 냈다.
"5천억 골드! 우리드워프들이 가진 돈을 다 합쳐도 그렇게는 안 되겠어.
이렇게 허황된 꿈을 갖고 있을 줄 몰랐군. 썩 내 대장간에서 나가게!"
이대로 물러나면 그간의 고생은 모두 헛일이 된다.
위드는 급히 자신의 말을 보완했다.
"드워프들의 무기라면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말입니다.
제가 가진 돈은 2만골드 정도입니다."
실제로 가진 돈은 2.600골드밖에 없다.
잡템이나 필요하지 않은 장비들도 다 팔아서, 그야말로 거지 신세!
"2만 골드나 있다고?"
"예."
"드워프들이 만든 무기를 사기 위해서 가져온 돈인가?"
"맛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도와줄 수 있는 일이 있겠군. 드워프들은 모두 부유해 보이지만, 사실 꼭 그렇지는 않아. 늘 뭔가를 만들어서 성공과 실패를 반복하는 까닭에 돈이 별로 없다네. 언제나 비싼재료 값에 허덕이니 적자야, 적자."
상인들이 드워프 왕국에 올 때 비싸게 팔 수 있는 것은 두 종류다.
재료 아이템과 맥주.
드워프들은 그들이 만들려고 하는 물품의 재려에 대해서는 돈을 아끼지 않아, 시세가 비싼 편이다.
그러나 다른 사치품들은 거의 사지 않는다.
드워프들의 여윳돈이 그리 많지 않았고, 또 어떤 장식품이라고 해도 어울리지 않는 외모 때문이었다.
귀거리를 주렁주렁 달고 있는 드워프나 코를 뚫은 드워프가 어디 상상이나 되는가.
사실 1명도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들은 드워프 사회에서 전부 매장당했다.
"자네가 가진 2만 골드라면 내가 아는 드워프들에게 큰 도움이 될 거야. 그들이 만든 물품이들이야말로 진짜 최고라고 할 수 있어. 소개장을 써 줄 테니 이것을 가지고 동쪽 네인핸드 마을로 가게. 그리고 가장 오래된 폐광을 찾으면, 진짜 뛰어난 드워프들이 사는 곳을 볼 수 있을 거야."
띠링!
-드워프 노블핸드의 소개장을 획득하셧습니다.
위드가 필요로 하던 물건은 바로 이 소개장이었다.
다크 게이머 연합의 정보를 뒤져서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을 간신히 알아낸 장소.
재주가 뛰어난 드워프들이 모여 있으며, 고급대장장이 스킬까지 배울 수 있는 곳.
빛 한 점 없는 오래된 폐광을 걸어 들어가면, 지하 호수와 함께 드워프들의 도시가 나타난다.
돌과 철, 금으로 세워진, 드워프 장인들이 사는 도시였다.
그곳에 들어갈 수 있는 모든 준비가 끝난 것이다.
* * * * * * * *
위드는 어렵지 않게 네인핸드 마을로 가서, 가장 오래된 폐광을 수소문해서 들어갔다.
폐광은 끝을 모르도록 깊은 지하로 연결되어 있었다.
저벅저벅.
횃불이 흔들릴 때마다 위드의 그림자가 격하게 춤을 추었다.
주변만 간신히 밝히는 횃불에 의존한 채로 지하로 내려가는 것은 원초적인 두려움을 자아낸다.
30분 정도 걸어가니 폐광은 천영 동굴과 연결되어 있었는데, 이때부터 나타나는 종유석이며 정적을 깨며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 등이 공포감을 가중시켰다.
로열 로드의 대중화가 이루어진 이후 공포 영화의 관중숫자가 크게 줄어들었다. 베르사 대륙을 모험하다 보면 인적이 뜸한 지역이 많고, 함정, 몬스터 들로 이루어진 던전을 탐험하다 보면 온갖 일들을 경험하게 된다. 그 때문에 공포 영화를 보는 사람들이 줄어든 것이다.
실제로는 초등학생들조차도 공포 영화의 소재들에 대해 놀라지 않게 된 이유가컸지만.
"좀비다!"
"레벨30은 되겠네. 전염병 특성은 없을거야."
"축복 한 방 받고 싸우면 금방 없애 버릴 텐데."
좀비에게 도망치는 주인공들을 보며 이런 말들을 할 여유가 생긴 것이다.
위드는 어두운 동굴을 내려가며 공포감에 빠지지 않았다.
"뭐라도 1마리 튀어나오면 심심하지 않을 텐데."
몬스터나 함정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니 긴장감도 없다.
벽에는 드워프들이 한 낙서들이 있었는데. 대부분은 의미 없는 글귀들이었다.
-철광석 5개와 은광석 1개로 만들 수 있는 물건은?
-베인 마을의 드워프들은 위대한 발견을 했다. 그것은‥‥나도 모른다.
베인 마을의 드워프들은 알고 있을까?
-절대 뒤를 돌아보지 마라. 뒤를 돌아보게 되면‥‥‥.
괜한 심란하게 만들어서 공포감을 자아내는 낙서들이었다.
드워프들의 성격은 낙천적으로, 익상스럽고 장난을 좋아한다.
불을 좋아하고 어둠을 싫어하는 탓에 이렇게 낙서들을 즐겼다.
이러한 낚서들의 연관 관계를 조사해 본 모험가도 몇몇 있지만, 전부 손을 들었다. 드워프들이 만든 탐광에는 어김없이 낙서들이 있었지만, 그 방대한 양에도 불구하고 아무 소득이 없었던 탓이다.
그렇게 어두운 동굴 속에서 걷는 것이 익술해질 무렵 점차 길이 밝아져 왔다.
드디어 목적지에 가까워진 것이다.
위드의 발걸음도 저절로 빨라졌다. 그리고 마침내 동굴의 끝에 도달하는 순간, 볼 수 있었다.
거대한 공동이 있었다.
지하 수로에서 모여 온 물길들이 호수로 떨어지고 있다. 수면에서는 신비로운 은빛 알갱이들이 반딧불처럼 돌아다닌다. 호수의 옆에는 돌과 흙으로 지어진 아기자기한 집들이 마을을 이루었다.
드워프들이 사는 집.
수로를 통해 호수의 물을 집들마다 끌어오고 있었다.
은빛 알갱이들이 호르는 물길이 드워프들의 마을을 굉장히 아름답게 보이게 한다.
대장간들은 끊임없이 흰 연기를 뿜어내는 중이었다.
어떤 집들은 금이나 은, 귀한 미스릴과 보석 들로 세워져있다.
다분히 과장을 좋아하는 드워프들이었지만, 인간들처럼 화려한을 추구하진 않는다.
금은보화로 지어진 집들은 선술집이었다.
광물들을 이용해서 술집을 만들어야 맥주 맛이 제대로 난다고 하였던가.
드워프 장인들이 모여있는 도시 쿠르소다운 모습이었다.
* * * * * * * *
죽음의 사제 퀘스트.
로열 로드 최초의 S급 퀘스트를 위해 데이몬드는 로열 로드 게시판에 선포했다.
-우리 대지의 약탈자 길드에서는 북부의 보스 몬스터들을 사냥한다.
그 어떤직업도 가지리않는다.
함깨도전할전사들을 구합.
사냥이 성공했을 때에는 획득 전리품을 한 가지만 제외하고 골고루 나누어 주겠다.
최소한 보스 몬스터의 위치만 알려 주더라도, 1만 골드의 포상금을 주겠다.
유저들은 시큰둥하게 반응했다.
"대지의약탈자 길드라면 이미 한물갔잖아."
"성도 마을도 다 빼앗기고‥‥북부에 가서 사냥을 하고 있었군."
"과연 성공이나 할 수 있을까."
사냥에 참여하기로 한 유저들은 적었다.
북부 전체가 깨어난 몬스터와 마물 들로 뒤덮이기라도 한 것 같은 상황이라서, 멀리 원정을 가기에는 무리라를 판단.
그러나 위험을 무릅쓰고 모험을 하고 있는 소규모 탐험대로부터 소식들은 모이고 있었다.
"엘드라 호수의 동쪽에 히드라들이 사는 통곡의 늪이 있습니다. 다른히드라보다 유난히 크고 머리가 많은 녀석이 있는데‥‥자세한 것은 저도 잘 모르겟습니다."
보스 몬스터의 제보가 들어왔다.
데이몬드는 길드원들을 이끌고 엘드라 호수로 향했다.
근처의 조그만 개척 마을에서 제보자를 만나 정말로 만 골드를 주었다, 그러고는 통곡의 늪으로 갔다.
히드라는 몸집이 6미터가 넘을 만큼 컸다. 움직이는 속도는 느리지만 여러 개의 머리를 가지고 있고, 각 머리들이 강한 독을 쏘아 낸다.
갑옷과 방패의 내구력을 순식간에 낮춰 버릴 정도의 산성 독!
히드라들이 사는 땅도 발이 깊숙하게 빠져드는 늪이라, 사냥하기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가자."
데이몬드와 워리어 수반이 앞장섰다.
히드라들을 뚫고, 이튿날에는 제보가 들어왔던 보스 몬스터를 발견했다.
7개의 머리를 가지고 있으며, 각 머리들은 저주와 독을 쉬지 않고 사용했다.
머리를 휘두르 기도 하고 집어 삼키기도 한다.
대지의약탈자 길드에서는 25명이 넘는 피해를 입고 겨우 사냥에 성공했다. 그리고 그것을 명예의 전당에 생생하게 올렸다.
"보스급 몬스터를 사냥하긴 한 모양이네."
"북부에서는 히드라를 잡은 것이 최초인가?"
다음 제보들은 더 많이 들어왔다.
데이몬드는 그중에 가까운 곳을 골랐다.
"어떤 성의 잔해가 남아 있는 장소입니다. 크고 꾸물거리는 지렁이들이 있는데‥‥무심코 들어갔다가 탐험대가 전멸했습니다."
지렁이라고 무시할 게 아니었다.
공격을 해도 꿈틀꿈틀 잘 죽지 않는 데다가, 희귀하게도 언데드였다.
언데드 지렁이!
"보스급 몬스터 이름은 라바 녹색의 몸을 가졌고 머리는 인간처럼 생겼습니다."
대지의약탈지 길드는 타수 피해를 입었지만 라바를 사냥할 수 있었습니다.
복부의 보스 몬스터들이 몇이나 될지, 아직 누구도 알 수 없는 상황. 대지의 약탈자 길드는 무모한 도전으로 점점 주목을 끌었다.
* * * * * * * * * *
쿠르소는 과연 드워프 대장장이들의 천국이라 불릴 만했다.
뚱땅뚱땅.
거리에서도 망치를 들고 뭔가를 두들기는 드워프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광물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고, 완성된 물품들도 쌓여 있었다.
아이언핸드나 다른 마을에 비하면 드워프 숫자도 많지 않고 한적한 편이지만, 열기는 뜨거웠다.
"엑버린이 이번에 제조한 창을 알고 있어?"
"알지. 기본 공격력만 90이 넘는 차잉 나왔다지 않나."
"거기에 정령의 화염 구슬, 바람의 구슬을 넣어 불의 회오리 효과를 넣었다더군."
"그럼 공격력이 얼마나 추가되는거야?"
"무려23이나 돼. 매번 적용되는 건 아니더라도, 굉장한 무기지."
"엑버린의 위신이 크게 새워졌겠군. 그만한 무기를, 그것도 활용성이 좋은 창을 만들었으니까."
"그래서 나도 창을 만들려고. 처음으로 공격력 100이 넘는 창을 만들어 보겠어."
드워프들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제조에 푹 빠져 있었다.
그들은 위드가 지나가는데도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파비오 어르신은 여전히 방어구를 만들고 계시다던데."
"그분이야말로 방어구 제작에는 거장이라고 할 만하니까. 돈을 얼마든지 쓸 수 있다면 , 검보다는 방어구를 만드는 편이 낫지."
"젠장. 나도 돈만 있다면 이러고 있지는 않을 텐데."
"그런 말은 하지도 말게. 파비오 어르신도 다 당신 능력으로 돈을 벌어들이신 것 아니겠나? 질투할 일이 아니야."
"누가 그걸 모르나."
위드도 파비오에 대해서라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토르의 드워프 대장장이 파비오는 굉장히 유명한 유저였다.
위드가 천공의 도시 리비아스에서 데스 나이트와 싸울 무렵부터 방어구 강화로 이미 이름을 날리고 있었다.
파비오의 손만 거쳐 가면 방어구들이 묵은 때를 벗겨 낸듯이 빛을 발한다고 한다.
명장의 손 파비오.
그에게 의뢰를 부탁하기 위해 베르사 대륙의 소위랭커들, 명문 길드들이 돈 보따리를 싸 들고 모여들었다.
방어구를 강화하게 되면 무게가 다소 늘어나지만, 튼튼한 갑옷을 마다할 사람은 없다. 레벨이 높아질수록 죽었을 때의 피해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위드처럼 집요하게 인내력과 맷집을 키우려고 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 현실이었다.
사람들은 명검만큼이나 명품 갑옷들을 선호했고, 그렇게 비싼 갑옷들을 강화하는 데 돈도 아끼지 않았다.
파비오는 그 시절에 막대한 재산을 모았다.
대장장이로서 거부를 이룬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
CTS미디어에서 한떄 위드와 함께8명의 유저들에 대한 방송을 했는데, 그때 함께 선정되었던 유저이기도 하다.
그 후 중급 대장장이 유저들이 많이 등장했다.
미스릴 광산들이 개발되고 유저들의 레벨이 높아지면서 더 좋은 대장장이 재료들이 등장한 덕분에, 대장장이 스킬을 올리기가 조금이나마 쉬워졌다.
방어구 강화를 택한 유저들이 점차 늘어날 무렵, 파비오는 베르사 대륙에서 모습을 감췄다. 어디에 있는지 궁금하던 차였는데, 쿠르소에서 대장장이 스킬을 연마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위드의 발걸음이 거의 멈춰졌다.
길가에 있는 다른 드워프들이 만드는 물품들 그리고 완성된 물품두르이 수준이 어느정도인지를 구경하기 위해서였다.
드워프들은 자신의 물건만을 만들 뿐, 남이 구경하든 말든 신경도 쓰지 않았다.
자신들이 만든 물건을 살 테면 사고, 사지 않을 거면 가라는 식이었다.
"헤르만 어르신은 요즘 뭘 하고 계시지? 한동안 안 보였는데."
"모르겠어. 다시 돌아오셧는데, 지금은 아마도 검을 만들고 계시지 않을까?"
"쯧쯧, 헤르만 어르신은 너무 신중한 게 흠이야. 한때 그 분의 솜씨를 따라갈 대장장이가 거의 없지 않았나."
"옛날에는 그랬지. 한4개월, 5개월 전만 하더라도 우리 장인들 사이에서 헤르만 어르신의 실력은 첫손가락에 꼽힐 정도였으니."
"검 한 자루를 만들더라도 심혈을 기울인 명품만 고집하고‥‥‥. 그렇게 일주일. 1달씩 걸려서 만들면 뭐해. 사 가는 사람은 알아주지도 않는데."
"그럼. 맞는 소리지."
"그리고 경매 들을 통해 비싼 값에 팔지도 않으니 뒤처지는 수밖에 없지. 대장장이도 결국은 돈이야, 돈."
위드는 얼마 전까지 헤르만과 함께 있었다.
베르사 대륙에 동명이인이 한둘이 아니지만, 드워프 대장장이 그리고 쿠르소와 가까운 마을인 아이언핸드에서 만난 헤르만이라면 다른 드워프일 가능성이 거의 없었다.
'어쩌면 이곳에서 또 만나게 될지도 모르겠군.'
위드는 인연에 대해서는 크게 집착하지 않았다.
폐일 들과 참 많은 사냥터를 같이 다닌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다크 게이머로서 그는 위험한 의뢰들을 거부할 수 없다.
잠을 자고 학교에 갈 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시간을 로열 로드에 투자하는 상황이라, 다른 사람과 함께 다니기는 어렵다.
'인연이 있다면 보겠지.
위드는 쿠르소의 행정청으로 향했다.
* * * * * * * * *
행정청은 드워프 왕국 쿠르소를 실질적으로 다스리는 기관이다.
다른 왕국들의 나랏일이 국왕이나 귀족들의 뜻에 따라 결정된다면, 행정청은 특이한 의사 결정 방식을 가졌다.
드워프 장로들의 협의에 따라 모든 정책들이 결정되고, 장로들은 매해의 첫 주에 뽑힌다.
무력이 강한 드워프 3명, 솜씨가 뛰어는 드워프 7명으로 총 10명의 장로가 선출되어 행정청을 이끌어간다. 물론 성년도 넘기지 못한 너무 어린 드워프들은 일단 장로가 될 자격이 없다.
장로가 되는 문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고 할 수 있지만, 유저가 장로가 된 경우는 아직 없었다.
행정청에는 각기 1명씩의 장로가 번갈아 가며 근무하고 있었다.
"새로 쿠르소에 온 드워프로군. 등록을 원하나?"
"예. 원합니다."
"직업이 무엇인가?"
"조각사입니다."
쿠르소는 악룡 케이베른에게 세금을 바치지 않는다. 드워프해방단체처름 무력으로 지배하는 길드도 없었다. 그렇기에 아직 드워프들의 규칙에 따라 운영되고 있었다.
쿠르소에 들어오는 것은 자유!
하지만 한 번이라도 밖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조건이 있다.
최소 민망하지 않을 수준에 이른 작품을 만들어야 하며, 그것을 바쳐야 한다.
조각사에게는 조각품이 될 것이다.
더 좋은 물건이 있으면 대체해도 되지만, 더 나쁜 물건으로 바꿀 수는 없다. 마지막에 완전히 떠날 때에도 최소한 한 가지는 남겨놔야 한다.
쿠르소에서 활동하기 위한 최소한 조건이었다.
세금만 꼬박꼬박 바치면 되는 다른 왕국들과는 달리 특별한 제한이다.
드워프 장로가 위드를 향해 물었다.
"이름이 무엇인가?"
"아트핸드입니다."
"좋은 이름이야."
이것으로 등록 절차는 전부 끝났다. 쿠르소를 떠나기 전까지 하나의 조각품만 만들어 주면 될 뿐이었다.
하지만 위드는 행정청을 나가지 않았다.
"질문드릴 것이 있습니다."
"말해 보게. 쿠르소의 안내를 원하는 건가? 아니면 하고 있는 일이 없다면 내 부탁을 들어주겠는가?"
드워프 장로의 의뢰!
하지만 위드에게는 매력적이지 않은 제안이었다.
위드의 명성이 엄청나다고는 해도, 드워프로 종족을 바꾼 이후에도 전부 적용되지는 않았다.
드워프 종족의 특성에 맞춰서 예술품으로 쌓은 명성은 남아 있었지만, 모험을 통해 얻은 명성은 일시적인 제한을 받았다.
그럼에도 막대한 명성을 가지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쿠르소는 다른 왕국과 교루가 빈번하지 않는 편.
베르사 대륙이나 북부에서 쌓은 명성은 당연히 쿠르소에 까지 알려지지 않았다.
위드의 명성이 높다고 해도, 당장 이곳에서는 수준 낮은 의뢰들밖에는 받지 못했다.
"안내나 의뢰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혹시 드워프 조각사 켄델레브에 대하여 알고 계십니까?"
토르 왕국에서 찿을 수 없다면 쿠르소에서는 찿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게 위드의 생각!
위드가 던진 질문에 드워프 장로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드워프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조각사였지. 그분의 조각품들은 생동감과 신비로움으로 가득 찼었다고 해. 나도 선조들로부터 들은 이야기에 불과하지만 말이네."
켄델레브에 대한 당서를 발견할 수 있었다. 적어도 켄델레브가 실존했던 드워프라는 사실만큼은 확인이 된 셈이다.
위드는 희망을 갖고 물었다.
"그분의 제자나, 남기신 조각품을 어디에 가서 찾을 수 있을까요?"
"그것만은 나도 알지 못하겠네. 그분은 따로 조각품을 남기지 않은 것으로 아는데‥‥‥. 인연이 있다면 발견할 수도 있겟지. 그러고 보니 켄델레브에 대해서 물어보는 드워프들이 참 많았군."
"저 외에도 다른 드워프가 물어봤던 적이 있습니까?"
"많았지. 적어도 스물은 넘었을 걸세."
위드처럼 쿠르소에 와서 켄델레브에 대해 질문을 한 드워프가 스물이 넘는다. 그럼에도 그들도 모두 의뢰를 실패했다는 뜻이었다.
'쿠르소에 있었다는 단서는 사실이다. 이 사실이 소문이 안 난 이유는, 자기는 포기하더라도 다른 드워프에게 기회를 주지 않을 생각에서일 거야.'
본인 스스로는 도저히 켄델레브의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 하지만 다른 드워프는 발견할지도 모르기에 자신의 발견을 공개하지 않고 숨긴 것이리라.
위드는 다른 질문을 했다.
"미지의 존재들, 저에게 말을 하는 이들을 조각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드워프장로는 멀뚱멀뚱 쳐다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그런 일이 있었는가?"
"‥‥‥."
"쿠르소에서는 필요한 게 있다면 직접 찾아봐야 되지. 원하는 게 있다면 스스로 얻어야 할 걸세."
결국 이것도 쉽게 얻을 수는 없다는 말이었다.
위드가 얻고자 하는 답은 어쩌면 아무도 가르쳐 주지 못할 지도 모른다.
'미지의 존재들. 그들 자체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또 누군가 이미 그들을 조각했다면 나에게 조각해 달라고 떼를 쓸 필요도 없겠지.'
조각술이 경지에 이르면서 단 1명만이 얻을 수 있는 기술!
조급해하지는 않았지만 쉽게 얻기 힘들 것임은 짐작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