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조각술 의뢰의 비밀』
위드는 행정청을 나와서 다시 쿠르소를 제대로 살펴보기로 했다.
거리에는 드워프 장인들이 쉬지 않고 무언가를 만들고 있었고, 대장간들이 많았다.
파비오의 대장간, 엑버린의 대장간, 밤비의 대장간.
이름이 있는 대장간들은 아마도 스스로 돈을 모아서 지었거나, 자격을 갖춰 입주한 것이리라.
다른 왕국에서도 국가에 대한 공헌도를 채우거나 기사가 되면, 자기만의 별장이나 주택을 가질 수 있다.
'쿠르소에서는 대장장이 실력을 바탕으로 평가하겠지.'
재봉이나 다른 세공 기술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드워프들은 광물을 바타응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을 워낙에 좋아하다 보니 대장장이 기술을 최고로 쳤다.
"난 드워프 힌스다. 시간이 부족해서 그러는데, 나와 같이 창 100개 만들기에 도전할 사람이 있나? 대장장이 공방의 의뢰다."
쿠르소에도 필요에 따라 동료를 모으는 이들이 있었다.
"무튼 상회의 의뢰다. 갑옷을 20개 만들어 줘야 하는데 요구 조건이 까다로운 편이다. 대장장이 스킬 초급 8레벨 이상의 제련 전문가를 찾는다. 재료는 지급되며 보수는 300골드. 스킬 성자엔 관심이 많은 드워프만!"
"8번 갱도에 몬스터들이 나타나서 채광에 어려움이 많습니다. 이들을 퇴치하시고 8번갱도에 평화를 되찾아 주실 분. 보수는 1인당 20골드씩입니다."
'1개의 보호구라도 제대로 만들어야 된다. 방어구 상점 주인의 의뢰인데, 방어력30 이상의 방패를 만들어서 납품하는 거다. 같이할 드워프?"
인간들의 성이나 마을 들에서는 사냥이나 퀘스트를 위해 동료를 구하거나 물건들을 사고파는 게 주를 이루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물품들을 함께 제작하거나, 필요한 재료를 구해 달라는 요청들이 상당히 많음 편이다.
혼자 하기 힘든 의뢰의 경우에는 함께할 동료를 구하는 편이 훨신 낫다.
덕분에 각종 제작 의뢰드링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실력이 떨어지는 드워프라고 해도 할 일이 무척 많았다.
쿠르소!
고대 드워프 왕국의 이름을 딴, 드워프 장인들의 영광스러운 도시!
드워프들의 집은 입구가 좁고 작았지만, 천장은 인간이 들어가서 서 있어도 괜찮을 정도로 충분히 높다.
무기점이나 여러 상점들은 물론이고, 다양한 수십 개의 상점들이 보였다.
그중에 가장 많은 것은 대장간이었고 그다음은 선술집으로, 드워프들이 술을 마시고 있다.
"이번에 만든 무기가 말이야, 내 취향대로 아주 잘 뽑혔어. 오크들의 머리를 쳐 내기에는 아주 적합해."
"대장장이라면 역시 쿠르소에서 살아야지."
"우리가 베르사 대륙의 대장장이 기술을 선도하고 있으니 자부심을 가져도 될 거야."
드워프 유저들의 왁자지껄한 대화도 들려왔다.
위드처럼 폐광이나 다른 뒷길로 들어온 사람들도 많은지, 인간이나 엘프 요정 들도 상당했다.
"흐에에엥! 왜 이렇게 가격이 비싸요."
유저로 보이는 엘프 미녀가 울상을 지었다. 매우 마음에 드는 활을 발견한 모양이다.
물건을 판매하는 드워프는 강직하게 말했다.
"엘프 따위에게는 비싸게 팔 수밖에 없어. 사기 싫으면 사지 마!"
"후엥, 사고는 싶은데‥‥."
"그럼 어서 돈을 내놔!"
"어떻게 하지. 르미야 돈좀 없어?"
"응 1,500골드나 모자라. 조금만 깎아 주면 좋겠는데. 절대 안깎아 주잖아."
까칠한 드워프들!
동족인 드워프들에게와는 달리 엘프나 인간에게는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다.
동료들로 보이는 미녀 엘프 5명이 상점 앞에 있었는데, 1골드도 깎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위드는 흥정을 하고 있는 엘프와 드워프 옆으로 슬그머니 다가갔다.
엘프 여자를 도와주고 싶은 마음은 추호고 없었다. 그저 쿠르소의 상점에서 판매되는 활의 성능이 과연 어느정도 인지 궁금했던 것이다.
중앙 대륙의 그 어떤 상점보다도 쿠르소에서 거래되는 물건의 성능이 높다고 알려져 있으니 흥미가 상당했다.
위드는 엘프 여성이 원하는 활을 가리켰다.
"이 물건을 좀 보고 싶습니다."
"제가 먼저 보고 있던 상품인데요."
엘프 여성이 발끈했지만, 위드는 얼굴빛 하나 별하지 않고 물었다.
"사실 겁니까?"
"도, 돈이 모자라서‥‥."
"그럼 제가 좀 봐도 되곗죠?"
"그런‥‥‥."
엘프 여성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지만 동료들의 시선은 날카로웠다.
위드를 잡아먹을 듯한 눈빛!
드워프 주인은 선뜻 활을 건넸다.
"우리 가게의 활을 동족이 써 준다면 더 고맙지."
위드는 드워프로부터 활을 넘겨받아서 세심하게 살폈다,
"감정!"
-드워프 우노반의 전투용 속궁 : 내구력40/40, 공격력65, 사정거리14.
활 제작 장인 우노반이 사냥을 위하여 만든 활.
빠른조준과 정확도, 연사 속도에 최적화가 이루어져 있는 강력한 무기.
제한 : 레벨280, 민첩730.
궁수, 혹은 중급 이상의 전사 이용 가능.
옵션 : 연사 속도 +20%
관통 데미지 향상.
속사 시에 정확도 상승
강철 화살, 불화살, 독화살 사용 가능.
'나쁘지 않군.'
일반적인 감정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여기까지였다.
하지만 중급 대장장이 스킬을 가지고 있는 위드는 무기의 더욱 상세한 정보를 보는게 가능했다.
-제작무기.
대장장이 스킬이 중급에 오른 이에게만 보이는 무기의 특성.
강철 화살을 마흔다셧 발 이상 연속 사용 시에는 시위가 늘어져서정확도와 사정거리 20%감소.
화살 공격력의 평균적인 차이는 23%가량임.
장인 우노반이 대중적으로 만든 무기들의 하나로, 활의 중심이 완전하게 조율되지 않아 100미터의 거리에 15센티 정도씩 목표물과 의 오차가 발생할 수있음.
그러나 기본에 충실하게 만든 제품으로, 제대로 길이 들수록 빛을 발하는 물건.
솜씨가 나은 대장장이가 조물을 해 준다면 활의 특성상 최대 사정거리, 공격력이 얀간씩 늘어날 여지가 있음.
위드는 활을 잠시 만지작거리다가 돌려주었다.
" 이 무기가 얼마라고요?"
드워프가 대답했다.
"15,500골드요."
"흠."
"살 거요, 말 거요?"
위드는 한 걸음 물러섰다.
"안 살 겁니다."
하이 엘프 예리카의 활을 가지고 있는 그였다, 쓰지도 않을 물건을 살펴본 것은 그저 무기의 시세가 어느 정도나 되는지, 드워프들의 무기들을 살펴보기 위해서였을 뿐!
직접 구매할 마음은 추호도 없다.
드워프가 혀를 찼다.
"아쉽군. 하기야 우리 드워프들에게 활이란 그리 필요하지 않은 무기이긴 하지."
마음에 드는 무기였는데 위드가 사지 않겠다고 하니 그들에게 다시 기회가 찾아온 셈이다.
그런 그들에게 위드가 말했다.
"저 활 사지 마세요."
"네?"
엘프 여성들이 큰눈을 동그랗게 떴다.
원래 미녀들도 있겠지만, 엘프의 특성상 미녀가 많다.
피부가 깨끗하고 눈이 크고, 몸매도 늘씬하다. 귀가 뾰족하고 초록색 머리를 하고 있는 엘프 여성들은, 남자가 보면 예쁠 수밖에 없다.
"싸구려입니다."
"넷? 그게무슨‥‥."
"어린 드워프 친구! 그게 무슨 말인가!"
상점의 드워프가 발끈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위드는 별로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세심하게 정성을 들여서 만들지는 않은 무기더군요. 드워프들이 아닌 엘프들이나 쓰라고 만든 건가 싶을 정도로‥‥.무게중심도 안 좋고, 평균 공격력도 내구성도 평균 이하입니다."
엘프들이 보기에는 충분히 좋은 무기였다. 그런데 드워프 주인은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채로 한마디도 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어라?"
"자존심 강한 드워프가 화를 안 내네?"
위드가 말을 이었다.
"연사 속도가 빠르다고 해도, 중심조차도 제대로 조율이 안 된 무기를 만 골드도 넘게 받아먹는 것은 완전히 바가지죠. 정 저 활을 사고 싶다면, 멀리 있는 목표물을 한번 쏴 보고 사세요."
말을 마친 위드는 더 이상의 용건이 없었으므로 빠르게 걸어서 그곳 상점에서 멀어졌다.
몇 마디의 조언이라도 해 준 것은 여동생과 비슷한 또래였기 때문.
드워프는 수치를 느끼는지 새빨갛게 얼굴을 붉히고 있었다.
드워프들은 기본저긍로 손재주를 가지고 잉ㅆ는 장인이다.
위드가 말한 내용이 틀림없음을 알고 반박하지도 못했다.
"엘프들, 살 텐가 말 텐가."
쫌 전에 무기를 원하던 엘프가 살짝 긴장한 채로 물었다.
"가격은 얼마에 해 주실 건데요?"
"12,500골드."
"무게중심이 안 좋다던데‥‥‥."
"그럼 사지 말든가."
깐깐한 드워프는 다시 오만하게 팔짱을 끼었다.
엘프 여성은 위드가 도움을 주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멀리 떨어지려고 하는 그를 지목하고 급히 친구 신청을 했다.
"친구 등록!"
-친구등록이 거절 되었습니다.
"‥‥."
여성 엘프의 입장에서, 남자가 친구 등록을 거절한 건 처음이었다.
전장에서, 혹은 퀘스트에서도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엘프가 아니던가.
특유의 빠른 발놀람과 궁수로 인하여 제역할은 톡톡히 해낸다. 그리고 예쁜 얼굴과 몸매로 인해 늘 남자들의 배려를 받아 왔다.
실제로 현실에서의 외모는 평범하고 책에 푹 파묻혀서 살 것 같은 모범생이이지만, 로열 로드에서는 인기가 많았다.
여성 엘프는 자존심도 버리고 재차 신청했다.
"친구 등록!"
-친구등록이 거절 되었습니다.
"친구 등록!"
-위드 님과 친구로 등록이 되었습니다.
세 번에 걸친 시도 끝에야 친구가 될 수 있었다,
'위드? 그 사람의 이름이 위드였구나.'
엘프 이델이 뭐라고 귓속말을 보내려고 하는 찰나, 예상이나 하고 있다는 듯이 무뚝뚝한 말이 먼저 들려왔다.
-드워프들의 실력과 정성을‥‥‥.
이델은 귓속말을 그대로 따라 했다.
"드워프들의 실력과 정성을 의심하는 건 아니지만요, 이활은 우리 못난 엘프들이 사용하기에는 너무 비싸요. 드워프님들은 이 정도의 활은 쉽게 만드실 수 있는 걸로 아는데요."
"12,000골드."
흥정이라곤 불가능하다고 소문이 난 깐깐한 드워프와 흥정이 되고 있었다. 아무가 통하는 대상이었던 것이다.
-평균 공격력‥‥‥.
이델은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평균 공격력이 일정하지 않다는데요. 활은 공격력이 일정하지 못하면 큰일이예요. 나쁜 오크들이 다가오기 전에 사냥을 해야 되잖아요."
오크들은 드워프에게나 엘프에게나 공통적인 숙적이었다.
굳이 따지자면 드워프 쪽이 훨신 오크들을 혐오한다.
"11,000골드. 더이상은 곤란해."
"내구성이 나쁘다는 이야기도‥‥."
"10.500골드."
이 정도면 이델이 가지고 있는 도능로 충분히 살 수 있는 가격이었다.
"와!"
"이델이 흥정에 재능이 있었잖아."
동료 엘프들은 환호를 지르고 싶은 것을 꾹 눌러 참았다.
아직은 이델이 활을 구입하기 전이었기 때문이다.
이델은 확인하듯이 한 번 더 물어보았ㅅ다.
"그게요‥‥멀리 있는 목표물을 한번 쏴 보고 구해를 해도될까요? 드워프님이 만든 무기라면 틀림없겠지만, 얼마나 좋은 활인지 사용해 보고 결정하고 싶어요. 그런데 만약 목표물에서 조금이라도 빗나간다면, 깎아 주실거죠?"
드워프의 안색이 처음으로 창백하게 변했다.
"9,000골드만 주게. 다소 흠이 있는 활이긴 하지만 9,000골드에 산다면 나쁜 물건은 아닐 것이야."
그렇게 이델이 최종적으로 구매한 금액은 9,000골드였다.
활을 쏘면 약간의 오차가 생기고, 공격력이 일정하지 않다는 것은 큰 단점!
하지만 궁술 스킬로 인하여 결점을 보완할 수 있었다.
레벨에 비해서 강한 공격력과 속사의 기능이 있는 활을 이정도 가격에 구입한 것은 굉장한 일이었다, 인간이라면 엘프들에게도 우호적이지만, 친밀도가 열악한 드워프를 상댈로는 대박이다.
이델은 위드에게 감사의 귓속말을 보내려고 했다.
-정말 고마워요. 덕분에 활을 구입할 수‥‥‥.
-수신 거부되셨습니다.
* * * * * * * * * *
쿠르소 왕국의 의뢰들은 대부분이 드워프 종족 그리고 대장장이에 대한 것이었다.
조각술에 대한 것은 가뭄에 콩 나듯이 드물었고, 수준도 높다고는 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헐헐, 맥주 값이 떨어져서 사 마실 수가 없어. 이건 참 아쉬운 일인데 드워프 체면에 구걸을 할 수도 없고. 마침 술집 여주인이 조각품을 좋아한다더군, 목조품이라도 하나 만들어 주지 않겠어? 대신 내가 쓰던 곡괭이를 주지. 어디에팔수도 없는 물건이지만, 그럭저럭 사용할 수는 있을 거야."
띠링!
-드워프광부의 부탁
조각품과 곡괭이를 바꾸자는 요청.
들어주게 된다면 곡괭이를 얻을 수 있다.
난이도 : F
보상 : 곡괭이
퀘스트 제한 : 조각사 한정.
"바로 조각품을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퀘스트를 수락하셧습니다.
"조각사라고? 조각사라‥‥‥. 나도 어랠 때에는 꽤 대단한 조각품들을 많이보고 다녔어. 뭐, 전혀 그래 보이지 않는다고?"
"아닙니다. 드워프들이야말로 훌륭한 예술가이고, 섬세한 장인이죠."
"맞아. 드워프들이 예술에 고나심이 없다는 건 인간들의 오만이야, 오크 놈들과는 달리 지성을 가진 우리는 아름답고 강인한 것을 사랑하지. 우리 쿠르소에도, 전투에서 물러설 줄 모르던 드워프 전사들이 참 많았지. 그 추억을 집에 간직하고 싶군. 자랑스러운 드워프 전사의 조각품을 하나 만들어 줘."
띠링!
-드워프 전사의 용맹함
드워프들은 자신들에게 무엇이든 벨 수 있는 검과 브레스도 막을 수있는 갑옷이 있다면 악룡 케이베른조차도 잡을수 있다고 호언 장담한다.
그것이 대장장이 스킬을 발전시키게 된 원동력일지는 모르지만, 실제로 가능성은 거의 완전히 없는 일!
그럼에도 드워프들은 상대가 드래곤이 아닌 이상 싸우기 전에 겁부터먹고 물러서는 법은 모른다.
용감한 드워프 전사를 조각하라.
난이도 : E
보상 : 드워프가 심심풀이로 대충 만들어본 무기 세트.
퀘스트 제한 : 조각사 한정.
청동 조각품을 만들어야함.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퀘스트를 수락하셧습니다.
닌이도F급의 의뢰들도 가리지 않고 받았다.
이른바 잡퀘스트 해결사!
조각술의 비기가 어딘가에는 있을 거란 희망을 갖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조각술과 관련된 의뢰들은 닥치는 대로 해결했다.
'쿠르소는 좁은 곳이야.'
거주하는 드워프들도 천 명이 넘지 않는다.
비어있는 검물도 많고, 규모에 비해서 한적한 동네였다.
인간이나 엘프 여행객들마저 없다면 정말로 적적한 곳이 되리라.
'계속 조각술 의뢰들을 하다 보면, 언젠가는 미지의 존재를 조각하라는 의뢰도 들어오겠지.'
적어도 단서쯤은 찾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수십 개의 의뢰들을 해결해도, 특별한 의뢰는 나타나지 않았다. 의뢰의 수준이 아이언핸드 마을보다 전체적으로 좀 더 높은 편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D급을 넘지 않는다.
연계 퀘스트조차도 드물었고, 기껏해야 조각사를 원하는 다른 드워프를 소개시켜주는 정도였다.
순간 위드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무서운 생각!
'설마 조각술 퀘스트는 이게 한계인가?'
전투 계열 직업들은 모험을 할 수 있었다.
모험가의 경우에는 말할 필요도 없다. 유적 발굴, 동식물 실태 조사. 몬스터 생포.
흥미로운 의뢰들이 끝을 모르게 이어진다.
성직자들도 교단에서 내려오는 특수한 수행들을 경험하는 게 가능했다.
하지만 조각사에게는 어쩌면 그런 퀘스트란 게 애초에 불가능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맞아. 로자임 왕국에서 왕의 무덤을 만들던 퀘스트도 그랬지.'
난이도 B급의 조각술 의뢰!
다른 의뢰들의 난이도가 그정도라면 굉장한 모험을 경험해야 했고, 또 베르사 대륙에 일정한 영향도 주었다.
하지만 왕의 무덤을 만드는 일은 어렵기는 했어도 노가다였다.
'노가다로 충분히 할 수 있는 일. 그러고 보면 프레야의 여신상도 별다를 바는 없지.'
위드가 노가다에 능숙했고, 또 일이 생길 때마다 긍정적으로 환영하며 받아들였다.
다른 까다로운 조각품 의뢰들은 실제로 겁부터 나는 것이 사실이었으니까.
수만 골드의 보석들을 주면서 이것으로 세기에 남을 만한 목걸이를 만들라는 의뢰가 있다면 얼마나 부담스럽겠는가?
위드는 단순한 노가다로 반갑게 받아들였고, 조각술의 상당부분도 그렇게 성장시켰다.
하지만 그러면서 조각술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을 해보지 않은 것 같았다.
'조각술로 받을 수 있는 의뢰들, 그것을 어쩌면 이렇게 한심한 수준일지도 모른다.'
거대 조각상들을 특기처럼 만들었으나, 그게 조각술 의뢰의 한계인지도 모른다.
모험을 하고, 전투를 하고, 동료들을 구하는 이런 일들은 조각사와는 어울리지 않는 것!
골방에서 끝없이 조각품을 만들어야 될지도 모른다.
재봉사나 대장장이도 사실 그 형편이 그렇게 다르다고는 할 수 없지만, 어쨋든 간에 조각사로서는 모험을 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의혹이 들었다.
'아니. 젠장. 이건 사실일거야. 조각술로 모험을 하다니, 있을 수가 없는 일이잖아?'
위드는 절망에 빠져들었다.
* * * * * * * * *
데이몬드와 대지의약탈자 길드는 점점 큰 주목을 받고 있었다.
그들이 사람들의 관심사로 부각된 것은 하베린의 협곡에서 킹 그리핀을 사냥했을 때다.
죽이는게 불가능으로 여겨지던 킹 그리핀!
그리고 북부의 숱한 모험가들을 대지의 고혼으로 만들었던 노란 그리핀 무리.
공중을 날아다니며 민첩하고 영리한 탓에 그리핀 무리와 싸우는 것은 자살행위라는 인식이 널리 펴져 있었다.
하베린의 협곡은 많은 모험가들을 절말에 빠뜨린 장소였다.
데이몬드와 대지의약탈자 길드는 그런 하베린의 협곡에 진입했다.
영악한 그리핀들은 침입자들을 향해 바위를 굴러 떨어뜨리고, 나무들을 공중에서 내던지는 것으로 가벼운 인사를 했다.
그러면서도 그리핀들은 전면 공격은 가하지 않았다.
'더 들어올 테면 들어와 봐라. 너희들은 절대로 살아나가지 못할 것이다.'
두려움을 느낄 정도로, 주위를 에워싼 채로 밤마다 기습을 가해 쉬지도 못하게 만들었다.
협곡의 입구에서 삼분의 일정도, 되돌아 나가기에는 너무 깊숙하게 들어왔을 무렵부터에서야 그리핀의 공격이 본격적으로 변했다.
그러자 대지의약탈자 길드에서 사망자들이 속출했다. 실패라는 단어들이 떠오르려고 할 쯤이었다.
다른 길드에서는 전부 대지의 약탈자 길드가 무모하다고 비웃었다.
"미치지 않고서야 하베린의 협곡에 도전해서는 안 되지."
명문 길드들은 대지의약탈자 길드보다도 훨씬 큰 무력을 가졌다. 그럼에도 감히 하베린의 협곡처럼 위험한 지역은 공략하려고 들지 않았다. 패배했을때의 추락 때문이었다.
명문 길드들의 움직임에 대해서는 베르사 대륙의 유저들이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자칫 실패하기라도 한다면 평판이 크게 하락한다.
더군다나 성공하더라도, 주축 유저들이 많이 사망하게 되면 크나큰 손실을 입었다.
길드 차원에서 무력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신중해질 수밖에 없는데, 겁도 없이 하베린의 협곡에 들어간 대지의 약탈자 길드를 조소했다.
"그런 식으로 길드를 운영하니 망하고 북부의 떠돌이 신세가 되었지."
하지만 데이몬드와 대지의약탈자 길드는 희생자들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나아갔다.
그러자 안달이 난 것은 그리핀 떼였다.
그리핀들은 공중 몬스터이기 때문에 화살가 마법이 아니라면 잘 죽지않는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안식처는 있었다.
하베린의 협곡의 중앙부에 있는 그리핀의 둥지!
그 둥지에는 아직 날개를 펴고 하늘은 나는 법을 모르는 새끼 그리핀들이 있다.
데이몬드가 이끄는 대지의약탈자 길드는 그 둥지에까지 다다라서 그리핀 떼와 치혈한 혈전을 벌여, 믿기지 않은 승리를 거두었다.
킹 그리핀을 사냥하고, 새끼 그리핀 35마리를 포획한 것이었다. 그리핀은, 길들이는 데 성공한다면 탑승용으로 쓸 수도 있어서 가치가 대단했다.
하베린 전투의 동영상은 실시간으로 명예의 전당을 통해 시청할 수 있었다. 데이몬드도 그 전투에서 목숨을 잃었지만, 마지막까지 킹 그리핀과 싸우던 투사로 시청자들에게 각인 되었다.
시청자들은 대지의약탈자 길드가 보여 준 무모함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 * * * * * * * *
조각술 의뢰의 가치에 대한 위드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배운게 도둑질이라고‥‥‥."
조각술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다른 방법이 없다. 묵묵히 의뢰들을 수행할 뿐!
"수고했네."
"아니, 뭘요."
의뢰를 맡겼던 드워프들이 와도 위드는 퉁명스럽게 대답할 뿐이었다.
"오! 정말 대단한 작품이군."
"발로 깎았습니다."
"표면을 이토록 매끈하게 다듬을 수 있다니‥‥‥. 그리고 이 조각품의 겉에 흐르는 선을 보게. 이선의 흐름이 보여주는 절정의 미라니!"
"신경 써서 만들었으니까 잔말 말고 돈이나 주십쇼."
까칠함의 극치!
환심을 사 봐야 조각술 의뢰에 그리 큰 대가는 없다. 미리정해진 보상을 받을 뿐이다.
물론 의뢰보다 좋은 조각품이 나왔을 때에는 대가가 좀 더 커지기도 했다. 하지만 말 몇 마디에 해 준다고 해서 보상이 커지진 않았다.
드워프들은 위드의 까칠함에도 부드럽게 웃었다.
"조각사라면 이 정도의 자부심은 가져야지."
"아, 글쎄! 일 다 봤으면 이제 가라니까요."
"멋진 성격을 가진 조각사로군. 다음에 맡길 일이 있으면 또 오겟네."
"다음에는 돈 되는 조각 의뢰 좀 해 주세요."
위드가 짜증을 부려도 드워프들은 흡족한 듯이 조각품을 가지고 떠났다.
웬만한 조각품 의뢰들도 거의 한 번씩은 해 본 상황!
베르사 대륙에서야 무덤이니 여신상이니 만들 것도 많았다. 하지만 드워프 장인들의 도시인 쿠르소에는 없는 것이 없었다.
유적, 기념관, 박물관 등, 쌓여 있는 잡품들과 실력이 출중한 드워프 장인들이 많아서 , 오히려 조각품 의뢰는 심한 가뭄이었다.
"정말 실속도 없군."
위드는 그러면서도 조각품을 깎았다.
-우리나 조각해 달라니까.
- 조각사여, 왜 어긋낫 길을 가고 있는가.
미지의 존재들이 떠드는 것도 익숙해지는 참이었다.
위드는 조각 재료점, 조각 상점 그리고 길거리만 일정하게 어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조각 상점의 주인이 심각한 얼굴을 하고 박쥐를 닮은사람 조각품을 내밀었다.
:아트핸드, 이것 좀 봐 주게."
"왜요."
"이 석조품을 감정해 주지 않겠는가?"
위드는 건들거리며 반문했다.
"귀찮은데, 원래 조각사는 이런 일 잘 안 한다는 거 알고는 계시나요?"
"알지 그러니 이처럼 부탁하는 게 아니겠는가. 내, 보상은 섭섭하지 않게 함세."
"그러면 내가 만든 조각품이라도 비싸게 사 주시나요?"
"1할을 더 쳐주지. 자네가 만든 조각품은 인기가 높아서 금방 팔리거든, 그렇다고 다른 조각품보다 아주 비싼 가격으로 팔리는 것은 아니지만‥‥."
조각품도 상거래에 따라 시세가 오르고 내렸다.
만약 상인들이 대거 쿠르소로 와서 조각품을 사재기한다면 가격은 오른다. 실제로 토르나 쿠르소의 무기 방어구 가격은 인기에 비례해서 비쌌다.
시장 경제에 따라 가격이 맞춰지고 있기에, 아무리 위드의 조각품이라고 해도 특별히 높은 가격은 받지 못했다. 정성을 기울여서, 특별한 재료와 주제로 만든 작품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만드는 조각품의 한계였다.
"1할이라, 어디 한번 보죠."
위드는 반쥐 조각상을 세밀하게 살폈다.
"특별한 것은 없어 보이는데‥‥‥."
조각품을 많이 만들다 보니, 눈썰미도 굉장히 늘었다.
질이 그리 좋지 못한 암석으로 만든 박쥐 조각상은 실력이 뛰어난 조각사의 작품도 아닌 것 같았다.
'표현도 세밀하지 못하고, 투박한 칼자국도 많아. 영 별로로군.'
위드였다면 실패작으로 여겼을 작품이다.
조각술이란 투자한 시간만큼 실수가 줄어드는 법인데, 이조각상은 실수가 잦았다.
"자세히 보면 알겠지. 감정!"
-이름 모를 박쥐 조각품
날개로 몸을 가리고 있는 박쥐의 조각상.
샤스펜동굴의 흡혈박쥐와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다.
예술적 가치 : 3
위드는 조각품을 주인에게 넘겨주려고 했다.
"별거 아니로군요. 가치도 없고 그냥 막 만든 것에 불과 한 것 같은데요."
"그런가? 실망이로군. 호수의 급류에서 발견된 조각품이라 기대를 많이했는데."
하지만 그 순간이었다.
위드는 석조품의 눈을 보았다.
오싹!
섬뜩함이 살아 있는 흡혈박쥐의 눈!
박쥐의 눈은 퇴화했다고 하지만, 안구는 남아 있었다. 놀랍게도 붉은 동공이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눈은 돌이 아니라 고급 보석인 루비로 만들어져 있었다.
위드는 침을 꼴깍 삼키며 다시 석조품을 살폈다. 루비는 손끝으로 만져보고, 빛에 비추어 보며 관찰했다.
'다듬지 않아 원석에 가까운 루비. 조금만 건드린다면 수천 골드는 쉽게 받을 수있는 루비야 박쥐 조각품 따위에 넣을 물건은 아무리 봐도 아닌데.'
그때 나타난 메시지!
-샤스펜 흡혈박쥐 석조품에 대한 흔적을 발견 하셧습니다.
위드는 다시 감정했다.
"감정!"
-샤스펜의 흡혈박쥐
드워프 장인 구돌프의 작품.
샤스펜 동굴에서 마지막으로 완성되었다.
예술적 가치 : 245
* * * * * * * * * *
쿠르소 왕국, 호수 너머의 동굴 밀집 지역.
개미굴처럼 복잡한 동굴들로 인하여 길자빙 없이 간다면 길을 잃어버리기 십상이었다.
드워프들은 타고난 감각 그리고 광맥의 힌적을 읽는 기술로 인하여 지하에서도 길을 잃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복잡한 동굴 길은 지도가 있더라도 헤매기 일쑤라서, 보통 용기있는 드워프가 아니면 깊이 들어가지 않는다.
드워프 청년 구돌프는 그 동굴로 신중하게 걸음을 옮겼다.
'이번에야말로‥‥보석 광산을 찾아내야돼.'
구돌프는 장인으로서도 이름이 높았지만, 그보다는 지하 광맥을 잘 파악했다.
"그녀에게 예쁜 브로치를 선물해야지."
그는 연인에게 직접 캐낸 보석으로 만든 브로치를 선물하며 청혼을 할 작정이었다.
그돌프의 걸음은 샤스펜 동굴로 향했다.
"르비 광맥의 흐름이 이쪽으로 이어지고 있어."
샤스펜 동굴은 드워프들도 오지 않는 곳이다. 하지만 사랑에 눈이 먼 구돌프는 조심조심 동굴의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어둡고, 좁은 동굴!
종유석들을 지나고, 잠들어 있는 흡혈박쥐들을 지나쳤다.
목숨을 걸고 보석을 캐기 위하여 전진하는 것이다.
그리고 동굴의 깊은 곳에서, 걀국 광매그이 흔적을 발견했다.
"여기다!"
구돌프는 환호하면서 곡괭이를 내리쳤다.
붉고 투명한 최상급 루비 원석이 있는 보석 광산의 발견!
"이거라면 그녀를 위해 브로치를 만들어 주기 충분해!"
구돌프는 희열에 빠졌다.
하지만 루비를 캐내느라 벌인 곡괭이질 소리에 샤스펜 동굴의 흡혈박쥐들이 모두깨어났다.
흡혈박쥐들은 날갯짓을 하며 날아와서 구돌프의 온몸에 이빨을 박았다
"아, 안 돼! 드워프 살려!"
구돌프는 몸에 박쥐를 매단 채로 동굴의 깊은 곳을 향해 달아났다. 어딘지 살필 겨를도 없이 무작정 도망을 친 것이었다.
도달한 곳은 뜨거운 용암이 끓어오르는 지대!
박쥐들은 열기에 도망을 쳤지만, 그돌프에게는 남아있는 생명의 힘이 없었다. 혈관의 메마른 피는 의식을 깜빡깜빡 놓게 만들었고, 걸어서 동굴을 빠져나갈 힘도 없다.
돌아 나갈 길이라고 해 봐야 샤스펜뿐인데, 흡혈박쥐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돌아갈 곳이 없어‥‥‥."
구돌프는 가지고 있는 루비 원석들을 다듬어서 보석 브로치를 만들었다.
연인인 드워프 제나에게 바칠 청혼을 위한 물품.
작은 바위를 다듬어 샤스펜의 흡혈박쥐를 만들고, 눈에는 남은 루비를 박았다.
"누군가 발견해 주기를‥‥."
구돌프는 자신의 목숨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느꼇다 그래서 가지고 있던 상지에 옷으로 감싼 석조품을 넣어 급류에 흘려보냈다.
이물길이 흐르고 흘러 쿠르소에 닿을 것이라는 염원을 담아‥‥!
흡혈 박쥐 조각품이 든 상자가 지하 급류를 타고 흘러갔다.
쿠르르르르.
우당탕탕!
강물처럼 깊고 유속이 원만한 곳도 있었고, 틈도 없이 꽉막힌 미로 같은 통로를 거세게 지나치기도 했다.
지하의 땅과 종유석에 부딪칠 때마다 상자는 점점 파손되었다. 그럴 때마다 조각품도 따라서 충격을 받았지만, 구돌프의 옷으로 감싸인 덕분에 다행이 무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구돌프의 염원대로 쿠르소의 호수에까지이르렇다.
벌써 1달이 넘은 후였지만, 무사히 쿠르소까지 흘러와서 드워프들에게 발견되었다.
그렇게 조각 상점까지 흘러들어 온 것이다.
* * * * * * * * * *
위드는 감정을 하는 순간, 샤스펜 동굴의 흡혈박쥐 조각품에 대한 유래 등을 볼 수 있었다,
띠링!
-조각품의 추억스킬을 터득하셧습니다.
조각품에 숨겨진 과거를 읽을 수 있습니다.
띠링!
-구돌프의 꿈
드워프 장인 구돌프는 마지막 희망을 조각품에 담았다.
흡혈박쥐들에 대한 그의 복수를 이루어 주고, 연인 제나에게 구돌프가 남긴 브로치를 선물해주자.
그 대가로 구돌프가 발견한 루비 광산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난이도 : B
보상 : 샤스펜의 루비 광산.
퀘스트 제한 : 샤스펜의 흡혈박쥐에 대한 정확한 감정, 중급 조각술 이상을 습득해야 함.
위드는 머릿속을 해머로 두들긴 것 같은 둔중한 충격을 받았다.
언제나 사람들에게 무시당하고 조롱거리가 되었던 조각술!
하지만 각고의 노력 끝에 완성되었던 조각품만큼은 그를 배신한 적이 없었다.
"난 조각사. 조각사였어."
다른 사람의 평가가 어떻든 간에 연연할 필요가 없었다.
필요에 의해 수준 낮은 의뢰들을 구걸하듯이 받아 낼 필요도 없다.
조각술에 대한 의뢰는 조각품에 숨겨져 있었다.
조각품을 통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직업!
그것이야말로 조각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