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부 『어두운 게이머들의 대화』
이현은 다크 게이머 연합 길드의 채팅 방에 접속했다. 정보 공개와 질문란의 답변, 아이템 판매들으로 등급이 올라서 채팅에 참여할 수 있었다.
보통 채팅이라면 시간을 때우는 용도로 하는 경우가 많지만, 다크 게이머들끼리는 다르다, 활동하는 왕국, 직업, 의뢰등의 분류를 통해 실시간으로 필요한 정보들을 교류했다.
게시판을 통해 등급만 허용된다면 누구든 볼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라, 소수의다크 게이머끼리만 채팅을 통해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채팅을 통해 들은 이야기의 비밀을 엄수해 주는 것음 기본이었다.
-후니:어서 어서 오세요. 현 님.
-현: 또 뵙네요.
-후니:네, 반갑습니다.
-사악마인:처음 뵙겠습니다, 현 님.
채팅 방에는 7명 정도의 유저들이 있었다.
잠수를 타고 있는 듯한 유저들을 빼면, 실제로는 후니와 사악마인 정도만이 채팅에 참여하고 있었다.
-후니:현 님은 밤늦게 잠깐씩만 점속하시던데, 요즘엔 무슨 일을 하고 계세요?
-현: 그냥‥‥직업 스킬들을 익히고 있습니다.
-후니:직업 스킬이라, 아주 중요한 거죠. 보통 채팅방에 접속해 놓으시 고 말씀이 없으시던데, 아이템 시세 들을 확인하시죠?
-현:예.
-사악마인:저도 자주 그러는 편인데요.
-후니:아마 다크 게이머들이 다 그렇겠지요. 우리만큼 바쁜 직업도 없 으니까 말이죠.
다크 게이머로서 매일의 아이템 시세, 의뢰, 사냥터를 확인하는 건 굉장히 중요한 일이다. 돈을 벌기 위해서는 노력 뿐만아니라, 정보 그 자체가 중요했으니까.
남들보다 앞써 나가야만 하는 다크 게이머들은 모험도 순수하게 즐길 수만은 없었다.
-후니:저는 다크 게이머 경력 7년차입니다. 두 분은 몇 년이나 되셨어 요?
-사악마인:전 햇수로 3년째입니다. 실제 기간으로는 2년정도 됩니다.
-후니:제가 선배가 되는 셈이군요. 별 의미는 없지만. 2년이라면 로열 로드부터 다크 게이머로 활동을 하셧나 봐요?
-사악마인:맞습니다. 로열로드가 막 오픈했을 때부터 시작했습니다.
남들보다 좀 빨리 성장한 덕분에, 초창기부터 돈을 모을 수 있었습니 다.
-후니 :부럽군요. 현 님은요?
-현:다크 게이머의길로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은 1년 정도 되었습니다.
-후니: 굉장하군요!
-사악마인:정말이예요? 이 등급의 채딩방에 오실정도라면 보통 레벨은 아니실 텐데‥‥.레벨만이 아니라 공개하는 정보의 질이나 답변의 수 준도 중요하게 보거든요.
-후니:1년이라니 진짜 놀랍습니다. 비결을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현:그냥 열심히 했습니다. 그리고 다크 게이머로서 돈을 번 것은 그보 다 훨씬 전부터이고, 미리 주닙도 했거든요.
-사악마인:역시 그러셨군요. 로열 로드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그냥 은 어렵죠.
-소룡이:안녕하세요. 제가 잠수를 타고 있던 사이 재밌는 대화를 나누 고 계셨군요. 저는 다크 게이머 6년차입니다.
잠수 했던 유저들이 깨어나면서 채팅 방이 잠시 소란스러워졌다.
인사를 나누고, 이야기들을 나누느라 글들이 빨리 올라갔다. 그래봐야 10분도 지나지 않아서 다시 잠잠해졌지만.
다시 필요한 정보를 찾거나 휴식을 취하기 위해 컴퓨터를 캬 놓고 나간 것이다.
이현도 잠깐 다른 정보들을 보다가 채팅방으로 돌아오니, 후니와 사악마인만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후니:현 님. 자리에 계시나요?
-현:예.
-후니:실은 제가 이번에 수행하고 있는 퀘스트가 있는데‥‥두분께 상의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사악마인:어떤 퀘스트인데요?
-후니:먼저, 퀘스트의 상세한 내용은 말씀드리지 못하는 것을 이해해 주세요.
-사악마인:당연한 거죠.
-현:이해합니다.
-후니:이해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사실은 제가 조금 특수한 퀘스트를 수행하고 있는데요.
-사악마인:위험한 퀘스트인가요?
-후니:그런 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난이도가 높기도 하지만‥‥퀘스트의 진행 도중 다시 되살아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사악마인:되살아나지 못한다는 말씀이 이해가 안 가는데요. 무슨 뜻이죠?
-현:로열 로드에서 캐릭터가 완전히 사망한다는 말씀이신가요?
-후니:예. 맞습니다.
캐릭터의 완전한 죽음.
금단의 마법을 익히거나, 혹은 어떤 사건을 위해 영혼을 바쳤을 때에 이루어지는 일. 다크 게이머라면 이런 의뢰는 받아들이지 않는 게 정석이다. 풀기 힘든 저주는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지만, 캐릭터가 사라지고 나면 완전히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현도 초창기에 달빛 조각사로 전직을 하고 나서 불만이 상당했지만 전직이나 다시 키우는 것을 포기했던 이유도,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었다.
-현:어쩌다 그런의뢰를 하게 되셨습니까?
-후니:제가 운영하는 길드가 있고, 그 길드 차원에서 하던 퀘스트였거든요.
-사악마인:길드를 운영한다면 상당히 뛰어난 캐릭터일 텐데 아깝군요.
-후니:예. 지금은 조금 후회스럽기도 합니다. 친구나 동료들 때문에 너무 무리한 일을 시작한 것이 아닌지, 하지만 그 의뢰를 통해서 얻을 수 있을 보상이 상당하기도 합니다.
-사악마인:다크 게이머로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을 정도로요?
-후니:의뢰의 진행도를 봐야겠지만, 지금으로써는 충분히 도전해 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퀘스트를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나름 큰 보상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에 시작했습니다.
-사악마인:저로서는 걱정이 앞서는군요. 그래도 캐릭터를 다시 성장시키기 가 힘들 텐데요.
-후니:7년쨰 다크 게이머 활동을 하면서, 가장 큰 기회이고 새로운 도전인 것 같습니다. 그간 벌어 놓은 돈이 조금은 있으니, 죽더라도 다시 시작할 수 있겠지요.
행간에서, 후니라는 다크 게이머가 자신의 상황에 대해 억지로 긍정적인 시각을 가지려고 노력하는 것이 느껴졌다.
다크게이머에게 캐릭터의 상실이란, 실직과도 같은 엄청난 일!
고용 보험이나 실직 연금 등도 기대할 수 없는 신세임을 감안한다면 불안할 수밖에 없다.
이현도 만약 위드라는 캐릭터가 영구삭제될지도 모른다면 그 불안감은 이루 말할 수도 없으리라.
'본전도 못 뽑았는데!'
노가다를 한 것이 아까워서라도 그런 의뢰는 받아들이지 못할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극심한 불안감에 시달릴 수밖에없다. 할머니의 병원비나 생활비 등은 실시간으로 다가오는 위협이었으니. 여윳돈을 다소 모아 놓았다고는 하나, 그럼에도 안심이 되지 않는게 다크 게이머들 대부분의 신세였다.
사냥을 하다가 죽으면 레벨과 스킬 숙련도가 떨어지고, 그러한 일들이 반복되면 다크 게이머에게는 헤아리기 힘든 타격이 되었으므로.
-사악마인:아이템 많이 얻으시길. 아이템이 남는겁니다.
-후니:물론이죠. 퀘스트를 진행하면서 얻은 아이템들은 전부 따로 모아서 처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애착을 갖고 키우던 캐릭터가 완전히 사라진다는 것은‥‥‥.아직 당장 벌어질 일은 아니지만, 정말 가슴이 아픕니다.
-현:고민이 크시겠습니다.
-후니:어쩔 수 있나요,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현:경험이 있으니 다시 성장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리고 퀘스트를‥‥.
이현은 키보드를 두들기던 손가락을 멈췄다.
짐작이었지마느 보통 저런 종류의 퀘스트라면, 퀘스트 자체를 성공했을 때에 캐릭터가 삭제된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누구도 그런 퀘스트를 받으려고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후니라는 다크 게이머는 죽음까지도 고려하고 있었다.
'정말 어려운 퀘스트를 받아들인 것 같군.'
성공하기가 낙타가 바늘구명 통과하는 것보다도 훨씬 어려운 의뢰이리라 짐작되었다.
-현:퀘스트의 성공을 위해 무운을 빕니다. 이말 밖에는 드릴 수 없군요.
-후니:감사합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저도 그런 위로가 필요했던 것 같 습니다.
-사악마인:두 분이 말씀하시는 걸 들으니 정말 흐뭇합니다.
-후니:사악마인 님, 현 님. 우리서로 친구할까요? 나이도 모르고 어디 사는 누구인지도 모르지만, 다크 게이머로서 채팅에서만이라고 친구로 지내는 것도 나쁘지 않을 텐데요.
-현: 저도 좋습니다.
-후니:먼저 제소개부터 하죠. 저는 스물여덟 살입니다.
-현:저는 스물 세살입니다.
-후니:현 님은 제 동생뻘이군요.
-현:예, 형님. 말씀 편하게 놓으세요.
-후니:그래도 될까? 그럼 사악마인 님의 나이는 어떻게 되십니까?
-사악마인: 형님들! 제 나이는 열다섯 살입니다. 제가 막내니까.
두 분 형님들이 귀엽게 봐 주세요.
-후니:‥‥‥.
-현:‥‥‥.
-후니:마인아.
-사악마님:넵!
-후니:벌써 11시다. 일찍 자야지.
-사악마인:아! 시간이 벌써 이렇게 지났네요. 엄마 돌아올 시간인데‥‥.공부하는 척하다 자야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현:‥‥.
-후니:‥‥.
* * * * * * * * * *
이현의 학교생활도 바쁘게 돌아갔다. 시험은 대충 때운다고 쳐도, 과제가 계속 나왔다.
로열 로드에서의 험과제.
그것들을 위해 최상준과 박순조 등이 덩전에 대한 정보들을 모으고, 준비를 착착 진행시키고 있다고 한다.
"형은 그냥 적당할 때 오셔서 조각품이나 보여 주시면 돼요."
최상준이 호기롭게 말했다.
어쨌든 과제는 팀을 이루어서 하는 것이었으니 이현도 동참해야 되지만, 조각사에게 기대할 것은 그리 많지 않다.
조각품을 보여 주고, 조원들이 감동하는 정도를 연출해 준다면 교수에게 점수를 따기에 적절하리라는 계산.
'조각사가 포함된 조에서 어려운 던전을 탐험한다면 대성공이라고 볼 수 있지.'
최상준은 던전 탐험을, 자신을 돋보이게 만드는 장으로 마들 작정이었다. 흑사자 길드의 고위 서열에 있는 친형에게 아이템도 빌리고 레벨도 몰아주기로 올리고 있었다.
그에게 신경이 쓰이는 존재는 오직 도둑으로 고래벨인 박순조!
'던전에서 도둑이 할 일은 생각보다 많지 않아. 나를 도와줄 도둑이 1명쯤은 포함된 것도 나쁘지 않지. 그래, 반가운 일이야.'
도둑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해봐야 함정 해체나 문열이 정도이리라 여겼다.
던전 탐험을 위한 점심시간의 회의도 이현을 제외하고 벌어졌다.
민소라가 학교 식당에서 샌드위치를 먹으며 말했다.
"근데 우리, 나머지 조원 2명은 누구로 할 거야? 축제가 다가와서 다들 들떠 있고 정신 없는데, 미리 정하고 준비해야 되잖아."
그녀가 포함된 C조의 현재인원은 5명!
2명의 영입이 필요한 시점이다.
최상준도 은근히 새로운 조원에 관심을 쏟고 있었다.
그가 최대한 돋보이려면, 너무 뛰어난 조원은 안 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느 정도 핑요한 조원을 데려오고 싶었다.
'성직자나 샤먼이 있으면 좋을 텐데‥‥. 아직 조가 정해 지지않은 사람이 누가 있더라? 다른 조에서 1명 빼 와야 되나?'
최상준이 여러모로 염두를 굴리고 있을 때였다. MT에서 같은 조였던 주은희와 홍선예가 그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저기, 우리도 조를 안 정했는데, 같이하면 안 될까?"
최상주닝 반색을 하고 물었다.
"직업과 레벨이 어떻게 돼?"
"원소술사. 레벨 266. 현재위치는 데일왕국이야."
"난 레인저. 레벨285. 위치는 네칸성. 은희랑 같이 사냥하고 있어."
마법사 계열의 원소술사와 레인저.
최상주닝 원하던 성직자나 샤먼과는 거리가 한참이나 멀었다.
"우리와 같이하자!"
그럼에도 최상준은 얼굴에서 미소를 지우지 않았다.
여자라면 언제든 환영이었다. 특히 주은희와 혼선예라면 예분 얼굴과 몸매 때문에 학과 내에 눈독을 들이는 남자들이 많았다.
'은희는 정말 너무 예뻐.'
최상준의 이상형이은희였으니 거부할 까닭이 없는 것이다.
주은희가 보조개가 파일 정도로 활짝 웃었다.
"정말? 고마워. 상준아."
"으응."
이유정이 한심하다는 듯이 최상준을 보다가 얘기했다.
"데일 왕국이라면‥‥우리도지금 데일 왕국인데. 네칸성이면 하루 거리밖에 안 되잖아."
"유정이 넌 레벨이 얼마인데?"
"검사237. 여기 소라는 인챈터로. 144야."
"그, 그랬어?"
주은희와 홍선예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검사는 레벨이 너무 낮고, 인챈터는 덤전탐험에 쓸모가 많지 않은 직업이었으니까.
그녀드링 꺼림칙해하는 기색을 느낌 탓인지 민소라가 물었다.
"정말 우리와 같은 조를 해도 괜찮겠어?"
"응. 뭐, 괜찮을 거야. 근데 있잖아‥‥."
홍선예가 살짝 얼굴을 붉히며 물었다.
"이현 오빠는 왜 여기 없어? 이현 오빠도 너희 조 아니야?"
"오빠는 회의에 참석 안 해."
"왜?"
"바쁘다고 해서. 그리고 조각사라서 탐험에는 필요가 없거든."
"‥‥."
"너희. 우리랑 같은 조 하기로 한 거 맞지?"
"마, 맞아."
어쩌다 보니 거절하지 못하고 합류하게 되었다. 하지만 서로의 직업과 레벨을 알게 된 이후로 다들 느끼고 있었다.
'최악이구나‥‥.'
'내가 이런 조에 끼다니‥‥.'
'망쳤다.'
'나중에 재수강해야지.'
* * * * * * * * * *
이현은 점심시간마다 도시락을 먹기 위해 잔디 광장으로 향했다.
'오늘도 있구나.'
빨간색의 여자 도시락.
열흘쯤 전부터 그가 식사를 하는 장소에 도시락이 놓여 있었다. 당연히 이현은 그 도시락에 손을 대지 않았다.
'남의 도시락이니까.'
주인이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열어 보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다음 날에도 도시락이 자리에 놓여 있었다. 이번에는 흰 손수건에 싸인 노란색의 도시락이었다. 쪽지까지 남겨져 있었다.
-먹어주세요.
굉장히 세련되고 예쁜 필체.
이현은 도시락을 보며 중얼거렸다.
'누군지 몰라도 부럽다.'
얀애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도시락!
'자고로 어떤 설물이든 먹을 것만큼 좋은 게 없지. 저런 여자친구를 둔 남자는 얼마나 좋을까. 밥값도 공짜로 굳고."
이현을 쓸쓸하게 웃으며 자신이 싸 온 도시락을 먹었다.
당연히 자신이 아닌 다른 남자가 와서 그 도시락을 먹을 것 이라고 생각하면서.
단 한번도 연애를 해 본 적이 없는 그에게 온 도시라고는 믿기질 않았던 것.
그다음 날이었다.
-이현. 이 도시락을 먹어주세요.
쪽지에는 조금 길고 자세한 문장이 아름답게 쓰여 있다.
긴장한 탓인지 꾹꾹 눌러쓰여 있었지만, 이현은 이를 의식하지도 못했다.
"내 도시락이었구나!"
넙죽 도시락을 열어 보았다.
도시락 안에 가득 들어 있는 것은 김밥!
"하필 김밥이라니."
이현은 푸념을 했다.
학교에 올 때마다 매번 그가 싸 오는 음식이 김밥이 아니던가. 편의와 시간을 절약을 위해 김밥을 싸 오지만, 뭔가 다른 음식을 먹어 보고 싶은 마음도 없는 건 아니였다.
"김밥도 뭐, 맛만 있으면 되지."
이현은 김밥을 1개 먹어 보았다.
입안에서 이루어지는 감동적인 맛들의 조화.
이루 형용할 수 없는 맛!
단무지, 게맛살, 시금치로만 맛을 내던 그의 김밥과는 재료부터가 차원이 달랐다.
김밥의 옆구리에 살짝 비치는 것은 철갑상어의 알에, 바닷가재의 오동통한 다리 살!
요리에 해박한 이현이었지만 이런 재료는 본 적도 없었다.
"동태 알이 신선하군. 그리고 도대체 어디 게맛살인데 이렇게 맛이 좋은 거야?"
최고의 력셔리 김밥!
이현은 맛있게 김밥을 먹고 나서, 빈 도시락에 쪽지를 남겼다.
-다음에도 또‥‥.
약간의 기대감을 품고 남겨 둔 쪽지였다.
그다음 날 잔디 광장으로 가니, 또다시 도시락이 있었다.
-맛있게 드셔 주셔서 고맙습니다. 오늘도 드셔 주세요.
이현은 도시락 뚜껑을 열었다.
이번에도 모양은 김밥이었지만, 상어 지느러미에 장어, 연어가 속 재료였다. 후식으로 신선한 과일 샐러드까지 준비 되어 있었다.
"맛있다."
그날부터 이현은 도시락은 싸 들지 않고 학교에 다녔다.
도시락은 싸 오지 않더라도, 음식이 늘 그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서윤은 이현이 도시락을 먹는 것을 멀리서 지켜보았다.
그가 기뻐하면서 김밥을 먹을 때마다, 먹지않아도 배가 부르는 기분이었다.
'친구‥‥‥.'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존재.
서윤은 그가 먹어 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웠다.
부족한 요리 실력 탓에, 처음 시도에는 김밥의 옆구리가 터져서 재료들이 그대로 다 튀어나왔다.
김밥을 맛있게 싸기 위해 특급 호텔 주방장들에게 배운 솜씨였다.
서윤은 이현이 맛있게 먹는 것을 보며 얼굴을 붉혔다. 부끄러움을 타고 있는 여신의 모습이었다.
* * * * * * * *
위드는 소모된 예술 스탯을 보충하기 위해 쿠르소에서 노가다를 개시했다.
'예술 스탯을 가장 빨리 올릴 수 있는 방법은 세공품들이다.'
조각품은 성공만 하면 다량의 예술 스탯을 얻을 수 잇다.
정성석이라고 할 수 있는 방법이지만, 그 성곡 확률이 만만치 않다.
위드의 상상력과 표현할 수 있는 기술에 한계가 있었기에, 매번 조각품을 성공시키기도 어려운 일.
그에 비하면 보석 세공품들은 예술 스탯을 1이나2씩 올리는 노가다를 하기에 좋았다.10개를 해야 하나가 오르는 비효울적인 일이었지만, 적성에는 딱 맞았다.
"노가다는 거짓말을 안하는 법이야. 노가다만큼 고마운 것이 없지."
덤으로 켄델레브의 어린아이들을 위한 물놀이의 동영상이 로열 로드의 게시판을 통해 공개되었다. 드워프 유저들이 경쟁적으로 빠르게 동영상을 올린 것이다.
쿠르소는 그간 드워프들 사이에서도 모르는 사람이 적지 않을 정도로 비밀스럽게 존재해 왔다. 하지만 물놀이를 즐기는 드워프들의 영상 공개로 인하여 그 비밀의 베일이 벗겨졌다.
사람들의 관심사에 오르게 되면서, 쿠르소에 들어가는 방법도 적나라하게 공개되고 말았다.
"여기야!"
"와! 드워프 왕국이다."
인간과 엘프 들도 더 많이 찾아오고, 쿠르소의 유저 숫자가 5배가 넘게 증가했다.
새로 들어오는 드워프들이 가지고 있는 조각품!
지상에서 이래저래 의뢰들을 통해 획득했던 조각품들이 위드의 손에 전해졌다.
"아트핸드 님, 조각품을 감정해 주신다고 들었어요."
"으흠. 아무 물건이나 해 주지는 않는데‥‥. 특별히 시간이 남는 편이니 감정을 해 주지."
"고맙습니다!"
최고의 장인들이 모인 쿠르소에서도 가장 뛰어난 조각사 드워프 아트핸드.
샤스펜 동굴의 전투, 데스핸드와의 승부!
쿠르소에서 벌어졌던 조각술 퀘스트들이 선술집에서 떠드는 드워프 전사, 워리어 들의 수다를 통해 전설이 되어 신입들에게까지 전해졌다.
아트핸드의 행세를 하고 있는 위드에게 조각품들이 모이는 것이다.
"감정."
-참회하는 새
한쪽 다리를 들고 반성하고 있는 비둘기 점토.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무명 조각사에 의해 만들어졌다.
범상치 않은 마감실력과 묘사가 탁월한 작품이지만,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는 만든 이조차 알 수 없을 것이다.
예술적 가치:30
-작품을 감상하여 얘술 스탯이 1 올랐습니다.
감정을 통해서도 획득하는 얘술 스탯!
그림이나 명검, 전설적인 방어구 들에서도 예술스탯을 조금씩 얻을 수 있었다.
'예술 스탯은 다른 스탯과는 조금 다른 것 같군.'
조각품을 만들거나 스킬을 사용하면 예술 스탯이 소모된다. 하지만 다시 올릴 때에는 복원력이 있어서 좀 더 쉽게 오르는 느낌이었다.
조각품의 감정으로도 여간해서는 예술 스탯을 획득하기 어렵지만, 정령 창조 조각술을 쓴 이후로는 스탯이 2배쯤 잘올랐다.
좋은 원단을 구해 재봉을 해도 예술 스탯이 오르고. 대장장이로 무언가를 만들어도 예술 스탯이 생겼다.
'그렇다고 해도 자주 쓸 수 있는 방법은 아니지만.'
복원력은 말 그대로 회복이 빠르다는 것뿐!
예술 스탯을 소모해 버리기만 한다면, 더 높은 수준에 다를 수 없다.
위드는 예술 스탯을 보충 하기 위해서 쿠르소에 남아 드워프들을 정말 많이 만났다.
"아트 핸드, 맥주나 한잔하겠나? 내가 한잔 사지."
"혹시 가입하신 길드가 있으세요?"
조각사를 영입하기 위하여 접근하는 길드들.
위드는 매번 거부했다.
하루는 그 광경을 지켜보던 헤르만이 은근한 어조로 말했다.
"길드에 가입하는 것도 좋을 것이네. 생산직들은, 아! 자네는 생산직은 아니로군. 아무튼 우리처럼 장인의 직업을 가진 이들은, 길드을 끼고 있는 것이 편해."
"저도 알고는 있습니다."
"그럼 길드에 가입하지 않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 건가?"
다크 게이머라는 사실이 못내 걸렸다. 마법의 대륙을 할때에도 혼자서만 활동을 했으니 길드의 울타리 안에 들어간다는게 부담스럽기도 했다.
헤르만이 눈을 끔뻑이며 웃었다.
"말하기 힘든 사정이라도 있는 모양이군. 하지만 길드라고 해서 모두가 다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밝히면서 사는건 아니라네."
"‥‥‥."
"알리고 싶지 않는 것은 말하지 않아도 되고, 편한 대로 활동하면 되지. 길드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탈퇴해 버리면 되지 않겠는가?"
"그야 그렇지만‥‥."
"내 나이쯤 되면 젊어서 많은 일을 해 보지 못한 게 가장 아쉬워. 후회도 저질러 보고 나서 할 수 있는 게 아니겟나? 너무 걱정만 하고 사는 것도 젊은이에게 바람직한 자세는 아니야."
위드는 결정했다.
'활동하기 편한 길드가 있다면 가입을 해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군.'
여러모로 외톨이가 될지도 모르지만, 길드라는 것 자체를 배척할 필요는 없겠다 싶었다.
그의 사형들인 검치 들도 길드를 만들어서 활동하고 있지 않던가. 로자임 왕국에서 길드를 만든 이후로는 거의 유명무실해져서 본인들조차 잊고 있는 모양이지만.
'굳이 사형들의 길드에 가입할 필요는 없겠지.'
검치를 비롯한 사형들과는 가깝게 지내고, 또 매일 얼굴을 보는 사이였다. 친구 등록도 되어 있어서 자주 이야기를 나누니, 검치 들의 길드에 가입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위드가 흔들리는 기색을 눈치챈 것인지, 헤르만이 넌지시 운을 뗏다.
"혹시 황야의여행자라는 길드를 들어 보았는가?"
"들어 보지 못했습니다."
"내가 활동하고 있는 길드라네, 말없이 사냥만 하는 이들더 많고, 모험만 하는 이들도 많고‥‥. 제멋대로인 인간들이 모여서 만들어 놓은 길드지."
"인원은 얼마나 되지요?"
"대략 스물다섯쯤? 접속률은 상당히 높은 편이야. 연령층은‥‥나처럼 늙은이도 있고, 20대나 30대, 40대가 많지. 따로 소속된 왕국도 없고, 입단식이나 번거롭게 하는 일들이 없어서 편할게야. 우리 길드에 가입하지 않겠나?"
"만약 불편해지면요?"
"그떄는 탈퇴하면 되지."
위드에게도 헤르만의 제안은 괜찮게 느껴졌다.
'조각사라고 이것저것 요구하지 않겠군.'
위드를 영입하려는 대부분의 길드는, 그가 조각사라는 사실을 알고 접근을 한다.
길드를 위한 조각품.
목적을 가지고 길드에 초대를 한다. 헤르만의 길드는 그럴일은 없을 것 같았다.
"좋습니다. 가입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죠?"
"내가 초대를 하면 되네. 길드에서 1년 이상 활동한 회원에게는 추천권이 있지."
띠링!
-헤르만 님이 황야의여행자 길드에 초대를 하셨습니다.
황야의여행자 길드에 대한 정보
소속인원 :25
길드장 : 공석
성향 :선
적대길드 : 없음
적대왕국 : 없음
세부적인 길드의 정보는 가입한 후에, 일정한 시간이 지나야만 볼 수 있습니다.
초대를 수락하시겠습니까?
전쟁 중이거나 적대하고 있는 곳이 있다면 가입하기 꺼려지지만, 무난한 길드라면 손해 볼 것이 없다.
"가입하겠습니다."
띠링!
-황야의여행자 길드에 가입을 하셨습니다.
그러자 위드의 메시지 창에 새로운 글들이 떴다.
-사비나 : 신입 회원이나. 가입하신 거 환영해요!
-핀 : 어서오세요
-에드윈 : 반갑습니다.
신입 회원에 대한 환영의 글들!
접속해 있는 길드원 목록을 보니, 위드를 포함한 26명 중 24명이나 접속해 있었다.
접속률은 정말 엄청나다고 할 수 있을 정도였으나, 그럼에도 인사를 하는 사람은 3명뿐.
-위드 : 안녕하세요 위드입니다. 길드 회원 분들, 반갑습니다.
-헤르만 : 다른 사람들은 사냥이나 의뢰로 바쁜 모양이구만. 우리 길드 는 길드 메시지 창을 아예 꺼 놓고 활동하는 사람도 많다네. 그래서 필요한 게 있다면 직접 친구 등록을 해서 말을 걸어야 될 거야.
-위드 : 참고하겠습니다.
-핀 : 그런데 헤르만 할아버지, 아트핸드 님도 가입한다고 하지 않으셨 어요?
-헤르만 : 무슨 소릴 하는 거지? 지금 가입한 사람이 아트핸드인데.
-핀 : 그럴 리가요. 지금 가입하신 분은 위드 님인데요. 확인해 보세요 , 할아버지.
-헤르만 : 내가 틀렸을 리가 없다. 아트핸드에게 직접 손을 올리고 길 드에 초대를 한 것인데‥‥. 허어, 이게 어찌 된 일이지? 정말 핀 네 말대로 가입한 사람이 위드로구나.
위드는 가입을 하자마자, 레벨과 직업 등을 비공개로 설정해 두었다.
아직은 친하지 않은 길드. 어떤 사람들이 있는 지도 모르는 길드에 함부로 공개하기가 꺼려졌던 탓이다.
하지만 이름은 그래도 보였다.
-위드 : 제가 그 아트핸드입니다.
-헤르만 : 정말 드워프 조각사 아트핸드가 맞는가?
-위드 : 예. 하지만 드워프는 아닙니다.
-헤르만 : 드워프가 아니야?
-위드 : 사정이 있어서, 지금은 드워프 행세를 하고 있습니다.
-핀 : 아트핸드 님, 반가워요, 그런데 드워프가 아니라니요? 완벽하게 키 작은 드워프‥‥앗! 드워프에게 키 작다는 말은 실례죠, 죄송해요. 아무튼 헤르만 할아버지와 같은 종족 아니예요?
-위드 : 아닙니다.
-핀 : 그럼 원래의 종족은 뭔데요?
-위드 : 인간입니다.
위드의 옆에 멍하니 서 있던 헤르만의 얼굴이, 무언가를 깨달은 듯이 굳었다.
위드가 만들고 있는 정밀한 세공품 그리고 조각술 퀘스트를 하던 모습, 빛의 날개를 만들었던 놀라운 사건들.
헤르만의 뇌리에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헤르만 : 인간 그리고 조각사 위드라면 설마‥‥모라타의 영주?
-위드 : 바로 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