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워프의 선물
"이제 가야 할 것 같습니다."
위드가 쿠르소를 떠난다고 하자, 드워프들은 아쉬워했다. 퀘스트나 조각품으로 친해진 사이였기 때문이다.
"정말 가야 되는가?"
헤르만이 안타까운 듯이 물었다.
"이대로 쿠르소에서 계속 조각품을 만들어도 되지 않겠는가."
대장장이들은 쿠르소에 정착하면 다른 지역으로 잘 떠나지 않는다. 대장장이들을 위한 모든 시설과 재료들이 있
었으므로 밖으로 나갈 필요가 없는 것.
위드는 고개를 저었다.
"저는 조각사입니다. 조각사는 넓은 세상을 여행하고 견문을 쌓지 않으면 어렵습니다. 쿠르소에서의
목적을 달성했으니 이제는 떠나야지요."
조각술의 비기 획득!
조각사 마스터가 어딘가 숨겨졌을 목조품은 찾지 못했지만, 스스로 조각술의 비기를 깨쳤으니 이것으로 되었다.
정령들을 창조하느라 300이 넘게 소모된 예술 스탯도 노가다 끝에 전부 복구한 뒤였다.
결국 드워프의 왕국 쿠르소에는 처절한 노가다의 기억만을 남겨 두고 떠나게 되었다.
물론, 호수에 숨겨져 있던 켈델레브의 물의 조각상등을 복원하였던 짜릿한 기억들도 있었지만.
헤르만이 씁쓸한듯이 이야기했다.
"결국 떠날 모양이로군."
"예. 죄송합니다."
"그럼 드워프식의 환송식을 열어 줘야겠어."
"꼭 그러실 필요까지는 없는데요."
"쿠르소의 전통이네."
전통이라고 해도 위드는 부담스러워서 사양을 하려고했다. 그런 그의 마음을 짐작이라도 한 듯이 헤르만이 설명
했다.
"쿠르소에 정착한 드워프들이 모두 나와서 함께 술을 마시고 즐기는 행사지. 대장장이 기술을 연마
하다 보면 밖으로 잘 나오지도 않는데, 모든 대장장이가 참석해서 환송식을 벌여 준다네. 그리고
떠나는 드워프에게 한 가지씩의 선물을 주지."
"환송식을 꼭 해야겠군요."
선물이라는 말에 위드의 마음이 돌아섰다.
어쨌든 두둑하게 배도 채우고, 선물도 받아 가면 행복한 일이 될 테니까.
헤르만이 한마디를 덧붙였다.
"아마도 이 드워프식의 환송식은 자네가 마지막이 될 것 같아."
"예? 왜죠?"
"자네가 복원한 조각품이 화제가 되어서 쿠르소에 오는 드워프들이 정말 많이 늘었거든. 그리고
자네만큼 전투 계열이나 장인 계열 모두와 친한 드워프도 없었으니 말일세."
장인들 사이의 경쟁 심리,
자기보다 더 뛰어난 장인에게는 심한 질투를 느낀다. 하지만 조각사의 경우에는 장인이 아니라서 경쟁자로 여기
지 않아 모두가 편하게 생각했다.
헤르만을 비롯한 쿠르소의 5대 장인들과 골고루 교분을 다질 수 있었던 것도 그러한 이유가 크게 차지했다.
"마지막 환송식이 될지도 모를 이 행사를 성대하게 치러야지. 내 아는 드워프들에게 아껴 놓았던
물건들을 확실하게 내놓으라고 하겠네."
"고맙습니다."
"여행을 떠나는 드워프에게는 필요한 것이 많을 테니 이번 기회에 제대로 장만해보게나. 허허허."
"하하하. 그러겠습니다."
위드가 유쾌하게 웃었다.
생일 선물처럼 언젠가 되돌려 주어야 될 것도 아니고, 떠나는 환송식에 받는 선물이란 기쁘게 챙기면 그만이다.
선물을 받고,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감사를 해 주면 된다.
위드는 드워프들이 뜻밖에도 낭만적인 종족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저 조그맣고 고집불통인 종족인 줄로만 알았는데 괜찮은 전통도 있었군.'
위드가 조각품을 구상한다고 호수로 떠나자, 헤르만에게 핀이 물었다.
"할아버지."
"응?"
"근데 환송식에 대해 말씀해 주지 않으신 게 있잖아요."
"뭔데?"
"술값요."
헤르만은 빙긋 웃을 뿐이었다.
"말했다면 환송식을 하려고 하겠느냐?"
"그야 그렇지만......"
"즐겁게 환송식을 하려면 모르고 있는 편이 낫지. 우리 드워프들이 먹고 마셔 봐야 얼마나 나오겠느냐?"
헤르만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한 가지 사실을 알려 주지 않았을 뿐이다.
환송식 날 마시는 술값은, 떠나는 드워프가 내는 것이 관례라는 것을.
"축하하네."
"넓은 대륙으로 가서 드워프의 꿈을 마음껏 펼치게나. 건배!"
"건배!"
"위하여!"
쿠르소의 1,000여 명의 드워프들이 호숫가 옆 광장에 모여 맥주를 들이켰다.
"캬아. 좋다."
"이 맛이구나!"
호수에서는 물로 만들어진 오리 조각품이 수면에 파문을 일으키며 유유히 움직이고 있었다. 물 밑에서 대형 고
래 조각품이 튀어 오르고, 무지개는 두 발을 움직이면서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켄델레브의 조각상들이 보여 주는 동화 같은 풍경에, 지하 왕국에서 마시는 맥주!
드워프들은 통에서 맥주를 따라 마시기 바빴다.
"쿠르소가 제일 좋은 이유에는 뭐니 뭐니 해도 맥주 맛을 빼놓을 수가 없지."
"맥주 맛 때문이라도 나는 쿠르소를 떠나지 못할 것 같아."
기분 탓도 있겠지만, 쿠르소의 맥주 맛은 실제로 기가 막힐 정도다.
맥주 장인!
드워프들이 우러러볼 수밖에 없는 존재가 쿠르소에 있어서, 그가 만들어 준 맥주는 최상의 맛을 자랑한다.
맥주를 마시고 기분 좋게 취하는 것이야말로 드워프들의 행복.
드워프들은 맥주를 좋아하는 종족적인 특성도 가졌다.
맥주를 마시면 집중력이나 여러 스탯, 스킬 들이 향상된다.
고주망태가 되어 하루를 푹 쉬고 일어나면 그다음 날에는 최상의 상태가 되어 물건을 만들 수 있었다.
철을 두들길 때마다 일어나는 긍정적인 변화들을 보면 드워프로서의 보람을 느꼈다.
"아트핸드, 이쪽으로 와!"
"자, 여기도 한 잔 해야지."
위드는 자리를 옮겨 다니며 권하는 술을 마셔 주기 바빴다. 환송식의 주인공은 어디까지나 그였으니 빠질 수가
없다.
"그때의 퀘스트는 정말 대단했는데."
"드워프들이 동굴에서 싸우는 전투법을 자네가 창조하지 않았던가."
전사나 워리어 들도 위드를 칭찬했다.
술을 마신 드워프가 곤란한 것은 예전에 했던 말을 하고 또 한다는 점!
자리마다 돌아다녀야 했으니 같은 말을 수없이 들어야 했지만 위드는 꿋꿋하게 참아 냈다.
'공짜 선물을 위해서라면 이 정도의 지루함쯤이야... 얼마든 견딜 수 있지.'
드워프들은 소검이나 가죽 배낭, 유혹의 먹이 같은 것을 선물로 주었다.
유혹의 먹이는 굉장히 좋은 향을 낼뿐더러, 몬스터들을 잠에 빠지게 만드는 효과가 있었다.
생명체의 몬스터들에게만 해당이 되고, 의심이 많은 몬스터들은 잘 먹지 않는 단점도 있다. 몸집이 큰 몬스터들
은 정말 많은 먹이를 먹어야만 효력이 생기고, 이 먹이 때문에 오히려 몬스터들이 모여드는 경우도 생긴다.
하지만 그런 단점들을 감안하더라도 효과가 큰 편이라서 비싼 가격에 판매되는 요리의 종류였다.
솜씨 있는 요리사가 훌륭한 재료들을 바탕으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수량 자체가 많지 않았다.
"이 먹이가 자네의 생명을 구해 줄 수 있었으면 좋겠군. 대륙에는 위험한 것들이 참 많으니 항상
조심하게. 그리고 드워프들이 많은 곳들만 다니도록 해."
"잘 쓰겠습니다."
"이 드워프야, 아트핸드가 초보도 아니고 굳이 그런 말을 할 필요가 있겠나. 아트핸드, 어디에 가
든 멋진 조각품을 많이 만들어 주게. 이 쿠르소도 자네 덕분에 참 살기 좋은 곳이 되었어. 물의
조각품들도 있고......"
훈훈한 분위기에서 위드는 선물들을 받아서 챙겼다. 그런데 덕담을 해 주던 드워프가 갑자기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자네가 데스핸드와의 승부에서 만들었던 날개 있지 않나. 그게 갑자기 어디로 갔지?"
"......"
"무척 신비로운 날개였는데 갑자기 사라져 버렸어. 그 날개가 어떻게 되었지?"
생명을 부여해서 따로 챙긴 빛의 날개에 대해 드워프들이 궁금해하는 것이었다.
위드는 대충 둘러대기로 했다.
"빛으로 만든 것이지 않습니까? 촛불도 오래 켜 놓으면 어떻게 되죠?"
"꺼지지."
"그런 겁니다."
"아! 그런 거였군."
"난 또 뭐라고. 껄껄!"
맥주를 마시며 의문이 풀렸다는 듯이 환하게 웃는 드워프들!
술을 마신 드워프가 상대라서 얼버무리기 더욱 좋았다.
『-취기가 올라오고 있습니다.』
위드도 권하는 맥주를 받아 마시며 제법 거나하게 취했다.
"아트핸드, 우리가 주는 술도 마셔야지!"
"여기네, 여기!"
걸음걸이도 비틀거리는 정도였지만 위드는 걸어가서 맥주가 가득 담긴 잔을 받았다.
"한 번에 쭈욱 마시게."
드워프들은 끊어서 마시는 걸 싫어하는 종족.
위드는 호쾌하게 한 번에 들이마셨다.
"캬아!"
"역시 사내로군, 자, 여기 안주도 닭 다리 하나 물게."
안주를 먹으면서 다니다 보니, 엑버린의 술까지 마시게 되었다.
5대 장인 중의 하나로, 쿠르소에 처음 오자마자 이름을 들었던 명창을 만든 장인이다.
위드의 환송식을 위한 자리에는 5대 장인들도 모두 나와 있었다.
"아트핸드."
"예, 어르신."
"언젠가 난 꼭 드래곤도 잡을 수 있는 창을 만들고 말 거야. 끅."
"어르신이라면 꼭 만드실 거라고 확신합니다."
취중에도 엑버린의 기분을 맞춰 주려고 노력했다. 이것이야말로 사회생활의 일부가 아니겠는가!
"꺼억. 취한다. 아무튼 여기 자네를 위한 창을 하나 만들어 놨으니 가지고 가."
『-장인 엑버린이 만든 불렌서의 창을 획득하셨습니다.』
슬쩍 확인해 보니 공격력이 78이 넘는 굉장히 우수한 창이었따.
"나 엑버린의 이름이 담긴 창이니, 아무에게나 주지 말게. 클클."
"예. 그럼 한 잔 더 하시죠."
"자, 따르게!"
위드는 엑버린과 세 잔을 마셔 주고 자리를 옮겼다. 다시 선물들을 충분히 거두는 동안, 쿠르소의 환송식은 완
연히 무르익었다.
"마시게, 마셔!"
"통째로 마셔 보자. 가장 드워프다움을 보여 주는 게야."
"멧돼지 통구이, 어디 갔어! 요리사, 여기 멧돼지 통구이 5마리 더!"
드어프들이 왁자지껄 떠들고 있었다.
헤르만과 핀도 몇몇 드워프와 함께 맥주를 마시던 도중에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할아버지, 괜찮겠어요?"
"그러게 말이다. 이렇게 많은 드워프들이 나올 줄은 나도 몰랐는데. 이것 참."
"술값이 엄청 나오겠는데요."
"적당히 마시고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으니, 최고의 환송식이 될 것 같긴 하구나. 이 드워프들이
죄다 할 일이 엇었던 거야. 아니면 위드가 어느새 이렇게 유명해졌던 거야?"
헤르만이 혀를 찰 정도로, 쿠르소의 드워프들 거의 전부가 이 환송식에 참여하였다.
마지막 환송식이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드워프들도 느끼고 있었고, 위드와 약간씩이라도 관계를 가진 드워프
들이 많았다. 최고의 조각사가 될지도 모르는 위드, 그와 인맥을 쌓고 싶어 나온 드워프들도 많다.
자정이 넘었는데도 환송식은 끝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위드는 5대 장인 중 파비오의 술잔도 받았다.
파비오는 40대 중반 정도의 나이에, 어깨가 넓고 눈매가 날카로웠다.
직접 만나는 것은 처음이라도 방송이나 동영상을 통해서 많이 접한 얼굴이었다.
가장 유명한 장인 드워프, 엄청난 재력을 가지고 있을 것으로 추측되며 대장장이 스킬도 뛰어난 드워프이다.
"받게."
"예, 감사합니다."
위드는 고주망태가 되기 일보 직전의 상황이었다.
『-취기가 심하게 올라오고 있습니다.
모든 능력치가 일시적으로 감소합니다.』
음주로 인해 현기증이 일어나고 손이 부들부들 떨렸지만 정신력으로 참아 냈다.
'이 정도 술기운에 져서는 안 돼.'
검치에게 배웠던 정신 수련, 거기에 비한다면 이 정도 술은 견딜 수 있다.
위드는 억지로 바른 자세를 취히며, 손이 떨리는데도 한 방울의 술도 흘리지 않고 잔에 받아 냈다.
파비오의 눈빛이 더욱 깊어졌다.
"딸아이로부터 이야기는 들었다. 퀘스트를 할 때 내가 호의로 내준 방어구를 거절하였다고."
"......"
"당돌한 녀석이라고 느꼈다. 그리고 위험천만한 퀘스트라서 실패할 것이라고 여겼는데 넌 보란
듯이 성공을 해냈다. 그리고 한동안 쿠르소에서는 네 이야기가 화제가 되었지."
"과찬이십니다."
"능력이 있다면 건방져도 괜찮다. 내가 맡긴 방어그들도 제법 훌륭하게 세공을 해 주었더군."
파비오가 맥주를 쭉 들이켜자, 위드도 따라서 마셨따. 2개의 맥주잔이 텅 비고. 둘은 서로의 잔을 채워 주었다.
"넌 보통의 드워프가 아닌 것 같군."
파비오의 말에 위드는 시선을 들었다.
둘의 눈빛이 강하게 마주쳤다.
위드의 눈동자는 술기운으로 인해 붉게 충혈되어 있었지만 깊고 선명했다.
"아까부터 네가 자리를 옮겨 다니며 술을 마시는 걸 지켜보았다. 보통의 드워프라면 그 정도 술을
마시고도 또렷한 정신을 유지하기는 어렵다. 나도 드워프이니 잘 알고 있는 편이다."
"제가 술이 좀 센 편입니다."
"그럴까. 하지만 내가 보기에 넌 적어도 보통의 조각사는 아닌 것 같구나."
파비오의 눈빛이 더욱 강렬해졌다.
위드를 탐색하기 위한 눈빛이 아니었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안목이 생기고, 기질이 강해진다. 인상에 따라서 첫 만남만으로도 그가 어떤 사람인지, 어
떤 기질을 가지고 있는지 대략 짐작이 가능하다.
파비오의 기질은 투박하고 두꺼운 강철을 닮았다.
강하고, 잘 부러지지 않는다.
평범한 유저들은 파비오를 만나는 것만으로도 위축되었다.
하지만 위드는 조금도 위축되는 감이 없다.
강철을 다루고 사용하는 검의 길을 위드는 걷고 있었다.
진검을 제 몸처럼 다루며 끝없이 정진한다.
강철 같은 파비오의 느낌도, 위드 앞에서는 태풍 앞의 등불처럼 사그라졌다.
파비오는 그것을 느끼고 있었다.
'나보다 강한 성격을 가졌다. 그리고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나보다도 더 겁이 없는 놈이다.'
파비오는 상대가 조각사란 판단을 버리고, 그가 로열 로드를 하면서 직접 만나서 놀란 몇 안 되는 인물인 것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로 했다.
"선물로 받고 싶은 것을 말해라."
선물을 고를 수 있는 선택권도 주기로 했다.
그가 만든 대부분의 방어구들은 위드의 손을 거쳤다. 이미 알고 있을 테니 필요한 것을 고르라는 배려!
'어느 정도의 배포를 가지고 있는지도 알 수 있을 터!'
파비오는 방어구를 만들지만, 결국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위드는 눈을 빛냈다.
"철륜의 어깨 보호대를 주시지요."
"철륜의 어깨 보호대? 그건 방어구임에도 공격적인 성향이 심한 물건인데... 아니, 그것을 떠나서
레벨 제한이나 직업 때문에 자네는 사용이 불가능할 터인데?"
파비오는 반문을 하던 도중에 스스로 답을 찾아낸 듯한 표정이었다.
"아니. 사용할 수 있는 거군."
"그렇습니다."
"알았다. 주지."
파비오는 위드에 대한 평가를 달리했다.
대장장이 스킬이 상당한 그리고 레벨도 꽤 높은 유저이리라는 것을.
'감히 그것을 달라고 하다니 배짱도 두둑한 놈이군. 염치도 없고. 괜히 뭐든 말하라고 했어.'
속으로 구시렁거리면서 욕도 제법 했다. 철륜의 어깨 보호대는 그가 만든 방어구들 중에서도 수위에 꼽히는 작
품이었기 때문이다.
위드는 선물들을 수거하면서 헤르만에게까지 이르렀따. 몸을 비틀거리면서 가누지 못했다.
"많이 취했군."
"아닙니다."
"내 맥주도 받아 주겠는가."
"얼마든지요."
위드는 맥주를 쭉 들이켰다. 그러자 헤르만은 한 쌍의 귀걸이를 꺼냈다.
"마령의 귀걸이. 마나를 증폭시켜 주는 효과가 있는 물건이라네."
상급 액세서리로, 마나를 이용한 공격의 효과를 중대시켜주기 때문에 마법사뿐만 아니라 그 누구에게라도 무척
귀한 물건이다.
적어도 3만 골드는 하는 물건.
"감사합니다."
"아니야. 그보다 내가 묻고 싶은 것이 있는데......"
위드의 머리가 꾸벅 아래로 떨어지다가 정신이 든 듯이 번쩍 치켜들렸다.
"무, 무엇이지요?"
평상시의 위드에게서는 볼 수 없는 늘어진 모습.
억지로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는 것이 눈에 훤히 보였다.
헤르만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별로 중요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닌데, 조각사의 사명에 대해서 어찌 생각하는가?"
"사명요?"
"나는 대장장이로서 어떤 사명을 가지고 있다네. 그 때문에 특별한 하나의 검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을 하고 있는데 쉽지가 않아. 자네도 조각사인 이상 아마도 어떠한 사명을 가지고... 이런!"
헤르만은 말을 하던 도중에 혀를 찼다.
위드의 머리가 꾸벅꾸벅 숙여지더니 완전히 앞으로 고꾸라졌기 때문이다.
"이보게!"
"음냐."
위드는 깊은 잠에 빠진 듯이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헤르만이 주변을 둘러보니 드워프들은 여전히 거나하게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취해서 짧은 두 팔과 두 다리를
쫙 펴고 잠든 드워프들도 많이 보였다.
'하기야 저 드워프들에게 한 잔씩 받아 마셨을 테니 말 다 한 셈이지.'
헤르만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핀, 좀 도와주겠나? 그쪽을 좀 잡아 줘."
"네."
"자, 옮기자."
그리고 핀과 함께 위드를 구석에 눕혀 놓았다.
술자리는 밤새도록 이어질 것 같았고, 헤르만에게도 술잔을 들고 찾아오는 드워프들이 많았으므로 대화에 푹 빠
졌다.
그러던 어느 순간, 옆을 돌아보니 무언가 허전했다.
취해서 쓰러져 잠들어 있던 위드가 감쪽같이 사라진 것!
"어라, 이 친구가 어디로 갔지?"
헤르만이 서둘러서 찾아보았다.
"누구 아트핸드를 본 드워프 없는가?"
드워프 1명이 지상으로 향하는 출구 쪽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아까 저곳으로 나가던데요."
"이런!"
헤르만은 술긷운이 확 날아갔다. 그리고 급하게 위드에게 귓속말을 걸었다.
@이보게!
@......
@이보게!
몇 번을 부르고 나서야 위드의 대답이 전해져 왔다.
@예, 헤르만 할아버지.
@험험! 술은 깼는가?
@아니요, 아직. 속이 울렁거려 죽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많이 마셨으니 힘들겠지. 그래, 언제 돌아오려고 하나.
@시원한 바깥바람을 쐬러 지상으로 나가려고 하는데요.
위드는 대답을 하는 도중에도 탄광을 달려서 빠르게 빠져 나가고 있었다.
막대한 술값!
딱 눈치를 보아하니 드워프들은 술을 마시면서 돈을 낼 기미가 안 보였다.
'이런 돈은 당사자가 내야 되기 마련이지.'
술을 마시면서도 경계심을 풀지 않았다.
그리고 절묘한 시기를 이용한 도주!
@이보게, 이대로 가 버리면 어떻게 하는가?
@왜요. 환송식은 다 끝난 걸로 아는데요.
@그게... 술값을 내야 하지 않나.
@뭐라고요? 그 돈을 제가 내야 하는 것이었습니까?
위드는 기가 막힌다는 말투로 귓속말을 보냈다. 그리고 헤르만이 당황할 찰나. 다시 말을 전했다.
@진작 말씀을 해 주지 그러셨어요. 그랬으면 술값을 내고 나왔을 텐데.
@큼. 지금이라도 돌아와서 내고 가면 어떻겠는가. 술값이... 어디 보자, 3,500골드가 좀 넘는군.
맥주를 3,000골드 넘게 마시다니, 드워프들의 무지 막대한 주량이 아니고서야 불가능한 일.
@장부가 한번 길을 떠났는데 어찌 돌아갈 수 있겠습니까.
@그래도......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일단 헤르만 할아버지가 지불을 해 주시지요. 다음에 제가 갚아 드
리면 되는 거죠.
@그, 그럴까.
@예.
@그렇게 하면 되겠군. 알았네. 나중에 꼭 갚아 줘야 되네.
@걱정 마십시오. 제가 누굽니까? 하하하!
@하, 하하.
위드는 쿠르소 왕국을 나와서 퀘스트 보고를 위해 아이언 핸드 마을에 도착했다.
왕국을 나올 때에는 조각사로서 작품 1개를 의무적으로 바쳐야 했는데, 평소에 깎아서 갖고 다니던 앵무새 조각
품을 내주었다.
조각사 위드의 명성에 비한다면 정말 약소한 물건!
위드가 만든 조각품으로 쿠르소에 남겠지만, 그런 명예에는 관심이 없었다.
"들었어? 부활의 군대가 드디어 페놈프 지역까지 점령했다더군."
"허어. 정말 지독한 일이로군."
"누가 그들을 막을 수 있을까? 이대로라면 베르사 대륙을 점령하는 것도 머지않았을 것 같아."
아이언핸드 마을에 있는 드워프들의 대화가 위드에게도 들렸다.
데이몬드가 이끄는 강성한 마물의 군단이 베르사 대륙을 위협하고 있었다.
일찍이 몬스터 떼의 침공이나 가뭄, 홍수 등의 피해도 있어 왔지만, 이번 데이몬드의 침공이야말로 베르사 대륙
에 가장 큰 파장을 미치고 있다.
드워프들이 속삭였다.
"왕국들이 드디어 움직이기로 했다고 해."
"연맹을 결성하여 부활의 군대를 저지하겠다더군."
"자기들의 땅까지 넘어오려고 하니 안달이 난 거겠지."
"데이몬드의 목에 60만 골드의 현상금까지 걸렸다니까 말 다한 셈이지."
다크 게이머 길드에서도 이 이야기로 화제였다.
60만 골드라면 굉장한 금액. 일확천금을 노리고 데이몬드의 암살을 추진할 만도 하다.
하지만 마물들의 이목을 속이고 잠입하기도 아렵고, 앞으로 데이몬드의 몸값이 더욱 오를 것이라고 예상하고 자
제하란 이야기들도 많이 나오는 중이었다.
'어느 정도 안정적인 수입이 이어지기 위해서는 너무 급격한 혼란은 좋지 않은데......'
위드는 조각사 길드로 들어갔다.
대륙에 어떤 위기가 찾아오든 조각사 길드는 여전했다.
"재료가 아깝군. 그런 식으로 깎는 게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나!"
"자넨 드워프의 수치야, 수치!"
교관에게 갈굼당하면서 서럽게 조각술을 익히고 있는 드워프들!
그들은 문이 열리고 들어온 위드의 얼굴을 알아봤다.
"그때 의뢰를 받아 갔던 드워프잖아."
"켄델레브의 흔적을 찾아오라던 그 의뢰 말이야?"
"아무도 해결하지 못하던 의뢰를 당당하게 받아 갔던 드워프지."
"쯧쯧. 저 드워프도 결국 하다 하다 안 되니 포기하러 온 모양이로군."
드워프들은 내심 고소해했다.
위드가 의뢰를 받을 때만 하더라도 혹시나 하는 걱정을 했는데, 저렇게 먼지투성이로 힘없이 돌아온 것을 보니
실패했으리라 여겼다.
이미 켄델레브의 조각품이 발견되어 로열 로드에 동영상까지 유포되었지만, 아무래도 이들은 소식이 깜깜한 드
워프 같았다.
위드는 교관을 향해 걸어갔다.
"퀘스트의 결과를 보고하기 위해서 왔습니다."
조각술 교관 조르비드가 정중하게 물었다.
"고생이 많았네. 우리 드워프 조각사의 전설은 사실이었는가?"
"그렇습니다 드워프 종족에도 조각사는 있었고, 그의 조각품은 아름다웠습니다."
"과연! 나는 그럴 것이라고 믿고 있었지. 내게 켄델레브의 흔적을 보여 줄 수 있겠나?"
"물론입니다."
위드는 배낭을 열고 손을 넣었다.
배낭 안에 들어 있는 물건들을 뒤적거리다가 무언가를 잡았다. 그리고 두 손으로 감싼 채로 꺼냈다.
"여기, 켄델레브의 조각품입니다."
위드가 두 손을 벌리자, 갇혀 있던 물로 된 새가 날아올랐다.
새가 맑은 물소리를 내면서 조각사 길드를 빙빙 돌았다.
"아! 이것이 우리의 선조가 만들어 낸 조각품!"
조각술 교관 조르비드는 감격을 금치 못했다.
익살스러운 참새 모양을 하고 있는 조각품은, 드워프들 사이를 헤집고도 다녔다.
드워프들은 새로운 세상을 본 것같이 놀라운 표정을 지었다. 맥주를 벌컥벌컥 마실 때에도 이토록 크게 입을 벌
리지는 않았으리라.
"이게 조각품이라니! 어떻게 이게 조각품이야?"
"이건 정령이나 마법으로 만든 물건이잖아!"
"조각품은 깎거나 만들어야 되는 건데, 이건 사기야."
한편으로 드워프들은 이 새로운 조각품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했다.
그들이 가진 고정관념으로는, 물로 된 새가 날아다니는데 그것이 조각품이라고 하는 것이 납득되지 않았던 것!
위드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생각으로는 평생 조각술을 대성하기 어려울걸.'
조각술은 입체적인 미술이다.
조각사가 만든 것이라면 그리고 눈으로 보이거나 공간을 지배할 수 있다면 무엇이든 새로운 시도가 될 수 있다.
'왜 꼭 나무나 돌을 깎아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건지 모르겠군.'
위드는 조각술을 무시하던 얼마 전까지의 자신의 모습을 기억하지 못한 채, 근엄한 표정을 유지했다.
드워프 교관이 손을 잡았다.
"고맙다. 이제 조각술에 대해 그 어떤 종족도 우리 드워프들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띠링!
『조각술 교관 조르비드의 부탁 완료
전설적인 드워프 조각사 켄델레브의 조각품들은 쿠르소에 있었다.
그의 조각품이 알려진 이후, 인간과 엘프는 현명한 장인이며 예술가인
드워프들을 더 이상 비난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
『-명성이 130 올랐습니다.』
『-조각사 길드에서의 평가치가 향상됩니다.』
『-종족 간 위신에서 드워프들에 대한 존경심이 3 증가하였습니다.』
『-토르 왕국 드워프들과의 우호도가 82가 되었습니다. 드워프들은 만들고 있던
곡괭이 정도는 내던지고 당신의 일을 도와줄 것입니다. 』
『-레벨이 오르셨습니다.』
『-레벨이 오르셨습니다.』
그리고 조각술 교관은 한 쌍의 검은색 장갑을 내밀었다.
사실 위드도 레벨이나 명성보다는 보상품을 더 크게 기대하고 있었다.
'토르 왕국의 퀘스트가 좋은 이유지.'
엘프들은 퀘스트를 통해 주로 우호도나 정령과의 친화력이 증가한다. 인간의 경우에는 명성이나 보상, 혹은 특
별한 지위나 직업을 가질 수 있다.
드워프들, 특히 토르 왕국의 경우에는 퀘스트를 통해 좋은 아이템을 주었는데, 위드의 구미에는 꼭 맞았다.
"여기 자네가 써 주었으면 하는 장갑이라네. 켄델레브 님은 아니지만, 매우 뛰어난 장인 드워프가
착용하던 장갑이야."
"감사합니다."
『-의뢰에 대한 보상으로 아이템을 습득하셨습니다.』
검은색 광택이 은은하게 흐르는 장갑.
"감정!"
『숙련된 제작자의 장갑:내구력 45/45. 방어력 13.
토르 왕국의 일곱 번째 대장장이, 스핀달이 직접 만들어 사용하던 장갑.
대장장이 일을 하면서도 모험을 하여 오크들을 때려잡는 데 조금의 불편함도
없도록,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만들었다.
대장장이용으로 제작되었지만 폭넓은 용도로 쓰일 수 있음.
제한:중급 손재주 이상.
레벨 150. 』
『옵션:착용 시 대장장이 스킬 +1.
조각술 스킬 +1.
손재주 스킬의 효과 +5%.
공격력 7% 증가.
원거리 무기 사용 시 연사 속도 향상.』
기대했던 대로 최상급 아이템이었다.
레벨 제한은 낮아도, 중급 손재주라면 아무나 착용할 수도 없는 물건.
조각술 교관이 이어서 말했다.
"켄델레브 님의 흔적이 우리 토르 왕국의 어딘가에 더 남아 있을 것으로 믿네. 그 흔적을 더 찾아
보겠는가?"
띠링!
『켄델레브의 숨겨진 조각품들
재능 많은 드워프 조각사의 유물은 아직도 어딘가에 남아 있으리라고 추측되고 있다.
켄델레브가 토르 왕국에 남긴 조각품들을 추가로 찾아서 복원하라.
난이도:드워프 종족 조각사 퀘스트.
보상:드워프들의 영광.
퀘스트 제한:드워프, 조각사 한정. 』
아직 끝나지 않은 켄델레브의 퀘스트!
하지만 위드는 고개를 저었다.
"저는 모험의 길을 떠나야 합니다. 드워프들의 위대함은 인간과 엘프에게 충분히 알렸을 테니,
다른 드워프에게 대신 맡기고 싶습니다."
위드에게는 해야 할 일이 있고, 조각품 찾기는 이것으로 그만두고 싶었다.
조각술 교관은 아쉬운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제 이 일은 자네가 아니더라도 다른 평범한 드워프들도 할 수 있겠지."
『-퀘스트를 거부하셨습니다.
조각술 교관 조르비드와의 친밀도가 약간 하락합니다.』
친밀도가 조금은 떨어졌지만 조각술 교관은 여전히 위드를 좋아했다.
"자네처럼 훌륭한 조각사를 보게 되어 나에게도 영광이라네. 이제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그건 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동료들을 만나기 위하여 데일 왕국으로 가야 될 것 같습니다."
"자네가 만드는 물건에 축복이 있기를. 언제든 다시 돌아와서 우리 아이언핸드 마을을 위한 조각
품을 만들어 주게."
"제 발걸음이 닿는 곳에서 본 수많은 것들,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면 꼭 만들어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