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달빛조각사 15권 : 2. 미발견 던전 (40/520)

     ▷미발견 던전

   안현도는 깨끗한 헝겊으로 검을 닦았다.

   철의 가장 순수한 부분까지 제련을 해서 장인의 혼으로 완성시킨 명검.

   대대로 유명한 검사들이 사용해 오며 검의 이름값은 더 커졌다.

"인간이 검을 통해 하늘로 오를 수 있게 만든다는... 검이지."

   안현도는 많은 명검들을 보유하고 있지만 비연검은 함부로 꺼내지 않았다. 큰 결심을 앞두었을 때에만 비연검을

  닦으며 젊을 때의 각오를 되새겼다.

"세상에 무서운 것이 없던 시절. 싸움에만 급급하여 나를 돌아보지 못했던 시절. 그때에 내게

과분한 비연검을 얻었다. 검의 날에는 의미가 없다고 하나, 결국은 사람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

닫게 해 준 검이지."

   안현도는 거울처럼 잘 닦인 비연검을 보았다.

   관장실의 창문을 통해 비치는 푸른 하늘이, 검신에도 있었다. 구름이 떠가는 것과 햇빛이 눈이 부실 지경이다.

"검술은 검을 사용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검도의 끝이 그저 강한 검술이라면 어찌 배울 가치가

있겠는가?"

   사람을 키우는 검.

   거친 황야의 잡초가 생명력이 왕성하듯이, 인간도 결국은 단련을 거쳐야 한다.

   좁은 도장이 아닌, 넓은 세상에서 배울 필요가 있다.

"진정한 공포와, 삶에 대한 욕구... 그리고 자기 자신을 검을 통해 배울 수 있을 터."

   안현도는 검은 검집에 갈무리하고 관장실을 나갔다.

"율민아."

   도장에서 비서 일을 해 주는 그의 조가의 이름이 율민이었다.

"네, 작은아버지."

"막내 제자에게 검을 보는 법을 가르쳐 줄 때가 된 모양이다."

"벌써 그렇게나 되었네요. 그럼 표를 두 장 예매해 놓을게요. 출발 일정은 언제쯤으로 잡을까요?"

"지금은 학교를 다녀야 하니... 여름쯤이 괜찮겠구나."

"준비가 모자란 듯한데... 너무 서두르는 게 아닐까요?"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더 큰 걸 얻을 수 있겠지."

   검술은 누구든 익힐 수 있다.

   남보다 빠른 검을 위해서는 반복적인 노력과 학습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런 빠른 검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승부에서 이기는 건 아니다.

   더 무거운 검, 근력을 발달시킨다고 승부에서 이기는 것도 아니다.

   검을 배우는 이유는 자신을 바로 보기 위함이었다.

   안현도의 생각에 요즘의 젊은이들은 나약했다.

"학교에 가서 공부를 하고, 취업 준비를 하고... 그렇게 십 몇 년을 보내다 보면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는 채로 사회에 뛰어들어 버리지."

   사회에서도 자기를 돌아볼 기회는 없다.

   직장에서, 가게에서 일을 하고 돈을 벌다 보면 소중한 시간들이 다 지나가 버린다.

   시간은 절대 다시 되돌아오지 않는다.

   시간을 거스를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것은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일.

   검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진검 승부를 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었다.

   자신과 상대에 대한 관찰!

   서로의 그릇을 비교하면서 더 높은 경지를 갈망하게 된다. 자신을 바로 보고, 발전에 대한 욕구를 가지고 검사

  들은 싸웠다.

"정말 강한 검. 왜 검을 배워야 되고, 진짜 검사가 무엇인지를... 여행을 통해 보여 줄 수 있겠지."

   한국 대학교의 축제가 이 주일도 남지 않게 되면서 이현의 학교생활도 바빠졌다.

"주점을 준비하는 인원. 우린 안주에 승부를 걸어야 하니 절대 소홀히 하지 마!"

   주점에서 내놓을 안주를 위한 급성 요리사 과정!

   이현은 요리에 대해서는 통달한 편이라서 따로 배울 필요가 없었지만, 다른 학생들을 가르쳐야 하므로 쉴 틈이

  없었다.

"이현 오빠, 계란은 어떻게 깨요?"

"수세미로 사과 닦아도 되는 거죠. 맞죠?"

"그릇 씻을 때 퐁퐁 대신 세숫비누 쓰면 안 되나요?"

   질문들이 나올 때마다 이현은 크게 탄식했다.

   요즘에는 인스턴트 그리고 배달 음식이 너무 잘되어 있다. 공부만 하도록 길들여진 아이들은 대학교에 올 때까

  지 밥도 한 번 지어 보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근데 밥은 누가 하기로 했어?"

"밥은 쿠쿠가 하잖아요."

"......"

   이런 식의 대화들!

   이현은 꾹 눌러 참으면서 학생들에게 요리의 기본을 가르쳤다.

"계란 프라이를 할 때는 팬에 식용유부터 두르고 하는 거야. 식용유가 아니라 올리브유를

쓴다면 더 좋겠지."

"사과는 껍질부터 깎고, 그다음에 자르면 편해. 파인애플은 과도로 썰지 마!"

"바나나는 깎는 게 아니라 그냥 벗겨 내기만 하면......"

   사실 학생들은 이현이 당황해서 설명하는 것을 즐기느라 아는 것도 일부러 물어보고 있었다.

"근데 밀가루로 밥하면 안 돼요?"

"찌개는 원래 이것저것 재료 넣고 라면 수프로 끓이는 거라던데......"

   이현의 인내심이 바닥을 기었다.

   그나마 요리를 빠르게 배우는 편이 서윤이었다. 부침개를 시커멓게 태우기는 했지만 요령을 알려 주니 다음 시

  도에는 꽤 보기 좋게 부쳤다.

   서윤은 젓가락으로 그녀가 부친 김치전 한 점을 이현에게 내밀었다.

"먹어 보라고?"

   이현이 불안한 듯이 물었을 때, 서윤도 비슷하게 불안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김치전을 향한 이현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재료, 밀가루, 김치, 김치국물, 계란, 파, 오징어 등 약간. 재료상으로는 이상이 없다.'

   정상적인 재료를 사용해서 부친 김치전이다.

'불그스름하게 잘 구워진 걸 보면 조리 과정에서도 특별한 문제는 없었을 텐데......'

   의심들을 해결하고 나서야 서윤이 주는 김치전을 받아먹었다.

   김치전이 입속에 들어가고, 가득 퍼지는 풍부한 김치의 아로마!

'향긋하다. 역시 토종 김치의 맛이지. 동네 텃밭에서 기른 배추에 젓갈, 고춧가루 들이 잘 버무

려진... 그리고 전으로 재탄생하면서 일어나는 어울림, 조화! 잘 만들어진 김치전이다.'

   김치전에 대한 평가는 금방 끝났지만, 이현의 입속은 불에 덴 것처럼 뜨거웠다.

   방금 전까지 부치던 전을 바로 떼어 주었으니 뜨겁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역시 더 의심해 봐야 됐어.'

   이현의 눈빛이 더 날카로워졌다.

   살기가 폭사되는 눈빛!

   그러면서도 맛에 대해서는 엄지손가락을 들어 주었다.

"맛있어. 이대로 계속 만들어."

"......"

   대답은 없었지만, 서윤의 눈매가 조금이나마 웃고 있는 듯 했다.

'웃을 줄도 알았나?'

   너무 순간적으로 스쳐 가 버린 표정이었다.

   하지만 짧은 찰나의 순간 보여 준 아름다움이야말로,처음 프레야 여신을 만들었을 때에 상상했던 그 미소이리라.

   서윤은 과일 샐러드도 잘 만들었고, 그릇에 담아내는 솜씨도 일품이었다.

   식품영양학과의 강의실을 빌려서 하는 조리 실습은 그렇게 끝이 나고, 주점 오픈에 대한 계획은 따로 했다.

   남자 10명, 여자 7명이 주점을 위한 정원이었다.

"천막 주점으로 해요. 비용도 그 편이 적게 들 테고요. 천막은 대형으로 5개 정도 마련하면 될거

같은데 어떠세요."

   홍선예의 말에 남자들은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축제가 하루에 끝나는 게 아니었으니 비가 오는 경우도 대비

  해야 했다.

"그럼 천막 5개. 설치는 축제 전날까지 끝낼 수 있겠죠?"

   홍선예가 이현을 보았다.

   MT에서도 보았던 온갖 재료들을 이용한 건축 능력, 그 정도라면 천막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며.

"충분히 가능하지."

"근데 천막은 어디서 구할까요?"

"대여해 주는 곳이 따로 있을 거야."

"그럼 천막은 됐고......"

   홍선예가 슥슥 도면을 그렸다.

   주점을 설치할 장소와 천막의 크기 등을 즉석에서 도면으로 그려 구체화시킨 것이다.

"테이블은 20개가 들어갈 것 같은데요."

"그럼 의자는 100개 정도가 되겠군. 너무 많을까?"

"손님들이 한꺼번에 몰릴 경우도 대비를 해야죠. 타 학교 학생이나 일반인도 정말 많이 오니까

손님들은 많이 모일거예요. 의자는 강의실에서 빌려 와도 되니 넉넉하게 맞춰 놔요."

"축제 전날 오전에 천막과 테이블, 의자까지 세팅을 다 해 놔야겠군."

"버너나 요리 재료들은......"

"재료상에 주문을 하면 트럭으로 보내 줄 거야."

   홍선예와 이현이 대화를 하면서 모든 작업들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남자들은 머릿수만 차지할 뿐, 실제로 주점 준비는 여학생들과 이현이 도맡아서 했다.

"근데 우리 주점의 콘셉트는 뭐로 정하죠?"

   홍선예가 모두에게 질문을 던졌다.

   한국 대학교의 각 주점들은 자기들만의 콘셉트를 가지고 진행했다. 원활한 손님 유치를 위해 복장에서부터 차별

  성을 두는 것은 필수였다.

"클럽 분위기로 할까?"

"여고생 분위기는 어때. 나 교복 아직도 가지고 있는데......"

"교복은 나도 있어. 근데 살이 좀 쪄서......"

   여학생들이 대화를 나눌 때마다 남학생들은 말이 없었다.

   클럽에서 짧은 치마에, 맨어깨와 허리를 드러낸 옷을 입고 있는 서윤.

   청순 무구한 여고생 복장을 하고 있는 서윤.

'대박이다.'

'대박이다.'

'대박이다.'

'대박이다.'

   ......

   남학생들이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었따.

"무슨 콘셉트를 잡아야 될까."

   여학생들의 가장 큰 고민이었다.

   다른 학과 주점과의 자존심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라도 돋보이는 콘셉트를 짜야만 했다.

"남자들은 일단 편한 복장으로 와요. 콘셉트는 여자들끼리 좀 더 고민하고 정해 볼게요."

   여학생들의 말에 남학생들은 진지하게 대답했다.

"그래. 훌륭한 콘셉트를 잡기 바라."

"너무 심각하게 고민하지 말고, 좀 전에 얘기했던 것들도 아주 괜찮아."

"아우. 축제가 오늘이었으면......"

"......"

   여학생들은 따로 모여서 토론을 했다.

   클럽 걸, 여고생, 회사원 복장 등. 남자들을 흥분시킬 만한 콘셉트들이 우선 고려되었지만 모두 취소되었다.

"우리가 남자들 눈요깃감이 될 순 없잖아!"

   노출에 대해 부담스러워할 것이 뻔한 서윤의 입장도 고려 한 것이었다.

"무슨 콘셉트를 잡아야 될까. 서빙을 하면서 사람들도 많이 보게 될 텐데 우아하면서도 고혹적인,

여성미를 살릴 수 있으면서도 절대 꿀리지 않는 거 어디 없을까?"

"5월의 축제니까, 신부가 어때."

"신부! 그거 괜찮다. 5월의 신부. 웨딩드레스에 면사포까지 쓴 학생 신부들이라면 발랄한 느낌이

날 것 같아."

"나도 찬성!"

"의견은 좋지만 드레스를 빌릴 곳이 있어?"

"천이나 원단을 사서 직접 만들어 보는 거야. 패션 잡지를 보고 대충이라도 비슷하게 만들면 되지 

않을까?"

   여학생들은 의기투합했다.

   여자를 가장 아름답게 만들어 주는 옷이 웨딩드레스라고 하지 않던가.

   결혼하기 전에 먼저 웨딩드레스를 입어 볼 기회가 되기도 했다.

"서윤 선배님, 선배님도 괜찮아요?"

"......"

   서윤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학교 과제를 위한 던전 탐험!

   축제 전날까지는 탐험을 완료해야 하니 시간이 매우 촉박했다.

"빨리 좀 오세요."

"우린 다 모여 있었단 말이에요."

   오전 수업을 마치고 조원들이 모여 있는 캡슐방으로 가자마자 원성들이 쏟아졌다.

   하지만 이현에게도 변명거리는 있었다.

"차가 심하게 막혔어."

"거짓말. 걸어왔으면서."

   조원들은 속지 않았다.

"학교에서 걸어서 3분 거리인데 무슨 차를 타고 와요."

"버스로 한 구간도 안 되어서 타면 더 돌아가 버리잖아요."

   이현의 눈빛이 그윽하고 촉촉해졌다.

   제피라는 닉네임을 쓰는 최지훈이 사형들에게 알려 준, 여자들을 달래는 비법을 사용하는 것.

   이현은 손가락을 흔들며, 최대한 달콤하게 말했다.

"이 앙큼한 사슴들... 지금 내 말 못 믿고 있는 거니?"

"......"

   순간 여학생들의 표정은 배 속의 무언가가 긴급하게 올라 오는 것 같았다.

'아, 아기 때 마신 모유가......'

   느글거림과 느끼함!

   땅콩버터에 치즈를 섞어 라면을 끓여도 이 정도는 아닐 것이다.

"아, 알았어요. 일단 어서 시작이나 해요."

   요즘 이래저래 잦은 안면이 있는 홍선예가 이현의 편이 되어 주었다. 마음은 아침저녁으로 볼때기를 쥐어뜯는

  삼촌을 둔 조카보다도 썩어 들어가겠지만 인내심을 발휘했다.

"오빠."

   캡슐에 들어가기 직전, 이유정이 말을 걸었다.

"응?"

"데일 왕국 근처에는 와 계시죠? 우리는 벌써 다 모여 있고, 탐험 연습도 많이 해 두었거드요."

   이현은 문제없다는 듯이 대답했다.

"그럼. 거의 다 도착했어."

"네, 그러면 다행이에요. 먼저 접속해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빨리 오세요."

"조금만 기다리고 있어. 금방 갈게."

   이현은 캡슐에 들어가서 센서들을 장착하며 생각했다.

'빨리 출발해야겠군.'

   쿠르소 왕국에서 만든 액세서리와 조각품 들을 상인들에게 처분하느라 아직도 네스트 왕국의 헤롬 성에 머무르

  고 있었다.

   데일 왕국의 네칸 성까지는 말을 타고도 닷새가 넘는 거리가 떨어져 있었던 것.

'한국 표현으로 거의 다 왔어. 이제 금방이야는 아직도 꽤 걸린다는 뜻이니까, 늦어도 이해해 주겠지.'

   헤롬 성!

   왕국 간 접경지대에 위치하며, 중계무역을 하는 상인들로 붐비는 성이다.

   세워 놓은 마차들과 물품들을 구매하는 유저들로 인하여 새벽의 시장 바닥을 연상시킬 정도로 혼란스러웠다.

   흥정을 하며 값을 후려치는 유저들과, 한 푼도 깎아 주지 않으려는 상인들의 치열한 기 싸움도 벌어지고 있다.

"아니, 아무리 돈만 밝히는 상인이라지만 이럴 수가 있소? 고생 끝에 탄생시킨 내 자식 같은 세공품을

어떻게 그 가격에 살 수 있단 말이오?"

"그게 어르신. 일단 고정하고 설명을 들어 보시지요. 현재 보석 세공품들의 시세가......"

"시세라니! 내가 만든 세공품이 어떻단 말이오? 어디 조그만 흠집이라도 있소? 아니면 이

루비의 질이 떨어지기라도 한단 말인가?"

   작은 드워프가 길길이 날뛰고 있었다. 당연히 그의 정체는 위드!

   초보 상인들에게 완고한 드워프가 되어서 가격을 후려 올리고 있었다.

   보석 세공품 외에 액세서리와 조각품, 드워프들의 선물들도 판매했다. 사실 환송식에서 받은 선물들을 팔 때는

  양심의 가책이 조금은 느껴졌다.

'그래도 요즘 시대가 바뀌었지. 필요하지 않은 선물은 상품권을 받았다고 생각하면 돼.'

   선물은 마음!

   마음을 받았으니 족한 것이 아니겠냐면서 마음껏 바가지를 씌워서 판매하는 중이었다.

   드워프가 판매하는 물건이라 신용도도 높고 품질도 좋았지만, 높은 가격을 고집하는 탓에 거래가 금방 이루어지

  진 않고 있었다.

"어휴, 언제 오는 거야."

"너무 늦어지는데... 그냥 포기하고 우리끼리 가 버릴까?"

"안 돼. 조원 중에서 1명이라도 빠지면 점수를 못 받는단 말이야."

   네칸 성 인근의 고목 아래에서 일단의 무리가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검사 둘과 도둑, 인챈터, 원소술사, 레인저로 이루어진 파티!

   헤겔이 번쩍번쩍 광이 나도록 닦은 방패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늦어지는군. 모처럼 쿠드람의 방패를 꺼내 왔는데 말이야."

   쿠드람의 방패.

   몸 전체를 가릴 수 있는 카이트 쉴드로 방어력이 70이 넘으며, 묵직한 무게로 돌격을 저지시키는 효과가 있다.

   흑사자 길드원인 최상준이 형에게 애원해서 갑옷과 방패 등을 빌려 왔던 것이다.

   인챈터 라미가 방패를 보며 호기심에 찬 얼굴을 했다.

"상준아, 아니 헤겔, 그 방패는 누가 인챈트해 준 거야?"

"하벤 왕국 최고의 마법 부여자, 페리에 님이 해 줬지. 그 분이 흑사자 길드의 인챈터거든."

"아, 그 유명한 사람이......"

   파티원들의 시선이 쿠드람의 방패로 향했다.

   네칸 성안에서도 뛰어난 장비를 갖춘 헤겔에게 이목이 집중되었다.

   베르사 대륙에서 일반적으로 장비란 그 사람의 무력을 드러내는 수단이 된다. 검사의 공격력은 파티 전체를 수

  호하는 힘이 되기도 하고, 적들을 분쇄하는 원천이기도 하다.

   뛰어난 검사를 보며 부러워하는 것은 당연했다.

"좋겠다, 헤겔."

"진짜 부러운 장비네. 갑옷도 보통 물건 아니지?"

"너희는 말해도 모를걸, 스네이크의 밴티스 갑옷 세트니까. 부츠와 어깨 보호대, 투구까지 세트

아이템이야."

"밴티스 갑옷에 대해서는 들어 본 적 없는데."

"당연하지, 유명한 물건은 아니지만, 아니! 너무 희귀해서 아는 사람들만 쓰는 갑옷이라서 더 알

려지지 않았지. 하지만 그 성능은 노르만의 무구들보다 뛰어난 편이야."

"노르만의 무구보다도 좋아?"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지."

   헤겔이 장비를 자랑하고 있을 때, 원소술사 셀시아가 눈을 빛냈다.

"그런 장비라면 굳이 기다릴 필요 없잖아."

"응?"

"사냥은 어차피 네가 거의 다 할 거 아니야? 그럼 우리끼리 가자."

"하지만 형이 안 오면 성적을 제대로 못 받을 텐데......"

"우리끼리 먼저 가서 탐험을 하고 있고, 나중에 합류하면 되지 않겠어?"

"그럴까?"

   헤겔은 솔깃한 표정이었다. 그도 형에게 빌려 온 장비들을 빨리 사용해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검사 벨라도 입을 열었다.

"어차피 조각사가 탐험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잖아. 그러니까 초반에는 없더라도 크게

  눈에 띄진 않을 거야."

   벨라마저 찬성을 하자 헤겔은 마음을 정했다.

"좋아. 그럼 우리끼리 가자."

"그런데 탐험할 던전은 어디로 정했어?"

   던전에 대한 정보들을 수집하고 결정한 것은 헤겔과 나이드였다.

   질문에 대한 답은 나이드가 했다.

"멀지 않은 곳이야. 프레인의 붉은 영토를 지나면 말라붙은 나무들의 숲이 나오는데, 입구가

거기에 있어."

"유명한 던전이야?"

"아니, 발견한 사람이 우리뿐일걸."

"정말?"

   헤겔이 어깨를 활짝 폈다.

"그럼. 나와 나이드가 왕국 도서관의 책자들을 조사해서 찾아낸 장소란 말이지. 물론 책자를

발견한 것은 나이드이긴 했지만."

"아직 열린 적이 없는 던전이란 뜻이야?"

"아마도 우리가 처음일걸."

   미공개 던전을 발견하게 되면 명성이 오를뿐더러, 2배의 경험치를 받게 된다.

"함정이 있더라도 나이드가 해체하면 되고, 전투는 내가 담당하면 돼."

   인챈터 르미는 미공개 던전 탐험이란 말에 걱정이 되는 기색이었다.

"위드 오빠는? 미공개 던전이라면 기다려서 같이 가야 되는 거 아니야?"

"그럴 필요가 있을까? 던전에 대한 정보가 담겨 있는 책자를 이 고목나무에 숨겨 두고 가면 되지.

책자를 보고 대충 던전의 입구 근처까지 찾아오라고 하자."

"전투를 못하니까 못 올 수도 있잖아."

"그 정도는 아닐 거야. 그럼 토르 왕국까지 여행도 갈 수 없었겠지. 그럼 어서 가자."

   헤겔은 땅을 파고 책을 숨겨 두었다.

『-길드라스의 이상한 이야기 책자를 버리셨습니다.』

   간단한 보급 등의 준비를 마치고, 그들은 프레인의 붉은 영토로 떠났다.

   헤롬 성에서 물품들을 매각하여 3만 5천 골드나 번 자린고비 위드!

"데일 왕국으로 떠나는 마차는 하루 뒤에 출발하네."

"여행 비용은요?"

"7골드네."

   운송 마차를 타고 가려고 했지만, 기다려야 될뿐더러 가격도 비쌌다.

'안 되겠군.'

   위드는 헤롬 성을 나와서 인적이 드문 숲으로 들어갔다.

   다람쥐처럼 작은 날짐승들이 사는 초보자의 숲!

   찍찍.

   도토리를 주워 먹고 있던 다람쥐들이 위드의 근처에 모였다.

   근처라고 해도 인근의 나뭇가지 위에서 내려올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인간이라면 가까이 다가오지도 않았으리라. 속성상 살육을 즐기지는 않는 드워프였기에 이 정도만큼이나 다가온

  것 이었다.

   엘프였더라면 와서 얼굴을 비벼 주었을지도 모른다. 자연의 생명체들과의 친화력을 가지고 있는 엘프들은 어디

  에서나 환영받는 존재니까.

   그때였다.

   가만히 서 있던 위드의 망토가 펄럭이더니 광채가 일어났다. 등에서 빛의 날개가 활짝 펼쳐진 것이다.

   쌓여 있던 나뭇잎들이 휩쓸려 허공에 떠오르고, 밝은 빛에 다람쥐들이 눈을 가렸다.

   위드는 숲에서 날개를 펼치고 솟아올랐다.

   헤롬 성 인근을 도도하게 흐르는 베로나 강이 실개천처럼 보였다.

   물품들을 판매할 때는 그렇게 북적대던 헤롬 성의 거리가 지금은 깨알처럼 작았다.

   하늘을 나는 드워프라니, 전대미문의 일이었다.

"빛날아, 가자!"

   빛의 날개가 우아하게 펄럭였다.

   미처 몸을 만들어 주지 않아, 다른 이의 육체에 기생하여서밖에 살 수 없는 빛의 날개.

   날개를 본격적으로 펼치자마자 너무 빠른 속도로 움직였다. 균형을 잡기도 전에 탄환처럼 쏘아져 나갔다.

   순간 이동이라고 표현해도 될 정도로 굉장한 가속!

『-하늘을 날고 있습니다.

   빛의 날개가 낼 수 있는 최대 속도의 26%.

   드워프 종족 특성으로 인하여 심한 어지러움증이 생길 수 있습니다.』

   말이나 마차도 잘 타지 못하는 드워프의 습성!

   하늘을 날고 있었으니 그 드워프 종족의 패널티가 여지없이 작용했다. 맥주를 마시고 고주망태가 되었을 때처럼

  현기증이 심해졌다.

   위드는 이 방법을 해결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한 방법을 알았다.

   조각 변신술을 해제하면 된다!

   하지만 위드는 아직 드워프의 몸이 마음에 들었다. 체력이 좋고, 손재주 등에 추가적인 효과가 부여되었으니 아

  직까지는 해제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대충 참으면 되겠지."

   위드는 천사처럼 빛의 날개를 팔락이며 서남쪽 방향을 잡고 빙글빙글 날았다.

   산이나 구릉이나, 모두 높은 하늘에서 그대로 스쳐 지나가 버렸다.

   가끔 절벽이나 산봉우리를 향해서 위태롭게 접근할 때도 있었다.

   어지럼증, 멀미 비행으로 인한 위기!

   몸에 부딪치려고 하는 독수리들을 피하기 위해 경로를 수정해야 될 정도로 압도적으로 빠른 비행이었다.

   헤겔 일행은 붉은 모래의 땅을 지나서 나무들이 죽어 있는 숲을 지났다. 잎사귀 하나 없는 으스스한 느낌의 숲.

  금세라도 귀신이 나와도 이상할 것 없는 숲이었다.

   베르사 대륙을 돌아다녀 본 경험이 많은 도둑 나이드가 말했다.

"여기는 밤에 돌아다니면 안 돼. 밤이 되면 아주 가끔씩이지만 험악한 그롤러들이 나타나서 숲을

헤집고 다니거든."

   그 말에 르미가 무섭다는 표정을 지었다. 숲 사이를 헤치며 튀어나온 그롤러들이 그녀를 향해 도끼나 죽창을 내

  지르는 것은 상상만 해도 두려웠던 것이다.

"마주치면 도망도 못 가겠네?"

"응. 밤에 그롤러들을 마주치면 목숨을 내놓는 수밖에 없지."

   던전은 나무들 사이를 한참 헤매고 난 후에야 발견할 수 있었다. 입구는 흙과 돌로 가려져 있고, 동물들의 뼈들

  이 함께 묻혔다.

"들어가자."

   헤겔이 먼저 입구로 들어가자, 잠시 머뭇거리던 다른 일행도 따라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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