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달빛조각사 15권 : 5. 달빛조각사 15권 : (43/520)

     ▷순백의 미녀

   던전 크라마도.

   크라마노임이라는 중급 몬스터들이 1, 2층에서 등장했다.

   이만하면 초보자 던전은 넘는, 중수들의 사냥터. 하지만 3층에서부터는 위험천만한 함정과 300대 후반의 몬스

  터까지 나왔다.

   정상적인 경로를 택했다면 엘핀 퀸 스파이더는 만나지 않았겠지만, 그럼에도 숨이 막힐 정도로 위협적인 던전

  이었다.

   헤겔 들만이었다면 다시 돌아 나가는 방법을 택해야 할 상황!

"헥헥."

"천천히 좀 가요!"

   하지만 지금은 던전의 깊은 곳으로 구르듯이 뛰어가야 했다.

   물론 그들의 앞은 위드에 의해서 완벽하게 청소가 된 상태다. 자잘한 거미 새끼 1마리 남겨 놓지 않고 멸망이

  었다.

   몬스터라고는 구경조차 할 수 없었으며, 함정은 철저하게 파괴되어 있다.

   위드가 나이드에게는 따로 임무를 주었던 탓이다.

"나이드."

"예. 형!"

"앞서 가면서 함정을 해체해라."

"그럼 전투는요?"

"내가 알아서 할게. 무조건 앞으로 가면서 함정만 부숴. 몬스터들은 그냥 내버려 두고."

"예, 형. 저한테 맡겨 주세요."

   던전과 미궁 탐험을 전문적으로 하는 도둑 나이드에게 함정 해체 따위는 우스운 일!

   엘핀 퀸 스파이더에게 죽을 위기도 겪었지만 그것은 도둑의 특성으로 인해 전투력이 낮기 때문이다. 장애물에

  몸을 숨긴 채 기습이나 암습 따위로만 싸웠다면 이기지는 못하더라도 지지도 않는다.

   바위가 굴러올 때에도 동료들만 없었떠라면 좁은 벽의 틈새로 어떻게든 탈출해서 함정에 빠져들 일도 없었겠지

  만.

   도둑 나이드는 자신의 특성에 적합한 임무를 맡아서 함정들을 작동 불능, 혹은 파괴시켜 놓고 지나쳤다.

   그 후에 남는 몬스터는 위드의 몫이었다.

@위드 형, 레벨 300대의 모론 추격자들이 앞에 상당히 있는데요.

   나이드는 정찰의 임무도 해 주었다.

@몇 마리나 되는데?

@65마리 정도요. 이런 규모의 몬스터라면 상당히 위험할 것으로......

@3분.

@네?

@3분 안에 마무리 지을 테니 다른 몬스터 무리를 찾아 줘.

@알겠습니다.

   용건만 간단히!

   전화할 때도 본론만 간략하게 하니, 전투 시에는 그보다 훨씬 간결했다.

   달려가고, 싸우고, 잡아 죽이고, 아이템 수거!

   식당에서 고기를 구워 먹다가 중간에 고기가 끊기면 그처럼 짜증 나는 일이 없다.

   위드에게는 전투를 하는데 몬스터가 부족한 게 가장 스트레스거리였다.

   다른 전장에서는 이 던전처럼 몬스터가 많이 나오지 않았다.

   아껴 가면서 싸울 필요가 없으니 환영할 만한 일!

   던전이 발견된 지 아직 일주일이 지나지 않아서 아이템 드랍율, 경험치도 2배가 적용되고 있다.

   최초의 발견자들은 발견 명성, 몬스터로부터 가장 좋은 아이템들을 얻게 된다. 그러나 일주일 안에만 들어오면

  경험치와 아이템 드랍율은 모두에게 적용이 되는 혜택이었다.

   던전 안에서 등 따습고 배부르게 자란 몬스터들이 외부인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할 수 있다.

"65마리라......"

   위드라도 크라마노임들처럼 가볍게 해치울 수는 없었다.

   규모가 제법 되기 때문에 일일이 다 베어 버리려면 시간도 걸릴 것이다.

"흙꾼이, 화돌이 소환!"

   위드는 직접 만든 정령들을 소환했다.

   친밀도는 최상이기에 마나의 한도만 된다면 무제한으로 정령들을 부릴 수 있다.

   정령을 창조한 자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

   흙꾼들은 주로 하급 정령이, 화돌이는 중급 정령들도 다수 일어났다.

   천장의 일부가 무너지고, 던전이 불바다가 되었다.

   아수라장!

   흙꾼이들은 모론 추격자들의 등에 업혔다.

"떨어져라!"

   모론 추격자들이 창을 휘둘러도 꿈쩍도 안 했다. 대지의 정령들답게 거의 무한에 가까운 생명을 가졌기 때문

  이다.

   그들은 무거운 무게로 짓눌러 모론 추격자들을 둔하게 만들었다.

   화돌이들은 모론 추격자들의 입으로 들어갔다.

   입을 벌릴 때마다 활활 뿜어지는 불길!

   위드가 달려갈 때마다 그 주변의 불길만 멀찌감치 물러 났다.

   위드는 불에 휩싸여 있는 모론 추격자들을 일체의 스킬 사용 없이 기본 검술로만 베었다.

   마나는 모아서 정령들을 불러 대규모 싸움을 하는 데 써야 했던 것이다.

   인간보다 빠른 드워프의 신체 치유력, 체력 회복 속도로 인해서 기본 검술과 간간이 사용해 주는 조각 검술로

  도 싸울 수 있었다.

   모론 추격자 무리를 해치울 때 헤겔과 셀시아, 르미, 벨라, 트위터가 근처까지 달려왔다. 쉬지 않고 온 덕분에

  거리가 좁혀진 것이다.

   위드가 한 파티에 속한 덕분에 그들도 경험치를 받았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모론 추격자들을 단 일격에 사냥한 동료와 함께함으로써 명성이 1 오릅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준보스급 몬스터, 모론 대장이 동료에 의해 참살당했습니다.』

   정보 창을 확인하는 게 두려울 정도로 빠른 경험치의 증가.

   헤겔을 제외한 레벨 200대들에게는 짜릿하면서도 꿈인지 생시인지 믿기지 않았다.

   위드는 그들이 다가올 무렵에는 다시 뛰고 있었다.

   붕대 감으며 뛰기, 명상을 위해 눈 감고 뛰기, 전투 중에도 생명력을 아끼기 위해 사용하는 방어 스킬 눈 질끈

  감기!

   맹인이 아닌 이상, 잠을 잘 때가 아니라면 눈은 항상 뜨는게 정상.

   눈을 수시로 감으면서 전투의 효율성을 올리고 있으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실제로 그런 전투법을 보고 있으면서도, 웬만큼 인간처럼 느껴져야 따라 할 것이 아닌가!

"쉬지를 않아."

"사람이 아닐 거야."

"드워프잖아."

   르미에 벨라, 트위터의 감탄을 들으며 헤겔은 화가 났다.

"진짜 미칠 노릇이네."

   어째서 상황이 이렇게 되었는지 도저히 납득이 안 갔다.

   상식!

   어릴 때부터 개념 없다는 소리는 자주 들으면서 자랐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상식은 있다.

   그의 상식에 따르면 머릿속만 혼란스러워졌다.

"직업이 조각사라면서......"

   헤겔은 불과 8시간 전에 흑사자 길드원들에게 했던 말들이 떠올랐다.

   흑사자 길드의 채팅 채널!

   헤겔은 1층의 크라마노임을 사냥한 후에 쉬는 동안 아는 사람들과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프로방스:헤겔, 너 지금 어디냐?

헤겔:아, 예. 전에 말씀드렸잖아요. 학교 친구들과 던전을 탐험 해야 된다고......

프로방스:아, 그게 오늘이었어?

헤겔:예. 데일 왕국의 프레인 영지에 있는 던전에 와 있어요. 놀라지 마세요. 형님들.

     미발견 던전을 제가 최초로 찾아냈습니다.

프로방스:정말이냐?

제크트:좀 놀라운데, 헤겔.

시엔:네가 벌써 이렇게 컸냐?

   흑사자 길드는 대규모였던 만큼 헤겔에게 알은척을 하는 사람도 많았다.

   미발견 던전을 찾아내는 것은 드문 일이고 또 영광스러운 일이었다.

시엔:어느 정도 수준인 던전인데?

헤겔:저렙들 던전이에요. 기대했는데 말이죠. 레벨 200대들이 와서 놀면 딱 좋을 정도죠. 뭐.

   헤겔은 근처에 있는 동료들이 듣지 못하도록 작게 속삭이고 있었다.

제크트:저렙들 무시하지 마라. 저렙들도 금방 큰다. 너도 얼마전까지는 레벨 200대였잖아.

헤겔:무시 안 해요. 그냥 저렙들이 노는 던전이란 뜻이죠.

프로방스:미발견 던전을 탐험하는 맛이 쏠쏠하겠군. 뭐가 나올지 몰라 긴장도 되고......

헤겔:아, 귀찮아요. 어차피 저렙 던전인데 뭐라도 있겠어요? 빨리 던전 탐험 끝내고 저도 길드

     사냥터로 돌아가고 싶어요.

   이렇게 불평을 하고 있을 때에, 묵직한 음성이 채팅방을 통해 전해졌다.

빈델:네 친구들은 강하냐?

   흑사자 길드의 서열 3위 안에 드는 드워프 전사 빈델이었다.

헤겔:아니요. 약하죠. 저보다 레벨이 높은 도둑이 1명 있긴 한데요, 그 녀석 빼면 별로 볼 것 없어요.

빈델:네 레벨이 지금 300이 넘지? 레벨 300이 넘는 도둑이라... 굉장한데.

   도둑은 성장시키기가 만만치 않은 직업이다.

   파티에 참여하면 근접 전투를 해야 되는데 취약한 방어력으로 인해 자주 죽었다. 혼자서 탐험을 할 때의 위험

  성은 파티 사냥과도 비할 바가 아니었다.

빈델:어떻게 성장시킨 도둑인데? 그리고 레벨은 얼마나 되지?

헤겔:그냥 300을 조금 넘는 정도예요. 성장은 그냥 파티 사냥을 위주로 했겠죠.

   헤겔은 나이드를 치켜세워 주고 싶지 않아서 대충 얼버무리고 말았다.

   전장의 꽃으로 일컬어지는 검사.

   다른 직업에 대한 멸시가 어느 정도 있었고, 본인도 나이드가 보통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으므로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빈델:도둑이 있다면 던전 탐험은 그나마 쉽겠군. 성직자가 없다고 앓는 소리를 하더니.

헤겔:그냥 그렇죠, 뭐. 전투는 거의 제가 도맡아서 하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아직 안 온 드워프가

             1명 있어요.

빈델:호오, 드워프라.

   빈델도 드워프였으므로 상당한 관심이 있는 기색이었다.

빈델:전사냐 아니면 워리어냐?

헤겔:아니요. 조각사예요.

빈델:조각사?

헤겔:네. 아는 형인데 하필이면 조각사라서...... 던전 탐험에는 그리 도움이 안 되겠지만 학교

     과제를 위해서 끼워 주긴 해야겠죠. 발목이나 적당히 잡았으면 좋겠는데 말이죠. 여기 일

     대충 끝내고 어서 길드 형들이랑 사냥 가고 싶네요.

빈델:그 조각사의 레벨은 높냐?

헤겔:그게... 몰라요. 물어본 적이 없네요. 관심이 없어서요. 근데 왜 물어보세요?

빈델:얼마 전에 대단한 드워프 조각사와 함께한 적이 있거든.

헤겔:조각품을 기똥차게 만들었나 보죠?

빈델:그것도 그렇지만... 부대를 지휘하는 능력과 카리스마가 보통이 아닌 조각사였지. 나도 그의

     지휘를 정신없이 따르다 보니 던전을 순식간에 뚫었더구나. 나뿐만 아니라 수십의 드워프들

     이 그의 통제력에 함께 이끌렸지.

헤겔:그런 조각사가 있다니 놀라운데요.

빈델:어디 그뿐이겠냐. 요리 실력도 뛰어나서, 그가 만들어 준 요리를 먹기만 하면 전투가 우스워

     질 정도였다. 잡다한 재료들도 그의 손을 거치고 나면 힘이 솟아나는 걸 느낄 수 있을 정도

     의 보양 요리가 되었으니까.

헤겔:조각사가 그 정도의 요리라니......

빈델:무기나 방어구 들이 상했을 때에 수리도 해 주니까 정말 편했지. 그 드워프가 수리해 주면

     손상된 내구력 한계도 회복되었거든.

헤겔:뭐요? 한계 내구력이 회복이 돼요? 그게 무슨 소리인데요. 그런 것도 있어요?

   헤겔은 내구력의 한계까지 회복시킬 수 있다는 사실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프로방스:빈델 형님, 내구력 한계가 회복이 된단 말입니까?

제크트:다 상한 무기나 방어구 들도 멀쩡한 상태로 되돌릴 수 있다고요?

   흑사자 길드원들도 모르는 사람들이 태반이었다.

   명문 길드답게 흑사자 길드에도 고레벨 유저들이 상당수였지만, 한계 내구력을 수리하는 것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 했다.

   애초에 무기나 방어구 들의 한계 내구력이 크게 줄어들 정도로 사냥을 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게다가 한계

  내구력을 수리해 준다는 대장장이를 만나 본 적도 없다.

   한계 내구력을 수리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중급 이상의 경지에 올라야 한다. 그 정도의 실력을 갖춘 장인이라면

  무기나 방어구를 만들어서 판매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큰 돈을 벌 수 있다. 돈벌이에 크게 도움도 되지 않고 번

  거롭기만 한 한계 내구력 수리를 해 주기 위해 나서는 경우는 없었던 것이다.

빈델:아무튼 그런 드워프 조각사도 있었다.

헤겔:에이, 형님! 베르사 대륙은 넓으니까 그런 드워프가 하나쯤 있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내가

     아는 형은 그런 드워프는 아닐 거예요.

   이렇게 길드원에게 호언장담을 했던 게 불과 8시간 전!

   헤겔은 망연자실했다.

"이건 빈델 형이 말한 경우보다 훨씬 더하잖아!"

   이런 일이 왜 하필 자신에게 벌어지는지 원망스러울 뿐이었다.

   넓은 지하 3층의 미로를 헤매면서 다양한 몬스터들을 사냥했다.

   던전 내로 들어가서는 위험한 함정들이 있었는데, 그런 장소마다 보스급 몬스터들이 움츠리고 있었던 것이다.

   위드와 나이드는 일부러 그런 함정들에 빠져서 보스급 몬스터들을 도륙했다.

   몬스터의 씨를 말려 버리는 사냥 방식.

   몬스터가 1마리라도 남아 있으면 뭔가 찝찝하고, 답답하고, 세수를 하면서도 이마를 안 씻은 것처럼 개운하지

  못하다.

   더구나 현재는 경험치가 2배로 적용되는 시점이 아닌가!

   보스급 몬스터들은 위드에게도 매우 짭짤한 경험치 덩어리였고, 아이템도 쏟아졌다.

   나이드는 함정들을 파괴하고, 던전을 안전하게 청소하면서 추가적인 명성과 스킬, 경험치 들을 얻었다.

   따라오는 이들도 경험치와 명성 그리고 다 줍지 못한 잡템들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면서 도둑 나이드는 던전 3층의 지도를 완성했다.

『-던전 크라마도 지하 3층의 지도를 최초로 작성하셨습니다.

   명성이 75 오릅니다.

   지도 제작 스킬의 숙련도가 향상됩니다.

   경험치가 증가했습니다.

   이어진 길의 모든 종점까지 확인을 했다는 뜻.

   던전 크라마도의 완벽한 점령이 끝난 셈이다.

"헥헥."

"이, 이 탐험이 이제야 끝이 났구나!"

   헤겔이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닷새에 걸친 던전 탐험!

   현실과 4배나 되는 시간 차이를 고려하더라도, 정오쯤에 캡슐방에 들어와서 거의 하루가 꼬박 지났다.

   현재 밖은 해가 중천에 떠오른 한낮이리라.

"정말 기나긴 하루였어."

   나이드의 말에 모두 공감을 할 수 있었다.

   사냥이 이렇게 무섭고 처절하게 느껴졌던 적이 없다. 스스로에 대한 믿음과 자신감도 생겼다.

   항상 그렇듯 안전하게, 생명력을 가득 채워서 하는 게 아니라 꼬리에 불붙은 듯이 몬스터들을 찾아다닌다.

   대부분의 전투는 위드가 도맡아서 했지만 다른 이들도 마나와 체력이 받쳐 줄 때마다 싸움에 참여했던 것이다.

'사냥이 재밌어.'

'이런 사냥을 또다시 해 볼 수 있을까.'

   무서우면서도, 살 떨리는 쾌감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헤겔이 다리를 두들겼다.

"모두 수고했어."

   트위터가 보조개를 보이며 생긋 웃었다.

"응, 너도. 던전 탐험도 끝났으니 집에 가서 푹 쉬어야겠어."

   밀린 잠부터 자려고 했다. 하지만 위드는 묵묵히 검을 들고 어딘가로 걸어가고 있었다.

"오빠, 어디 가요?"

"사냥해야지."

"더, 던전 탐험은 끝났어요."

"경험치 2배의 시간이 아직 끝나지 않았어."

"하지만 대낮인데요."

"학교에 안 가는 토요일이야."

"......"

   묘하게 흐르는 분위기에 벨라가 참견했다.

"하지만 오빠, 이런 식으로 하면 몸이 상해요."

"몸?"

"날밤 새웠으니 집에 가서 늦잠이라도 자 줘야 되잖아요. 밥도 먹어야 하고요."

"밥은 아까 먹었어. 잠도 잤고."

"언제요?"

"새벽에. 집에 가서 동생 밥 차려 주고 2시간이나 자고 왔어."

"......"

   던전 탐험을 하던 도중에 일행이 휴식 시간을 갖고 쉬고 있을 때 위드는 밥 먹고, 잠도 자고 왔다는 뜻!

   로열 로드를 장기간 하기 위해서 몸 관리는 필수였다.

"법학과가 주최하는 가면무도회에 오세요! 신입생들은 30% 할인된 가격에 모셔요."

"예쁜 누나들이 많은 미생물학과에서 노예팅합니다. 누나들보다 어린 동생들만 참여 가능해요."

"사회체육학과 레크리에이션 동호회 크루에서 차력 쇼를 보입니다."

"자! 날이면 날마다 오는 기회! 축제 기간 동안만 할 수 있는 맨손으로 물고기 잡기!"

   한국 대학교의 축제 날이 되었다.

   이현에게는 그렇게 싫은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결국 이날이 오고야 말았군.'

   평소에는 학교 수업을 마치면 바로 자유 시간이다. 얼마든지 로열 로드를 할 수 있다.

   잠을 조절하면서, 하루에 12시간 정도를 로열 로드에 투자했다. 다른 다크 게이머들보다는 적은 시간을 할 수밖

  에 없기에 더욱 치열하게 시간을 아껴서 써야 했다.

   레벨도 358까지 올려놓을 수 있었다.

   하지만 축제 기간에는 꼼짝도 할 수 없이 학교에 있어야만 하다니!

   이현에게는 감옥처럼 느껴졌다.

"입시 지옥이 별게 아니야. 정말 인간이란 끊임없이 구속 받으며 살 수밖에 없는 존재란 말인가?"

   존재에 대한 의문!

   이현이 일생에서 최초로 해 보는 철학적인 사고였다.

   다른 꼬마 아이들은 동네 강아지들과 함께 놀면서 감성을 키운다. 낮잠 자는 개들을 보며 동물들의 일상에 대

  하여 사색에 잠겨 보기도 한다.

   하지만 이현은 그런 삶을 살아오지 않았따.

   약육강식!

   만만한 개를 보면 된장부터 떠올린다.

   개와 된장. 라면과 계란의 관계처럼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연상의 과정.

   뼈다귀 몇 개를 던져 주면 꼬리 치며 다가오는 개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열 살의 이현!

'저 멍멍이는 육수가 잘 우러나오겠군.'

   모두가 즐거워하는 축제지만, 이현은 어서 끝나기만 바랄 뿐이었다.

"설거지 부대, 출동!"

   이현은 주점을 총괄하는 자리에 올랐다.

   동기들보다 나이도 있고, 주점을 준비할 때부터 능력을 발휘한 탓에 영향력이 커진 탓.

"알았어요!"

   고무장갑을 낀 학생들이 컵과 그릇 들을 닦았다.

   그릇 가게에서 임대해 온 물건들이라서 사용하기 전에 철저한 설거지는 기본.

"손님들은 언제부터 받을까요?"

"여학생들이 준비되는 10분 후부터!"

   서빙을 맡은 여학생들이 오면 바로 영업 개시였다.

   안주들을 만드는 사이에도 밖에서는 음악 소리, 폭죽 소리들이 들렸다.

   천막 주점의 외부에는 다수의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다. 타학교 학생들, 외부인들이 본교 학생들보다도 훨씬 더

  많았다.

   이윽고,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가볍게 화장을 한 여학생들이 나타났다.

   흰 면사포를 쓰고, 웨딩드레스를 입은 채로 나타난 여대생들!

   여대생들은 각자 친한 사람들을 향해 걸어갔다.

"멍하니 있지 말고 내 면사포 벗겨 줘!"

   남학생들은 면사포를 벗겨 주면서 왠지 설레었다.

   여대생들이 미리 일러두었다.

"별 의미는 없는 거야. 원래 남자가 벗겨 줘야 느낌이 나잖아."

"알아!"

   남학생들은 면사포를 뒤로 젖혔다.

"이렇게 보니까 달라 보인다."

"선머슴, 이렇게 보니까 우아해 보이는데."

"죽을래?"

   동기들끼리 격의 없이 농담을 나누기도 했다.

   여학생들의 웨딩드레스는 직접 만들어서, 그리 예쁘거나 디자인이 썩 훌륭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비슷하게 흉

  내는 내서, 어린 신부의 느낌이 조금은 나왔다.

   여학생들이 모두 나오고, 마지막에 들어간 서윤만이 나오지 않았다.

"......"

   주점에 대화가 끊겼다.

   주방에서 안주를 준비하던 학생들도, 테이블을 걸레로 닦고 있던 학생들도 말이 없어졌다.

   무언가를 기다리면서 탈의실로 시선이 잔뜩 몰려 있었던 탓이다.

   딸깍.

   탈의실의 문이 조심스럽게 열리고 서윤이 걸어 나왔다.

   그 순간 남자들은 넋을 놓았다.

   꿈속에서나 그리던 여인이 이곳에 있었다.

   이슬만, 그것도 8중 필터로 거르고 걸러서 마셔야만 유지 될 것처럼 고운 피부!

   서윤은 얼굴에 살짝 화장도 했다.

   남자들이 흔히 하는 착각이, 화장이 성형 수술인 줄 안다는 것이다.

   화장은 얼굴과 표정에 색을 더해 준다.

   서윤이 가볍게 한 화장은 그녀만의 아름다움이 더욱 느껴지게 만들었다.

   평소 때의 꾸미지 않은 상태에서도 극도로 예쁜 얼굴이 지금은 오랫동안 쳐다보기도 힘들었다.

   눈도, 코도, 입술도 너무나도 예쁜데, 그것들이 전체적으로 어우러져서 보여 주는 조화미.

   자연 발광의 절정이 어떤 것인지 느껴지게 만들 정도의 미모가 여기에 있었다. 숨이 멎고, 이대로 죽어도 여한

  이 없을 듯한 기분을 단지 얼굴만 보고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웨딩드레스의 얇은 원단은 몸매의 라인을 환상적인 자태로 자아냈다.

   서윤이 걸어올 때마다 꿈결처럼 느껴졌다.

   수수하게 다녀도 예쁘다는 걸 알고 있었음에도, 꾸민 후의 미모란 정신을 놓게 만들 지경이었던 것.

   남자들은 입안이 바짝 말랐다.

   수십 년을 물을 마시지 않은 사람이 물, 그것도 꿀물을 발견한 것 같은 감동!

   세기의 신비가 여기에 있었다.

   얇은 원단이 슬쩍슬쩍 비쳐 주는 다리에서부터 허리, 가슴, 쇄골로 이어지는 드레스의 라인이 완벽했다.

   서윤이 가지고 있는 마력 같은 아름다움.

   팔뚝조차도 야할 수 있는 그녀!

   면사포를 쓰고 있는 더없이 아름다운 얼굴이 수줍음으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서윤이 걸어올 때마다 드레스가 사륵사륵하는 소리를 냈다.

   그녀는 이현을 향해 고개를 숙인 채로 걸어왔다.

"여신이다."

"여신이야."

   주위에서 찬탄하는 소리들이 나왔다.

   여학생들이 부러움에 중얼거렸다.

"저 드레스, 세계적인 디자이너 마리 끌로앙의 작품이래."

"우... 진짜 너무 예쁜 드레스다."

   남학생들은 진심으로 공감했다.

"과연 세계적인 디자이너!"

"훌륭해. 훌륭해!"

   디자이너에 대한 무한한 존경심이 생겨나는 순간!

   서윤은 이현에게 가서 고개를 살짝 들었다. 맑은 그녀의 눈빛이 보인다.

   면사포를 벗겨 달라는 의미인 것을 누구라도 알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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