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달빛조각사 16권 : 1. 수배령 (50/520)

1. 수배령

엠비뉴 교단 신전 내부에는 암흑 기사들이 질서 정연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화려하기 짝이 없는 상징물들.

진열되어 있는 기사의 갑옷의 재질은 미스릴과 아다만티움이었고, 사용된 적이 없는지 보석처럼 빛났다.

바닥에는 최고급 양탄자가 깔려서 푹신했고, 천장에는 에메랄드와 사파이어를 깎아서 만든 샹들리에가 있다.

"의식이 실패했어? 그리고 의식에 필요한 도구들까지 강탈을 당해?"

엠비뉴 교단 11지파의 대신관 페이로드의 질책에 사제들과 암흑 기사들은 머리를 조아렸다.

"면목이 없습니다, 페이로드 님."

대신관 페이로드는 뚱뚱한 비만 체형에, 로브를 뒤집어쓴 탓에 얼굴은 안 보였다.

하지만 대신관의 후면에 있는 황금으로 만들어진 악신 엠비뉴의 동상은 유독 두드러지게 드러났다. 12개의 손에 서로 다른 무기를 하나씩 든 채 인간, 엘프, 드워프, 드래곤 등의 종족을 죽이는 형상이었다.

섬뜩함이 풍기는 황금 동상은 불길한 안개 같은 것에 슬며시 감싸여 있었다.

"모든 역량을 동원해서 우리의 행사를 방해한 자를 죽여라. 그리고 그가 가져간 마탈로스트 교단의 물건들을 반드시 회수하라."

"대신관님의 명에 따릅니다."

사제들과 암흑 기사들이 깊숙이 허리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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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링!

 - 엠비뉴 교단의 적대자!

   엠비뉴 교단은 가장 파괴적이고 비열한 악신을 신봉하는 무자비한 집단입니다.

   점령과 포교를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탓에 베르사에 있는 교단들과는 함 뼘의 땅과 한 모금의 물도 나누어 마실 수 없는 사이.

   엠비뉴 교단의 11지파에서는 그들의 의식을 방해한 자를 공적으로 선포하고 추격자들을 동원합니다.

   추격자들의 구성 : 중급 암흑 기사 10명.

     사제 3명.

     병사 100명.

 - 엠비뉴 교단에서 위드 님에게 수배령을 내렸습니다.

   추격자들이 남겨진 흔적을 쫓아오게 될 것입니다.

위드는 메시지 창과 함께, 엠비뉴 교단 내에서 일어난 일의 영상을 볼 수 있었다.

"추격자라... 귀찮아지겠군."

살인 등으로 악명이 심하게 높아지면 왕국에서 추격자들을 보내는 경우가 있다.

그런 추격자들은 상당히 재빠르게 흔적들을 쫓아왔다.

첫 번째 추격자들이 실패하더라도, 금세 두 번째 추격자들이 쫓아온다. 그다음 번의 추격자들은 더 방대한 인원에, 뛰어난 실력을 갖춘 이들로 선발된다.

추격자 무리로부터의 완벽한 도주는 사실상 불가능!

언젠가는 반드시 잡힌다.

이동속도가 빠르며 은신 스킬을 가지고 있는 도둑이나 암살자라고 해도 얼마나 오래 버티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추격의 횟수가 누적될수록 뛰어난 도둑이나 암살자 등도 포함되기 때문.

위드는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언젠가 이런 일이 벌어지리라 예상은 하고 있었지."

지금까지 아무 일도 안 생겼던 게 행운!

퀘스트를 해결하면서 원한 관계가 쌓일 만큼 쌓였으니 쫓긴다고 해도 놀랄 일은 아니다.

어쨋든 이곳의 퀘스트들을 완수하는 게 우선이었다. 보상이 굉장한 연계 퀘스트들이 쌓여 있었으니까.

위드의 곁에는 쓸모가 많은 빙룡과 불사조, 누렁이까지 있었다. 마탈로스트 교단의 수호 기사들은 통곡의 강 주변을 떠나지 못할뿐더러, 교단의 신전을 지켜야 하는 임무 때문에 퀘스트에 따라오지 못했다.

빙룡이 등장하자 불사조들은 날개를 늘어뜨리고 머리를 조아렸다.

바로 큰형님 대우!

누렁이도 온순한 한우답게 순종의 뜻을 드러내었다.

빙룡은 거드름을 피웠다.

"너희가 수고가 많다."

"아닙니다, 선배님. 다 선배님이 닦아 놓으신 길을 그냥 이용만 하고 있을 뿐입니다."

누렁이가 유난히 친근하게 굴었다.

"알고 있구나. 우리 때는 선배들의 말씀이라면 항상 귀를 기울여서 들었지."

"저희에게 세상을 살아가는 지헤를, 특히 못된 주인 밑에서 버텨 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려 주시지요."

빙룡은 선배 대우에 크게 만족해서 그들에게 생활에 꼭 필요한 정보들을 말해 줬다.

"아무리 배고플 때라도 밥은 신중하게 먹어야 된다. 절대 주인 있는 근처에서 먹지 마. 밥 많이 먹는다고 구박받는다. 사냥감들에게 나온 고기고 함부로 먹어서는 안 돼. 맛있고 싱싱한 고기는 일단 내다 팔아야 되거든."

누렁이와 불사조들은 이해하고 또 공감했다는 뜻으로 머리를 끄덕였다.

"결국 주인이 주는 밥만 먹으면서 살아야 되는군요? 맛있는 고기는 언제 먹을 수 있나요?"

"몰래 먹어야 돼. 야산이나 구덩이, 그런 장소에서 배를 채워야 된다. 주인은 항상 우리를 배고프게 만드는 재주가 있거든. 뭐. 배에 기름이 차면 게을러진다나? 음식은 가리지 말고 먹어 놔."

"과연 선배님이십니다."

"생활 속에서 배운 지혜지. 너희도 지나면 다 알게 될 테지만, 고생하지 말라고 미리 알려 주는 거야. 그리고 주인이랑 같이 사냥할 때 있지?"

"많이 있죠.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도 싶은데 우리를 늘 끌고 다니니까요."

"잡템들 조심해. 잡템들이 적게 나왔을 때는 신경이 예민해진다. 그런 날에는 눈에 안 띄는 게 좋고, 사냥도 열심히 하는 척해야 되거든."

"오오, 그런 거였군요!"

"무기나 방어구 나오면 엄청 기뻐한다. 5분 전까지만 해도 있는 대로 짜증을 부리다가도 방긋방긋 웃으니까. 그럴때는 가까이 다가가서 존재감을 각인시켜야 돼."

"왜요?"

"우리의 역할을 과시해야 되거든. 얼마나 잔소리가 많고 구박을 하는지......"

평화로운 생존을 위한 필수적인 정보들!

빙룡은 선배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위드는 마탈로스트 교단의 신물인 죽음의 상을 꺼냈다. 연계 퀘스트를 하기 위함이었다.

죽음의 상이 입을 열었다.

 - 지옥과 가까운 장소에서, 3개의 부족과 마탈로스트 교단은 약속했다. 그들을 위협하는 어떤 적과도 함께 싸우고자 하는 약속의 동맹이다.

   약속의 동맹을 일으키키 위해서는 동맹의 증표인 지팡이가 필요하다.

   지팡이를 가지고 가서 그들 부족을 설득하라.

   수배령을 피해서 최선을 다해 달아나야 하리라.

띠링!

 - 인도자들의 동맹(1)

   엠비뉴 교단에 반격하기 위해서는 130년 전에 맺었던 동맹이 필요하다. 하지만 현재는 동맹의 당사자들이 모두 죽은 후라서 후손을 설득하는 임무가 만만치는 않으리라.

   능숙한 타협가의 화술, 담대한 마음을 필요로 하며, 실패한다면 나무에 목이 내걸릴 수도 있다.

   큰 위험을 안고 떠나야 한다.

   동맹 부족을 만나기 전에 엠비뉴 교단에서 보낸 추격자들은 큰 우환거리가 되리라.

   이 대지에 있는 다른 부족들은 엠비뉴 교단의 지배에 거스르지 못하기에 그들의 눈도 피해야 한다. 동맹 3개의 부족을 제외하면 어떤 장소에서도 안심할 수 없다.

   인도자들의 동맹을 부활시키고 엠비뉴 교단의 요새를 점령하라.

   동맹을 이루어 내면 마탈로스트 교단의 성물인 약속의 지팡이를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연계 퀘스트, 마탈로스트 교단의 포로 구출, 엠비뉴 교단 11지파의 파멸, 마탈로스트 교단의 숙원과 이어짐.

   난이도 : S

   보상 : 막대한 명성과 카리스마

   퀘스트 제한 : 총 3단계 퀘스트.

모두 성공적으로 완수해야 함.

엠비뉴 교단의 요새를 점령하면 1단계 퀘스트 완료. 퀘스트의 진행 요건들을 충족시키면 2단계 퀘스트로 이어지게 됨.

추격자들에게 지팡이를 빼앗기면 실패.

퀘스트 실패 시에는 마탈로스트 교단과 관련된 모든 연계 퀘스트가 중단됨.

드디어 위드에게 등장한 S급 난이도의 퀘스트!

"올 데까지 왔구나."

위드는 눈을 질끈 감았다.

3개의 부족과 동맹을 이루어 내고 엠비뉴 교단의 요새를 파괴할 것!

단순히 그걸로 끝나지도 않는다.

이조차도 기나긴 퀘스트의 1차 목표일 뿐!

보상은 당연히 어마어마하겠지만 심적인 부담감도 느껴졌다.

'내가 보통의 조각사가 아니긴 하지만......'

조각사 한정 퀘스트에서 시작된 의뢰!

위드는 대륙을 일통한 이들에게만 부여된다는 수식어까지 있는 전설의 달빛 조각사다. 빙룡, 불사조, 누렁이 등의 부하까지 있으니 남들보다는 훨씬 유리한 입장이다.

엠비뉴 교단의 의식 방해 퀘스트만 하더라도 난이도가 높았다.

무려 A급.

난이도 B급 이상이 되면, 크든 작든 베르사 대륙에 영향을 미친다.

의식 방해 퀘스트는 A급의 난이도에서는 다소 쉬운 축에 드는 의뢰였지만, 마탈로스트 교단의 수호 기사들을 다루기 위해서는 통솔력과 지휘 능력을 필요로 했다.

미리 준비된 조각품들과 카리스마, 신속한 전술의 결정이 없었다면 꽤나 까다로울 수도 있었던 의뢰!

다른 어려운 의뢰들이었던 진혈의 뱀파이어족이나 불사의 군단과 싸울 때에는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던가.

진혈의 뱀파이어들을 상대할 때는 첫 사냥도 실패하고 맥없이 죽었다. 리치 샤이어와의 싸움에서도 죽었고, 본 드래곤의 브레스에도 말 그대로 녹았다. 저항할 시간적인 여유도 없이!

조각 검술, 조각품에 생명 부여, 조각 변신술, 조각 파괴술, 죽음을 거부할 수 있는 힘. 가지고 있는 모든 기술들을 활용하고 맷집, 인내력, 갈고닦은 검술 등을 활용해서 버텨 왔다.

그렇게 위험한 퀘스트들을 헤쳐 나온 위드였지만, 이번에는 난이도 S급의 의뢰가 나온 것이다.

조각품 군단을 몰고 다니는 강대한 조각사의 영주!

위드의 막연한 장래의 꿈이었지만, 만들어서 생명을 부여했던 조각품들의 일부는 목숨을 잃었다.

전설의 달빛 조각사라는 직업 그리고 조각품 부하들의 효과를 여기서도 무턱대고 기대할 수는 없었다.

난이도 S급의 의뢰는, 정말 혼신을 다해서 부딪치지 않는다면 영영 해결하지 못할 미해결 의뢰로 남게 될지도 모르니까.

남들은 S급 의뢰를 구경도 못하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축복이라고만 볼 수도 없었다.

위드는 눈을 감은 채로 생각에 잠겼다.

'여기서 포기한다면... 아마 명성과 신뢰도 등이 상당히 떨어지겠지.'

난이도가 높은 의뢰, 특히 연계 퀘스트들은 도중에 중단했을 때의 손실도 엄청나다. 풀기 어려운 저주를 받거나, 명성이나 공헌도 등 쌓아 온 소중한 자산을 잃을 수도 있다.

위드의 마음의 결정이 내려졌다.

'받아들이자.'

퀘스트를 포기해서 받는 피해나 실패해서 받는 피해나,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죽음을 거부할 수 있는 힘 때문에 최악의 경우에도 목숨을 두 번 잃어야 할 뿐!

최악의 상황까지도 각오한 채 부딪쳐 보기로 한 것이다.

약해지려는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던 건 자신감 때문이었다.

약하다면 강해질 때까지 도전한다.

옷 오백 벌의 단추를 꿰고, 밤을 새워서 인형 눈을 붙일 때!

성공을 위해서 노가다의 분량을 지금보다도 더 늘리면 되는 것이다.

"긴 시간이 지났다고 해도 친구란 믿을 수 있는 존재일 것입니다. 약속의 동맹은 반드시 지켜질 것입니다."

 - 퀘스트를 수락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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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도시 네할레스.

로자임 왕국과는 오래된 앙숙인 브렌트 왕국의 수도.

과일을 팔던 행상인들이 유저들을 향해 말했다.

"아가씨, 로자임 왕국 출신의 위드에 대해서 들어 보았나?"

"네? 위드요?"

소환사인 세이링은 대충 하는 말인 줄 알고 흘려들으려고 했다. 가끔 정보를 줄 때도 있지만 도움이 되는 건 흔치 않으므로!

"로자임 왕국 출신이라면... 모험가나 전사 출신의 유명한 위드에 대해서는 잘 몰는데, 혹시 조각사 위드 말씀이세요?"

피라미드를 만들었다는 대조각사 위드!

세이링은 동부 쪽을 관광하고 있었다. 로자임 왕국에도 먼저 들렀으므로 위드에 대해서 알았다.

"아가씨도 알고 있군. 그 위드가 이번에 굉장한 의뢰를 수행하고 있다고 해!"

"어떤 의뢰인데요? 혹시 다른 왕국의 국왕 폐하라도 만났나요?"

세이링과 행상인의 대화에 다른 유저들도 끼어들었다.

"무슨 일이야?"

"조각사 위드가 퀘스트를 한다는데......"

"그 유명한 조각사 위드?"

브렌트 왕국에서도, 로자임 왕국을 유명하게 만든 조각사 위드에 대해서는 대부분 알고 있었다.

"그 조각사 위드라면 이번에 모라타 백작이 되었잖아."

"무슨 퀘스트를 하는 거지?"

"쉿! 들어 보자."

세이링은 갑자기 모여든 유저들로 인하여 제법 당황했다.

위드가 이토록 인기가 있을 줄은 몰랐기 때문!

브렌트 왕국의 유저들은 로자임 왕국에 원정 가서 사냥을 하는 경우도 많았다. 피라미드의 효과는 정말 굉장한 도움이 되었다.

브렌트 왕국에서 조각사의 인기는 최고조였다.

로자임 왕국 출신의 유저들은 빛의 탑이 있는 북부의 모라타까지 먼 거리를 이동했다는 소문도 파다했다.

위드가 즐겨 먹었다는 풀죽과 보리 빵은 이미 명물로 진화!

해산물 풀죽, 버섯 풀죽, 닭고기 풀죽, 쇠고기 풀죽까지, 자매품도 등장했다.

보리 빵은 영양가를 높이고 고소하게 구워 내서 간식으로 인기 만점이었다.

요리에도 정통한 위드가 피라미드를 만드는 일꾼들에게 배급했다는 전설이 담겨 있는 음식들.

 ㅡㅡ 여러 아류들이 있지만 위드가 직접 만들어 주었던 피죽 그리고 잡초 죽만큼의 담백하고 고소한 맛은 없지.

위드의 죽을 먹어 본 이들로 인하여 그 이야기는 거의 민간 전설 수준으로 퍼져 있었다.

행상인은 곤란하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베르사 대륙의 암흑과 공포를 지배하는 엠비뉴 교단에 대해 알고 있는가?"

"네? 무슨 교단요?"

행상인의 입에서 나온 엠비뉴 교단이라는 말!

세이링을 포함하여 브렌트 왕국 유저들은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암흑과 공포를 지배하는 엠비뉴 교단. 고대의 음험한 무리가 여전히 활동하고 있다는군."

"엠비뉴 교단이라니, 처음 들어 봐요."

"입에 올리는 것조차도 부정한 이름이라서 웬만해선 꺼내지 않았지."

"조각사 위드와는 무슨 관계가 있나요?"

"위드가 엠비뉴 교단에 적대하고 있는 모양이야. 조각품의 기원을 추격하는 여행 중에 알게 된, 역사에만 남아 있는 교단을 위하여 엠비뉴 교단과 투쟁하고 있는 것 같던데. 추격자들이 몰려오는데도 베르사 대륙을 위한 동맹을 재건하려고 한다는군."

S급 난이도 퀘스트.

명성이 높은 위드가 받아들이면서, 베르사 대륙의 거의 모든 NPC들이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조각사 위드에 대해서 알고 있나? 그에 대해서 좀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어지는군."

"그 조각사가 로자임 출신이라는 게 정말 아쉽기만 해."

"모라타는 얼마나 아름다운 장소일까? 예술과 용기를 가지고 있는 조각사가 다스리는 지방이라니, 틀림없이 신비로운 모험이 있는 마을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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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소술사라고? 자네는 내게 의뢰를 받을 수 있을 정도로 실력이 뛰어나지 못하군."

자작 보르드만은 냉소를 지으며 거절했다.

셀시아는 무안함에 로브의 옷깃을 매만졌다.

"아무래도 저는 안 되나 봐요."

헤겔과 나이드, 셀시아, 트위터는 학교 과제를 위한 퀘스트를 끝내고 난 이후에도 곧잘 뭉쳐서 다녔다.

헤겔의 경우에는 흑사자 길드에서 이런저런 지원을 받을 수 있었지만 매번 도와 달라고 하기도 눈치가 보였다. 흑사자 길드는 높은 수준의 유저들만 모여서, 헤겔과 함께 사냥을 하고 퀘스트를 해결하러 다닐 만한 동료가 없었다.

친구들과 함께 다니면서 능력도 과시하고 여자들과도 친해지는 일석이조의 기회!

헤겔이 자신 있게 나섰다.

"일단 내가 의뢰를 받고 나면 공유해 줄게."

헤겔이 동료로서 셀시아를 받아들이면 된다.

물론 공규가 가능한 퀘스트여야 한다는 전제 조건은 있었지만.

"제가 도와 드리겠습니다."

보르드만은 코웃음을 쳤다.

"자네 주제에? 자네는 중간에 포기한 의뢰들이 많다지? 그래서 믿을 수 없는 존재라는 소문이 났어. 수르 왕국의 귀족들은 자네에게 어떤 의뢰도 맡기려고 하지 않을걸."

보르드만에게 당한 굴욕!

헤겔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조각사 위드처럼 재능이 넘치는 이라면 나의 고민을 해결해 줄 수 있을 텐데...... 그처럼 대단한 이는 바쁘고 해야 할 일도 많을 테니 내 의뢰까지 도와줄 수는 없겠지."

그런데 보르드만이 이렇게 한마디를 덧붙이는 것이었다.

"위드 형요?"

"조각사 위드에 대해 알고 있나? 그는 베르사 대륙의 모험가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될 만하지. 그처럼 뛰어난 모험가는 일찍이 없었어. 자신을 던져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을 도와주고 세상을 바로잡았지. 대륙에 불안정한 평화가 그나마 지속되고 있는 이유가 무엇 때문이겠는가. 조각사 위드가 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헤겔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일행에게는 악담을 퍼붓던 보르드만이 위드에게는 극찬을 아끼지 않고 있었다.

"그 위드가, 그 누구도 도전하지 못하던 엠비뉴 교단의 악행을 저지했다는군. 엠비뉴 교단의 추격대가 결성되었지만 절대 사로잡히지 않을 거라고 믿어."

헤겔은 한마디 해 주고 싶었다.

'제발 잡혀서 죽었으면 좋겠다고!'

보르드만의 찬사가 이어졌다.

"위드는 정말로 대륙의 평화를 지키는 훌륭한 조각사라고 할 수 있지. 조각술의 근원에 다가가는 긴 여정에서 엠비뉴 교단을 저지하고 있는 것 아닌가. 조각술에는 많은 비밀이 숨겨져 있는 모양이야."

흑사자 길드의 채팅 창도 폭주하고 있었다.

 - 프로방스 : 조각사 위드가 엄청난 퀘스트, 최고 난이도의 퀘스트에 도전하는 중인 모양입니다. 주민들이, 병사들이 모두 위드에 대해서 말하고 있어요.

 - 제크트 : 프로방스 형, 저도 듣고 있어요.

 - 프로방스 : 지금 어딘데?

 - 제크트 : 젠 왕국의 네리아라는 작은 마을요. NPC들이 위드에 대해서 이야기하네요.

 - 시엔 : 난 브리튼 연합 왕국인데, 여기에서도 위드에 대한 말들을 하고 있어.

 - 파인 : 대륙 서부의 시골 마을. 이곳에서도 위드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 시엔 : 파인 아저씨, 정말요?

흑사자 길드의 채팅 창에 따르면 베르사 대륙 전역의 NPC들이 위드에 대해 말한다고 한다.

 - 프로방스 : 이 난리가 일어나다니, 도대체 무슨 퀘스트야?

 - 제크트 : 끝내주는 퀘스트, 조각술과 관련된 퀘스트라는 점은 확실하겠죠?

 - 빈델 : 조각사라니...... 요즘은 정말 대단한 조각사를 많이 보게 되는군.

 - 프로방스 : 빈델 형, 어떤 의뢰일까요? 그리고 설마 혼자 하는 건 아니겠죠?

 - 빈델 : 나도 전혀 몰라. 과연 누구랑 같이 하는 것일까. 쿠르소에서 만난 조각사 드워프랑 좀 더 친해질 걸 그랬군. 그랬더라면 조각술에 대해서 좀 더 들을 수 있었을 텐데.

난이도 A급의 의뢰를 성공시키고 난이도 S급의 의뢰를 받아들인 파장은 컸다. 크라마도의 던전에서 보여 주었던 활약에 이어서 이제는 베르사 대륙 전체에 이름을 날리다니.

헤겔의 아픈 속을 전혀 모르는 듯이 셀시아가 말했다.

"어쩜 좋아. 위드 오빠 진짜 대단한 퀘스트 하고 있나 봐."

트위터도 흥분된 기색이 역력했다.

"내 친구들한테도 귓속말을 보내 봤는데, 베르사 대륙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대."

헤겔의 속이 심하게 쓰려 왔다.

이제 학교에서 위드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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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었어요? 위드라는 조각사가, 조각술로 엠비뉴 교단에 맞서고 있다는 사실을요."

유로키나 산맥에 있는 다크 엘프 아가씨는 사람이 가까이 다가오면 이렇게 속삭였다.

"엠비뉴 교단은 우리에게도 적!"

"모든 종족의 적이에요."

귀엽고 날씬한 다크 엘프들은 엠비뉴 교단에 대한 적개심을 감추지 않았다.

검치 들은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평소에는 묵버고 각이 진 것처럼 안 돌아가던 머리였지만 어떤 식으로 살아야 되는지, 위드에게서 훈련받았다.

'무조건 호응해 준다.'

'간도 쓸개도 다 내줄 것처럼.'

검삼백육십치가 고개를 끄덕였다.

"엠비뉴 교단은 저희가 없앨 겁니다. 위드가 나섰으니 우리에게도 적이죠."

"조각사 위드에 대해서 알고 있나요?"

"우리는 사혀제지간입니다. 가족과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죠."

"어쩌면! 너무 늠름해요!"

매력적인 다크 엘프들과의 친밀도 증가!

검치 들은 위드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강해지기 위한 노력도 갈수록 커지고 있었다.

검술 스킬의 마스터, 사냥을 통한 레벨 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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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렁아, 천천히 가자."

위드는 간단한 수레를 만들어서 주정뱅이 용병 스미스를 태웠다.

퀘스트의 난이도 자체로도 부담이 큰데, 설상가상으로 추격자들까지 따라붙는다고 한다.

'무턱대고 서둘러서 될 일이 아니지.'

위드는 냉청하게 상황을 분석하고 의도적으로 여유롭게 행동했다.

난이도 S급의 의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마음이 급해지면 안 된다. 시야가 좁아지면 바늘구멍보다 작은 기회조차도 사라지게 된다.

추격자들이 따라붙는 것도, 따지고 본다면 의미 있는 시간이고 기회다.

"인생이란 밑바닥까지 떨어지기가 무서울 뿐, 정작 밑바닥에서는 평화로운 법."

최악의 난이도를 가진 퀘스트에서 오히려 평온함을 느끼는 위드!

정찰과 주변 지역에 대한 정보 제공은 빙룡이 맡고 있었다.

"그런데 빙룡아."

"왜 부르는가, 주인."

빙룡과 불사조 오형제가 공중에서 호위를 한다.

어지간한 몬스터라면 겁을 집어먹고 도망칠 수밖에 없는 광경!

빙룡의 더 거대해진 몸집에, 불사조들이 지나간 자리에는 붉은 궤적이 남았다.

"너 지금까지 어디에서 뭘 하고 있었기에 여기까지 굴러 들어 왔냐?"

"그게......"

"앉아서 말해. 하늘 올려다보기 힘들다."

"알았다, 주인."

빙룡은 날개를 접고 지상에 안착했다.

얼음으로 만들어져 부족하던 몸!

조금만 더워도 얼음물을 질질 흘리던 빙룡이었다. 덩달아 능력이 약화되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는 일.

지금 날씨가 바람도 불고 시원하기는 했지만 빙룡은 완벽한 정상 컨디션 같았다.

몸집도 훨씬 더 커지고, 발휘할 수 있는 힘도 늘었다.

땅에서 걸음마를 할 때에는 무게 때문에 비틀거렸는데 지금은 날개를 활짝 펼치고 상체를 숙여서 고개를 가까이 내릴 수 있는 수준!

빙룡의 위엄 있게 잘 만들어진 주둥이가 쩍 벌어졌다. 흰수염이 탄력 있게 흔들렸다.

"그러니까... 내가 주인을 떠난 후였다."

모라타를 떠난 빙룡은 곧바로 북쪽으로 향했다.

차가운 장미 원정대가 세르비안의 구슬을 바쳐서 온도가 약간 서늘해지기도 했다.

빙룡에게는 긍정적인 일.

"크라라라라라라라라라!"

북부가 냉기로 가득했을 때처럼 최전성기의 힘은 아니었지만 일반 몬스터들은 빙룡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빙룡이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배가 볼록하게 튀어나올 정도로 깊은 호흡!

이윽고 주둥이가 찢어질 정도로 크게 벌어졌다.

쩌저저저저적!

대기를 뚫고 극한의 냉기가 지상으로 뿜어졌다.

빙룡의 아이스 브레스!

몬스터들은 집단으로 얼어붙었다.

땅과 나무들, 풀뿌리까지 얼어붙어서 수만 개로 조각나 은빛 가루처럼 뿌려졌다.

"굴복하라!"

드래곤 피어!

진짜 드래곤 피어에 비하면 조족지혈의 위력.

그러나 빙룡의 포효에 보통의 몬스터들은 고양이 앞의 쥐철머 꼼짝도 못했다.

"크헬헬헬."

빙룡의 몸은 성장을 하면서 더욱 커지고, 머리는 갈수록 영악해졌다.

비상의 몬스터 중에서 버거운 놈들은 공중에서만 공격했다. 못 이길 것 같으면 언제라도 날아서 도망치려는 시컨 속셈!

기세 졸게 싸움을 걸다가도 약간 위험해 보인다 싶으면 재빨리 도망쳤다.

자기보다 더 빨리 하늘을 날아다니는 고레벨 몬스터, 공중으로 마법 사용이 가능하여 위협이 될 만한 몬스터들은 애초에 건드리지도 않았다.

지상에 내려앉아서, 공중 몬스터들이 지나갈 때까지 참는 비겁함!

추운 지방에 가서는 완전히 빙룡의 세상이었다.

몬스터들을 사냥하면서 빠르게 성장했다.

위드나 인간 유저들은 시간에 한계가 있다. 아무리 많은 시간을 로열 로드에 투자하더라도, 잠도 자야 되고 식사도 해야 한다.

하지만 로열 로드 속에서 살아가는 빙룡에게는 그런 제한이 없었으므로 순전히 사냥만 하며 성장했다.

죽지만 않는다면 그 어떤 유저보다도 빨리 강해지는 게 생명이 부여된 조각품들의 특징이었다.

"근데 왜 북부가 아니라 여기에 와 있는 건데?"

위드의 말에 빙룡은 차마 솔직한 대답을 못 하고 있었다.

"너 분명히 뭔가 이상한 짓 하려고 했지?"

"......"

"맞고 말할래? 말하고 맞을래?"

빙룡의 어쩔 수 없는 고백이 이어졌다.

"실은 나도 레어를 만들어 보고 싶었다."

진짜 드래곤들이 하는 행동은 다 따라 하고 싶었던 빙룡.

레벨이 올라가고 지성이 높아지면서 진짜 드래곤과 행동이 비슷해지는 중이었다.

"지역들을 물색하던 도중에, 걸어서는 접근하기 힘든 빙산 아래의 큰 동굴을 발견했다. 그 안에 있는 정말 오래된 몬스터를 사냥했더니 여기로 오게 되었다."

"몬스터 사냥?"

"그놈이 죽을 때 공간의 균열 같은 게 생겨서 이렇게 된 거지."

"근데 왜 아직도 여기에 있어? 설마 돌아가는 법을 모르는 거야?"

"......"

빙룡이 고개를 돌렸다. 말없이 날개를 다듬는 모양새를 보면 영락없는 낙오자의 행색!

위드가 빙룡과 대화를 하면서 여유롭게 노닥거리고 있자, 주정뱅이 스미스는 애가 타는 모습이었다. 그 좋다던 술도 마시지 않는 걸 보면 지금이 위기 상황임을 확실히 인지하고 있었다.

"정신이 있는 건가?"

"예?"

"엠비뉴 교단의 추격자들이 쫓아오고 있다면서! 빨리 도망쳐야지 여기서 시간을 보내면 어떻게 하나."

추격자들이 온다면 당연히 꽁지가 빠지게 도망쳐야 하는 게 수배자의 의무!

하지만 위드의 행동은 그런 것과는 거리가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었다. 누렁이를 타고 달리기는 하지만 시간을 아끼려는 차원이었을 뿐, 조급한 기색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누렁이조차도 초지에 이르면 한가롭게 풀을 뜯어 먹었다.

도살장에 끌려갈 때에도 느릿느릿 움직이는 소의 성격!

위드는 재촉하지 않았다.

"서둘러서 될 일이 아닙니다."

"추격자들이 오기 전에 조금이라도 더 이동해야 되지 않겠나."

"왜 그래야 되는데요?"

위드는 오히려 반문을 했다.

사냥과 퀘스트에서는 일체의 계획을 세워 철두철미하게 움직이던 위드였지만, 지금은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내가 도와줘야겠군."

화가 난 듯 스미스가 수레에서 내렸다.

전직 용병답게 남겨진 흔적들을 지우고 교란시켜서, 추격자들이 따라오는 데 더 많은 시간이 들게 했다.

"동쪽으로 가세, 지형을 살피니 동쪽에 냇물이 있을 거야. 냇물을 따라서 움직이면 발자국과 냄새를 상당히 줄일 수 있어."

여유가 넘치던 전직 용병 스미스. 그러나 퀘스트가 진행되고 본인의 마음이 다급해지자 자발적으로 나서서 길 찾기, 음식 찾기, 흔적 지우기 등 다양한 경험으로 추격자들과의 거리를 벌리는 데 도움을 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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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비뉴 교단의 신전을 나온 추격자들!

암흑 기사 10명, 사제 3명, 병사 100명으로 구성된 무리였다.

"그들이 갈 곳은 정해져 있다. 지팡이를 찾은 이상, 마탈로스트 교단이 맺은 동맹을 부활시키려 할 것이다."

추격자들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평야를 내달렸다.

암흑 기사들은 말을 타고 있었지만, 사제들과 병사들은 강인한 체력으로 내달렸다.

휴식 시간도 없이 움직이는 추격자 무리!

체력이 떨어지면 사제들이 회복 마법과 축복을 걸어 주었다.

위드와 추격자들은 불과 하루 거리를 떨어져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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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렁아."

음메에에에!

"배고프지? 밥 먹자."

음모오오오오오오.

위드는 넓은 초지가 나올 때마다 누렁이가 풀을 뜯어 먹을 수 있도록 충분한 여유와 휴식을 가졌다.

"과식하지 말고 꼭꼭 씹어 먹어."

누렁이가 고마움에 머리를 비빌 정도의 친절함!

누가 본다면 정말 소를 사랑하는 주인이라는 착각이 들 정도의 배려!

그러나 위드의 눈은 냉혹하게 빛나고 있었다.

'살이 포동포동 오르고 있군.'

추격자들과의 거리는 이런 와중에도 빠르게 좁아졌다.

누렁이 위에서 한가하게 조각품마저 깎았으니, 추격자들은 더 빨리 다가왔다.

마탈로스트 교단의 가장 가까운 동맹 부족은 이틀 거리에 있었다.

심하게 여유 부리면서 평소보다 더 느리게 이동한 탓에, 하루 반나절 만에 추격자들에게 따라잡혔다. 주정뱅이 용병 스미스가 안간힘을 다했지만 지연시키는 시간이 그리 길지는 못했던 것이다.

저 멀리 추격자들의 흙먼지를 보면서도 위드는 놀라지 않았다.

"이제야 왔군. 기다리는 것도 지루했다."

위드가 빙룡과 불사조들을 불렀다.

"얘들아."

"말하라. 주인."

"쓸어버려!"

"알겠다. 나 혼자서도 충분하다."

빙룡이 공중으로 치솟았다.

날갯짓을 할 때마다 지상과 직각으로 높이높이 솟구쳤다.

빙룡의 몸이 손바닥 크기로 작게 보일 때였다.

배가 볼록하게 튀어나오더니 순백의 브레스가 추격자들이 있는 방향으로 쏘아졌다.

브레스는 유성이 날아간 것처럼 긴 꼬리를 남기며 추격자들이 있는 장소에 작렬했다.

땅과 추격자들을 한꺼번에 얼려 버리는 위력!

암흑 기사들은 말을 버리고 다른 곳으로 몸을 날린 덕에 겨우 목숨은 건졌다. 하지만 신체의 일부가 얼어붙어 있었다.

싸울 의지조차도 잃어버리고 사시나무 떨듯이 하는 암흑 기사들!

빙룡이 그들이 있는 곳으로 날아가서 짓밟았다.

콰지지직!

대번에 추격자들을 전멸시켜 버린 빙룡!

빙룡은 다시금 숨을 크게 들이마시더니 온 사방을 돌아보며 포효했다.

마치 공룡 시대에 제왕이었던 티라노사우루스가 전투에서 승리하고 포효하던 것처럼.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사방으로 퍼지는 그 울음소리.

연약하고 소심하고 힘없던 빙룡의 레벨이 446을 넘은 후였다.

성장한 빙룡이 힘자랑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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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MC미디어의 프로그램 '위드'.

뱀파이어 땅에서의 모험을 방송한 이후로 한동안 쉬고 있었다.

ㅡ 위드의 뜻이 뭐예요?

ㅡ 요즘은 방송 안 하나요?

홈페이지 게시판에서는 가뭄에 콩 나듯이 질문들이 올라왔다.

프로그램 위드 자체가 시청률이 저조했던 방송이기 때문.

홈페이지 관리자 오연실은 친절하게 답변들을 달아 주었다.

ㅡ 위드의 뜻은 비밀입니다. 시청자들과 함께할 수 있는 방송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향후 방송 일정에 대해서는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방송국 내부 일정에 따라서 조정될 예정이에요.

관리자의 글을 본 시청자들은 확신했다.

'이 프로그램, 조만간 폐지되겠구나. 종방연도 안하고 벌써 끝났을지도......'

프로그램 위드는 이처럼 시청자들로부터도 서서히 잊혀가고 있었다.

하지만 KMC미디어의 최고위층은 프로그램 위드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 않고 있었다. 장비와 기술진, PD, 작가, 진행자 들이 소집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조각사 위드가 엄청난 퀘스트를 한다는 소문이 베르사 대륙 전역으로 퍼졌다.

즉시 KMC미디어의 방송 회의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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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사 대륙의 역사서들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엠비뉴 교단의 실체에 대해서는 어디에도 나와 있지 않았습니다."

"교단 내부에 12개 지파가 있고, 이들을 통솔하는 총본영이 따로 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유저들의 동향은 어떤가요?"

"핵폭탄이 터진 것 같습니다. 어느 마을에서나 엠비뉴 교단과 조각사 위드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베르사 대륙의 주민들이 엠비뉴 교단에 대한 말을 그치지 않는 이상, 가장 큰 화제의 중심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국장이 직접 주재하는 회의였다.

이현의 캡슐과 연결된 회선을 통해 들어온 영상을 보고 간단한 분석까지 마친 후였다.

"불사의 군단, 팔랑카 전투로 이어졌던 위드의 활약을 다시 볼 수 있는 기회로군요."

국장부터가 위드의 강력한 팬이었다.

방송을 떠나서, 위드의 모험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흥분되는 사건!

강부장이 손을 들어 발언권을 얻고 마이크에 얼굴을 가까이 댔다.

"존경하옵는 국장님 그리고 동료 여러분, 일이 그리 단순하지는 않습니다."

"무슨 문제가 있지요, 강 부장?"

"네, 국장님. 우선은 퀘스트 난이도를 살피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난이도 S급의 퀘스트! 성공한 사람이 1명도 없지 않습니까? 소문의 파급 정도까지 고려해 본다면 보통 퀘스트가 아닙니다. 이목이 집중되는 효과는 있겠지만, 시청자들에게 실망을 안겨 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위드의 퀘스트예요. 그는 난이도 A급의 의뢰도 최초로 해결한 전례가 있지 않나요?"

"맞습니다. 일단은 그렇기는 합니다만......"

강 부장은 손수건을 꺼내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월급쟁이로서 국장의 말에 태클을 걸어야 하는 압박감!

절체절명의 위기에 셔츠가 흥건히 젖고 있었지만 할 말은 해야 했다.

"위드가 했던 퀘스트들을 엄밀히 따져 볼 필요가 있습니다. 불사의 군단 퀘스트 등은 난이도가 A급이었지만 오크와 다크 엘프 등의 조력군이 있었습니다."

국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크 카리취가 되어서 벌였던 싸움이 인상적이라서 아직도 잊히지 않았다. 불사의 군단 방송편은 아직도 다운로드 횟수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계속해 보세요."

"네. 이런 다른 세력들을 지휘하는 큰 전투에서 위드는 조각사로서는 터무니없을 정도로 높은 통솔력과 카리스마, 급변하는 전황에서의 순간적인 판단력과, 전투 내내 작은 부분까지도 놓치지 않는 세밀함과 집중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강 부장은 위드에 대한 칭찬을 철저하게 했다.

국장이 팬이었으니 방송국 내에서 위드에 대한 비판은 금물!

"싸움만 할 줄 아는 유저들에게 동일한 조건을 주었다면, 이종족인 오크와 다크 엘프에 묻혀 졸전을 펼치다가 패배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레벨이 높더라도 불사의 군단을 막지 못했을 것입니다. 위드의 장점은 대단위 전투에 있습니다."

"지휘 능력이야말로 남들이 따라오기 어려운 위드만의 강점이지."

"예. 국장님 말씀 그대로입니다. 위드는 이런 조력군이 있는 퀘스트에 굉장한 강점을 가집니다. 다른 난이도 A급의 퀘스트의 예를 봐도 그렇습니다. 니플하임 제국 황실의 명예에 관련된 의뢰, 본 드래곤이 나왔던 의뢰를 해결할 때에는 얼마나 고생을 했습니까?"

국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강 부장이 하려는 말을 이해했기 때문이다.

춥고 황량한 북부를 횡단하면서 갖은 고생을 다 하고, 와이번을 타고 천신만고 끝에 본 드래곤을 사냥했다.

"강 부장의 생각은 위드가 이번 의뢰를 실패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거로군요."

"네. 이번에도 조력군이 있다고는 하지만, 혼자서 해내기는 버거우리라 봅니다. 난이도 A급 정도의 의뢰라면 이제 내성도 생기고, 그가 만든 조각품들에, 스스로의 실력도 향상되어서 끝낼 수 있겠습니다만 난이도 S급의 의뢰는 무리라는 판단입니다."

난이도 A급 의뢰의 무게는 여전이 대단했다.

경쟁사인 CTS미디어 측에서 숲의 대형 골렘 퇴치와 관련된 A급 난이도 의뢰를 방송하고 순간 시청률이 7%가 되었다. 게임 방송 시청률만을 놓고 본다면 60%가 넘는 점유율이었다.

"그리고... 이번 퀘스트를 방송하다 보면 위드의 정체가 드러날 수도 있습니다."

"정체요?"

"전신 위드가 사실은 조각사 위드와 동일인이라는 사실을 감추기 상당히 어려울 것입니다."

"흠, 그런 문제가 있었군요."

"방송을 진행하다 보면 언제까지 숨길 수 있는 것도 아니겠지만, 위험성을 감수하고 방송을 한다면 잃는 게 참 많을 겁니다. 그래서 아직은 조금 이르다는 판단입니다."

국장과 다른 연출자들의 얼굴이 침중해졌다.

모든 걸 내걸고 싸워도 감당하기 버거운 의뢰였다. 가지고 있는 실력까지 숨길 수는 없다.

"난이도 S급의 의뢰를 방송할 수 있는 기회였는데 안타깝군요."

국장의 말대로 회의의 흐름은 방송 불가로 모아지고 있었다.

따르릉!

그때 강 부장의 테이블 위에 있는 전화가 울렸다.

강 부장은 잠깐 머뭇거리다가 전화기의 버튼을 눌렀다.

"지금은 회의 중인데... 무슨 일이죠?"

그러자 비서실 직원의 음성이 스피커폰으로 들려왔다.

<-죄송합니다. 지금 강 부장님을 찾는 전화가 와 있어서요.>

"누구의 전화인데요?"

<-이현이라는 분의 전화입니다.>

"이현? 이현이라면......"

강 부장의 얼굴에 놀람이 스쳤다. 그리고 국장과 다른 사람들을 향해 설명했다.

"이현은 위드 캐릭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의 본명입니다."

"그래요? 그럼 어서 통화해 보세요."

"그럼 스피커폰으로 받겠습니다."

잠시 후, 비서실에서 회의실로 이현의 통화가 연결됐다.

<-강 부장님, 안녕하세요.>

"아이구, 제가 먼저 전화를 드렸어야 되는데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그보다 입금된 돈 잘 받았습니다.>

팔랑카 전투의 출연료가 은행 계좌로 입금되었다.

시청률에 따라 인센티브도 주어지고, 다운로드될 때마다 수익금까지 얹혀 사실상 상당한 금액!

"당연히 보내 드려야 되는 건데요."

<-후후후.>

이현의 흡족한 듯한 웃음소리!

<-그보다 질문을 드릴 게 있는데요, 제가 최근에 진행하고 있는 퀘스트의 방송 문제 때문에 연락을 드렸습니다. 어떻게 되고 있나요?>

"그게... 정말 결정하기 어려운 부분입니다."

강 부장은 차근차근 설명했다.

난이도 S급의 의뢰에, 이목까지 집중시켰으니 방송사로서는 당연히 방송을 하고 싶다. 이처럼 간절하게, 매우 애타는 심정을 호소하면서 곤란한 입장도 전달했다.

"그래서 방송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회의 중이었습니다."

강 부장의 애절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현의 대답은 편안하기 짝이 없었다.

<-방송을 원하시면 하시죠.>

"네?"

<-방송해야 시청률이 오르지 않나요? 시청률이 올라야 광고가 붙죠.>

"그야 그렇습니다만 문제점들이......"

<-필요한 프로그램이 있다면 방송을 해야만 합니다. 그것이야말로 방송국과 시청자를 위하는 길이며 기업의 홍보를 위한 마케팅의 장이 열리는 거 아니겠습니까?>

방송국에서 잔뼈가 굵은 강 부장에게 방송의 필요성을 설명하는 이현이었다.

<-시청자들을 생각해 보세요. 시청자들이 원하는 게 뭡니까? 재미와 궁금증 해결! 그리고 함께 즐기자는 거 아닙니까?>

"......"

<-방송국이 어떻게 시청자들의 요구를 간과하고 있을 수 있습니까? 이래도 되는 겁니까? 시청자들을 존중한다면 신속한 보도와 정보 전달을 가장 우선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방송기자협회의 회식 자리에서나 나올 법한 강연!

<-게시판을 보아하니, 어떤 퀘스트인지 방송을 해 달라는 시청자들의 글들도 많이 있던데요.>

물론 방송국의 시청자 게시판에는 퀘스트를 방송해 달라는 글들이 많이 있었다. KMC미디어뿐만 아니라 CTS미디어나 타 방송국에도 시청자들의 의견이 쇄도하고 있다.

강 부장은 우려를 담아 해명했다.

"방송국의 입장은 물론 프로그램을 편성하고 싶습니다만, 이현 님에게 어떤 불리한 일이라도 생길까 걱정이 되어서요."

<-세상에 거저먹는 게 어디 있나요?>

"......"

공짜로 주어지는 돈은 없다.

이현은 어릴 때부터 그 사실을 깨치고 있었다.

"그래도 의뢰의 난이도도 너무 높고요."

<-최선을 다해 봐야죠.>

"편집 과정에서 노력은 해 보겠지만 전신 위드라는 사실을 완전히 숨기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방송을 해도 되겠습니까?"

강 부장이나 KMC미디어에서는 이현과의 끈을 놓고 싶지 않았다.

전신 위드라는 명성과, 모험의 주인공!

그를 위해서 방송을 보류하거나 취소하려고 했던 것이다.

<-네.>

이현의 대답은 단호했다. 하지만 금세 숨 막히듯 떨리는 음성으로 물었다.

<-저기, 그런데... 흠.>

"말씀하세요."

<-이번에도 출연료는 인센티브가 있는 거겠죠? 계약 조건상으로는 인센티브가 쭉 있었는데요.>

"......"

오직 이 부분만이 두려울 뿐!

약속어음이나 쿠폰, 떨어질지 오를지 모를 주식 따위는 믿지 않는다. 철저히 제 날짜에 현금을 입금해 주는 KMC미디어에 대한 신뢰가 가득한 이현이었던 것이다.

'역시 이 방송사는 믿을 만해. 국민들의 신뢰를 먹고 사는 훌륭한 방송사야.'

이현의 전화가 끊어지고 난 후에, 회의실의 내부 분위기는 급변했다.

"해 볼까요?"

"해 봅시다. 본인이 원하고... 또 시청자가 바라는 일 아니겠습니까?"

"현 부장, 예상 시청률은?"

"네, 국장님. 방송을 하게 되면 시청률은 상당하리라 예상합니다. 게임 방송을 거의 보지 않는 일반인까지 끌어들일 수 있어 최소 17%는 자신합니다."

"광고가 매진되겠군요?"

"물론입니다."

긍정적인 마인드의 확산!

국장이 이번에는 강 부장을 향해 물었다.

"퀘스트 난이도가 엄청난데 해낼 수 있을까요?"

"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전신이라는 닉네임을 가지고 있는 위드 아닙니까? 어떤 방법이든 동원할 겁니다. 성공하든 실패하든 무언가를 만들어 내겠지요."

항상 의외의 결과를, 그것도 예상치 못한 결과를 만들어 냈던 전신 위드.

무난한 싸움을 한 적이 없다.

평소에는 마법의 대륙 시절만큼의 절대적인 위용이나 카리스마를 보여 주지 못했다. 짠돌이, 노가다 인간, 요리사, 조각사, 대장장이, 재봉사, 사기꾼의 경계를 자유롭게 오간다.

하지만 전투가 벌어졌을 때, 오크 카리취와 근원의 스켈레톤의 모습이었을 시절에는 그가 누구라는 사실을 시청자에게 충분히 각인시켰다.

방송국의 신뢰도 절대적이었다.

너무나도 큰 명성을 가지고 있었기에, 거기에 해가 될지도 몰라서 방송을 주저했을 뿐이다.

전신 위드에 대한 방송을 망설이는 방송국 관계자는 없으리라.

마침내 국장이 결단을 내렸다.

"프로그램 준비하세요. 최고의 스태프들로 구성해서 바로 작업 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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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비뉴 교단의 사제들은 동료들의 죽음을 감지할 수 있었다.

교단에서부터 다시 추격자 무리가 결성되었다.

"우리의 의식을 방해한 자를 척살하라!"

암흑 기사 20.

사제 5.

병사 300으로 이루어진 추격자들!

암흑 기사들은 준마를 타고 있었고, 병사들과 사제들은 마차에 탔다.

기동력을 향상시킨 그들이 다시 위드를 추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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