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달빛조각사 16권 : 4. 무적의 병법서 (53/520)

4. 무적의 병법서

성벽을 무너뜨리기 위해 위드는 고뇌에 빠졌다.

"성벽이 있는 한 요새를 함락시키기란 요원할 수밖에 없을 거야."

대장장이로서 공성 무기를 제작할 수는 있다. 하지만 아직은 그 숙련도가 심하게 낮았다.

"쓸 만한 공성 무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얼마나 만들어 봐야 되는지도 모르겠고......"

명검을 만들 수 있을 정도의 무기 제작 숙련도가 필요하다면 고된 과정만 몇 개월! 재료의 수급도 문제이고, 동맹 부족들이 다시 부족으로 돌아가려고 할지도 모른다.

"하기야 성벽을 무너뜨린다고 해도 엠비뉴 교단의 기사나 사제 들과 싸워서 이길 수 있다는 자신도 딱히 없는 상태이긴 하지."

위드의 마음이 오히려 편해졌다.

공성 무기 제작으로는 해답이 나올 수가 없는 상태였으니까, 그쪽으로는 완전히 포기한 것이다.

"정상적인 공성전으로는 안 돼. 답이 없을 수밖에 없어."

높고 두꺼운 성벽에, 방어 준비가 잘 갖추어진 요새는 공격할 엄두도 안 난다.

동맹 부족들은 상대보다 숫자도 적고, 집단 전투에 유리하지도 않다. 개개인이 최대로 활약할 수 있는 것은 난전이나 사냥에서일 뿐.

위드가 대장장이에 재봉 스킬을 이용해서 약간 손을 봤다고 하나, 동맹 부족들의 근본부터 빈약한 갑옷으로는 성벽을 오르기도 전에 집중 공격을 당해 대부분이 죽으리라.

"스미스의 제안을 받아들여서 다른 사람을 1명 데려올 걸 그랬나?"

그러나 위드는 고개를 저었다.

이미 뒤늦은 후회였고 돌이킬 수도 없는 상황.

페일이나 제피, 검치가 왔다고 해도 상황이 크게 바뀔 것 같지는 않았다. 직접 겪어 본 바로는 퀘스트를 성공하려면 최소한 레벨이 500대 중반은 되는 전투 직업이어야 엄두라도 내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검기나 파괴력 높은 스킬로 성문을 단번에 파괴하고, 엠비뉴 교단의 사제들을 기습으로 제압할 수 있는 무력!

기사로서 절정의 통솔력을 발휘하여 동맹 부족들을 지휘할 수도 있다. 모여 있어도 오합지졸에 불과한 병력이지만, 통솔력과 카리스마로 동맹 부족들이 가진 한계를 넘어 싸우게 만든다. 동맹 부족들이 큰 피해를 입더라도 잠재력을 최대한 이끌어 내서 활용하고 빈틈을 노려야 한다.

베르사 대륙의 역사에 남을 만한 위대한 승리가 될 수 있으리라.

위드는 스스로의 지휘 능력을 그렇게 높게 평가하지는 않았다.

"난 이길 수 있는 전쟁을 이겼을 뿐이야."

동맹 부족들과 함께 승산이 희박한 싸움을 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병력의 질과 양, 지형, 무장 상태를 모두 극복하기란 말처럼 쉬운 게 아닌 것이다.

조각사의 장점인 생명 부여에도 한계가 있다.

조각 생명체가 100마리쯤 있다면 해볼 맛이 날 것이다. 승산이 보일 것도 같았다. 하지만 그러면 위드의 레벨이 적어도 160개는 감소한다.

"퀘스트를 성공하더라도 남는 게 하나도 없을 거야."

기껏 생명을 부여한 조각품들이 공성전 도중에 무참히 죽어 나가리라.

퀘스트는 성공했는데 정작 절반 이상의 조각품들이 죽어 버리면 손해 막심!

레벨도 다시 200 이하의 초보부터 시작해야 한다. 퀘스트를 성공해도 남는 게 없다.

"이런 걸 두고 손해 보는 장사라고 하지."

위드는 기본으로 돌아가서 다시 계획을 세우기로 했다.

전투란 시작하기 이전에 많은 변수들을 따지고, 아군에게 유리한 전장을 택하여 이끌어야 된다.

위드는 일단 휴식을 취하기 위해서 오랜만에 로그아웃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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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도서관인가?"

이현은 한국 대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처음으로 도서관을 찾았다. 대학교 도서관에는 만화책이 없었던 것이다.

"어릴 때부터의 꿈이었는데."

만화책을 보고, 배가 고프면 라면을 끓여 먹는다.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에 바라 마지않던 행복한 상상들.

신문을 돌리면서도 매일 연재되는 만화는 꼬박꼬박 보는 독자이기도 했다.

"도서관에 만화책이 없다니 이놈의 학교는 정말 썩었군!"

이현은 거침없이 학교의 도서관 정책에 대해서 비판했다.

다른 도서관 중에는 만화책을 소장하고 있는 곳도 많다. 하지만 한국 대학교에서는 아직 만화책을 들여놓지 않고 있다.

학교에서 마련해 놓은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지급되는 후한 장학금, 유학 혜택, 넓은 첨단 강의실과 연구 설비 등은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다.

"만화책도 없는 후진 학교 같으니. 썩었군, 썩었어. 그 많은 등록금은 다 어디다 쓰는 거야?"

소설책이나 경제 서적, 논문, 역사서, 예술에 대한 책을 비롯하여 장서 수는 굉장히 많았다. 건물 한 동이 통째로 도서관이었으니까.

"안녕하세요, 오빠."

"형 왔어요?"

가상현실학과의 동기들이 이현을 알아보고 작은 목소리로 인사를 했다. 도서관의 스터디룸에 삼삼오오 모여서 공부를 하는 모양이었다.

"아, 그래."

이현은 가볍게 고개만 끄덕였다.

대학교를 다니면서 가장 중요하게 조심해야 할 부분이다.

'절대 나보다 어린 이와 친해지지 말 것.'

선배가 되면 후배들을 강도 보듯이 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철면피처럼 밥을 사 달라고 쫓아다니니까!

이현의 경우에는 동기들보다 나이가 많아서 다른 학생들이 몇 번 밥을 사 달라고 한 적이 있었다.

"건강을 생각해야지. 난 집에서 도시락을 싸서 다니거든."

얼벼게 넘긴 위기들.

이제 학생들의 시선도 바뀌었다.

'건강을 생각하는 가정적인 오빠.'

'절대 우리 밥은 안 사 줘.'

그럼에도 이현은 항상 조심했다. 언제 밥을 사 달라고 조를지 모른다. 매점에서 간식이나 혹은 찻집에서 마실 거리들을 사 달라고 할 수도 있으니.

'이놈의 학교는 무슨 식당가야? 왜 이렇게 먹을 게 많아?'

건물마다 보이는 자판기마저도 피해 다닐 지경.

"공부하러 오셨어요?"

"아니. 책 읽으러 왔어."

이현은 가볍게 걸어가면서 답했다.

"형, 문학 소설은 2층이에요."

"소설 보러 온 거 아니야. 그냥 이것저것 찾아볼 게 있어서 왔지."

"뭘 찾으러 오셨는데요."

"병법이나 전략, 전술. 알고 있어?"

"7층이긴 한데......"

"응. 알려 줘서 고맙다."

이현은 엘리베이터에서 7층 버튼을 눌렀다.

7층은 동양 사상과 관련된 오래된 책이나 역사서 등의 서적들이 있어서 학생들이 잘 가지 않는 장소다.

이현이 엘리베이터로 들어가고 나서, 학생들이 수군거렸다.

"동양 사상에 관심이 많았나 봐."

"평소에 말수가 없던 형이었는데... 수준이 정말 높네."

"어딘가 깊이가 있고 장점들이 많으니까 그렇게 예쁜 언니들과 데이트도 했겠지."

이현은 학교 축제에서 서윤과 정효린과 데이트를 해서 단연 화제의 인물로 떠올랐다.

남자들에게는 질투가 아닌 무한한 존경심의 대상이, 여자들에게는 수많은 매력을 감추고 있는 신비한 사나이가 되었다.

"근데 중국어도 상당히 잘하나 봐."

"응?"

"전에 심심해서 7층에 가 본 적이 있는데, 서가에 있는 책들 상당수가 원서였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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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젠장!"

이현은 욕설을 퍼부었다.

"아니, 무슨 한국에 외국 책을 가져다 놔? 다 번역해서 출판할 일이지!"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는 일.

서가의 절반 정도는 외국 책을 그대로 들여왔고, 나머지는 한글이었지만 한자가 매우 많았다. 한글로 풀어 쓰여 있지도 않아서 읽기가 난해하기 짝이 ㅇ벗었다.

"병법서를 찾아야 되는데......"

하필 이현이 찾는 책은 더욱 희귀한 편이고, 번역도 잘되어 있지 않았다.

책장을 넘기며 이해하기가 어려운 것은 물론이고, 제목을 보고도 찾지 못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책방에서는 제목 순서대로 놔두는데, 도서관은 왜 이렇게 찾기가 힘들어?"

이현이 원하는 병법서는 차라리 문학에서 찾으면 편했다.

<<손자병법>>이나 <<이순신의 병법>>, <<오자병법>> 등의 서적은 문학으로 출간이 되었으니까.

한글 설명으로 알아보기도 쉽고 삽화까지 들어 있다.

그런데 원서들이 즐비한 동양 사상 코너에서 원하는 책을 찾으려니 죽을 맛이었다.

"엠비뉴 교단과 싸워서 이길 만한 전략이나 전술을 찾아야 된다."

이현이 아까운 시간을 축내면서 도서관에 온 이유는 분명했다.

아군의 전력을 더 향상시키기란 어렵다. 현재 가지고 있는 전력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전술과 전략이 빛을 발하며, 불세출의 명장들이 시도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 높은 계획들이 필요하다.

"그런 전략을 찾아내야 되는데......"

병법서는 아무리 봐도 읽는 것조차 불가능.

간신히 한글로 찾아낸 병법서에는 이런 글귀가 있었다.

ㅡ 나를 알고 적을 알면 백전백승이다.

이현의 캐릭터인 위드와 동맹 부족들 그리고 엠비뉴 교단의 전력을 비교하면 정말 그 자체.

"백전백승은 무슨... 퀘스트 실패를 하게 생겼는데."

이현은 툴툴대면서 다른 책들을 찾았다.

그러던 차에 서가에 꽂혀 있는 소설책이 보였다.

<<삼국지>>!

누가 읽다가 대충 아무 곳에나 놔두고 간 모양이었다.

"<<삼국지>>라... 이름만 들어 보고 읽어 본 적은 없는 책이군."

이현은 <<삼국지>>를 훑어 보았다.

유비, 관우, 장비가 도원결의를 맺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

장대한 <<삼국지>>를 세세하게 펼쳐 놓은 게 아니라 한 권짜리로 짧게 스토리만 전개해 두었다.

유비가 제갈공명을 세 번이나 찾아가서 영입한 것이 이야기의 백미. 완벽하게 불리하던 처지에서 대반전이 일어난다.

이현은 <<삼국지>>에서 엠비뉴 교단을 상대할 전략을 발견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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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비뉴 교단의 대군!

위드가 동맹 부족을 끌고 한차례 공격을 하고 난 이후부터는 경계 태세가 부쩍 강화되었다. 성벽에 배치된 인원도 상당히 늘어났고, 활을 들고 다니는 궁병들도 많아졌다.

엠비뉴 교단의 요새에서도 끊임없이 병력 증강과 군사 무기 확충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증거였다.

"빙룡아."

위드는 일단 요새가 정면으로 보이지 않는 바위산 뒤에 숨은 채로 말했다.

"말하라, 주인."

"저기 얼마나 모였는지 정찰해 보고 와."

"알겠다, 주인."

빙룡은 날갯짓을 하며 하늘로 솟구쳤다. 엠비뉴 교단의 요새 근처에도 가지 않고 멀리서 그들을 살피고 보고했다.

"성벽 위에 있는 인간들만 5,000이 조금 넘는다."

"제법 많군. 갑옷을 입고 있는 놈들은?"

"1,000 정도 된다."

암흑 기사만 1,000명!

나머지는 일반병이거나 사제, 마법사라고 봐야 했다.

성벽 위에 없는 이들까지 감안한다면 전체적인 규모는 최소 2배 이상!

위드는 공성전을 대비해서 미리부터 추격대를 유도해서 섬멸했다.

이른바 각개격파의 전략!

약한 적들부터 유인해서 섬멸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엠비뉴 교단의 요새에는 엄청난 숫자의 군대가 남아 있었다.

더구나 엠비뉴 교단의 위세는 대단하여, 이 부근 부족들을 장악하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전투가 벌어지면 다른 부족들에서 지원군이 계속 도착할 것이다.

"최소한 적들의 총합이 2만은 넘는다는 건데...... 이대로라면 절대 불가능하겠어."

"주인, 설마 저 요새를 다시 공격할 것인가?"

"맞아."

빙룡은 아무래도 중간에 끼었기 때문에 위드가 어떤 퀘스트를 진행하는지 모르고 있었다.

은퇴한 늙은 용병 스미스는 아예 사르미어 부족의 부락에 남아서 오지도 않았다. 엠비뉴 교단과 싸우는 것은 자살행위라면서 참여를 거부한 것이다.

"주인의 계획을 듣고 싶다. 저 요새는 정말로 위험해 보인다."

성장한 빙룡!

지성이 높아져서 위드의 계획을 사전에 알아보려는 갸륵한 생각까지 했다.

위드는 기꺼이 대답해 주었다.

"인도자의 권능이란 게 있어. 베르사 대륙의 굉장한 보스급 몬스터도 불러올 수 있는거지. 본 드래곤 알지? 그 녀석보다 강한 녀석으로 데려올 거야."

"지금의 적도 감당할 수 없는데 몬스터를 더 불러온다고?"

"응. 여기도 불러올 거야. 그리고 같이 싸우는 거야."

"근데 그렇게 데려온 몬스터가 우리를 공격하면?"

"안 공격당하도록 잘해야지."

빙룡은 답변에 만족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주인은 천재다."

"내가 머리가 좀 좋은 편이긴 하지."

위드는 약속의 지팡이를 꺼냈다. 인도자의 권능을 사용하기 위해서였다.

보통의 마법과는 달리, 신성 축복은 주문을 외워야 한다.

"거룩한 마탈로스트가 세상에 내려 준 축복의 힘을 당신의 종이 사용하려고 합니다. 부디 허락해 주소서."

띠링!

 - 인도자의 권능을 사용하셨습니다.

그 순간, 위드의 눈에 베르사 대륙 전체가 비추어졌다.

몬스터들!

각 지역을 살펴서 몬스터를 찍으면 어떤 종류든 소환이 가능하다. 물론 감당하지도 못할 몬스터를 데려온다면 인도자의 권능이라도 하더라도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

"우히힛."

"크헤헤헤헬. 인간들이 무섭다."

야밤에 뛰어다니는 고블린들이 지나다니고 있었다.

'어쨋든 강한 몬스터를 데려와야 돼. 아니면 동무이 될 만한 NPC나.'

위드는 협곡과 산, 강을 쭉 훑었다.

베르사 대륙에는 보스급 몬스터들과 정벌되지 않은 몬스터들이 여전히 많았다. 중앙 대륙에서는 토벌대가 자주 구성되고 있었지만 동부, 서부, 남부, 북부에는 어중간한 토벌대들 따위는 가볍게 짓밟아 주는 보스급 몬스터들도 부지기수였다.

발견되지 않은 던전에 숨어 있는 몬스터들.

그런 보스급 몬스터들은 레벨이나 특성조차 공개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퀘스트 성공을 위해서는... 정말 강한 몬스터밖에 해답이 없지.'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터무니없는 몬스터들!

명문 길드에서도 500명 이상이 모여야 싸움이라도 걸어 볼 수 있는 그런 몬스터를 불러올 작정이었다.

기준은 최하 뱀파이어 로드 토리도나 본 드래곤급!

위드는 신중하게 6시간에 걸쳐서 적합한 몬스터들을 찾았다.

베르사 대륙의 역사서에 수록되어 있는 끔찍한 혈겁을 일으켰던 군주!

위드가 해결했던 퀘스트와도 관련이 깊은 인물이었다.

'전투의 시작으로 이 정도는 데려와 줘야지.'

그다음으로는 명문 길드가 전력을 기울여서 공격을 가했지만 오히려 전멸하고 나서 화제가 되었던 몬스터!

마지막 1마리는 입에 올리는 것조차 금기시되어 있었다.

힘과 권위의 상징!

웬만한 왕국 따위는 하룻밤에도 휩쓸어 버리는 파괴적인 존재.

"역시 섭외라면 이 정도는 되어야지."

인도자의 권능을 사용한 위드는 크게 만족감을 표시했다.

화려한 캐스팅!

난이도 S급 의뢰를 하면서는 어차피 이판사판이었다.

정상적인 방법으로, 어중간하게 해결해서 될 의뢰가 아니었으니까.

"죽어도 기껏 두 번이야. 시원하게 가 보자!"

위드는 마음의 평온을 느꼈다. 일단 지르기 전의 갈등이 심할 뿐, 지르고 난 뒤에는 후회가 없는 법이다.

"그럼 약간의 여유 시간을 이용해서 조각품이나 하나 만들어 볼까?"

몬스터들이 소환되기 전에 바윗산을 이용해 조각을 해 볼 작정이었다. 빠듯한 시간 탓에 대작까지는 바라지도 않지만 쓸 만한 조각품이 더 있다면 나름대로 도움이 될 테니까.

위드는 조각칼을 꺼내 들고 바위산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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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국에서는 실시간으로 이현의 영상을 받아서 보고 있었다.

캡슐 내의 진행 속도에 시차가 있기 때문에 자연히 약간씩 지연되는 부분이 생긴다.

그만큼 작업해야 하는 분량도 많아 철야는 기본!

하지만 불필요한 부분들, 예컨대 요리할 때나 이동할 때를 빠르게 넘기는 방식으로 이현의 모험을 거의 실시간으로 보고 있었다.

강 부장이 뒷목을 잡았다.

"커허헉!"

현기증이 날 만큼 어처구니가 없다. 이현이 인도자의 권능을 사용하여 소환한 몬스터들을 보았기 때문이다.

패닉!

강 부장만이 아니라, 방송을 준비하던 50여 명의 스태프들이 전부 넋이 나갔다.

"미친 거 아니에요?"

"완전히 돌았잖아!"

"으아아아악! 무슨 이런 몬스터들을......! 심지어 처음 나오는 놈조차도 어처구니가 없어요!"

강 부장이나 방송국 직원들의 생각은, 적당히 세고 다루기 좋은 NPC나 몬스터의 소환이었다.

인연이 있는 로자임 왕국의 왕실 기사라면 괜찮다. 드레이크를 타는 기사라면 전장에서 상당히 도움이 될 테니까.

왕실 마법사의 소환도 나쁘지 않다. 로자임 왕국에 있는 공헌도과 맞바꾸어서 협조를 구하면 된다.

아니면 중앙 대륙의 강국에도 공헌도가 있으니 그쪽에서 소환해도 된다.

칼라모르 왕국의 기사 콜드림!

뱀파이어 왕국 토둠의 퀘스트를 알고 있는 방송국 사람들이 보기에는, 안면도 약간 있고 최근 무적의 연전연승을 거두고 있는 콜드림을 소환하는 건 상당히 좋은 묘수였다.

루 교단의 성기사나 사제도 효과적인 선택!

엠비뉴 교단과는 상극이라서, 소환만 한다면 그들은 두말없이 힘을 보태 주리라.

사제들의 신성력을 바탕으로 동맹 부족과의 전체적인 전력을 올려서 전면전을 벌이는 게 일반적인 사람의 선택이 되리라.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맹 부족들이 훨씬 불리할 것이다. 드레이크를 탄 기사나 사제 등 몇 명으로는 전황을 완전히 바꾸기 어렵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공성 병기조차도 없이 엠비뉴 교단의 요새를 공격해야 하는 입장에서야 극악한 피해를 감당해야 될 것이다.

승산은 절대 높을 수가 없는 처지였지만, 그래도 미약한 기대라도 품을 수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도 어디까지나 평범한 몬스터나 NPC를 정상적으로 소환했을 경우다. 위드는 정말 떠올리기조차 끔찍스러운 몬스터들만 줄줄이 소환해 버렸다.

"아니, 1마리만 데려와도 난리가 날 만한 그런 몬스터를......"

"저놈 중에 1마리만 나와도 시청률 15%는 문제없을걸요?"

"1마리? 시청률을 떠나서, 베르사 대륙은 난리가 날 만한 그런 놈들이잖아."

스태프들은 얼이 빠져서 떠들었다.

하지만 방송국 내부에서 서서히 희미한 열기가 피어나는 중이었다.

베르사 대륙의 퀘스트를 해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난이도 C급의 의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안다. 레벨이 높고, 동료들이 도와준다면 난이도 B급의 의뢰도 할 수 있다. 정말 뛰어난 유저나 길드라면 A급에도 도전해 볼 수 있다.

그래도 난이도 A급의 퀘스트를 혼자서 진핼할 수 있는 사람은 위드밖에 없다.

이런 호의적인 시선에도 불구하고 이번 퀘스트는 절대적으로 무리라고 여기고 맥이 빠져 있었다.

하지만 지금 방송국의 분위기는 바뀌어 가는 중이었다.

어떤 변화의 조짐이 무르익어 가고 있다는 사실을 누구나 느낄 수 있었다.

강 부장이 수화기를 들었다.

국장에게 보고를 하기 위해서였는데, 전화가 연결되니 국장이 먼저 말했다.

-강 부장? 나도 그 영상 보고 있었어요.

"그러셨습니까, 국장님."

-대단하더군요. 역시... 위드예요. 그 듬직한 배포만큼은 부러워. 젊기 때문일까? 특별한 무언가가 그에게는 있어요.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강 부장은 전화기를 들고 고개까지 숙여 가며 통화를 했다.

"네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네, 물론이죠. 국장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달깍!

강 부장은 수화기를 내려놓고 긴 한숨을 쉬었다.

"휴우."

월급쟁이에게는 언제나 긴장되는 순가.

하지만 활기차게 의자에서 일어났다.

"편성국의 윤 감독 데려와."

"예, 부장님."

힘찬 강 부장의 말에 방송국 직원들의 시선이 쏠렸다. 그리고 옆 사무실에 있던 윤 감독이 문을 열고 나타났다.

"강 부장님, 무슨 일인데요?"

"지금 이 순간부터 정규 편성 다 취소해!"

"네? 그러면 시청자들의 원성이 엄청날 텐데요."

"지금 방송하는 프로그램이 뭔데?"

"츄리와 몬스터들이에요. 베르사 대륙의 아기자기한 몬스터들을 소개해 주는 방송인데, 어린이와 여성 들에게 인기가 많죠."

"평균 시청률은?"

"3.3%요."

로열 로드의 인기는 끝을 모르고 높아지고 있다. 게임 방송을 전혀 보지 않던 시청자들이 몰리면서 전반적인 시청률도 상당히 높아진 상태다.

3.3%라면 KMC미디어에서도 나쁘지 않은 시청률이었다.

"중단해! 국장님으로부터 전권을 위임받았다. 편성국에도 곧 전자 공문이 도착할 거야!"

강 부장이 다급하게 설명했다.

퀘스트의 종료 전에 방송을 본격 개시해야 한다는 사명감!

이현이 소환한 몬스터들을 보니 대박이었다. 시청률은 확실하게 따 놓은 당상이라고 할 수 있다.

엠비뉴 교단과의 싸움 역시 흥미진진하리라.

전투가 끝나고 결과가 유출되기라도 하면 김이 빠진다.

방송국에서 철저히 보안을 유지하더라도 이 정도의 규모의 퀘스트라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모른다.

결과에 따라 베르사 대륙에 영향을 주게 될 텐데, 주민들의 입에서 나온 말이나 상황의 변동에 따라서 퀘스트의 결말을 짐작하게 될 수도 있다.

방송국의 입장에서는 진수성찬이 차려지고, 반찬에 갈비찜에 간장 게장까지 있는 셈이다. 뭘 먹어야 할지 고민하는 와중에 굶어 죽을 상황!

밥상 차려 놨더니 밥숟가락으로 떠먹여 달라고 우기다가 망할 판이었다.

그런 사태가 벌어지기 전에 방송을 즉각 개시하라는 국장의 명령이 있었던 것이다.

"연출부 신 감독! 위드의 연계 퀘스트, 첫 번째 시작점이 어디였지?"

"드워프 왕국 쿠르소에서 데스핸드와의 대결에서부터였어요."

"그 퀘스트부터 신속하게 방송해. 편집 방향은, 전신 위드라는 사실이 드러나지 않을 정도로만 감추고...... 그런데 감출 수 있을까?"

"전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까지는 가능할 겁니다. 전투가 흘러가는 방향에 따라서는 어려울 수도 있고요."

"아무튼 방송이다. 지금 편성국으로 테이프 넘겨주고, 준비되는 대로 바로 방송 개시해."

KMC미디어 홈페이지의 메인 화면이 바뀌었다.

전쟁을 알리는 듯한 표시!

언데드들이 몰려오고, 철근으로 이를 쑤실 것 같은 인상의 오크 카리취가 고함을 지르고 있다.

인기 절정인 불사의 군단 동영상의 일부가 메인 화면에 떴다.

방송 시간표에도 변화가 있었다.

ㅡ 12:30 츄리와 몬스터들

ㅡ 14:00 사베인의 보물 탐색대

ㅡ 15:00 이스턴 대모험

ㅡ 15:50 여행자들의 이정표

ㅡ 17:00 베르사 대륙 이야기

ㅡ 19:00 도전! 몬스터 사냥, 당신도 할 수 있다.

ㅡ 20:20 돈과 인생의 길, 상인 대해부!

ㅡ 21:30 꿈의 무대가 바꾸어 놓은 사람들

ㅡ 22:00 캡틴 우르간의 바닷길

ㅡ 23:30 대륙의 고향

정규 방송들이 차지하던 시간표가 사라지고, 새로운 시간표가 등록되었다.

ㅡ 12:45~24:00 위드

단순명료하기 짝이 없는 시간표.

프로그램 위드의 더없이 화려한 부활이었다.

텔레비전에서는 츄리와 몬스터의 종료를 예고하는 자막이 올라왔다.

ㅡ 시청자 분들께 안내 말씀드립니다.

   잠시 후, 위드의 모험을 방송하게 됩니다.

   긴급 편성으로, 미처 알려 드리지 못했던 점을 사과드립니다.

   대조각사 위드, 그의 연계 퀘스트와 엠비뉴 교단과의 전쟁까지 연속 방송됩니다.

   베르사 대륙에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이 퀘스트의 난이도는 S급이며, 연계 퀘스트들이 더 남아 있습니다.

   방송 종료 시간은 미정이며, 현재 연출부의 전 직원이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긴급 편성으로 인하여 미흡한 점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시청자 분들의 많은 양해 부탁드립니다.

다소 긴 공지였지만 시청자들을 열광시키기에는 충분했다.

ㅡ 조각사 위드? 피라미드와 빛의 탑을 만들었다는 그 사람의 모험이잖아?

ㅡ 얼마 전에 베르사 대륙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엠비뉴 교단과의 싸움이 KMC미디어에서 방송된다고 합니다. 무려 난이도 S급의 연계 퀘스트라는군요.

ㅡ 저도 친구들에게 알리겠습니다.

로열 로드의 각종 팬사이트와 게시판 들을 통해서 소식들이 전해졌다. 사람들이 텔레비전을 켜고, 채널을 KMC미디어로 고정시켰다.

3.3%, 3.8%, 4.2%, 5.1%, 7%, 7.6%.

순간 시청률의 폭발적인 급증!

시청자 게시판도 조회 수와 글 작성 수가 평소의 10배 이상으로 늘었다.

ㅡ 왜 방송 안하나요?

ㅡ 잠시 후라더니 언제 방송해요?

원활한 방송 준비와, 츄리와 몬스터들의 애청자를 위하여 내용이 바로 전환되지는 않고 있었다.

ㅡ 츄리와 몬스터들 1회부터 지금까지 빠지지 않고 봤던 애청자입니다. 지금 바로 위드의 모험을 틀어 주세요.

애청자들조차도 빨리 끝내고 방송하라고 아우성!

방송 화면의 일부에 10분이라는 카운트가 생겼다. 매초마다 줄어드는 카운트!

경쟁 방송사들은 줄어드는 시청률에 피가 마르는 기분이리라.

시청자들의 어마어마한 관심을 받으며, 프로그램 위드의 방송이 개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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