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제갈공명의 계략
위드는 다시 동맹 부족드로가 함께 엠비뉴 교단의 요새로 진격헀다. 신속한 기동력을 확보하기 위하여 발석기도 만들지 않았다.
"우으으."
"저 요새 너무 세다. 우리가 이길 수 없을 것이다."
동맹 부족들 사이에 넓게 퍼진 비관주의!
동맹 부족원의 숫자가 140명 정도나 줄어 있다.
웬만한 일로는 희망을 잃지 않는 단순한 동맹 부족들이지만, 첫 번째 전투에서 거의 아무 피해도 못 주고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하고 패퇴했으니 어쩔 수 없는 결과였다.
위드는 그런 동맹 부족들을 격려하여 의욕을 북돋아 주거나 하지 않았다.
"어차피 이들을 이끌고 요새를 점령하기란 현실적으로 어려우니까."
빙룡과 불사조들, 누렁이는 일부러 데려오지도 않았다.
충분한 휴식을 취하도록 해서 전력을 극대화하기 위함이었다.
사르미어 부족이 들고 있는 창끝이 아래로 향했다. 사기의 저하로 인해 어깨가 축 처져 있었다.
그럼에도 위드와 동맹 부족들이 요새로 다가가자 반응이 있었다. 성벽으로 병력이 더욱 많이 충원되고, 첨탑에서 습격을 알리는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
위드가 눈을 빛냈다.
'엠비뉴 교단 휘하의 야만족들을 부르는 것이다.'
탐색전 이후 한차례 빙룡과 불사조들을 데리고 가볍게 조사를 해 봤다.
"이 일대에서 엠비뉴 교단의 지배를 받는 야만족들은 많이 약해."
통곡의 강 일대에 있는 다른 부족들은 마탈로스트 교단과 동맹을 맺은 레키에, 사르미어, 베자귀 부족보다 훨씬 약하다.
"10명을 죽이고 5명이 죽으면, 대략 27명 정도의 병력 이득이 발생할 거야."
말도 안 되는 터무니없는 계산법!
봉화에서 연기가 솟아오르고 시간이 지나자 일대의 야만부족들이 몰려들었다.
죽창과 도끼, 조악한 화살로 무장한 야만족들이었다.
위드는 요새가 아닌, 새로이 등장한 야만 부족을 가리키며 지시했다.
"엠비뉴 교단의 하수인. 놈들을 죽여라."
위드는 동맹 부족들이 수행할 수 있는 간단한 명령을 내렸다.
"베자귀 부족 돌격!"
애초에 동맹 부족들이나 다른 야만족들이나, 진형이나 전술적인 움직임은 훈련을 받지 않아서 못 보여 준다.
"우와아아!"
"다 죽이자!"
근육질의 베자귀 부족 용사들이 달렸다.
일당백의 용사들!
"사르미어 부족이여, 너희의 시간이다."
위드는 사르미어 부족에게 활동 명령을 내렸다.
사르미어 부족은 특성대로 각자 흩어져서 적을 찾아 사냥했다.
독화살을 쏘고, 기형의 뾰족하고 길쭉한 창으로 암습하는 최고의 사냥꾼들!
레키에 부족은 야만족들의 정신을 현혹시키는 역할을 맡았다.
집단 현혹이나 저주들이 야만족들에게 퍼부어졌다.
"어지러워. 땅이 흔들린다."
주변이 멀쩡한데도 전장의 한복판에서 비틀거리는 야만족들.
"도끼. 도끼가 무거워졌다."
돌도끼가 2~3배는 무거워진 것처럼 들어 올리지 못하기도 했다.
레키에 부족의 이러한 도움은 베자귀 부족이나 사르미어 부족의 활약을 최대로 이끌어 주었다.
야만족들을 상대로는 꽤 뛰어난 전공을 보여 주는 동맹부족!
"모두 죽여라."
"한 놈도 남기지 말자."
6,000여 동맹 부족이 1만에 달하는 인근 야만족들을 일방적으로 몰아붙였다.
시체들이 쌓이고, 동맹 부족들은 전투 경험을 쌓으며 점점 강해진다.
사실 동맹 부족들의 성장을 약간은 의도하기는 했지만, 큰 부분을 차지하진 않았다.
"이제 와서 성장시키기에는 너무 늦었지."
동맹 부족의 숫자도 6,000이 넘다 보니 지금 와서 뭘 어떻게 하기란 무리!
아군의 전력을 극대화시킬 수 없다면 더 위험한 돌파구를 찾아낸다.
"정상적인 공성전은 피한다. 일부러 불리한 싸움을 할 필요는 없으니까. 적들이 더욱 늘어나더라도... 아예 최악의 전투를 하더라도 우리에게 유리한 환경에서 싸운다."
위드는 전장의 규칙을 바꾸어 놓고, 혼돈으로 뒤집어 놓을 작정이었다.
문신, 흉터, 곰 가죽, 표범 가죽을 입고 있는 근육질 야만족들이 생존을 위해서 싸운다.
따라랑.
위드는 하프를 꺼내서 가볍게 튕겼다.
맑은 하프 소리가 전장에 흘렀다.
- 앗. 무언가가 저 어둠 속에서 반짝이고 있다네.
오. 오. 오. 오!
이것은 바로 구릿빛 잡템.
녹이 슬어 있다면 반짝반짝 닦아 내자.
상점에는 몰래 팔면 된다네.
눈에 불을 켜고 찾아보자.
1개도 빠뜨려서는 안 된다네.
잡템을 모아서 돈을 벌자.
보리 빵을 백 년치 살 수 있을 만큼 쌓아 놔야지.
앗. 앗. 앗.
아이템!
유니크급 아이템.
신 난다. 춤추자. 오늘은 정말 대박이야.
위드의 즉홍 하프 연주가 절정에 달해 갈 때였다.
동맹 부족과 야만족들의 전투도 정점을 지나고 있었다.
레키에, 베자귀, 사르미어의 동맹 부족이 야만족들을 완전히 압도했다. 빙룡이나 불사조가 없었지만, 믿음의 형제들 조각품으로 인해 상승한 전력도 적지 않은 도움이 되었으리라.
그르르릉!
동맹 부족들이 야만족들을 신 나게 사냥하고 있을 때, 엠비뉴 교단의 요새에서 변화가 일어났다.
성문이 굉음을 내면서 차츰 열리고 있었다.
성문 사이의 틈으로는 암흑 기사들과 기병들이 전투준비를 갖추는 모습이 보였다.
그들의 갑옷과 신성력으로 인한 축복과 가호로 번쩍번쩍 빛났다.
- 아무도 찾이 않는 장소에서 사냥을 해야지.
쓸쓸한 사냥꾼의 길.
잡템의 풍년을 위해서라면 고독해져야 하네.
이해해 주는 이를 바라지 않아.
바라는 건 그저 돈일 뿐.
하프를 연주하는 위드의 손이 더욱 현란하고 빠르게 움직였다.
암흑 기사들과 기병들이 출격하기 직전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꼬르르륵!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명품 시계보다 정확한 배꼽시계가 알려 주는 시간.
"드디어 놈이 올 때가 되었군."
위드는 하프를 연주하면서 전장을 주시했다.
역사 전쟁 소설이나 영화에서 멋들어지게 군대를 지휘하는 군사들처럼! 부채나 악기를 다루며 낭만적으로 지휘하던 모습을 그대로 따라 하는 것이었다.
영화와 소설이 사람을 어떻게 피폐하게 만드는지 보여 주는 적나라한 현실.
띵가띵가!
성문이 완전히 열릴 때쯤 위드의 입에서 전력을 다한 사자후가 시전되었다.
지금까지 부르던 저질 음정에 저질 가사의 노래와는 다르게 포효하는 듯한 음성!
"동맹 부족, 전력을 다해 도망쳐라!"
동맹 부족들은 야만족들의 시체들을 벌판에 남겨 둔 채로 신호에 따라서 썰물처럼 물러났다.
성문이 열리면서 암흑 기사들과 기병들이 튀어나오려는 찰나!
전장에 엄청난 마나가 몰려들었다.
소용돌이와 돌풍이 치며, 흑마법에 사용되는 음차원의 마나가 밀려든다.
끼야아아아악!
유령들이 내지르는 괴기한 비명.
일대가 어두워지고 먹구름으로 뒤덮였다.
쿠르릉ㅡ 콰과과과과광!
뇌성벽력이 작렬했다.
엠비뉴 교단의 요새 앞, 동맹 부족과 야만족들이 싸우던 땅의 지면이 갈라지고 있었다.
위드가 두 팔을 넓게 펼쳤다.
"드디어 오는가!"
인도자의 권능으로 소환한 첫 번째 몬스터를 진심으로 환영했다.
"어서 오너라!"
대지의 균열에서 천천히 일어나는, 로브를 입고 있는 해골.
불사의 군단의 수장.
금단의 영역에 발을 들이밀었던 최악의 네크로맨서, 바르칸 데모프의 현신이었다.
------
바르칸은 용서나 자비를 모른다.
엠비뉴 교단이 지배와 포교를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면, 바르칸은 전혀 다른 존재다.
어둠의 힘에 종속되어 살아 있는 어떤 존재도 용납하지 않는다.
생명체에 대한 맹렬한 증오!
그가 등장한 것만으로도 싸늘한 한기가 흐른다.
최고위 몬스터의 하나답게, 등장만으로도 전장의 분위기가 낮게 가라앉았다.
큰 폭풍이 밀려오기 전처럼 압도되는 분위기.
위드는 바르칸의 모습을 자세히 살폈다.
썩은 뼈다귀를 가지고 있는 오래된 리치.
겉모습으로는 제자였던 리치 샤이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키가 조금 더 크고 턱뼈가 두꺼운 것 같았지만, 샤이어를 직접 상대해 본 위드 정도만이 구분할 수 있는 미세한 차이에 불과하다.
"이거야말로 진짜 부자 리치라고 할 수 있지."
리치 바르칸이 보여 주는 고품격 복장.
몸에는 으스스한 흑색의 오라를 두르고 있었다.
굉장히 좋은 재질의, 하지만 백 년도 넘게 사용한 것 같은 허름한 로브는 약간의 수선만 거친다면 금세 멀쩡해지리라.
"원래 명품들이란 다 그런 거니까."
머리에는 어딘가의 보석으로 된 왕관을 착용하고 있다. 왕관에 박힌 오리 알만 한 보석들이 번쩍번쩍 빛을 낸다.
들고 있는 스태프에는 독수리의 머리뼈가 붙어 있다. 왕관과 뼈의 조합이 바르칸에게는 완벽하게 어울렸다.
한눈에 봐도 유니크급 아이템들.
리치 샤이어도 엄청난 아이템을 착용하고 있었는데, 스승은 한 술 더 떴다.
"역시 마법사 출신들이 돈이 많아. 그런데......"
위드의 눈길을 특별히 잡아끄는 무기가 있었다.
바르칸의 가슴을 꿰뚫고 있는 검!
흑색의 오라가 그곳만은 뒤덮고 있지 못하였다.
위드는 추측했다.
"베르사 대륙의 전쟁 와중에 꽂혔던 검 같군."
검 자루에 있는 문양으로 볼 때에는 루의 신전의 성물로 짐작되었다.
바르칸의 엄청난 흑마력을 성검이 제약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완전한 바르칸의 부활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
"불량품 데려온 거 아니야?"
위드가 다소 걱정을 하고 있을 때에도 동맹 부족들은 바르칸의 카리스마에 압도당해 꽁무니를 빼고 달아나는 중이었다.
위드는 바위산에 몸을 숨긴 채로 전장을 주시했다.
동맹 부족은 이제 완전히 철수했다.
바르칸의 시선이 주변의 야만족들로 향했다.
"버러지들. 너희 따위가 피가 흐르고 살아서 숨을 쉬다니, 믿을 수 없구나."
바르칸은 너희는 누구냐고 묻지도 않았다. 지극히 거만하기 짝이 없는 태도로 주변에 있는 야만족들을 향해 한 손을 뻗었다.
"선더 스톰!"
콰과과과광!
먹구름이 밀려오더니 수십 줄기의 벼락들이 야만족들의 몸에 떨어졌다.
살아 있던 야만족들의 몸이 그대로 터져 나간다.
마법 저항력이 거의 없는 야만족들이 몰살을 당하고 있었다.
"너희가 살아서 움직이던 땅으로 돌아오라. 이곳은 어두운 곳. 검고 부패한 땅. 영영 사라지지 않을 암흑의 율법을, 모든 이들에게 새길 수 있도록 하라. 언데드 라이즈!"
바르칸의 전율적인 네크로맨서 마법은 이제부터였다.
야만족들의 시체 더미에서 둠 나이트와 데스 나이트 들이 달그락대며 일어났다.
레벨 300이 넘는 둠 나이트를 100마리도 넘게 소환한 리치 바르칸!
"이 땅은 내 암흑의 율법이 지배한다. 영원한 불사의 힘이 장악하리라. 다크 룰!"
바르칸이 들고 있던 해골 지팡이를 땅에 꽂았다. 그 장소를 중심으로 대지가 검붉게 물들었다. 그러자 남아 있던 시체들도 차차 일어났다.
뇌성벽력이 칠 때마다 시야가 환하게 밝아지며 보이는 충격적인 광경.
좀비나 구울의 군단이 있었다.
듀라한이나 스켈레톤 병사들도 부지기수!
"언데드들이 일어난다. 도망쳐라!"
얼마 남지 않은 야만족들이 뿔뿔이 흩어져서 도주하려 했지만, 바르칸은 이를 용납하지 않았다.
바르칸이 뼈밖에 없는 손가락으로 야만족들을 가리켰다.
그러자 언데드 군단이 야만족들을 도륙하기 시작했다.
죽은 야만족들은 저절로 스켈레톤이나 듀라한이 되어서 일어났다.
다크 룰 마법이 보여 주는 전율적인 힘.
바르칸이 직접 저술한 네크로맨서 마법서를 가지고 있는 위드는 그 마법을 알아보았다.
"바르칸의 3대 마법 중 하나로군."
최상급 네크로맨서가 되어야만 쓸 수 있는 마법.
지역 전체를 마법력으로 장악하여, 무제한으로 언데드를 일으키는 고유의 마법이었다.
둠 나이트와 데스 나이트, 구울 등의 활약으로 인해 야만족들이 남김없이 사냥당하고 언데드 1만이 일어나는 데에는 10여 분도 걸리지 않았다.
가슴을 뚫고 있는 성검에 대한 우려가 무색해질 정도의 언데드 군단 탄생.
"바르칸의 오라. 저건 데스 오라일 거야."
이 역시 최상급의 네크로맨서만이 쓸 수 있는 마법.
언데드 군단을 강화하고, 힘과 지성, 방어력, 저항력, 마법력을 향상시키는 마법이었다.
흑색의 오라를 몸에 휘감고 있는 언데드들은 스켈레톤 나이트나 아처라고 해도 훨씬 강해진다. 고위 몬스터들이 즐비한 불사의 군단과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이 역시 엄청난 전력.
흑색의 오라가 진정으로 무서운 점은 따로 있었다.
휘하의 언데드들이 강해지는 효과도 그렇지만, 그들이 싸우면서 획득하는 생명력을 리치들이 흡수하게 된다.
덤으로 신성력에 의한 공격도 약화시켜 주며, 리치에게는 끝없는 마나와 생명력의 근원이 되는 마법이었다.
야만족들을 전멸시킨 바르칸의 시선이 이제 엠비뉴 교단의 요새로 향했다.
로브를 입고 있는 해골 마법사 리치의 카리스마 넘치는 시선!
위드는 속으로 적잖이 염려가 되었다.
'겁을 먹고 도망치는 건 아니겠지.'
불사의 군단 수장이라고 하여도 진면목은 확인해 봐야 하는 것.
싸워야 할 의미가 없기 때문에 싸우기 않겠다면 어찌할 도리가 없다.
'그래도 명색이 불사의 군단인데... 인사나 하고 떠나진 않겠지. 않을 거야. 암.'
바르칸 데모프는 기대에 기꺼이 부응해 주었다.
이번에는 손가락뼈를 들어 요새를 가리킨 것이다.
"쿠아."
"꾸에에에에엘!"
언데드들이 요새를 향해서 밀려들었다.
스켈레톤과 듀라한, 데스 나이트, 스펙터, 둠 나이트 들의 거칠 것 없는 진격!
엉키고 짓밟으면서 앞서 나가기 위하여 난리를 피운다.
언데드들에게 바르칸은 아버지와도 같은 존재. 바르칸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언데드들은 요새를 향해 진군했다.
둠 나이트들이 고함을 쳤다.
"지고한 군주 바르칸 님의 명령이다! 저 요새를 주춧돌 하나 남기지 말고 파괴하라!"
바르칸의 네크로맨서 대군이 엠비뉴 교단을 향하여 선전 포고를 했다.
꽈과과광!
스켈레톤 메이지들이 양팔을 모아서 휘둘렀다.
녹색, 청색, 흰색 마법 줄기들이 요새의 성벽을 강타!
스켈레톤 메이지의 마법은 위드가 만든 발석기 위력의 절반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수백 마리 스켈레톤 메이지들의 마법은 성벽을 흔들어 놓기에 충분했다.
부서진 바위 조각들이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다.
엠비뉴 교단의 요새에서도 마침내 반응이 있었다.
엠비뉴 교단은 지극히 오만하고, 모든 종족과 몬스터의 세상을 지배하려 한다. 사제들과 암흑 기사들은 자신들을 향한 도전을 용납하지 않았다.
"감히 언데드 따위가 엠비뉴의 땅을 더럽히다니, 쏴라!"
암흑 기사의 명령에 의해 교단의 병사들이 활시위를 메겼다.
성벽에서 화살이 발사되어 자욱하게 하늘을 뒤덮는다.
흑색의 오라로 뒤덮인 언데드 군단을 강타!
진군하던 언데드들이 땅에 고꾸라지고, 화살에 몸이 꿰뚫렸다.
하지만 살아 있는 병사들이 아니라서 평범한 화살 공격에는 그리 크게 피해를 입지 않았다.
"쿠어!"
스켈레톤 병사들이 데스 나이트의 몸에 꽂힌 화살을 뽑아 주었다.
무척 다정한 광경이었다.
스켈레톤들은 금속으로 된 화살촉을 누런 이빨로 깨물었다.
와자작!
어금니가 깨지는 충격에도 끄떡하지 않는 스켈레톤들.
은으로 도금된 화살이라고 하여도, 정통으로 해골에 맞지 않는 한 그들의 생명을 끊어 놓지 못한다.
"요새를 점령하라."
"저 요새를 점령하면 부하들을 더욱 많이 늘릴 수 있다."
"바르칸 님의 명령에 따라!"
데스 나이트들은 갑옷과 투구에 화살이 꽂힌 채 앞으로 나아갔다.
둠 나이트들은 대검을 휘둘러 화살들을 공중에서 잘라냈다.
"계속 쏴라!"
요새의 성벽에서 무수히 많은 점들이 되어 날아오는 화살들.
"홀리 버스터."
"디바인 스트라이크!"
마법사와 사제 들의 공격 마법이 발현되었다.
신성력에 의한 공격.
언데드들에게는 천적과도 같은 신성 마법이었다.
한 번에 수십 마리씩의 언데드들이 소멸하거나 힘을 잃고 땅바닥에 쓰러졌다.
그러나 언데드들은 피해를 입으면서도 꾸역꾸역 앞으로 나아가서 어느새 성벽 근처에 다다랐다.
사제들은 다급해졌다.
"노래를 하라. 성가를 부르자!"
ㅡ 우리에게 자유를 누리게 하고, 힘을 주신 엠비뉴 신이시여.
사제들이 부르는 성가!
암흑 기사와 병사들, 사제들의 힘을 돋아 주는 노래였다.
스켈레톤들이 몸이 엉킨 채로 성벽을 기어 올라갔다.
"크겔겔."
"올라가라. 올라가."
구울들은 몸으로 성벽을 들이받았다.
야만족들이 전멸하고 난 이후에 1만이 넘는 언데드 군단이 만들어졌다.
성벽의 밑부분을 새까맣게 뒤덮고, 공성전을 벌인다.
성벽에서는 궁수들이 아래를 향해서 직접 사격을 가하고, 신성 마법들이 쏟아졌다.
------
위드는 흐뭇하게 웃었다.
"역시 바르칸이야."
단 한 기의 네크로맨서가 보여 주는 무서운 위용.
"이 정도는 되어야 불사의 군단을 이끌 자격이 있다고 할 수 있지."
바위산 뒤에 숨어서 하는 싸움 구경만큼 짜릿한 게 없다.
음머어어어어어!
누렁이가 혀를 내밀고 고개를 쳐들며 기쁨의 울음을 내지르고 있었다.
순진한 한우가 어느덧 위드의 음흉함을 닮아 가는 중이었다.
"성벽. 성벽을 점거하라."
"일어나서 싸워라. 바르칸 님의 명령이다."
성벽을 오르다가 떨어진 스켈레톤은 뼈다귀가 깨져도 금방 다시 붙었다.
구울이, 몸에 화살 수백 개가 꽂히고 쓰러졌다가도 다시 일어났다.
"크어어어."
몸에 박힌 화살을 뽑아서 짓밟고 성벽을 두들긴다.
엠비뉴 교단의 사제들도 열심히 신성력을 사용했다.
"엠비뉴 신이여, 당신의 자비로움을 모르는 이들을 벌하여 주소서."
신성력으로 인한 불길이 성벽의 아래에 일어났다.
성화로 인한 푸른 화염!
듀라한과 스켈레톤, 구울 들을 휩쓸어서, 수십 마리의 언데드들이 불에 녹았다.
다시 되살아날 수 없는 완전한 소멸.
프레야 교단 사제들의 신성력도 대단했지만, 엠비뉴 교단 사제들의 공격력은 상급의 마법사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궁수들이 화살을 쏘고, 암흑 기사들이 검을 휘두른다.
언데드들이 새까맣게 달라붙어 있었지만, 성벽으로 인하여 훨씬 유리한 지형에서 사제들의 도움을 받으며 전투를 벌이는 엠비뉴 교단은 쉽게 밀리지 않았다.
엠비뉴 교단 휘하에 있는 마물들도 지시를 받고 분전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언데드들의 숫자는 거의 줄어들지 않았다.
암흑 기사나 보병대에 밀려서 성벽 아래로 떨어져도, 언데드들은 금방 다시 일어난다. 신성 마법에 의해 소멸되지 않고서는 죽지 않는다.
오히려 엠비뉴 교단에서도 전투 중에 죽는 병사들의, 사제들이 미처 정화 마법을 펼치지 못하면 다크 룰 마법에 의해 언데드가 되어 버린다.
부상을 입은 채로 싸우다가 갑자기 언데드가 되어 버리는 동료들!
바르칸도 놀지 않고 적극적으로 개입했다.
"포이즌 커프스!"
성벽을 기어오르는 언데드들의 몸에서 시퍼런 독기가 흘러나왔다.
주변 일대를 오염시키고 부패하게 만드는 사악한 네크로맨서 마법!
언데드들을 막기 위해 성벽에 배치되어 있던 엠비뉴의 병사들이 땅에 쓰러졌다.
"매스 커스. 매스 위크니스."
이번에는 집단 저주!
신성 마법을 펼치는 사제들을 불행하게 만들고, 암흑 기사와 궁수 들을 약화시킨다.
바르칸은 철저한 네크로맨서였다.
직접 발휘하는 공격 마법보다는 언데드들을 지휘하고, 집단 저주 등에 특화된 일종의 전문직.
위드는 감동을 받았다.
"과연 세상은 전문직들이 이끌어 나가는 법이지."
고스톱보다도 훨씬 재미있다는 싸움 구경!
바르칸과 엠비뉴 교단이 붙는 장면을 바위산 뒤에서 실감나게 지켜보았다.
언데드들이 악착같이 성벽을 기어오르려는 모습에서는 전율이 느껴지고, 엠비뉴 교단의 강대함에는 놀랄 정도였다.
오데인 요새의 공성전에 참여한 적도 있지만 유저들이 보여 주는 것과는 많이 다르다.
언데드 병사들의 싸움에는 집요함과 치열함이 있었다.
"이런 대부대를 내가 거느릴 수만 있다면......"
위드는 아쉬움에 입맛만 다셨다.
엠비뉴 요새를 점령하기 위한 다른 계획 따위는 필요하지도 않았으리라.
언데드 대군을 이끌 수 있는 네크로맨서는 고레벨이 될수록 일인군대라고 칭해도 무방하니까!
유저들 중에는 그런 꿈을 가지고 네크로맨서로 전직한 마법사들도 많았다.
네크로맨서들이 베르사 대륙의 주류가 되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골렘 1마리를 데리고 사냥터를 휘젓고 다니는 초보 네크로맨서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위드는 냉정한 눈으로 전장을 살폈다.
"이 정도로도 엠비뉴 교단이 쉽게 무너지진 않겠어."
바르칸이 일으킨 언데드들이 정말 강하기는 했다.
1만 구에 달하는 언데드들을 단숨에 일으켰던 것은 과연 명불허전. 불사의 군단 주인이라고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다.
바르칸의 높은 마력으로 인한 언데드 생성 능력은 감동스러울 지경이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언데드들은 살아 있을 때의 생명력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수준 낮은 야만족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언데드에는 제약이 있다.
저질의 시체들을 바탕으로 대단위 언데드 군단을 만들어 낸 점만은 기가 막힐 정도였지만, 지형상의 불리함까지 딛고 엠비뉴 교단의 요새를 점령할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싸움은 이제부터지."
위드의 배가 다시금 꼬르륵거리고 있었다.
배꼽시계가 알려 주는 정확한 시간.
- 포만감이 30% 이하로 떨어졌습니다.
체력의 최대치와 생명력의 최대치가 감소합니다.
쉽게 지치고 힘이 빠지게 됩니다.
위드는 미리 말려 놓은 멧돼지 육포를 질겅질겅 씹었다.
"둘째가 올 시간이로군."
그 순간, 엠비뉴 요새 위의 공간이 크게 일렁거렸다.
리치 바르칸이 소환되었을 때처럼 어마어마한 마나의 유동이 벌어진다.
전투가 벌어지는 것을 보며, 먹이를 위해 몰려들었던 까마귀들이 일제히 하늘로 날았다.
불길함을 몰고 다니는 까마귀들조차도 위혀적으로 느낄수 밖에 없었던 대상.
요새의 상부에 소환을 위한 게이트가 열리고 그 안에서 등장한 초거대 몬스터!
9개의 머리를 가진 킹 히드라였다.
------
페일은 동료들과 함께 선술집으로 들어갔다.
'유로키나의 검은 피부'.
다크 엘프들이 운영하는 선술집이었다.
오크들이 들어오면 100%가 넘는 바가지를 뒤집어써야 하지만, 인간들에게는 30%의 추가 요금만 받았다.
유로키나 산맥에 여행을 온 모험가들이나 용병, 전사 들에게는 식사와 휴식을 위하여 인기가 많은 선술집이었다.
"벌써 시작했나 봐요."
수르카가 조바심을 내었다.
"그러게. 더 빨리 올 걸 그랬나 봐."
로뮤나가 일행 전체가 앉을 수 있는 빈자리를 찾았다.
선술집에 온 이유는 음식을 먹기 위함도 있었지만 방송을 보기 위해서였다.
선술집에 설치된 마법 유리를 통해서 텔레비전을 시청할 수 있다.
유로키나의 검은 피부 선술집에는 텔레비전을 보러 온 여행자들과 다크 엘프, 오크 들로 비어 있는 테이블이 많지 않았다.
난이도 S급 연계 퀘스트.
엠비뉴 교단과의 전쟁!
베르사 대륙 내에서도 소문이 퍼졌다.
실제로 지금 이 순간 대도시, 왕국의 수도, 성이나 큰 마을 들의 선술집은 밀려드는 손님들로 인하여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가게 안이 가득 찬 것은 물론이고 밖에 임시 테이블까지 설치해야 할 정도였다.
베르사 대륙에 있는 선술집으로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성이나 마을 앞에 있는 초보 사냥터가 한적해질 지경이었다.
"헤헤헤헤."
방송 유리를 보며 실없이 웃고 있는 페일!
연인인 메이런이 진행을 할 때마다 빼놓기 않고 방송을 봤다.
블라우스를 입고 지적으로 보이는 그녀가 상큼하게 웃을 때마다 페일의 입가가 찢어질 듯 벌어진다.
이리엔이 한숨을 쉬었다.
"일단 주문부터 해야 되겠는데... 이렇게 북적거려서 주문이나 제대로 할 수 있을까요?"
그러자 제피가 가볍게 손을 들었다.
"미소가 상냥한, 흑진주보다 반짝이는 눈동자를 가진 다크 엘프 아가씨!"
다크 엘프 점원이 금방 제피가 있는 테이블로 시선을 주었다.
"여기 맥주 큰 잔으로 인원수대로 주시고, 수르카에게는 오렌지 주스 부탁합니다. 안주는 어두운 숲 꼬치구이 정식이 괜찮겠군요. 물론 빨리해 주시겠죠?"
찡긋.
음료 주문을 하면서도 본능적으로 눈웃음을 짓는 제피!
여성들에게는 어떤 경우에라도 친밀도를 끌어 올릴 수 있는 재능의 소유자였다.
잘생긴 외모에 자신감 넘치는 행동, 소소한 부분까지 관심을 가져 주었으니 쉽게 호감을 얻는다. 물론 그에 대한 부작용도 심하게 있었다.
화령이 고개를 저으며 싱긋 웃었다.
"제피 님."
"예?"
"아직 덜 맞았네요."
"커헉!"
검치 들에 의해 동네북이 되어 버린 제피!
여자들에게 관심을 보일 때마다 검치 들이 지켜보고 있지는 않은지 몸을 떨어야 했다.
그렇게 선술집에서 주문까지 마친 그들은 마법 유리에 집중했다.
퀘스트를 하면서 동료가 된 다인도 그들과 함께였다.
------
KMC미디어에서는 이번 특별 방송에 사운을 걸었다.
정규 방송까지 취소하고 생방송으로 진행하는 프로그램 위드.
실패하면 방송사의 이미지 실추는 물론이고 유무형의 타격도 엄청났기 때문에, 최고의 인력들이 투입되었다.
특수효과팀, 음향팀, 자막팀, 카메라 감독들이 총동원되어 방송 지원에 나섰다.
작가팀도 대거 동원되었지만, 시간 관계상 만들어진 대본이 없었다.
즉홍적으로 방송을 이끌어 가야 하기에 신혜민과 오주완이라는 검증된 진행자를 내세우고, 특별 게스트로는 이진건을 초대했다.
이진건은 로열 로드의 서열 400위 안에 드는 유명한 랭커다.
모험가로서 해결한 의뢰들도 상당수!
방송을 위해서 급하게 섭외한 초대 손님이었다.
데스핸드와의 조각품 승부와 빛의 날개 조각, 드워프 켄델레브의 물의 조각품 복원 등이 방송되었다.
조각사의 새로운 모습에 시청자들의 반응도 뜨거웠다.
ㅡ 아릅답습니다.
ㅡ 조각사의 재발견인가요? 이런 프로그램 자주 만들어 주세요.
ㅡ 외면받았던 직업들에 대해 다시 관심을 가져 줄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로열 로드에는 대다수가 선택하는 주력 직업군들을 제외하고도 많은 직업들이 존재한다.
종족에 따라 나뉘는 직업들과 숨겨진 직업들!
그런 직업들을 택한 시청자들의 호응이 좋았다.
ㅡ 본격적인 내용은 언제 방송되나요?
ㅡ 엠비뉴 교단은 나오는 건가요, 아니면 마는 건가요? 이래 놓고 나머지 부분은 내일 방송하느니 하는 건 아니겠죠?
ㅡ 연계 퀘스트의 내용을 빨리 보고 싶어요.
ㅡ 데스핸드와의 조각품 승부부터 연계 퀘스트의 일부분으로 추측됩니다.
ㅡ 그렇군요. 그런데 조각사가 어떻게 퀘스트를 하죠? 조각사의 전투력은 형편없을 텐데요.
ㅡ 데스핸드가 내놓은 조각품이 부활의 교단 상징물과 많이 닮아있네요. 이 부분에 대해서 아시는 분?
시청자 게시판에 토론과 추측이 무성했다.
최초의 난이도 S급 퀘스트였기에 어마어마한 관심을 받고 있으리라.
ㅡ 그런데 조각사 위드가 누구예요?
ㅡ 얼마 전에 프로그램 위드에서 방송을 하던 주인공입니다. 뱀파이어 왕국에도 여행을 다녀왔죠.
ㅡ 아, 그 시청률 낮던 프로그램...... 하지만 조각사는 몇 번 안 보였던 것 같아요.
ㅡ 모라타의 영주입니다.
ㅡ 피라미드와 빛의 탑을 만든 대조각사예요.
조각사 위드에 대해서 질문을 하는 사람들도 상당수.
여전히 조각사 위드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많았다. 빛의 탑이나 모라타는 알지만, 정작 조각품을 만든 사람의 이름은 듣고 나서도 무심코 금방 잊어버리는 것이다.
창작자로서의 안타까운 숙명과도 같은 것!
신혜민은 입가에 살짝 미소를 지었다.
전신 위드라고 하면, 게임 방송을 보금이라도 본 사람은 누구나 다 안다.
마법의 대륙의 절대자에 이어서 로열 로드에서도 강렬한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는 카리스마 넘치는 존재.
인지도나 명성만으로 놓고 본다면 헤르메스 길드를 이끌고 있는 바드레이에 근접한 수준이었다.
'그분이 전신 위드라고 밝혀진다면 어떤 반응이 나올까?'
걱정은 조금도 되지 않았다.
시청자들의 반응은 보나마나 방송국 홈페이지게 과부하가 걸릴 정도로 폭발적일 테니까!
신혜민은 진행자로서 이 비밀을 아직 자신만이 간직하고 있음이 미안할 정도였다.
방송국 내에서도 연출과 관련된 인원만이 위드의 진정한 정체를 알고 있다. 진행자 중의 한 사람인 오주완이나 특별 게스트인 이진건조차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쿠르소의 방송까지 내보낸 후 신혜민이 말했다.
"이번 퀘스트는 조각사에 대해 새로운 사실을 많이 알게 해주는 계기가 될 것 같은데요, 오주완 씨는 어떻게 여기세요?"
"놀랍지요. 북부 모라타 지방의 영주 그리고 멋진 조각품들을 만든 위드. 사실 조각사를 대표하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런 위드가 이번에는 전쟁 퀘스트를 하고 있다니 빨리 보고 싶어서 애가 탈 지경이네요."
"시청자 분들도 같은 생각이시겠죠? 그런데 엠비뉴 교단, 정체불명의 가공할 세력과 전쟁을 조각사 위드가 이길 수 있을까요?"
오주완이 재빨리 대답했다.
"글쎄요. 저로서는 어떻게 하려는지 예상하기도 어렵군요. 현재로써는 매우 어려워 보이는 게 사실인데,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할지 궁금합니다."
"일말의 희망을 버려서는 안 되겠죠?"
"퀘스트를 받아들였다면 최선을 다하리라 생각합니다. 퀘스트 와중에 어떤 힘이나 권한을 얻었을 수도 있고, 설혹 실패하더라도 도전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겠지요."
신혜민이 이번에는 이진건이 앉아 있는 왼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진건 씨는 이번 퀘스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진건은 웃으며 단정 지었다.
"당연히 실패할 겁니다."
"네?"
"제가 생각하는 엠비뉴 교단이 맞다면 무조건 실패입니다. 절대 성공할 리가 없습니다."
"......"
"말 그대로 도전에 의미를 두어야 되겠지만, 그조차도 그저 단순히 운이 좋아서 어려운 퀘스트를 입수한 것일 수도 있죠. 엠비뉴 교단? 정체가 알려지지 않았던 엄청난 세력인데요."
이진건은 가차 없이 위드를 깎아내리며 코웃음을 쳤다.
"훗! 더구나 퀘스트 당사자가 조각사라니. 조각술 분야에서는 나름 실력을 인정받는지 몰라도, 모험에 대해서는 경험도 일천하고 능력도 모자랄 것입니다. 실패가 당연합니다."
모험가로서 그리고 베르사 대륙에 이름이 널리 퍼져 있는 랭커로서의 자부심이 걸린 말이었다. 이진건은 자신이 아닌 사람이 퀘스트를 성공한다는 걸 상상도 하지 못할 정도로 편협한 구석이 있었던 것이다.
"어머. 정말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신혜민은 화사하게 웃었다.
평상시라면, 방송의 김을 뺀다고 해서 어디 쉬는 시간에 불러서 잔소리라도 실컷 했으리라.
도입부에 어느 정도 비판적으로 이야기를 하는 편이 시청자들을 실망시키지도 않고, 만약에 성공했을 때 극적인 효과를 일으킬 수도 있다. 하지만 이진건은 완벽하게 방송의 김을 빼고 있었던 것이다.
시청자들이 그 말을 듣고 완벽하게 실패할 거라고 결론을 내린다면 방송을 볼 의미도 사라질 테니까!
위드가 사용한 인도자의 권능 등에 대해서는 게스트라서 알려 주지 않았다고 해도 그렇다.
이렇게 중요한 방송에서 섭외에 실패하다니, 큰 사고가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신혜민은 오히려 웃음을 머금었다.
잠시 후면 콧대를 납작하게 눌러 줄 수 있을 테니까!
신혜민은 그가 지난번 방송에서 궁수와 레인저를 비하했던 사실을 잊지 못했다.
ㅡ 궁수요? 겁 많은 사람들에게는 괜찮은 직업이죠. 몬스터가 다가오기 전에 해치울 수 있으니까요. 모험가처럼, 어떤 위험이 있는지도 모르는 장소에 뛰어드는 것과는 수준이 달라요.
궁수와 레인저를 대표해서 응징하리라!
신혜민은 다짐하고 있었다.
사심으로 가득한 방송이었지만, 그녀조차도 위드의 전쟁 퀘스트가 어떻게 되어 가는지는 매우 궁금했다.
위드의 실시간 영상은 연출부에서 받아서 최대한 편집을 하고 있다. 따라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그녀는 볼 수 없었기 때문에, 어서 보고 싶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