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위드의 이상형
뱀파이어 왕국 토둠!
유린은 뱀파이어들을 그려 주면서 그림 그리기 스킬을 향상시켰다.
"어때요?"
"아주 좋군. 예쁜 아가씨, 우리 조용한 데 가서 와인이라도 한잔할까? 내 성으로 가서 짙은 커튼을 쳐 놓고 햇빛이 들어오지 않도록 하지. 그리고 관 속에서 아침까지 둘만의 시간을......"
"됐네요!"
뱀파이어들의 유혹은 매몰차게 거절했다.
뱀파이어들을 따라간다면 목덜미에 날카로운 송곳니가 콱 꽂힐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여기도 대충 다 둘러본 것 같네.'
유린은 토둠 여행을 마치기로 했다.
토둠에는 대가들이 그린 그림들이 많았다. 화가라면 꼭 한번 보고 싶어 하는 거장의 작품들이 여기저기 걸려 있다. 덕분에 그림 그리기 스킬을 상당히 올렸지만, 더 넓은 대륙을 여행하고 싶었던 것이다.
"다른 곳으로 움직일까?"
유린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챙이 넓은 모자를 눌러쓴 그녀가 물감 통과 스케치북을 챙겼다. 등 뒤에는 커다란 붓이 한 자루 매달려 있었다.
레벨 16.
좋은 무기는 물론 무장을 하는 것조차도 불가능한 레벨이었다. 이 붓은 순전히 뱀파이어들의 보물 창고에서 꺼내 온 장식용인 것이다.
넓적해서 색칠하기도 좋고 약한 몬스터들을 기절시키는 효과도 있다.
재질은 무려 미스릴!
붓털도 잘 빠지지 않을 정도로 내구성이 뛰어나서, 쓸모가 많았다.
"그럼 가 볼까?"
유린이 땅바닥에 그림을 대충 슥슥 그렸다.
그녀가 그린 배경은 페일 등이 술을 마시면서 위드의 전투 영상을 보고 있다는 선술집이었다.
페일과 동료들의 모습을 그리고, 탁자와 몰려 있는 사람들, 선술집의 배치 등을 그린다.
가 본 적 없는 지형으로 움직일 때는 상당히 정확하게 표현을 해야만 한다. 조금이라도 지형이 달라지면 완전히 엉뚱한, 전혀 다른 장소로 이동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이 있는 근처로 이동할 때에는 그 사람의 묘사를 정확히 해야 했다.
동료들과 장소까지 대략적으로 그리면 그림 이동술을 펼칠 수 있다.
선술집의 풍경을 그린 유린은, 일행의 테이블의 빈자리에 자신이 앉아 있는 장면을 그렸다.
그리고 그 후에는 선술집 안에 있었다.
"캬아. 킹 히드라가 나왔다!"
"최고다! 진짜 조각사 맞아? 저 두둑한 배포가 보통이 아니잖아, 정말."
선술집은 음식과 맥주를 주문하는 소리로 귀가 울릴 만큼 시끄럽고, 떠들썩한 응원의 열기까지 피어 있었다.
유린이 갑자기 나타났지만 관심을 두는 이들도 없다.
"어서 와."
"언니도 잘 있었어요?"
유린을 가장 먼저 환영해 주는 건 역시 화령.
그녀를 필두로 해서 오랜만에 보는 이리엔, 로뮤나, 수르카 등이 인사를 건넸다.
"지금까지 토둠에 있었다니...... 진작 나오지 그랬어."
"그려 보고 싶은 게 많아서요. 그림 퀘스트를 하느라 바빴거든요. 이제 나왔으니 맛있는 거 많이 사 주셔야 돼요, 언니."
"응. 뭐든 사 줄게."
화령과 유린은 죽이 척척 맞았다.
위드의 동영상을 보면서도 부지런히 수다를 떤다.
이리엔과 로뮤나도 수다라면 한몫하는 편이라서, 여자들의 대화는 끝이 없었다.
"장비가 바뀌셨네요?"
"응. 저번 건 너무 노출이 심했잖아. 이번에는 우아한 복장을 골랐어. 어때, 괜찮니?"
"아주 예뻐요. 귀걸이는 어디서 산 거예요?"
"잡템이야. 고블린용품인데, 잘 어울려?"
"정말 잘 어울려요."
다인도 유린에게 먼저 인사했다.
"난 일행의 샤먼으로... 다인이야. 잘 부탁해."
"저도 잘 부탁해요, 언니."
다인도 낯가림이 심한 편이었지만, 이들이 워낙 좋은 사람들이라서 금세 서먹함을 풀고 지내고 있었다.
인사를 나누고 수다를 떨면서 모험 동영상을 보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화령의 입에서 튀어나온 질문.
"유린아, 네 오빠는 어떤 여자를 좋아해?"
"네?"
"그러니까... 취향이나 성격, 외모 등, 어떤 여자를 좋아하는 거야?"
"이상형을 묻는 거예요?"
"응. 동생이니 오빠에 대해서는 잘 알지 않니?"
전투 동영상으로 인해서 선술집은 시끌벅적했지만, 유린이 있는 테이블만큼은 대화에 더 집중이 되었다.
여자에 대해서는 지나치리만큼 관심을 보이지 않던 위드의 이상형.
"저도 잘 몰라요."
"왜? 오빠가 여자 친구 사귀어 본 적이 없니?"
화령의 눈은 유난히 반짝거렸다.
"제가 알기로는 없어요."
"그랬구나. 그래도 좋아하는 이상형은 있을 거잖아."
"대충 알기는 하지만 어떻게 설명해야 될지 모르겠어요."
"예를 들어 나 같은 여자는 어때?"
화령이 환하게 웃으면서 물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잡지에서 가장 연애하고 싶은 여자 순위 1위, 결혼하고 싶은 여자 1위를 차지한 그녀!
자신감과 당당함, 매력이 넘치는 화령이었다.
유린은 미안한 듯이 작게 고개를 저었다.
"언니는... 아마 오빠 이상형은 아닐 거예요."
화령은 금세 시무룩해져서 물었다.
"내 어떤 면이 모자라니?"
일행은 경악했다.
감히 어떻게 화령을, 그녀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단 말인가.
대체 어떤 중대한 이유 때문에!
과거의 아픈 사연일까? 혹은 화령이 정상급의 연예인이기 때문에 스캔들에 휘말리는 것이 걱정되어서?
"언니, 일 년에 옷 몇 벌 사요?"
"한 쉰 벌 정도. 협찬받는 옷도 많아."
"우리 오빠는 옷 사는 돈을 제일 아까워해요."
명품 향수를 뿌리고 명품 구두, 명품 옷 등을 입고 있는 화령은 절대 위드의 이상형이 될 수 없었던 것!
"그럼 나는?"
이리엔이 맑게 웃으면서 물었다.
유린과는 귓속말 등을 통해서 친해져 있었기에 반쯤은 장난삼아 물은 것이었다.
페일과 제피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리엔이라면 남자들이 싫어할 수 없으리라. 헌신적이고 착하고 검소하고 여성스러운 성격에, 외모 또한 예뻤다.
"언니도 이상형은 아닐걸요."
"왜?"
"착한 성격 때문에 나중에 사기라도 당할 것 같다고 싫어할 거예요."
"......!"
로뮤나도 물었다.
"나는 어떠니?"
"언니는 똑 부러지고 야무진 성격이니까...... 근데 전공 때문에......"
"내 전공이 어때서?"
"음대생이잖아요. 우리 오빠는 음악 하면 돈 많이 든다고 싫어하거든요."
예체능 계열에 대한 뿌리 깊은 편견!
화령이 시무룩하게 말했다.
"도대체 이상형의 여자가 있기는 한 거야?"
"우리 오빠는 사실 이상형은 생각도 안 할걸요. 취향 같은 것도 잘 모르고, 그냥 마음만 맞으면 될 거예요."
"좋아하는 마음이라."
유린은 다인을 보면서 말을 이었다.
"제 생각에 사실은 다인 언니가 오빠의 이상형에 가장 가까울 것 같아요."
"왜?"
다인이 즐겁게 웃었다.
언젠가 천공의 섬 라비아스의 동굴에서 사냥할 때 위드가 그녀에게 말한 적이 있었다.
ㅡ 네가 내 이상형이야.
무수히 많은 밀담들을 나누던 그때에, 이상형이란 말도 들었던 것이다.
"정말 말해도 될지는 모르겠지만......"
"괜찮아. 말해 봐."
"언니, 긴 생머리인데 어떻게 관리해요? 미용실에 자주 가세요?"
"아냐. 원래 머릿결이 좋은 편이라서 몇 년째 그냥 쭉 기르고 있어."
"반지나 귀걸이, 액세서리 싫어하죠?"
"응. 금속류의 거추장스러운 거 착용 안 해."
"역시! 옷도 수수하게 입는 걸 좋아하는 편이죠?"
"마트에서 주로 사 입어. 이월 상품들로만!"
외모상으로 완벽한 위드의 이상형!
다인도 대답을 하던 와중에 그 사실을 깨닫고 안색이 창백하게 변했다. 도대체 왜 위드가 그녀에게 참 예쁘다고, 이상형이라고 말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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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드는 야만족들과 함께 전광석화처럼 성벽을 점거했다.
언데드들이 이미 요새 안쪽까지 밀고 가서 성벽은 비어 있는 상태!
위드는 하이 엘프 예리카의 활을 꺼냈다.
"바람의 정령"
바람의 정령이 지원해 주는 화살은 눈 깜짝할 사이에 날아서 암흑 기사의 머리를 꿰뚫었다.
사르미어 부족이 외쳤다.
"우리도 화살을 쏴라!"
"화살통이 전부 빌 때까지 사격해! 우리 사냥꾼들이 활약 할 때가 왔다!"
사르미어 부족의 사냥꾼들이 활을 꺼내서 쐈다.
두 발, 세 발의 화살을 한꺼번에 쏘는데도 백발백중!
높은 곳에서 아래로 쏘아 대는 화살들로, 공성전의 이점을 역으로 이용하는 것이었다.
위드는 암흑 기사들만 집요하게 노렸다.
- 암흑 기사 벤슨을 화살로 제압했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하셨습니다.
밑에 바글바글하게 몰려 있는 암흑 기사들을 향한 화살 공격.
뷔페에서도 맛있는 음식에 먼저 손이 가기 마련이다.
"고기 뷔페에서는 무조건 삼겹살이나 불고기지!"
빨리 익는 고기들로 배를 채워야 된다.
위드는 월급을 받으면 여동생과 함께 고기 뷔페에도 갔었다. 구역질이 치밀 정도로 잔인하게 고기를 먹고 일어선다.
배가 불러서 걸음을 떼기 힘들 때의 포만감. 그때의 기억만큼 아름답고 평화로웠던 게 없다.
위드의 청소년 시기의 보석 같은 추억들.
"몬스터들이 널려 있구나!"
충분히 뷔페를 떠올릴 수 있는 상황이었다.
지친 적들을 공략하면서 올리는 경험치와 공적치!
일반 병사들은 화살 값도 안 나오니 가급적 피했다. 굳이 위드가 맞히지 않더라도 사르미어 부족의 화살들이 비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적들이 나타났다."
"화살을 막아야 하는데......"
엠비뉴 교단의 군대는 위드와 사르미어 부족에게 반격을 가하고 싶었지만 언데드 군단이 막고 있어서 엄두도 낼 수 없었다.
성벽 위라는 천혜의 지형에, 언데드 군단의 머리 위를 넘어서 화살을 날린다.
언데드의 본의 아닌 보호를 받고 싸우는 셈이었다.
이처럼 예측하지 못한 화살 공격으로 인해 엠비뉴 병사들의 피해가 속출했다.
죽은 병사들은 순식간에 언데드로 되살아난다.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언데드들.
팽팽하던 전투의 균형이 일시에 깨지면서 언데드 군단이 밀어붙이는 모습이었다.
베자귀 부족의 용사들이 칼로 방패를 두들겼다.
"우리도 싸우고 싶다."
위드는 묵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의 상황은 화살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었기 때문.
엠비뉴의 군대가 많이 약화되었을 때 끝장을 봐야 했다.
"사르미어 부족 일백을 주겠다. 그들과 함께 우선 내성으로 향해라!"
"내성?"
"성벽을 우회해서 안쪽 성으로 들어가라. 아마도 그곳에는 엠비뉴 교단의 마법사와 사제 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을 죽여라!"
위드는 조각술을 하면서 단련된 관찰력으로 인해서 요새의 구조를 대충이나마 파악했다.
엠비뉴 교단이 아직까지도 견고하게 버틸 수 있는 근본적인 힘은 사제들 때문이다. 신성 마법과 회복 마법에 의하여 병사들이 힘을 내서 싸운다.
그들이 쉬고 있을 장소를 급습해야 했다.
그러면 더 이상 병사들의 회복이 이루어지지 않을 테고, 이무기와 언데드들의 독기도 막지 못하여서 무너질 것이다.
아마도 암흑 기사들이 사제들을 보호하고 있을 테지만, 베자귀 부족이라면 믿을 만했다.
"마법사와 사제 들이 어디 있는지 알지 못하는데."
"사르미어 부족의 추격술이 도움이 될 것이다. 누렁이 너도 따라가."
세 부족의 특성까지도 감안해서 내리는 명령.
"누렁아, 네가 선두에서 길을 열도록 해."
음머어어어!
데스 나이트 반 호크를 소환하여서 지휘를 맡기고 싶었지만, 바르칸 데모프가 근처에 있는 이상 그를 부를 수는 없다.
원래 주인이 있는 장소에서 훔친 물건을 사용하기는 껄끄러운 진리.
게다가 반 호크가 바르칸에게 돌아가 버리겠노라고 나서기라도 한다면 굉장한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우리에게 맡겨 줘서 고맙다."
"내성으로 간다."
베자귀 부족은 사르미어 부족의 사냥꾼들, 누렁이와 함께 성벽을 달려서 내성으로 진입했다.
누렁이의 시선!
성 내부에 걸려 있는 오래된 그림과 장식, 가구 들이 불에 타고 있었다. 경비병들과 광신도 무리가 불을 끄기 위해서 물을 뿌리는 중이었다.
음머어어어.
누렁이의 순박하던 눈동자에 분노와 짜증, 불쾌함이 어렸다.
누구는 비를 피할 축사도 없이 가난한데, 이렇게 크고 웅장한 성을 지어 놓고 살다니!
호전적인 눈빛으로 변한 누렁이가 바닥을 파헤쳤다.
미친 소가 된 누렁이는 전투마들의 속도를 훨씬 능가했다. 실제로 꽤 높은 레벨에 비해서 가진 능력이라고는 질주와 지치지 않는 지구력밖에 없다고 할 수 있었던 것이다.
파바바바바박!
예술품들이 걸려 있고, 불길이 휘감고 있는 복도를 내달리는 누렁이.
"미친 소다!"
"우리의 신전에 소 따위가 들어오다니! 어서 도축을 해 버려!"
"제물로 바쳐야겠다."
누렁이는 창을 들어 견제하는 광신도들과 경비병들을 머리로 받아 버렸다.
체중을 실어서 공격하는 황소의 전투 방법.
음머어어어!
누렁이가 울부짖으면서 길을 열었다.
미친 소 상태에서는 눈에 보이는 게 없었으므로 보이는 족족 머리로 받아 버리며 돌격한다.
소 머리 올려치기, 옆발 차기, 돌려 차기, 뒷발 차기까지 하는 엄청난 황소의 공격력!
온순하던 누렁이를 상상하지 못할 만큼 잘 싸웠다.
위드에게서 떨어지자 누렁이의 내숭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베자귀 부족과 사르미어 부족 일부는 그 틈을 타서 광신도들을 쉽게 제압했다.
엠비뉴의 병사들은 죽어도 다크 룰 마법에 이하여 언데드로 되살아난다. 언데드까지 처리해야 했기 때문에 전진하는 시간은 만만치 않게 걸렸다.
바르칸이나 페이로드, 킹 히드라, 블랙 이무기 등이 요새의 중앙 공터에서 격전을 벌이고 있어서 폭음으로 내성의 벽이 흔들리는 일도 잦았다.
정리가 끝난 장소에는 사르미어 부족의 사냥꾼들이 함정을 설치했다.
엠비뉴의 병사들은 내성의 통로를 통해서 이동하거나 뒤쫓아 오다가 큰 피해를 입어야 했다. 사르미어 부족의 함정 설치 기술이 내성에서 유용하게 쓰이고 있는 중이었다.
사제 대기실은 사르미어 부족이 발견했다.
"적들의 침입이다."
사제들과 암흑 기사, 병사들이 항전했지만, 베자귀 부족은 큰 피해를 입으면서도 1명도 남겨 놓지 않고 깨끗하게 제압했다.
암흑 기사들은 숫자가 줄 만큼 줄어 있었고, 무엇보다 사제들의 신성력이 다했다.
지쳐 있는 기사들은 방패를 들 힘도 없어서 원거리의 화살공격에 속수무책.
사르미으 부족의 화살 공격과 베자귀 부족의 용맹한 돌진으로 끝을 낼 수 있었다.
엠비뉴 교단의 사제들 200여 명이 살육당하면서, 더 이상 여유 병력이 남지 않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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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드는 야만족들과 함께 엠비뉴 교단의 병력을 향해 화살을 쏘면서 톡톡히 성과를 올렸다.
늘어난 언데드 군단은 성의 중심부로 달려가고 있었다.
스켈레톤과 데스 나이트 들의 질주.
"바르칸과 함께 싸울 셈이로군."
성의 중심부에서는 바르칸, 킹 히드라, 이무기, 페이로드 등이 대혈투를 벌이고 있다.
언데드들은 바르칸의 명령에 따라서 킹 히드라와 이무기, 페이로드 등을 향해서 덤볐다.
어느 한쪽이 수세를 보일 때도 있었지만 쉽게 승부가 나지는 않았다.
킹 히드라와 이무기, 바르칸은 상처를 입어도 매우 빨리 회복해 버린다. 생명력과 방어력도 높다.
대신관 페이로드의 경우에는 신성 보호막 때문에 웬만한 공격들은 그대로 중화해 버린다.
바르칸과 이무기의 마법도 중화하고, 언데드들은 근처에도 가지 못한다.
킹 히드라는 머리를 뻗어서 사방을 공격하느라 집중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대로라면 끝도 없겠어."
위드는 결단을 해야 할 시점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천하사분지계의 단점은, 한쪽이 약해지더라도 다른 쪽으로 공격이 집중되어서 결판을 내기 어렵다는 점이다.
"시간이 없다. 더 오래 끈다면 누가 먼저 무너질지 몰라. 페이로드도 버티지 못하겠지만, 바르칸이 승리하거나 이무기가 남았을 때에는 정말 처치 곤란하지."
바르칸의 언데드 군단이나 비행하며 마법을 펼치는 이무기, 높은 생명력을 가진 킹 히드라와 싸우기란 매우 까다롭다.
이무기의 날개가 꺾인 지금이 기회였다.
위드는 안식의 동판을 꺼냈다.
"죽. 음. 의. 선. 고!"
녹슬고 깨져서 금이 간 동판에서 암흑의 기운이 몰려나오더니 요새 내부로 향했다.
내구력이 떨어져 있으니 여러 번 사용할 수는 없다.
위드는 킹 히드라, 대신관 페이로드, 리치 바르칸, 블랙 이무기를 향해 골고루 선고를 내렸다.
그들의 이마에 검붉은 낙인이 찍혔다.
- 킹 히드라에게 죽음의 선고를 내렸습니다. 하루 동안 생명력 회복과 신체 재생 능력이 봉인됩니다.
- 대신관 페이로드에게 죽음의 선고를 내렸습니다. 하루 동안 생명력과 마나 회복, 체력 회복이 되지 않습니다.
- 리치 바르칸 데모프의 생명력 흡수, 마나 흡수 능력이 하루 동안 봉인 됩니다.
- 이무기 프레이키스의 생명력 회복과 마나 회복이 하루 동안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 안식의 동판 내구도가 4 남았습니다.
생명체들에게는 치명적인 제약을 가하는 죽음의 선고!
그 대가로 안식의 동판의 내구도는 깨지기 직전의 상황이 되었다.
위드는 안식의 동판을 다시 사용했다.
"훼손된 망자들이여, 너희의 진정한 주인을 따르라!"
엠비뉴 교단의 하수인이 되어서 언데드와 킹 히드라 등과 싸우던 마물들!
마물들이 반란을 일으켜서 페이로드의 말을 듣지 않았다. 안식의 동판으로 인하여 위드의 명령을 따라 페이로드의 주변을 지키는 엠비뉴 교단의 병사들을 공격했다.
- 안식의 동판 내구도가 3 남았습니다.
검붉은 낙인이 찍힌 이무기나 킹 히드라, 리치 바르칸 등은 막대한 손실을 입어야 했다.
리치 바르칸은 생명력과 마나 흡수가 끊어져서 무한에 가까운 마법 공격을 퍼붓지 못하게 되었다.
가장 큰 타격을 입게 된 것은 아무래도 킹 히드라였다.
킹 히드라는 9개의 머리를 움직여서 목표물을 잡아먹고 독을 뿜어낸다. 하지만 거대한 몸통은 거의 움직이지 않아서, 많은 공격을 허용하고 있었다. 엠비뉴의 병사나 언데드들이 휘두르는 창과 칼이 찌르고 베어도 금세 아물었는데, 더 이상 회복되지 않았다.
= 크아아아아아아!
킹 히드라의 비명이 요새를 쩌렁쩌렁하게 울린다.
마물들까지 전향하면서, 요새 안은 피아를 구분할 수 없는 대혼전의 상황으로 접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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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이군."
위드는 안식의 동판을 사용할 때만 해도 조마조마한 마음을 감출 길이 없었다.
깨지기 직전의 동판이 불량품은 아닐지.
세상에는 겉만 멀쩡하고 속은 믿지 못할 짝퉁이나 불량품이 1~2개가 아닌 것이다.
사용도 해 보기 전에 파손되어 버리면 어떻게 하냐는 걱정!
"역시 저렴하게 이용해 보는 맛이 있군."
안식의 동판을 사용하고 나서야 안심이 되었다.
그러나 방심은 금물!
요새의 탑들을 무너뜨리면서 거대한 생명체가 덤벼들었다.
킹 히드라.
이 모든 사건의 원흉이라고 할 수 있는 위드를 발견하고 공격해 오는 것이다.
= 너를 죽이겠다.
언데드들을 주렁주렁 매단 채 굉장한 기세로 덤벼 오는 킹 히드라.
위드는 혀를 찼다.
그새 견적이 상당히 하락해 있었다.
"가죽은 제값을 받기는 힘들겠군."
킹 히드라의 머리는 5개밖에 남지 않았고, 몸통도 상처투성이였다. 재생 능력이 떨어지고 난 이후로 이무기에서 물어뜯기고 바르칸의 저주에 휩싸여서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다.
빈사 직전의 초대형 몬스터.
이에 비해서 위드는 불사조와 빙룡이 건재했고, 야만족들도 5,700명이 넘게 남아 있다.
위드가 손을 들었다.
"화살 공격!"
사르미어 부족이 킹 히드라를 향해 화살을 쏘았다. 나선형으로 끝이 뾰족하게 갈려 있는 화살들이 빙글빙글 돌며 관통력을 높였다.
= 캬아아아아!
수천발의 화살 공격을 맞은 킹 히드라가 울부짖었다.
결국 위드는 선언했다.
"너는 중고 가격도 포기했다."
킹 히드라의 가죽은 두껍고 무겁다. 그러면서도 귀한 편이라 가죽 갑옷을 만들 때 잘 쓰이는 소재는 아니다.
사제나 정령술사, 소환술사, 마법사 들이 묵직한 킹 히드라의 가죽을 입고 싸울 수가 없는 것이다.
방어력도 미스릴을 섞은 철판 갑옷보다는 떨어져서 거래가 쉬운 품목은 아니었다.
"기껏해야 겨울용 양말이나 만들면 적합할 소재. 모두 공격해라!"
위드는 잔인한 명령을 내렸다.
빙룡이 대뜸 날아들어서 킹 히드라의 목덜미를 물어뜯었다.
수백 미터나 되는 거구!
빙설의 폭풍이 모이고 뭉쳐서 만들어진 천연 얼음덩어리를 통째로 조각해서 탄생한 빙룡이 묵직한 무게로 킹 히드라의 돌격을 저지헀다.
사르미어 부족의 화살과, 임무를 완수하고 돌아온 베자귀 부족의 칼질, 레키에 부족의 주술 공격들이 킹 히드라를 두들겼다.
= 야만족들! 너희 따위가 감히!
그럼에도 킹 히드라는 용맹하게 날뛰었다.
빙룡에게 묶여 있는 동안에도 꼬리를 휘두르며 머리들을 쏘아 내서 야만족들을 집어삼킨다. 빙룡의 몸을 머리통으로 칭칭 감고 누르기까지 했다.
괜히 초고레벨 보스 몬스터가 아닌 것이다.
레벨 500대가 훨씬 넘는 그는, 이무기와의 싸움에 바르칸의 저주, 엠비뉴 교단의 공격에도 버텼었다.
위드는 잠시 기다렸다.
'저렇게 버텨 봐야 얼마 못 가서 죽겠지.'
일단 은 하이 엘프의 활을 꺼내서 쏘기만 했다.
킹 히드라는 중간 과정일 뿐, 아직도 싸워야 할 대상이 많은데 전력을 쏟아붓기 애매했던 것이다.
죽음을 거부할 수 있는 힘에 의해 살아나는 것도 한 번뿐이니 안전한 방법을 택하려고 했다.
지쳐 있는 킹 히드라가 알아서 죽기만을 기다릴 뿐!
베자귀 부족이 100명 넘게 잡아먹혔다.
= 너희 따위가 나를 죽일 수는 없다!
킹 히드라가 사납게 포효했다.
5개의 머리들이 하늘을 향해 입을 벌리고 고함을 지른다.
몸통에는 수천 발의 화살이 빼곡하게 꽂혀서 고슴도치나 다름없고 상처들이 벌어져 있는데도 죽지를 않는 것이다.
"역시... 그런 것이었나?"
위드는 굴하지 않는 몬스터의 위용에 혀를 찼다.
킹 히드라의 전설.
베르사 대륙의 기록서에 따르면, 킹 히드라는 9개의 머리를 다 자르기 전에는 절대 죽지 않는다고 한다.
지금은 5개의 머리가 남아 있으니 그 머리들을 다 잘라야 한다는 것.
"그렇지만 킹 히드라의 생명력에도 한계는 있지."
죽음의 선고로 인해, 잘려 나간 머리통이 복원되지 않는다. 9개의 머리통을 안숨에 자르기를 정말 어렵겠지만, 지금은 불가능한 게 아니다.
위드는 빛의 날개를 펼치고 킹 히드라의 전면을 향해 날았다.
= 캬오!
킹 히드라가 머리를 뻗었다.
커다란 입과 무쇠도 씹어 먹을 것 같은 굵은 이빨이 보인다. 강한 산성의 침이 뚝뚝 떨어져서 바위를 녹인다. 목구멍을 통해서 넘어간다면 영락없이 죽은 목숨.
"주인, 피해라!"
빙룡이 의사를 전달했다.
킹 히드라와 몸싸움을 벌이는 도중이라서 위드를 구해 줄 수 없었다.
"주인님, 위험합니다."
"어서 피하십시오!"
"우리가 돕겠습니다!"
"돌아와라, 주인!"
불사조들과 누렁이의 의지들도 속속 전해진다.
한결같이 위드를 걱정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조각품들이 아는 위드란, 갈구고 괴롭히고 정작 전투가 벌어지면 떡고물만 쏙쏙 빼먹는 정도!
엠비뉴 교단의 추격대와의 싸움에서는 다른 모습을 보여 주기도 했지만, 정면 승부를 벌인 탓에 목숨의 위기를 넘기기도 했다.
생명력과 마나의 한계상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그 때문에 빙룡을 제외한 조각 생명체들은 위드를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여겼다.
'이건 내 싸움이야.'
위드는 날개를 접고 공중에서 뚝 떨어졌다.
킹 히드라의 머리통을 피한 그는 빙룡의 곁으로 다시 날아갔다.
= 캬오오오오!
킹 히드라의 머리통들이 살모사처럼 움직이면서 위드를 노린다.
분노한 4개나 되는 머리통들이 위드를 향해서 쏘아지는 것이다.
빙룡이 날개를 펼치면서 저지하려고 했지만 2개나 되는 머리들이 위드를 위협했다.
위드는 공중에서 날면서 아찔하게 그 머리통들을 피했다.
불과 1미터나 2미터의 여유도 없다.
거리가 가까운 탓에 미리 짐작하고 피하지 않는다면 불가능한 몸동작.
"빙룡아, 해야 될 일이 있다."
빙룡은 킹 히드라의 목덜미를 문 채로 의지를 전달했다.
"이 급한 마당에 무슨 일이냐, 주인."
"머리통들을 놔줘."
"그러면 주인을 노릴 것이다."
"괜찮아. 어서 놔줘."
빙룡은 위드를 믿었다.
북부에서 함께 전투를 하고 본 드래곤을 사냥한 것도 위드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으리라.
킹 히드라는 머리통들이 자유로워지자마자 강한 적개심을 가지고 위드를 공격했다. 바로 앞에 있는 빙룡보다는 원흉인 위드가 주적이었다.
= 키야오!
킹 히드라의 위협적이고 현란한 공격들.
위드는 가까이 밀착해서 그 아찔한 공격들을 피해 냈다.
빙룡과 킹 히드라의 몸통의 아랫부분을 지나고 겨드랑이를 통과하면서 회피했다.
그렇게 다 피하고 나니 킹 히드라의 길쭉한 5개의 목들이 고성능 세탁기로 돌린 빨래처럼 엉켜 있었다.
위드는 빨래방에서 아르바이트했던 경험을 떠올렸다.
10만 원이 넘는 좋은 옷들을 잔인하게 자동 세탁하던 무지한 사람들!
피죤만 넣으면 뭐든 다 해결되는 줄 아는 커다란 착각!
"빨래는 역시 손빨래가 최고지."
위드는 목덜미에 앉아서 검을 치켜들었다.
"축복!"
착용하고 있는 프에야의 대신관의 반지에 빛이 어리더니 온몸을 덮었다.
- 대신관의 축복을 사용하셨습니다. 20분 동안 육체적인 능력이 강화됩니다.
유지시간은 짧지만 결정적인 한때를 위한 축복.
하급 악마 아이스 데몬을 베었다는 명검이 히드라의 목덜미로 떨어졌다.
"소드 카이저!"
최강의 공격 기술.
위드의 검이 실타래를 자르듯이 엉켜 있는 킹 히드라의 목을 갈랐다.
물론 굵은 가죽은 한 방에 베이지는 않았다.
"소드 카이저!"
일점 공격술에, 장작을 패듯이 검을 내리친다.
"열 번 베어 안 잘리는 모가지 없다!"
위드는 생명력과 마나를 아끼지 않고 쓰면서 킹 히드라의 목을 쳤다.
빙룡의 거체에 묶여 있는 킹 히드라의 목들이 푸른 피를 뿜어내면서 하나씩 잘려 나갔다. 그리고 다시 되살아나지 못했다.
킹 히드라의 목 9개가 모두 떨어지고 난 후였다.
- 레벨이 오르셨습니다.
- 레벨이 오르셨습니다.
- 노프렌 늪지를 장악하고 있던 흉포한 몬스터 킹 히드라가 영원한 안식에 들어갔습니다.
- 위대한 업적으로 인하여 명성이 350 올랐습니다.
- 힘이 3 상승하셨습니다.
- 체력이 10 상승하셨습니다.
상처투성이의 킹 히드라를 마무리만 했는데도 2개의 레벨이 올랐다.
위드는 물론해야 할 일도 잊지 않았다.
전리품들을 챙겨야 하는 것.
- 대형 사파이어 크리스털 원석을 획득하셨습니다.
-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운 깃털 모자를 획득하셨습니다.
- 소피아의 거창을 획득하셨습니다.
- 오래된 금화 3,140개를 얻었습니다.
보통 금화들은 1골드와 같은 비율로 교환된다. 하지만 오래된 금화는 골동품적인 가치까지 있었다.
"나쁘지 않은 수익이군."
다른 아이템들도 확인해 보아야 하지만 아직은 전투가 끝난 게 아니다.
"누렁아, 이리 와!"
위드는 누렁이를 부른 후에 조각칼을 꺼냈다.
샥샥샥.
킹 히드라의 가죽을 조심해서 들어내는 손놀림!
흠집이 많은 가죽이라고 해도 따로 쓸모가 있을지 몰라서 챙겨 두는 것이다.
위드는 심지어 킹 히드라의 머리통도 챙겼다.
- 킹 히드라의 잘린 머리 #1을 획득하셨습니다.
머리 5개!
보통 몬스터의 사체는 쓸 수 있는 부분만 남기고 사라지기 마련인데 그대로 남아 있어서 일단 줍고 본 것이다.
킹 히드라의 가죽과 거대한 머리통들은 누렁이가 끌도록 만들었다.
"역시 몬스터가 크니 얻을 것도 많군."
어부가 고래를 낚았을 때의 기쁨이 이럴 것이다.
다 늙은 노인이 고래를 낚은 이야기.
거친 풍랑을 만나고, 상어들의 습격 등으로 인해서 바다에서 고래의 살점들을 잃어버리고 육지로 돌아왔다는 명작 소설도 있다.
얼마나 아쉬움이 컸으면 세계인의 심금을 울릴 수 있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