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달빛조각사 16권 : 8. 전장의 사령관 (57/520)

8. 전장의 사령관

위드와 야만족 무리, 빙룡과 불사조는 휴식을 취했다.

원래의 계획대로라면 공적치나 전리품을 위해서라도 사냥감을 더 많이 노렸으리라.

하지만 사르미어 부족이나 베자귀 부족의 체력이 떨어지고, 레키에 부족은 정신력 고갈로 실신까지 했기에 부득이한 휴식이었다.

위드는 붕대를 들고 베자귀 부족 사이를 뛰어다니며 치료에 나섰다.

"붕대 감기!"

상처 부위를 꽁꽁 감싸 주는 정성의 손길.

헌신적인 성자라서가 아니라, 전쟁터에 더 끌고 데려가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준비해 두었던 약초들은 금세 동이 났다.

베자귀 부족의 용사들은 덩치가 산만 한 데다 큰 부상이 많아서 어쩔 수가 없었다.

"누렁아, 약초가 모자라다. 침 좀 뱉어 봐!"

약초 대신 황소의 걸쭉한 침.

그렇게 부대를 추스르고 나서 다시금 전진했다.

바르칸과 이무기, 페이로드의 싸움은 종반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 키야오오오오오!

"너를 죽여서 언데드로 만들겠다."

"엠비뉴의 성스러운 땅을 더럽힌 너희를 단 하나도 용서하지 않으리라."

상대를 향한 강한 적개심으로 처절한 전투를 벌이고 있는 그들.

바르칸의 로브는 찢어져서 백골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대륙을 피와 시체로 뒤덮었던 고위 몬스터!

하지만 성검이 가슴에 꽂혀서 힘이 제약받고, 죽음의 선고로 인하여 생명력과 마나 흡수도 불가능하게 되었다. 초라한 신세가 되었다고 할 수 있었다.

"사악한 언데드여, 네가 잠들어야 할 장소로 돌아가라. 턴 언데드!"

언데드 정화 마법!

엠비뉴 교단의 사제들이 펼치는 턴 언데드 마법이 바르칸에게 집중되었다.

"아직... 이곳에서 할 일이 남아 있다. 살아 있는 생명들이 너무 많다."

바르칸은 언데드들을 거느린 군주였다.

언데드들을 지휘하면서 엠비뉴 교단을 척결하려고 했지만 마지막까지 완강하게 버티고 있어서 쉽지 않았다. 더구나 이무기가 마법을 퍼부어 대고 있으니 언데드 군단의 피해도 크다.

바르칸의 육체에 마침내 문제가 생겼다.

가슴에 박혀 있던 성검에서 밝은 빛이 분출되었다.

쩌저저적!

두개골에는 큼지막한 균열이 발생하고, 몸에 두르고 다니던 데스 오라는 얇고 흐릿해졌다.

"이 검의 저주가......"

성검이 바르칸의 마나를 역으로 흡수하는 것이었다.

바르칸의 몸이 태양철머 밝은 빛에 휩싸였다.

"이... 더 버틸 수가 없구나. 이 검의 저주를 해제하는 날에는 기필코 복수를 하리라."

증오 어린 말들을 남겨 놓고, 더 이상 리치 바르칸도 성검도 남아 있지 않았다.

완벽한 소멸이 아닌 역소환!

리치 바르칸의 육체를 구성할 마나가 남아 있지 않아서 생명력을 봉인해 놓은 라이프 포스 베슬이 있는 장소로 돌아간 것이다.

리치 바르칸이 사라지고 나자 언데드들이 눈에 띄게 약화 되었다.

"꾸에엘?"

적을 상대하는 것을 잊고 당황하는 좀비들.

일부 스켈레톤들은 다시 뼈 무더기로 돌아가기도 했다.

둠 나이트들의 데스 오라도 약해져서 엠비뉴 사제들의 정화 마법에 픽픽 쓰러졌다.

날뛰는 유령체들과 무수한 언데드 군단의 방황.

"바르칸이 벌써 떠나다니 아쉽군."

위드는 입맛을 다셨다.

불사의 군단 수장 바르칸은 과연 명불허전이었다. 베르사 대륙의 역사서에 오를 정도의 언데드는 이쯤은 되어야 한다는 것처럼 굉장한 면모를 보여 주었다.

바르칸을 사냥하기 위해서는 그가 만드는 언데드 군단을 감당해야 하니, 웬만한 길드로서는 정말 엄두도 내지 못할 적!

"언데드들을 다루는 능력만큼은 리치 샤이어보다 훨씬 뛰어나군."

하급 언데드들도 대량으로 양산하여서 싸우게 하고, 그들의 능력을 보조해 준다.

죽음의 선고와, 가슴에 꽂힌 성검의 제약만 아니었다면 단신으로 엠비뉴 요새를 점령했으리라.

바르칸을 사냥할 수 있는 기회가 흔할 리가 없다. 휘화의 야만족들을 전부 희생시키는 한이 있더라도 승부를 보았을텐데, 가 버려서 아쉬울 뿐이었다.

바르칸이 그렇게 떠났지만 이무기의 상황도 썩 좋지 못했다.

상처투성이에, 날개가 잘려 날지도 못하는 데다 언데드와 암흑 기사 들이 칼질을 가하고 있다. 활동이 줄어든 이무기의 등 위에서 언데드와 암흑 기사의 전투가 벌어질 정도였다.

엠비뉴 교단 역시 상황은 이보다 나쁘기 힘들 정도였다.

남아 있는 사제가 수십도 되지 않았고, 암흑 기사들은 100명도 안 되어서 간신히 언데드 군단을 막고 있을 뿐!

대신관 페이로드가 신성력을 발산해서 언데드 군단을 밀어내는 덕에 그나마 버티는 수준이었다.

언데드 군단을 남기고 떠난 바르칸.

힘을 비축하며 생명력을 남기고 숨을 죽이고 있는 교활한 이무기.

침입자들을 몰아내려는 엠비뉴 교단.

이곳에 위드가 야만족과 조각 생명체들을 끌고 들어왔다.

= 원흉!

"천한 인간 주제에 바르칸 데모프 님을 소환하였더냐?"

"네가 이 모든 몬스터를 데리고 온 주범이로구나."

언데드의 대표는 둠 나이트 가운에 일인이었다.

위드는 이 세 무리로부터 맹렬한 비난을 받았다. 하지만 어깨를 활짝 펴고 꿋꿋하게 말했다.

"원래 인기인은 악플을 받는 법이지."

근거 없는 떳떳함!

위드가 이무기를 향해서 말했다.

"네가 더 강했으면 보기 싫은 적들 다 죽일 수 있었잖아. 그렇지?"

= ......

이번에는 둠 나이트였다.

"누가 가슴에 칼 꽂힌 채로 등장하래? 약하니까 바르칸도 역소환이나 당한 거잖아."

그리고 페이로드.

"너랑은 원래 적이었어. 누굴 원망하고 누구한테 억울해 하는 거야?"

아전인수!

끝없는 자기 합리화.

"역사는 승자만을 기억하는 법이지. 패자들의 비겁한 변명 따위는 신경 쓰지도 않아. 안 그러냐, 빙룡아."

"주인의 말이 맞다."

비열함에 있어서는 위드나 마찬가지인 빙룡!

"강한 자가 이기는 게 아니라, 이기는 자가 강한 것이다."

"과연 주인이다."

"똑똑하다."

주워들은 격언들을 인용하면서 빙룡과 불사조들의 호응을 이끌어 냈다.

죽음의 선고 유지시간은 아직도 10시간이 넘게 남았다.

하지만 시간을 끌어서 좋을 것은 없는 법!

바르칸이 남겨 놓은 언데드 군단도 수천이나 되고, 엠비뉴 교단의 사제와 페이로드, 이무기까지 있으니 전투는 끝난 게 아니다.

"쓸어버려!"

위드가 전투의 개시를 알리자마자 빙룡이 주둥이를 크게 벌렸다. 참아 왔던 숨을 한꺼번에 토해 내면서 쏘는 아이스 브레스!

순백의 브레스가 이무기와 언데드들이 몰려 있는 장소를 향해 쏘아졌다.

땅을 딛고 있는 채로 그 자리에서 얼어붙어 버린 언데드들.

이무기는 남은 한쪽의 날개로 몸을 감싸면서 막아 냈지만 언데드들은 버티지 못하고 얼음덩어리가 되었다.

브레스의 사정권에 들지 않은 언데드들이 돌격을 해 왔다.

"막아라!"

베자귀 부족의 용사들이 도끼와 망치를 휘드르며 방어에 나섰다. 스켈레톤의 뼈를 부숴 버리고, 좀비들을 도륙했다.

바르칸의 역소환 이후로 다크 룰 마법도 해제되어서, 언데드 군단은 더 이상 늘어나지 않았다.

"콜 데스 나이트 반 호크!"

으스스한 연기와 함께 마침내 등장한 데스 나이트.

"여기는... 싸워 볼 만한 적들이 많군."

"그럼 싸워라!"

데스 나이트는 둠 나이트 다섯과 호각을 이루면서 전투를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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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 히드라의 머리들이 잘렸을 때부터 KMC미디어는 축제 분위기였다.

"만세!"

"해냈다!"

실시간으로 전송되는 영상을 보면서, 강 부장은 자신의 일처럼 기뻐했다.

방송의 내용은 통곡의 강에서 조각품을 만들고, 수호 기사들을 데리고 엠비뉴 교단의 의식 방해를 하는 부분을 지났다. 빙룡의 등장에 이르러서 분당 시청률은 이미 27.3%를 넘어서 기록적인 수준이었다.

로열 로드의 게시판에는 조각사에 대해서 물어보는 질문들이 넘쳐 났다.

빙룡의 출연으로 인하여 전신 위드와의 관련성을 물어보는 질문들도 수백 개!

"남은 잔당만 싹 쓸어버리면 되겠구나."

대신관 페이로드만 하더라도 초고위 몬스터였으니 방심할 수 없는 처지!

언데드 군단이나 이무기도 남이 있으니 전투는 끝난 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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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드가 가장 경계하는 건 엠비뉴의 사제들이었다.

"페이로드는 회복이 이루어지지 않지만, 저 사제들이 힘을 되찾으면 위험해!"

죽음의 선고는 대신관 페이로드에게만 영향을 미친다. 암흑 기사와 사제 들은 시간만 지나면 몸 상태를 정상으로 돌릴 수 있는 것이다.

"저들을 제압해야 돼."

엠비뉴 교단을 공격하기 위해서는 밀려드는 언데드부터 정리해야 했다.

"베자귀 부족, 선두에! 사르미어 부족, 중군에 포진하라! 레키에 부족은 후방에서 대기한다!"

위드의 사자후에 따라서 야만족들이 척척 돌격 진형을 갖췄다. 세 부족의 조합을 이끌어 내서 전투에 쓰려고 하는 것이다.

동맹 부족들은 요새를 위한 공성전에는 바람직하지 않은, 피해가 너무 큰 조합이었다.

사제나 성직자도 없으니 근본적으로 소모품으로밖에 여겨지지 않던 동맹 부족들.

그러나 지금처럼 이무기와 킹 히드라가 날뛰면서 부숴 놓은 잔해들이 많은 지형에서는 최적의 효율을 갖춘 조합이 되었다.

"화살과 주술로 타격을 입힌다. 공격!"

사르미어 부족의 화살과 레키에 부족의 주술 공격이 언데드 무리에 작렬.

진형이 흐트러졌을 때에 베자귀 부족이 한 걸음씩 전진했다. 언데드들이 겁 없이 덤벼들었지만 철벽처럼 굳건하게 버텼다.

위드의 날카로운 눈매가 전장 전체를 주시했다.

"고지부터 점령한다. 사르미어 부족은 우측 능선을 일제 사격하라!"

화살의 집중 공격이 지난 후에 베자귀 부족이 지역 점령.

지형을 유리하게 선점하고 방어선을 구축하면서 언데드들을 사냥했다.

"세르피크가 이끄는 부대, 20보 뒤로 후퇴!"

위드는 언데드들을 더 압박하는 대신에 야만족 무리를 전체적으로 톱니바퀴처럼 만들었다.

"베자귀 부족 쥐도 빠지고 사르미어 부족 전면에. 일제사격! 사르미어 부족 오른쪽으로 돌고, 레키에 부족이 주술로 공격하라. 주술 공격이 완료되는 즉시 베자귀 부족 일제 돌격!"

진격과 퇴각을 유기적으로 지시하면서 전군을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만든다.

부대 전체가 회전하면서 지형에 적응해 신속하게 고지들을 점령하고 이동한다.

높은 체력과 기동성을 바탕으로 한 톱니바퀴 전술.

지휘관을 잃어버린 언데드 군단은 화살과 주술 공격, 베자귀 부족의 도끼 공격에 처참하게 궤멸되었다.

희생을 최대한 줄이는 일반적인 전술처럼 보였지만, 결과로 드러나는 끔찍한 파괴력이 숨어 있었다.

감정이 제거된 언데드들이 아니었다면 공황 상태에 빠져 추가적으로 큰 피해를 입었으리라.

"이길 수 있다."

"우리는 승리한다!"

위드가 이끄는 야만족 부대의 사기는 절정을 달렸다.

"빙룡과 불사조들은 왼쪽을 타격하라!"

빙룡과 불사조들은 언데드들이 뭉쳐 있는 곳에서 활약을 하면서 적들을 흩트려 놓았다. 별동대 역할을 해 줌으로써 언데드들이 신경이 분산되게 하는 것이다.

바르칸이 떠나고 난 이후로 조직적인 지휘 기능이 붕괴된 언데드들은 도저히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속수무책으로 몰아간다.

위드가 지휘하는 야만족 부대는 이 순간 최강의 부대처럼 보일 정도였다.

"부대 분할!"

야만족들은 지능은 낮지만 전투적인 학습 효과는 상당했다. 일반 병사들보다도 빠르게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찾고, 임무를 수행한다.

위드는 3개의 톱니바퀴로 나누어서 언데드들을 상대했다.

3개의 톱니바퀴들이 서로 엇갈리면서 틈을 만들고, 언데드들이 끼어들면 분쇄해 버린다.

"끼요오오오오!"

"둠 나이트들이여, 전진하라!"

둠 나이트들을 선두로 언데드들이 밀고 들어왔다.

화살 집중, 주술 공격을 버티고 전진하면 어느새 목표로 삼았던 베자귀 부대는 훨씬 뒤로 퇴각해 있다.

톱니바퀴의 중앙에 끼어든 언데드 군단은 전방과 좌우에서 집중적인 공격을 당하면서 전력이 고갈되었다.

베자귀 부족의 용사들을 정면 승부를 피하면서 체력을 아꼈다. 언데드 군단에 균열이 보이면 그 용맹을 떨칠 기회가 주어진다.

화력의 집중과 방어의 분산, 거리와 지형을 최대로 이용하는 전술!

언데드 무리가 삽시간에 녹아났다.

"길이 열렸다! 가자!"

위드는 누렁이와 함께 언데드들 사이를 달렸다.

목표는 대신관 페이로드!

빙룡과 불사조가 공중에서 호위하고, 톱니바퀴 진형에서 이탈한 400명의 베자귀 부족이 함께 돌격대를 맡았다.

언데드 무리는 소규모로 나뉘어서 더 이상 위협이 되지 못했던 것.

언데드들과 싸우는 동안에 사제들이 상당히 회복했을 테니 조급할 수밖에 없었다.

'암흑 기사들은 얼마 남지 않았었어.'

사제들의 특기인 축복이나 치료 등의 도움을 활용하기에는 암흑 기사들의 숫자가 너무 적다.

베자귀 부족에게 맡겨 놓고 사제들을 친다는 계산!

암흑 기사들이 보였다.

"사르미어 부족 화살 공격! 레키에 부족도 지원하라!"

위드의 사자후가 터져 나왔다.

사르미어 부족이 쏜 화살이, 암흑 기사들이 막고 있는 장소로 비처럼 떨어진다.

레키에 부족의 부적술과 화염 주술 들도 엠비뉴의 사제들을 향해서 사용되었다.

베자귀 부족은 방어벽을 치고 있는 암흑 기사들을 향해 돌진!

축복을 잔뜩 받고 좋은 무기와 방어구를 착용하고 있는 암흑 기사들은 무척이나 강했다. 하지만 베자귀 부족 역시 짧은 도끼를 휘두르며 응전했다.

위드는 누렁이를 탄 채로 암흑 기사들을 스쳐서 그대로 내달렸다.

베자귀 부족에 약간의 피해가 있더라도 그냥 통과할 작정이었다.

대신관 페이로드가 있는 장소를 향해서!

비만형에 배불뚝이인 페이로드가 신성 마법을 외웠다.

"세상 모든 것에 군림하는 엠비뉴 신이여. 저희의 육신을 바치나니 이 땅을 더럽힌 자들에게 지엄한 벌을 내리소서."

페이로드의 최후의 희생 주문.

 - 엠비뉴 교단의 대신관 페이로드가 스스로 몸을 바쳤습니다.

   엠비뉴 신의 동상이 균열을 일으킵니다.

위드가 고개를 들어 보니 요새의 중심부에 있던 엠비뉴 신의 동상이 무너지고 있었다.

12개의 팔을 가진 신의 동상이 수천수만 개의 파편들로 분해되어서 쏟아진다.

위드와 누렁이는 물론이고 언데드와 베자귀 부족, 사르미어 부족이 전부 공격 범위 안에 들어갔다.

피할 곳도 없이 떨어지는 동상의 파편들.

금속 조각들은 불길한 기운까지 내뿜고 있었다.

수백 미터에 이르던 동상의 크기와 무게를 감안한다면 초대형 재난이었다.

"안 돼!"

위드가 고함을 질렀다.

어떻게 아낀 동맹 부족인데 이렇게 손상시킨단 말인가!

위드야 죽더라도 죽음을 거부할 수 있는 힘에 의해 되살아 날 수 있겠지만 동맹 부족은 불과 수백 명도 남지 못하리라.

철근만 한 파편들이 무섭게 낙하하고 있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처럼, 피할 공간을 찾아보기 어렵다.

전천후 한우 누렁이도 죽게 되리라.

퀘스트 성공 직전에 끔찍한 피해를 입게 되는 것.

"조각 검술."

위드가 빛의 날개를 펼치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가 들고 있는 데몬 소드에서 환한 빛이 일어났다.

성공 여부에 대한 믿음은 전혀 없지만, 떨어지는 파편들을 검으로 쳐 낼 작정이었다. 어떻게든 누렁이라도 살리기 위하여, 죽는 순간까지 노력해 보려고 했다.

그때 뜨거운 무언가가 다가왔다.

"주인님, 저희가 막아 보겠습니다."

불사조 오형제가 날아와서 추락하는 동상의 파편을 넓은 날개로 감쌌다.

치이이이익!

수 미터에 이르는 파편들이 불사조들의 머리와 몸통, 날개에 작렬했다.

엠비뉴의 부정적인 신성력이 가득 담긴 동상의 파편은 초고열의 불사조들에게도 엄청난 타격!

불사조가 막는 넓은 범위에 무수히 많은 파편들이 추락하고 있었다.

 - 불사조 오가 생명력에 3,859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다른 불사조들의 영향으로 759의 생명력을 복구합니다.

 - 불사조 오가 생명력에 10,112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다른 불사조들의 영향으로 1,029의 생명력을 복구합니다.

 - 불사조 오가 생명력에 7,326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다른 불사조들의 영향으로 817의 생명력을 복구합니다.

......

"주인님 끝까지 지켜 드리지 못해서 죄송......"

 - 신성력에 의한 극심한 타격으로 불사조 오의 생명력이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불사조 1마리가 소멸되었다.

생명력이 높고 금세 회복되는 불의 속성을 가진 불사조였지만, 물리력과 신성력을 동반한 파편에 의하여 무력하게 소멸.

 - 불사조 사가 생명력에 2,905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다른 불사조들의 영향으로 315의 생명력을 복구합니다.

......

불사조 사도 파편에 의하여 죽었다.

불사조 삼과 이도 무수히 많은 파편들을 견디지 못하고 사라졌다.

위드의 눈앞에서 파편들을 막다가 사라진 불사조 4마리.

이제는 더 이상 불사조 오형제로 불리지 못하게 되었다.

"내 불사조들아!"

위드가 비통하게 울부짖으며 지상으로 떨어졌다.

불사조는 1마리만이 겨우 살았고, 미처 막지 못한 파편들이 동맹 부족들을 덮쳐서 절반이 넘게 희생되었다.

빙룡이 날개로 둘러싸서 막지 않았다면 피해는 더욱 컸으리라.

빙룡도 생명력이 삼분의 이 정도로 줄어 있었다.

그 대신 엠비뉴 교단의 암흑 기사와 사제들, 병사들도 파편에 의해 전멸했다.

= 크라라라라라라라! 내 너희를 징벌할 것이다.

이무기가 한쪽 남은 날개를 떨쳤다.

거센 풍압이 흙먼지를 일으킨다. 야만족들이 버티지 못하고 땅을 뒹굴었다.

남아 있는 적들이 얼마 안 되었다.

바르칸도 페이로드도 킹 히드라도 없으니 이제는 자기 세상이 되리라는 욕심!

= 어쭙잖은 너희가 감히 나를 소환해? 너희를 모두 죽이고 진정한 드래곤으로 거듭나리라.

블랙 이무기가 거세게 포효했다.

드래곤 피어의 위용이, 격한 전투가 벌어졌던 엠비뉴 요새를 휩쓸고 지나간다. 위드와 누렁이, 빙룡 그리고 동족들이 입은 피해로 전투 의지를 잃어버린 야만족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으으으, 이대로는 싸울 수 없어."

"드래곤을 공격해서는 안 돼. 불길한 일이 벌어지고 말 거야."

"애초에 싸움을 시작한 게 무리한 일이었다."

야만족들이 공황에 빠졌다.

 - 드래곤 피어에 의해서 신체 능력이 제약을 받습니다.

   5%의 마비 증상이 일어납니다.

   부족한 지혜로 스킬 사용이 77% 제약을 받습니다.

위드의 투지에도 불구하고 드래곤 피어에 이 정도의 피해를 입을 정도였으니, 미개한 야만족들은 말할 필요도 없다.

'사자후로 야만족을 추스른다고 해도 사르미어 부족이 아니라면 크게 도움은 안 될 거야.'

험악한 전투를 거치고도 살아남은 이무기는 경험 많은 백전노장이었다.

한쪽 날개를 활짝 펼치는 것만으로도 이쪽 탐에서 저 멀리 있는 탑으로 건너뛴다.

베자귀 부족은 따라잡지도 못할 테고, 다리가 휘청거려서 제풀에 넘어지리라.

마법의 조종이라고 할 수 있는 드래곤에게는 주술 공격도 매우 높은 경지가 아니라면 무용지물.

짝퉁 드래곤이기는 하지만 위드가 상대해 본 몬스터 중에서는 단연 최강이었다.

바르칸도 물론 강하지만, 개체의 위력으로만 놓고 본다면 블랙 이무기만 한 놈이 없다.

'그나마 동맹 부족들을 데리고 싸울 수 있는 기회도 얼마 없다.'

위드는 서둘러 사자후를 시전하려고 했다.

드래곤 피어에 눌려 있던 몸을 강제로 해제하면서 사자후를 시전하려는 순간!

화르르르륵!

불사조들이 소멸되었던 곳에서 새하얀 불길이 일어났다.

화염의 정화.

살아남은 불사조 일이 그 자리로 날아들었다.

꺼지지 않는 불의 속성을 가지고 있는 불사조들. 엠비뉴 교단의 신성력에 의하여 생명력은 사라졌지만 마지막에 불의 정화를 남겨 놓았다.

불사조 일은 부리를 벌려서 그 꺼지지 않는 불의 정화들을 받아먹었다.

점점 날씬하고 우아해지는 육체와 찬란하게 타오르는 깃털들.

황금빛 태양이 뜬 것처럼 눈부시게 아름다워진 불사조 일의 재탄생!

 - 불사조 일이 성장하였습니다.

   동족들의 생명의 원천을 흡수하며 생명력이 2.8배, 마나가 2.2배 늘어납니다.

 - 레벨이 67개 올랐습니다.

 - 꺼지지 않는 불의 속성이 변화하여, 불을 지배할 수 있는 권능으로 바뀝니다.

산악처럼 넓은 어깨에 큰 머리를 가지고 있던 불사조가 학처럼 날렵하게 변했다.

불사조가 선홍색 꼬리 깃털을 날리면서 지상에 착지했다.

그렇지 않아도 엠비뉴 요새는 방화로 인해 불바다였다.

마구 타오르는 성채를 향해 불사조가 가볍게 눈짓했다.

그러자 저절로 사그라지는 불길들!

일대의 불을 지배할 수 있는 권능이 발현된 것이다.

= 내 너희에게 진정한 폭력과 공포 그리고 드래곤을 건드린 참혹한 대가가 무엇인지를 뼛속까지 새겨 주......

블랙 이무기가 말끝을 살짝 흐렸다.

새롭게 탄생한 불사조의 위용이 보통이 아니었던 것이다.

빙룡에 불사조.

얼음과 불의 상반된 두 괴수가 눈알을 부라리고 있다.

몸이 멀쩡한 상태였다면 겁내지 않겠지만 지금은 중증 환자라고 해도 무방할 수준!

블랙 이무기는 자연스럽게 말을 이었다.

= 새겨 주고 싶은 마음도 없는 건 아니지만 함께 사는 베르사 대륙에서는 약자에 대한 배려와 관심 그리고 평화가 지켜져야 한다. 무의미한 싸움은 이쯤에서 끝내도록 하고, 급한 일이 있으니 이만 돌아가 보겠다.

블랙 이무기가 몸을 돌렸다.

어딘가 서두르는 게 역력한 기색!

걸음을 채 두 발자국도 떼기 전에 위드가 말했다.

"야, 임마."

블랙 이무기는 무시한 채로 걸음을 옮겼다.

"야, 너 이리 와 봐."

블랙 이무기는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로 뜻을 전달했다.

= 먼저 왜 오라고 하는 건지 말하라.

"어디 가냐."

= 집으로 간다.

"너 말 함부로 놓는다? 이리 돌아와."

= 제가 바쁜 일이 있어서......

블랙 이무기는 정말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빙룡과 불사조가 다가오자 원래의 위치로 몸을 돌렸다.

= 솔직하게 말해서, 갑자기 소환되어서 정말 열심히 싸웠잖습니까? 그래서 나쁜 놈들도 많이 죽였고 도움도 드렸으니 이제 돌아가려고 합니다.

맡을 일을 마쳤으니 칼퇴근을 하겠다는 블랙 이무기의 합리적인 논리.

양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몸을 사리지 않고 도움을 준 몬스터에게 함부로 대하지는 못하리라.

지능이 뛰어난 블랙 이무기였기에 효과적이고 설득력 있게 상황을 전달했지만 위드는 명쾌하게 잘랐다.

"여기 올 때는 쉬워도, 떠날 때는 내 허락 받고 가야 돼."

= 그런 부당한 법이......

"법은 멀고 칼은 가까운 거지. 이 바닥이 원래 다 그런 거야. 너 드래곤 하트 있지?"

=저 어려서 아직 그런 거 없는데요.

미성년 짝퉁 드래곤!

"있을지도 모르잖아. 가끔 심장 부근이 따뜻하다거나 혹은 힘이 나온다거나 그런 적 없어?

=어휴, 말도 마세요! 저혈압이라서 아침마다 일어나기 힘들고요. 가끔 호흡도 곤란해지는데......

"죽어도 여한이 없겠네."

위드는 미리 정해진 대로 결론을 내렸다.

보스급 몬스터를 잡을 기회가 흔치 않은데 그냥 보내 줄리가 만무한 것이다.

'빙룡도 많이 회복되었을 테고.'

대화로 시간을 끌었던 자체가 빙룡에게 휴식을 주기 위한 것이었던 셈.

블랙 이무기가 섬뜩하게 눈알을 빛냈다.

포악한 몬스터의 본성을 억누르고, 이 정도면 정말 많이 참았다.

=크악! 모조리 죽여 버리겠다!

이무기가 꼬리를 세워서 빙룡을 후려쳤다.

날카로운 기습이었지만 대비가 되어 있었다.

"조각 검술!"

위드가 검을 들고 덤비고, 빙룡과 불사조도 합공을 취했다. 야만족들도 공황 상태에서 벗어나서 화살과 주술로 지원해 주니, 없는 것보단 훨씬 나았다.

사르미어 부족의 쐐기형 화살촉은 이무기의 피부에 따끔한 맛을 보여 주었다.

이무기는 뒹굴고 뛰어오르면서 엠비뉴 요새의 벽을 무너뜨리고 첨탑들을 부쉈다.

광란의 전투가 벌어진 지 30분 정도가 지나서 빙룡이 이무기의 목덜미를 물어뜯고, 불사조는 부리로 몸통을 쪼았다.

이무기의 장대한 생명력이 바닥을 기고 있을 무렵이었다.

"소드 카이저!"

위드가 이무기의 정수리에 검을 찔러 넣었다.

전투를 통해 알아낸 치명적인 급소였다.

드래곤의 피부를 연상시킬 정도로 단단한 이무기의 비늘조차도 효과적이지 못한 유일한 장소.

=캬오오오오오.

블랙 이무기의 눈동자에서 급격히 빛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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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무기 프레이키스가 긴 수명을 다하고 영원한 안식에 들어갔습니다.

 - 더없이 높은 업적으로 인하여 명성이 760 올랐습니다.

 - 전투에 참여한 모든 이들의 스탯이 3씩 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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