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달빛조각사 17권 : 위드의 악명 (59/520)

달빛 조각사 17권

<위드의 악명>

  위드가 이동 포탈을 타고 모라타의 광장에 도착했을 때에는 수많은 인파가 모여 있었다.

  광장에서 물건을 사거나 팔고, 동료들을 구하기 위해 모여 있는 사람들.

  베르사 대륙의 북부가 모험 지역으로 조명받으면서 모라타는 더 크게 번성하고 있었다.

"이쪽 좀 봐 주세요!"

"위드 님, 위드 님! 저희와 같이 사냥해요."

"마법의 대륙의 위드가 정말 본인인가요?"

  가까이 접근하려고 하는 사람도 많았고, 진짜 위드가 맞느냐면서 통곡의 강 퀘스트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

 로 아우성이었다.

  성벽에도 사람들이 올라가서 위드를 향해 손을 흔들고 환호를 했다.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영웅을 반기듯이, 그렇게 위드의 귀환을 반기고 있었다.

  로자임 왕국에서 싸구려 조각품을 팔던 그 시절이 아닌 것이다.

  위드는 팔짱을 끼고 시선으로 턱을 치켜들며 거드름을 피웠다.

"훗, 사람들이 많이 늘었군."

  태연한 척, 전혀 놀라지 않은 척, 이 정도의 사람들은 당연한 척 대해야 한다.

  위드는 느닷없이 사자후를 터트렸다.

"갔노라. 싸웠노라. 벌었노라!"

"우와아아아아아아!"

  모라타 광장이 떠나갈 것만 같은 함성이 일시에 터져 나왔다.

"엄청 벌고 왔대!"

"이무기! 이무기를 사냥한 아이템을 저희에게 보여 주세요!"

"위드! 위드! 위드!"

  사이비 교주를 능가하는 인기였고, 주체할 수 없는 환희의 절정이었다.

  평범한 사람들이 베르사 대륙에서 꾸고 있는 희망과 꿈!

  남들이 잡아 보지 못한 몬스터를 사냥하고, 경험한 적 없는 퀘스트를 수행하고 위드가 돌아왔기 때문이다.

  모라타의 병사와 프레야 교단의 기사들이 출동하여 수습에 나서고 나서야 간신히 소란이 진정되었다.

  프레야 교단의 기사들이 위드를 향해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사악한 엠비뉴 교단을 물리쳐 주신 것에 대하여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프레야 교단의 은인이

며 역사에 남을 모험가를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위드는 의연하게 대답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조금의 고생도 하지 않았는데요. 엠비뉴 교단과의 싸움은 지나치게 시시했

습니다. 찌는 듯한 한 여름에 은행에 들어가서 낮잠 자기보다 쉬웠습니다."

  은행에서 낮잠을 자고 대형 서점에서는 만화책을 본다.

  위드가 청소년기를 유익하게 보낼 수 있었던 훌륭한 문화 시설들이었다.

  동네에 은행은 몇 개씩이나 있었으니 아무 때나 가서 편히 이용할 수 있는 휴식 공간인 것이다. 손님들을 위한 최

 신 잡지까지 분류별로 갖추어 놓기도 했다.

  은행원들이 가끔 뒷담화를 하기도 했지만, 그것 정도는 가뿐히 무시한다!

  나이 드신 경비 아저씨와 친해져서 커피 한 잔과 함께 요즘 젊은 것들에 대한 깊이 있는 담론까지 나누었던 위드

 다.

"기사들이 예를 취하고 있어."

"정말 정중하게 대하잖아."

  군중이 수군거렸다.

  성기사들이 위드를 대하는 모습을 보며 배가 아플 정도로 질투가 나고 부러웠다.

  광장에서 장사를 하던 상인들이나 전사들 누구도 갑자기 포탈이 생성되더니 위드가 튀어나올 줄은 정녕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프레야의 기사들이 저렇게 친절한 모습은 처음 보는 것 같아."

"상대가 위드라서 그런 거겠지?"

"당연한 이야기지."

  프레야의 기사들까지 광장에 배치되면서, 무작정 다가오려고 하는 사람들은 없었다.

"흠."

  위드는 소란이 조금 진정된 사이에 광장을 훑어보았다.

  봉지에 가득 담은 콩나물들처럼, 광장은 인파로 빼곡했다.

'유저들이 정말 많이 늘었군.'

  광장에서 노점을 열고 앉아 있는 상인들을 보면서 떠오르는 세금 생각!

'세금을 올려야 될까 말아야 될까. 소득세를 1%만 더 올려도 엄청난 돈이......'

  위드는 총력을 쏟아서 계산에 돌입했다.

  수학은 못했지만 현찰에 대한 더하기 빼기는 단 한 번의 실수도 없었다.

'아니야, 아니야. 아직은 너무 일러. 벌써 세금 징수에 혈안이 되어 있다는 느낌을 주면 나중에

세금 폭탄을 때릴 수가 없게 되는데.'

  얼굴빛이 파리하게 변했다가, 죽을상이 되기도 한다.

  세금을 올리면서도, 안 올린 것처럼 느껴지게 하는 묘안이 필요했다.

  위드가 깊이 고뇌하는 모습에 유저들도 점점 조용해졌다. 표정만 보아서는 정말 큰 우환거리라도 안고 있는 모습

 이었다. 때로 얼굴을 찡그릴 때면 가슴이 덜컥 내려앉기도 했다.

  이곳에는 위드를 만나 본 사람도 있고, 이야기로만 들었던 사람들도 많다.

"조각품을 팔면서 푼돈에 연연했던 게 다 가식이었던거야?"

"위장술이 보통이 아니야. 킹 히드라를 사냥할 정도의 고레벨 유저면서 저렇게 정체를 숨기고 다

녔다니 말이야."

"전신 위드. 표정을 보니 기분이 나빠져서 우리를 다 쓸어버리는 거 아니야?"

"마법의 대륙에서는 조금의 소란이나 번거로움도 반기지 않던 고독한 전사였다고 하던데......"

  흥분이 가라앉으니 사람들은 오싹한 기분마저 들었다. 마법의 대륙에서의 위드가 너무나도 악명 높은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광장 구석에서는 상인들이 눈치 없이 떠들고 있었다.

  상인들이 이야기하고 있는 내용은 마법의 대륙에서의 위드의 악행들!

"수일아, 정말 그렇게 사람들을 잘 죽였어?"

"응. 위드의 못된 짓들은 말도 못 할 지경이었지. 나도 다섯 번이나 죽었거든."

"무슨 일로 죽었는데? 그럼 위드와는 원수 관계겠네?"

  위드도 젊은 상인들이 나누는 대화를 들을 수 있었다. 마법의 대륙 시절 자신의 이야기였으니 깊은 관심이 갔다.

  군중이 생각하고 있는 인식에 따라서 세금도 변동시킬 수 있으니 중요한 이야기였다.

"별다른 특별한 이유는 없었어. 상점에서 물건을 오래 사서 기다리게 한다면서 한 번, 개울가에

서 마주쳤다고 한 번, 그가 사냥하고 있는 던전에 들어섰다고 한 번. 나머지 두 번은 그의 악행

을 참다못해 단체로 연합군이 조성되어서 싸우다가 죽었지."

"고작 그런 이유로 사람들을 죽여?"

"그냥 죽인 것도 아니야. 말 그대로 대학살이었찌. 투항하는 사람이나 부상자도 남겨 두지 않았

으니까."

  마법의 대륙에서 위드의 악명은 몬스터에만 국한된 게 아니었다.

  유저들에게도 무자비한 살육자였다.

  극에 이른 레벨과 신기의 스킬 운용, 유니크 아이템 등을 가진 최강자.

  도전자들이 재기할 수 없을 정도로 짓밟아 버리고, 눈에 거슬리는 이들은 일단 죽여 버린다.

'인간과 몬스터에 차이를 두지 않았지.'

  위드는 마법의 대륙 시절을 간단히 회상했다.

  따로 적수를 기억하기 어려울 정도로 정말 닥치는 대로 죽였다. 몬스터를 죽이는데 인간이라고 해서 살려 둘 까닭

 을 전혀 찾지 못했던 것.

  고레벨 유저라면서 거들먹거리는 이들은 일부러 부딪쳐서 시비라도 걸어 죽였다.

  거대 길드의 세력? 안중에도 없었다.

'단합이 아무리 잘되더라도 서너 번 죽여 주면 해결됐지.'

  길드 하나를 본보기 삼아서 철저히 부숴 버린다.

  그 후에 비난이 거세어지고 여론이 극도로 악화되었다.

  그러면 다시 박살을 낸다.

  하나도 남김없이, 모조리 베어 버렸다.

  그런 일이 수차례 반복되면 다른 길드들도 알아서 움츠러들기 마련.

  연합군이 몇 차례 조직된 적이 있지만 던전으로 유인하고, 각개격파해서 섬멸했다.

  위드는 영악하게 싸웠다.

  혼자의 힘으로 집단을 상대하는 건 사실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다.

  지형지물을 이용하고, 아이템을 아끼지 않고 활용하며, 적들을 야금야금 죽이는 사신!

  상인이 물었다.

"그런데도 위드란 이름이 그렇게 나쁘게만 남아 있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마법의 대륙 유저들

중에서는 위드를 욕하는 사람이 많지 않잖아."

  설명하던 상인도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마법의 대륙이 점점 인기를 잃어 가고 있을 때였으니까, 새로움이 필요하기도 했고, 그때까지

영구 미해결 퀘스트들이 그에 의해 깨지고, 미궁들이 돌파당하고, 불가해의 던전이 가진 비밀들

이 풀어 헤쳐지고 극도로 강한 몬스터들이 사냥당하는 걸 보면서 대리 만족을 느끼지 않았던 사

람이 누가 있었을까?"

  사람들이 위드를 미워하지만은 않았다.

  로열 로드에서도 위드는 무모하기 짝이 없는 사냥과 퀘스트들을 했다. 실제로는 높은 명성 탓에 거절을 해도 어쩔

 수 없이 의뢰들을 받게 된 것이지만.

  온갖 죽을 고생을 다해 가면서 아슬아슬하게 깨곤 했지만, 다른 이들은 중간 과정 없이 미화된 결말만을 본다.

  세력 확대에 열을 올리는 길드나, 반복되는 사냥이 지겨운 유저들에게 위드는 신선한 한 줄기 빛과도 같았다.

  위드와는 완전히 적대적이던 길드나 유저들조차도 그 점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콧대 높던 길드들조차도 위드와 시비가 걸리지 않을까 두려워서 완전히 피해 다녔지."

"그 정도였어?"

"모두가 경원시하면서도, 죽으면서도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었어. 적어도 이름이라도 각인시켜 

주고 싶었던."

"굉장한 분위기를 풍겼었나 보네."

"사냥터에서 사냥을 하고 있는데 근처에 위드가 나타났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의 미칠 듯한 소름

끼치는 느낌은,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면 모를 거야."

  한창 동료들과 함께 화기애애한 대화를 나누며 사냥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때 인근에 위드가 등장한다.

  침묵과 전율이 흐르는 분위기.

  퀘스트나 몬스터가 문제가 아니라, 위드가 무엇을 하는지 궁금해서 파티를 이탈해서 그곳에 가고 싶을 정도였다.

  실제로 위드의 행동에 관심을 갖고 쫓아다니다가 죽은 이들도 일일이 세기 힘들 정도였다.

"마법의 대륙을 하다 보면 절망적이던, 도저히 가능해 보이지 않던 퀘스트들에 도전하고, 아무도

들어가지 않는 곳을 조금도 겁내지 않고 위드가 들어갔다는 소식들을 듣게 되곤 했지."

"실패할 때도 있었을 텐데?"

"물론. 꽤 많이 실패하기도 했을 거야. 하지만 결국에는 성공했지. 위드가 지나간 던전들에는 몬

스터의 잔해만 남아 있었고, 최고의 순간들이 벌어졌겠지."

  마법의 대륙에서 위드가 수립한 기록은 두고두고 퍼질 정도였다.

"그게 위드였구나."

"들으면 들을수록 놀랍고 굉장하네. 역시 직접 경험한 사람에게 들어야 이야기는 재미가 있어."

"마법의 대륙에서의 절대자 위드. 그 사람이 저기 있는 모라타의 영주란 말이지."

  군중의 존경 어린 눈빛!

  위드가 팔짱을 끼고 고개를 들었다.

  푸른빛을 내는 이동 포탈이 고요히 빛을 뿜어내는 가운데 잡고 있는 긴장감.

  극심한 번뇌와 갈등, 유혹과 싸워서 이겨 내고야 말았다.

"아직은 아니야. 세금이란 슬금슬금 올려야 하지. 사람들이 느끼지도 못할 정도로......"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갑자기 세율을 올리면 큰 저항에 부딪치고 만다.

"명분도 필요해. 세금을 꼭 올려야 했구나. 올릴 수밖에 없었겠구나, 이해할 수 있는 명분! 그게

없다면 세금을 올리더라도 납득하지 못할 거야."

  탐욕을 극복한 위드는 배낭을 땅에 내려놓고 자리에 앉았다.

  위드가 개인적으로 사치를 하는 금액은 전혀 없었다. 남들처럼 고급 식당을 가거나, 여성 유저들에게 밥 한 끼 사

 준 적도 없다. 조각 도구들이나 대장장이용품도 사냥을 통해서 획득하거나 수렵을 통해 자급자족해서 쓴다.

  훗날의 이득을 위하여 모라타에 투자하는 자금이 막대하였으니 돈이 많이 필요했다.

음머어어어!

  울음소리와 함께 포탈을 통해서 순한 인상의 소가 등장했다.

  짐을 나르는 용도로도 사용되는 누렁이.

  누렁이의 등에도 배낭이 한가득이다.

  통곡의 강 부근에서 사냥하면서 획득한 잡템들.

  미리 준비했던 배낭들이 가득 차서, 재봉 스킬을 이용해 새로 큼지막하게 만든 배낭들도 그득그득했다.

"여기 어디쯤 있었을 텐데......"

  위드는 배낭을 뒤적여서 검을 뽑았다.

  시퍼렇게 날이 갈려 있는 검!

"날이면 날마다 오는 잡템이 아닙니다! 잡템 팔고, 옷이나 갑옷, 무기류도 소량 판매합니다!"

  잡템 판매 개시!

  무겁게 가라앉았던 광장의 분위기가 풀어지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에이, 뭐야 물건 팔잖아."

"괜히 놀랐네."

  위드가 쌓은 악명이 너무도 컸고, 모라타의 병사들과 기사들까지 튀어나오다 보니 분위기가 경직되어 있었다. 검

 까지 뽑으니 가슴이 덜컥 내려앉을 정도로 놀랄 수밖에 없다

  위드에 대한 관심은 그대로였지만 심각함이 사라지고 소란스러우면서도 자유분방한 광장 특유의 분위기가 돌아왔

 다.

"저기요."

  근처에서 장사를 하던 상인이 용감하게 말을 걸었다.

  위드는 이동 포탈의 앞에, 광장의 정중앙에 누렁이와 함께 자리를 잡고 있었다.

"예."

"진짜 전신 위드가 맞으세요?"

"후후,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위드는 부인하지 않았다. 하지만 물어봤던 상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닌가 보구나."

"아니라고 하지?"

"응. 아니래."

"......"

  상인들의 제멋대로 판단이었다.

  반면에 위드가 마법의 대륙 전쟁의 신인 바로 그라고 믿는 사람들도 꽤 많았다.

  위드의 모험을 방송국 등을 통해서 직접 본 사람들의 생각이 다르고, 스스로의 레벨이나 직업에 따라서도 다르게

 생각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어느 쪽이든 확신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상인들은 위드와 누렁이가 가지고 있는 배낭을 보면서 욕심을 냈다.

"그런데 잡템이 꽤 많으시네요."

"사냥을 부지런히 했으니까요."

  위드는 잡템을 늘어놓으며 무심하게 대답했다.

  아직은 손님이 오지 않고, 장사를 준비하고 있는 단계였다.

  상인이 늘어놓은 잡템들을 탐욕스러운 시선으로 보며 제안했다.

"혹시 그 잡템 저한테 전부 파실래요? 가격은 괜찮게 쳐 드릴게요."

  위드는 고개를 저었다.

"제가 직접 팔겠습니다."

"상인인 제가 처분하는 게 나을 텐데요. 장사란 그리 쉬운게 아닙니다."

  상인이 충고를 해 주었지만, 위드가 이를 귀담아들을 필요는 없었다.

  그에게 장사란 10대 초반부터 이골이 난 일이었다. 시장에서 나물을 팔던 할머니를 따라다니면서부터 배웠으니까!

"케르탑의 더듬이! 블랙 와일드보어의 송곳니! 아무에게나 팔지 않습니다. 잡템이라고 해도 싸지

는 않으니까, 그냥 보고만 가세요."

  위드는 몰려 있는 유저들에게 호객 행위를 개시했다.

"더듬이? 송곳니? 무슨 잡템들이기에 가치가 이렇게 높은 거야?"

  잡화점에 판매했을 때에 얻는 가치가 환상적이었던 것이다.

  위드가 통곡의 강 주변에서 사냥을 하며 모은 독점적인 잡템들이었다. 아직 이동 포탈로 통곡의 강에 넘어간 사람

 이 없으니, 지금으로써는 최초의 상품, 특산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동 포탈로 등장한 위드를 보며 군중은 묻고 싶은 게 무척이나 많았다.

  퀘스트와 전신 위드에 대해서!

  하지만 잡템들을 늘어놓기 시작하자 호기심 많은 군중보다는 물건을 구매하고 싶은 사람들이 먼저 몰려들었다.

  상인들과 마법사들은 더듬이를 감정해 보고 크게 놀랐다.

  뇌전을 증폭시킬 수 있는 마법 스태프의 재료. 인챈터에게 가져다주면 황금보다도 비싼 값을 받을 수 있는 더듬이

 였다.

  마법사는 정보를 확인하자마자 소리쳤다. 그가 지불할 수 있는 최대치였다.

"제가 사겠습니다! 더듬이는 개당 350골드까지 구매할 수 있습니다. 전량 구매요!"

"저는 533골드로 구입합니다."

"539골드!"

"540골드에 삽니다."

"555골드로 제가 가진 돈만큼 매입합니다."

  잡템의 가치는 일반적으로 정해져 있다.

  상인들의 경우에는 회계 스킬을 이용하여 유저들로부터 구입한 물품을 상점에 더 비싸게 판매한다. 친밀도나 공헌

 도, 마을 발전을 위해 내놓은 기부금 등에 따라 더 높은 가격을 받을 수도 있었다.

  마법사들은 직접 가공하여 대장장이에게 넘겨줄 수도 있다.

"570골드에 삽니다!"

  배가 유독 볼록하게 나온 넉살 좋아 보이는 상인이 외쳤다.

"580골드!"

"600골드에 전량 구매할게요."

  희귀 잡템을 최초로 상점에 팔면 소득이 크다.

  회계 스킬의 증가와 명성을 얻기 위한 구매!

  위드는 상인들에게도 바가지를 씌웠다.

  위드가 가지고 있던 더듬이는 620골드에 전량 낙찰, 송곳니는 320골드였다. 상점에 판매할 수 있는 가격에 비해

 높은편이라서 만족스러웠다.

  상인들도 돈은 좀 들였지만 특산품을 팔지 않고도 명성과 함께 스킬을 올릴 수 있으니 이득이었다.

  위드는 다른 배낭을 꺼냈다.

"자, 여기 엠비뉴 고단의 머리띠입니다. 인도자의 동맹 퀘스트를 하면서 획득한 전리품들! 기념품

으로 가지고 싶은 분들은 줄을 서세요. 15골드씩에 판매합니다."

  엠비뉴 교단의 마크가 새겨져 있는 머리띠. 방어력 3 외에 옵션은 거의 붙어 있지 않았다.

  하지만 비싼 잡템들을 팔다가 꺼내 놓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물건들이었다.

"저거 좋아 보인다."

"제가 살게요."

"저도 1개 주세요."

  위드는 군중에게 기념품 팔듯이 팔아먹었다.

'역시 열기가 확 올라 있을 때에 팔아 치워야지.'

  할인이나 특별 사은 판매라는 명목으로 5개를 사면 하나씩 끼워 주었다.

  머리띠도 순식간에 품절!

"그럼 다음 물건으로......"

  위드가 속속 내놓은 물품들은 중요도가 훨씬 떨어지는 잡템들!

  언데드의 사냥으로 얻은 전리품들. 뼈와 해진 의복류, 녹슨 장검 등의 무기들이었다.

  녹슨 무기들은 한계 내구력 자체가 낮아지고, 언데드들이 사용하면 급속도로 약화된다.

  위드의 근처에서 장사를 하던 상인들은 할인점 마감 특판처럼 불티나게 팔리는 모습에 부러워할 수밖에 없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손님."

  위드는 말끔하게 검 갈기 스킬과 방어구 닦기 스킬을 이용하여 겉은 번드르르하게 해 줬다.

"간직하면 행운이 찾아오는 기념품입니다! 날이면 날마다 오는 기회가 아니에요. 오늘 이후로 물건

이 동나면 더 이상 팔지 않아요."

  장비로 쓰기에는 어림도 없는 물건들을 팔아 치우는 자리. 스켈레톤의 다리뼈가 무려 1골드에 팔린다.

  누렁이는 빈 배낭들을 등에 지고 슬그머니 자리를 떴다. 그러더니 기다리고 있는 사람과의 접선을 위해 모라타 광

 장에서 으슥한 골목길로 들어갔다.

  로브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 음험한 사내가 골목길 안에 있었다.

"네가 누렁이구나. 말은 많이 들었다."

음머어어어어!

"물건은 여기. 수익 배분은 정확히 6대 4라고 위드 님에게 전해 다오."

  누렁이는 말을 알아듣고 머리를 끄덕였다. 그리고 빈 배낭에 가득 잡템을 실었다.

  골목길 안에서 기다리고 있던 남자. 그의 정체는 마판이었다.

"잡템들을 비싸게 팔아 치울 기회를 놓칠 수 없지."

  보통의 잡템들까지 기념품으로 위장하여 더 많이 팔아먹기 위한 전략.

  위드는 뼈에는 조각칼로 이름까지 새겨 주었다.

행복하세요. 위드.

즐거운 사냥 되시길 바랍니다. 위드.

언데드 군주 바르칸 데모프, 그와의 격전을 회상하며. 위드.

  솔직히 말해서 바르칸과는 싸우지도 않았다.

  방대한 언데드 무리 중에서 떨어져 나온 일부를 야만족들을 데리고 제압했을 뿐!

  로열 로드의 게시판에는 전신 위드가 화제에 올랐다.

  마법의 대륙에서 그가 해결한 퀘스트들을 나열하면서 존경을 표시하는 몇 명이 있었다.

  하지만 악행에 대한 더 많은 사람들의 제보도 등장했다.

-장비 얼마 주고 샀냐고 물어봤는데 죽이더군요!

-상점에서 새치기했다고 죽였습니다.

-그래도 위의 두 분은 이유라도 있었잖아요. 저는 위드가 사냥하려던 던전에 먼저 있었다고 죽였습

니다.

-하품했다고 죽였어요.

-그냥 남자라고 죽였습니다.

-저는 열두 번이나 죽었습니다. 마을. 광장, 사냥터 가릴 것 없이 만날 때마다요. 나중에 억울해서

물어보니 이름이 마음에 안 들었다던데요.

-이름이 뭐였는데요?

-위드바보똥개요.

-죽일 만하네요.

  위드의 악행들이 어마어마하게 쏟아져 나온다.

  게시판의 비중이 위드에게 향해 있었다. 평소에 관심을 갖던 다른 사안들이 묻힐 정도였다.

-저는 위드에게 서른 번 넘게 죽어 봤습니다. 독하게 덤볐거든요.

-서른 번? 그 정도로 나서시는 겁니까? 저는 쉰 번도 넘게 죽었어요. 위드를 끝까지 괴롭히던 밤토

리를 기억하는 사람들도 많을걸요.

-밤토리 님. 위드에게는 한칼거리도 안 되었을걸요?

-후훗. 윗분들, 싸우지 마세요. 여러분이 아무리 자주 죽었다고 해도 저만 하겠습니까? 저로 말씀

드리자면 마법의 대륙에서 상위 50위 안에 들던 랭커였습니다. 희귀 아이템 아페잔의 서클릿도 들

고 있었어요. 저를 죽인 위드가 그 아페잔의 서클릿을 가져가서 착용했습니다.

-부럽군요.

-위드에게 아이템을 빼앗기시다니... 위드가 그 아이템 오랫동안 썼나요?

-흑룡을 사냥할 때도 착용하고 있던 아이템입니다. 크하하!

  어긋난 자긍심!

  위드가 워낙에 유명한 유저이다 보니 관련되었던 유저들도 고레벨이 많았다.

  로열 로드에서 행적을 잘 드러내지 않던 유저들도 게시글을 올린다. 명예의 전당에 올라간 유저들도 과거 마법의

 대륙 시절의 경험담을 올리면서 위드에 대한 전설들이 속속 추가되었다.

  도둑 출신으로, 위드를 끝까지 몰래 따라가면서 던전 탐험을 했던 유저의 기록은 일품이었다.

-가장 빠른 속도의 돌파! 몬스터들의 무리에 둘러싸여서 겁 없이 헤치고 가던 장면들은 몸이 오싹

할 정도였습니다. 

전투 능력도 능력이지만 그처럼 일절 군더더기 없는 효율성은 일찍이 본 적이 없습니다.

상처를 입고 함정에 빠져도 끝없이 전진하던 위드였지요.

-무슨 던전이었나요?

-보스급 몬스터는 뭐가 나왔죠?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중간에 위드에게 발각당해서 죽었기 때문입니다.

  위드는 외롭게 사냥터를 전전하면서 자잘한 시비들에 휘말리지 않았다.

  눈에 거슬리면 죽일 뿐이다.

  길드들도 덤비면 죽이고, 귀찮으면 죽인다.

  무자비한 악명을 널리 쌓게 된 계기였다.

  CTS미디어에서는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베르사 대륙에 정보 조직을 깔았다.

"뉴스에서 뒤처지면 안 돼. 연예인들에 대한 방송보다도 뉴스가 훨씬 중요해."

  로열 로드를 하는 유저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었다.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로열 로드를 즐기지 않는 사람이 미개인 취급을 받을 정도다.

  아프리카와 중동, 남미에서의 열풍도 대단했다.

  아랍권의 왕족이나 브라질의 마약상조차도 로열 로드에 푹 빠져 있을 정도라고 하니 말 다 한 셈!

  해외 유저들이 일시에 쏟아져 들어오면서 상당한 혼란이 벌어질 것 같았지만, 그들은 조용히 새로운 세상을 즐겼

 다.

  레벨업이나 아이템 수집과 같은 극단적인 성장에 매달리는 사람들은 일부에 불과했다.

  대륙의 중부와 서부, 북부 지역에 정착했다.

  몬스터나 이종족으로 새로운 세계를 즐기는 데에도 거부감이 없는 유저들이 많았다.

  CTS미디어에서 주력으로 밀고 있는 '베르사 대륙의 영웅들' 은 세계 각국으로 통역이 되어 방송될 정도였다.

  로열 로드가 성장하면서 관련 방송사들의 매출도 급신장하고 있었다.

"뉴스만큼 이목을 집중시키는 것도 없어. 간판 프로그램은 뉴스가 될 수밖에 없어!"

  CTS미디어는 경쟁사들보다 먼저, 그리고 훨씬 좋은 조건에 해외 방송사들과 계약을 체결했다.

  모회사가 세계적인 다국적기업이라는 점을 이용해 그 인맥을 적극 동원하였기 때문이다.

  판권 계약으로 막대한 자금이 유입되고, 매출액에 따라서 일정한 로열티도 지급받기로 했다.

  해외 유저들이 구입하는 캡슐과 이용 요금뿐만이 아니라 방송 산업이 확대되면서, 로열 로드가 대한민국의 커다란

 수입원이 되려 하고 있었다.

  상업적인 마케팅에 대한 부분은 CTS가 단연 앞서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그렇게 번 돈을 로열 로드에 재투자했다.

  유니콘의 주식 지분을 늘려서 이사회에서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것은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할 정도였다. CTS뿐만 아

 니라 모그를 전체라고 해도 유니콘에 비하면 매출액이나 현금 수입이 상대가 안 될 정도였다.

  세계 경제계에서 유니콘의 위상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었는데, 초창기부터 주식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만 돈벼락을

 맞은 뒤였다.

  CTS미디어에서는 로열 로드의 정보 습득을 위해 기자들을 파견하고 유저들에게 투자했다.

  성주들을 비롯하여 핵심 유저들을 큰돈으로 회유하는 것이다.

"우리 방송사에서만 독점 취재를 할 수 있게 해 주면 좋겠습니다."

  대부분의 유저들은 돈 앞에 쉽게 흔들렸다.

"정말 이 정도로... 이렇게 돈을 받아도 되는 건가요?"

"물론입니다. 그리고 다스리는 영토 내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정보들을 제공해 주시고, 가능한

다른 방송사 요원들의 활동도 막아 주셨으면 합니다."

  지역을 다스리는 길드들에는 어려운 부탁이 아니었다.

  정체를 숨기고 활동하는 다른 방송사 기자들의 이동까지 전면 봉쇄하는 것은 무리다. 하지만 공개적으로 다른 방

 송사에서 취재 활동을 하는 정도는 얼마든지 막아 줄 수 있는 일이었다.

  길드들이 욕을 먹는 것도 하루 이틀 이야기도 아니라서 그쯤은 어려운 부탁도 아니다.

"알겠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CTS미디어 측에서는 베르사 대륙의 많은 중소 영주들과 협약을 맺었다.

  그런데 실질적으로 세력이 큰 길드들과의 협상은 쉽게 진행되지 않았다.

  한 지방의 패자들은 여러 수입원을 가지고 있었다.

  세금, 군소 길드로부터의 상납 금액, 사냥터 이용료, 무기와 방어구 판매 등으로 많은 이윤 창출이 이루어지고 있

 었던 것이다.

  명문 길드들은 이미 상업적으로 물들어서, 작지 않은 규모의 기업을 운영하는 수준이었다.

"계약 금액이 적군요."

"저희는 이 정도의 금액에는 움직이지 않습니다."

  방송사 부장들의 연락도 무시할 정도로 성장했다.

  가상현실이라지만 베르사 대륙의 큰 영주들은 그만한 권력과 힘을 쥐고 있었기 때문이다.

  방송사조차도 그러한 영주들을 함부로 거스르지 못했다.

  그들의 비위를 거스른다면 취재가 잘 이루어질 수 없었기에, 약자의 입장에 처했다.

  대형 길드들의 악행도 함부로 보도를 못 할 정도였다.

"중부 대륙은 그럭저럭 모두 연락을 취했고... 남부와 서부는 어느 정도나 진행되었지?"

"오늘내일 중으로 연락처가 파악된 유저들에 대해서는 섭외가 끝납니다."

"그들의 반응은 어떤가?"

"중앙 대륙에서의 거래 내용이 소문난 덕분인지 결정이 빠릅니다. 거대 길드들이 많아서 섭외가 금

방 될 것 같습니다."

"나쁘지 않은 소식이군."

  베르사 대륙의 서부는 다른 지역들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중부에는 강력한 중앙집권 체제 국가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비옥한 토지와 광산, 인구를 자랑하는 강국들이다.

  동부에는 잠재력이 뛰어난 신흥 국가들이 자리를 잡았고, 남부는 마법이 발달했다.

  북부는 막 개척과 모험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시점이었다.

  베르사 대륙의 면적이 워낙 넓기에 중앙 대륙에서도 세세한 곳까지는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았다.

  서부는 민족주의적인 성향이 강해서 출신 민족에 따라서 주로 가입하는 길드들이 결정된다.

  다른 지역에서는 특정 도시나 마을에서 시작했더라도 사냥터를 옮기는 것만으로도 영향권을 벗어날 수 있었지만 

 초원과 사막지대가 많은 서부에서는 그렇지 못했다.

  강한 전사들은 혈연으로 맺어진 유목 민족들이 많아서 강한 결속력을 자랑한다.

  중앙 대륙에서 떠돌이를 자처하지 않는다면 대부분은 출신 민족에 따라서 길드가 결정되었다.

  중앙 대륙과의 힘에서의 비교는 열세였지만, 길드 개개의 영토 크기와 인원수는 적지 않은 편이다.

"그건 다행이군. 북부로는 누가 연락을 취하지?"

  CTS미디어의 회의실에서 전무가 직접 회의를 주재하고 있었다.

"북부라면 대표적으로 위드의 모라타가 있습니다. 과거 우리와는 거래 관계도 있었지요."

"누가 연락을 했었지? 담당자가 누구야?"

"회장 비서실의 윤나희 씨입니다."

"회장 비서실에서 직접 연락을 취했다니, 왜?"

"마법의 대륙 계정 구입이 회장님께서 직접 결정을 했던 사안이지 않습니까. 8인의 영웅들 프로그

램의 섭외도 그녀가 맡았습니다."

"그때가 참 아쉽군. 그대로 계속 방송을 했었다면 대박이었을 텐데......"

  8인의 영웅들은 그럭저럭 괜찮은 시청률을 거두었다.

  하지만 초반의 반응이 좋지 않았다고 해서 위드를 출연 중단시키고 말았다.

  그 후에 위드는 진혈의 뱀파이어와 불사의 군단, 본 드래곤과의 전투 등에서 승리했다.

  경장사인 KMC미디어에서 방송을 한 일로 인해서 담당 PD가 사표를 쓰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CTS미디어의 회장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위드에게는 일단 나희 씨가 연락을 하도록 하지."

"그렇게 조치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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