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달빛조각사 17권 : 다인과의 조우 (66/520)

<다인과의 조우>

  파보는 건축가로서 위대한 야망을 품었다.

  주택 건설, 상업 건물 등의 건설에는 지금까지 이골이 나 있다.

  모라타의 주택 취향은 꽤나 다양한 편이었다.

  다른 부유한 왕국에서는 자기 집을 가지려면 고레벨 유저이거나 돈이 많아야 했다. 남들에게 꿀리지 않을 정도의

 별장이나 고급 주택을 지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라타에는 대표적인 주택 양식이 있다.

  판잣집!

  간편하게 지을 수 있고, 건설 비용이나 유지 비용도 거의 들지 않는다.

  비바람을 겨우 막을 정도로 부실한 판잣집이었지만 너무도 많았기 때문에 새삼스럽게 혼자 창피할 이유도 없다.

  초보자들도 목재를 구해 오면 직접 지을 수 있으니 레벨이 20이나 30 정도만 되어도 집부터 마련했다.

  내 집 마련의 소중한 꿈을 쉽게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집을 마련한 초보자들은 잘 사용하지 않는 장비나 물품 들을 집에 놔두고, 친구들을 불러서 파티도 벌인다.

  고향이고, 집까지 있으니 초보자들이 성장한 후에도 모라타를 떠날 수 없는 중대한 이유였다.

  원래 판잣집은 많이 건설하면 치안과 위생을 심각하게 하락시키기 때문에 건설 허가를 잘 내주지 않는 편이다.

  다른 도시에서는 땅값도 비싸서 집을 지으려면 막대한 돈이 들었다.

  하지만 모라타의 땅값은 저렴한 편이고, 치안과 위생도 좋은 축에 들었다. 영주가 비싼 수로를 만들고 자경단을

 조직하였으며, 프레야 교단의 영향으로 빈민 구제가 원활하게 이루어져서 도둑들이 거의 생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곳만큼 판잣집이 최적화된 마을도 없어."

  파보는 판잣집을 상당히 많이 지었다.

  그가 지은 판잣집은 튼튼하고, 내부 공간도 잘 나오게 해서 인기가 높았다.

  막 지은 판잣집에는 나름대로 정취도 있다.

  시간이 오래 흐르면 노후화가 진행되어서 썩거나 부서져 빗물이 새지만, 새것 같은 판잣집은 그럭저럭 살 만했다.

  중앙 대륙에서 건너온 모험가나 상인, 돈 많은 유저들은 고급 주택을 원했다.

"모라타가 내려다보이는 장소에 집을 지어 주시오. 창고를 넓게 지어야 되고, 자재들도 비싼 걸

써 주시오."

  고급 주택이나 상업 건물의 수요도 많은 편이라서 파보는 열심히 일을 했다.

  그가 직접 지은 수천여 채의 판잣집과 백여 채의 고급 별장들, 모라타의 다리와 상업 건물들이 명물로 자리를 잡

 았다.

"설계와 건설 스킬, 이 두 가지가 요즘에는 다 잘 늘어나지 않고 있다."

  판잣집의 숙련도는 미미했다.

  상업 건물이나 별장을 완공했을 때 얻는 명성의 획득이나 숙련도의 성장도 갈수록 줄어들고 있었다.

"진짜 굉장한 작품을 하나 만들어야겠어."

  파보는 모라타에 대한 애정이 지극히 높았다.

  건축가로서 많은 건물들을 짓고 이를 상인들과 주민들이 이용하고 있으니 자신의 도시처럼 정이 갔다.

"제대로 된 건물을 지어 보자."

  때마침 위드의 의뢰야말로 건축가로서의 도전에 불을 지른 격이었다.

  탄생과 죽음을 다룬 조각품.

  그리고 수많은 인형들을 위한 건축 작품을 만들어야 했다.

"중급 설계!"

띠링!

-설계를 시작합니다.

  파보의 앞에 설계도가 반투명한 3차원 영상으로 떠올랐다.

  마나를 이용하여, 실제로 집을 만드는 것처럼 벽과 기둥을 세워 보고 내부도 장식할 수 있다.

  초급 설계 스킬에서는 전체적인 크기도 제약이 있고, 재료들도 다양하지 못하다.

  건축과 설계 스킬은 서로 떼려야 뗄 수가 없는 것이었다.

  건축에 활용한 자재와 새로운 양식들이 설계 스킬에 즉각 영향을 주면서 성장시킬 수 있었다.

  설계를 통해서는 가구의 배치나 집의 구조 등을 완성한다.

  설계도를 만들고 나면 인부들을 통해 지시를 내릴 수도 있었다.

  파보의 설계 스킬은 중급 3레벨.

  성을 건축할 정도는 아니지만, 어지간히 넓은 건물과 정원 쯤이라면 충분히 만들 수 있다.

"호화 별장 3개도 함께 만들었던 실력이지."

  파보는 설계 도면을 거대한 구조물로 만들었다.

  위드는 인형들을, 어떤 한 아이를 위해서 만들었다고 했다.

"그 숭고한 뜻을... 실망시키지 않도록 해야겠지."

  위드가 허락한 예산은 1,980 골드!

  빠듯하게 집 한 채 정도 지을 수 있는 돈이다.

  하지만 아끼지 않고 재료들을 투입하여 공사를 벌일 작정이었다.

"대륙에서 좋은 나무와 꽃 들을 가져와서 정원을 꾸미자. 정원은 2,000평 정도로 하고, 건축면적

은 최소 1만 평은 되어야겠지."

  초고급 랜드마크 건물을 목표로, 일찍이 만들어 본 적이 없는 규모와 설계를 했다.

  상인 다음으로 돈이 많다는 건축가로서의 자신을 털어서 모라타를 상징할 만한 건물을 세워 볼 작정인 것이다.

"예술가로서의 위드에게 조각품을 전시할 만한 공간이 하나도 없었다는 게 말이 안 되지."

  위드의 조각품들을 진열하여, 주민들과 여행자들이 볼 수 있게 한다.

  파보는 공사를 개시했다.

  일거리가 워낙에 거대했기 때문에 바로 작업에 착수한 것이다.

  페일은 일행과 함께 던전에서 사냥을 하던 중이었다. 그때 위드로부터 귓속말이 왔다.

-지하 감옥에서 사냥을 해야 됩니다. 조금 위험할지도 모르겠는데, 사람 1명 정도만 보내 주세요.

  엠비뉴 요새의 지하 감옥은 매우 복잡했다.

  사냥하고 있는 파티들도 있고, 몬스터들도 부지기수로 널려 잇다. 독을 사용하는 몬스터도 있다고 했으므로 무턱

 대고 싸우기는 곤란했다.

-알겠습니다.

  페일은 귓속말을 마치고 나서 일행을 향해 말했다.

"위드 님이 사람 1명을 보내 달라는군요."

"제가 갈까요?"

  화령이 기다렸다는 듯이 대뜸 나섰다.

  그녀로서는 오랜만에 위드와 함께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칠리가 없다.

"화령 님이라면 위드 님도 당연히 반기실 겁니다. 하지만 독을 해제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는데요. 이리엔, 너도 갈래?"

"내가 가면 여기는 어쩌려고?"

"우리끼리 어떻게든 해 볼게. 다인 님도 있으니 괜찮을거야."

  페일의 파티는 모라타에서 꽤 많은 의뢰들을 수행했다.

  '고대 흉갑의 제조 비법'이 담긴 책자도 얻으면서 사냥과 퀘스트를 병행하고 있었다.

  지금 하고 있는 퀘스트는, 난이도는 C급이라도 공격력이 매우 강한 몬스터들이 기습을 해 오는 위험한 던전에서의

 사냥이었다.

"화령 님이 가시는데 나까지 가면 남은 사람들이 위험하지 않겠어?"

"글쎄. 제피 님이 얼마나 버티느냐에 달려 있긴 하지만 확실히 좀 위험하기는 하겠지?"

  워리어나 기사가 없는 파티이다 보니 던전 탐험을 할 때마다 조마조마한 게 사실이었다.

  제피가 방어를 전담하기는 해도, 덤벼 오는 몬스터들의 숫자가 많을 때는 곤란을 겪었다.

  화령이 혼란의 춤이나 매혹의 춤으로 몬스터를 교란시켰는데, 그녀와 이리엔이 동시에 없으면 탐험에 큰 지장이 

 생기리라.

"제가 갈게요."

  다인이 몽둥이를 들고 나섰다.

  샤먼은 잡캐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직업!

  타격력도 가지고 있었으므로 몬스터가 정상이 아닐 때에는 흠씬 두들겨 주는 게 그녀의 특기였다.

  다인은 몽둥이를 휘두르며 가끔 중얼거리곤 했다.

"역시 매질은 손맛이야. 이 쥐어 패는 맛이 없으면 사냥을 하는 즐거움이 없다니까."

  모라타에 있는 샤먼으로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그녀는 페일의 일행에 속해서 도움을 주던 중이었다.

  제피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인 님이라면 믿을 수 있죠. 해독, 치료도 가능하시니까요. 화령 님과 다인 님이 같이 가셔서

도움을 주면 되겠네요."

  지하 감옥으로 갈 사람이 정해지고 나서는 유린이 위드가 설명하는 대로 그림을 그렸다.

  어두컴컴한 감옥의 입구, 위드의 옆에 유린과 다인, 화령이 함께 서 있는 그림.

  그림 이동술의 장점으로 여러 명을 한꺼번에 옮길 수도 있었다.

  물론 한 장의 그림에 사람들을 모두 그려야 하기 때문에 터무니없을 정도로 많은 인원의 이동은 불가능했다. 마나

 의 제약으로 인해서 너무 깊은 지하로의 이동도 하지 못했다.

"그림 이동술!"

  유린과 화령, 다인이 그림으로 빨려 들듯이 사라졌다.

  지하 감옥의 입구.

  위드가 기다리고 있는 장소에 물결치듯이 갑자기 나타난 유린과 화령, 다인.

음머어어어!

  누렁이가 반갑다는 듯이 순한 얼굴로 인사를 했다.

  수컷이었고, 예술 생명체의 특성상 아름다운 사람을 좋아했다.

"어머, 잘생기고 늠름한 수소네."

  화령이 누렁이의 목덜미를 부드럽게 어루만져 주었다.

  누렁이가 순박한 표정으로 주둥이를 벌리고 기뻐하는 찰나였다.

"오빠, 이 녀석 몇 근이나 나가?"

"최우량 한우야. 꽃등심 같은 특부위들은 조금씩 더 추가해 놨어."

"맛있겠다. 푹 고아서 사골 국물에 밥 말아 먹으면 그만일텐데."

  위드의 앞이라고 장난을 치는 유린!

  누렁이의 안색이 거무죽죽하게 죽었다.

  그러는 사이에 위드와 다인이 서로를 보았다. 다인은 모라타에서 받았던 저주의 여파로 인하여 얼굴이 알아보기 

 힘들게 변해 있는 상태였다.

  저주를 풀 수도 있었지만 위드가 어떤 모습으로 지내는지를 보기 위해서 내버려 두었다.

  다인이 먼저 허리를 가볍게 숙이며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말씀은 많이 들었어요."

  오랜만에 만나 복잡한 심경을 숨기면서 건네는 인사였다.

  위드는 짤막하게 자신을 소개했다.

"저는 조각사 위드입니다. 페일 님이 소개하신 샤먼 분이로군요."

"다인이에요."

  위드의 눈가에 이채가 스쳤다.

  페일의 일행에 다인이라는 샤먼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 이상한 우연의 일치라고 여겼다.

"다인이라... 그리고 샤먼이라고요."

"왜요?"

  위드는 무언가를 털어 버리듯이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그냥 옛날 기억이 조금 떠올라서요."

"어떤 기억인데요?"

"그냥... 저 혼자 가지고 있는 추억입니다. 지금은 긴말을 나눌 수 있는 시기가 아니군요."

  위드는 라비아스에서의 씁쓸한 기억을 떠올린 탓에 냉정하게 말했다.

  그가 지하 감옥 입구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듣고, 구경을 위하여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마탈로스트 교단

 의 신전에서부터 따라온 사람들도 있다.

  용병 스미스를 데리고 목적지까지 빨리 도착하는 편이 나으리라.

"이야기는 다음에 나누고, 지하 감옥부터 들어가도록 하죠."

  위드는 검을 뽑아 들고 전진했다.

  검 갈기나 방어구 닦기의 스킬들은 미리부터 사용해 놓았으니 거칠 게 없었다.

  다인이 몽둥이르 ㄹ휘두르면서 주문을 외웠다.

  힘 강화, 민첩성 증가, 이동속도, 공격 속도, 피부까지 단단하게 만들어 주는 주문의 효과가 위드에게 씌워졌다.

  보통의 샤먼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효과.

  위드의 힘이 230이 넘게 늘어나고, 이동속도 등도 매우 빨라졌다.

  무거운 짐을 덜어 놓은 것처럼 온몸에 힘이 넘쳐흐른다.

  체력과 민첩성이 올라서 바람처럼 달릴 수 있고, 절벽과 절벽 사이를 뛰어넘을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치타처럼 달릴 수도 있을 것 같은 느낌!

'굉장한 샤먼이군.'

  위드는 속으로만 생각했다.

  모라타에서 첫손에 꼽히는 샤먼이라더니, 스킬의 숙련도가 보통이 아니었다.

"엄청난 지하 던전이로군. 이렇게 깊을 줄은 몰랐어."

  전사 혼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엠비뉴의 지하 감옥은 방대한 규모를 자랑했다. 복잡한 미로와 여러 실험물들.

  몬스터들의 수준도 높은 축에 들었고, 함정도 부지기수였다.

  파티에 있는 도둑 유저가 함정들은 다 해체하였지만, 마탈로스트 교단의 사제들이 묶여 있는 장소까지 길을 헤매

 면서 이십오 일이 넘게 걸렸다.

  마탈로스트 교단의 포로 구출 퀘스트를 함께 받은 유저들은 40명이 넘었고, 레벨들도 꽤 높은 편이었다. 탐험가와

 정령술사 등의 도움이 있었기에 이 방대한 던전을 샅샅이 뒤져서 이곳까지 올 수 있었다.

  성기사 빌레오가 말했다.

"엠비뉴의 요새 아래에 있는 지하 감옥이라... 정말 보통 던전이 아니었어. 위드는 언제쯤 올까?"

  마법사 이스턴이 한가롭게 모닥불을 피우며 대꾸했다.

"모라타에서 출발했다고 들었으니 한 닷새 정도 걸리지 않겠어?"

  갈릭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표정이었다.

"그렇게 빨리?"

  본인들이 고생한 것에 비해서는 너무 빠른 도착이라는 뜻.

"우리가 길을 알려 주었잖아. 함정들도 다 해체해 놓았으니까 나흘이나 닷새 정도면 무난히 올 수

있겠지. 더 늦어질 수도 있겠지만 말이야."

  혼은 파티의 리더로서 결정을 했다.

"그러면 우리도 시간을 낭비할 수 없으니 이 부근에서 사냥이나 하면서 기다리고 있도록 하자."

"그럴까?"

"주위를 둘러봐. 다른 사람들도 다 사냥을 하고 있잖아."

  지하 감옥에는 몬스터들이 상당히 많았다.

  빛이 안 드는 장소라서 흉측한 괴물들이나 엠비뉴의 저주를 받은 생명체들이 살고 있다.

  수준도 상당히 높은 편.

  레벨 350대의 몬스터들이 주로 나왔다.

"서두르면 닷새 내로 올 수 있겠지."

  위드는 지하 감옥의 입구를 지키는 암흑 기사들을 향해 접근했다.

  전설적인 조각품을 만들어서 감상하고 샤먼의 스킬까지 적용되어서, 나는 듯이 빠르게 움직였다.

"상대할 적은 암흑 기사 열다섯입니다."

  엠비뉴 교단의 수문장들.

  데메테르 교단의 파문 사제도 암흑 기사들을 돕고 있는데, 지하 감옥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들부터 처

 리해야 한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통곡의 강 유역에서 사냥하던 파티가 일정 수 이상 모이면 수문장들과 싸우는 게 일반적이었다

  최소한 20명 정도는 모여야 안심하고 싸울 수 있는 암흑 기사들!

  위드는 화령과 다인, 유린을 데리고 싸우려고 했다.

'사람이 너무 많으면 번거롭기나 하지.'

  혼자 사냥을 할 때도 많았으니 이 정도의 동료가 있다면 충분하고도 남는다.

  인원수가 늘어나면 잡템까지도 분배해야 하는데 그때의 고통이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

"뭐야, 저 사람들끼리 사냥을 하려고 가는 거야? 미친 건가?"

"방송에서 봤잖아. 굉장히 강한 거 말이야."

"도와주는 야만족들이 많았으니까 퀘스트에 성공했던거지."

"우리가 같이 싸워야 지하 감옥에 들어갈 수 있을 텐데......"

"일단 두보 보자. 필요하면 도와 달라고 하겠지."

  전쟁의 신 위드.

  그의 동료가 될 수 있다는 흥분을 감추지 않고 구경꾼들은 멀리서 지켜보았다.

  물론 부른다면 당장 뛰쳐나가서 도와주고, 힘을 과시할 수 있으리라.

  위드와 같이 파티를 맺는 것도 대단한 영예였기 때문이다.

  화령이 걱정스러운 듯이 말했다.

"기사들의 레벨이 어느 정도나 돼요?"

"330대 초반가량. 엘리트 암흑 기사들은 380 정도 됩니다."

  엘리트 암흑 기사는 이곳에 없었지만 위드는 일단 설명 했다.

"기사들이 굳은 심지를 가지고 있으면 매혹의 춤에 잘 안 걸려들 텐데요."

  화령의 매력이라면 누렁이도 꼬리를 흔들 정도였다.

  댄서로서 필수적인 매력 스킬 외에도 옷과 액세서리의 조합, 화려하고 자극적인 춤으로 교태를 흘리면 넘어가지 

 않는 남자들이 없는 것이다.

"제가 생명력이 적어서요. 암흑 기사 정도 수준의 몬스터한테 맞으면 금방 죽어 버릴 텐데 괜찮

을까요?"

"제가 먼저 진열을 흩트려 놓을 테니 그 후에 춤을 추세요."

"위드 님만 믿을게요."

  암흑 기사들이 위드를 알아보고 반응했다.

"우리 교단의 적."

"신앙의 근거지를 무너뜨리고, 대신관님을 죽음에 이르게 만든 역적이다."

"간교한 세 치 혀로 미개한 야만족들을 꾀어내어 신성한 뜻을 떠받드는 우리에게 도전했던 그

악독한 녀석이 왔다."

  암흑 기사들은 격렬한 비난과 함께 돌진했다.

  기사들의 돌격!

  기사들은 일대일의 승부를 고집하는 경우도 가끔 있었다. 명예와 긍지가 있기 때문에, 기사들에게 일대일로 싸우

 자는 제안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위드에게는 그러한 규칙이 통하지 않았다. 엠비뉴 교단과는 양립할 수 없는 적대적인 관계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철컥철컥철컥.

  갑옷의 관절들이 부딪치는 소리를 내며 덤벼 오는 암흑 기사들의 돌격은 무시무시했다.

  기사들의 돌격은 일찍이 킹 히드라의 두꺼운 몸뚱이에도 상처를 입힐 정도였다. 막대한 갑옷의 하중이 실려 있기

 에, 방패를 들고 막더라도 체력과 생명력이 뚝뚝 떨어진다. 충격으로 인해 몸이 마비되는 경우도 허다했다.

  그러나 위드에게도 방어 스킬은 있었다.

  눈 질끈 감기!

  시야를 제한함으로써 인내력과 맷집을 키우는 워리어들의 기술.

  그것뿐만이 아니라, 거의 사용하지 않지만 달빛 조각 검술도 공격과 방어가 일체화된 스킬이었다.

  오로지 공격 스킬로 사용할 때에는 적의 방어를 무시하고 큰 피해를 입힐 수 있다. 재료 그 자체를 조각하는 조각

 사의 특성과, 빛을 다룰 줄 아는 기술 덕분이었다.

  빛을 이용하여 적의 눈을 부시게 하거나 몸 전체에 둘러서 방어적인 용도로 사용하는 것도 가능했다.

  마법 공격에 비해서 물리적인 타격을 잘 막지 못하며 마나의 소비가 빠르다는 단점도 있기는 했지만, 위드가 시험

 삼아 써 본 결과는 가공할 정도였다.

  위드가 몸 전체에 빛을 두르고 날개를 펼친 상태로 몬스터들이 군집한 사이를 꿰뚫는다.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처럼 빠르게 다가오는 몬스터들을 향한 정확한 검술!

  빛을 쏘아 내서 맞힐 수도 있지만 그러면 마나의 소비가 너무나도 극심해진다.

  직접 검을 휘둘러서 베어 버리는데도 몬스터들을 초토화 시키는 데에 잠깐의 시간이 걸렸을 뿐이다.

  케르탑 7마리!

  정상적으로 싸워서는 한참이 걸렸을 전투였는데 불과 30-40초 만에 싱겁게 종료될 정도였다.

  물론 체력과 마나를 거의 다 소모해서, 전투가 끝나고 나서는 한참을 쉬어야 했다.

  생명을 부여한 빛의 날개를 이용하여 몬스터들을 우회하거나 뒤에서 역습을 가할 수도 있었다. 활용 가능한 전투

 법은 무궁무진했다.

  하지만 위드는 그런 최선을 다하는 전투를 벌일 일이 거의 없었다.

  엠비뉴 요새를 함락시킬 때가 가장 큰 전투 기회였지만, 소환된 바르칸이나 킹 히드라, 이무기 등이 기대 이상으

 로 잘 싸워 주었기 때문이다.

  킹 히드라의 목을 한꺼번에 자를 때에나 잠깐 본래의 모습을 드러내려고 했지만 지쳐서 싱겁게 끝을 내 버렸다.

"사냥이 식상해, 시시해."

  위드 스스로의 성장에 따라서 웬만한 전투는 지루할 정도였다.

  최선을 다하는 전투는 인내나 맷집까지 올릴 수는 없다. 최고의 사냥 효율을 위해서는 부딕이하게 희생시켜야 할

 부분도 있는 셈이었다.

  지하 감옥에 몬스터는 널려 있다고 한다.

  전투가 계속 이어질 게 예상될수록 마나를 소모하는 스킬에 의존해서는 안 되는 법.

"흙꾼아, 내 주변의 땅을 진흙으로 만들어라."

  대지의 정령이 눈 깜짝할 사이에 소환되었다.

  위드가 직접 만들어서 신선하고, 소환에 따른 마나 소모도 적고, 말도 잘 듣는 정령이었다.

  마나의 회복 속도가 매우 빨라진 지금은 정령들 정도는 얼마든지 쓸 수 있었다.

"베르사 대륙 최고의 미남인 위드 님의 명령을 받아서 왔습니다. 지금 바로 대지를 진흙으로 만들

겠습니다."

  다른 정령들은 거만하고, 소환 의식에도 상당히 시간을 끌었다. 정령술사와의 친밀도가 높은 편이어도 말을 잘 듣

 는 경우가 드물다.

  하지만 흙꾼이는 부르는 즉시 튀어나온다.

  기사들이 돌격하는 대지가 금방 발목까지 잠기는 진흙탕으로 변했다. 갑옷을 입은 기사들이 나뒹굴로, 늪처럼 변

 한 장소에서 허우적거렸다.

"뭐야, 저 정령은?"

"대지의 정령인가? 금방 나타났어!"

  흙꾼이를 본 사람들의 놀라워하는 반응이었다.

"절대적 카리스마 위드 님 만세! 명령을 수행했습니다. 더 시키실 일이 없습니까? 뭐든 저를 부려

주세요."

  위드가 적선하듯이 말했다.

"너도 같이 싸우자."

"고맙습니다, 주인님. 이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땅속 깊이 간직하겠습니다."

  흙꾼이는 흙더미를 일으켜서 암흑 기사들을 덮쳤다.

  흙이라서 공격력이라고는 별로 없었지만 속에 바위들이 교묘하게 숨겨져 있어서 암흑 기사들이 상대하지 않을 수

 가 없다.

  흙꾼이는 정령치고는 마나이 소모도 적은 편이었다.

  지금의 위드에게는 마나가 넘쳐 나는 샘과 같았으니 아낄 필요도 없다.

"흙꾼아, 내 마나를 얼마든 써도 좋다."

"영광입니다, 주인님."

   콰과과광!

  흙 줄기가 화산처럼 하늘로 비산한다.

  암흑 기사들이 허벅지까지 땅에 잠겨서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늪 속으로 위드가 뛰어들었다.

  그가 내딛는 장소마다 단단한 땅이 되어서 걷는 데 불편함은 없었다.

"엠비뉴 교단의 원수!"

"잘 왔다. 너를 베어 주마."

  암흑 기사들은 흙더미로 인해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위드를 향해서 검을 휘둘렀다.

  거구인 기사들이었지만 다리가 흙 속에 잠겨 있는 탓에 키가 얼추 비슷했다.

  암흑 기사들이 경황없이 휘두르는 흙 묻은 검.

  위드가 휘두르는 검이 아름다운 소리를 내며 암흑 기사들의 검을 연속해서 타고 흐른다.

   타라라라랑!

  암흑 기사들이 몰려 있던 장소에, 눈보라가 갈라지듯이 길이 뚫렸다.

"본 커터!"

"샤프니스 블레이드!"

"일루전 소드!"

  암흑 기사들의 검이 빛나면서 스킬들이 시전되었다.

  상대의 뼈를 깎아 내는 공격력 강화 스킬!

  예리함으로 힘을 집중시켜서 관통하는 스킬!

  암흑 기사들은 검을 분리해서 5개나 만드는 스킬까지 사용했다.

  위드를 둘러싸고 암흑 기사들의 공격이 날아들었다.

  위드는 격하게 몸을 틀었다.

  맨몸에 적중당하면 치명상을 입히는 본 커터를 피하고, 일직선으로 찔러 오는 검은 몸을 뒤로 뒤집어서 피한다.

  간신히 피하고 났더니 5개의 분리된 검의 공격.

  위드의 눈이 번뜩였다.

'이런 스킬에는 반드시 허점이 있다.'

  힘과 공격력을 분산시킨다는 결정적 단점!

"소드 댄스."

  위드는 민첩하게 발을 움직이면서 검을 휘둘러서 5개의 공격을 모두 쳐 내었다.

"크윽!"

  암흑 기사는 공격이 깨진 것만으로도 큰 수치를 느끼는 듯 했다. 높은 자존심을 접고 합동 공격을 했음에도 불구

 하고 위드를 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본 커터!"

"계속 공격해라!"

  위드는 암흑 기사들 사이에서 진흙탕의 미꾸라지처럼 활개를 쳤다.

  그들 사이에 뛰어들고 난 이후에는 스킬들을 활용하지 못하도록 적들을 이용하여 살이 닿듯이 근접 거리에서 움직

 였다.

'근접전이야말로 최고의 싸움이라고 할 수 있지.'

  검사들이야 초창기부터 스킬들을 사용한다.

  검기를 거침없이 날리고, 파공참 같은 원거리 공격 스킬도 사용했다. 화려한 효과에, 그만한 위력을 보인다.

  고레벨로 오를수록 공격력만큼은 끝내주는 직업이었다.

  사냥에서 각광받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반면에 위드는 대부분의 전투를 조각 검술 하나 믿고 몸으로 때웠다. 최소한의 마나 소모로 스킬과 맷집을 향상시

 킬수 있는 근접전으로 성장을 해 왔다.

  기사들이 빠르고 날카롭다고는 해도 경험이 쌓여서 웬만큼은 피할 수 있었다.

'더구나... 사형들이나 스승님의 검보다는 훨씬 느리다.'

  발동작만 보아도 공격이 얼추 어느 쪽으로 향할지 짐작하게 된다.

  위드는 암흑 기사들의 위치와 공격 방향을 머릿속에 넣고 그들 사이에서 움직였다.

'빠르고 부드러우면 다수와 싸우더라도 무너지지 않는다.'

  검을 흘리고 쳐 내면서 파고든다.

  위드의 중급 7레벨에 오른 검술 스킬은 전투의 기본이 되었다.

  암흑 기사들보다 검술 스킬이 높았기에, 정확한 타격점을 두들기면 상대방의 공격 스킬들이 해제되어 버리는 경우

 가 많았다.

"트리플!"

  위드는 지극히 최소한의 스킬만을 사용하면서 암흑 기사들을 스치듯 베고 지나갔다.

  전매특허라고 할 수 있는 조각 검술은 구경꾼들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서 숨겼다. 실력의 상당 부분은 발휘하지 않

 는 편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서 도움이 되기 때문이었다.

  조각 검술은 보통의 몬스터보다 매우 강한 몬스터를 상대할 때에 효과적이고, 특히 기사나 워리어 들을 베어 버릴

 때 최적이다.

"으윽!"

"빠져나갔다."

  암흑 기사들은 둔중한 신음을 질렀지만 쓰러지지는 않았다.

  기사들이 상대하기 까다로운 이유로, 풀 플레이트 아머를 입고 있어 굉장한 방어력과 생명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

 이다.

  하지만 피해는 작은 상처로 끝나지 않았다.

  위드의 검이 악마를 베었다던 데몬 소드인 탓이다.

-데몬 소드의 빙결의 저주.

몸의 일부가 얼어붙어서 힘과 민첩성이 크게 하락합니다.

얼음 속성의 데미지가 매초마다 35씩 생명력을 저하시킵니다.

-데몬 소드의 깨진 암석의 저주.

착용하고 있는 방어구에 균열이 발생해서 내구도가 연속해서 하락됩니다.

방어력이 저하됩니다.

-데몬 소드의 몽마의 저주.

악령들이 달라붙어서 착시 현상을 일으키며, 정신력이 약해진 이의 육체를 급속도로 붕괴시킵니다.

  위드의 난입으로 인해 암흑 기사들은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순간적으로 만들어진 빈틈을 이용해 화령이 기사들 사이를 헤집고 다녔다.

"매혹의 춤!"

  클럽이나 나이트의 무대에서나 볼 수 있는 관능적인 부비부비!

  화령의 몸이 스치고 지나가면 암흑 기사들은 얼어붙은 듯이 자리에 멈췄다. 흐릿한 눈동자로 침을 흘리고 정신을

 놓아 버리기도 했다.

  화령도 못 보던 사이에 엄청나게 성장해서, 그녀가 춤을 추면 나비가 날아다니고 꽃들이 흩뿌려졌다.

"댄서는 항상 우아해야 돼!"

  꽃 뿌리기 스킬까지 덤으로 사용하고 있는 그녀!

  화령이 춤을 추면서 지나가는 자리마다 유혹적인 향기가 났다.

  10명도 넘는 암흑 기사가 매료되어 싸울 의욕을 잃어버리는 건 잠깐이었다.

"크아아악!"

  위드는 방어력이 약한 사제부터 가볍게 사냥했다.

  사제들은 레벨이 높더라도 생명력이 적어서 죽이는 게 금방이었다.

  사제를 처리했을 무렵에는 화령의 활약으로 인해서 위드를 공격하는 암흑 기사들이 셋으로 줄어 있었다.

"너무 쉽군."

  위드와 화령은 손발이 척척 맞았다.

  위드는 암흑 기사들 3명의 공격을 간단히 흘리면서 적극적으로 반격을 가했다.

-치명적인 일격이 터졌습니다.

  그럴 때마다 정확한 타격들!

  위드는 악마를 베었던 콜드림의 데몬 소드를 효과적으로 이용했다.

  데몬 소드는 호랑이에게 날개를 달아 준 꼴이었다.

  힘과 공격력을 바탕으로 해서 치명적인 일격을 맞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잘한 상처들을 많이 낸다. 7개나 중첩되

 는 데몬 소드의 저주를 통해서 암흑 기사들을 심하게 약화시켜 놓은 다음에 숨통을 끊어 놓았다.

  위드는 입고 있는 갑옷이 무겁기만 한 짐으로 느껴질 만큼 환상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구경꾼들의 입이 쩍 벌어졌다.

"이게 뭐야?"

"사람이 어떻게 저런 식으로 움직일 수 있지? 암흑 기사들의 공격이 보이는 거야?"

"저건 보인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게 아냐. 휘둘리는 검을 중간에 쳐서 방향을 바꾸어 놓고 있잖

아."

  눈을 비비고 다시 봐도 믿을 수 없는 장면들이 속출했다.

  초보 워리어나 기사 들은 대부분의 공격을 맷집과 스킬, 방어구를 믿고 맞으면서 싸운다. 어느 정도 실력이 쌓였

 더라도 방패를 이용해서 막거나 무기를 앞세워서 막아 내는 정도다.

  위드는 손가락 한 마디 정도의 간격으로 적의 공격을 피해내고, 급소들을 찌르고 빠졌다.

  그나마 이 정도도 위드가 실력을 많이 억제하고 있는 거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사람들은 스스로에 대한 극심한 회

 의와 좌절감에 빠졌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베르사 대륙의 유명한 검사들이 싸우는 동영상도 이 정도는 아니었어."

"그래도, 공포심이란 게 아예 없는 건가? 저런 상황에서 어떻게 앞으로 뛰어들 수가 있지?"

"난 와이번을 타고 싸울 때 알아봤잖아. 저런 전투가 위드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거라니까!"

  구경꾼들이 생각해 오던 그 이상의 전투가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위드의 자연스러운 동작 하나에 매료될 수밖에 없었다.

  높은 레벨이나 스킬에 의존해서 싸웠다면 이렇게 놀라지 않았겠지만, 몸놀림 자체가 예술이었다.

  전투를 즐기고, 모든 움직임들을 지배하고 있는 듯한 싸움의 장면들.

  유저들은 현재 위드가 하는 행동들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잘 알았다.

"스탯이나 스킬, 모든 게 최적화되어 있어."

"자신이 가진 전부를 전투에 동원하고 있잖아."

  고레벨 유저들의 평범한 수준은 캐릭터의 기술을 잘 활용하는 정도였다. 여러 공격 기술들을 상황에 맞게 파악하

 고, 싸워서 승리한다.

  그에 비해서 위드는 전투를 위하여 태어난 인간처럼 정확한 판단력과 움직임을 보인다.

  같은 캐릭터라고 해도 어떤 식으로 싸우느냐에 따라서 전투에서의 활약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격투 게임에서 같

 은 능력의 캐릭터를 가지고 싸워도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나는 것처럼 말이다.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암흑 기사들이 검을 휘두르는 중심부로 뛰어들지도 않을 것이고, 그 검을 맞혀서 흘리려고도

 하지 않을 것이다.

  아니, 그 전에 무리하게 암흑 기사들과 싸우지 않고 안전하게 동료들을 더 모으는 편을 택하리라.

  위드의 전투를 보면 거침없이 돌격해서 구경하는 사람들의 피를 뜨겁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었다.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열광하게 만들고, 전투에 몰입되게 했다.

"암흑 기사가 10명이 넘어. 근데 정말 4명이서 사냥을 하고 있네. 레벨이 300대 후반의 파티라

면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저기 화가를 좀 봐! 레벨 30 제한이 있는 튜닉을 입고 있잖아."

"진짜 레벨이 50도 안 되는 거야?"

"직업이 화가잖아. 싸움에도 안 끼어. 낙서만 하고 있어."

  유린은 격식 있게 장엄한 갑옷을 입고 위압감까지 갖춘 암흑 기사들을, 못난 원시인처럼 그리고 있었다.

  덥수룩한 수염에 튀어나온 코털, 갑옷 대신 입고 있는 건 쫄쫄이 타이츠.

"샤먼이 장비하고 있는 무기도 좋은 건 아닌데?"

"모라타에서는 굉장히 유명한 샤먼이야. 예전에 한번 같이 파티를 한 적도 있지만... 레벨은 25

0도 안 돼."

"그런데도 암흑 기사들을 사냥한단 말이야? 위드가 있다고는 해도 말도 안 돼."

"샤먼도 대단하고, 댄서가 저렇게 전투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건 처음 봐. 나도 저렇게 매력적

인 댄서와 함께 춤을 출 수 있었으면......"

  구경꾼들의 찬사가 이어지고 있을 때, 위드의 표정은 심드렁했다.

'지루하군.'

  암흑 기사들의 능력은 대단한 편이었다.

  기사였고, 방심할 수 없도록 둔중하고 묵직한 공격을 퍼붓는다.

  예전에 레벨이 300이었을 때라면 객관적으로 자기보다 강한 몬스터라고 신이 나서 사냥을 했으리라.

  하지만 위드의 레벨은 370이나 되었으니 그럭저럭 편하게 잡을 만했다.

  다른 이들에게는 딱 적당한 적수들이, 불리한 상황에서 발버둥을 치며 성장해 왔던 위드에게는 졸릴 뿐이었다.

'너무 약해.'

  암흑 기사들 여럿을 한꺼번에 사냥하고 나서도 이 정도는 시시하다는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위드는 지하 감옥으로 들어가고 나서도 가볍게 몬스터들을 도륙했다. 화령이 잠을 재워 주니 허무할 정도로 간단

 히 몬스터들을 사냥할 수 있었다.

  구경꾼들이 많아서, 맷집을 키우기 위해서 암흑 기사들에게 일부러 맞아 주지도 못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지금은 조각품을 만들고 난 후라 생명력과 마나의 회복 속도도 엄청난 수준이라서, 여간해서는 싸우고 또 싸워도

 지치지를 않는다.

  위드의 앞에 엠비뉴 교단의 몽크들이 등장했다.

  주먹이나 발 차기를 주 무기로 하는 제법 빠르고 고강한 무리.

  위드는 조각 검술에 다른 스킬을 덧씌웠다. 조각 검술은 순수하게 검술 자체에 적용되는 기술이기 때문에 가능한

 공격이었다.

"15연환참격."

   퍼버버버버버버버버버벅!

  거침없이 달려들어서 검으로 사정없이 후려 팬다.

  일절 자비도 없고, 아량도 베풀지 않았다.

"해머 피스트!"

  몽크들이 간신히 주먹을 뻗으면 그 정도는 서서 맞아 주었다.

  위드의 장비도 상당한 것들이라서 몽크들의 주먹에 몇 대 맞는 정도는 거뜬했다.

"지금 때렸냐?"

  위드의 눈가가 씰룩였다.

  어설프게 맞아서는 인내나 맷집도 오르지 않는다.

  스탯이 오르지도 않는데 굳이 참으면서 맞아야 할 필요가 없는 상황!

"15연환참격!"

   빠바바바바바바바박!

  잔인하게 몽크들을 후려 팼다.

  이리 패고 저리 패고 쫓아가서 패고, 죽기 직전에 스킬을 시전한 게 아까워서 한 대라도 더 팬다.

  검이 난무하면서 몽크들을 사정없이 후려갈겼다.

  구경꾼들에게는 엠비뉴 교단의 몽크들이 불쌍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마나이 회복 속도가 너무 빨라서 스킬을 써도 금방 다시 찼다.

"위드! 이곳까지 오다니......! 너의 더러운 악명은 많이 들었다. 엠비뉴 교단의 복수를 내가 해

주겠다."

  엘리트 암흑 검사가 지하 감옥에서 망토를 펄럭이며 다가왔다.

  위드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따면 흥분과 긴장되는 분위기가 조성되었을지도 모른다.

"엘리트 암흑 검사, 너도 잘 나왔다. 소드 카이저!"

  엘리트 암흑 검사의 공격을 피하고 그대로 맞받아쳐서 발동시키는 최고의 공격 스킬!

"크윽!"

  엘리트 암흑 검사가 보잘것없이 벽면으로 내팽개쳐졌다.

-거대한 충격으로 엘리트 암흑 검사가 공황 상태에 빠졌습니다.

  위드는 검을 들어서 후려갈겼다.

"그러게 뭐하러 나타나, 얼른 죽어라. 죽어! 죽어!"

  엘리트 암흑 검사는 어깨 보호대를 내놓고 허무하게 목숨을 잃었다.

"장비!"

  위드가 혀를 내밀어 아랫입술을 핥았다.

  탐욕으로 입술이 마르고 목에 갈증이 일어나는 상황이었다.

"이렇게 된 이상은 검술 스킬이나 공격 스킬 숙련도 그리고 경험치나 모아 봐야겠군!"

   퍼버버벅!

   뻑! 쾅! 우당탕!

"꽤액!"

   촥촥촥촥촥촥!

  방어력을 위한 스탯을 올릴 생각을 하지 않고 사냥에만 전념하니 남는 것이라고는 몬스터들의 끔찍한 잔해뿐이었

 다.

  뒤를 따라오던 구경꾼들이 점점 거리를 두고 멀어졌다.

"우으......"

"이래서 위드가 지나간 장소에는 몬스터들의 씨가 말랐다고 하는 거였구나."

"저런 더러운 성격이었따니. 한 놈도 안 살려 주고 패고 패고 계속 패잖아."

"방금 봤어? 이미 죽은 몬스터가 땅에 쓰러지기 전에 세대나 더 때렸어."

"몬스터를 저런 식으로 때려잡는 사냥법은 처음 봐."

"악명이 헛소문이 아니었떤 거야."

  구경꾼들은 부산을 떨면서 물러났다.

  이렇게 더러운 성질머리를 가지고 사냥을 하는 인간에 대한 두려움!

  멀찌감치 물러나긴 했어도 위드가 말하는 소리가 아직 그들에게까지 들렸다.

  다섯 무리 정도의 암흑 기사와 엠비뉴 교단의 수행자들을 처리하고 나서 나누는 대화였다.

"전투를 더 빨리하죠."

"어떻게요?"

"화돌이들, 나와."

  넘치는 마나로 인해 상급 불의 정령들이 여덟이나 소환되었다.

  이글거리며 붉게 타오르는 몸을 가진 정령들은 위드를 향해 넙죽 엎드리고, 불꽃 쇼를 일으키면서 애교를 부렸다.

  정령에 대한 지배력이 극에 달한 모습이다.

"부르셨습니까, 이 하늘 아래 가장 뛰어나신 우리의 창조자이시여!"

"너희 불장난 좀 하자. 이쪽 통로 끝에서부터 차례대로 불을 질러라."

"알겠습니다, 주인님."

  위드는 복잡한 지하 감옥의 막힌 길들에 대해 원정대로부터 들어서 알고 있었다. 통로 안에는 함정도 있고, 몬스

 터들도 득실득실했다.

"반드시 확인해 보고, 사람이 없는 장소만 골라서 불을 지르도록 해."

  위드는 주의를 주었다.

  파티들이 사냥을 하는 장소에 불을 질렀따가 혹시 그들이 죽기라도 하면 살인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목숨을 바쳐서 명령을 수행하겠습니다. 저희를 잊지 않고 임무를 맡겨 주셔서 지극한 영광입니

다."

  지하 감옥의 막혀 있는 통로들에는 암흑 기사와 몬스터들이 쌓여 있었다.

"쿠에."

"끅끅끅."

  몬스터들이 있는 통로의 건조하던 공기가 점점 후끈하게 달아올랐다.

"끄에에에에!"

  침을 힐리면서 괴로워하는 몬스터들!

  막혀 있는 통로에서부터 폭발적으로 불길이 일어나기 시작하자 그들은 고함을 지르면서 밖으로 뛰쳐나왔다.

"수확이다. 15연환참격!"

  위드는 화염에 휩싸인 몬스터들이 나오는 족족 때려잡았다.

  숙련된 농부의 낫질처럼 몬스터들의 목과 머리, 급소 등을 정확하게 노린다.

"역시 사냥은 이 맛이지."

  위드의 앞에서 몬스터들이 우후죽순 죽어 나갔다.

  몬스터들이 회색빛으로 변하면서 잡템과 장비들이 떨어지면 그 와중에도 비싼 것들을 분류해서 챙기고 누렁이의 

 등에 올렸다.

  바쁘기 짝이 없는 손놀림이었다.

"크아! 진짜 말도 안 돼."

"이런 식으로 사냥을 하는 게 가능하긴 한 거야?"

  구경꾼들은 이런 사냥은 처음 봤다.

  보통의 사냥 파티라면 통로나 광장의 한구석에 자리를 잡고 사냥을 하기 마련이었다. 잡담도 나누고, 음식도 만들

 어 먹고, 휴식도 취하면서 말이다.

  몬스터들이 나타나는 속도가 느리면, 이동을 하면서 더 많은 사냥을 한다.

  이럴 때 파티의 리더는 도둑이나 모험가, 암살자 등이 맡았다. 몬스터들의 흔적을 살피고 쫓아가야 했기 때문이다

  파티원들의 상태를 고려하면서 몬스터들을 잘 찾아내는게 리더의 능력이었다.

  즉, 지형을 알고 몬스터들의 특징을 파악하면서 사냥의 효율을 높이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위드는 달랐다.

  사냥의 범위가 좁은 통로나 한자리에 고정된 게 아니었다.

  이 거대한 지하 감옥, 던전의 특성을 감안해서 주변 일대를 사냥의 범위에 넣어 버렸다.

"경험치가 진짜 끝내주게 오르겠다."

"잡템 좀 봐. 사냥하는 속도가 빠르니 아이템들도 무진장 떨어지고 있어."

  구경꾼들에게는 한없이 부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

  위드의 마나 회복 속도가 빨라졌기 때문에 보여 줄 수 있는 사냥법이었다. 아무리 체력과 마나를 잘 보전하면서

 싸우는 위드의 방식이라고 해도 엄연히 한계는 있엇던 것이다.

  감당하기 벅차고 까다로운 몬스터는 화령이 매혹의 춤으로 재워 놓고 정리하였으니 편하기도 했다.

  다인은 샤먼으로서 훌륭한 실력을 갖춘 덕분에 전투에 매우 효과적인 도움을 주었다. 암흑 기사들의 공격을 더 정

 확하게 끊을 수 있도록, 민첩성도 늘어나고 힘도 세졌다.

  다인 덕분에도 전투가 편해지고 한결 쉬워졌다.

  지하 감옥에서 사냥하던 파티 하나가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휴우."

  워리어가 이마에 흐르는 땀을 씻어 내었다.

"여기의 몬스터들은 수준이 엄청나군."

  성직자도 구겨진 사제복을 펼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대충 자리에 주저앉았다.

"모라타로 돌아가면 친구들에게 자랑을 해야겠어. 여기 지하 감옥에서 사냥을 하고 있다고 말이

야."

"동료들을 데려오면 더 좋은 사냥을 할 수 있을 텐데......"

"풋. 그런 말 하지마. 우리처럼 짭짤하게 경험치를 올리면서 사냥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지 않을

테니 말이야."

"2시간 동안 일곱 번이나 싸웠어. 굉장한 전과지."

"올해 내에 가장 속도감이 있는 전투로군. 몬스터들이 많이 나와서, 사냥을 위해서는 정말 좋은

장소야."

"이번에는 파티원이 7명밖에 안 되어서 조금 역부족인 감이 있긴 해. 다음에는 공격력이 강한 마

법사와 검사를 1명씩 더 추가해서 제대로 사냥을 해 보자."

  환담을 나누면서 휴식을 취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포악한 엠비뉴의 이단 사냥꾼 11명이 통로에서 접근해 오고 있었다.

  파티원들이 무기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쉴 틈을 주지 않는군."

"어떻게 할까. 아직은 거리가 조금 있는데 도망칠까?"

  걱정스럽게 의견들을 나누고 있을 때였다.

  이단 사냥꾼들이 있는 장소로 커다란 생명체와 사람들이 접근했다.

  시커먼 탈로크의 갑옷과 투구, 장갑 등을 착용하고 있는 남자 1명이 재빨리 달려왔다. 뒤를 이어서 늙은 용병 1명

 과 3명의 여자들이 크고 건장한 검은 소를 타고 움직이고 있었다.

"매혹의 춤!"

  소에서 내린 댄서가 춤을 추며 이단 사냥꾼들을 흩트려 놓았다.

  샤먼은 마법을 사용했다.

"흔들리는 눈, 공포를 증폭시켜 가장 보고 싶지 않은 것을 보게 하라."

  이단 사냥꾼들의 정신력은 취약하기 이를 데 없다. 게다가 남자였기 때문에 화령이 춤에 쉽게 시선을 빼앗긴다. 

 그 틈을 파고들어 다인의 숙련도 높은 마법이 발동되었다.

  다인은 누렁이의 등에서 내리지도 않았다.

"엠비뉴 신이시여, 저를 버리시나이까?"

"내가 이단이다. 나를 심판하라!"

  이단 사냥꾼들이 절규하고 있을 때, 위드가 검을 휘둘렀다.

"15연환참격!"

  후퇴도 중단도 없는 검술.

  전진하면서 힘을 더하는 검술로, 이단 사냥꾼들의 약점 부분들만 정확하게 베어 버렸다.

  다인의 강화 마법으로 인해서 힘과 민첩성, 전반적인 전투 능력이 증폭되어 있었다.

"15연환참격!"

  집단 사냥을 위해서 효과적인 스킬을 거침없이 사용하면서 이단 사냥꾼들을 몰아붙인다.

  이단 사냥꾼들이 전열을 가다듬고 무기들을 휘둘렀지만 속수무책.

  위드의 검이 베고 지나갈 때마다 저주에 걸려 몸이 불에 타거나 벌레들이 들끓고 머리카락들이 실뱀으로 변했다.

  전투가 끝나니 누렁이에서 내린 유린이 간단히 잡템들을 주웠다.

"달려!"

  이단 사냥꾼들을 순식간에 처치한 그들은 다음 목적지를 향하여 뛰어갔다.

  등장과 사냥, 이동이 전광석화처럼 이루어진 파티!

  멀리서부터 후끈한 열기와 함께 몬스터들이 쿵쾅대며 달려오고 있었다. 그 몬스터들의 무리로 향하더니 순식간에

 싸우고 또 다른 장소로 움직였다.

  원래 그 자리에서 사냥을 하던 사람들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지?"

"이단 사냥꾼들을 이렇게 빨리 잡다니...... 검사의 발놀림을 봤어? 스킬이라고 해도, 어떻게 

그런 각도로 적에게 뛰어들 수가 있지? 너무도 쉽게 적의 배후로 돌아가서 칼질을 했잖아. 몇 대

얻어맞기는 했지만."

"꼭 귀찮아서 일부러 맞아 주는 거 같기도 하던데?"

  그들이 떠나고 5분도 지나지 않아서였다.

  위드와 누렁이 등이 등장했던 방향의 통로에서 우르르 사람들이 몰려왔다.

  통곡의 강 부근에서부터 따라오고 있는 구경꾼들이었다.

"저기요."

"예?"

"방금 위드와 동료들이 지나기지 않았어요?"

"위드요?"

"전신 위드요. 이쪽 방향으로 안 지나갔어요?"

  중요한 걸 놓친 듯이 발을 동동 구르면서 다그치듯 말하는 젊은 전사!

"그런 사람 모르는데... 아, 검은 소를 타고 온 파티가 이단 사냥꾼을 잡고 지나가긴 했는데요."

"이단 사냥꾼!"

  함께 왔던 다른 구경꾼들도 물었다.

"몇 명이나 되었는데요?"

"11명요."

"11명이나! 잡는 데는 몇 분이나 걸렸어요?"

"글쎄요. 시간을 뭐라고 말해야 될지...... 정말 잠깐 사이에 벌어진 일이라서요."

"그래도 꼭 말해 주세요."

"대략 2분에서 3분 정도?"

"그렇게 빨리!"

  구경꾼들은 환호하면서 위드와 누렁이 들이 사라진 쪽으로 달려갔다.

"뭐야, 방금?"

"설마... 위드가 그 위드였어? 전신 위드! 그가 지하 감옥에서 사냥을 하고 있는 거야!"

  다인은 숨 가쁘게 위드를 따라다니면서 느낄 수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