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언데드의 밤
하벤 왕국의 함대와 해적들은 아예 진을 치고 지골라스 점령에 나설 기세였다.
위드가 하급 언데드를 소환하지 않는 이상 머릿수가 현저하게 부족했다.
하지만 좀비 같은 언데드들을 불러온다고 해도 의미는 크게 없을 것이다.
드린펠트나 유저들, 하다못해 선원들이라고 하더라도 최소한 데스 나이트급 정도는 소환을 해 줘야 싸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나도 동료들을 구해야 되는데……."
지골라승세는 여러 몬스터들이 있다.
몬스터라고 해도 무시할 게 아니다.
친밀도와 우호도를 많이 올려놓는다면 도움을 줄 수도 있다.
지성이 낮고, 식탐이 심한 몬스터에게는 맛있는 요리를 해주면서 호감을 이끌어 낸다.
필요한 물건들을 선물하기도 하다 보면 친분 관계가 맺어져서 위기를 보고 함께 싸워 주기도 한다.
"음, 저기……."
위드는 볼라드에게 말을 걸어 보기로 했다.
캬르르르!
하짐나 곧바로 털을 곤두세우면서 덤벼드는 몬스터!
1,000마리 넘게 사냥하면서 가죽과 이빨, 꼬리 등을 챙겼고 고기는 육포로 만들었다.
이처럼 볼라드와는 씻을 수 없는 원수 관계가 되었으므로 말을 들어 보려고 하지도 않았다.
테어벳들은 박쥐형의 몬스터로, 인간의 말을 알아듣지도 못하고 집단을 이뤄 저희들끼리만 활동을 한다.
"테어벳들이라도 끌어들이면 도움이 될 텐데."
조각 변신술로 테어벳이 되더라도 그들의 언어를 모르니 무용지물이다.
"하지만 동료로 만들 수는 있겠군."
위드는 자신만만했다.
지골라스에서 오랫동안 사냥을 하며 적대도가 심하다는 것은 무조건 덤벼든다는 뜻!
반 호크나 토리도의 지골라스의 몬스터들에 대한 적대도 굉장히 심했다.
발견하는 대로 고정된 영역을 벗어나서라도 싸우려고 할 것이다.
"최소한 30마리 정도씩 데려오는 건 문제가 없을 것 같고."
뒷감당이야 나중에 생각해 볼 일!
"한참 배가 고플 때 돼지고기를 구워 먹으면서 생삼겁인지 얼린 삼겹살인지 따지지는 않지."
그러나 몬스터들의 본의 아닌 도움이 있다고 하더라도 하벤 왕국의 함대나 해적들과 싸우기는 역부족일 것 같았다.
"가만히 내버려 두면 내 뒤를 쫓아올 테고……."
사냥이나 퀘스트를 하다가 어느새 포위당해 있으면 꼼짝없이 죽어야 한다.
선제공격만이 그나마 불리함을 덜 수 있는 방법이었다.
적어도 상대들이 설마 위드가 먼저 습격을 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 할 것이기 때문이다.
"습격하는 날짜를 잘 잡아야겠군. 지골라스에 먼저 온 덕에 알아낸 모든 것들을 활용해야 돼. 화돌이소환!"
폭력적이고 조급한 성품. 하지만 주인의 명령이라면 철저히 따르는 화돌이!
모라타에서 많은 정령술사들이 화돌이와 계약을 맺고 함께 사냥을 했다.
그 덕에 화돌이가 지상에서 발휘할 수 있는 힘도 조금 늘어나 있었다.
화돌이의 등장에 따라서 대기 온도가 더욱 올라간 것이 뚜렷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주인, 오랜만에 뵙습니다."
"오랜만이구나."
"크히힛, 여기는 매우 마음에 드는군요."
화돌이는 지골라스에 소환되고 나서 어린아이처럼 기뻐했다.
이 지역이야말로 화돌이를 위해서는 최적의 장소라고 할 수 있었다.
위드가 사냥을 하면서 화돌이를 일찍부터 소환하지 않았던 것은 몬스터들의 저항력과 마나의 효율 때문이었다.
지골라스에서는 화돌이가 강해진 이상으로 몬스터들의 화염 저항력도 높다.
때때로 화염 속성의 데미지가 오히려 몬스터들의 생명력을 채워 주는 역할을 해 버리기도 했다.
"흙꾼 소환."
인상 좋고 착한 어른의 형상을 하고 있는 흙꾼도 소환했다.
흙꾼 역시 말을 잘 듣고, 몸을 던져서라도 정령술사를 헌신적으로 보호했다.
그 덕에 많은 계약이 이루어지고 발휘할 수 있는 힘 역시 늘었다.
모라타 주변에서는 흙꾼과 화돌이가 최고의 인기 정령들이었다.
"부르셨습니까, 주인님."
정령들까지 부른 위드!
입가에는 야비한 미소가 맺혀 있었다.
"나를 먼저 건드린 게 너희니까. 정말 나는 싸우고 싶지 않았는데 어쩔 수 없는 거야. 모두 너희 탓이야."
화끈한 책임 전가.
그리고 저지르기로 했으니 모든 비열한 방법들을 다 동원할 참이었다.
양심의 가책이나 혼란 따위는 원래 있지도 않았다.
"크흐흐흐."
위드가 무언가를 상상하며 웃는 것을 보고 누렁이와 반 호크, 토리도는 묵묵히 고개만 끄덕였다.
사람은 겪어 보면 안다고 했다. 이런 위기 상황일수록 인간성이 여실히 드러나게 된다.
'건드려서는 곤란한 나쁜 놈.'
'못되도 어떻게 이렇게 못된 인간이…….'
'원래 천성일거야. 인간들이 오지 않았으면 우리를 괴롭혔겠지.'
'정말 주인을 잘못 만났구나.'
드린펠트는 제2함대의 제독답게 야망을 크게 품었다.
"헤르메스 길드에서 입지를 점점 넓혀 가다 보면… 이 넓은 바다의 지배자는 내가 될 것이다."
로열 로드에서 레벨로는 1,200등 안에 드는 수준이었음에도 얌전히 길드의 명령을 따라온 것은 그런 이유였다.
위드를 사냥하라는 명령도 충실히 따르려고 했다.
하지만 욕심이 생겼다.
"지골라스에 도착하게 된 것은 기회야."
바드레이가 지배하는 헤르메스 길드에 거역할 의도는 없었다.
헤르메스의 실질적인 힘을 조금 아는 그로서는, 바다라고 해도 자유로울 수 없음을 알았다.
하지만 위드를 사냥하라는 명령을 이행하면서 사사로운 이득을 약간 챙기는 정도는 괜찮으리라.
"사람들이 지금 나와 내 함대를 주시하고 있습니다. 헤르메스는 길드의 전체적인 명성을 높일 수 있는 기회라고 봅니다."
길드 내부의 인맥을 통해 고위층을 설득했다.
지골라스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엄청나다.
인터넷과 방송을 통해 모험을 보여 준다면 시청률이 높을 것이다.
헤르메스 길드의 수뇌부에서는 필요한 토론을 거쳤다.
바드레이나 친위대는 길드의 큰 방향을 잡거나 목표를 지시할 뿐, 전반적인 길드의 운영은 대외적인
길드장 라페이에 의해서 결정되었다.
-허락한다. 헤르메스 길드의 힘을 보여 줘라.
방송국들과의 협상도 쉽게 이루어졌다.
여러 방송국들이 지골라스의 탐험과 사냥에 대한 방송을 실시간으로 중계하고 싶다고 했다.
KMC미디에서는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위드의 모험을 독점 중계하는 처지이니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상황.
"드린펠트의 이름이 위드처럼 육지에도 퍼지게 될 거야."
하벤 왕국의 함대는 다음 날 일찍 일어나서 탐험 준비를 갖췄다.
"임시 성채에는 200명을 남긴다. 유저들 10명 그리고 병사 190명이 성채를 지키고, 방어력도 보완해라."
드린펠트는 유저들과 선원들과 함께 탐험에 나섰다.
정예 선원들은 바다에서는 최고의 능력을 발휘한다.
그에 반해 육지에서의 전투 능력이야 다소 떨어지긴하지만, 심혈을 기울여서 성장시킨 선원 부대였다.
그리피스의 해적단은 먼저 사냥을 하고 있었다.
"그쪽은 막아!"
"화살! 화살을 쏴라! 뜨거워서 원거리 공격이 최선이야."
"마법사는?"
"해적들에게 마법사가 어디 있어!"
볼라드에 의해서 해적들이 무참하게 죽어 나갔다.
해적들은 항해 스킬은 뛰어났지만, 하벤 왕국의 선원들에 비해서 레벨은 많이 낮았다. 레벨 400대의 볼라드를 잡으려고 하니 당연히 피해가 속출했다.
캬호오오오!
볼라드의 포효에 무기를 떨어뜨린 채 주저앉는 해적들도 부지기수!
그리피스나 해적단의 주축인 강습 해적, 국가 지명수배 해적들이 막고 있었기에 망정이지 일반 해적들로는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하지만 해적들은 술집, 부둣가, 도박장, 골목길 등에서 쉽게 영입이 가능하기도 하고 성장도 더 빠르다.
선원들에 비해서 충성도가 낮고 정착하려는 마음이 약해서 조금만 소홀히 대해도 배를 빼앗아서 도망가버리거나 돈을 훔쳐서 함대를 이탈해 버렸다.
그렇기 때문에 해적왕 그리피스는 해적들을 성장시키기보다는 심복으로 몇몇 해적 장수들을 뽑아서 그들만 관리했다.
수적 우세, 그리고 거친 해적들을 바탕으로 몬스터들과 싸웠다.
부하 해적들의 희생이 있어야 해적 장수들의 통솔력과 지휘 능력이 더 빨리 컸다.
새끼 사자들을 절벽에 떨어뜨려서 살아남는 놈들만 키우는 것과 비슷한 방법이었다.
"몬스터의 수준이 높군."
구경하던 드린펠트나, 함대에 속한 유저들의 얼굴빛이 조금 굳었다.
"하지만 이 정도의 저항은 예상했던 바이기도 하지."
해군 기사 출신의 유저가 여유롭게 말을 받았다.
"물론입니다. 우리를 오합지졸이나 다름없는 해적들과 비교할 수는 없죠."
하벤 왕국의 함대에는 드린펠트 말고도 다른 고레벨 유저들이 여럿 있으니 해적들과는 다를 것이다.
그들도 볼라드를 사냥하기로 했다.
"공격 개시!"
함대에 셋밖에 안 되는 마법사와 열두 궁수들의 장거리 공격!
공격을 받고 덤벼드는 볼라드를 드린펠트나 해군 기사들이 요격하는 방식으로 싸웠다.
전투 와중에 선원 2명이 죽었지만, 해적들에 비해서는 약소한 피해였다.
드린펠트는 그 피해도 아까웠다.
선원 1명을 키우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전투가 거듭될수록 익숙해질 것이다.
피해를 최소화하도록 해라. 전진하라!"
드린펠트는 부하들과 함께 사냥을 계속했다.
지골라스까지 와서 약간의 피해가 있다고 해서 구경만 할 수는 없다.
볼라드 사냥에서는 전리품이나 경험치의 획득이 쏠쏠했다.
유저들이나 해군 기사들을 중간마다 배치해서 선원들이 볼라드로부터 습격을 받지 않도록 했다.
"적응이 되니 볼라드 정도는 할 만하군요."
합네 왕국의 함대에는 고레벨 유저들이 여럿 포진되어 있어서 볼라드를 놓치짐나 않으면 무난하게 사냥할 수 있었다.
선원들은 지친 볼라드를 때리느 것으로 쉽게 레벨과 훈련도를 높였다.
드린펠트와 다른 유저들의 얼굴이 밝아졌다.
'10대 금역이라더니 다소 과장된 면이 컸어. 하기야 누가 엳기까지 와 보기나 했을까. 지골라스에서도 사냥을 할 만하군.'
'이 전투들이 방송되면 내 인기가 더욱 높아지겠지.'
은근히 더 큰 어려움을 바랄 정도였다.
볼라드를 뚫고 그늘진 곳에 들어가니 갑작스럽게 테어벳들이 습격을 했다.
기습을 당한 선원들에게는 다소 버거운 전장이었다.
레벨이 300대 중반이나 후반이 아니라면 갑자기 자신에게 테어벳들이 덤볐을 때 버티지 못하고 죽는 경우가 많았다.
5~6마리의 테어벳에 둘러싸여도 죽지 않고 사냥이 가능한 유저는 드린펠트를 포함하여 28명 정도!
해적단에서는 15명밖에 안 됐다.
테어벳은 매우 빠르고 현란하게 주위를 날아다니기 때문에 사냥이 굉장히 어려웠다.
바다에서는 잘 훈련되어 막강하기 이를 데 없는 선원들이지만 허무하게 잡아먹혔다.
"선원들은 뒤로 물러나라. 그리고 유저들도 자기 목숨부터 챙겨라!"
참다못한 드린펠트가 명령을 내리고, 그리피스도 비슷하게 명령을 했다.
부하들의 안전도 지키면서 천천히 모험을 진행하기로 했다.
지골라스의 상륙자들!
각 방송국들의 실시간 중계에서는 상당히 높은 시청률이 나오고 있다는 보고였다.
방송국의 시청자 게시판, 로열 로드의 인터넷 게시판들에 글도 많이 올라왔다.
-역시 10대 금역. 몬스터들의 레벨이 놀랍습니다. 하벤 왕국의 제2함대, 드린펠트를 비롯하여 주축 유저들이 모두 헤르메스 길드 소속입니다. 사실상 헤르메스 길드의 함대라고 해야지요. 그들이 느리지만 차근차근 전진해서 지골라스의 모든 것을 파헤쳐 주기를 기대합니다.
-볼라드와 용감하게 싸우는 해군 기사님의 이름이 포헨 님입니다. 정말 뛰어난 용기와 힘을 가지고 있는 헤르메스 길드원이시죠.
-10대 금역을 탐험하는 헤르메스 길드의 힘이 압도적입니다. 그들이 용기와 자신감을 본받고 싶어지는군요.
-이것 보세요, 알바들 적당히 활동하세요.
-헤르메스 알바들 진짜 지긋지긋하네. 시청자 게시판도 장악했나?
-지골라스에 자기들이 처음 간 것도 아니고, 위드를 따라간 것이면서.
-볼라드나 테어벳 정말 무섭네. 확 다 죽어 버려라!
-위드는 혼자서도 그 위험하다는 지골라스에서 활약을 하는데 단체로 몰려가서 무슨 자화자찬이 이렇게 심해!
10대 금역의 탐험이 스릴이 넘쳐서 시청률은 높았지만, 인터넷 여론은 드린펠트나 헤르메스 길드의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다수의 시청자들이 헤르메스 길드의 탐험에 부러움을 느끼는 것도 사실!
드린펠트는 세부적인 계획도 세워 놓았다.
첫날에는 주변 지역을 사냥하고 전리품을 자랑하는 정도로 가볍게 끝낸다.
원거리 항해로 인해 체력과 피로도가 상당해서 선원들에게도 피해가 발생하겠지만 그 정도는 감수한다.
지골라스까지 쉽게 도착했다고 시기하는 무리가 있을 테니 약간 손해를 보는 모습도 보여 주어야 하리라.
둘째 날에는 본격적으로 던전 탐험을 한다.
던전은 더 높은 난이도를 가지고 있어서 쉽지는 않을 것이다.
많은 피해가 발생하겠지만, 무사히 던전탐험을 끝냈을 때의 보상이나 방송 효과는 굉장할 것이다.
드린펠트는 지골라스의 위험한 던전을 정복해서 명예를 높이고 싶은 욕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던전을 정복한 이후로는 본격적으로 지골라스에서 영역을 넓힌다. 더 넓은 지역까지 탐험을 하고, 위드도 본격적으로 추격한다.
시청자들이 보는 앞에서 압도적인 무력을 과시하면서 위드를 죽인다!
해군 기사 두셋을 보내서 실력을 측정해 보고, 상대할 수 있을 정도라면 일대일의 승부도 염두에 두고 있었다.
'물론 그 전에 많이 지치게 해 줘야겠지만.'
위드까지 죽이고 난다면 드린펠트의 명성은 하늘을 찌를 정도가 되리라.
정작 위드에 대해서는 크게 경계하지 않은 채로 그는 그렇게 지골라스에서의 계획을 완벽하게 세워 두었다.
둘째 날.
언덕에 있는 성채는 선원들의 노동으로 오우거가 두들기더라고 금방 파괴되지 않을 정도로 튼튼해졌다.
근처에는 해적들의 소굴도 지어져 있었다.
몬스터들을 사냥하면서 양측 모두 30명에서 70명까지의 피해를 입었다. 유저들은 죽지 않았지만, 선원들이나 해적들의 죽음은 상당히 아까웠다.
"베르사 대륙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복구할 수 있다. 선원들의 피해는 염두에 두지 마라."
"해적들은 몇 명이라도 뽑을 수 있을 것이다."
해군이나 해적도 명성이 중요했다.
명성이 높으면 실력 있는 선원이나 해적 들이 많이 지원한다.
그들을 헐값에 고용할 수도 있어, 지골라스에서는 다소의 피해를 감수하고 모험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리고 시작된 던전 탐험!
"선원들을 아껴야 되겠지만, 지금은 뭔가를 보여 주는 것도 필요하겠지."
드린펠트는 입구가 큰 던전을 골랐다.
"적당한 던전이면 좋을 텐데. 모험가나 발굴가를 데려오지 않은 게 조금 후회가 되는군."
지골라스에서도 너무 약한 곳을 고른다면 방송의 흥행을 위해서 좋지 않다.
하지만 던전에 대해서 조사도 하지 않고 선원들이나 몇 안되는 마법사만으로 진입을 하려니 껄끄러운 부분도 있었다.
던전 화산 심장의 최초 발견자가 되셨습니다.
혜택 : 명성 1,300 증가. 일주일간 경험치, 아이템 드랍율 2배.
첫 번째 사냥에서 해당 몬스터에게 나올 수 있는 것 중에 가장 좋은 물건 아이템이 떨어집니다.
"오, 역시!"
"우리가 최초의 발견자가 되었어."
드린펠트와 유저들은 상당히 기뻤다.
최초라는 것은 어쨌든 가슴을 설레게 만드는 것.
"2배의 경험치에 2배의 아이템!"
"제독님, 며칠 더 여기서 사냥을 하고 싶어질 것 같은데요."
벌써부터 웃음꽃들이 활짝 피었다.
드린펠트도 방송이 나가는 것만 아니라면 던전 발견의 행운을 반가워하며 크게 웃었으리라.
"던전은 이곳 말고도 많이 있다. 전투에 집중하도록 해."
"알겠습니다."
보는 눈들이 많을 테니 제독답게 근엄하게 명령을 내려야 했다.
그리고 벌어진 전투.
우르르릉!
와지끈!
콰과광!
던전 내부의 함정과 몬스터들!
레벨 400대 후반에서 500대의 몬스터들까지도 튀어나왔다.
몬스터의 수준도 높았고, 자연적인 함정들이 많은 던전이었다.
천장이 무너져서 덮치고, 땅이 푹 꺼지기도 했다.
방송 때문에 어느 정도 난이도가 있는 던전을 바라기는 했지만 선원들의 피해가 많았다.
드린펠트가 해군 기사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앞장서서 최선을 다해야 했다.
"할 수 있다. 공격해라. 뚫어라. 우리는 최강의 헤르메스 길드다!"
몬스터들과 싸우면서 목숨을 잃는 선원들이 일고여덟씩 나왔지만 정말 흥분되는 긴장감과 스릴도
맛보았다.
그렇게 전진하던 와중에 용암 호수의 옆으로 빙 돌아가는 장소가 나왔다.
중심부에는 다섯 명의 불의 거인들이 잠들어 있었다.
-깨지 않은 것 같다.
-마법사들을 준비시킬까요?
-대형 몬스터에 지형이 나빠서 전투가 쉽지는 않을 것 같은데…….
불행하게도 마법사나 궁수처럼 원거리 공격이 가능한 직업들이 몇 명 안 됐다.
선원들도 활을 쏠 수는 있지만, 그 약한 데미지로 불의 거인에게 치명타를 입히기는 무리였다.
드린펠트나 해군 기사들이라고 해도 용암을 걸어서 거인에게 돌격할 수는 없다.
-일단 조용히 통과한다.
반신욕을 하듯이 몸의 절반을 용암에 담그고 수면을 취하는 불의 거인들.
드린펠트와 해군 기사, 유저들과 선원들은 암벽 아래에 나있는 좁은 길을 살금살금 걸었다.
호수를 빙 돌아서 맞은편에, 다른 곳으로 향하는 입구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순간!
투두둑.
미묘한 소리와 함께 선원들이 걸어가던 길의 끝 부분이 조금 무너졌다.
돌 조각들이 떨어져서 용암에 빠져들었다.
드린펠트와 해군 기사들은 반사적으로 불의 거인들을 살폈지만 미동도 하지 않고 깊이 잠들어 있었다.
'휴우, 다행이군.'
'괜찮군. 무사히 건너갈 수 있겠어.'
하지만 그때 사고가 벌어지고 말았따.
열기로 인해서 땀을 흘리며 휘청거리면서 걷던 선원이 다리가 풀려서 미끄러졌다.
"으아아아아악!"
선원은 고래고래 비명을 지르면서 용암에 빠지고 말았다.
'이번에도 그냥 자겠지.'
'제발 자야 될 텐데.'
불의 거인들은 이미 눈을 떴다. 그리고 가장자리에 붙어있는 인간들을 발견했다.
"나약한 인간들이 이곳에 들어왔구나. 허락받지 못한 자는 나와 싸워서 이곳을 통과할 자격이 있음을 증명해야 할 것이다."
거인이 용암 속에 잠겨 있던 팔을 들어 올렸다.
손에는 두께가 2미터, 길이는 30미터나 되는 검이 들려 있었다.
어떤 검인지는 알 수 없지만 용암에도 녹지 않는 것을 보니 굉장한 강도와 열에 대한 저항력을 가지고 있으리라 짐작!
무기의 공격력은 대체로 무게와 강도에 비례하기 마련이다. 예리함이 없으면 상당히 큰 페널티가 생기기
도 하지만, 불의 거인이 쓰는 대검이라면 그런 차원을 넘어선 무기였다.
"침입자에게 죽음을."
다섯이나 되는 불의 거인들이 대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대검이 부딪친 암벽이 무너지고 바윗덩어리들이 추락했다.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용암 호수에 누워 있던 불의 거인들이 들썩이면서 큰 움직임을 보였다.
서슬에 용암이 튀어 오르면서 드린펠트 일행은 날벼락을 뒤집어쓰고, 선원들이 지나가던 좁은 길은 불의 거인의 공격에 의해 파괴되어갔다.
"끄아아악!"
"살려 줘!"
불의 거인의 일격에 선원들 15명이 저항도 못 하고 녹아 버렸다.
가공할 공격력!
볼라드 등과는 비교가 불가능한, 초거대 보스급 몬스터의 위용이었다.
"공격해라!"
마법사들이 미리 준비했던 마법들을 발출(방출이 아닐까요)했다.
한 불의 거인에게 여러 종류의 마법을 집중시켰지만 거의 손상도 없었다.
오히려 분노를 돋우기만 한 듯, 검을 더욱 세차게 휘둘렀다.
드린펠트와 유저들은 불의 거인이 멀쩡한 것을 보고 외쳤다.
"도망쳐!"
"달려! 여기서 어서 빠져나가!"
불의 거인들에게 잘린 유저들은 싸우는 것을 포기하고 입구로 줄행랑을 쳤다.
드린펠트는 이기더라도 애지중지 키운 함대의 상당분을 잃어버리는 싸움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최대한으로 달려서 여길 벗어난다."
좁은 길에서 엉키고 뒤섞여서 용암으로 추락하고, 그 와중에도 불의 거인들의 공격은 계속 퍼부어져 피해가 속출했다.
난장판이 되어서 간신히 던전을 빠져나오고 나니 무려 76명이나 죽어 있었다.
부하들도 챙기지 못하고 저마다 살기 위해 도망 나온 최고의 굴욕!
유저들도 7명이나 죽었다.
시체조차 찾기 힘든 장소에서 죽었으니 잃어버린 아이템을 되찾기란 불가능할 것이다.
"크윽."
드린펠트가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하지만 짜증이 날 뿐 던전으로 다시 들어가서 싸울 엄두는 낼 수 없었다.
해상전이라면 배가 부서지지 않는 한 선원들이 그렇게 쉽게 죽지는 않는다.
그런데 던전에서 선원들을 무참히 잃어가며 싸우고 싶진 않았던 것이다.
-방송을 생각하셔야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습니다.
부관이나 다른 유저들의 귓속말이 전해졌다.
드린펠트는 방송을 의식해서 간신히 표정을 추스르고 말했다.
"지골라스의 던전은 무지막지한 난이도를 가지고 있군. 아직은 누구도 깰 수 없을 것 같다. 우리는 오늘 힘든 탐험을 했으니 철수해서 휴식을 취한다."
다른 만만한 던전을 찾아 탐험하기에도 의욕이 떨어져서 성채로 돌아왔다. 해적단도 던전을 탐험하다가 큰 피해를 입고 온 모습이었다.
서로의 실패를 보고 위안을 삼을 수는 있었다.
위드는 이틀간 앉아서 조각품을 만들며 때를 기다렸다.
그 사이에도 서윤은 심심하지 않았다.
위드가 만든 조각품들, 지골라스의 몬스터나 유령선 같은 것들을 구경했다.
귀엽고 예쁜 설인이나 동물들을 조각하면 손바닥을 내밀었다.
"……."
달라는 뜻!
위드는 떨리는 손으로 조각품들을 건네야 했다.
아깝고 싫었지만, 바싹 옆에 붙어 앉아서 조각품이 완성될 시기를 기다려 달라고 하는데 어떻게 거절할 수 있단 말인가.
여성에게는 항상 최고의 선물을 만들어 줄 수 있는 조각사!
바꿔서 말하면 만드는 작품마다 빼앗길 수도 있는 설움의 직업.
'이놈의 직업은 괜찮은 것 같으면서도 사소한 곳에서 아쉬움을 남기는군.'
위드는 짐짓 큰 한숨을 쉬었다.
"조각사가사 진심을 다해서 만든 예술 작품이거든. 작품 하나하나에 내 마음이 깃들어 있으니 소중하게 간직했으면 좋겠어."
물론 공짜로 줄 마음도 없었다.
"그리고 우리가 상당히 친한 사이잖아?"
위드가 뻔뻔하게 평소라면 감히 할 수 없던 말을 했다.
서윤이 빤히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수업도 같이 듣고, 밥도 같이 먹고… 개도 주고, 닭도 주고, 이제 토끼도 줄 거고 말이야."
많이 주면 친한 사이라는 논리!
서윤이 긍정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부끄럽지만 그녀도 친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유일한 친구, 그리고 같이 있으면서 편안하고 즐거운 사람이 위드였으니까.
"근데 중요한 게 말이지, 가족이나 친한 사이일수록 돈 거래는 함부로 하는 게 아니야."
"……?"
"조각품이란 거 말이야, 팔면 네가 알고 있는 이상으로 엄청 큰돈을 벌 수 있는데 자꾸 달라고 하니까 줘야 되잖아."
위드는 그녀가 미안해하거나 조각품을 돌려주려 할 시간을 주지 않고 서둘러 말을 이었다.
"하나에 100골드도 넘는 귀중한 조각품들이지만 너한테 주는 게 아깝지는 않아. 그래도 주기만 하는 것도 모양이 이상해. 우리는 둘 다 어른이잖아. 돈이 오가는 부분에서는 깔끔해야 뒤탈이 없는 거, 너도 잘 알거야. 다른 사람에게 파는 것보다는 친한 사람에게 주는 편이 나도 훨씬 바라는 바이니까. 대신 나중에 잡템으로 챙겨 갈게."
친한 사이니까 공짜로는 줄 수 없고 대신 잡템을 내놓으라는, 뭔가 애매한 설득력을 가진 논리!
지골라스에서 엄청나게 사냥을 해서 아이템들이 쌓여 있었는데도 잡템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않는 위드였다.
서윤이 잡템을 주기로 하자, 위드는 더 부지런히 조각품을 만들었다.
'조각품으로도 쏠쏠한 돈을 벌 수 있게 되었군. 과연 예술가의 길이란!'
서윤은 누렁이와 금인이, 황금새와도 많이 친해졌다.
누렁이는 위드보다는 서윤의 옆에 배를 깔고 누워서 편안한 표정을 지었다. 금인이도 마찬가지였고,
황금새는 아예 노골적으로 서윤의 어깨를 떠나지 않았다.
네크로맨서가 되어 있는 위드에게는 심한 반감을 드러내며 가까이 다가가지도 않는 주제에, 서윤이 머리와 턱을 만져 주면 고개를 들고 좋아하는 것.
위드도 황금새와의 친밀도를 조금은 높일 필요성을 느꼈다.
"하지만 네크로맨서의 직업을 포기할 수가 없어."
지골라스에서 버티려면 언데드가 필수라고 생각되었다.
레벨이 높은 몬스터들이 여러 마리씩 나오는데 조각사로 감당하기는 솔직히 어렵다.
대량 학살에 대량의 아이템 수거가 가능한 훌륭한 직업인지라, 바꾸기가 곤란했다.
"이게 다 너희를 위한 거야. 나 혼자 잘 먹고 잘살자고 그러는 게 아니야."
정말 변명 같은 변명을 늘어놓으면서 네크로맨서를 고수하는 위드!
황금새와는 영영 가까워지지 못할,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만 같았다.
그렇게 조각품을 깎으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소환해놓았던 정령 화돌이가 갑자기 붉은빛을 냈다.
"지골라스의 불의 기운이 강해지고 있습니다."
자연의 영향을 받는 정령들의 힘도 덩달아서 강해진 것.
"드디어 터질 때가 되었나."
흙꾼도 뭔가 불안한 듯이 서성거렸다.
"주인님, 땅의 힘들이 충돌하고 있습니다."
대규모 화산 폭발에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는 지진까지!
위드는 조각품 깎던 것을 놔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시작할 시간이로군."
정의나 명분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나쁜 짓도 자주 해야 더 나쁜 짓을 저지를 수 있따.
위드야말로 마법의 대륙 시절부터 엄청나게 나쁜 짓을 많이 했다.
먹고살기 바빠서 얌전히 지냈다고는 해도 본성을 버릴 수 없는 법!
"언데드들이여, 움직여라. 오늘은 너희의 밤이 될 것이다."
드린펠트의 선원들이 지너 놓는 언덕의 성채가 우르르 떨렸다.
"이, 이게 뭐야? 땅이 흔들리고 있는 것 같은데. 지진인가?"
"넘어지지 않게 상체를 낮추고 균형을 잡아."
첫 지진은 심하지 않았기에 선원들은 땅에 엎드려서 빨리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
드린펠트나 유저들은 크게 당황하지는 않았다.
넘어진다고 해도 생명력의 손실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콰르르르르르.
그런데 두 번째, 세 번째 지진은 오면서 진동은 점점 거세졌다.
멀리 있는 산에서 바위들이 우르르 굴러 내려오고, 제 자리에 서 있기도 힘들 지경이 됐다.
목책이 쓰러지고 아우성도 일어났다.
"지진이 점점 커진다!"
"뭐라도 잡아!"
"천막들이 무너진다. 안에 있지 마!"
거센 소동이 일어났다.
성채 주변에 지어 놓은 해적들의 소굴에서도 지진의 여파로 인해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해적들은 위드가 발견한 동굴과 몇 개의 동굴들을 엮어서 소굴로 삼았다.
볼품은 없어도 방어에 용이하기 때문에 동굴을 근거지로 썼던 것이다.
하지만 지진이 일어나니 무너질까 걱정이 되어서 앞다투어 뛰쳐나왔다.
그때 대지가 갑자기 울음을 터트렸다.
지골라스가 통째로 흔들리는 지진.
그리고 화산들이 일제히 용암을 분출하기 시작했다.
방송국의 시청자 게시판과 인터넷 게시판은 지골라스의 던전에 대한 화제로 떠들고 있었다.
-지골라스의 몬스터 레벨이 정말 높군요. 언제쯤 그곳에 가서 사냥을 할 수 있을지.
-파티 사냥이 가능하려면 한참 시간이 지나야 되지 않을까요? 나중에도 너무 멀어서 일부러 찾아가는 사람들은 얼마 되지 않을 것 같아요.
-불의 거인, 진짜 대단하지 않나요? 잠깐이었지만 그 끔찍한 위력이라니!
-드린펠트의 함대가 박살이 나서 도망쳤죠. 크크.
-헤르메스 길드였기에 그 정도라도 한 겁니다.
-지골라스는 10대 금역인데, 찾아가기도 힘든 북쪽 끝에 있는 금역치고는 그래도 좀 실망스럽네요.
몬스터들의 레벨이 높은 거 외에는 다른 곳들과 비슷한데요.
-위의 분은 무슨 금역이라고 해서 다 죽기만 하는 그런 걸 상상하셨어요?
-내일은 헤르메스 길드에서 무슨 모험을 할까요?
시청률도 높고, 생방송이 계속 이러어지고 있었기에 게시판에서 수다를 떠는 유저들이 많았다.
그러던 어느 순간, 갑자기 게시판에 글들이 빠르게 올라오기 시작했다.
-드디어 폭발했다, 지골라스의 화산!
-대지진으로 지각이 갈라지고 있습니다. 땅에서 용암이 솟구쳐요.
-끼야, 구경 가야지!
-놓칠 수 없는 장면이 될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