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불의 거인
던전 내부로 더 깊숙하게 진입하자 용암이 흐르는 강이 나왔다.
폭이 400미터도 넘을 것 같은, 지하에 흐르는 용암의 강!
거세고 도도한 흐름에 기가 질릴 정도였다.
멀리 떨어져 있는 위드와 서윤에게까지 화끈한 열기가 밀려왔다.
화염 저항력을 상당히 높여 놓은 상태가 아니었더라면 열기로 인한 데미지를 입었으리라.
언데드인 위드는 상관없었지만, 누렁이와 서윤은 땀을 많이 흘렸다.
체력 소모가 빨라지고 있다는 증거다.
위드가 주변에 다른 길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 말했다.
"여기를 건너야 될 것 같군."
용암의 강에는 중간마다 작은 바위나 금속이 튀어나와 있었다.
작은 것은 발 하나를 간신히 디딜 만하지만, 큰 것은 아파트 13평 정도 되는 넓이다.
암석이나 여러 금속들로 되어 있는 평평한 공간이었다.
용암의 강에 있는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상륙대를 엄청난 위기로 몰아넣고 던전에서 도망치게 만들었던 불의 거인도 잠들어 있는 모습이었다.
인페르노 나이트나 혼돈의 전사 들이 이용한 것으로 보이는 밧줄이 양측을 연결해 주고 있었다.
위드가 살펴보니 볼라드의 가죽을 꼬아서 만든 밧줄이었다.
"언데드들이 가능할지 모르겠군. 카오스 워리어 1, 넘어가 봐."
"알. 았. 다."
카오스 워리어는 경직된 움직임이었지만 밧줄을 밟으면서 똑바로 전진했다.
언데드였기 때문에 죽음에대한 두려움이 없는 상태라서 오히려 쉬웠다.
밧줄을 사분의 삼 정도 넘은 후에는 순간 이동을 통해서 건너편에 나타났다.
"됐군. 가자."
카오스 워리어들이 차례로 넘어가고, 토리도와 빛의 날개를 펼친 금인이가 누렁이를 안고 날아서 뛰어넘었다.
유난히 뜨거운 것에 겁이 상당한 누렁이는 용암을 보고 발버둥을 쳤지만 성공적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
이제 위드와 서윤이 넘어갈 차례였다.
위드가 호의를 베풀었다.
"무서우면 도와줄 수도 있는데."
서윤은 고개를 흔들더니 밧줄에 가볍게 발을 올린 후에 사뿐사뿐 걸었다.
위드도 뒤를 따라서 걸었다. 밧줄을 봐야 하니 바닥을 내려다보지 않을 수가 없었는데, 지독하게 공포스러운 광경이었다.
기포가 튀어 오르는 붉은 용암에서는 엄청난 열기가 전해졌다.
한 발자국만 잘못 놀려 밧줄에서 떨어지기만 하면 바로 사망!
위드가 중얼거렸다.
"그대로 사람은 항상 최악은 아니라는 점을 생각하면서 기쁜 마음으로 살아가야 해. 제대로 걷기만 하면 넘어져서 죽을 염려는 없잖아? 이렇게 밧줄을 타고 걸을 때 몬스털도 나타난다면 엄청나게 위험하고 고생도 할 텐데 그러지 않아서 다행이야. 어떻게 보면 난 참 행운아란 말이야."
위드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건너편에서 혼돈의 전사가 10명이나 등장했다.
무리로 등장한 그들 중에는 혼돈의 정찰병도 있었다.
"이곳에서 인기척이 있었다."
"언데드들!"
"안식처로 침입한 언데드들을 정화해라. 동족을 언데드로 만든 놈을 죽여라!"
혼돈의 전사들이 적색 도끼를 휘두르며 언데드와 토리도, 금인이, 누렁이 들을 향해서 밀려들었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여유가 있었다.
"방어 진형으로! 카오스 워리어 1, 2, 3은 순간 이동을 하면서 한 놈만 공격해라."
위드는 밧줄 위에 서서 전투를 지휘하며 저주 마법을 위한 준비를 했다. 그런데 용암에서 불쑥 길쭉한 머리들이 튀어 나왔다.
몸보신에 좋은 장어를 늘려 놓은 것처럼 생긴 놈들이 불덩어리를 토해 냈다.
위드의 로브와 서윤의 갑옷에 불덩이들이 부딪쳤다.
-바오반트의 공격을 받고 있습니다.
영원한 불꽃!
피하거나 끄지 않으면 화염 데미지가 계속 누적됩니다.
둘이 서 있는 밧줄 아래에 수십 마리의 바오반트들이 나타나서 화염을 토해 낸다.
미리 화염 저항력을 올려놓았고, 갑옷과 액새서리들의 효과로 인해 당장 버틸 수는 있지만 위험했다.
더구나 바오반트의 공격을 맞을 때마다 그 충격으로 밧줄이 좌우로 2~3미터씩 흔들거렸다.
균형을 서 있기만도 벅찬데 능동적으로 피하기란 절대 무리!
"주인이 위험하다!"
반 호크가 고함을 쳤지만 위기 상황에서는 딱히 해답이 없을 것 같았다.
여러 종류의 몬스터들을 상대했던 위드였고 이럴 때일수록 머리 회전이 빨라졌지만, 바오반트에게만큼은 공격 방법이 마땅치가 않다.
'용암에 직접 공격을 하기는 무리야. 그리고 내가 가지고 있는 흑마법은 불 속성의 몬스터들에게는 약해.'
물 계열, 얼음 계열의 마법이 있다면 더없이 좋으리라.
위드도 마법 책에 있는 아주 기초적인 마법은 쓸 수 있었다.
하지만 정식 마법사가 아니다 보니 기초 공격 마법들의 파괴력을 극대화시킬 수는 없었고, 그것으로 바오반트를 잡기는 무리였다.
'암석에 내려가는 것도 좋지 않은데.'
용암의 강에 있는 돌출물들은 각이 심하게 져 있고 미끄러웠다.
돌출물들을 밟음녀 바오반트의 코앞까지 가까워지게 되는데 그것도 난감하기 짝이 없는 일!
네크로맨서인 지금도 직접 공격력이 약한 상태인 데다 데몬 소드를 뽑아 들고 싸우기도 정말 곤란했던것이다.
'매우 좋지 않다.'
위드가 굉장히 빠르게 머리를 굴리고 있을 때, 서윤이 먼저 행동했다.
'그가 죽는 것을 지켜볼 수 없어.'
바오반트의 융단폭격 같은 화염 공격에 그녀의 생명력이 어느새 삼분의 일이나 낮아졌다.
위드도 좋은 상태는 아닐 거라고 짐작한 그녀였다.
광검!
미친 검술이라는 광전사의 스킬.
목숨이 사라지기 직전까지 싸우다가 움직일 힘조차 없게 되는 경험을 열다섯 번이나 하고서야 얻은 스킬이었다.
서윤의 검에 붉은 기가 강하게 덧씌워졌다. 그리고 바오반트들을 향해 마구 휘둘렀다.
콰과과광!
마나를 소모해서 폭발력을 가진 검기들을 뿌렸다.
광검은 단순한 스킬이었다.
몬스터들을 상대로 생명력과 마나가 다할 때까지 수비도 하지 않고 오로지 공격만 한다.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가더라도 도망칠 수도 없다.
오로지 공격 일변도의 검술.
하지만 몇 배나 되는 많은 적들을 상대로 공격 속도와 파괴력, 마나 소모에서 대단히 효율적인 광전사의 비기!
케에에.
꽤액!
검기에 적중당한 바오반트들이 나가떨어졌다.
광검은 상대가 성공적으로 수비한다 하더라도 생명력을 크게 앗아 갈 뿐만 아니라 엄청난 힘으로 자세를 무너뜨린다.
마나를 이용한 원거리 공격이기 때문에 바오반트의 몸에 직접 무기를 대야 할 필요도 없었다.
광전사의 특성에 의해, 맞서 싸우는 몬스터들은 엄청난 압박감을 갖게 된다.
바오반트도 원거리 공격에 크게 당한 모습이었다.
위드는 그사이에 날뛰는 밧줄에 매달려 있느라 고생이었다.
"이런 젠장."
서윤이 공격을 할 때마다 밧줄이 그네를 타는 것처럼 심하게 흔들렸던 것이다.
바오반트의 화염 공격도 순식간에 잦아들고 있었다. 하짐나 서윤은 계속 공격을 했다.
스킬 광검은 발동된 이상 몬스터들을 남겨 두고 도망치면 저주로 인해 광기에 휩싸인다.
육체의 제어 능력을 잃어버리고 무조건 주변을 공격하다가 지쳐서 쓰러지게 된다.
적들을 다 죽이기 전에는 피할 수도 없는 스킬.
그녀는 위드가 빠져나갈 길을 만들어 주기 위하여 남을 작정이었다.
마나가 다 소모될 때까지 원거리 공격을 난사하기 전에, 밧줄에서 떨어져서 죽을 수도 있으리라.
'어서 가요.'
서윤이 눈빛을 보냈지만, 위드는 다르게 해석했다.
'뭐라도 해서 어떻게든 전부를 승리로 이끌어야 해.'
피할 곳이 마땅치 않다.
그렇다고 서윤을 혼자 두고 건너편으로 간다는 건 생각도 하지 않았다,
마음으로 받아들이기는 어렵지만, 일단 함께하는 동안에는 동료다.
동료를 위해 목숨을 바치기는 힘들어도, 동료를 버리고 달아나지는 않는다.
최소한 서윤이 끝까지 싸우려고 하는데 그것을 이용해서 혼자 도망칠 생각은 하지 않았다.
'밧줄이 흔들거려서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집중력을 발휘할 수도 없다.
그럼 내가 현재 할 수 있는 것은?'
정령술!
"흙꾼아, 나를 받쳐 다오."
흙꾼이를 소환하여 기둥을 만들어서 발을 디딜 수 있는 공간을 확보했다.
지금도 혼돈의 전사와 싸우고 있는 언데드들이 마나를 소모하고 있었기에 여유는 그다지 없다.
"물의 정령!"
위드는 하이 엘프 예리카의 활을 꺼내서 바오반트들을 향해 쏘았다.
물의 정령의 힘이 깃든 화살들이 바오반트들의 몸체에 적중!
해골 리치였기에 위력 있는 화살들은 아니었지만 서윤을 보조해 줄 수는 있었다.
서윤을 향해 화염을 쏘려고 하는 바오반트들을 공격하면서 버텼다.
용암의 강 위에서 그렇게 큰 소란을 벌이고 있을 때, 불의 거인이 깨어났다.
"시끄러워서 잠을 잘 수가 없구나."
불의 거인이 잠에서 깨서 움직이는 것은 가장 큰 위기였다.
수십 미터나 되는 팔을 휘둘러서 바오반트를 붙잡더니 그대로 터트려 버렸다.
그가 움직일 때마다 용암의 강의 물살이 달라지고 땅이 흔들렸다.
강물 속에서 검을 꺼내더니 위드와 서윤을 향해서도 휘두르려고 하는 찰나였다.
상륙대가 수십 명씩 죽어 나가던 것으로 보아서 그 위력은 짐작이 가능했다.
위드는 재빨리 품에서 아이템을 꺼냈다.
불의 거인 눈을 꺼내서 높이 들었다. 그러자 검을 휘두르려다가 멈칫했다.
"너희는……."
위드는 침을 꼴깍 삼켰다.
"적이 아니구나."
그러더니 바오반트들을 처리하는 것이었다.
위드는 서윤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그녀도 공격받지 않게 했다.
바오반트들이 죽을 때마다 재료를 알 수 없는 금빛 가루들이 용암의 강으로 우수수 떨어졌다.
아까운 아이템이었지만 목숨을 건진 것만도 다행스러워할 때!
바오반트들이 전부 처리되고 나니 서윤도 스킬을 마치고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었다.
서윤은 빠르게 밧줄을 뛰어 건너가서 언데드들과 함께 혼돈의 전사들과 싸웠다.
언데드들은 이미 아홉이나 쓰러져 있었다.
누렁이와 금인이도 토리도와 반 호크의 도움을 받아서 버티던 중이었다.
위험요소가 제거된 이상 위드는 굳이 건너갈 필요가 없었으므로 손상이 덜한 언데드들을 다시 일으키고 저주 마법을 시전했다.
지상에서는 순간 이동으로 인하여 저주 마법을 작렬시키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던전 내부는 공간이 넓지 않았기에 혼돈의 전사들에게 저주 마법들을 걸기가 수월했다.
그리고 불의 거인이 깨어났을 때부터 공황 상태에 빠져서 제대로 싸우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전투의 축은 완전히 넘어왔다.
위드는 불의 거인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기에 그가 다시 잠들면서 하는 소리를 들었다.
"나는… 조용한 게 좋다. 시끄러운 혼돈의 전사들과 바오반트 등이 싫다."
유유자적 뜨거운 용암에 목욕을 하며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불의 거인!
혼돈의 전사들을 힘들게 정리하고 난 후에는 언데드들이 12마리나 심하게 손상되어 있었다.
새로운 시체들을 얻었으니 다시 일으키면 될 문제이기는 하지만 위드는 밧줄을 타고 건너가지 않았다.
"……?"
서윤이 이유를 알 수 없다는 눈길을 보내고, 누렁이나 금인이도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렇게 귀한 광석들을 그냥 놔두고 갈 수는 없지"
용암의 강의 돌출부위에 다이아몬드, 흑옥, 미스릴, 아다만티움 같은 최고급 보석과 광물들의 큰 덩어리들이 있었던 것.
자주 볼 수 있는 광물들이 아니라서 몰랐지만 직접 내려오고 나니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위드는 불의 거인의 눈을 해골의 안구 부분에 밀어 넣었다.
덜그럭 소리를 내고 들어가자, 모루와 정을 꺼내서 돌출몰들을 깎았다.
깡, 깡, 깡, 깡!
조심스럽게 한다고 했지만, 작업이 개시되면서 발생하는 소음은 어쩔 수 없었다.
잠시 후에 불의 거인이 눈을 뜨고 일어났다.
"조용한 것이 좋다."
한마디를 하고 취침!
위드는 작업을 계속하면서 광석들을 채취했다.
불의 거인은 그때마다 일어나서 한마디씩 했다.
"혼돈의 전사들은 너무 많다. 죽여도 죽여도 금방 많아진다.
불의 정기를 타고 태어나는 종족이기 때문일까?"
"용암의 강은 지골라스 전체를 타고 흐른다. 이 강을 따라간다면 어딘가로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우리를 이해해 줄 수 있는 건 같은 불의 거인들뿐이다."
"땅이 크게 울음을 터트리기 시작하면 이 주변에는 있지 않는 것이 좋으리라."
"혼돈의 전사들은 시끄러워서 정말 싫다. 놈들의 숫자를 줄일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불의 거인이 잠에서 깰 때마다, 졸린 듯이 하품을 하고 꾸벅꾸벅 조는 척을 하는 위드!
원석 상태라서 세공하면 가치가 급등할 것 같은 보석 15개와 미스릴 검 두자루를 만들 수 있는 분량을 획득했다.
지골라스에 와서 얻은 큼지막한 수확이었다.
유린은 맑은 호수에 물감을 뿌렸다.
자연보호를 주장하는 이들이 본다면 경악할 만한 대사건!
호수 근처에 사는 크고 작은 초식동물과 몬스터들까지 모여들었다.
초롱초롱 빛나는 눈을 하고, 여러 종류의 짐승들이 유린을 주시했다.
물빛의 화가가 그리는 그림을 보기 위하여 모여든 관중이었다.
"무슨 그림을 그려 볼까?"
유린은 혼자서 중얼거리면서 그리고 싶은 대상을 떠올렸다.
페일 일행은 퀘스트를 위하여 과거 니플하임 제국의 수도인 모드레드로 갔다.
그러나 그녀는 자유롭게 여러 장소를 여행하고 싶어서 잠시 떨어져 나왔다.
"동물들과 몬스터들이 평화롭게 살 수 있도록."
유린은 호수에 주렁주렁 열매들이 열린 나무들을 그렸다.
몬스터들도 요기할 수 있도록 고구마와 감자 밭도 그렸다.
신기하게도 유린이 물에 그린 그림은 흩어지거나 번지지 않았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생머리에 고깔모자를 쓴 어여쁜 유린이 붓을 그을 때마다 그림들이 완성되었다.
『-물에 비친 풍요를 그렸습니다!
-물빛의 화가가 호수에 그린 그림!
호수 주변의 풍경을 그린 듯하지만, 넘쳐 나는 풍요로움은 화가의 세상을 생각하는
따뜻한 마음을보여 주는 것 같다.
섬세한 붓질과 정확한 채색을 아직 어린 화가의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알려 준다.
단, 아직 완전히 자연과 어우러지지 못해서 비가 오면 모두 흐트러지게 될 것이다.
예술적 가치 : 98
특수 옵션 : 물에 비친 풍요의 주변 농작물이 자라는 속도를 일시적으로 촉진시킨다.
호수 근처로 동물들이 많이 모여들게 함.
성직자나 마법사 등의 마나 회복 속도를 4%빠르게 만든다.
-초급 그림 그리기 스킬의 레벨이 7로 상승했습니다. 그림의 선이 정확해지고,
활용하는 도구들의 특징을 보다 잘 이끌어 낼 수 있습니다.
-물감 칠하기 스킬의 숙련도가 향상되었습니다.』
유린은 잠시 그녀가 만든 작품을 감상했다.
동물들이 기뻐하는 것 같아서 다행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호수의 물이 출렁거리기 시작했다.
"어, 갑자기 왜 이러지?"
유린은 당황스러워 하면서 호수에서 나오려고 했다.
잔잔하던 호수의 물에 파문이 일면서 물방울들이 솟구쳤던 것이다.
밤에 달빛과 별빛에 의존해서 그림을 그리고 있던 그녀였다.
물에 비치는 밤하늘을 보면서 그림을 그리면 그녀의 마음도 포근해졌다.
그런데 물방울들이 하나씩 치솟아서 그녀의 주변을 감싸는 것처럼 빙글빙글 돌며 하늘로 솟구쳤다.
물에 비친 달과 별들, 빛을 담고 있는 물방울들!
신기한 일은 이걸로 끝나지 않았다.
유린의 물감 통에 있는 물감들이 저절로 풀려나가더니 호수에 그림이 그려졌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아름다운 산과 들 그리고 상상 속에나 존재했을 것 같은 성이 나타났다.
유린의 주변에는 물방울들이 둥둥 떠 있고, 황홀할 정도로 아름다운 그림은 그녀를 유혹하는 것 같았다.
유린은 그림이 그려져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호수의 물이 출렁거릴 때마다 그림은 일렁이면서도 사라지지 않았다.
"여기가 어디일까?"
굉장히 예쁜 곳이었다.
그녀를 초대하기라고 하는 것처럼 성문이 활짝 열려 있다.
위험하지는 않을 것 같은 느낌에, 유린은 스킬을 사용했다.
"그림 이동술!"
그리고 그 성의 앞에 자신의 모습을 그렸다.
잠시 후, 유린의 모습은 호수에서 씻은 듯이 사라졌다.
호수에 떠올랐던 물방울들도 힘을 잃고 아래로 떨어지고,
처음에 그렸던 그림 외에는 찾을 수가 없게 되었다.
"와아!"
유린은 감탄사부터 터트렸다.
베르사 대륙에서도 가장 아름다울 것 같은 성!
넓은 들판에 산을 배경으로 하고 바람이 부는 언덕에 지어진 성이었다.
유린은 황금빛 들판을 걸어서 성으로 향했다.
지어진 지 수백 년은 되었을 것처럼 보이는 성은 마법으로 보호된 것처럼 깔끔했고 파손도 적었다.
웅장한 건축물임에도 그림에서 봤던 그대로였다.
-조르디보오스 성을 감상하셨습니다.
-명성이 350 증가했습니다.
-알 수 없는 건축물의 감상으로 인하여 지혜가 10, 예술 스탯이 25개 오릅니다.
초보인 유린에게 지혜와 예술 스탯들은 굉장한 소득이었다.
위드라면 한참 동안 회심의 썩은 미소를 지었을 테지만, 유린은 성에 매료되어 가까이 다가갔다.
"저기요."
열려진 성문에는 경비병도 지키고 있지 않았다.
"잠시 들어갈게요!"
씩씩하게 큰 소리로 외치고 성문을 통과했다.
정원에는 꽃과 나무 들이 보기 좋게 자라고 있고, 맑은 연못에는 물고기들이 헤엄을 친다.
은은하게 풍겨 오는 꽃향기.
나중에 자세히 보기로 하고 일단 성안으로 진입!
도서관과 서재, 하녀들의 방, 경비병들의 방, 기사들의 방을 지나서 2층으로 올라갔다.
2층에는 큰 방들이 여러 개 있었는데, 페트라는 이름이 적혀 있는 방은 열리지 않았다.
그리고 놀랍게도 맞은편의 방에는 유린의 이름이 적혀 있는 것이 아닌가.
"왠지 우연은 아닌 것 같아."
유린이 조심스레 문을 살짝 건드리자, 주인을 알아보기라도 한 것인지 소리도 없이 활짝 열렸다.
대리석으로 되어 있는 넓은 거실과 장인이 오랫동안 공을 들여 만든 것이 틀림없을 상들리에!
열려 있는 창문으로는 성의 정원과 수려한 산들이 보였다.
침대는 5명이 누워서 자더라도 끄떡없을 만큼 넓었고 하늘하늘한 레이스까지 달려 있었다.
욕실에는 넓은 욕조도 있었는데, 따뜻한 물과 함께 장미 꽃잎까지 뿌려져 있는 게 아닌가!
호텔의 스위트룸이라고 해도 이토록 멋지진 못할 것이다.
벽에는 빈 화폭들이 걸려 있엇다.
동화 속의 풍경 같은 성에 그녀만을 위한 방.
유린이 천천히 둘러 보고 있을 때, 누군가가 씩씩거리면서 계단을 올라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겨우 조르디보오스 성을 복원해 놓았더니, 진짜 짜증나네.
자기 성도 아니면서 허락도 받지 않고 들어오는 뻔뻔한 인간이 다 있나?
마법 길드에서 알람 장치를 사서 설치해 놓지 않았으면 클일 날 뻔했잖아."
불만스럽게 외치면서 걸어오는 목소리.
유린이 방문을 닫지 않아서 문은 그대로 열려 있었다.
옷에 여러 색깔의 물감이 묻어 있는 더벅머리의 사내가 문가에 섰다.
"야, 너도 물빛의 화가인 모양인데 누구 마음대로……."
남자는 유린을 보더니 심장이라도 멎은 것처럼 얼굴이 굳어 버리더니 말을 잇지 못했다.
물빛의 화가 페트!
그는 로열 로드에서 조용히 그림을 그렸다.
세상에 내보이지도 않아 그의 그림을 아는 건 오직 정령들과 요정들뿐이었다.
엄청난 명성을 쌓았지만 정령계와 요정에게만 알려져 있었다.
퀘스트 등을 진행하면서 묵묵히 그림 솜씨를 늘리는 데에만 힘을 썼다.
조르디보오스 성을 찾아낸 것도 그였다.
"사람들의 인정을 받는 것 따위는 아무 의미도 없어."
자존심과 열정으로만 살아 왔던 페트.
불청객에게 단단히 따지러 왔던 그가 어색하게 표정을 바꾸었다.
"안녕하세요. 저,저는 이웃인 페트라고 합니다."
미안한 마음이 든 유린은 바로 사과했다.
"죄송해요, 주인이 있는지 모르고 들어왔어요. 지금 당장 나갈게요."
"아니, 아닙니다. 사실 이 성에는 따로 주인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페트는 유린이 혹시 가 버리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어서 서둘러 설명을 했다.
조르디보오스 성은 실제로 베르사 대륙에 지어진 성이 아니다.
화가 빈디스가 그린 화폭에 있는 성이다.
요정들이 그 그림에 감탄하여 공간을 부여해 주었고, 드래곤이 마법을 걸어 주었다고 한다.
"퀘스트를 통해서 제가 복원헸고, 약 1년 정도 혼자서 사용해 왔습니다."
"저는 호수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이 성의 그림이 나타났어요."
"물빛의 화가가 일정한 실력이 되면 이 성에 들어올 수 있는 자격이 부여된다고 알고 있습니다.
다른 화가들도 특정한 퀘스트를 거치면 올 수 있지만요."
"저기, 그러면 이 방은……."
"유린님의 방입니다. 편안하게 쓰시면 됩니다.
베르사 대륙의 어디에서도 이 방으로 올 수 있고,
필요한 물건들을 가져다 놓아도 됩니다.
다만 이동을 할때마다 소지품 외에 마차나 다른 물건들까지 가져오지는 못합니다."
페트는 중급 이상의 실력을 가진 화가들이 이 성을 이용할 수 있게 해 주는 퀘스트를 알지만,
공개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다.
그리고 그 마음은 유린을 보면서 더욱 굳어졌다.
평소에 조금 거만하고 독선적인 성격으로 인해서 사람들을 무시하고 다니던 페트였다.
하지만 유린을 만나는 순간, 그는 한눈에 반해 버리고 말았다.
스스로가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기 때문에 여성의 매력이나 아름다움에 대해서는 잘 알았다.
유린의 곱고 착한 느낌의 얼굴선이나 깊고 맑은 눈빛이 얼마나 예쁜지를!
지금도 예쁘지만 나중에는 더더욱 예뻐질 인상이었다.
평생을 통해 그림으로 그려보고 싶은 대상을 만나 버린 것이다.
페트는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유린이 묻지 않은 것도 얼른 말해 주었다.
"그림을 그려서 이 방에 놓아두면 그 효과가 어디에서든 부여됩니다."
"효과가 부여된다니요?"
"제가 느닷없이 말해서 못 알아들으셨군요. 죄송합니다. 그림이 주는 축복의 효과가 저절로 부여된다는 뜻이죠. 다만 다른사람의 그림은 안되고, 본인이 그린 그림만 해당됩니다. 만약 제 그림도 쓸 수 있다면 드릴 텐데요."
페트가 진심으로 애석하다는 얼굴을 했다.
잘 보이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서 안타갑고 조급해지기만 했다.
대화를 나눌 때마다 드러나는 유린의 성격이나 말투, 표정 변화들까지 예뻤다.
페트를 빠져들게 만드는 콩깍지가 제대로 씌워지고 만 것이다.
인페르노 던전의 깊은곳으로 들어가면서 용암의 강도 두번이나 건넜다.
혼돈의 전사들과 인페르노 나이트 부대들과도 계속 전투를 했고, 화산 폭발도 경험했다.
지골라스의 화산 폭발을 지하에서 겪는 것은 또 새로운 묘미였다.
안전한 지역에 숨어 있으면 통로 전체가 놀이 기구라도 타는 것처럼 뒤흔들렸다.
"크에에엑!"
언데드와 누렁이, 금인이 들이 이곳저곳으로 나가떨어진다.
위드와 서윤도 벽에 달라붙어서 간신히 버텼다.
"흙꾼 소환. 언데드들과 부하들 그리고 내 몸을 감싸라."
흙꾼이 잡아 준 덕분에 계속 부딪치는 것은 막을 수 있었다.
통로의 벽에 부딪친다고 해도 죽을 만큼 생멱력이 깎여 나가지는 않았지만,
다른 장소로 내동댕이 치면 생존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페르노 던전에 대해서는 많은 정보를 모았다.
오랜 세월의 지각 변동으로 인해 내부에 공동들이 만들어지고 동료들이 수없이 생겨났다.
지골라스의 많은 던전들은 자연 발생적으로 생겨나서 몬스터들이 서식할 수 있는 좋은 환경이 만들어졋다.
인페르노 던전에도 주요 통로들이 있었지만, 상당수가 화산이 폭발할 때의 압력에 의해서 변형되어 길이 좁아지거나 새로 열리고 또 아예 막혀 버리기도 했다.
가장 두려운 것은 화산이 폭발할 때 용암이 흐르는 길이 된다는 점!
땅속 깊은 곳에서부터 솟구쳐 나온 용암이 무서운 기세로 통로들을 내달린다.
위드가 있는 안전지대에도 작은 틈이 있었는데, 그곳이 붉게 변했다.
공기도 달아오르면서 찜통처럼 변했다.
초반엔 무섭기 그지없지만 계속 겪다 보니 여유도 부렸다.
"오늘 폭발했으니 한 사나흘은 조용하겠군."
잠깐만 참으면 마음 편히 탐험을 할 수 있다.
화산이 폭발할 조짐이 보여서 애매하게 기다리는 것보다는 긍정적이었다.
금방 적응하고 편하게 조각품이나 깎을 수 있는 위드의 무신경함!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면 난 절대 세금을 내지 말아야지."
뜨거운 용암이 지나고 나면 탐험의 속도가 굉장히 증가했다.
몬스터들이 자리를 잡기 전에 언데드들과 함께 전진할 수 있는 기회였다.
중간에 만나는 혼돈의 전사들과 인페르노 나이트들을 사냥하면서 계속 아래로 내려갔다.
그런데 혼돈의 전사들이 갑자기 이상한 말을 했다.
"쿠비챠가 나의 복수를 헤 줄 것이다."
"똑똑한 쿠비챠가 힘을 얻기만 하면 너희는 죽은 목숨이다."
위드가 물었다.
"그게 무슨 뜻이지?"
"내가 말할 것 같으냐?" 절대 이야기하지 않겠다."
혼돈의 전사들은 사로잡힌 후에도 자존심을 지키며 정보를 주지 않으려고 했다.
"토리도, 피 빨아."
"무슨 수를 쓰더라도 알려 주지 않을 것이다. 이대로 죽여라!"
고문을 해도 꿋꿋하게 비밀을 지키는 혼돈의 전사들이었다.
위드가 잠시 눈치를 보다가 곤란하다는 듯이 말했다.
"아, 너희가 이렇게 입을 다무니까 쿠비챠가 드래곤의 무기를
가지고 있는 혼돈의 전사라는 사실을 절대로 알 수가 없겠군."
"허억, 그걸 어떻게……."
"진짜였군."
눈치껏 찔러본 것인데 대충 맞았다.
사실 던전으로 들어와서도 며칠을 사냥하면서 헤매고 있었다.
통로들이 계속 복잡하게 바뀌거나, 막다른 길에 도달해서 왔던 길을 돌아가기도 했다.
하지만 한참을 왔으니 어느 정도는 목표에 가까이 왔을 거란 추측을 하고 있었다.
"오랫동안 드래곤의 무기를 가지고 있었는데 왜 마법진에 가지 못했지?"
"……."
혼돈의 전사들은 또 입을 다물었다.
"쿠비챠가 성장해서 다 큰 혼돈의 전사가 되었겠군. 드래곤의 무기를 가지고 있으니 상대할 수 있는 다른 전사들이 없었을 테고."
"……!"
혼돈의 전사들의 얼굴에 감추지 못할 경악이 떠올랐다.
서윤이나 조각 생명체들도 갑자기 엄청나게 명석한 두뇌를 보여 주는 위드에 대해서 굉장히 놀라워했다.
"그때 이후로 꽤 시간이 흘렀는데… 쿠비챠는 너희 부족의 장로가 됬나?"
그러자 혼돈의 전사들이 피식 비웃음을 흘렸다.
위드가 말을 바꾸었다.
"아니, 대전사가 되었을 거야. 혼돈의 전사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대전사!"
"……!"
"그리고 너희는 이 던전에서 인페르노 나이트들과 생존을 다투고 있다. 지금까지
마법진에 가지 못했던 이유는 인페르노 나이트들의 거처가 그곳이기 때문이고."
"……!"
"끊임없이 전쟁을 치르는 이유도 상대의 영역을 빼앗기 위해서가 아닌가? 인페르노
나이트들은 번식력이 뛰어난 너희를 견제할 테고, 너희는 마법진으로 가기 위해서
놈들을 죽여야 했겠지!"
혼돈의 전사들은 입이 무거워서 떠벌렸을 리가 없는데, 어느 배신자가 다 말해 주었지?"
위드가 간단히 설명해 줄 뿐이었다.
"아침저녁으로 드라마만 열심히 봐도 이 정도는 다 맞힐 수 있어."
"……."
대한민국 시청자의 위대함!
할머니와 함께 텔레비전을 보면서 죽일 놈. 살릴 놈을 몇번씩 하다 보면 보통의 스토리라인에 대해서는 꿰어 맞추는 재주가 생긴다.
드라마의 1편만 보고도 전체적인 분위기와 죽일 놈, 살릴 놈을 찾아내던 추리력이 동원된 것이다.
"어쨋든 그 쿠비챠가 힘을 얻기 전에 도착해야겠군."
"이미 늦었을 것이다."
"어째서?"
"화산이 폭발하고 나서 그들에게 곧바로 가는 길이 열렸다. 쿠비챠가 이끄는 강인한
혼돈의 전사들은 마법진에 도착 할 수 있을 것이다."
띠링!
-퀘스트와 관련된 정보를 입수하셨습니다.
위드의 앞에 영상이 흘러나왔다.
넓은 공동이었다.
한구석에는 용암 호수가 부글부글 끓고 있고,인페르노 나이트들이 대규모로 몰려서
살고 있는 거주지!
중심부에는 마법진이 그려진 제단이 있었는데, 어마어마한 붉은 마나가 모여서
팽창과 수축을 반복했다.
"쿠비챠가 쳐들어왔다."
"혼돈의 전사들을 물리치고 우리의 성지를 지켜라."
인페르노 나이트들과 혼돈의 전사들의 전투!
양측 모두 최소 500명 이상의 병력을 동원하여 전투가 치러지고 있었다.
도끼가 아니라 붉은 검을 들고 있는 혼돈의 전사가 무기를 휘두를 때마다 인페르노 나이트들이 지푸라기처럼 쓰러졌다.
혼돈의 전사들이 숫자도 1.5배는 더 많았으니 전투의 승리는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였다.
엄청난 박력이 흐르는 두 종족의 사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레드 스타의 회수 퀘스트에 중대한 분위기가 발생했습니다.
목표 : 혼돈의 전사들을 막아라.
쿠비챠가 임벌이 만든 마법진에 모인 힘까지 흡수하게 된다면 지골라스에서
혼돈의 전사들을 막을 수 있는 세력은 없게 될 것이다.
인페르노 나이트들과 함께 쿠비챠에게 맞서 싸우라.
눈을 감고 4초가 지나면 인페르노 대공동의 상황을 볼 수 있다.
쿠비챠가 마법진의 마나를 흡수해서 변이에 성공하면 퀘스트 실패.』
위드의 악명을 여전히 7,500이 넘었고, 살인자의 상태였다. 이마에 붉은색으로
새겨진 이름 옆에 크고 작은 동그라미들이 겹쳐 있는 문양이 떠올랐다.
인페르노 나이트들의 문양!
서윤과 조각 생명체, 언데드들에게도 같은 문양이 떠올랐다.
퀘스트를 주도적으로 하는 것은 위드였지만, 파티를 맺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인페르노의 문양이 새겨졌습니다.
인페르노 나이트들의 공격을 받지 않습니다.
위드는 눈을 감은 채 전투 상황을 지켜보았다.
쿠비챠의 놀라운 활약.
레드 스타를 휘두르면 불덩어리들이 적을 향해 날아갔다.
상급 화염 마법도 자유로이 시전했다.
소멸 주문, 넓은 범위 폭발, 불화살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마법들을 사용할 수 있는 레드 스타!
쿠비챠의 지휘 아래 혼돈의 전사들이 기세등등하게 몰아 붙이고 있었다.
인페르노 나이트들이 버티고는 있었지만, 3~4시간도 끌기 무리일 것 같았다.
일대일에서는 훨씬 강하지 못했다면 벌써 밀려 버리고 말았으리라.
"으흠, 남은 시간이 별로 없군. 화돌이,흙꾼 소환."
"아직도 시킬 일이 있습니까, 주인님?"
"요즘 들어 자주 부려 먹으시는 것 같군요."
불만들을 끝까지 들어 줄 새도 없이 명령했다.
"화돌이는 불의 기운들이 크게 싸우고 있는 장소를 찾아라. 흙꾼이는 그곳까지 가는 지름길을 찾아내."
"우리에게 그 정도야 쉬운 일이지요."
화돌이와 흙꾼은 금방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났다.
"큰 전투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곳까지는 달려서 30분정도면 됩니다. 제가 앞에서 인도하겠습니다."
시간이 금!
30분이라면 인페르노 나이트들이 더 밀려서 돌이킬 수 없게 될 수도 있다.
양측 모두 체력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싸움을 하더라도 중간 중간 휴식이 필요하다.
그래서 마법진까지 뚫리는 것을 3~4시간 정도로 보았지만, 정확하지는 않을뿐더러 상황이 악화되면 도착하더라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빨리 가자!"
위드와 서윤 그리고 부하들이 달리기 시작했다.
당연히 포로로 잡았던 혼돈이 전사들의 목숨을 끊고 잡템을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다다다다닥!
위드는 서윤과 부하들과 함께 요란하게 달렸다.
혼돈의 전사들이나 인페르노 나이트들이나 모조리 싸움에 동원된 듯, 중간에 마주치지 않았다.
위드는 달리는 와중에도 잠깐씩 눈을 감으면서 전황을 확인했다.
"힘들겠군."
쿠비챠와 혼돈의 전사들이 너무 강력했다.
"종족은 완전히 다르지만 리치 샤이어보다 강한 것은 물론이고 바르칸 정도의 수준으로 봐야 할 것 같아."
쿠비챠는 굉장한 전사였다.
전장의 선두에 서서 무한에 가까운 체력과 무지막지한 힘으로 인페르노 나이트들을 몰아붙이고 있다.
대전사라는 이름이 걸맞을 정도의 강자!
레드 스타의 힘으로 화염 마법까지 쓰는데, 저항력이 높은 인페르노 나이트들도 쉽게 대적하지 못하고 있었다.
"도착하기 전에 미리 해야 할 게 있겠어."
위드는 잠깐 멈춰서 신비의 새를 꺼냈다.
그러자 곧 벌어질 일을 짐작한 듯 황금새가 날개를 파닥이면서 기뻐했다.
"게이하르 아르펜 황제가 만든 조각품이여, 숭고한 예술혼으로 만들어진 너에게 내 생명을 나누어 주노니, 이제 그 오랜 잠에서 깨어나 나와 함께하라. 조각품에 생명 부여!"
『-조각품에 생명을 부여하셨습니다.
조각품의 능력은 현재 설정된 예술 스탯 1,889에 따라 레벨에 맞춰 447로 변환됩니다.
역사적인 보물, 아르펜 제국의 상징물, 조각술 마스터 게이하르 황제의 작품의 효과로
인해서 35%의 레벨이 추가되어 603으로 늘어납니다.
하늘을 날 수 있기 때문에 레벨의 10%가 패널티로 줄어듭니다.
조인족으로의 변신이 가능하여 레벨의 10%가 패널티로 줄어듭니다.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조각품의 내구도가 감소하여 레벨의 7%가 패널티로 줄어듭니다.
생명체에 세 가지의 속성이 부여됩니다.
조각품의 모양과 수준에 따라 부여되는 속성의 수준과 능력치가 다릅니다.
보석의 속성(100%), 바람의 속성(100%), 예술의 속성(100%)
보석의 속성은 특별한 카리스마와 정치적인 영향력 증대를 가져올 것입닌다.
바람의 속성은 하늘을 날 때에 매우 빠른 속도를 낼 수 있습니다.
예술의 속성으로 인하여 조각품과 미술품을 좋아하고 작품들의
효과를 150%로 이끌어 낼 수 있습니다. 자신뿐만 아니라 동료들 전체에게 해당됩니다.
역사적인 보물이기 때문에 남다른 위엄과 기품을 가집니다.
조각술 마스터 게이하르 황제의 작품이기 때문에 특별한 생명력과 마나의 추가가
이루어집니다. 조각술 마스터의 추가적인 효과는 생명을 부여한 이의
재주가 부족하여 적용되지 않습니다.
아르펜 제국의 상징물이었던 조각품이기에 특수한 능력이 부여됩니다.
공성전에서 수비 측에 유리한 신비한 안개를 소환합니다.
병사들에 대한 지휘 능력을 강화하고, 정찰력을 향상시킵니다.
마나가 5,000 사용되었습니다.
스킬의 효율이 증가해서 생명을 부여할 때 소모되는 레벨과 스탯의 양이 20% 감소합니다.
예술 스텟이 6, 영구적으로 줄어듭니다. 줄어든 스탯은 조각품이나
다른 예술과 관련된 활동을 통해 보충할 수 있습니다.
레벨이 1 하락합니다. 레벨 하락에 따라서 보유하고 있는 스탯이 5 줄어듭니다.
줄어든 스탯은 레벨을 올리게 되면 다시 부여할 수 있습니다.
생명이 부여된 조각품을 소중히 다루어 주십시오. 목숨을 잃으면 다시 생명을 부여해야 합니다.
완전히 파괴되었을 경우는 되살릴 수 없습니다.』
수백 년을 황궁의 장식품으로 황제의 위엄을 널리 퍼트렸던 신비의 새.
미스릴과 백금으로 된 조각품에 생명이 부여되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끼루루루루.
신비의 새가 눈을 깜박이더니 금인이와 누렁이 들과 인사를 했다.
그러더니 위드와 서윤을 번갈아 보았다.
갓 태어난 새끼 새가 어미를 찾는 듯한 그런 느낌으로!
위드가 이야기했다.
"내가 너에게 생명을 준 아빠다."
예쁜 보석 눈동자 가득 위드를 담은 신비의 새는 아장아장 걸어와서 말했다.
황금새와는 달리, 새의 상태에서도 부리를 달싹여서 말을 할 수 있었다.
"아버지, 저의 이름을 정해 주세요."
"이름이라, 이름."
위드는 신비의 새의 몸을 훑어보다가 떠오르는 이름을 이야기했다.
"은새라고 하자."
어감은 좋았지만 만들어진 과정에서는 누렁이나 실질적으로 차이가 없는 이름.
"은새라니 예쁘고 좋은 이름이군요. 고맙습니다. 아버지."
그러면서 서윤의 어깨로 냉큼 가 버리는 은새였다.
위드가 생명을 부여해 주기는 했지만 서윤 쪽이 훨씬 마음에 든다는 듯!
외모도 그렇고 성격도 영락없는 여자아이였다.
"어쨌든 이제 가자!"
위드는 시간을 지체할 수가 없어서 다시 출발했다.
"이쪽입니다."
흙꾼이 앞에서 안내를 맡아서, 갈림길이 나왔을 때에도 망설이지 않고 뛰었다.
그리하여 25분 후에 목적지에 도착!
넓은 공동에서 혼돈의 전사들과 인페르노 나이트들이 대격전을 벌이고 있었다.
굉음과 폭발음 그리고 화염이 치솟고 있는 전장.
위드는 대충 알고 있었지만 서윤이나 조각 생명체들은 이곳의 상황에 대해서 조금도 몰랐다.
쿠비챠는 레드 스타를 들고 엄청난 활동력으로 싸우고 있었다.
그의 지휘 아래 혼돈의 전사들이 조직적으로 전투를 벌였다. 위드가 아까 3~4시간 정도는 버틸 거라고 계산했지만,
인페르노 나이트가 확연하게 밀리고 있었다.
세력전에서는 균형이 무너지기 시작하면 잠깐 사이에 몰락해 버리고 만다.
"크흠."
위드가 어디서부터 손을 써야 할지 망설이는 순간이었다.
용암 호수에서 불의 거인들이 걸어 나왔다.
"내 잠을 깨우는 놈들은 죽어야 하리라."
"지골라스의 평온을 깨뜨리는 시끄러운 종족들은 우리의 분노를 받아야 한다."
다섯이나 되는 불의 거인들이 대검을 휘두르면서 난입!
인페르노 나이트와 혼돈의 전사를 가리지 않고 베어 버렸다.
게다가 바오반트들도 대거 등장했다.
불덩어리를 쏘면서 전투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인페르노 던전에 있는 몬스터들이 전부 한곳에 모인 것 같은 난장판이다.
위드는 숫자를 헤아려 봤다.
"인페르노 나이트들은 300명이 조금 넘는 것 같군. 방금 2명이 죽었고……. 혼돈의 전사들은 계속 추가되어서 인페르노 나이트보다 족히 2배는 되는 것 같아. 여기에 범접할 수 없는 대상인 불의 거인들과 바오반트들이라!"
직접 보고 나니 기기 질릴 정도의 전투 상황이었다.
누렁이는 공포에 질려서 숨으려도 들었다. 금인이는 그래도 싸울 의지를 가졌다.
"골골골, 오늘 장렬히 싸우다가 죽겠구나."
죽음을 떠올리고 있는 부하들!
서윤은 담담하게 위드를 보고 있었다. 퀘스트를 위해서 이곳에 온 것임을 알고 있었으니 결정을 따르겠다는 얼굴이다.
S급 난이도의 퀘스트를 하면서 이곳까지 오느라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던가.
위드는 결정을 내려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