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지골라스 종족 전쟁
"싸운다."
마침내 위드는 결정했다.
황금새와 은새는 둘이 비슷하게 위드를 무시하고 있었다.
인간이고, 레벨도 자신들보다 낮았기 때문에 제대로 주인대접을 해 주지 않았다.
그런데 위드가 싸우겠다고 하니 짤막하게 기분을 표현했다.
"자살이군."
"죽는 방법을 결정하셨군요."
조금도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는 위드!
"너희는 나와 함께한 시간이 얼마 되지 않지. 하지만 내 부하들의 생각은 다를 것이다."
토리도와 반 호크에게 시선을 돌렸더니 그들은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주인을 잘못 만나서.'
'내가 어쩌다가 저 인간을 또 만나게 되었을까.'
끝없는 후회에 빠져 있는 부하들.
누렁이와 금인이는 공포에 질려 있었고, 서윤만이 변함 없는 표정이었다.
어떤 악조건에서도 빛을 발하는 서윤의 외모.
위드는 그녀로부터 시선을 돌려 전장을 보았다.
"싸우기로 했지만 일단은 여기서 기다린다."
인페르노 나이트들과만 싸우던 쿠비챠와 혼돈의 전사들의 전력이 분산되었다.
불의 거인에게도 떼로 덤벼들어 싸워야 했고, 바오반트들도 퇴치해야 했다.
겨우 한숨을 돌리는 것 같은 인페르노 나이트들이었지만, 불의 거인이나 바오반트의 공격은 그들에게도 향했다.
던전 내부의 지배권을 두고 각 종족들이 죽을힘을 다해서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불의 거인이 힘을 쓸 때마다 던전 전체가 흔들렸고, 바오반트들이 쏘아 낸 화염들이 중첩되어 바위마저 녹을 지경이다.
위드나 언데드, 부하들이 가세한다고 하더라도 전황에 마땅히 영향을 미치기란 어려울 것 같았다.
언데드들도 강화되었고 황금새, 은새도 있다지만 혼돈의 전사들이 열다섯만
되더라도 상당히 버거울 것이라고 예상된다. 그런데 적들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인페르노 나이트들이 내 지휘를 과연 따를까? 설혹 따른다고 해도 혼돈의 전사들과 싸워서 이길 자신은 없는데."
고급 네크로맨서 스킬이라면 어떤 가능성이 열릴지도 모르겠지만 위드가 제작하는 언데드들은 혼돈의 전사들에 의해서 오래 버티지 못하고 소멸되리라.
인페르노 나이트들을 종족 전쟁에서 최종 승리자로 이끌기란 정말 버거운 일이 될 것이다.
이래저래 눈치만 보는 사이 빠르게 30여분이 흘렀다.
혼돈의 전사들은 100명 정도 줄어들었지만, 원군이 50여명이나 새로 도착했다.
그런데 그사이 인페르노 나이트들이 70명 정도나 죽었다.
멀리서 봐도 규모가 많이 줄어든 것을 확인할 수 있을 정도였다.
"아이고!"
"왜 가만히 있는 거야."
위드의 지골라스에서의 모험이 시작된 이후로 KMC미디어에서는 야근을 밥 먹듯이 했다.
음향과 영상, 편집을 위한 작업 팀이 남아 있었지만, 전혀 무관한 총무부, 인사부, 시사교양부의 직원들도 방송국에 남았다.
그들을 남게 만든 것은 위드의 모험을 당장 보고 싶다는 일념 하나였다.
따뜻한 커피와 무릎 담요만 있으면 남부러울 것이 없는 직원들.
만의 하나 위드의 퀘스트가 실패한다면 베르사 대륙에 어떠한 영향을 줄지 모른다.
따라서 그만큼 모든 사람의 관심이 집중되어 있었다.
로열로드의 인기는 이제 남녀노소를 따로 구분하지 않았다.
"죽여! 죽여 버려!"
"부숴!"
"아이템! 방금 무슨 아이템이 떨어진 것 같아요."
"대박이다!"
편성국의 마스코트로 불리던 예쁜 여직원이 내지르는 고함 소리 정도는 영상실에서는 예사가 되었다.
본능에 따라서 고함을 치면서 응원을 할 수 있는 공간.
화면을 보고 있을 뿐이지만 로열 로드는 직접 모험을 하는 것만큼 생생했다.
감상하는 입장에서는 4배나 되는 시간차이로 인해서 이동이나 식사, 휴식같은 부분을
건너뛰고 보면 되기 때문에 지루할 틈이 없이 몰입하기 좋았다.
생중계도 이런 식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야깃거리가 많은 편.
더구나 위드의 모험은 빼야 될 부분이 별로 없다.
지골라스에서는 갑자기 지진이 일어난다거나 땅이 갈라지는 재난이 많아서 그때마다 깜짝깜짝 놀라기 일쑤였다.
"아, 도대체 위드는 왜 싸우지를 않는 거야?"
강 부장이나 직원들도 속이 타는 건 마찬가지였다.
S급 난이도의 마지막 임무. 이것만 수행한다면 베르사 대륙의 역사에 길이 남을 의뢰가 완수된다.
시청자들이 실망할 것 같아서 방속 자체도 고민하게 만들었던 의뢰.
KMC미디어에서도 그리 큰 기대를 걸지 않았지만, 역경을 뚫고 드디어 마지막 관문에 이르렀다.
위드가 아니라면 그 누가 있어 이 모험을 할 수 있었을 것인가.
"으으, 빨리 싸워야 되는데."
강 부장이 답답함에 물을 벌컥벌컥 들이마시는데, 옆에서 보고 있던 여직원이 말했다.
"포기한 것 같아요."
"포기라니?"
강 부장이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위드가 여기까지 와서 포기를 해? 이 전투만 승리하면 엄청난 대가를 얻을 수 있을 텐데 지금 포기할 리가 있을까."
"하지만 이길 수가 없잖아요. 못 이길 전투는 포기하는 게 상책이죠."
"그야 그렇긴 하지만……."
강 부장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응원하고 있었지만 누가 보더라도 절망적인 상황!
혼돈의 전사들이나 불의 거인이나 인페르노 나이트들이나, 영락없이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꼴이 아니겠는가.
"살기 위해서는 퀘스트를 포기하고 돌아 나오는 게 나을거예요."
유치원생에게 물어보더라도 이쪽이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일 것이다.
강 부장이나 KMC미디어의 직원들도 위드가 아니라면 이토록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영상을 보지도 않았으리라.
'퀘스트가 너무 어렵네. 그냥 포기하고 다른 퀘스트를 받겠지.'
도전해 보고, 아닌 것 같으면 포기하는 건 흔하고 일반적인 일이었다.
다만 지금은 모험을 하는 당사자가 위드이기 때문에 끝까지 보게 되는 것이리라.
위드는 언제나 특별한 결과를 만들어 냈으니까!
위드는 전장의 움직임들을 눈에 담으면서 끊임없이 계산했다. 견적을 뽑아내는 일을 쉬지 않았다.
'아직은… 아니야.'
쿠비챠가 통솔하는 혼돈의 전사들은 인페르노 나이트들을 하나씩 죽여 나갔다.
불의 거인들은 여전히 왕성하게 날뛰고 있었지만 들고 있는 대검은 금이 가서 부서지기 직전이었다.
용암 호수에 있던 바오반트들은 불의 거인들에게 밟히고 천장이 무너져서 떼죽음을 당했다.
대혼란의 와중, 아수라장에서도 위드는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집중했다.
쿠비챠는 가지고 있는 전투 스킬이 상당히 다양한 편이었다.
전투중에 도끼를 하나 줍더니, 양손에 다른 무기를 휘둘렀다.
일곱 번의 연속 도끼질.
도끼의 궤적이 허공에 그려지더니 인페르노 나이트들을 차례로 강타했다.
"불의 진노!"
드래곤의 검 레드 스타의 힘으로 화염 계열 마법도 사용했다.
오른손에 들고 있는 검은 엄청난 파괴력을 가지고 있어서 인페르노 나이트들이 막더라도 방패가 푹푹 팰 정도였다.
쿠비챠는 불의 거인마저도 쓰러뜨렸다. 도끼와 검을 수십 번이나 번갈아 가면서 빠르게 공격해 버린 것이다.
"크오어어어어!"
불의 거인이 쓰러지는 순간, 혼돈의 전사들은 함성을 지르더니 일제히 몰려들이서 공격했다.
불의 거인은 이리저리 구르면서 괴로워하다가 사망!
드디어 불의 거인도 1명이 죽었고, 임벌의 마법진을 지키는 인페르노 나이트들도 처음의 절반도 남지 않았다.
다른 불의 거인들이 더욱 맹렬히 날뛰고, 인페르노 나이트들도 결사 항전을 위해 검과 방패를 들고 고함을 쳤다.
임벌의 마법진에 있는 힘까지 갖게 되면 쿠비챠는 대적하기 힘든 몬스터로 재탄생하게 되리라.
위드는 그럼에도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꾹 참았다.
'아직…때가 아니야.'
기다리면서 은행털이를 준비하는 도둑처럼, 집중력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불바다에, 1,000마리 이상의 화염 계열 몬스터들이 전투를 펼치는 아수라장에서 빈틈을 노린다.
그리고 한참 후, 쿠비챠가 두 번째 불의 거인을 혼자서 죽인 직후였다.
시간이 더 지나면 혼돈의 전사들이 더 많이 남게 되어서 감당할 수 없게 되리라.
"지금이다."
드디어 위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누렁이, 금인이 너희는 싸움에 끼어들지 말고 이곳에서 쉬고 있어라. 상황이 안 좋게 돌아가면 도망쳐."
"알았다, 골골골!"
"모든 언데드들은 나의 뜻을 따르라. 언데드 통솔!"
네크로맨서 스킬!
인형놀이를 하는 것처럼 언데드들은 세세한 부분까지 장악하고 통솔할 수 있었다.
1시간 넘게 묵묵히 기다렸지만 전투의 개입은 즉각적으로 이루어졌다.
"블링크!"
도끼를 든 카오스 워리어들이 내달렸다.
공중을 뛰어가는 것처럼 거듭 순간 이동을 하면서 쿠비챠와 몇 안 되는 그의 호위대를 향해 접근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위드는 불의 거인의 목숨이 끊어지는 때에 마법을 외웠다.
"시체 폭발!"
방금 죽은 불의 거인의 시체가 어마어마한 굉음과 함께 사방으로 폭발했다.
"크아악!"
쿠비챠가 타격을 입고, 근처에 있던 혼돈의 전사 호위대들도 나뒹굴었다.
『-시체 폭발 마법의 숙련도가 크게 증가했습니다.
불의 거인의 적대도가 55%증가합니다.』
메시지 창을 읽을 사이도 없었다.
위드느 쿠비챠가 있는 지역으로 저주 마법들을 연거푸 시전했다. 삼분의 이 정도는 저항력으로 이겨 냈지만, 편협한 시야를 비롯하여 3개 정도는 걸렸다.
화염과 연기가 걷히기도 전에 쿠비챠에게 도달한 카오스 워리어들이 도끼질을 가했다.
"쿠오오!"
언데드들의 일제 공격!
다른 혼돈의 전사들이 개입하기 전에 언데드들이 호위대를 물리치고 총공격을 가했다.
땅을 구르며 반격하는 쿠비챠의 검에 베여서 완전히 타버리는 언데드도 있었지만
피해를 감수하면서도 공격에 투입했다.
위드가 언데드들을 지휘하며 급히 말했다.
"황금새, 넌 나를 데리고 날아라. 은새, 너도 같이 쿠비챠에게 가자. 토리도, 반 호크, 너희는 뒤를 따라와."
"알았다.""
황금새는 위드의 어깨를 양발로 거머쥔 뒤에 전투 지역으로 날아갔다.
불의 거인들의 다리 사이, 공중으로 순간 이동해서 잡으려는 혼돈의 전사들을 피해서 날아가는 절묘한 비행!
토리도도 검은 망토를 펼치고 반 호크와 함께 뒤를 쫓아서 날았다.
"날 내려놔라!"
이런 말은 뜸들이지 않고 듣는 황금새는 쿠비챠의 10여미터 위에서 발톱을 풀었다.
위드는 연기와 화염을 뚫고 추락해서 쿠비챠의 등에 올라타는 데 성공했다.
언데드들의 이목 끌기와 난전, 저주 마법 등으로 만든 틈을 타 등에 달라붙은 것이다.
하지만 쿠비챠는 위드가 등에 매달린 것을 느끼고 남달리 긴 팔을 이용해 뒤쪽으로 도끼를 휘둘러 왔다.
"젠장! 본 쉴드 소환, 눈 질끈 감기!"
믿을 것은 맷집밖에 없었다.
뼈로 된 방패들을 차례로 뚫고 날아온 도끼가 위드를 강타했다.
눈알이 튀어나올 것 같은 엄청난 충격!
『막중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생명력이 38,900 감소합니다.
완전한 회복이나 치유가 이루어질 때까지 최대 생명력 2,590 줄어듭니다.
7초 동안 스턴 상태에 빠집니다.
마법을 사용할 수 없으며 균형 감각을 상실합니다.
위드는 해롱거리는 와중에도 쿠비챠를 붙잡고 버텼다.
거인형의 쿠비챠의 머리를 잡고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 안간힘을 다했다.
여기서 떨어진다면 말 그대로 개죽음이다.
쿠비챠에게 죽음을 당할 수도 있지만 불의 거인에게 밟혀 죽을 수도 있고,
바오반트들이 불러 놓은 화염 속을 구르다가 버티지 못하고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다양한 종류의 죽음들이 형태를 달리하고 기다리고 있었으나 위드도 필사적이었다.
7초가 이렇게 길게 느껴졌던 적도 없다.
쿠비챠가 엄청나게 빠르고 격렬하게 움직이는 것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언데드들을 해치우면서 도끼를 찍고 검을 위두르고 방향을 전환할 때마다 떨어지지 않기 위해 무작정 붙잡고 늘어졌다.
물귀신보다 더한 의지가 도움이 되었던지, 간신히 7초를 버티는 데 성공!
위드의 시야와 균형 감각 등이 원래대로 돌아 왔다.
그가 지금까지 잡고 있었던 것은 쿠비챠의 투구 부분이었다.
위드는 투구를 놓아 버리고 등에 매달렸다.
"라이프 드레인, 마나 드레인!"
리치로서 근접 거리에서 할 수 있는 대단히 유용한 스킬이었지만
미친 짓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초고레벨 몬스터, 드래곤의 검을 들고 있는 혼돈의 대전사의 등에 매달려
생명력과 마나를 흡수할 생각을 하다니!
"비겁하고 짜증 나는 해골, 죽지 않았구나!"
쿠비챠는 언데드들과 싸우느라 바빠서 신경을 쓰지 못할 뿐이었다.
언데드들을 정리하자마자 어디 도망칠 곳도 없이 위드는 금세 목숨이 경각에 처하게 될 것이다.
쿠비챠의 널찍한 등을 붙잡는 것은 썩은 동아줄을 붙잡는 것보다도 위험한 짓!
위드도 등에 업히기는 했지만 다크 스피어를 소환해서 공격할 여유는 없었다.
"키야오!"
쿠비챠가 성난 고함을 지르면서 공격할 때마다 줄어드는 언데드들!
어깨에 올라타지 않고 등에 업히더라도 편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쿠비챠가 활동할 때마다 억지로 붙잡고 늘어져야 한다. 잠깐의 틈만 생겨도
도끼를 머리 뒤로 돌려서 쳤는데, 이리저리 움직여서 피해야 했다.
성난 코뿔소에 달라붙은 매미 꼴!
대혼전에서 쿠비챠의 등에 업힌 것은 피부의 솜털을 다 곤두서게 할 정도로 긴장감 넘치는 행동이었다.
실제로 불을 끌어안은 것처럼 매우 뜨겁기도 했다.
"블링크!"
코비챠가 순간 이동을 사용하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위드가 등에 업힌 채로 생명력과 마나를 흡수하고 있었기 때문에 스킬을 사용할 수 없었다.
"귀찮은 해골! 너부터 죽여야겠다. 감히 나 쿠비챠의 등에 올라타다니!"
쿠비챠가 작정하고 죽이려고 한다면 몇 번 피하기는 하겠지만 오래 버티지는 못할 처지였다.
그때 연기 사이로 황금새와 은새가 보였다.
조인족의 형태로 변신을 하고, 검과 창을 들고 있었다.
공중에서 선회하면서 최대한의 가속력을 얻은 뒤에 쿠비챠를 향해 무기를 투척!
빛살쳐럼 일직선으로 날아오는 공격.
위드가 노리던 회심의 일격이었는데, 상황이 안 좋았다.
쿠비챠도 그것을 보고 정면에 있는 언데드들 사이로 뛰어들어 회피하려 들었다.
몇 대 얻어 맞더라고 그편이 훨씬 피하가 적을 것 같다는 계산에서 이리라.
위드가 큰 소리로 명령했다.
"언데드들은 돌진해라!"
카오스 워리어들이 몸으로 부딪쳐서 저지했지만, 쿠비챠는 괴물 같은 힘으로
움직여 정면에서 맞는 것만은 피할 수 있었다.
어깨와 옆구리에 꽂힌 창과 검.
"상태 확인!"
위드는 네크로맨서 스킬로 쿠비챠의 상태를 확인했다.
『혼돈의 대전사 쿠비챠
지골라스의 보스급 몬스터 중 하나.
어린 시절 우연히 드래곤의 검을 획득했다. 그 후로 지골라스에서 무수히 많은
전투들을 승리로 이끌고 혼돈의 대전사가 되었다. 더 큰 힘과, 지배권을 가지려는 야욕을 불태우고 있다.
*드래곤의 검 레드 스타에 봉인된 마법들의 일부를 사용한다.
불의 기운이 강한 곳에서 생명력을 회복하는 속도가 최대 3배까지 오른다.
*편협한 시야, 무가치한 죽음, 피곤한 착각 등의 저주 마법에 걸려 있음.
*심한 부상으로 인해 전투 능력이 다소 떨어져 있다.
생명력 : 21% 마나 : 9%』
혼돈의 전사들을 이끌고 족히 1시간은 싸우고, 불의 거인을 둘이나 쓰러뜨렸다.
시체 폭발에, 언데드, 토리도, 반 호크, 황금새, 은새의 협공까지 받았는데도 무려 21%나 되는 생명력이 남았다.
회복 속도가 굉장히 빠르기 때문에 단숨에 죽여야 하지만
까다롭기 그지없는 혼돈의 전사들을 이끄는 보스급 몬스터!
쿠비챠가 고통스러운 괴성을 질렀다.
"쿠오오오오오! 나를 공격하는 적들이 잇다. 전사들이여, 이곳으로 오라!"
그러자 혼돈의 전사들이 반응했다.
"대전사님이 위험하다."
"새로 등장한 적을 죽여라!"
인페르노 나이트와 불의 거인 들이 가로막고 있었지만 순간 이동을 사용할 수 있는 몬스터들에게는 무용지물이나 다름없다.
쿠비챠를 잡으려면 한참은 더 때려야 되고, 그것도 장담하지 못할 처지에 혼돈의 전사들이 개입한다면 일이 완전히 틀어지게 되리라.
위드는 이런 상황도 미리 염두에 두었다.
"최악에서 두 번째로 나쁜 상황이로군. 시체 폭발!"
처음에 사망했던 불의 거인이 시체를 폭발시켰다.
던전 안이 뒤흔들릴 정도로 큰 충격파에 연기와 화염이 일대를 휩쓸었다.
-시체 폭발 마법의 스킬 레벨이 1 단계 올랐습니다.
불의 거인의 적대도가 최대치가 됩니다.
적대도를 낮추는 아이템의 효과가 약화됩니다.
불의 거인의 눈에 띄지 않도록 주의하는 편이 좋을 것입니다.
위드가 있는 장소에까지 불의 거인의 파편들이 날아왔다.
그 정도로 엄청난 폭발이었기에 혼돈의 전사들도 여섯이나 죽었다.
그리고 많은 적들이 땅에 나뒹굴고 쓰러졌다.
약간의 시간을 번 것에 불과했으니 그들을 처리할 여유는 없었다.
토리도와 반 호크는 지금밖에 기회가 없다고 여기고 공격을 몰아쳤다.
위드도 언데드들을 조종하여 상처 입은 쿠비챠를 괴롭히고, 공중에서는 황금새와 은새가 협공을 했다.
"내려찍기!"
황금새와 은새는 매우 빠른 속도로 내려와서 할퀴고 올라가면서 피해를 주었다.
"다른 전사들이 없으면 내가 너희에게 죽어 줄 것 같으냐?
인페르노 나이트의 개들! 죽어서 갈 곳도 없는 언데드들에게 당할 내가 아니다."
쿠비챠는 언데드들이 치고 빠질 때마다 도끼로 반격을 했다.
속절없이 죽어 나가는 언데드들.
카오스 워리어들이 불과 일곱밖에 남지 않았다.
"바람의 결박!"
쿠비챠를 중심으로 심한 바람이 불었다. 언데드들이 접근하기 어렵게 만들고 반 호크의 퇴로를 막았다.
"크흐흐흐, 죽여 주마!"
반 호크를 바람으로 가두어 놓더니 일대일의 승부를 벌였다.
쿠비챠가 엄청난 속도로 내려치는 도끼질. 반 호크는 수비에 전념했지만 힘에서 밀렸다.
결국 쿠비챠는 반 호크의 자세를 무너뜨리더니 검으로 베어 버렸다.
"크…으윽."
숱한 전투를 함께했던 반 호크의 죽음.
육체와 영혼이 흑마법에 의해서 목걸이에 봉인되어 있기에 시간이 지나면 다시 소환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이렇게 빨리 죽어 버리다니, 전력의 큰 부분이 비어 버리고 말았다.
이때까지 쿠비챠의 줄어든 생명력은 겨우 3%에 불과했다.
'역시 안 되나.'
위드는 승산이 희박하다고 판단했다.
최선을 다해 보더라도 쿠비챠의 남은 생명력도 많고, 레벨이나 방어력이 높아서 금방 잡을 수 있는 몬스터가 아니다.
'늦기 전에 황금새와 은새라도 살려야겠다.'
위드 자신은 도망도 칠 수없는 신세였으니 죽음을 각오하고, 황금새와 은새라도 이 틈을 타서 피하라고 지시하려던 무렵.
불의 거인의 폭발로 생긴 자욱한 연기를 뚫고 서윤이 뛰쳐나왔다.
검에는 선명하게 붉은 기운이 덧씌워져 있었다.
생명력과 마나를 태우면서 쿠비챠에게 유성우 같은 공격을 퍼부었다.
일체의 방어도 없는 공격 일변도였다.
KMC미디어의 영상실에서는 바쁘게 작업을 했다.
"이건 잘라 버려. 저 화면은 몬스터들이 많이 비치는 방향이 좋겠어.
그리고 용암으로 인해서 시야가 너무 밝잖아."
"밝기를 좀 낮출까요?"
"용암 부위만 조금 어둡게 가자고. 시청자들의 눈이 아플 정도가 되면 안 되니까."
위드의 전투로부터 전송되는 영상의 분량이 어마어마했다.
KMC미디어에서도 약간의 시간적인 여유는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드린펠트가 이끄는 하벤 왕국의 제2함대와 그리피스의 해적들이 지골라스에서 사냥을 하고 있는 와중이었다.
지골라스의 화산들이 폭발하고 나더니 혼돈의 전사들이 어딘가로 향하는 장면이 텔레비전에 나왔다.
"대전사 쿠비챠 님이 종족 전쟁을 벌이셨다."
"지골라스의 지배 종족을 결정하는 자리. 이번에야말로 불의 거인족과 인페르노 나이트들을 물리칠 것이다."
그런 후에 지골라스의 지하에서 커다란 폭발이 두 차례 일어났다.
지골라스의 하늘로 구름들이 모여들었다.
"해골이 우리를 방해하고 있다."
"더 많은 동족들을 모아라!"
"누구도 쿠비챠 님을 막지 못할 것이다."
누가 보더라도 위드가 퀘스트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CTS미디어를 보고 있던 시청자들이 KMC미디어의 게시판에 몰려들면서 방송 요청을 했다.
인터넷상에서는 위드의 퀘스트가 진행 중이라는 소문이 파다하게 돌았다.
강 부장이 판단하기에도 이제 드린펠트나 그리피스가 알더라고 방해할 수 있는 시기는 지났다.
"문제는 퀘스트를 성공하느냐 못 하는냐인데……."
성공이든 실패든 퀘스트를 방송할 가치는 충분하고도 남는다.
방송을 안 한다는 결정을 내린다면 두고두고 시청자들의 비난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부분이었다.
벌써 위드의 특집 프로그램과 퀘스트에 대해 비밀 엄수를 조건으로 광고주들에게는 넌지시 알려 주었다.
평소에는 광고를 별로 하지 않던 기업들도 호의적으로 나왔다.
"우리 그룹의 계열사가 여러 개인데… 한 5개 정도 할 수 있지요?"
"몇 시간 정도로 편성할 예정입니까? 그리고 방송 날짜는 언제로? 새로 찍고 있는 광고가 있는데, 첫 번째로 내보냈으면 좋겠는데 말이지요."
"광고료가 높은 거야 이해합니다. 경쟁사는 절대 실어 주지 마시오."
광고 계약까지 마쳐 놓았으니 방송 시기만 저울질하던 와중이었다.
차근차근 인페르노 던전 탐험을 하다가 화산 폭발이 일어나더니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이 종족 전쟁으로 이어지고, 위드의 전투 참가!
그동안 고생해 온 여러 팀들이 전부 달라붙어서 막바지 작업에 참여하고 있었다.
"1부부터 방송 시작해. 광고들은 중간 중간 넣을 테니까 오프닝에는 10개만 깔고."
"지금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미리 준비해 놓은 1부부터 생방송을 시작했다.
퀘스트의 나머지 부분은 동시 편집을 통해서 바로바로 만들어야 했다.
"맞았다!"
"아아아, 치명타는 아니네요."
"이런 아쉬울 데가!"
작업 팀이 고생을 하거나 말거나, 관계없는 방송국 직원들은 영상을 보기에 바빴다.
정득수 회장은 새마을 갱생병원의 차은희 박사가 보낸 보고서를 읽었다.
"많이 나아졌군. 기적 같은 일이야."
말을 영영 하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딸이 남들처럼 말을 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다만 너무 오랫동안 말을 하지 않아서 어색해하고, 또 말을 하는 행위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고 했다.
이미 글을 써서 의사를 표현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정말 믿고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차츰 말을 할 것으로…….
조금 더 기다려야겠지만 그쯤이야 못 기다릴 바도 아니다.
정득수 회장은 웃으면서 박 실장을 보았다.
"서윤과 친하게 지낸다는 그 남자애는 잘하고 있겠지?"
경호원들을 통해서 서윤에 관련된 정보들은 항상 듣고 있었다.
이현의 집에 방문을 했을 때부터 그와 관련된 것들은 빠짐없이 챙겼다.
"네, 물론입니다."
"싸우거나 상처 주는 일은 없고?"
"서윤 양과는 친하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뒷조사도 지시해서, 직접 만나 보진 않았지만 이현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다.
가족을 끔찍하게 아끼고, 어릴 때부터 사채업자에 시달린 충격 때문인지 지독한 구두쇠에 돈을 밝힌다.
데이트 비용이 아까워서 여자관계도 깨끗하고, 성격적으로는 서윤과 비슷하게 마음을 잘 열지 않는다.
상처가 많을수록 남을 두려워하기에, 정말 친해지지 않으면 속내를 잘 털어놓지 않으려고 한다.
검술을 배우는 것까지 알고 있었고, 집에 동물을 많이 키우지만 애완동물이라기보다는 식용을 위해서란 점까지 알았다.
서윤이 키우는 강아지의 건강 상태를 확인하던 수의사가 목줄에 적힌 글귀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몸보신
취미 활동은 없고, 집과 학교, 시장, 도장을 오가는 일정한 생활이 반복적으로 이루어져서 알아낼 건 적었다.
특기 사항으로는 가상현실 세계 로열 로드에서 굉장한 인기인이라는 점이었다. 전신 위드라는 이름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그와 관련된 자료들은 방대하기 짝이 없고, 과장되거나 허황된 것들도 많았지만 상당수 믿기 힘든 놀라운 기록들이었다.
정득수 회장은 가볍게 휴가 차원에서 몇 번 로열 로드를 해 본 정도라서 위드에 대해 들어 본 적은 없었다.
"우리 서윤이를 위해서는 최상의 상대야."
"정말… 서윤 양과 계속 만나도록 허락할 생각이십니까?"
"말을 할 때까지는 그렇게 해야지.
그리고 우리 애가 말을 하게 되더라도 헤어지라고 강요해서 서윤이에게 상처를 주고 싶진 않아."
정득수 회장은 서윤이 다시는 상처를 받지 않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녀가 말까지 할 수 있게 된다면 그때에도 둘이 어울릴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외모, 재산, 집안. 모든 면에서 심하게 차이가 나는 두 사람이다.
"조사해 본 바로는 돈에 약하다고 하던데, 나에게는 은인이라고 할 수 있으니 후하게 사례를 해 주면 되겠지. 평생 먹고살 정도의 돈을 주고 좋은 친구 정도로 남아 달라고 하면 알아들을 걸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