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슬로어의 결혼식
KMC미디어에서는 옆 사람이 침을 삼키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침묵이 흘렀다.
위드가 부활했을 때부터 영상을 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영상을 편집하고 작업하는 부서들만이 아니었다.
국장실에서부터 사장실에 이르기까지 내부적으로 채널을 고정시켜 놓고 보고 있었는데, 위드가 본드래곤으로 부활한 그 순간부터 다들 아무 생각도 없이 영상만 봤다.
죽음을 거부할 수 있는 힘으로, 아무리 안식의 동판이 있었다고 해도 본 드래곤으로 부활하다니!
"말도 안 돼."
"무슨, 어떻게 이런 일이……."
내부적으로 엄청난 페널티로 인해서 공전절후의 능력을 발휘하던 그 본 드래곤은 아니었다.
안식의 동판의 효과가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위드의 레벨이나 죽음을 거부할 수 있는 힘의 스킬 수준으로 본 드래곤으로 부활해서 잘 싸우긴 힘들었다.
비행이 가능한 대형 몬스터에게는 굉장히 불리한 지하 던전이라는 점도 한몫을 했다.
하지만 그 무수한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눈으로 보이는 위압감이 있다.
위드가 본 드래곤으로 부활했다는 점에서 전율이 흘렀다.
방송국의 직원들조차도 정신이 멍할 정도로 부러운 기분이었는데 나중에 편집 과정을 거쳐서 더욱 보강된 화면을 감상하게 될 시청자들은 어떨까!
로열 로드를 하는 시청자들은 이 순간 감동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아, 부럽다."
"역시 위드잖아. 이런 모험을 할 사람은 그밖에 없어."
방송국 직원들도 의식이 영상에 빨려 들어갈 것 같은 재미와 흡입력을 느꼈다.
강 부장이나 연출부의 직원들은 평소에 화면을 보면서 추가해야 할 잠가이나 영상의 구성을 궁리한다.
"자막은… 안 넣어도 되겠어. 있는 그대로가 좋아."
어떤 자막을 넣어도 이 감동을 돋보이게 만들지 못할 것이다.
그저 경박해 보일 뿐.
그렇게 다들 넋을 빼고 지켜보는 가운데 드디어 본 드래곤, 실질적으로는 위드가 두 번째의 죽음을 맞이했다.
하지만 쿠비챠가 죽었으니 S급 난이도 퀘스트는 성공이었다.
얼마 후면 베르사 대륙의 주민들이 시끄럽게 떠들기 시작할 테고, 신전에 신탁이 내려와서 위드가 성공했다는 사실을 알릴 수도 있다.
강 부장을 비롯해서 KMC미디어의 직원들조차도 끝내 의심했던 S급 난이도의 퀘스트 성공!
위드가 죽고 나서 영상실에 영상이 뚝 끊어졌다.
화면도 나오지 않았고, 소리도 없었다.
하지만 모두 한동안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 벼락을 맞은 듯, 어느 순간부터 각자의 업무를 위해 고함을 치며 움직였다.
"특집 프로그램 제목을 바꿔. 위드의 성전! 아니, 아니야! 소제목부터 바꾸자. 명품 언데드, 괜찮잖아?"
"편성 시간을 늘려야 되니 후속 프로그램 진행자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홈페이지 방송 시간표 수정할게요."
"기업들로부터 연락이 쏟아지고 있는데요, 일단 덮어 놓고 광고 단가를 후려치겠습니다."
본 드래곤이 출현한 부분은 2분 56초!
불과 3분이 되지 않는 시간이지만 시청자들 사이에서, 그리고 각 게임 방송사들 사이에서 두고두고 회자될 것이다.
캡슐에서 나온 이현은 극심하게 밀려오는 상실감에 멍하니 자리에 앉았다.
"이제 24시간 접속을 할 수 없겠군."
산성 브레스를 쏘아 혼돈의 전사들을 몇 명 정도 잡긴 했다. 하지만 그의 레벨로는 브레스라고 하더라도 제대로 된 위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더구나 본 드래곤으로 재탄생했다고는 하지만 스킬 운용은 초급!
비행 스킬이나 드래곤 피어, 브레스가 모두 초급 4레벨, 6레벨, 3레벨 정도였다.
오랜 전투로 생명력이 많이 떨어져 있던 혼돈의 전사들이었기에 눈먼 브레스에도 죽었으리라.
"어쨌든 힘들었군."
이현은 청소를 하기 위해 일어섰다.
텔레비전을 틀면 그의 퀘스트에 대한 내용이 한창 나오고 있겠지만, 주로 시청하는 프로그램은 '베르사 대륙 이야기'처럼 뉴스 정도에 국한되었다.
전기값이 아깝다는 생각!
"대청소를 한 지 한참 되었으니 쓸고 닦아 봐야겠어."
이불 빨래, 냉장고 청소, 닭장 정비까지, 해야 할 일들을 척척 진행했다.
낙엽이 쌓이는 것을 보니 가을이 금세 지나가고 있었다.
"가을은 정말 빨리 스쳐 지나가지."
건조하고 황량한 바람에 이현의 감수성도 예민해지는 듯 했다.
"얼마 후면 김장이나 담가야겠어."
김장은 겨울이 오기 전에 해야 할 필수적인 작 업!
막 새로운 보신이의 집을 정비하고 있을 때였다.
딩동 딩동 딩동 딩동.
대문에서 누군가가 미친 듯이 벨을 눌렀다.
잡상인 출입 금지. 종교 믿지 않음. 벨이 고장이 날 듯 말 듯함.
눌러서 고장 낸 사람에게는 수리비를 물리겠음.
이런 경고장을 보고도 벨을 눌렀다면 분명히 용건이 있는 사람이리라.
이현이 나가서 대문을 열어 보니 전혀 예상치도 못하게 서윤이 있었다.
얼마나 다급하게 왔는지 이마에는 송골송골 땀이 맺혔다.
토리도와 교환한 닭과 토끼를 가져간 이후의 첫 방문이엇다.
"반가어, 이게 얼마 만이야? 어서 안으로 들어와."
이현은 절친한 친구처럼 반갑게 그녀를 집 안으로 맞이했다.
그러고는 냉녹차를 밥그릇에 따라 주었다.
"요즘 날씨가 쌀쌀해져서 따뜻한 녹차를 타 줘야 하는데 좀 더운 것 같아서 시원하게 탔어."
"……."
"꿀도 타 줄까?"
서윤은 녹차는 거들떠지 보지 않은 채로 측은한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오죽 상처가 컸으면… 나를 이렇게 반갑게 맞이해 줄까?'
서윤은 죽음을 맞이하자마자 캡슐을 나왔다.
예전에 KMC미디어에서의 퀘스트의 핵심 동료인 그녀에게도 출연에 대한 부분을 문의했었다.
물론 그녀가 직접 나서지는 않고 담당 변호사를 통해서 협의를 진행했다.
평소라면 출연을 허락할 이유가 없었지만, 이현의 퀘스트를 방송하기 위해서라니 좋은 방향으로 허락했다.
서윤이 나와야 하는 분량에서는 얼굴에 가면을 쓰도록 하고, 갑옷 위에도 나풀거리는 얇은 천을 씌우는 정도에서 타협을 봤다.
KCM미디어를 통해서 지골라스에서의 상황에 대해 알아보았다.
금인이의 죽음, 그리고 위드에 두 번에 걸친 사망.
서윤은 레벨과 스킬 숙련도의 하락, 그 이상으로 상심하고 있을 이현을 달래 주기 위해, 위로를 하기 위해서 온 것이었다.
이현은 너무도 반갑게 그녀를 대했다.
"녹차만 마시려니 심심하지? 이런, 내 정신 좀 봐. 과일이라도 좀 내올게."
보통 때의 이현과는 완전히 다른 행동이었다.
로열 로드에서 서윤은 쿠비챠와 싸우다가 목숨을 잃어버렸다.
그게 큰 도움이 되어서 쿠비챠를 사냥하고 퀘스트를 성공했다.
당연히 고마웠고, 그에 따른 분배를 해 줘야 하기에 머리가 초고속으로 회전했다.
'일단 잡아떼 보자.'
사과를 깎으면서 이현은 입술에 침을 듬뿍 발랐다.
거짓말을 하기 전에는 입술에 침을 발라 주는 최소한의 양심!
"아, 완전 거지였어, 거지. 어떻게 죽으면서 아이템 하나를 안 떨어뜨리냐."
능청스럽게 말하면서 사과 껍질을 한 줄로 깎았다.
방송에 나오게 되더라도 그가 어떤 아이템을 획득했는지는 알 수 없다.
쿠비챠가 죽었을 때의 상황은 위드의 입속만이 알고 있을 뿐.
'1개도 안 나왔다는 건 너무 심했나? 그래도 보스급이었는데……. 퀘스트와도 관련이 있는 몬스터였으니 나중에 의심을 할 거야.'
이현이 다시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다행이었지. 장비는 쓸 만한 게 안 나왔지만 루비5개, 아니 3개였던가? 아, 4개였지. 아무튼 그거라고 떨어뜨리고 죽었으니."
5개를 불렀다가 왠지 많다는 생각에 2개를 줄였다.
하지만 3개를 나누다 보면 1개만 줄 수는 없다.
결국 2개를 줄 바에야 의심을 덜 받을 4개로 확정했다.
"쿠비챠가 참 좋은 장비를 착용했던 거 같은데. 뭐, 솔직히 그런 장비를 떨어뜨렸다고 해도 누가 착용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지만."
혼자서 말을 잇고 있었지만 이현 본인도 답답했다.
어떤 아이템을 획득했는지는 접속해서 확인해 봐야만 알 수 있다.
'적당히 나누어 주려면 명확하게 가치 판정부터 해야 되는데.'
베르사 대륙의 시간으로 몇 달을 고난을 함께했다.
서윤의 공헌도가 모험에서 전체적으로 높은 부분을 차지했으니 공로를 깎아내리고 속이는 건 비겁한 짓이다.
결국은 상식적인 수준에서 공평하게 아이템을 나누어서 보상은 해 줘야 할 것이다.
하지만 나온 장비가 1개밖에 없다고 했다가 2개, 3개라고 한다면 훨씬 기분이 좋지 않겠는가!
'많이 아파하지는 않는구나. 다행이다.'
서윤은 녹차 밥그릇으로 입가를 가리고 살짝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이현의 썩은 미소와는 차원이 다른 자연스러운 웃음이었다.
프레야 여신상을 만들 때, 이현은 과연 서윤이 웃으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하는 상상을 했다.
그런데 지금 그의 눈앞에서 다정한 눈빛을 보내면서 웃는 그녀에게서 흘러나오는 매력은 항거할 수 없는 것!
이현도 그녀와 눈을 마주칠 수가 없었다.
쿠비챠의 아이템에 대해서 아무렇게나 떠들었던 거짓말 때문이 아니라 그녀의 표정이, 그리고 눈빛이 깊은 정을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상당히 어색한 분위기로군.'
이현은 화제를 돌리기 위해서 무슨 말이든 해야 했다.
"대청소를 하던 중인데… 같이할래?"
취미 생활도 아닌, 집 청소를 함께하자는 제안이었다.
그런데도 서윤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일어났다.
"마당부터 같이 쓸자. 낙엽이 많이 쌓였어."
마당에 가서 빗질을 하면서, 서윤은 보통 때의 그녀와는 다르게 장난도 쳤다.
낙엽을 모아서 이현의 영역으로 슬며시 밀어 넣은 것!
학교를 같이 다니면서 수업을 듣고 로열 로드에서 모험을 하며 쌓인 정 때문에 그녀가 장난도 칠 수 있었다.
목줄을 풀어 놓은 새로운 보신이가 냄새를 맡으며 마당을 돌아다니고, 닭장 청소를 위해 내놓은 닭들도 돌아다녔다.
벼슬을 꼿꼿하게 세운 채로 걸어 다니는 수탉 글고 뒤를 따르는 암탉과 병아리들.
청소를 하다 보니 물이 많이 튀었다는 걸 깨닫고, 이현은 퍼뜩 서윤이 입고 있는 옷이 신경 쓰였다.
'20만 원도 넘겠군.'
상당히 비싸 보이는 외투를 입고 있는 그녀였다.
"여긴 내가 치울 테니까 넌 설거지를 할래? 안 치운 설거짓거리가 있는 건 아니고, 집에 놔둔 그릇이랑 냄비들 좀 꺼내서 깨끗하게 씻어 줘."
서윤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집 안으로 들어갔다.
창문이 열려 있어서 그녀가 싱크대에 물을 트는 소리가 고스란히 들렸다.
남자는 닭장을 치우고 여자는 그릇을 닦으니 두 사람 모두 결혼을 한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청소에 큰 도움이 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저녁에 맛있는 거라도 해 줘야겠군.'
이현이 탕수육을 만들어 주려고 큰 결심을 하는 순간.
쨍그랑.
물이 흐르는 소리도 없이 한참이나 고요가 떠다녔다.
그리고 다시 설거지를 하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채 1분도 지나지 않았을 때 다시…….
와장창!
닭장 청소를 하는 이현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내, 내가 설거지할까?"
대답 없이 그릇 씻는 소리만 계속 들렸다.
서윤은 진지하게 노력해서 설거지를 했다. 그릇들을 옮기다가 실수를 하고 손이 미끄러지기도 했지만,
다행스럽게도 더는 깨뜨리는 그릇이 없었다.
그날 저녁에는 이현이 솜씨를 발휘한 탕수육을 먹으며 텔레비전 시청!
예능 프로그램과 드라마를 보고 나서 서윤이 가야 할 시간이었다.
이현은 급하게 신문지로 포장한 책을 선물로 주었다.
"살아감에 있어서 큰 감동을 주는 책이야."
이현의 평생에 여동생을 제외하고 여자에게 하는 선물로는 처음이었다.
"꼭 지골라스에서 얻은 아이템 때문은 아니고, 그냥 평소에 읽어 두면 좋을 것 같아서."
책의 제목은 ≪무소유≫ 였다.
베르사 대륙의 유저들은 신전과 드워프들, 엘프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불굴의 용사가 대륙의 평화를 위협할 수 있었던 큰 위협을 잠재웠다는 신탁이 내려왔습니다."
"젠장, 인간 주제에 대단하군."
"숲의 전사들은 다시 돌아가도 좋습니다."
원정대를 구성하기 위해 모였던 전사들이 해산했다.
KMC미디어의 시청률은 많은 사람들이 잠든 새벽에 신기록을 달성했고, 위드의 모험에 경의를 표시하며 음유시인들이 노래를 작곡했다.
오오, 우리의 영웅
기억에 잊힌 땅에서 남들이 모르는 모험을 하지
그의 발걸으은 모험가들의 이정표가 되고
조각품들은 대륙의 곳곳에 남아
길을 잃어버린 이들의 용기를 북돋아 주네
위드에 대한 칭송이 극에 달했을 때, 지골라스에 있는 드린펠트에게 지원부대가 도착했다.
성직자와 마법사, 기사, 어쌔신, 도둑 등으로 이루어진 헤르메스 길드의 정예들이었다.
수행원으로 따라온 기사가 말했다.
"이분들이라면 위드를 죽이기에 모자람이 없을 거라는 라페이 님의 전언이 있었습니다."
드린펠트도 자신 있게 답했다.
"마법사 르포이 님도 오셨으니 여기에 위드의 무덤을 만들어 주기에 충분할 겁니다."
"헤르메스 길드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이니 완벽하게 처리를 해 주시지요."
상대가 네크로맨서라서 골치가 아프기는 하지만, 천적인 성직자들을 모았으니 언데드들을 정화할 수 있을 것이다.
KMC미디어의 방송을 통해 본 드래곤으로 변신하는 것까지 봤으니 경계심도 훨씬 심해졌다.
"헤르메스 길드의 명예를 걸고 놈을 죽여야 됩니다."
"마법사도 있고 성직자도 그리고 기사들도……. 반드시 놈을 척살할 것입니다."
위드가 다시 접속하니 인페르노 던전의 종족 전쟁이 벌어졌던 그 공동이었다.
격한 전투가 벌어졌던 장소에는 암석들이 녹아서 기묘한 모양이 되었고, 시체들이 널려 있었다.
"으흠."
위드는 두 번의 죽음으로 인해 수정 해골 리치가 아닌 인간의 모습이었다.
"잃어버린 레벨이나 스킬 숙련도부터 확인을 할까, 아니면 쿠비챠의 아이템부터 봐야 될까."
획득한 아이템이 도망을 갈 리도 없으니 먼저 레벨과 스킬부터 확인했다.
"스탯 창, 스킬 정보 창!"
레벨은 2개나 떨어져서 383이었고, 조각술의 숙련도는 25%나 감소했다. 손재주나 재봉, 대장일, 조각 검술 등의 스킬도 10%에서 17%까지 떨어져 있었다.
엄청난 노가다 끝에 올렸던 스킬들의 감소로 인해 슬픔과 분노가 치밀어 오르려고 할때, 아이템들을 꺼냈다.
묵직한 혼돈의 대전사 부츠, 판금 갑옷 세트, 지도, 붉은빛이 도는 검신의 레드스타!
위드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감정!"
먼저 가볍게 방어구부터 살펴보기로 했다.
쿠비챠의 부츠 : 내구력 37/105. 방어력 68.
혼돈의 대전사 쿠비챠의 부츠이다.
특수한 권능이 깃들어 있으며 전사들에게 복종을 강요한다.
제한 : 레벨 500, 힘 800.
혼돈의 전사, 바바리안 전용.
옵션 : 블링크 마법 사용 가능.
생명력 +8,000.
지면으로부터 올라오는 열기 차단.
전사들에게 절대 복종 강요.
부하들의 레벨과 규모에 따라서 일시적으로 통솔력 증가.
판금 갑옷 세트는 280이 넘는 방어력을 가졌지만 레벨 제한이 550이나 됐다.
"이런 방어구를 착용하고 있었으니 그렇게 안 죽었지."
지골라스의 지하 지도에는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뚫려 있는 길들이 그려져 있었다.
지하의 길들을 따라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던전에도 들어갈 수 있다.
지골라스의 던전들은 특수한 구조로 되어 있어서 입구가 아니라 지하의 중간에도 통하는 길들이
만들어져 있었던 것이다.
"지도는 여러모로 쓸모가 많겠군."
그리고 마침내 대망의 드래곤의 검을 확인할 순간이다.
위드도 심장도 이때만큼은 오래된 경운기처럼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뛰었다.
"가... 감정!"
레드 스타 : 내구력 192/210. 공격력 190~215.
드래곤 젠페스트가 만든 검.
자신의 뼈의 일부를 떼어 내어 검으로 만들었다.
레드 드래곤의 힘이 일부 깃들어 있으며, 마법에 대한 저항력이 탁원하다.
도난당한 검으로, 드래곤이 찾고 있을 것이다.
제한 : 레벨 570이상.
불에 대한 저항력 100%.
불을 다스리는 능력을 반드시 가지고 있어야 함.
옵션 : 매우 가벼움.
스킬 사용 시의 체력 소모를 감소시킴.
민첨 +10%
내구도가 거의 줄어들지 않음.
방어구를 관통하여 공격.
상대의 전투 능력을 감소시키는 부상을 입힐 확률 250% 증가.
마법 보호를 뚫을 수 있음.
불의 힘을 100% 증폭시킬 수 있다.
불의 힘을 흡수해서 불 속성의 종족들은 힘을 늘릴 수 있다.
마법 저항력 +30%
중급 이하의 몬스터들을 강하게 위축시킴.
검을 이용한 공격 스킬들의 위력 향상.
모든 상태 이상 해제.
특수 스킬 '레드 스타' 사용 가능.
검을 꺼내서 전투를 할 때마다 0.01의 확률로 드래곤이 찾아올 수 있다.
스킬 레드 스타 : 확인되지 않음.
감정 어려움.
화염 계열 마법과 관련이 깊을 것으로 추청.
슬로어의 결혼반지(남성용) : 내구도 40/40.
희망과 영원한 젊음, 애정을 상징하는 에메랄드 반지다. 드워프 장인 세공사가 심혈을
기울여서 만들었다.
슬로어가 사랑하는 여인과 결혼하기 위해서 구한 반지로, 큰 염원이 담겨 잇다.
여성용과 한 세트.
제한 : 결혼을 하지 않은 젊은 남자.
이성이 끼워 줘야 함.
옵션 : 마나의 집중도 증가로 공격 스킬과 마법의 위력을 27% 강화.
마법 주문을 외우는 속도를 단축시킴.
마나 회복 속도 35% 증가.
명성 +1,200.
기품, 교양, 지식, 지혜 +40.
매력 +150.
보호 마법 '쉴드'가 내장되어 있음.
위드는 기쁨과 슬픔이 교차했다.
"기대하지도 않았던 슬로어의 결혼반지 세트. 그리고 과연 드래곤의 검이군."
레드 스타의 공격력이나 여러 옵션들은 좋았다. 레벨 제한 이야 높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바로 팔아 치울 수 있는 물건은 아니었는데, 까다롭게 불에 대한 저항력이 착용 제한으로 걸렸다.
게다가 제값을 가장 받기 어렵다는 장물, 도난품!
"이걸 누구에게 팔아야 할지."
위드가 매우 애석하게 생각하며 주위를 둘러보니 바닥에 아이템들이 흩어져 있었다.
두 번의 죽음으로 떨어뜨린 아이템들, 재봉 도구와 탈로크의 갑옷, 조각품 몇 개.
위드의 악명이 많이 쌓였던 데다 살인자의 상태라서 평소보다 아이템을 많이 떻어뜨린 것이다.
언데드들이 싸워서 얻은 아이템들도 수거하고 있을 때에 서윤이 접속을 하고, 황금새와 은새, 누렁이도 다가왔다.
"무사히 피했었구나."
위드는 누렁이의 등을 자상하게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자 진심으로 감동해서 머리를 비비고 혀로 얼굴을 핥는 등 여간 해서는 하지 않았던 애교도 부리는 누렁이였다.
'주인님, 고맙습니다. 저를 이렇게 아껴 주시는 줄 몰랐습니다. 죄송합니다.'
'이런 곳에서 죽으면 안되지. 네 몸값이 얼마인데...... .'
위드의 속마음은 꿈에도 모르는 채, 겉으로 보기에는 감동적인 장면들을 연출하고 있는 둘.
은새가 파닥거리고 날갯짓을 하더니 위드의 어깨에 내려 않았다.
호감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몸짓이었다.
은새는 조각 생명체 중에서는 유일하게 새침하고 잘 토라지는 여자아이 같은 성격을 가졌다.
이번 전추로 위드가 마음에 든 것이다.
"그럼 쿠비챠의 아이템을 분배해 줘야 되는데, 부츠와 판금 갑옷 세트는 우리가 입을 수 없는 거니까 나중에 팔아서 나누기로 하자. 괜찮겠어?"
서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들 수 잇는 아이템은 이미 훨씬 전에 초과했기에 마을이나 성에 돌아가서 나눠받기로 했다.
"그리고 이건 일단 받아."
위드는 슬로어의 반지 중에서 남성용을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여성용은 자신이 들고 잇는 채였다.
"같이 서로에게 끼워 주는 거야."
"......?"
위드는 착용 제한 때문에 그런 제안을 한 거지만, 반지라하니 얼굴이 사과처럼 붉게 달아오르는 서윤이었다.
여자에게 반지의 의미란 결코 작지 않다. 그것도 결혼용 반지라니!
띠링!
-슬로어의 결혼반지 세트를 착용하기 위해서는 그의 염원을 해결해 주어야 합니다.
만약 염원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착용한다면 반지의 효과가 역으로 작용하게 될 것입니다.
슬로어의 염원, 둘만의 결혼식을 진행하시겠습니까?
결혼을 하지 않은 남자와 여자가, 슬로어와 그의 약혼녀였던 레티아 이벨린이 되어서 그들의 한을 풀어 주는 것입니다.
위드에게는 당연히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유니크급 아이템. 사냥에는 필수적인 마나 회복 속도만 놓고 본다면 최고의 반지였다.
그들이 잠시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지골라스의 인페르노 던전에 있던 둘 그리고
조각 생명체들을 둘러싼 환경이 밝고 웅장한 성으로 변화되었다.
-니플하임 제구그이 이벨린 성에 도착하셨습니다.
이곳은 슬로어가 만든 꿈, '마법의 환영' 속의 세계입니다.
단, 획득한 아이템들은 그대로 소유하실 수 있습니다.
위드와 서윤에게 집사와 하녀들이 다가왓다
"어머, 이렇게 늦게 일어나시면 어떻게 해요. 오늘이 결혼식인데 빨리 준비하셔야죠.
재단사가 보내온 옷이 도착했으니 어서 오세요, 슬로어 님."
위드의 외모는 평범하기 짝이 없는 그대로였지만, 하녀들은 그를 슬로어라고 불렀다.
위드는 하녀들에게 끌려가듯이 움직였다.
서윤도 하녀들에게 이끌려서 다른 방으로 이동했다.
"어쩌면 이렇게 피부가 고우실까."
"레티아 님처럼 아름다운 분은 처음 봐요. 슬로어 님은 정말 최고의 행운아인 것 같아요."
복도를 걸으면서 하녀들이 서윤에게 하는 말들이 들렸다.
위드에게도 하녀들이 말했다.
"피부 관리는 하시는거예요?"
"앗, 눈곱이 그대로 끼어 잇어요. 어서 세수부터 하러 가요."
멍하니 복도에 남아 있던 누렁이와 황금새, 은새. 하지만 곧 목장 관리자와 정원
관리인 등이 나타나서 그들을 데리고 어딘가로 바비 걸음을 옮겼다.
위드는 욕조에 뜨거운 물을 받아서 목욕을 하고 머리도 감았다.
로열 로드에서는 오랜만에 씻는 것이라서 개운한 기분이 들었다.
-피로 회복 속도가 빨라집니다.
씻은 후에 식사를 하시면 체력의 최대치보다 20% 높은 수준까지 회복할 수 있습니다.
편안하게 쉰 것은 목욕을 하는 30분간만이었다.
재단사들이 와서 움직이기 불편한 정장을 입혔다.
감정 스킬을 활용해서 확인해 보니 니플하임 제국 시대의 귀족 결혼 복장으로, 기품과 매력, 이성에 대한 호감을 상당히 올려 주는 아이템이었다.
-고위 귀족들의 결혼복에 대한 제작 방법을 입수하셨습니다.
재봉 스킬을 가지고 있는 위드에게는 새로운 복장에 대한 제작법을 배울 수 있게 해 준 좋은 기회였다.
하지만 쓸모는 거의 없을 것 같았다.
방어력이 거의 전무했고, 내구도가 낮아서 조금만 닳아도 매력 등의 특수 효과가 줄어들어 버린다.
설상가상으로 구겨지기만 해도 기품이나 매력을 오히려 떨어뜨리는 효과까지 있었으니!
'만들면 옷감겂도 건지기 어렵겠군.'
옷을 입은 이후에는 하녀들이 머리를 다듬어 주었다.
광택이 흐르는 이상한 약품을 머리카락에 바르고, 전혀 해본 적이 없는 방식으로 빗질을 하며 헤어스타일을 바꾼다.
'머리는 샴푸로 감고 그저 수건으로 탈탈 털어서 말리면 되는데.'
자연주의를 실천하면서 살았던 위드에게는 매우 생소하 경험이었다.
이마가 훤히 보이게 머리를 넘기더니, 삼 대 칠의 비율로 가르마를 탔다.
위드는 거울을 보다가 어색하고 민망해서 말했다.
"그냥 머리를 평범하게 내리면 안 될까요?"
"어머, 슬로어 님이 평소 좋아하시던 스타일로 했는데요?"
"...... ."
하녀들의 대답에 뭐라고 대꾸할 수도 없었다.
'결혼식만 끝나면 다시 머리카락을 내리면 되니까. 이 정도야 참으면 되지.'
살아생전 해 본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할 일이 없을 줄 알았던 화장도 했다.
하녀가 거울에 비친 위드의 모습을 보다가 말했다.
"많이 멋있어지신 것 같아요."
눈살을 찌푸리며 겨우겨우 말하는 모양새가, 억지로 하는 말임을 누구나 알 수 있을 것 같앗다.
그리고 성에 잔잔한 음악이 흐르기 시작했다.
"결혼식이 시작되나 봐요, 슬로어 님."
"그럼 어서 가야겠군."
위드는 빨리 끝마치고 싶을 뿐이었다.
남자들이라면 누구나 다 이해할 수 있는 감정. 외모를 가꾸는 것만으로도 여자를 따라서 백화점을 다섯 바퀴 정도는 돈 것 같은 피로를 느꼈다.
"하객들과 인사를 나누셔야죠. 그리고 주례를 해 주실 분도 먼저 찾아뵈어야 되고요."
"그냥 빨리 결혼식을 하면 안 되나?"
"레티아 님은 준비할 시간이 많이 필요하세요. 결혼식장에서 보실 신부가 예뻐야 되잖앙요."
화장을 하거나 꾸미지 않더라도 예쁠 서윤이었지만 일정이 그렇다니 할 수 없다.
위드는 결혼식이 거행될 푸른 샘의 홀 앞에서 하객들을 쳐다보지도 않고 서 있었다.
'어차피 내 결혼식도 아니고... 인사는 무슨 인사야.'
"슬로어, 자네가 이번에 개발한 마법 주문 시간 단축에 대한 이론은 아주 좋았어. 올해 마탑에서 내리는 학자의 상을 수상하기로 충분한 자격을 갖췄더군."
-마법 재료, 푸른 도마뱀의 꼬리를 습득하셨습니다.
위드는 급히 옷매무새를 추스르고 악수를 청했다.
"제 결혼식에 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베이런 백작 가문의 후계자가 벌써 커서 성혼을 하게 되다니, 세월 참 빠르군."
-니플하임 제국의 금화 800개를 획득하셨습니다.
마법사들과 귀족들이 하객으로 왔다.
그들로부터 축의금과 선물들이 쏟아졌기에 위드는 정중하고 반갑게 맞이했다.
주례는 축복과 영광의 교단, 스피렌의 주교가 맡았다.
"오늘 젊고 유망한 마법사이며 귀족인 슬로어 베이런과, 니플하임 제국의 명품 이벨린가 레티아 양의 결혼식을 거행하게 되었습니다."
학단의 장중한 연주와 함께 결혼식이 개시되었다.
첫 곡이 끝나고 나자, 사회자인 귀족 남자가 하객을들 소개했다.
그 후에는 인생을 기쁨과 슬픔을 표현하는 듯한 교향곡이 연주되었다.
위드는 결혼을 하는 데 이토록 많은 과정이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냉수 한그릇 후딱 떠 놓고 마치고 싶었지만, 시종들은 만찬을 가져와서 하객들의 자리에 배치했다.
'삼다수에 녹차 티백 하나 우려내 주면 정말 부족함이 없는 결혼식일 텐네... 준비 과정이 길기만 하구나.'
하객으로는 누렁이와 황금새, 은새도 앉아 있었다.
누렁이에게는 신선한 야채가, 황금새와 은새에게는 조미료 없이 간단히 요리한 장어 그리고 뱀 요리가 나왔다.
"신랑 슬로어 베이런 백작이 입장하겠습니다."
사회자의 말이 떨어지자, 위드가 씩씩하게 걸어서 식장으로 들어갔다.
'많이 벌었어.'
결혼식을 치르고 나서 반지까지 착용하게 되면 완벽한 대박이다.
위드가 가지고 있는 여성용 반지를 서윤에게 끼워 주고 남성용 반지를 받기만 하면 되니 식은 죽을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기였다.
위드는 주례와 하객들에게 인사를 하고 가만히 섰다.
"그러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신부의 입장이 있겠습니다."
악단이 맑은 멜로디의 음악을 연주햇다. 그리고 천천히 들어오는, 순백의 웨딩드레스를 입고 있는 서윤.
축제 때에도 입은 적이 있지만 그때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자태.
세상의 아름다움이 모이고 모여서 빚어낸 것 같은 서윤이 걸어오고 있었다.
위드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때도 내가 면사포를 벗겨 주었지.'
인연이라고 한다면 상당히 큰 인연이었다.
'그러고 보니 우린 많은 곳에서 함께했어.'
초보 시절에 로자임 왕국의 교관 통나무집에서 우연히 만났다.
그리고 오크 카리취로 변신했을 때 절망의 평원에서도 함께했다.
북부에서 엘프의 씨앗을 심고 본 드래곤을 잡는 모험을 할 때에도 서윤이 같이 있었다.
지골라스에서도, 그녀는 목숨까지 버려 가면서 함께 싸웠다.
위드가 어려운 일을 할 때에는 언제나 그녀가 근처에 있었다.
지금까지 만들었던 수많은 조각품들의 매력도 그녀를 조각하면서 일깨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지고 보면 최초의 대작 조각품도 그녀의 조각품이 아니었던가.
심지어 달빛조각술을 터득할 때도 그녀가 같이 있었다.
드레스를 입고 걸어오는 서윤을 보며 위드는 억지로 다른 생각을 떠올렷다.
서윤과 여러 인연으로 엮여 있다고 해도, 그것은 인정하기가 두려웠다.
그녀에게 어울리는 남자는 다른 곳에 있을 것 같았다.
위드 자신이 아니라 말이다.
'할머니가 말씀하셨어. 여자는 외모가 전부는 아니라고 말이야.'
서윤이 다가오는 동안 많은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의 말에 따라 냉정하게 서윤을 평가해 보기로 했다.
- 여자가 예쁘면 3년이 행복하고, 요리를 잘하면 30년이 행복하며, 똑똑하면 3대가 행복하다.
'서윤처럼 예쁜 여자는 없으니 조금 가산점을 주기는 해야 될 거야. 6년 정도는 행복할까?'
남자 친구나 남편이 되더라도 서윤의 외모를 무시하기란 쉽지 않으리라.
침에 일어나서 옆에 누워 있는 서윤을 보면서 이곳이 천국인가 하는 착각을 하게 될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그런 빛나는 외모도 6년이면 사그라질 것이다. 자신할 수는 없겠지만 아마도.
'6년이 지나도 여전히 20대일 텐데 왠지 갈수록 예뻐질 것 같은 느낌이......
어쨌든 여자가 요리를 잘해야 30년이 행복해.'
서윤의 도시락을 먹어 본 바로는 재료들의 맛을 잘 살리고 조미료도 적게 쓰는 편이었다.
위드보다는 요리를 못했지만 상당히 뛰어난 솜씨다.
'요리로도 30년은 행복하겠군.
위드도 아내를 위하여 요리를 해 줄 것이었으니, 새로운 요리법들도 개발하며 알콩달콩 행복하게 지낼 수 있으리라.
서윤의 성적은 한국 대학교에 무리 없이 입학할 수준이엇고, 강의를 함께 들으면서 보니 노트 필기도 잘했다.
쪽지 시험을 치를 때에도 모르는 게 없었으며, 살짝 훔쳐본 가방 안에는 외국의 논문들이나 전문적인 서적들도 가지고 다녔다.
쉬는 시간에는 책도 많이 읽었다.
'머리도 좋은 편이군.'
할머니의 평가 기준을 들이대더라도 서윤을 낮출 수가 없었다.
'분명히 단점이 있을 거야. 잘 숨겨서 드러나지 않을 뿐이지, 단점이 없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어.
잠을 자면서 이빨을 간다거나... 이건 이니군. 엠티에서도 얌전하게 자는 편이던데.'
순간 위드의 머리속에 번뜩이는 기억이 있었다.
'자면서 가끔 옆으로 뒤척였지. 심각하게 나쁜 잠버릇이야. 밥을 먹을 때 물도 많이 마시고,
젓가락질을 할 때 반찬을 2개씩 집어 먹은 적도 있지.'
위드는 어떻게든 서윤에게 트집을 잡으려고 궁리했다.
그녀의 단점을 지적해야 하는 건 거의 습관이 되었다.
서윤과 사냥을 함께했던 오래전부터 그녀가 나쁘다고, 못된 사람이라고 오해를 해야만 마음이 편했던 것이다.
서윤과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손을 잡고 팔짱을 끼었다.
박수 소리와 함께 주례사가 시작되었다.
"명예로운 결혼식을 주관하게 되어서...... .
신랑 슬로어는 헤롯 성에서 태어나서 마나에 대해 일찍 깨달았으며, 스승 몬타의 제자로 들어간 이후...... .
신부 레티아는 명문 이벨린백작가에서 태어나 취미로는 꽃과 나무를 잘 가꾸고...... .
이 결혼식이 니플하임 제국에 미치는 의미로는...... .
선남선녀의 결혼식으로...... ."
위드는 졸려서 하품이 나오는 것을 참으면서 대충 흘려들었다.
따로 시험이 볼 것도 아닌데 주례사의 내용을 외울 필요는 없는 것이다.
짧을수록 좋다는 주례사였지만, 성 앞에 무슨 꽃이 피었고 나비들이 날아든다는 자연에 대한 찬미까지 하면서 상당히 길어졌다.
'축복과 영광이라더니, 온갖 이야기를 다 하는군.'
위드는 가까스로 참고 견뎠다.
그리고 주례사의 마지막 부분에 이르렀다.
둘만의 서약, 결혼식의 하이라이트라고도 할 수 있는 의식이었다.
"신랑은 신부를 자신의 반려자로 맞이해서 평생 존중하고 행복하게, 그 어떤 고난과 어려움.
힘겨운 시험이 있더라돋 함께 이겨 낼 수 있을 정도로 사랑합니까?"
결혼식을 망치지 않기 위해서는 당연히 예라고 대답하고 반지를 끼워 주어야 했다.
"예."
위드는 서윤의 손을 잡고 들어 올렷다.
광전사로서 수많은 전투를 치른 그녀의 손이지만, 섬섬옥수라는 표현이 무색할 정도로 예뻤다.
손톱마저 예쁜 서윤의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 주었다.
스피렌의 주교가 이번에는 서윤을 향해 물었다.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함께할 수 있을 만큼 그를 사랑합니까?"
머리를 빗고, 화장을 하고, 웨딩 드레스를 입으면서 서윤도 많은 생각을 했다.
위드와의 첫 만남에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들을 함께 보냈다. 누렁이와 금인이를 비롯한 조각 생명체들이나, 그가 기르던 동물들과도 친해졌다.
타인을 경계하고 무서워했지만, 위드에게만은 그러지 않게 되었다.
그녀를 걱정해 주는 차은희도 말했었다.
"산다는 게 어떤 건 줄 아니?"
"...... ."
서윤은 말을 하는 게 한없이 무섭고 두려울 때라서 가만히 있었다.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자신의 감정들을 나눌 수가 없었다.
"인생에 대한 뜬구름 잡는 이야기는 하지 않을게. 10대에는 공부를 하고 학원을 다니느라. 매일 정신없이 바쁘지. 성적이라도 몇 점 떨어지면 부모님에게 어떻게 말해야 하니 걱정이야."
입시 지옥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니었다.
"대학에 들어가 해방감을 느끼는 것도 잠깐이지. 2학년만 되어도 취직 준비를 해야 돼. 직장에 들어가려면 경쟁이 치열하니까."
취업 전쟁도 매년 갈수록 거세어진다.
일찍부터 준비하지 않으면 좋은 직장을 잡기가 어려웠다.
"사회에 나가서 일하고 적응하다 보면 금방 20대 후반이야. 선이니 남자니 하면서 명절마다 집에서는 왜 빨리 결혼하지 않느냐고 성화지."
하루하루 젊음이 사라지는 것을 몸으로 느끼면서, 나이 먹는 것에 대해 민감해질 시기다.
"그렇게 우리 인생이란 건 정말 빠르게 지나가 버려, 서윤아. 하지만 말이야."
차은희는 예쁘게 활짝 웃었다.
"평범함에 행복이 있단다. 남들처럼 그렇게 살면서 공부하며 친구들을 사귀고, 이 친구들이 평생 함께 걷는 동반자가 되어 주는 거야. 대학에서는 부족한 시간에도 동아리 활동도 하고, 취미 생활을 만들 수도 있어."
"...... ."
"회사를 다니면서 억울하고, 짜증 나고, 화나고, 당장 사표 쓰고 싶은 날도 있겠지만, 성취감과 자기 개발도 할 수 잇겠지? 더 나이를 먹더 보면 결혼도 하고, 그 후에는 아이도 낳고 기르는 30대, 40대의 삶도 나쁘지 않을 거야."
"...... ."
"어른이 된다는 건 그 나이들을 지나오면서 많은 행복들을 누린다는 거니까.
그런데 내가 걱정하는 건, 네가 그 기회들을 놓치고 있다는 거야."
표정에는 언제나 변함이 없었지만, 서윤은 차윤희의 말을 귀담아들었다.
"넌 평범하게 살지는 않고 있잖아. 그렇게 친구들도 사귀지 않고 너의 세계에서만 산다면...... . 그 많은 행복들을 만들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단다. 그건 너무 아쉬운 거야. 나중에 때가 오면 꼭 용기를 내야해. 그러지 않으면 네가 정말 좋아하고 또 널 행복하게 만드는 것들이 떠나 버릴 수도 있어."
서윤은 차은희가 했던 말들을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가슴으로는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런데 위드와 같이 있으면서 그때의 말들이 많이 떠올리게 되었다.
당시에는 궁핍한 마을이던 모리타의 축제에서, 위드와 같이 있으면 마음이 편안하고 행복한 것을 느꼈다.
연료를 태우는 난로가 아니라, 가볍게 잡은 손에서 전해지는 온기처럼 따뜻했다.
위드가 해 준 음식을 먹고 모험을 하고 조각품을 보면서 서윤은 멀리 떨어 관찰자가 아니라 함께하는 동반자이고 싶었다.
마음이 얼어 있던 그녀지만, 그 따뜻함이 참 좋다고 말하고 싶었다.
준비되지 않은 갑자기라서 더 어려운 일이고 실수를 할 수도 있지만, 필요한 때에 용기를 냈다.
서윤은 한없는 설렘과 긴장감을 안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네, 좋아합니다."
-End-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