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생명 부여의 기적
위드는 지하 던전으로 다시 돌아와서 조각품을 깎으며 시간을 보냈다.
그냥 언데드들만 데리고는 지금의 난관을 극복하기 어려웠다.
"조각술을 써야 돼. 조각술의 힘으로 위기를 벗어날 수 있을 거야."
자연 조각술을 익힌 후부터 조각 재료들이 다르게 보였다.
표면의 재질뿐만이 아니라 내부에 담고 있는 마나들까지 저마다의 형태를 띠고 보였던 것이다.
재료에 담겨 있는 마나를 손상시키지 않고 조각품을 만들어야 되기 때문에 조각술의 어려움이 대폭 올랐다.
단단한 광석이라고 하더라도, 두들기고 깍을 때에는 충격이 내부까지 전달됐다.
'정확하고 매끄럽게.'
예술적 가치에는 영향을 주지 않았지만, 완성된 조각품의 내구력 등은 훨씬 올라 있었다.
-예술 활동으로 인해 악명이 2 감소합니다.
조각사의 또 다른 장점!
조각품을 만들면 명성이 잘 오르고, 악명은 잘 떨어졌다.
위드가 만족스럽게 웃었다.
"역시 조각사는 조각품으로 말하는 거지."
노가다로 작품을 찍어 내면서 드는 생각.
"명성이 너무 높아서 어려운 난이도를 가진 퀘스트를 해도 악명이 잘 떨어지고, 조각품을 만들어도 악명이 잘 떨어지는군.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정말 엄청 나쁜 짓을 저질러도 되겠군."
개과천선보다는 더 큰 나쁜 짓의 기회를 엿보는 위드였다.
광부가 되어서 땅을 팔 때에도 상당한 양의 악명이 감소되었다.
"악명을 빨리 떨어뜨리기 위해서는 천사나 어린아이 들을 만들어야지.
사실 데이크람도 어쩌먼 못된 짓을 저지르고 천사를 만들었을지도 몰라."
조각술 마스터까지 비슷한 부류로 만들어 버리는 위드!
방긋방긋 웃는 해맑은 어린아이들을 조각했다.
100명이 넘게 조각된 해맑은 여자아이들은 커다란 곰 인형 정도의 크기였다.
"역시 악명이 잘 떨어지는군!"
서윤이 접속해 있지 않을 때에는 누렁이와 황금새, 은새가 조각을 하는 것을 구경했다.
그들은 조각 생명체였기 때문에 조각술을 펼치는 것만 보더라도 경험치가 조금씩은 쌓였다.
황금새, 은새, 누렁이가 차례로 말했다.
"주인이 꽤 오랫동안 조각품을 만드는군. 저렇게 즐거워하는 표정은 나를 때릴 때와 아이템을 주울 때 말고는 본 적이 없어."
"악취 나는 리치라고 꺼렸지만 조각술 실력은 탄탄한 것 같아. 조각사는 조각술 실력이 높은 게 우선이지."
"우리 주인이 실력은 있지. 은근히 인간성도 좋은 편이야."
"누렁아, 난 잘 모르겠는데. 정말 인간성이 좋아? 나중에 더 지켜보면 좋은 사람이란 걸 아는 날이 올까?"
"내가 살아 본바로는 때리고, 잡아먹으려고 하고, 몬스터들에게 몰아넣고, 구박을 하긴 하지만,
주인의 말에 따르면 자기처럼 좋은 주인 만난 걸 행운으로 알라고 했어."
"그게 아니야, 누렁아. 우리는 속고 있는 거야."
조각 생명체들이 이처럼 안타까운 현실에 대한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에, 여자아이의 조각상들이 누렁이를 보고 입맛을 다셨다.
그 광경은 너무 짧게 지나가서 아무도 보질 못했지만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위드의 죽은 자의 힘이 스스로 성장하면서 조각품에도 나쁜 영향을 미친 것.
위드는 간단히 만들어 놓은 수많은 조각품들을 일일이 감정하지는 않았다.
그럭저럭 괜찮게 된 작품만 가끔 살펴보는 정도였다.
==================================================================
기쁘게 웃음 짓는 아이의 조각상
말썽쟁이라고는 절대 부리지 않을 것처럼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는 여자
아이의 조각품
유명한 조각사이며 모험가인 위드의 손에 의해 만들어졌다.
특별한 능력은 없지만, 선물용으로 좋을 것 같다.
예술적 가치: 6
옵션: 매력 +2.
==================================================================
하지만 조각품이 제멋대로 살짝 움직이거나 표정이 이상해지는 순간에는 설명이 달라졌다.
==================================================================
마성에 물든 아이의 조각상
음산한 웃음을 짓은 여자아이와 조각품.
나쁜 소문이 끊이지 않는 부패한 조각사의 손에 의해서 만들어졌다.
소유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안 좋은 일들이 계속 생길 것 같다.
악마적 가치: 15
옵션: 탈옥수, 지명수배자, 밀무역꾼, 악인 들에게 모든 스탯 +2
행운 -10
아주 낮은 확률로 위험한 재난이 벌어질 수 있다.
==================================================================
조각품을 만들면서 악명을 떨어뜨려서 위드의 이마에 새겨저 있던 붉은색 이름이 완전히 사라졌다.
"드디어 됐군."
악명이 완전히 없어진 건 아니었지만 살인자 상태는 벗어나게 된 것.
살인자 상태에서는 껄끄러운 점들이 많다.
모라타야 솔직히 치안이 엄격한 편은 아니다.
하지만 다른 신성 도시나 왕국의 수도, 행정청을 방문할 때에는 입구에서부터 경비병들에게 저지당하게 되리라.
귀족이나 국왕을 만날 수 없는 것은 물론이었다.
명성이 아무리 높다고 해도 믿을 수 없는 자에게는 의뢰도 잘 맡기지 않았다.
"이제 좀 더 폭넓게 조각술을 펼칠 수 있겠어."
지골라스를 빠져나가기 위해 세워 놓은 계획에서도 살인자 상태를 벗어나는 건 필요했다.
이제야 그 준비가 갖춰진 것이다.
"떠 내려보냈던 유리병들이 무사히 잘 도착했을지 모르겠군."
서윤이나 누렁이나, 좁은 곳에 숨어 있으면서 잘 버텼다.
서윤은 조각품을 만드는 걸 구경했고, 누렁이는 어떻게든 살 수만 있다면 참을 수 있었다.
악착같은 생존 욕구!
던전의 깊숙한 곳에 숨어서 식량을 아껴 먹으며 조각품을 만드니 난민이나 다를 바 없는 모양새였다.
위드는 조각품을 만들고, 때때로는 재봉 스킬을 활용해서 준비물들을 제작했다.
"옷은 스무 벌이면 되겠지. 하급 천을 쓰더라도 옷감이... 아니야.
완전히 하급 천과 가죽은 쓸 필요는 없어. 나중에 회수해서 팔면 되니까.
하지만 내가 입을 해적 복장은 그만한 옵션들을 맞추기가 어려우니 비슷하게 하는 게 중요하겠군."
위드에게는 니폴하임 제국의 기사복이나 귀족들의 복장, 재봉 스킬들을 익힐 때 주문받았던 맞춤옷들에 대한 재단법이 있었다.
그런 옷들을 바탕으로 조금씩 수정을 가해서 해적들의 정복을 만들었다.
"해적이면 해적답게 대충 넝마나 걸치고 다닐 것이지, 뭐하러 잘 차려입는지 모르겠어."
위드의 재봉 스킬이 워낙 높은 경지에 있었기에 해적들의 옷도 재법 근사하게 만들어졌다.
돈과 스킬, 레벨 등은 배신을 하지 않는 것.
위드는 악명을 더 낮추기 위한 조각과 재봉을 하면서도 틈틈이 하루에 한 번씩은 까마귀로 변신해서 바다까지 나가 봤다.
그리고 악명이 거의 미미하게 남은 날, 바다 저편 가득 유령선들이 보였다.
"왔구나. 그럼 계획을 실행해야겠군."
유리병의 쪽지를 본다면 올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바다에서 빈둥빈둥 돌아다니는 게 유령선의 일과인데 안 올리가 없는 것이다.
설혹 오지 않는다면 보다 어렵고 힘든 계획을 진행해야 할 테지만, 유령선들이 보이니 일은 훨씬 쉬워졌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얼지 않는 강까지 유령선들을 진입시키는 건 안 될 일이다.
유령선들의 숫자가 제법 많다고는 해도 폭이 좁은 강의 한쪽에서는 하벤 왕국의 제 2함대와 해적 연합의 먹잇감이 되어 버릴 뿐이다.
@
위드가 서윤과 조각 생명체를 데리고 지골라스를 탈출하기로 한 날.
까마귀로 변신한 위드가 조각사의 탑에 내려않았다.
옆에는 검댕을 뒤집어쓴 황금새와 은새가 호위하듯이 섰다.
"역시 아닐 거야."
의심으로만 머릿속에 남아 있던 일을 확인해 보기 위해 온 것이다.
"맞을 리가 없지."
지골라스에서 한 고생들은 위드의 모험 중에서도 특별히 심한 정도였다.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너무 힘들어서 리치로 변신해서 언데드들을 사용했으뿐더러,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도 실패했다.
안식의 동판이 없었다면, 서윤이 와서 도와주지 않았다면 처참한 실패로 끝났을 퀘스트!
조각사 퀘스트로는 전투의 난이도가 지나칠 정도로 높았는데, 혹시나 게이하르 황제의
조각품의 생명 부여를 사용하라는 뜻이 아니었을까.
황금새를 따라서 빈 몸뚱이로 지골라스에 온 볼품없는 조각사.
그리고 조각사들의 유산에 생명을 부여해서 부하를 만들고, 퀘스트까지 완수하는 감동의 대서사시가 아니었을까.
그러지 않는다면 도저히 깰 수가 없는 퀘스트였다.
문제는 그런 깨달음이 퀘스트의 중반 이후에나 왔다는 점에 있었다.
"미심쩍은 부분들은 꽤 있지만 쓸데없는 일을 하는 거지.
그래도 여기에 그대로 방치해 두기에는 너무 아까운 조각품들이 많으니까."
조각사의 탑에는 대작, 명작 조각품들이 여러 개나 되었다.
베르사 대륙 전역을 뒤져 보더라도 잘나가는 국가의 왕궁이나 드워프들의 보물 창고가
아닌 이상 이렇게 주인 없는 조각품들이 많은 장소는 없으리라.
조각품들을 다 들고 가지 못할 바에야 좋은 것 몇 개 정도는 생명을 부여해서라도 데려가고 싶은 욕심이 있었던 것.
위드는 탑의 주변에 헤르메스 길드원이 있는지부터 철저히 살폈다.
다행히 탑을 지키면서 감시하는 해적들은 둘밖에 되지 않았다.
헤르메스 길드에서도 조각품의 혜택을 받기 위해서 아침마다 이곳으로 온다.
그러나 여러 번 본다고 해서 효과가 중복되는 건 아니라서 하루에 한차례밖에 오지 않았다.
조각사들의 유산은 딱히 몸을 숨기기 어려운 평탄한 지형에 워낙 눈에 잘 띄눈 탑이라서,
위드가 설마 이곳에 나타날거라고는 의심하지 않는 것이리라.
위드는 의심이 많고 길드들과 싸운 경험이 충분해서, 웬만한 잔꾀나 암습으로는 죽이기가 어려웠다.
현재까지 지골라스의 던전에 숨어 있으면서도 버티기가 쉽지 않았지만 적들을 잘 피해 왔다.
위드의 성격을 그들이 알았더라면 대규모의 인원을 동원해서 막다른 길에 몰아넣는 것보다 확실한 방법이 있었다.
무지막지하게 비싼 아이템을 땅에 버려 놓는 것이다.
위드를 엄청난 갈등에 몰아넣을 수 있는 함정!
위드는 은새, 황금새와 함께 조각사의 탑 주변에서 보초를 서는 해적들에게 슬금슬금 접근했다.
"으하하암! 졸리고 지루하군."
"이런 곳에 위드가 올 리가 없을 텐데 뭐하러 지키라고 하는지 모르겠어."
해적들이 구시렁대는 소리가 들렸다.
위드가 폴짝폴짝 뛰어서 접근을 하는데, 해적 하나가 무심코 고개를 돌렸다.
위드와 해적의 눈이 마주쳤다.
"까마귀네?"
위드는 다리로 날개를 긁다가, 까악 하고 울음을 터트렸다.
옆에 있는 돌멩이를 보면서 발로 툭툭 차기도 했다.
은새와 황금새도 그들끼리 몸을 비비거나 하면서 딴청을 피웠다.
"재미있게 노는군. 이 새들이나 좀 봐."
해적이 관심을 끊으면 다시 다가가려고 했지만, 무료한 보초 생활이라서 상당히 오래 위드를 지켜보고 있었다.
위드는 길게 하품을 하더니 꾸벅꾸벅 조는 시늉을 했다.
그러자 은새와 황금새도 금방 따라서 했고, 해적들은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때 위드를 필두로 다가간 은새와 황금새!
따다다다닥!
발등을 먼저 쫀 후에 수직으로 상승하며 연속 쪼기!
해적들의 평균 레벨은 낮았고, 그들이 상대하기에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높은 레벨을
가진 3마리 새의 합동 공격이라서 쉽게 처리할 수 있었다.
위드는 조각 변신술을 헤제하고 인간으로 돌아왔다.
"감시하던 해적들이 죽은 게 발각되는 건 금방일 테니 서둘러야겠군."
조각사의 탑에 있는 많은 조각품들 중 대작과 명작 들에만 생명을 부여할 작정이었다.
위드의 레벨도 곧 400이 가까워질 무렵이기도 했고, 생명부여를 무한정 하다 보면 결국 스스로가 성장을 못 한다.
조각사의 탑을 보고서도 생명 부여를 하지 못했던 이유가, 퀘스트의 난이도가 너무
높다 보니 조각 생명체들이 죽어 버릴 것을 걱정했기 때문이다.
위드는 탑에 들어가서 가까이 보이는 명작 조각품, 기사상에 손을 댔다.
"기사에 생명을 부여해야 될까?"
부하로 기사 하나쯤은 갖고 싶었다.
그래도 레벨과 스탯을 소모하는 일이었으니 신중해질 수 밖에 없다.
마침내 위드가 결정을 내렸다.
"조각품에 생명 부여!"
바다 생물, 대형 생명체, 이름 모를 몬스터에 기사 들까지 다양한 조각품이 있는 와중에, 명작인 기사상부터 생명을 부여했다.
'충성심이 높은 기사야. 확실하게 철저히 부려 먹어 줘야지.'
띠링!
-8대 조각사 길드의 수장 젠버린과 그의 동료들이 만든 대작 조각품.
지골라스의 불가사의 영웅을 기다리는 고요한 탑에 생명을 부여했습니다.
"어라?"
위드는 빌라스가 만든 조각품, 기사상에 생명을 부여했다.
그런데 뜬금없이 영웅을 기다리는 고요한 탑에 생명을 부여했다는 메시지가 창에 뜬 것이다.
쿠르르르릉!
조각사의 탑이 커다란 울음소리를 내며 흔들리고, 두껍게 쌓여 있던 먼지들이 바람에 씻겨 나갔다.
그러면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고색창연한 탑!
생명 부여가 만들어 낸 하나의 기적!
위드의 눈앞에 영상이 흘러나왔다.
이제는 익숙한 방식이었다.
조각사들이 배를 타고 지골라스에 도착했다.
그들은 용감하게 헬리움을 찾아 나섰을 뿐만 아니라, 이곳에서도 그들의 역작을 조각했다.
조각사들의 강한 의지는 어떤 어려움으로도 꺽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젠버린은 조각사들을 데리고 온 대표였다.
그는 비장하게 말했다.
"귀중한 조각품들을 허술하게 놔둘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 지골라스에 오는 마지막 조각사들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지골라스에서 최후를 맞이하고, 다른 조각사들이 이곳에 오게 되는 것까지도 생각하고 있었다.
"그들의 조각품을 보관할 수 있는 장소를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의 꿈과 희망을 보관할 수 있는 장소를 찾읍시다."
헬리움을 찾는 작업이 가장 중요했지만, 지골라스에서 생의 끝에 만들 조각품들을 놔둘 장소도 필요했다.
지진과 화산 폭발에 안전한 장소를 찾아내고 조각사들이 협동해서 작업을 했다.
"어떤 위협에도 버틸 수 있는 공간, 그러면서도 예술적인 공간을 만듭시다."
높이 치솟은 돌산을 통째로 조각했다.
깎아 내서 층을 만들고, 입구를 뚫고, 표면을 조각했다.
건축과 조각은 완전히 다른 갈래라고 보기 어렵다. 조각사들은 돌산을 통째로 조각하여 탑을 만들어 버리고 말았다.
웅대한 조각품.
예술품들을 수호하는 탑이었다.
대작! 영웅을 기다리는 고요한 탑을 완성하셨습니다.
지골라스에 온 조각사들이 만든 불가사의!
젠버린과 동료들이 재능과 노력을 더해서 만든 조각품이다.
여러 개의 안전한 방과 널찍한 전시실 들이 내부에 만들어졌다.
탑의 네 부분에는 태양과 화산, 바다 그리고 조각사들이 표현되어 있다.
예술적 가치: 17,695.
특수 옵션: 영웅을 기다리는 고요한 탑을 본 조각사들은 하루 동안 생명력의 최대치가 2배로 증가한다.
조각된 몬스터들과의 친밀도가 향상.
몬스터들에 대한 사냥법을 배울 수 있다.
조각된 내부에서 휴식시 빠른 속도로 생명력과 마나를 회복할 수 있다.
지골라스의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을 향상시킨다.
온도와 기후의 영향을 적게 받는다.
화염 마법에 대한 내성 55% 상승
화염 계열 몬스터들에 대한 저항력 증가.
조각사들에 한해서 전 스탯 39 상승.
하루 동안 조각술 스킬의 효과가 8% 증가함.
조각탑에 조각품을 전시하게 되면, 조각술에 대한 업정을 조금 더 많이 획득할 수 있음.
젠버린과 동료들에 의해서 대작 조각품이 완성되었다.
그들은 지골라스를 탐험하다가 모두 죽어 갔지만, 다른 조각사들이 와서 이곳에 작품을 만들었다.
조각품들이 차곡차곡 쌓여 가면서, 영웅을 기다리는 고요한 탑은 불가사의한 작품이 되었다.
띠링!
-영웅을 기다리는 탑에 '영구한 보존' 마법이 발휘됩니다.
다제다능한 조각사들 중에는 마법에 정통한 이도 있었다.
탑에는 강력한 보호 마법이 펼쳐지고, 많은 조각 예술품들을 안전하게 보관하게 되었다.
수백 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탑과 조각품들은 하나가 되어 자리 잡아 갔다.
위드가 보던 영상이 끝이 났다.
"이렇게 훌륭한 탑이 있었는데 전에는 알아차리지 못했다니."
탑에는 먼지가 몇 센티씩 쌓여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탑 자체가 조각품이라는 사실을 무심코 넘어가 버리고 만 것이다.
-조각품에 생명을 부여하셨습니다.
조각품의 능력은 현재 설정된 예술 스탯 2,041에 따라 레벨이 맞취 461로 변환됩니다.
대작 조각품, 역사적인 조각품의 효과로 인해서 32%의 레빌이 추가되어 608로 늘어납니다.
생명체에 세 가지의 속성이 부여됩니다.
조각품의 모양과 수준에 따라 부여되는 속성의 수준과 능력치가 다릅니다.
예술의 속성(100%), 수호의 속성(100%), 생명의 속성(100%).
예술의 속성으로 인하여 조각품과 미술품을 좋아하고, 작품들의 효과를 150%로 이끌어 낼 수 있습니다.
자신뿐만 아니라 동료들 전체에게 해당됩니다.
수호의 속성으로 인하여 주인과 동료들을 위험으로부터 지키려고 할 것입니다.
생명의 속성으로 인하여 압도적으로 많은 생명력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젠버린과 동료의 작품으로 인하여 특별한 용기가 부여됩니다.
보호 마법으로 인하여 강력한 방어력을 가집니다.
마나가 5,000 사용되었습니다.
스킬의 효율이 증가해서 생명을 부여할 때 소모되는 레벨과 스탯의 양이 20% 감소합니다.
예술 스탯이 6, 영구적으로 줄어듭니다.
줄어든 스탯은 조각품이나 다른 예술과 관련된 활동을 통해 보충할 수 있습니다.
레벨이 2 하락합니다.
레벨 하락에 따라서 보유하고 있는 스탯이 5 줄어듭니다.
줄어든 스탯은 레벨을 올리게 되면 다시 부여할 수 있습니다.
생명이 부여된 조각품을 소중히 다루어 주십시오.
목숨을 잃으면 다시 생명을 부여해야 합니다.
완전히 파되되었을 경우에는 되살릴 수 없습니다.
살아난 조각탑이 위드를 향해 자신의 이름을 묻기도 전에 한 일이 있었다.
-피와 땀으로 만들어진 조각품. 우리는 서로 다르지 않은, 모두가 하나의 몸과 같다.
-영웅을 기다리는 고요한 탑이 예술의 힘을 발휘합니다. 생명력을 조각품에 나누어 줍니다.
위드가 처음 생명을 부여하려고 했던 기사의 조각상에 자잘한 균열이 생기면서 갈라졌다.
그러더니 잠시 후 조각상이 움직이면서 살아 있음을 알렸다.
조각 생명체가 탄생하는 모습은 언제 보아도 신기하고 경이로웠다.
그런데 그걸로 끝난 게 아니었다.
기사의 주변에 있던 조각품들에도 균열이 퍼지는 것이었다.
"이건 설마?"
대형 생명체, 수많은 몬스터들, 곤충들.
먼지에 뒤덮여 있던 조각품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각양각색의 수많은 조각품들에 함께 생명이 부여되어 숨을 몰아쉬었다.
시간이 멎어 있었던 것처럼 오랫동안 이곳에 자리 잡았던 조각품들이 거짓말처럼 살아났다.
위드가 있는 층만이 아니라, 탑 전체의 조각품들이 살아난 것이다.
-조각품에 생명 부여 스킬로 인하여 조각사들의 유산이 깨어났습니다.
영웅을 기다리는 고요한 탑은 생명력을 나누어 줌으로 인하여 스스로의 생명력이 절반으로 감소합니다.
다양한 조각 생명체들이 위드를 향해 저마다의 방식으로 생명을 부여해 준 것에 대한 인사를 했다.
주둥이를 크게 벌려서 이빨을 보여 주거나 꼬리를 흔들고, 검을 들거나, 하늘을 향해 우렁차제 포효했다.
전율이 일어나는 이 광경에, 조각탑이 불만스럽게 말했다.
"내 몸이 왜 이렇게 더러운가."
깔끔함을 좋아하는 예술품이었던 만큼 먼지 털기에 바빴다.
다른 조각 생명체들도 머리와 어깨, 몸통에 달라붙은 먼지들을 부지런히 털었다.
위드는 기꺼이 온천에라도 데랴가 주고 싶었다.
등도 밀어줄 수 있었다.
조각 생명체들이 일제히 말했다.
"주인, 이름을 지어 다오."
"주인, 태어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충성을 다해서 모시겠습니다."
"주인, 내 이름은 뭔가?"
"크르릉. 누구와 싸워야 되는가."
여럿이다 보니 이름을 붙여 주는 것만 해도 쉬운 일이 아니다.
돌고래를 닮은 매우 큰 바다 괴물은 바닥에서 데굴데굴 굴렀고, 대작 조각품 중의 하나인 불의 거인은 말을 할 때마다 화염을 내뿜었다.
생김새나 크기나 같은 생명체가 하나도 없다 보니 난장판도 이런 난장판이 없었다.
"너희의 이름은........"
위드는 이름 짓는 것을 미루기로 했다.
각양각색의 조각품이었기 때문에 부르기도 쉽고 특성에 맞는 이름을 심사숙고해서 지어 주어야 했다.
"나중에 지어 줄게."
"그러면 우리를 부르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기사가 정중하게 이름을 지어달라고 요청했다.
명예를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일단 편한 대로 부를게. 어이, 야, 너, 거기, 저기요 등으로......."
"......."
조각을 했던 사람이 위드가 아니라서 충성도가 처음부터 높지는 않았다.
기사들은 명예를 중요하세 여기므로 함부로 대하는 것은 참기 어려웠던 것.
하지만 위드에게는 시간이 별로 없었다.
"조금 후면 바로 큰 전투를 치러야 할지도 모르니 제대로 된 이름을 짓는 건 다음으로 미루자."
전투라는 말에 눈알을 번뜩이는 조각 생명체들이었다.
위드는 일단 지상전과 해상전을 양쪽을 염두에 두고 준비를 했다.
"어쨌든 이런 장소에서 피해를 보는 것처럼 무의미한 죽음도 없겠지. 일단 계획대로 한다."
@
해적들이 지키고 있는 임시 선착장. 얼지 않는 강에는 하벤 왕국의 제 2함대와 해적선들이 줄을 지어 정박해 있었다.
"지루하기 짝이 없구만."
"위드는 언제 잡는 거야? 우리는 만날 배만 지키고 있으니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사정인지도 전혀 모르겠고."
"슬슬 기다려 봐. 곧 조은 소식이 오겠지. 어쨋든 위드가 죽기만 하면 우리도 고향에 돌아가서 자랑할 거리가 생기는 거니까."
해적들이 불만스럽게 말하면서 패를 돌렸다.
야밤에 시간을 때우기 위한 방법으로는 도박만 한 것이 없는 것.
지골라스에 오면 금방이라도 위드를 잡을 수 있을 것 같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위드는 미꾸라지처럼 정말 잘 도망 다녔다.
지골라스의 넓은 지하 던전들을 안방처럼 활용할 뿐만 아니라 함정으로 유인하기도 했다.
도둑과 어쌔신, 발굴가가 있었지만 그들도 절대적인 건 아니었다.
땅에 남겨진 흔적들을 바탕으로 적을 추격하는 실력은 단연 일품이었지만,
위드가 포위망을 벗어나서 숨어 버리고 난 후에는 추적이 어려워졌다.
몬스터, 유저들과 선원들, 해적들이 만들어 낸 흔적들이 섞여 버리고 난 뒤인 것이다.
"그래도 놈은 갇혀 있는 신세라서 잡히는 건 시간문제야. 지하 던전의 지도를 완성하고 있다 하니, 한 군데씩 수색하면 금방이지."
"그렇긴 하겠지? 위드라는 이름값이 괜한 건 아닌 거 같아. 헤르메스 길드에서도 고생을 하는 걸 보니 말이지."
"어허험!"
해적 1명이 갑자기 크게 헛기침을 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른 해적들도 눈치를 채고 잽싸게 일어났다.
해적들의 우두머리, 해적왕 그리피스가 그들이 있는 임시 선착장으로 걸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약탈! 근무 중에 이상 없습니다."
그리피스가 다가와서 어깨를 두들겨 주었다.
"수고가 많아."
"아닙니다. 그리피스 님."
그리피스는 해적 제독의 모자를 착용하고 있었다.
레벨 제한이 400이 넘는다고 알려진, 해적들에게는 부러울 수밖에 없는 모자였다.
"무슨 일로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답답해서 바람이나 쐴 겸 나와 봤다."
그리피스의 목소리는 일부러 위조한 것처럼 탁하고 걸걸했다.
"배를 타시려고요?"
"그래, 내 배를......."
그리피스는 말을 멈추고 잠시 머뭇거렸다.
선착장에는 엄청난 규모의 배들이 정박해 있었다.
해적선들과 하벤 왕국의 함대가 절반씩 나뉘어 있다.
임시 선착장에 공간이 부족해 강 위에도 절반 이상의 배들이 정박해 있는 모습이었다.
욕심은 많았지만 대장 해적선 융프라우호는 지나칠 정도로 크고 호화스러웠다.
배를 운용하는 인력도 많이 필요하다.
"융프라우호를 준비시킬까요?
"간단히 바람이나 쐬려고 하는데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없겠지. 빠른 범선을 타고 나갔다 오겠다."
"해적들을 준비시킬까요? 제가 직접 모시고 싶습니다만."
해적왕과 함께 항해를 하다 보면 바다에서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속도를 낼 수 있다.
그렇기에 해적들은 상당히 기대가 되는 눈치였다.
그리피스는 고개를 저어 그 제안도 거부했다.
"금방 돌아올 것인데 번거롭다. 혼자 다녀올 것이다."
"예, 알겠습니다. 다음 밤 항해에는 저희도 태워 주세요!"
"기회가 된다면 꼭 태워 주도록 하지."
그리피스는 임시 선착장에 정박해 있던 중형 번선을 몰고 출항했다.
느리게 항해하는 모습에 해적들이 중얼거렸다.
"천천히 항해를 즐겨 보실 생각인가 보군."
"그리피스 님이 전속력으로 항해하면서 적함에 충돌할 때는 정말 빠르지."
"누를 젓는 갤리선만큼은 바다에서 그리피스 님처럼 빠르게 지휘하는 분이 없어."
중형 번선 메추리호는 얼지 않는 강을 따라서 곧장 바다로 나가지 않고, 지골라스를 빙글 돌았다.
흰 설원의 맞은 편으로 연기를 내뿜는 화산들이 있다.
경치가 감탄밖에 나오지 않을 정도로 워낙 좋은 장소였기에 해적들은 의심을 품지 않았다.
하지만 해적들의 시야에서 벗어난 순간, 중형 범선 메추리호는 지골라스의 연안으로 다가갔다.
암초들로 인하여 닻을 내리고 정박하기 힘들었지만, 그리피스는 최대한 가까이 붙였다.
-이제 나와도 돼.
음머어어어.
근처에 있던 던전의 입구에서 누렁이가 튀어나와 범선을 항해 질주했다.
그 뒤로 서윤과 황금새, 은새, 그 외의 조각 생명체들이 연달아 나왔다.
야음을 틈타서 범선에 승선하는 것이다.
"빨리빨리 타!"
그리피스의 정체는 조각 변신술로 위장한 위드였다.
조각품과 의뢰 등으로 악명을 충분히 낮추어서 살인자의 상태를 벗어났다.
물론 해적들과 해군들 중에도 현상 수배범이나 살인자 상태인 자들이 많았기 때문에 그 덕도 적지 않게 보았다.
그리피스가 평소에 입는 모자와 제복을, 가지고 있는 원단을 활용해서 만들고 위장한 것이었다.
물론 실제 옵션이나 방어력과는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지만, 밤에는 외관상으로 잘 구분이 안 되었다.
중급 재봉술 정도 되면 짝퉁도 명품에 근접해서 만들 수 있는 것!
인간형 조각 생명체들이 밧줄을 타고 오르고, 날 수 있는 조각 생명체들은 다른 동료들을 안고 날갯깃을 했다.
조각 생명체들이 모두 타고 나니 중형 범선은 밑부분이 묵직하게 가라않았다.
"그럼 가자. 잘 있어라."
위드는 그곳에서 멀리 보이는 조각탑을 향해 모자를 흔들며 인사를 했다.
조각탑은 배로 옮길 수 없는 거대한 작품이었다.
그리고 지골라스에 만들어진 작품이다.
조각품을 지키는 사명을 다했지만, 최후까지 이 땅을 지키며 남기로 한 것이다.
"안녕히."
위드가 아쉬움에 다시 인사를 했다.
'베르사 대륙으로 데려가서 부려 먹으면 정말 좋을 텐데.'
하지만 조각탑의 의사가 너무 확고했다.
넓은 대륙보다는 지골라스에서 사라진 조각사들을 기리면서 살기로 결심했다는 말에, 더 이상 설득이 불가능했다.
'앞으로 지골라스의 새로운 보스급 몬스터가 될지도 모르겠군.'
쿠오아아아아아아아!
조각탑은 어서 떠나라는 듯이 커다란 울음을 터트렸다.
아래층에서부터 층을 올라가면서, 탑 전체가 한꺼번에 울며 신비로운 공명음을 냈다.
조각탑은 훌륭하게 조각품을 지켜 왔고, 이제 헤어져야 할 시간.
"그럼 가자."
위드는 조각 생명체들에게 지시를 해서 닻을 거두고 출발준비를 했다.
황금새와 은새가 돛대에 올라서 밧줄을 풀어내고 돛을 활짝 펼쳤다.
'지골라스와는 이것으로 안녕이로군.'
무게가 크게 늘어난 중형 범선이었다.
선실에 조각 생명체들이 가득 찼을 뿐만 아니라, 복도와 갑판에도 있었다.
적정 용량의 절대적 초과!
바람을 한껏 받았음에도 처음에는 거의 미동도 하지 않을 정도였지만 강물을 가르면서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위드가 키를 돌리자, 크게 한 바퀴를 선회하고 얼지 않는 강으로 향했다.
선착장을 지나가고, 하벤 왕국의 제 2함대도 스쳐 지나갔다.
해적왕 그리피스가 배를 타고 있다는 사실이 이미 알려진 후였기 때문에 그들도 저지하지 않았다.
순풍을 받은 위드의 배는 점점 빠르게 속도를 올리면서 얼지 않는 강을 운항했다.
그리고 잠시 후, 하벤 왕국의 함대 소속의 유저들은 그들의 상관에게 보고를 했다.
-해적왕 그리피스가 배를 몰고 바다로 향했습니다.
-무슨 일로?
-별일 아닙니다. 선착장의 보초를 서던 해적들에게 물어보니 바람을 쐬러 나갔다 온다고 했답니다.
-알았다.
배의 입출입을 통제한다는 규칙에 의해서 보고는 했지만, 경비를 맡은 쪽이나
보고를 받은 쪽이나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상대가 같은 편인 해적왕 그리피스였기 때문에 그의 통행에 대해서는 따로 허가를 받지 않아도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한참이 지난 후였다.
보고를 받았던 해군 기사가 다급하게 귓속말을 전해 왔다.
-아까 그리피스가 바다로 향했다는 보고를 하지 않았나?
-예, 했습니다.
-진짜 해적왕 그리피스였나?
-해적들이 확인해 준 사실입니다.
-이런! 큰일 났군!
-무슨 일이십니까?
-해적왕 그리피스는 지금 드린펠트 님과 같이 있다.
배를 타고 나간 사람은 해적왕이 아니다.
-예예? 그게 무슨 터무니없는.......
-길게 말하고 있을 시간이 없다. 어서 그 배를 붙잡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럼 빨리 추격해!
하벤 왕국의 함대는 닻을 내리고 돛들을 활짝 펼쳤다.
해적들의 함대에도 소식이 전해졌는지, 일제히 출항할 준비를 했다.
"놈은 절대 빠져나갈 수 없을 것이다."
"뒤쫓아라!"
선착장과 전투함을 지키던 인원이 배를 끌고 먼저 나섰다.
하지만 조각 생명체들 중에서 바다 생물들이 그들이 움직이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대포를 쏘고 화살을 날렸지만 결국은 격침!
던전화 지상에서 사냥을 하던 유저들과 해적들이 선착장으로 돌아오는 길목은 조각탑이 막고 있었다.
"크오오오오!"
조각탑이 걸어 다니면서 유저들과 병사들을 짖밟았다.
위드와 조각 생명체들이 떠나는 길을 지켜 주기 위하여 나선 것이었다.
강력한 파괴자로서의 위용!
헤르메스 길드의 유저들이 탑과 전투를 하려고 하자 드린펠트가 말렸다.
"저놈은 나중에 처리해도 된다. 위드를 잡는 게 우선이니 모두 배부터 타라."
헤르메스 길드의 주력과 해적들은 조각탑을 피하면서 배에 승선했다.
엄청난 피해가 발생했지만 돛을 올리고 순차적으로 선착장을 떠났다.
"크오와아아아아아아!"
마지막까지 방해를 한 조각탑은 지골라스의 화산 지대로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