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비, 바람, 안개 속의 반격
바드레이는 몬스터의 몸에서 검을 회수했다.
그가 검을 빼내자마자 몬스터의 사체는 회색빛으로 변했다.
"드디어 오늘이군."
사냥을 하면서 레벨 465를 달성했다.
사냥감 몰아주기 등으로 쉽게 레벨을 올릴 수 있는 편법도 있었지만, 바드레이는 직접 전투를 하는 쪽을 택했다.
대중에게 보이는 레벨이 아니라 진정한 강함을 추구하였기 때문이다.
"헤르메스 길드가 눈을 뜰 시간이 왔다."
바드레이가 공들여 만든 길드의 힘을 대외적으로 과시할 시기가 왔다.
헤르메스 길드와 다른 명문 길드 93개가 힘합쳐 패권 동맹은 이미 전쟁 준비를 마쳤다.
구성원대 대해 대외적으로 밝힐 필요는 없겠지만, 그들의 검과 마법이 패권 동맹에 속하지 않은 성들과 길드들을 향할 것이다.
물론 패권 동맹도 일시적인 공동체에 불과했다.
끝없는 야욕으로 각 길드들은 계속 힘을 모으고 있을 것이고, 연합체가 해산되는 순간 그들끼리의 전쟁도 벌어지게 되리라.
바드레이는 이미 그날도 기다리고 있었다.
"최고의 자리에 둘이 오를 수는 없겠지."
베르사 대륙의 치열한 격전지인 중앙 대륙에서, 명문 길드들이 전력을 비축하며 숨을 죽이고 참아 왔다.
사냥터의 독점, 고급 아이템들의 장착.
전쟁이 벌어지는 오늘부터 모두가 똑똑히 알게 되리라, 헤르메스 길드의 진정한 무력이 어떤 것인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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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벤 왕국의 요새 웰스턴.
베르사 대륙의 유저들은 지골라스 인근에서 벌어지는 위드 대 하벤 왕국 함대의 전투를 실시간으로 보고 있었다.
"죽인다!"
"강을 따라서 쫓고 쫓기는 게 장난이 아니네. 여기 맥주 한 병 더 주세요."
해적들 중 일부가 방송사와 계약을 맺고 그들의 영상을 전송해 주었다.
그 덕분에 게임 방송사에서 틀어 주는 영상을 선술집이나 식당에서도 볼 수 있었다.
KMC미디어에서도 이번 위드의 전투는 빠지지 않고 함께 방송하기로 했다.
이미 하벤 왕국의 함대나 해적들과 해상에서 조우를 한 마당이라서 방송을 미루어야
할 이유가 없었을뿐더러, 다른 방송사들이 선수를 치고 있었다.
KMC미디어에서는 위드의 영상을 받음으로써 그 주변의 관점에서 쫓기는 기분을 긴장감 넘치게 만끽할 수 있었다.
물론 방송에서의 최대의 난점으로 로열 로드와 현실과의 시간 차이가 발생했지만, 그런 부분은 중간에 광고를 집어넣음으로써 해결!
현재는 게임 방송사들의 매출 증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정도로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분야였다.
로열 로드의 시청자들이 지겨워하지 않도록 음악이나 다른 베르사 대륙에 대한 뉴스들은 편성해 주기도 했다.
퀘스트와 사냥을 다녀온 파티들이 맥주와 마른 안줏거리들을 시켜 놓고 영상을 시쳥했다.
위드의 전투 중계가 있는 날이면, 대표 팀이 축구를 하는 것처럼 선술집이 붐볐다.
"캬아! 딸기 우유 맛이 죽여주는구나."
"아껴서 마셔. 30쿠퍼나 냈다."
초보자, 거기에 미성년자 학생들이 주문하는 음료수는 우유나 주스 등이었다.
왁자지껄 시끄러운 분위기에서도 위드의 방송이 나온다는 이야기에 손님들이 계속 매장으로 들어왔다.
"위드가 무사히 도망칠 수 있을까? 완전 소름 끼칠 정도로 아슬아슬해 보여."
"지금의 속도라면 멀리 가지 못해서 잡힐 것 같아."
협곡이 무너져서 하벤 왕국 함대의 군함이 몇 척 가라않았다.
얼음덩어리에 깔려서 침몰하거나, 선체가 부셔져서 항해 불가능 상태에 놓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드린펠트는 함대를 다시 수습해서 위드의 뒤를 바싹 쫓고 있었다.
협곡이 무너지며 거리가 상당히 멀리 벌어졌지만, 하벤 왕국 함대의
속도가 좀 더 빠르고 대포의 사격 범위가 있었기 때문에 아슬아슬한 추격전이었다.
후두두둑.
얼지 않는 강에 자욱하게 끼어 있는 안개 사이로 굵은 빗방울들이 떨어졌다.
갑자기 내리는 빗물의 까닭에 대해서는 누구도 알지 못했지만,
사실 위드가 도주하는 사이에 구름 조각술을 계속 펼치면서 비를 부른 것이었다.
"비가 내리면 도망가는 쪽이 유리한가?"
"잘모르겠는데. 어차피 같은 방향으로 가니 비슷한 거 아니야?"
"파도가 높아지면 선박의 종류에 따라 달라질 것 같은데. 일반적으로 범선이 유리하고, 해적들이 타는 갤리선은 불리하다고 하지."
"포술의 위력이 약화될 것 같은데. 화염탄 같은 포격 전술을 활용하지도 못할 테고, 시야도 좁아질 것 같아."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자, 중대형 선단이 돛을 한껏 펼쳤다.
얼지 않는 강에서 안개 사이를 통과하는 선박들이 제법 운치 있다고 느껴졌다.
일촉즉발의 부딪침이 있으면 어마어마한 전투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에 더욱 숨을 죽이고 보고 있을 무렵이었다.
지골라스의 해상전을 보여 주던 화면이 갑자기 KMC미디어의 중계진이 있는 스튜디오로 돌아왔다.
신혜민이 재빨리 말했다.
"방금 들어온 속보입니다. 현재 베르사 대륙의 중앙 대륙에서 동시다발적인 전투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선술집에 있는 유저들은 술과 음식을 먹으면서 관심을 갖지 않으려 했다.
베르사 대륙에서는 몬스터의 침공이나 영주들 간의 땅따먹기 싸움으로 시도 때도 없이 전투가 벌어지곤 한다.
그렇게 흔한 일들로만 여길 뿐이었다.
위드의 모험이야 여러모로 알려졌고, 베르사 대륙에 변화를 가져오는 사건들이 많아 구경하는 입장에서 훨씬 재미있었지만 말이다.
"하벤 왕국과 토르판 왕국, 마센 왕국, 토르 왕국, 아이데른 왕국,
브리튼 연합, 에버딘 왕국 등에 이르기까지, 중앙 대륙의 200여 성이 전투에 돌입했습니다."
"뭐야, 200개 성이나 돼?"
"무슨 전투가 그렇게 많이 일어나?"
전투의 범위가 너무나도 넓어서 선술집의 유저들은 당혹스러웠다.
중앙 대륙도 굉장히 넓다고 하지만, 유저들이 지배하지 않는 성들도 있다.
영주들은 유저들 중에서도 많지 않았던 것이다.
"곡창지대나 광산이 있는 산, 마을 들의 소유권을 놓고 길드와 영주들의 전투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오주완 씨, 이번 전투에 매우 특별한 점이 있다면서요?"
"그렇습니다. 아직까지 구체적인 정보가 다 들어오지는 않은 상태입니다만 어느 한쪽의 갑작스러운 선전포고와 함께
전투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규모는 어느 정도인가요?"
"공성전의 경우에는 1만이 넘습니다."
"훈련시킨 병사들까지 포함한 숫자겠죠?"
"물론입니다. 자원 지역이나 사냥터, 던전 들의 소유권을 놓고도 전투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현재 소식이 계속 들려오고 있는데, 전투 지역이 확산되고 전투의 양상도 더욱 격렬해지고 있다고 합니다.
여행을 하시는 분들은 돌아다니실 때에 각별한 주의를 해 주셔야 될 것 갔습니다."
"그럼 현재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지역과, 앞으로 전투가 벌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장소들을 목록으로 보내 드리겠습니다."
갑작스러운 전쟁의 여파로 중앙 대륙은 혼란에 휩싸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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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릴 수 있는 건 모두 버려!"
"대포부터 강으로 던져 버리자."
헤인트, 프렉탈, 보드미르는 갑판에 있는 여분의 자재나 포실에 있는 대포와 포탄 들을 강물에 빠뜨렸다.
배의 무개를 조금이라도 줄여서 속도를 높이기 위한 비책이었다.
"우리 셋으로 포격전은 어림도 없고, 달아나는 것밖에는 할 게 없어!"
조각 생명체들도 그들을 따라서 대포를 강에 던지는 일에 동참했다.
하벤 왕국의 함대와 해적들이 뒤를 바짝 따라오니, 도주하는 입장에서는 입안이 바싹바싹 마른다.
위드는 하벤 왕국의 함대와 해적선들을 보면서 계속 구름을 만들었다.
공중에서 날면서 따라오는 불사조와 불의 거인의 주변에서는 계속 빗물이 증발되어서 수증기로 변했다.
결국 불사조는 힘이 약화되는 것을 참지 못하고 구름보다 높은 곳으로 날아 올라가 버리고 말았다.
"정말 엄청난 비로군."
바람도 심하게 불면서 돛이 팽팽히 부풀었다.
구름을 만들기는 했지만 위드도 이런 갑작스러운 기상 악화는 예상하지 못했다.
지골라스 부근은 원래 기후변화가 극심한 지역이었다.
찬 바람과 더운 바람이 뒤섞이는 곳으로, 바람도 심하게 불었다.
그렇다고 해서 천둥 벼락이나 폭풍으로 운항이 불가능할 수준은 아니었다.
위드는 헤인트를 향해 물었다.
"비가 내리면 도망치는 쪽이 얼마나 유리한 거지?"
키를 정신없이 돌리면서 얼지 않는 강을 최소한의 속도로 통과하던 헤인트가 날카롭게 눈을 빛냈다.
"도망치는 쪽에서는 날씨가 나쁠수록 변수를 이용할 수 있게 되죠.
파도 때문에 대포의 명중률도 조금은 줄어들 것이고, 시야에서 사라져서 숨을 수도 있고요.
하지만 이렇게 갈 곳이 정해진 강에서는 숨지도 못할 테니 딱히 유리하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다년간 나쁜 짓을 하고 쫓겨 다녀 본 관록 있는 도망지의 발언이었다.
헤인트를 포함한 3인조는 악천후에도 항해를 해 본 경험이 상당히 많았다.
3인조가 한마디씩 말했다.
"어떻게 해서든 빙하 지역은 벗어나야 되는데. 결국 잡히고 말겠지만."
"지골라스에서는 어찌 피해 다녔는지 몰라도, 해상전에서 드린펠트의 함대는 무적함대라는 별명을 갖고 있습니다.
놈들에게 쫓겨서 살아난 항해자는 없지요."
"바다의 악몽이라고 불리는 해적들까지 추격해 오고 있으니 무사히 도망칠 가능성은 전혀 없겠지."
갤리선들은 파도에 약해 먼바다 항해에는 불리해도, 노예들을 동원해 노를 저을 수 있다.
단거리 추격전에서는 해적들을 뿌리치고 도망가기가 많이 힘든 것.
-빠져나갈 방법을 마련해 두자.
-나무판자를 봐 놓는 게 있어.
-밧줄도 준비해. 몸을 판자에 꽁꽁 묶어야 하니까.
3인조는 바다로 가면 배가 격침되기 전에 망망대해에 몸을 던질 준비까지 해 놓았다.
나무판자를 끌어안고 표류라도 할 각오였다.
몇 날 며칠을 파도에 떠밀려 다니더라도 어쨌든 살 수만 있다면 행복한 것.
쏟아지는 장대비 사이를 항해하는 중형 범선이었다.
불어난 강물로 인해 배가 더욱 출렁거렸지만 위태롭게 흔들리면서도 강의 하류를 향해 나아갔다.
자욱하게 바다 안개가 끼어서 가까운 곳을 겨우 확인할 정도였다.
비바람을 뚫으며 암초들을 아슬아슬하게 피하는 항해술은 묘기라고 평가해도 좋을 정도였다.
하지만 바다로 접어드는 순간, 빗줄기가 많이 약해지고 운무가 줄어들어서 시야가 확 넓어졌다.
띠링!
-바다의 불운을 몰고 다니는 유령선들과 조우하셨습니다.
선박에 쥐가 들끓습니다.
선박에 전염병이 돌 확률이 높아집니다.
대형 바다 생물들의 습격을 받을 확률이 높아집니다.
선원들의 사기 수치가 최하로 떨어집니다.
사기가 계속 낮은 상태로 유지되면, 정신이상이나 반란을 주도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유령선들의 함대.
노후하고 낡은 유령선들이었지만 규모만큼은 엄청났다.
게다가 지금도 계속 뒤에서 모여들고 있었다.
위드는 이 유령선들을 위하여 구름을 만들어서 비가 내리게 했다.
유령선들은 학천후에도, 풍량에도 강하다.
바다에서는 날씨를 조금이나마 유리하게 만드는 것도 중요한 것이다.
"우으으."
3인조가 놀라고 있을 때, 위드가 두 손을 번쩍 들었다.
바르킨의 마법서에 적혀 있는 고급 언데드 소환 스킬.
그것을 사용할 참이다.
"잠들어 있는 악령들의 혼, 여기 너희를 위한 제물을 바치니 깊은 수면 밑에서부터 떠올라 푸른 바다를 떠돌라.
유령선 마리아스 소환."
위드가 타고 있는 중형 범선이 급속하게 노후되었다.
돛대와 갑판, 용골 등의 나무가 비틀리며 메말랐다.
돛도 시커멓게 썩더니 구멍이 숭숭 뚫리고 풀려서 깃발처럼 펄럭인다.
선체의 하부에서부터 이끼와 곰팡이 들이 차오르더니 곧이어 완전한 유령선으로 변신!
"킬킬킬. 선장님,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못 본 사이에 정말 멋있어지셨군요. 위엄이 줄줄 흐르십니다."
유령선의 부선장 니크와 유령 선원들도 배에서 솟아나듯이 나타났다.
지골라스에서 하벤 왕국의 함대에 의해 끝없이 침몰했떤 마리아스호의 선원들이 위드에 의해 불려 온 것이다.
얼지 않는 강의 하류, 바다의 길목에 무질서하게 밀집해서 모여드는 유령선들.
위드가 고급 7레벨의 사자후를 터트렸다.
"전투를 준비해라!"
-스킬 사자후를 사용하셨습니다.
사자후 스킬의 영향 범위에 있는 모든 아군의 사기가 200% 상승합니다.
존재하는 모든 혼란 상태가 해제됩니다.
5분간 통솔력이 2855% 추가 적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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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얼마나 남았죠?"
"얼지 않는 강의 하류에는 아침이면 넉넉하게 도착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페일 일행이 탄 배는 지골라스를 향해서 항해를 해서 오고 있었다.
장거리 항해였지만 제피가 낚시를 하면서 신선한 물고기들을 공급해 주고,
유령선들의 뒤만 따르면 되었으니 항로를 잃어버릴 염려도 없다.
지골라스로 향하는 길에 점점 빗방울들이 굵어졌다.
벨로트가 손바닥을 내밀어서 빗물을 모았다.
마판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바다에 내리는 비라니, 낭만적이지요."
위드가 드린펠트의 함대를 피해 달아나는 모습을 그들도 마판이 소유한 상인용 마법 구슬을 통해서 봤다.
배가 늦지 않게 도착하기만 바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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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을 제대로 살피면서 차근차근 가라!"
"배가 암초들에 걸리지 않도록 주의해라."
얼지 않는 강의 수위가 높아졌다.
맑은 날에는 눈으로도 쉽게 확인할 수 있었던 커다란 암초들이 수면 가까이 내려앉아서 피하기가 어려워졌다.
드린펠트의 함대나 해적들의 항해술이 미흡한 것은 아니었다.
베키닌의 3인조 미친 상어들이 죽기 살기로 1척의 배를 몰고 지나갔을 뿐이다.
그러나 이들은 워낙에 많은 배들이 암초들 사이를 통과하느라 엉키게 되어서 훨씬 어려웠다.
여러 척 중에 1척만 암초에 걸리더라도 비키느라 많은 시간을 소요해야 했다.
"무능한 놈들. 답답하기 짝이 없군!"
드린펠트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서둘렀지만, 위드의 중형 범선이 그리 멀리 도망갈 시간을 주지 않았다.
"넓은 바다로 가면 최고 속도로 항해할 수 있으니 잡기가 정말 수월할 겁니다."
부제독, 부선장의 조언도 드린펠트의 귀에는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지골라스에서는 골탕을 실컷, 먹을 대로 먹었다.
얼지 않는 강에서도 여러 척의 배들이 가라앉았다.
바다 안개에 가려져서 위드가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불안했다.
"쾌속 선단을 앞에 먼저 내보내라. 그들에게 위드를 뒤쫓으라고 해라."
"예!"
드린펠트가 타고 있는 대형 전투선은 백병전을 대비하여 선실들이 많았고,
대포의 적재량 때문이라도 강에서는 재빠르지 못하다.
빠른 항해를 위해 태어난 플류트와 같은 소형 쾌속선들을 선두에 세우면 단숨에 위드와의 거리를 좁힐 수 있으리라.
드린펠트의 함대에서 소형, 중형 쾌속선 13척에 임무가 부여되었다.
그들은 돛을 절반쯤밖에 펼치지 않고 함대에 속해서 따라오던 중이었다.
"제독님의 명령이 내려졌다! 최대 속도로 항해한다!"
쾌속선의 함장들이 우렁차게 외쳤다.
바람을 받은 돛이 활짝 펼쳐지고, 금방 가속을 받은 쾌속선은 무시무시한 속도로 얼지 않은 강을 항해했다.
암초들을 절묘한 항해술로 넘나들면서 선두로 튀어나오며 질주했다.
그리고 잠시 후, 쾌속선으로부터 보고가 들어왔다.
-현재 위치 강의 하류 부근. 안개 사이로 우리가 뒤쫓던 배가 보입니다.
드린펠트가 조급해했던 만큼 위드와의 거리가 떨어져 있지는 않았다.
본대가 여유롭게 움직여도 충분히 잡을 수 있는 정도의 거리였다.
해상전에서 드린펠트의 함대보다 빠른 배를 가지고 있다면, 대포의 사정거리만 벗어나면 안전하게 도망칠 수 있다.
하지만 위드가 타고 간 배는 뒤쫗을 수 없는 쾌속선은 아니었다.
-곧 대포의 사거리에 들어올 것 같습니다.
쾌속선에 탑재된 대포는 많지 않았지만, 위드의 배를 공격하기에는 차고도 넘칠 정도.
그러나 드린펠트는, 아직 위드를 다른 이들에게 넘겨주고 싶진 않았다.
-쏴라. 침몰은 시키지 말고, 도망가지 못할 정도로만 피해를 줘라.
-예. 제독님.
쾌속선들은 옅어진 안개를 해치며 전진했다.
그리고 중형 범선이 보다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을 때에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건조된 지 얼마 안 되어서 새 배처럼 깨끗하던 중형 범선이, 백 년은 넘게 바다를 떠돈 것처럼 낡게 변했다.
하벤 왕국의 깃발도 내려지고, 돈더미에 않아 있는 애꾸눈 해골의 깃발이 대신 올라가 있는 것.
"유령선이 됐어?"
"다른 배들도 엄청나게 많잖아. 지골라스에 가까운 이곳에 갑자기 배들이 왜 이렇게 많이 있지?"
"모두 유령선이야. 바다의 재앙인 유령선들이 여기로 몰려들었다. 전투를 준비하라!"
위드의 배 뒤편으로 보이는 수많은 선단이 전부 유령선들이었다.
드린펠트의 함대에 보고를 할 때만 해도 쾌속선은 급히 멈추려고 했지만, 이미 바다로 뱃머리를 들이민 후였다.
위드의 사자후가 바다를 쩌렁쩌렁 울렸다.
"전 유령선! 대포 사격 준비!"
"킬킬, 대...포를 준비하자."
"대포라니, 젊었을 때는 들어 본 것 같은데, 그게 뭐였지? 씹어 먹는 거였던가?"
바다에 정박해 있는 유령선들에게 벌어지는 일들은 가관이었다.
50년은 족히 묵었을 포탄을 미역과 해초 들로 막혀 있는 대포에 억지로 쑤셔 넣는 유령들.
유령들은 부싯돌을 튀기고 칼을 교차하여 불똥을 일으켜서 대포의 심지에 불을 붙였다.
"발사!"
콰과광!
유령선들의 정비가 안 된 대포가 폭발하면서 배의 일각이 부서졌다.
"이게 제대로 발사가 되나?"
어떤 해골은 심지에 불을 붙인 후에 대포의 입구에 머리를 들이밀었다.
꽈광!
대포가 정상적으로 발사되니, 해골의 머리는 그대로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성공이다. 제대로 발사됐다. 그런데 내 머리는 어디에 있지?"
몸통과 목만 남아서 머리를 찾기 위해 갑판을 떠도는 해골!
"포탄이 없다. 예전에 배가 고파서 다 먹었나? 아니면 가지고 놀다가 잃어버렸나?"
"우리 배는 상선이라서 원래 포탄이 없다."
"말린 어육을 대신 쏘도록 하자."
유령선들 중에는 상선이나 여객선이 변한 것도 있어서, 포탄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대포는 바다를 떠돌다가 다른 배들로부터 노획한 게 있었다.
"내가 들어가야지. 킬킬킬. 간다아!"
유령들이 스스로 대포로 들어간 이후에 화약을 터트려서 발사!
과정은 엉망진창이었지만 비교적 정상적인 유령선들도 있었다.
유령선들에서 발사된 포탄들이 위드의 배를 넘어 쾌속선을 향해서 일제히 날아갔다.
형편없는 명중률이라 쾌속선의 주변으로 높은 물기둥이 치솟았다.
공중에서 포탄들이 부딪쳐서 불꽃놀이라도 하는 것처럼 폭발했다.
"회피 기동을 하라!"
"너무 많아서 피할 수가 없다! 대응 사격을 준비하도록!"
쾌속선의 함장들은 지그재그로 배를 몰며 대포 사격을 준비하려고 했다.
하지만 유령선들은 조준도 하지 않고 무작위로 쏘아 댔다.
바다로 많이 떨어졌지만, 일부는 쾌속선에 그대로 작렬했다.
갑판을 뚫고 떨어진 포탄들이 선체 내부에서 밝은 빛을 일으키며 폭발!
선체의 일각이 부서지면서 화염에 휩싸였다.
"발사!"
쾌속선들이 대응 사격을 준비했지만, 포탄이 스치면서 폭발하거나 할 때마다 선체가 크게 기우뚱거리면서 흔들렸다.
"쿠헤헤헤헬. 인간이다."
유령들마저 갑판에 오르면서 난장판이 벌어졌다.
미끈미끈하고 거대한 촉수들이 바다에서 올라와서 갑판의 선원들을 잡아채 갔다.
선체에 달라붙은, 문어를 닮을 괴물의 머리들!
쾌속선의 선장들은 다급하게 헤르메스 길드의 대화창을 열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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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링거: 유령선으로부터 공격을 당하고 있습니다. 전멸 위기입니다.
하벤 왕국 2함대의 부제독이 물었다.
파첼: 유령선들의 숫자는 얼마나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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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골라스와 하벤 왕국의 함대가 공유하는 태화 창으로, 현재는 관심 있는 헤르메스 길드원들도 대화 창을 열고 듣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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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링거: 지금 상황이... 길게 설명할 시간이 없습니다.
침몰되기 전의 마지막 통신일지도 모릅니다. 위드가 불러온 것으로 짐작되는
유령선이, 우리가 쫓는 배도 유령선으로 바뀌었는데 그들이 우리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전 전투함 전멸 위기! 긴급 구조 요청을 합니다.
파첼: 어떻게 상황이 갑자기 그렇게....... 알았다. 최대한 빨리 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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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속선들이 침몰하거나 바다 괴물의 먹이가 되고 있을 무렵에, 드린펠트가 이끄는 본대가 얼지 않는 강의 하류에 도착했다.
그들은 쾌속선이 바다 괴물들과 유령선들에 의해 공격당하는 모습을 보며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으음, 잠깐 앞서 나갔을 뿐인데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바다 괴물들에 선체가 결박당한 쾌속선들은 사실상 이미 포기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유령들이 갑판에 올라와서 백병전까지 이루어지고 있었으며, 화염을 내뿜으며 바다로 가라앉는 과정이라 구하기도 늦었다.
"이 싸움은 피해가 크겠군."
드린펠트와 하벤 왕국의 함대에 속한 유저들에게 가장 곤란하게 느껴지는 부분은, 그들이 강을 막 빠져나오는 중이라는 점이었다.
유령선들은 바다에서 대포를 쏘기에는 최적의 진형으로 넓게 펼쳐져서 기다리고 있었다.
밖으로 나가는 족족 먹잇감이 될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다.
하지만 드린펠트는 수많은 해상전을 승리로 이끈 경험이 있는 대제독!
불리한 상황을 반전시킬 만한 묘수를 꺼내 들었다.
"유령선들의 대포 명중률은 형편없다. 외부 장갑을 보강한 전투함들이 선두에 서라. 피하지 말고 정면을 뚫는다.
그리고 제1전투함대와 제3전투함대는 강을 나가서 좌우로 흩어져라. 외곽에서부터 유령선들을 공략한다."
유령선들의 숫자가 많고 바다 괴물들까지 있으니 피해는 감수하기로 했다.
압도적인 화력과 물량을 바탕으로 유령선들의 진열을 무너뜨리고 섬멸하려는 과감한 작전.
이 거대한 해전을 승리로 이끈다면 드린펠트는 지금까지의 실패를 복구하고도 남을 공적을 쌓을 수 있으리라.
유령선들에는 현상금 등이 붙어 있는 경우도 많을뿐더러, 해전에서 승리를
하면 육지의 던전 탐험과는 비할 수도 없는 명성과 전리품을 획득할 수 있는 것이다.
보통 유령선에는 보물이나 골동품이 보관되어 있는 경우도 다반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