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달빛조각사 22권 : 8 [거부한 운명] (108/520)

8 [거부한 운명]

검치 들은 본의 아니게 사냥을 포기해야 했다. 크라켄은 넓은 바다를 돌아다니기에

지정된 시간이 아니면 찾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항해 스킬이 대단히 뛰어나다면 바다 생명체들을 쫒아가서 잡는 것도 할 수 있지만,

배를 가지고 크라켄을 쫒아가기에는 속도가 너무 느렸다.

"그냥 모라타로 가자."

검치 들은 허전함을 안고 항구로 가서 벨로나 섬에서 모라타로 향하는 배편을

알아봤다.

만나는 뱃사람들마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모라타 근처까지는 가지 않습니다."

"돈을 2배로 드리겠습니다."

"요맘때의 바다는 매우 험하거든요. 파도도 높고 바람이 거세게 붑니다.

그리고 폭풍이 자주 칠 때라서, 북쪽 대륙으로 바로 접근하는 항로는 막혀 있어요."

바다에도 길이 있었다. 계절에 따라서 중앙 대륙 쪽에서 모라타로 향하는 배편은

막히기도 했던 것.

아주 솜씨가 좋은 선장을 만난다면 폭풍우를 뚫고 항해할수도 있으리라.

문제는 그런 선장들이 그리 많지가 않고, 섬에서 술이나 마시면서 쉬고 있는 경우가

드물다는 것이다. 선원 출신의 유저가, 일주일 정도를 기다리면왕국 소속의

큰 여객선이 들어온다고 했다. 여객선을 타고 3개의 왕국을 거치면

배편으로 모라타까지 갈 수 있다는 정보를 알려 주었다.

400명이 넘는 검치 들이 항구에 발이 묶였다. 그들이 가지고 있던 작은 배는

떠나기 위해서 다 팔아 버렸다.

다시 배를 구입해서 항해하는 것보다 여객선을 기다려서 타는 편이 훨씬 빨랐다.

그러던 어느 날, 검사백오치가 말했다.

"파도가 거센데...수영하면 재미있겠습니다, 사형!"

검사백오치는 폭우에 천둥 벼락까지 치는 날 바다 수영이나 하면서 놀고 싶은 마음에

그냥 무심코 한 말이었다.

그런데 사범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정말 재미있겠는데."

"그러게요, 사형. 여기서 노닥거리지 말고 수영이나 해보죠."

"우리가 이곳에 온 이유는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아니, 무엇에든 도전하기 위해서가

아니더냐?"

검치 들은 로열 로드를 통해서 몬스터와 싸우면서도 검술을 발전시켰다.

생사를 가르는 전투 그리고 보통 대련에서 경험하기 어려운, 실전을 방불케 하는 긴박감!

현실과는 차이가 있지만 경험이었고, 또한 부족한 부분을 발견하게도 해 준다.

검치 들은 주로 수수께끼를 해결하는 의뢰보다는 단순 전투를 선호했기 때문에

끊임없이 싸움을 하고 다녔던 것.

극한 상황에서의 도전도 정신력 강화를 위하여 필요하지 않은가.

검사치가 수련생들을 모아 놓고 말했다.

"우리 수영해서 모라타에 가자!"

이 자리에 뱃사람이 있었다면, 물고기 회를 떠서 쫒아다니면서라도 말릴 정도의

발언이었다.

바다에 대해 지극히 기초적인 상식이라도 있다면 절대로 하지 않을 무모한 모험.

해녀들조차도 그런 무리한 수영은 하지 않았다.

"날씨도 더운데 그럴까요?"

"사범님, 기가 막힌 생각이십니다."

"어서 모라타에 가서 맥주에 멧돼지나 1마리 잡아먹죠."

수련생들은 흔쾌히 동참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어떤 특별한 준비도 하지 않고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데 바다에 뛰어 들었다. 항구의 사람들은 정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 완벽하게 미친 짓이라니, 완전히 말도 안 되네."

"우와, 진짜 가는 거야?"

그들은 평생 잊을 수 없는 구경거리를 본 것이다.

모라타 방향으로 수영을 한 첫날째에는 그럭저럭 버틸만 했다. 검삼치와 사제들 그리고

수련생들의 괴물 같은 체력 덕분이었다.

"시원하고 좋네."

"진작 이렇게 갈걸 그랬습니다."

그러나 다음날 밤이 되고 나니, 무예인에 남다른 체력을 가진 검치 들이라고 해도

몸 전체가 노곤해지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나마 그들은 항해와 수영을 하며 물에 대해 많이 익숙해 졌다.

흐름을 거스르는 수영을 하지 않고 물결을 따라가면서 호흡까지 일치시켰다.

검삼치를 선두로 하여 검사치, 검오치 그리고 검오백오치까지, 물고기들처럼

한꺼번에 나아갔다.

오랫동안 수영을 하게 되면 힘든 것이 집중력의 저하였다.

실수를 하게 되고, 자칫 잘못 물을 마시면 그대로 깊은 바닷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검치 들은 사형제들끼리 돌봐주면서 단체로 개헤엄을 쳤다.

하늘에서 지나다니던 갈매기들조차 아래를 내려다보면 검치와 검둘치를

제외한 503명의 인간 개헤엄을 보며 놀라지 않을 수가 없으리라!

'새로운 어류인가? 잡아먹어야 돼, 말아야 돼?'

괴물 새들도 망설이며 입맛만 다시고 있을 무렵, 하늘에서 비가 떨어졌다.

바람이 거세지고, 조류와 파도도 무시무시해졌다.

-체력이 15% 이하로 감소했습니다.

-차가운 바닷물에 신체의 움직임이 경직됩니다.

-식인 물고기의 공격을 받고 있습니다.

-파도에 휩쓸려서 떠내려가고 있습니다.

끊이없이 떠오르는 경고 창은 기본!

극한의 무예인 퀘스트를 통과하면서 체력이 많이 늘어났다고 해도 바다를 건너는

건 무리였다. 검치 들이 멀쩡한 상태였을 때에는 공격을 받지 않았지만, 지치고

피로해지니 식인 물고기까지도 덤벼들었다. 멀리서는 파도 위로 상어들이 뾰족한

지느러미까지도 다가왔다.

뚜둥 뚜둥 뚜둥뚜둥뚜둥뚜둥!

마치 공포 영화에나 나올 법한 그런 광경이었다.

검삼치는 상어를 보며 희망을 가졋다.

"얘들아, 맛있는 거다!"

최고의 요리라는 상어 지느러미.

말로만 들어 봤을 뿐, 먹어 볼 기회는 없었다. 그런데 상어가 이쪽으로 오고

있지 않은가!

"덮쳐!"

"먹어 치우자!"

인간이 상어를 물어뜯기 위해 덤벼드는 기상천외한 일이 벌어지고, 15명의 수련생들이

사망하고 말았다.

육지엿더라면 간단히 사냥해서 잡아먹었을 상어지만, 파도에서 몸을 가누기가

어렵다 보니 피해가 컸다.

"요놈은 확실히 먹고 가자."

"찬성입니다, 사형."

근처에 보이는 섬에 상륙해서 상어 통구이를 만들어 먹고, 죽은 수련생들이 되살아

나기까지 기다린 이후에 계속 전진!

허기는 물고기들을 잡아먹으면서 때우고, 갈증은 바다에 자주 떨어지는 빗물을

받아 마셔 해소했다.

그야말로 극한의 고난과 함께하는 수영이었다.

온갖 잡다한 해양 몬스터들이 덤비면서, 피해는 정말 이루말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검치와 수련생들의 레벨이 대부분300이 넘는데도 네 번, 다섯 번씩의 죽음을 골고루

맞이할 지경!

아직 모라타가 있는 대륙의 북쪽까지는 절반도 오지 못한 상태였다.

이쯤이면 가까운 대륙으로 가거나, 아님녀 섬으로 가서 구조 요청을 하고 기다리자는

말이 나올 법도 했다.

하지만 다른 누구도 아닌 검치 들이었다.

힘들고, 어렵고, 위험한 일은 할부로라도 사서 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나이들.

"재밌지 않냐?"

"재밌습니다!"

"목숨이란 이렇게 걸어야 되는 거다."

"목적지까지 쉬지 말고 가죠!"

망망대해에서 수영을 하고 있을 때였다.

멀리 교역선이 보이더니 그들을 발견하고 가까이 다가왔다.

"이보시오! 배가 난파라도 당한 모양인데, 어서 타시오!"

선장고 선우너들이 조난자를 구하기 위해서 서둘러 밧줄을던졌다.

검사백팔십칠치가 고함을 쳤다.

"여기는...꾸르륵, 상관하지 말고 가십쇼."

"무언가 오해를 하나 본데, 우리는 해적이 아니오. 육지까지 데려다 줄 테니

어서 올라오시오."

선장은 상인 출신이었다. 바다에선는 조난자들을 구하려는 선량한 마음을 가진

해양 상인!

"우리는 그냥 수영을...에푸푸! 즐기는 겁니다."

"그게 뭔 소리요. 여기에는 다른 배도 안 보이는데."

교역선과 검치 들이 만난 곳은 바다 한복판이었다.

"목적지가 어딘데 그렇게 수영을 해서 가려고 하시오?"

"모...라타."

검사백팔십칠치는 수영을 하며 말을 하느라 몇 번이나 물을 마셨따.

평소에는 하지 않을 실수였지만, 체력이 극한까지 떨어져서 잘 움직이지도

않는 팔다리를 억지로 놀리는 중이었다.

"뭐요, 모라타? 거기는 대륙의 북쪽이 아니오?"

선장은 오크에게 글레이브로 이마라도 한 대 얻어맞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진짜 모라타로 가는 거야?"

"어디서부터 수영을 해 온 거야? 이틀 전에는 폭풍까지 쳤는데."

"요 근방에는 항구도 없고 마땅히 수영을 시작할 장소도 없었는데..... 그리고

모라타까지도 마땅한 항구들이 없잖아."

선원들이 혼란스럽게 떠들고 있었다.

상인 출신의 선장은 믿기가 어려워서 배를 이끌고 몇 시간 정도 따락 보았다.

그런데 정말 모라타가 있는 방향으로 끝없이 수영만 하는 이들이었다.

무지막지한 체력에 놀랐고, 또 버틸 수 없는 상태에 빠져서 깊은 바닷속으로

잠겨드는 수련생들을 보며 다시금 놀랐다.

'저런 체력이라면 엄청난 레벨을 가진 전사들일 텐데......'

상인이라서 물품에 대한 안목은 남다른 편이다.

검치 들은 가벼운 옷차림을 하고 있었지만 가죽옷만 하더라도 꽤 레벨이 높은,

어떤 것은 레벨340이 넘어야 착용할수 있는 장비들이었다.

그런 고레벨 유저들이 수영으로 대륙을 넘어갈 생각을 하다니!

전사들은 보통 잡기 어려운 몬스터들을 사냥했을 때에 스텟이나 명성을 얻는다.

하지만 그런 스탯들은 허무하게 죽었을 때에 잃어버리기도 했기에, 이것만큼은

정말 하기 힘든 모험이었다.

로열 로드를 하는 유저라면 욕심이 없는 사람이라고 해도스탯과 스킬 숙련도에

대단히 민감할 수밖에 없다. 아이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인데, 이들은 몬스터들이

있는 큰 바다를 맨몸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선장은 부러운 듯이 한숨을 쉬었다.

"참 행복한 남자들이군."

평일에는 회사에 다니는 그로서는 쌓여 있는 스트레스가 상당히 컸다. 로열로드에서

항해를 하고 물품을 교역하면서 즐거움을 찾고있었지만, 검치 들을 보니 불현듯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내가 너무 안주하고 있었던 것 같아."

교역선 선실 창고는 가격이 많이 나가는 귀금속들로 꽉꽉채워져 있었다. 베르사

대륙 전체를 통틀어서 교역 상인으로서 300위 내로 꼽힐 정도의 유저였지만,

모험에 대해서 스스로를 돌아볼 계기가 되었다.

"이번 교역만 마치고 새 배와 선원들을 구해서 그곳으로 떠나 보자!"

예전에 구했던 바다 지도. 신뢰성이 그리 높지 않다고 판단했지만, 솔직히 종이

한 장을 믿고 떠날 용기가 부족했던 것이다. 큰 바다를 가로지르며 해가 뜨는

곳을 향해 나아가다보면 해적 섬이든 무인도든, 무엇이든 발견할 게 아닌가.

가슴이 쿵쾅쿵쾅 뛰는 그런 모험을 하기로 선장은 결심했다.

그러나 검치 들이 몇 번씩이나 바다에 빠져 죽고 몬스터에게 먹히는 것을 보았다면,

모험이란 보통 생각보다 훨씬 커다란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것을 더 절실하게

깨달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치 들이 네리아해의 안쪽인 벨로나섬에서부터 출발해

해양 관문을 지나 북쪽으로 수영을 하고 있다는 사실까지 알았더라면!

아니, 어쩌면 여러 말이나 생각이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조금만 더 과감한

성격이었따면, 선장은 바로 웃통을 벗고 검치 들을 따라서 수영을 했을 것이다.

위드는 빛의 광장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자연의 조각품은 여로모로 시선을 많이 끌곤 했다. 구름이나 바람, 흙으로 장대한

풍경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하지만 꼭 큰 것만이 자연의 조각품은 아니니까."

위드가 대륙의 절정들을 돌아다니면서 만든 자연의 조각품은 당연히 베르사 대륙을

떠들썩하게 했다. 방송사들도 목격자들에게 취재를 나오고, 비결에 대해서 무수히

많은 논란이 벌어지고 있었다.

지금은 대장장이나 재봉사 들도 비기를 획득하며 새로운분야를 개척하고 있으니

아마도 그런 부류가 아닐까 짐작하는 정도였다.

계절의 변화에 따라서 절경의 모습도 달라진다.

위드가 만든 자연의 조각품들 중에는 낙엽이 떨어지거나 새싹이 돋아나는 이변을

보여 주는 것들도 있었다.

그런 장대한 모습들은 비록 인위적으로 만들어 낸 것이기는 하지만, 아름다움에는

한계가 없다.

"작은 것들로 만들어 봐야지. 내가 뭐 스킬 숙련도나 스탯, 명성을 위해서

큰 것부터 만든 것은 아니니까."

위드는 그렇게 자신을 합리화하면서 자리에 앉았다. 그러면서도 뭔가 꺼림칙하고

찔리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만날 돈만 밝히고, 부하들을 학대하고 괴롭히는 취미를 가진 나쁜 사람도

아니고... 그냥 만들고 싶은 것부터 만든 것뿐이니까 말이지."

커다란 절경 위주로 작업을 했던 것은 여동생과 여행을 다녀 본적이 없었기에,

같이 돌아다니는 것이 좋아서였다. 여행지에서 오빠로서 맛있는 것도 사 주고, 유린에게

장비도 맞춰 준 것이다.

"이건 비싸. 더깎아 주세요."

위드는 명성을 이용하여 잡화점 주인을 압박했다.

"이러면 남는 것이 없는데......"

"장사란 돈을 보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 그리고 덕을 쌓는 것이지요."

"으음, 아주 유명한 모험가께서 하는 말이니 따르도록 하지요."

사냥이나 모험에 필요한 간단한 물건들은 잡화점에서 사주고, 옷이나 방어구 들은

직접 만들어서 선물했다.

여동생과 같이 다니면서, 그녀가 그림을 그리며 밝게 웃는 모습을 보며 안심이 됐다.

'내가 잘 돌보지 못했는데도 바르게 잘 자랐구나.'

부모님이 없어서 위드가 그 몫을 해야 했다.

제대로 역할을 했는지가 항상 의심스러웠는데, 유린은 인기도 많았고 착한 미소를

자주 지었다.

위드는 어린 여동생에게 동화를 읽어 주던 때를 떠올렸다.

어린아이들의 정서 구축에 매우 중대한 부분을 차지하는 동화!

오늘은 아기 돼지 삼 형제의 이야기를 해 줄게.

부모님으로부터 자립한 아기 돼지 3마리가 집을 지었어.

1마리는 지푸라기로, 1마리는 나무로, 1마리는 튼튼하게 벽돌로 지었지.

그런데 늑대가 침입해 버리고 만 거야.

지푸라기로 지은 집은 콧바람에 날아가 버리고, 나무 집도 부딛치니까 깨져 버렸지.

결국 아기 돼지들은 벽돌집에 모여서 늑대를 물리칠 수 있었어.

이 동화의 교휸이 뭔지 아니?

위드가 기억에 똘망똘망하던 여동생은 눈을 반짝이면서 대답했다.

"튼튼한 집을 지어야 된다는 거야, 오빠?"

위드는 이때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이건 그냥 동화책의 이야기일 뿐이야. 어떤 교훈도 없어. 부동산은 처음부터 끝까지

무조건 입지야!"

"아하."

"내일은 흥부와 놀부 이야기를 해 줄게. 열심히 살던 놀부가 한탕주의에 빠진 흥부에게

당하는 내용인데......"

위드에게 가정교육을 받은 상황!

위드도 그 점을 걱정스러워하고 있었는데 유린이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것을 보며

안심할 수 있었다.

"이제 도시에서 자연 조각품을 만들어야지."

원래 계획은 모라타를 떠나서 북부 대륙의 대자연을 조각 하는 것이었다.

위험한 몬스터 출몰지를 넘어가면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장소가 많다.

데브카르트 대산 같은 장소를 탐험하며 돌아다니면서 자연 조각품을 만들어,

대재앙의 자연 조각술을익히려고 했다.

최악의 자연 파괴범이 등장하게 될 상황!

"빨리 스킬을 익혀서 몽땅 쓸어버려야지."

산불에, 홍수에, 벼락에, 지진, 해일, 화산 폭발, 빙설의 폭풍.

만들고 싶은 대재앙의 자연 조각술만 줄잡아서 수십여 가지였다.

"완전히 최고의 조각술이로군."

그런데 모라타를 돌아보면서 마음이 조금 바뀌었다.

"자연을 조각하기 위해서, 일부러 사람들이 없는 장소로 갈 필요가 있을까?"

모라타 거리에는 나무가 많이 있었다. 위드가 심어 놓은 과일 나무들이다.

하지만 그런 나무들을 제외하더라도, 도로의 네모반듯한 돌 사이로 꽃과 풀 들이

자라고 있었다.

"사람들은 너무 무심하게 지나가 버리지만, 풀 한 포기도 자연의 일부라고 할 수 있지."

위드는 광장 구석에서 20미터 정도의 공간을 확보했다.

빛의 광장은 새롭게 만들어진 장소이고, 또 대성당 공사가 옆에서 벌어지고 있기

때문에 유저들이 굉장히 많이 오고 간다.

하지만 상인들은 대체로 사람들이 많은 분수대 주변에서장사를 하려고 했기 때문에

구석 자리에는 넓게 빈 공간이 충분히 있었다.

사실 유저들이 광장에 모이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여러 물품들을 늘어놓고 장사를 하기 편하고 넓다는 것도 물론 그 한 가지 장점이었다.

하지만 그뿐 아니라, 성 앞에서 겨우 사냥을 하던 초보 시절부터분수대에서 수통에

물을 채우는 버릇을 누구나 갖고 있었다. 당연하게 분수대 주변에 사람들이

몰리게 되었으며, 그 덕에 상권이 형성된 것이다.

위드는 작업을 하는 공간에 검은 천을 두르고 흙으로 꽃과 풀을 조각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죽은 자의 힘은 점점 감소해서, 퀘스트의 날짜까지 사흘이 남았을 때에는 140 이하로

줄어들었다.

그때부터는 위드가 만들어 놓은 여러 조각품들에 남아있던 부정적인 기운들이 말끔하게

사라졌다.

명절에 목욕탕을 갔을 때만큼이나 개운한 기분이었다.

100일이 넘게 자연과 관련된 조각품만 만들면서 해낸 업적!

"이 조각품은 이제 마무리를 해야겠군."

바르칸의 퀘스트를 딱 하루 남겨 놓고 조각품의 마지막 작업이 끝나고 있었다.

퀘스트는 자유롭게 취소할 수도 있었지만, 혹시나 어떤 의뢰가 나올지 모르기에

기다려 보기로 했다.

위드는 구석에서 풀이나 꽃을 하나하나 만들고 있었기에 엄청난 높이의 조각품을 제작할

때처럼 크게 이목을 끌지는 않았다. 가까이 다가와서 본다면 실제처럼 보일 정도의

작품에 놀라겠지만, 마판에게서 마차를 빌려 담장처럼 둘러서 시선을 막았다.

그 덕에 대규모 공사와 장사를 하는 광장의 소란 속에서도 비교적 편안하게 작업을

할 수 있었다.

"이것으로 완성이다."

위드는 흙으로 마지막 꽃을 조각했다.

-만드신 조각품의 이름을 정해 주십시오.

이번에 만든 작품은 여동생과 함께 베르사 대륙을 여행하면서 보았던 야생화들을

집대성한 것이었다.

꽃과 풀이 무성하게 자라 있는 조각품이란, 인형의 눈을 붙이던 시절이 떠오르게

만들 정도였다.

하지만 막상 작품을 완성해 놓고 나니 고생한 흔적을 남기고 싶지 않은 마음!

"놀다가 심심해서 만든 화단? 아니야. 왠지 날카로운 사람들한테는 고생해 놓고

일부러 허술하게 이름을 지은 티가 난다는 소리를 들을 것 같아. 그냥 광장의 조각품?

특징이 부족해."

고생해 놓고, 대충 만든 것 같은 이름을 지으려는 위드의 속셈!

대성당이 지어지고 있는 빛의 광장 주변이기에 엄청난 인파가 작품을 감상하게 될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작품의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모르지만, 지금의 느낌상으로는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야생화들과 야생초들이 자라 있는 장소에 나비와 벌, 새들도 함께 조각을 해 놓았다.

꽃밭에서 날개짓을 하는 나비, 꿀을 빨아들이는 벌, 꽃나무에 앉아서 둥지를 만들고 있는 새.

언젠가는 주변에 나무들도 심어서 대자연에 있을 법한 휴식과 평화의 숲을 만드는 것이다.

"당연히 주로 과일 나무들을 심어야겠지만...... 아무튼 조각품의 이름은 소박한! 화단으로 하지."

-소박한 화단이 맞습니까?

"맞아."

모라타의 영주로서 주민들에게 이 정도는 어려운 게 아니었다고 보여 주어야 하는 자존심!

친구들이 연봉을 물어봤을 때에 그냥 얼마 안 된다면서 세금과 연금을 떼기 전의

액수를 말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였다.

띠링!

명작! 소박한 화단

흐드러지게 꽃들이 피어 있는 화단.

무성하게 자란 야생초와 야생화 들을 표현한 작품이다.

무질서하기 짝이 없지만 자연의 생기가 흐른다.

서적에나 남아 있을 정도로 대륙에서 찾기 힘든 희귀한 꽃들도 조각 되어 있다.

한 송이의 꽃마다 조각사의 손에 의해 만개된 아름다움을 표현함.

꽃들의 역사에 기록될 만한 작품.

자연의 힘이 깃든 조각품이다.

예술적 가치:3,871

특수 옵션:소박한 화단을 바라본 이들은 생명력과 마나 회복 속도가

          하루 동안 23% 증가한다.

          생명력의 최대치 37% 증가.

          작품을 감상함으로 인해 약초학 스킬의 숙련도를 증가시킬 수 있음.

          농부와 정원사의 스킬 레벨 효과 3% 증가.

          지역에 식물 몬스터들의 성장을 촉발함. 탄생한 식물 몬스터들은

          주로 숲과 들에서 자라나며, 비교적 인간들에게 온건한 성향을

          가질 가능성이 높음.

          고산지대에 차 밭이 생겨납니다.

          관광과 농업이 발달한 지역이라면 계절에 따라서 특정 축제들이

          발생할 수 있음.

다른 조각품과 중복 적용되지 않음.

지금까지 완성한 명작의 숫자:15

-조각술 스킬의 숙련도가 향상되었습니다.

-손재주 스킬의 숙련도가 향상되었습니다.

-조각품에 대한 이해의 스킬 레벨이 1 상승하였습니다.

-명성이 625 올랐습니다.

-예술 스탯이 12 상승하셨습니다.

-체력이 4 상승하셨습니다.

-생명력이 380 증가합니다.

-인내가 3 상승하셨습니다.

-지구력이 3 상승하셧씁니다.

-명작 조각품을 만든 대가로 전 스탯이 1씩 추가로 상승합니다.

-자연 조각술 스킬의 레벨이 중급 6으로 상승했습니다.

-스킬 대재앙의 자연 조각술을 익히셨습니다.

-조각술 최후의 비기와 관련된 퀘스트 '찬란한 아름다움의 표현법'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조각술의 영광의 대지, 그곳을 지키는 사람과의 대화로 퀘스트가 시작됩니다.

여러 단계로 이루어진 퀘스트로, 난이도가 매우 높으며 실패할 수도 있기 때문에

조각술 스킬들을 충분히 올려놓고 시도하는 것을 권장합니다.

조각술의 최후의 비기!

위드는 설마하니 5개나 되는 조각술의 비기를 자신이 몽땅 모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조각 검술, 조각품에 생명 부여, 조각 변신술, 정령 창조 조각술, 대재앙의 자연 조각술!

"하나씩 모으다 보니 결국 여기까지 왔군."

최후의 비기.

이것이야말로 꼬박꼬박 동전을 넣어서 돼지 저금통이 가득 찼을 때의 기쁨!

공짜로 얻을 수 있는 건 물론 아닐 테니, 준비가 많이 필요하리라.

"아직 퀘스트를 받은 건 아니지만 이걸 실패해 버린다면........"

배를 가른 돼지 저금통에 동멩이만 가득 담겨 있는 상황이 되리라.

"커허허허헉!"

위드는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웠다.

지금이야 여러모로 성격이 많이 괴팍해졌지만, 어릴 때를 반추해 보면 한없이

순수하기만 하던 시절도 분명 있었다. 그때로 돌아가서 돈가스를 먹더라도

마음의 안정을 찾기가 어려워지리라.

"아무튼 조각술 스킬은 곧 8레벨이 되겠군."

현재 조각술 숙련도는 고급7레벨 99.3%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해 겨우 0.7%가

모자란 상황이었다.

조각품을 완성하고 나니, 돌과 흙으로 빚어낸 꽃과 풀이생기를 머금었따. 바람에

가볍게 흔들리며, 잎사귀들이 점점 푸르게 변했다. 그리고 진한 향기가 사방으로 번졌다.

조각품으로 만든 나비와 벌 들이 아니라, 진짜 곤충인 나비와 벌 들이 날아와서

꿀을 가져가고 꽃가루를 옮겼다.

위드가 조각한 꽃과 풀 들은 처음 만들어졌을 때와 비교해서 외관상의 모습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그런데 그 이후 부터 시간을 빨리 돌린 것처럼 근처의 흙과

담장 사이에서 무수한 꽃들이 뿌리를 내리고 줄기들이 자라났다.

아기자기하고 예쁜 꽃망울들이 터졌다.

모라타를 다채로운 색으로 수놓으며 퍼지는 꽃과 풀 들!

빛의 광장을 시작으로 삭막해지려던 도시에 꽃잎들이 날리기 시작했다.

어느새 제법 골조가 올라간 대성당과 대도서관 그리고 시장의 상인들, 용병 길드와

상점, 호숫가에 앉아 있던 유저들이 꽃잎들을 보았다.

띠링!

야생화 축제가 개시됩니다.

야생화 브리피아는 봄을 알리는 꽃입니다.

베르사 대륙의 북쪽 들판과 언덕, 강가에서 개화하던꽃으로, 주민들이 사랑을

고백하는 데에 많이 쓰였습니다.

축제 기간 동안 주민들의 행복도가 상승합니다.

체력 회복에 도움이 됩니다.

모라타의 지역 명성을 증가시킵니다.

방문객들을 늘려 관광산업의 발달을 촉진합니다.

꿀의 생산을 800% 증가시킵니다.

사람들은 브리피아가 화사하게 피어 있는 장소에서 시간을 보냈다.

"어쩌면 좋아. 꽃이 정말 예뻐. 향기도 좋고....."

용기 있는 여성들은, 초보자와 고레벨 유저들을 막론하고 머리에 꽃을 꽂기도

했다.

매력도를 올려 주는 유용한 악세서리!

위드가 의도하지 않았던 야생화 축제였다.

"꽃은 정말 쓸모가 없지. 돈을 주고 사는 사람들을 진짜 이해할 수가 없어.

졸업식이나 입학식에 꽃을 선물해 봐야 다 헛짓이지. 나중에 버릴 때 쓰레기봉투값까지

들잖아."

위드의 마음은 삭막하게 메말라서 선인장조차도 살 수가 없었다. 그저 유린이 꽃밭을

보며 좋아하던 기억 때문에 조각을 한 것인데, 이런 축제로까지 번질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뭐, 나쁘지는 않겠군. 모라타에 퍼져 나간 꽃들을 유지하는 데 따로 돈이 드는 것도

아니니까. 주민들이 즐거워한다면 이것도 괜찮을 거야."

마차들로 막아 놓고 있었지만, 나비와 벌 들이 조각품이 있는 곳을 중심으로 해서

날아다니고 있었다. 다른 유저들이 무언가가 있음을 알고 달려오는 건 시간문제였다.

위드가 자리를 뜨고 나서, 나비들을 따라서 온 유저들은 조각품을 발견했다.

바르칸의 호출 퀘스트가 시작되는 날.

위드는 모라타에 남아서 조각품을 만들었다.

정확히 자정이 된 시간에, 그의 눈에 불사의 군단과 관련된 영상이 흘러나왔다.

서늘한 안개와 축축한 물이 흐르는 계곡.

오래된 나무들이 제멋대로 꺾여서 자란 음습한 곳이었다.

햇빛도 듬성듬성 비치는 그곳에서 어떤 소리가 들렸다.

덜그럭 덜그럭.

부자연스러운 금속과 뼈마디 들의 마찰음이 들리고 난 뒤에,스켈레톤 부대가

계곡 아래에서 올라오고 있었다.

끊임없이 밀려드는 그들은 계곡을 넘어서 아무도 돌보지않는 넓은 들판과

숲을 지났다.

어마어마한 숫자의 스켈레톤들이 대열을 이루어서 진군을 하고 있었다.

그들의 목적지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큰 바위틈!

벌써 도착한 스켈레톤과 둠 나이트 들이 던전의 내부로 들어가서 전투를 벌이는 중이었다.

"이 냄새 나는 것들아, 썩 꺼져 버려라!"

다리 짧은 드워프가 도끼를 휘둘렀다.

그가 도끼를 휘두를 때마다 스켈레톤들이 박살이 나서 흩어졌다.

엘프와 페어리족, 바바리안 들도 함께 방어선을 구축하고 전투를 벌였따.

"언데드들이 넘어옵니다. 쏘세요!"

아리땅누 엘프 소녀들이 활시위를 놓는 순간, 빛의 화살들이 둠 나이트들의 몸을

꿰뚫었다.

불사의 군단과 여러 종족들의 전투가 벌어지는 장면들이 흘러나오고 나서, 화면은

다시 바르칸이 있는 곳으로 바뀌었다.

큼지막한 도마뱀의 뼈로 만들어진 옥좌에 앉아있는 바르칸!

그의 가슴에는 성검이 신성력을 발휘하면서, 뭉게뭉게 퍼지려고 하는 바르칸의 흑색

기운을 억제했다.

바르칸이 턱뼈를 달그락거리며 말했다.

"곧 불사의 군단이 일어나서...모든 것을 쓸어버릴 것이다."

띠링!

어둠의 주술사이며 네크로맨서인 바르칸 데모프.

그가 이끄는 불사의 군단과 싸우기 위하여, 대륙의 정의로운 교단들과 여러

종족들이 힘을 합쳤다.

죽은 자들과 산 자들의 싸움!

전투에서 패배한 바르칸은 육체의 일부를 잃어버리고, 생명력과 마나를 봉인한

원천에도 균열이 발생하고 말았다.

바르칸은 소생을 위하여 짐승과 몬스터 들의 생명을 흡수하던 도중에 테네이돈의

수호의 드워프들에 대하여 알게 되었다.

드워프들이 데이고 있는 페어리들의 여왕 테네이돈!

페어리들은 장난기가 많고 지니고 있는 재주가 뛰어나지만, 자유분방한 성격 탓에

크게 세력을 이루지 못했다. 인간과 몬스터들에 의해 페어리들에게 안전한 땅은

갈수록 줄어들었다.

상처 입은 페어리들의 여왕 테네이돈은 다른 페어리들과 함께 드워프들이 있는

장소에서 날개를 치료하고 있다.

테네이돈이 힘을 되찾기 전에 바르칸이 그녀의 생명을 흡수하면 리치의 손상된

마나의 원천을 복원할 수 있으리라.

바르칸은 테네이돈을 먹어 치워 자신의 힘을 되찾고, 페어리들을 언데드들로

만들며 성검을 소멸시킬 것이다.

바르칸이 원래의 힘을 되찾는다면, 불사의 군단은 다시 이 땅에 완전하게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바르칸은 제자인 리치 샤이어의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다.

-바르칸 데모프에 대한 퀘스트 정보를 획득하셨습니다.

-바르칸이 흑마법으로 그의 제자 샤이어를 위한게이트를 만듭니다.

위드가 서있는 영주성의 방 앞에 흑색의 게이트가 열렸다.

"바르칸이 원래 힘을 되찾는다면 무시무시하겠지."

베르사 대륙의 모든 교단의 성기사와 사제 들, 군대와도 대적할수 있는 언데드 몬스터!

눈앞에 포탈까지 열려 있으니 바르칸의 위협이 위드에게 피부로 느껴졌다.

"포탈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면 아마도 바르칸의 제자가 되어 테네이돈의 드워프들을

처리해야 되겠군. 여러 이종족들도 함께."

불사의 군단에서도 마법을 얻고 세력을 키울 수 있을 것이다.

조각 변실술로 얻은, 리치 샤이어의 신분에서만 진행할 수 있는 퀘스트인 것이다.

"바르칸이 모아 놓은 보물들이 엄청 많을 거야."

위드가 성큼 포탈로 발걸음을 옮겼다.

머릿속에 들어 있는 생각은 '돈 돈 돈 돈 돈 돈, 보물 보물 보물'.

그런데 막 들어가려던 순간 걸음을 멈췄다.

"하지만 전쟁에서 패배한 이후로 모아 놓은 보물이 없을지도 모르는데."

대륙을 제패할 뻔했지만, 말 그대로 하려다가 만 거다.

이런 경우는 쫄딱 망했다고 봐야 하지 않는가!

유니콘 사의 홍보부 팀원들이 영상실에 모여 있었다.

로열 로드에서 진행되는 유저들의 모습을 실시간으로 볼수 있는 장소였다.

장윤수 팀장을 비롯하여 본사의 팀장급 직원들과, 운영 전담 부서의 직원들도 모였다.

그들이 보는 화면에서는, 앞에 열린 포탈로 들어갈지 말지를 고민하는 위드의 모습이

나오고 있었다.

수인혜 대리가 물었다.

"위드의 결정은 무엇일까요?"

"아직은 모르겠군요. 어떤 선택을 할지 종잡을 수가 없는 인물이라서요."

장윤수 팀장도 전혀 예측할 수 없었다.

보통 때의 위드라면 철저하게 계산적으로 움직인다. 돈, 보상이 큰 쪽으로 달려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1쿠퍼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성격.

하지만 의뢰외 관련되면 보통 다른 유저들이 하지 않는 선택을 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모험을 하기도 했기 때문에 판단하기 어려웠다.

위드가 한참이나 갈등을 하다가 아예 자리에 주저앉아서조각품을 만드는 것을 보면서,

유니콘 사의 직원들은 쏟아지려는 욕을 참아야 했다.

현실과 로열 로드에서는 시간차이가 있었다.

방송사에서 생방송을 할 때에도 문제가 되었던 부분이지만, 보는 입장에서는 상관할

필요가 없다. 4배나 되는 속도로 영상이 나오므로, 불필요한 부분을 삭제하고 빨리

넘겨 버리면 되는 것이 아니던가.

"앞으로 넘겨 보세요."

현재 진행하고 있는 부분으로 넘겼는데도 계속 조각품만 만들고 있는 위드였따.

그것도 아주 먹있는 조각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지네와 송충이를 조각하고

있었다. 아마도 화단에 넣어 두면 무난한 작품이 나오리라 기대하는 모양인 듯!

"한참 걸리겠군요."

"바르칸의 퀘스트는 언데드와 네크로맨서 들에게 일대 전환점이 될 수 있는 의뢰인데

빨리 결정하지 못하다니, 아쉽군요."

지금 이 순간, 위드만이 아니라 베르사 대륙의 마법사들중에서 네크로맨서로 전직한

이들은 모두 바르칸의 부름을 받고 있었다. 위드가 리치 샤이어로서 그 자리에 간다면

중심축이 되어 예측할 수 없는 변화를 일으킬 수 있으리라.

바르칸의 퀘스트 독점도 엄청날 테지만, 베르사 대륙 전역에 있는 네크로맨서들도

포함되는 대규모 의뢰였다.

유니콘 사의 임직원들은 위드를 좋아했다.

조각술의 비기를 5개나 획득하거, 세기의 모험을 하는 조각사!

바드레이나 다른 명문 길드들의 수장과 함께 사람들의 입에 항상 오르내리는

유저였다.

"결정하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것 같으니까 우선 다른 화면을 보죠."

본사의 직원들은 모니터에 다른 장소의 영상을 띄웠다.

대지의 그림자.

로자임 왕국을 발견하고, 절망의 평원에 최초로 발을 들여 놓았던 모험가 파티!

최근에는 대표적인 모험가로 위드를 꼽고 있지만, 베르사 대륙에 유저들의 발길이

닿은 이래 가장 많은 업적을 남긴 모험가 파티였다. 한동안 사람들의 입에 떠오르지

않던 그들은 숨겨진 의뢰들을 달성했다. 그리고 현재는 13단계로 이루어진 난이도

S급 연계 퀘스트의 마지막 부분을 진행하는 중이었다.

"크흠, 조심해. 여기까지 와서 망칠 수는 ㅇ벗으니까."

"콜록! 무슨 놈의 먼지가 이렇게 많아."

도굴꾼 엘릭스와 도둑 은링, 침입자 벤이 종이와 골동품을 뒤졌다.

퀘스트의 작은 실마리라도 있으면 베르사 대륙의 어떤 곳이라도 달려갔던

힘든 과거가 떠올랐다.

"난이도 C급의 의뢰가 여기까지 올 줄은 정말 몰랐지."

"그러게요. 1년을 훨씬 넘겨서 거의 2년 가까이 진행했잖아요."

연계 퀘스트들을 해결하고, 한편으로는 관련된 부속 의뢰들까지 말끔하게 해결했다.

그러다 보니 의뢰의 난이도가 점점 높아지고, 구해 오라는 물건들도 많아졌다.

베르사 대륙의 역사에 대해 해박한 이들을 찾아다니고, 현자들도 만났다.

모험에서 모험으로 이루어진 여정의 결말 부분.

엠비뉴 교단으로 잠입하여 그들이 가지고 간 물건을 되찾아오라는 발할라 신전의

의뢰!

엠비뉴 교단의 기사들은 레벨이 420을 넘을 정도로 강력하기 짝이 없었다.

물론 레벨만 놓고 보자면 대지의그림자 파티도 그리 꿀릴것은 없었다.

하지만 발각되는 순간 엠비뉴의 전투 교단에서 사제들과 마법사, 주술사, 암흑 기사

들이 떼거지로 몰려나온다.

엘릭스가 우회할 수 있는 통로를 발견하고, 은링의 용병들을 구해서 적들을

유인했다. 신전의 내부로 잠입한 이후에는 사제와 기사 들을 처리해 가며 최단거리로

이동하면서 보관소까지 온 것이다.

신전에는 아직도 남아 있는 기사와 사제 들이 바글바글했다.

"서둘러. 놈들이 언제 이곳으로 들어올지 모르니까."

"먼지 쌓인 골동품들만 가득한데 언제 들어오기나 하겠어요?"

"모르지. 그래도 침입자들을 발견해서 소란이 있었으니 이 안으로도 들어와

볼 수 있어. 조심해서 나쁠 건 없잖아."

NPC의 지능을 우습게 여겼다가는 큰일이 난다. 더구나 그들의 장기는 탐색과

침입, 도굴 등으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가능한 한 안전하게 빠져나갈 작정이었다.

"여기를 빠져나가기만 하면 레벨이 2~3개는 오르겠군. 스킬도 많이 오를 거야."

"그나저나 발할라의 신전에서 의뢰한 물건은 어디에 있는거지."

가득 쌓인 골동품들 틈바구니에서 역사적인 유물들이 아무렇게나 바닥을

굴러다녔다.

은링이나 엘릭스나 보물 탐색에는 뛰어나서, 귀중한 유물들은 확실히 챙겼다.

나중에 퀘스트와 관련되어서 필요해질지도 모르고, 잘 조사해 보면 고고학 스킬을

크게 높일 수도 있다.

모험가에게는 필수적인 스킬로, 역사서를 통해 의뢰를 발견할 수도 있었다.

작은 마법의 등불을 켜 놓고 조용히 작업을 하는 그들!

퀘스트를 위한 단서를 찾으며, 은촛대나 금으로 된 쟁반 등은 배낭에 넣었다.

이런 순간이야말로 모험가의 희열이 불타오르는 시간!

"이거다!"

벤이 철 상자 안에 보관되어 있던 횃불을 꺼냈다.

"감정!"

정의의 횃불:내구력23/102. 공격력49~91.

어둠을 물리치는 횃불.

엠비뉴 교단과의 항전에서 선두에 섰던 발할라 교단의 투사 다라테스가 들었던

횃불이다.

제한:명예, 통솔력 600이상.

옵션:모든스탯 +25.

     투사의 스킬 레벨 +2.

     스킬의 파괴력 강화, 정확도 향상.

     부상에 대한 회복 속도가 40% 빨라짐.

     발할라의 축복 사용 가능.

     야행성 몬스터들의 성향을 억제함.

     흑마법을 83%까지 효과적으로 방어.

     매혹과 현혹, 정신 조작에 걸리지 않음.

     발할라의 투사들을 결집시킨다.

발할라 교단 최고의 투사 다라테스가 들었던 물건!

문헌에 의하면 엠비뉴 교단과의 싸움에서 다라테스가 죽은 이후로 사라졋던

물건인데, 벤이 찾은 것이다.

그때 창고 밖에서 소란스럽게 달려오는 소리가 났다.

"용벙들 27명을 벌써 처리한 모양이에요."

"최대한 방어만 하라고 했는데...10분도 버티지 못했군."

"용병 대기소에서 구한 녀석들이 다 그렇죠, 뭐. 물건은 찾았으니 어서가요!"

벤이 아껴 두었던 스크롤을 꺼냈다.

귀환의 스크롤!

하지만 엠비뉴 교단의 신전에는 마법 장애가 펼쳐져 있기 때문에 정상적으로

작동하지는 않는다. 신전 근처 500미터떨어진 지점으로 떨어지게 될 테니,

그곳에서부터는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도망쳐야 하는 신세였다.

"가자!"

벤은 스크롤을 찢었다.

보관소의 문이 부서지면서 엠비뉴 고단의 괴물 하인들과 기사들이 비집고

들어오는 순간이었다.

기사들이 분노에 차서 뭐라고 말하려 할 때, 그들 셋은 빛과 함께 사라졌다.

"제대로 찾아냈군요."

유니콘 사의 직원들은 손에 땀을 쥐고 그 광격을 지켜보았다.

신전 경계망의 좁은 틈을, 비밀 통로를 찾아내 숨어들고 용병들을 투입해서

뚫는 솜씨는 칭찬해 주고 싶을 정도로 뛰어났다.

최고 난이도의 연계 퀘스트를 13단계까지 진행하다니, 의뢰의 진행 속도가

그들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다.

"대지의그림자라는 파티가 받은 퀘스트는 여기서 끝인가요?"

장윤수 팀장은 손일강 실장에게 질문했다.

전략운영실을 제외한 다른 팀에서는 의뢰에 대한 정보를 알지 못하며, 이곳에도

초대받은 손님일 뿐이었다.

"아직 끝난 것은 아니지만 다음부터는 난이도가 확실히 어려워져서 앞으로

더 갈 수 있을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이 퀘스트의 성공으로 무엇이 바뀔까요?"

"앞으로는 유저들끼리의 전쟁만이 아니라 엠비뉴 교단이 정식으로 등장하고,

또한 본인의 의지에 따라 악을 선택할수도 있게 되겠죠."

"광고를 새로 제작해야겠군요."

유니콘 사에서는 전 세계의 방송국에서 광고를 개시했다.

사실 로열 로드는 더 이상 홍보가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최고의 자리에 올라 있다.

캡슐의 생산량이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그리고 세상의 돈을 빨아들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기업.

그래서 실제로 그들의 광고는 대륙에서 일어나는 변화들을 유저들에게 보여 주는

역할을 했다. 게임 방송국이나 유저들의 정보 교환만으로는 알 수 없는 베르사

대륙의 여러 가지들을 적당한 때에 알려 주는 것이다.

물론 몇 개월에 한 번씩 광고를 내보낼 때마다 신규 유저들의 숫자는 그야말로

무시무시할 정도로 늘어났다.

드넓은 사막!

하이에나들이 어슬렁거리면서 먹잇감을 노리고 있었다.

하이에나는 개개의 무력은 약하지만 집단 공격을 하기에, 대여섯이 모이면 사자도

꼬리를 말고 피해야 한다.

전갈들이 꼬리를 곧추세우고 돌아다니고, 멀리에는 부족민들이 세운

부락이 있었다.

힘과 강철이 지배하는 전사들의 고향.

화면은 전환되어서 맑은 호수를 비추었다.

물안개가 피어 있고, 나무들이 수면에 비치는 호수의 새벽!

요정들과 엘프들이 커다란 잎사귀를 타고 뛰어놀았다.

그리고 다시 장면이 평원으로 바뀌어서 갑옷을 차려입고 검과 방패를 든 병사들이

대규모로 이동하는 모습이 보였다.

무자비한 파과와 정복!

전란이 끊이지 않는 중앙 대륙!

요새와 성에서 병사들을 통솔하는 영웅들의 고함 소리, 화살과 마법이

빗발치는 전장의 장면들이 나왔다.

수만 명의 병사들이 싸우는 모습은 웬만한 전쟁 영화보다 더 대단했다.

그리고 어디선가 대거 이동하는 검은 로브를 입은 수도자들의 모습!

그들은 감춰져 있던 신전에서 몬스터들의 사체를 바치면서 제전을

열었다.

엠비뉴 교단의 제7 교주 사흐란이 선포했다.

"준비는 끝났다. 어리석고 연약한 인간들과 엘프, 드워프들을 평등한 파괴의 율법으로

다스리리라!"

중앙 대륙이 전쟁으로 혼란스러운 가운데, 엠비뉴 교단이

정식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악의 세력의 전면 등장!

 영상은 여러지역들을 빠르게 비추면서 지나갔다. 여전히

몬스터들과의 샤냥이 주를 이루거나 평화로운 지역이 많은

베르샤 대륙.

 산과 들, 강과 호수, 바다, 성, 마을, 요새들이 흘르가듯

이 보였다.

 모라타가 있는 북부도 짧게 스쳐 지나갔다.

 흑색 거성과 조각품들, 판자촌을 비롯한 주택들이 멀리서

눈곱만큼 작게 보였고, 유저들이 대성당과 대도서관의 웅장

한 거축물을 세우는 모습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였다.

 "역시 취소하는 편이 좋겠어"

 위드는 흑색 포탈로 들어가지 않기로 결정했다.

 불사의 군단에 휘말려서는 나쁜 관계를 너무 많이 지속하

게 되는 것이다.

 딱 일곱 살 이후로 잊고 지냈던 양심이나 도덕심 따위가

갑자기 떠올랐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베르사 대륙의 북부에서 가장 크고 번성하고 있는 도시는

모라타!

 언데드 군단을 이끌고 모라타를 침략해야 하는 경우가 생

기지 말란 법도 없다.

 "바르칸과는 여기서 끝내는 편이 낫겠지. 퀘스트를 포기한다."

 -다시 한 번 확인하겠습니다. '바르칸의 호출' 퀘스트를 받아들이지 않

  으시겠습니까?

  불사의 군단과, 바르칸 데모프와 연관된 리치 샤이어의 하나뿐인 의뢰

  입니다.

  경고!

  의뢰를 거부하였을 경우에는 바르칸과의 관계가 악화되며, 그에 따른

  적대도 증가로 인하여 이롭지 않은 일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무시무시한 메세지를 보면서도 위드는 흔들리지 않았다.

 "가지 않겠다."

 -퀘스트를 거부하셨습니다.

  신앙심이 50 증가합니다.

  기품과 용기, 정신력이 10씩 증가합니다.

  명성이 2,439 감소합니다.

 "역시 사람은 착한 일을 하면서 살아야 돼."

 이 정도의 페널티라면 위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적

지 않은가!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 오히려 기쁠 정도

였다.

 끝난 줄 알았던 위드에게 영상이 흘러나왔다.

 꽈과과광!

 하늘은 온통 먹구름에 덮이고, 벼락이 지상으로 꽂히듯이

내려치고 있었다. 수백 년의 시간을 버텨 왔을 고목이 갈라

지고, 들판에서는 빗방울 속에서도 화염이 크게 번졌다.

 언데드 군주 바르칸 데모프는 언덕 위에 서 있었다.

 벼락이 칠 때마다, 누추한 로브를 입고 있는 앙상한 해골

이 비쳤다.

 "샤이어, 너는 나에게서 떠나지 못하리라. 나를 배반한

벌을 받으이라. 영겁의 시간 속에서, 영원한 고통을 당할

것이다!"

 울부짖는 듯한 고함 소리가 천둥 치는 사이로 들렸다. 그

리고 땅이 들썩거리면서 언데드들이 일어났다.

 언데드들에게 퀘스트가 발동되었습니다.

 살아생전 많은 죄를 지었던 언데드들에게 기회가 부여됩니다.

 바르칸이 그들에게 명령했습니다.

 "나를 배신한 자를 죽여라. 그러면 그 영원한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을

 것이다!"

 언데드들에게 땅으로, 밤으로 바르칸의 뜻이 전해졌습니다.

 처벌을 위해 무덤에서 일어난 언데드들이 모라타를 침공하게 됩니다.

위드에게는 나쁜 소식!

 샤이어로서의 인연은 이것으로 끝났지만, 다시 메세지 창이 떴다.

 뿌리 깊이 파고든 타락의 씨앗은 쉽게 제거되지 않습니다.

 죽은 자의 힘은 언데드의 권능!

 삶과 죽음의 경계로 오가게 됩니다.

 태양이 떠 있을 때는 인간으로 활동할 수 있지만, 원혼들의 힘이 강

 해지는 밤에는 언데드가 됩니다.

 인간 네크로맨서들도 언데드 소환을 많이 하다 보면 죽은

자의 힘에 의하여 실제 자신이 그쪽 분야에 발을 내디뎌 가

끔 언데드가 되기도 한다. 저주 스탯의 일종이었지만 자연스

러운 과정이었고, 관련 스킬들도 키울 수 있다.

 지금은 마침 새벽!

 몸이 급속도로 마르고 부패해 갔다.

 -죽은 자의 힘에 의하여 언데드가 되었습니다.

 위드의 의사에 따라서 조각한 리치 샤이어나 다른 고위 몬

스터가 아니라, 무덤가에서 흔히 녹슨 장검을 들고 돌아다니

는 기본형 스켈레톤이었다.

 밤의 부름!

 바르칸이 특수한 퀘스트를 위해 언데드들을 소환합니다.

 언데드들은 소환을 거부하지 못합니다.

 위드는 강제적인 힘에 의해 흑색 포탈로 빨려 들어갔다.

                                     TO BE CONTINUED.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