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3마리의 본 드래곤
사제들의 공격이 성공했음에도 바르칸의 생명력은 죽음과는 거리가 한참이나 멀었다.
시체와 살아 있는 생명만 있다면 군대를 만들고 무한에 가깝게 생존하는 것이 리치다.
"깨어나라, 나의 부하여……!"
바르칸이 외치자, 땅에서 높이가 5미터 정도 되는 스톤 골렘이 일어났다.
거의 천장에 닿을 정도의 키에 무식해 보이는 두께의 팔 다리!
고위 네크로맨서들은 골렘 종류의 가디언을 하나씩 데리고 다니는데, 바르칸의 경우에는 스톤 골렘이었다.
쿠르르르릉!
스톤 골렘이 팔을 휘두르자 성기사들이 나가떨어졌다.
골렘이 뛰어다닐 때마다 땅이 울리고, 천장에서 돌가루들이 떨어졌다.
철벽과도 같은 방어력과 체력, 공격력을 가졌다.
마법으로 만든 가디언이기 때문에 신성 마법에는 피해를 입지 않는다.
"조심해라. 이놈도 확실하진 않지만 레벨이 400대 중후반 정도는 되는 것 같다."
"바르칸에게 가려면 골렘의 방어부터 뚫어야 될 것 같은데."
"골렘부터 해치우자."
바르칸 1명만 상대로 하니 단순할 줄 알았던 전투가 금방 난장판이 됐다.
보통 마법사들을 작은 공격을 한두 번만 당하더라도 마법이 취소되어 버리고 마나에 요동이 생긴다.
그런데 바르칸은 사제들의 빛의 구와 턴 언데드 마법을 계속 맞으면서도 건재했다.
리치의 높은 마법력 덕분에 외우고 있는 마법이 취소되지도 않았다.
"쫓아가는 화살!"
페일과 메이런은 화살에 마나를 가득 모아 바르칸을 향해 쐈다.
바르칸도 어쩔 수 없는 마법사라서 주문을 외울 때에는 격렬한 회피 움직임을 하진 않기 때문에 백발백중이었다.
그런데 자잘한 공격은 맞아 주더라도 상관이 없는 것 같기도 했다.
리치의 특성상 위험하면 살아 있는 생명을 취해서 생명력과 마나를 늘릴 수 있기에 절박한 시기도 아니었다.
"대기의 침묵."
바르칸의 저주 범위에 들어 있는 200명이 넘는 성기사들에게 검푸른 기운들이 둘러 씌워졌다.
숨 쉬는 것을 방해하는 강력한 저주 마법!
"뼈 파괴."
두두두둑!
이번에는 30명 가량의 성기사들의 몸에 있는 뼈들이 부서졌다.
갑옷을 입고 있다고 하더라도 저항력이 낮으면 저주 마법을 벗어나지 못했다.
"파이어 히드라 소환."
바르칸은 파이어 히드라도 소환했다.
땅에서 머리부터 솟아난 파이어 히드라가 저마다 입에서 불을 내뿜었다.
연속으로 세 가지의 마법을 시전한 바르칸.
아주 잠깐의 휴식 뒤에 바르칸은 성기사들에게 공격 마법도 사용했다.
"프로스트 링!"
냉기의 고리가 만들어져서 성기사들을 덮쳤다.
사제들의 회복 마법은 바르칸과 성기사들에게 집중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연속적인 마법에도 대량 학살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본래 성기사들의 마법 방어력, 저항력은 워리어를 능가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위드는 냉정하게 상황을 지켜봤다.
'바르칸의 저주 마법, 네크로맨서 마법은 최고 수준으로 봐도 무방하겠군. 불러오는 언데드들이 살 떨리게 강한 걸 보니 시체만 있으면 본 드래곤도 마구 만들어 낼 수준이야. 소환 마법도 제법 사용할 줄 알고. 그래도 공격 마법은 다소 약해.'
어디까지나 바르칸의 다른 마법의 수준에 비하여 약하다는 것이었다.
레벨이 400대를 넘는 대마법사보다 공격 마법을 더 빨리 사용한다.
전투에서는 마법의 위력만이 아니라 주문을 외울때의 속도가 중요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대단한 강점이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성기사들은 바르칸을 본 것만으로도 심하게 위축되었다.
소환된 둠 나이트, 스톤 골렘은 오히려 더욱 날뛰고 있었다.
바르칸은 전격계와 빙계 마법을 번갈아서 썼고, 성기사들중에서도 희생되는 이들이 생겨났다.
로뮤나가 확인해 본 바로는 사제들의 턴 언데드 공격이 계속 이어지면서 바르칸의 생명력도 73%로 떨어졌다고는 하나, 희망적인 소식은 아니었다.
시체들이 벌써 19구나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바르칸의 언데드 소환 마법에 의하여 만들어질 고위 언데드를 감안한다면 이번 사냥은 실패했다고 보는 게 맞았다.
현재 제대로 집계되고 있지는 않지만 방송국으로 중계되는 화면을 통해서 1억 명 이상이 시청하고 있다고 추정되었다.
위드와 함께하는 동료들, 유저들만이 아니라 시청자들도 다양한 바람을 갖고 지켜보았다.
'실패해라.'
'망해라.'
'콱 죽어 버려라.'
'위드도 이제 끝물이구나.'
명문 길드에 속한 유저들, 레벨이 높은 랭커들은 합심해서 실패를 바랐다.
인간들에게는 아직 움직이지 병력, 검치들이 있었다.
전투가 벌써 시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바르칸의 대응을 보아야 했기에 성기사들이 먼저 덤벼들도록 내버려 둔 채 몸이 근질근질한 것을 필사적으로 참았다.
"우와악!"
"웃차!"
검치들은 몸에 잔뜩 힘을 주어서 기합을 질렀다.
맷집과 정신력, 용기를 바탕으로 하여, 바르칸을 보았을 때의 공포 효과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이다.
이제 검치들은 평소처럼 제약 없이 싸울 수 있게 되었다.
바르칸을 상대로 할 때에는 그것만으로 큰 장점이었다.
"가자!"
"이놈들을 쓸어버리자."
검치들이 튀어나가서 골렘과 둠 나이트들에게 검을 휘둘렀다.
바르칸이 직접 만든 언데드는 수준이 달랐다.
데스 오라에 의하여 강화되어 있는 둠 나이트들은 거의 준보스급 위력을 보였지만, 검치들이 실력을 발휘하면서 얼추 대등하게 싸울 수 있었다.
사제들의 축복까지 받고 있었기에 검치들은 평소보다도 훨씬 거칠고 무식하게 싸웠다.
"철저하게 부숴 버려!"
"전투 불능으로 만든 다음에는 사제들이 신성력으로 완전히 정화시킬 때까지 방심하지 마라."
바르칸은 성기사들을 견제하고 있었다.
그 틈을 이용하여 검치들은 둠 나이트를 파괴하고 정화했다.
모두가 이처럼 열심히 싸우고 있을 때에 문득, 잔잔하게 흐르는 음악 소리!
벨로트는 전장에서 악기를 연주했다.
사제들의 신앙심을 북돋아 주고, 성기사들에게 힘을 주는 성가를 불렀다.
로뮤나는 간간이 마법을 날리고, 수르카는 검치들과 함께 둠 나이트와 싸웠다.
제피와 화령은 다른 유저들과 함께 언데드들이 내려오는 지하 계단을 담당했다.
제피의 넓은 범위 공격과 화령의 몬스터를 재울 수 있는 스킬 때문에 바르칸 사냥에는 끼지 않았다.
"미개한 인간들이여, 어리석은 저항이구나. 이 땅은 내 암흑의 율법이 지배한다. 영원한 불사의 힘이 장악하리라. 다크 룰!"
바르칸의 3대 마법, 주변의 시체를 모두 언데드로 소환하는 마법이 시전되었다.
바르칸 데모프는 고위 네크로맨서이며 마법사로서 특별하게 세 가지의 마법을 사용할 줄 알았다.
다크 룰, 데스 오라, 절대 마법 방어!
절대 마법 방어는 그에게 위협이 되는 모든 마법 공격을 원천부터 차단해 버리는 것이었다.
대마법사의 수준이 아니라면 바르칸의 뼈끝도 감히 건드리지 못한다.
당연히 로뮤나의 실력은 그보다 훨씬 떨어졌지만, 일단 언데드에게 마법을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도움이 됐다.
다크 룰에 의해 지하 공간, 그리고 바르고 성채 전체가 검붉게 물들었다.
성기사와 검치들의 시체를 바탕으로 언데드를 만들면 바르칸의 전력을 더욱 늘어나게 된다.
데스 오라에 의하여 언데드가 싸우면서 얻는 생명력과 마나를 저절로 흡수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기다렸던 네크로맨서들이 더 빨리 움직였다.
어차피 언데드를 데려와 봤자 바르칸에게 복종할 것이 뻔하니 맨손으로 그냥 오긴 했지만, 놀고먹으려던 것은 절대 아니었다.
"일어나라. 눈 감지 못한, 잠들지 않은 원혼들이여. 여기 살아 있는, 그리고 너희를 죽인 자들에게 복수하라! 데드 라이즈."
성기사들의 시체가 최하급 스켈레톤이 되어서 일어났다.
"키리릭?"
"인간들… 바르칸 님을 공격하고 있다."
해골들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곧바로 바르칸을 위하여 싸움을 시작했다.
"뭐야, 이 거치적거리는 건."
하지만 검사백팔십칠치가 밀치고 지나가니 그대로 허무하게 부숴지는 몸!
바르칸의 다크 룰이 아니라 네크로맨서들이 일으켜 허약하지 그지없는 최하급 언데드는 사제들의 정화 마법을 통하여 금세 소멸되었다.
바르칸의 최대 장기인 언데드 소환을 막는 데 네크로맨서들의 혁혁한 공로를 세운 것이다.
마판도 이곳까지 억지로 끌고 온 마차에서 흰 천을 벗겨냈다.
강림하는 일곱 천사상.
데이크람이 만든 대작 조각품을 예술 회관에서 가져왔다.
조각품 주인, 집주인이기 때문에 가능한 권력 남용!
신성력의 효과 증가, 마나 회복 속도를 늘려 주는 조각품을 배달해 와서 전투에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물론 패배하기라도 한다면 미스릴로 만든 강림하는 일곱 천사상은 바르칸의 것이니 위드로서도 엄청난 패를 던진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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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쪽으로 가야 됩니다."
위드는 상위 서열의 검치들 150명, 사제들 30명과 함께 지하를 다시 뚫고 나와 바르고 성채의 내성으로 향했다.
처음에는 그들을 추격해 오던 언데드들도, 지하의 바르칸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더 급했는지 어느 순간부터 따라오지 않았다.
'리치의 생명력이 봉인되어 있는 라이프 베슬을 없애야 한다.'
바르칸은 신성력으로도 없애기 어려운 전설적인 몬스터다.
가슴에 성검이 꽂혀 있기 때문에 마력이 심하게 제약되고 있지만, 실제 그의 레벨은 추측하기조차 어렵다.
성검이 박혀서도 죽지 않는 바르칸을 해치우기 위해서는 라이프 베슬부터 파괴해야 확실하다.
생명력이 줄어든 바르칸이 자신의 라이프 베슬 부근으로 역소환이 된다면, 불사의 군단을 다시 지휘하여 바르고 성채로 들어온 유저들을 모두 죽음으로 몰고 갈 것이다.
'아마 그곳에 있을 거야.'
위드는 둠 나이트로 내성을 구경할 때 라이프 베슬이 있을 것이라고 의심하며 지나쳤던 지역이 있다.
"시간이 없으니 달립니다."
"알았다. 빨리 가자!"
위드와 검치들은 복도를 빠르게 뛰었다.
바르칸을 담당하고 있는 사람들이 계속 죽어 나갈 것이기 때문에 머뭇거릴 틈이 없었다.
사제들은 이렇게 육체적으로 고생을 한 경험이 거의 없었다.
지혜나 신앙심에만 몰아서 스텟을 올려 왔기 때문에 오래 걷기만 해도 쉽게 피곤해지는데, 위드와 검치들의 속도에 맞추려니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였다.
"업히세요."
검치들이 바닥에 앉아 건장한 등을 내밀었다.
"하지만 그래도 실례가 되어서……."
"남자 등이 넓은 이유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거죠. 여태껏 살면서 쓸 일이 없었는데, 괜찮습니다!"
씩씩하게 말하는 검치들에게 사제들은 조심스럽게 업혔다.
검치들을 위하여 일부러 여자 사제들만 데려온 위드!
"언데드다!"
복도 중간마다 지키는 몬스터들이 등장했디만, 위드와 검치들의 활약으로 무난히 돌파했다.
"자, 이쪽을 봐라. 헤라임 검술!"
조각사의 횃불을 들이밀면 언데드들은 신성력에 노출되어 해골을 감싸 쥐면서 괴로워했다.
그 틈에 과감한 검술로 베고 올라갔다.
내성의 상층부로 향하면서도 멀리까지 내다볼 수 있는 위드가 확인해 본 결과, 외성 밖에서도 온통 치열하게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화염과 연기가 피어오르고, 스켈레톤들이 성벽 위를 뛰어다니고, 유령이 공중에서 날아다녔다.
"바르칸 님의 영광을 위하여!"
"엘프들을 물리쳐라. 우리의 동료가 되기 위하여 찾아온 엘프를 맞이해라."
"지하로 내려가서 바르칸 님을 돕자."
통로에서는 언데드들이 무리 지어서 뛰어서 이동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위드는 빈방이나 복도 뒤에 숨어서 검치들, 사제들과 함께 언데드들이 지나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움직였다.
"사형들, 다시 가죠."
위드가 목적지로 한 장소는 내성의 3층.
벤들러 기사 스물이 지키고 있던 철문으로, 아마도 그 뒤에 바르칸의 라이프 베슬이 있을 것으로 추측됐다.
'그곳이 아마 맞을 거야.'
리치들은 라이프 베슬을 철저히 숨겨 놓는다.
위드도 들어가 보진 못했지만, 엄중한 경비를 감안하면 가능성이 높았다.
"침입자다."
"바르칸 님에게 거역하는 인간들이다."
철문 앞에 도착하자마자 벤들러 기사들과 바로 전투에 돌입했다.
사제들이 축복과 회복 마법을 걸어 주고 검치들이 다른 이들을 상대하는 사이에, 위드는 벤들러 기사 1명과 맞섰다.
"기사 엘리엇이다."
"위드입니다. 이렇게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본능적으로 친밀도를 높이기 위한 아부를 하는 위드.
상위 등급의 언데드에게 아첨을 하며 지냈던 습관이 몸에 남아 있었던 것이다.
"이곳에 온 이상 죽어야 한다. 파헤드 검술."
벤들러 기사가 앞으로 나왔다.
그동안 언데드로 활동하면서 벤들러 기사와 싸워 보고 싶긴 했다.
착용하고 있는 장비가 범상치 않았고, 현재 위드의 레벨이라면 벤들러 기사 정도는 잡아 주어야 경험치가 팍팍 오르기 때문이다.
대장장이 스킬을 익힌 위드는, 인간형의 몬스터는 대충 눈으로 보기만 해도 장비의 성능이나 가격을 짐작할 수 있었다.
벤들러 기사는 중갑옷으로 몸을 감싸고 있기 때문에 방어력에서는 월등하지만 유연함에서는 다소 불리했다.
"바르칸 님의 땅에서 물러나라!"
벤들러 기사가 검을 휘두를 때마다 흑색의 기운이 넘실거리면서 반경 5미터씩을 휩쓸었다.
스치기만 했는데도 그 여파로 위드의 생명력이 급격하게 떨어졌다.
"달빛 조각 검술!"
위드도 오묘한 색채의 빛의 검을 휘두르며 벤들러 기사를 공격했다.
근접전을 선호하는 편이지만 직접 타격을 하기가 어려워서 달빛 조각 검술을 쓴 것이다.
"와, 대단하다!"
"진짜 예뻐!"
급박한 와중에도 사제들을 감탄하게 만드는 위드의 모습이었다.
그들이 봤던 어떤 스킬보다도 아름다운 달빛 조각 검술!
검사들이 특성에 따라서 내뿜는 희고 검거나 붉은 단순한 빛깔의 검기에 비하여 오묘하고 화려했다.
데미지 자체는 효과에 비해서는 약한 편이었다.
적의 방어력을 무시한다는 강점이 있지만, 큰힘으로 밀어치거나 범위가 아주 넓은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조각 검술보다 마나 소모가 3배나 심했다.
헤라임 검술을 익힌 이후로는 아주 가끔씩, 그것도 짧은 시간 동안만 사용했지만 지금은 마구 써도 된다.
마나를 지원해주는, 헬리움으로 조각한 횃불을 들고 있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첫 월급을 받은 직장인이 친구들과 초등학교 앞에 있는 분식집을 간 것처럼 든든한 기분!
"자, 골고루 실컷 맞자."
위드는 벤들러 기사를 확실하게 두들겨 팼다.
불사의 군단에서 둠 나이트보다 훨씬 고위의 언데드인 벤들러 기사!
양쪽 모두 방어를 도외시하고 오직 서로를 두들겨 패기만하는 난타전이 벌어졌다.
위드도 피해를 입었지만, 사제들이 치료를 해 주었을뿐더러 인내력과 맷집 그리고 장비들로 인해 방어력이 훨씬 높았다.
사제들이 있으니 여러모로 신경 쓸 필요 없이 빨리 사냥하는 데에만 전념할 수 있었다.
+ 엘리엇의 부츠를 획득하셨습니다.
+ 엘리엇의 망토를 획득하셨습니다.
+ 81골드 34실버 58쿠퍼를 주웠습니다.
유니크 아이템도 획득!
위드가 벤들러 기사를 처리했을 때에는, 검치들도 전투를 마쳤다.
더 많은 수로 합공을 했던 검치들은 온갖 부상으로 망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커헉… 정말 힘든 전투였군."
"그래도 다들 잘 싸웠어."
여사제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몸을 사리지 않고 싸우며 치료의 손길을 한 번이라도 더 느껴 보기 위하여 일부러 부상까지 당했던 것이다.
"이제 이 문을 열면……."
검치들과 사제들이 완전히 회복하기 전이었지만, 위드는 철문으로 곧장 다가갔다.
바르고 성채에는 언데드들이 돌아다녔기 때문에 휴식을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검십오치가 벤들러 기사를 처리하고 얻은 전리품 중에 있던 열쇠를 자물통에 넣고 돌렸다.
덜컹!
잠금장치가 풀렸다.
'드디어 바르칸을 완전히 죽일 수 있다. 전설의 몬스터, 리치 바르칸 데모프의 최후가 왔다.'
위드는 양손으로 철문을 힘껏 열었다.
그리고 감동하고 말았다.
"오오, 이렇게 훌륭한 장소가!"
바르칸의 라이프 베슬만 덩그러니 놓여 있을 거라면 짐작과는 달리, 방 안 가득 오래된 검과 갑옷 그리고 금은보화가 산처럼 쌓여 있었다.
위드가 검치들과 들어온 장소는 바르고 성채의 보물 창고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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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다 얼마야."
위드의 입가가 찢어질 듯이 벌어졌다.
항아리와 궤짝에 담겨 있는 금화만도 수십만 골드는 넘을 것 같았다.
하지만 가치로 친다면 검과 갑옷들이 훨씬 더 엄청나리라.
"바르칸의 마법 물품도 있군."
바르칸이 직접 제작한 마법 물품들도, 그 성능과 희소성 때문에 팔면 엄청난 자금이 될 것이다.
특정한 속성의 마법을 증폭해 주는 지팡이.
하늘을 날고, 물 위를 걸을 수 있게 해 주는 부츠도 있었다.
"대박이구나!"
실컷 기뻐하던 위드에게 든 불행한 생각 첫 번째!
'나만 왔어야 되는데…….'
검치들과 사제들, 노래를 만들기 위해 따라온 마레이 때문에 몫을 나누어야 했다.
퀘스트를 주도했던 게 위드라서 발견된 보물의 3할에 대해서는 소유권을 가지지만, 나머지는 사람 숫자에 따라서 나누는 게 관례였다.
콩 한쪽도 나눠 먹으면 아까운 이 세상에 어떻게 금은보화와 아이템들을 나눠 가지란 말인가!
두 번째로 든 생각은, 보물의 분배는 심각한 문제도 아니라는 것이었다.
전퉤서 승리를 해야 금은보화도 가지고 나갈 수 있는 게 아닌가.
위드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바르칸의 라이프 베슬이 여기에 없다.'
내성의 중심인 데다 삼엄한 경계가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해서 이곳이 틀림없다고 확신했다.
그런데…….
위드는 급하게 마판에게 귓속말을 보냈다.
> 바르칸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조금도 시간이 지나지 않아서 대답이 돌아왔다.
> 바르칸이 계속 언데드를 소환하면서 버티고 있습니다.
> 생명력은요?
> 사제들의 마나가 많이 떨어지기도 했고, 성기사들과 검치님들의 생명력과 마나를 흡수해서 여전히 건재합니다.
라이프 베슬을 파괴하지 않는 한 바르칸도 못 없애고, 전투도 패배하고 만다.
바르고 성채에 들어온 인간들 모두가 이곳에 뼈를 묻어야 하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
"라이프 베슬을 찾아야 돼. 바르고 성채에는 분명히 있다. 다른 장소는 아닐 거야. 언데드의 경계가 가장 철저하고 안전한 장소는 여기였는데."
위기 상황에서 더욱 빠르게 회전하는 위드의 두뇌!
바르칸이 있던 방에는 딱히 숨길 곳이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생명력을 지하의 와인병에 담아 두지도 않았을 것이다.
"바르칸이 벤들러 기사들을 호위병으로 세워 놓았던 이곳보다도 안전하다고 믿을 수 있는 장소여야 한다."
찬찬히 기억을 더듬어 보니 라이프 베슬이 어디에 있는지 알 것 같았다.
외성과 내성보다도, 몇 배는 더 안전한 장소가 있었다.
3마리의 본 드래곤이 날아다니는, 바르고 성채의 중앙 탑 꼮대기!
바르고 성채의 내성까지 들어와서 언데드를 뚫고 다니느라 모두 지쳐 있다.
하지만 이제 본 드래곤과도 전투를 벌여야 할 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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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프, 바바리안, 드워프 연합군은 바르고 성채의 외성을 함락시키지 못하고 계속 싸웠다.
종족의 전사들이 모두 왔더라면 외성은 점령할 수 있었겠지만, 주력은 페어리의 여왕을 지키기 위해 출발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럼에도 종족 연합군 쪽에 있어서 언데드들의 전력이 분산되고 있다는 점은 약간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어차피 내성에서는, 좁은 복도로 인하여 싸울 수 있는 숫자는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모두 죽여라."
"영광을!"
인근 야산의 흙더미에서 일어난 언데드들이 물밀듯이 외성으로 향했다.
"언데드들을 몰아내고 이 땅에 자유를 되찾기 위해서 용기를 내요!"
엘프와 드워프, 바바리안도 용맹하게 싸웠다.
외성에서 벌어지는 여러 소란 속에서 위드는 심한 오한을 느꼈다.
'3마리의 본 드래곤이라니…….'
일반 본 드래곤도 무섭지만, 바르칸이 직접 만든 명품 본 드래곤이었다.
"어쩔 수가 없군."
궁지에 몰리고, 밟힐 때마다 타오르는 불굴의 의지!
"사형들, 바르칸을 죽이기 위해서는 중앙 탑에 있는 본 드래곤과 싸워야 되는데 어떻게 할까요."
검치들에게도 좋은 생각이 있을지 모르니 의견은 물어보았다.
"때려잡아야지."
"좋은 칼 놔두고 뭐하러 말해?"
순식간에 의견 일치!
사실 정작 본 드래곤을 잡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왠지 허전하게 느껴지기는 위드도 마찬가지였다.
"이쪽입니다."
중앙 탑으로 이동하는데, 복도에서 언데드들이 계속 충원되었다.
모여드는 언데드를 계속 처리하면서 중앙 탑으로 가려다가는 시간도 너무 많이 지체될뿐더러, 그 전에 몰살당할 수도 있었다.
"지름길을 택하는 수밖에. 제가 먼저 가겠습니다. 조금 뒤에 따라 나오세요."
위드는 창문을 깨고 내성의 바깥벽으로 나갔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바깥에는 가고일이 날아다녔다.
"인간이다."
"죽여!"
성벽이나 망루에서 경계를 서던 스켈레톤 궁수들이 위드를 향해 화살을 쏘았다.
위드는 돌출된 부위들을 잡고 벽을 타고 이동했다.
"네발 뛰기!"
샤샤샤샤샥.
빗발치는 화살들 사이로 거미처럼 움직이다가 뛰어올라서 성벽의 부서진 부분이나 돌출물을 잡고 매달렸다.
"인간부터 쏴라."
"저놈이 가장 나쁜 놈 같다. 바르칸 님을 위해 저놈부터 없애야 한다."
스켈레톤 궁수들의 공격이 위드에게로 집중되었다.
케애애애액!
가고일들도 와서 위드를 부리로 쪼았다.
"달빛 조각 검술!"
성의 벽면에 매달려 있는 불리한 상황에서 불편한 왼손으로 검을 휘둘렀다.
검치들과 마레이, 사제들이 안전하게 꼭대기로 올라갈 수 있도록 시선을 집중시키는 것.
"저기 버티는 인간을 완전히 죽여라."
"우리 언데드의 위대함을 보여 주자."
지상에서 스켈레톤 메이지들도 손에 마법을 모아 쏘았다.
위드에게 공격에 적중되었다는 메시지 창이 계속 떠올랐다.
+ 현재 남아 있는 생명력 36,789.
'이러다가는 죽겠다.'
위드는 우선 바르고 성채의 지붕으로 벽을 타고 올라갔다.
내성의 지붕은 비스듬히 경사가 져 있었다.
커다란 여러개의 탑들이 지붕보다도 더 높이 우뚝 솟은 게 보였다.
위드를 따라 가고일과 박쥐 떼도 올라오며 공격을 했고, 화살과 마법 공격도 잇따랐다.
생명력이 15%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검치들과 사제들이 다른 방향에서 올라올 때까지 확실히 시간을 끌어 주어야 한다.
"이렇게 된 바에야 어쩔 수 없지."
위드는 조각품을 꺼냈다.
걸작 조각품, 청동으로 만든 '잡템을 안고 있는 상인상' .
"다시 쓰고 싶진 않았지만… 본 드래곤과 싸워야 되는 처지에 이것저것 가릴 수야 없지. 조각 파괴술! 이 모든 것들이 민첩이 되어라."
조각상을 자신의 손으로 직접 부쉈다.
그 순간.
위드의 몸에 빛이 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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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각 파괴술을 사용하셨습니다.
+ 걸작 조각상이 파괴된 고통! 슬픔!
+ 예술 스탯이 5 영구적으로 사라집니다. 명성이 100 줄어듭니다.
+ 예술 스탯이 1대 4의 비율로 하루 동안 민첩으로 전환됩니다.
+ 예술 스탯이 너무 높고 원래 가지고 있던 민첩 스탯이 낮기 때문에, 한꺼번에 전환이 이루어지지는 않습니다.
+ 민첩 850이 고급 스킬 8레벨의 '바람의 질주' 로 바뀝니다. 마나를 사용하여 바람을 타고 달릴 수 있습니다.
+ 민첩 650이 고급 스킬 8레벨의 '회피술' 로 바뀝니다. 적의 공격을 정확하게 맞지 않게 해 줍니다. 가죽 갑옷의 성능을 더 이끌어 냅니다.
+ 민첩 410이 고급 스킬 4레벨의 '행운의 도움' 으로 바뀝니다. 우연한 행운이 자주 벌어져서 최대 3배의 속성 공격을 할 수 있습니다.
+ 민첩 520이 고급 스킬 6레벨의 '정확한 공격' 으로 바뀝니다. 치명적인 일격의 확률을 높여 주며 공격력을 증가시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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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각술의 숙련도가 증가했습니다.
위드는 몸이 정말 깃털처럼 가볍게 느껴졌다.
"100미터 달리기를 해도 좋을 정도군."
로열 로드에서는 스탯이 늘어남에 따라서 신체적 변화도 생긴다.
초보 때에는 100미터를 질주하더라도 30초 가까이 걸린다.
갑옷이라도 입고 있으면 1분이 지날 수도 있다.
그러다가 힘과 민첩을 키우면서 점차 빨라져서 나중에는 현실에서는 육상 선수들이나 낼 수 있는 10초대가 가능하고, 레벨이 높아지면 그보다 빠르게 뛸 수도 있다.
지구력에 대한 부분도 달라져서, 체력만 받쳐 주면 마라톤을 해도 거뜬했다.
+ 화살이 스쳐 지나갑니다.
+ 생명력이 130 감소합니다.
날아온 스켈레톤의 화살이 위드를 제대로 맞히지 못하고 다시 추락했다.
별도로 움직이지 않아도 자연스레 회피하게 되는, 민첩의 효과였다.
"그럼 어디 반격을 해 볼까?"
위드는 품에서 하이 엘프 예리카의 활을 꺼냈다.
화살값이 아깝지만, 지금은 써야 할 때!
나무와 강철이 있으면 대장장이 스킬로 화살을 만들 수 있어서, 삼백 발 이상 미리 만들어 놓은 것들이었다.
위드는 탑과 지붕 위를 달렸다.
박쥐 떼와 가고일 떼가 쫓아오지도 못하게 빨랐다.
그러면서 화살을 시위에 끼워 스켈레톤들을 향해 쏘았다.
엉뚱한 곳으로 쏜 것처럼 빗나갈 듯 보이다가 방향을 바꾸어서 정확하게 적중하는 화살들!
+ 물의 정령들이 추가적인 데미지를 입힙니다.
물의 소용돌이가 일어나서 스켈레톤들을 휩쓸었다.
"맞혀라!"
"저 인간부터 죽여."
위드는 지붕을 뛰어다니며 가까이 접근하는 가고일들을 베고, 시위에 화살을 끼워서 스켈레톤 궁수들을 향해 쐈다.
스켈레톤 궁수들의 화살이 그에게로 집중되고, 성벽과 탑에 앉아 있던 가고일들이 전투를 위해서 일제히 날아올랐다.
거침없는 속도로 빚어 나오는 짜릿한 쾌감!
위험하기 짝이 없는 바르고 성채를 마음껏 뛰어다니는 위드였다.
위드가 손을 휙 내밀자 스켈레톤 궁수들이 쏘아 낸 화살이 거짓말처럼 붙잡혔다.
+ 강철 화살을 획득하셨습니다.
바로 화살을 쏘아서 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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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일은 두려움 가득한 눈으로 바르칸을 보았다.
"진짜 몬스터가, 해도 너무하는구나!"
네크로맨서들이 있었지만 생겨나는 시체를 모두 바르칸보다 먼저 언데드로 소환하지는 못했다.
바르칸에 의하여 소환된 언데드는 최소 둠 나이트급이었다.
엘리트 둠 나이트.
친위대장 둠 나이트.
학살꾼 둠 나이트.
역병을 몰고 다니는 둠 나이트.
전부 이름을 가진 네임드 몬스터급이었다.
벤들러 기사까지 5명이나 소환되면서, 갖가지 저주에 시달리는 성기사와 검치들은 바르칸을 직접 공격하기는커녕 그의 친위 부대와 계속 싸움을 벌여야 했다.
바르칸은 사제들의 턴 언데드 마법도 버텨 내고 있었다.
데스 오라에 의하여, 언데드를 통해 생명력과 마나를 흡수하며 생존했다.
성기사들은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언데드가 계속 많아지는 것 같아."
"바르칸은 죽으려면 아직 멀었어?"
"도대체 죽일 수나 있을까? 오히려 우리가 전멸하게 생겼는데!"
로뮤나가 감동에 빠질 정도였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면 네크로맨서로 전직을 할까? 고생하더라도 리치까지만 되면……."
성검에 의해 힘이 제약받고 있는 상태에서도 작게는 성, 크게는 왕국도 도모할 수 있다는 리치의 위력이 여지없이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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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간 방송국들은 행복한 고민에 휩싸였다.
바르칸이 있는 지하에서 벌어지는 전투는 언데드와 성기사, 사제들이 겨루는, 선과 악의 대결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정도였다.
검치들의 눈부신 활약이 있었지만 바르칸의 네크로맨서 마법은 너무나도 두려울 정도라서, 희생자가 발생하면 언데드의 세력이 야금야금 늘어나고 있다.
지하로 들어오는 불사의 군단도 막아야 했기에 전력이 분산된 것도 문제였다.
다른 한쪽으로는 위드가 바르고 성채의 지붕을 뛰어다니면서 싸우고 있다.
지붕에서 쭉 미끄러지면서 화살을 쏘고, 겁 없이 도약하여 날아드는 가고일들을 화려한 달빛 조각 검술로 베었다.
바르고 성채를 배경으로 보여 주는, 가슴 뛰는 전투 영상.
명예의 전당에 오르더라도 단숨에 1위를 맡아 놓을 정도였다.
최고의 장면들을 보여 주고 있기에 눈을 뗄 수가 없게 만들었다.
"이거 어느 쪽을 방송에 내보내야 되는 거야!"
전체적인 국면을 보면 바르칸의 전투가 아무래도 중요하다고 여겨져서 그쪽을 위주로 틀었지만, 위드에 대한 부분이 궁금하다는 시청자들의 의견에 장면을 바꿔야 됐다.
+ 바라칸과의 싸움은 어떻게 됐어요?
+ 위드가 지붕에서 움직이는 것 좀 보여 주세요.
+ 저렇게 몬스터로 가득한 장소에서, 어쩜 저렇게 자유롭게 확트인 곳인 것처럼 싸우죠? 위드라서 그런 걸까요? 만날 던전이 지겨운데, 저도 고레벨이 되면 위드처럼 싸울 수 있을까요? 그래도 바르고 성채 같은 곳에서 몽땅 몰려드는 몬스터와 싸우는 건 자살행위인데.
+ 바르칸을 잡아야 전투가 결국 승리를 하는 건데… 바르칸을 보여 주셔야죠.
+ 뭐 하세요, 한창 집중해서 보고 있었는데! 위드 다시 틀어 주세요!
시청자들의 열화같은 요청에 방송국은 이러든 저러든 욕을 먹을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