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달빛조각사 25권 : 3. 자하브의 예술품 (132/520)

   자하브의 예술품

  "끄아아아아악!"

 와이번 떼가 날개를 쫙 펼치고 비행했다. 비룡, 불사조, 황금새, 은새도 뒤를 따랐다.

 조각 생명체들끼리의 오붓한 이동이었지만, 이들의 레벨을 감안한다면 무지막지했다.

 흰 구름 위로 비행을 하다 보면 가끔씩 높게 나는 큰 새들을 지나친다.

 위드는 와삼이의 등에, 누렁이와 금인이는 와일이와 와둘이에 탔다.

  "먹고 가면 안 될까?"

  "맛있겠다!"

 와오이, 와육이, 와칠이는 편하게 날 수 있었으므로 쫓아가서 통째로 삼키고 돌아왔다.

  "냠냠, 역시 맛있군."

  "비린내 하나 안 나네."

 그렇지 않아도 와삼이는 불만이 이미 한계치까지 누적되어 있었다.

  "주인."

  "왜?"

  "다른 와이번들도 많이 있는데 왜 항상 내 등에 타는 건가?"

  "그래서 싫냐?"

  "그런 건 아니지만, 사람을 태우려니 무겁기도 하고 힘도 많이 들고 억울하기도 하고……."

 위드는 넓적한 등판에 드러누우며 말했다.

  "널 만들 때만 귀찮아서 등을 그냥 평평하게 했거든."

  "케애액."

  "집의 장판에서 뒹굴 때만큼 편해서 다른 와이번은 탈 수가 없어. 네가 최고야."

 와삼이는 비밀을 알고 더욱 괴로워질 수 밖에 없었다.

 그라페스는 중앙 대륙에 있는 아이데른 왕국의 영역으로, 몬스터로 들끓는 지역이었다.

 위드가 있던 바르고 성채에서는 꽤나 먼 거리였지만, 조각 생명체들을 타고 단숨에 날아왔다.

  "넓이로 볼 때에는… 오래 걸려도 대충 20일이면 찾을 수 있겠지?"

 반사적으로 다른 10대 금역의 한 곳인 지골라스에서 고생했던 일이 떠오르려고 하였지만, 그라페스 지역은 그렇게 넓은 장소가 아니다.

 지골라스에서처럼 지하 던전들이 미로처럼 답답하게 이어져 있다는 말도 들은 바가 없었으므로, 자하브를 만나기가 그렇게까지 어렵지는 않으리라 판단했다.

 위드는 예전에 받은 목조품을 꺼냈다.

 늙은 시녀는 목조품에 자하브의 안식처가 안내되어 있다고 말했다. 목조품에는 물의 정령이 그려져 있었다.

  "물이 있는 쪽붕터 수색을 해 봐야 되겠군. 자하브가 아직도 살아 있다면 말이지. 어쨌든 몬스터들 때문에 엄청 위험한 장소니까!"

 로열 로드에서는 유저가 아닌 원래 살던 주민이라고 해도 죽음을 겪을 수 있다.

 유저는 페널티를 받고 되살아나면 되지만, NPC는 죽음으로 끝!

 자하브가 이미 죽었다면 퀘스트는 중도 포기해야 된다.

 어떤 직업의 마스터라고 해도 당사자가 죽거나 실종되면 관련 퀘스트와 기술 들이 사라진다.

 물론 다른 재능이 있는 자들이 마스터가 되어서 새로운 비기를 만들 수도 있고 상황에 따라서 퀘스트들이 새로 생성되기도 하지만, 기약 없는 일이었다.

 위드가 사실 늙은 시녀의 퀘스트를 지금까지 끌어온 것은 상당히 위험한 일이었던 셈이다.

  

 #

  "이제 슬슬 시작해 보자. 그동안 많이, 푹 쉬었지?"

 위드의 말에 누렁이는 안창살을 파르르 떨었다.

  "음머어어, 만날 사냥에 모험에… 지금까지 나에게 해 준 것이 무엇이냐!"

 조각 생명체로서 이유 있는 항변이었다.

 생명을 부여해 주었다고 해도 자식을 고생시키려고 낳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태어나서 평생 고생만 해 온 누렁이에게는 불만을 표현할 자격이 있었다.

 위드도 진지하게 생각해 보았다.

 누렁이에게 지금까지 해 주었던 것들은 별로 없었다. 위험한 지골라스까지 끌고 가고, 전투에 참여시키고, 짐까지 항상 들고 다니게 했으니 많이 소홀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하는 거야. 너무 놀고먹으려고만 하면 안 돼. 아무튼, 그럼 노후 지금 마련해 줄게. 더 나이먹으면 호강하면서 살아야지. 왕궁 같은 집에서 신선한 풀뜯어 먹으면서 가족들과 살 수 있게 해 주면 되겠니?"

 충성심이 높은 누렁이였기에 금방 설득되었다.

  "그 정도까지 바란 건 아닌데… 만족한다."

  "앞으로 매일 200골드씩만 내도록 해. 일단 그걸 받고, 나머지는 더 필요한 돈은 내가 보태서 나중에 노후 자금으로 크게 불려서 돌려줄게. 참, 네가 좋아하는 암소들과 결혼식도 올려야지."

  "고맙다, 주인. 더 열심히 일하고 싸우겠다."

 누렁이는 늙어서 편히 살 생각에 좋았고, 위드는 매일 200골드씩 불로소득이 생겨서 만족스러웠다.

  "불사조, 빙룡. 너희는 시선을 너무 끄니까 가까이 오지말고 근처에서 대기하면서 언제든지 올 수 있도록 해."

  "알았다, 주인."

 빙룡이나 불사조처럼 큰 생명체들이 땅에 가까이 내려오면 주변의 몬스터들을 자극해서 불러들인다. 그렇기 때문에 수색은 위드와 와이번, 누렁이, 금인이로 해결을 봐야 했다.

  "황금새, 은새."

  "왜."

  "아버지, 말씀하세요."

  "너희는 여기서도 안전하지?"

 황금새와 은새가 작은 머리를 끄덕였다.

 새들은 숲에서도 몬스터들로부터 영향을 별로 받지 않는다. 굶주린 몬스터라고 해도 한입거리도 되지 않는 황금새와 은새를 웬만해선 노리지 않는다.

 설혹 공격을 당하더라도, 금방 나무들 사이로 날아서 도망칠 수 있었다. 조인족으로 변해서 반대로 몬스터를 사냥해 버릴 수도 있었고.

  "자하브를 찾는게 우선이니까 너희는 따로 움직여. 숲 안 쪽을 수색해."

  "정 부탁이라면."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할게요. 맛있는 벌레들을 먹느라 조금 늦게 돌아올지도 몰라요."

 황금새와 은새가 날아서 숲으로 들어갔다.

 목조품에는 물이 표시되어 있었지만, 자하브의 흔적은 어디서 발견될지 모르기에 둘은 따로 흔적을 찾는 일에 투입했다. 

  "그럼 우리도 가 볼까?"

 위드는 토리도, 반 호크, 누렁이, 금인이 그리고 와이번들과 강의 하류에서부터 거슬러서 올라가 볼 작정이었다.

 유사시에는 불사조와 빙룡도 소환하면서 그라페스의 몬스터들과 싸움을 해야 했다.

 강이나 부근에는 여러 종류의 몬스터들이 있었지만, 위드나 조각 생명체들이 위협을 느낄 정도는 몇 종류 안 됐다.

 강에는 물을 마시러 나오는 켈코그라는 몬스터들이 들끓었다.

  "우갸. 우갸!"

 켈코그는 파충류의 일종으로 서식지가 물 근처였다. 인간처럼 걸 다니기도 하며 수중과 지상에서 창과 같은 무기를 사용한다.

 수직으로 무섭게 높이 뛰어오르는 능력에다 움직임이 대단히 날렵하고 무리를 지어서 활동할 뿐만 아니라, 레벨도 400을 훨씬 웃도는 수준!

 그라페스 지역에서 안정적인 사냥을 하려면 400대의 레벨은 필수 조건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물론 파티의 장점을 극대화한다면 불리함을 좀 더 극복할 수 있었다.

  "와이번들은 공중에서 선회하면서 싸우도록 해. 켈코그들이 뛰어오르면 덮칠 수 있게."

  "알겠다."

 뒤뚱거리며 걷던 와이번들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콜 데스 나이트 반 호크, 콜 뱀파이어 로드 토리도!"

  "불렀는가, 주인!"

 요즘에는 전투를 자주 해서, 반 호크와 토리도는 나타나자마자 주변부터 살폈다.

  "가서 싸워라!"

  "알겠다."

  "냄새가 심하게 난다. 피 맛이 별로 없을 것 같은데."

 귀족적인 토리도는 파충류라서 조금 꺼리는 기색이 역력했다.

  "항상 맛있는 거만 먹을 수는 없잔아. 나중에 선지해장국 하나 끓여 줄게."

  "그렇다면 싸우겠다."

 데스 나이트와 뱀파이어 로드의 돌진!

 반 호크는 유령마를 타고 습격했으며, 토리도는 망토를 펼치고 날아 들어갔다.

  "키야호오!"

 켈코그들 스물이 넘는 무리가 반 호크와 토리도를 발견하고는 싸울 준비를 취했다.

 창을 들고 닭처럼 달려오는 모습이, 던지기에 최고의 자세!

  '위험하겠다.'

 반 호크나 토리도나 창을 맞으면 심하게 타격을 입을 수 있다.

  "흙꾼이 소환! 흙으로 벽을 쌓아 올려라."

 켈코그들이 창을 던지는 순간, 땅의 정령인 흙꾼이들도 소환되었다.

 게슴츠레 눈을 뜨고 있는 흙꾼이들이 손바닥을 앞으로 내미니 땅에서 흙벽이 솟아올랐다.

 반 호크와 토리도를 보호해 주는 거대한 흙벽.

 켈코드들이 던진 창들은 흙벽을 관통하면서 위력이 다소 줄어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은색 광채를 내면서 날아오고 있었다.

 반 호크와 토리도는 다행히 잽싸게 피했지만, 창들은 나무를 관통하고 계속 꿰뚫고 지나가거나 땅에 꽃혀서 폭발을 일으켰다.

  "맞으면 아프겠군."

 이 정도라면 상당한 위력!

 갑옷의 방어력이 웬만큼 높지 않다면 공격력 때문에 단숨에 꿰뚫릴 수도 있다.

 반 호크와 토리도도 몬스터들의 레벨이 높은 것을 느끼고 더욱 세차게 덤벼들었다.

 위드도 그들을 따라서 켈코그들의 사이로 파고들었다.

  "헤라임 검술!"

 켈코그들은 등에 작은 창을 꽂아 놓는 통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열두 번이나 더 던질 수 있다. 위력이 극대화되는 투척의 기회를 주지 않기 위해 가까운 거리에서 싸웠다.

 위드는 검을 휘두르면서 켈코그들의 사이를 미친 듯이 누비고 다니며 결코 한자리에 머무르지 않았다.

  "캬캬오!"

 그런데 켈코그들은 창을 찌르거나 휘두르기도 잘했다.

  -창이 어깨를 스쳤습니다.

   부상으로 힘이 감소합니다.

   높은 인내력으로 공격력이 줄어드는 정도를 최소화합니다.

   생명력이 2,980 줄어듭니다.

 7마리가 넘는 켈코그들이 위드를 노렸고, 반 호크, 토리도 역시 마찬가지!

 반 호크는 유령마를 타고 전장을 누비고 다녔기에 그에게는 창이 많이 날아갔다.

  "골골골. 우리 차례다!"

 누렁이에 타고 있던 금인이도 바람처럼 돌격했다.

 조각 생명체들은 죽으면 너무도 아깝기 때문에 켈코그의 특성상 그나마 안전한 근접 전투가 벌어진 이후에 투입!

 와이번들도 공중에서 습격하며 켈코그들을 교란시켰다.

  "암흑 투기."

  "블레이드 토네이도!"

 반 호크와 토리도도 자신들의 특기를 유감없이 발휘!

 시간이 조금 더 지나자 간신히 사냥에 성공했다. 위드는 등에 작은 창이 3개나 꽃혀 있을 정도로 만신창이였다.

  "생각보다 버틸 만했군."

 전투가 끝나고도 생명력이 1만9천이 넘게 남았다.

 대신 와이번들도 부상이 상당했고, 누렁이도 앞발을 절뚝거렸다.

  "앞으로 위험할 수도 있겠어."

 지골라스처럼 자연재해가 엄청난 건 아니지만 몬스터의 수준이 높았다.

  "어려우면 황금새와 은새의 수색도 중단시키고 빙룡과 불사조도 투입할 수 있으니 계속 가 봐야지."

 금인이나 누렁이가 위기에 처하면 와이번들을 통해 전투지역을 이탈할 수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라페스의 던전으로 들어간다면 그런 도주 방법을 사용하지도 못하리라.

  "일단 계쏙 가 보자. 붕대 감기!"

 생명력을 보충해 줄 사제가 없기에 위드는 와이번들과 누렁이, 자신의 몸에 붕대를 감았다.

  -푸른 보석을 2개 획득하셨습니다.

  -검은 보석을 3개 획득하셨습니다.

 전리품으로는 마법을 부여할 수 있는 보석을 챙겼다.

 전투가 힘든 만큼 아이템은 상당히 괜찮은 편!

 인챈터에게 팔아도 되지만, 직접 세공해서 조각품으로 만드니 보석의 속성에 따라서 마법력이 담긴 영롱한 광채를 발산했다.

 #

 그라페스에서 위드는 몬스터들의 움직임을 되대한 주의하면서 이동했다.

 켈코그들은 위험하더라도 그럭저럭 싸울 수 있었지만, 자칫 1마리라도 서식지로 도망치면 200, 300이 넘는 무리를 이끌고 돌아온다.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최후의 1마리까지도 와이번들을 타고 추격해서 사냥했다.

 독충과 맹수들도 덤벼들었는데, 1마리씩 덤비는 놈들은 집단 공격의 힘으로 이겨냈다.

  "과연, 어디든 적응하면 다 마찬가지라니까."

 위드의 레벨이나 스킬이 이제는 그라페스에서도 통할 정도였다. 물론 조각 생명체들의 생고생이 있었찌만, 그만큼 성장할 수 있었다.

 위드는 그라페스에서 싸우면서 검술과 인내력, 맷집 스텟들을 올렸다. 붕대 감기 스킬은 이미 마스터해 버려서 더 올릴 것이 없다는 점이 안타까울 지경이었다.

  "이대로 쭉 가면 어디선가 나오겠지."

 위드는 강가를 따라서 주변을 수색하면서 올라갔다.

 황금새와 은새는 위험한 깊은 곳의 정찰을 하고 있으리라.

 무엇이 튀어나올지 모를 숲과 늪지가 반복되는 장소에는 그라페스의 상위 포식자들이 있다. 켈코그들도 알고 보면 강가에서 겨우 살아가는 사냥꾼들이었다.

  "빙룡아, 왼쪽으로 가서 휘저어 줘."

  "알았다, 주인."

 빙룡과 불사조도 틈틈히 전투에 동원했다.

 켈코그들이 너무 많이 몰려 있을 때에는 빙룡의 브레스나 불사조의 화염을 먼저 한 방 토해 놓고 싸웠다.

  "더 앞으로 가면 집이 있다, 주인."

 와일이가 공중에서 보고했다.

 그라페스에 흐르는 강은 셋!

 그라페스에 반드시 자하브만 살고 있으란 법은 없으니까 직접 확인해 봐야 된다.

 위드가 조각 생명체들과 함께 조심스럽게 전진해 보니, 강의 상류로 올라가면서 넓은 호수가 나타났다.

 아름다운 호수의 맑은 물에는 나무와 석양이 비쳤다.

 그리고 호숫가에 지어진 그림처럼 예쁜 통나무집!

  "왠지 자하브가 있을 것 같기도 한데……."

 위드가 보기에 통나무들의 질이나 깎아 놓은 솜씨가 보통이 아니었다.

  "일단 기본적인 선물부터 챙기고……."

 위드는 마판을 통해 미리 준비해 온 선물용 그릇을 배낭에서 꺼냈다.

 혹시라도 그라페스에서 자하브가 아닌 다른 인간을 만났을 때를 위한, 친밀도 상승을 노린아이템!

 그라페스에서 만난 주민이라면 어떤 분야든 보통은 아닐 것이기에 미리 호감도를 쌓아 놓을 필요성이 있다.

 모험을 하다 보면 때때로 원주민들을 만나기도 하는데, 특정 종족에게 적대적인 경우도 있다. 엘프나 드워프, 바바리안은 주로 환영을 받는 편이고 인간들에게는 공격적이다.

 그럴 때 선물 용도로 반짝이는 구슬이나 그릇 세트가 잘 먹혀들었다.

  "계십니까?"

 위드가 집 앞에서 큰 소리로 부르니, 잠시 후 문이 열렸다.

 밖으로 나온 것은 백발이 성성한 인간 노인이었다.

  "내 집에 방문한 사람은 처음이로군. 그래, 이런 곳까지 무슨 일로 왔는가."

 위드는 혹시나 싶어서 말했다.

  "사람을 찾으러 왔습니다."

  "여기 살기 시작한 지는 좀 되었지만 인간을 만난 적은 몇번 없군. 저 숲 속에 사냥꾼 1명과, 죄를 짓고 도망 온 인간 둘이 살 뿐인데……. 누구를 찾으러 왔는가?"

 눈가 밑에서 느껴지는 은은한 궁핍함!

  "저는 로자임 왕국의 자하브 님을 찾으러 왔습니다."

 노인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 이름이 자하브라네. 제대로 찾아왔군."

 황금새와 은새의 도움이 있더라도 20일 정도는 탐색에 소모되리라 여겼는데, 다행스럽게도 일찍 발견했다.

  '아주 심하게 어려운 퀘스트는 아니었어.'

 늙은 시녀의 퀘스트를 받았던 시기에 비하자만 지금은 레벨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고 조각 생명체들도 있기에 편하게 찾아냈다.

 위드 혼자라면 죽을 고생을 하고, 켈코그들을 뚫지도 못했으리라.

  '아무튼 드디어 만났다'

 위드의 가슴이 조각술 마스터와의 만남으로 설레었다.

 그것도 달빛 조각사라는 직업과 최초의 인연이 되었던 인물과의 역사적인 만남이었다.

 소년과 소녀.

 나중에 왕비가 된 그녀에게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조각품을 보여 주겠다 했던 약속을 지킨 조각사.

 위드는 그가 만들었던 노래를 배우면 된다.

  "같은 조각사로서 부탁드릴 일이 있어서 왔습니다. 그런데 여기까지 오느라 배가 고픈데, 일단 밥이나 한 끼 얻어먹을 수 있을까요?"

 #

 "우후후, 드디어 사람들이 사는 세상으로 나왔구나!"

 페트는 코튼 마을의 시장을 걸었다.

 유린을 만나기 위해서 조르디보오스 성에서 오래 기다렸지만, 결국 그녀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뼈아프게 깨달았다.

   페트 바보. 똥깨.

 남겨진 낙서만이 그를 아프게 만들었을 뿐.

  "대륙을 떠돌다 보면 그녀를 다시 만날 수 있겠지. 그녀에 대해서 듣는다면 어디라도 만나러 갈 수 있으니."

 페트는 세상에 나온 이상 야망을 펼쳐 보이고 싶었다.

  "대륙의 모든 인간들이 내 이름을 알도록. 그러면 유린이가 먼저 나를 만나러 올 수도 있지 않겠어?"

 그림을 그리면 금방 유명해질 수 있었다.

 실력을 바탕으로 해서 화가 길드의 의뢰를 도맡아서 할 수 있다. 귀족과 왕의 그림을 그려 주고, 새로운 화풍을 만들어서 인기를 끄는 것도 어렵지 않다.

 페트는 더 적극적인 방법을 취하기로 했다.

  "모라타가 예술의 도시로 유명하다고 하지."

 위드는 조각사로서 작품을 통해 모라타의 엄청난 발전을 이끌어 냈다. 그에 예술가들은 자기 일처럼 기뻐하고, 어깨에 힘이 실렸었다.

  "그렇다면 내 그림으로도 할 수 있을거야."

 페트는 숙명적인 적이라고 생각하는 위드가 바르고 성채를 영토로 획득했다는 사실을 방송을 통해 봤다.

  "나는 그곳에서 시작하자."

 바르고 성채는 아직 위드의 조각품이 많지 않은 장소다.

 페트가 그곳에서 그림을 그리다 보면, 영주의 영향력을 더욱 능가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림으로 바르고 성채를 위드로부터 빼았는다. 그것만큼 확실히 유명해지는 일은 없을 거야."

 화가가 조각사보다 확실히 우위라는 사실을 알리기에도 좋았다.

 북부에서 위드의 영토를 빼앗을 단체는 없었지만, 예술로서 빼았겠다는 선전포고!

  "바르고 성채로 가야겠다."

 페트는 화구들을 챙겨서 종종걸음으로 인적이 뜸한 장소로 향했다.

 그림 이동술을 통해 단번에 바르고 성채로 가기 위해서 였다.

 #

 우걱우걱.

  "구운 감자가 참 맛있군요."

 위드는 자하브가 바구니에 담아서 내준 감자를 먹었다.

 중급 요리 스킬 9레벨, 곧 고급을 엿보고 있지만 여전히 가장 맛있는 건 공짜 음식이었다.

  "음머어어어. 어제부터 풀만 뜯어 먹었더니 배가 고프네요."

  "저도, 저도 주세요. 골골!"

 자하브는 누렁이와 금인이에게도 감자를 나누어 주었다.

 와이번들은 마당에서 서로 싸우고 있었다.

  "내가 제일 키가 크다."

  "난 주둥이가 잘생겼어."

  "누가 날개가 넓은데?"

  "난 등이 넓적하다."

 유치한 외모 다툼!

 자하브가 와이번의 각진 어깨를 쓰다듬었다.

  "많이 먹게. 내가 이베인에게 남긴 조각칼과 목조품이 시녀를 통해서 자네에게로 전해졌던 것이로군."

  "예,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런 생명체들은 일찍이 들은 적도 없는데……. 형태가 잘 다듬어져 있지 않은데도 몸 전체의 균형은 비교적 잘 맞는군. 설마 조각술로 만든 생명체인가?"

 조각 생명체를 단번에 알아본 사람은 처음이었다. 위드는 감자를 하나 더 집으며 대답했다.

  "맞습니다."

  "게이하르 황제가 가지고 있던 전설적인 조각술이 다시 세상에 나왔군. 놀라운 일이야. 조각술이 실전되지 않고 후인에게로 이어지고 있다니 이렇게 다행일 수다."

  "고생이 많았습니다. 그래도 조각 생명체들을 아끼고 보살피다 보면 뿌듯한 보람이 가슴 한구석에서 차올라서, 게이하르 황제 폐하의 조각술도 정말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자하브 님의 달빛 조각 검술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조각술이죠."

 이것이야말로 무차별 아부!

  "내 조각술과 게이하르 황제의 조각술을 익혔다니 대단한 재능이야."

  "조각술에 대한 애정이 너무 컸거든요. 모험을 통해서 다른 조각술도 익히고 있습니다."

 위드는 다섯 가지 조각술의 비기를 모두 얻은 후인이었다.

 스킬들을 얻은 이야기들만 해 주어도 자하브는 감탄을 했다.

  "내 조각술을 이어받고 다론의 조각 변신술도 습득하고 정령을 창조하고 대재앙까지 불러올 수 있다니, 대단해!"

   -조각술의 추억을 이야기하여 명성을 469 획득합니다.

  "조각술이 존재한 이후로 탄생한 다섯 가지의 기술을 모두 모으다니, 정말 기적 같은 일이야."

 위드는 감자를 배부르게 먹고 나머지는 배낭에 넣어서 챙겼다.

  "그보다도, 로자임 왕국에 계신 그 시녀분은 마지막으로 자하브 님께서 달빛을 조각하며 부르셨던 노래를 들어보고 싶어 하셨습니다."

 그라페스까지 오게 된 중요한 용건!

 자하브로부터 노래를 배워서 세라보그 성으로 돌아가 늙은 시녀에게 불러 주면 된다.

  "그런 일이 있었는가. 이곳에서 조각품을 만들면서 로자임 왕국으로는 다시 돌아가지도 않았으니……. 참, 말을 꺼낸 김에 자네, 내가 만든 조각품을 보고 싶은가?"

  "물론입니다. 정말 보고 싶었습니다."

 위드는 조각사로서, 당연히 자하브의 조각품들을 구경하고 싶었다.

 어쩌면 늙은 시녀로부터 받을 퀘스트의 보상보다도 훨씬 대단한 무언가가 이곳에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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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하브는 호수 뒤쪽에 나 있는 동굴로 그를 안내했다.

  "이곳이 나의 작업실이라네. 들어가서 편한 대로 구경해보게."

 동굴 안에는 나무와 돌에, 드리고 벽에 조각품들이 있었다. 꽃과 이끼가 기묘하게 자라서 예술품의 모양새를 취하기도 하였다.

 위드는 먼저 크고 멋들어진 조각품부터 자세히 관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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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들의 최후를 감상하셨습니다.

 조각술 마스터 자하브가 만든 작품.

 몬스터와 싸우다가 정렬히 전사하는 인간들을 조각해 놓았다.

 굉장히 세밀하고 정확한 표현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검술에 대한 이해가 높아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생명력과 마나, 체력의 회복 속도가 하루 동안 35% 증가합니다.

 전투 스텟들이 12씩 오름.

 전사들의 스킬 레벨이 2단계 향상됨.

 투지가 영구적으로 2 증가함.

 1달간 생명력 450 증가.

 -예술 스텟이 4 증가합니다.

 -뛰어난 안목의 작품 감상으로 조각술 스킬의 숙련도가 약간 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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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구 근처 벽에 새겨진 조각품부터 명작!

 10명의 전사들이 그라페스의 몬스터와 싸우다가 쓰러지는 장면을 생생하게 조각해 놓았다.

  '벌써 명작이라니… 그리고 저건 걸작.'

 위드는 바쁘게 발걸음을 옮겼다.

 작품들을 감상할 때마다 예술 스텟과 조각술 숙련도가 늘었다.

 작업실에는 대략 걸작, 명작, 대작으로만 70개 정도의 작품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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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과 별과 들꽃을 감상하셨습니다.

 조각술 마스터 자하브가 만든 작품.

 동굴의 천장과 바닥에 조각되어있다.

 자연의 생동감이 잘 살아 있는 작품.

 완성된 이후로 별다른 관리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예술 스텟이 1 증가합니다.

 -뛰어난 안목의 작품 감상으로 자연과의 친화력이 5 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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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의 조각품도 있었다.

  "오랫동안 눈을 떼지 못하는 걸 보니 자연을 참 좋아하는 모양이군."

  "그럼요. 정말 자연을 많이 사랑합니다."

 위드는 작업실에서 자연을 표현한 작품들을 다수 발견하고는 기쁨 가득한 썩은 미소를 지었다. 자연과의 친화력이 오르면 대재앙의 자연 조각술의 위력이 훨씬 강력해진다.

 조각술은, 아무리 자하브의 조각품이라고 하더라고 위드의 수준이 높아서 4.9%가 겨우 늘었다.

 현재의 스킬 숙련도는 고급 8레벨 19.8%

 예술 스텟은 137개가 증가했다.

 그 외에 다양한 스텟들도 조금씩은 늘었다.

 명작, 대작 들이 완성되어 있는 조각술 마스터의 작업실은 모라타의 예술 회관보다도 훨씬 나은 부분이 많았다.

 장엄한 조각품, 섬세한 조각품, 여리거나 단아하고 우아한 조각품, 빛으로 만들어서 화려함이 극에 달한 조각품 등!

 자하브는 주제나 형식에 있어서 자유로운 편이었다.

  "내 작품을 본 소감이 어떤가?"

  "훌륭합니다. 베르사 대륙의 뛰어난 조각품들이 이곳에 다 모여 있는 것 같습니다."

 이곳에 있는 조각품들은 수백 점이 넘었다.

 위드가 실력을 연마하기 위해 매일 깎던 토끼나 여우처럼 대량생산된 것이 아닌, 하나하나가 심혈을 기울여서 탄생시킨 예술품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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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흠, 이렇게 돌아다니니까 정말 좋군."

 검치는 뱃머리에 서 있었다.

 북부 대륙으로 향하는 쾌속선.

 활짝 펼친 돛으로 바람이 밀려왔다. 여객을 위주로 운영하기 때문에 무겁지도 않아서 항해 속도가 아주 빨랐다.

  "바람을 쐬러 멀리 돌아다니는 것도 좋겠어."

 검치의 뒤에는 20대 초반의 유저들 5명이 사이좋게 앉아 있었다.

  "바람 진짜 시원하다."

  "일부러 바다로 나온 보람이 있잖아."

  "위드의 모험 이후로 바다에 대한 관심도 늘어서 여객선이나 화물선, 모험선 들도 많이 늘어났다던데 정말이네."

 항해를 하는 도중에 근처에 떠다니는 돛단배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구멍 나고 찢어진 돛을 한껏 펼쳐 놓고 배를 조종하는 낭만!

 한 번도 바다에 나와 본 적 없는 유저들은 모르겠지만, 항해를 경험한 사람들은 최근에 바다로의 관심이 부쩍 늘어났다는 걸 피부로 느낄 정도였다.

 항구도 초보 선장과 뱃사람 들로 붐비고, 인근 바다에는 조각배들이 이리저리 떠다니고 암초에 휘말려서 침몰하기도 하는 광경기 수시로 눈에 띄었다.

 위드는 항해의 기본적인 맛보기만을 보여 주었을 뿐이지만, 바다의 매력이 경험자들을 통해 널리 퍼지는 계기가 됐다.

 낚시꾼이나 뱃사람이 아니더라도 언제나 바다로 올 수는 있는 법!

  "그때 위드와 함께 항해를 했던 베키닌의 3마리 미친 상어, 헤인트, 프렉탈, 보드미르의 이야기는 들었어?"

  "어떻게 되었는데?"

  "베키닌으로 돌아와서 엄청 큰 해적단을 운영하고 있다더라. 해적들을 모두 받아들여서 지나다니는 교역선들을 가리지 않고 약탈하는데……."

  "진짜 나쁜 놈들이네."

  "응. 정말 말도 안 되게 나쁜 놈들이야."

 그들은 위드와 헤어질 때 배웠던 대로, 피도 눈물도 없는 나쁜 놈이 되어 가고 있었다.

 해적들도 알고 보면 살기가 상당히 팍팍한 직업이다. 적대도가 높은 국가의 항구에는 발도 대지 못하고, 해군을 발견하면 꽁지가 빠져라 도주를 해야 했으며, 유저들에게는 욕만 얻어먹는 직업.

 약탈을 하더라도 제값을 못 받고 처분하는 경우가 많고, 어디서도 경계심을 풀면 안 되니 고단하고 힘든 부분이 많았다.

 그럼에도 바다는 넓고 자유롭기에, 해적들에게만 허용되는 나름의 모험이 있기에 즐거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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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은 전쟁으로 사람들이 많이 죽어 나가는군."

  "지금은 몸을 사리는 게 좋아. 괜히 끼어서 새우 등이나 터지기 딱 좋으니."

  "조용히 사냥터에 틀어박혀서 레벨이나 올리는 게 이득이긴 하지."

 다크 게이머들이 모이는 선술집!

 과일 주스나 맥주를 마시면서 사람들은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사냥터로 들어가면 열흘, 1달씩 나오지 않기 때문에 도시에서 즐기는 휴식이 중요하다.

 요리 스킬은 다크 게이머들의 필수이기는 해도, 위드처럼 제대로 익혀 놓지는 않았다. 기본적으로 고기를 굽거나 삶아먹는 정도라서, 맥주에 간단한 안주 정도만 있으면 편히 쉴 수 있었다.

  "그때 두 번째로 던전으로 들어갔을 때인데……."

  "비밀 통로는 왼쪽 아궁이를 통해서 밖으로 나갈 수가 있는데……."

 그들끼리 아는 고급 정보들을 교환하기도 했다.

 선술집이 있는 장소는 브렌트 왕국의 수도인 네할레스!

 활동하는 최고의 다크 게이머들이 모여 있었기에 항상 시끌벅적했다.

 덜커덩!

 그때 선술집의 문이 열리고 화사한 보라색 드레스를 입고 있는 유저가 안으로 들어왔다.

  "내가 저번 사냥에서……."

  "다음에는 로젠드라 경로를 지나갈 예정인데……."

 유저들끼리 하던 이야기가 갑자기 뚝 끊겼다.

 방금 들어온 유저는 댄서.

 언제나 화려한 옷과 액세서리가 필요한 직업은 댄서는 다크 게이머가 택하기 힘든 직종이었다. 전투에 최적화되어 있는 검사나 워리어, 용병이 많고, 마법사도 귀했던 것이다.

  '의뢰자로군.'

 아름다웠고, 장비들을 보았을 때에는 상당히 높은 레벨이었다. 그렇다면 그녀에게 청부를 받을 수 있는 다크게이머들은 많지 않다는 뜻이다.

 댄서가 각 테이블을 돌면서 다른 이들에게는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대화했다.

  "의뢰를……."

 내용을 알리기 전에 먼저 레벨이나 용병으로서의 신뢰도, 임무 완수에 필요한 시간을 꼼꼼히 확인한다.

 그리고 댄서가 밖으로 나갈 때에는 베이드와 파슨, 유메로, 에이프릴과 볼크, 데어린이 뒤를 따랐다. 브렌트 왕국에서 활약하는 최고 수준의 다크 게이머들이 그녀와 함께하기로 한 것이다.

 다크 게이머들은 그들이 나가자마자 원래 하던 이야기를 계속했다.

 자기 일이 아닌 이상 누구도 크게 관심을 두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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