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달빛조각사 25권 : 4.자하브가 남기고 싶은 조각품 (133/520)

   자하브가 남기고 싶은 조각품

 위드는 자하브의 창고에서 조각품들을 오래 살폈다.

  '이것들을 몰래 빼돌리기만 한다면……."

 모라타에 있는 예술 회관에 보관한다면 입장료를 엄청나게 올려도 될 것이다.

  '특별 자하브의 조각품 전시회라는 명목으로 입장료를 10배쯤 받더라도 모두 내고 들어올 텐데."

 조각품을 쳐다보는 위드의 눈빛은 뜨거웠다.

  "조각을 정말 사랑하는 모양이군."

  "물론입니다. 이렇게 훌륭한 조각품은 팔아먹으면… 값으로 따질 수가 없는 보물이지요."

 위드는 자하브를 힐끗 보았다.

  '어디 눈먼 몬스터라도 1마리 나와 주면……."

 하지만 자하브는 조각사이면서도 약하진 않을 것이다.

 늙은 시녀의 퀘스트를 할 때 들은 소문에 의하면 달빛을 조각하여 암살자들을 처단할 정도였다고 했으니까.

 달빛 조각 검술!

 지금도 위드의 밑천이 되고 있는 공격 스킬이었다.

 그라페스 지역에서도 집 짓고 살 정도였으니 과연 얼마나 강할지 추측조차 되지 않을 수준이었다.

 최소한 왕실 기사들보다는 훨씬 윗길로 쳐야 했다.

  '자유로운 조각품이라. 상상으로 만드는거야. 조각술은 수단에 불과한 것뿐이니까. 조각술을 통해서 무엇이든 만들수 있는 거군.'

 위드는 균형미와 정교한 조각술을 바탕으로 하여 조각품을 만드는 데 제법 능숙했다. 베르사 대륙을 여행하며 닥치는 대로 조각품을 만들면서 관찰과 조각에 충분히 능숙해졌다.

 하지만 자하브의 조각품은 평범한 대상들이 표현하는 감정에도 뛰어났다.

 어린 청년이 여인에게 서툰 고백을 하며 쑥스러워한다. 몸은 건장하고 손과 발도 모두 정상인데, 표정과 태도를 통해 불안하고 초조해하면서도 기뻐하는 감정이 전해진다.

 새끼 사슴이 꽃밭에서 주변을 둘러보며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앙증맞고 귀여운 새끼 사슴이 기다리는 대상은 엄마 사슴일 거라는 상상이 자연스럽게 된다.

 마음이 담겨 있다면, 꼬리 끝에도 그 미묘함을 표현할 줄 아는게 조각사!

  "정말 비싼… 좋은 작품들이 많습니다."

  "자네가 그렇게 생각해 준다면 정말 고맙군. 바쁜 일이 없다면 내가 조각하는 일을 조금 도와주지 않겠는가?"

  "지금도 어떤 조각품을 만들고 계십니까?"

  "오랫동안 하고 싶던 작업이 두 가지 있다네. 죽기 전까지 꼭 마치고 싶은 작품들인데……. 이것들을 완성하기 전에는 여기를 떠나지 못할 것 같아. 자네 정도의 실력자가 있다면 큰 도움이 되겠군. 나와 같이 작업을 해 보겠는가?"

 ----------------------------------------------

 자하브의 조력자

 자하브는 오래전부터 만들려고 하던 조각품이 있었다.

 그를 도와서 조각품을 완성하라!

 조각사로서는 더없는 영광일 것이다.

 난이도 : 직업 퀘스트

 퀘스트 제한: 조각사 한정. 고급 조각술을 익히고 있어야 함. 퀘스트를 완료할 때까지 자하브는 그라페스를 떠나지 못함.

              포기하면 다시 받아들일 수 없음.

 ----------------------------------------------

 위드로서는 거절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설혹 조각품을 망치더라도 자기 것은 아니었으니까!

  "하겠습니다."

  -퀘스트를 수락하셨습니다.

  "그런데 만들고 계씨던 조각품은 어디에 있지요?"

 자하브는 작업실의 안쪽에 덮여 있던 천을 걷어 내었다.

 흰 대리석으로 기초적인 윤곽 정도만 잡혀 있는 여성의 조각품!

  "어떤 조각사나 마찬가지이겠지만 나는 조각술이 만들어 내는 아름다움에 매료되어서 살았지. 언젠가 육체와 생명의 아름다움을 조각해 보고 싶었네. 최적의 균형과 비율, 신이 내린 아름다움을 지닌 여성의 모습을 표현해 보고 싶은 건 내가 이루고 싶은 꿈이지."

 예술에서 여성이란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주제이다.

  "그런데 그라페스에 너무 오래 머물다 있다 보니 여성의 아름다움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어. 이 조각품이야말로 현재의 내게는 가장 힘든 작품이니 자네가 도와주었으면 한다네."

  "다른 한 가지는요?"

  "정해 놓기는 했지만 시작하지 못했네. 하나씩 해야 하니 첫 번째를 마치고 나면 가르쳐 주지."

 자하브는 작업실에 있는 도구와 재료 들을 쓸 수 있게 해 주었다. 아껴 쓴다면 16명이나 17명 정도를 조각할 수 있는 고급 재료였다.

 자하브는 조각을 도와 달라고 하였지만, 실질적으로는 위드가 주제와 형태를 만들면 그가 보조해 주는 방식이었다.

 위드가 생각하는 작품이, 자하브의 손을 통해서도 만들어 지는 것이니 좋은 기회였다.

  "그럼 무엇을 만들어서 자하브를 만족시킬까."

 보통의 조각품으로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자하브의 첫사랑은 이베인 왕비였던 만큼 보는 눈은 있을 것이기 때문.

 위드가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자하브는 작업실의 벽에 걸려 있는 검을 잡았다.

 조각품들을 살필 때 이미 구경했지만, 별다른 옵션도 없고 공격력도 높지 않은 보통 장검이었다.

  "잠시 나갔다 오겠네."

  "어디 가십니까?"

  "조각품 재료도 구하고 바람도 쐴 겸, 몬스터나 잡으려고 한다네."

 위드로서는 쾌재를 불러야 마땅한 상황!

  '가서 죽어 주기만 한다면……."

 사과나무 아래에서 입을 벌리고 앉아서 기다릴 수만은 없다. 자하브가 어떻게 전투를 하는지 궁금한 것도 사실.

  "저도 따라가도 될까요?"

  "바쁜 건 없으니 와도 되지."

 위드는 자하브의 전투를 볼 수도 있다는 기대감에 서둘러 따라나섰다.

 물론 위험할 수도 있기 때문에 금인이와 누렁이나 다른 조각 생명체들은 집에서 쉬도록 했다.

  '가능한 많이 위험했으면 좋겠군. 그라페스의 보스급 몬스터가 부지런해야 될 텐데……."

 #

 자하브는 숲으로 가서 숨겨진 구덩이로 들어갔다.

 던전의 입구!

 위드가 차마 들어갈 엄두를 못 냈던 그라페스의 던전이었다.

  "조심해서 따라와야 할 것이네."

  -던전, 카라약의 서식지로 들어오셨습니다.

  "쿠에엑!"

 위드는 오크 가리취의 입에서나 나올 법한 비명을 질렀다.

 카라약이라면 다리가 타조처럼 얇고 긴 몬스터다.

 우스꽝스러운 생김세에 웃으려고 하면 이미 죽어 있을 거라는 가공할 몬스터!

 인간들에 대한 적대도가 높아 공격성이 대단하고 엄청나게 빠르며 방향 전환이 전광석화처럼 이루어진다. 무리를 지어 다니기 때문에 아직까지 어떤 길드에서도 사냥의 대상으로 삼은 적이 없는 몬스터였다.

 간혹 따로 떨어져 있는 1~2마리 사냥에 성공하기도 했지만 그 경우에도 피해가 너무나 컸고, 결국 카라약이 나오는 던전은 아무도 찾지 않아서 폐쇄되었다.

  '하필 카라약의 서식지라니, 그렇다면 이곳은 3~3마리도 아니고 엄청 많이 나오겠군.'

 던전의 이름으로 볼 때 당연히 카라약이 많이 살고 있지 않겠는가.

 새끼 카라약, 다 큰 카라약, 엄마 카라약, 아빠 카라약, 외삼촌 카라약, 할아버지 카라약, 옆집 아저씨 카라약, 등등!

 사이좋게 사는 몬스터 가족에게 외식용으로 배달되는 인간 둘!

 위드는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조금은 애매했다.

 그때, 저 멀리서 카라약들이 나타나더니 순식간에 달려왔다.

  "조각 검술!"

 하지만 자하브가 검을 휘두르니 맥없이 쓰러졌다.

 카라약들이 스쳐 지나간 것 같은데 어느새 회색빛으로 변한 후였다.

 빼빼빽!

 이 장면을 발견한 카라약들이 시끄럽게 울어 대어 계속 동족들이 모였는데도, 자하브가 칼이 빛을 머금고 휘들리면 허수아비처럼 쓰러졌다.

 너무나도 빠르게 움직이는 카라약들을 가볍게 베어서 쓰러뜨리는 자하브.

  '이놈들이 생각보다는 약한가? 하기야 나도 카라약과 싸워 본 적은 없지. 게시판에 올라온 정보라고 해도 다 맞는 건 아니니까.'

 위드는 혹시나 싶어서 자하브의 옆에서 몇 걸음 떨어져 봤다.

 퍼버버버벅!

 카라약의 발 차기가 위드의 온몸을 가격했다.

 달려와서 머리로도 들이받았다.

  -치명적인 일격을 당했습니다

   호흡곤란 증상이 일어납니다.

 몇 초 되지도 않아서 생명력이 20% 이상이나 떨어졌다.

 그대로 머무른다면 위드의 방어력이 무색하게 금방 죽어 버릴 것 같았다.

 위드는 흠씬 맞고나서 다시 자하브의 곁으로 피신했다.

 자하브의 검은 인정사정없이 카라약들을 베었다.

  '조각술만이 아니라 검술도 대단하군.'

 암살자들을 베었던 것이 우연은 아니었다.

  '이 정도로 강할 수 있다니……."

 위드는 어떤 콩고물이라도 떨어지기를 기다렸지만, 자하브의 사냥 속도가 너무 빨라서 끼어들어 이득을 보기는 무리였다.

 자하브는 카라약들을 해치우며 희귀한 가죽과 털, 고기, 보석 등을 주웠다.

 그렇게 사냥을 따라다니고 나서 위드는 결심했다.

  '앞으로 더 친하게 지내야겠군.'

 #

 사냥을 구경하고 돌아온 위드는 조각칼을 쥐었다.

  "신이 내린 아름다움을 지닌 여성의 모습이라……."

 예술가들이 고금을 막론하고 노력해 왔던 주제이지만 해결되지 않았다.

 한 사람이라고 해도 어릴 때와 더 나아가 들었을 때에 여성의 아름다움을 보는 관점이 달라진다. 한 여자에게 모든 매력이 다 담겨 있는 것도 불가능하다.

 사람마다 취향도 천차만별인데 어떻게 신이 내린 아름다움을 지닌 여성의 모습을 조각하란 말인가.

 하지만 그럼에도 위드의 입가에는 썩은 미소가 맺혀 있었다.

  '서윤이 있었지.'

 외모상으로 그녀만큼 완벽한 사람은 없다. 한때 그녀를 표현하면서 조각술을 발전시킨 적도 있었다.

 서윤의 눈, 코, 입, 피부가 만들어 내는 조화란, 조각품을 만들면서도 심장이 두근거리는 수준!

 조각상인데도 너무 예뻐서 자꾸 보고 싶다.

 서윤을 실제로 본 사람들은 이게 정말 꿈인지 생시인지 헛갈려 하면서 눈을 떼지를 못했다.

 언제든 실패하지 않았던 서윤의 조각품이라면 확실하리라.

  "됐어. 충분해."

 조각사로서의 넘치는 자신감!

  "자하브가 바라는 수준을 감안하자면 조각상의 자세나 주제도 아주 중요할 거야."

 그것도 실물을 바탕으로 한다면 곤란할 문제는 아니었다.

  "일단 가볍게 손이나 풀도록 하고……."

 자하브의 조각 재료를 이용해서 조각품을 만들었다.

 카라약, 켈코그

 그라페스 지역에서 만난 몬스터들의 조각품이었다.

 대상을 하나만 조각하는 게 아니라, 자하브의 방식을 활용했다.

 꼬마 아이의 모습을 먼저 조각하고 나서, 카라약과 켈코그들이 둘러싸고 위협을 하는 장면을 동화처럼 표현했다. 아이는 겁을 먹지 않고, 손을 내밀어서 몬스터들을 만진다.

 걸작 조각품으로 만들어진 작품명은 '카라약과 켈코그의 부족한 식삿거리'.

 이건 그저 연습에 불과했다.

 위드는 그 후로 바로 자하브의 조각품을 만들기로 했다.

  "조금 더 손을 풀어 두는 편이 낫지 않겠는가? 상상할 시간도 충분히 줄 수 있지. 1~2달 정도 생각하고 만들어도 될 거야."

  "지금 해도 괜찮습니다."

 조각품은 자하브와 협력해서 만들었다.

  "팔뚝은 이런 식으로 미끈하게… 턱 선은 어려운 부분이니까 제가 하겠습니다."

 위드는 구체적은 형태를 제시하며 자하브를 능숙하게 이끌었다.

 여성의 아름다움이란 외모에만 있는 건 아니니라. 인간적인 매력이야말로 더 소중하고 많은 것을 이룰 수 있다.

 위드는 서윤의 그런 감춰져 있던 매력까지도 살며시 드러내면서, 자신이 보기에도 너무나도 아름답다고 느꼈다.

 요즘 서윤과 자주 같이 지내서, 그냥 예쁘다고만 생각할때가 있다. 하지만 조각품을 만들며 생각하면, 예전에 비해 최근이 확연히 더 아름다워져 있었다.

  '갈수록 더 예뻐지는구나.'

 조각술 마스터 다론이 한 여자를 계속 조각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제는 서윤을 조각할 때면 자연스레 많은 감정들이 떠오르고, 아껴서 표현하고 싶다. 사람을 조각할 수 있다는 사실이 기쁨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일단 퀘스트부터 끝내고……."

 자하브와의 만남은, 아쉬워도 방송국을 통해서 중계를 할 수가 없었다.

 헤르메스 길드에서 보면 쫓아 오는 것도 피곤한 일이지만, 그보다는 위드의 밑천인 조각술이 걸려 있어서 비밀을 지켜야 된다.

 물론 서윤의 조각품을 방송에 내보내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누구나 생명은 소중한 법이니까!

  "오, 이렇게 아름다운 여성이……. 정말 신이 내린 미모구나!"

 작품을 만들며, 자하브는 환상적인 아름다움에 반하고야 말았다.

 서윤의 조각품은 기품 있는 드레스를 입고 있는 것으로 묘사되었다. 위드의 의견이 전적으로 반영된 복장이었다.

  '서윤은 드레스가 참 잘 어울려.'

 다른 옷이라고 해도, 시커먼 때가 묻은 갑옷이더라도 숨길 수 없는 미모였다. 하지만 서윤은 누구나 소화하지는 못하는 드레스를 입으면 절대적인 미모를 자랑했다.

 위드는 재봉술을 하며 만들었던 실력을 바탕으로 청초한 드레스의 형태를 구상해 냈고, 자하브의 신기에 가까운 조각술로 옷감의 너울거림까지도 완전하게 표현!

 그녀는 조금 높은 단상에 올라서 먼 곳으로 시선을 보내고 있다.

 따스한 그 무언가를 그리워 하는 듯한 눈빛!

 감상하는 사람들이 무궁무진한 상상력을 발휘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조각상이었다.

 위드는 물록 그 비밀을 알았다.

  '같이 여행 갔을 때 아침밥 먹고 멍 때리던 표정이었지.'

 직접 만든 조각사만이 알고 있는 의미였다.

  "아름다움을 표현한 조각품이라고 이름 짓겠다."

 조각품의 이름은 위드와 자하브가 뜻을 모아서 정했다

 ----------------------------------------------

 대작! 아름다움을 표현한 조각품을 완성하셨습니다.

 대조각사 위드와, 조각술의 정점의 자리에 올라 있는 자하브가 함께 만든 조각품.

 여성의 아름다움을 표현해 냈다.

 그들의 명성대로, 완성된 이 최고의 작품은 베르사 대륙의 미학의 정점이 되기에 충분하다.

 예술적 가치 : 16,290

 특수 옵션 : 아름다움을 표현한 조각품을 본 이들은 생명력과 마나 회복 속도가 하루 동안 40% 증가한다.

             전 스텟 35 상승.

             마법 저항력 37% 상승.

             생명력 최대치 35% 상승.

             이동속도 14% 상승.

             지식과 지혜, 매력이 15 증가.

             병사들의 사기 증가.

             모험가들의 예술품 감정 스킬에 추가적인 숙련도 부여.

             조각사와 화가, 댄서, 학자의 매력이 영구적으로 14 증가.

             조각상 근처에 도시가 있으면 출생률이 80% 높아짐.

             프레야 여신의 아름다움에 대한 축복이 조각상에 부여됩니다.

 다른 조각품과 중복 적용되지 않음.

 지금까지 완성한 대작의 숫자 : 10

 -조각술 스킬의 숙련도가 향상되었습니다.

  

 -손재주 스킬의 숙련도가 향상되었습니다.

 -조각품에 대한 이해의 스킬 레벨이 1 상승하였습니다.

 -명성이 968 올랐습니다.

 -예술 스텟이 48 상승하였습니다.

 -지식이 12 상승하였습니다.

 -지혜가 6 상승하였습니다.

 -매력이 25 상승하였습니다.

 -프레야 여신의 아름다움에 대한 축복이 조각상에 부여되어, 프레야 교단의 사제와 성기사들은 이 조각품을 보며 특별한 힘과 용기를 얻습니다.

 -프레야 여신의 인정을 받는 조각품을 만들어 신앙이 19 상승하셨습니다.

 -대작 조각품을 만든 대가로 전 스텟이 3씩 추가로 상승합니다.

 ----------------------------------------------

 위드의 공이 대단하였지만, 자하브가 없었다면 만들지 못 할 조각품이었다.

 헬리움을 사용하여 만든 여덟 번째 대작, 조각사들이 남긴 횃불을 빼면 단연 최고로 손꼽을 만하였다.

 여러 스텟들을 얻었지만 조각품이 으레 그렇듯이 전투와 직접 관련이 없는 스텟들 위주로 푸짐하게 늘어났다.

 힘과 민첨에는 상당히 인색했고, 지식과 지혜는 제법 많이 올려 주었다. 위드도 검치 들과 마찬가지로 지식과 지혜에는 스텟을 분배하지 않았지만 그럭저럭 살 만한 건, 순전히 조각품을 만들어서 올렸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것으로 자하브의 조력자 퀘스트도 절반을 끝냈다.

  "훌륭한 실력이군. 이 정도로 잘해 줄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는데……. 내가 만들고 싶었던 다른 한 가지의 조각품은 나 자신을 표현한 조각상이라네."

 자하브는 스스로의 모습을 조각품으로 남기고 싶어 했다.

  "훗날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면 나라는 존재도 이 베르사 대륙에서 완전히 잊혀 버리겠지. 나는 내 흔적을 조각품으로 만들어 놓고 싶어. 자네 정도의 실력이라면 내 조각상을 만들어 주기에 충분하고도 남겠어."

 이제 자하브를 대상으로 하여 위드가 직접 조각을 해야 했다.

  '이것도 그리 어렵지는 않겠군.'

 서윤을 조각품으로 만들어서 자하브의 만족도를 제대로 높여 놓았다.

 지금까지의 경험과 사실적인 관찰력이 있으니 남은 조각상 따위야 식은 죽 먹기! 어린아이 사탕 뺏고, 껌 뺏고, 학원비 뺏고, 우뷰 뺏어 먹기 수준이었다.

 자하브는 일곱 가지 종류의 자기 조각상을 만들어 주기를 원했다.

  "내 삶을 하나의 조각품으로 만들고 끝내기에는 너무 아쉽군. 조각상의 자세들은 내가 생각해 둔 것이 있다네."

 자하브는 스스로 원하는 자세를 취했다.

 여러 개를 만들어야 하지만, 오히려 보이는 대로 작업을 하면 되니 위드에게도 불만은 없었다.

 첫 번째 자세로는 조각품을 앞에두고 작업을 하는 자하브!

 조각사이니만큼 조각품을 만드는 광격을 남기고 싶어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리라.

  "퀘스트를 완료하면 보상을 받을 수 있을 테니까. 잘 만들어 줘야겠어."

 모델이 나이 든 노인이었기 때문에 손이 더 많이 갔다.

 사각사각.

 조각품을 만들면서 판박이처럼 그대로 표현을 할 필요는 없다.

  '이건 예술 작품이 아니야. 보고 마음에 들 정도로 멋있어야 돼.'

 자하브의 얼굴은 화장품을 바른 것처럼 색감을 조절하고, 잔주름도 약간 조절해서 심하지 않게 만들었다. 머리 스타일도, 헝클어져 있으면서도 자연스러운 맛이 나는 느낌으로 했다.

  "역시 자네의 실력이 나쁘진 않군."

  "좋은 모델이 있으니 있는 대로 표현하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나머진 조각품도 잘해 주기를 기대하겠네."

 다음으로는 숲 속에서 산책을 하는 조각품을 만들어야 되었다.

 특별히 어려움은 없었지만 재료가 고급이었고, 눈여거 보이지 않는 세세한 부분까지 많은 주의를 기울이다 보니 이틀이나 사흘씩은 기본으로 필요했다.

 자하브는 보통 저녁에 되면 인근의 던전으로 가서 사냥을 했다.

  "나중에 만들 조각품 중에는 내가 전투를 하는 모습도 있을 테니 미리 잘 관찰해 두기를 바라네."

  "알겠습니다."

 전투 중에 자세를 취하면서 기다려 줄 수 없으니 위드는 자하브를 따라다니면서 살펴봐야 했다.

 싸움 구경이야말로 얻는 게 많다.

 자하브가 터무니없을 정도로 강한 무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달빛 조각 검술!"

 위드는 눈치를 보면서 몬스터들이 만만하게 있을 때만 같이 사냥을 했다.

 몬스터들이 몰려오면 자하브가 처치를 해 주었으니 그걸 믿고 던전 탐험에 옆에서 같이 숟가락을 올렸다.

 #

  '아마 이쪽일 것 같아.'

 서윤은 그라페스에서 수색을 하며 위드를 찾았다.

 그녀 혼자서 들어와서, 덤벼드는 몬스터들을 해치웠다.

  '이곳에서 만날 수 있겠지.'

 10대 금역의 한 장소인 그라페스라고 해도, 서윤이 평소 사냥하던 몬스터의 레벨이 워낙 높았기 때문에 별 문제 없이 싸울 수 있었다.

 몬스터들이 대규모로 이동할 때에만 피했을 뿐, 그러지 않을 때에는 위드를 찾기 위해서 계속 움직였다.

 그녀는 그라페스의 중앙 숲으로 들어가서 계속 전투를 했다.

 위드를 만나기 위해서였으니 힘든 줄도 모르고 싸우고 있던 차!

 달밤에 멀리서부터 포효하며 날라오는 대형 몬스터가 있었다.

  "크롸롸롸롸롸."

 드래곤 피어!

 달빛에 거대한 몸집이 빛나는 존재는 바로 빙룡!

 비행이 가능한 조각 생명체들과 함께 사냥을 하고 있었다.

  "빙룡……."

 서윤이 불렀지만 빙룡은 높은 곳에서 날아 그녀를 지나쳐갔다.

 나무들이 가려서 그녀를 발견하지 못했으리라.

 안타까운 이별의 순간!

 그녀는 땅에서 돌멩이를 주워서 던졌다.

  "케에엑! 감히 누가!"

 서윤의 손을 떠나자마자 전속력으로 날아간 돌멩이는 빙룡의 머리에 부딪쳤다.

 적대적인 행동에, 빙룡이 즉각 돌아서서 지상을 관찰했다. 그리고 서윤을 발견했다.

  "주인의 친구……."

 여행을 같이했던 적이 있어서 서윤을 기억했다.

  "주인을 만나러 온 것인가?"

 서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타라. 주인에게 데려다 주겠다."

 빙룡이 땅에 내려앉았다.

 거대한 몸집이 하강하면서 나무들이 밟혀서 쓰러졌다.

 머리까지 낮추면서 그녀가 탈 수 있도록 최대한 배려해 준 순간, 서윤이 조용히 말했다.

  "와삼이를 불러다 줄래?"

 #

  "까악까아아아악!"

 불만 가득한 와삼이를 타고, 서윤이 자하브가 사는 곳에 도착했다.

  "여기는 어쩐 일이야?"

 그라페서에서 그녀를 만나다니, 위드는 너무나도 의외였다.

 서윤은 차마 보고 싶어서, 같이 있고 싶어서 왔다는 말은 하지 못하고 얼굴만 붉혔다. 대화를 할 수 있게 된 이후로는 거의 처음으로 말하지 않고 시선을 회피했다.

 위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잘 왔어. 이렇게 보니까 반갑다."

 하지만 은밀히 고개를 드는 의심!

  '그라페스에서 무슨 보물이라도 캐는 줄 알고 찾아온 걸까? 얼굴을 붉히는 걸 보니 염치는 있는 모양이지.'

 자하브와 잘 지내고 있던 차에 서윤이 왔지만, 그렇다고 방해가 될 것도 없었다.

  "미의 여신과도 같은 외모를 가진 아가씨로군."

 자하브는 그녀에 대해서 최고의 호감을 보였다. 조각사나 화가나, 예술을 하는 족속들은 기본적으로 미녀를 좋아하기 때문에 친밀도를 거저 얻은 것이다.

  "죽기 전에 아가씨를 대상으로 조각품을 만들어 보고 싶은데, 허락해 주겠소?"

 서윤에게 조각상의 모델이 되어 달라는 부탁까지 했다.

 퀘스트의 발생!

 어떤 보상을 줄지는 몰랐지만, 조각술 마스터의 요청이니만큼 상당히 좋을 것으로 기대됐다.

 하지만 서윤은 고개를 저으면서 명백한 거절의 의사를 표시했다.

  "그럴 수 없어요."

  "내가 모은 보석이나 조각품을 대가로 주겠소."

  "하고 싶지 않아요."

 서윤은 끝내 퀘스트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위드는 그녀를 자주 조각했기에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실은 여기서도 내가 조각을 했는데……."

 서윤을 대상으로 해서 조각을 했다는 말을 고백했다.

 조각품이 자하브의 작업실에 보관되어 있으니, 나중에 갑자기 발견되어 경을 치는 것보다야 지금 말해 버리는 게 훨씬 나으리라는 판단에서였다.

  "고마워요."

  "응?"

  "저를 조각해 줘서요."

  "……."

 위드는 역시 여자들이란 종잡을 수 없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할머니도 만날 돈가스나 탕수육 같은 음식은 기름져서 먹고 싶지 않다고 했다. 하지만 나중에 돈을 많이 벌어서 평소 좋아하시던 기사 식당으로 모시고 갔더니, 왜 돈가스는 사주지 않느냐며 서운해하지 않았던가!

 여동생도, 미용실에서 자른 머리가 엉망이라고 불만스러워하기에 정말 못 잘랐다고 한마디 거들었더니 방으로 들어가서 그날 저녁밥을 먹으러 나오지도 않았다.

  "정말 여자 말은 믿어서도 안 되고, 믿을 수도 없어."

 자하브가 사냥을 할 때, 이제 위드만이 아니라 서윤도 같이 끼어서 거들었다.

 위드도 지골라스에 다녀온 이후 레벨도 올리고 강해진 편이었다. 여러모로 전투를 많이 했던 편인데, 서윤은 지골라스 때보다도 훨씬 많이 강해져 있었다.

 자하브와는 비교할 바도 아니지만, 위드가 겨우 잡는 카라약들도 무난히 사냥을 할 정도였다.

 #

 자하브의 두 번째 조각품, 숲 속을 산책하는 형상의 조각품이 완성되었다.

  "탐험을 즐길 때도 있지. 미지의 영역, 아무리 발길도 닿지 않은 장소로 가 보았는가?"

 자하브가 던전을 탐색하는 조각상도 만들었다.

  "혼자서 고독을 즐기다 보면 무언가를 끊임없이 만들고 싶어지지."

 상념에 빠져 있는 조각상도 완성시켰다.

  "몬스터들과의 싸움도 내 인생의 일부분이었던 것 같아."

 자하브는 백발의 노인이었지만, 힘이 넘쳤고 전투력도 뛰어났다.

 위드는 몬스터와의 전투도 조각상으로 만들었다.

 벌써 5개의 조각상이 완성되고, 단지 2개만이 남았다.

  "한 가지는… 오래전 과거의 추억을 조각품으로 만들고 싶다네. 자네가 만들기가 쉽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그때의 일에 대해 알고 있는 자네가 찾아온 것도 인연이라고 할 수 있겠군."

 자하브가 만들기를 원하는 조각품은, 로자임 왕국에서 이베인 왕비를 해치려던 암살자들을 제압하는 모습을 담은 조각품이었다.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조각을 해 주겠다고 약속을 지켜서 이베인 왕비가 감동하던 순간이, 자하브에게도 평생 잊히지 않는 추억으로 남았다.

  "해 보겠습니다."

 위드는 로자임 왕국의 왕성에 들어갔던 경험도 있었다.

 벽에 아주 작게 축소된 규모로 먼저 왕성을 조각했다. 보통 어렵고 손이 가는 작업이 아니었지만, 작품을 만드는 데에 최선을 다했다.

 대충 해도 되는 퀘스트도 아니고, 자하브의 의뢰다.

  '암살자들은 일단 흉악하게… 사형들 중에서 몇 명 골라주고, 사형들이 예쁜 여자 친구와 팔짱 끼고 가는 남자를 보던 표정대로 만들면 되겠어.'

 사각사각.

  "암살자들을 정말 훌륭하게 잘 표현했군. 바로 그렇게 나쁘게 생긴 놈들이었어."

 왕실 기사들은 비중이 클 필요가 없으니 여기저기 쓰러져 있도록 눕혀서 조각했다.

 이베인 왕비는 과거 추억을 돌이키는 영상에서 보기도 했지만, 로자임 왕국의 왕실에서 초상화를 오래 쳐다보았다.

 복도를 걸으면서 무심히 지나쳐 버릴 수도 있었지만, 자하브와 관련된 에피소드를 알고 있었으므로 잘 봐 두었던 게 지금 와서 도움이 됐다.

  '참하고, 기품이 있는… 그러면서 사랑스러운 면이 있는 아가씨였지. 왕비에 어울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좋은 느낌이었어.'

 그리고 자하브를 조각할 차례였다.

  "달빛 조각술!"

 위드는 달빛 조각술을 써서 젋은 자하브를 조각했다. 왕족도 부럽지 않을 옷을 입고 있는 자하브가 암살자들을 물리치며 검으로 달빛을 조각한다.

 이 모습이야말로 최고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낭만적이기는 하군.'

 위드는 힐끔 서윤을 보았다. 가정에 불과하지만, 만약에 그녀가 암살자들에 의해 위기에 처한다면…….

  '내가 나설 시간도 없이 몽땅 죽여 버리겠지!'

 조각품이 거의 다 만들어지고 있을 때, 구경하고 있던 자하브가 노래를 불렀다

  

  이곳에 있습니다

  어디로 떠나더라도

  내마음만은 항상 그대 곁에 남아 있습니다

  어릴 적의 약속대로 아름다운 조각품을 만들어 줄게요

  어떻게 할까요?

  나에게는 당신이 가장 아름답고, 그보다 더한 조각품은 만들 수가 없는데

  당신과 보냈던 시간들이 잊히질 않아

  내 마음까지도 이곳에 조각처럼 남겨두고 싶네요

  이 달빛에 내 마음을 담아서 조각을 해 보네요

 닭살이 절로 돋아나는 노래가 울려 퍼지자 조각품들이 움직였다.

 위드가 조각한 자하브의 조각상, 이베인 왕비, 왕실 기사, 암살자 들이 살아 있는 것처럼 움직이면서 싸웠다.

 젊은 자하브가 검을 휘두르자 달빛이 내리더니 부서지고 흩어지고 다시 모이면서 찬란한 춤을 추었다.

 조각품은 걸작으로 완성되었다.

  -달빛 조각술의 스킬 레벨이 올랐습니다. 스킬의 레벨이 중급 3단계가 되었습니다. 빛을 이용한 조각술의 효과가 늘어납니다.

  -달빛 조각 검술의 스킬 레벨이 1 상승하셨습니다.

  -달빛 조각 검술의 스킬 레벨이 1 상승하셨습니다.

  -검술 스킬의 숙련도가 증가합니다.

  -퀘스트 '자하브의 유지를 이어라'에 필요한 정보들을 모으셨습니다.

 자하브의 노래 가사는 감미로우면서도 느끼했다.

 어쨌든 최초로 수행했던 연계 퀘스트가 이제야 결실을 거두게 되었다.

  '이제 시녀에게 가서 불러 주기만 하면 되겠군.'

 자하브가 원하는 조각품도 하나만 마저 만들어 주면 된다.

 자하브는 과거를 회상하는 듯 한동안 말이 없었다. 이베인 왕비를 기억하는지, 지나가 버린 젊음을 아쉬워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면 마지막 한 가지 남은 조각품은……."

 위드는 간단한 조각품은 아닐 거라고 짐작했다.

  '그래도 어떤 조각품이든 만들 수는 있지.'

 자하브가 설명하는 대로 무엇이든 만들어 주면 될 일.

  "내가 잘하는 건 조각술과 검이었지."

 그는 조각사로서는 특이하게도 검을 뛰어나게 잘 사용했다.

  "이베인을 떠나서 이곳에 정착하고 난 이후로는 조각술만큼이나 검을 쓸 일이 많아졌고, 검은 내게 조각술처럼 소중한 부분이 되었어."

 하기야 몬스터들로부터 목숨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많은 전투를 해야 했을 것이다.

  "자네의 검은 아직 그리 강해 보이지 않아."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위드의 검술 스킬은 현재 중급 9레벨.

 공격 스킬에 의존하다 보면 기본 검술은 잘 오르지 않는다. 게다가 공격 스킬은 마나 소비도 심하기 때문에, 위드는 혼자서 사냥할 때 스킬의 사용은 최소화하곤 했다.

 그럼에도 검사나 기사 들보다 검술이 숙달되는 속도가 훨씬 느렸다.

 검사들은 전직과 2차 전직 등을 통해 검에 잠재되어 있는 힘을 깨울 수 있다. 검의 공격력이 2배 정도씩이나 높았으니 전투를 통해서 스킬 숙련도가 훨씬 편하게 잘 늘었다.

 위드는 어마어마하게 쌓은 스텟으로 공격력을 보완하였지만, 검을 전문적으로 쓰는 직업들처럼 높은 스킬 숙련도을 빨리 얻진 못했다.

 검술을 갈고닦는 데 언제나 노력을 하고 있었음에도 스킬은 여태껏 중급 9레벨에 머무르고 있는 현실이었다.

  "내가 취하는 자세들의 조각상을 만들다 보면 무언가 깨치는 것이 있을 수도 있겠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