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달빛조각사 25권 : 7. 로자임 왕국의 늙은 시녀 (136/520)

   로자임 왕국의 늙은 시녀

 화령이 접속하고, 다크 게이머들이 합류했다.

 위드는 조각 생명체들도 모아서 사냥을 다시 진행했다.

  "여기는 자하브 님이 있었을 때에나 들어가던 던전인데요."

 다크 게이머들은 가이트너 던전의 입구에서 발걸음을 주저했다.

 자하브 1명의 전투력이 워낙에 뛰어났다. 검술로 상대의 공격을 막아내고 막강한 공격력을 발휘하던 그가 없어졌으니 전체적인 전력이 크게 떨어졌다.

  "들어가도 괜찮습니다."

 위드와 서윤이 먼저 던전으로 들어가니, 화령도 따라 들어갔다.

  "위드 님이라면 무슨 생각이 있을 거예요."

 다크 게이머들은 잠시 의견을 교환했다.

  "던전에 들어가도 괜찮을까? 지금까지 봐 온 성격으로는 허무맹랑한 일을 저지를 사람 같지는 않은데."

  "내 생각도 그래. 전쟁의 신 위드가 던전 사냥에서 허망하게 죽진 않겠지."

  "자하브가 없더라도 전멸할 정도로 위험하진 않을 테니 같이 가 볼까?"

 다크 게이머들은 육체가 곧 밑전이었기 때문에 몸 생각은 끔찍하게 했다.

  "여기서 따로 떨어져 나가서 도시로 돌아가는 것도 허무하지. 이렇게 충실하게 사냥에 빠진 적도 없으니."

  "난 가겠네."

 볼크와 데어린이 먼저 던전으로 들어가고, 다른 다크 게이머들도 따라서 들어갔다.

 펙코일이라는 던전의 비행 몬스터들과의 전투에서 위드는 검술 스킬을 사용했다.

  "광휘의 검술!"

 위드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의 검술!

 황홀할 정도로 아름다운 빛의 새들이 펙코일들을 향해 날아들었다.

 서윤도 검술의 비기를 쓰면서 빛의 검의 공격이 이뤄졌다.

  "어디서 이런 스킬을… 들어 본 적도 없는 공격 기술인데."

 다크 게이머들의 눈이 휘둥그레진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는 일. 웬만한 전투는 다 경험해 봤지만 처음 접하는 기술이었다.

  "광휘의 검술!"

 위드가 스킬을 사용할 때마다, 다크 게이머들은 전투를 하는 와중에도 유심히 살폈다.

  '크흠, 강하군.'

  '빛이 가닥가닥 쪼개져서 몬스터들을 도륙하다니. 꽤나 멋진걸.'

 어려우리라 생각했던 펙코일들 사냥이 가능했다. 그 이유는 위드와 서윤이 시전하는 검술 때문이었다.

 마나뿐만 아니라 체력까지도 극도로 소모하는 검술의 비기였지만, 이곳의 몬스터는 월등히 강했기 때문에 쓰지 않을 수가 없었다.

 몬스터들과 싸워서 이기기만 한다면 전리품도 두둑하게 챙기고, 경험치도 많이 얻을 수 있다.

 죽느냐 사느냐가 문제일 정도로 힘겨운 사냥이었지만, 던전 안은 신비로운 빛으로 가득해 아름답기까지 했다.

 위드와 서윤은 광휘의 검술로 몬스터들의 생명력을 쭉 깎아 놓고, 나머지는 근접전으로 해결했다.

 #

 현실 시간으로 새벽 4시!

 위드는 다른 때보다 일찍 접속을 했다.

 시장을 갈 필요도 없었고, 아침은 간단히 볶음밥으로 할 작정이었기에 새벽부터 로열 로드에 들어왔다.

 그래도 조각 생명체들만 데리고 사냥을 하기에는 부담스러워서 조각품이나 만들며 쉬려고 했다.

  "주인 왔나."

 늘어져라 자고 있던 누렁이가 하품을 했다.

 반 호크, 토리도와는 달리 조각 생명체들은 적당히 잠을 자 줘야 되었다.

  "그래. 많이 먹어라."

 위드는 여물을 삶아서 주고 자리에 앉았다.

 조각술 마스터에 가까워지면서 무엇을 만들어야 할지에 대해 고민이 깊어지고 있었다.

  '조각품도 한 방인데… 있는 돈 없는 돈 끌어모아서 제대로 비싸고 화려한 걸 만들어 볼까?"

 영주의 권한으로 모라타와 바르고 성채의 세금을 인출, 귀금속으로 되어 있는 거대한 조각품을 만들 수가 있다.

 물론 돈만 많이 들인다고 해서 좋은 작품이 나오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그래도 재료가 훌륭하다면 아무래도 유리한 것이 사실.

 위드가 조각 재료들을 주섬주섬 풀어 놓고 있는데 화령이 접속했다.

 그녀는 둘만 같이 있는 시간을 위해서 새벽 일찍 접속해서 기다릴 셈이었다. 그런데 마침 위드가 있는 것이다.

 화령은 보조개가 보일 정도로 살포시 웃었다.

  '역시 인연이란 어쩔 수가 없다니까.'

 아우우우!

 멀리서 늑대의 울음소리도 들렸다.

  "아, 오늘따라 왜 이렇게 무섭죠?"

 화령은 위드의 앞에 바짝 다가앉았다.

 늑대라면 이제 5,000마리라도 한꺼번에 사냥할 수 있는 그녀가 약한 척을 했다.

 그가 만드는 조각품을 자연스럽게 내려다볼 수 있는 위치!

 위드외 시선이 그녀의 몸매를 재빨리 훑으며 지나갔다.

 화령은 숱한 남자들의 시선을 받아 봤던 탓에 그 눈빛을 놓치지 않았다.

  '위드 님도 역시 남자였어.'

 위드의 눈동자가 커진 것까지 확인하고는 괜히 기분이 좋았다.

  '오늘 또 다른 드레스를 입었구나.'

 보석 드레스는 가격이 무려 7만 골드짜리!

 구두와 목걸이, 팔찌까지 맞춤이었다.

 위드는 화령이 착용하고 있는 아이템들을 보면서 더없이 부러웠다.

  '정말 비싼 옷들이 많군.'

  '내 몸매에 완전히 반한 거야.'

 화령은 약간 허전함을 느꼈다.

  '오늘은 화장도 별로 신경을 안 썼는데… 드레스도 밤에는 좀 더 파이고 은근한 걸 입어 줄걸 그랬나? 아냐, 위드 님은 청순한 느낌을 좋아할 것 같아.'

 댄서로서, 옵션이 많이 붙은 드레스보다는 느낌이 좋으면 되었다. 초보 시절 입었던 드레스까지 여전히 다 가지고 있어서, 화령의 배낭은 옷 가방과 액세서리 가방으로 나뉘었다.

  "저기, 새로 산 옷으로 바꿔 입고 올 테니 좀 봐 주실래요?"

 위드로서는 거절할 이유가 조금도 없었다.

 화령이 자기 옷을 입겠다는데 왜 반대한단 말인가.

  "예."

 화령은 30분쯤 지나서 완벽한 청순 글래머의 느낌으로 돌아왔다.

 긴 머리의 흰 원피스로 수수한 멋을 낸 것이다.

  "제 모습 어때요?"

  "자연스럽게 눈길을 끈다고나 할까, 예쁘네요."

 화령은 잠시 후에 다른 의상으로 또 바꿔 입었다.

 발랄한 여성 여행자의 복장!

  "이 옷은요?"

  "편해 보이는데 예쁜데요."

 화령은 계속 드레스를 바꿔 입으면서 위드에게 보여 줬다.

  "가방이 참 멋진데요. 좋은 가죽을 사용한 것 같아요."

 위드는 그녀의 모습을 조각품으로 남기기도 했다.

 다정한 시간을 보내다가 화령이 말했다.

  "산 좋아하세요?"

  "산요? 뭐, 싫어하지는 않죠."

 산동네에서 살았던 시간이 어디 하루 이틀도 아니고, 싫어할 것도 좋아할 것도 없는 형편이었다.

  "제 생일이 봄인데, 날씨도 좋아지면 가까운 곳으로 같이 등산이나 하러 갈래요?"

 화령의 용감한 데이트 신청이었다.

 현실에서 만난다면 알아보는 사람들 때문에 스캔들을 피하기가 굉장히 어렵다. 하지만 위드와 현실에서도 같이 있어보고 싶었다.

 특히 그녀가 편하고 자유로움을 느끼는 산에 같이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일이라면, 뭐.'

 화령은 동료들 중에서도 위드를 많이 생각해 주고 도움이 되려고 했다.

  "예. 뭐, 파전에 막걸리 정도 싸서 한번 놀러 가죠."

 #

 서윤과 다크 게이머, 조각 생명체 들과의 사냥이 효율적이기는 하였지만, 미지의 지역에서 밤마다 거대한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럴 때면 새들이 숲에서 한꺼번에 날아오르고, 그라페스에 사는 이종족들이 영역을 옮겼다.

  "주인, 여기는 위험해 보인다."

 빙룡도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다.

  '그라페스의 보스급 몬스터가 있을지도 모르겠군.'

 지골라스에서 온갖 생고생을 다 하고, 최종적으로 어부지리로 혼돈의 대전사 쿠비챠를 사냥했다. 이번에도 그런 꼴을 당하지 말란 법이 없었기에 위드는 레벨을 406까지 올리고 나서 그라페스 지역을 떠나기로 했다.

 꾸준히 계속 사냥을 할 수 없는 점은 유감이었지만, 금역에 가서 무사히 자하브를 만나고 살아 나온 것만으로도 대성공이었다.

  "일단 모라타에 물건부터 가져다 놔야겠군."

 위드는 와이번들을 시켜서 그가 만든 조각품을 영주성으로 옮기기로 했다.

  "와일아."

  "깨액. 꺄아악."

  "맛있는 거 먹으러 다른 장소로 새지 말고, 곧장 영주성으로 가야 된다."

  "캬캬캬캿. 주인의 말이니 물고기도 안 먹고 바로 가겠다."

  "나중에 이빨 사이에 가시 박혀 있으면 죽는다."

  "모라타로 바로 가겠다."

 와이번들을 이동시키고, 빙룡과 불사조도 함께 붙여 놓았다. 그 정도라면 모라타까지 가는 길에 별일은 생기지 않으리라.

 검술의 비기가 담겨 있는 조각상들이기 때문에 귀중하게 다루어야 하는 건 당연했다.

 다크 게이머들과 화령과도 나중에 모라타에서 다시 만나기로 했다.

  "그럼 나중에 봐요. 돌아오시면 연락 주세요!"

  "예. 화령 님도 조심해서 가세요."

 그들도 짐을 싣이 않은 와이번에 타고 모라타로 이동하기로 했다.

 화령은 다른 동료들도 있는 모라타로 돌아가는 게 당연했지만, 다크 게이머들도 원래 활동하던 왕국인 브렌트를 버리기로 한 건 상당히 의외였다.

  '저 검술 스킬, 아주 대단해 보이는군.'

  '정말 굉장한데. 몬스터와 싸울 때는 크게 도움이 되겠고, 처음 보는 사람들은 당황해서 제대로 상대하지도 못하겠어.'

 위드와 서윤이 사냥 중에 광휘의 검술을 쓸 때마다 다크 게이머들은 눈독을 들였다.

 그들이 아는 검사들의 스킬 중에서는 일찍이 전혀 알려진 바 없는 기술!

  '자하브가 검술 마스터라고 했으니 그에게서 배워서 익혔던 거 같군.'

  '검술의 비기일 가능성이 높다.'

 다크 게이머들은 친절해졌다.

  "붕대가 떨어졌군."

  "위드 님, 여기 이 붕대를 쓰십시오."

  "아직 한 번도 안 쓴 붕대 묶음 세트인데, 이거 드릴게요."

  "화살도 없는데."

  "제 화살통 받으세요. 마법이 걸린 화살통이라서 오백 발 까지도 보관할 수 있는 건데요. 부담 갖지 마시고 쓰에요. 안 돌려주셔도 됩니다."

 위드가 필요하다고 하면 바로 가져다 바쳤다. 혹시라도 검술의 비기를 알려 줄지도 모른다는 희망 때문이었다.

 위드는 당연히, 자하브의 검술의 비기를 독점하고 싶은 욕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직접 만든 조각상은 검술의 비기를 터득할 수 있는 보물. 오직 검치 들에게만 알려 줄 생각이었다. 다른 누가 어떤 부탁을 하더라도 검술의 비기를 알려 줄 수는 없다.

 하지만 자하브가 세상에 나선 이상 광휘의 검술을 익힌 다른 사람들이 나타날 가능성도 높았다. 그때가 되면 다크 게이머들과도 적당한 거래를 할 수 있으리라.

 서윤의 경우에는 로자임 왕국에서 할 일이 있다면서 위드와 같이 가기로 했다.

 와삼이가 무거운 엉덩이를 들고 날기 위하여 뒤뚱뒤뚱 걸어가려 할 때였다.

  "와삼아."

  "꺄룩?"

  "넌 나랑 같이 가자."

  "까까까끅!"

 와삼이는 울면서 엎드렸다.

 그렇게 위드는 서윤, 와삼이와 같이 로자임 왕국을 향하여 비행했다.

  "와삼아, 옷이라도 한 벌 만들어 줄까?"

 와이번의 셋째, 와삼이는 주둥이를 찢어져라 벌리며 머리를 끄덕였다.

  '과연 주인이 나를 많이 고생시키긴 했어도 가장 아껴 주는군.'

  "두꺼운 옷으로 만들어 줄게. 날씨도 추우니까."

  "주인, 옷을 만들어 준다는 말만으로도 고맙다."

  "오래 타다 보니까 춥고 등이 너무 딱딱하더라고. 푹신한 이불이라도 깔려 있어야지. 아, 베개도 만들어 놔야겠군."

  "……."

 공간만 넉넉하다면 나무 의자와 책상까지 메고 다니라고 하지 않을까 염려될 정도!

 위드는 로자임 왕국으로 가는 비행길에서도 달빛 조각품을 만들었다.

 서윤은 바람에 머리카락을 날리면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남자가 일에 몰두하는 모습은 매력적일 때가 있다. 하지만 서윤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니 있어도 여신처럼 아름다웠다.

 흩날리는 머릿결, 높은 하늘에 떠 있는 달과 별들을 배경으로 그녀가 앉아 있다.

 위드가 달빛 조각술을 쓸 때마다 필요하지 않은 조명효과까지 났으니 그 미모야말로 최고의 보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지경!

  "조각술은 알면 알수록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

 위드는 조각칼을 움직였다.

 자하브가 만들어 놓은 참신한 조각품들을 보면서 많이 감동했다.

  "조각품도 비싸게 팔릴 수 있는 세상이 곧 오겠찌."

 조각사로서 더할 나위 없이 진심을 바라는 미래였다.

 조각품으로만 먹고살 수 있다면, 원하는 길에 꿈과 희망을 걸면서 살아갈 수 있다면 정말 행복할 것이다.

 #

 로자임 왕국!

 위드가 과거에 시작했을 때와 비교하면 많이 변화해져 있었다.

 고급스러운 상점들이 세워지고, 초보자들의 여행복이 대세를 이루었던 유저들의 옷차림도 많이 고급스러워졌다.

  "로자임 왕국도 많이 커졌군."

 위드와 서윤은 와이번을 타고 멀리 떨어진 뒷산에서 내려서 왕국의 수도인 세라보그 성을 향해서 걸었다.

 지나다니는 상인들, 모험가들 중에는 어쩌면 위드와 안면이 있던 사람들도 있으리라.

  "정말 고향에 왔어."

 당시에 팔아 치운 엄청난 양의 조각품들, 덩달아 그에게 바가지를 당한 무수한 희생자들.

 피라미드를 짓는다며 무거운 돌덩어리들을 나르며 고생한 유저들!

 지금 돌이켜 보면 좋은 추억이었고, 반가운 사람들이었다.

 위드는 서윤과 함께 발걸음을 재촉했다.

  "도시에 가서 할 일이 제법 많겠어."

 그라페스에서 전리품을 챙겨서 배낭 4개가 꽉꽉 찼다. 꼭 필요하지 않은 물건들을 처분하고, 늙은 시녀도 만나 봐야했다.

  "드디어 노래를 불러 주게 되는군."

 서윤은 다소 걱정스러운 얼굴이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위드가 연습을 하는 노래를 들어 봤기 때문이다.

 자하브의 감미로운 미성과는 수천 광년 거리가 있을 듯한 완전한 생목!

 아침에 우는 닭이 주눅이 들 정도로 쏟아 내는 괴성.

  '괜찮을까? 별일이 없으면 좋을 텐데.'

 서윤은 걱정을 하면서 따라갔다.

 위드가 세라보그 성의 성문을 막 통과하여 광장으로 가려고 할 때였다. 로자임 왕국의 성문을 지키는 기사와 경비병들이 나타나서 그를 포위했다.

 그러자 주변의 유저들이 손가락질을 하며 떠들썩해졌다.

  "어라, 저 사람 왜 저래?"

  "무슨 죄라도 저지르고 도시로 들어오려는 거 아니야?"

  "잘됐다. 구경거리 생겼네. 경비병들한테 맞아 죽을 거야."

  "차림새를 보니 완전 초보는 아닌 것 같은데 경비병 정도는 없앨 수 있지 않을까?"

  "그러면 뭐해. 로자임 왕국과는 완전히 적대적이 되어 버릴 뿐만 아니라 군대가 출동해서 쓸어버릴걸."

 위드는 너무나도 억울했다.

  '내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최근에 나쁜 짓을 약간 미세하게 저지른 것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언데드로 활동을 조금 했고, 해적들과 잠깐 어울렸으며, 불사의 군단에 속해서 폴론의 헤르메스 길드와 싸운 것밖에 없는데……."

 평판을 떨어뜨리는 행동이기는 했다.

 그래도 다 먹고살자면 그 정도는 저지르면서 사는 게 아니던가!

 기사와 병사들은 무기를 뽑아서 위드를 향해 휘두르는 게 아니라, 가슴에 손을 올리며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여행자님의 방문을 환영합니다."

 보기 좋은 구경거리를 기대하던 유저들은 병사들의 행동에 당황했다.

  "커헉."

  "여기서 2년 넘게 장사를 하면서 병사들이 저러는 건 처음보는데. 기사까지 고개를 숙였어!"

  "저 사람 누구야?"

  "중앙 대륙의 랭커가 여기에 놀러 온 건가? 하지만 병사들이 이렇게 반응할 정도의 명성이라면 도대체……."

 성문을 오가던 유저들의 뜨거운 시선이 위드와 서윤에게로 향했다.

 위드는 무시하고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는데, 그때 기사가 말했다.

  "국왕 폐하께서 여행자님이 오시면 인사라도 하고 싶다며 왕성으로 모셔 오라고 하셨습니다."

 명성과 업적의 효과!

 베르사 대륙의 어느 왕국의 국왕이라도 만날 수 있기는 했지만, 로자임 왕국은 위드의 출신 국가이기도 하였으니 대우가 더욱 남달랐다.

 위드가 만약에 세라보그 성에 계속 남아서 활동을 하였다면 로자임 왕국에 어마어마한 발전이 있었을지도 모를 일.

  "대륙의 평화를 지키기 위하여 지금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로자임 왕국을 통치하시는 위대한 국왕 폐하를 만나는 일은 저에게도 무척이나 영광스러운 자리이지만, 바쁜 일이 있어서 나중에 뵈었으면 합니다."

 늙은 시녀를 만나는 일은 오래 끌어왔던 만큼 빨리 해결하고 싶었다. 로자임 왕국의 국왕은 언제라도 만날 수 있었다.

  "정 그러시다면 어쩔 수 없지요. 국왕 폐하게서도 기다리고 계실 테니 꼭 알현을 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위드는 서윤과 함께 유저들의 시선을 잔뜩 받으면서 세라보그 성으로 들어갔다.

 #

  "물건 사고팝니다. 상점 구매 대행, 판매 대행도 해 드립니다."

  "필요한 장비 주문 제작해 드려요."

  "사냥 가시기 전에 필수품들을 확인해 보세요. 여기서 싸게 싸게 팝니다."

 위드는 광장으로 가서 무거운 배낭부터 처리하기로 했다.

 유별나게 비만인 체형의 남자가 짐마차를 세워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혹시 위드 님이십니까?"

  "맞습니다."

 마판으로부터 연락을 받고 기다리던 상인이었다.

 로자임 왕국에서 신흥 거부로 떠오르고 있는 거래 전문 상인 '돈내놔' 였다.

  "물건은 가져오셨습니까."

  "먼저 돈부터."

  "여기. 그리고 괜한 노파심에서 하는 말이지만 물건은 틀림없겠지요?"

  "직접 확인해 보시죠."

 위드와 돈내놔가 하는 말은 사정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흡사 불법적인 거래라도 하는 것 같았다.

  "확실하군요. 수량도 틀림이 없고. 잘 받았습니다."

  "좋은 거래였습니다. 기회가 되면 다음에 또……."

  "물건 생기면 언제든 세라보그 성의 돈내놔를 찾아 주시면 됩니다."

 케이블에서 하는 범죄 영화가 끼친 악영향이었다.

 거래는 짧을수록 좋았기 때문에 위드는 돈주머니를 받아들고 미련 없이 돌아섰다.

 별것 아닌 것 같은 가죽 주머니였지만 안에 들어 있는 자금은 자그마치 16만 8,000골드!

 그라페스에서 사냥한 아이템이었기 때문에 가격이 상당히 많이 나왔다.

 서윤도 덕분에 그녀가 가지고 있던 잡텝들을 좋은 값에 처분할 수 있었다.

 잡템은 모으는 것뿐만 아니라 제값을 받고 파는 것도 중요하단 사실을 실천에 옮기는 위드였다.

  "이제 가자."

 늙은 시녀의 집은 주택가에 있었다.

 대체로 고만고만하게 비슷한 집이었지만 위드는 금세 그녀의 집을 찾아냈다.

  "우유 배달 3년, 신문 배달 7년을 그냥 한 게 아니지!"

 위드가 늙은 시녀의 집으로 들어갔을 때에, 그녀는 예전에 봤을 때보다 훨씬 늙어 있었다.

  "모험가님이 드디어 돌아왔군요."

  "네. 찬 바람과 새벽이슬을 맞으면서 대륙을 떠돌아 예전의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이곳에 왔습니다."

  "자하브 님은 만나 보셨나요?"

  "정정하셨습니다. 그리고 멋진 조각품들을 많이 만드셨습니다."

  "아쉽지만 저는 조각품에 대해서는 많이 알지 못해요. 왕비님이 사랑하셨던 자하브 님이 기억에 남아 있을 뿐이죠. 그때의 노래를 듣고 싶어요."

 위드는 자하브의 노래에 맞춰서 연주를 하기 위해서 하프를 꺼냈다.

  "그러면 시작하겠습니다."

 꽥… 빽… 꽉… 쾌애애액…….

 잠시 후 위드의 노래가 끝나자, 늙은 시녀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상하군요."

  "예?"

  "그때 들었던 노래는 이렇게 시끄럽지 않았던 것 같은데, 하지만 아주 다른 노래 같지도 않고……."

 음치가 만들어 낸 한계!

 차라리 지골라스에 다시 다녀오는 일이 위드에게는 더 쉬웠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과거의 추억을 돌이키면서 다시 행복할 수 있었어요. 아시나요? 나이를 먹을수록 예전의 행복했던 추억들이 보석처럼 남는 법이랍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자하브 님과 왕비님은 정말 잘 어울렸는데. 그 두 분이 조각품을 만들면서 여행을 하는 모습을 꼭 보고 싶었는데……."

 늙은 시녀는 눈물을 뚝뚝 흘렸다.

 나이 든 할머니의 눈물에는 괜히 약해지는 위드였다.

 위드는 품에서 작은 나무토막을 3개 꺼냈다.

 사각사각.

 자하브의 젊은 모습을 하나, 왕비의 모습을 하나, 그리고 과거에 보았던 영상을 바탕으로 왕비와 함께 있는 시녀의 모습까지 조각했다.

  -만드신 조각품의 이름을 정해 주십시오.

  "시녀… 아니, 할머니의 추억."

  -할머니의 추억이 맞습니까?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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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머니의 추억상을 완성하셨습니다.

 지고의 경지에 다가가는 조각사 위드가 만든 작품!

 매우 빠른 시간에 조각되었다.

 예술적 가치 : 289

 -조각술 스킬의 숙련도가 향상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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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 선물입니다."

  "이런 훌륭한 조각품을 나에게 주다니! 조각품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대단한 실력인 것 같군요."

 위드는 늙은 시녀와의 친밀도가 부쩍 늘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무엇을 바라고 한 행동은 아니었지만, 기왕이면 밥이나 한 끼 얻어 먹었으면 했다.

 와이번도 레벨이 오르면서 이동속도가 많이 빨라졌다. 그렇기에 위드나 서윤이나 그라페스 지역에서 단숨에 날아오면서 거의 아무것도 먹지 못한 탓이다.

 서윤은 위드와 늙은 시녀를 따뜻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고맙군요. 내가 죽기 전에 이토록 큰 선물을 주어서. 당신의 노래는 아주 잘 들었습니다."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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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하브의 유지를 이어라 완료

 자하브의 노래는 시녀 알자스의 기억을 일깨웠다. 그녀는 예전에 미처 들려주지 못한 이야기를 할 것이다.

 퀘스트 보상 : 그녀의 선물과 다음 퀘스트의 정보.

 -명성이 569 올랐습니다.

 -경험치를 조금 습득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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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퀘스트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니……."

 수련소의 교관에게서 시작되어 달빛 조각사로 전직하는 기회를 주던 의뢰.

 특별히 아주 큰 퀘스트의 보상을 기대하지는 않았다. 이제 위드의 레벨도 높아서 경험치도 3.7%를 얻었을 뿐이다.

 그런데 자하브와 왕비의 이야기까지 이어졌던 퀘스트는 아직도 끝난 게 아니었다.

  "노래를 들려주는 사람에게 주려고 간직해 놓았던 물건이 있어요."

 늙은 시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서랍에서 작은 상자를 꺼내왔다.

  "이걸 열어 보세요. 왕비님이 저에게 남겨 주셨던 보석인데 그대에게 주고 싶답니다."

 위드가 상자를 개봉해 보니 찬란하게 반짝이는 다이아몬드가 3개 있었다.

  '최소한 7만 골드는 될 것 같은데.'

 보는 순간 견적을 뽑아 버리는 위드였다.

  "그때의 이야기 중에 왕비님에 대해서 생각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자하브 님이 떠나고 나서 왕비님은 큰 상심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일국의 왕비로서 겉으로는 슬퍼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서 잘 해내셨지요. 하지만 그때의 일이 발생한 지 불과 1년 반 만에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돌아가시고 말았어요. 그때에 왕비님이 쓰신 일기장이 어딘가 있는 걸로 아는데……."

 어릴 때부터 사랑했던 남자를 떠나보내고 나서 왕비로서 살아가야 했던 한 여인!

 로자음 왕국의 왕비로서 기품 있고 현숙했지만, 젊은 나이에 병에 걸려 운명을 달리허고 말았다.

  "왕비님의 일기장에는 자하브 님에 대해 여러 가지 하지 못한 이야기들이 남아 있을 거에요. 그때의 일은 파비안느라는 다른 시녀를 찾아서 물어보세요. 아직까지 살아 있는지는 모르겠네요. 참고가 될진 몰라도, 그녀는 멜란포디움 팔루도숨이란 꽃을 참 좋아했답니다."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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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딘가에 있는 수상한 일기장

 이베인 왕비가 작성했으리라 짐작되는 일기장에는 왕국의 비밀이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일기장을 찾기 위해서는 왕성에서 근무했던 파비안느라는 시녀를 만나야 한다.

 난이도 : D

 퀘스트 제한 : '자하브의 유지를 이어라' 퀘스트를 먼저 완료해야 함.

               퀘스트의 보상을 받기 위해서는 늙은 시녀가 사망하기 전까지 완수해야 함. 취소 불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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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연계 퀘스트!

 수련소 교관의 퀘스트가 벌써 몇 단계인지 계산하기도 어려웠다.

 위드는 왕비의 죽음에 뭔가 있을 것 같다는 수상한 냄새를 물씬 맡았다.

  "일단… 알겠습니다."

  -퀘스트를 수락하셨습니다.

 퀘스트의 보상을 떠나서 여기까지 오니 과연 결말이 어떻게 날지 궁금하기도 했다.

 #

 헤르메스 길드와 칼라모르 왕국의 대격돌!

 사람들은 침도 삼키지 못하고 방송을 지켜 보았다.

 전투의 소란스러움을 뚫고 칼라모르 왕국의 기사단의 속력을 높였다. 헤르메스 길드의 본진을 관통하며 기세를 올렸다.

 뿔피리 소리와 말발굽 소리, 그리고 쓰러지는 사람들의 비명 소리로 전장이 가득 찼다.

 방송국들은 세세한 화면들을 담고 싶었지만, 전투의 웅장함 때문에 하늘에서 내려 보닌 시점으로 시청자들에게 중계했다.

 각 진형마다 수만 명이 싸우고 있을 뿐만 아니라, 칼라모르 왕국의 배후에서는 10만이 넘는 농민병까지 조직되어 도시에서 달려오고 있었다.

  "칼라모르 기사단! 과연 대단합니다. 정말 무섭습니다. 콜드림이 이끄는 기사단이 마법을 부수며 진격하고 있습니다."

 칼라모르 왕국 기사단은 마법 저항력을 높인 물품들로 중무장하고 있었다. 어지간한 마법들은 그들에게 아무런 피해도 주지 못하고 소멸해 버렸다.

 하지만 헤르메스 길드의 고위 마법사들이 사용하는 마법은 기사단의 진형에 그대로 작렬!

 이에 기사단은 능숙하게 말을 다루어 바람처럼 달리며 흩어지고 방향을 바꾸면서 헤르메스 길드를 몰아쳤다.

 멋있다는 말로는 표현이 안 될 정도로,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쿵쾅쿵쾅 뛰게 만드는 광경이었다.

  "아, 진짜 죽인다."

  "이렇게 헤르메스 길드가 콱 망해 버렸으면 좋겠다."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는 시청자들, 로열 로드의 선술집에 삼삼오오 모여서 보는 유저들은 이렇게 전쟁이 끝나기를 바랐다.

 중앙 대륙의 명문 길드를 상징하며, 일반 유저들이 설 자리를 몰아내는 헤르메스 길드의 세력이 꺾이기를 바라는 건 모두가 한마음이었다.

 이윽고 칼라모르 왕국의 본진과 헤르메스 길드의 본진도 맞붙으면서 전선이 거대하게 형성되었다.

 전투에서 이기는 쪽은 최소한 10개 이상의 성과 도시 들을 점령하게 된다. 더 멀리 본다면, 전투에서 패배하게 되면 각 왕국의 존림마저 위태로워질 수 있다.

 넓은 평원에서 두 왕국이 맞붙는 박력 넘치는 전투에 몰입하여 시청자들은 시간이 가는 것조차 잊어버릴 정도였다.

 완전한 전면전!

 조금 시간이 지나면서부터 칼라모르 왕국의 군대가 규모가 갈수록 줄어드며 궁지로 몰리는 것이 보였다.

 헤르메스 길드에는 고레벨 유저들이 다수 포함이 되어 있었으며, 일반 병사들의 훈련 상태와 장비, 상대적인 레벨도 높았다.

 각 지휘관들은 궁수, 마법사, 검사, 창병, 방패병, 기병을 효율적으로 운용했다.

 기병과 기사단에만 전력의 비중이 높은 칼라모르 왕국은 약점을 드러내며 전체적인 전투에서 밀렸다.

  "전진하라."

  "서쪽을 장악하고, 중앙을 공략한다."

 오랫동안 전쟁을 준비해 온 헤르메스 길드가 이겨 나가는 모습이었다.

 보병들이 칼라모르 왕국의 양 날개를 꺾어 버리고 본진을 포위했다. 장궁병들도 명예로운 칼라모르 왕국의 기사들을 1명씩 저격했다.

 콜드림은 기사단을 이끌고 동분서주하면서 공적을 올리고 있었다.

 헤르메스 길드에서는 치밀하게 그의 주변 기사들을 낙오시키고, 사망하게 만들었다.

  "우리의 몫은 저기에 있다."

 그동안 전투를 지켜보기만 하던 바드레이와 흑기사 친위대가 출격하였다.

 헤르메스 길드의 병사들 사이에서 외롭게 날뛰고 있는 콜드림이 목표.

 콜드림을 포위한 후에 죽이는 것으로 헤르메스 길드의 승리를 모두에게 알릴 작정이었다.

 #

 위드와 서윤은 늙은 시녀의 집을 나와서 로자임 왕국의 거리를 걸었다.

  "에휴, 이놈의 세상……."

  "아, 짜증 나. 이놈의 하늘은 왜 이리 맑은 거야. 콱 비나 쏟아져 버리지."

  "기분도 울적한데 술이나 한잔 마시러 갑시다."

  "그러게요. 술이나 마십시다."

 세라보그 성에 있는 유저들은 기분이 매우 좋지 않았다. 헤르메스 길드가 칼라모르 왕국의 수비군을 격파해 버렸기 때문이다.

 방송을 본 유저들로 인하여 로자임 왕국뿐만이 아니라 베르사 대륙 전역에 있는 술집의 매출이 급상승했다.

 위드에게도 헤르메스 길드의 소식은 매우 중요했다.

  "결국 이기고 말았군."

 헤르메스 길드가 폭삭 망해 버렸으면 더할 나위 없는 선물이 되었겠지만 기대도 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왠지 헤르메스 길드가 이길 것 같았다.

  "세상은 원래 나쁜 놈들이 더 떵떵거리고 잘 사는 법이니까."

 명문 길드란 다 똑같다.

 헤르메스 길드가 무너지고 나면 다른 놈들이 그 자리를 차지할 테고, 그들이라고 하여 위드를 편안히 놔두진 않으리라.

 도덕 책과 정반대로 살아햐 출세도 하고 돈도 버는 세상이었다.

 그런 생각도 잠시, 위드는 파비안느를 찾기 위한 고민에 빠졌다.

 로자임 왕국의 세라보그 성은 모라타만큼이나 익숙한 장소였다. 궁핍한 초보 시절, 구석구석을 뛰어다니며 조각품 구매자를 찾아냈던 시기!

  "골목길까지도 익숙하기는 하지."

 마차가 다니는 큰길에는 상인들의 노점까지 즐비하게 있어서, 사람들이 몰릴 때는 시간을 단축하기 위하여 골목길로 다녔기에 손바닥처럼 훤히 알았다.

 지금은 그때 이후로 시간이 많이 지나서 없던 건물들도 생기고 했지만, 주택가에는 그다지 변화가 없으리라.

  "멜란포디움 팔루도숨이라……."

 약초에 대한 지식이 많이 쌓여 있기에 위드도 아는 꽃이었다.

  "그냥 노란 꽃이군!"

 적당히 예쁘고, 중간 정도의 크기에 꽃잎이 갈라진 꽃!

  "예전에 이쪽 골목에 그런 노란 꽃이 많이 피어 있었던 것 같은데."

 위드는 기억을 더듬으면서 서윤과 함께 세라보그 성을 걸었다.

 성에 유저들이 많다고 해도 상점이 없는 골목길로 다니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길가에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수많은 꽃들로 꿀벌과 나비 들이 날아다녔다.

 세라보그 성에서 가장 경치가 좋은 골목길을 위드는 서윤과 걸었다.

  "좀 멀지?"

  "아니에요."

  "조금만 더 가면 될 거야. 언제 시간이 되면 근처에 벌통이라도 찾아볼 텐데. 몸보신에는 벌꿀만 한 게 없다니까."

  "……."

 위드는 골목길에서 멜란포디움 팔루도숨을 찾아냈다. 그리고 노란 꽃이 피어 있는 3개의 집들을 차례대로 방문했다.

 첫 번째 집은 꽃을 좋아하는 정원사의 집이었다.

  "대단한 손재주를 가지고 있군! 꽃꽂이를 배우러 왔다면 기초부터 차근히 가르쳐 줌세."

 과거의 위드였다면 꽃은 쓸모가 없다고 여겼으니 이런 제안은 다 듣기도 전에 돌아서 버리고 말았으리라.

 하지만 조각술이나 여러 스킬들을 익히면서, 베르사 대륙에 쓸모없는 건 없다고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정원사의 말을 따라서 시든 꽃잎을 떼어 내고 죽은 가지를 치는 방법을 배웠다.

  띠링!

  -스킬 : 꽃꽂이를 습득하셨습니다.

  꽃꽂이 : 화초나 나무를 기르고 감상하기 위한 스킬!

  꽃과 나무를 올바르게 성장시키면 스킬의 레벨과 땅과 식물과의 친화력이 오른다.

  만개한 곷은 화병에 담아 꾸미게 됨.

  -스킬 꽃꽂이를 배움으로 인하여 자연과의 친화력이 3 증가합니다.

 대재앙의 자연 조각술을 더 크게 발휘하기 위하여 필수적인 친화력.

 위드가 배우니 서윤도 옆에서 따라서 꽃꽂이를 배웠다.

 위드의 스킬 레벨은 초급 1.

  "모라타의 영주성에 나중에 꽃을 많이 심어야겠군."

 위드가 만든 명작의 효과로, 모라타에서는 야생화 축제가 열린 적이 있다. 물론 꽃이란 있는 그대로 보는 것도 좋지만, 내버려 두면 잡초나 나무덩굴이 자라서 엉망이 되어 버리기도 한다.

 사람의 손길이 가해지면 식물들이 제자리를 잡으면서 더욱 아름다워질 수가 있다.

 위드의 손재주 스킬이나 예술 스탯은 경이로운 수준이었고, 조각술을 통해서 갈고닦은 감각으로 씨앗부터 가꾼다면 멋진 모습의 꽃과 나무를 키워 낼 수 있으리라.

  "나에게 꽃꽂이를 배운 기념으로 선물을 주지."

  -정원사 젠킨스로부터 흰사랑초를 선물받았습니다.

 정원사는 위드와 서윤에게 하얀 꽃잎들이 붙어 있는 꽃을 건네주었다.

  "첫 번째 꽃꽂이인가."

 위드에게 화병을 만들거나 화분을 제작하는 정도는 식은 죽 먹기였다.

  "하지만 모험 중에 꽃을 가꾸기도 어려우니, 잠깐만 그대로 있어 봐."

 위드는 흰 꽃을 서윤의 머리카락 사이에 꽂았다. 딱히 큰 이유는 없었지만 괜히 해 보고 싶었던 것이다.

 서윤은 위드가 흰 꽃을 꽂은 부위로 살며시 만져 보더니, 창피한 듯 살짝 어색하게 미소를 지었다.

  띠링!

  -꽃꽂이 스킬의 레벨이 초급 2레벨로 상승하셨습니다. 꽃과 나무 들이 더욱 싱싱해집니다. 자라나는 속도가 빨라집니다.

  -자연과의 친화력이 2 증가합니다.

  -명성이 25 늘었습니다.

  정원사가 준 꽃은 정말 잘 키운 상등급 품종이었다. 게다가 위드의 예술 스탯과 손재주가 어느 정도 개입하면서 단숨에 스킬의 레벨이 증가했다.

 꽃과 서윤이 더없이 잘 어울리는 것도 숙련도를 듬뿍 받은 이유였다.

 흰 꽃까지 머리에 꽂고 있으니 서윤은 정말 예쁘고 사랑스러운 느낌을 풍기고 있었던 것이다.

 서윤도 위드의 귀 옆에 마찬가지로 꽃을 꽂아 주었다.

 그녀에게도 메시지 창이 떳다.

  -꽃꽂이 스킬의 숙련도가 약간 증가하였습니다.

 위드의 머리카락에 꽂힌 흰 꽃은 눈에 띌 정도로 빠르게 시들어 갔다.

 마치 보이지 않는 어떤 것이 자양분을 쭉쭉 뽑아 가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

  "꽃이 안 좋았던 것 같군."

 위드는 그렇게 생각했다. 설혹 사실이 아니더라도 그렇게 믿고 싶은 심정이었다.

 파비안느를 찾기 위하여 두 번째 집도 두들겨 봤지만, 그곳에서는 어린아이들이 부모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시장에 꽃을 팔기 위해서 나갔어요. 우리 엄마는 세라보그 성 근처에 예쁜 꽃들이 피어 있는 장소를 아주 잘 알지요."

  "나쁜 고블린들이 자주 나타나서 요즘 꽃을 따 오는 일이 어려워요. 그들을 해치워 버리면 좋을 텐데……. 저희에게는 중요한 일이지만 모험가님이 하시기에는 너무 쉬운 일 같아요. 고블린을 해치우고 오셔도 마땅히 드릴 만한 물건이 없으니 다른 분에게 부탁을 해야겠죠."

 위드가 쌓은 명성이 너무 거대해서 어린아이들이 의뢰를 맡기기 어려워하는 모습이었다.

 서윤도 명성과 레벨이 높아서 일부러 의뢰를 수행하겠다고 나서지 않는 이상 의뢰를 받을 필요는 없었다.

 그리고 세 번째의 집!

 얼굴에 주름이 깊은 할머니가 창가에서 노란 꽃을 보고 있었다.

  "혹시 파비안느 님이십니까?"

  "젊은 청년이 날 찾아오다니, 무슨 일 때문이지요?"

  "이베인 왕비님에 대해 듣고 싶어서 왔습니다."

  "길거리에서 할 이야기는 아니랍니다. 집 안으로 들어오세요."

 문이 열리자 위드와 서윤은 그녀의 집 안으로 들어갔다.

  "일단 이거라도 들면서 뭐든 물어보세요. 젊을 때는 끼니를 걸러서는 안 된답니다."

 파비안느가 내준 음식은 찐 감자!

 세라보그 성에서 의뢰를 하다 보니 이래저래 먹을 복은 있었다.

 사실 세라보그 성에서 가장 발전한 상업 분야의 하나가 바로 음식업이었다. 오래된 전통은 없지만 레스토랑, 고깃집. 해산물 뷔페 등이 유명한 편이었다.

 요리사들의 과감한 메뉴 개발로 인해 몬스터 요리 전문점까지 차려질 정도였다.

  "쩝쩝, 기가 막힌 맛입니다."

  "맛있게 먹어 주는 모습이 좋군요. 감자는 충분히 있으니 많이 드세요."

  "싸 갈 수도 있으면 좋을 텐데 너무 무리겠죠?"

  "아주 유명한 모험가라고 들은 것 같은데… 한 바구니 정도는 챙겨 드릴 수도 있답니다."

 이런 대화를 나누는 중에도 위드의 이빨은 감자 껍질을 귀신처럼 빨리 벗겨 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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