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달빛조각사 26권 : 1. 왕성의 지하도 (140/520)

달빛조각사 26권

[ 왕성의 지하도 ]

아이스 트롤이 된 위드는 던전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갔다.

"몬스터는 몽땅 때려잡으면 됩니다."

던전에 몬스터가 없으면 허전하다.

아이스 트롤로 변신한 이유도, 

복잡하게 머리 굴릴 시간에 두들겨 패서 때려잡으려는 생각때문이었다.

엠비뉴 교단이 세라보그 성을 침략했으니 최대한 많은 피난민들을 데리고 안전하게 도망쳐야 하는 퀘스트!

속도가 성공과 실패를 가른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반딧불처럼 빛나는 페어리들이 위드를 따라오며 재잘재잘 수다를 떨었다.

 - 멋있다. 멋있다.

 - 이상형이야. 시집가고 싶어.

위드는 혹시나 몰라서 재봉 스킬로 미리 만들어 둔 커다란 가죽 갑옷을 지금 꺼내 착용하고 있었다.

레벨 제한이나 힘 스탯만 놓고 보자면 철 갑옷이나 미스릴 갑옷을 입기에도 충분했다. 

하지만 만들어 놓고 보관만 해두기에는 무게도 많이 나가고 재료가 아까워서 만들어 놓지 않은 탓이었다.

옆으로 떡 벌어진 어깨의 위드가 먼저 던전으로 걸어가니, 그 뒤를 따라가는 다른 유저들은 하나같이 든든함을 느꼈다.

"전쟁의 신 위드 님의 뒤를 따라갈 수 있다니, 어떤 모습으로 싸울지 기대가 되네."

"구경 실컷 해놔야지."

유저들 중에서도 스스로 어느 정도 능력이 되는 사람들은 위드의 바로 뒤에 섰다.

행렬의 끝 쪽에는 세라보그 성의 피난민들과 초보자들이 계속 모여들고 있었다.

위드는 던전을 찬찬히 살필 겨를도 없이 계속 앞으로 걸었다.

스르륵.

그때무언가 아주 작은 소리가 들렸다.

- 나타났다. 나타났다!

- 조심해요. 물리면 많이 아파요.

- 어제 토끼를 잡아먹은 뱀이 숨어 있어요.

주변에서 반짝거리며 날아다니던 페어리들이 시끄럽게 경고했다.

취릭!

위드를 향하여 색깔이 알록달록한 뱀이 튀어 올랐다.

벽의 틈새에 살며 지나가는 동물들을 잡아먹는 엘릭사!

"엇, 위드 님! 조심하셔야 됩니다."

"위드 님!"

유저들이 고함을 질렀다.

엘릭사는 레벨 300대의 뱀류 몬스터로, 레벨이 높은 데다 미끄러지면서 기어 다니는 속도가 가공할 정도로 빨랐다.

엘릭사의 취향에 아이스 트롤은 전혀 먹음직한 먹이가 아니었지만, 차가운 기운을 내뿜는 게 거슬렸는지 선제공격을 가해 왔다.

무섭게 생긴 엘릭사의 기습을 보며 위드는 무덤덤하게 한마디를 내던졌다.

"맛있게 생겼군."

그리고, 아이스 트롤의 몸에 비하면 짧은 막대기 정도밖에 되지 않는 검이 휘둘렸다.

까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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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릭사가 커다란 충격을 받아 혼돈 상태에 빠집니다.

아이스 트롤의 냉기로 인하여 엘릭사의 속도가 14% 느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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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릭사는 검에 적중당하고 벽에 부딪쳐 튕겨 나왔다.

불상하게 잠시 마비 상태에 빠지고 만 엘릭사!

아이스 트롤은 다른 종족에 비하여 남달리 높은 힘과 민첩성에 의해 마법이나 다른 스킬보다는 기본 동작의 전투력이 극대화되었기에 위드가 무심히 내지른 검에 속수무책으로 당해 버리고 만 것이다.

위드는 땅에 떨어진 엘릭사를 향해 계속 검을 휘둘렀다.

"살점은 구워 먹고 가죽도 벗겨야지. 머리는 챙겨 두었다가 술을 만들까?"

엘릭사를 공포에 잠기게 하는 말들!

엘릭사는 레벨이 300대 초반이거나 간신히 중바을 넘는 뱀이라서, 위드의 집중적인 연타에 금세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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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몬 소드의 내구력이 저하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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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시다."

위드는 바로 전리품을 챙긴 다음에 앞으로 나아갔다.

입구 부근부터 엘릭사들이 몇 마리씩 기어 다녔다.

엘릭사는 빠르게 미끄러지다가 위드를 향해 화살처럼 뛰어올랐다.

아차 하는 순간 이빨에 물리면 독이 퍼져서 레벨이 높더라도 금세 위험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위드는 그런 엘릭사를 허공에서 검으로 쳐 낸 후 가차 없이 칼질했다.

"술을 잔뜩 담글 수 있겠구나. 많이 많이 와라!"

싸움을 위하여 탄생한 아이스 트롤이었다.

팔다리가 길면서 상하체 근육의 균형이 확실히 잡혀 있고, 발다닥도 유난히 넓고 크게 만들어 놨다.

뱀들은 근처에 오기만 해도 위드가 뿜어내는 냉기에 의해서 속도가 점점 느려졌다.

- 몬스터예요.

- 꺄아악! 무서워!

- 이겨야 돼요. 이곳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 돼요.

페어리들의 소란을 들으며 위드는 엘릭사를 여유롭게 물리쳤다.

던전으로 조금 더 깊이 들어가자 등장하기 시작한, 레벨이 300 중반에 가까운 리글러, 보이취, 굴독!

던전에 사는 대표적인 위험한 몬스터들이었다.

레벨대를 떠나서 공격력이 높기 때문에 까다로웠지만, 위드는 개의치 않았다.

"전부 덤벼라."

위드는 아이스 트롤의 특성을 만끽했다.

인간이었을 때에야 정교한 검술과 스킬 들을 조합해 가며 사냥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스킬을 쓸 마나도 없고, 넘쳐흐르는 건 오직 힘뿐!

실컷 때리고 부수면서, 적의 공격은 열심히 피하지도 않았다.

"저 트롤을 죽여라."

"다 같이 공격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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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취의 채찍에 적중당하셨습니다.

아이스 트롤의 맷집에 의해 방어력이 26% 추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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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글러가 던진 단검이 다리를 스치고 지나갑니다.

체력과 생명력이 감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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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드도 생명력이 쭉쭉 줄어들었다. 

그래도 37만에 달하는 무지막지할 정도로 많은 생명력 때문에 위험한 수준은 아니었다.

게다가, 아이스 트롤의 특성상 생명력이 정말 빠르게 회복되었다.

붕대를 감고 휴식을 취할 때보다도 빠른 수준이었다.

피하지도 않고 몬스터를 두들겨 패기만 하니 박력이 넘쳤다.

"캬오오오!"

위드가 포효를 질렀다.

아이스 트롤이 뿜어내는 냉기에 의하여 몬스터들은 걸어오다가 점점 느려지고 마침내 결빙되었다.

"아, 진짜 잘 싸운다."

"완전 거칠어. 무슨, 저렇게 계속 앞으로 나가면서 싸우기만 해?"

유저들이 보기에는 기가 막힐 정도로 훌륭한 전투 능력이었다.

한 대를 때리면 너그럽게 맞아 주고 더 세게 일곱 대를 때리며 사냥을 했다.

검을 휘둘러서 패고, 무식한 큰 주먹을 휘둘렀으며, 앞발로 걷어차기까지 하는 난폭한 아이스 트롤!

아이스 트롤의 육체는 무거웠지만 힘과 민첩성이 워낙 높다 보니 위드는 원하는 대로, 깃털처럼 가볍게 움직였다.

"패! 죽어! 패! 아이템 내놔! 패! 아직 덜 맞았냐!"

마치 무법자처럼 활약했다.

던전에 출연하는 몬스터마다 무자비하게 패 가며 검을 휘두르면서 앞으로 달렸다.

얼떨결에 튀어나와 버리고 만 본래의 성격!

던전 돌파가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 왼쪽 녀석이 살아 있어요.

- 더 때려 주세요, 위드 님.

- 아아, 정말 이상형이야.

신 난 페어리들의 수다를 귓등으로 흘리면서 위드는 몬스터들로 들끓는 던전을 뚫고 나갔다.

레벨이 400을 넘어섰고 아이스 트롤로 변신까지 했으니 던전에서 감히 그를 막아설 몬스터는 존재하지 않았다.

레벨 300대의, 제법 난이도가 높은 던전에서 호쾌하게 힘자랑을 했다.

그것도 어중간하게 보여 주는 게 아니라, 압도적인 무력의 발산.

"아이스 트롤이다!"

"이곳에는 어떻게..."

"협공을 취하자."

몬스터들이 다 같이 달려왔다.

위드에게는 어디까지나 맛난 간식거리에 불과할 뿐!

퍼버버버벅!

몬스터들이 순식간에 회색빛으로 변하여 사망했다.

다른 사람이 조각 변신술을 썼다면 이렇게까지 싸우지는 못했을 것이다. 

평소의 전투 방식이 몸에 익숙해져서 남아있기 때문이다.

몬스터의 공격에 본능적으로 피하거나 수비를 하고, 힘을 아끼면서 적당히 패려고 들 것이다.

위드의 최대 장점은, 어떤 몸이든 금방 적응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몬스터들이 때리거나 말거나 파죽지세로 던전을 돌파했다.

보통 때의 위드의 던전 사냥보다도 훨씬 속도가 빨라서, 피난민들은 헐레벌떡 그 뒤를 따라가야 되었다.

"위드 님이랑 가니까 정말 든든하다."

"다른 사람들보다도 엄청 많이 잘 싸우네. 열 사람 몫을 넘게 하는 것 같은데?"

"열 사람이 뭐야. 스무 명도 더 되겠다."

위드를 따라 선두에 섰던 유저들은 레벨도 더 낮았고 훨씬 신중하게 싸웠다.

서윤은 사람들도 많이 있고, 또 굳이 그녀가 나서지 않아도 될 것 같아서 제대로 실력을 발휘하지 않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위드의 활약만 유난히 돋보였다.

아이스 트롤만 보면, 세라보그 성의 위기 따위는 머릿속에 떠오르지도 않을 정도로 박력으로 가득했다.

#

던전에서 벌어지는 장면은 KMC미디어를 비롯한 각 방송국에서 중계를 했다.

"저런 식으로 전투를 ... ! 격식도 없는 마구잡이 싸움입니다. 초보 유저 여러분들은 절대 참고하시면 안 되겠습니다.

저런식의 돌파는 죽음으로의 지름길이죠."

"갑자기 늘어난 힘을 주체하지 못하고 막 싸우고 있네요. 솔직히 위드의 전투라고 하기에는 실망스럽습니다."

방송국의 진행자들은 너도나도 쓴소리를 뱉어 냈다.

하지만 KMC미디어에서는 적극적으로 위드의 편이 되어서 분석했다.

"힘과 맷집을 최대한 활용하며 싸우고 있는 위드! 과연 배포가 두둑하네요."

"예,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의 전투 영상을 봐 왔습니다만, 언제 이렇게 던전을 빨리 통과하는 사람이 있었습니까?"

아이스 트롤의 넘치는 힘과 맷집을 아끼는 거야말로 무식한 일.

맞아 줄 건 맞아 주고, 더 많이 때리면서 위드는 싸웠다.

그 시원함이야말로 엠비뉴 교단의 군대에 대한 두려움이나 일상생활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날려 버리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시청자 여러분께 기쁜 소식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어떤 좋은 소식이 있죠?"

"놀라지 마십시오. 전쟁의 신 위드! 그들의 최측근이며 같이 사냥을 많이 했던 동료들과 전화가 연결되어 있습니다. 

방송에도 나온 적이 있는, 토둠에서도 함께한 동료들입니다. 네분을 모셨는데요.

우선 인사라도 한마디씩 해 주시죠."

- 정말 방송에 나가는 거예요? 와. 신 난다!

- 에헴! 반갑습니다.

- 안녕하세요.

- 크흠, 북부로 오시면 언제든 찾아 주세요. 돈만 주시면 뭐든 구해드립니다.

첫 번째와 세 번째는 여자의 목소리, 나머지는 남자들이었다. 

특히 세 번째의 목소리는 노래와 음악 방송을 통해서도 많은 들어 본, 친숙하고 매력적인 음성이었다.

"전쟁의 신 위드가 지금 대단한 활약을 펼쳐 보이고 있는데요, 그 장면을 지금 실시간으로 전해 드리다 보니 인터뷰가 간단히 진행될 수빆에 없는 점을 먼저 양해 부탁드립니다."

- 그럼요! 얼마든지 괜찮아요.

- 이해합니다.

- 방송이야 자주 해서 잘 아니까, 긴장하지 말고 편하게 하세요.

- 출연료는 그대로 지급되는 거죠?

"전쟁의 신 위드와 많은 시간을 같이하셨을 텐데요, 던전사냥에서 위드는 어떤 모습인가요?"

- 딱 지금요. 몬스터가 불쌍해요.

- 먼저 화살 쏘기가 참 쉽지 않죠.

- 항상 부지런해요.

- 전 뒤에서 잡템 계산만 해서 잘...

 "위드와 사냥을 자주 하신다니 부러워하는 시청자들이 많습니다. 던전 사냥을 할 때는 어떤 기분이 드나요? 막 성장하는 기분이나, 긴장감이 있겠죠?"

- 위드 님이 워낙 잘 싸워서, 옆에서 따라가기가 쉽진 않아요. 

완전히 질릴 정도로 맥이 빠져요. 그만큼 정신없고 빠르고... 그래도 주먹질하는 손맛 때문에 즐거워요.

- 사냥을 마치고 나면 일도 사랑도 잘 해낼거 같은 자신감이 붙지요.

- 싸우는 위드 님의 옆모습이 멋있어요. 

- 전 그냥 돈 계산만...

  

 "모라타의 영주로서도 위드는 새롭게 대중의 환호를 받고 있는데요, 위드가 영주로서의 막중한 책무를 이렇게 잘 해낼거라고 처음부터 알고 계셨습니까?"

- 정말 저도 신기한 부분이예요. 주민들부터 다 굶겨 죽일 줄 알았는데.

- 위드 님의 성격이, 보기보다 정말 착하고 순수하신 분이라서 잘하실 거라 생각은 했습니다.

- 못하는 게 뭐가 있겠어요?

- 그게 다 나중에 세금으로... 아닙니다. 모라타로 많이 오셔서 마판 상점 이용해 주세요.

"위드의 활약이 계속 이어지고 있어서 인터뷰는 다음에 기회가 되면 다시 하도록 해야겠습니다. 

세라보그 성에서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서 애쓰는 위드에게 응원 한마디씩 하신다면요?"

- 주먹에 정을 남기지 마세요.

- 무사히 살아 돌아오시리라 믿습니다.

- 오실 때 구두 한 켤레만... 재봉사 비토르도 꼭 구해 주세요. 그가 만든 배낭이 요즘 인기래요.

- 좋은 물품과 친절로 모시겠습니다. 마판 상회 체인점 모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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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과 초보자들은 위드가 던전에서 열어 놓은 길로 계속 밀려들었다.

아이스 트롤이라고 해도 전투를 하다 보면 체력과 생명력이 제법 떨어졌지만, 유저들 중에는 사제도 많았다.

치료와 체력 회복 등의 마법이 계속 걸렸기 때문에 위드는 몬스터 사냥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진짜 위드 님 덕분에 살 것 같다."

"우리를 위해서 저렇게까지 해 줄 줄은 정말 몰랐는데 말이야."

"위드 님이 로자임 왕국 출신이라는 게 정말 자랑스러워."

유저들이 위드에 대해 품은 존경심은, 물만 줘도 자라는 콩나물처럼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었다.

하지만 위드의 생각은 전혀 달랐으니...

"아직 적당히 할 만하군. 굳이 지나치게 무리해 가면서 남들까지 다 살려 주려고 애쓸 필요는 없으니까."

언제라도 다른 유저들을 버리고, 어쩔 수 없는 듯한 상황에서는 자연스럽게 빠져나갈 수 있도록 마음의 준비를 다 해 놓은 위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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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준 박사는 의자에 앉아서 텔레비전을 시청했다.

"엠비뉴 교단의 병사들이 벌써 세라보그 성의 성벽에 많이 올라왔습니다. 

이대로면, 성벽을 빼앗기는 건 시간문제인 것 같습니다."

"동쪽 성문이 드디어 파괴되었습니다. 엠비뉴의 군대가 성내로 진입합니다."

"상점과 가게 들이 불타고 있습니다. 엠비뉴 교단의 군대는 세라보그 성을 완전히 태워 버릴 작정인 것 같습니다."

각 방송국의 진행자들은 호들갑을 떨며 말하고 있었다.

엠비뉴 교단에 의해 점령당하면 원래 있던 성은 보통 초토화되어 버리곤 했다.

유저들은 깡그리 전멸, 성벽은 흔적만 남아 쓸쓸하게 잡초만 무성한 지역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세라보그 성의 운명도 그다지 다를 것 같지는 않았다.

"엠비뉴 교단이 정말 빠르게 퍼져 나가는군."

유병준은 로열 로드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흥미로웠다.

인간들의 욕심과 성장, 번영 그리고 몬스터와 음지에서 퍼져 나간 엠비뉴 교단의 득세!

로열 로드는 몬스터나 악신의 추종자들에게도 당연하게 자유도를 높게 부여해 놓았다.

몬스터들도 번식을 하거나 생존경쟁을 통해 계속 강해질수 있다. 

정해진 영역에서만 사는 게 아니라, 던전에 있는 몬스터들이 먹이를 구하러 밖으로 나올 수도 있었다.

어느 한 종류의 보스급 몬스터가 무리를 끌고 더 나은 장소를 찾아 이동하기도 한다.

인간들의 마을과 성을 점령할 수도 있고, 기술과 지식을 축적하는 것도 가능했다.

유병준 박사는 자신에게 주어진 권한을 통해서 모든 장면을 원하는 대로 찾아볼 수 있었다.

"오주완 씨, 이 속도라면 엠비뉴 교단이 어디까지 퍼져 나가게 될까요?"

"지금 엠비뉴 교단 때문에 중앙 대륙에서는 엄청난 혼란이 벌어지고 있는데요, 유니콘 사에서는 아직가지 그 어떤 입장 발표도 없었습니다."

유니콘 사의 직원들조차 현재의 엠비뉴 교단에 대해 깊은 우려를 갖고 있는 게 사실.

도시를 완전히 없애 버리고 왕국을 멸망시킨다는 건 너무나 지나친 사건이 아닐가 하며 걱정했다.

그러나 최초에 각 왕국들과 도시들의 형태가 갖춰져 있긴 했지만, 나머지는 유저들이 스스로 역사를 만들어 나가야했다.

인간들이 숲을 개간하고 강가에 집을 지어 도시를 만들 수 있지만, 방비가 취약하다면 몬스터에 의해서 쓸려 버릴 수도 있다.

유병준은 텔레비전을 보며 중얼거렸다.

"엠비뉴 교단에 의해 이대로 대륙이 멸망할 가능성이 더 높아졌군."

과정에 따라 불가능한 일도 아니었다.

베르사 대륙을 위협하는 수많은 몬스터와 암흑의 세력들이 실패만 하게 정해져 있지는 않다.

오히려 영악하게 도시에 숨어서 음모를 진행하고 있다.

유저들의 성장이 느려지거나 그들끼리 반복한다면 베르사 대륙의 영구히 악에 의해서 장악당하게 되리라.

유저들은 그 후에도 계속 접속이 가능하겠지만, 그들의 하수인으로 살거나 혹은 그들이 없는 땅에서 마을을 만들면서 다시 밝은 미래를 위해 싸워야 할 것이다.

로열 로드가 단순한 게임이라면 유저들의 인기를 끌기 위해 엠비뉴 교단을 막아야 되겠지만, 이미 유니콘 사는 세상의 돈을 쓸어 모으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였다.

유저들은 스스로 결정한 운명에 따라 베르사 대륙에서 살아가게 될 것이다.

"바드레이도 패왕의 후계자로서 성장을 하고 있으니 영토와 세력을 키워 가다가 엠비뉴 교단과 싸우게 되겠지. 그보다도...."

얼마 전부터 유병준은 어떤 이름 하나가 자꾸 거슬렸다.

위드!

전쟁의 신이니 하는 거창한 수식어는, 평소에 그가 지켜보기에 과장된 면이 정말 많았다.

하지만 그가 막 로열 로드를 시작했을 때부터의 영상을 되돌려서 구경해 봤더니 기가 막힌 장면들의 연속이었다.

"보통 인간이란 어렵거나, 자기 능력으로 안 될 것 같으면 현실과 타협을 하고 좀 시간을 두고 미뤄 두거나 아니면 포기하는 게 일반적인 반응 아닌가?"

그런데 위드는 생고생을 하면서 극적인 상황을 만들어 내며 어려움을 돌파해 버린다. 

조각술의 비기도 하나 둘 어떻게 모아 가더니 이젠 자하브까지 만났다.

 광활한 베르사 대륙에서도 고생스러운 장소들만 용케 잘만 찾아다니면서 모험을 했다.

"그리고 모라타라...."

위드는 도시까지 소유했다.

갑자기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라, 직접 얻어서 발전시킨 땅이다.

바드레이처럼 휘하에 길드를 거느리고 있지도 않았지만, 위드는 대륙적인 인기를 끌었다.

유병준 박사는 이제 위드에 대해서 적지 않은 경계심이 들었다.

"아주 똑똑해. 이번에도 세라보그 성의 유저들을 무사히 탈출시킨다면 특별한 사건이 되겠지."

세라보그 성을 포위하고 있는 엠비뉴 교단의 군대는 보통이 아니다. 

초보자들과 피난민들을 이끌고 도망친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실패하더라도, 올바른 행동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얻을 수는 있을것이다.

"엠비뉴 교단의 군대가 막고 있을 텐데... 혼자서 도망치는 거라면 몰라도 과연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모르겠군."

#

정득수 회장은 주말에 집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오늘은 하루 종일 비가 내리는군."

창밖에는 아침부터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다.

"이런 날씨에는 로열 로드에나 들어가 보는 것도 괜찮을것 같은데."

박진석과 이야기를 나눈 이후로 한동안 잊고 지냈던 로열 로드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가끔 휴가를 보낼 때, 로열 로드는 마음 편하게 푹 쉴 수 있는 유용한 도구였다.

"떠오른 김에 접속이나 해 봐야 되겠어."

정득수 회장은 캡슐이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정득수 회장이 접속한 캐릭터는 바트.

그는 기초적인 장비만 착용하고 있는 상태였다. 

등산에 취미가 있어서, 레인저들이 있는 산의 계곡에 올라가서 접속을 종료했었다.

"와, 물이 정말 맑다."

"마셔 봐. 시원해."

계곡은 놀러 온 커플들의 천국!

베르사 대륙에서 이름난 계곡이었기 때문에 커플들이 더욱 많았다.

"다른 곳으로 가 봐야겠군."

바트는 씩씩하게 걸어서 산을 내려갔다.

"로열 로드에 접속하면 육체가 젊어진 것 같아서 참 좋아."

하지만 얼마 내려가지도 않아 불행하게도 붉은 눈의 귀여운 토끼를 만나고 말았다.

"이크, 토끼다."

바트는 얌전히 쪼그려 앉아서 토끼가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

그는 레벨이 3밖에 안 되는 초보자였기에 토끼조차도 상당히 무서웠다.

전투를 경험해 본 적도 없고, 그나마 레벨을 3까지 올린 것도 간단히 대화로 끝나는 퀘스트를 몇 가지 했기 때문이다.

"일단 마을로 돌아가야 되겠어."

바트는 마음 놓고 멀리 돌아다닐 수 있는 레벨이 아니었다.

계곡이 있는 산마저도 대도시의 바로 뒤에 잇어서 위험한 몬스터들은 나오지 않고 사람들이 많아서 안전하게 올 수 있었던 정도다.

라살 왕국의 도시로 가니 유저들이 북적대며 장사를 하고 같이 길을 떠날 사람들을 구하는 중이었다.

"푸른 약초 캐러 같이 가실 분! 레벨 25만 넘으면 됩니다. 1시간 정도 고생하면 짭짤하게 돈 벌 수 있어요."

"이 근처에 생긴 고블린 요새에서 사냥하실 파티원 찾습니다."

초보자들을 구하기 위해서 외치는 소리들이었지만, 바트에게는 그마저도 까마득히 높은 레벨이었다.

"정말 다들 로열 로드를 좋아하고 있군."

바트는 도시 내를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의 밝고 즐거워하는 표정들을 보았다.

하늘은 더없이 맑았고 주변의 건물들도 모두 실제와 차이가 없었으며 걸어 다니는 느낌이 난다.

새로운 세성에서 설레는 걸음을 떼어 놓는 듯한 기분!

바트는 지붕에 앉아 있는 새들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인기를 끄는 데는 이유가 있겠지."

기업가로서 로열 로드의 기술력이나 상업성에만 주목을 했다.

유니콘 사는 엄청난 속도로 규모를 키워 가고 있었으며, 현재는 그가 경영하는 회사를 다 합쳐도 매출액이나 순이익에서 비교가 안 되었다.

익숙하게 알려져 있는 세계적인 그룹들조차도, 유니콘 사의 영업이익과는 숫자의 단위부터 다를 정도다.

"시대가 바뀌기는 했군, 앞으로를 위해서라도 로열 로드를 조금 더 해 보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단순한 유흥거리로만 여겼는데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열광한다면 제대로 경험해 보고 싶어졌다.

다행스럽게도 돈은 좀 넉넉한 편이었다. 

휴가를 즐길 때 회사의 비서를 통해 많은 돈을 받아 놓았던 것이다.

"전투를 위해서 장비부터 맞추고..."

바트도 최소한의 상식은 있었기 때문에 레벨 제한이 없는 초보자용 장비들을 구입했다.

직업은 아직 구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초적인 의류와 가벼운 장검이었다.

주로 상점표 무기들을 구입하는데 사람들이 흥분해서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세라보그 성에 엠비뉴 교단이 쳐들어와서 지금 공격을 하고 있다는 소식 들었어?"

"지금 싸우는 거야?"

"공성전 벌어지고 있대, 마물들이 엄청나!"

"아, 보로그 던전 사냥 가려고 햇는데..."

"사냥이 문제야? 선술집 가서 봐야지."

"그건 그래. 이걸 놓치면 후회할 것 같긴 해."

"빨리 가자. 선술집도 늦으면 자리가 없을 거니까."

바트에게는 알아들을 수 없는 내용의 말이었다.

하지만 선술집에 가면 무언가를 볼 수 있는 모양이었다.

그 때문인지, 거리에서 갑자기 사람이 사라진 느낌이었고, 북적거리던 상점도 휑해진 듯했다.

"나도 선술집에 가 봐야겠군."

바트는 선술집으로 들어가서 통닭 1마리와 맥주를 시켰다.

그리고 대형 수정에 비치는 영상을 보니 아까 어떤 유저의 말처럼 세라보그 성에서 공성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유저들은 술과 음식을 먹으며 대형 수정에 시선을 집중시켰다.

"캬하, 술맛 좋다. 전쟁의 신 위드가 다르긴 달라."

"엠비뉴 교단이 침공하는 혼자서 저렇게 나설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랭커? 레벨만 높다고 다인가. 위드 발끝만큼도 못 따라가잖아."

"지금 사냥 속도를 봐, 우리가 그냥 걸어가는 것보다도 더 빠르다. 몬스터가 나오는데도 걷는 속도가 줄어들지도 않네."

"위드 한테는 엠비뉴 교단도 밥, 아니 죽이지!"

유저들이 떠는 소리를 들으면서 바트는 대형 수정의 영상을 보았다.

방송국에서 중계하는 영상을 대형 수정으로 그대로 가져 올 수 있다. 

현실과는 시간 차이가 다소 있지만, 중간에 광고나 다른 채널의 프로그램을 보는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

주로 세라보그 성을 함락시키려는 엠비뉴 교단을 보여 주었지만, 던전을 돌파하고 있는 위드와 유저들로도 화면이 자주 바뀌었다.

"전쟁의 신 위드라고..."

바트에게는 정말 친숙한 이름이었다.

그의 딸인 서윤과 친하게 지내고 자주 만나는 남자의 케릭터가 아니던가!

"위드는 내가 아는 사람인데."

그가 중얼거리는 말에, 사람들이 돌아봤다.

"아저씨, 저 사람 전쟁의 신 위드예요. 정말 아는 사람이예요?"

"아는 사람 맞다니까."

"이름만 같은 사람도 많은데요."

"저 위드가 맞아."

"아, 네."

바트의 나이가 있다 보니 더 이상 뭐라고 따지고 들지는 않았지만, 누구도 그의 말을 믿지 않는 분위기였다.

초보자 중에서도 고작 상점표 옷을 입고 있는 유저가 전쟁의 신 위드와 친분이 있다는 게 어디 말이나 되는가.

"아저씨가 허풍이 너무 심하시군"

"믿을 만한 말씀을 하셔야지."

졸지에 위드를 안다면서 거짓말로 잘난 척하는 사람이 되어 버린 바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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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햐아아아!"

위드가 지하 공간이 쩌렁쩌렁 울릴 정도의 괴성을 내질렀다.

몬스터를 끌어들이는 효과도 있지만, 뒤에서 따라오는 유저들에게는 적지 않게 안심이 되었다.

"빨리 가."

"뒤쪽, 늦춰지지 마세요. 우리가 늦게 가면 계속 쭉 밀립니다."

주민들과 초보자들이 비밀 통로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따라왔다.

원래는 대형 길드들을 따라서 같이 가기로 했던 중소 길드들도 위드를 믿고 함께했다.

10만이 훨씬 넘는 사람들을 피난시켜야 한다.

사람이 한꺼번에 몰려, 아직 지하도로 들어오지도 못한 사람이 더욱 많을 정도였다.

꽃팔찌에 혹해 덜컥 받아들이긴 했지만, 사실 셀리나의 퀘스트트 굉장히 어려운 의뢰였다.

사전에 많은 준비를 할 수 있었던 것도 아닌 데다,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어떤 판단을 내리느냐에 따라 주민들이 대량으로 죽어 나갈 수도 있다.

"우리도 같이 싸웁시다."

"다 죽여. 없애 버리자!"

유저들 중에서도 나름 레벨이 되는 사람들이 주민들을 헤치고 앞으로 나오면서 사냥의 속도는 더 빨라졌다.

"앞으로!"

위험을 무릅쓴,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하지만 유저들은 두려움보다는 재미를 느꼈다.

위드를 따라가니 절로 흥이 날 정도였다.

아이스 트롤 위드는 건장한 체격과 큰 키로 인해서 한참뒤에서도 잘 보였다.

위드가 힘껏 휘두르는 검! 근육이 잔뜩 팽창한 기다란 팔때문에 마치 창을 휘두르는 것 같은 궤적을 그리면서 몬스터들을 단번에 베어 버린다.

"쾌헤헤헤헤헷!"

괜찮은 아이템을 날름 집어삼켰을 때에는 시원한 웃음도 흘렸다.

아이스 트롤이 저돌적으로 싸우는 광경을 보다 보면 몸이 저릿저릿 울릴 정도로 흥분되었다.

위드는 어느새 세라보그 성을 탈출하기 위해서 싸우는 게 아니라 사람들에게 묻고 있는 듯했다.

도대체 왜 피곤하게, 스트레스를 간직한 채 힘겹게 살아가야 되는가! 

세상에는 이렇게 신 나는, 몸이 벌벌 떨릴 정도로 즐거운 일이 가득한데!

몸으로 싸우고 부딪치고 짜릿하게 살 수 있다는 것도 크나큰 축복.

- 오른쪽으로 돌아야 돼요.

- 거긴 맑은 물이 흘러요. 목마르면 드시고 가세요. 위드 님.

- 몬스터 3마리 접근 중! 혼내 주세요.

- 앞으로 조금 달려가면 함정이 있어요. 그냥 뚫고 나가 주실 거죠? 함정을 돌파하는 모습에 반할 것 같아!

페어리들은 날아다니면서 길을 안내해 주었다.

유저들 중에서도 궁수들은 거의 선두까지 따라 나와서 몬스터들이 접근하면 위드가 가까이 붙기 전에 먼저 화살을 날렸다. 

위급한 상황에서 손발을 맞춰 본 적도 없는데 유저들이 스스로 나서서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그 덕분에 던전의 몬스터가 많아졌음에도 발걸음이 늦춰지지 않고 계속 이동할 수 있었다.

"사람들에게 회복."

위드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사제들이 앞으로 나와서 전투를 담당하는 전사들에게 치료를 집중했다.

"수리."

무기들은 즉시 뒤로 넘겨지고, 대장장이들이 즉석에서 수리를 했다.

위드가 있으면 어디서든 조직의 효율성이 자연스럽게 극대화되었다.

왕성의 지하도 에는 왕족들이 놔둔 보물 상자와 잃어버린 물건들이 가끔씩 떨어져 있었다.

위드는 몬스터와 싸우면서 보물 상자를 4개나 열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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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것도 없습니다.

- 아무것도 없습니다.

- 금화 3개를 얻었습니다.

- 왕가의 보검을 발견하셨습니다.

다른 사람보다 먼저, 앞서서 움직였기에 금과 은, 보석으로 치장되어 있는 화려한 검을 얻었다.

"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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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가의 보검 : 내구력 45/45. 공격력 24~39.

한때 로자임 왕성의 벽에 걸려 있던 검이다.

오래전에 잃어버리고 난 이후에 긴 세월 사람들의 기억에서조차 잊혀있었다.

제한: 명성 3,500 이상.

        레벨 240 이상.

옵션: 매력 4% 증가.

        카리스마 +35.

        기품 +40.

        예술 +15.    

검을 장비한 채로 상점에서 물품을 구입할 시에는 5%의 금액을 더 내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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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용이라기보다는 멋을 위해 가지고 다닐 만한 검이었다.

보석들이 박혀 있어서, 상점에 내다 팔거나 귀족들에세 팔아 치운다면 상당히 비싼 가격을 받을 수 있을거라고 짐작됐다.

"부수입으로는 나쁘지 않군."

왕성의 지하도에 있는 통로는 이리저리 교차하며 넓게 퍼져 있었다.

추격자들을 물리치기 위한 함정들도 도처에 설치되어 있었는데, 위드는 몸으로 돌파했다.

일회성으로 터지는 게 아니라 함정의 효과가 계속 유지되는 것들은 모험가와 발굴가들이 희생을 무릅쓰고 나서서 최단시간에 해제했다.

- 이쪽으로 가세요. 여기가 빨라요.

- 다른 방향은 막혀 있어요.

- 왕이 탈출하고 있어요. 그쪽으로 가면 안 돼요. 지상에서 나쁜 군대가 몰려들고 있어요.

왕성의 지하도에 탈출구는 여러 곳에 뚫려 있었다. 

위드는 페어리들의 안내로 막혀 있는 길을 돌아서 동쪽으로 움직였다.

몬스터들을 물리치면서 전진하여, 드디어 지상으로 나가는 비밀 통로 앞에서 멈췄다.

"이제 이곳에서 잠시 쉬며 나갈 준비를 합시다."

위드는 아이스 트롤로 몸이 바뀌어 체력과 생명력이 빠르게 회복되었지만, 다른 유저들은 지쳐서 숨을 헉헉대고 있었다.

여기까지 따라오는 것만도 유저들에게는 상당히 힘들었다.

이제 지상으로 올라가면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지 모른다.

특히 같이 싸운 전사들은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었다.

숨이라도 조금 돌리며 다들 마음의 각오를 다졌다.

"여기서 위드 님과 싸우다가 죽으면 난 영웅이 된다."

"회사 가서 자랑해야지. 최 과장님, 이 부장님, 심 전무님 그리고 백 대리한테도 자랑해야지. 세라보그 성에서 싸우다가 죽다! 캬하하! 모두 나를 부러워하겠지."

"지,지금 내가 방송에 나오고 있을까? 오늘은 세수도 안했는데. 만날 사냥하고 레벨만 올린다고 헤어진 여자 친구도 날 보고 있으려나."

"완전 떨린다. 재미있어서 미쳐 버리겠네."

유저들은 초보자들을 살리기도 하면서 위드의 옆에서 자기 몫을 한다는 점 때문에 정신없이 흥분이 됐다.

심장이 쿵쾅거리면서 뛰었고, 입안은 바싹바싹 말랐다.

그냥 특정 세력에 속해서 세라보그 성을 탈출했다면 이런 재미를 누리지는 못했으리라.

방송이나, 최후까지 세라보그 성을 지키기 위하여 성벽에 남은 유저들을 통해서 정보가 계속 전달되었다.

- 성에 불이 붙었습니다.

- 서쪽 문 파괴.

- 남쪽 성벽이 무너지고 수비병들이 뒤로 물러나고 있습니다.

대형 길드들과 높은 레벨 유저들로 구성된 세력들도 각 방향으로 탈출을 개시했다고 한다.

성벽과 성문도 모두 파괴되웠고, 엠비뉴 교단의 군대를 넘어서 이 자리를 벗어나야만 생존할 수 있는 처지였다.

그렇기 때문에 정해진 방향으로 뭉쳐서 필사적으로 뚫으려고 했다.

"저들이 어느 정도 엠비뉴의 군대를 유인해 주겠지."

위드는 충분히 뜸을 들이면서 기다리다가 유저들에게 말했다.

"이제 밖으로 나가면 우린 엠비뉴의 군대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꿀꺽.

유저들은 마른침을 삼키면서 이어질 위드의 말을 기다렸다. 

이제 정말 큰 전투. 살아남기 위한 투쟁을 앞두고 위드의 연설을 듣게 되는 것이다.

초보자들은 자기보다 약한 몬스터를 사냥할 때도 손발이 꼬이거나 당황하는 경우가 잦았다.

그런데 무지막지하게 강한 엠비뉴의 군대가 세라보그 성을 침공하고 있고, 그들은 살기 위해서 빠져나가는 중이다.

어떤 말로 이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을 수 있을 것인가!

"몬스터한테 맞아 죽고, 아이템 잃어버리고, 스킬 숙련도 떨어지도, 레벨 낮아지고... 살다 보면 자주 일어나는 일 입니다."

위드도 지금가지 꽤 많은 죽음을 경험했다.

"특히 초보 때는 자주 죽죠. 그러다 보면 어느새 친구나 동료 들이 나보다 더 앞장서 간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초보 시절이야말로 간격이 확 벌어질 수 있는 시기니까요. 남이 잘되는걸 보면 속은 쓰리고 기분도 좋지 않죠.

그러다 보면 친구들도 사라져요"

"......"

"마음만 조급해져서 위험한 사냥터만 무리해서 찾아다니다가 또 죽고, 

돈도 아이템도 잃어버리고 가난해지고 모험은 원하는 대로 안 되고 퀘스트는 갈수록 꼬이기만 할 수도 있고요."

".........."

"그래도 긍적적인 마음으로 나가 보죠."

"..................."

토씨 하나 빠뜨리지 않고 뒤로 뒤로 전달된 이 말들에, 수만의 주민들과 유저들은 그저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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