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특별한 재회
위드는 슬그머니 멜버른 광산의 지하 4층으로 내려갔다.
어쌔신의 복장을 완전히 갖춰 입었기에 쉽게 의심받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역시 지금은 아무도 없군."
지하 4층의 입구 주변에는 지키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벨카인의 은신처로 모두 이동을 하였을 것이다.
위층의 어쌔신들이 실패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을 테니까!
"역시 내 잔머리는....."
위드는 잠깐 동안 우쭐해졌다.
다른 어쌔신들은 지하 3층을 정밀하게 수색하게 될 것이다.
결국에는 아래로 내려왔다는 것이 탄로 날 테지만, 조금이나마 시간은 벌었다.
"지하 4층도 위험해. 이곳은 숨을 곳도 별로 없으니 이동해야 되겠군."
내친김에 아예 벨카인의 은신처를 향해서 천천히 걸어갔다.
일이 이쯤 되면 앞이 어떻게 될ㅈ리 전망하는 건 무의미했다.
위층에서는 어쌔신과 전사 들이 수색을 하고 있을 테고, 가까운 곳에는 바드레이와 헤르메스 길드의 주력이 몬스터 사냥을 하고 있다.
어느 쪽이든 적들에 포위를 당하고 있는 셈이라서 즉흥적으로 눈치에 따라서 행동하는 수밖에 없었다.
- 이제 내려와도 돼.
위드는 헤겔ㅔ게 귓속말을 보내 줬다.
- 고마워요, 형.
헤겔과 알리스, 디네는 지하 4층으로 내려와서는 위드와는 다른 길을 택했다.
그들은 흑사자 길드의 구원군이 올 때까지 갱도에 숨어 있기로 했다.
헤르메스 길드와 전투가 벌어지더라도 도움이 될 수 없는 신세이다 보니 발견되지 않는 행운을 바라는 수밖에는 없었다.
"모두 나만 믿어."
헤겔은 얼굴을 펴고 당당하게 말했다.
지하 4층의 몬스터들은 그에게도 벅찬 상대. 두 여자를 지켜 주기 위하여 호기를 부렸지만, 디네와 알리스의 마음은 위드에게로 향해 있었다.
"선배님, 아니 오빠, 조심하세요!"
"오빠, 마음속으로라도 응원할게요."
바드레리와 헤르메스 길드가 있는 벨카인의 은신처로 간다니 얼마나 두근거리는 일이 벌어지겠는가.
★★★★★★★★★★★★★★★★★★★★★
"아, 더 이상 영상이 나오지 않아서 아쉽게 되었네요. 조금만 더 오래 살아 주었으면 많은 시청자들이 기뻐했을 텐데요."
방송사들에 영상을 전달해 주던 유저가 사망하면서 벨카인의 은신처의 방송이 중단되고 화면은 스튜디오로 넘어왔다.
"바드레이의 전투 능력이 정말 무섭습니다. 대륙에 이토록 강한 유저가 또 있을까요?"
"벨카인마저도 폭풍처럼 몰아치는 그 힘과 기술은 발군이라고밖에 할 수 없겠죠. 검의 모든 잠재력을 끌어서 사용하는 용사의 검! 검술의 비기를 하나 더 공개하면서 싸우는 그의 영상은 화려하기 짝이 없습니다."
진행자들이 멘트를 이어 가는 사이, 물밑에서는 섭외 전쟁이 벌어졌다.
방송사들에서는 각종 인맥을 동원하여 벨카인의 은신처의 영상을 확보하려고 했다.
바드레이의 퀘스트만이 중요한 의미가 아니었다.
"흑사자 길드의 주력이 오게 되면 그들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게 될 거야. 길드장 칼리스가 벌써 출발했다는 보고가 왔으니... 이건 방송하기만 하면 시청률 대박이잖아."
"광고주들의 연락이 계속 이어주고 있습니다. 저녁 심야 시간의 재방송이라도 빈 시간대에 광고를 넣어 달라는데요."
광고주들이 웃돈을 얹어 주겠다면서 줄을 서서 기다릴 직여.
멜버른 광산에는 위드까지 있었다.
헤르메스 길드와는 이미 앙숙 관계이니 어떤 일이 벌어질지 방송 관계자들은 예측조차도 하기 어려웠다.
방송 관계자들이 그토록 바라던 상황이 멜버른에서 갑자기 형성된 것이다.
직업 마스터 퀘스트 경쟁 이상으로, 헤르메스 길드와 위드라면 시청자들이 좋아하는 소재였다.
"지금의 시청률은 얼마지?"
"12%에서 계속 오르고 있었습니다. 낮 시간으로서는 최근 한 달 중에서 가장 높은 수치입니다."
"게시판은?"
"마비될 정도입니다. 페이지가 너무 빨리 넘어가서 제목도 제대로 읽지도 못합니다."
방송국 게시판은 어서 빨리 영상을 전송해 달라는 요청들로 가득했다.
하필 이런 순간에 영상이 뚝 끊어지다니!
CTS미디어, KMC미디어, 온 방송국, 디지털미디어, LK게임의 진행자들은 곤혹스러웠다.
아직도 살아남은 일반 유저들에게 연락을 해 보는 사이에, 계속 접촉을 했던 헤르메스 길드에서 공식적인 대답이 왔다.
방송 영상 제공 수락!
헤르메스 길드에서는 영상을 제공하는 대가로 최고의 시청률이 나오는 지금 광고 수익금의 일부를 받겠다는 조건을 내세웠다.
방송국으로서는 다소 무리일 정도의 비율이었지만, 거절하지는 못했다.
다른 방송국들이 특종을 잡아내는 사이에 정규 프로그램을 틀 수는 없으니까.
각 방송국에서는 로열 로드와 관련된 정규 프로그램을 일주일 내내 편성해 놓는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방송국의 오르 내리는 시청률이나 인지도는, 정규 프로그램이 보류되거나 취소되고 진행되는 특집 생방송에 달려 있었다.
로열 로드에서는 가슴을 들끓게 만드는 모험이 시도 때도 없이 이루어지고 있기에 생방송으로 중계한다는 것이 대단히 흥미를 자극했다.
"오늘도 밤까지 야근해야 될 모양이다. 박 대리, 토스트는 주문했어?"
"예! 전화하니까 아주머니가 벌써 만들고 계시던데요."
"김밥집에도 연락해 놔."
"도시락집에도 전화해 놨습니다.
★★★★★★★★★★★★★★★★★★★★★
위드는 벨카인의 은신처에 슬그머니 발을 들였다.
헤르메스 길드의 유저들은 정신없이 싸우고 있었다. 각종 마법의 효과가 휘몰아치고, 무기들이 격렬한 소리를 냈다.
'정말 장관이군.'
대륙 최강이라는 헤르메스 길드의 전투력에 대해서는 듣던 대로였다.
새끼 벨카인이라고 하더라도 레벨이 최소한 450은 되었다.
마수의 종족이기에 보통 강한 것이 아니었다.
탁월한 육체적인 능력은 물론이고, 흑마술까지도 사용했다.
마법과 화살, 정령술ㅇ레 대한 높은 저항력까지 갖춘 것은 물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대단한 새끼 벨카인에, 방향 전환을 자주 하며 은신처에서 미친 듯이 뛰어다니는 지옥의 들개들을 헤르메스 길드는 가차 없이 죽여 나갔다.
가끔 희생이 발생하기도 하였지만, 갑자기 몬스터에 의해 둘러싸여서 죽거나 하는 재수 없는 경우였다.
아주 훌륭한 방어구에, 최고 수준의 사제들이 치료 마법을 펼쳐 주면서 장대한 싸움을 한다.
헤르메스 길드에서도 최정예들이 모인 만큼 어느 1명도 허술한 유저가 없었다.
레벨과 스킬, 장비, 전투 방식에 있어서도 허점이 많지 않았다.
여기에 있는 사람들 중 누구라도 대도시에 간다면 소란을 일으킬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역시 헤르메스 길드는 훌륭하군.'
위드는 눈에 덜 띄는 구석으로 가서 전투를 구경했다.
중학교, 고등학교, 공사판과 대학교에서 갈고닦은 조용한 구석 찾기!
이곳에는 어쌔신들도 몇 명 있었다.
정식으로 싸우는 대단위 전투에서는 어쌔신들이 몬스터의 등 뒤를 노리는 암습도, 위험하긴 하지만 어쨌든 가능했다.
지금은 굳이 그럴 정도의 위기 상황은 아니라서 구경만ㅁ 하는 모습.
어쌔신들은 위드를 보면서도 복ㅈ강이 비슷하다 보니 관심을 갖지 않았다.
'19호로군.'
'지하 3층에서 위드를 막기로 해 놓고 여기로 도망 온 모양이군.'
'길드에서 문책을 당할 텐데...... 지금의 이곳의 전투가 우선이니 내버려 두자.'
헤르메스 길드에서는 어쌔신의 복장에 간단한 표식도 달아 놓았다.
상의와 바지에 계급이나 식별할 수 있는 숫자를 적어 놨다.
위드는 재봉 스킬을 이용하여 간단히 수선하여 한 ㅂ널의 옷을 만들어서 위장을 했다.
지금은 완벽한 어쌔신 동료라고밖에는 생각할 수가 없었다.
'잘 싸우는구나.'
위드는 주로 바드레이의 전투를 관찰했다.
움바 벨카인과 호각, 혹은 그 이상의 유리하게 유도하면서 싸웠다.
훨씬 덩치 크고 빠르고 위협적인 몬스터를, 힘과 기교를 발휘하며 차분히 압도해 나간다.
물론 샤먼과 사제 들의 축복 마법이 있었고, 다른 공격 지원도 받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흑기사답게 가장 위험한 정면에서 맞붙는 모습이 일품이라고 여겨졌다.
'마음껏 싸울 수 있는 게 부럽군.'
위드는 조용히 전투가 마무리되기만을 기다렸다.
별다른 사고 없이 이렇게 시간이 조금만 흐른다면 바드레이의 승리가 될 것 같았다.
움바 벨카인의 몸에는 화살과 도끼, 창까지도 박혀 있었다.
만신창이의 몸이 되어 생명력이 급격하게 감소하고 있었다.
- 크으으. 너희도 무사하지 못하리라!
땅을 구르면서 지진을 일으키고 돌덩어리들을 날리는 방식으로 최후의 발악을 했지만. 보스급 몬스터를 상대한 경험이 많은 헤르메스 길드에서는 사제들이 보호막을 형성해서 막아 냈다.
그 뒤에는 전사들이 뒤로 물러서서 원거리 공격을 가하며 움바 벨카인이 쓰러지도록 유도했다.
친위대와 전투단에 의해 새끼 벨카인들이 죽고, 지옥의 들개는 전멸당했다.
기사와 워리어 들에 의해 몰이가 이루어진 후에 마법사들의 살상 마법이 발휘되어 단체로 피해를 입으면서 죽어 나갔다.
네크로맨서 그로비듄이 언데드까지 일으키며 조직적으로 전력을 높였다.
'언데드라........'
위드에게 언데느는 혐오스럽지 않고 친근한 정도였다.
사실 좀비도 오래 보면 은근히 귀여운 맛이 있지 않던가!
벌써 둠 나이트까지 소환하는 헤르메스 길드 소속의 네크로맨서를 보며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많은 언데드를 소환하려면 소모되는 마나의 양이 엄청나겠어. 장비들도 하나같이 뛰어나고 말이지.'
위드는 자신보다 레벨도 높은 유저들을 보면서 배도 아프고 질투심도 생겼다.
헤르메스 길드라는 이유로 적개심이 생기기보다는 순수한 감탄이 먼저 일어났다.
오랫동안 같이 몬스터를 잡았던 것처럼 자신들의 역할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위드가 머릿속으로만 그려 오던 집단 전투가 이곳에서 상당히 높은 수준으로 구현되었다.
헤르메스 길드에서는 모든 부분에 대해 최적화가 이루어져 있었고, 전력도 충실했다.
'내가 지휘할 수 있다면 보스급 몬스터를 싹쓸이하면서 던전 사냥을 다녔을 텐데.'
베르사 대륙에는 알면서도 못 잡는 보스급 몬스터들이 널려 있다.
한 지역을 장악하고 있는 몬스터는 물론이고, 전설적인 몬스터, 역사적으로 패악을 부린 몬스터. 엘프, 요정, 정령계에도 몬스터가 있었으며, 그들의 난이도는 훨씬 높았다.
지골라스나 바르고 성채 너머처럼 몬스터들끼리 다투면서 살아온 장소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보스급 몬스터도 있다.
혼돈의 대전사 쿠비챠처럼 대단한 야망을 가지고 부족을 다스리기도 한다.
그런 몬스터들을 사냥한다면 온갖 진귀한 아이템을 모으며 레벨을 올리고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위드는 다른 유저들과 비교하여 누가 조금 더 강한지는 관심이 없었다.
스스로 어떤 몬스터든 도전하고 사냥하고 싶은 뿐이었다.
현실은 비록 조각사였지만!
"거의 쓰러지려고 한다!"
"마지막 힘을 내자. 궁수 부대, 미스를 화살을 아끼지 말고 쏴라. 마법사들은 최후의 일격을 준비하도록."
바드레이와 친위대는 손발이 척척 맞았다.
전투단은 평성 자체가 공선전도 치룰 수 있도록 되어 있었고, 무기 체계는 이런 보스급 몬스터 사냥에도 적합했다.
전쟁을 치르듯이 움바 벨카인을 조직적으로 사냥했다.
'나도 몸이 근질거리는군.'
위드는 전투에 끼어들고 싶은 마음이 간절.
그래도 얌전히 구경이나 하고 있다가 어느 순간 조용히 더 좋은 구석을 찾아서 숨어들거나 밖으로 빠져나가자는 계획을 위해서, 이목을 끌지 않기 위하여 나서지 못했다.
- 끄어어어어어!
움바 벨카인이 이제 괴성을 질러 가며 죽어 가고 있었다.
헤르메스 길드에서도 친위대, 전투단의 희생이 35명 정도 되었다.
보스급 몬스터의 최후가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에 더 크게 저항했다.
바드레이에게 공격이 집중되거나 하면 다른 검사와 워리어 들이 몸을 던졌다.
"크와와왁!"
워리어들은 움바 벨카인의 이목을 끄는 고함을 질렀다.
헤르메스 길드에서는 바드레이의 안위를 철저히 지킨다.
그들을 다스리는 총수이기도 하며, 헤르메스 길드를 지탱하는 기둥이었기 때문이다.
움바 벨카인이 바드레이에 의해 큰 상처를 입고 울부짖었다.
-멜버른 광산의 움바 벨카인이 영원한 안식에 들어갔습니다.
"성공이다!"
"헤르메스 길드에서 또 해냈다.!"
"움바 벨카인. 이걸로 또 하나의 신화를 이룩해 냈다. 우리가 대륙 최강이다!"
친위대와 전투단의 유저들이 무기를 들어 올림련서 우렁차게 외쳤다.
위드는 부러운 눈으로 헤르메스 길드원들을 봤다.
그들에게는 또 하나의 전설을 세운 셈이었으니 얼마나 기쁘겠는가.
'한몫도 단단히 챙기겠군.'
보스급 몬스터의 사냥은 쉽게 구하기 어려운 아이템 외에도 명성이나 스탯들을 늘려 줬다.
이를 위하여 각 길드에서는 던전에 있는 몬스터 사냥을 주기적으로 한다.
보스급 몬스터의 숫자는 상당히 제한이 되어 있고, 그만큼 위험하기도 했다.
하지만 승리를 거두었을 때의 달콤한 열매를 생각한다면, 그 짜릿함을 경험한다면 언제든 검을 쥐고 나설 수밖에 없었다.
바드레이가 움바 벨카인이 나온 장비를 주웠따.
이 모습도 아마 생중계를 통하여 많은 시청자들이 보고 있을 터!
'중계료까지 챙길 수 있겠군.'
위드는 헤르메스 길드의 살아 있는 유저들의 숫자를 셌다.
친위대와 전투단이 건재하다 보니 160명 정도나 되었다.
그들은 숫돌을 꺼내 무기를 정비하고 앉으며 휴식을 취했다.
'역시 얌전히 구경이나 하자. 나중에 흑사자 길드가 위쪽을 뚫고 오면 싸움이 벌어지는 틈을 타서 빠져나가기나 해야지.'
움바 벨카인이 나왔던 동굴, 그리고 새끼 벨카인들이 나온 장소는 아직 탐험이 안 되었다.
헤르메스 길드에서는 어쩌면 그곳에서 보물까지 획득할 수 있으리라.
위드에게도 쓸모 있는 물건이 있을 수도 있었지만, 기대는 않았다.
세상은 있는 놈들이 더하다는 말처럼, 콩고물 하나 남겨 둘 리가 없었다.
저들 중에 모험가, 발굴가의 직업을 가진 이들에 의하여 깨끗하게 털리고 말 테니까.
위드가 아랫배가 아픈 것을 참으며 지켜보고 있을 때에, 헤르메스 길드의 움직임이 미묘하게 달라졌다.
휴식을 취하던 유저들이 하나 둘 일어나더니 입구 쪽으로 걸어갔다.
그냥 넘겨 버릴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위드는 민감하게 신경이 쓰였다.
헤르메스 길드에서 입구를 봉쇄하고 나서 그에게로 점점 다가온다.
'역시 들켰나? 하기야... 지금쯤이면 지하 3층의 수색이 끝나고도 남았을 시간이고, 더 열심히 찾아보거나 아래층으로 내려왔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
그렇다고 해서 꼭 그가 들켰다고 할 수는 없다.
어쌔신의 복작은 완벽했고, 전투 중에 슬그머니 들어왔기 때문에 지하 3층에 은신했다거나 4층에서 숨었는데 못 찾았다고 여길 수도 있지 않겠는가.
위드는 태연하게 서 있는 자세를 바꾸지 않았다.
눈동자만 굴리면서 포위망과 도주로에 대한 계산만 했다.
막 움바 벨카인을 잡고 난 이후로, 휴식과 기쁨을 만끽해야 할 바드레이까지 그에게로 걸어왔다.
바드레이가 먼저 말을 걸었다.
"잘 지냈나?"
"......"
위드는 정말 입을 열기가 미묘했다.
이건 대답하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해서 전혀 모른 척하기에도 어색했다.
위장하고 있는 어쌔신이 바드레이와 아는 사이일 수는 있다.
하지만 헤르메스 길드의 움직임으로 봐서는 정체가 들켰다고 보는 게 옳은 것 같았다.
"추격대를 보내서 찾으려고 애썼는데 이런 곳에서 만날줄은 몰랐군."
"......"
위드는 확실히 걸렸다고 생각했다. 오리발도 거둘 때를 알아야 하는 법.
"어떻게 알았지?"
"위층을 수색한 어쌔신들로부터 위드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보고를 받았다. 그리고 넌 살인자가 아니더군."
어쌔신들은 멜버른 광산에 들어와서 유저들을 학살했다.
대부분의 유저들이 살인자가 되어서 이름이 공개되었다.
위드도 그 부분에 대해서 약간 꺼림칙하기는 했지만, 살인자 상태까지 위장할 방법은 없었다.
'하필이면... 눈치도 빠르군.'
위드는 곤란한 상황이었다.
보통 바드레이나 헤르메스 길드처럼 대단한 세력이라면 눈치라도 나빠야 하지 않던가.
'거기에다가 난 운도 없어.'
위드가 상대할 수 없는 전력으로 이렇게 가까운 장소에서 맞딱뜨리다니!
궁수와 마법사 들이 전투준비를 하고 있었으며, 번쩍번쩍 빛나는 갑옷을 입은 기사들이 거리를 좁혀 오고 있었다.
움바 벨카인이 집중 공격을 당했던 장면이 머릿속을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바드레이도 검을 아직 검집에 넣지 않은 상태였다.
'사냥을 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사제들의 치료가 있어서 거의 멀쩡한 상태일 거야.'
바드레이는 오만하게 말했다.
"헤르메스 길드에 거역한다면 누구든 죽는다. 위드, 오늘은 네가 짓밟히는 날이 되겠구나."
베르사 대륙의 최강자인 그에게는 그런 자격이 있을지도 모른다.
위드는 상대가 싸우겠다고 해도 평화롭게 화해하거나 도망칠 용의가 있었다.
하지만 빠져나갈 수 없는 길까지 몰렸다면 드래곤의 앞발이라도 깨물어 줄 수 있었다.
죽어야 한다면 후련하게 싸우는 쪽을 택하리라.
"재미있는 하루가 되겠군."
위드는 어쌔신의 복장을 천천히 벗었다.
레벨도 낮을 텐데 장비까지 잘 맞지 않으면 싸움 자체가 안 될 수 있다.
헤르메스 길드의 유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탈로크의 갑옷과, 가지고 있는 다른 장비들을 착용했다.
'이렇게 된 이상 붙어 보는 수밖에.'
바드레이와 유저들은 갑옷을 바꿔 입는 정도나 검을 바꾸는 것 정도는 기다려 줬다.
어차피 이곳에 있는 헤르메스 길드의 전력에 비한다면 어림도 없는 차이였다.
궁수, 마법사 등의 원거리 공격이 가능한 유저들은 위드를 잡고 싶어서 손이 다 간지러울 정도였다.
이 자리에 있는 베르사 대륙의 최상위 랭커들도 부지기수!
바드레이가 명예를 얻기 위해 혼자서 상대하겠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대륙 최고의 사제와 샤먼 들의 축복을 받은 상태에서 생명력과 마나는 벌써 다 회복됐다.
축복의 효과는 레벨이 낮을 때에도 절대적이라서, 절대 공평한 상황이 아니다.
바드레이나 최상의 몸 상태로 위드와 싸운다면 패배할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남은 것은 위드의 죽음, 그리고 바드레이가 커다란 명예를 얻으며 직업 마스터의 퀘스트의 경쟁에서도 앞서 나가는 것!
위드는 데몬 소드를 쥐고 짧게 심호흡을 했다.
'적들 사이로 파고들어서 혼란을 일으키고도 흩뜨려 놓는다.'
헤르메스 길드의 전력을 상대로 이기지 못하더라도, 그냥 죽어 줄 생각은 없었다.
위드가 바람의 질주로 막 뛰어들려고 할 때, 벨카인의 은신처가 크게 뒤흔들렸다.
콰르르르르르르르릉!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땅에 발을 딛고 있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그리고 나타난 몬스터!
- 내 아내가 이곳에 죽어 있다니......! 인간들 주제에 감히 너희는 무모한 짓을 저질렀구나.
움바 벨카인에 비하여 몸집이 절반은 더 컸다.
뿔은 위압감이 넘쳐 날 정도였으며, 몸은 흑적색의 털로 뒤덮여 있었다.
게다가 눈매와 입은 포악한 성격을 드러내듯이 옆으로 쭉 찢어져 있었다
움바 벨카인의 남편, 레드 벨카인!
"뭐, 뭐야. 1마리가 남아 있었잖아."
"이거 더 심상치 않은 놈이야."
헤르메스 길드에서는 기민하게 움직였다.
위드를 포위하고 있는 병력을 제외하고는 레드 벨카인과의 전투에 대비했다.
네크로맨서 그로비듄은 몬스터의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마법을 시전했다.
"움트고 있는 생명력, 그 전부를 보여 다오. 뷰 라이프 포스!"
띠링!
레드 벨카인
지옥에서 스스로 기어 나온 마수.
하이네프 산악 지역을 지배하는 몬스터로, 움바 벨카인의 남편이다.
강철 무기로부터 피해를 받지 않는다.
매우 높은 마법 저항력.
흑마법의 효과를 받지 않는다.
중급 이하의 정령 소환을 겅제로 봉쇄함.
생명력 : 100%
마나 : 100%
"이, 이런......."
그로비듄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바드레이의 퀘스트는 결국 하이네프 산악 지역 보스 몬스터 사냥이었다.
그런데 몬스터의 상세 설명으로 봐서는 이번이 진짜였다.
레벨은 최소한 620을 넘을 테고, 얼굴과 덩치부터 먹고 들어간다는 말처럼 외모상으로 봐서는 움바 벨카인보다 강했다.
강철 무기로 피해를 받지 않는다니 이것도 상대하기 지극히 까다로운 부분이었다.
★★★★★★★★★★★★★★★★★★★★★
트레이피크의 텔레포트 게이트에 칼리스를 시작으로 흑사자 길드의 전사들이 도착했다.
"최대한 빠른 속도로 가자."
요새에 준비된 말을 타고 멜버른 광산으로 달렸다.
수백 마리의 말이 산악 지역에 먼지를 일으키며 전력 질주로 이동했다.
산악 지역에 관찰하기 좋은 위치마다 배치되어 있던 헤르메스 길드 정보원들에 의해 이 상황은 실시간으로 보고되었다.
- 현재 트레이피크, 흑사자 길드가 예상보다 빨리 도착.
- 길드장 칼리스를 비롯해서 주력 상당수.
- 3지점 통과 거침없이 달리고 있음 마법사는 20명 정도로 보임.
헤르메스 길드에서 레인저와 궁수 들이 숲에 매복을 하며 시간을 끌었다.
"멀티플 샷!"
이동하는 흑사자 길드의 무리에 화살이 장대비처럼 쏟아졌다.
"기습이다. 신경 쓰지 말고 가자!"
전사들은 검으로 화살을 쳐 냈다.
레인저들이 숨어 있는 위치로 마법 공격을 퍼부어 주면서 결과도 확인하지 않고 그대로 통과!
멜버른 광산이 있는 입구까지 매우 신속하게 도착을 하였다.
헤르메스 길드에서 지속적으로 견제를 하려고 했으나 전부 무시한 결과였다.
흑사자 길드의 병력이 트레이피크로 계속 모이고 있었기 때문에 뒤처리는 후방 부대에 맡겼다.
"정말 싸울 거야? 멜버른 광산으로 들어가면 돌이킬 수 없어."
칼리스를 향해서 마법사 론달이 물었다.
론달은 흑사자 길드의 창립 공신이었다.
던전에서 파티 사냥을 하면서 방송도 타고 톨렌 왕국에서도 유명해진 이후에, 칼리스와 다른 몇 명의 유저들과 같이 흑사자 길드를 창설했다.
"패권 동맹을 먼저 깨드린 건 헤르메스 쪽이야. 그들에게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사실을 알려 주지 않으면 안 되겠지."
칼리스는 전투를 하기로 결정했다.
바드레이와 헤르메스 길드에서 톨렌 왕국의 영역을 침입한 이상, 무사히 보내 준다는 것은 자존심 때문에라도 말도 안 된다.
트레이피크의 군대도 이 근처로 이동해 오고 있었다.
광산 부근의 치안을 회복하고 헤르메스 길드의 잔당을 해치우기 위해서였다.
"들어가자."
흑사자 길드에서는 방어력이 높은 워리어와 성기사들을 앞세워서 멜버른 광산으로 진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