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뺏겨 버린 갑옷
위드의 생명력은 고작 4만을 넘는 수준에 불과했다.
레벨에 비해서는 심각하게 낮은 생명력이었지만 인내력과 맷집, 방어구의 도움으로 극복 해 왔다.
바드레이의 공격은 단번에 17,000의 생명력을 떨어뜨릴 정도로 막강하기 짝이 없다.
각종 축복에 높은 레벨과 장비, 흑기사였기 때문에 린들린을 타고 항거할 수 없는 돌격을 해서 제대로 정면 공격에 성공한 덕분이었다.
"크으으윽."
위드는 튕겨져 나가서 땅을 구르다가 일어났다.
"주인!"
토리도가 그를 구하겠다고 와서 바드레이와 맞붙었다.
다른 하나의 검이 둥둥 떠다니면서 공격과 수비를 보조하기 때문에 토리도는 일대일로 싸우면서도 수없이 상처를 입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토리도는 반 호크처럼 약해진 게 아니라 몇 명 흡혈을 해서 멀쩡한 상태였다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는 안 되겠다.'
위드는 구겨진 갑옷의 가슴 부위를 만져 봤다.
바드레이의 레벨이 자신에 비해서 확실히 더 높다.
공격 스킬의 숙련도도 훨씬 뛰어나다.
광휘의 검술은 아쉽게도 누구와 싸우는 데 쓸 만한 숙련도가 아니었다.
위드가 다른 유저들과 차별화가 되는 점은 높은 스탯이었다.
조각품으로 쌓은 스탯에, 대장장이 스킬, 재봉 스킬은 막강한 도움이 되어 주었다.
바드레이는 헤르메스 길드에서 조사를 마친 던전에서 보스급 몬스터를 사냥하고 어려운 퀘스트를 완료함으로써 스탯을 올렸다.
스탯상으로도 거의 뒤지지 않는 수준.
위드에게는 이제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대재앙의 자연 조각술!
'화산 폭발이나 용암 분출, 지진, 산사태, 광산 붕괴, 물이 안에 가득 차는 것도 좋겠지.'
하지만 대재앙의 자연 조각술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먼저 만들어 놓은 조각품이 필요했다.
위드는 화산 폭발의 조각품은 가지고 있는데, 그게 발동 될 때까지는 시간도 오래 걸릴뿐더러 자기 자신도 죽을 가능성이 정말 높았다.
너무 큰 재앙이라서 오히려 자기 밥그릇까지 깨질 염려가 높은 것!
지금은 화산 폭발을 일으켜 놓고 동굴 밖으로 피할 수도 없는 처지였다.
'조각 소환술도 있기는 하지만, 쓰고 싶지는 않아.'
조각 생명체들을 소환하여 지원군으로 쓸 수도 있었다.
하지만 불사조, 빙룡이 활약하기에는 장소가 협소했다.
와이번들은 약해서 데려올 수가 없었다.
금인이, 누렁이는 지골라스에서 고생을 했는데 다시 목숨이 걸린 위기에 빠뜨리기 미안하다.
킹 히드라가 적당할 것 같았지만 레드 벨카인까지 당하고 있는 마당에 조각 생명체 1마리 정도 소환한다고 하여 전투 상황이 바뀌진 않으리라.
"몸으로 때워야 되겠군."
위드는 차라리 홀가분하게 혼자서 싸우기로 했다.
최악의 경우라고 해도 잃은 것은 경험치와 스킬 숙련도 그리고 장비 조금이지 않겠는가!
"다시 모으고 올리면 돼. 바드레이, 과연 베르사 대륙의 최강자라고 불리는 사람이 얼마나 강한지 몸으로 느껴 봐야겠다."
위드는 그동안 마땅히 적수를 만나지 못했다.
사람들과 교류를 적게 하고, 거대 명문 길드에 들지 않고, 퀘스트를 하면서 지내 왔기에 다른 강자와 맞부딪칠 일도 레벨에 비해서는 적었따.
바드레이라면 충분히 싸워 보고 싶은 대상!
패배하면 목숨이 날아가겠지만 그 정도 용기는 있었다.
콩나물에 간장 한 방울 묻혀 먹을 각오라면 베르사 대륙에서 두려울 것은 없다.
위드는 빠른 속도로 몸에 붕대를 감았다.
토리도의 생명력은 바드레이와 결투를 벌이면서 급속도로 떨어졌다.
사제들의 은근한 지원으로 인하여 신성 데미지를 받았던 때문이다.
"목, 목이 마르다."
생명력이 많이 떨어지면서 싸움을 힘들어했다.
위드는 속으로만 '토리도, 이제부터는 내가 나서겠다.' 는 생각을 하고 바드레이를 바로 기습했따.
말로써 한다면 그거야말로 기습의 효과가 반감되는 일.
"어헉!"
"바드레이 님, 위험합니다!"
하지만 전투를 구경하던 헤르메스 길드의 사제들이 먼저 초를 다 쳐 놓았다.
레드 벨카인과의 싸움이 어느 정도 안정권에 접어들면서 바드레이 쪽으로 시선을 많이 분산시켜 두었기 때문이다.
무섭게 살육을 벌이던 레드 벨카인이었지만, 생명력과 체력을 잃어 가고 있었다.
위드는 바드레이의 측면에서 달려갔다.
"칠성보!"
발걸음마다 달리는 방향을 바꿀 수 있는 기술!
바람의 질주가 적용되어, 잔상이 보일 정도로 현ㄴ란하기 그지없었따.
"네가 오기를 기다렸다."
바드레이는 알고 있었다는 듯이 검을 들어 막아 냈다.
위드도 이런 유의 공격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을 알았따.
'방어구들의 성능이 정말 훌륭해. 피해를 주려면 한두 대로는 어림도 없어.'
무리하게 강한 공격을 준비하다 보면 바드레이에게 스킬을 활용할 시간을 주게 된다.
위드는 바로 물러서더니 옆으로 돌면서 검으로 계속 공격했다.
"소드 댄스!"
휘두르고, 찌르고, 베고!
대응조차 하기 어렵게 만드는 연속적인 검술.
바드레이의 허점을 노리고 있어서 매섭기 짝이 없었다.
"이 정도로 당하지 않는다."
바드레이는 검을 들어 막고, 튕겨 냈다.
그가 놓친 몇몇 공격들은 또 하나의 검이 훌륭하게 막아 주었다.
위드는 옆으로 돌며 정신없는 공격을 그치지 않았따.
바드레이가 힘을 모아 반격이라도 가하려고 하면 순간적으로 한두 걸음 물러서고, 다시 앞으로 나오면서 더욱 거세게 공격했다.
'레벨과 장비의 차이는 근접전에서는 그나마 효과가 많이 줄어든다. 한두 대 때려서 안 된다면, 백 대나 천 대를 때림면 되지!'
위드의 속도는 바드레이가 전부 막을 수 없을 정도로 빨랐다.
-검이 방어에 막혔습니다.
-검이 상대의 어깨 방어구에 적중!
정확한 공격에 성공했습니다.
무게가 별로 실리지 않은 검의 파괴력을 갑옷이 많이 흡수합니다.
생명력을 149 감소시켰습니다.
-검이 다른 하나의 검과 충돌했습니다.
-검이 정확히 상대의 가슴을 찔렀습니다.
정확한 공격에 성공했습니다.
치명적인 일격!
상대가 혼란ㄴ과 마비에 면역이 되는 아이템을 가지고 있습니다.
생명력을 617 감소시켰습니다.
위드의 검은 정말 빨랐다.
도저히 다 생각함현서 공격한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을 정도의 속도였다.
바드레이는 반격을 노리다가도 위협적인 각도로 날아오는 검에 다시 수비하기에 급급해야 했다.
"제법이구나."
그러나 어느 순간, 바드레이는 위드의 검이 보기보다는 공격력이 약하다는 사실을 간파해 냈따.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빨랐지만 막지 않아도 될 정도였따.
바드레이도 반격을 하면서, 둘 사이의 공방은 더욱 치열해졌다.
위치는 검치가 대련을 시킬 때 꼭 했던 말을 떠올렸다.
- 상대를 봐라. 상대를 똑바로 본다면 지더라도 진 게 아니다.
바드레이의 표정, 눈빛, 어깨와 갑옷에 감춰진 근육의 꿈틀거림까지 머릿속으로 그렸다.
벨카인의 은신처에서는 검들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악기를 연주하는 것처럼 들렸다.
위드는 그를 노리는 다른 하나의 검까지도 신경을 쓰면서 전투를 해야 되었다.
둘이 들고 있는 검에서 불꽃이 세차게 튀었다.
노도처럼 몰아붙이는 거센 화염!
바드레이는 메시지 창을 보지도 않았다.
'과연 나를 신경 쓰이게 만들 정도였구나.'
분명히 레벨도 낮고, 많은 면에서 자신이 압도한다. 검에 담겨 있는 힘과 스킬의 위력에서도 차이가 컸따.
하지만 노리는 방향이나 연속 공격의 운용이, 본능적으로 공격의 주도권을 뺏기고 수비를 하게 만든다.
'지금 만나기를 잘했어. 나중에는 약간 위험했을 수도 있겠군.'
위드는 모험을 계속하면서 대단히 빨리 성장을 했다.
후환ㄴ을 잘라 놓기 위해서라도 차라리 지금 만난 것을 바드레이는 다행스럽게 여겼다.
'철저한 패배. 다시는 나를 넘볼 수가 없게 될 것이다.'
레벨이 깡패라는 말이 사실이었따.
흑기사로서 최강자로 군림하는 게 괜한 것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듯이, 바드레이는 수많은 검에 적중되면서도 아직 큰 피해가 없었다.
정면에서 자잘한 공격이 쌓이고 쌓이더라도, 갑옷의 방어력으로 대부분을 흡수했다.
약한 부분만 방어하면서 위드에게 역습을 가하면 되었던 것이다.
물론 애초에 이렇게 파고들기를 허용하지 않거나 더 물러나면서 광역 스킬 위주로 싸웠더라면 더욱 쉽게 끝낼 수도 있었겠지만.
"이 정도가 실력의 전부라면 죽을 때가 됐다."
바드레이가 검을 강하게 휘둘렀다.
"공간 파괴!"
좌, 우, 앞 전체를 반경으로 두는 기술!
검에서 일어난 어마어마한 바람이 전방을 휩쓸었다.
"크으윽."
"어서 치료를 해 줘!"
레드 벨카인과 전투하는 헤르메스 길드의 유저들도 피해를 입었다.
사제들은 서둘러서 치료 마법을 펼쳤다.
보통 이 정도의 보스급 몬스터와 싸우면 뜨거운 관심을 받기 마련인데 위드와 바드레이의 격전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에 치료하는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려나고 말았다.
위드는 바드레이의 등 뒤로 넘어갔다
.
민첩으로 얻은 '탁월한 경험자' 덕분에 상대가 스킬을 사용하자마자 공격 방향을 알 수 있었던 것이다.
미리 알고 더 빨리 움직이는 것이야말로 조각 파괴술로 민첩을 늘려 놓은 전투 방식!
지금까지 공격하는 것도 긴장의 연속이었다.
어려움에서 재미를 느끼고 있었지만, 그만큼 아쉬움이 크기도 했다.
'체력이 버텨 주지를 못해......'
위드의 체력은 직업과 조각품을 만들고 얻은 스탯을 합하면 423을 넘어갔다.
그럼에도 바람의 질주에 소드 댄스, 칠성보로 방향까지 멋대로 바꾸는 전투 방식은 몸에 급격하게 무리를 가져왔따.
체력이 떨어져서 속도가 더 느려질 수밖에 없는 아쉬운 상황이 되고 말았다.
바드레이는 아직 건재한데 위드는 생명력과 체력이 전투를 계속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때 헤르메스 길드의 마법사 몇 명이 몰래 연합해서 주문을 외웠다.
"이곳에 붙들린 몸은 어디로도 움직이지 못하게 될 것이다. 땅거미의 압박!"
움직임을 제약하는 마법!
위드의 마법 저항력이 괜찮은 편이었어도, 고위 마법사들의 연합에는 막아 내지 못했다.
속박을 깨드리기 위해서는 마법 아이템이나 힘으로 상당한 시간ㄴ을 투자해야 했는데, 바드레이가 그사이에 돌아섰다.
"이제 죽을 시간이 왔다."
바드레이의 검이 새하얀 화염에 뒤덮였다.
"숭고한 검. 세인트 플레임."
위드는 피하려고 했지만 발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이런! 다리가......"
같이 공격을 하는 건 의미가 없고, 일단은 막아야 했다.
토리도를 불러 보려고 했지만, 그 역시 박쥐로 변해 궁수들의 화살을 피하느라 바빠 도와주러 올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눈 질끈 감기!"
위드는 고대의 방패로 몸을 가리고 데몬 소드로도 공격을 막는 자세를 취했다.
바드레이의 검이 휘둘렸따.
검의 잠재력을 뽑아 쓰는 용사의 검에, 또 하나의 검이 위드를 강타했다.
이번에 그를 다시 놓친다면 쉽게 잡을 수 없었기에 바드레이도 전력을 다한 공격을 퍼부은 것이었다.
-힘과 체력이 감소하여 제대로 수비할 수 없습니다.
치명적인 일격!
-죽음에 이를 정도의 막대한 공격을 당하셨습니다.
화염으로 인하여 추가적인 데미지를 입습니다.
고위 마법이나 치료 마법, 물의 정령의 도움이 없다면 1초에 475씩의
생명력이 감소합니다.
방어할 수 있는 한계 이상의 타격을 입어서 허리 보호대가 파괴됩니다.
-생명력의 급격한 감소로 인해 슬로어의 결혼반지의 효과가 발생되지
못합니다.
-생명력의 저하로 사망하셨씁니다.
'죽음을 거부할 수 있는 힘' 의 스킬 레벨이 낮습니다. 육체에 스며든
신성력으로 인해 스킬이 발동되지 않습니다.
24시간 동안 로그인이 불가능합니다. 죽음으로 인해 레벨과 스킬의 숙
련도가 하락합니다.
★★★★★★★★★★★★★★★★★★★★★
바드레이의 공격이 끝난 후에 위드가 회색빛으로 변해서 사라졌다.
"바드레이 님 만세!"
"이겼다! 바드레이 님이 대륙 최강이다!"
역사적인 승리의 순간에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의 환호 소리가 들렸다.
길드 채팅을 통해서도 축하한다는 말이 쏟아졌다.
바드레이는 많은 전투에서 경쟁자들을 무릎 꿇렸다.
하지만 지금의 이 순간을, 각 방송국들을 통해 수천만 명 이상이 시청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조금은 떨렸다.
"이것은 갑옷이로군."
바드레이는 위드가 떨어뜨린 탈로크의 믿음 갑옷을 주웠다.
갑옷이 워낙 크기 때문에 다른 물건은 멜버른 광산의 몬스터에게 나오는 잡템 몇 개밖에는 떨어져 있지 않았다.
'생각보다 안 좋은 갑옷이군. 고작 이런 걸 착용하고 싸웠단 말인가?'
바드레이의 눈에는 탈로크의 믿음 갑옷조차도 차지 않았다.
발굴된 최고의 아이템, 이름난 전설적인 장비들만 착용하던 그에게는 실망스러운 갑옷이었다.
★★★★★★★★★★★★★★★★★★★★★
흑사자 길드에서는 함정을 해체하면서 지하 4층까지 왔다.
"놈들은 던전에 있겠군. 가자."
칼리스를 따라서 흑사자 길드의 정예들이 이동했따.
헤겔과 알리스, 미네는 어쌔신들에 의해 발각되어 벌써 사망!
그들이 은신처에 도착을 했을 때에는 레드 벨카인이 거의 죽어 갈 무렵이었다.
전투단과 친위대의 지속적인 공격에, 바드레이까지 가세하면서 사냥에 탄력이 붙었따.
한 방 공격력이 좋은 어쌔신들까지도 레드 벨카인의 등 뒤에서 보조 공격을 했다.
지옥의 마수로서 나타난 레드 벨카인이 울부짖으면서 죽어 가고 있었다.
생명이 경각에 달할수록 여러 광격 공격 스킬들을 발휘하려고 했지만, 아크힘은 보스급 몬스터 사냥에 노련했다.
"사격!"
궁수들의 화살과 마법 공격을 준비해서 터트렸다.
레드 벨카인이 스킬에 집중할 수 없도록 하면서 막았다.
전투단에는 전문 저주술사들도 있어서 현재 몬스터의 공격력과 방어력, 체력, 힘, 정신력 등을 많이 떨어뜨려 놓은게 시간이 갈수록 사냥에 큰 도움이 됐다.
-멜버른 광산의 레드 벨카인이 영원한 안식에 들어갔습니다.
사냥 성공!
바드레이는 최후의 일격을 날렸고, 전리품도 독차지했다.
검술의 비기가 적혀 있는 흑기사의 검도 입수했다.
"흑기사 퀘스트의 열두 번째를 완수했군."
"축하드립니다, 총수님."
"앞으로 얼마 남지 않았군요."
칼리스는 750명이나 되는 믿음직한 흑사자 길드원을 데리고 왔다.
자신들의 영토인 멜버른 광산에서 헤르메스 길드가 날뛰고 돌아가게 해 줄 수 없었다.
"쳐라!"
흑사자 길드에서는 공격 마법부터 사용했다.
양대 거대 길드의 핵심 전력들의 전투는 가공한 마법 충돌부터 시작되었따.
★★★★★★★★★★★★★★★★★★★★★
KMC미디어에서는 오주완과 유아령이 진행하던 특집 방송 프로그램!
"아, 흑사자 길드에서 벼르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오늘은 정날 저도 잊을 수 없는 날이 되겠어요. 마법사 플로얀이 지금 대단위 마법 아이스 필드와 아이스 스톰을 연속으로 시전했습니다."
"공격 수단도 되지만, 땅을 얼려서 헤르메스 길드의 기사들을 곤란하게 만들려는 것이죠."
"아직 섣부른 판단이기는 하지만, 오주완 씨가 보기에는 어느 쪽이 이길까요?"
"그건 정말 결과가 나오기 전에는 알기 힘들겠는데요. 일반적으로 헤르메스 길드가 다른 길드에 비하여 훨씬 전력이 높다는 점, 바드레이가 있다는 부분까지 감안한다면 개인적으로는......."
"헤르메스 길드가 이길 것 같다는 말씀이시죠?"
"그렇습니다. 헤르메스 길드의 손을 들어 주고 싶습니다."
대부분의 방송사에서는 양대 길드 사이의 전투를 중계하면서 헤르메스 길드의 우세를 점쳤다.
전투단에는 뛰어난 랭커들도 뒤섞여 있었고, 친위대에는 알려지지 않은 고레벨 유저들이 즐비할 정도다.
레드 벨카인을 사냥하느라 지치거나 피해가 없었던 건 아니었다.
그렇지만 바드레이와 친위대가 나선 전투에서는 진적이 없었다.
"앗! 지금 어쌔신들이 흑사자 길드의 후방에 나타나서 공격을 하고 있습니다. 소규모 매복으로 사제들을 먼저 암살하고 있네요."
진행자의 말이 없더라도 보이는 영상은 대단히 격렬했다.
헤르메스 길드에서 영상을 보내 주고, 흑사자 길드 쪽에서도 협조를 얻어서 영상을 받아 왔다.
위치를 바꾸어 가면서 전투를 살펴보았는데 어느 곳을 보더라도 입이 떡 벌어질 정도였다.
레벨이 높은 길드의 최정예들끼리 맞붙었기에 그만한 빛이 폭발과 소음, 정령에 언데드, 소환물 들까지 나왔다.
영상을 실시간으로 편집하고 각종 효과를 덧씌우는 작업 팀에서는 화장실에 갈 시간도 없었다.
그렇게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와중에도 연출진들은 바드레이와 위드의 싸움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위드가 죽다니......"
"아, 전쟁의 신 위드도 바드레이에게는 안 되는구나."
로열 로드와 관련된 각종 게시판에도 바드레이가 승리를 거뒀다는 사실이 올라오고 있었다.
여러 계열의 축복에, 부하들까지 데리고 지친 위드와 싸웠기 때문에 비겁한 승리라면서 깎아내리는 사람도 많았다.
위드는 레드 벨카인을 이용하여 전투의 불리함을 극복하려고 했고, 바드레이는 개인적인 목적을 달성하려고 한 부분에서 차이를 두는 사람도 나왔다.
벌써 시청률은 관심의 대상도 아니었다.
오늘은 최고 시청률을 갱신하게 될 것이 틀림없다.
방송국의 입장에서 본다면 마냥 행복한 일이었지만, 위드의 모험을 많이 중계했던 kMC미디어에서는 아쉬운 결과였다.
CTS미디어, LK게임의 진행자들도 지금의 헤르메스 길드와 흑사자 길드의 싸움보다는 위드와 바드레이의 전투에 대해서 더 많이 이야기했다.
★★★★★★★★★★★★★★★★★★★★★
서윤은 미용실에 가서 메이크업을 받고 머리도 했다. 백화점에 가서 옷도 사 입었다.
'요리를 만들어 줘야지.'
그녀는 침울하게 있을 이현을 위해 마트에서 장도 봤다.
바드레이와 헤르메스 길드는 흑사자 길드를 격파했다.
헤르메스 길드의 최정예인 친위대와 전투단은 갑자기 모여서 허겁지겁 달려온 흑사자 길드보다는 전술적으로 월등했다.
레드 벨카인과의 전투를 마치면서 사제와 마법사, 전사 들의 협력도 잘 이루어졌다.
부대별로 손발도 맞추지 못한 흑사자 길드는 급하게 몰려 오느라 숫자만 많았을 뿐, 자신들의 능력도 다 발휘하지 못하였다.
바드레이와 칼리스.
길드의 수장끼리의 대결에서도 바드레이가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으니 그 후의 싸움은 해보나 마나였다.
완벽하게 함정을 파고, 헤르메스 길드의 지원군 200명이 추가로 지하 4층에 나타나기까지 했다.
뒤늦게 페일과 이리엔, 수르카, 화령, 로뮤나, 제피, 세에취, 서윤이 도착해서 멜버른 광산을 나오는 헤르메스 길드와 마주쳤다.
바드레이나 친위대가 나설 필요도 없이 궁수들의 일제사격과 마법사의 광범위 공격에 의하여 일제 사망!
서윤은 수많은 공격을 뚫고 기사 7명을 죽였지만, 집중 공격에는 광전사라도 해도 어쩔 수 없었다.
헤르메스 길드는 그 후에 임시 텔레포트 게이트를 완성하고 유유히 사라졌다고 한다.
서윤은 로열 로드에서 자신의 캐릭터가 죽은 것보다도 이현이 훨씬 걱정됐다ㅣ.
전쟁의 신으로 높은 자존심을 가진 그가 패배하고 죽었다.
매번 승리만을 거두기도 어려운 건 사실이다. 그녀가 아는 바로도 퀘스트나 몬스터 사냥을 하다가 실패한 적이 꽤 많았다.
하지맘ㄴ 다른 사람에게 죽으면서 갑옷까지 잃어버렸으니 상심이 너무나도 크리라.
'예쁘게 하고 위로해 줘야지.'
서윤은 장바구니를 들고 이현의 집으로 향했다.
동네로 막 들어서는데 허름한 옷을 입고 있는 할머니가 재활용품이 든 수레를 밀고 있었다.
"저도 도와 드릴게요."
서윤은 할머니 대신에 수레 손잡이를 잡았다.
이현이 너무나 보고 싶었지만 수레에 쌓여 있는 물건들이 무거워 보였다.
"아가씨, 이런 일을 할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데..... 이거 꽤 무거워서 밀기가 쉽지 않다우."
슈슈슈슈슈슉!
거침없이 나아가는 수레!
서윤은 수레를 밀면서 조심스럽게 말했다.
"어디로 가는 길이세요?"
"이제 일 다 끝내고 집에 간다오."
"그럼 집이 어딘지 알려 주세요. 제가 모셔다 드릴게요."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제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인걸요."
"여기서 꽤 멀어요, 아가씨."
"괜찮아요. 제가 모셔다 드릴 수 있어요."
서윤은 자신이 조금이라도 착한 일을 하면 이현에게 슬픈일이 덜 일어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런 행운에라도 기대고 싶을 만큼, 이현이 슬픈 표정을 짓는 걸 보고 싶지 않았다.
빨리 가서 달래 줘야 한다는 기분과, 너무 슬퍼하고 있을것 같아서 차마 볼 수가 없다는 괴로움이 교차했다.
그냥 죽기만 했다면 그나마 안심인데 탈로크의 갑옷까지 잃어버린 게 역시 컸다.
서윤은 할머니가 안내하는 길을 따라서 언덕길로 올라갔다.
'사는 곳과 그리 멀지 않네......'
이현이 사는 동네에서 비탈길을 올라가면 나오는, 좁고 허름한 주택들이 모여 있는 장소에 할머니의 집이 있었다.
"그런데 아가씨 말이우."
"네, 할머니."
"저기 아래에 석류랑 무화과나무가 있는 마당 딸린 집에 가는 길이지?"
이현의 집에는 몇몇 과일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사과, 배, 복숭아, 밤은 기본이고 가능하다면 귤까지 키우려고 했다.
"어떻게 아셨어요?"
"몇 번 가는 걸 봤어."
비탈길을 오르면서는 할머니도 서윤 옆에 붙어서 같이 수레를 밀었다.
"그 집 청년이랑 사귀는 사이인가?"
"아니에요."
"집에도 찾아가는 사이면서?"
할머니의 관점에서는, 집에 찾아와서 같이 있을 정도면 이미 더 이야기할 필요도 사이!
서윤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 청년이 좋은 여자를 만난 것 같아서 다행이야. 마음이 좀 놓이는구먼."
"......."
"그 청년, 이 동네 우리 노인네들 사이에서는 아주 유명해."
"네?"
이현이 로열 로드가 아닌 동네에서도 유명 인사였다니, 서윤에게는 새로운 사실이었다.
혹시라도 어떤 행패를 부리거나 갈취라도 하지 않았을지 걱정이 됐다.
"예전에 그 청년이 어릴 때인데, 참 악착같이도 살았어. 동생 하나 번듯하게 키워 보겠다고....."
"네."
"동네 우유, 신문은 다 그 청년이 배달했지. 시장 과일 가게에서 짐도 나르고, 돈만 주면 안 하는 게 없었어. 나도 그때는 시장에서 장사를 했는데, 나한테도 찾아와서 맡길 일 없냐고 물었거든. 나는 혹시 도둑질이라도 할까 봐서 없다고 쫓아냈는데 나중에 사는 모습을 보며 얼마나 미안했던지........."
"아....."
서윤은 이현이 살았을 과거의 생활이 떠오르는 듯했다. 그렇게 열심히 살았으니 지금도 부지런한 것이다.
"나중에 그 청년이 집도 사고... 정말 잘되었지. 그런데 그 다음에 1년 반 정도 지나서부터였을까? 누군들 이렇게 살고 싶었겠나. 어느 순간 몸이 아프다 보니 장사도 못 하고 속아서 가게도 날리고 이렇게 되어 버렸지. 그래도 살아 보겠다고 폐품이나 모으고 사는데, 그 청년이 지나가면서 시큰둥하게 말하더군."
서윤은 뭐라고 대꾸하는 대신에 조용히 할머니의 말을 들었다.
할머니는 감정이 북받쳐서 목이 메는 것 같았다.
이현은 딱히 좋은 정보를 주는 것도 아니고 돕는 것도 아니라 그냥 혼자 중얼거리는 것처럼 말했다.
"힘든데 뭐하러 이 주변에서만 돌아다니시지? 저 아래에 있는 공원에 가면 빈 병, 빈 캔 엄청 많은데."
막 이 생활을 시작한 할머니에게는 그런 말 한마디가 귀중한 정보였다.
이현은 다시 먼 산을 쳐다보며 이야기했다.
"동사무소에 가서 신고하면 복지사도 와서 봐주고 각종 수당도 받을 수 있는데, 자식이 있더라도 돌봐 주지 않는다고 증명하면 될 텐데 말이야."
할머니는 그때 정말 어려운 처지에 놓였었따. 복지 수당을 신청하게 될 날이 올 줄은 몰랐지만, 조언 덕분에 지원을 받아서 한숨 돌리고 겨울을 맞이했다.
"지난겨울에는 새벽에 우리 집에 쌀이나 김치 통, 전기장판이 놓여 있었지. 나만 받은 게 아니라 동네에서 어려운 노인들은 죄다 받았어. 돈이 꽤 많이 나갔을 텐데...... 어느 노인이, 그 청년이 한밤중에 집 앞에다 놓고 가는 뒷모습을 봤다고 하더구먼."
"그랬군요."
"얼마 전에는 눈이 너무 많이 와서 일도 못 다녔어. 그런데 그 청년이 낮에 도시락과 김밥을 싸서 집 앞에 내놓고서는 말하더라고."
"안 먹을 건데 괜히 만들어서 먹을 사람이 없네. 드시고 싶으시면 가져가세요. 방금 만든 거니까요."
"고맙네. 이 은혜를 어떻게 갚나."
"저도 음식물 쓰레기봉투값 안 쓰고 좋은데요, 뭐."
그렇게 여동생과 같이 음식을 많이 만든 날이 한 달에 절반 정도는 되었다.
"그리고 먹고 가는 우리한테 약이랑 파스를 주더라고. 눈길에 넘어져서 다치기라도 하면 놔두지 말고 꼭 치료하라고... 요즘 병원비도 비싼데 조심하라고 하더라고 그 말이 어찌나 따듯하게 들리던지."
서윤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그녀는 알 것 같았다. 이현은 과거에 많은 아픔을 경험해 봐서, 다른 아픈 사람들의 힘겨움을 이해할 수 있었으리라.
"나랑 같이 다니는 할망구 하나는 아파서 병원에도 갔는데, 나중에 걱정했더니 병원비도 대신 지불을 해 줬어. 이 동네에는 그 청년 도움 안 받는 노인들이 없어. 부모 없이 사는 아이들 공부할 책도 사 줬다는 말도 들었고, 잘사는 사람들은 몰라. 누가 착한 일을 하고 있는지......"
서윤은 할머니를 집에까지 데려다 주고 나서 이현이 사는 집에 왔따.
왈왈왈!
개가 크게 짖고 있는 집인데도 이상하게 생기가 없이 적막한 느낌이었다.
'설마......'
서윤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을 느끼며 대문을 열었다.
무려 7개나 되는 잠금장치들의 열쇠를, 자주 온다는 이유로 미리 다 얻어 놓은 덕이었다.
그녀는 떨리는 다리로 마당을 걸어서 현관문 앞에 섰다.
어렴풋이 비친 거실에 누군가가 쓰러져 있는 게 보였다.
'안 돼!'
서윤은 현관문을 열고 거실로 들어갔따.
이현이 거실 바닥에 모로 쓰러져 있었다.
"흐흐흐흐흑."
심장이 미친 듯이 뛰면서, 가슴에서부터 뜨거운 것들이 솟구쳐서 눈물로 나왔다.
미용실에서 해 온 화장이 눈물에 엉망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서윤은 그런 것들은 생각지도 못할 정도로 마음이 아팠다.
간신히 열게 된 마음의 문이 이렇게 처참히 부서지려고 했다.
'어릴 때와... 똑같아.'
서윤이 아주 어린 꼬마였을 때, 그녀는 정말 보고 싶지 않은 무언가를 보게 되었다.
큰 상처를 입었던 마음이 긴 시간과 이현으로 인해 치유되었고, 조심스레 예쁜 희망도 품고 있었는데.......
서윤이 고머워하고 함께하고 싶은 사람이 저곳에 쓰러져 있다.
"나, 나는......."
다리에 힘이 풀려서 주저앉을 듯 비틀거렸다.
이현에게 다가가는 것조차 무서웠다.
수레를 밀었던 것 때문이 아니라, 몸 전체에서 소중한 것들이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왜, 왜 그랬어요. 왜......."
서윤은 흐느꼈다. 앞으로 다시는 웃지 못할 것만 같은 슬픔이 밀려왔다.
그때 이현이 꿈틀 움직였따.
아직까지 살아 있으니 빨리 앰뷸런스부터 불러야 되겠다는 생각이 스쳐 가려는데......
"꺼어어어억!"
트림이 길게도 나왔다.
그 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문득 거실 저편에, 아직 치우지 않은 밥상에 김치볶음밥과 짜파게티를 해 먹은 흔적이 보였다.
이현이 배를 만지면서 일어났다.
"깜박 잠이 든 모양이군 너무 많이 먹었나 화장실부터 가야지."
그러다가 인기척을 느끼고 현관을 보니 서윤이 눈물을 펑펑 쏟으면서 반가움과 격렬한 미움이 뒤섞인 눈으로 노려보고 있는 게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