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달빛조각사 29권 : 4) 최악의 팔자 (174/520)

4) 최악의 팔자

위드는 대륙에 어떤 일이 벌어지든 끈질기게 신들의 정원에 세울 조각품 제작에 매달렸다.

신들의 정원이라는 엄청난 대공사에 지칠 만도 했지만, 걸작, 명작이 나오면서 군중이 환호를 보냈다.

"위드의 조각품은 진짜 달라!"

"평범하면서 좀 못나 보이다가도, 오랫동안 보면 조금 괜찮게 느껴지기도 한다니까."

지금까지 여러 직업과 역할로 사람들의 인정을 받았지만, 조각사로서 진정 뛰어나다는 평가는 이제야 받고 있었다.

사실 여러 분야에 걸쳐서 조각사의 다재다능함이 장점이 되었지만 사람들은 모르는 면이 많았다.

대작의 조각품!

헤르만과 협력해서 만든 루의 신상과 투신 바탈리의 신상이 대작으로 탄생했다.

대작은 각 교단에 대한 높은 공헌도를 선사해 주고 지역의 전사들을 전직시켜 주며, 몬스터와 싸울 때 축복을 부여하는 효과가 있었다.

유저들과 주민들은 신들의 정원을 만들면서 단합도 이루어 냈다.

아르펜 왕국이 건국되고 나서 위드가 시도한 최초의 작품은 대성공이었다.

"크으윽, 허리가 쑤셔."

"하체에 감각이 없어."

"난 고개를 들지를 못하겠어!"

위드가 마지막 신상을 조각할 때쯤에는 신음하며 길가에 쓰러진 유저들이 가득했다.

돌과 모래를 나르다가, 수로를 개통하고, 도로를 깔았다.

정원을 단장하기 위하여 풀과 나무까지 옮겨 와서 심었다.

대형 토목 사업이 이루어지면서 해야 할 일이 한가득, 해도 해도 끝이 없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참여하여 골병이 들고 나서야 끝마치게 된 공사!

일이 고되다 보니 중간에 빠지고 싶은 강렬한 유혹을 느낀 유저들도 부지기수였다.

하지만 이런 조각품을 언제 다시 만들지 모르니 기회를 놓치기가 싫어서 대부분은 끝까지 공사에 참여했다.

유저들은 정말 감회가 새로웠다.

"아... 저게 마지막이구나."

"참 길었지."

"몬스터랑 싸운 것도 아니고 노동을 하다가 세 번이나 죽을 줄은......"

북부의 다른 곳에서도 사람들이 찾아와서, 모라타는 여행객들로 넘쳐 났다.

사냥과 퀘스트를 하러 떠났던 사람들도 완공 일자에 맞춰 돌아오면서, 식당과 상점이 유저들로 미어터질 정도였다.

"이거 완성되면 정말 대륙의 어떤 곳보다도 대단하겠다."

"완전 믿을 수가 없을 정도지."

"어디에도 이런 비슷한 것도 없잖아. 위대한 건축물도 없는 곳이 많은데 여긴 다 있으니까."

"하긴 그래, 어떤 신이든 전부 있으니까 축복을 받기가 아주 편해."

신들의 정원에 세워진 웅장한 32개의 조각품은, 참여한 유저들과 인부들의 피와 땀이 어려 있는 결정체였다.

대리석으로 지어진 신전들도 모여 있다 보니 고급스러운 분위기가 흐르는 데다, 정원의 한가운데에는 광장과 호수도 조성되어 있었다.

게다가 모라타에는 유난히 꽃이 많았다.

프리나의 꽃씨가 뿌려지기도 했으며, 위드가 얻어 와서 심어 놓은 야생초의 꽃들도 활짝 피어났다.

정원사에게 모라타는 가꾸어야 할 꽃과 나무가 다양한 도시였다.

씨를 뿌려 놓은 작물들은 싹이 트자마자 정원사들의 24시간 철저한 관리를 받고 있었다.

정원사들에게 신들의 정원이란, 도전해야 할 넓은 사냥터 와도 같은 것!

한쪽에는 공연장도 만들어 두었다.

신의 조각품이 있는 장소에서 너무 소란을 피우면 곤란하겠지만, 신들과 관련된 전설과 이야기를 공연으로 할 수 있게 했다.

찬양하는 노래까지 부르게 된다면 신들의 정원을 한층 유명하게 만드는 장소가 되리라.

규모 면에서나 작업의 속도 면에서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진행되어 마무리만을 앞둔 신들의 정원.

위드는 마지막 작업을 다음 날 아침으로 미루기로 했다.

"그래야 저 밑에 있는 사람들이 도시에서 하루를 더 묵어가겠지!"

아르펜 왕국은 계속 투입된 자금 소모로 인하여 남아 있는 재정이 거의 없었다.

만일 신들의 정원이 실패했다면 국력의 낭비로 인하여 역사서의 잉크에 물기도 마르지 않은 시점에서 망하는 왕국이 될 뻔했다.

위드의 피로도 쌓일 만큼 쌓여 있는 상태였다.

"나머지 작업은 내일 아침에 끝내겠습ㅂ니다. 오늘은 모두 다 수고했으니 가서 실컷 쉽시다!"

신들의 정원 근처에서 환호성을 지를 준비를 하고 있던 군중은 약간의 아쉬움과 내일의 큰 기쁨을 간직하며 흩어졌다.

위드도 동료들과 술집이나 가기로 했다.

모라타에 유저들이 계속 몰리면서 무역업과 상점업을 겸하는 마판은 떼돈을 벌었다.

그가 거하게 술을 사기로 했으니, 검치와 수련생들, 거기에 헤르만까지 끼어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

"크후후, 내일은 하루 종일 돈을 세어야지!"

손대는 사업마다 큰돈을 벌어들인 마판.

잡템 전문 상인에서, 이제는 북부 전체를 관장하는 상회까지 둘 정도가 되었다.

북부상인연합회의 회장직도 맡으면서 영향력을 행사했다.

모라타의 노른자위 땅에 있는 상점들은 전부 그의 것, 바르고 성채에도 무기 상점, 갑옷 상점, 가죽 상점을 개설했다.

다른 상인들은 쭉쭉 뻗어 나가는 마판을 보고 부러워하면서 장사 수완에 대해서 배우고 싶어 했다.

"마판 님, 대체 비결이 뭡니까?"

"오랜 신용과 단골 고객 덕분입니다."

마판은 일찍부터 위드를 따라다니면서 모라타에 같이 투자를 해 왔다.

초보자들이 시작하기 전에 북부로 왔던 중앙 대륙의 유저들과도 먼저 거래를 트고 지속적인 관리를 해 왔다.

알음알음 사람들 사이에서 괜찮다는 입소문이 퍼져서 현재로써는 누구나 마판의 상점을 최고로 쳐줬다.

대륙의 다른 왕국에도 지점이나 연락망을 두고 활용하였기에, 마판은 무역업도 성공적으로 이루어 냈다.

모라타의 특산품들이 많아질수록 대량으로 구입하여 구매 가격을 낮추고 필요한 곳에 가서 판매하여 돈과 명성을 얻는 대상인!

북부의 발전이야말로 마판에게 큰돈을 안겨 주었던 것이다.

물론 비결이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었다.

뇌물과, 권력과의 유착은 필수적.

위드가 아르펜 왕국의 국왕이 되자 가장 기뻐한 사람도 마판이었다.

위드의 꿈인 장기 독재가 실현된다면 그의 부도 덩달아서 늘어날 테니까!

★★★★★★★★★★★★★★★★★★★★★

"캬하, 과연 이 맛이로구나."

"닭 날개가 입안에서 분리되어 사르르 녹는 이 느낌."

"갈비가 뼈에서 떨어지면서 씹히는 식감은... 역시 돼지가 최고지."

검치와 수련생들은 사냥만 하다가 오랜만에 푸짐하게 제대로 된 음식을 먹었다. 마판이 술집을 통째로 빌려서 접대를 해 주었던 것이다.

씨름 선수들을 능가하는 식성 탓에, 고기 굽는 일은 불의 정령인 화돌이가 맡았다.

화돌이가 테이블에서 뛰어다니면 육즙까지도 대부분 남아 있는 채로 적당히 잘 익었다.

위드가 요리를 하면 더 맛이 있겠지만, 그도 오늘만큼은 먹는 입장이었다.

"그동안 고생 많으셨으니 한입 드세요."

수르카가 먹여 주는 쌈을 먹고 있자면 이리엔도 고기를 두점이나 올려서 챙겨 줬다.

신들의 정원이 지어지면서 일행 중에는 사제인 이리엔이 혜택을 제일 많이 입었다.

"역시 공짜 음식이 맛있어."

위드도 편안한 기분으로 만찬을 즐겼다.

고기만이 아니라 수십 가지의 안주들을 가져다 먹을 수 있었다.

테이블 구석에 앉아 있는 마판의 얼굴색이 비어 가는 접시 만큼이나 창백해지고 있었지만, 어쨌든 먹고 볼 일.

모라타의 식당과 술집은 도시로 온 손님들로 전부 북적였다.

광장에서 장사를 하는 상인들도 한몫 잡았고, 내일 원정을 떠날 파티를 구하는 사람도 많았다.

"이제 조금 주먹 쓰는 법을 알 거 같아요."

수르카가 자신 있게 말했다.

위드와 사냥을 할 때에 그녀는 약간 소극적인 편이었다.

일부러 맞아서 생명력을 낮추는 과감한 전투를 하는 방식이니 공격력에서는 훨씬 뒤져 있기 때문이다.

스킬을 잘 활용할 줄 알아서 누가 봐도 평균 이상은 되는 권사였지만, 전투 감각이 특별히 뛰어나지는 않았다.

같은 육체를 가지고 있더라도 누가 쓰느냐에 따라 결과가 다를 수 있는 법.

하지만 그동안 검치와 수련생들과 섞여서 사냥을 계속하다 보니 그들의 사냥법을 참고할 수 있었다.

"먼저 패고, 아픈 데 패고 또 때리면 된다는 사실을 배웠어요!"

수르카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어린 만큼, 보조개가 팰 정도로 환하게 웃는 모습이 더욱 귀엽기 그지없었다.

싸움의 3대 법칙.

누구나 알지만 직접 체득하기 전에는 사냥에서 잘하기가 어렵다.

수많은 사냥 동영상을 보더라도 막상 전투가 시작되면 잘되지 않았는데, 그 벽을 깬 것이다.

메이런도 웃으면서 옆에서 거들었다.

"요즘 수르카가 무서워요. 몬스터들을 얼마나 잘 패는지 몰라요."

"언니도 화살 잘 쏘잖아요. 추적 화살 스킬도 대부분 다 맞던데, 거의 마스터 가까이 올리지 않았어요?"

위드는 불현듯 이들의 레벨이 궁금해졌다.

수르카, 메이런뿐 아니라 다른 동료들과 모험을 한 지도 꽤 오래됐다.

라체부르그를 발견했던 당시에 잠깐 같이 사냥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실력이 크게 늘어서 놀랐던 기억이 난다.

위드는 수르카에게 물었다.

"혹시, 레벨이 얼마지?"

레벨은 친하지 않으면 말하기 꺼리지만, 이들과는 그런 거리낌이 없는 사이였다.

"403밖에 안 됐어요."

"403?"

"레벨이 아직 조금 낮죠? 오빠는 나보다 엄청 높을 텐데요."

위드는 정말 크게 놀랐다. 그의 레벨은 현재 409였다. 높은 편이기도 해도 수르카와 그리 차이 나는 건 아니었다.

"커험, 내가 조금 높긴 하지."

"페일 오빠는 지금 411인데요, 페일 오빠보다도 훨씬 높죠?"

"뭐, 그렇게 높은 건 아니야."

위드가 400의 벽에서 얼마나 많은 고생을 하였던가.

모험도 하고 조각품도 만드는 사이에 다른 동료들이 어느새 다 따라와 있었다.

이럴 때 나오는 것은 바드레이에 대한 원색적인 욕뿐!

"늦었지만 레벨 400 넘은 거 추... 축하해."

"고마워요."

축하해 주는 위드의 입술이 미세하게 떨렸다.

음식을 먹으면서 화기애애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그에게로 다가오는 어린 소년이 있었다.

검은 머리에, 어딘가 모르게 차가운 눈매를 가지고 있는 소년이었다.

NPC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소년의 얼굴에는 아주 미세한 표정 변화조차 없었다.

위드는 그를 보자마자 심각한 위화감을 느꼈다.

중학생 시절에 인형 눈을 40만 개쯤 붙였는데 월급도 안주고 내쫓는 악덕 사장에게서 느껴지던, 형용하기 어려운 두려움.

입안이 바싹 마르고, 머리털이 주뼛 서는 듯한 불안감!

위드는 소년에게 부드럽게 말했다.

"얘야, 지금은 식사 중이니까 다음에 오렴."

위드의 명성이 높아지면서 퀘스트를 받는 일이 아주 쉬워졌다.

국왕이 되고 나서는 모라타에 있는 주민들의 의뢰를 원하는 대로 골라 받을 수 있을 정도.

위드는 선수를 치기까지 했다.

"그리고 나는 베르사 대륙의 평화를 지키기 위하여 바쁘니 너의 부탁이 뭔지는 몰라도 받아 주지를 못하겠구나. 다른 사람을 먼저 찾아보도록 하렴. 충분히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거야."

적당히 무난하게 거절의 의사를 밝혔다.

그런데 소년이 가소롭다는 듯이 웃는 게 아닌가.

"인간인 너에게는 내 명령을 거절할 자격이 없다."

국왕인 위드의 지위를 감안하면 광오하기 짝이 없는 발언이었다.

그렇지만 인생이 매번 자기 뜻대로만 살아지는 건 아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아주 어린 시절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오직 눈치로 연명해 온 위드!

그 눈치가 이 소년이 범상치 않은 신분이라는 걸 알려 주고 있었다.

'누굴까, 니플하임 제국의 진정한 후계자? 어떤 퀘스트의 조건이 되어서 나타났나?'

퀘스트의 요건을 갖추면 직업 찾아가지 않더라도 알아서 만나러 오는 경우도 많았다.

'몽땅 죽었다고 들었는데 혹시나 어디 1명쯤 살아 있다가 갑자기 나타났더라도...... 하기야 멀리 떨어진 왕족 중에서 목숨을 건진 자가 있을 수도 있겠지. 그렇다면 이참에 뒷골목에서 조용히.......'

위드의 두뇌는 맹렬히 회전하면서 소년의 신분을 파악하기 위하여 노력했다.

기사를 비롯한 다른 호위들을 데리고 오지 않았음에도 소년은 매우 당당했다.

위드의 전투 능력은 이제 어지간한 몬스터라면 반갑게 맞이하면서 때려 줄 정도였다.

좋은 말 대신 주먹을 사용할 수도 있었지만, 위드는 소년이 입고 있는 장비들을 보며 생각을 돌렸다.

'최고급이다. 드워프들 중에서도 최고의 장인이나 되어야 겨우 만들 수 있는 복장이야.'

검 자루에는 무슨 오리 알만 한 다이아몬드가 번쩍번쩍 빛나고 있었다.

게다가 검집에는 복잡한 마법진의 무늬가 그려져 있었는데, 이거야말로 순도 100%의 마법검임을 증명하는 것.

흔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누가 착용하거나 구했다는 이야기도 들어 본 적이 없을 정도의 명검이었다.

입고 있는 옷은 특수한 벌레에서 나온 실을 수천 가닥으로 쪼개고 그걸 다시 세 가닥씩 엮어서 만든 제품이다.

최고의 드워프 재봉 장인이 끈질긴 노력을 하여도 1달에 한 벌 이상은 만들지 못하는 옷.

당연히 유저들 중에서 저런 옷을 착용하고 있는 사람도 아직은 없다.

'거기에 스텔레세의 날개 신발까지 신고 있어.'

최강의 바바리안 전사들만 오를 수 있다는 스텔레세 언덕.

소년은 그곳을 지키는 수호 바바리안들이 착용한다는 날개 신발을 신고 있었다.

신발의 추정 레벨은 590 정도였다.

순식간에 공손해지는 위드!

"물론 그렇습니다. 저에게 시키실 일이 무엇인지요."

진정한 비굴함이란 상대의 나이 따위는 조금도 상관하지 않는 것!

명성이 높아지고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는다고 하지만 위드는 과거의 약했던 시절을 잊지 않았다.

초지일관으로 꿋꿋한 비굴함이었다.

"너의 조각술 실력이 괜찮더구나."

"저보다 더 뛰어난 이들도 있습니다."

조각술이라니, 위드는 대체 어떤 퀘스트의 요건이 갖춰졌는지 궁금했다.

"내가 갖고 싶은 물건이 있는데, 구해 오너라, 그것은 인간들에게 내려지기에는 지나치게 과분한 보물. 나만이 그것을 조각품으로 만들어서 가질 자격이 있다. 아가테의 수정은 아마도 벨소스라는 인간이 가졌을 것이다. 약한 인간 혼자서는 불가능한 일일 테니 내 부하들에게 널 지켜 주라고 하겠다."

띠링!

『 드래곤이 원하는 보물

불의 대제 벨소스!

그의 유산을 찾아서 사악한 악룡 케이베른이 원하는 조각품을 만들어라.

악룡 케이베른은 자신에게 상납된 공물 중에서 괜찮은 실력으로 완성 

된 조각품이 있는 것을 알아보았다.

오만한 케이베른은 명령한다.

"조각사여, 너와 너의 친구들이 살아남고 싶다면 내가 원하는 것을

가져와야 할 것이다. 만일 늦거나 내 마음에 들 정도가 되지 못한다

면 죽음을 면치 못하리라."

아가테의 수정은 깨어지기 쉬운 물건이다.

어떻게 탄생한 것인지는 수수께끼에 휩사여 있지만, 수정 안에는 은

하수처럼 수많은 별들이 반짝인다고 한다.

케이베른은 아가테의 수정을 가져올 당신을 호위하기 위하여 11명의

용아병을 투입할 것이다.

난이도 : 조각사 퀘스트

퀘스트 제한 : 조각사로서 최고의 명성을 가지고 있어야 함.

케이베른과의 인연.

30일 내에 해결해야 함.

어떤 보상도 없음.

실패하면 케이베른에게 죽게 됨.

최소한 8명이 함께 완수해야 합니다.

7명에게 퀘스트를 권유할 수 있습니다. 거절한 상대방

은 케이베른에 의하여 처단될 것입니다. 』

"커헉!"

위드의 앞에 있는 이 소년의 정체가 악룡 케이베른이었다니.

대륙 최초이지만, 반드시 기뻐할 수만은 없는 처지인 드래곤의 퀘스트!

보상도 없으며, 실패는 더더욱 하면 안 된다.

드워프들이 이 악룡을 향해 갈아 대느라 닳아 버린 이빨 파편만 모으더라도 아르펜 왕국 병사들 전부의 갑옷을 만들 수 있을 정도였다.

'여기저기서 고생을 했더니 이제는 드래곤까지 날 알아먹고 부려 먹기 위해 의뢰를 맡기는군'

위드에게 케이베른과 엮었던 사건이라면 딱 두 가지가 있었다.

과거에 우스꽝스러운 케이베른을 조각한 적이 있기야 하지만 그건 유명한 작품도 아니라서 그냥 묻혀 버린 일이고

최근에 드워프들의 상납품을 같이 만들어 준 경험이 있다.

드워프들로부터 보상도 많이 받고 무사히 끝난 줄로만 알았는데 이런 식의 조각사 퀘스트로 이어지는 반전이 있었다니.

'그냥 드워프들이나 계속 부려 먹을 것이지!'

조각술 마스터 퀘스트에서 어쩌다 연결된 악룡 케이베른!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벨소스 대제는 베르사 대륙의 온도를 높여 놓고 진홍의날개 길드를 파멸시킬 정도의 거물이었다.

전형적인, 고래 싸움에 새우처럼 끼어들게 되었다.

어느 쪽이든 한 걸음만 내디디면 절벽 아래로 떨어질 수밖에 없는 신세.

'드래곤의 퀘스트라면 난이도는 무조건 평균 이상이겠군. 그나마 다행이라면 조각술과 관련이 있다는 건데...... 그리고 잘 풀리면 어쨌거나 아가테의 수정도 조각해 볼 수 있고, 드래곤이 바라는 물건이라면 정말 귀한 거겠지.'

위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원하시는 물건을 찾아오겠습니다."

-퀘스트를 수락하셨습니다.

드래곤 케이베른으로부터 1달간 용아병 11명의 지휘 권한을 획득합니다.

어차피 거절한다는 건 불가능한 이야기.

일찍 죽나 나중에 죽나, 순서상의 문제일 뿐이다.

"잘 생각했다. 기다림이 길면 그만큼 나의 노여움도 커질 것이다."

소년의 모습이 갑자기 사라졌다.

위드가 그제야 주변을 돌아보니 술집 안이 적막할 정도로 조용했다.

"커허헉."

"이제 겨우 숨을 쉴 수 있네."

"방금 뭐였어?"

악룡 케이베른의 투기에 눌려서 전부 말도 못 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저는 어떤 위대한 존재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위드는 혹시 케이베른이 아직 듣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정중하게 존댓말을 써 가면서 간추려서 설명해 줬다.

"토르 왕국에서 군림하는 위대한 드래곤 케이베른 님께서 누추한 이곳까지 와 주셨습니다. 그리고 직접 만난 적도 없는 저에게 고귀한 임무를 부여하였는데, 벨소스 왕의 유산을 찾아서 조각품으로 창조해 달라는 것입니다. 케이베른 님께서 원하시는 물품이니 정말 귀한 것이겠지요. 비록 어려움이 예상되더라도 감히 거절할 수 없는 존엄한 분의 부탁이라서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조각술의 길을 걷다 보니 이러한 영광도 얻게 되는군요."

해석하자면......

ㅡ토르 왕국에서 깽판을 부리는 악룡 케이베른이 뭐 건져먹을 게 없나 해서 모라타에까지 왔다.

생판 본 적도 없는 위드 자신에게 일도 시켰는데, 벨소스 왕의 유산을 찾으라는 거다.

드래곤 주제에 좋은 건 알아 가지고 가져다 달라고 하는데, 어차피 죽을 목숨이니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조각사로서 살다 보니 내 이런 더러운 꼴도 다 당한다.

"오, 전설로나 듣던 드래곤의 퀘스트!"

"과연 위드로구나 역시 막내는 달라!"

"암요. 우리의 자랑거리 아니겠습니까?"

검치와 수련생들은 부러워했다.

대륙에서 가장 강력한 드래곤의 퀘스트를 할 수 있다니!

대충 설명해도 잘 알아들은 동료들의 눈빛에는 동정심이 가득 어렸다.

"위드 님 어떻게 해요."

"잘하실 수 있겠죠?"

"다른 누구도 아닌 위드 님이니까 하실 수 있으리라고 믿어요."

"이번에도 대단한 모험을 하게 생겼네요. 응원할게요."

어떻게든 긍정적으로, 용기를 주기 위하여 애쓰는 동료들이었다.

위드는 고개를 저었다.

"벨소스 왕의 무덤에 가려면 스콜피온 왕의 유적으로 가야 됩니다."

메이런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랬죠?"

과거에 진홍의날개의 모험을 방송한 적도 있어서 기억에 남아 있었다.

"그곳 정말 위험하잖아요. 탐험할 때에도 상당히 많이 죽었는데. 그리고 유적 내부로 들어가려면 무슨 열쇠가 있어야 하지 않아요?"

"그 조각품을 제가 만들어 주었고 형태도 기억이 나니까 던전으로 들어가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스콜피온 왕의 무덤은 현재 봉인되어 있다. 진홍의날개 길드에서 그 꼴을 당하고 나니 누구도 들어가지 못했고, 들어가는 방법을 알아보려고 하지도 않았다.

"근데 중간에 봉인된 문을 열려면 스콜피온의 조각을 동시에 올려놔야 하기 때문에 저를 제외하고도 최소한 7명의 인원이 필요할 것 같은데요."

"그게... 그랬나요?"

"네. 그리고 퀘스트에서도 다른 동료들을 구하라고 하던데요."

위드는 동료들과 눈을 마주쳤다.

"드래곤이라니......"

얼어붙어 있는 페일이었다.

"벨소스 왕의 유적은 위험할 것 같은데요. 괜찮을까요? 아... 저 며칠간 방송국에 출근해야 되는데......"

호기심을 보이고 있지만 직장인으로서 어쩔 수 없어 포기하는 듯한 메이런.

"그때 방송에서 봤던 보물을 거기서 얻을 수 있을까요?"

수르카는 큰 모험이라고 대책 없이 좋아했다.

"잘못 손대면 큰일 나는데."

이리엔은 불안해하고, 로뮤나는 깊은 생각에 잠긴 것이, 거절할 변명거리를 찾는 모습이었다.

"유린아... 크윽."

제피는 어쨌든 거절할 수 없는 입장이라서 같이 죽어도 된다는 듯이 눈을 마주쳐 왔다.

화령과 벨로트 그녀들은 어떤 장소라도 가 보고 싶어 했다.

위드와 같이 갔던 모험이 재미가 없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진짜 위험할까?"

"언니, 전 엄청 위험했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멋진 노래로 제작할 수 있지 않겠어요?"

스콜피온 왕의 무덤이라면 바드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을 노릇.

'메이런 님은 아마도 방송을 해야 될 테고.....'

그녀를 제외하면 딱 7명이 모집된다.

서윤도 같이 간다면 대단한 전력이 될 테지만 양심상 자꾸 부탁을 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사실 그녀에게는 다른 특별한 정보도 알려 준 상태였다.

위드가 신상을 만들고 있는 동안, 어느 떠돌이 음유시인이 미친 전사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국왕이나 고위 귀족에게는 음유시인들이 와서 공연을 하거나 노래를 들려주는 경우가 간혹 있었다.

"폐하, 제가 토호루 지방에 가서 보고 들은 것을 노래로 들려 드려도 될까요?"

그러면 왕은 음유시인의 노래를 감상하고 나서 그에 대한 포상금을 준다.

국왕이 일부러 파티를 베풀어서 음유시인들을 통해 대륙의 정보를 얻거나 퀘스트의 단서를 구할 수도 있었다.

그러면 수백 명 이상의 실력 있는 음유시인들이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모여들게 되는 것이다.

위드는 물론 일부러 궁중 파티를 벌일 생각 따위는 추호도 없었다.

굳이 아르펜 왕국의 재정이 바닥에서 맴도는 현실이 아니더라도, 그들에게 지급할 행사료가 아까웠으니까!

"노래 한 곡 하고 몇백 골드씩 달라고 하다니 어림도 없지."

물론 명곡은 그 가치를 할 테지만, 흥청망청 쓰다 보면 왕국의 존립이 위태롭다.

"역대로 보면 주민들을 정말 잘 착취하면서 많은 세금을 거두었더라도 사치를 하다 망하는 왕들이 많았지."

위드는 그런 왕들을 보면 참 못났다고 생각했다.

금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나고도 그 금이 다 닳을 때까지 빨아 먹을 줄 아는 현명함이 부족했던 것 아닌가.

그런 측면에서 볼 때 경비 절감이란 언제나 중요한 것이었다.

위드의 경우에는 개인적으로도 대륙 제일이라고 할 만큼 명성이 높았고, 모라타에는 공연장들도 있어서 음유시인들이 알아서 찾아온다.

북부의 떠돌이 음유시인이 와서 들려준 노래는 전장에서 악귀라고 불리던 최고의 광전사가 은거한 장소를 알려 주는 것이었다.

혹시 직업 기술이라도 익힐 수 있을지 몰라서 서윤에게 그곳으로 가 보라고 했다.

물론 확실한 정보는 아니었지만 그동안 신세 진 것이 있어서 특별히 알려 주는 것이라면서 생색도 실컷 내고서 말이다.

'혹시나 오두막이 텅 비어 있어서 칼을 들고 날 찾아오는 건 아니겠지.'

위드는 생각을 정리한 후에 환하게 웃었다.

"여러분 레벨도 400이 넘었고, 그러면 우리끼리 가면 되겠네요."

"하, 하하하, 그럴까요?"

어딘가 모르게 경직된 웃음!

착하고 순한 청년이던 페일에게도 어느새 위드의 썩은 미소가 전염되어 있었다.

★★★★★★★★★★★★★★★★★★★★★

각 방송국에서는 바드레이의 전투와 모험을 매일 중계했다.

"최강의 무신 바드레이!"

"오늘도 지금까지 잡힌 적이 없는 몬스터에 도전합니다."

"흑기사의 마스터 퀘스트! 강함의 끝을 알려 주는 것 같은 의뢰가 잠시 후부터 시작됩니다."

시청자들의 환호 속에서 바드레이의 직업 퀘스트는 뉴스와 중계를 통해서 매일 올라왔다.

바드레이는 벌써 열다섯 번째 퀘스트를 진행하고 있었다.

흑기사의 이번 퀘스트에는 정해진 시나리오가 있었다.

전쟁에서 왕에게 배반당한 기사가 스스로 명예를 버린다.

왕국을 떠나 여러 전쟁터를 전전하면서 공적을 쌓고 돈을 벌어 노예나 고아 중에서 자질을 가진 이들을 제자로 삼는다.

그들을 데리고 용병대로 활동하며 전쟁터에서 군대를 조직해 내고 기사를 키워 내는 이야기.

바드레이를 위하여 과거 베르사 대륙의 역사에 있던 왕국과 전투가 재현되었고, 성과 요새도 당시의 모습대로 건설되어 있었다.

어마어마하다고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 규모의 퀘스트!

테르메돈의 기사단.

테르메돈의 보병대.

바드레이는 전쟁터에서 기사 30명과 병사 2,500명을 구성해 냈다.

이 병력은 남은 흑기사 퀘스트에도 사용할 수 있고, 개인적으로 부하로도 계속 둘 수 있다. 그렇기에 상당한 정예 병력으로 키워 낸다는 목표였다.

"작은 성 정도는 점령할 수 있겠군."

원래 바드레이가 받아들인 고아의 숫자만 4,000명이 넘고, 전쟁터에서 끌어들인 병사는 그보다 훨씬 많았다.

전투중에 소모된 병력도 적지는 않았지만, 그들이 무능하다고 느껴지면 바드레이는 일부러 어려운 임무를 맡겨 가차 없이 죽게 했다.

"성문 앞을 사수하라."

"하지만 기사님, 그 명령은 저희로는 무리입니다."

밀려오는 몬스터들에 맞서 도시를 안전하게 지켜야 되는 상황이었다.

성문 안쪽에서 대비하더라도 위험한데 밖에 서 있으라는 말은, 그냥 죽으라는 뜻.

"기사가 되려면 이 정도는 해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너희를 끝까지 데리고 갈 것이다."

"알겠습니다."

고아 출신의 병사들은 성문 바깥에 있다가 장렬하게 전사했다.

바드레이는 그 빈자리를 더 좋은 재능을 가진 아이들로 채웠다.

흑기사의 퀘스트를 진행하다 보면 피치 못하게 선호하는 용병술의 방식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간 바드레이는 헤르메스 길드의 악행에도 불구하고 의도적으로 그 뒤에 숨어서 가려져 있는 편이었다.

그러나 혼자서 진행해야 하는 퀘스트에서 서슴없이 부하들을 버리는 광경을 보여 주면서, 시청자들의 비난을 받았다.

"완전 나쁘다. 어떻게 전투에서 몇 번이나 공을 세운 부대를 저런 식으로 버려."

"정말 충성스러운 부하였는데 전투에서 쉽게 이기려고 희생양으로 삼아 버리네, 진짜 인정머리도 없다."

"귀족 자제들이 현금을 들고 오니까 평민은 내쳐 버리네. 지난번 바드레이와 같이 싸웠던 기사까지도 내쳤어."

하지만 그림으로써 부대가 더 강해지고 있었기에 만만치 않은 수의 시청자들이 열광하고 호응하기도 했다.

바드레이가 추구하는 힘.

정의나 명분은 제쳐 두고 강력한 기사단과 군대를 양성해 내는 과정이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이처럼 모두가 부러워하는 모험을 하면서도 정작 바드레이 본인은 조금도 행복하지 않았다.

'쓸모없고 귀찮은 일이군.'

헤르메스 길드를 장악하고 있는 그로서는, 기사단과 병사들이 필요하다면 손쉽게 동원하면 될 뿐이다.

바드레이를 위하여 죽어 줄 부하들은 이미 많다.

역사적인 전쟁을 헤매면서 직접 부하를 키우고 그것으로 퀘스트를 해야 한다는 사실이 번거로울 뿐이었다.

★★★★★★★★★★★★★★★★★★★★★

명장의 손 파비오.

드워프 대장장이 중에서 가장 훌륭한 검과 갑옷을 제작하는 그는 인기인이었다.

로열 로드 초기부터 최고의 갑옷을 만들어 내며 두각을 드러내어, 현재는 방송사의 단골 취재를 받았다.

"이번에는 어디 괜찮은 검이 나오려나."

땅. 땅. 땅.

파비오의 대장간은 쉴 틈이 없이 돌아갔다.

그가 직접 키운 드워프 도제들이 불을 지피고 재료들을 운반한다.

대장간의 규모도 매우 컸지만, 이미 완성되어 철광을 번뜩이며 쌓여 있는 검이 산더미.

"아빠, 트리커 길드에서 레벨 360짜리 검 백스무 자루 주문이 들어왔어요. 팔까요?"

"그래 알아서 챙겨 가라."

드워프들은 쌓여 있는 검 중에서 대충 선별해서 가져갔다.

파비오가 따로 심혈을 기울여서 만들어 낸 무기가 아니더라도 옵션이 최소한 4~5개씩은 붙었다.

공격력과 방어력도 일품이고 무게중심도 잘 잡혔으니 누가 착용하더라도 좋아 할 것이다.

"진정한 검이 탄생하려면 멀었어."

파비오는 망치를 두들기며 오로지 검을 계속 만들어 내고 있었다.

수백 자루 중에서 한 자루 정도, 의도하지도 않은 작품이 태어난다.

저절로 태어나는 것 같은 그런 검들은 더 두들기고 괴롭혀 주면 명검이 된다.

불과 철, 실력 있는 대장장이가 어우러져야 탄생하는 작품.

드워프 대장장이 파비오의 검게 그을린 몸은 불꽃의 기운을 담은 강철을 연상시켰다.

그는 대장간에서 움직이지도 않고 검과 갑옷만을 제작했다.

일체의 대화는 철과 불 그리고 자신의 몸에서 흐르는 땀방울로 충분했다.

파비오의 대장장이 스킬은 고급 9레벨 81.7%.

대장간에 웅크리고 있는 거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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