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달빛조각사 29권 : 5) 벨소스 왕의 유적 (175/520)

5) 벨소스 왕의 유적

농부들이 한 장소에 정착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조건이 많았다.

넓고 비옥한 땅, 맑고 메마르지 않는 물, 자연재해나 몬스터의 습격도 없어야 한다.

"그런 다 좋은 땅은 땅값이 비싼 게 흠이지."

그래서 농부들은 성벽으로 보호된 좁고 비싼 곳보다는 험한 산과 들판을 개간했다.

산짐승의 습격을 방지하기 위하여 목책도 두르고 배수로도 팠다.

성의 병사들과 전투 계열 유저들이 치안을 확보하면 눈치를 보며 그 지역으로 농지를 확대해 가야 되었다.

산과 들에서 일을 하다 보면 몬스터에게 죽는 경우도 잦은 편이다.

작물을 기르기 위해서는 일도 많이 해야 하기 때문에 고생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농부들은 그 일을 좋아했다.

"오늘은 저녁에 비가 올지도 모르겠는걸. 일을 빨리 마쳐야 되겠어."

아침 해가 뜨기 전 안개가 깔려 있을 때부터 땅을 일구고 씨앗을 심으면, 싹이 트고 줄기가 무럭무럭 자라는 걸 볼 수 있다.

안 좋은 환경을 극복하면서 악착같이 생명의 씨를 뿌리다 보면 언젠가는 황금의 들녘을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때의 감동은 농부만이 느낄 수 있으리라.

묵직한 알맹이를 가진 곡물이 자라고, 과수원의 나무에 열매들이 탐스럽게 영글면 시장에 나가서 내다 팔기도 하였다.

직접 키운 농산물로 장사의 재미도 느낄 수 있을뿐더러, 재배가 잘되면 요리사들이 웃돈을 얹어 주며 구입하기 위하여 난리법석을 피웠다.

그렇게 번 돈은 땅을 더 사거나 특수작물을 기르는 데 투자하게 된다.

무기나 방어구를 구입하는 게 아니라 땅에 다시 투자하기에 흉작이 오더라도 견딜 수 있는 것이다.

북부의 모라타는 엘프들과의 관계가 나쁘지 않았고 토지도 비옥한 편이라서 인기 만점의 엘프들의 과일을 키울 수 있었다.

잘 돌볼 수만 있다면 주변의 다른 대지까지 비옥하게 만들어 주고, 조경 효과도 좋았다.

단지 나무와 과일이 비싸서만이 아니라, 농부들에게는 자신의 밭과 논이 풍성해 보인다는 자체가 굉장한 자부심이 되었다.

하지만 수익성을 놓고 볼 때 가장 비싼 건 아무래도 약초밭!

약초밭은 아무 곳에나 조성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적당히 그늘지고 땅의 양분이 기름진 구역에 시간을 들여서 만들어야 한다.

몬스터, 산짐승의 적극적인 침략 행위를 막으면서 좋은 약초를 길러 내면 각 교단이나 요리사들이 엄청난 금액을 지불하면서 사 간다.

안정화 단계에 이르기만 하면 농작물은 조금만 관리하더라도 재배가 쉽고, 땅은 고스란히 남는다.

넓은 땅을 가진 농부야말로 상인이 부럽지 않을 만큼 돈을 벌어들이는 직업이었다.

하지만 나중에 어느 정도 개간한 땅을 넓히는 데 한계가 오면, 자신의 땅을 영주나 다른 농민에게 팔고 새로운 장소를 찾아서 이주하게 된다.

알려지지 않은 씨앗을 구하고, 비옥한 땅을 찾기 위하여 다른 장소에 정착했다.

전문 농부들이 뭉친 캐비지 길드는 프레야 여신상이 지어지고 난 직후에 모라타에 왔다.

"북부는 땅이 정말 넓어서, 중앙 대륙처럼 협소한 영역에서 농사를 짓지 않아도 되겠네요."

"어디 그것뿐인가요. 여기 토질 좀 보세요."

길드원들이 거친 땅을 파 봤더니 금방 기름진 토양이 나왔다.

"여긴 뭘 심어도 잘 자라겠는데요."

"프레야 교단에서 이 땅에 축복까지 내려 주었으니 두말할 필요도 없죠. 여기서 농사나 지어 봅시다."

처음에는 간단한 작물인 밀과 쌀을 심었다.

밀은 어느 장소에서도 어지간한 수확량을 쉽게 거둘 수 있고, 땅도 크게 가리는 편이 아니었다.

그리고 기대 이상의 대풍년!

프레야 교단의 가호로 인하여 곡물을 무사히 재배할 수 있었다.

몬스터의 침입을 걱정할 때에는 모라타의 영주에 대한 악담도 많이 나눴다.

"모라타 영주는 생각이 짧아. 몬스터가 있어서 치안이 위태로우면 아무것도 되지 않는데."

"무식한 놈들이 때리고 부수는 거 외에 뭘 알겠습ㅂ니까. 다 그런 거지요."

농부들은 원래 중앙 대륙으로의 수출을 염두에 두었다.

그런데 유민들이 모라타로 밀려왔고, 초보자들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가까운 소비 시장이 형성되었고, 영주는 아르펜의 특수 곡물 창고까지 지어 주면서 농부들에 대한 간접적인 지원도 확실히 해 줬다.

농부들에게는 애써 재배한 농작물이 보관 중에 상하는 것만큼이나 가슴 아픈 일이 없는 상황이었는데 다른 영주들과는 달리 세심하게 신경을 써 준 것이다.

"모라타의 영주가 검소하게 살면서 투자를 많이 하긴 하네요."

"조금 좋은 면도 있는 거 같죠?"

"요즘에야 알아차린 건데요. 우리가 땅을 개간하면 레인저 부대들이 전진 배치되면서 지켜 주고 있어요."

농부들이 토마토와 포도까지 성공적으로 재배하자 농작물의 명성과 지역 명성이 합쳐져서 특산품으로 등록이 되었따.

특산품이 되기만 하면 판매는 우스울 정도였다. 식품 상인들이 구매를 위하여 일부러 방문하여, 곡물 창고에 있는 물량을 싹 가져가려고 하기 때문이었다.

농부들의 활약으로 나중에는 올리브도 특산품으로 추가 등록이 되고, 식료품을 원료로 요리사들이 기술 발전도 이루어 냈다.

와인, 맥주 양조장도 운영되면서 재배된 곡물들을 2차로 가공하며 더 많이 소비시켜 주었다.

축산업으로는 소, 양을 대량으로 키우면서 우유, 치즈의 음식물과, 모라타의 경쟁력 높은 가죽 산업에도 뒷받침이 되었다.

"모라타의 영주는 정말 훌륭합니다. 누가 우리 농부들의 일까지 이렇게 세심하게 살펴 줄까요?"

"뛰어난 재목이죠. 아르펜 왕국이 되면 사람이 지금보다 늘어날 테니 더 늦기 전에 약초밭도 시작하고, 과수원과 포도 농장도 더 넓혀야겠습니다."

"전 커피와 사탕수수도 시작하려고요."

농부들이 거대한 부를 축적하며, 더 넓은 땅을 곡창지대로 일구어 내는 데에는 영주인 위드의 역할도 절대적이었다.

위드를 보고 많은 유저들이 정착을 하면서, 치안이 강화되고 몬스터로부터 안전ㄴ을 지킬 수가 있었다.

농부들이 조각 생명체 중에서 킹 히드라와 블랙 이무기의 집중적인 보호를 장기간에 걸쳐서 받아 오지 않았더라면 지금처럼 안심하고 생산량을 늘리진 못하였으리라.

그렇지만 농부들도 모라타의 발전을 많이 이끌었고, 아르펜 왕국이 되고 나서도 그것은 마찬가지였다.

현재 농업은 대활황이었다.

야생초와 꽃나무가 활짝 피어 있는 모라타는 관광지로도 인기다.

어떻게 알고 온 것인지, 새들도 이 아름다운 도시로 많이 날아들었다.

아까운 곡식을 마구 먹어 치우는 새들은 농부들에게는 천적과도 같은 존재였다.

"이놈의 새들은 왜 이렇게 많은지."

"훠이! 이것들만 몽땅 없애 버리면 정말 그 이상 바랄 게 없겠어."

그들을 쫓아내기 위하여 안간힘을 썼지만, 수만 마리씩 무리를 지어 황금 들판 위를 날아다니는 새들은 농부들의 썩어가는 속과는 상관없이 일대 장관을 이루었다.

여행자들이 새들을 보기 위하여 일부러 곡창 지대로 찾아올 정도로 인기를 끌게 된 것이다.

"누나, 저기 저 새는 이상해!"

새들을 이끌고 다니는 2마리의 특별한 대장 새.

특별한 외관을 가진 황금새와 은새는 둘이서 오붓하게 쌀알들을 쪼아 먹었다.

황금새가 껍질까지 벗겨서 주면, 은새는 공주처럼 받아먹으면서 만족스럽게 짹짹 울었다.

★★★★★★★★★★★★★★★★★★★★★

루의 교단의 의뢰를 받아 아골디아로 떠났던 원정대.

대륙 10대 금역은 그 명성이 허황된 게 아니었다는 사실을 증명하듯이 원정대를 괴롭혔다.

"아, 지친다."

"아무리 가도 끝이 없네."

"벌써 이틀째 발견한 것이 없으니 절망적이야."

식량은 물론 물도 구할 수가 없었다.

바닥까지 갈라져서 메마른 땅에는 굶주린 몬스터와 식인 야만족들이 돌아다녔다.

성지 아골디아는 이미 옛 모습을 찾을 수 없게 된 지 오래.

"이겨 내야 합니다.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루의 교단 출신의 성기사와 사제 들이 지쳐 있는 사람들을 독려했다.

아무래도 교단에서 내건 퀘스트인 만큼 성직 계열의 유저가 많은 것은 당연하다.

"위드 님도 이런 10대 금역에서 활약했습니다. 그리고 보란 듯이 성공하지 않았습니까?"

"여기서 포기하고 돌아가면 우리는 패배자로 남을 뿐입니다. 다 같이 해냅시다."

그렇더라도 끝이 없는 메마른 땅은 그들을 포기하고 싶게 유혹했다.

굶주림과 목마름.

몬스터들은 돌을 가지고 있어서 그들의 고기를 먹지도 못했다.

겨우 찾아낸 오아시스조차도 이미 다 말라붙어서 밑바닥까지 드러낸 상태였다.

"크으... 이곳도 틀렸습니다."

"흩어져서 조금 더 찾아보죠."

"내일은 비라도 내려 주면 좋을 텐데......"

"1달 전에 내렸던 비가 마지막이라니, 정말 끔찍합니다."

아골디아는 다크우드의 마법사들의 영역이라서 텔레포트 등의 마법을 쓰지 못했다.

전투가 벌어지더라도 주변에 파장을 덜 일으키는 소규모의 마법만 시전해야 했다.

인근에 다크우드 소속의 마법사가 있으면 발각되어 그들의 습격을 받았다.

레벨 460이 넘는 고위 마법사의 공격은 원정대를 시달리게 하기에 충분.

아골디아에 도착해서 헤매기 시작한 지도 시간이 제법 흘렀다.

모라타에 있던 북부의 최정예 유저들이 대거 참여하였다지만, 사상자가 무수히 발생했다.

원정대가 중요한 갈림길에 놓일 때마다 사람들의 생각이 부딪치다 보니, 많은 인원이 참여했다는 사실이 꼭 좋은 것만도 아니었다.

모라타에 신들의 정원이 완성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성직 계열의 유저들은 돌아가고 싶었다.

"금역 아골디아의 탐험은 그냥 이쯤에서 끝내고, 모라타에 가서 신들의 정원을 감상하는 쪽이 어떻겠습니까?"

"아르펜 왕국에는 재미있는 모험들이 더 많을 것 같네요."

"그게 더 낫겠어요."

성직 계열의 유저 상당수가 이탈하자, 같이 참여했던 다른 직업을 가진 유저들도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남은 인원은 불과 20명가량밖에 되지 않았다.

"반드시 우리의 임무를 완수해야 됩니다."

대륙에 이름을 날리고 있는 모험가 스펜슨이 이들을 끝까지 이끌며 루의 검의 힘을 되찾기로 했다.

★★★★★★★★★★★★★★★★★★★★★

위드는 새벽 일찍 신들의 정원에 나와서 자신이 만든 조각상들을 돌아보았다.

아침에 마지막 조각상을 최종 완성하기로 했으니 시간은 남아 있었다.

달과 별이 가까이 있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맑은 밤하늘이었다. 그렇지만 위드의 마음은 그렇게 편하지 않았다.

과거 200원 더 비싼 소금을 샀던 것은 물론 여전히 후회로 남아 있지만, 그보다 더 잘못을 최근에 저지르고 말았던 것이다.

"멜버른 광산에서의 전투는 실수가 너무 많았어."

그동안 조각상을 만들면서도 바드레이와 싸웠던 순간이 자꾸만 떠올랐다.

위드는 그때의 패배와 죽음에 대해서 그렇게 억울하거나 분통이 터지는 건 아니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약해서 죽었을 뿐이다.

"더 강해지지 못한 내 책임이겠지."

바드레이는 알려진 별명만큼 강했다.

길드의 지원을 받았다거나 처음부터 불리한 상황이었다거나 하는 것은 모두 변명거리일 뿐.

그 전투에서 자신의 능력을 온전히 발휘하여 싸우지 못했다는 후회가 자꾸 들었다.

"더 차분히 생각하지 못했어. 내가 가진 걸 최대한으로 활용하지 못했지."

전부 열악한 상황이었다지만, 그래도 이용할 것은 많았다.

서윤과의 결혼반지로 생명력을 분배받을 수 있었으니 그점을 활용하였더라면 마지막에 더 오래 버틸 수 있었을 것이다.

생명력이 떨어졌을 때 더 활발하게 싸우면서 광전사의 직업 특성에 스킬까지 활용하면서 싸웠다면, 더 화끈하게 붙어 볼 수 있었다.

하지만 헤르메스 길드의 다른 지원군이 부담이 되어서, 어차피 죽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조급하게 싸운 점이 없지 않았다.

생명력이 적당히 낮은 상태에서 한꺼번에 큰 타격을 받아서 결혼반지의 효과도 써 보지 못하고 죽어 버리고 말았다.

"난 지렁이만도 못했던 거야. 하기아 그랬으니 미련하게 200원이나 비싼 소금을 샀겠지."

위드는 꿈틀조차 하지 못하고 죽었다고 스스로를 책망했다.

정작 그 싸움에서 의도치 않게 피해를 본 헤르메스 길드의 유저들은 전혀 동의하지 않겠지만.

사실 약간 복잡한 상황이 있었더라도, 헤르메스 길드의 최정예 유저들이 그만큼의 피해를 본 것도 놀라운 일이었다.

스킬이나 레벨을 떠나서 단 1명이 몬스터인 벨카인 부부와 협력하여 그렇게 자신들을 괴롭힐 줄은 몰랐다.

"그리고 심하게 방심했어. 내게 적이 많은 이상 무슨 일이라도 벌어질 수 있었는데 대비가 부족했지."

조각 소환술은 상황이 나빠서 일부러 쓰지 않았다. 그건 더 큰 피해를 받지 않기 위해서였으니 납득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렇지만 대재앙의 자연 조각술도, 마땅한 조각품이 없어서 사용할 수가 없었따.

화산 폭발 같은 스킬은 발동하는 데 아주 오래 걸릴 테고 위드 자신에게도 너무나 위험하여, 정작 결정적인 순간에 쓸모가 많지 않았다.

던전에서도 적당히 일으킬 수 있는 재앙의 조각품을 가졌다면, 그걸 사용하고 나서 훨씬 더 잘 싸울 수 있었을 것이다.

달빛 조각 검술은 전투적으로 유용하기는 했다. 대부분의 사냥에서 사용했기에 스킬의 숙련도는 역시 높았다.

하지만 조각 검술의 3배나 되는 살벌한 마나의 소모, 일대일의 전투도 아니고 그때에는 여신의 기사 갑옷도 없어서, 별로 써먹지를 못했다.

"여러모로 긴장이 풀려 있었군."

위드는 허술했던 지난 전투에 대하여 통렬한 반성을 했다.

이런 식으로 진다면 언제 강해져서 남의 것을 빼앗으면서 살겠는가!

"거기다가 탈로크의 믿음 갑옷까지 잃어버렸으니."

유니크급의 아이템.

획득한 지 오래되기는 했어도 옵션들이 좋았고 착용하기도 편했다.

위드는 방어력을 높이기보다는 공격력에 치중하는 편이라서 검을 훨씬 더 자주 바꿨다.

뺏겨 버린 갑옷에 대한 애착이 자꾸 그를 괴롭게 했다.

탈로크의 믿음 갑옷을 입고 있으면 든든한 돈주머니를 차고 있는 기분이었는데, 그게 팔아먹기도 전에 남의 손에 들어가 버리다니.

"다시는 그러지 말아야지."

위드는 마지막 신상을 조각하기로 한 아침이 찾아오기 전에, 던전에서 활용할 수 있는 재앙의 조각품부터 깎았다.

갑자기 출몰하는 죽음의 벌레들의 떼. 지독한 생명력과 바위까지 뚫고 다니는 관통력으로 인간과 몬스터를 덮어 버리게 될 것이다.

사실 위드가 지금까지 만든 조각품의 종류도 워낙 다양했고, 재앙은 조금만 골몰하면 상상을 초월하는 여러 가지 종류를 생각해 낼 수 있었다.

"뭐든 끔찍하면 되겠지. 몸이 익어 버릴 정도로 뜨거운 물이 들어차는 것도 괜찮을 거야. 얼음물로 훌륭하고 기왕이면 조각품에 내가 피할 장소는 미리 만들어 놔야지."

대재앙도 자주 일으키다 보니 경험이 싸였다.

광산 같은 곳에서 재앙이 일어나는데 딱 혼자서만 들어가서 살 수 있는 구멍 같은 것을 미리 조각품에 형성해 놓는 것이다.

과연ㅇ 나쁜 짓도 자주 해 봐야 는다는 말이 괜한 게 아니었다.

"은행도 여러 번 털어 본 강도가 잘 훔쳐 가겠지."

위드가 아침까지 만든 것은 재앙의 씨앗을 사방으로 퍼트리기 위한 작품들이었다.

★★★★★★★★★★★★★★★★★★★★★

"곧 시작하는 거야?"

"이제 진짜 끝이다."

"괜히 긴장되네."

"난 갑자기 허리가 쑤셔."

신들의 정원을 완성시키기로 한 아침이 되자, 모라타에 지금까지 본 적이 없던 대군중이 모였다.

그들의 흥분과 설렘은 마지막 조각을 남겨 두고 커졌다.

직접 참여하였기에 감동도 더욱 진할 것이다.

"으윽... 저걸 다 만들면 우리가 가게 되겠죠?"

"벨소스 왕의 유적은 탐험이 어렵진 않을 거야. 다만 잘못 될 수는 있겠지."

"하아! 과거 진홍의날개 경우를 봐도 너무 불안해요."

수르카와 로뮤나, 이리엔 등의 등료들만 얼굴빛이 상한 풀죽처럼 거무스름했다.

조각품이 완성되면 위드와 함께 던전으로 떠나야 하는 처지라서 표정이 밝을 수가 없었다.

케이베른의 용아병들은 벌써 흑생 거성에 도착하여 있었다.

"역시 너무 착하면 안 돼."

위드는 대표적으로 페일과 이리엔을 보면서 느꼈다.

괜히 생고생하는 사람 옆에 있으면서 같이 날벼락을 맞는 성격!

"나처럼 재수 없는 사람과 가까이 있으면 안 좋은 일이 많이 생긴다니까."

아침 해가 뜨면서 주변이 밝아져 마지막 조각품을 선보일 때가 되었다.

군중의 기다림이 최대가 되는 시간.

허기가 최고의 반찬인 것처럼, 이럴 때 완성을 해 주어야 조각의 결과물에 더 감탄하게 될 것이다.

"오늘 아침, 이 아르펜 왕국에는 정말 역사적인 순간이야. 더 많은 세금을 거두기 위한 새로운 장이 열리겠지."

위드는 조각품의 입술을 깎았다.

마지막으로 남겨 놓은 신상은 프레야였다.

중앙 대륙에서까지 달려온 성기사와 사제 들은 경쟁적으로 자신들이 모시는 신부터 완성해 주기를 바랐다.

프레야 여신상은 모라타에 이미 만들어져 있었기 때문에, 신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을 마지막으로 깍게 된 것.

미의 상징인 프레야 여신상은 아름다워야 했고, 여러 차례 우려먹었던 주제라서 최종 작품으로 할 정도의 자신도 있었다.

립스틱을 곱게 바르고 마무리로 반짝이는 립글로스까지 더해 화장을 완성한듯, 프레야 여신상의 입가가 완성됐다.

띠링!

『 여신 프레야의 신상이 탄생하였습니다.

아름다움과 풍요를 주관하는 여신.

여러 방면에 재주를 가지고 있으며, 인간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여신이다.

그녀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데 정평이 나 있는 거장 조각사의 작품이다.

과거의 작품을 새롭게 선보이는 것으로, 프레야 교단에서는 이 조각

상도 귀중히 여길 것이다. 』

-프레야 교단의 우호도가 54가 되었습니다.

-프레야 교단의 공적치가 960 상승했습니다. 교단의 공적치는 종교 상태 창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프레야 교단의 공적치 : 21,291

종교 단체에의 공적치는 마물을 퇴치하는 것과, 관련된 퀘스트를 완수하는 것으로 상승한다.

프레야 교단과는 대성당으로, 그리고 주민들의 믿음으로 인하여 가만 놔두더라도 공적치가 매일 꾸준히 오르고 있었다.

국왕이나 영주로서 얻을 수 있는 중요한 이득 중의 하나였다.

띠링!

-하나의 넓은 장소에 신을 표현한 조각품들이 모여 있습니다.

이 조각품들이 완성된 장소에 이름을 붙이겠습니까?

"신들의 정원으로 하겠다."

-신들의 정원이 맞습니까?

이미 인부들과 유저들 모두가 그렇게 부르고 있었다.

위드의 작명 기준으로는 썩 나쁘지도 않았다.

노가다의 땅, 모라타 도시 옆 동네, 세금의 정원, 헤르메스 길드 나쁜 놈이라는 이름을 지을 수도 있었으니까.

"맞다."

띠링!

『 베르사 대륙에 신들의 정원이 조성되었습니다!

신의 조각품들이 거대한 위용을 갖추고 있는 장소.

그 어떤 종족이라도 이 장소에 오면 경건함과 장엄함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이곳은 조각사이며 아르펜 왕국의 국왕인 위드가, 그의 주민들과 함

께 방대한 공사를 통해 꾸며 놓았습니다.

가장 오래된 신들의 원형을 복구해 놓았습니다.

종교적으로 중요한 곳이 될 것이며, 넓은 정원에 나무가 자라고 꽃이

활짝 피게 되면 정령들도 좋아할 것입니다.

각 교단들에 의하여 이곳은 베르사 대륙의 성지로 등록됩니다.

순례자들이 신들의 정원을 방문하기 위하여 올 것입니다.

아르펜 왕국의 국가 명성이 매우 높아집니다.

신을 믿는 이들에게는 신성한 경험을 통한 축복이 부여됩ㅂ니다.

높은 문화를 가진 국가의 확장력이 최대가 되었습니다.

주민들의 충성도는 국왕을 향한 존경 그 자체입니다. 』

국가 명성은 외교와 특산품의 거래에 있어서 매우 유용하다.

널리 알려진 왕국에서 가져온 교역품일수록 가격을 잘 쳐준다. 

기왕이면 특정 왕국의 물건으로 구해 오라는 조달 퀘스트도 발생하게 될 테니 상인들이 기뻐할 만한 일이었다.

위드의 개인적인 메시지 창도 떴다.

다른 교단과의 친밀도나 공적치가 무척 많이 올랐으며, 신들의 축복까지 받았다.

신이 축복하는 독재자, 착취자!

신상을 세우는 과정에서 총 대작 2개, 명작 3개, 걸작 7개를 탄생시켰다.

역사적인 조각품, 종교적인 조각품, 거대한 조각품도 다수 완성되었다.

다른 사람들을 지도하면서 조각품을 만든 덕분에 스탯도 통솔력이, 그리고 지구력과 인내력이 많이 오른 편이었다.

조각술 숙련도도 고급 9레벨에 38.2%가 되었다. 대륙 전체 종교계에 큰 방향을 일으킬 만한 작품을 만들어 낸 덕분에 스킬 숙련도가 꾸준히 늘어난 것이다.

위드에게는 다른 무엇보다 조각술 숙련도를 늘린 것이 가장 큰 수확이었다.

장기적으로 본다면, 아르펜 왕국의 건국 이후에 얼마 되지 않은 초창기에 신들의 정원이 생성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대단한 이득이 발생할 것이다.

"캬하하하하! 드디어 끝났다!"

"이제 놀아 보자!"

신들의 정원 공사에 참여했던 유저들은 환호하며 모자를 높이 던졌다. 악사들은 가지고 있는 악기들을 힘차게 연주했다.

"여행, 바람, 돼지고기 식당으로 오세요. 싸게 많이 드리겠습니다. 상추 무료!"

"톡 쏘는 흑맥주! 방금 전까지 날아다니던 새 요리도 같이 나오는 곳이 있어요. 드시고 싶은 손님들은 저를 따라오세요!"

"풀죽신교! 대추죽 부대 찾습니다. 오늘 풀술 카페에서 정규 회식 있습니다!"

모라타에서 오늘만 기다렸던 사람들에게는 축제나 다름이 없었다.

거리에는 완성을 기념하는 꽃잎들이 날리고, 상점들은 문을 활짝 열었다.

판잣집과 주택에는 팻말도 달렸다.

-신들의 정원 돌 14회 운반.

-신들의 정원에서 삽질 4시간 하였음.

-상인의 집. 대리석 두 판 기부.

집집마다 자랑거리가 되기도 하였다.

대륙의 다른 장소에서 관광객과 이주민도 계속 찾아오고 있었기에 그 분위기가 상당 기간 지속될 수 있었다.

위드가 국왕이기는 했지만, 조각사로서 이토록 거대한 토목공사를 군중과 같이하며 작품을 만든 것은 굉장한 일이었다.

다른 조각사라면 길드의 지원이 있더라도 대중의 인기가 따라오지 않는 한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일!

환하게 웃으면서 순수한 기쁨을 표현하고 있는, 수많은 주민들의 노동력을 쥐어째 내서 완성시킨 신들의 정원.

조각사들의 위상이 달라질 만한 작품이었다.

위드는 주민들에게 잘 보일 기회가 이때라고 여기고 사자후를 터트렸다.

"이 신들의 정원은 앞으로 영원히 무료로 개방할 것이다!"

"아르펜 국왕 만세!"

"대륙 최고의 조각사 위드 만세!"

유저들에게 더 큰 기쁨을 선사하는 위드!

"정말 위드 님을 좋아할 수밖에 없어."

"응. 나 위드 님 완전 좋아해 위드 님이 나오는 모험은 다보고, 모라타에 온 이유도 그것 때문이라니까."

솔직히 위드로서는 무조건 무료로 들어오게 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영향력이 높은 성직 계열의 유저들이 많이 찾아오는 데다가, 일반 직업들도 반드시 들러야 하는 필수 장소가 되었다.

입장료를 받을 수만 있다면 소득이 정말로 막대할 테지만, 군중이 참여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작업이었다.

위드 혼자만 해낸 것이 아니라서 입장료를 받겠다면 저항이 만만치가 않으리라.

게다가 결정적으로, 안타깝게도 종교 건물로 분류되어서 도저히 입장료를 거두지 못하는 서글픈 속사정이 있었다.

신들의 정원 자체가 완공된 것과 간접적으로 따라올 긍정적인 효과들만 하더라도 작은 것은 아니다. 위드도 그 정도에서 만족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런 좋은 시설들이 있어야 나중을 위해서도 좋겠지. 세금을 거둘 때에도 뭔가 받은 느낌이 날 테니까."

중앙 대륙의 다른 영주들이라고 하여 위대한 건축물 건립이나 조각사, 건축가를 고용하여 대작업을 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기술력이나 발전도 등의 조건이 되지 않거나, 장기적인 관점에서 투자를 하고 당장의 목돈이 나가는 것을 감당하지 못할 뿐이다.

멀리 보면 성공하는 길이 있더라도, 구체적으로 얼마만큼의 이득이 있는지 손에 쥐여 주지 않는 이상은 쉬운 결단이 아니었다.

위대한 건축물을 지을 수 있을 정도의 성과 도시는 중앙 대륙에 많이 몰려 있었다.

전쟁으로 인하여 다소 피폐해지기는 했지만, 중앙 대륙의 성과 도시 들은 높은 경제력과 기술력을 갖추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영주들은 유저들을 늘리기 위한 고민을 한 적이 없었다.

어떻게든 영주가 되기만 하면 소속 유저들을 쥐어짜 낼 궁리만 하였다.

가만히 있어도 새로 시작하는 유저들이 다수 늘어나고 있었고, 세율을 높게 올리면 그만큼 세금이 더 걷혔기 때문이다.

멀리 보기보다는 당장의 이익에 충실 하는 데 익숙해지고 말았다.

주변의 다른 영주들도 모두 마찬가지였으니 변화가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대륙의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일반 유저들 사이에서 위드의 인기가 높은 것도 당연했다.

마법의 대륙에서 위드를 조금이라도 겪어 본 사람들은, 모라타를 개발하여 선정을 베푸는 국왕이라는 걸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였을 정도다.

"케이베른 님을 위하여 가야 한다."

대단히 좋은 갑옷을 입은 용아병들이 위드에게 다가왔다.

위드도 조각품을 만드느라 소중한 하루를 써 버렸기에 서두를 필요가 있었다.

케이베른의 퀘스트에 늦는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으니까.

"아르펜 국왕으로 해야 될 일도 많지만 이제는 가야지. 와삼아!"

조각 생명체인 와이번들이 날아와서 신들의 정원에 착륙했다.

불의 대제 벨소스의 던전으로 가는 길은 와이번을 타고 이동하기로 했다.

근처의 지형에 대해 완벽히 알고 있는 것도 아니고, 유린의 그림 이동술로는 각종 저항력이 높은 용아병들을 옮기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위드가 신들의 정원에서 용아병들과 같이 와이번ㄴ에 타자, 구경꾼들은 크게 놀랐다.

"위드 님의 왕실 기사들인가?"

"갑옷 좀 봐. 보통이 아니야."

"정말 강해 보이네. 저런 정도면 레벨이 400대 중반이거나 후반 수준 아니야?"

"아르펜 왕국의 군대가 약한 줄 알았는데... 과연 저런 기사들을 숨겨 놓고 있었구나!"

"생긴 지도 얼마 안 된 아르펜 왕국 왕실 기사들의 수준이 왜 저렇게 높지?"

위드를 따르는 용아병들은 군중을 통해, 그리고 화면을 생방송으로 중계하는 방송국들로 알려지고 있었다.

"저건 용아병입니다!"

"용아병이라면, 드래곤이 자신의 신체 일부로 만들 수 있는 대단히 강력한 몬스터 아닌가요?"

"그렇습니다. 아직까지 용아병이 전투에 나선 걸 본 적은 없습니다만, 착용하고 있는 장비들로 감안하여 볼 때에는 최상급의 몬스터라고 분류를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정확한 레벨은 일단 500대 초반으로 예상됩니다."

"용아병은 마법 저항력이 굉장한 수준이고, 생명력도 무한ㄴ에 가까운, 실제로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여간해서는 거의 줄어들지 않는다는 자료가 여기 있네요."

"아아, 놀랍습니다! 언제 위드가 드래곤의 퀘스트도 해서 용아병을 호위 기사로 받았던 것일까요?"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위드라면 어느새 해치웠더라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방송국의 스튜디오에서는 진행자들이 경악했다.

신들의 정원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보고 있던 중앙 대륙의 고레벨 유저들도 덩달아 기겁했다.

"아르펜 왕국이 이제 막 건국되어 약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잖아?"

"북부에는 별거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무시했다가는 큰일 나겠어."

신들의 정원의 완공에 대한 방송이 갑작스럽게 등장한 용아병으로 활기를 띠었다.

왕실 기사는 왕국의 힘을 상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영주나 국왕은 복잡한 퀘스트를 거칠 필요도 없이 주어진 권한으로 기사들을 임명할 수 있었다.

자유 기사나 유저도 기사에 임명되면 월급과 말, 갑옷, 검술, 연무장 등의 혜택을 받지만, 대신 충성을 바쳐야 한다.

기사들은 병사들의 지휘권을 가지고 던전 사냥이나 몬스터 소탕에 나갈 수도 있기에 잘 임명해야 하였다.

국왕이 되면 인사에도 신경을 많이 써야 했던 것이다.

훌륭한 기사들을 거느리고 있으면 그들로 인하여 왕과 영주의 명성도 높아지고 명예 스탯까지 올랐다.

외부에 드러낼 수 있는 자랑거리도 되었다.

모두가 용아병에 대해서 놀라고 큰 화제가 되었지만, 위드와 그 일행만이 알고 있는 그들의 숨겨진 진실한 정체는 바로 케이베른의 감시병!

위드가 날짜 안에 퀘스트를 성공시키지 못하거나 딴짓을 한다면 당장 적대적으로 나올 이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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