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달빛조각사 29권 : 9) 조각 생명체들의 활약 (179/520)

9) 조각 생명체들의 활약

위드는 악룡 케이베른의 레어로 걸어서 이동했다.

토르 왕국까지는 와삼이를 타고 왔지만 죽어도 혼자 죽기위하여 케이베른을 만나는 자리까지 걸어가는 것이다.

"아이고, 내 팔자야......"

얼마 전에 보물을 바치기 위한 운송단의 드워프들이 다녀오는 것을 선술집에서 맥주에 땅콩을 먹으며 기다렸는데 이번에는 직접 가야 되다니.

"진짜 신비할 정도로 고생을 찾아서 하는구나."

위드는 한숨을 푹푹 쉬었다.

인생이란 왜 이다지도 고난의 연속인지 모를 일이었다.

"이럴 때 눈먼 돈이나 좀 떨어지면 기운이 날 텐데."

위드는 구시렁대면서 레어를 향하여 올라갔다.

아르펜 왕국의 영토가 넓어지고 소속된 마을이 많아졌다는 좋은 소식을 듣기는 했다.

사실 인구도 적고 교역품의 생산량도 약소한 마을이라서 당장은 국왕으로서 기뻐할 만한 대사건까지는 아니었다.

하지만 벌써 통합된 마을은 유저들로 붐비고 있다고 한다.

아르펜 왕국에 속한 것만으로도 향후 발전 가능성을 보고 상인들이 투자를 하고 있었으며, 좋은 장소에 집도 지어지고 있었다.

위드를 따라서 다른 영주들도 판차촌을 형성해 놓았었는데 지금까지 치안만 악화시키고 들어가서 사는 사람이 없었다.

며칠 전부터 그 판자촌의 집들에도 유저들이 들어가는 변화가 생겼다.

농부들도 가서 땅을 개간하고, 광부들은 광산을 찾아서 헤매고 다닌다.

각 마을로 유지되고 있던 시기에는 그곳의 퀘스트나 사냥이 그리 매력적이지 않았다.

마을을 떠나 버리면 쌓아 올린 친밀도나 공적치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르펜 왕국의 영토가 되고 난 이후부터는 전사들이 떼거지로 방문하여 몬스터 사냥을 하고 던전을 발굴했다.

이제부터는 아르펜 왕국의 공적치를 얻을 수 있으니까.

다른 마을들이 성장하는 저력에는 모라타가 있었기 때문에 당장의 이득은 없더라도 향후 잠재력을 기대해 볼 수 있었다.

신들의 정원을 짓고 나서 바닥까지 드러냈던 왕국의 재정이 다시 차오르면서, 새로 받아들인 마을의 시설에 투자도 이루어졌다.

광장과 시장이 개설되고 필요한 건물들이 지어졌다.

아르펜 왕국의 수도인 모라타와 도로 공사가 시작되었는데, 개통되고 나면 마을 간의 교역이 확대되는 것은 물론이고 문화의 확장과 치안 안정에 도움이 될 것이다.

자연스럽게 유저들도 더 많이 찾아가게 되어 개발이 이루어지리라.

모라타는 급속도로 성장하였음에도 지금까지 긴 시간이 걸렸지만, 새로 왕국에 속하게 된 마을들은 초기에 걸리는 시간이 많이 단축될 것이다.

크르르.......

캬웅!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드래곤의 레어로 가는 길은 몬스터들 천지였다.

그들이 신경전이라도 펼치듯이 사납게 으르렁거렸다.

위드라고 해도 위협을 느낄 만큼 레벨이 높은 몬스터들이 근처까지 와서 누런 침을 뚝뚝 흘렸다.

용아병들과 같이 악룡 케이베른의 영역으로 들어와서 레어로 향하고 있기 때문에 몬스터들로부터 공격을 받지는 않았다.

그다지 반갑지는 않지만 악룡의 부름을 받은 상태!

'드래곤 같은 거 진짜 신의 저주나 다름이 없지. 냄비에 넣어서 약간 삶은 다음에 소금을 뿌려서 먹어 버려야 하는데.'

이런 생각을 하는 것과 동시에 마침내 레어의 입구에 도착했다.

-드래곤 케이베른의 부하인 용아병의 지휘 권한을 상실합니다.

용아병들은 흩어져서 입구를 지키는 역할로 돌아갔다.

위드는 혼자서 큼지막한 레어로 들어갔다.

레어에는 진귀한 마법 서적들과, 명장이 만들어 낸 장비와 보물들이 쓰레기 더미처럼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었다.

토르 왕국의 드워프들이 매년 심혈을 기울여서 바친 공물들이 쌓이고 쌓인 것이다.

그리고 똬리를 틀고 누워 있는 블랙 드래곤!

-케이베른과 마주 보게 됨에 따라 공포 상태에 빠져듭니다.

모든 신체적인 능력이 저하됩니다.

위드는 곧바로 무릎을 꿇었다.

"편안히 쉬고 계셨는지요. 미천한 조각사 위드, 케이베른 님께서 원하셨던 조각품을 가지고 왔사옵니다."

구차하게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장황하게 늘어놓지는 않았다.

친밀해져서는 안 되는 존재!

친밀도를 높여 봐야 그다지 의미가 없으니 물건만 빨리 주고 떠나고 싶을 뿐이었다.

악룡 케이베른의 시커먼 머리가 가까이 다가왔다. 드래곤이 내뿜는 독한 입 냄새가 밀려들었다.

-조각품은?

"여기 있습니다."

위드는 배낭에서 '눈부신 케이베른 조각상' 을 꺼냈다.

아가테의 수정!

은하수처럼 수없이 많은 별들이 반짝이는 결정체를 세밀하게 가공하여 만든 조각품이었다.

크고 작은 보석 같은 수정들을 정교하게 깎고 은실로 수천 개를 방울방울 엮어서 드래곤의 형상을 표현했다.

위드는 벨소스 왕과 같이 조각품을 만들던 기억이 잠시 떠올랐다.

벨소스 왕은 이 작품에 대한 설명을 듣자마자 흥분했다.

-정말 창조적인 조각품이 되겠군.

"왕께서 보시기에도 괜찮습니까?"

-훌륭해. 하나로는 표현이 어려운 작은 수정들을 연결하여 조각품을 이루겠다니.

『 보석 조각품! 눈부신 케이베른 조각상

위대한 경지에 마지막 한 걸음을 남겨 놓고 있는 조각사, 그리고 전

설이 된 조각사가 함께 만든 조각품이다.

별빛을 담은 아가테의 수정으로, 이보다 더 영롱하며 신비로운 보물

은 존재하지 않으리라.

예술적 가치 : 12,843.

특수 옵션 : 지나친 아름다움으로 인한 불운, 도적 떼를 만나게 될 확률이 4배로 증가.

기품 +89.

매력 +145.

값을 따질 수 없음.

다른 조각품과 중복 적용되지 않음.

지금까지 완성한 보석 조각품의 숫자  : 1 』 

아가테의 수정이 가장 아름답게 빛날 수 있도록 표면을 세공했다.

위드와 벨소스 왕은 작은 수정을 깎아 내고 구슬 꿰기를 하여, 케이베른에게 바칠 조각품을 멋지게 완성해 낸 것이다.

"아......"

위드의 손에서 아가테의 수정으로 만든 조각품이 은은하게 빛을 냈다.

드래곤의 머리에서부터 꼬리까지, 수정들 하나하나가 모여 완전한 조각품을 이루고 있었다.

약간의 햇빛이 조각품을 머리에서부터 훑고 지나가면 아가테의 수정들이 그 빛을 받아서 차례대로 빛났다.

정말 이보다 더 아름답거나 화려할 수는 없는 작품이다.

-놔두고 가라.

케이베른은 입을 크게 벌리더니 하품을 하고 눈을 감았다.

그래도 약간의 기대는 했는데 정말 아무 보상도 없이 뻔뻔하게 입을 다문 것이다.

띠링!

『 드래곤이 원하는 보물 완료

악룡 케이베른이 원하는 물건을 정해진 날짜 안에 구해 왔다.

조각품에 대한 흥미를 거둔 드래곤은 당분간 더 좋은 재료나 보물에

대한 이야기를 듣지 않는 한 당신을 괴롭히지 않을 것이다.

달리 얻는 것이 없더라도 케이베른과 만나서 살아남은 것만으로도 큰

행운이자 영광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

퀘스트의 성공!

'이, 이런 썩을 드래곤.....'

위드는 웬만해서는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고 했다. 그렇지만 지금은 설움과 안타까움에 북받쳐서 눈가가 촉촉하게 젖고 있었다.

슬픈 영화를 봐도 나오지 않던 눈물이 마구 흘러내리려고 했다.

"제 정성을 바, 받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케이베른 님."

위드는 인사를 하고 레어를 나왔다.

★★★★★★★★★★★★★★★★★★★★★

"아, 휴가 가고 싶다."

오늘은 오전 일찍 방송국에 출근하는 날이었다.

신혜민은 그녀가 진행하는 '베르사 대륙 이야기' 프로그램에서 유명인 7명을 데리고 1, 2부의 방송을 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대본도 미리 확인하고, 밀려 있던 서류 정리도 해야 되어서 할 일이 쌓여 있었다.

"이럴 땐 다 때려치우고 정말 모험이나 하고 싶다니까."

신혜민은 만약 사표를 썼을 때의 퇴직금이 얼마나 될지를 계산해 보고 나서 고개를 저었다.

1~2년 정도 외국 여행도 다녀오고 재충전을 위한 휴직을 하는 건 직장인의 꿈이지만, 현실에서 실행하기에는 항상 무리였다.

"오주완 씨, 오늘은 소개해 드릴 소식이 정말 많은데요, 밤에는 잘 주무셨어요? 눈 밑이 어두운 것이, 밤을 꼬박 새우신 것 같은데요."

"이런, 어제 베아스토 마을에 몬스터가 쳐들어왔는데 어느 여행자에 의해 격퇴되었다는 소문을 혜민 씨만 못 들으신 것 같네요."

"어머, 그런 일이 있었나요? 아마 시청자분들도 궁금해하지 않으실 거라고 여기고 넘어갈게요. 오늘도 중요한 소식을 전해 드려야죠."

신혜민과 오주완은 대본을 참고하며 방송을 진행해 나갔다.

"벌써 알고 계신 분들도 많을 텐데요. 흑기사 바드레이가 열다섯 번째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정말 대단했죠. 바드레이가 키운 기사단과 보병대가 불리하던 전황을 멋지게 뒤집어 버리는 모습은요."

"오늘은 전달해 드려야 되는 사건들이 많아서 잠시 후에 중요한 부분의 영상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전사 파이톤도 대활약을 하고 있다면서요?"

"황야의 늑대라는 별명이 딱 어울릴 정도인데요, 어디에 이런 전사가 숨어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거침없이 대검을 휘두르는 모습으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직업 마스터 퀘스트에 도전하는 유저들의 소식이 프로그램의 첫 부분이었다.

아직 마스터 퀘스트를 완수한 사람이 없기에, 누가 먼저 그 영광과 보상을 가져가게 될지가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었다.

그 외에 모험을 성공하거나 던전의 보물 발굴, 난이도가 높지 않더라도 보상이 후한 편이라서 많은 유저들이 도전할 만한 퀘스트도 소개를 해 주어야 한다.

뉴스 프로그램들은 각 방송국을 대표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가능한 알찬 내용들을 담고 있어야 했다.

최근 베르사 대륙이 혼란스러울수록 중요한 정보들을 유저들에게 전달하며 시청률을 올리는 것이다.

1부는 바드레이를 화제의 중심으로 진행하고 나서, 2부는 다른 사람의 모험에 대해서도 알렸다.

★★★★★★★★★★★★★★★★★★★★★

토르 왕국의 드워프 주민들이 맥주를 마시며 시끌벅적하게 떠들었다.

"방송에서 그러는데 위드가 악룡 케이베른을 만나고도 무사했다는데?"

"정말?"

"응. 레어 부근에 있는 주민들이, 대단한 예술가가 케이베른을 만나고 나서 무사히 돌아갔다고 떠들고 있대."

"음, 그의 조각술 실력이 대단히 뛰어난 모양이야."

"커헉, 케이베른을 만났다고?"

드워프 유저들은 깜짝 놀랐다.

최근에 중앙 대륙의 유저들 사이에 위드에 대한 관심도는 다시 크게 늘어나 있었다.

바드레이에게 패배했을 때는 아무래도 결정타였다.

하지만 아르펜 왕국의 국왕 자리에 오르고 신들의 정원을 조성하여 엄청난 여파를 몰고 오기도 했다.

국왕으로서 영토를 넓히고 퀘스트도 치러 내면서 믿음을 되찾았다.

그렇지만 그게 전부라고 할 수 없었다.

마법의 대륙에서부터 위드를 지켜봤던 유저들은, 그리고 로열 로드에서의 팬들은 무언가를 더 제대로 터트릴 것만 같은 분위기를 느끼고 있었다.

위드가 처음부터 압도적으로 강하거나 대단한 전력을 발휘했던 건 아니다.

잠잠하다가 크게 한 번씩 터트려 주며 흥분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기대감을 주곤 했던 것이다.

"캬아! 위드가 드래곤을 만나고도 살아남다니....."

"전에 나왔던 용아병이 케이베른의 것이었던 모양이더라고."

"아, 정말 궁금하다. 그거 방송 일정 잡혔어?"

"아니, 아직 몰라."

"정말 다른 건 다 제쳐 두고, 진짜 용감하네."

위드도 드워프들이 떠들고 있는 아이언해머의 선술집에 앉아 있었다.

중급 이상의 대장장이에게 지급되는 공짜 맥주를 마실 수 있기에, 와삼이를 타고 가야 하는 장거리 비행에 앞서 잠시 들른 것이다.

'케이베른의 퀘스트를 성공한 것이 알려진 모양이로군.'

위드는 시원한 맥주로 목을 축였다.

로열 로드의 여행자들은 대단히 많았지만, 랭커나 유명한 모험가들에게는 관심이 많아서 그들이 한 일은 금방 알려졌다.

드워프들은 대단한 사건이라면서 엄지손가락을 추켜올렸짐나, 사실은 얻은 것도 없이 끝난 퀘스트!

'아무튼 이제 홀가분해질 수 있겠군.'

현재 위드의 조각술 숙련도는 고급 9레벨 49.2%

대략 50% 정도의 숙련도만 더 올리면 스킬을 완벽하게 마스터하게 된다.

'크으으, 조각술을 올리기 위한 투자가 너무 컸어.'

아르펜 왕국의 국력까지 기울였다.

직업의 완전한 마스터의 단계에 오르기 위해서 막대한 노력을 필요로 한 것.

다행히 성공하고 나름 신들의 정원이라는 결과물을 얻었기에 한숨 돌릴 수 있는 처지였다.

'퀘스트의 나머지를 진행하면서 얻는 조각술 숙련도도 있을 테고, 모자라면 더 만들면 되겠지.'

위드에게는 조각술의 다섯 가지 비기까지 있으니 사실상 퀘스트와 모험에 본격적으로 사용한다면 그때부터가 진짜라고 할 수 있다.

드래곤의 검 레드 스타도, 위험 요소는 컸지만 다룰 수 있음으로 인해서 발휘할 수 있는 전투력 자체도 종전과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일대일의 전투보다는 큰 세력전에 더 유리하게 발휘될 수 있는 능력!

"망할 놈 뻔뻔한 놈 껍질을 몽땅 벗겨서 구워 먹어야 되는데."

위드는 토르 왕국을 떠나기 전에 케이베른에 대한 욕을 실컷 했다.

★★★★★★★★★★★★★★★★★★★★★

"아시겠지만 케이베른의 퀘스트는 무사히 끝났습니다."

퀘스트를 마치고 나서 위드는 페일을 포함한 다른 동료들과 다시 만났다.

일행은 혹시라도 무언가 보상으로 받은 것이 없을지 그래도 기대하고 있었지만, 위드의 표정을 보고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았다.

숨김없이 아쉽고, 억울하며, 케이베른에 대한 얄미움이 가득 찬 표정!

'웃을 때도 무언가 이상했는데......'

'볼이 부푸니까 진짜 인상 안 좋다.'

그럼에도 벨소스 왕의 유적에서 다들 하나씩을 챙기기도 해서 홀가분한 얼굴이었다.

위드만 아가테의 수정까지 몽땅 강탈당했으니 피해가 컸다.

화령이 다정하게 물었다.

"그럼 위드 님은 이제 뭘 하실 거예요?"

"저는 다시 직업 마스터 퀘스트를 진행해야죠. 하르셀로 갈 겁니다."

빙룡, 와이번, 금인이, 누렁이, 불사조, 황금새, 은새 외에도 지골라스에서 얻은 조각 생명체들을 총동원하고, 대재앙의 자연 조각술까지 쓸 생각이었다.

위드는 전투에 대해 모르는 순수한 조각사가 아니다.

갑옷도 새로 제작했고, 광휘의 검술을 비롯한 검술의 비기의 스킬 숙련도도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을 정도로 높여 놓았다.

게다가 조각품에 생명 부여도 상당히 일찍 터득한 직업의 비기였다.

조각 생명체들이 이제 나이도 먹으며 강해지기도 해서, 나머지 퀘스트는 오히려 지금보다 쉬울 수도 있따.

라체부르그를 찾아내는 탐험에, 오크와 엘프 등과 엮이지만 않는다면.

화령이 대뜸 말했다.

"저도 같이 갈게요."

위드가 무어라 하기도 전에 페일이 웃으면서 말했다.

"저희끼리 벌써 이야기를 다 끝내 놨습니다. 위드 님의 퀘스트에 계속 끼어서 도울 수 있는 부분이 있으면 돕겠다고요."

위드가 헤르메스 길드에 의해 박해를 받고 또 고생을 하는 부분을, 동료로서 지켜볼 수만은 없었다.

조각술 마스터를 도와서 같이해 주기로 한 것이다.

동료들의 끈끈한 정!

위드는 평소에 동료들에게 잘 익힌 고기 한 점 덜 구워 줬던 게 미안했다.

"여러분, 이렇게 절 감동을......"

수르카가 귀엽게 웃었다.

"그러실 필요 없어요. 어차피 나중에 우리도 직업 마스터 퀘스트를 하게 될 테고, 그때 위드 님도 도와주시면 되니까요!"

"마스터 퀘스트요?"

위드는 갑자기 사양하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여태까지 조각술 마스터 퀘스트를 진행하는 것도 복잡하고 어려웠는데 동료들의 직업 퀘스트까지 다 해야 하다니!

권사에 궁수, 레인저, 댄서, 바드, 마법사, 성직자, 낚시꾼까지 있다.

"아무래도 번거로울 것 같으니 저 혼자 하르셀로 가는 편이......."

"먼 거리니까 바로 출발해야 되겠죠? 와삼아, 이리 온!"

화령이 부르니까 냉큼 바닥에 배를 깔고 눕는 와삼이!

항상 양념된 말고기를 간식거리로 주거나 해서 위드 못지않게 이들 일행이라면 아무나 잘 따르는 편이었다.

"와일아!"

"와둘아!"

이어서 내려앉은 와이번들에 동료들이 계속 올라탔다.

공중에는 빙룡과 불사조도 대기하고 있었으며, 빛의 날개를 펼친 누렁이의 등에는 금인이까지 타고 있었다.

지골라스에서 생명을 부여했던 생명체들은 조금 더 일찍 출발하여 하르셀에서 합류하기로 했다.

★★★★★★★★★★★★★★★★★★★★★

슬레이언 부족!

험준한 높은 산들이 겹겹이 자리 잡고 있는 하르셀 산악 지역을 장악하고 있는 전사 부족.

이들을 해치우고 나면 조각 생명체 종족을 구출할 수 있다.

위드는 마음이 급했다.

"불쌍한 녀석들, 고생을 많이 하고 있을 텐데,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라도 어서 구해 줘야지."

아르펜 왕국에 먼저 데려온 에르리얀들로 인하여 수확량등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크게 늘어났다.

5미터짜리 딸기에, 8미터짜리 수박!

꿀을 바른 것처럼 당도가 높고 크기도 커서 화젯거리였다.

지역 명성을 늘리는 데에도 도움이 되어, 장기적으로 특산품으로 등록되는 것을 기대할 수 있었다.

여러 마을을 받아들이면서 확보한 토지에 농사를 짓는다면 그 수익률이 상당히 높을 것이다.

"아르닌이라고 했지? 기다리고 있어라. 제대로 부려 먹어 줘야겠어."

슬레이언 부족에 의하여 갇혀 있는 아르닌 종족의 더 큰위기!

위드는 하르셀 산악 지역에 도착하여 간단한 계획을 짰다.

"외곽에서부터 천천히 치고 올라가는 방식을 취해야겠습니다."

산악 지역 전체가 놈들의 소굴이라면 이를 피하지 않고 당당히 맞서기로 한 것이다.

제피가 얼굴을 찡그리며 우려를 담아 말했다.

"너무 단순한 계획이 아닐까요?"

"계획은 단순할수록 좋은 거니까 괜찮아."

"......."

슬레이언 부족이 대단한 전사들로 알려져 있기는 했다.

그러나 사실 빙룡이나 불사조의 공격력, 거기에 다른 조각 생명체들의 능력까지 감안한다면 산에서 싸운다는 불리함 정도는 그리 문제 될 게 없다.

오히려 놈들의 본거지로 잠입하는 게 불가능했다.

9개의 커다란 머리로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는 킹 히드라, 멀리서도 명확히 보이는 불사조, 불의 거인 등!

전투력은 강해도 은밀하게 움직이는 쪽과는 도무지 거리가 멀었다.

"조각 생명체들을 데리고 싸우는 퀘스트라면, 제대로 한바탕해 줘야지. 몽땅 구해서 부려 먹어 주겠어."

위드는 지금까지 키워 온 조각 생명체들을 믿었다.

사실상 조각 생명체들의 전력은 1마리 1마리가 보스급 몬스터의 수준이었다.

그들을 조합하여 전투를 펼친다면 놀라운 전력을 발휘할 수 있으리라.

"콜 데스 나이트 반 호크, 콜 뱀파이어 로드 토리도!"

"주인, 전투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를 불렀는가."

용맹하기 짝이 없는 두 부하도 나왔다.

위드는 그들을 다스리는 주인답게 폼을 잡으며 말했다.

"너희, 내가 반지랑 검 만들어 준 거 잊지 않았지?"

"......."

토리도의 눈가가 찌푸려졌고, 해골인 반 호크의 턱이 달그락거렸다.

최소한 구백아흔아홉 번은 다시 들었던 소리!

"착용해 보니까 어때, 좋아?"

"........"

"대답 안 하면 도로 가져간다."

"조, 좋다."

"훌륭하다."

"반지랑 검 만들어 줬으니까 밥값 확실히 해야 된다. 알았지?"

"알았다."

★★★★★★★★★★★★★★★★★★★★★

뿌우우우우우우!

위드는 힘차게 트레세크의 승리를 알리는 뿔피리를 불었다.

조각 생명체들의 사기를 끌어 올리고, 전투 중에는 치료의 손길까지 발휘할 수 있는 아이템!

"가라."

그동안 조각 생명체들은 모라타를 지키고 바르고 성채 지역에서 몬스터 무리를 휩쓸면서, 전면에 잘 나서지 않았다.

와이번들만이 곧잘 이동 수단으로 쓰였을 뿐, 다른 조각 생명체들은 성장을 하도록 넉넉히 시간을 주었다.

"배에 살이 정말 포동포동 올라 있더군."

위드의 표현대로라면, 이제는 충분히 부려 먹을 수 있는 상태.

"콰아아아아아아!"

머리가 9개 달린 킹 히드라가 거대한 몸을 이끌고 하르셀 산악 지역을 올라갔다.

데스웜. 땅속에 사는 초거대 몬스터.

위드에게 지렁이라고 이름이 붙여진 데스웜의 몸은 200미터까지 커진다.

현재의 몸길이는 아직 95미터 정도지만, 땅속에서 튀어나와서 목표로 한 몬스터를 으스러뜨리거나 먹어 치우는 데에는 충분한 크기였다.

입에 넣고 삼키는 순간 몬스터는 장렬히 사망!

지렁이는 그럴 때마다 좋다고 몸을 꿈틀거리는 애교를 부리기도 했다.

불의 거인도 늠름하게 불의 검을 휘두르며 뛰쳐나갔다.

켈베로스, 기사 세빌도 있었다.

지골라스에서 탄생시킨 조각 생명체 47마리들은 전부 다른 종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들이 뿜어내는 엄청난 위압감!

빙룡, 와이번, 이무기, 불사조, 은새, 황금새는 지원을 위하여 공중에서 대기했다.

삐이이이익!

산에서 매우 날카로운 소리가 들리더니 수풀과 나무 사이에서 무언가가 분주하게 움직였다.

"놈들이 있습니다."

시력이 좋은 페일이 수풀 사이에서 슬레이언 부족을 발견했다.

"약 300여 명이 화살과 창을 들고 대기하고 있습니다."

위드에게는 아직 그 정도까지 정확하게 확인되지는 않았다.

"그놈들이 전부입니까?"

"뒤쪽의 감춰진 동굴에서 계속 더 나오고 있고요, 조각 생명체들이 더 앞으로 가면 다소 위험할 수 있겠는데요. 지금 멈추게 하는 편이 좋지 않을까요?"

위드는 고개를 저었다.

"괜찮습니다. 고작 이 정도의 적들에게 당하지는 않을 겁니다. 일단 이곳에서, 어떻게 싸우는지 지켜보도록 하죠."

사자는 새끼를 절벽에서 떨어뜨려서 강하게 키운다고 한다. 위드도 비슷한 심정이었다.

"밥값도 못할 정도로 약한 녀석이 있다면 일찍 추려 내는편이 낫습니다."

이제부터는 본격적으로 부려 먹어야 하니 조각 생명체들의 능력을 정확히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개개의 능력의 한계를 알아야 전술도 세울 수 있다.

슬레이언 부족은 집단으로 움직이며 용맹한 전사들을 보유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들의 영역으로 들어오는 웬만한 보스급 몬스터 따위는, 일제히 덮쳐서 순식간에 사냥해 버린다.

그렇기에 위드도 조각 생명체들의 안전에 대해서 다소 걱정스럽기는 했다.

"이제 나오겠군요!"

조각 생명체들이 산을 절반 가까이 올라갔다. 그러자 갑자기 바위와 수풀, 나무 뒤에서 슬레이언 부족이 튀어나와서 공격을 가했다.

킹 히드라의 9개의 머리가 제각각 불을 토해 내며 전사들을 덮쳤다.

여성 하이 엘프의 조각 생명체, 위드가 엘틴이라는 이름을 붙여 준 엘프는 화살을 마구 쏘아 댔다.

여자 바바리안 전사 게르니카!

그녀는 왼손에는 도끼를, 오른손에는 철퇴를 들었다. 매우 강력한 힘을 가지고 박력 있게 슬레이언 전사들을 때려눕히고 있었다.

여자 검사 반덱스.

그녀는 얇고 날카로운 검을 가지고 빠르게 움직이면서 전사들과 싸웠다.

아무래도 지골라스의 조각사들은 외로웠던 나머지 대체로 남자보다는 여성을 많이 조각했던 것이다.

아니면 대형 몬스터를 조각하여 강함에 대한 갈증을 풀거나!

얇고 긴 다리에, 우아한 공작새처럼 생긴 조각 생명체도 있었다.

수르카가 정말 귀여워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던 에폴리티!

전투와는 전혀 상관없이 사뿐사뿐 걸어 다니다가 슬레이언의 전사가 가까이 오면 갑자기 날개를 활짝 펼쳤다.

췌래래래래랫!

날개에 숨겨 놓은 독을 방출하며 뛰어다녔다.

영악하고 재빨라서 생김새로는 전투력을 구분할 수 없었지만, 독 안개를 방출하기 때문에 굉장히 위험한 몬스터였다.

독 안개에 닿으면 풀들은 금방 시들어서 죽어 버렸다.

위드와 일행이 멀리서 보고 있는 동안, 조각 생명체들은 대활약을 펼쳤다. 각자가 400대가 넘는 고레벨 생명체들인 만큼 기대했던 그대로의 모습들이었다.

커다란 불의 거인이 성큼성큼 걸어 다니면서 불의 검을 휘두르면 슬레이언의 전사들이 있던 곳이 불바다가 되었다.

압도적이라고 해야 마땅한 전투 능력!

"역시......"

위드는 흡족하게 웃었다.

"내가 생각했던 그대로야. 앞으로 잘 부려 먹을 수 있겠어!"

개개인이 보스급 몬스터인 조각 생명체들이었다. 그들이 뭉쳐 있다 보니 각자의 특성에 맞는 전투 능력을 유감없이 보여 주었다.

잘 조합한다면 웬만한 성이라도 부숴 버릴 수 있는 가공할 전력이었다.

공중 생명체들의 도움 없이 지골라스 출신의 조각 생명체들만으로도 산악 지역 초입을 멋지게 제압할 수 있었다.

"이제 탐색전은 끝났습니다. 충분하겠군요. 위로 올라가죠!"

위드는 일행과 같이 하르셀 산에 올랐다.

유병준은 모니터를 보면서 웃고 있었다.

"그래, 그렇게 방심을 해야지. 그 조각 생명체 군단이 강하기는 하다만... 슬레이언의 전사들도 만만치는 않을 것이야."

이번의 위드의 모험은 방송국에서도 중계를 준비하고 있었다.

지금은 생방송이 아니더라도, 중요한 전투부터는 생중계가 진행될 예정이었다.

아마 시청자들은 날뛰는 조각 생명체들에 대해 놀라움을 금치 못할 것이다.

조각 생명체들의 전력은 예상했던 대로였다.

그렇지만 하르셀 산악 지역의 중심부로 간다면 자칫 조각 생명체들 전체가 위험에 빠질 수도 있을 것이다.

유병준의 다른 화면에서는 슬레이언 부족의 장로들이 이야기하는 것이 보였다.

모닥불을 피워 놓고 장로들과 전사들이 회합을 벌였다.

어찌 보면 조금 큰 파충류처럼 생겼지만, 그들이 하르셀 산악 지역의 지배자들이다.

ㅡ우리의 산을 넘어오는 자들이 나타났다.

ㅡ강한가?

ㅡ우리가 이길 수 있는 수준이다.

ㅡ나가서 싸우자.

ㅡ아니, 놈들을 더 깊이 끌어들이자.

ㅡ그러면.....

ㅡ크흐흐흣, 우리가 늘 그랬듯이 한 놈도 살려 보내지 말자.

ㅡ좋은 방법이다.

슬레이언 부족은 영악하게 머리를 쓸 줄 알았다.

이곳은 그들의 영역 산악 지역의 깊은 땅으로 끌어들이고 나서 진짜 전력을 내보내서 싸우는 것이다.

은밀하게 감춰져 있는 동굴들로 전사들이 계속 투입된다면 날아서 도주할 수 있는 녀석들을 제외하고는 전멸!

결국 로자임 왕국에 남아서 최후를 맞은 스핑크스의 경우를 보면, 비행이 가능한 생명체들도 그냥 싸우다가 죽기를 선택할 수도 있다.

그동안 투덕거리면서 미운 정이 잔뜩 든 빙룡과 누렁이, 와이번들까지 다 죽고 나면 위드에게는 부려 먹을 녀석이 없어지는셈이 된다.

"그거야말로 정말 재미있을 것 같군."

유병준은 흥미진진하게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

찍찍.

슬레이언 부족의 장로들이 회합을 가지고 있는 장소에 큼직막한 들쥐 1마리가 울면서 돌아다녔다.

"놈들을 더 끌어들여서....."

시골 쥐는 빵 부스러기라도 찾는지 바닥을 헤매 다녔지만 먹을 것이 보이지가 않았다.

"하르셀 산악 지역이 어떤 곳인지를 침입자에게 똑똑히 보여 주어야......"

찌직!

시골 쥐는 전사들의 발치 아래에 떨어져 있는 고기 조각을 발견해 냈다.

그러고는 벽의 틈새와 쌓여 있는 물건, 어두운 그림자 뒤로 계속 돌아다녔다.

네발로 재빠르게 뛰어다니는데도 은밀하여 소리가 나지 않았다.

"놈들을 모조리 죽일 수 있는 장소를 찾아내야 한다."

드디어 고깃덩어리를 입에 넣는 데 성공!

시골 쥐는 땅을 파고 나타났던 구멍으로 조용히 다시 들어갔다.

그가 귀환해야 할 장소는 위드와 다른 조각 생명체들이 있는 바로 그곳이었다.

시골 쥐 역시 조각 생명체였던 것이다.

이름은 말 그대로 시골쥐!

별로 예쁜 구석은 없지만, 자세히 보면 툭 튀어나온 이빨이나 발톱이 그럭저럭 사랑스럽기도 했다.

지골라스의 탄광에서 일하던 조각사가 최후에 자신의 운명을 한탄하며 만들었던 조각품이다.

위드는 슬레이언 부족이 있는 장소에 시골쥐를 잠입시켜서 염탐을 하였던 것.

째재잭!

온몸이 시커멓게 칠해진 은새도 나뭇가지에 앉아서 엿들었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고 했다.

위드는 속담을 참고하여 그들을 활용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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