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슬레이언 부족의 함정
혼돈의 시기!
유니콘 사에서 내보내는 텔레비전 광고가 방송되기 시작했다.
"이게 갑자기 왜 나오는 거야?"
"우리 보라고 일부러 광고하는 것 같은데."
사람들은 최근 심각한 위기를 느끼고 있었다.
중앙 대륙 도처에서 전쟁이 벌어졌다. 과거에는 길드끼리 벌이는 세력 싸움이었다면, 이제는 몬스터와 엠비뉴 교단이 대거 가세했다.
-휘스론 마을이 몬스터에 의하여 초토화되었습니다. 그곳으로 가시려는 여행객 여러분은 주의해 주세요. 전사들도 레벨 320 이하는 가급적 방문하지 않기를 권합니다.
-세르지에 도시가 엠비뉴 교단에 공격받고 있어요. 구출하러 와 주실 수 있는 분 혹시 계신가요?
-프레디스의 상점에 도적 떼가 난입하여 싹 털어 갔습니다. 장비 장만하실 분은 인근의 롭스 성벽으로 가 보세요. 현재 행상인들이 와서 물건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게시판에도 도시가 망했다거나 성이 무너졌다는 이야기가 빈번하게 나올 지경.
평원이나 왕국의 도시들을 잇는 안전한 주요 도로에 전에는 못 보던 몬스터가 출현하기도 했다.
"진짜 요즘에는 너무 불안해."
"갈수록 살기 힘들어지네. 몬스터들 좀 물리치고 치안을 회복시켜 주면 안 되나?"
"다들 전쟁놀이하기 바쁜데 그럴 병력이 어디에 있겠어."
"에휴... 성문 밖에 나가기도 무섭네."
"이제 사냥하기도 힘들어졌어."
평원이나 산, 숲에서는 다른 몬스터들의 난입으로 바짝 경계를 해야 되었다.
왕국 전체가 내부적으로 혼란스럽거나, 엠비뉴 교단이 침공을 하면 전체적으로 흔들렸다.
몬스터들의 서식지가 시시각각으로 바뀌는 경우도 있어서 유저들은 긴장을 풀 수가 없었다.
용병 의뢰들이 많이 들어오고, 대신에 임무를 완수했을 때의 보상은 줄어들었다.
"저희가 드릴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어요, 죄송해요."
"어떻게 하죠? 약속했던 물품을 드려야 되는데 도적들에게 털려 버려서......"
주민들이 가난해지면서 의뢰의 내용도 단순해진 데다가 보상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아, 정말 해 먹기 힘드네."
"너무 어려워졌어."
"의뢰를 위주로 하다가는 정말 검 수리비도 안 나올 지경이야."
과거에는 도시가 몬스터에 휩쓸리는 일이 거의 없었지만, 이제는 유저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극복해야만 되었다.
상황 자체가 많이 바뀌게 되었다고 봐야 한다.
상인들도 도적 떼의 출몰과 내전, 엠비뉴 교단으로 인하여 상권에 끔찍한 타격을 입었다.
"어이, 돈 좀 벌었어?"
"말도 마. 말먹이값도 대기 어려워 마차 수리비도 내야 되는데."
전쟁을 벌이는 왕국군과 길드에 물자를 납품하면 큰 교역의 이득을 거둘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경우는 이미 각 세력의 전속 상인들이 있었기에, 그들의 독점 체제만 가속화되는 것을 손가락 빨며 구경만 해야 되는 입장!
일반 유저들과 주민들을 상대로 하는 장사는 혼란으로 인해서 갈수록 악화되다 보니 상인들의 불만은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못 해 먹겠다, 진짜!"
"우리가 지금까지 낸 세금이 얼마인데 이런 식이야!"
상인들은 과도한 세금에 시달리면서도 성실하게 납부하면서 어렵게 장사를 해 왔다.
가끔 화가 나더라도, 상인으로서 무력이 약하다 보니 참고 넘어가야 하는 때가 많이 있는 편.
그런데 악재들이 연이어 터지다 보니 일반 상인들이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들고일어났다.
"언제까지 참아야 되는 겁니까! 참으면 좀 나아질 희망이라도 보여야 할 맛이 나지, 이건 죽으라는 말밖에 안 돼요!"
"저는 상점 5개 문 닫았습니다. 밖이 위험하다 보니 사냥 하는 사람도 줄었어요. 다들 생활에 쪼들리다 보니 팔리는 물건의 질도 떨어지고 있고요."
"전 더러워서 때려치울 겁니다!"
중소 상인들의 회합에서는 영주와 길드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다.
대륙의 혼란에 가장 큰 피해를 입는 직업이 상인이나 농부, 광부 등이었다.
그들은 일 자체가 하기 어려워지게 된 것.
다른 이들의 사정이 어떻든 간에 만족할 만한 영토를 확보하지 못한 명문 길드들은 계속해서 병력을 확충하고 전쟁을 벌였다.
중앙 대륙에서의 혼란은 몬스터들의 대거 등장으로 산골 마을까지도 퍼지고, 이제는 돌이키기 어려울 정도였다.
ㅡ악신을 신봉하는 엠비뉴의 광신도들을 심판대에 올려라.
여기서 대륙의 교단들은 엠비뷰 교단에 전격적으로 선전 포고를 했다.
성당 기사단과 비밀 수도원 소속의 몽크들이 움직였다.
엠비뉴 교단과 다른 교단들 사이의 전쟁까지 벌어지면서, 유저들은 베르사 대륙의 변화를 몸으로 실감하게 되었다.
★★★★★★★★★★★★★★★★★★★★★
바드레이의 퀘스트가 진행되는 와중에도 헤르메스 길드에서는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하벤 왕국과 칼라모르 왕국에서 거두는 막대한 세금으로 군대를 양성하면서도, 다른 쪽으로는 음모를 꾸몄다.
"이런 좋은 기회는 다시 찾아오지 않을 겁니다."
"헤르메스 길드의 제안을 거부할 수는 없지요. 받아들이겠습니다. 모쪼록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흑사자 길드는 멜버른 광산에서 큰 타격을 받았다.
길드의 전체적인 규모에 비하면 단 한 번의 패배일 뿐이지만, 대표인 칼리스를 비롯하여 최정예들의 몰살!
이것은 사실상 헤르메스 길드에 비하여 흑사자 길드가 보잘것없다는 인식을 퍼트리게 만들었다.
흑사자 길드에서 이탈하는 세력들이 생겨나고, 라이벌인 베덴 길드에서는 전력을 확충하여 총공세를 펼쳤다.
싸우기만 하면 이겨서 잃어버렸던 영토를 되찾는 것은 물론이고, 다른 중소 길드와의 연합도 성공적으로 이루어 냈다.
사실 베덴 길드의 배경에는 헤르메스가 있었다.
그들에게 비밀 전력을 보내 주어서 흑사자 길드를 물리치고 톨렌 왕국을 장악하게 한 뒤, 이를 통째로 삼키겠다는 계산.
베덴 길드는 헤르메스 길드의 힘을 경험한 이상 제안을 거부하지 못하였다.
톨렌 왕국을 바치는 대가로 제법 넓은 지역의 영주 자리를 보장받았는데, 그것은 흑사자 길드에 몰려서 해체되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결과물이었다.
라페이는 헤르메스 길드의 수뇌부 회의를 개최했다.
"2~3달이면 톨렌 왕국은 베덴 길드를 내세워서 어렵지 않게 정리될 것 같습니다."
"구태여 베덴 길드를 내세울 필요가 있을까요? 우리의 힘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이 증명되었는데요."
"중간에 다른 왕국이 있어서 거리상의 문제도 있고, 그 지역의 여러 사정들을 잘 알고 있는 베덴 길드가 귀찮은 여러 문제를 처리할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하지만 나중에 혹시나 피곤하게 된다면......"
"그때는 베덴 길드를 쓸어버리면 되겠죠. 덧붙이자면, 베덴 길드의 핵심 고레벨 유저들에게는 별도의 포섭 작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나중에는 껍데기만 남게 되겠군요."
"그보다도 라살 왕국의 점령 계획 문제인데....."
"그 작업도 막바지 진행 중에 있습니다. 이번 달 내로 공격 날짜가 잡힐 것으로 보입니다."
헤르메스 길드는 막강한 군대를 투입하여 속전속결로 라살 왕국을 끝장내는 계획을 세웠다.
그 뒤에는 곧바로 브리튼 연합 왕국을 침공하여 클라우드 길드까지 칠 작정이었다.
★★★★★★★★★★★★★★★★★★★★★
와삼이는 유린을 태우고 하늘을 날고 있었다.
"경치 참 좋다. 와삼이 네 덕분에 이런 기분도 느끼네."
"까루룩. 캬캬캬캬."
칭찬에 약한 와이번이었다.
"너를 타고 만날 이렇게 하늘을 날아다니고 싶어.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리고 밤새도록."
"......."
유린이의 말에 와삼이는 날개에 힘이 빠지려고 했다. 그렇잖아도 이미 많이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탑승자가 1명 더 늘어나다니!
유린과 와삼이는 험한 산 위를 날아다니고 있었다. 위드의 부탁으로 하르셀 산악 지역의 지도를 그리기 위해 온 것이다.
"여기보다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자. 한눈에 넓게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아."
"끼룩!"
와삼이는 날갯짓을 하며 하늘로 솟구쳤다.
그동안 먹이를 사냥하며 레벨을 올린 만큼 상승 속도도 빨라져 있었다.
구름 근처까지 올라간 유린은 하르셀 산악 지역을 훤히 내려다보았다.
슬레이언 부족은 특별히 높고 험한 투브칼 봉우리에 요새를 짓고 살아가고 있었다.
성벽이 높거나 하진 않았지만 절벽과 바위로 이루어져 있어서 천혜의 요새라고 할 수 있었다.
"높은 산들 위주로 지형을 그려 달라고 했지."
유린은 상세한 지도를 그리기 시작했다.
★★★★★★★★★★★★★★★★★★★★★
"음, 그렇군."
위드는 시골쥐와 은새로부터 슬레이언 부족이 벌일 전략을 그대로 입수했다.
"확실히 나쁜 전략은 아니야."
하르셀 산악 지역은 험한 지형으로 인해서 적을 깊숙이 끌어들여서 포위하여 일망타진하는 것이 유리하긴 했다.
슬레이언 전사들이 뚫어 놓은 동굴도 적절하게 이용할 수 있었으니, 부족의 강점까지도 감안한 최선의 작전!
위드는 놈들을 크게 칭찬해 줬다.
"꽤 머리가 좋은 녀석들이군!"
페일은 큰 기대를 했다.
"그렇다면 어떤 전술로 받아치실 겁니까?"
위드의 용병술은 대륙에 정평이 나 있을 정도로 일품이었다. 통솔력과 지휘 능력 자체가 최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의 전투를 위해서는 트레세크의 뿔피리 외에 대륙의 지배자의 도장까지 가져왔다.
현재 위드 정도의 통솔력이라면 야만족 부대라도 조금만 훈련시키면 정예부대로 양성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위드라면 전투 자체로도 기대되지만, 그가 펼친 전술을 상상하니 더욱 짜릿했다.
"놈들이 제법 똑똑한 데다 여러모로 애를 쓰고 있으니......"
"쓰고 있으니까요?"
"노력이 가상해서라도 빠져 줘야죠."
"예에?"
페일은 설마 했다.
그렇지만 위드는 조각 생명체 군단을 이끌고 투브칼 산을 향하여 계속 진격했다.
적진으로 더욱 깊숙하게 들어가는 것.
지금까지 경험한 바로는, 슬레이언의 전사들은 조각 생명체들을 넓게 포위하고 지형과 공간을 활용하면서 싸웠다.
이렇기 때문에 하르셀 산악 지역 자체가 파티 사냥은 거의 불가능했다.
집단, 혹은 군대를 데려와서 슬레이언 부족과 싸워야 하는 장소!
조각 생명체들은 강하지만, 충원이 빠른 슬레이언 부족에 비하면 전체적인 전력은 약간 모자라다고 할 수 있었다.
지형상으로는 절대적으로 불리.
"킹 히드라, 오른쪽으로 가라. 임무는 적들의 공격을 유도하는 것. 게르니카, 나서지 말고 위치를 사수한 후에 동료들을 도와라."
위드의 명령에 따라 조각 생명체들이 진형을 바꾸었다.
투브칼 산이 있는 장소까지는 9개의 산을 넘어야 하는데, 적들이 숨겨진 동굴을 통하여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났다.
슬레이언의 전사들은 1마리를 집중해서 공격하는 성향이었다.
위험했던 생명체들이 뒤로 빠지고, 대형이고 생명력에 여유가 있는 이들이 전면에 나섰다.
조각 생명체들의 특성에 맞게 파티 사냥을 할 때처럼 위치를 바꾸는 것이다.
"플레임 리버!"
로뮤나가 새로 익힌 화염의 강 마법을 써서 적들을 공격했다.
불의 강에 휩쓸려 가는 적의 전사들!
"꺄아, 정말 세다!"
화끈한 광역 공격력에 기뻐하는 로뮤나를 볼 때마다, 축하의 썩은 미소를 짓는 위드!
동료들도 대활약을 펼치면서 계속 전진했다.
공중에서는 와이번, 빙룡, 불사조, 이무기가 지원하면서 적들을 격파했다.
"공격은 한 지점에 집중하고, 적들을 흩트려 놓은 후에 과감하게 싸워. 너 아까 그렇게 밥 많이 먹더니 행동이 왜 이렇게 느려!"
위드의 지휘 능력에, 조각 생명체들은 평소의 능력보다 약 35% 정도는 더 실력을 발휘했다.
거대 조각 생명체들을 활용하니 그 무지막지한 전력으로 일대를 초토화시킬 지경이었다.
화살을 쏘거나 마법을 쓸 줄 아는 생명체들은 안전한 가운데에 위치하여 위력을 발휘하였다.
무시무시한 화력이 집중되면서 연전연승!
원거리 공격이 가능한 페일과 로뮤나도 맹활약을 하고, 가까이 다가오는 적들은 수르카와 제피가 해치웠다.
"슬레이언 부족의 요새가 있는 장소까지는... 앞으로 산을 6개만 더 넘으면 되겠군요."
위드는 지도를 보면서 거리를 계산했다.
투브칼 산까지는 크고 험한 산을 9개나 넘어야 했다. 이미 한참을 왔지만, 앞으로도 가야 할 길이 많이 남아 있었다.
"중간에 위험한 장소들이 있긴 한데......"
협곡과 같은 장소는 집중 공격을 받기가 딱 좋다.
보통은 와이번들로 정찰이 이루어지지만, 슬레이언의 전사들은 동굴을 통하여 은밀하게 이동하기 때문에 일찍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다.
잠깐 순간에 포위당하여 공격을 받는다면 그거야말로 최악의 경우!
"지금이라도 돌아가야 하지 않겠어요?"
이리엔은 불안한 기색이 역력했다.
사제인 그녀는 포위당하여 공격받는 데에 꺼리는 부분이 많이 있었다.
위급한 상황이 닥쳐와 누구를 치료할 틈도 없이 1명씩 죽어 나가는 꼴을 보는 것만큼은 피하고 싶었던 것.
"저한테도 생각이 있으니 조금만 더 계속 가죠."
위드는 잠깐씩 쉴 때는 요리를 하고, 부상을 입은 조각 생명체들의 몸에 붕대를 감아 주었다.
원래대로라면 프레야 교단의 공적치를 이용하여 알베론을 데려오려고 했지만, 전투 중에 이리엔의 치료를 받으며 버티기로 했다.
그녀의 실력이 알베론보다는 훨씬 못했지만, 킹 히드라처럼 거의 불사에 가까운 생명체를 전면에 앞세우면 되었다.
킹 히드라의 머리는 어지간하면 1개 이상 떨어지지 않았다.
다른 동료 생명체들의 지원과 이리엔의 치료가 있었기 때문이다.
조각 생명체들은 금세 사제인 이리엔과 친해졌다.
사제야말로 친밀도를 높이기에 정말 유리한 직업!
그리고 위드는 평소보다 오래 휴식 시간을 지내며 조각품을 깎았다.
평소에도 자주 하는 행동이라서 아무도 의식하지는 않았지만, 넓은 판자에 주변 산들의 형태를 조각하고 있었다.
몇 시간 후, 페일이 자리에 멈췄다.
"여기는 건너기에 좀 위험해 보입니다."
물이 흐르는 개울이 나왔다. 평소에는 무릎과 허리까지 차오를 정도로만 물이 흐르지만, 비라도 내리면 수심이 대책 없이 높아지고 급류로 변하는 그런 장소였다.
위드는 지도를 보고 위치를 확인했다.
"유린이 그려 준 지도에서 보면 적들이 공격하기 좋은 장소 중의 한 곳이군요. 투브칼 봉우리로 가려면 이 개울울 따라서 걸어야 합니다."
지형을 미리 알고 있다는 건 산악 지역에서 헤매지 않아도 된다는 큰 장점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위험한 줄 알면서도 가야 되는 길이 있는 법, 투브칼 봉우리까지 가장 위험한 세 곳 정도를 꼽는다면 바로 이곳이 그중 하나라고 할 수 있었다.
물길을 거스르면서 이동하여야 할뿐더러, 좌우의 숲에서 화살 등의 공격을 받을 수도 있는 것이다.
페일과 로뮤나, 그리고 조각 생명체들이 대응을 하더라도 여러모로 불리한 상황에 처할 수밖에 없다.
위드의 조각품에도 이 장소가 있었다.
로뮤나가 자신 없다는 듯이 말했다.
"다른 길로 우회해서 가는 편이 안전하겠는데요?"
"그러면 산을 2개는 돌아가야 됩니다. 만만치 않은 등산도 해야 되고요. 이곳을 빨리 통과하는 편이 나을 것 같으니 여기서부터는 전투준비를 하고 조심해서 움직이죠."
위드는 생명력이 높은 조각 생명체들을 앞세우며 전진했다.
"절대 마음을 놓아서는 안됩니다. 페일 님이 먼저 경계를 해주세요. 로뮤나 님은 마법을 미리 완싱시켜 놓고 기다리셔야 될 것 같습니다."
걱정과는 달리 물줄기가 흐르는 이곳에서는 갑자기 적들이 나타나거나 하지 않아 무사히 지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그 후부터는 마주치는 슬레이언의 전사들의 수준이 전반적으로 높아졌다.
지금까지는 일반 전사들과 싸웠다면, 이제는 엘리트급 전사들까지 출현했다.
레벨 420이 넘는, 부족의 진정한 전사들!
슬레이언의 전사들은 전투가 벌어지면 목숨을 아랑곳하지 않고 맹공을 퍼부었다
조각 생명체들도 지골라스에서 생명을 부여받은 후에 많이 성장해서, 여전히 적들을 압박하며 잘 싸우고 있었다.
생명체들의 생명력이 떨어지는 만큼 슬레이언의 전사들이 죽어 나갔다.
특히 불의 거인을 비롯한 몇 마리의 조각 생명체들은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
불이라는 특성 때문인지, 파충류의 습성을 가진 슬레이언의 전사들은 공격을 상당히 기피하는 모습이었다.
"아무래도 조금 불안해요!"
이리엔이 걱정스러웠는지 다가와서 진지하게 말했다.
"여긴 완전히 적진이잖아요. 게다가 저쪽은 연결되어 있는 동굴을 통해서 어디서든 충원되어서 우릴 포위 공격할 수 있어요. 아무리 조각 생명체들이 강하더라도 너무 위험해요!"
위드가 조각 생명체들을 효과적으로 지휘하는 것만으로도 사냥 속도는 월등히 빨라졌다.
슬레이언의 전사들이 사방에서 모여들어 주기까지 하니 전투의 공적이 무섭게 쌓이고 있는 것.
보통의 경우에는 킹 히드라가 겁을 주고, 지렁이가 갑자기 땅을 뚫고 나오며 적들을 위협한다.
쉿쉿쉬쉬쉬쉬싯.
시골뱀은 독기를 뿜어내서 중독시키고, 마법과 화살 공격도 집중되었다.
이후로는 대형 생명체와 전사 부대가 돌격하여 정리하는 방식!
매우 효과적이고 강력하였지만, 이 일대를 지배하고 있는 슬레이언 부족이 총동원된다면 전멸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들었다.
이리엔은 자신이 죽는 것도 물론 싫었지만, 일행이 어쩔수 없는 상황에 처해서 전부 사망하는 것은 결코 원치 않았다.
더군다나 위드가 아끼는 조각 생명체까지 다 잃어버린다면 그 손실은 돌이킬 수가 없다.
그래서 평소에 잘 나서지 않던 그녀지만 큰 결심을 하고 위드를 말리기 위해 입을 연 것이다.
상식적으로 볼 때 위드는 평소답지 않게 서둘렀다.
"여기까지 온 것도 적들이 우리를 유인하고 있는 것 같아요."
이리엔의 지적에 위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합니다."
"그러면 계획이......"
"우리도 놈들을 유인하고 있거든요."
위드는 유린이 그려 준 지형도를 보고 나서 고민을 했다.
'여긴 천혜의 요새야. 외곽에서부터 전투를 하면서 뚫는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 방어 진형을 펼치거나, 놈들이 기습 공격 위주로 전환을 한다면......'
투브칼 봉우리까지 가려면 시간이 많이 필요했다. 하르셀 산악 지역에서 계속 번식하는 슬레이언 부족과 싸워야 되기 때문이다.
어차피 몇 차례 적들과 싸워 이기더라도, 적진에 가까이 갈수록 지형상 끊임없이 불리한 싸움만 거듭해야 된다.
그런 소모적인 전투를 하다 보면 보급이나 여러 부분에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은새와 시골쥐를 통하여 적들의 병력의 움직임까지 확인하며 한 번의 큰 전투를 펼치기로 했다.
"지금은 저를 믿어 주셔야 됩니다."
"성공 가능성은요?"
"확신할 수는 없지만, 놈들이 똑똑하다면 누워서 김밥 먹기 정도입니다."
위드가 이렇게까지 말하자 이리엔은 그를 믿기로 했다.
병원비 때문에, 웬만해서는 끔찍하게 몸을 아끼는 사람의 말이었으므로!
개울가 다음으로 마주친 지형상 위험한 지역은 바위 협곡이었다.
양옆이 높이가 2킬로도 더 되는 아찔한 암벽이 병풍처럼 둘려 있다.
보고 있으면 그저 입이 떡 벌어지면서 돌아 나가고 싶은 충동이 들게 하는 장소!
통과할 수 있는 길은 협곡의 중심으로 물이 흐르는 부분이었다.
제피가 주위를 돌아보더니 조금 긴장한 얼굴이 되었다.
"여기서는 기습을 당하더라도 꼼짝도 못하겠는데요."
슬레이언의 전사는 좁은 동굴을 이용하기에 대부분 나타나기 전까지는 모습이 잘 보이지 않는다.
"협곡 중턱에 나 있는 까마득한 낭떠러지의 길이라도 빠르게 이동해야 되겠죠?"
페일이 화살을 이미 시위에 걸어 둔 채로 물었다.
왠지 이런 곳에는 적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기분!
"아닙니다. 협곡의 아래로 갑니다."
"예? 거긴 앞뒤로만 뚫려 있고 빠져나갈 곳도 없습니다. 절벽처럼 가파른 협곡이 성벽과 같은 효과를 내면서 집중 공격을 당할 텐데요?"
"바로 그걸 노리고 있는 거죠."
위드는 조각 생명체들과 같이 물길을 거스르는 쪽을 택했다.
좌우의 폭이 넓어서 조각 생명체들이 움직이기는 편했지만, 양쪽에 펼쳐진 협곡은 절망적인 높이였다.
'아마 이번에는 나오겠지. 여기야말로 가장 유리한 지형이니까.'
위드는 그런 생각으로 암벽 협곡에 들어섰다.
★★★★★★★★★★★★★★★★★★★★★
슬레이언 부족은 좌우 암벽 협곡의 동굴에 조용히 매복하고 있는 중이었다.
"나는 너무 똑똑하다."
"이 계획은 내가 세웠다."
"멍청한 인간 놈. 끄윽끄윽!"
장로와 전사들은 웃음을 참기가 어려웠다.
자신들의 현명함에 대한 깊은 고뇌!
'이런 곳에 있기에는 내가 너무 아까운데.'
'아, 신은 나에게 다 주셨구나! 근데 우리 엄마는 나보고 만날 멍청하다고 했을까.'
그런 고민을 하면서 위드와 일행, 조각 생명체들이 암벽 협곡의 중심부까지 오기를 묵묵히 기다렸다.
"놈들은 완벽한 함정에 빠졌다!"
"없애 버리자!"
슬레이언 부족 전사들이 한꺼번에 나타났다.
절벽처럼 가파른 암벽 협곡이 그들의 피부색인 짙은 청색으로 뒤덮였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