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달빛조각사 31권 : 2. 철혈의 바하모르그 (192/520)

2. 철혈의 바하모르그

 "아, 예술은 무슨 예술. 그냥 돈이나 실컷 벌었으면 좋겠

는데."

 조각술의 비기를 생각해 내는 건 정말이지 너무나도 어려

운 일이었다.

 "돈도 엄청 벌고, 사냥도 하기 쉽고, 퀘스트에도 도움이

많이 되어야 해."

 이유는 바로 끝없이 솟아나는 욕심!

 "조각술의 비기는 한번 만들어 내면 다시 되돌릴 수도 없

을 텐데..."

 자장면과 짬뽕 중에서 평생 어떤 음식만 먹을 거냐고 묻는

것처럼 잔인하기 짝이 없었다.

 물론 순수하게 예술과 관련이 깊은 스킬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

 조각품의 작품성을 높이는 부분이라면 지금까지 아쉽게

생각했던 것도 제법 되었다.

 조각품에는 주제의 구성이나 표현물의 확장에 있어서 제

약이 있다. 그림은 하늘을 그리고, 바다를 그리고, 그다음에

육지도 그릴 수 있는데 조각품은 그러지 못하는 것이다.

 그림은 말 그대로 우아하게 그리고 색칠만 하면 되는데 조

각사는 일일이 다 만들어야 된다.

 같은 예술인이라고 하더라도 철저한 육체노동의 직업!

 조각사의 부족한 표현력을 일깨울 수 있는 스킬을 만들어

낸다면 조각술의 발전을 위하여 도움이 되고 후배 조각사들

에게 길을 터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위드가 예술을 위하여 한 몸 바치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영원히 후회하겠지. 늙어서 죽을 때에도 아

쉬워할 거야. 스트레스로 인해서 수명이 단축될지도 몰라."

 깊게 생각할수록 정말 중요한 결정이라 고르기가 어려

웠다.

 "차라리 조각술 스킬을 올리면서 생각을 더 해 봐야 되겠

군. 어차피 직업 퀘스트를 완전히 끝내려면 스킬을 마스터해

야 되니까."

 선택은 당분간 보류!

 위드는 페일에게 귓속말을 보냈다.

 - 어디에 계세요?

 - 와이번 광장에서 놀고 있습니다. 수르카가 오면 알록달

록한 무늬의 뱀 가죽을 모아 오라는 퀘스트를 진행하려고요.

 모라타에서 고레벨 유저들에게 인기 있는 퀘스트.

 매우 강력한 독을 내뿜는 뱀을 잡아서 그 가죽을 가져오면

비싼 가격에 구매해 주는 퀘스트였다. 믿음직한 사람에게만

의뢰를 주기 때문에 선물을 주면서 친밀도 작업을 해서 받아

내려 할 정도로 가치가 있었다.

 - 그러면 저는 빛의 광장 부근이니까 그쪽으로 가겠습니다.

 위드는 페일 일행과 만나서 사냥도 하고 간단한 퀘스트도

진행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물론 머릿속에는 조각술의 비기를 만들어서 부귀영화를

누릴 생각이 가득했다.

 "이 부근에 날뀌는 도적들이 숨어 있는 동굴이 있어. 놈들

이 약간의 재물을 모아 놓았다더군. 토벌을 빨리 해야 될 텐

데... 술 한 병만 주면 내가 위치를 알려 주지."

 "너에게 줄 술은 없다. 어딘지 말해라."

 "국왕 폐하!"

 반강제적으로 모라타의 주민들에게 보상이 좋은 퀘스트들

도 뱉어 내게 했다.

 "여기 부탁한 물건을 찾아왔다."

 "큰 은혜를 입었사옵니다, 폐하. 저처럼 미천한 것까지 자

비롭게 돌보아 주시다니..."

 "말이 길다. 어서 약속했던 돈이나 내놔."

 "폐하의 은총을 입은 것을 대대로 고맙게 여기겠사옵니

다. 여기, 부족하지만 제가 드릴 수 있는 금액입니다."

 위드가 국왕이다 보니 의뢰를 맡기는 쪽에서 더욱 황송해

하면서 평균적으로 50% 이상이나 더 많이 보상을 해 준다.

주민이 의뢰비를 간당간당하게 가지고 있었던 경우에는 모

자와 망토까지 벗어 줄 정도였다.

 "과연 사람들이 권력에 빠지면 정신 못 차리는 이유가 있

었어."

 마을에서 다른 구경꾼들이 있는 곳에서 위드가 퀘스트를

받으면 다들 신기해하며 부러워했다.

 "저거 믿을 만한 사람이 아닌 이상 진짜 잘 안 내주는 의

뢰였는데. 국왕이니까 그냥 받아 버리는구나."

 "위드 님이라면 국왕의 신분이 아니더라도 퀘스트를 받기

는 쉬웠을껄. 쌓아 놓은 명성과 신뢰도가 있잖아."

 "캬하. 난 언제 저렇게 성장을 해 보나."

 권력과 명성을 가지고 있으면서 사람들의 부러움을 받

았다.

 수르카가 신기하다는 듯이 물었다.

 "위드 님한테 이런 간단한 사냥 퀘스트는 시시아지 않아

요? 뻔히 알고 있는 곳으로 가서 정해진 몬스터만 잡아서 돌

아오면 되잖아요."

 큰 모험들 위주로만 하다 보니 같이 다니는 일행조차 오해

를 하고 있었다.

 위드는 단순하면서도 짭짤한 의뢰들을 제일 좋아했다. 사

냥도 지나치게 위험한 곳보다는 적당히 알려진 곳에서 빠르

게 잡는 편이 효율이 좋았다.

 게다가 이제는 굳이 웬만한 퀘스트는 가릴 필요가 없는

처지.

 "그 던전의 마지막까지 가서 살아 나온 사람이 아직 아무

도 없는데, 숙련된 모험가라고 할지라도 철저히 준비를 해

야..."

 "됬으니까 의뢰나 내놔."

 "예, 폐하!"

 아르펜 왕국의 주민들에게 던전 소탕의 의뢰를 받았다.

 이제는 북부에도 고레벨 유저들이 상당히 많이 있었다.

 한때 중앙 대륙에서 꽤나 세력을 떨치던 길드들도 쫄딱 망

한 후에 넘어오고, 일반 유저들도 친구들, 동료들을 데리고

이주를 해 오고 있었다.

 광장에서 사람들을 모집하는 수준을 보면 레벨 300대, 드

물게는 400대를 원하는 경우도 있었다.

 아직 중앙 대륙에서도 400대 레벨의 유저를 자주 보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북부에서는 최상의 실력을 가진 유저들이

아르펜 왕국의 수도인 모라타로 모이고 있기에 간간히 볼 수

있었다.

 초보자들의 어마어마한 부러움을 받으면서 활동하는 고레

벨 유저들.

 그들은 남들이 판잣집, 흙집에 살 때 강가에 별장을 지을

정도의 부유함을 과시했다.

 물론 이런 빈부 격차야 위드에게 그다지 크게 문제 될 소

지는 없었다.

 오히려 세금 수입이 늘어나기에 적극적으로 권장하는

입장.

 모험가, 탐험가 들도 북부를 누비고 있었지만 아직도 마지

막까지 모두 깨지 못한 던전이 즐비했다. 파티원들이 사망하

고 실패로 돌아간 경우나, 혹은 너무 위험해 보여서 중간에

빠져나와야 했던 장소들.

 위드는 그런 곳에 대한 퀘스트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바하모르그."

 "왜 부르는가."

 "아르펜 제국의 수호신이며 게이하르 황제의 검과 방패였

던 너는 정말 엄청나겠구나."

 "조금 싸울 줄 알 뿐이다."

 "하지만 네가 죽어 있다가 나의 거룩한 희생으로 되살아

난 사이에 대륙에는 강한 몬스터들이 정말 많아졌지. 이제

아무리 너라고 해도... 흠!"

 "크오오, 그곳이 어디인가!"

 위드의 믿는 구석은 레벨이 548에 달하는 극강의 바바리

안 워리어.

 바하모르그는 던전에 들어가면 당연하다는 듯이 앞에서

성큼성큼 걸어갔다.

 메이런이 걱정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저대로 놔둬도 될까요?"

 "물론입니다. 괜찮을 겁니다. 아르펜 제국의 수호신이었

으니까요."

 꽈과과광!

 콰광, 쾅, 콰아앙!

 "침입자를 죽여라!"

 "보물을 빼앗겨서는 안 돼. 함정을 발동시켜라!"

 던전의 함정과 마법 공격이 바하모르그의 몸에 작렬!

 "크레하아!"

 바하모르그는 함성을 내지르면서 싸웠다.

 동료들의 생명력과 방어력, 사기를 일시적으로 끌어올리

는 워리어의 함성.

 수르카는 자신의 상태를 확인해보고 기쁨에 차서 소리를

질렀다.

 "꺅! 완전 대단해요! 생명력이 거의 2배로 늘어난 것 같

아요."

 "마법사인 나는 3배 반이나 늘어났어."

 마법사인 로뮤나의 생명력이 큰 폭으로 올랐을 정도이니

페일, 메이런, 제피 같은 궁수나 낚시꾼의 경우라면 말할 것

도 없었다.

 사실 직접 전투를 하면서도 생명력이 매우 낮은 편에 속하

는 위드도 무려 7만 이상이 증가했을 정도이다.

 '워리어와 다니면 죽을 일은 없어진다더니..."

 파티 사냥을 할 때 괜히 워리어가 필수가 아니었다.

 손발이 맞지 않거나 능력이 부족한데도 무리해서 던전 사

냥에 나서면 정말 위험할 수 있다.

 기사의 방어력이 대단하다고는 해도 갑옷의 내구도가 떨

어지게 되면 약해지고, 자칫 방패로 공격을 제대로 막지 못

하는 일이 생기면 크게 위험할 수 있다. 게다가 기사는 체력

이 빨리 감소하고 전투 중에는 그다지 빠르게 움직이지 못한

다는 단점을 가졌다.

 수많은 장점을 가진 직업이 기사지만 이 단점들이 매우 불

편해서 외면하는 유저들도 많았다.

 말을 타고 있으면 기사의 각종 돌격 스킬을 사용하고 이동

속도까지 올릴 수 있지만 숲이나 산, 던전에서는 사용이 제

한되는 스킬도 꽤 된다.

 기사들은 이처럼 여러 성가신 면들을 가지고 있는 반면에

워리어들은 전투에서 철벽처럼 믿을 만했다. 든든한 방어력

으로 듬직하게 몬스터들을 맡아서 싸우면서, 다룰 수 있는

무기의 종류도 많고 민첩하기까지 했다.

 바하모르그가 앞에서 몬스터들을 압도하고 있었기에 전투

는 어린아이 사탕 뺏고, 껌 뺏고, 학원비 뺏고, 우유 뺏어 먹

고, 신발 뺏고, 꿀밤 때리고, 장난감 가져가기 수준이었다.

 "광휘의 검술!"

 위드는 메이런, 페일과 같이 원거리 공격 위주로 싸웠다.

 검에서 나오던 참새들은, 스킬의 레벨이 오르면서 종류가

바뀌어 있었다.

 날개를 활짝 펼치며 습격을 하는 독수리!

 화살처럼 빠른 데다가 장애물이 있으면 공중에서 절묘한

곡예를 펼치면서 습격했다.

 공격의 유효 거리 자체가 늘어나서, 광휘의 검술은 사냥에

서 더욱 효과적이 됐다.

 여신의 기사 갑옷, 바하란의 팔찌, 슬로어의 결혼반지 그

리고 마나 회복 옵션 때문에 줄기차게 착용하고 있는 패로트

의 링까지 있으니 마나를 신경 쓰며 스킬을 아껴 쓸 필요가

없었다.

 "전기나 도시가스를 이렇게 펑펑 쓸 수 있으면 정말 행복

할 텐데!"

 달빛 조각 검술은 상대의 마법 공격이나 화살 공격을 막고

반격을 가할 때에도 활용되었다.

 오로지 원거리 공격 스킬인 광휘의 검술과는 달리 달빛

조각 검술은 빛을 이용한 공격과 수비를 동시에 할 수 있는

기술.

 그 덕에 위드가 전투를 할 때는 감탄이 나올 정도로 화려

해졌다.

 그렇게 바하모르그를 앞장세우면서 충직한 부하인 반 호

크, 능력이 탁월한 토리도도 활용했다.

 동료들까지 있었기에 다른 조각 생명체들까지는 써먹을

필요가 없었다.

 "음머어어. 행복하다."

 "인생에 여유가 생긴 것 같다, 골골골!"

 금인이와 누렁이는 처음에는 그 점을 좋아했지만, 곧 위드

가 보고 싶어졌다.

 "일을 조금 시켜도 된다. 음머어어어어."

 "주인, 같이 다니고 싶다. 골골골!"

 와이번들과 빙룡, 불사조야 애초에 밖에서 주로 싸우던 부

하들이었다. 그러나 금인이와 누렁이는 어느 곳이든 같이 자

주 다녔기에 더 붙어 있으려고 하는 성격.

 "나도 너희와 같이 다니고는 싶지만... 밥값이 아까워서.

나중에 필요해지면 부르도록 할게."

 과거에 잘 써먹었던 부하들을 매정하게 내팽개치는 위드!

 "정 할 일 없으면 밭이나 갈아."

 중앙 대륙에서는 헤르메스 길드의 점령 소식이 들려오고

있었지만 위드는 동료들과 더불어 퀘스트와 사냥을 할 뿐이

었다.

 던전마다 몬스터의 씨를 말리는 대청소!

 바르고 성채 외에도, 아르펜 왕국의 영토가 확장되며 사냥

할 만한 던전은 정말 많아져 있었다.

    * * * * * * * * * * * *

 "몬스터의 잡템은 거짓말을 하지 않지!"

 위드는 레벨 3개를 더 올려서 418을 만들었고 조각품 숙

련도 역시 3.2%를 올렸다.

 아침저녁으로 사냥과 조각품 깎는 일을 반복하다 보니 성

과가 제법 축적되고 있었다.

 던전을 휩쓸면서 얻은 전리품들 중에서 쓸 수 있는 것들은

대장장이 스킬, 재봉 스킬, 조각술 스킬로 재가공을 했다.

허름한 물건도 위드의 손을 거치면 새것처럼 바뀌어서 비싸

게 팔렸으니 고물상이 따로 없을 정도!

 "사제가 필요합니다."

 "루의 교단에서는 위드 님의 요청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사제들도 기꺼이 따라갈 것입니다."

 위드는 페일 일행이 사냥하지 않는 시간에는 서윤과 사냥

을 하고, 사제들도 고용해서 도움을 받았다.

 공헌도를 많이 쌓아 놓은 프레야의 교단에는 사제를 바라

지 않고 나중에 큰 것을 요구하기 위해서 아껴 놓았다.

 신들의 정원을 조성하고 나서 많은 교단과 우호적인 관계

가 성립되고 공적치가 쌓였다.

 그곳에는 잘 알려진 프레야 교단과 루의 교단 외에도, 다

른 조각품들의 신도 많다. 현재까지 종교가 이어지지 않던

신들의 교단이 가장 가까운 모라타에 세워지고 있었다.

 모라타에 교단이 생겨나게 되면 이곳을 다스리는 위드는

매달 정기적으로 공적치가 높아지게 된다.

 그 때문에, 전투에 꾸준히 사제 1~2명을 동원하기 위한

공적치를 아껴야 되는 상황도 아니었다.

 거기에 프레야의 북부 대성당과 신들의 정원에서 기부받

은 유저들의 헌금도 엄청난 거액!

 위드가 손을 댈 수는 없는 금액이지만, 이 돈으로 인하여

교단들의 성세가 급속도로 커지고 있었다.

 성당들이 생겨나고, 성당 기사단 모집도 이루어졌다.

 모라타의 치안은, 따로 군대가 동원되지 않더라도 성기사

들만으로도 몬스터가 도시 근처에도 오지 못할 지경이었다.

초보자들이 사냥하는 동물들 외에 위험한 몬스터는 찾아보

기가 어려워서 멀리까지 나가야 할 정도였다.

 바르고 성채의 몬스터 역시 갈수록 토벌되면서 주민들이

살아가는 영역이 넓어졌다.

 위대한 건축물들과 신들의 정원 건축 이후 거두어들인 세

금이 다시 차곡차곡 쌓여 아르펜 왕국의 재정이 여유로워지

면서, 군대에도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모라타와 바르고 성채만 지키려는 목적이라면 현상 유지

만 하더라도 충분하지만 도시로부터 떨어져 있는 곡창 지역

과 광산을 수비해야 하는 것이다.

 군대의 규모가 현재보다 3배는 확대되어야 늘어난 영토들

을 몬스터의 침입으로부터 완벽하게 방어하고, 광산과 곡창

지역 등을 지킬 수 있다.

 "결 검술이라. 스승님도 대단한 생각을 하셨구나."

 검치로부터 전수받은 검술도 전투 중에 적절히 써먹었다.

 검치는 특정 몬스터를 상대하는 비법, 몬스터들의 버릇이

나 스킬의 운용에 따른 허점들을 알려 주었다. 위드는 하루

에 걸쳐서 검술을 사용하는 방법을 배워 스킬을 형성했던

것이다.

 정말 까다로운 검술이라서 실패할 확률이 너무 높았지만

제대로 작렬해 주었을 때의 환상적인 손맛!

 -뛰어난 공격으로 검술 스킬의 숙련도가 증가합니다. 결 검술에 약간

  익숙해졌습니다.

 검술의 비기 두가지에, 여신의 기사 갑옷 그리고 어떤 몬

스터에게도 버틸 수 있을 것 같은 워리어와 믿음직한 사제

가 있었다. 파티 사냥에 필요한 자원이 완벽하게 갖춰진 것

이다.

 이제 위드가 이끄는 사냥의 효율은 놀랄 수밖에 없을

수준

 "아, 이번 던전은 무려 3시간 40분 만에 돌파했어요."

 "어제보다도 7분이나 더 빠른데요."

 "다른 파티들의 기록은 5시간 57분이 최고였는데 도대체

우리는..."

 "사냥의 달인이라고 해도 될 겁니다."

 페일 일행조차도 믿지 못할 사냥 속도였는데, 아마 동영상

이 나오기 전에는 게시판에 올리더라도 사람들로부터 불신

만 초래할 것이다.

 위드는 서윤과 바하모르그, 남자 사제 1명을 데리고 있을

때에도 잠깐도 쉬지 않고 휩쓸어 버렸다.

 페일, 메이런, 로뮤나, 이리엔, 수르카, 화령, 벨로트처럼

다양한 직업의 조합은 없다. 하지만 꼭 필요한 능력을 가진

직업들이 있었고, 무엇보다 서윤의 전투 능력이 워낙에 훌륭

했다.

 그녀가 광전사로서 본연의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하면

위드는 그에 뒤지지 않기 위하여 사냥의 속도를 더 끌어올

렸다.

 미친 듯한 사냥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동료들의 능력 파악

과 남아 있는 체력, 생명력을 항상 확인하고 있어야 된다.

위드는 그러한 모든 것들을 장악하고 있을 정도로 전장에서

의 상황 파악력이 뛰어났다.

 동료들의 협력이 워낙 좋다 보니 무리하게 속도를 올리더

라도 다들 잘 따라와 주었다.

 "사냥 후의 고독이 좋군."

 위드는 성장의 기쁨을 제대로 만끽하고 있었다.

 "역시 사람에게는 이렇게 여우가 있어야 돼."

 그러면서도 쉬는 시간에는 조각품을 깎았다.

 그동안 모험을 하면서 스탯과 스킬 위주로만 성장시켰기

에 비슷한 레벨의 다른 유저들보다는 훨씬 빠르게 성장을 하

고 있었다.

 보통 레벨이 400대가 되면 어느 순간부터인가 심한 정체

상태가 되고 말았다. 어지간한 몬스터를 잡아서는 경험치가

잘 쌓이지 않아서 성장이 느려지게 되는 것이다.

 위드는 초보 시절부터 지금을 대비하여 온갖 고생을 해

왔기에 조각 생명체와 검술의 비기가 있는 한 레벨을 올리는

것이 전혀 어렵다고 생각되지 않았다.

 "벌써부터 어려워지면 안 되지."

 경쟁자라고 할 수 있는 바드레이만 하더라도 아득할 정도

로 한참 앞에서 달려가고 있었고, 서윤도 마찬가지.

 그녀를 겁내면서 혼자서 비굴하게 살아온 시간이 얼마나

길었던가.

 위드는 서윤의 눈치를 보며 몬스터를 1마리라도 더 잡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싸웠다.

 축적되는 경험치와 넘쳐 나는 전리품들.

 상인 마판의 출렁거리는 뱃살에 도움이 될 게 분명했다.

 "여기서 사냥에 도움이 많이 되는 조각술의 비기 한 가지

만 정하면 완벽할 텐데."

 위드는 조각술의 비기에 대해서만큼은 여전히 결정을 미

루고 있었다.

 이미 습득한 다른 조각술의 비기들을 보고 있자면 저마다

한계가 있다.

 조각품에 생명 부여는 예술 스탯과 레벨이 하락해서 자주

쓸 수가 없었으며, 조각 검술은 무적이 아니다.

 상대방의 방어력을 무시하는 엄청난 효과를 가졌지만 기

본 공격력 자체는 다른 공격 스킬에 비하여 높지 않아, 바드

레이와 싸울 때에는 그 한계가 확실히 드러났었다.

 빛을 이용하여 공격과 수비가 자유로운 달빛 조각 검술은

마나 소모가 지나치게 심각한 수준이었다. 마나 소모량이 조

각 검술보다 3배나 높아서, 여신의 기사 갑옷이 없던 그때는

실컷 써먹지도 못했다.

 지금도 무난한 사냥이 아니라 적들에게 둘러싸여서 여유

가 없는 상황이라면 마구 쓰기에는 부담스러운 정도다.

 조각 변신술은 다른 종족의 특징을 이용할 수 있지만 원래

의 능력을 바탕으로 한 것이고, 대재앙의 자연 조각술은 자

칫 자신마저도 죽을 수 있었다.

 정령 창조 조각술은 대성할 경우 벨소스 왕을 봤을 때 정

령왕까지 될 수 있다지만 위드는 개똥밭에 구르더라도 지금

이대로가 좋았다, 정령계에서의 사냥 수입은 얼마일지 모르

고, 또 아이템을 습득하더라도 팔아먹기가 애매해질 테니까!

 "스킬들이 하나같이 다 불량품이야."

 검술의 비기처럼 그냥 아무 때나 필요하면 쓰면서 사냥에

활용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어떤 조각술의 비기를 탄생시키느냐에 따라서 활용할 수

있는 횟수가 좌우된다.

 위드는 정말 후회하지 않을 스킬을 탄생시키고 싶었다.

    * * * * * * * * * * * *

 오동만은 일요일에 오랜만에 늦잠을 자고 빈둥거렸다.

 "으하암! 집에 아이스크림도 떨어졌네. 어디 재미있는 텔

레비전 프로그램 안 하나?"

 로열 로드에서는 페일로 백발백중의 화살 솜씨를 뽐내는

그였지만 현실에서는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사실 위드의 모험으로 방송에 같이 나오면서 그도 은근히

유명 인사가 되었다. 학교 친구들은 물론 얼굴도 제대로 기

억나지 않는 초등학교 동창이나 연락이 끊긴 지 오래된 친구

들에게서도 전화가 오는 소동을 겪었지만, 지금은 평소 생활로

돌아온 상태.

 "오늘은 어디 안 나가고 집에서 쉬어야지. 읽다 만 책, '돼

지곱창과 에스프레소'도 보면서 느긋하게 보내 봐야지."

 최근 들어 사냥을 많이 했더니 하루 정도는 편안한 휴식을

취하고 싶었다.

 오동만이 책을 읽다가 소파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데 그

의 엄마가 배와 사과를 깎아서 가져왔다.

 "우리 아들 자니?"

 "아... 잠깐 졸았어요."

 "저녁에 뭘 해 줄까. 먹고 싶은 거 있어?"

 "엄마 잘하는 감자탕요."

 "그럼 이따가 마트 다녀올게. 참, 아들, 오늘은 접속 안 해?"

 "집에서 쉬려고요."

 "그러면 엄마가 사 달라고 부탁했던 상인 전용 앞치마는?"

 "다음에 사 드릴게요."

 오동만은 그날 저녁 식사로 삶은 감자 2개를 먹어야 했다.

    * * * * * * * * * * * *

 "많이 다치셨네요. 조심하세요."

 이리엔은 모라타의 남쪽 성문 근처에서 자선 활동을 했다.

 사슴과 늑대를 사냥하다가 다친 초보자들에게 치료의 손

길 걸어 주기!

 "우와아, 생명력이 200도 안 남았었는데 한번에 치료가

됐어! 사제님, 고맙습니다."

 "아니에요. 뭘요. 다치면 또 오세요."

 천사 같은 그녀의 자선 활동에 초보자들 사이에는 칭찬이

자자했다.

 '남쪽 성문의 여사제.'

 '착한 성격의 그녀'

 '다치면 녹색 모자의 여자에게 가면 된다.'

 이리엔은 전사들에게는 축복도 써 주었다.

 원래는 스킬 숙련도도 올리고 어려운 사람들도 돕기 위한

행동이었는데, 이제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져서 도시에 오면

으레 치료 봉사 활동을 해 주게 되었다.

 "천사표네."

 "저런 여자한테 장가를 가야 하는데..."

 그녀에게 관심을 보이는 남자들도 많았다. 착한 여자는 대

대로 인기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리엔은 남자들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았다.

 "죄송해요."

 "혹시 남자 친구가 있으신 건..."

 "그건 아닌데요, 지금은 남자를 만나고 싶지 않아요."

 "그러시군요. 나중에라도 생각이 바뀌시면 저 로모모를

꼭 찾아 주세요."

 "넵. 그렇게 할게요."

 이리엔은 평생 신중하게 한 남자만 만날 생각이었다.

 한 남자와만 사귀고, 데이트도 하고, 결혼까지!

 그런 이리엔도 가끔 스트레스가 쌓여 갈 때가 있었다.

 보통 사제라는 직업은 전투 중에 심심해서 꾸벅꾸벅 졸

것 같다. 그리고 실제로도 많은 사제들이 밤에 사냥을 할 때

는 편안히 쉬다가 딴짓을 하거나 잠깐씩 토막 잠을 자기도

한다.

 사제로서 치료만 해 주면 되기 때문에 오래 있을수록 지루

한 직업인 것이다.

 심지어 개, 고양이 같은 애완동물을 데리고 다니는 경우도

있다.

 사제들이 없으면 사냥 자체가 제대로 안 되는 경우가 많아

서, 모든 직업을 통틀어서 가장 우대를 받는 편이지만 그만

큼 심심한 감도 없지 않았다.

 느긋하고 편안하고 조용한 성격을 가진 사람에게 딱인

직업!

 그렇지만 이리엔은 전투가 벌어지면 눈코 뜰 새 없이 바

빴다.

 위드가 워낙 거칠게 사냥을 했기에 몬스터들의 공격력이

높은 곳들을 위주로 다녔다. 그게 버릇이 되어 버려 페일과

다른 일행끼리만 사냥을 할 때에도 무난히 전투가 될 정도면

더 어려운 곳으로 옮겼다.

 전투 계열 직업들이 앞에서 빠르게 사냥을 하는 동안에 이

리엔은 마음을 졸이면서 그들을 지원해 주어야 하는 것이다.

 "아, 답답하다."

 이리엔은 성문에서 치료의 손길을 펼치면서 천사 같은 웃

음을 잃지 않았다.

 그녀는 화령과 벨로트를 기다리고 있었다.

 스트레스 해소에는 역시 쇼핑만 한 것이 없지 않던가.

 저녁 할인 시간이 되면 모라타의 가죽 상점들을 돌아다니

는 맛!

 새벽에는 야시장을 훑으면서 예쁜 액세서리들을 찾아보는

취미를 갖게 된 것이다.

 "요즘 사제 전용 가방이 나왔다던데..."

    * * * * * * * * * * * *

 브리튼 연합 왕국을 9할 이상 장악하고 있던 클라우드

길드.

 한 왕국을 제패하기 직전으로, 길드에 대한 자존심이 매우

컸다.

 하지만 헤르메스 길드의 침공 이후에 전투가 벌어지기만

하면 커다란 격차를 드러내며 패배했다.

 "사망자는 4만 8천. 요새 렝봇이 함락되었습니다."

 "야볼리스 군사 요새는요?"

 "적들에게 포위를 당했습니다."

 "하지만 그곳의 수비력은 보통이 아니기에 족히 3달 이상

은 버틸 수 있을 겁니다."

 "문제는 보급품인데, 식량은 충분합니다. 요새 내에서 우

물로 식수를 공급받을 수 있고요."

 "그러면 된 거 아닙니까?"

 "화살과 갑옷, 무기류 등 여분의 소모품들이 부족합니다.

전투가 몇번만 벌어지면 다 떨어지고 말 것입니다."

 클라우드 길드의 회의실에는 침통함이 가득했다.

 지금까지 그들은 전력상으로 헤르메스 길드에 크게 뒤진

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헤르메스 길드가 유명세나 병력 규모

에 있어서 상당한 우위를 점하고는 있지만, 전체적인 저력은

비슷하다고 여겼다. 브리튼 연합 왕국은 경제력이 부강한

공국과 자유도시가 많기 때문에 전력 격차는 만회할 수 있다

고 본 것이다.

 싸울 때마다 승리하며 왕국을 확실히 장악해 나가고 있었

던 중이라서 약간의 자만심이 있었던 것도 사실.

 그렇지만 헤르메스 길드의 군대는 사람들이 추측하고 있

던 이상으로 강했다. 기사들의 수준도 대단히 높았고 병사들

의 장비도 좋았다.

 하벤 왕국을 통합한 이후로 칼라모스 왕국과도 전쟁을 치

르면서, 지휘관들이 평원에서 10만 이상이 맞붙어 싸우는

전투를 경험한 적이 있다는 것도 장점!

 클라우드 길드에서는 5만 이상의 전투만 벌어져도 지휘관

들이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했다. 적군이 쳐들어오면 싸워야

될지 말아야 할지조차 신속하게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당황

하여 시간을 흘려보냈다.

 실제 전투에서는 그 격차가 더욱 커져서, 조금만 불리하더

라도 그럿된 판단을 내리거나 하는 경우 때문에 황당한 패배

를 경험하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지휘관과 기사의 질에서 너무나도 밀리는 클라우드 길드

였다.

 "단기전으로 나가서 싸울 필요가 없습니다."

 "조금만 버티면 반격할 군대를 모을 수 있습니다. 전쟁에

나가서 싸울 병사들의 훈련도 역시 지금보다 더 올려야 됩

니다."

 공성전으로 시간을 끌고 용병들을 충원하여 전세를 뒤집

으려고 했지만, 브리튼 연합 왕국의 성과 도시 들은 수성에

취약했다.

 자유도시들은 성벽도 그리 높지 않았으며 방어 시설도 취약했

다. 설상가상으로 군사 요새들은 보급 물자도 제대로 준비되

어 있지 않았다.

 클라우드 길드가 필요할 때마다 빼서 소모해 놓고 보충을

하지 않은 것이다.

 클라우드 길드는 브리틑 연합 왕국에서 자라난 길드였다.

그렇기 때문에 내전은 겪어 봤어도 국가 간의 공성전은 경험

해 보지 못했다.

 영주들끼리의 공성전에서는 성벽만 버텨 주면 궁수들과

마법사들을 배치하여 얻는 이들이 굉장히 크다. 하지만 하

벤 왕국의 군대는 약한 성벽 따위에 의지해서 버틸 수가 없

었다.

 "바드레이라도 막으면 무언가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도

같은데..."

 "용병 지원 상황은 어떻습니까? 전쟁에 참여하면 지급하

는 돈을 늘렸을 텐데요."

 "유저들이 거의 나서지 않습니다. 거듭된 패배에다, 헤르

메스 길드에서는 패배한 쪽을 살려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브리튼 연합 왕국의 유저들이 용병 계약을 하고 클라우드

길드와 같이 싸울 수 있었다.

 물론 클라우드 길드 역시 대외적인 이미지가 좋은 편은 아

니었다. 그러나 전쟁 용병은 돈을 보고 하는 것이라서 많은

유저들이 참여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불리한 상황을 대변하기라도 하듯이, 이번에는 용

병 고용 비용을 3배나 늘렸는데도 모집이 잘되지 않았다.

 헤르메스 길드의 잔악성 때문에, 패배하고 죽임을 당하면

잃는 것이 더 크기 때문이었다.

 "비싸더라도 다크 게이머라도 고용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다크 게이머들은 연락 사무소도 폐쇄하고, 전쟁에는 참

여하지 않는다고 선언을 했습니다."

 "이렇게 되면 계속 필패입니다. 모든 면에서 우리가 갈수

록 불리해지고 있습니다."

 "아직 우리가 내보내지 않은 군대도 많이 있습니다. 훗

날 전쟁을 일으킬 때를 대비해서 훈련시키고 있는 군대도

있고요."

 "지금 당장 시간과 준비가 부족하다는 것이 제일 큰 문제

죠. 적의 파상 공세가 너무도 대단합니다. 오데인 요새와 시

슬레 성에서 장기전을 꾀할 수는 있지만, 이곳들마저도 무너

지게 되면 수도 함락도 시간문제일 것입니다. 어떻게 하든

이곳들은 지켜야 됩니다. 그리고 전력을 모아서 강력한 반격

을 가해야 합니다."

 하벤 왕국과 브리튼 연합 왕국.

 그렇지만 그 배후에는 헤르메스 길드와 클라우드 길드 간

의 전쟁이라고 볼 수도 있었다.

 왕국 간의 격차도 있었고, 뚜껑을 열고 나니 길드 간의 실

력 차이도 상당히 컸다.

 매일 거대한 공성전, 평원에서의 대전이 벌어지고 있었기

에 유저들은 걱정하면서도 오랜만에 시원한 큰 전투들을 구

경했다.

 겉으로 보이기에는 클라우드 길드의 연전연패. 하지만 대

륙 최대 명문 길드 중의 한 곳이기에 숨은 저력도 만만치는

않았다.

 클라우드 길드에서는 여러 번의 피해를 입었지만 아직 엄

청난 군대가 남아 있었고 브리튼 연합 왕국의 빼앗긴 땅은

10%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국경 부근이 무너졌다고 해도 전쟁은 이제부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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