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다크 게이머의 숙명
하벤 제국의 수도 아렌 성.
이곳에서는 방대한 부지에 황제의 궁전 건축 작업이 이루
어지고 있었다.
평탄한 곡창지대를 밀어 버리고 바드레이의 통치력을 널
리 떨치기 위한 호화스러운 궁전을 짓기로 하였다.
"예술가들과 건축가들을 모아라."
헤르메스 길드에서는 그동안 예술에 대하여 인색하기 짝
이 없었다.
위드가 조각술을 알리고 난 이후에, 길드 차원에서 몇 명
의 조각사를 전략적으로 키우기는 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만
들어 내는 조각품들은 어쩌다 발굴되는 고대의 예술품보다
못했다.
화가와 조각사 등에 대한 지원은 어느 순간 사라졌고, 예
술가들은 하벤 왕국에서 점점 떠나갔다.
그렇지만 황제의 궁전을 짓기 위해서는 필요한 존재들이
라서 부르고 있었다.
"황궁을 지어서 주민들의 충성도를 강제로 올리고, 세금
은 2% 정도를 추가로 더 올릴 수 있을 것입니다."
"전쟁에서 투항한 병사들을 광산으로 보내도록 하지요."
라페이가 진행하는 수뇌부 회의에서는 제국의 주민들을
쥐어짜 내기 위한 각종 아이디어들이 속출했다.
전쟁 승리 기념 세금.
황궁 건설 세금.
아렌 성 시설 정비를 위한 임시 세금.
군대의 시가지 행진을 위한 세금.
영토 확장에 따른 임시 세금.
위드가 들었다면 무릎을 치며 감탄하였을 참신한 의견들
이 나왔다.
"라살 왕국에는 드워프들이 제법 많이 살고 있습니다. 그
들을 강제로 잡아서 노예로 부려도 될 것 같습니다."
"일부 점령 지역에서 폭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진압은
문제가 되지 않지만 치안이 낮아져서 엠비뉴 교단이 퍼지고
있는 중입니다."
하벤 제국 역시 들불처럼 퍼지고 있는 엠비뉴 교단에 피해
를 입고 있었다. 하지만 헤르메스 길드의 최상층 수뇌부는
그에 대해서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엠비뉴 교단이 대륙을 피폐하게 만들수록 그들은 사람들
의 경계를 조금 덜 받으면서 점령 작업을 진행할 수 있다. 대
륙을 정복하고 그 후에 엠비뉴 교단과의 전쟁을 선언하여 민
심을 얻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엠비뉴 교단과의 전쟁에 새로운 명목의 세금은 당연
히 필요할 것이다.
헤르메스 길드에서는 대륙을 완전히 정복하고 난 이후에
도 강성한 군대를 유지하며 유저들을 착취해 갈 작정이었다.
* * * * * * * * * * * *
"나쁜 놈들."
헤르메스 길드가 전쟁을 중단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듣자
마자 위드의 입에서는 본능적으로 욕부터 나왔다. 무언가 이
상한 낌새를 바로 눈치챈 것이다.
"뭔가 아주 안 좋은 꿍꿍이가 있어. 아무튼 나쁜 놈들은
믿을 수가 없다니까."
철학자들의 성선설, 성악설을 뛰어넘는 나쁜 놈 꿍꿍이설!
위드는 바하모르그를 앞세워서 서윤과 전투를 하면서 꼬
박꼬박 성장을 하고 있었다.
던전 사냥을 하며 각종 재료들을 입수하여, 요리 스킬도
드디어 고급에 올랐다.
-중급 요리 스킬의 레벨이 10이 되어 고급 요리 스킬로 변화됩니다.
다루기 까다로운 식재료들, 절임 요리, 발효 요리, 독을 가진 요리들을
부작용을 최소화하여 만들 수 있습니다.
음식의 보존 기간을 크게 높일 수 있습니다.
전문 요리를 제조할 수 있습니다.
전 스탯이 20포인트씩 늘어납니다.
요리에서도 대가라고 불릴 수 있게 됐다.
어느 도시로 가서 간단한 빵만 굽더라도 먹고살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노가다의 성과란 초창기보다는 후반에 더욱 크게 부각되
는 법.
그렇지만 위드는 누구나 그렇듯이 미래에 대한 불안감도
갖고 있었다.
"내가 꼬박꼬박 연금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4대 보
험도 적용이 안 되지. 일을 그만둘 때 퇴직금도 나오지 않아."
지금은 짭짤하게 벌어들이고 있지만 미래는 알 수 없는 것.
직업 자체가 다른 프리렌서들처럼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얼마 전에 다크 게이머 연합에 공지 글 이후로 최고의 조
회 수와 반향을 기록한 게시물이 있었다.
제목 : 제가 결혼을 하려고 했습니다.
3년간 사귀어 온 사랑하는 여자가 있습니다.
어제 장인어른을 만나 뵙고 인사를 드렸죠.
그리고 저는 지금 울고 있습니다.
여자 친구는 괜찮다고 위로를 해 주지만 저 스스로가 견딜 수가
없네요. 장인어른과 제가 나누었던 이야기를 짧게 적어 보겠습니다.
"그래, 자네 지금 하는 일은 뭔가."
"예, 장인어른. 혹시 로열 로드라고 아십니까?"
"알다마다! 신문이나 텔레비전에서도 매일 나오고, 최근에 가장
잘나가는 기업이 유니콘이라고 했지. 매년 벌어들이는 수익이 엄청
나다면서? 직원들의 복지 혜텍도 상상이 안 될 정도라던데, 그래,
유니콘 사에 다니고 있었는가. 우리 효선이가 남자 하나는 제대로
만났구만."
"아니요. 직원이 아니라 로열 로드를 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의뢰
를 받거나 사냥을 해서 얻은 아이템을 팔아 돈을 벌고 있습니다."
"...그래, 모아 놓은 돈은 좀 있는가?"
"약간 있습니다."
"얼마나 되는가?"
"지금 제가 착용하고 있는 장비들을 시세대로 처분하면 아마 집
보증금은 구할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최근에 독 계열 아이템들 경
매 가격이 계속 오르고 있어서요."
"..."
"..."
"효선이 데려가면 고생은 안 시킬 수 있고?"
"예. 매일 18시간씩 캡슐에 들어가서 열심히 로열 로드를 하겠습
니다."
"..."
고등학교 때 다녔던 독서실을 넘어서는 정적. 이 슬픔을 아십니까?
다크 게이머들이라면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일종의 서비스업이지만 세상에 드러내 놓고 소개하기에는
개운하지가 않았다. 직업의 안정성, 일정한 소득, 복지 혜택
이 전무하였으니까.
더군다나 헤르메스 길드의 확장은 워낙에 거대한 위협이
었다.
다른 유저들도 헤르메스 길드를 부담스러워할 테지만
아르펜 왕국의 국왕 신분인 위드가 느끼는 압박감은 더욱
컸다.
조각사 직업 마스터를 최초로 하더라도 그때쯤 바드레이
와 헤르메스 길드가 중앙 대륙을 통일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
겠는가.
하벤 제국의 대군이 북부로 와서 아르펜 왕국을 짓밟게 되
리라.
위드가 거액의 돈을 투자해서 세운 건물들이 부서지거나,
헤르메스 길드에서 차지하고 써먹게 될 것이다.
위드는 그런 쪽에 있어서는 마음이 여린 편이었다.
"속도 쓰리고 화병이 나서 병원비가 계속 나올지도 몰라."
방송으로 최초의 직업 마스터라면서 화려한 조명을 받은
후의 급격한 추락!
위드는 그런 걱정을 하지 않을 수가 없는 처지였다.
"아르펜 왕국은 내 밥그릇이야."
위드의 밥그릇에 대한 애착은 남달랐다.
동네 강아지들조차도 넘볼 수 없는 그의 밥그릇!
"밥그릇을 지킬 방법을 마련해야 되겠군."
그 어떤 위협에서도 아르펜 왕국을 지킬 수 있는 방법.
"스승님과 사형들에게 부탁을 해야 되겠지."
원래 어려운 일일수록 친한 사람들에게 떠넘겨야 된다. 지
금까지 구워 준 고기와 바쳐 온 술병들을 생각한다면 얼마든
지 나서 줄 것이다.
하지만 검치와 수련생들이 강하더라고 해도, 그게 전쟁 규모
로 단위가 커진다면 집중적인 마법 공격 등으로 인하여 한계
가 있었다.
그들만으로는 많이 부족했다.
"어디 놀고먹는 조각 생명체들을 데려와서 부려 먹을 수
없을까."
착취로 상황을 극복할 생각도 해 봤다.
위드 또한 매우 원하는 바이기는 했지만, 이것으로도 헤르
메스 길드를 상대할 수는 없었다. 조각 생명체들을 만나서
친밀도와 공적치를 쌓아서 데려오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기 때문이다.
전투와 관련이 있는 종족이 아니라면 그다지 도움이 되지
도 않는다.
아르펜 왕국이 장기적으로 커 나가는 데에는 도움이 될 테
지만, 얼마 후면 다가올지도 모를 위협이 문제였다.
"왕국을 지키기 위한 군대를 더 많이 양성해야 되겠지. 하
지만 지금은 고작해야 몬스터들과 싸우는 수준밖에 안 되는
데... 시간이 주어지고 돈을 투자한다고 해도 하벤 제국을 막
아 낼 정도까지는 안 될 거야."
여러 가능성을 떠올려 보더라도 도무지 하벤 제국과 상대
할 수가 없었다. 발전으로 차근차근 이루어 나가는 것보다는
중앙 대륙의 발전된 도시를 점령하고 약탈하는 편이 더 빠르
기 때문이었다.
"냉정히 봐서 내가 그들보다 나은 점은 없어. 왕국의 규모
나 인구, 발전도, 그 어떤 것도 비교할 수가 없고, 보유하고
있는 병력은 말할 것도 없지. 전쟁이 벌어진다면 못 이겨."
미래를 생각한다면 지금이라도 아르펜 왕국을 포기하는
게 합리적인 판단이었다. 헤르메스 길드가 아닌 중앙 대륙의
다른 세력이 오더라도 지킬 힘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은 인구와 군사력도 상당히 커졌기에 중앙 대륙
의 평범한 길드쯤이야 무서울 것이 없었지만, 대적하기 어려
울 정도로 커진 5대 길드가 문제였다.
"무언가 승부를 걸 만한 것이 필요한데..."
위드는 자신이 갖고 있는 것들을 돌아보았다.
누렁이의 밭 가는 능력, 빙룡의 브레스, 불사조의 화염 깃
털, 지골라스의 생명체들.
2~3년쯤 더 사냥터에서 굴리면서 키우면 굉장한 전력이
될 테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쟁을 이기지는 못한다.
금인이를 뇌물로 바치더라도 해결되지 않을 문제이리라.
"그래도 조각술에 무언가 기회가 있을지도 몰라. 아직 나
만의 기술을 만들어 내지도 않았지. 그리고 조각사의 전설이
라고 할 수 있는 최후의 비기도 있어."
생명 부여와 조각 변신술, 조각 검술, 대재앙의 조각술,
정령 창조 조각술을 모두 익히고 나서 도전할 수 있다는 최
후의 비기.
위드는 조각술 최후의 비기에 대한 기대가 있었다.
밤에 잠을 자며 그 스킬을 얻어서 떼돈을 벌며 잘사는 꿈
을 몇 번이나 꾸었을 정도다.
"설마 최후의 비기가 단순하게 대상의 조각품을 만들어서
저주를 부여한다거나... 진짜 예쁜 조각품을 표현할 수 있는
아름다운 조각술이라거나... 조각 생명체들을 끌어들인다거
나, 혹은 자기 자신의 조각품을 깎아서 능력을 올린다거나
하는 단순한 건 아니겠지."
여러 가지 우려에, 기대도 되고 불안감도 있었다.
지금까지의 과정을 돌이켜 본다면 어떤 조각술이 나올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노릇.
조각술 최후의 비기가 어쩌면 전투 능력을 상승시켜 주는
것은 아닐 수도 있지 않은가.
어쨌든 대륙의 상황이 불안정한 이상 위드는 결정을 내려
야 했다.
"직업 마스터 퀘스트는 이제 남은 숙련도만 채우면 끝이
야. 최초가 될지 아닐지는 모르지만, 조각품을 만들면서 스
킬을 마스터하면 완료하게 되겠지. 그렇다면 최후의 비기에
도전을 한다면..."
조각술 최후의 비기.
누구도 갖지 못한, 위드만 도전할 수 있는 마지막 기술.
"더 늦기 전에 최후의 비기를 구한다면 어떤 기회라도 생
길지 모르겠어."
조각술에 마지막 기대와 희망을 걸어 보기로 했다.
어떤 기술이 나오느냐에 따라서 미래가 달라질 수 있지 않
겠는가.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그런 스킬이 나온다면 헤르메스
길드와 맞서 싸워야지. 그들과 싸우겠다고 하면 나서 주는
다른 사람들이 있을지도 몰라. 그리고 그 정도의 스킬이 아
니라면..."
조각술 최후의 비기가 한마디로 별로라면.
"바로 무릎을 꿇고 항복해서 살려 달라고 빌어야 되겠군."
위드는 조각술의 비기도 일단은 만들지 않고 미루어 두기
로 했다. 당장 쓸 만한 스킬을 결정하면 사냥이나 조각술 숙
련도를 올리는 데는 더 편해지겠지만 지금으로써는 최후의
비기를 획득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어떤 난관이 있을지 모르니 상황에 맞춰서 행동해야 되
겠어."
최후의 비기는 잘못하면 영영 얻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하는 승부였다.
대륙의 불안한 정세로 인하여 위드는 도전을 하기로 했다.
"왠지 오늘 일을 앞으로 두고두고 후회할지도 모르겠어."
가늘고 길게 살고 싶었음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더 큰 모험
을 하게 만드는 운명이었다.
* * * * * * * * * * * *
위드가 대륙에 만들었던 수많은 조각품들.
사람들에게 팔리거나, 혹은 벽이나 바위에 조각을 하여
그 장소에 남겨진 것들이 있다.
"이것은... 작품이군."
꽁지의 털이 두 갈래로 갈라진 조인족 바라보!
그는 여행을 하는 도중에 위드가 남겨 놓은 조각품을 발견
하였다.
"좋은 조각품이군. 이런 실력이라면 충분히 뛰어난 조각
사라고 할 만하다."
바라보는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언젠가 만날 날이 있겠지."
조인족뿐만이 아니었다.
위드가 그동안 깎은 조각품의 수량은 엄청날 정도였다.
노가다를 했으니 그만큼 흔적이 대륙으로 퍼져 나가게
된 셈.
바위나 땅, 나무에 새겨 놓고 가져가지 못한 것들뿐 아니
라 판매로 처분한 양도 상당했다.
바가지를 듬뿍 씌워서 팔았던 조각품들은 유저들 사이에
지속적으로 거래되며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넓은 곳으로 흩
어지게 되었다.
특별한 옵션이 걸려 있지 않은 경우에는 버리거나 친밀도
를 높이기 위하여 다른 주민에게 선물을 했다. 던전 사냥에
가지고 가서 죽음으로써 잃어버리거나 하여 조각품이 그곳
에 계속 남게 된 경우도 있었다.
그런 조각품들은 위드에 대하여 알리는 흔적이 됐다.
"실력이 아직 부족하군."
"위드라는 조각사의 작품이 또 우리의 손에 들어왔다."
깊고 먼 곳에서 살아가는 조각 생명체들도 위드의 작품을
가끔 발견하기는 했다.
아르펜 제국이 무너지고 나서 조각 생명체들은 은둔을 결
정하였다. 인간들과 더불어서 살아 봐야 오히려 서로에게 해
만 된다는 것을 알아 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재까지 내려오면서 상당히 많은 조각 생명체들
이 멸종했다. 나머지 조각 생명체들은 몬스터화가 진행되거
나 아니면 숨어서 지냈다.
그들은 예술을 바라볼 줄 아는 조각사가 직접 가서 깨우지
않은 한 자신들의 정체를 밝히지도 않았다.
위드가 대륙의 많은 곳들을 헤집고 다녔다고는 해도, 조각
생명체들은 더욱 깊고 은밀한 곳에 숨어서 살아가고 있었다.
지골라스에도 조각 생명체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화산의
깊은 연기 속에서만 지냈기에 발견되지 않았다.
"얼마 전에 이곳에도 조각사가 왔었다."
"무슨 소리인가. 조각사를 만나 보았는가."
"나에게 생명도 주었다."
조각사 길드의 8대 수장 젠버린과 그의 동료들이 만든 대
작 조각품.
지골라스의 불가사의, 영웅을 기다리는 고요한 탑은 생명
을 부여받은 이후로도 떠나지 않고 쭉 그곳에서 지내오고 있
었다.
다른 조각 생명체들과도 조우하고 나서 위드에 대한 이야
기를 했다.
위드가 뿌려 놓은 조각품들, 그리고 수많은 인연이 대륙
전체로 많이 퍼져 있었다.
"그 조각사는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는가."
"오래 만나 보지는 않았지만, 쪼잔한 것 같았다."
* * * * * * * * * * * *
바드레이는 전쟁이 벌어질 때에도 시간을 내서 가까운 던
전에서 사냥을 했다.
그는 길드의 지원을 받으며 누구보다 효율적으로 사냥을
하고 있었는데, 하벤 제국의 황제로서 침략 전쟁의 축하 연
회에도 참석하지 않고 사냥터로 왔다.
"일점 공격술이 상당히 쓸 만하군."
현재 바드레이가 있는 장소에는 대형 몬스터들이 많았다.
두더지처럼 생겨서는 몸에 가시가 돋아나 있는 대형 몬스
터들이 지하 던전 안을 돌아다녔다.
레벨이 500대에 이르는 몬스터들!
놈들의 생명력이 워낙 크고 피부가 강철을 두른 듯이 단단
하고 가시까지 돋아나 있어서, 공격할 때마다 역으로 피해를
입었다.
바드레이는 위드가 보여 주었던 일점 공격술을 활용하며
친위대와 함께 마울러들을 사냥했다.
"갈수록 강해지십니다."
"역시 이번 마울러도 마지막은 바드레이 님이 장식하셨
군요."
대형 몬스터에, 방어력이 높을수록 일점 공격술을 시원하
게 먹혀들었다.
바드레이는 새로 익힌 공격법을 매우 잘 써먹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경악스러운 파괴력이, 일점 공격술에 의해
서 더욱 높아졌다.
바드레이는 남들보다 사냥터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고
심지어는 몬스터를 기다리며 휴식을 취하는 순간도 의미가 없
이 보내지 않았다.
위드라면 생명력과 체력도 회복할 겸, 몬스터가 나타나길
기다리며 조각품을 깎았으리라.
그러나 바드레이는 조각술 같은 예술 스킬은 알지 못했고,
철저히 전투로 성장할 뿐이었다.
대신 그는 사냥의 중간마다 잠을 잤다.
수면을 취하면 생명력과 체력의 회복 속도가 평소보다 훨
씬 빨라지게 된다. 전투를 하더라도 더 오래 지치지 않을 수
있었으며, 사냥 중간마다 수면을 취하면서 실제로 잠을 자야
하는 시간마저도 줄일 수가 있었다.
* * * * * * * * * * * *
"모든 것이 무너지고 말았군."
바드레이는 어느 산기슭에 혼자 서 있었다.
대륙을 공포로 몰아넣으며 통일 제국이 되려고 하던 하벤
제국은 산산이 붕괴되었다.
바드레이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무신으로 떠받들렸지만
그 영광마저도 위드가 가져가고 난 후였다.
위드의 지휘력과, 도저히 흉내도 낼 수 없는 전투 방식에
져 버렸기 때문이다.
"후후, 후련하기도 하구나. 계속 무언가에 떠밀려 가듯이
살아왔으니."
바드레이는 홀가분한 기분을 느꼈다.
모든 것을 손아귀에 쥐기 위해서 살았던 시절, 헤르메스
길드를 내세우며 탐욕에 충실하였다.
그게 후회가 되는 건 아니었다.
남자로서 한번쯤은 도전해 볼 만한 목표였다.
그리고 그 꿈이 깨어진 지금은 무거워진 어깨가 가뿐해진
기분이었다
이제 기초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으리라.
"모험도 하고, 의뢰라는 것도 해 보아야지."
바드레이는 조용히 살아가면서 대륙을 여행하며 즐기고
싶었다.
헤르메스 길드도 해산하고 난 이후이니, 진정한 베르사 대
륙의 재미를 이제 여유롭게 맛볼 수 있으리라.
바드레이가 천천히 걸어가는데 그에게로 다가오는 사람이
있었다.
전쟁의 신 위드.
현재 엄청난 권력을 가지고 베르사 대륙의 새로운 지배자
로 떠오른 그였다.
위드의 주변에는 자주 봐서 익숙한 뱀파이어 로드 토리도
와 데스 나이트 반 호크가 수행하고 있었다.
"어디를 가지?"
위드의 앚게 깔린 목소리에는 위압감이 가득했다.
절대 넘볼 수 없는 그런 존재처럼 느껴지는 분위기가 흘
렀다.
"이제 조용히 살려고 한다. 나의 패배를 인정하겠다."
바드레이는 진 마당에 깨끗이 승복하는 마음이 컸다.
아무리 노력해도 도저히 위드를 따라잡지 못했다. 헤르메
스 길드라는 든든한 울타리까지 부서진 지금으로써는 더욱
상대가 안 되리라.
위드가 고개를 저었다.
"이렇게 보내 줄 수는 없다."
"그렇다면..."
바드레이는 혹시나 하는 기대감을 가졌다.
대륙을 장악하려고 했던 자신의 능력을 높이 사는 것인가.
위드의 동료나 부하가 된다면 그것도 새로운 길로서 나쁘
진 않을 것만 같다.
'다시 기회가 생기는 것이야. 그리고 힘을 더 키워서는 나
중에는 배반을...'
활활 타오르려고 하는 야망.
그러나 위드의 말은 그의 상상을 산산이 짓밟는 것이었다.
"네가 착용하고 있는 장비들이 꽤 좋은 것이더군."
"그러면..."
"몽땅 뺏을 때까지 죽여 주마."
스르릉.
위드가 검을 뽑았다.
* * * * * * * * * * * *
"허억."
바드레이는 눈을 번쩍 떴다.
친위대에 속해 있는 유저들이 던전에서 흩어져서 쉬고 있
었고, 저 앞에는 마울러의 사체가 보였다.
'꿈이었나.'
바드레이는 심호흡을 하면서 정신을 가다듬었다.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은 친위대라 할지라도 악몽을 꾸었
던 걸 알리고 싶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항상 강한 모습으로
만 있어야 했기에.
오늘만이 아니라 벌써 몇 번째 비슷한 꿈이었다.
'마법의 대륙 시절에 그에게 패배했던 사건 때문에 그런
꿈을 꾸었을까?'
심리적으로 이리가 있는 이야기였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고, 심지어는 위드조차도 그에 대해서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단지 오래된 과거가 지
금 선명하게 떠올랐다고 볼 수는 없으리라.
'로열 로드에서 나의 경쟁자...'
바드레이는 가장 강한 세력과, 무신이라고 불려도 어색하
지 않을 정도의 힘을 가졌다.
'다른 놈들은 문제 될 것이 없다.'
아직 맞붙지 않은 사자성, 로암 길드, 블랙 소드 용병단.
각 지역을 제패하고 있기는 해도 헤르메스 길드보다는 약
했다.
개인적으로도 바드레이는 그들의 수장들과 싸워서도 가뿐
히 이길 수 있다고 여겼다. 바드레이가 레벨과 전투 능력을
속인 상태에서도 그들보다 강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을 정도
이기 때문이다.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으니 대륙 점령 계획에 따라서 행동
하다 보면 만나게 될 것이다.
사실 그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다만 이해할 수 없는 건 위드...'
위드에 대해서는 언제나 신비롭다.
로열 로드의 초창기에는 틀림없이 그의 이름을 들어 본 적
이 없었다. 언제부터인가 뒤늦게 두각을 내더니 무서운 속도
로 뒤쫓아 오고 있다.
다른 어떤 세력의 지원도 받지 않고, 불가능하다고 평가받
던 퀘스트를 완료했다.
대단한 모험가의 자질을 갖고 있지만 헤르메스 길드를 지
배하는 바드레이가 신경을 써야 할 필요까지는 없었다.
대륙의 웬만한 성이나 도시에는 영주가 있었고 위드의 자
리는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는 남들이 가지 않는 북부를 인간이 살아갈 수
있는 땅으로 만들고 나서 왕국까지 세웠다.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은 전투 능력.
방송에 출연하던 초창기만 하더라도 레벨은 분명 낮은 것
같았는데 멜버른 광산에서 싸워 본 바로는 어느덧 만만하지
가 않았다.
위드가 확실히 남들과는 뭔가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언제라도 잡초처럼 살아나서 무시무시하게 커 나갈 것 같
았다.
존중과는 다른 의미로 반드시 이겨야 하는 대상!
'분명히 놈을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바드레이는 어쩌면 그 순간이 기다려졌다.
위드가 활용했던 일점 공격술을 사용하고 그가 전투에서
보여 주었던 습관들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면서 약점을 보완
하는 과정에 있었다.
'그래서 이런 꿈을 꾸는 것인지도...'
바드레이는 그런 사소한 두려움조차도 기분 좋게 받아들
이기로 했다.
베르사 대륙을 정복하는데 탄탄대로인 것도 재미가 없지
않은가. 지금까지 너무 훌륭할 정도로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
었다.
'다음번에 만나게 된다면 더욱 철저히 짓밟아 주지. 다시
는 날뛰지 못할 정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