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벌새의 삶
하늘에서 위드는 가야 할 방향부터 정해야 되었다.
벌새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넓은 곳을 돌아다니기 때문
에 부지런히 다닐 필요가 있었다.
'목적지가 정해진 것도 아니니 바람이 부는 대로 가야 되
겠군.'
위드는 날갯짓을 하면서 바람을 등지고 날았다.
'와삼이를 탈 때가 편했는데...'
새의 자유로운 비행과 낭만보다는 효율과 성과 지상주의!
'진짜 아주 멀리까지 날아 봐야 되겠다.'
얼굴에 바람이 세차게 부딪칠 정도로 맹렬한 속도로 비행
했다.
벌새는 시속 100킬로미터 이상으로 빠르게 날았고, 날갯
짓은 초당 100회 가까이나 되었다.
-포만감이 24% 이하로 떨어졌습니다.
날기 시작할 때 위드는 포만감이 70%대인 것을 확인했다.
그런데 날갯짓을 빨리하다 보니 얼마 지나지 않은 짧은 시간
에 포만감이 이렇게 많이 줄어들어 버리고 만 것이다.
'잠시 후에 적당한 곳에 내려서 식사를 해야 되겠군. 꽃가
루도 채취를 해야 되고.'
바람을 타고 고속도로를 질주하듯이 날고 있었기 때문에
일단 멈추지 않고 계속 가려고 했다.
-포만감이 10% 이하로 감소했습니다.
심한 굶주림을 느끼게 되며, 힘과 체력의 최대치가 82%까지 감소합니다.
포만감이 떨어지는 속도가 무시무시할 정도였다.
위드는 급하게 지상으로 내려가서 먹을 것을 찾아다녔다.
숲과 들에서 꽃을 찾아, 주삿바늘처럼 긴 부리를 이용하여
꿀을 빨아 먹었다.
벌새는 워낙에 작기 때문에 꿀로도 배를 채울 수가 있
었다.
'역시 자연산 꿀은 신선해.'
-포만감이 상승하고 있습니다.
체력이 회복됩니다.
생명력이 15% 상승합니다.
영양가가 높은 달콤한 꿀을 마시며 포만감을 가득 채웠습니다.
위드는 몸에 꽃가루도 묻히고 나서 다시 힘차게 날아올
랐다.
일단 목표로는 로디움 근처에 있는 다른 도시를 가 보기로
했다. 강을 발견하면 상류로 계속 거슬러 올라가는 것도 재
미가 있으리라.
'조각술 최후의 비기를 획득하는 퀘스트라고 해서 무작정
어려울 거라고 여겼는데, 그래도 낭만이 있어.'
-포만감이 60% 이하로 감소했습니다.
조금 배가 고파 옵니다.
벌새의 여행!
이건 굶어 죽느냐 마느냐의 싸움이었다.
실제로도 벌새는 3시간만 먹지 않더라도 굶어 죽었다.
남들이 무심코 볼 때에는 벌새가 신비하고 예쁘다고 구
경을 할 뿐이지만, 생존이라는 게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
은 것.
엄청난 운동량으로 인하여 끊임없이 먹어야만 살 수 있는
새였다.
위드는 배가 고프면 지상으로 내려가서 꿀을 먹거나 곤충
을 집어삼켰다.
처음에는 곤충에 대하여 다소의 거부감이 있었던 것도 사
실이었다.
'그래도 어떻게 곤충을 혐오스럽게...'
그런데 급한 마음에 먹기 시작하고 나서부터는 그 감칠맛
에 혹해 일부러 찾아다녔다.
뚜르르르르.
풀벌레들이 우는 소리가 평화로웠다.
그러나 벌새가 지나가고 나면 그 후로는 바람에 수풀이 드
리우는 소리만이 들릴 뿐이었다.
하늘을 나는, 배가 빵빵한 벌새!
* * * * * * * * * * * *
아르펜 왕국은 일찍부터 자유로운 시민 문화가 꽃을 피웠
다. 예술가들과 건축가들은 그중에서도 활발하게 움직이는
직종이었다.
"후후, 이곳에도 내 작품들을 만들어 놓아야지."
"정말 이런 곳을 원했어."
예술가들은 모라타에서 실력을 갈고닦았다. 아직 대륙에
이름을 떨칠 만한 정도는 아니더라도, 시작했을 때보다는 훨
씬 실력이 늘어나 있었다.
화가들은 물감을 배합하여 자신만의 색으로 풍경화를 그
릴 수 있었으며, 조각사들은 아무리 큰 바위더라도 달라붙어
서 작품으로 바꾸어 놓았다.
이 과정에서 무수히 많은 시행착오와 실패를 경험했는데,
예술에서는 그것이 소중한 자산이었다.
성공만 하는 예술이란 있을 수가 없다. 좌절조차도 그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하여 필요한 과정이 되는 것이 인생과 닮
아 있었다.
모라타의 예술가들은 아르펜 왕국의 확장된 마을에 가서
그곳의 문화를 더욱 확장시키는 역할을 했다.
건축가들은 모라타에서 쌓은 경험을 통해, 머리를 들고 다
니는 듀라한들처럼 간이 밖으로 튀어나와 있었다.
"이곳에 위대한 건축물이 있으면 좋겠군. 최소한 3백만
골드는 들어갈 것 같은데..."
건축가 파보는 모라타의 동쪽 성문에 벽보를 붙였다.
아르망 마을에 파보가 위대한 건축물을 짓습니다.
이곳의 주변에는 넓은 곡창 지역이 있고, 포도밭과 광산 등
이 자리를 잡고 있어서 모라타처럼 대도시로 발전할 가능성
이 높습니다.
그러므로 도시의 확장을 대비하여 예술적이고 고풍스러운
광장을 지으려고 하는데 참여하실 분을 구합니다.
예상 건축비는 450만 골드입니다.
유저들의 기부금을 받아서 짓는 위대한 건축물!
다른 도시나 왕국에서는 미친 짓이라고 여길 만한 행동이
었다. 감히 이런 일을 벌이는 건축가가 없었으며, 기부금을
납부할 사람도 없다.
그러나 아르펜 왕국은 분위기가 아주 달랐다.
"여기 1골드씩도 기부할 수 있나요?"
"된다던데요. 저는 어제 54실버 냈어요."
"가진 돈 털어서 3골드라도 내야 되겠네."
"사냥하러 가실 분 구합니다. 위대한 건축물 기부금 벌기
위해 던전 가실 분!"
위대한 건축물을 짓는 데 돈을 기부하면 그만큼의 공적치
나 도시에서의 명성을 얻을 수 있었다.
아르펜 왕국의 유저들은 나중에 아르망 마을이 아주 크게
커질 것으로 믿고 있었으므로 아낌없이 돈을 냈다.
파보는 이틀도 되지 않아서 기부금으로 450만 골드를 모
을 수 있었다.
건축가 조합 돌망치에서 유셀린 마을에 위대한 건축물을
짓습니다.
알카사르의 다리!
페실 강을 연결하는 큰 다리로, 완공되면 강을 오가면서 사
냥이나 모험, 재배 등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상 건축비는 5백만 골드 이상.
어려운 작업이라서 추가적으로 건축비가 들어갈 수도 있습
니다.
기부금은 아르펜 왕국의 모라타와 유셀린 마을의 관청에서
납부하실 수 있습니다.
뭐, 솔직히 말해서, 돈은 좀 펑펑 쓰더라도 제대로 된 다리
를 지어 보겠습니다.
바다 근처에는 사람들이 살 수 있는 탑도 지어졌다.
최상의 조망권을 갖춘 탑!
아르펜 왕국의 영역에서 지어지는 위대한 건축물만 자그
마치 6개나 되었다.
다른 그 어떤 도시나 왕곡에서도 일어나지 않은 일이 아르
펜 왕국에서 벌어지는 이유가 분명히 있었다.
건축가들은 위대한 건축물을 지어 본 경험을 가졌고, 다른
유저들은 건축물이 지어지고 나서 편리해진 생활을 누려 보
았다. 대륙의 다른 곳에서 아르펜 왕국으로 이주하는 사람은
있어도 떠나려는 사람은 없었다.
"나 브렌트 왕국 갈게."
"야, 거긴 뭐하러 가?"
"가족들도 데리고 오려고. 엄마 모시러 다녀와야 돼."
아르펜 왕국에서 장사가 잘된다기에 교역을 하러 왔던 상
인들도 그대로 눌러앉았고, 생산직 직업들에게는 이곳이 그
냥 천국이었다.
주문량이 뒤로 계속 밀려 있고, 원하는 재료들을 구하기도
쉬웠던 것이다.
모라타 시절에는 철과 구리, 금은, 보석류의 광물이 부족
하였지만 아르펜 왕국이 되고 나서부터는 의뢰와 채광을 통
하여 각종 재료들이 모이고 있었다.
불곰 길드!
북부로 이주하여 정착한 길드로, 타렌 마을을 지배하고 개
발하고 있었다.
그들은 중앙 대륙에서도 성을 다스렸던 경험이 있을 정도
로 작은 길드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아무것도 없는 타렌 마
을을 개발하기란 쉽지도 않아서 성과는 크게 거두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길드장 불곰은 약 1달 만에 로열 로드를 접속했다.
"흐윽, 드디어 여기에 돌아왔구나."
뜻하지 않은 교통사고로 인하여 장기 입원을 했던 것이다.
그가 접속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길드원들이 마을로 달
려왔다.
길드원들은 그동안 햇볕에 얼굴이 많이 그을려 있었다.
"어서 아르펜 왕국에 충성을 바치죠."
"뭐?"
"아르펜 왕국에 소속됩시다. 우리끼리 계속 이야기해 봤
는데, 불곰 형 계속 안 오면 반란이라도 일으켜서 아르펜 왕
국으로 넘어가려고 했어요."
타렌 마을의 병사는 미미한 수준이었기에 길드원 몇 명만
뭉치더라도 반란은 가능했다.
불곰은 친동생처럼 믿었던 길드원들의 말에 당황스러웠다.
"그러니까 왜?"
"텔레비전도 안 봤어요?"
"응. 그러면 더 접속하고 싶을 것 같아서..."
"말할 것도 없어요. 아르펜 왕국 한번 다녀와 보세요."
불곰은 말을 타고 모라타로 향했다.
하지만 그곳까지 갈 필요도 없었다. 중간의 유셀린 마을만
보더라도, 그가 접속하지 못하던 사이에 완전히 뒤바뀌어 가
고 있었던 것이다.
"저긴 감자밭이었는데..."
감자밭이 있던 자리에 각종 전직이 이루어지는 길드들이
지어지고 있었다.
유저들이 어느새 많이 늘었다는 증거였고, 유셀린 마을에
서 시작한 초보자들까지도 많이 보였다. 언덕 근처에 빼곡하
게 지어진 판잣집은 번영의 상징이 된 지 오래였다.
불곰은 두 곳의 마을을 더 가 보고 나서 결정했다.
"아르펜 왕국에 들어가야 되겠다!"
왕국의 휘하로 들어가고 나서도 영주의 자리는 유지할 수
있었다. 물론 세금의 일부를 납부해야 하고 왕국의 중요한
결정에는 적극적으로 따라야 하는 귀족으로서의 의무가 생
긴다. 하지만 그 모든 부담을 감수하더라도, 아르펜 왕국에
속하게 되면 충분한 보상을 받을 수 있으리라.
그렇지 않아도 벌써 북부를 개발하던 많은 길드들은 아르
펜 왕국에 복속 신청을 했다. 위드가 돌아와서 허락만 한다
면 왕국의 영토는 대대적으로 넓어질 수 있게 되었다.
* * * * * * * * * * * *
배가 빵빵하고 그새 살도 조금 오른 벌새는 하벤 제국의
상공을 날고 있었다.
딱히 이곳을 둘러봐야겠다는 생각보다는 그저 가까우니
지나가는 길에 들른 것일 뿐.
꿀을 먹고 꽃가루를 뿌리는 일을 하느라 가끔 땅으로 내려
왔다.
'음. 농경지가 잘 정돈되어 있군.'
사람들은 헤르메스 길드에 대해서 호전적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 하지만 그들은 확보한 영토를 비교적 잘 관리하
며 내정에도 상당한 힘을 쏟고 있었다.
강에서부터 끌어온 물을 농지로 유입시키는 수로도 체계
적으로 잘되어 있었고, 잘 여문 벼 이삭들은 고개를 숙이고
있다.
하벤 제국의 곡창지대에 펼쳐진 황금물결이란 언제 보아
도 평화롭고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위드는 땅으로 내려가서 누렇게 익은 벼 이삭을 실컷 쪼아
먹었다.
'음, 맛있군. 헤르메스 길드의 쌀이라 그런지 더 맛있는
것 같아.'
잔뜩 배를 채우는 벌새!
사실 위드가 먹는다고 해도 별로 티도 안 날 정도였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바로는 하벤 제국의 도시와 마을에는
주민들이 상당히 많이 살았다. 일찍부터 발전한 국가였고
경제력도 대단하였기에 중산층이 많고 기술자, 귀족 들도
보였다.
벽돌로 지어진 집들로, 도시들은 주변의 풍경과 잘 어우러
졌다.
단지 성문 근처에서 사냥을 하는 초보자들은 많지 않았는
데, 최근에 북부로 많이 몰리고 있는 까닭이었다.
주민들에게 막중한 세금을 물리고 있기에 충성도가 높진
않았어도 강력한 군대로 치안을 확고하게 다지고 있었다.
"루소폰 던전에 사냥하러 갑니다. 지하 2층까지 허가증
나왔습니다. 납부해야 하는 세금은 22%. 참여하실 분 구합
니다."
"최고의 사냥 파티, 스트로번에서 새로운 인원 구합니다.
가장 빠른 레벨 업을 보장합니다. 잡템 외에 획득한 아이템
에 대해서는 권리를 주장하지 않는 조건입니다."
위드는 무언가 말하기 어려운 답답함을 느꼈다.
사냥을 하면서도 내야 할 돈이 있고, 교역이나 생산을 하
면서도 마찬가지다. 물론 하벤 제국에서 터를 닦아 놓은 안
정적인 사냥터가 많이 있긴 해서 여전히 사람들이 몰리고는
있었지만 따분했다.
사람들은 모험을 하지 않고 그저 상상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남들보다 레벨만 빨리 올리려는 경쟁을 하고, 실제
싸우는 모습을 보니 전투력이 레벨에 비해 많이 약했다.
'허수아비 같군.'
위드는 광장을 한 바퀴 돌면서 구경한 뒤에 다른 곳으로
향했다.
"어, 작은 새다!"
벌새를 발견한 주민들도 몇 명 있었지만 대부분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에잇!"
가끔 돌을 던지는 어린아이들이 있었을 뿐!
위드가 워낙에 빠르게 날아다니기에 돌을 맞을 걱정은 없
었지만 맞으면 그날로 비명횡사할 수도 있다.
이것도 벌새로서의 고충이라면 고충이 되리라.
도시 밖에 있는 냇가에서 목을 축이고 작은 곤충도 몇 마
리 잡아먹은 후에 위드는 하벤 제국을 떠났다.
다른 벌새의 영역보다도 넓은 지역을 다녀야 되었기에 바
쁜 몸이었다.
* * * * * * * * * * * *
엠비뉴 교단의 점령 지역.
성이 검게 그을려서 타 버리고, 마을도 부서져 있었다.
위드는 지상 근처로 내려가지도 않았다.
사과나무도 불타 있었으며 평원에는 주워 먹을 곡식의 낱
알도 떨어져 있지 않았던 것이다.
비명이 하늘까지 사무치는 이곳은 가히 지옥 같은 분위기!
'정말... 상당히 심각한 곳이군.'
중앙 대륙에서 꽤나 많은 지역들이 엠비뉴의 아래에 넘어
가 있었다.
명문 길드들이 분쟁을 벌이고 있는 왕국도, 군대의 영향력
이 미치지 못하는 지방에서는 엠비뉴 교단에 의하여 초토화
되는 곳들이 나왔다.
유저들은 엠비뉴의 군대가 점령하면 위험하고 불편한 점
이 많아서 그 지역을 벗어나 버렸기에 직접 실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엠비뉴에 의한 파괴는 번성하던 대륙을 약화시킬 수도 있
으리라. 몬스터들이 더 날뛰고, 이륙했던 문명들이 파괴되
어 가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위드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강과 산을 따라 이동하며 중앙
대륙의 관광지들도 방문했다.
띠링!
-미트릿 폭포를 감상하셨습니다.
예술 스탯이 1 오릅니다.
어지간한 관광지마다 사람이 몰려 있었다.
생명력이 높으면 폭포에서 물과 함께 떨어지는 경험도 할
수 있다.
위드는 물가에서 몸단장을 하고 다시 날아올랐다.
다시 멀리 가기 위하여 하늘에서 부는 바람을 따라서 이동
하려다가 지상으로 급강하!
땅에 떨어져 있는 은화를 주워서 다시 날갯짓을 하며 하늘
로 오라왔다.
'이제 가야 할 곳은...'
중앙 대륙만 보더라도 충분히 컸지만 기왕이면 더 넓은 장
소를 여행하고 돌아와야 했다.
'남쪽은 안 되겠고.'
남쪽은 사막지대로, 벌새가 살기에 적합한 환경이 아니
다. 꿀과 곤충을 구하기 쉬운 곳을 다녀야 된다.
'익숙한 동쪽으로 가자.'
위드는 로자임 왕국을 지나서 유로키나 산맥 그리고 그 너
머의 오크 랜드 부르시리아까지 갔다.
밤낮으로 먹고 나는 여행의 반복!
중간에 지나친 로자임 왕국은 엠비뉴 교단에 망하고 나서
세라보그 성도 파괴되어 있어서 오래 머무르지 않았다.
'이곳에서 친해진 주민들이 많았는데...'
피라미드는 여전히 건재하였지만 그 주변은 강물이 범람
으로 인하여 지형이 늪지로 변하는 등 엉망이 되어 버린 흔
적이 있었다.
위드가 일으킨 대홍수의 효과.
이 주변에서는 먹을 것을 구하기 힘들어서 위드도 고생을
했다.
'역시 자연보호를 해야 돼.'
말로만 떠드는 자연보호!
마지막에 생명을 부여했던 스핑크스를 찾아보려고 했지만
발견은 되지 않았다.
당시에 위드가 와이번을 타고 떠날 때까지는 살아 있었지
만 추후 방송을 통해 결과를 알게 되었는데, 엠비뉴 교단의
전방위적인 공격에 의하여 파괴되었다고 한다.
부서진 파편은 강물에 휩쓸려 버렸거나 혹은 산산조각이
나 지상으로 뿌려져서 찾기가 불가능하게 되었을지도 모를
것이다.
로자임 왕국은 세라보그 성 주변으로 수도를 재건하고는
있었지만, 지방은 엠비뉴 교단의 손아귀로 들어가서 엉망이
되어 가고 있었다.
다행히 위드가 지나간 유로키나 산맥과 오크 랜드에는 엠
비뉴 교단에 의한 영향이 없었다. 오크와 다크 엘프는 인간
들이 내세우는 신을 믿지 않기 때문이었다.
"취익, 믿을 건 글레이브밖에 없다."
지극히 단순하기 짝이 없는 오크들.
부르시리아는 과거보다 더 큰 성세를 떨치고 있었으며, 오
크 유저들도 활발하게 개척과 부하 늘리기에 열중이었다.
위드가 오크들 사이에 조각술을 퍼트려서, 몇몇 마을들에
는 조악한 수준의 조각품이 세워져 있기도 했다.
조각품의 어깨에 앉아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깃털을 골
랐다.
눈썰미 좋은 오크 새끼들이 위드를 발견하기도 했다.
"취취췻, 저기 음식이다."
"저런 거 먹으면 배만 고파진다, 췻!"
'다른 곳으로 가야 되겠군.'
나흘 만에 부르시리아까지 도착했으니 상당히 먼 거리를
날아온 셈이었다. 그렇지만 퀘스트의 완벽한 성공을 위해서
는 더 멀리 날아갈 필요가 있다.
'동쪽의 끝까지 가 볼까?'
동쪽의 끝.
몬스터들로 막혀 있는 그 너머의 완전한 끝까지는 개척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미리 알아 두면 훗날에 퀘스트나 사냥을
하러 왔을 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벌새의 몸이라면 장거리 여행에는 최적화되어 있다고 할
수 있지만, 음식을 끝없이 먹어 줘야 하고 전투 능력이 없다
는 것이 약점.
동쪽으로 갈수록 자연환경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고 짐승
들이 아주 많이 살았다.
곤충으로 배를 채우고 있는 위드를 발견하고 몰래 다가와
서 잡아먹으려는 뱀이나 다른 비행 몬스터들도 있어서 안전
하지는 않았다.
위드에게는 레벨 400을 넘는 몬스터보다 수풀 사이에 숨
어 있는 개구리가 더 두려웠다.
'다른 곳으로 가자. 아쉽지만 위험한 모험보다는 지금은
퀘스트가 우선이니.'
비행 거리로만 놓고 계산하자면 방향을 바꾸어도 될 것 같
았다.
'북쪽 해변을 따라서 브렌트 왕국으로 가고, 섬들이 모여
있는 군도를 지나서 모라타까지 도착해야 되겠군. 그리고 다
시 로디움으로 가면 되겠어.'
벌새의 관점에서 사람들을 보고, 몬스터들도 관찰하고,
새들과도 어울릴 수 있었다.
낭만적이고 많은 생각을 떠올리게 하는 벌새의 여행이 12
일간의 대륙 일주로 변해 있었다.
* * * * * * * * * * * *
끼룩끼룩.
브렌트 왕국의 해변가.
위드는 갈매기들을 따라서 여행을 했다.
덩치가 작은 벌새라고 새들 사이에서도 무시당하기 일쑤
였다.
까악!
특히 몸이 새까만 까마귀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위드.
까마귀들은 벌새만 보면 쫓아와서 부리로 쪼려고 했기에
위드는 그들을 피해서 날아야 되었다.
물론 더 빠른 벌새의 입장에서 위험한 것은 아니었지만,
떼를 지어 횡포를 부리는 그들을 따돌리느라 상당히 번거로
웠다.
해변가에 피어 있는 꽃들의 꿀도 먹고, 꽃가루도 전파!
-만드라고라의 씨앗을 바람의 언덕에 뿌렸습니다.
이곳은 땅이 메마르고 거칠어서 유채꽃과 코스모스도 자라지 못하는
장소입니다. 그러나 생존력이 강한 만드라고라는 훗날 크게 군락을 이
루며 성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연과의 친화력을 4 얻었습니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일깨움으로 예술 스탯이 7 상승합니다.
식물이 자라게 되면 조각술 스킬의 숙련도가 높아지게 됩니다.
위드가 뿌려 놓은 꽃가루들은 벌새의 영역만큼이나 퍼트
려져서 자라게 될 것이다.
자연과의 친화력이란, 대재앙을 일으키기 위하여 필수!
'협곡 붕괴보다도 더 규모가 큰 재앙을 일으키기에 좋
겠군.'
기왕 대재앙을 일으킬 것이라면 화끈할수록 좋은 것.
식물이 퍼져서 자라고 나면 그 모습에 따라서 나중에 조각
술 숙련도도 획득할 수 있었다.
벌새의 일과라고 해 봐야 먹고 나는 것밖에는 없었지만,
자연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위드는 바다에서 섬으로도 건너갔다.
벌새가 되고 난 이후로 시력이 아주 좋아져서, 하늘에 떠
있는 갈매기들이 길 안내를 해 주는 좋은 역할을 했다.
다른 철새들의 무리를 발견하고 그들이 가는 곳으로 따라
가다 보면 꽃과 나무 열매가 풍성하게 열려 있는 섬에 도착
하게 된다.
새들과 어울려서 여행을 하는 것도 나름대로 재미는 있
었다.
수천마리의 새들 사이에 섞여 있다 보면 한없이 평화롭다.
벌새는 다른 새들보다 이동속도도 빠르고 먼 거리를 지치
지 않고 날 수도 있었지만 배고픔이 언제나 큰 문제였다. 그
래도 미리 배가 터질 것처럼 빵빵하게 먹어 두고 나면 섬까
지도 무사히 갈 수가 있었다.
-희귀한 씨앗, 스노우드롭의 꽃가루를 입수했습니다.
눈이 내리는 겨울에 피어나는 하얀 꽃입니다.
-희귀한 씨앗, 딸기구아바의 씨앗을 입수했습니다.
맛이 좋은 열매가 열리며, 벌과 나비를 모으게 될 것입니다.
귀한 씨앗을 입수하여 퍼트리면 위드는 더 많은 스텟과 조
각술 숙련도를 얻을 수 있었다.
나무나 돌을 조각하여 작품을 만드는 것은 아니지만, 대륙
전체를 아름답게 만드는 일.
"메인 돛을 펼쳐라!"
바다에는 모험가들과 상인의 배도 떠다녔다.
"키는 오른쪽으로 반 바퀴, 그리고 해류를 따라 전속 항해!"
위드는 그런 배들이 있으면 근처에서 어슬렁거려 줬다.
-행운을 끌어오는 벌새의 출현.
바다에서 만나기 어려운 벌새가 나타났습니다.
자연재해로부터 피해를 입을 확률이 감소하며, 항해 중에 뜻밖의 행운
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바다에서는 폭풍, 소나기, 심한 돌푼 등이 불어오기는 하
지만 육지에서처럼 몬스터들이 자주 돌아다니는 건 아니었
다. 위험 해상 몬스터들의 서식 지역이 아니라면 가끔 상어
떼나 구경하는 수준이라 심심한 때가 많았다.
낚시 스킬은 그야말로 필수!
바람에 따라 돛을 조정하고 항해사를 고용하여 배의 방향
을 정한다. 그러고 나서는 낚시에 열을 올리기 마련이었는
데, 위드는 그럴 때면 날아가서 어깨에 가볍게 내려앉았다.
"예쁜 새야, 어디서 왔니?"
행운을 가져오는 벌새는 어디를 가나 환영을 받았다.
"벌새구나. 바다에서 벌새는 처음 보는데."
"오늘 완전 운이 좋네. 배고프니?"
여성들의 경우에는 특히 호응도가 좋아서, 맛있는 정어리
를 마음껏 얻어먹을 수가 있었다.
벌새는 바다에서 생선을 잡기가 어려운데 배를 푸짐하게
채우고 떠날 기회였다.
"요거 잡아다가 팔아먹어야겠다."
"된장 바르자!"
물론 목숨을 노리는 유저들도 있었다.
그들의 레벨은 썩 높은 편은 아니라서, 200대 이하였다.
대체로 바다에서는 전투가 자주 일어나거나 하지는 않아
서 스킬에 비하여 레벨은 낮다.
위드는 그들의 위협적인 대화를 듣거나 그럴 낌새를 눈치
채면 미련 없이 날아올랐다.
코코코코콧!
그냥은 떠나지 않고 돛을 사정없이 쪼아 버리는 잔악함.
벌새로서의 여행을 나흘 남기고 북부 대륙에 도착했다.
섬들을 헤매면서 희귀한 씨앗들을 찾아내고, 또 많이 뿌려
놓기도 했다.
벌새로서 먹고사는 부분이 큰 문제였지만, 어찌나 잘 먹고
다녔는지 배도 빵빵하게 불러 있는 상태!
모라타에 들러서 희귀한 씨앗들을 내려놓고 나서, 야생화
들을 품고 로디움까지 완주하는 계획이었다.
물론 해가 떠 있을 때만으로는 시간이 되지 않아서 어두운
밤에도 날아야 했다.
부엉이도 아니었지만 밤하늘의 별들을 따라서 비행하는
것에도 많이 익숙해졌다. 벌새가 12일 동안 날 수 있는 영역
을 진작 완전히 넘어서 버린 후였다.
과로의 직전에 있을 때에만 다른 새들과 어울리거나 배에
있는 돛대의 꼭대기에 얻어 타거나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