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달빛조각사 32권 : 4. 로드릭 미궁 (205/520)

◎ 로드릭 미궁

"크웃, 오랜만에 맛있게 생긴 인간이 왔군. 오랜만에 맛있는 인간 고기를 생으로 먹어 볼 수 있겠다."

로드릭 미궁의 지하 1층에서부터 채찍을 들고 날아다니는 시커먼 악마병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위드는 계단을 내려오는 순간부터 전투를 준비하고 있었기에 바로 스킬을 사용했다.

"광휘의 검술!"

독수리 7마리가 날아가서 악마병의 몸에 적중!

┌────────────────────────────────────┐

│- 악마병 졸개 트로피커의 막강한 방어 능력으로 인하여 240의 피해를 힙니  │

│  다.                                                                   │

└────────────────────────────────────┘

┌────────────────────────────────────┐

│- 악마병 졸개 트로피커의 옆구리를 공격하였습니다. 생명력이 267 감소시킵 │

│  니다.                                                                 │

└────────────────────────────────────┘

┌────────────────────────────────────┐

│- 악마병 졸개 트로피커의 날개에 광희의 검술이 적중했습니다. 특수한 보호 │

│  능력으로 인해 생명력을 37만큼 줄입니다.                               │

└────────────────────────────────────┘

맨 처음 만난 악마병 트롯피커의 맷집부터가 너무나도 엄청난 수준이었다.

"고작 이 정도라니..."

원래 악마들은 중간계라고 할 수 있는 베르사 대륙에서 존재할 수 없다. 신들의 영향력 아래에서는 악마들이 약화되고 소멸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어떻게 해서든 다른 계약자를 찾거나 흑마법사의 몸을 빼앗으려고 한다. 땅의 힘이 강한 지하에서는 악마들이 지상에 비해 상당한 힘을 발휘할 수 있으며 제압하기도 힘들었다.

'만약 광휘의 검술을 이 정도로 올리지 않았더라면 흠집도 내지 못했겠군.'

악마병이 가시가 박힌 채찍을 휘둘렀다.

"고작 이 정도였느냐, 가소롭구나!"

위드는 앞으로 구르며 채찍을 피했다. 스치고 지나간 채찍에는 끔찍한 열기까지 담겨 있어서 땅이 시커멓게 그을렸다. 악마병이 휘두르는 채찍은 너무도 빠르고 공격 범위도 넓어서 연속으로 피하는 것도 상당히 어려웠다.

채찍의 끝에는 전갈처럼 뾰족한 침이 있었는데, 지옥에서만 산다는 괴수의 이빨을 박아 놓은 것이다. 마비 능력이 있어서 제대로 적중되면 연달아 공격을 받게 된다.

┌────────────────────────────────────┐

│ - 부수적인 피해를 입었습니다.                                          │

│   높은 인내력으로 피해를 줄입니다.                                     │

│   생명력이 532 줄어듭니다.                                             │ └────────────────────────────────────┘

┌────────────────────────────────────┐

│ - 오염된 기운이 몸속으로 파고 듭니다.                                  │

│   질병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

│   신체의 자체 치유 능력을 감소시킵니다.                                │ └────────────────────────────────────┘

채찍이 떨어진 곳과 약간 거리가 있는데도 매캐한 연기가 일어나며 위드의 생명력과 전투력을 깎아 놓았다.

"이곳에서는 계속 그렇게 쥐새끼처럼 도망칠 수 없을 것이다."

"두고 보자."

"인간들은 다 비슷하구나. 내뱉는 말이 고작 그것이라니."

위드는 먼 훗날의 복수를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가 내려온 계단을 통해서 프레야 교단의 성기사, 루의 성기사가 줄지어서 도착했다.

"신의 뜻을 거스르는 사악한 악마다!"

"놈을 처단하라!"

용감한 성기사들이 사제의 축복과 회복 마법의 도움을 받으면서 덤벼들었다.

"귀찮은 존재를 믿는 종들이 왔구나!"

그럼에도 악마병은 기세가 당당했다.

보통의 무기로는 악마병에게 확실한 타격을 입히지 못한다. 신성력이야말로 천적과도 같은 힘이었지만, 악마병의 레벨이 500대이다 보니 호락호락하지가 않았다.

혼자로도 보스급 몬스터의 위용!

성기사들의 공격조차도 약화되어서, 악마병이 받는 피해는 훨씬 줄었다.

"너희가 믿는 신을 부정하라. 신성 타락!"

악마병은 성기사들의 능력을 감소시키는 종류의 마법을 쓸 줄도 알았다. 성기사들의 물리력이나 육체를 약화시키는 건 아니었지만 발휘할 수 있는 신성력을 줄였다. 믿음이 약하고 레벨이 낮은 성기사들이라면 배신을 시킬 수도 있는 스킬이었다.

"억압의 손!"

악마별은 오른손으로 채찍을 휘두르고, 왼손으로는 허공을 움켜잡았다. 그러자 멀리 떨어져 있던 성기사가 무언가 보이지 않는 커다란 손에 잡힌 것처럼 공중에 떠올랐다.

콰드드드득.

성기사의 방패와 갑옷이 일그러질 정도의 강력한 압력!

"더러운 영혼의 파편!"

악마병의 정면에서 흑색의 폭발이 일어나며 사방으로 퍼졌다. 광역 공격 스킬까지 발휘하면서 성기사들을 곤란하게 했다.

"여신에게 이 한 몸 돌아가리라."

"악에 의해 무릎을 꿇다니..."

프레야 교단의 성기사가 벌써 2명이나 사망하고 말았다. 성기사들은 진형을 짜고 체계적으로 싸웠지만, 악마병의 마법과 채찍 공격이 상당히 거셌다. 게다가 까다롭게도 일부를 노려서 집중 공격을 하기까지 했다.

"시작부터 이런 식으로는 안 되겠군. 성기사와 사제들이 아직 많이 들어오지 못했어. 반 호크, 토리도!"

위드는 부하들을 소환했다.

데스 나이트와 뱀파이어는 언데드이기 때문에 가능하면 부르지 않으려고 했다. 성기사와 사제들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그들의 믿음도 약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최악의 천적과도 같은 부대를 동시에 거느린다면 위드의 통솔력이 높더라도 지휘에 역효과가 일어난다. 하지만 지금은 악마병을 막아 내는 것이 더 급했다.

"가서 싸워라!"

"알겠다, 주인."

반 호크는 나타나자마자 정면으로 달려들었다.

어떤 적에게도 맹목적인 동격을 가하는 데스 나이트의 속성. 그리고 악마병은 강한 몬스터였지만 바르칸에 비교할 정도는 아니다. 전투 경험이 쌓일 대로 쌓여서 반 호크도 성장을 했다.

"저것은 악마병인가. 이놈의 주인은...아리따운 소녀들이 있는 장소에는 가지 않고 정말 온갖 곳을 다 오는군."

토리도는 궁시렁대면서 악마병의 옆을 빠르게 빙글빙글 돌았다. 

적을 유인하고 현혹하는 뱀파이어의 전투 방식!

그 틈을 타서 사제들은 부상을 당하거나 저주를 입은 성기사들을 치유했다. 사제들이 많다는 것은 언제라도 부상병들을 완쾌시켜서 전투 능력을 곧바로 회복할 수 있다는 의미다. 죽지만 않으면 급속도로 전투력을 되찾을 수 있다.

계단에서는 검과 방패를 든 성기사들이 계속 내려오고 있었으며, 알베론과 데리안까지 도착했다. 바하모르그는 가장 마지막으로 로드릭 미궁으로 들어왔다.

위드는 먼저 들어와서 직접 악마병을 상대해 보고 입구 근처에 있는 놈들마저 해치우기가 곤란할 정도라면 모든 작전을 취소하려고 했다. 바하모르그는 살리기 위하여 마지막에 들어오도록 지시를 내렸던 것이다.

불어난 성기사들의 협공에 사제들의 신성 마법이 대대적으로 지원되며 악마병은 무자비한 타격을 입고 있었다. 악마병이 있는 곳 전체가 신성한 빛에 휩싸일 정도로 신성력의 집중이 강하게 이루어졌다.

토리도와 반 호크는 잠깐 동안 활약을 하고 다시 역소환되었다. 더이상 그들이 필요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위드는 계속 두 부하를 부려 먹으면서 성장을 시키고 싶었지만, 성기사와 사제 들이 대거 미궁에 들어온 이상 포기해야만 했다.

착한 척을 하기 위해서 희생해야 할 부분도 있는 것.

"인간들. 역겨운 인간들이 이곳으로 많이도 왔구나!"

악마병은 사제들의 신성 마법에 난타를 당하는 와중에도 채찍을 휘두르면서 성기사들에게 피해를 입혔다. 하지만 바하모르그까지 가세를 하니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잿빛으로 변해서 목숨을 잃었다.

┌────────────────────────────────────┐

│ - 악마병 트로피커가 소멸되었습니다.                                    │

│   전투에 참여한 이들의 명성이 140 증가합니다.                          │

└────────────────────────────────────┘

"겨우 이겼군."

성기사가 최종적으로 3명이나 희생되었다. 악마병을 상대해 보는 것은 처음이었고, 좁은 계단을 통해 로드릭 미궁으로 내려오는 입궁 부분이라서 다소 피해가 컸다고 할 수 있으리라. 성기사와 사제들이 전부 모였다면 원거리 신성 마법을 가하면서 훨씬 유리하게 싸웠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미궁의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간다면 트롯피커 같은 악마병이 한곳에 10마리, 12마리씩도 나타난다. 아이언모닝스타 길드에서도 악마병 13마리가 나오는 장소에서 버티지 못하고 결국 전멸을 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 후에 얼마나 더 위험한 곳들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가 본 사람이 없으니 알려지지도 않았다.

"이 정도의 고생은 할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어찌 되었건 피할 수 없는 일이지."

위드는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성기사들의 검과 갑옷을 손봐 주었다. 대장장이 스킬이 있기에 원정을 나와서 전력을 유지하는 데에는 편했다.

"고맙습니다. 국왕 폐하."

"직접 제 검의 날을 세워 주시다니 이런 영광이..."

"악을 처단하고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하여 익힌 기술들입니다. 악마병들과 같이 싸우는 처지에 당연히 해 드려야할 일입니다."

위드는 그러면서도 성기사들에 대한 친밀도를 약간이나마 올릴 수 있었다. 물론 성기사들이 살아 나가야 쓸모가 있게 될 것이다.

"치료의 손길."

"프레야의 방벽."

"믿음의 보호!"

위드는 성기사와 사제들을 이끌고 미궁을 조심스럽게 돌아다니며 사냥을 개시했다. 마법사 로드릭이 연구 중에 만들었다는 변종 몬스터는 상대하기 까다롭진 않았다.

"바하모르그, 유인해 와."

"알겠다."

몬스터의 레벨이 400대 후반이라는 점이 대단하기는 하였지만 이곳에 모여 있는 전력도 막강했다. 성기사들과 사제들의 개인적인 레벨이 약하더라도 집단으로 뭉치면 전투에서 보여 주는 위력은 발군이다. 특히 모두가 치료 마법을 쓸 수 있어서 위험한 경우에 신속한 응급조치를 해 줄 수가 있기에 장기전에 유리했다.

단번에 생명의 위협을 줄 정도의 몬스터만 아니라면 괜찮은 사냥감이 된다. 성기사들끼리 능력을 올려 주는 강화 오라의 효과도 상당한 편이었다. 프레야 교단의 오라는 밝은 보라색 계열이었고, 루의 교단의 오라는 흰빛이 돌았다. 성기사들이 각자 믿는 신에 따라 오라를 발산하며 화려한 전투를 치렀다.

"크와아아합!"

┌────────────────────────────────────┐

│ - 투혼의 외침을 들으셨습니다.                                          │

│   몸속 깊은 곳에서 활력이 깨어납니다.                                  │ 

│   자신이 가지고 있는 투지 스탯에 따라 잠재되어 있던 신체 능력이 활성   │

│   화 됩니다.                                                           │

│   생명력의 최대치가 증가합니다.                                        │ │   마나가 크게 늘어납니다.                                              │

│   적에 대한 공격력이 강해지고, 공격이 성공할 때마다 행운에 따른 효과   │ 

│   를 높입니다.                                                         │ 

│   자신보다 강한 적에게 정면공격을 하였을 때 투혼의 일격이 발동될 수 있 │ │   습니다                                                               │

│   맷집이 향상됩니다.                                                   │

└────────────────────────────────────┘

대륙에 밝혀지지 않은 던전이나, 몬스터의 레벨이 너무도 높아서 들어가지 못하는 곳들은 많이 있다. 그렇지만 단순히 한 장소에 이만큼의 전력이 모이는 것도 드문 일이었다.

"이번에는 2명이 죽었군."

위드는 악마병이 나올 때마다 성기사들과 사제들을 세심하게 지휘했지만 조금만 허점을 보이더라도 성기사들의 희생이 생겼다. 악마병들과 성기사들의 레벨 차이가 너무 심각하게 났던 것이다.

악랄하고 두뇌 회전이 빠른 악마병들은 고지식하게 싸우지 않았다. 약한 성기사들을 먼저 목표로 삼았고, 죽음을 피할 수 없다고 판단이 되면 자신의 몸을 터트려서까지 적들을 지옥으로 끌고 가려고 했다. 철저하게 수비 위주로 싸웠음에도 미궁에서 죽은 성기사들이 벌써 11명이었다.

"성기사들이 줄어들지 않게 해야 하는데...악착같이 부려먹지도 못하고, 고작해야 탐색전에서 이렇게까지 피해가 커져서는 곤란해."

성기사들의 사기는 여전히 떨어지지 않고 있다. 

대륙을 구하는 영웅, 프레야 교단과 루의 교단에 공적치도 높은 위드와 함께 악을 처단하는 일에 앞장선다는 자부심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미궁에서 조금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면 악마병이 5~6마리씩은 나오게 된다. 미궁의 미로도 전혀 위치를 파악하지 못하게끔 복잡하고 혼란스러웠다. 위드는 갈림길을 만나면 무조건 왼쪽 길을 택했다.

"분명히 느낌상으로는 오른쪽으로 가야 될 것 같은데...난 재수가 없으니까, 그러면 왼쪽으로 가야 될 거야."

몬스터와 환영, 악마병이 계속 등장을 했다. 하지만 그렇게 헤매다 보면 왔던 곳으로 되돌아가는 경우가 허다했다. 공간 왜곡과 공간 확장,  환영의 마법이 미궁 전체에 걸려 있어서 찾기 어려운 미로가 되어 있는 것이다.

위드는 자신이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었지만, 아직까지는 대략 미궁의 초입 부근만을 빙빙 돌고 있다고 생가했다.

미궁의 중앙부로 갈수록 갈림길은 여러갈래로 나뉘고 공간 왜곡도 더욱 심해져서 벗어나지를 못한다고 한다. 끝없이 전투를 하다가 악마병들과 몬스터에 의해 몰살을 당하거나 식량이 떨어져서 죽게 되는 곳이 바로 로드릭 미궁이었다.

*

유병준은 흡족하게 모니터를 보고 있었다.

"이번에는 정말 호되게 걸렸군."

베르사 대륙에서 명문 길드들이 벌이는 전쟁은 지독할 정도였다. 헤르메스 길드가 일시적으로 전쟁을 멈췄다고는 하나, 그들이 준비를 마치고 다시 대대적으로 움직일 것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리고 그 시간은 매우 빠를 것으로 모두 짐작하고 있다.

헤르메스 길드와 경쟁하는 다른 길드들은 아예 지지 않게 더 활개를 치며 영토 점령을 해 나갔다. 엠비뉴 교단도 끊임없이 확장을 하면서 대륙의 곳곳이 폐허가 되고 있다. 유병준은 전쟁보다도 위드의 모험을 즐기며 봤다.

"성공하지 못하면 몰살이다. 그리고 현재로써 성공할 확률은 고작 0.2%밖에는 안 돼."

바하모르그, 성기사와 사제들의 전투력으로 로드릭 미궁을 돌파할 수 있을지 인공지능이 계산환 확률이었다. 여기에 위드라면 변수가 더해지게 된다. 위드의 순수한 전투 능력을 감안하면 승률은 0.23%으로 약간 늘어난다.

"조각술 최후의 비기 퀘스트. 아주 곤란하고 어렵군."

모든 전력을 다 끌어와서 부딪쳐야 하는 퀘스트였다. 조각 생명체들까지 모조리 다 동원을 하고, 또 필요하다면 다른 조각 생명체들까지 마구 만들어야 된다. 그렇게 하더라도 승산이 5% 정도는 될지 가늠하기 어렵다.

위드는 조각 생명체들을 아낀다는 이유로 로드릭 미궁으로 데려오지 않은 채로 승부를 걸었다. 유병준이 보기에는 미련하고 무모하기 짝이 없는 계획이다.

"하기야 로드릭 미궁은 누구도 돌파한 적이 없으니 진정한 난이도가 얼마나 되지는 알지도 못했겠지. 어쩌면 노력을 해도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여겼을 수도 있고..아무튼 여기에서 죽으면 조각술 최후의 비기는 영영 얻지 못하게 되겠군. 벌써 다른 몇 개의 직업 스킬들이 그렇듯이, 묻히게 되겠지."

조각사만이 아니라 주로 많은 유저들이 택하는 검사, 기사, 전사, 마법사 등에도 최후의 비기는 있었다. 스킬의 비기들을 모으는 것도 어렵고, 모험과 퀘스트보다 확실한 방법인 사냥으로 강해지려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렇게 레벨이 높아지면 세력 싸움에 휘말리게 된다.

다른 직업들 역시 조각술 최후의 비기와 마찬가지로 너무 오래 시간을 끌다 보면 퀘스트 자체가 사라져 버렸다. 베르사 대륙에는 수많은 비밀들이 숨겨져 있지만 그것은 찾는 사람의 몫이었다.

"쯧쯧, 이번에도 3명의 성기사가 죽었군."

유병준이 보는 모니터에는 호전적인 악마병들 2마리와 전투가 벌어져서 성기사 3명이 사망하는 모습이 나왔다. 

전투가 벌어지면 악마병의 맹렬한 공격성에 어쩔 수 없이 죽는 이들이 자꾸만 나왔다. 구경하는 유병준 입장에서는, 위드의 세력이 약해지는 것은 재미있었지만 상당히 느리게 진행되어 조금은 지루하기도 했다.

"악마병들이 대여섯씩 나오는 곳으로 가야 재미있을 텐데. 거기서는 실컷 죽어 나가겠군."

위드가 최후의 비기를 얻지 못한다면 바드레이를 이기거나 헤르메스 길드에 저항할 수 없는 수단도 사라지게 된다. 유병준은 왠지 그렇게 되더라도 재미가 있을 것 같았다. 잡초처럼 짓밟히면서도 발버둥 치며 끝까지 싸우는 걸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위드가 극한 상황으로 몰릴수록 점점 더 흥미로워졌다. 로드릭 미궁은 길을 얼마나 헤매고 다니느냐에 따라서 전투 횟수부터 달라진다. 길을 늦게 찾아낸다면 미궁을 헤매다가 도중에 악마병들에게 전멸할 가능성이 더욱 높아진다.

지금까지 어떤 모험가도 미궁의 올바른 길을 찾아내지를 못했으며, 관련 정보도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 

로드릭의 마법 수련실을 찾아간다는 자체도 불가능에 가까웠다.

ㅡ 위드의 성격 및 판단력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퀘스트 성공 확률 조사를 마쳤습니다.

유병준은 레몬차를 마시며 느긋하게 물었다.

"이번에는 얼마가 나왔지?"

일반인들이 미궁에서 바하모르그와 성기사들을 통솔한다고 계산했을 때에는 성공 가능성이 0.2% 정도였다. 위드가 지금까지 했던 모든 모험에서 보여 준 지휘력과 판단력, 경험, 임기응변 능력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서 확률이 나온 것이다.

ㅡ 위드가 로드릭 미궁을 평정할 가능성은 46.7%입니다.

"뭐라고? 계산이 잘못된 거 아닌가?"

ㅡ 316,820회를 반복 계산한 평균 추정 확률입니다.

"어떻게 갑자기 그렇게 성공 가능성이 높아질 수가 있지? 미궁의 길을 찾아내는 것부터가 불가능할 텐데."

ㅡ 위드의 기존 자료를 검토한 결과, 어떠한 수를 쓰든 길을 찾아낼 것입니다.

"성기사들의 전력도 미궁을 정복하기에는 턱없이 약하다"

ㅡ 위드의 지휘 능력이라면 현재보다도 더 강하게 이끌 수 있을 것입니다. 피해는 최소화될 것이며, 뒤로 갈수록 전력은 확대될 것입니다.

"로드릭 미궁에는 위험한 함정들이 많다. 누구라도 무사할 수 없는 그런 함정에 빠질 수도 있을 텐데?"

ㅡ 어떤한 위기에 빠지더라도 최선에 접근하거나, 예측할 수 없는 그 이상의 선택들을 할 것입니다.

유병준은 기분이 급격히 나빠지기 시작했다.

*

"오라, 악마병 졸개들아!"

바하모르그는 커다란 검을 휘둘렀다.

악마병과 일대일로 싸울 수 있는 것은 바하모르그가 유일했다. 위드조차도 조각 변신술과 조각 파괴술을 쓰지 않고서는 악마병과의 정면 승부는 안 되었다. 놈들은 많은 종류의 흑마법과 저주 마법을 매우 빠르게 쓸 수 있었던 것이다.

"지옥에서 튀어나온 쓰레기인 너희의 몸뚱이를 확실하게 잘라 주겠다."

바하모르그의 도발 스킬!

"고작해야 바바리안 따위가..."

"곱게 죽이지 않는다. 영원한 고통 속에서 허우적거리도록 해 주겠다."

악마병들은 화가 치솟아서 바하모르그에게 채찍을 휘둘렀다.

그들의 공격과 저주 마법 등이 바하모르그에게 집중되면 상대하기가 한결 편했다. 넘쳐 나는 사제들이 바하모르그에게 집중적으로 축복과 저주 해제, 치료 마법을 퍼부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바하모르그는 원래 엄청 단단한 몸인 데다 공격을 비껴 맞거나 받아치는 기술을 가졌고, 게이하르 황제가 주었다는 최고의 갑옷까지 착용했다. 어떤 경우에도 상태 이상에 걸리지 않았기에 악마병 2마리나 3마리의 집중 공격도 너끈하게 버텨 냈다.

그사이에 성기사와 사제들은 신성 마법을 시전하고, 검을 휘두르며 지원 공격!

"안 되겠다. 다른 인간부터 먼저..."

"살육을 하자. 더욱 많은 인간들을 죽여야 한다."

도발에서 빠져나온 악마병들이 다른 성기사들을 제물로 삼으려고 하였지만 바하모르그는 집요하게 방해를 했다.

"나에게서 도망치는 것이냐? 꼬리를 말면서 도망가는 꼴이 우습구나!"

바하모르그는 든든하게 버텨 주면서 최소한 1마리 이상의 악마병을 붙잡아 주었다. 성기사들은 방패를 앞세우고 수비 위주로 전투를 진행하혔기에 갑작스러운 공격으로부터 생존률을 높일 수 있었다.

"루의 뜻은 너희의 완전한 소멸이다!"

루의 검을 들고 있는 데리안!

바하모르그가 수비라면, 데리안은 공격이다. 신의 힘이 복원된 루의 검은 악마병들조차 꺼렸다. 데리안에게는 변변한 반격도 하지 못한 채로 도망을 치기 바빴다. 위드가 확인해 보진 못했지만 데리안의 레벨도 적어도 500대 초중반은 될 것 같았다.

'이놈도 잘 키우면 알베론 이상의 몫을 해 줄 수 있을 것 같군.'

데리안은 움직임이 재빠르지 못했고 검술 실력도 기대했던 것보다는 떨어졌지만, 막강한 신성력을 바탕으로 전투를 펼쳤다. 악마병은 2~3마리까지도 혼자서 감당하여 싸울 수 있겠지만, 문제는 놈들이 데리안을 꺼려 피해 다닌다는 점이었다.

알베론의 축복 마법은 그야말로 최고였다. 광범위 전체 치료도 틈틈이 사용했다. 악마병이 위험한 마법을 시전하려고할 때 신성 마법으로 선제공격을 가하거나, 성기사들에게 절묘하게 보호 마법을 펼쳐 주었다.

'과연 나한테 제대로 배웠어. 역시 교육에는 잔소리가 필요하지.'

위드는 전투를 하면서 성기사들의 특성을 이해하고, 데리안과 알베론을 활용한 진형과 공격 형태를 정했다. 성기사와 사제들로만 구성되어 있어서 따로 통솔하지 않고 내버려 둬도 잘 싸우기는 했다. 사제들이 알아서 적당한때에 치료 마법을 써 주고, 위험하면 성기사들 스스로도 회복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위드가 지휘를 하면 확실히 달라졌다.

"1조는 두 번의 공격 후에 뒤로 물러나서 방어 진형으로, 2조가 그 자리를 메운다. 3조, 4조는 석궁 공격을, 5조는 돌격을 하면서 스쳐 지나가서 주의를 산만하게 만들 준비를 해! 데리안은 루의 검을 잘 보이게 들어서 악마병들을 교란 시키도록."

성기사들의 공격을 바꿔 가면서 악마병들의 생명력과 체력을 야금야금 깍아 놓았다. 악마병의 상태에 따라서 마치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듯이 전체 병력을 움직인다. 기승전결이 있는 음악처럼 전투의 흐름을 만들어 내는 능력!

부하들의 특성을 철저히 파악하고 부려 먹는다.

"채찍을 들고 있는 악마병의 오른팔을 향해 사제 7번 부대 신성 마법 시전!"

악마병들은 높은 생명력을 가지고 있었고 방어력이 탁월하여 짧은 시간에는 죽지 않았다. 다만 그들의 레벨이나 공격성에 비하여 자체 회복 능력은 매우 많이 뒤떨어지는 편이었는데, 이곳이 마계나 지옥이 아니기에 그들이 사용하는 암흑의 힘이 잘 채워지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약화되고 삶을 포기할 무렵 발휘하는 무자비한 공격력은 성기사를 금방 죽음으로 몰아넣을 수 있을 정도라서 긴장은 전투가 끝날 때까지 풀 수가 없다. 감각적으로 악마병들의 움직임을 예측하여 성기사들을 대비시켰다.

"역시 집단으로 싸우니 좋은 점이 많군."

위드는 대규모 병력을 지휘하여 보스급 몬스터 사냥을 연속으로 하는 기분이었다. 악마병들이 강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떼로 덤비는 데에는 장사가 없다. 수적 우위와 신성력의 특성을 최대로 발휘하는 전투 방식 확립!

"더 얍삽하고 비열하게 싸워야 돼. 뭉쳐서 수적 우위를 유지하고, 놈들을 고립시켜. 성기사들이여, 루의 뜻을 펼치기 위해서는 뒤에서 검을 찔러 넣어라!"

악마병들의 행동이 워낙 위협적이라서 성기사들의 피해가 어쩔 수 없이 계속 생기기는 했다. 수비를 잘하더라도 악마병이 삶을 포기했을 대 성기사 일인에게 대여섯 번의 공격을 한다면, 치료 마법을 쓰더라도 살릴 수가 없다. 그래도 완벽하게 얍삽한 지휘 탓에 대비하지 못하고 진형이 무너지면서 한꺼번에 당하는 경우는 나오지 않았다.

"벌써 성기사가 30명이나 죽었군."

위드는 한숨부터 나왔다.

악마병들의 레벨이 너무 높아서 희생이 빈번하게 발생할거란 건 알았지만, 지금까지 성기사들의 죽음만으로도 각 교단에서 떨어졌을 공헌도를 생각하니 안타까웠던 것이다.

"조금 더 확실히 대비를 해야 되겠어."

로드릭 미궁으로 들어오기 전에 성기사들은 자신들이 쓸 물품들을 기본적으로 준비를 했다.

횃불과 여분의 검, 최소한의 식량 등!

열흘에서 한 달 정도씩은 버틸 만큼의 소모품들을 가지고 왔다. 위드는 여기에 마판을 통해서 마차 스물 두 대 분량이란 어마어마한 보급 물자를 실어 왔다.

차라리 몰살을 당하더라도 길을 헤매다가 전투 물자나 식량이 없어서 죽을 수는 없다. 가지고 온 보급 물자들이 아까워서라도 로드릭 미궁의 비밀을 해결하고 밖으로 나가야 된다.

"더 느리게 해야 되겠군."

위드는 성기사와 사제들이 체력과 마나, 생명력에 완벽한 준비가 갖춰져 있을 때에만 전진했다. 물론 아직까지 미궁의 제대로 된 길을 탐색하진 못했다. 엉뚱한 길이고, 왔던 곳이고 되돌아간다는 사실을 알고서도 왼쪽을 고집했다.

'아직은 악마병들이 너무 많으면 버거워. 익숙해질 필요가 있겠군.'

로드릭 미궁을 파훼하는 방법은 크게 보면 두 가지였다.

첫 번재는 단숨에 중심부까지 찾아가는 것이다.

이 경우는 일단 길을 제대로 모른다는 점이 문제지만, 전투력을 보전하고 있을 대에 승부를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위드는 멀리 돌아가기로 했다. 

'최대한 많은 전투를 해야지. 이 미궁에 대해서 아는 것이 너무 없는 상태여서 무모하게 모든 것을 걸고 갈 수는 없어. 어딘가에 단서가 있을 테니 미궁의 모든 것을 샅샅이 뒤져보자.'

제이든이 함정을 해체하면서 답답할 정도로 천천히 이동을 했다. 휴식 시간에는 요도 만들고, 성기사들에게 번갈아 보초를 세우며 잠도 나누어서 자도록 했다.

마판이 가져온 마차들은 단지 전투 물자가 아니라 이삿짐에 가까웠다. 아예 로드릭 미궁에 살림을 차릴 작정을 하고 온 것이다.

*

"울렌바 마굴로 가실 사냥 파티를 구합니다. 레벨 230 도끼 전사이고, 그곳에서의 사냥 경험도 여러 번 됩니다."

"보라색 돌멩이 가지고 계신 분? 15개 구하고 있습니다. 인챈트 마법 익히는 데 꼭 필요해서요."

"라수르 마을로 이동하는데 몬스터들 때문에 위험하니 같이 가실 분들은 동문으로 오세요!

위드가 보이지 않는 사이에도 베르사 대륙의 시간을 잘 흐르고 있었다. 아르펜 왕국의 영토가 넓어지고, 기술의 발달로 새로운 건물들이 올라갔다. 건축가들이 야심차게 도전했던 위해한 건축물들도 차례차례 완공되면서 왕국 축제도 벌어졌다.

"아르펜 왕국 만세!"

"수정 시계탑 완성 기념 공연이 지금 시작됩니다."

"풀죽! 풀죽!"

위대한 건축물들은 아르펜 왕국의 발전을 촉진시키는 역할을 해냈다. 장시간 사냥을 나갔다 오거나 모험을 마치고 돌아온 유저들이 마을에서 헤매는 것은 필수였다.

"여기가 유셀린 마을이 맞아? 우리 잘못 온 거 같은데..."

"성벽도 생기고 길도 넓어지고 사람 많이 다니는 것 봐. 몇 개월 동안 아무 변화가 없던 마을이 한 달 만에 도시가 된거야?"

"아, 저거 알카사르의 다리다! 우리가 떠날 때 짓고 있었는데 벌써 완공되었나 봐."

"저 다리를 통해서 강 너머로 갈 수 있는 거네. 반대쪽도 불빛이 엄청 많은데?"

"밤이라서 잘 안 보이긴 하는데, 저쪽에도 도시가 지어지고 있는가 봐."

유저들이 길 한복판에서 멍하니 서 있는 경우도 흔했다.

"저기, 시장에 가려면 어디로 가야 돼요?"

"뭐 사려고 가시는데요."

"가죽 손질 도구랑 사냥감 넣을 가방이요."

"아, 그거면 광장 남쪽에 있는 가죽 전문 상점으로 가 보세요. 시장은 동쪽 상가의 뒷골목에 엄청나게 큰 규모로 이전했는데, 간단한 물건은 찾기 어려우실 거에요."

"고맙습니다."

과거 모라타의 변화가 아르펜 왕국 전체로 옮겨붙은 것처럼 발전 속도가 빨랐다. 이렇게 왕국이 발전하다 보니 수도인 모라타는 더 번성했다. 초보자라면 북부에서 시작하는 게 당연한 선택이었다.

"아르펜 왕국의 국왕은 명예와 긍지를 지키고 있다. 기사들이여, 니플하임 제국의 영광을 다시 이룩할 수 있는 분은 오직 국왕 위드뿐이다."

"제국 기사단은 새로운 국왕에게 충성을 다하자, 카리스마적인 그를 따르는 건 영광스러운 일이다."

띠링!

┌────────────────────────────────────┐

│ 벤트 성의 기사들이 아르펜 왕국의 국왕 위드에게 충성을 바치기로 결의하  │

│ 였습니다.                                                              │

│ 북부 대륙에 국왕 위드에 대한 칭송이 자자합니다. 니플하임 제국의 마지막 │ 

│ 남은 기사들은 처음에는 이러한 소문들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상인들  │ 

│ 의 방문과 자유 기사들이 전하는 이야기들은 그들이 마음을 열게 만들었습  │

│ 니다. 니플하임 제국의 기사들은 아르펜 왕국의 국왕 위드라면 그들을 영광 │

│ 의 길로 인도해 줄 것이라고 믿습니다.                                   │

│ 벤트 성이 아르펜 왕국에 귀속됩니다.                                    │

│ 아르펜 왕국의 주민이라면 누구나 성을 방문할 수 있고, 이주와 계발, 교역 │

│ 이 가능합니다.                                                         │

│ 벤트 성의 모든 건축물과 토지는 아르펜 왕국의 소유가 됩니다.            │

│ 아르펜 왕국의 지역 정체에 대한 영향력이 크게 높아집니다.               │

└────────────────────────────────────┘

"아자! 새로운 교역로가 열렸다."

"상인 여러분, 어서 벤트 성으로 가서 듬뿍 바가지를 씌웁시다."

"특산품은 뭐가 잘 팔려요?"

"거긴 아직 물자가 모자라서 모라타에 있는 거라면 뭐든 인기에요."

아르펜 왕국 전체가 들썩이던 날, 초보 상인들이 마차를 타고 줄지어서 벤트 성으로 몰려가기도 했다. 모험가들과 기사들도 반갑게 벤트 성으로 향했다.

"거긴 어떤 모험이 있을까?"

"빨리 가자. 우리가 최초 퀘스트도 하고 던전 사냥도 해야지."

"밀러 님, 회사 출근하시는 날 아니에요?"

"일주일 휴가 내고 접속했어요. 오늘부터는 모험입니다!"

니플하임 제국의 몰락 이후에도 벤트 성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곳의 주민들이 알고 있는 이야기들 중에는 희귀한 퀘스트가 많이 있는 것도 당연했다.

"기사여, 아직 말을 다루는 법이 미숙하군."

"배움을 얻기 위하여 왔습니다."

"니플하임 제국의 마상 전투술에 대해서 가르쳐 주도록 하지."

"헛, 그렇게 고급 기술을...! 죽을 각오를 다해서 배우겠습니다."

기사들은 성에서 새로운 기술들도 습득할 수 있었다.

모라타에서 시작한 초보자들은 기사 직업을 많이 선택했다. 말을 타고 거침없이 질주를 하거나, 정의를 지키며 왕국에 충성을 다하는 기사가 좋았던 것이다.

물론 북부에서는 언제 몬스터들을 만날지 모를 정도로 위험하기도 하니 전투 능력도 괜찮을뿐더러 방어 능력이 좋은 기사는 인기 직종이었다. 다만 마을에 소속된 기사들은 품위와 명예에 대하여 인정을 받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아르펜 왕국이 건국되고 나서 가장 기뻐한 이들은 기사들이었다.

"이제 우리도 어디 가서 아르펜 왕국의 기사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어!"

"캬캬캿, 친구들한테도 자랑할 거야."

왕국의 영향력이 미치는 범위에서는 명성이 낮더라도 기사로서 주민들로부터 더 좋은 대우를 받을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기사라면 당연히 왕국을 위한 전투가 벌어지거나 치안 회복을 위한 퀘스트를 빠져서는 안 되는 의무가 부여된다. 그렇지만 왕국의 기사가 되면 얻는 이익이 크기에 기꺼이 수행을 했다.

"저기 하늘에서 뭔가가 오는데?"

"구름 아닌가?"

"무슨 땅덩어리 같기도 한데..."

아르펜 왕국으로 천공의 섬 라비아스까지 도착했다.

조인족들이 살아가는 섬!

"아르펜 왕국 장난 아니다. 무슨 이런 신나는 일이 부지기수로 벌어지냐."

"이거 뭐 왕국 발전 속도 쫓아가기가 힘드네. 조금만 놀아도 뒤쳐질 거 같으니 사냥도 열심히 해야겠다."

"CTS미디어에서 매주 아르펜 왕국과 관련된 프로그램을 하는데 그것도 꼭 봐야 돼. 그리고 술집에서 소문도 놓치면 안 되고."

천공의 섬 라비아스는 모라타를 중심으로 근처를 돌아다녔다. 유저들은 퀘스트와 상점의 물품 구입을 통해서 라비아스로 날아갈 수 있게 되었다.

풀죽 신교에서는 긴급회의도 벌어졌다.

"우리의 풀죽이 낙후되어 있으면 안 됩니다."

"저도 동의합니다. 전 대륙에 풀죽의 우수한 맛을 전파해야죠."

"조인족들도 풀죽의 맛에 빠뜨려 봅시다."

"막 태어난 새들이 풀빵을 쪼아 먹는 걸 보고 싶어요."

조인족들을 위한 풀죽 개발!

그리고 위드가 오랫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문제에 대한 논의도 있었다.

벌새로 여행을 하고, 폭풍 속에서 광휘의 검술을 수련하는 등 새로운 모험의 성공이나 사냥으로 떠들썩해지면서 아르펜 왕국에서 모습을 감춘 지도 꽤 오래되었다.

"프레야 교단과 루의 교단의 성기사들과 사제들을 동원해서 어딘가를 가셨다는 이야기가 있던데...뭔지 몰라도 소식이 없는 걸로 봐선 어마어마할 겁니다."

"이번 모험도 성공하겠죠?"

"당연하죠, 위드 님이니까요!"

*

헤르메스 길드에서는 지난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았다.

"칼라모르 왕국, 라살 왕국, 브리튼 연합 왕국의 점령지에 대한 통합 작업은 거의 완료 단계에 접어들었습니다.

"톨렌 왕국은?"

"그쪽도 정리 작업이 끝나 갑니다. 흑사자 길드의 잔여 세력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베덴 길드를 앞세워서 계속 청소 중입니다."

브리튼 연합 왕국에서도 클라우드 길드를 상대로 공작을 진행 중이었다. 핵심 길드원을 빼내는 것은 물론이고, 동맹 길드들도 해체하여 흡수하였다.

바야흐로 헤르메스 기드는 칼라모르, 라살, 브리튼 연합, 톨렌 왕국을 완벽하게 먹어 치우고 대하벤 제국을 이루어 가고 있었다. 헤르메스 길드에서는 이번에 다시 그들이 영토를 확장한다면 그땐 멈출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지속적인 보급을 위해서는 광산 개발과 대장장이 확보에 신경쓰고, 도로를 개설하여 보급로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그 점을 감안하여 정복 계획을 수립하고 있습니다."

경쟁 길드나 다른 눈여겨봐야 할 세력들은 이간질을 해서 사이를 벌려 놓거나, 뒷공작으로 약화시키는 작업도 성과가 있거나 없거나 꾸준히 추진 중에 있다. 라페이는 대륙 정복을 위한 준비 과정이 차질 없이 진행되어 가고 있어서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웠다.

"황궁의 건설 작업은?"

"방대한 부지에 토목공사를 했기 때문에 최대한 서둘렀음에도 공정률이 83% 정도입니다."

"예산은 아끼지 말고 투입하도록 해야 한다."

"문제가 없습니다. 다만 황궁에는 예술품 장식도 많이 필요해서 시간이 늦어지고 있습니다."

황궁의 품위를 위해서는 조각상과 미술품 그리고 훌륭한 건축물은 필수였다. 황제의 권위를 높여 주고 제국 전체에 지배력을 확대하기 위하여 황궁을 건설하고 있었는데, 실력 있는 예술가와 건축가가 너무도 부족했다.

건축가들은 길드의 의뢰로 열심히 건축물을 짓더라도 제대로 대가를 받지 못하거나 금방 다시 빼앗겨 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어렵게 완공해 놓은 건물들도 전쟁으로 인하여 파괴되어 버리기 일쑤다.

결국 지금은 훌륭한 솜씨를 가진 건축가들은 거의 북부로 떠나 위대한 건축물들을 짓고 있었으며,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길가의 돌멩이 취급도 안 해 주던 예술가들도 마찬가지였다. 

문화발전은 오히려 북부가 중심이 되고 말았다.

예술가들이 부족하다 보니 황궁의 건설 작업이 늦어졌다.

"황궁이 완공되는 날, 헤르메스 길드의 대륙 정복 전쟁이 시작될 것이다."

대륙을 정복하는 데 명분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결국은 힘이 강한 자가 대륙을 갖게 되는 것!

군대는 세 갈래로 나위어서 리튼, 그라디안, 아이데른 왕국으로 원정을 나아가게 되리라.

"참, 위드의 상황에 대해 소식이 들어온 건 없는가?"

라페이는 다른 경쟁 길드보다는 오히려 위드에 대해서 더 관심이 갔다. 좀 잠잠하다 싶으면 나타나서 큰 사고를 치곤 했으니까!

"정보부의 분석에 따르면 위드가 로드릭 미궁으로 떠났을 거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믿을 만한 정보인가?"

"소므렌 자유도시에서 이동하던 프레야 교단과 루의 교단 성기사들과 사제들을 목격한 이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근처에서 그 정도의 전력이 들어갈 만한 곳은 아무래도..."

"로드릭 미궁밖에는 없겠지. 그렇지만 거기에 들어간다는 건 자살행위인데."

라페이는 어이가 없어서 잠시 생각을 해 보았다.

'도대체 제정신인가? 조각사 직업 마스터 퀘스트나 열심히 해도 시원찮을 판국에.'

지금까지의 고생도 놀라운데 직업 마스터 퀘스트에 로드릭 미궁을 공략하라는 것까지 있진 않으리라.

'직업 퀘스트들은 끝내 놓기에 충분한 시간이 되었지. 이변이 없는 한 직업 퀘스트를 가장 먼저 마치는 건 위드가 될 것이다. 그런데 미궁에서 죽는다면 조각술 숙련도도 크게 떨어지게 될 텐데.'

마스터를 앞두고 스킬 숙련도가 하락하게 된다면 그것만큼 아까운 일도 없으리라.위드의 경우에는 다른 생산 스킬의 수준도 대단히 높다고 하였으니 죽음으로 입게 되는 피해도 심각할 정도로 클 것이다.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군. 이 시점에 로드릭 미궁이라...나라면 로드릭 미궁을 파훼할 수 있을까?'

라페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지금까지 유명한 모험 파티들이 로드릭 미궁에 수많은 도전을 해 왔다. 그들도 로드릭 미궁을 공략하는 데에는 전부 실패했다.

몬스터도 문제지만 중심부로 향하는 올바른 길을 찾는 것은 누구도 해내지 못했다. 아이언모닝스타 길드 전체가 몰살을 당할 정도로 몬스터나 함정, 미로의 수준이 높았다.

"위드는 로드릭 미궁에서 자멸하게 될 것입니다."

헤르메스 길드 정보부의 냉정한 분석이었다.

"결국엔 그렇게 될 것 같군."

라페이는 수긍하면서도 뭔가가 찜짐했다.

마법의 대륙에서도 비슷한 과정들이 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절대 해내지 못할 것이라고, 불가항력이라고 평가하던 모험들을 성공적으로 마쳤던 사람이 위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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