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집주인의 등장
위드가 로드릭 미궁의 길 찾기를 성공했다고 해서 일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이번에는 여러 갈래로 갈라지는 군."
손거울의 빛은 갈림길에서 때로는 두 곳이나 세 곳 이상을 가리키기도 했다. 공간이 왜곡되어 있다 보니 어느 쪽으로 가더라도 결국은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다는 뜻이리라. 물론 어느 쪽이 지름길인지는 알 수가 없다. 게다가 악마병들의 전력이 왕성하기 때문에 미궁의 깊은 곳으로 갈수록 위험도는 따라서 높아졌다.
"이대로라면 여전히 어렵겠어. 조각 변신술도 써야 할 것 같군."
드래곤의 검 레드 스타를 사용할 수 있는 혼돈의 대전사 쿠비취!
"갑시다!"
위드는 조각 변신술을 사용하고 나서 바하모르그와 성기사들, 사제들과 같이 손거울이 알려 주는 장소로 이동했다. 그곳에는 악마병이 무려 9마리나 기다리고 있었다. 미궁의 중심부로 들어가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였다.
"크흐르르, 나약한 인간들이 왔군."
"신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는가? 신은 너희를 구해 주지 못할 것이다."
악마병들이 먼저 습격을 해 왔다.
"바하모르그, 돌격!"
"알겠다."
위드는 이번에는 어려운 퀘스트에 대비해 혼돈의 대전사 판금 갑옷 세트와 부츠도 가져온 상태였다. 방어구까지 착용하였으니 무서울 것이 없다.
"블링크!"
악마병들의 등 뒤에 나타나서 레드 스타를 강렬하게 휘둘렀다.
"케엣!"
"불이다, 불!"
광휘의 검술은 빛의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신성력 다음으로 악마병들에게 큰 효과가 있었다. 그렇지만 레드 스타의 불길 역시 악마병들을 태워 버릴 수 있는 압도적인 공격력을 자랑했다.
"쿠에에엣!"
"지옥! 지옥에서 나를 태우던 불길이 자꾸 떠올라!"
레드 스타에 베인 악마병들은 불길에 휩싸여 계속 고통스러워했다. 불에 대한 저항력이 있겠지만 여간해서는 쉽게 꺼지지 않는 불꽃이다. 위드가 조각 변신술을 쓰고 레드 스타를 든 이상 전투력은 확실히 달라졌다고 할 수 있다.
"모두 힘을 내라!"
위드는 악마병들의 공격을 2마리에서 3마리까지 맡았다.
혼돈의 대전사로서 생명력이 많아지고 회복력도 좋아졌지만 바하모르그처럼 공격을 몸으로 맞고 반격을 하는 방식은 쓸 수가 없다. 악마병들의 공격을 레드 스타로 흘려 버리거나, 블링크로 순간 이동을 하며 유인하는 방식을 취했다. 인간으로서의 모습보다는 아무래도 전투형 종족의 유리함을 이용하며 싸웠다.
"저놈을 반드시 씹어 먹고 말겠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검이 아주 탐이 나는군. 드래곤의 향기가 나는 것 같다."
악마병들은 위드를 잘 쫓아왔다.
바하모르그와 데리안, 성기사들이 사냥을 하기가 조금은 수월해졌다. 위드가 최대의 전투력을 발휘하고 악마병들을 끌고 다닌 덕분에 성기사들은 23명만이 사망하고 승리를 할 수 있었다.
악마병들의 전력에 비하면 기적과도 같이 잘 싸운 전투였지만 그렇더라도 역시 성기사들의 죽음은 어쩔 수가 없었다. 만신창이가 된 위드에게 바하모르그가 다가왔다.
"괜찮은가?"
"이 정도로는...꿈쩍도 하지 않아."
"그대의 강인한 맷집에 감탄했다. 보통의 참을성이 아니로군."
"동료들을 지키면서 그들을 위하여 살다 보니 자연히 이렇게 된 것이지."
힘든 상황에서도 위드는 바하모르그에게 잘 보일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전투를 마치고 나니 생명력이 25,000밖에 남지 않았을 정도로 위험했다. 인간이었을 대에야 상당히 높은 수치였지만, 혼돈의 대전사 쿠비취가 되었을 때는 15만을 넘어간다. 악마병들의 공격도 더욱 심하게 집중되기에 생명력이 2만을 넘기는 정도로는 불안했다.
악마병들과 싸우다가 순간 이동으로 피하다 보면 사제들의 치료 마법도 적용되지 않는 경우가 있었다. 레드 스타의 힘 덕분에 생명력과 마나를 빨리 채울 수는 있어도, 악마병들의 거센 공격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때도 있었다.
"어쨌든 위험하더라도 이렇게 계속 전진하는 수밖에는 없겠어."
그 후로 세 번의 전투를 더 치렀다.
위드는 직접적으로 미끼 역할까지 하면서 성기사들을 안전하게 했다. 성기사들을 공격하려는 악마병들의 뒤통수를 쳐서 그들을 적극적으로 유인하는 것이다.
"전부 나에게 덤벼라!"
위드는 사자후를 터트렸다.
전투를 승리하더라도 위드 자신이 죽고 나면 말짱 도루묵. 하지만 성기사들을 조금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서는 그런 위험부담도 감수하는 수밖에 없었다.
"저놈이다!"
"저 검을 들고 있는 놈부터 없애라."
"생살을 씹어 먹어야 되겠군!"
모든 악마병들이 위드의 뒤를 쫓아왔다.
┌────────────────────────────────────┐
│- 악마병 포효크의 채찍에 얻어맞았습니다. │
└────────────────────────────────────┘
┌────────────────────────────────────┐
│- 악마병 크로비룹의 검이 어깨를 강타하였습니다. │ │ 부상이 심각하여 왼쪽 어깨를 사용할 수 없습니다. │
└────────────────────────────────────┘
악마병의 공격에 땅을 나뒹구는 정도는 흔한 일이었다.
아무리 짧은 거리를 순간 이동으로 움직일 수 있더라도, 무섭게 쫓아오는 악마병들이 5~6마리씩이나 되었다.
'조금 전에 뒤쪽으로 넘어가는 녀석이 있었으니 등을 노릴 거야. 막을 수는 없다. 그리고 정면에 녀석이 가장 강해.'
지금까지의 모든 전투 경험을 바탕으로 악마병들 틈에서 위태로운 곡예를 펼쳤다.
바하모르그가 몇몇 악마병들을 자신의 몫으로 데려가기 직전에는 생명력이 밑바닥까지도 떨어졌다.
숨가쁘게 빠른 공수 전화과, 위험천만한 만큼 거칠고 박력이 넘치는 전투!
"크윽, 이번에도 이겨 냈군. 이번에는 정말 죽을 뻔했어."
전투를 치르면서 슬로어의 결혼반지로 서윤의 생명력을 가져온 덕분에 살아날 수 있었다. 이번에는 쿠비취의 조각품을 만들면서 일부러 손가락을 가늘게 해서 결혼반지를 착용했던 것이다.
전투가 끝난 후의 위드의 몸은 항상 심각한 부상을 입어서 사제들이 모여들어 집중적으로 치료를 해 주어야 할 정도였다. 그러나 혼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예측하지 못했던 가장 절망적인 사고가 발생하고야 말았다.
"딸꾹, 커허어! 오늘따라 술맛이 좋구나."
제이든이 앞으로 나가서 함정을 해체하였다.
확실히 미궁의 깊은 곳으로 들어가고 있다는 증거로, 함정의 난이도까지 올라가고 있었다.
"어, 이 빨간 줄을 건드려야 하나 노란 줄을 건드려야 되나? 딸꾹. 아마도 빨간 줄이겠지이?"
콰과과광!
천장에서 무너져 내려온 돌더미에 깔려서 제이든 사망!
"안 돼! 너도 더 부려 먹어야 하는데..."
목적지로 갈 수 있는 다른 길도 있었지만 그건 중요하지가 않았다. 이제부터는 함정을 해체할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이대로라면 정말 완벽하게 갇힌 꼴이 되어 버렸어."
위드는 망연자실하게 그 자리에 한동안 서 있었다. 로드릭 미궁에 제대로 고립되고 말았다. 길은 알고 있지만 악마병들과 제대로 싸우기도 전에 함정들에까지 피해를 입게 생겼다. 바하모르그는 물론이고 성기사들과 사제들의 목숨의 무게가 어깨를 무겁게 눌러 왔다.
"아마 이 길의 끝에는 악마 몬투스와 싸우게 될지도 모르는데."
왠지 그런 불행이란 비켜 나가지 않을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미궁에서 몬투스가 어느 곳에 있는지 알고 있다면 피해서 갈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어느 한 장소에 있지 않고 돌아다닐 수도 있으며, 위드가 원하는 대마법사의 연구 기록이 있는 장소에서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혹은 대마법사의 방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그곳을 거쳐 가야 할 가능성도 컸다.
"앞으로는 악마병들도 더 많이 나오게 될 텐데, 그리고 환영이나 마법 몬스터들, 거기에 이제는 함정까지..이대로라면 승산이 없을 거야."
위드는 이제 드디어 실패를 인정했다.
로드릭 미궁으로 들어와서 성기사와 사제들을 지휘하며 수십 번의 싸움을 비교적 적은 희생으로 치른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었다.
용병이나 일반 병사, 오합지졸을 통솔하여 잘 싸우기도 어렵지만, 레벨이 높은 성기사와 사제들을 완벽히 장악하고 최대의 전투력을 발휘하며 악마병들을 계속 해치우는 것과는 비교할 게 아니다.
어렵더라도 끝까지 성공하기 위하여 미궁으로 들어와서 발버둥을 쳐 왔다. 지금은 그 희미하던 가능성까지 사라져서 절망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위드가 어떤 대책이든 빨리 마련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대재앙은 사용하기가 곤란해. 악마병들이 나올 때마다 제앙을 일으킬 수도 없고, 또 약한 사제들이 크게 피해를 입을 수도 있으니까 말이야."
정령 창조 조각술도 마땅치 않았다.
정령술은 다양한 분야에서 효력을 발휘할 수 있지만 새롭게 만들어 내는 정령들의 첫 능력은 약하다. 흙꾼이나 화돌이, 씽씽이로 전투를 치르기에도, 전문적인 정령술사도 아닌데 악마병들의 레벨이 너무 높다.
"조금 더 나은 방법이 있을 거야. 내가 빠뜨리고 생각지도 못했던 문언가가...."
조각품에 생명 부여!
가장 현실적으로 강력한 아군을 늘려서 도움이 될 수 있는 스킬이었다. 미궁의 불안정한 마나로 인하여 다른 조각 생명체들을 소환하거나 유린이가 그림 이동술로 데려오지도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최소 5마리 정도는 생명을 부여해야 도움이 되겠지. 제대로 쓰려면 10마리 이상으로....그리고 아마 악마병들과 몬투스와 싸우면서 많이 죽어 버릴 테지."
스킬을 사용하면 레벨이 대폭 줄어들어 버리는 것은 물론이고, 갑자기 생명을 부여하려고 해도 만들어져 있는 명작 이상의 조각품도 없다. 현재까지 만들었던 조각품들 중에서 잘 나온 것들은 있었지만, 위험천만한 로드릭 미궁으로는 가져오지 않았던 것이다.
생명을 부여하더라도 부하 몇 명이 늘어나는 정도라서, 미궁에 처음 들어왔을 때의 전력보다 강해진다고 보기는 쉽지 않다. 악마병들과의 전투에서 금방 죽을 가능성도 높다.
"바깥이었다면 명성을 이용해서 죽어도 상관없는 자유기사들이라도 더 데려왔을 텐데...지금은 이미 후회해 봐도 늦었고, 기존의 조각술로는 방법을 찾을 수가 없겠군. 그렇다면..."
위드는 조각 변신술을 해제하고 배낭에서 프레야 교단에서 받은 목조품을 꺼냈다.
"지금처럼 가장 절실할 때에 도움이 될 만한 스킬이 있다면 그건 아마도..."
이렇게 궁지에 몰리게 된 이상 자신만의 조각술의 비기를 창조해 내기로 했다.
어지간한 스킬로는 현재의 답답한 상황을 바꾸지 못할 것이다. 완벽히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는 그런 스킬, 그리고 앞으로도 두고두고 써먹을 수 있는 기술을 만들어 내야만 했다.
*
사각사각사각.
위드는 자하브의 조각칼로 목조품을 깎았다.
세밀하고, 정성이 듬뿍 담겨 있는 손길!
조각품의 비기를 창조해 내는 중요한 순간이었으므로 완벽하게 집중하고 있었다.
'부동산에서 집을 사고 돈을 입금할 때만큼이나 긴장이 되는군.'
앞으로 쭉 함께하게 될 동반자 같은 스킬!
광휘의 검술처럼 적과 싸울 대에도 필요하고, 조각품에 생명 부여처럼 애정 어린 동료도 있으면 좋다. 대재앙처럼 한꺼번에 뒤집어 놓을 수가 있거나, 조각 변신술처럼 예측하지 못한 변화를 추구하는 것도 쓸모가 있다.
정령창조 조각술도 꾸준히 익히고 사용한다면 활용도가 지금보다 훨씬 높아질 것이란 것은 확실했다. 지금까지 익히고 있는 모든 조각술의 비기, 그리고 현재의 상황을 완전히 바꾸어 줄 수 있는 스킬이란!
'너무 좋은 스킬을 만들어 내면 페널티가 심할 텐데. 아무튼 여기서는 얼굴에 주름을 조금 더 표현해 주는 것이 맞겠지.'
위드가 조각을 하고 있는 것은 나이가 많은 할아버지였다.
지혜를 간직한 깊은 눈매와 이마의 큰 주름들. 입고 있는 옷은 마법사의 로브였으며 머리에는 챙이 넓고 길쭉한 모자도 착용하고 있었다.
'손에는 마법 스태프를...망토는 없는 것이 낫겠지.'
지금 조각을 하고 있는 것은 대마법사 로드릭이었다.
이곳 미궁에 대한 영상에서 본, 악마 몬투스와 싸우던 그 로드릭을 그대로 조각을 하는 것이다. 조각사의 장점으로는 직접 눈으로 보았거나 상상했던 대상을 고스란히 재현할 수 있다는 점!
위드는 그 자리에서 7시간에 거쳐 조각품을 완성했다.
┌────────────────────────────────────┐
│- 프레야 여신의 신성력으로 새로운 조각술을 창조해 낼 수 있습니다. │ │ 조각술의 이름을 정해 주십시오. │
└────────────────────────────────────┘
"조각 부활술."
┌──────────────┐
│- 조각 부활술이 맞습니까? │
└──────────────┘
"맞다."
┌────────────────┐
│- 조각술을 정의하여 주십시오. │
└────────────────┘
위드는 목소리를 묵직하게 깔았다.
"이 땅에는 밤하늘의 별만큼이나 많은 영웅들이 살다가 갔다. 게이하르 폰 아르펜 황제, 콜드림, 대마법사 로드릭 그리고 로자임 왕국의 현왕 시오데른."
현왕 시오데른은 다른 이들에 비해서는 조금 격이 떨어졌지만, 피라미드를 건설하게 해 주었기 때문에 특별히 끼워 넣어 주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흔히 그렇듯이, 협찬의 힘이었다.
"이미 죽은 역사적인 인물들을 다시 불러올 수 있는 스킬이 될 것이다."
┌────────────────────────────────────┐
│- 조각술의 특성상 스킬 사용에 따른 패널티가 심하게 부여될 것입니다. │ │ 그래도 진행하시겠습니까? │
└────────────────────────────────────┘
"이미 결정했다."
패널티가 심해서 스킬을 자주 쓰지 못하더라도 어쩔 수 없었다.
┌────────────────────────────────────┐
│- 조각술이 완성되었습니다. │ │ 프레야 여신은 인과율이 어긋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
│ 조각술을 사용할 때마다 일정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입니다. │ └────────────────────────────────────┘
┌────────────────────────────────────┐
│ 목조품 : 내구력 1/1 │ │ 위드가 자신의 기술을 수록한 목조품이다. │ │ 죽은 지 오래되어 역사에만 남아 있는 인물들을 불러오는 기술을 익힐 수 │
│ 있다. 단, 고급 조각술을 먼저 터득하여야 한다. │
└────────────────────────────────────┘
┌────────────────────────────────────┐
│ 조각 부활술 1(0%) : 조각품을 만들어서 현재는 살아 있지 않은 위대한 인 │
│ 물들을 불러올 수 있다. │
│ 고급 조각술 필요. │
│ 단, 사용할 때마다 예술 스탯 45 하락. 신앙 10 감소. 레벨 3이 떨어지게 │
│ 됨. │
│ 대상이 살아 있을 때의 모습을 정확히 조각해야 하며, 조각 부활술로 불러 │
│ 온 이가 활동할 수 있는 시간은 스킬 레벨에 따라 달라짐. │
│ 현재 21시간. │
│ 지금의 스킬 레벨로는 한번에 1명만 불러올 수 있다. │
│ 인간과 유사 인종들만 부름에 응답할 것이다. 몬스터들은 불가능. │
│ 살아 있을 때의 기억과 능력을 가지고 활약할 수 있지만 부하를 대하듯이 │
│ 명령을 내리지는 못하고 자기 자신의 의지에 따라 행동함. 때때로 자신의 │
│ 의지에 따라서, 어떤 도움을 주지 않고 피해만 줄 수도 있다. │
│ 프레야 여신이 허락하지 않아 같은 인물을 두 번 불러오는 것은 불가능함. │
│ 스킬 시전 후 재사용을 위해서는 한 달의 시간을 필요로 한다. │
└────────────────────────────────────┘
┌──────────────────────┐
│ - 조각술 스킬의 숙련도가 향상되었습니다. │
└──────────────────────┘
┌───────────────────────────┐
│ - 조각술의 비기를 창안하여 명성이 2,430 올랐습니다. │
└───────────────────────────┘
위드에게는 귀중하기 짝이 없는 스킬의 탄생!
"레벨이 3개나 깎이다니 조금 아쉽군."
대단한 영웅을 불러올 수 있다고 해도 활동 시간은 고작해야 하루도 되지 않는 수준.
"무진장 비싼 임대료를 내야 되는군!"
월세도 아닌 하루치 비용이 예술과 신앙 스탯, 레벨의 하락이었다.
"어쨌든 사용해 봐야지. 조각 부활술!
위드는 곧바로 스킬을 시전했다.
처음으로 되살아나게 할 인물은 정해져 있었다.
대마법사 로드릭!
이 미궁은 그의 집이고 연구실이었다.
┌────────────────────────────────────┐
│ - 조각 부활술 스킬을 사용하셨습니다. │
│ 마도의 정점에 올라 있던 대마법사 로드릭, 예술의 부름을 받아 이 땅에 │
│ 서 다시 움직이게 될 것입니다. │
│ 예술 스탯 45가 영구적으로 사라집니다. │
│ 신앙 스탯 10이 영구적으로 줄어듭니다. │
│ 레벨이 3 하락합니다. │
│ 생명력과 마나 18,000씩이 소모됩니다. │
│ 조각 부활술에 의하여 되살아나는 인물은 생전에 지식과 능력을 가지고 │
│ 있습니다. │
│ 정해진 짧은 시간이나마 세상을 다시 볼 수 있고 움직일 수 있게 해주는 │
│ 것에 대해 고마워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
┌────────────────────────┐
│ - 조각 부활술 스킬의 숙련도가 향상되었습니다. │
└────────────────────────┘
언데드 소환과는 완전히 달랐다.
실제 존재했던 인물을 온전히 다시 돌아오게 하는 것.
위드가 있는 장소에 새하얀 빛이 가득 찼다. 그리고 서서히 빛이 사라지고 난 이후에는 한 사람이 나타나 있었다.
대마법사 로드릭!
위드가 이곳 미궁에 들어오기 전에 영상으로 봤고, 조각을 했던 로드릭이 나타난 것이다. 로드릭은 주변을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나는...분명히 악마 몬투스와 싸우다가 죽었다. 그리고 이곳은 나의 집이로군."
대마법사답게 상황 판단이 빨랐다.
위드는 그에게 다가갔다.
"위대하신 대마법사 로드릭 님께 인사 올리겠습니다. 평소에 흠모하던 차에 이렇게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넌 누구인가?"
"저는 위드라고 합니다. 직업은 조각사입니다."
"들어 본 적 없다."
"당연히 그러실 겁니다."
로드릭이 살아 있었을 당시에는 당연히 위드가 유명하거나 역사서에 나올 일도 없었다. 지금은 거장 조각사로 인정을 받고 있으며 아르펜 왕국의 국왕이기도 했지만, 로드릭에게는 대우를 제대로 받지 못했다.
명성이 위력을 발휘하려면 그것을 접해 봐야 한다. 로드릭이 마을로 내려가거나, 소식과 유행이 잘 퍼지는 도시에 간다면 위드에 대하여 금방 알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별로 가망 없는 이야기였다. 물론 밖으로 나갈 수 있다고 해도 악덕 고용주인 위드가 찬성할 리도 없다.
"저는 모험을 하던 도중에 대마법사 로드릭님께서 악마 몬투스를 이곳에 가두어 두었다는 사실에 대해 진한 감동을 받았습니다."
"내 실수로 대륙의 평화가 깨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지. 몬투스가 밖으로 나갔다면 큰일이 났을 것이다."
"그렇습니다. 로드릭님 덕분으로 대륙은 평온할 수 있었습니다."
위드는 맞장구를 쳐 주었다.
사회라는 게 다 적당히 아부도 하면서 서로 맞춰가며 가는 것.
"나에게 바라는 것이 있느냐?"
"없습니다. 다만 이곳에 갇혀 있는 몬투스가 언젠가는 밖으로 나가게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몬투스는 내가 없앨 것이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옆에서 그저 로드릭님을 도와 드려도 될까요?"
"내가 저지른 일이니 나 혼자서도 충분하다."
로드릭은 마법 스태프로 땅을 딱 하고 내려쳤다. 큰 소리가 나거나 무시무시한 일이 벌어진 것도 아니었는데, 위드의 눈길이 스태프로 향했다.
"대마법사가 쓸 정도의 스태프라면 저거 대체 가격이...꿀꺽!'
큼지막한 다이아몬드가 박혀서 활홀한 빛을 뿌리고 있었다. 로드릭은 대마법사답게 자기 자신의 능력에 대한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세계를 구성하는 법칙들을 이해하고 위대한 마나의 힘으로 뒤바꾸어 놓는 마법사다운 태도다.
'판사, 검사, 변호사, 의사 그리고 마법사지.'
어쨌든 전문직이라는 사 자 돌림!
"평소 존경하던 대마법사 로드릭님과 함께 악마들과 싸울 수 있다면 저에게는 거대한 영광이 될 것입니다."
"위험한 일이다."
"제 힘이 미약해도 이곳의 악마들과 싸우고 있었습니다. 저에게 목숨은 가장 큰 재산이기에 제일 가치 있는 일에 쓰기 위하여 이곳에 왔던 겁니다. 그러니 로드릭님의 옆에서 존경스러운 모습들을 하나하나 배울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여기서 기다려라."
"후세의 사람들이 로드릭님을 기억할 수 있도록, 조각사인 제가 그 모습들을 잘 관찰하고 작품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정 그렇다면 따라와라. 하지만 나를 번거롭게 해서는 안될 것이다."
"물론입니다."
처절하게 매달린 끝에 결국 위드는 로드릭과 함께 가는 것을 허락받았다.
'이제 로드릭의 뒤를 따라다니면서 실컷 이득을 보는 것만 남았군. 레벨을 3개나 깎아 가면서 불러들였으니 제대로 활용을 해 주어야지.'
*
로드릭은 설치된 함정을 파훼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현재 그들이 있는 위치까지도 알고 있었다. 이곳은 다른 곳도 아니고 바로 그의 집이었기 때문이다.
"여기는 내 연구실에서 꽤나 먼 곳이로군. 공간 왜곡과 환영 마법은 악마병들이 빠져나갈지도 모르기에 풀 수 없으니 이동하면서 전투를 해야겠다."
"예, 준비되어 있습니다.'
위드는 조각 변신술로 다시 모습을 쿠비취로 바꾸었다.
바하모르그와 성기사, 사제들을 지휘하면서 로드릭의 뒤를 따르기로 했다.
악마병 9마리가 기세등등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캬핫, 인간 주제에 이곳까지 오다니..."
"먹이가 왔구나. 어! 그런데 늙은 너는 어디서 봤던 것 같은데."
"내 집을 더럽히고 있는 놈들, 썩 사라지거라. 육체 파열!"
로드릭의 마법에 의하여 악마병들이 한곳으로 끌려가더니 공기가 압축되어서 찢어지는 폭발로 커다란 피해를 입었다. 곧바로 죽진 않았지만 레벨이 높아서 쉽게 쓰러지지 않던 악마병들이 단 한 방에 모조리 중경상을 입은 것이다. 그러나 단지 한 번의 마법 사용 정도가 대마법사를 두려워하는 이유는 아니었다.
"화염 기둥."
고통스러워하는 악마병들이 몰려 있는 곳에 새빨간 불기둥이 마구 치솟았다.
지역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범위 마법!
마법이 발현되면 그곳을 벗어나지 않는 한 끝날 때까지 계속 피해를 입게 된다.
대마법사는 지연 시간이 거의 없이 연속으로 마법을 사용할 수 있었으며, 유지 시간도 아주 길었다. 화염 기둥은 중급 마법 정도로, 단지 인사에 불과했다.
"지옥의 불. 암석 강타. 영혼의 충격!"
로드릭은 악마병들을 몰아 놓고 무자비한 공격을 가하고 있었다.
기회를 포착한 위드의 눈이 빛났다.
"제가 도와 드려도 되겠습니까?"
"마법 주문을 외우는 데 방해가 된다. 지켜보기나 해라."
"로드릭님께서 이 악마병들을 전부 다 해치우실 필요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몬투스에게 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작은 힘이라도 도울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정 그렇다면 하고 싶은 대로 해라."
"성기사들은 습격을 대비하여 수비 진형으로, 사제들은 신성 마법으로 악마들을 직접 공격해라."
위드의 지휘에 성기사들은 로드릭을 보호하기 위해 방패를 들고 도열했다. 완벽하게 수리된 갑옷과 방패 들이 약간의 오차도 없이 번쩍번쩍 빛을 냈다. 사제들은 악마들을 향해 신성 마법들을 사용하며 집중 공격했다.
"캬하악!"
"저 인간을 죽여야 한다."
악마병 2마리가 뛰쳐나왔지만 벌써 대비가 되어 있었다.
"너는 내 몫이다."
"루의 뜻으로 사멸시키겠다."
바하모르그와 데리안이 악마병들을 맞상대했다.
지금까지 8~9마리와 힘겹게 싸워 왔으니 2마리 정도라면 간단하기 짝이 없었다.
"크와아아악!"
그리고 로드릭의 집중 공격으로 전신에 불이 붙은 악마병이 괴로워하면서 죽어 가는 그 순간.
"블링크!"
위드는 악마병의 옆에 나타나서 레드 스타를 휘둘렀다.
┌────────────────────────────────────┐
│ - 악마병 타비아스가 소멸되었습니다. │
│ 전투에 참여한 이들의 명성이 191 증가합니다. │
└────────────────────────────────────┘
┌─────────────────┐
│ - 경험치를 조금 습득하셨습니다. │
└─────────────────┘
레드 스타를 오른손으로만 사용하면서 왼손은 빠르게 움직였다.
슥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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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악마병 타비아스의 공포 채찍을 습득하셨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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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악마병의 허리띠를 습득하셨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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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금술의 흑색 시약을 습득하셨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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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는 바로 옆의 악마병이 약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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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악마병 로츄스가 소멸되었습니다. . │
│ 전투에 참여한 이들의 명성이 171 증가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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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경험치를 조금 습득하셨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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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악마병을 연속으로 사냥하여 민첩이 1 높아집니다. │
└──────────────────────────┘
스스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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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악마병 로츄스의 깨진 견갑을 습득하셨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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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증오의 파편을 획득하셨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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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의 정의를 위하여 널 처단하겠다."
위드는 생명력이 얼마 없는 악마병들만 골라서 마지막 일격을 가했다. 보통 전투를 실컷하고 경험치는 부하들에게 양보하는 편이었다. 그런데 여기에서 성기사들과 사제들은 자신의 부하가 아니었고, 하루 뒤면 다시 사라지게 될 로드릭은 말할 필요도 없다.
본전을 찾기 위한 악착같은 전투!
"시간이 없다. 빨리 가야 한다."
"예, 대마법사 로드릭님."
로드릭은 제한된 시간 동안만 세상에 존재할 수 있기에 경험치에는 관심이 없었다.
"바하모르그, 더 빨리 전투를 하라. 다른 이들을 위하여 망설이지 않아도 된다."
"그렇게 하지."
"성기사와 사제들도 지금부터는 속도를 낸다."
"예! 알겠습니다."
위드는 성기사와 사제들을 확실히 통솔하고 있었다.
미궁에서 그가 지금까지 보여 주었던 헌신과 노고가 보답을 받고 있는 것이리라.
'로드릭이 존재할 수 있는 건 대략 20여 시간. 그 안에 이 미궁에서 목표를 달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