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드릭의 연구 기록
【 “아름다움이란 주변의 사소한 것들에도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제대로
알아보지 못할 뿐이죠.”
“바다 위로 반짝이는 햇빛을 보았습니다. 그 후로 그만큼 아름다운 조
각품을 만들었는지는 스스로 의문이 듭니다.”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너무 빨리 흘러가 버려서도 볼 수 없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아련하게 기억으로만 남아 있는 추억이 되어 버리니까 말
입니다.”
“먹구름에서 떨어지고 있는 빗방울은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그 빗방울이
수면 위로 떨어지고, 꽃들을 적시고, 나무에 달려 있는 잎사귀들에 모일
때는 정말 아름답지요. 우리는 매일매일 그런 아름다움에 둘러싸여 있으
면서도 제대로 보지 못하기 때문에 그저 막연하게 느끼며 지나치는 거죠.”
“햇빛이 맑은 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조각술의 기본이 되는 빛. 우리는
그 빛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따뜻한 빛이 사물에 비쳐서 만들어
내는 황홀함이란...”
“고요와 적막, 모든 것들이 정지해 있는 찰나의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있
다면 좋지 않을까요?”
“찬란한 아름다움의 표현을 위한 방식으로 저도 공감합니다.”
“누국나 이런 기억을 갖고 있을 겁니다. 가장 아름다운 것을 보았을때...
모든 것이 멈춰 있는 듯한 착각을.”
“그때처럼 아름다운 것이 또 없지요. 그렇게 세상이 멈춰 있는다면 아름
다움을 표현하기가 훨씬 편해질 겁니다.”
소소한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던 조각사들은 세상을 멈추기를 원했다.
그야말로 기발한 상상력이기는 했다.
시간을 멈춰버린다면 빨리 지나가 버려서 보기 어려운 빛의 아름다움이나
물과 바람의 조화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조각사가 보고 주의 깊게 살피고 고찰한 후 표
현해 낼 수 있다.
조각사들의 논의 끝에 찬란한 아름다움의 표현법을 결정했다.
모든 것이 멈춰 있는 세상에 오로지 홀로 움직이면서 순간의 아름다움을
관조하는 것.
시간조각술!
나 로드릭과 조각사들이 이룩하고자 하는 목표였다. 】
지독하게 광오하기까지 한 목표!
"커헉!"
위드는 조각사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했다.
"조각사로 태어났으면 역시 이 정도의 포부는 가지고 있어야지. 매일 비굴하게 조각품만 팔아서는 살 수 없지. 다 죽었어! 이 퀘스트만 성공하면 제대로 한밑천 챙겨 볼 수 있겠구나."
*
몬투스와의 싸움이 벌어졌을 때, 모라타는 쥐 죽은 듯이 조요했다.
"아..."
"안 되는데..."
"꺄아, 어떻게 해! 성기사들을 구하느라 또 부상을 입었어."
"피하셔야 하는데! 이기지 못하더라도 무사히 살아 나올수만 있다면..."
선술집에서는 가끔씩 안타까워하는 목소리만 들렸다. 맥주를 시키는 것마저도 비난을 받을 정도로 조용했다. 과거와는 다르게 새의 형상을 하고 있는 종족들도 보였는데, 그들은 아르펜 왕국에서 새로 선택할 수 있게 된 조인족이었다.
조인족은 발달된 육체적인 능력 외에도 날개를 펼쳐서 하늘을 날아다닐 수가 있다. 평지의 전투에서도 많은 도움이 되었는데 조인족 궁수, 조인족 투사는 그들끼리 파티를 이루어서 사냥을 다녔다. 새롭게 조인족을 선택하여 캐릭터를 만든 초보자들 사이에서는 아장아장 날갯짓을 하며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이 인기였다.
인간, 바바리안, 오크, 엘프, 드워프에 이제는 조인족까지, 그렇게 다양한 종족이 모여 앉은 침묵의 시간이 흐르고, 수많은 공방전 끝에 몬투스의 육체가 위드의 공격에 소멸되어 갔다.
위드가 로드릭 미궁을 제패하는 순간, 침묵을 지키던 모라타의 선술집과 광장이 일제히 들썩거렸다.
"만세!"
"통닭 드시고 싶으신 분 마음껏 시키세요! 저 산드라가 쏠게요!"
"바람의 정원 선술집 주인 마타고입니다. 요리 스킬 초급 6레벨의 안주 전문 요리사죠. 오늘은 맥주 무제한 공짜입니다!"
"광장에 1,200인분 풀죽이 끓고 있습니다. 어서 나갑시다!"
"특별 할인! 국왕 위드의 퀘스트 완료를 기념하여 잡템 전품목 매입 가격을 14% 올려 드립니다."
"장검류 판매! 딱 오늘에 한해서 마진 안 남기고 거래합니다. 검날도 갈아 드리며, 숫돌도 3개씩 지금해요. 기회를 놓치지 마세요."
"최저가 사은 행사! 아라보고 오신 금액보다 3골드 적게 팝니다."
아르펜 왕국이 통째로 들썩이고 있었다.
그리고 왕국 소속유저 전원에게 퀘스트가 발생했다
띠링!
┌────────────────────────────────────┐
│ 아르펜 왕국의 궁전 │ │ 북부 대륙을 제패하고 있는 아르펜 왕국. │
│ 신생 아르펜 왕국은 빠르게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 │ 바바리안, 엘프, 드워프, 우호적인 원주민들과, 니플하임 제국 출신의 성들 │ │ 이 포함되면서 방대한 영토를 거느리게 되었다. │
│ 안규 증가와 치안 확보로 새로운 도시들이 생겨나고 있다. │
│ 국왕 위드는 영명함과 용기로 국가적인 치적을 쌓아 나가고 있다. │
│ 아르펜 왕국을 통치하는 상징물이 될 왕궁을 건설하라. │
│ 난이도 : 국가 퀘스트. │
│ 보상 : 국가 공헌도. │
│ 퀘스트 제한 : 아르펜 왕국 소속 한정. │
└────────────────────────────────────┘
위드의 명성과 주민들의 충성심, 왕국의 발전도가 아우러져서 왕국 건설 퀘스트가 발생한 것이다. 다른 왕국에서 왕궁 건설이 시작되면 세율이 인상되며 각종 수당들이 만들어진다. 아르펜 왕국은 천문학적인 흑자 규모로 인해 내부적인 자금이 축척되어 가고 있었다.
위드가 나중에 횡령을 해 가려던 200만 골들!
그 돈을 밑천 삼아서 왕궁 건설 퀘스트가 시작되었다.
"어, 이런 게 있었네."
"오늘부터 또 일하는 거야?"
"왕궁의 건설 부지부터 정해야죠.
그리고 자재들을 운반해 올 채석장에서 도로부터 뚫어야 되고요."
아르펜 왕국 유저들을 대형 공사라면 이골이 나 있었다. 지역마다 위대한 건축물들도 세워지고 있었기 때문에 매우 익숙했다.
"나의 창작욕을 불태웠던 예술품들을 대거 내놓아야겠군. 왕궁의 장식품으로 쓰인다면 부족함이 없지."
"기사 갑옷을 만들었는데...이건 팔지 말고 왕실 복도에 전시용으로 납품하면 되겠어."
예술가들과 대장장이들은 준비되어 있었다.
도예가 조합, 조각사 조합에서도 기꺼이 나섰다.
"진흙 굽는 건 저희가 하겠습니다."
"돌 쪼개를 거야 밥 먹고 매일 하는 일이죠."
건축가 유저들은 따로 모였다.
"정말 호화스럽게..."
"왕궁다운 건물이 필요할 때도 되었습니다."
"현재 견적은 예산에 맞춰서 200만 골드 정도로 예상하고는 있으나..."
"공사 비용이 늘어나는 것쯤이야 항상 벌어지는 일이죠."
"위치는 어느 곳이 좋겠습니까?"
아무래도 입지 요건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었다.
왕궁은 통치의 중심이다.
왕궁에 가까운 곳일수록 왕국에 대한 주민들의 충성도가 높게 유지되어 잘 떨어지지 않고, 그곳을 중심으로 지역 정치에 영향력을 퍼트리게 된다. 현재 북부의 빈 땅이나 마을들이 왕국에 소속되고 있기에 정치 영향력은 매우 중요하다. 왕궁은 경제성장을 촉진하는 역할도 하기 때문에 주로 모라타에 짓자는 의견이 많았다.
"명실상부한 수도로 알려진 도시가 모라타입니다."
"북부에서, 그리고 대륙 전체에서도 모라타는 대도시죠. 이만한 도시에 왕궁까지 건설되면 그 발전력은 대단할 겁니다."
"도로가 연결되어 있고 자재들을 운송하기도 쉽죠. 필요한 인부들도 얼마든 구할 수 있고요. 공사 기간이 아주 짧아질 겁니다."
"하지만 모라타에는 왕궁을 건설할 정도로 넓은 부지가 없어요.
"판자촌을 밀어서라도..."
"그건 안 될 말입니다!"
모라타가 확장되면서 상업 시설이 늘어났고, 중급· 고급 주택단지도 생겨났다. 하지만 판자촌은 명물로 계속 남아 있었다. 판자촌의 유저들도 성장을 하다 보니, 복잡한 뒷골목의 벽에 그림도 그려지고 조각상들도 세워졌다.
예술과 문화의 거리로 꽃피워지고 있었다.
"그렇다면 어디가 좋겠습니까?"
"넓게 볼 필요가 있습니다."
모험가와 상인들까지 가세하여, 풀죽신교 산하에 왕궁건설추진위원회가 만들어졌다. 북부 대륙의 지도를 펼쳐 놓고 왕궁 건설 부지를 선정했다.
"바닷가는 일단 부적합할 것 같습니다."
"항구가 발달하면 그것도 좋지 않을까요?"
"차차 이루어져야 할 문제이지만, 지금은 내륙 쪽에도 개발하지 못한 곳들이 수두룩합니다."
"북부가 잠에서 깨어나고 있는데, 그대로 묻혀 버리는 곳들도 있죠."
북부의 마을들을 그동안 추위와 몬스터로 인하여 괴롭힘을 당해왔다.
아르펜 왕국이 건국되면서 영토에 포함되는 곳들이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지만, 몬스터의 침공을 버티지 못하고 전멸하는 마을도 많았다.
마을이 없어지면 수많은 모험과 기록이 사라지는 것이다. 차후에 그곳에 새로운 마을이 건설되더라도 주변 지역에 대한 모험과 정보가 사라져서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당장은 상업이 발달하지 못했더라도 앞으로 가능성이 높은 곳으로 합시다."
"니플하임 제국의 역사서를 보고 참고하는 것도 좋겠습니다."
"인근에 마을들이 많아야 합니다."
"큰 강줄기가 흐르고 평탄한 곳으로 정해야 될 것입니다."
아르펜 왕국으 수도를 정하는 것인 만큼 중대한 사안이었다.
"신들의 정원과 바르고 성채의 중간 지역이 어떨까요?
"북부의 중심이 아닌데요?"
"앞으로 이곳이 중심이 될 수 있을 겁니다. 바르고 성채와 신들의 정원 사이의 거리도 꽤 멀어서 빈 땅이 많습니다."
"도로망도 개통되어 있지요."
"문제는 강을 끼고 있는 평야지대가 그리 넓지 않다는 건데..방대한 부지에 왕궁이 건설되고 나면 상업 지대와 주택 단지들이 들어설 자리도 필요한데, 모자랍니다."
북부 대륙의 유저들에게는 광활한 평원들이 익숙했다. 신들의 정원과 바르고 성채 사이에 있는 빈 땅도 모라타 수준으로 매우 넓은 곳이었다.
하지만 모라타의 급속한 발달을 보고, 지금은 아르펜 왕국 각 지역의 발전을 직접 경험하고 있다. 왕궁이 건설되기만 한다면 도시가 번성하는 것은 금방이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최적의 장소를 찾으려고 했다.
"왕궁을 꼭 평야지대에 지어야 될 필요는 없겠죠."
"그렇다면...."
'이곳의 산들은, 제가 직접 가 봤는데 웅장하고 아주 멋집니다. 바르고 성채처럼 험하고 가파른 산들이 아니죠. 이 산들에 걸쳐서 잘 어우러지게 왕궁의 건물들을 짓는 겁니다."
"화려하고 호화로운 왕궁을 자연과 어우러지게 짓는다라..."
"도시를 내려다보는 구조로요."
"높은 곳에 왕궁을 짓겠다면 작업이 쉽지는 않겠는데요."
"그렇지만 최고의 건축물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원가절감따위는 고려할 필요도 없죠."
아르펜 왕국의 위엄을 상징할 왕궁을 산의 꼭대기에 짓는다. 산을 오르는 길을 따라서 상업지역과 중요한 길드들이 개설되고, 주택단지는 평야 쪽에 만든다. 건축물들을 잘만 지어 놓는다면 왕궁으로서 특색 있고 매력적인 방문지가 되기에 충분하다.
나중에 위드가 왕궁 근처에 대형 조각품을 세워 둔다면 그것도 눈에 확 띌 것이다. 북부를 대표하는 아르펜 왕국의 위엄에 맞는 왕궁이 태어나게 되는 것이다.
"다른 적합한 후보지들도 꽤 여럿이지만 선정에 신간을 오래 들이기가 곤란합니다."
"유저들의 항의가 엄청납니다. 어서 시작하고 싶다고요."
"어서 설계부터 해 보죠."
"오늘부터 며칠간은 야근입니다.
"회사에서도 야근이라면 치를 떠는데...아르펜 왕국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밤을 새워 보겠습니다."
*
헤르메스 길드에서는 대대적으로 군대를 길러 냈다. 베르사 대륙의 수많은 길드 중에서도 단연 독보적인 힘을 가지고 있는 그들이었지만, 최강으로는 만족하지 않았다. 예정되어 있던 대륙 재패를 위한 무적의 병력을 양성해 냈다.
"드워프들의 무기 생산은?"
"감금한 드워프 대장장이들을 통해 차질없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병력은?"
"사기와 훈련도가 최고입니다."
헤르메스 길드에서는 긴 시간을 들여 병력을 양성하며 물자들을 보충해 왔다.
하벤 왕국, 칼라모르 왕국, 라살 왕국, 브리튼 연합 왕국, 톨렌 왕국에서 거두어들이는 재정 수입을 개발보다는 군대 양성에 우선하여 투입하였으니 천문학적인 액수였다.
일반 병사들보다는 엘리트 병사들을 양성했다. 아무리 돈을 많이 들이더라도 징집할 수 있는 인구에는 제한이 있었기 때문이다.
ㅡ 엠비뉴 교단으로 인한 마을 전멸.
ㅡ 라헤스터 지역의 황폐화.
엠비뉴 교단을 핑계로 소문을 내고 유저들이 찾지 않는 지역에서 병사들을 징집하고 훈련장으로 썼다. 군대가 소모하는 물자 조달과 징병에 엄청난 금액이 들어갔기 때문에 하벤 제국의 부담 역시 막대했다.
라페이가 개최하는 수뇌부 회의에는 100여 명의 기사와 군 지휘관들이 참석했다.
"이번 전쟁은 성전으로 부릅니다. 그리고 하벤 제국은 대륙 전체를 통일하게 될 때까지 진군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개시일은 언제입니까?"
하벤 제국의 국경이 맞닿아 있는 왕국만도 여럿이었다. 이제는 제국이 너무 커져서 1개 왕국씩 상대를 할 수는 없다. 전쟁을 일으키지 않겠다는 선언을 깨뜨리고 하벤 제국이 다시 점령을 개시한다면 연합군이 결성될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기 때문이다. 그럴 바에야 모든 국경에서 동시 침략을 개시한다.
연합군이 결성되고, 그들의 전력이 모이기까지는 차일피일 상당한 시간을 필요로 한다. 연합군이 정신을 차리지도 못하도록 전격적인 진격으로 주도권을 가지고 전쟁의 승리를 잡는다는 계획. 이번에는 다시 전쟁을 멈추더라도 믿을 사람이 없을 테니 파죽지세로 끝까지 밀어붙이는 것만이 남았다.
"시기로는 위드가 모험을 완수하고 그것으로 떠들썩해 있는 지금이 기회입니다."
고레벨 유저들에게는 배가 아픈 일이지만, 로드릭 미궁을 최초로 제패한 위드의 명성을 끝을 모를 정도였다. 명문 길드가 나서도 실패한 일을, 비록 NPC들의 도움을 받았지만 스스로 이루어 냈다. NPC들을 끌어들여서 지휘를 한 것 역시 위드 자신의 능력이 바탕이 된 것이기 때문에 찬양의 목소리는 더욱 높았다.
베르사 대륙의 시골 마을 주민들까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각 방송국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전혀 상관없는 초보자들의 성장법에 대한 방송을 하면서도 위드의 이야기가 열 번씩 나올 정도였다. 로열 로드를 하는 유저들에게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위드의 인기는 단연 압도적이리라.
"사람들의 관심이 위드에게 향해 있는 것을 이용합니다. 자세한 공격 개시일을 밝히기에는 이르지만 열흘 안으로 시작될 테니 군대들이 일제히 국경으로 이동하셔야 합니다."
전쟁 계획서에 따라서 미리 각 왕국을 상대할 군대들도 편성이 되어 있다. 헤르메스 길드에서 준비한 정예 병력만 무려 400만에 달했다. 은밀히 동맹을 맺은 하부 길드들까지 합한다면 병력은 엄청날 것이다.
*
시간의 조각술!
조각술 최후의 비기로서 조금도 아쉽지 않은 스킬이란 느낌이 왔다.
"시간이 멈춰 있는 세상이라..."
어떤 식으로 발동이 될지는 모르지만 이런 상상은 누구나 한 번쯤 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정말로 세상이 멈춰 버려서 혼자만 움직일 수 있다면 뭘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 조각사들도 무궁무진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찬란한 아름다움의 표현법을 정했던 것이다.
"은행부터 털어야 될까. 아니야, 백화점에 가서 돈과 귀금속, 물건을 몽땅 쓸어 오는 것도 괜찮지. 현금과 금괴를 집안에 가득 쌓아 놓는다면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를 것 같아."
금괴를 실어 오다 넘어져서 다치더라도 환하게 웃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위드는 로드릭의 연구 기록을 계속 읽었다.
시간 조각술이 나온 것은 천만다행이라고 할 수 있는 점이지만, 어떤 패널티가 생기는지도 매우 민감한 부분이었다.
【 스쳐 지나가는 아름다움을 놓치지 않게 시간 조각술을 완성하려고 했지만
이내 벽에 막히고 말았다.
무슨 수로 세상에 흐르는 시간을 멈추게 할 것인가.
결론은 있지만 이루어 낼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그리하여 시간 조각술에
대해서는 포기하고, 자라나는 식물의 조각술에 대한 논의도 이어졌다.
화사한 향기를 퍼트리는 식물이 자라난다면 그것 또한 아름답지 않겠는가.
조각품이 아니라, 조각 식물이 갈수록 아름답게 성장을 하는 것이다. 】
"안 돼!"
위드는 비명을 지르고야 말았다.
잘 나가다가 이게 무슨 논두렁이란 말인가.
【 예술을 위하여 식물들을 가꾸는 것도 의미가 큰 일이라고 하겠다.
삭막한 땅에 뿌리를 내리고 꽃봉오리를 터트리는 식물들은 대륙의 사람들
에게 적지 않은 위안이 될 것이다. 대륙이 전화에 휩싸이더라도 조각 식
물들은 깊게 뿌리를 내리고 자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다.
그러다가 어떤 조각사가 말했다.
“그런데 꽃이 지고 나면요?”
“꽃이 떨어지면 그 후에도 아름답다고 할 수 있을까?”
“식물을 가꾸는 건 농부나 조경사도 하는 일인데...”
“우리는 미적 탐구를 위하여 하는 게 아닙니까. 식물들을 바탕으로 해
서 예술을 하는 것이죠.”
이틀 동안 꽃과 나무에 대한 논쟁이 이어졌다. 그리고 누군가가 말했다.
“활짝 피어 있는 꽃도 며칠이 지나면 시들어 버리고 맙니다. 우리의
주변에 스쳐 지나가는 아름다움을 놓치지 않을 수 있는 시간 조각술
이야말로 조각사들을 위하여 더 필요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것도 그렇네.”
“하지만 어려움이...”
“예술과 아름다움은 그냥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댓가가 필요하다면
무엇이든 치러야지요.”
“시간 조각술에 대하여 다시 궁리를 해 봅시다.”
조각사들은 다른 분야에도 상당한 지식과 재능을 가진 익들이 많았다.
지리와 역사, 건축에 조예가 깊었으며, 검과 마법, 정령술 실력이 뛰
어난 경우도 있다.
다재다능한 천재들이 모여 시간과 관련된 연구를 계속했고, 나도 마
법에 대하여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조언해 주었다.
그리고 10년 정도가 흘렀다.
내가 겪어 본 조각사들은 그야말로 집요하다고밖에는 말할 수가 없었
다. 모험 기록과 역사서, 마법 이론서 등을 뒤적였으며, 대륙의 오지
로 떠났다가 돌아오지 못하는 자도 있었다.
예술품을 탄생시키기 위해서는 이 정도의 열정, 혹은 광기는 필요한
것이리라. 그들은 이미 최고의 조각사들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왜
이토록 연구에 매달리는지를 물어보았다.
“조각술에는 불가능이 없기 때문이오.”
“역사를 통해...조각술은 꾸준히 쇠퇴하고만 있지. 귀족들도 조각
품보다는 그림을 선호하고 있고, 언젠가 후배 조각사에게 우리가
해내지 못한 찬란한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고
싶소이다.”
우리는 연구를 통하여 시간 조각술에 대하여 알아내진 못했다.
그러나 인간, 엘프, 드워프를 비롯하여 샐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이종족
들, 세상에 문자로 기록되어 있는 모든 것들을 살펴본 끝에, 마침내 단
서를 찾아냈다.
노들레와 힐데른.
시간의 한계를 벗어나서 영원히 함께하려고 했던 연인들의 이야기. 】
로드릭의 연구 기록은 그곳에서 끝이 나 있었다.
띠링!
┌────────────────────────────────────┐
│ 보로타 섬의 연인들 │ │ 로드릭의 연구 기록은 믿기 어려운 사실들을 알려 주고 있다. │
│ 노들레와 힐데른. │ │ 시간의 한계를 벗어나려고 했던 연인들에 대하여 조사하라. │ │ 로드릭은 이를 위하여 몇 가지 단서들을 남겼다. │
│ 난이도 : 조각술 최후의 비기 퀘스트. │
│ 퀘스트 제한 : 사망했을 시에는 퀘스트 실패. │
└────────────────────────────────────┘
위드는 연구 기록이 담겨 있던 상자에서 몇 가지 아이템을 꺼냈다.
자이언트 파이어 골렘 소환 스크롤.
유성 소환 스크롤.
보로타 섬 주변 지도.
밤하늘의 별 이야기 #73.
멈춰 버린 나침반.
보로타 가문의 저택 열쇠.
시간의 모래.
"커헉!"
위드의 눈에 먼저 들어온 것은 마법 스크롤이었다. 찢기만 하면 봉인되어 있는 마법이 작동되는 스크롤. 자이언트 파이어 골렘이라면 지금 소환할 수 있는 유저는 아무도 없다.
로드릭이 부활시켜서 전투를 할 때 본 바에 따르면, 바하모르그 못지않은 대단한 전투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 유성 소환이란 설마..내가 생각하는 그런 건 아니겠지. 괜히 기대하면 안 돼. 어디 엘프들이 기르는 동물이나 몬스터의 이름이 유성일지도 몰라. 감정!"
위드는 유성 소환 스크롤을 살펴봤다.
┌────────────────────────────────────┐
│ 유성 소환의 마법이 봉인되어 있는 스크롤 │ │ 대마법사 로드릭이 자신의 최고 마법을 봉인해 놓았다. │
│ 스크롤을 만들기 위하여 수많은 실패를 거듭하여, 현재 존재하는 단 하나 │ │ 뿐인 유성 소환의 스크롤. │ │ 스크롤을 찢게 되면 중형 이상의 유성이 지상으로 소환됨. │
│ 사용 시 주의사항 : 마법이 일단 발동되면 중간에 취소가 불가능함. │
│ 정확도가 매우 낮음. │
│ 광범위한 지역의 초토화. │
└────────────────────────────────────┘
"이건 진짜구나.
짝퉁이나 모사품이 아닌 진짜 스크롤!
"유성 소환이라면 성 하나도 없애 버릴 수 있을 텐데."
위드는 만약 모라타에 유성 소환 마법이 시전된다면 어찌될지 상상해 보았다. 밤하늘을 가로지르며 긴 꼬리를 가진 붉은 유성이 도시를 강타한다. 어렵게 지은 건축물들이 순식간에 쓰러지고, 사람들이 떼죽음을 당하게 되리라. 광장을 비롯한 모든 것들이 형체를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파괴될 것이다.
"그리고 시간 조각술을 얻기 위해서는 이 단서들을 조사해 봐야겠군."
위드는 베르사 대륙의 주민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가장 사랑한 연인들? 노들레와 힐데른이지."
"그들은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영원히 함께했다고 해."
"아랫집 아가씨가 요즘 연애를 하는 모양이더군. 노들레처럼 착한 남자를 만난다면 좋을 텐데."
주민들이 뜬금없이 하는 말들에도 노들레와 힐데른, 보로타 섬의 연인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모험가들은 그들에 대하여 관심도 가졌던 모양이지만, 연인들이 보로타 섬에서 떠난 이후의 종적에 대하여서는 알려져 있지 않았다.
*
"아주 흥미로워."
유병준은 위드의 모험을 보고 나서 몸이 들석였다. 로열 로드를 창조하고 난 이후로 직접 그 세계에서 플레이하지는 않았다. 자신이 만들어 낸 세상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을 지켜보며 대리 만족을 느낄 뿐이었다.
"로열 로드를 직접 해 봤다면 지금의 기분이 더 선명해졌을까?"
인공지능이 띄워 주는 여러 화면들을 통해 위드의 일거수일투족을 세밀하게 관찰했다. 놀랍게도 위드는 대부분의 상황에서 꼭 있어야 할 위치에 존재했다.
ㅡ 악마병 피오커가 죽기 직전입니다. 남은 생명력 1,439. 위드가 공격합니다.
인공지능이 알려 준 장소에 위드는 전광석화처럼 나타났다. 순간 이동이 가능한 블링크가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자체는 문제가 아니지만, 혼전의 와중에도 죽기 진전의 악마병을 놓치지 않을 수가 있다니.
"그것도 최고의 전투력을 발휘하면서..병력을 지휘까지하면서 말이야."
성기사와 사제들은 버티기 어려울 것이라고 여겼다. 악마병들이 많고, 탈로쓰가 깨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몬투스는 앙숙 관계인 로드릭이 상대한다고 해도, 악마병들의 파상 공세에도 성기사들은 기적처럼 수비를 해냈다.
물론 그동안 미궁에서의 전투 경험이 쌓여 있었기 때문에, 성기사들이 스스로의 지능과 전투 경험에 의하여 최고의 전력을 보인 것일 수도 있다. 사제들과의 협력과 실제로도 악마병과 전투를 벌이며 스스로의 신앙심에 의해 믿는 신에게서 특별한 축복이 부여되기도 했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철벽처럼 진형을 짜고 무너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악마병들의 공격이 집중되는 곳에는 세 겹 이상의 방어벽을 치고 사제들의 치료와 보호 마법을 집중시켰다. 약한 병력을 데리고도 적들을 필요에 따라 요리할 줄을 알았다.
악마병들은 강하긴 하지만 개별적으로 전투를 하기에 미끼를 던져서 유인도 하고, 진형을 변화시키며 적극적인 공격으로 섬멸도 한다.
특별히 대단한 전술로 상황을 뒤집어 버린 것은 아니더라도, 병력 관리와 수비 능력에 대해서는 탁월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전투 시간대별로 병력 편성과 진형 변화를 인공지능을 통해서 보면 소소한 곳까지도 꼼꼼해서 여간해서는 실수가 없었다.
"성기사와 사제들이 줄어들고 악마병들이 지칠 때마다 맞춰서 대처를 하는군."
위드에게 재능이 있다면 천부적인 노가다의 자질, 병력 운용, 과감한 판단력, 스스로의 전투 능력이었다. 거기에 조각사로서 얻은 여러 스킬과, 모험마다 성공을 거두며 축적된 과도한 명성까지 있었으니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은 당연했다.
"대륙 다른 곳의 반응들은 안 봐도 알겠군."
유병준은 아스텔로이드의 광장 정도만을 살펴보았다.
8대 미궁의 최초 정복자, 악마 퇴치의 영웅담!
"크으, 이 대륙에 모험가 위드, 조각사 위드, 바로 그 위드님이 계셔서 다행이야."
"엠비뉴 교단이 아무리 날뛴다고 해도 나중에 위드님이 다 정리해 줄 테지."
"로드릭 미궁! 인간 세상의 지옥이라 불리던 그곳도 위드님에 의해 평정되었다고 하는 군."
"어서 빨리 모험에 대한 노래를 듣고 싶어. 어떤 바드가 로드릭 미궁의 모험에 대한 노래를 작곡해서 퍼트린다면 상당한 인기를 누릴 수 있을 텐데."
위드가 이루어 낸 것이 엄청난 만큼 베르사 대륙의 주민들을 포함해 유저들도 모두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위드가 모험을 성공하고 방송이 이루어질 때마다 탐험과 모험의 대열풍이 불었다. 미개척지였던 북부에 지금처럼 사람이 많아진 것은 모라타의 발전도 이유로 들 수 있지만, 위드를 보고 빠져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상식적으로는 전혀 납득이 가지 않는 교리의 풀죽신교란 단체까지 형성된 것이 아니겠는가. 일반 대중, 북부 대륙의 유저들이 당연히 가입하는 단체 풀죽신교. 그 세력도 다양하여 보석사탕이라는 유저가 이끄는 풀죽 원리주의자까지 나타났다.
로열 로드를 시작하고 나서 풀죽이 아닌 음식은 일절 입에 대지도 않는다는 풀죽신교의 극단주의 세력!
풀죽신교는 자유와 개척, 모험, 문화를 대외적으로 존중한다. 그렇지만 내실을 보면 엠비뉴 교단 못지않게 극단적으로 위드를 추앙하는 무리로 구성되어 있다고밖에는 볼 수 없다.
아르펜 왕국에서 시작한 초보자들이 아무 생각 없이 풀죽신교에 들어가게 되면, 위드 만세를 외치면서 기꺼이 세금을 납부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위드가 통치자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보여 준 적은 없다. 그저 조각술로 모라타를 알리고, 막대한 개인 재산을 쏟아부어 도시 발전의 기반을 닦았다. 그리고 유저들이 지속적으로 유입되면서 아르펜 왕국의 국왕까지 되었지만, 내정 부분에 대해서는 크게 알려진 바가 없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돌아보면 위드의 통치적인 역량도 높게 평가할 수밖에 없다. 여러 특색 있는 광장들로 분화된 모라타의 도시 기능을 미리 준비하였고, 치안도 최소한의 금액 투자로 무리 없이 유지해 왔다.
예술 회관을 건립하여 문화 발전을 자극하고, 위대한 건축물도 지어서 유저들의 유입을 계속 늘려 나갔다. 낮은 세율과 모험에 대한 높은 보상으로 개척 정신을 자극해 왔다.
도시의 재정이 빈약했음에도 꼭 필요한 건물들에는 돈을 아끼지 않았다. 간간이 대형 조각품으로 유저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어 왔기에, 모라타에서 시작했던 초반 유저들의 충성심은 남다를 정도였다.
그들이 모라타에서 시작했을 때만 해도 주변은 황무지였고 별로 볼 것도 없었지만 지금은 모든 것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도시와 함께 성장한 기분마저도 들게 하니 그들은 절대 다른 곳으로 떠날 수가 없으리라.
멀리 가더라도 북부를 탐험하고 다시 모라타로 돌아오는 정도가 고작이었다. 판자촌처럼 별로 큰돈이 들어가지 않는 주거지역을 설정하여 초보자들까지 챙기는 국왕이라는 인식을 심어 준 것도 중요했다.
다른 도시와 왕국에서 시작한 초보자들은 매우 가난하다. 자기 집 마련은 한참이나 후에 여유가 생기면 하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모라타와 아르펜 왕국에서는 집을 금방 구할 수가 있다. 판자촌이라고 해도 특별히 시설이 낙후되지도 않았으며, 도심에서 멀지도 않다.
전망이나, 유저들이 꾸며 나가는 판자촌의 소소한 거리들은 여행지로도 각광 받는다. 이것만으로도 모라타는 살기 좋고, 다른 지역보다는 물가가 저렴하다는 인식이 확 퍼졌던 것이다.
폐허였던 모라타와 북부를 이렇게 바꾸어 놓은 것이 위드이다.
"설마 이 모든 것들을 철저히 계획하고 이끌어 온 것은 아니겠지. 아무튼 갈수록 지켜볼 만하군."
유행준은 느긋하게 구경을 하기로 했다. 위드가 항상 실패하고 몰락하고 망하는 것을 기다려 왔다. 하지만 정작 몬투스와 싸울 때에는 이기길 기대하면서 응원을 하게 되었을 정도였다.
*
다크 게이머 연합에서는 아르펜 왕국을 적극 지원했다.
제목 : 아르펜 왕국의 알려지지 않은 사냥터
제목: 턱수염 던전으로 오라. 당신도 한밑천 잡을 수 있다.
제목: 레벨 업? 300대에서 400대까지. 이곳이면 충분
제목 : 북부 대륙 주요 아이템 획득 장소 정리
다크 게이머 연합의 상위권 유저들, 그들이 북부에서 탐험을 하고 얻은 정보들을 게시판을 통하여 공유했다.
"음, 여기로 가야 되겠군."
"안 그래도 텃세에 징그럽게 시달리던 참이었는데..북부라. 꽤 멀긴 하지만 가 볼까."
"사람들의 평판이 좋은 데에는 이유가 있겠지."
베르사 대륙 전역에 흩어져 있던 다크 게이머들이 아르펜 왕국으로 모였다.
다크 게이머들도 성향이 아주 다양한 편이었다. 위험한 모험을 즐기기도 하고, 남들이 택하지 않는 엉뚱한 선택도 한다. 바드로 활동을 하며 주민들로부터 쉽게 정보를 얻어 내서 파티 사냥으로 해결하는 부류도 있었다.
그렇지만 다크 게이머들 중에서도 다수를 차지하는 이들이 어디에 가든 묵묵히 사냥을 선호하는 쪽이었다. 그들이 아르펜 왕궁에서 사냥을 하며 확연한 변화가 생겼다.
"중급 이상의 물방울 보석 목걸이 판매합니다."
"마법 인챈트 도와주는 지팡이 구하시는 분, 귓속말 주세요."
"대장장이용 재료 아이템들 팝니다. 물량 상당히 있으니 5,000골드 이상 구매하실 상인이나 대장장이분 오세요."
광장에서 판매되는 물픔들이 고급화되었다. 거래가 잘 되는 무기류, 재료 아이템이 많이 나오는 던전을 다크 게이머들이 싹 쓸어 오기 때문이었다. 아르펜 왕국의 던전들도 다크 게이머들에 의하여 속속 발견되었다.
일반 유저들이 발굴해 내는 던전도 많긴 했지만, 영토가 워낙 방대하니 대신 치안이 불안정하다. 몬스터들의 집단이 몰려다녔으며, 엉뚱하게 너무 어려운 던전에 가면 함정과 곤란한 마물들이 나타나서 죽음을 경험하기도 한다.
반면에 다크 게이머들은 던전에서 밥을 먹으며 사냥과 모험만 하는 무리이기 때문에 경험이 많고 익숙했다. 지형과 역사, 주변 몬스터들의 특성에 맞춰서 철저한 준비를 하고 던전을 발굴해 내는 것이다.
그들은 상점들의 거래 이용도 엄청났다.
한번 사냥터로 가면 배낭 가득 아이템을 들고 돌아온다. 물론 사냥터로 향할 때에도 숫돌이나 음식, 탐험 도구, 함정 해체 도구, 붕대, 마법 스크롤 등을 상당히 많이 구입했다. 판잣집을 장만하거나 연극, 음악 공연등을 즐기지는 않았지만, 아르펜 왕국의 세금 수입 증대에 혁혁한 공로를 세우고 있었다.
*
위드는 다음 퀘스트를 하기 위해, 그리고 살아남은 성기사와 사제들을 보내 주기 위해 모라타로 돌아왔다. 미궁에서의 퀘스트를 끝냈으니 루의 교단과 프레야 교단에 방문을 해야 하는 것이다.
"공적치가 많이 깎였겠군."
미궁을 성공적으로 정복하고 돌아왔다는 점이 그나마 위안거리였다.
방송을 통해 지켜본 시청자들은 위드의 카리스마적인 지휘 능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병력을 세세한 부분까지 완벽하게 운용하면서도 전투의 흐름에 맞춰 가는 것은 보통이 아니기 때문이다.
강한 몬스터들과 싸우면서 병력을 운용하여 이길 수 있는 기회를 포착하는 눈썰미는 아무리 칭찬을 해도 모자랐다. 위드에게는 여러 능력이 있지만 가장 두려운 것이 지휘력이라고 엄지손가락을 치켜들 정도였다.
"위드에게 부하들만 있으면 웬만한 퀘스트는 못 깨는 게 없을 거야."
"응. 혼자서도 강한데 부하들까지 거느리면 진짜 못할 게 없지."
"그러면서도 1명도 허투루 죽게 하지 않잖아."
"인명을 소중하게 여기니까."
방송을 보고 이런 반응까지 나왔다.
"전쟁의 신 위드가 이끄는 사냥 파티에 들어가 보고 싶다."
"정말, 원정대라도 구성하면 랭커들로 가득 찰 텐데."
"지금까지 절대 못한다던 모험 같은 것도 위드님과 같이 한다면 해낼 수 있을걸."
위드의 속마음을 모르니까 다행이었다.
'몽땅 미끼로 써서라도 퀘스트를 완료하려고 했는데...'
위드가 모라타에 도착하여 성문을 통과하여 큰길을 걸었다.
웅장한 건축물들이 지어져 있는 북부 최고의 도시!
평소에는 상인 마차들로 붐비는 이곳 도로에 사람들이 몰려나와 있었다.
"우왓, 축하드립니다!"
"위드님 만세!!"
"성공하고 돌아오실 줄 알았어요!"
유저들이 길가에 서서 꽃가루를 날렸다.
위드가 다시 모라타로 돌아올 것이란 믿음으로 인근에 피어 있는 야생화의 꽃잎들을 따 와서 기다리고 있다가 거리에서 뿌리고 있었다.
위드는 꽃가루와 박수, 환호성을 받으며 대로를 걸었다.
큰 승리를 거두고 감격스러운 개선 행진!
풀죽신교에서 마련한 행사로, 사람들이 대거 몰라나와 있었다.
초보자들은 그들의 우상과도 같은 위드를 보기 위하여 건물의 옥상과 성벽 위에 서 있었다. 언덕의 판잣집들에도 위드를 보기 위한 군중으로 가득하다.
위드의 인기를 반영하듯이, 모라타가 마비될 정도의 환영인파였다.
"뭘 이런 걸 다 준비했는지..."
위드의 입가에 그다지 기쁘지 않은 미소가 맺혔다."
"이 시간에 사냥을 했으면 거둬들였을 세금이 얼마인데."
그렇지만 모라타만이 아니라 아르펜 왕국의 20여 개 도시들에서 세금이 들어오고 건축물이 지어지고 있다. 퀘스트가 발생하고 교역이 이루어지면서 왕국은 건실한 성장을 하고 있었다.
북부 대륙이 넓은 만큼 확장할 수 있는 공간에도 여유가 많았다. 위드는 성대한 환영 행사를 마치고 루의 교단에 방문했다. 대신관이 그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험하고 힘든 모험을 끝냈다는 소식은 듣고 있었습니다, 형제여."
"저의 공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루의 기사들이 있었기에 평화를 위협하는 이를 처단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많은 피가 흘렀지만 평화가 공짜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겠지요. 성기사들의 경험은 앞으로 교단의 발전을 위해서도 필요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루의 교단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은 정의를 수호하기 위하여 기꺼이 검을 들 것입니다."
띠링!
┌────────────────────────────────────┐
│ - 루의 교단과의 공헌도가 892 감소하였습니다. │ │ 교단의 명성과 명예가 높아집니다. │
│ 포교 활동이 더욱 활발하게 진행되며, 신도들이 늘어나게 될 것입니다. │ │ 큰 경험을 쌓은 상급 성기사들로 인해 새로운 퀘스트가 발생할 수 있 │ │ 을 것입니다. │
└────────────────────────────────────┘
생각보다 공헌도 감소치가 적었다.
살아남은 성기사들이 승급을 하였기 때문이리라.
루의 교단에서 진행할 수 있게 된 새로운 퀘스트도 많이 생겨났다.
포믈란 섬의 악마 소탕.
이데인의 실종자들.
엠비뉴 교단의 제3지파 본거지 파괴.
잘못된 희생.
난이도 A급에서 S급의 퀘스트들!
위드에게만이 자격이 주어져 있었다.
"대륙의 평화를 지키기 위하여 제가 돌아다녀야 할 곳이 많군요. 그러면 다음 기회에 또 뵙겠습니다."
"루의 축복이 항상 그대에게 함께하기를."
위드는 지금으로써는 루의 교단에 있는 퀘스트를 할 처지가 아니었으므로 그냥 나왔다. 그리고 프레야 교단에도 방문했다.
"프레야 여신님의 가호 덕분에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너무도 피해가 크군요. 위드님에 대해서 믿고 있었건만..."
프에야 교단의 대신관은 질책을 했다.
그도 어쩔 수 없는 것이, 사제들은 모두가 프레야 교단의 소속이었다. 전투 중에 희생된 사제들이 많았기 때문에 평판이 더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프레야의 인정을 받은 위드님이 살아서 돌아온 것이 다행입니다. 앞으로도 교단을 위하여 많은 일을 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프레야 교단을 책임질 알베론이 큰 경험을 쌓고 무사히 돌아온 점도 희망적입니다."
띠링!
┌────────────────────────────────────┐
│ - 프레야 교단과의 공적치가 2,493 감소하였습니다. │ │ 북부에 내리는 프레야 교단의 축복과 은총이 줄어들 수 있습니다. │
│ 큰 희생으로, 프레야 교단 사제들의 활동이 위축될 것입니다. │
└────────────────────────────────────┘
루의 교단보다는 프레야 교단에 축적해 놓은 공적치가 훨씬 높았기에 큰 문제는 아니었다. 현재 아르펜 왕국 내 프레야 교단의 교세는 거의 국교라고 해도 될 정도였다. 하지만 성기사와 사제들이 많이 죽어 나가서 활동이 위축된다면 경제활동과 모험에서 많은 패널티를 감수해야만 한다.
"뭐, 어쨌든 해결은 되었군."
위드에게는 이제 조각술 최후의 비기를 찾아내는 것만 남았다.
*
하벤 제국의 황궁이 건설되는 날, 헤르메스 길드는 기습적으로 선언했다.
≪ 평화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우리는 전재을 중단하고 지켜보기로 했다.
하지만 대륙은 늘 피어 젖어 있었다.
영토 욕심에 눈이 멀어서 싸우는 무리, 엠비뉴 교단의 폭거!
유저들이 편안히 머무를 수 있는 장소는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이는 우리 헤르메스 길드가 바라는 바가 아니다.
무릇 힘을 가졌다면 그만한 책임이 뒤따르기도 하는 법.
헤르메스 길드에서는 대륙을 안정화시키기 위하여 다시 나서기로 했다.
우리의 뜻을 이해하지 못한 자들은 비난을 할지도 모르지만, 그것이 무서
워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대륙의 혼란은 더욱 극심해지리라.
용기란 비단 몬스터나 적과 싸우면서만 발휘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잘못된 일을 바로 잡기 위해 일어서는 것. 그것이 바로 진정한 용기다.
헤르메스 길드는 의기로 뭉쳤고, 이제 우리는 평화를 굳건하게 지키기 위
해 기꺼이 싸우고자 한다. ≫
명분이야 끊이지 않고 일어나는 전쟁을 끝내겠다는 것이지만 사실상은 전 대륙을 향한 선전포고!
단순히 엄포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기라도 하듯이 하벤 제국과 국경을 맞댄 모든 곳에서 전쟁이 시작되었다. 다른 왕국의 국경 수비대를 거뜬히 돌파하며 진군이 이루어졌다.
헤르메스 길드의 최정예 랭커들, 기사들이 이끄는 군대가 전 대륙의 왕국들을 향하여 나아가고 있었다. 이제부터는 정말 다른 세력들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기라도 한 것처럼 숨겨 놓았던 대병력이 한꺼번에 이동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아르펜 왕국으로도 상위 랭커 렌슬럿이 이끄는 7만의 대군이 이동했다.
헤르메스 길드의 전력은 그동안 실컷 팽창했다. 그들을 거스르는 모든 적과 싸워야 할 판이니 북부가 성장하고 있는 지금 아르펜 왕국도 격파하고 지역을 점령하겠다는 것이다.
"드디어 올 것이 왔네."
"하긴 그놈들이 잠잠하긴 했지."
베르사 대륙의 유저들은 헤르메스 길드의 선전포고에 생각 외로 그렇게 놀라지 않았다. 딱 나쁜 놈들이란 인식이 이미 충분히 박혀 있었던 탓이다.
로얌 길드, 사자성, 블랙소드 용병단, 클라우드 길드, 그리고 많이 쇠퇴하였지만 흑사자 길드도 기민하게 움직였다.
"헤르메스 길드가 감춰 온 군대가 정말 엄청납니다."
"우리도 그동안 노력을 해 오기는 했지만 저런 군대를 어떻게 야성한 것인지.."
"단독으로 놈들을 상대할 수 있는 세력은 없습니다."
"연합군을 결성합시다."
5개 길드 간의 의견 조율은 빠르게 되었다. 과거 헤르메스 길드가 브리튼 연합 왕국을 침략하였을 때부터 연합군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헤르메스 길드가 종전을 선언하자, 대외적으로는 연합군 결성 역시 물 건너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협의를 계속하며 진전을 이루고 있었다.
ㅡ 대륙 정복을 위해 헤르메스 길드와 싸워야 한다.
ㅡ 버거운 상대다. 다른 놈들과 힘을 합치면 좋을 텐데...
ㅡ 헤르메스 길드와 거리상 가깝지만 우리만 위험을 감수할 순 없지. 다른 경쟁자 들도 전쟁으로 약화시키려면 같이 싸워야 좋은데.
블랙소드 용병단과 사자성, 로암 길드가 주측이 되어 헤르메스 길드를 치기로 협약을 맺은 상태였다. 다만 시기만이 조율이 되고 있었을 뿐인데, 헤르메스 길드가 전 대륙을 상대로 선전포고를 하니 기회라며 연합군을 결성했다.
헤르메스 길드와 적극적으로 맞서 싸우려고 했지만 그들이 전선으로 전력을 응집하는 데에는 시간이 걸렸다.
*
"이곳도 전쟁이라니 지긋지긋해."
농부 미레타스는 구멍 난 밀짚모자를 벗고 수건으로 땀을 닦았다.
허름해 보이는 이 밀집모자가 보통 아이템이 아니었다.
┌────────────────────────────────────┐
│ - 닭털이 달린 밀짚모자 : 내구 9/15. 방어력 8. │ │ 지푸라기로 대충 엮은 것 같은 모자이다. │
│ 과거 대흉년이 찾아왔을 때 대륙을 구제했다는 농부 풀본스가 착용했던 │
│ 물건이다. │ │ 제한 : 농부 전용. │
│ 레벨 : 430. │
│ 인내력 1,200. │ │ 옵션 : 농사일을 하면 일정한 확률로 지혜를 상승시켜줌. │
│ 몬스터들의 주의력을 무너뜨림. │
│ 새들이 모자에 앉아서 놀고 나면, 먼 곳에서 특수 작물의 씨앗을 │ │ 물어 온다. │
│ 노동 중에 체력의 저하를 줄여 주며, 체력이 자주 증가한다. │
│ 오랜 비바람에도 생명력 감소 없이 견딜 수 있음. │
│ 손상된 땅의 기운을 회복시켜 줌. │ │ 개간한 땅이 대풍작을 이룰 가능성을 높임. │
│ 내구도가 0이 되지 않는 한 쉽게 수리 가능. │
└────────────────────────────────────┘
이 유니크급 밀짚모자는 황무지를 개간하던 중에 우연히 얻은 것이었다.
"전쟁이 싫어서 아르펜 왕국까지 왔는데..."
미레타스는 천성이 농부였다.
자신이 심은 작물들이 자라나는 것을 보며 계절의 변화를 느낀다. 그는 아르펜 왕국에도 아주 방대한 곡창지대와 과수원, 밭을 일구어 놓았다. 강물을 끌어오기 위한 수로 시설까지 설치되어 있을 정도였고, 그가 일군 땅은 따로 손을 대지 않더라도 향후 몇 년간 풍작은 맡아 놓은 것과 다름이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병사들이 먹을 식량이나 만들어 줘야 되겠군."
아르펜 왕국의 인구는 국왕인 위드만이 정확하게 알 수 있다. 각 지역의 영주들이 자신들이 거느린 주민들을 합쳐서 계사할 수 있지 않을까 싶지만 그런 방식을 쓸 수가 없었다. 아르펜 왕국은 대부분의 땅이 국왕 소유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국왕 다음으로 인구에 대하여 대략적인 감을 잡고 있는 것이 미레타스였다. 농부는 식량 생산과 소비에 대하여 매우 민감하다. 너무 많은 식량 생산이 이루어지면 가격은 폭락하고, 반대로 식량이 부족하면 굶주리는 사람들이 도처에 널리게 된다.
그가 아르펜 왕국에 정착하고 나서부터 지금까지 식량 소비는 몇 배로 늘어났다. 인간, 오크, 드워프, 엘프, 바바리안, 조인족, 이종족. 초보자들의 유입까지 합쳐져서 알게 모르게 엄청난 인구가 살아가고 있는 아르펜 왕국이었다.
전쟁이 시작된다면 군량미가 필요할 것이 아니겠는가. 바르고 성채를 기반으로 번식하던 오크 군다. 잘 죽고 잘 태어나는 오크들만큼 성장률이 빠른 종족은 있을 수가 없다. 인간들과는 종족이 다른 만큼 성장 방식도 다르다.
어려운 몬스터, 치안을 어지럽히는 몬스터를 처단하면 그 용맹으로 인해 새끼 오크들이 우르르 따르게 되는 것이다. 오크 초보자들은 몬스터를 퇴치하고 던전을 공략하여 획득한 아이템으로 바르고 성채에서 교역을 했다. 바르고 성채는 드워프와 엘프, 오크, 이종족들이 모이는 장소이기에 상인들이 몰라볼 정도로 많아져 있었다.
"엘프들로부터 구입한 활! 어지간한 분한테는 활이 아까워서 안 팝니다. 확실한 궁술 실력을 갖고 있는 분만 오세요."
"믿을 수 있는 모라타산 강철 글레이브! 600개 이상 구입시에는 할인도 듬뿍 해 드립니다."
"새끼 오크들이 좋아하는 말린 사슴고기. 거기 서서 냄새만 맡지 마시고 어서 오세요, 오크님들."
"드워프 전용 키 높이 부츠 있습니다."
아르펜 왕국의 진정한 힘은 상업에 있었다. 상인들이 대활약을 하며 장사를 하기 때문에 오크들은 개체 수를 금방 늘리고 무장도 좋은 것으로 바꾸었다. 전쟁 소식을 듣고 오크 로드들이 회합을 가졌다.
"취이익, 전쟁이다."
"취췻, 재밌겠다. 너무 심심했다."
"인간, 드워프 대장장이에게 부탁해서 글레이브에 녹을 없애라. 취췻."
"우린 무조건 싸우러 간다, 췻!"
말리는 사람이 있다면 먼저 싸우려고 할 오크들.
그들은 중앙 대륙에서 오크 종족이 받는 박해를 아주 잘 알았다. 인간이 아니라는 이유로 많은 도시에서 관문도 넘지 못한다.
개개인의 능력이 월등하게 강하지 못한 오크들은 개체 수를 불려야만 했는데, 그 지역을 장악하고 있는 길드들은 그것을 원치 않았다. 던전이나 사냥터에 오크들이 많아지게 되면 몬스터들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물론 다른 비어 있는 던전들도 많이 있었지만, 자금 능력도 떨어지는 오크들이 많다는 점이 거슬려서 대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