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사라지는 도시들
공국 노아를 부수고 나서도 위드의 행보는 거침이 없었다.
"적들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노아의 동맹군 같습니다."
"봉화를 보고 모여든 모양이군. 화해나 휴전은 없다. 진군하라."
"옛!, 대제!"
공국 프로비스타 함락, 자유 도시 모겐할 약탈 후의 방화, 무역항 부엔 장악!
"약탈할 시간도 모자르는군."
군대가 길을 가로막으면 돌파하고 부숴 버리면서 이동을 했다.
전원이 기병이나 낙타병으로 이루어진 사막 전사들의 기동력은 전광석화처럼 빨랐기에
중앙 대륙의 군소 세력들을 마음대로 휘젓고 다닐 수 있었다.
사람들이 흔히 착각하는 것이, 낙타가 말보다 느릴 것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실제로 낙타는 말보다 훨씬 빠르고 지구력도 강하다.
위드와 사막의 붉은 칼 군대가 중앙으로 진출하면서 전투는 계속 이어졌다.
"사막의 대제는 머리가 셋 달린 괴물이라는 소문 들었어? 지옥의 불을
자유자재로 다루는데, 그에게 당해서 타 버리고나면 영혼까지 사라져 버린다고 해."
"어떻게 그런 악마가 이 세상에 나타난 것인지."
"신께서 우리 인간을 벌하기 위해서 내려보내신 것 아니겠어?"
아무리 악명을 최소화하더라도 점령지의 주민들 사이에서 들불처럼 퍼져 나가는
위험한 소문을 막을 수는 없었다.
세계를 구하는 용사란 원래 의로운 일을 바탕으로 자신밖에 모르는 인간들을
설득하고 다른 종족들과도 협력을 하는게 전통적인 공통점이라고 할 수 있었다.
영화를 보더라도 여러 종족으로 구성된 원정대가 마왕이나 드래곤, 악에 맞서서 싸운다.
억울한 일이 생겨도 참고, 어려움이 있어도 극복하면서 묵묵히 나아가다 보면 어느덧
세상이 그를 알아주게 되지 않겠는가.
위드는 그런 방식은 당사자에게 스트레스가 과도하게 쌓여서 향후 병원비가
많이 나갈 수 있다고 보고 탐탁지 않게 여겼다.
"초등학생도 바른생활 책을 믿지 않는 마당에 구태의연한 방식으로 세상을
살다가는 사람 잘못되기 쉽지."
세계를 구하기 위해 나선 용사가 정작 거치적거린다는 이유로 도시들을
무차별 파괴하고 있었다.
그래도 최소한의 자비를 베풀어, 왕국군을 제압하고 나서 모조리 약탈하면서도
주민들이 먹을 식량으로 고구마와 감자 정도 남겨 주었다.
띠링!
-전투 공적을 쌓았습니다.
중앙 대륙의 힘의 균형, 왕국 간의 역학 관계에 영향이 생깁니다.
위드는 가끔씩 튀어나오는 메시지는 대충 무시했다. 군대를 이끌고 아헬른이
있는 로무스로 가려면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힘이 없을 때에는 서윤과 함께 몰래 도주를 하였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가 조금도 없다.
강한 무력을 거침없이 사용하는 당당함!
엠비뉴 교단과 싸움을 하려면 본인은 물론이고 부하들이 더 강해질 필요도 있다.
일반 사냥보다 전쟁을 통해서 얻어지는 경험치가 더 많다.
그래 봐야 현재의 레벨이 오를 정도는 아니었지만, 부하들을 무장시키는 데에는
전쟁이 좋았다. 재물들을 빼앗아서 부하들에게 최고급 장비들을 장만해 주기가
훨씬 용이했기 때문이다.
-도시 프레드릭을 약탈하셨습니다.
악명이 2,774 오릅니다.
호칭 '욕심 많고 추잡스러운 놈'을 얻으셨습니다.
이 호칭은 적대적인 인간들 중에서 신분이 낮은 부류가
주로 부르게 될 것입니다.
"뭐, 괜찮은 별명이군. 어차피 원래의 시간대로 돌아가게 되면 악명이나
호칭 따위는 사라지게 될 테니까!"
위드가 성인군자도 아니었다.
마법의 대륙 시절에는 눈에 거슬리면 그냥 죽였다.
그에 비해 로열 로드를 하면서는 상대적으로 얌전히 살았다. 명문 길드의 눈치를
보면서 그들과 관계가 나빠지지 않도록 묻어 지냈다고 보는 게 옳았다.
그럼에도 갖은 고생 끝에 왕국도 건국하고 따뜻한 아랫목에서 팔다리 좀
펴려고 하니 헤르메스 길드는 심심하면 쳐들어온다.
쌓여 가는 스트레스와 울화!
"인생을 차갛게 살면 손해 본다는 이야기가 나한테도 해당될 줄이야."
뜨거운 라면 국물을 마셔도 속이 시원하지 않을 때가 있다.
길게 보면 엠비뉴 교단과 싸워야 하는 판국에 어차피 방해만 되는
호전적인 왕국들부터 따끔한 맛을 보여 주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
"차라리 과거로 돌아온 게 잘됐어. 무슨 짓을 저질러도 될테니까!"
여덞 번의 대규모 전투를 치러 가며 이동했다.
덤벼 오는 적들이 있으면 퀘스트 제한 시간 때문에라도 여러 말 나누지 않고 바로 싸웠다.
-도시를 불태웠습니다.
인간으로서 저지를 수 없는 간악한 행동은 무수히 많은 지탄을 불러올것입니다.
하지만 목격자가 없기에 악명은 1,938만 오릅니다.
-호른 성을 파괴하였습니다.
주춧돌 하나까지 빼서 무너뜨려 버린 과격한 행동은 공포를 퍼트리게 할 것입니다.
성주의 양피지를 입수했습니다.
"이건 또 뭐야."
위드는 양피지를 읽었다.
거룩한 엠비뉴 신께 영원한 충성을 맹세합니다.
그리고 발생한 영상!
1등급 통돼지보다도 살이 피둥피둥 찐 호른 성의 성주가 검은 로브를 착용한
누군가에게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날이 오게 되면..."
"예, 물론입니다."
"병사들은...."
"준비를 마쳐 놓고 기다리겠습니다."
"엠비뉴를 따른다는 맹약은..."
"제 영혼에 걸고 영원할 것입니다!"
호른 성의 성주가 엠비뉴 교단에 충성을 맹세하는 장면이었다.
-엠비뉴 교단의 은밀한 후견인이 척살되었습니다.
신앙심이 14 오릅니다.
"이건 또 뭐야. 이상한 양피지로군."
그 이후에도 약탈을 하는 와중에 계속 새로운 정보를 입수 할 수 있었다.
-티렉 도시 대표는 엠비뉴 교단의 광신도. 그가 준비하고 있던
군대를 전멸시켰습니다.
전투 중에도 메시지가 떴다.
그저 왕국이나 도시군과 싸우면서 이동하고 있었을 뿐인데 엠비뉴 교단에 대한
정보를 계속 입수하게 되는 것이다.
-엠비뉴의 비밀 연판장 #3을 입수하셨습니다.
-중요한 정보가 입수되었습니다.
띠링!
전쟁의 시대는 후세의 역사가들이 판단하기에 의미 없이 무가치한 싸움만이
벌어지던 야만적인 시기였다.
부패하고 무능한 국왕들, 무지하고 탐욕스러운 귀족득, 헛된 공명심으로
가득하여 피를 갈구하는 기사들로 가득 차 있던 시대.
그러나, 실제로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엠비뉴 교단을 따르는 왕국들이 있었고,
이를 막기 위환 다른 왕국들의 숭고한 노력도 함께 존재했다.
그들은 세력은 약했지만 비밀리에 힘을 모아서 엠비뉴 교단을 따르는 왕국들을 견제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 엠비뉴 교단은 갑자기 활동을 중단하고 사라졌다.
그 이후 각 왕구들에 남은 건 원한뿐으로, 지루한 전쟁이 그치지 않고 이어지게 되었다.
-전쟁의 시대에 대한 배경 정보를 얻었습니다.
대륙의 정세에 중요한 변화가 발생합니다.
퀘스트가 갱신됩니다.
엠비뉴 교단과 관련된 새로운 퀘스트가 생겨서 기존에 진행하던
'세상을 위한 길'을 대체합니다.
정복자의 등장
전쟁의 시대에 엠비뉴 교단의 하수인이 되어 버린 왕국들.
올바른 일을 하고자 하는 이들은 있지만 그들은 약하고 희망도 갖고 있지 않았다.
엠비뉴가 강림하기만을 기다리는 광신도들은 독버섯처럼 자리를 잡고 암암리에
퍼져 나갔다. 세상은 엠비뉴 교단에 의해서 태양이 떠오르지 않는 어둠으로
물들어 있는 바!
광활한 모래의 땅에서 온 파괴자는 기존의 세계정세를 바꾸어 놓고 있다.
타협하지 않는 패도를 추구하는 그대가 이 땅에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를
지울 수 있겠는가?
목표는 엠비뉴 교단을 따르는 왕국들의 멸망!
그리고 최대한 많은 광신도들의 사망!
악을 퍼트리는 세력들에 힘을 주는 전쟁의 시대를 끝내기 위해서는 뿌리까지
단호하게 뽑아내야 한다.
난이도 : 조각술 최후의 비기 부가 퀘스트
퀘스트 보상 : 특별한 호칭과 스텟.
퀘스트 제한 : 아헬른이 찾아올 때까지 진행됨.
본인이나 힐데른의 사망 시에는 퀘스트 실패.
목표 : 광신도들이 차지한 다간 왕국의 멸망.
헤르가 강 주변 도시국가들의 파괴.
제벤 왕국 멸망.
광신도 훈련 기지가 있는 루프레아 공국의 초토화.
비노세 도시국가 파괴.
타롯 국가 연합 멸망.
도시 이트아 방화로 초토화.
그 외에 알려지지 않은, 엠비뉴 교단에 복종을 맹세한
왕국들의 멸망
퀘스트를 완수하기 위해서는최소 세 가지 이상의 목표를 달성해야 합니다.
다섯 가지 이상의 목표를 달성하면 엠비뉴 교단의 군대와 전투가 벌어지게 될 것입니다.
주의 : 아헬른은 동료들을 모으고 엠비뉴 교단을 습격하는 일에 당신의 협력을
구하기 위하여 직접 찾아오게 됩니다. 아헬른이 찾아오는 시기는 아우솔레토를
깨우려는 엠비뉴 교단의 준비 상황과 당신이 얻게 되는 악명에 달려 있습니다.
광신도들이 있는 왕국들이 많이 파괴될수록 엠비뉴 교단에서는 혼돈의
드래곤을 장악하기 위한 제물 마련이 어려워질 것입니다.
큰 정복 업적을 남기게 되면 조각술 최후의 퀘스트를 마치고나서 전투
공적으로 신의 보상이 이루어집니다.
엠비뉴 교단이 입는 피해는 원래의 세계에도 세력을 약화시키는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퀘스트가 달라졌군."
전쟁의 시대도 알고 보면 썩을 만큼 썩어 있었다.
그렇기에 정복자로서 이 땅의 왕국들에 드리워진 어둠을 걷어 내는 퀘스트 발생!
어쩌면 인생사도 이렇게 끊임없이 이어지는 퀘스트와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유치원에서 아무 생각 없이 뛰어놀다가 엄마 손에 이끌려 초등학교에 들어간다.
나이를 먹을수록 어느덧 다니는 학원들이 하나 둘 늘어나고,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군대, 취직, 결혼, 내집 마련, 육아가 연속으로 밀려오게 된다.
살아간다는 건 정말 쉽지 않은 퀘스트의 연속이었다.
본능적으로 직장 상사의 눈치를 보게 되고 과다한 업무를 마치기 위해서 야근을 하고,
회식 자리에 참석해서 분위기도 띄운다.
집에 돌아오더라도 집안일이나 가족들을 챙기지 않으면 가장으로서 존중도 받지 못한다.
그렇지만 어깨에 짊어지고 있는 무게만큼이나 살아가는 순간들의 행복도 있었다.
레벨이 올라가고 보상을 받는 것도 그러한 것들이리라.
위드도 퀘스트에서 비슷한 점들을 느꼈다.
"그래도 내용은 딱 마음에 드는군. 지금까지 하던 대로 몽땅 파괴해 버리면 된다니까 말이야."
정말이지 가장 적성에 맞는 퀘스트였다.
높은 레벨에다 세계를 구하는 용사라는 직업을 얻고 나서 전투력도 더욱 올랐다.
부하들도 용맹하고 믿음직스럽기 때문에 제대로 한바탕할수 있지 않겠는가.
현대사회에서는 억제되어야 하는 야망도 실컷 발휘할 수 있다.
"대륙을 내 손으로 멸망시켜 버려야겠어!"
다간 왕구은 전쟁의 시대가 끝나기 직전에 멸망한 국가였다.
한때에는 중요한 곡창지대인 루벤 평원을 끼고 출중한 경제력을 자랑하기도 했다.
엠비뉴 교단에 암중으로 충성 서약을 함으로써 국왕과 귀족들은 재물을 얻었으며,
병사들은 특수한 힘을 얻어서 정복활동에 나섰다.
인구가 적기에 강대국까지는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문화와 유적을 후세에 꽤나 많이
남긴 왕국 중 하나였다.
영토가 크게 넓어졌던 드로겐 왕의 전성기에는 큰 성을 13개까지 다스렸을 정도로
커졌다. 그렇지만 위드와 사막 전사들에 의해서 드레곤 왕이 태어나기도 전인,
원래의 역사보다 100년이나 일찍 침략을 당했다.
"자고로 전쟁이란 보급 무네부터 해결을 해야 되지. 다간 와국이라면
가깝기도 하고 적당한 멋이감이로군."
위드는 군대를 이끌고 다간 왕국의 국경을 넘었다.
다간 왕국의 왕실에서는 긴급회의를 열었다.
물론 이 장면들은 동영상을 통해서 위드도 볼 수 있었다.
대지의 여신 미네의 혜택이었다.
"사막 야만족들이 감히 무엄하게도 신성한 우리의 영토를 넘었나이다, 폐하."
"그렇군. 그대가 가서 따끔한 맛을 보여 주도록 하라."
왕실에서는 반쯤 벌거벗은 궁녀들과 왕과 귀족들이 뒤엉켜 있었다.
왕실의 기강이 무너져서 백전노장인 기사들은 좌천되고, 아부에 능숙한
귀족들만이 활개를 쳤다.
엠비뉴 교단을 믿고 따르면서 사치와 향락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야만인들을 박살 내는 일에는 국왕 폐하께서 직접 출정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국왕 폐하의 존엄을 보여 주시면 인근 왕국들이 크게 놀랄 것이고, 요즘 불만이
많은 왕국민들도 조용해질 것입니다."
"그도 그렇다. 그러면 중앙군을 이끌고 내가 직접 징벌에 나가겠다.
야만인들에게 매서운 맛을 보여 주어야겠지."
"걱정이 되는 것은.. 놈들이 보통 잔인한 것이 아니라고 하옵니다."
"나도 들었다. 그렇지만 놈들이 날뛰는 것도 여기까지다. 우리 다간 왕국의
중장갑기병과 중장갑보병은 절대로 뚫지 못할 철벽이니까 말이다."
"물론입니다, 폐하. 정복 사업을 진행하기 전에 연습 삼아서 싸워 보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흐흐흐, 평소에 군대에 많은 돈을 투입한 보람이 있겠구나."
다간 왕국의 국왕은 6만이나 되는 병력을 끌고 평원으로 마중을 나왔다.
"저놈들을 보아라. 누가 궁병인지, 혹은 보병인지 구분도 되지 않는구나."
"갑옷도 통일되지 못하여 제각각이고 볼품도 없사옵니다, 폐하."
"자긍심의 상징인 깃발도 보이지를 않으니 오합지졸과 같습니다."
"그야말로 폐하의존엄을 과시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병사들도 폐하를 모시고 나가면
힘이 날 테니 휴식을 취하고 내일까지 전투를 미룰 필요도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다간 왕국의 귀족들은 위드와 사막 전사들을 보며 실컷 비웃었다.
정예병이란 관련 병과대로 편성이 되어야 한다는 기존의 상식!
"놈들이 우릴 보며 웃는군."
"저런 것도 잠깐 아니겠습니까? 사막에서는 감히 우릴 보면서 웃음을
터트리지 못할 테니까요."
위드가 타고 있는 쌍봉낙타도 주둥이를 오물거리면서 웃었다.
푸헤헤헹!
낙타가 보기에도 다간 왕국이 어리석어 보였던 것이다.
사막 전사들은 전부 낙타병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여러 종류의 무기들을
다 잘 다뤘다. 사막에서는 기사들처럼 말에서는 창, 두 다리를 땅에 딛고는
검을 쓰는 규칠 따위는 없기 때문이다.
어찌 본다면 특정 무기를 잘 다루면서 극한에 이르기는 어렵지만 막 싸우는
전투에서는 빼어난 능력을 발휘했다.
말을 타고 이동하며 화살을 쏘고, 돌격하여 손도끼를 던지고, 기사들을 향해서
철퇴를 휘두르면서 파죽지세의 위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첫 전투이니만큼 적들의 능력을 시험해 봐야겠군. 1부대, 적진 돌파를
시도하는 척하다가 물러서고, 2부대는 오른쪽으로 멀리 우회하여 적들을 견제.
3부대는 대기하다가 적이 2부대를 따라오면 습격하고 빠져라.
4부대는 왼쪽으로 유인. 5부대는 활로 무장하고 기동전을 펼쳐라."
위드는 3,000명씩 나눈 사막 전사들을 바탕으로 탐색전, 중심 돌파,
원거리 공격 등의 다양한 전술을 지시했다.
"간다. 끼요호옷!"
흙먼지를 일으키며 낙타병들이 돌진을 시작했다.
6만 명이나 되는 거대한 적, 철벽처럼 단단한 방어력을 가진 중장갑보병이나,
단숨에 적 방어선을 파괴하는 중장갑기병은 보통 위험천만한 전력이 아니다.
중장갑보병을 정면으로 돌파하려고 하면 많은 힘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돌파 시도를 하다가 오히려 기병이 저지를 당하고 잡아먹히는 경우도 많았다.
위드는 굳이 정면 승부를 해야 하는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기에 다양한 전술을 시도했다.
"휘몰아쳐 버려야겠군."
각 사막 전사들이 부대별로 흩어지고, 모이고, 매섭게 공격을 하다가 한순간에
숨통을 끊어 놓는다.
"내가 전일이다!"
조각 생명체들. 그들은 사막 전사의 부대장 자리에 올랐다.
"갑시다, 형님!"
"오늘은 피의 축제를 벌이지요."
호전적인 조각 생명체 형제들은 각자 맡은 부대들을 데리고 적들을 습격했다.
따라잡을 수 없는 기동력과 파괴력, 그리고 두들겨서 진영을 교란하고 약점을
노출시키면서 잡아먹는다.
기본적으로 중장갑보병은 느리다는 약점을 이용해서 그쪽으로는 아예 상대해 주지
않다가 다른 군대들을 먼저 처리하고, 놈들이 쫓아오면 이동하면서 지치게 했다.
인근의 다른 부대를 먼저 끝내 놓고 그들을 스쳐 지나가면서 화살과 도끼 투척으로
빙글빙글 돌며 피해를 누적시켜서 해치웠다.
중장갑기병들은 그보다도 훨씬 간단한 상대다. 사막 전사들, 전장에서는 사막
기병들이 되는 위드와 부하들은 그들을 가지고 놀았다.
중장갑기병들이 최대의 파괴력을 발휘하는 돌격을 시도하면 좌우로 흩어져서
싸울 상대가 없도록 무력화시킨다.
적에게 끝없는 막막함을 느끼게 하는, 교활함의 정점에 이른 전술이었다.
"사막의 야만인들아, 그대들은 명예도 모르는가!"
"하이에나 같은 족속들이구나!"
중장갑기병들은 길길이 날뛰었다.
기사들이라면 저런 비난을 받고 발끈할 수도 있지만, 사막 전사들에게는 그냥
별 소용없는 헛소리에 불과했다.
"저놈들이 자꾸 이야기하는 명예가 뭐지?"
"몰라. 우리 부모님도 한 번도 말한 적이 없었어."
"사막의 대제이신 위드 님께서 명예에 대해서 말씀하신적이 있지."
"뭔데?"
"많을수록 인생이 고달프다더군. 나쁜 짓을 적당히 저질러야 건강하게 오래 산다고 했어."
위드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막 전사들!
중장갑기병들의 질주가 끝나고 군마들이 지쳤을 때가 노리던 기회였다.
그들은 느리고 무겁기 때문에 정면 돌파는 강해도 측면 공격이나 멈춰 있는 동안에는
취약점을 드러낸다.
속도가 느려진 중자갑기병에게 사방에서 반전하여 역습을 가하고, 부대로 후퇴하는
적을 집요하게 뒤에서 쫓아가며 해치운다.
군사교범에 있는 전술이라고 볼 수는 없었다.
늑대들이 초식동물을 사냥하듯이 이리저리 집요하게 물어 뜯으면서 쓰러뜨리는 방식.
궁병이나 보병, 기병의 병과를 우습게 여길 정도로 위드와 사막 전사들은 강하고
적의 약점을 잘 물어뜯었다.
위드가 22년간의 성장을 부하들과 너무나도 훌륭하게 마친 결과!
"졌소. 이제 그만 싸웁시다."
"항복하겠습니다. 우리를 귀족으로서 대우해 주시길 바랍니다."
대승을 거두고 나서 국왕과 귀족들의 항복을 받아 냈다.
벌써 다간 왕국 측의 사상자는 23,000. 포로는 25,000명 가까이 되었다.
사막 전사들 중에는 희생자가 거의 없었다. 일부 있더라도 위드와 함께 성장해
온 무리가 아니라 새로 영입한 사막 부족의 전사들이었다.
위드는 명령을 내렸다.
"포로들은 죽이지 말고 붙잡아라."
"예, 대제!"
그리고 다간 왕국의 파괴와 약탈!
"어떻게 이런 잔인한 짓을.. 그대는 하늘이 두렵지도 않은가!"
항복해서 포로로 잡혀 있던 다간 왕국의 국왕과 귀족들이 길길이 날뛰었다.
"하늘? 그런 건 난 몰라. 진짜 무서운 건 겨울철의 난방비지.
얘들아, 시끄러우니까 이 녀석들도 목을 쳐라!"
시끄러운 국왕과 귀족들도 모조리 참수!
띠링!
-엠비뉴 교단에 물든 다간 왕국의 지도층이 사라졌습니다.
다간 왕국의 성과 도시 들은 저항을 포기해서, 무혈입성을 할 수 있었다.
"우우우!"
"야만인들아, 썩 물러가라."
"이 땅은 엠비뉴께서 다스릴 것이다. 파괴. 파괴. 파괴!"
엠비뉴 교단에 빠져 있던 주민들은 지도층이 몰락하고 왕국이 무너진 이후로
본색을 드러내서 도시 곳곳에서 약탈과 방화를 하고 있었다.
도덕심이 높은 인간이라면, 명예나 악명에 무관심하다 해도 이런 상태에서는
주민들을 올바른 길로 이끌기 위하여 노력을 할 것이다.
예컨대 노들레였다면 다간 왕국을 훌륭한 새 지도자를 얻을 수도 있었을 것.
위드에게는 남의 일이었다.
"도시를 모조리 수색해서 값나가는 물건을 챙겨라. 그리고 철저히 파괴해라!"
체격이 좋은 청년들은 강제로 징병하여 노예 병사로 만들었다.
위드는 단숨에 병력을 6만까지 늘릴 수 있었다.
그렇지만 전투병이라고 하기에는 많이 어설픈 엠비뉴의 광신도 청년들!
충성심이 없으며 언제나 탈영의 기회만 엿보고 있었다.
"그다음 전장은 에루나로 한다. 진군!"
6만의 대군이 걷거나 마차를 타고 이동을 했다. 전투 물자도 산더미처럼
뒤를 따라왔다. 상인들로부터 강제로 교역품과 마차를 징발한 덕분이었다.
위드는 전쟁의 시대에 뛰어든 이상 제대로 악역을 맡기로 결정했다.
"욕은 어중간하게 먹으면 안 돼. 시작한 이상 제대로 해 봐야지."
퀘스트가 엠비뉴 교단과 싸우는 정복자를 원한다면 그에 걸맞게 행동해 주면 될 일이다."
다간 왕국에서는 무기를 들 만한 청장년층은 싹 쓸어 왔기 때문에 점령지의 반발도
그리 고려할 만한 요소는 아니었다.
그리고 에루나 왕국에서의 전쟁!
다간 왕국보다도 훨씬 큰 국가로, 전쟁의 시대가 끝나고도 한동안 길게
역사를 이어 가던 나라였다.
위드는 부대들을 이끌고 신속하게 진군하여 에루나 왕국의 중요한
요새 브룬하임을 에워쌌다.
"이 야만인들아, 저리 꺼져라!"
"곧 국왕 폐하께서 지원군을 보내 주시면 너희는 한 놈도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에루나 왕국은 요새 브룬하임을 바탕으로 농성을 결정했다. 위드와 그 부하들의
승리가 이곳으로 전해져서 경계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쟁의 시대에서 영원히 살아갈 것도 아닌 이상 나한테 한가롭게 보낼 시간 따위는
없어. 노예 병사들을 이제 제대로 된 싸움꾼으로 만들 기회로군."
위드는 여기서도 무자비한 작전을 실해에 옮겼다.
"다간 왕국에서 징병한 병사들에게 활과 화살을 나누어 주어라. 몸을
가릴 갑옷이나 방패는 줄 필요 없다. 그리고 요새까지 전진하면서 화살을 쏘도록 해라."
"예, 대제."
명령에 따라 사막 전사들은 강제로 징집한 병사들에게 활을 나눠 주었다.
그리고 그들을 강제로 전진시켰다.
요새 브룬하임의 성벽에서 화살이 날아와서 병사들을 맞혔다.
"어떻게 이럴 수가..."
"안 돼. 난 죽고 싶지 않다고!"
뒤돌아 도망쳐 오는 병사들은 사막 전사들에 의하여 즉결 처형!
사막 전사들의 무자비함에는 질리도록 당해 왔던 병사들이기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요새 브룬하임에서는 그들의 사정 따위는 고려하지 않고 적으로 인식하고
공격하고 있었으며, 물러서더라도 죽음이다. 뭐라도 해 보려면 성벽을 향하여
화살을 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격을 당해 픽픽 쓰러지는 노예 병사들!
갑옷은 커녕 몸을 가릴 수 있는 기초적인 방패도 없는 까닭이었다.
몸을 숨길 수가 없으니 무조건 성벽을 향하여 화살을 쏘며 악착같이 피해야 했다.
4만의 노예 병사들이 절반 가까이 허망하게 죽어 나갔다.
강제로 끌고 왔지만 엄청난 희생이었다.
위드는 그런 처참한 상황을 보면서도 다른 생각을 했다.
'오늘 저녁에는 짜파게티를 먹을까, 라면을 먹을까? 음, 비비면도 먹고 싶은데.'
인생에서 갈등되는 선택들!
유저들 중에는 NPC에게 정을 붙이고 친해지는 경우도 많다. 서로 도움을
주고받기도 하며, 퀘스트나 동료로서 돈독해진 친밀도는 수치 그 이상의
관계를 형성하기도 한다.
위드와 조각 생명체들도 그런 애증이 뒤섞인 비슷한 관계라고 볼 수 있었다.
아무리 부려 먹고 혹사시키더라도 뭔가 부족한 듯한 느낌!
나약한 NPC 병사들이 죽어 나가는 것은 위드에게는 별로 관계가 없는 일이었다.
이들은 현재의 시간대에만 존재할 뿐이고, 훗날에는 이미 다 사라지게 될 NPC들이다.
냉정히 말해서 과거의 역사로 들어왔으니 적당히 활용할 수 있는 소모품으로밖에는
여기지 못했다.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것이 안락한 삶의 노하우가 아니겠는가.
"이 정도면 됐군. 병사들을 후퇴시켜라."
"예, 대제!"
사막 전사들은 병사들에게 퇴각해도 좋다는 신호를 내렸다.
성벽 위까지 날아간 눈먼 화살 몇 개에 요새의 수비병이 좀 다쳤을지도 모르기는
하지만, 피해는 거의 전무하다고 할 수 있었다.
수비병의 화살을 소모시켰다고 볼 수도 없는 것이, 요새의 전투 비축 물자가
하루 이틀의 전투로 떨어질 리도 없다.
"갑자스러운 반란을 막기 위해서라도 병사를 좀 줄여 놔야지"
이번의 전투로 노예 병사들은 에루나 왕국을 매우 미워하게 되었으리라.
에루나 왕국을 점령하여 강제징병을 하게 되면 노예 병사들끼리 알아서 적대
관계를 형성하며 다툼이 잦을 게 틀림이 없다.
더불어 사막 전사들에게는 한없는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위드와 사막 전사들은 그들의 공포를 적절히 관리하며 전장으로 내보내서
써먹으면 되는 것이다.
이런 용병술이야말로 유치원 때부터 친구들끼리의 이간질을 통해 쌓아 올린
인간관계에서 비롯되는 것.
그날 저녁, 위드는 조각품을 깎았다.
요새 브룬하임의 땅과 건물을 축소시켜 놓은 것처럼 정밀하게 표현된 조각품!
지진이 요새를 두 쪽으로 갈라놓고 있었다.
위드는 부하들을 데리고 요새가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한참 뒤로 물러섰다.
"대재앙의 자연 조각술!"
쿠르르르르르릉!
제대로 서 있을 수 없을 정도로 땅이 흔들렸다. 상당히 먼 곳에 떨어져 있는
낙타와 말 들까지 날뛰고, 마차는 바퀴가 떨어져 나가고 부서졌다.
그리고 석조 요새인 브룬하임의 두꺼운 성벽은 거짓말처럼 허물어졌다.
수비를 위한 궁수 탑이 쓰러지면서 건물에 부딪치고, 병사들이 그 아래에 깔렸다.
아득하게 들려오는 비명, 처참하고 무지막지한 위력을 가진 대재앙의
자연 조각술!
자연과의 찬화력이 높아질수록 위력이 강해지지만 그만큼 무지막지만 페널티를
가진 이 아까운 스킬을 공성전에서 사용한 이유는, 빠르고 확실한 승리를 위해서였다.
"돌격."
위드와 사막 전사들은 낙타를 탄 채로 무너진 성벽을 뛰어 넘었다.
억울함과 두려음으로 눈이 붉게 충혈된 노예 병사들은 여전히 갑옷도 입지 않은 채로
검 한 자루만 들고 뒤를 따랐다.
믿고 있던 요새가 허물어지자 에루나의 병사들은 제대로 대응도 하지 못했다.
"종말의 날!"
위드는 스킬을 써서 발광하며 말에도 올라타지 못한 기사단을 쓸어버렸다.
"흑기사의 일격!"
그 누구도 감히 위드의 검을 한 번이라도 받아 낼 수가 없었다.
그리고 작렬하는 광역 스킬.
날뛰고 있는 사막 전사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사막을 평정한 뜨거운 군대가 요새 브룬하임을 무너뜨리고 있다.
"으와아아아아!"
"공격해. 다 죽여라!"
노예 병사들도 에루나의 병사들을 마구 베었다.
활 하나만 주어진 채 성벽을 향해 내몰릴 때의 막막함과 공포!
위드와 사막 전사 부대에는 감히 그 불만을 표출할 수가 없었기에, 모든 증오는
에루나의 병사들에게로 향했다.
"포로를 잡을까요?"
전투가 확실한 승리로 굳어 가고 있을 때 전일이 물었다.
"아니. 우리를 상대로 농성을 시도한 것은 용서할 수 없다. 모두 죽이고 요새 전체를 불태워라."
"... 정말이십니까?"
"그래."
위드는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려 살아 있는 주민들과 함께 요새를 완전히 태워 버렸다.
-악명이 48,921 올랐습니다.
카리스마가 27 높아집니다.
호칭 '잔인무도한 희새의 살인마'를 획득하셨습니다.
무자비한 전쟁 폭력!
가히 인간으로서 저리를 짓이 아니었다. 하지만 위드는 퀘스트라고 생각했고,
이런 건 적당히 해서는 잘하지 못한다.
"앞으로의 전투를 원활하게 진행하기 위해서는 더 큰 공포를 심어 줄 필요가 있어."
전쟁의 시대에는 주민들의 의식도 조금 특수했다.
그들은 존중해 주면 금방 반란을 일으키고, 사막 부족이라는 이유로 업신여긴다.
노예 병사들도 엠비뉴 교단을 믿고 있기 때문에 공포로 억누르지 않으면 계속
반발을 할 것이다. 무자비한 폭력이 최선의 해결책은 아니더라도, 주민들로 하여금
반란은 꿈도 꾸지 못하도록 억누르는 효과는 있었다.
대살육을 목격하고 동참한 노예 병사들은 이제 얼어붙었다. 그리고 일어난 역효과!
"멋지다."
"으음, 우리가 생각한 이상적인 폭군이시군."
"에, 엠비뉴의 화신임이 틀림없어. 그 누가 이렇게 황홀한 환경을 만들어 낼 수
있겠는가 말이지."
브룬하임의 폐허에서 기뻐하는 엠비뉴의 광신도들!
스스로 감화된 노예 병사들은 다음 전쟁터에서도 적극적인 활약을 벌였다.
그렇게 몇 번의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면서, 패잔병을 수습하고 강제징집을 통하여
노예 병사들이 20만을 넘어서게 되었다.
공성전을 통해서 패배한 쪽은 가축까지 씨를 말려 버렸으니 대륙 전체에 위드와
그의 부대에 대한 두려움이 깊숙하게 퍼져 갔다.
정복자로서 무자비한 활동을 하는 위드를 말릴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오직 서윤뿐이었다.
그녀는 위드가 전투를 치르는 것을 몇 번 보더니 군대의 자금과 관련된 권한을 달라고 했다.
"...그래? 그렇다면야, 뭐."
부모, 형제, 자식 사이에서도 믿을 수 없는 돈 거래!
그러나 서윤이 사막에서 어떤 식으로 내조를 했는지를 알기에 위드는 쉽게 허락했다.
'알아서 잘하겠지. 어차피 돈은 있더라도 쓸 일도 없으니까.'
필요한 물품이 있으면 약탈하면 될 뿐!
서윤은 몇몇 상인들에게 후하게 돈을 지급하면서 군대에 필요한 물자들을 제공하게 했다.
전쟁의 시대에서, 돈에 눈이 멀어 있는 상인들은 황금만 준다면 무엇이든 했다.
"이번 거래에 감사드립니다. 더 시키실 일은 없으신지요?"
몇 번의 거래를 성공적으로 하고 나서, 서윤은 그들에게 특별한 주문을 했다.
"...하실 수 있나요?"
"근처에서 구하기는 어려운 생물입니다만 상단의 마법사들을 통해서라도, 혹은 선이
닿아 있는 왕실의 텔레포트 게이트를 통해서라도 빨리 구해오겠습니다. 네? 일찍
구해 오면 그만큼 돈을 더 주신다고요? 아이고야, 이렇게 감사할 데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습니다요."
그리고 상인들을 통해서 코끼리 300마리를 구했다.
지금까지 위드의 군대는 사막 전사들을 주축으로 한 기병과 노예 병사들로만 구성되었다.
이에 더해 군대의 위엄을 세우고 적들에게 공포를 심어 주도록, 서윤이 전투
코끼리 부대를 편성해 준 것이다.
연합군을 격퇴하고 난 이후 승승장국하는 하벤 제국!
모로스 성은 중앙 대륙의 교통의 요지로서 상당히 중요한 곳이었다.
고급 가구와 벨벳, 향료의 거래지로, 역사적으로 크게 발달한 상업 도시였다.
브리튼 연합 왕국을 정복하던 당시 하벤 제국의 영토로 편입되어서, 지금까지 많은
세금을 바쳐 온 땅이다.
영주는 로프너!
"역시 헤르메스 길드에 뇌물을 바쳐서라도 이곳을 차지하길 잘했지. 그때 들였던
막대한 돈은 도시를 다스리는 동안 세금을 인상해서 회수하면 되니까 말이야."
영주가 뿌듯한 기분을 만끽하며 창밖을 보는데, 푸른 하늘 아래 가득 펼쳐져 있던
주택들이 어제보다 줄어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루오니, 저곳에도 주택들이 있었던 것 같은데.. 언제 황무지로 변했지?"
"글쎄, 나도 잘 모르겠는데."
"그냥 내 착각인가."
"아마도 그렇겠지. 주택가가 황무지가 될 리는 없잖아."
잠시 동안은 별걸 다 착각한다면서 웃기도 했다. 영주라고 해도 도시 전체의 모습을
구석구석까지도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기란 어렵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뜨거운 여름날 아이스크림 녹듯이, 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에도 외곽의
주택들이 사라지고 있었다.
"이거 왜 이래? 저쪽은 분명히 고급 주택가였는데 건물들이 작아졌어. 어?
지금은 완전히 없어졌다."
"무슨 사건이 벌어지고 있는 건가? 갑자기 주택들이 사라지고 도시를 나누는 경계선이
줄어서 도시가 작아지나디! 말도 안 되잖아."
로프너는 영주의 권한을 이용하여 내정 모드로 주민 숫자를 알아보았다.
그런데 어제보다 무려 3만 명이 줄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전염병이라도 돌고 있는 건가."
정신 줄을 놓을 수밖에 없는 상황!
주택들의 감소로 시작된 변화는 곧 모로스 성의 상업 지구축소로 이어졌다.
거리에서 오고 가는 상인들이 뜸해지더니 번화하던 상업지구가 눈에 띄게 위축되었다.
교역품 감소는 물론이고, 길거리에 보이는 주민들의 옷차림조차도 점점 빈한해졌다.
배가 남산처럼 튀어나오고 턱살이 피둥피둥 쪄 있던 상인이 날씬해지더니, 나중에는
피죽도 못 먹은 것처럼 깡마르게 변했다.
그리고 먼 길가의 상점부터 하나씩 폐쇄되고 건물이 사라져 갔다.
상업 지구 자체가 폐쇄되고 난 이후부터 도시는 그대로 녹아내리듯이 사라지고 있었다.
도로와 건물이 있던 자리는 큼지막한 돌덩이와 무성하게 자라난 잡초들이 뒤덮었으며,
황무지 그리고 가까이 있는 숲도 영역을 무섭게 넓혀 왔다.
"무슨 일이야!"
"이거 왜 이래."
뒤늦게 알게 된 헤르메스 길드의 소속 유저들도 당황했고, 이러한 변화는 곧
도시에서 활동하는 일반 유저들도 알아차렸다.
상인 유저들은 많은 관세를 내고 모로스 성까지 들어왔다.
성문 밖에도 수백 명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눈앞에서 도시가 그대로 사라져
가는 것을 보고 있는 황당한 기분!
"뭐, 뭔가 장관이긴 하다."
"그치. 어디서 이런 걸 보겠어."
어쨌든 남의 일이기 때문에 즐겁게 구경할 수는 있었다.
건물과 주민 들이 사라지면서 거리에 우두커니 서 있는 유저들만 그 자리에 남았다.
무기점에서 물건을 살펴보다가 건물 자체와 구매하려는 물품이 손 위에서 없어지는
이상한 경험을 한 유저들도 있었다.
그렇게 도시는 얼이 빠진 유저들만을 남겨 놓고 사라졌다.
모로스 성 역시 성벽에서부터 차츰 없어지기 시작하더니 헤르메스 길드원들만을
땅에 남겨 두고 흔적도 없이 자취를 감췄다.
모로스 성과 상업 지구가 있던 도시는 그저 넓은 벌판과 황무지, 숲이 있는
땅으로 변하고 말았다.
그와 거의 동시에, 가장 가까운 강가에 나무로 지은 건물이 여섯 채 생겨났다.
작은 배들을 띄워서 한가로이 낚시를 하는 어부 NPC들이 보였다.
헤르메스 길드원들은 그들에게 달려갔다.
"저기요, 말씀 좀 묻겠습니다."
"뭐요? 여기는 몇 년간이나 사람들이 찾아오지 않던 장소인데 갑자기 이렇게
많이들 나타나니 놀랍구만."
"예?"
"그래, 어디서 왔소? 북쪽이오, 남쪽이오?"
낚싯줄에 미끼를 끼우던 어부의 말에 헤르메스 길드원들은 답답함을 느껴야 했다.
"우린 여기에 있던 모로스 성 사람입니다."
"모로스 성? 이 부근에 그런 성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 본 적도 없는데."
"바로 저쪽 넓은 땅에 불과 10분 전까지만 해도 세워져 있었단 말입니다."
"에이, 농담하지 마시구려. 저기는 황무지잖소. 게다가 우리 아들이 매일
뛰어다니는 곳인데? 재작년에는 저곳에 작은 밭이라도 일구어 보려고 하다가
자갈이 너무 많아서 포기해 버렸지."
헤르메스 길드원들, 특히 로프너는 어부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인지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로열 로드에서 여러 퀘스트를 진행하다 보면 이해력이 올라가게 된다.
그럼에도 대도시를 가진 영주였다가 순식간에 모든 것을 잃게 된 그가 갑자기
벌어진 사건에 대해서 열린 마음을 갖기란 불가능했다.
어부들이 있는 곳으로 따라온 일반 유저들도 귀를 쫑긋 세우고 이야기를 들었다.
모로스 성이 사라지게 된 것은 그들에게도 호기심을 자극할 만한 일이었다.
헤르메스 길드원 중 1명으로, 키가 작은 도둑 유저가 눈동자를 떼구르르 굴리더니 물었다.
"그럼 여기에 모로스 성이 없단 말씀이십니까?"
"당연하지 않소? 이곳에서 가장 가까운 성은 헤펜인데."
헤펜도 옛 브리튼 연합 왕국의 영토로 하벤 제국에 속하게 되었다. 뭐, 어쨋거나
그곳은 아직 무사한 것 같아서 다행이었고, 어부와도 말은 통할 것 같았다.
"모로스 성이 갑자기 사라진.. 아니, 그러니까 혹시나 여기에 원래부터 없었단 말씀이신지요?
그리고 들어 본신 적도 없고요."
"음, 그렇지."
"어르신은 이곳에서 쭉 낚시를 하면서 사셨고요."
"일곱 살 때부터였으니까 30년이나 되었군. 평생을 이곳을 떠나지 않고 낚시질을
하면서 살았지. 내 아내는 그물 짜는 일을 한다오."
모종의 사건이 벌어져서 베르사 대륙에서 모로스 성이 자취도 없이 사라졌다는 건
이해할 수 있었다. 물론 헤르메스 길드원들과 로프너 입장에서는 납득까지
할 수는 없는 것이었지만 말이다.
"왜 여기에는 성이나 도시가 없고 사람이 많이 살지 않죠? 땅이 꽤 넓고 좋아 보이는데요."
"음, 그야.. 오래전 헬튼 성 시절에는 여기에 거주하는 사람이 많기는 했다고
어느 여행자에게 들어 본 적이 있소."
헬튼 성이라면 브리튼 연합 왕국이 이 지역을 점령하기 이전에 에루나 왕국이 다스리던
시기의 이름이다.
"사막 부족의 대침략 이후로 헬튼 성은 주춧돌 하나 남기지 못하고 사라져 버리고
사람들은 모두 떠나 버렸지."
"대침략요?"
"그렇소. 그건 대재앙이라는 말밖에는 전해지지 않소. 에루나 왕국으로서는 막을 수가
없었지. 불세출의 악마 위드가 모든 것을 앗아 가 버렸으니까."
위드!
그 이름만큼이나 모든 변화를 납득하게 만드는 사람이 베르사 대륙에 또 있을까.
유저들 중에서는 지금의 상황을 추리하는 이들도 나타났다.
"설마 남부 사막지대에 갑자기 도시들이 생겨나고 발전하는 것과
지금의 사태가 연관이 있나?"
"맞을 것 같아. 거기는 사람도 늘어나고 도시도 커지는데, 대신 모로스 성은
사라져 버린 거지."
"아니, 도대체 무슨 퀘스트를 하면 이런 식의 마법 같은 일을 벌이는 건데?"
"난들 아나. 아무튼 모로스 성은 쫄딱 망해 버렸네."
"그런 거 같아."
사정을 파악한 헤르메스 길드원들은 기절하고 싶을 지경이었다.
모로스 성의 상업적인 가치는 대단했고, 동시에 교통의 요충지이기도 했다.
모로스 성이 사라지게 되면 헤펜 성과 마드헤드 간의 교엑어도 막대한 차질이
빚어지게 된다. 당장 이곳 주변으로는 많은 몬스터들의 무리가 날뛰고 있었다.
모로스 성에 주둔하고 있는 군대를 출진시켜서 정기적으로 토벌하지 않으면
안 되는데, 성과 함께 몽땅 없어져 버렸으니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한 문제였다.
"그럼 우선 헤펜으로 가서 대책을 세워 보죠. 그들로부터 지원을 받아 모로스 성도
재건을 해야 하니까 말입니다.'
"30분만 달리면 되니까 바로 가 봅시다."
헤르메스 길드원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어부가 끼어들었다.
"여기서 가장 가까운 성은 프레이달이라오."
"예? 헤펜 성이 더 가까운데요. 프레이달은 상당히 먼데. 말을 안 타면
어림잡아 2시간은 가야 되잖아요."
"아까 헤펜이 가장 가깝다고도 하셨는데요?"
어부가 머리를 긁적였다.
"내가 언제 그랬소? 기억이 나지 않는데.. 헤펜이란 이름은 처음 들어 보는군."
헤르메스 길드원들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고 말았다.
그리고 바로 그 시작, 헤펜 성의 사람들도 도시가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리는
기현상을 목격하고 넋이 나가 버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