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폭풍의 눈
"죽이자!"
"엠비뉴의 형벌을 저 몸에 실험하는 것이 우선니다. 달군 인두부터 가져와라!"
"팔다리를 자르고 나서 살점을 잘게 다져라!"
광신도들이 마구 아우성을 쳤다.
위드가 빠져나갈 곳은 아무 데도 없는 상황!
근처는 오로지 엠비뉴의 하수인들로만 가득했으며, 사막 군단은 모습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리 떨어져 버렸다.
들모레 요새와도 적들로 가로막혀 있을뿐더러 상당한 거리가 있다.
그리고 당연히 마폰 왕국과 베이너 왕국에서 굳이 그를 구하러 올 리는 없다.
"음, 이만하면 딱 한 가운데라고 할 수 있겠군."
당황할 만도 했겠지만, 위드는 흥미롭게 엠비뉸의 병력 배치를 살펴봤다.
사제들과 마법사, 마녀 들의 주변에는 사이사이 겹겹이 엘리트 괴물들이 자리를 메웠다.
생김새도 최악이고 역한 침을 뚝뚝 흘리는, 짙은 초록 피부의 괴물들.
엠비뉴의 괴물 개량 작업에 의하여 태어난 놈들로, 각종 전투 기술들과 회복력, 병을 퍼트리는 능력을 가졌다.
광신도들이야 아무리 강하더라도 눈에 차지 않았지만 그런 괴물들이 수천 마리가 넘게 군대 사이에서 모여들고 있었다.
위드는 딱하다는 듯이 깊은 한숨을 쉬었다.
"너희가 무슨 죄가 있겠냐. 그저 세상을 살다 보면 별일이 다 벌어지는 거지."
"……?"
"전쟁의 시대에 태어나 엠비뉴를 믿는 광신도가 될 게 아니라 나중에 아르펜 왕국이라는 훌륭한 국가가 건설된 후에 그곳의 주민으로서 살아가면 되었을 것을."
"……!"
어느 한쪽이 낫다고 구분하기 어려운 비교!
아르펜 왕국의 주민들은 국왕인 위드가 그들을 가난과 굶주림에서 벗어나게 해 주고 문화와 모험, 상업을 가져왔다고 신처럼 떠받들고 있다.
사실상 아르펜 왕국의 충성도에 대해서는 별도로 관리가 필요하지 않을 정도였다.
그렇지만 세금이란 각종 명목을 들어서 슬그머니 오르기 마련이다.
평화로운 시기였다면 진작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을테지만 하벤 제국과 경쟁을 하려다 보니 유저들과 주민들을 늘리기 위해서 간신히 참고 있었다.
위드에게 그 고통은 가히 말기 암 투병에 비견될 정도!
그나마 훗날 세금을 올릴 수 있다는 희망이 있기에 가까스로 버틸 수 있었다.
만약 하벤 제국이 갑자기 몰락하기라도 한다면 그 후로 아르펜 왕국의 주민들은 치솟는 세금을 감당하느라 감자와 고구마 대신에 콩나물만 먹고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갇혀 있는 이교도 주제에 말이 많구나!"
"그 커다란 몸에 엠비뉴에 대한 존경심을 빼곡하게 채워 넣겠다."
소검을 든 광신도들이 위협하면서 날뛰었다.
고위 사제들과 괴물들도 각자 공격을 준비하고 있다.
잉그리그와 모툴스는 수장들답게 들모레 요새에서 전투가 벌어지고 나서도 지켜보는 입장이었지만, 이제 위드가 가까이 다가오니 직접 전투에 뛰어들려고 했다.
엠비뉴의 석상이 새겨진 목걸이를 들고 보라색의 신성력을 모으고 있었다.
등에 날개를 붙인 마녀들은 쉬익거리면서 혀를 뱀처럼 날름거렸다.
그녀들은 공격을 할 것처럼 불안감을 조성했지만 신중한 성격으로 결코 먼저 다가오지는 않았다.
중과부적.
사면초과.
모든 적들을 상대로 버텨 나가다가 상처를 입어 가면서 얼마나 버틸 수 있겠는가.
그러나 위드가 이성을 잃고 적진의 한복판까지 들어온 것은 아니었다.
효율을 앞세우고, 가능한 피해를 최소화하는 그가 무모한 전투를 할 리가 없다.
지금의 이 모든 것은 계획의 일부.
작전명은 막다른 쥐!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무는 거지!"
계획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적들 한가운데 있어야 했다.
위험을 감수해야 했지만, 위드가 가지고 있는 조각술 스킬을 최대로 이용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었다.
"어디 다 같이 죽어 보자. 하늘이 무녀져도 살아남을 수 있을지 봐야지."
위드가 품에서 꺼낸 것은 이번에도 조각품!
넓고 평평한 나무판에는 섬뜩한 풍경의 조각상들이 돌출되어 있었다.
하늘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굵은 비가 내리고, 바람의 회오리들이 움직이면서 모든 걸 휩쓴다.
땅은 갈라지고, 끝을 모를 깊은 곳으로 무너져 내렸다.
복합적인 재앙을 표현하고 있는 작품.
베이너 왕국과의 전투 당시에 바람 마법의 마스터 비얀 안드레가 쓰던 것을 겪어 보고 조금 더 파괴적으로 개량한 것이었다.
마법은 비교적 협소한 부분에 적절하게 통제된 상태에서 강력한 영향을 미치지만, 대재앙은 그 범위가 아주 넓고 예측하기도 어렵다.
또한 위력에 있어서도 대재앙이 바람 마법보다 결코 약하지 않다.
비얀 안드레는 바람 마스터의 마스터로서 마나를 소모하여 마법을 발휘한다.
장점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주문만 완성하면 바로 사용이 가능하고 또 본인은 안전하다는 점.
그에 반해 대재앙의 자연 조각술은 비기로서 축적된 예술 스탯과 자연과의 친화력, 조각품을 바쳐서 이루어 내는 기적!
조각술 마스터의 경지에 거의 다다른 데다 예술과 자연과의 친화력도 월등한 위드가 일으키는 대재앙은 천문학적인 위력을 자랑했다.
"대재앙의 자연 조각술!"
- 명작의 조각품입니다. 무시무시한 위력이 발휘되어 자신이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스킬을 사용하시겠습니까?
"누가 죽나 해 보자!"
- 대재앙의 자연 조각술 스킬을 사용하셨습니다.
예술 스탯이 20이 영구적으로 사라집니다.
생명력과 마나가 20,000씩 소모됩니다.
모든 스탯이 사흘간 일시적으로 15% 감소합니다.
자연과의 친화력이 떨어집니다.
대재앙의 자연 조각술은 하루에 한 번밖에 사용하지 못합니다.
위험한 재앙을 불러오게 되면, 그 피해에 따라서 명성이나 악며이 오를 수 있습니다.
재앙을 겪는 와중에 죽을 수도 있으니 주의하십시오.
"놈을 붙잡아라!"
대재앙을 일으키고 난 이후, 괴물과 광신도 들의 공격이 개시되었다.
"이 세계는 파멸한다. 우리를 막을 수 있다는 착각을 없애주마."
"절대 벗어나지 못하리라!"
위드가 긴 말살의 검을 휘두르면서 다가오는 적들을 베었다.
광신도들을 상대하는 건 어린아이 장난과 같았지만, 괴물들은 두세 번씩 베어야 확실히 죽일 수 있었다.
생명력이 높기도 하였고, 엠비뉴의 축복 속에서 웬만하면 전투 불능에 빠지지 않고 회복도 빨리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불의 힘을 사용하여 완벽하게 육체를 태워 버려야 했다.
그사이에 극악의 기사단과 징벌의 사제들이 신속하게 배치되고 있었다.
모툴스와 잉그리그, 페쳇을 제외하면 최상의 전력인 그들이 제 발로 찾아온 위드를 포위하면서, 빠져 나갈 수 없게 했다.
- 피의 저주!
알수 없는 기운이 몸을 으스스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피를 흘릴 때마다 생명력이 평소보다 더 많이 빠져나가며 느리게 회복 됩니다.
- 어두침침한 증오의 지대!
암흑의 영역이 선포되었습니다.
부정한 기운의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이에 저항하는 능력이 약해집니다.
저주 마법에 더 취악해질 것입니다.
- 축 늘어지는 육체!
힘, 체력이 14%씩 감소합니다.
움직임이 저하됩니다.
'용사의 의지'가 힘을 약화시키는 저주를 완벽하게 이겨 냈습니다.
- 타고난 약점!
징벌의 사제들의 끈끈한 마법에 걸려들었습니다.
가슴 한복판의 맷집이 약해지고, 적들을 유인하는 붉은 점이 생깁니다.
이곳을 공격당하면 생명력이 최대 15.4배까지 더 많이 감소합니다.
말살의 검이 이 저주 마법에 대해 화염의 힘으로 저항하였지만 완벽하게 막아내지 못했습니다.
저주의 효과를 64%까지 감소시킵니다.
걸려들게 된 저주들!
눈앞의 적들과 싸우느라 바빠서 그 이후로는 몸에 깃든 저주들을 확인하지도 못했다.
암흑 사제들, 징벌의 사제들은 즉각적인 공격을 하기보다는 저주로 약화시키는 쪽을 선택했다.
위드는 기본적인 저항력이 높고 저주를 파해하는 아이템들도 갖추고 있었지만 사제들의 끊임없는 시도에 의해서 하나 둘 걸려 갔다.
"엠비뉴께서 우리에게 한 약속에 따라 피와 생명을 바칩니다. 고통스러운 망각!"
제물을 바쳐서 시전하는 희생 마법은 적중률이 매우 높았다.
위드는 싸우면서도 몸 상태가 급격하게 나빠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젊은 청년이었다가 노인의 몸이 된 것처럼, 움직임이 예전과 달라졌다.
야만 전사 특유의 생존 기술로 회복력도 현저하게 느려졌다.
정말 무서운 것은, 더 이상 위드에게 걸릴 저주들이 없게되자 사제들지 광신도와 괴물 들에게 축복을 걸어 주기 시작한 것이었다.
잠재력과 수명을 건드려서 투사로 바꾸는 엠비뉴의 신성 마법.
부작용은 10분도 지나지 않아서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지만, 엘리트 보스급 이상으로 강해진다.
광신도들이 암흑 기사들의 수준으로, 그리고 암흑 기사들은 극악의 기사들처럼 변했다.
원래부터 강한 괴물들은 상당한 수준을 갖춘 보스급 몬스터로 변신!
"얼마든지 덤벼 봐라. 몽땅 쓸어 주마!"
위드는 발을 구르고 말살의 검을 휘두르며 덤벼 오는 적들을 처리했다.
생명력과 체력이 깎여 나가고, 수십 개의 저주가 걸려 있다가 해소되고 다시 적용되기를 반복했다.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고 있었지만 용사답게 당당하게 서서 모든 적들을 상대했다.
아직도 말살의 검을 휘두르면서 수십 미터의 불길이 일어나서 광신도들을 떼죽음으로 몰고 갔다.
그 탓에 사제들이 가까이 다가오지 못했으며, 극악의 기사단도 그저 지켜보고 있는 모습이었다.
방심이나 여유를 부리는 것이 아니라, 잉그리그와 모툴스가 따로 신성력을 극대화시키기 위한 어떤 의식을 펼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의식이 완료될 때까지 그들을 지키면서 기다리고 있는 듯한 태도!
그러나 나머지 적들은 끊임없이 공격해 와서, 잠깐 사이에 없애고 짓밟은 적들이 수백에 달했다.
위드도 부상을 입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야만 전사의 덩치가 큰 만큼 힘과 공격력도 월등히 강해졌지만 작은 난쟁이들이 빠르게 달려오면서 독침을 쏘는 것은 이런 난전에서는 피하기가 거의 불가능했다.
전투를 위하여 태어난 야만 전사에게도 천적이 있었던 것이다.
- 생명력이 51% 이하로 감소했습니다.
"엠비뉴가 고작 이 정도였느냐. 누구도 나를 막지 못한다!"
위드가 고함을 질렀다.
"미개한 적이지만 제법 용감하구나!"
엠비뉴의 징벌의 사제들도 적진의 한복판에서 싸우는 용기만은 칭찬을 했다.
"유일하게 우리를 막을 수 있었던 자. 너의 죽음으로 인하여 이 세계는 파멸될 것이다."
"내가 지키고 있는 한 엠비뉴 교단 너희는 이 대륙을 넘보지 못한다. 이 대륙에 살아가는 인간, 엘프, 드워프, 오크, 모든 종족을 대신하여 어긋난 삶을 살아가는 너희를 막아 내리라."
사제들이 이런 말을 날리니 위드도 적절한 대사로 받아쳐 주었다.
소싯적에 그래도 텔리비전을 통해 블록버스터급 영화 몇 편은 보았던 것이다.
주인공들이 낯간지러운 말들을 할 때 재수 없다고 비웃으면서도 속으로 은근히 '꽤 멋진데.'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이렇게 써먹는 날이 오게 될 줄이야!
'방송을 통해 중계되면 뭇 유치원생들과 초등학생드이 나를 우상으로 여기게 되겠지.'
대한민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에서 인기가 높은 로열 로드.
즉, 전 세계의 어린이들이 위드를 우상으로 여기게 되는 것이다.
자라나는 꿈나무들에게 유독 화학물질을 끼얹는 격!
이렇게 죽을 확률이 더 높은 위험한 전투에서는 두려워하거나 움츠러들 필요가 없다.
너무 계산적이 되어 버리면 아무것도 못하지 않는가.
야만 전사로 변신한 이유도 시원하게 싸워 주기 위해서 였다.
힘겹게 버티고 있는 사이에 굵은 빗방울들이 내리기 시작했다.
"이제 왔구나!"
가뭄 끝에 내리는 단비를 맞이하듯, 위드는 하늘을 쳐다보았다.
소나기처럼 갑자기 땅을 적시던 빗방울들은 곧바로 앞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세찬 폭우로 변했다.
거의 전투가 불가능할 정도의 비, 그리고 바람의 회오리가 불어오고, 땅도 미친 듯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제대로군."
위드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엠비뉴 교단의 전력이 대단하다면 이렇게 모아서 한꺼번에 죽여 놔야 하지 않겠는가.
명작을 바친 대재앙의 자연 조각술로 벌이는 대량 학살의 현장!
세찬 폭우로 인하여 괴물들도 당장은 덤벼들지 못하고 주춤했다.
"그래도 이걸로는 뭔가 모자라."
위드는 고장 난 보일러에서 나오는 온수를 맞을 때처럼 뭔가 뜨뜻미지근하다고 느꼈다.
"생명력이 높은 괴물들은 어지간한 재난에도 잘 버텨서 살아남을 것 같은데."
맷집과 생명력이 높다면 대재앙에 빠지더라도 아주 재수가 없지 않는 한 살아남을 가능성이 크다.
위드만 하더라도 레벨이 매우 높고 야만 전사가 된 지금의 상태에서는 대재앙으로 죽을 걱정을 하지 않았다.
"내가 산다면 엠비뉴의 고위급들도 대거 살아나겠지. 엘리트 괴물들 그리고 지옥의 마물들도 말이야."
지옥문을 닫기 전까지는 계속 쏟아져 나오는 마물들.
그놈들도 처리해야 하는 마당에 단지 대재앙의 자연 조각술만으로는 부족하리라.
"확실히 나도 죽을 수 있을 정도의 위험이어야 돼. 으음, 그렇지 않으면 시시하지."
위드는 품에서 종이쪽지를 하나 꺼냈다.
오래되고 볼품없이 구겨져 있는 종이지만, 대마법사의 무시무시한 궁극 마법이 새겨져 있는 스크롤.
유성 소환!
성 하나 정도는 파편만으로도 그냥 말아먹을 정도이며, 아주 큰 유성이 낙하하면 국가의 수도가 통째로 사라지기도 한다고 한다.
누구도 경험해 본 적은 없기 때문에 그 위력이 어디까지인지도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이판사판이야."
위드는 유성 소환의 스크롤을 찢었다.
★★★★★★★★★★★★★★★★★★★★★★★★★★
명동의 사채업자들!
그들은 자신이 왜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인지 알아내기 위하여 머리를 굴렸다.
"틀렸어. 원한을 가진 놈이 어디 한둘이어야지. 혹시 최 사장이 내 뒤통수를 쳤을까? 아니면 배 이사님이 회사 내에서 영향력이 커진 나를 제거하려고?"
먹고 먹히는 뒷세계에서 의심 가는 인물은 쌓이고 쌓였다.
검찰과 국세청까지 모두 동원할 정도의 권력을 갖고 그들과 같은 조무래기들을 쳐 내는 것도 어딘가 이상하다.
그들은 약한 자에게 강하고 강한 자에게는 약한 생존의 철칙을 잘 지켜 왔던 것이다.
"이유를 모르겠군."
사채업자들 중에서 가만히 내버려 두면 누군가 구해 줄 거라 믿는 낙천적인 인물은 없었다.
언제 적대적인 자들이 나타나서 자신을 죽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처음에는 악착같이 탈출구를 찾았다.
하지만 작은 방에 비밀 통로는 당연히 없었고, 천장과 벽을 아무리 두들겨 봐도 대꾸 따위는 들리지 않았다.
"지나가는 누구라도 좋다. 나를 구해만 준다면……."
그들이 갇혀 있는 장소는 지하 300미터. 조금만 더 파면 천연 암반수가 나오는 지역이다.
탈출은 정말 꿈도 꿀 수 없는 장소였으니 결국 각자 체념하고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3~4달이 지나고 나서는 감금 생활에 부득이하게 익숙해지면서 적응하게 되었다.
그들의 유일한 낙은 텔레비전을 보는 것.
뉴스는 애당초 관심이 없었고, 스포츠와 드라마 정도를 즐겨 봤다.
사채업자들은 의외로 아침 드라마의 매력에도 빠지게 되었다.
인간 세상의 자극적인 소재들은 전부 모여 있는 데다 매회가 흥미진진하다.
죽기 살기로 싸우다가 화해하고 다시 싸우면서 원수가 되고 출생의 비밀까지 알아내는 과정이 한 편에 모두 담겨 있으니, 할리우드 영화들은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버라이어티했다.
그리고 로열 로드!
답답하고 좁은 공간에 갇혀 있는 사채업자들에게 탁 트인 로열 로드의 배경과 세계는 부러움을 잔뜩 안겨 줬다.
로열 로드만큼 사람들의 행복 지수를 끌어올려 주는 매체는 없었다.
사채업자들도 당연히 위드의 모험을 지켜보았고, 지금도 생중계를 보기 위해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었다.
"위드가 지금 대재앙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전쟁의 신 위드의 트레이드마크와도 같은 대재앙이 엠비뉴의 군대 중심부에서 펼쳐집니다!"
"대재앙으로 적들을 모두 쓸어버리려는 생각인 것 같습니다."
"전투 실력뿐만 아니라 정말 과감하고 적극적인데요. 저러한 용기는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요?"
CTS미디어의 방송에서는 해설자들이 침을 튀겨 가면서 열을 올렸다.
위드가 엠비뉴의 군대 한복판으로 들어간 순간부터 위기의 절정 과정에 있었다.
방송을 오래 하다 보면 시청률이 가장 높게 나오는 순간이 언제인지 직감적으로 알게 되기에, 그 순간에 약간은 더 오버하는 것도 자연스러웠다.
CTS미디어만이 아니라, 동시간대에 중계를 하는 다른 방송국들도 사정은 모두 마찬가지.
위드가 위기를 겪거나 혹은 대단한 장면을 만들어 낼수록 흥분한 해설자들의 목소리가 커졌다.
그리고 위드가 품에서 종이쪽지를 꺼냈다.
"저것은 마법 스크롤이네요."
"특이하게 생긴 붉은 종이인데. 상당히 고위 마법으로 보입니다."
"위드 정도 되는 유저라면 고위 마법 스크롤을 꺼내는 것도 당연하죠."
"사막에서 얻었을까요? 아니면 정복과 약탈을 하면서?"
"텔레포트로 도망치려는 게 아닐까 추측이 되는데요."
"엠비뉴의 마법사들이 허락을 하지 않을 텐데… 과연 성공할 수가 있을지 미지수입니다."
텔레비전 속의 해설자들은 빠르게 말을 이어 갔다.
추측밖에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 정보들을 끼워 맞추고 결론을 내려야 한다.
설혹 틀린 말이라고 할지라도 시청자들의 흥미를 이끌어 내고 감정을 고조시킬 수 있다면 성공적.
"붉은 종이의 스크롤이라면 화염 계열 마법입니다."
"아, 위드와 잘 어울리는군요. 역시 대단한 공격 마법이 펼쳐질 것 같습니다."
"비가 쏟아지는 와중에 화염 마법이라니, 일반적인 상식에 비춰 보자면 위력이 많이 약회될 텐데… 이런 사정을 고려하지 않은 것일까요. 위드답진 않습니다."
"위력이 매우 강한 화염 마법이라면 쏟아지는 빗줄기 정도는 무시해도 될 것입니다. 폭발 계열의 화염 마법이라면 거의 상관이 없죠."
"아… 지금 확실한 소식통을 통해서 정보가 들어왔습니다. 저 마법 스크롤의 정체는 궁극의 공격 마법인 유성 소환입니다!"
"유성 소환이라고요!"
대재앙을 일으키더라도 어느 정도의 효과가 일어날지는 미지수였다.
엄청난 재앙이 휩쓸고 지나가겠지만 엠비뉴의 군대가 절반이나 혹은 그 이상 감소하기는 아무래도 무리이리라.
해설자들은 그래도 실컷 뛰워 주면서 위드를 찬양해야 시청자들의 관심을 집중시킬 수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로열 로드 방송도 리액션이 굉장히 중요한 것.
그런 해설자들도 이번에만큼은 진심으로 놀라서 자리에서 펄쩍 뛰었다.
사촌이 로또에 당첨된 것만큼의 경악!
"터, 터무니없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궁극의 유성 소환 마법! 다른 명칭으로는 불타는 유성 소환이라고도 합니다만, 차이를 둘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결과는 어차피 같을 테니까요."
"유성이 정말 소환이 될까요? 만약 마법 스크롤이 정상적으로 작동된다면 베르사 대륙 최초로 유성이 소환되는 광경을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러한 광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영광스러울 것입니다. 얼마나 화려한 장관이 연출될까요. 상상도 하기 어렵습니다."
엠비뉴의 군대와 전력을 다해서 싸울 줄만 알았지 설마 유성을 소환해 버릴 줄이야.
각 방송국들의 연출진에는 갑작스러운 비상이 걸렸다.
유성 소환의 영상을 제대로 현장감 넘치게 방송하기 위해 모든 기술진이 총동원됐다.
"이런 미친놈!"
텔레비전을 보고 있던 사채업자들도, 입에서 보리 빠이 튀어나올 정도로 놀랐다.
★★★★★★★★★★★★★★★★★★★★★★★★★★
- 유성 소환의 마법이 봉인되어 있는 스크롤이 발동되었습니다.
유성이 낙하할 장소를 정해 주십시오.
위드는 스크롤을 가지고 다니면서도 긴가민가했다.
너무도 엄청난 마법 스크롤이기에 혹시나 불량품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자꾸만 든 것이다.
대마법사 로드릭이 낙서를 해 놓고 나서 잊어버린 스크롤을 귀중하게 여기고 가지고 다니다가 발동시키고 나니 아무 반응이 없는 허무한 일이 벌어지지 말란 법도 없다.
"제대로 작동하는군. 역시 명품이었어. 글씨도 악필이고, 겉보기에는 딱 그냥 딱지나 접게 생겼는데 말이야."
유성 소환은 그 특성상 오차가 아주 크다고 했던 점이 떠 올랐다.
"그렇다면 바로 여기로 결정해야지. 그래야 빗나갈 테니까. 후후후, 역시 난 똑똑하군."
위드는 자기의 발밑을 유성이 낙하할 장소로 결정했다.
- 장소가 지정되었습니다.
잠시 후 유성이 낙하하게 될 것입니다.
지상에 충돌하면 그 피해는 넓은 지역에 미치게 되니 주의해야 합니다.
"이렇게 정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 맞겠지. 음, 그런데… 왠지 아주 불안한데."
온몸을 파고드는 불안한 한기.
그러나 기다려 보는 것 외에 달리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굵은 빗줄기가 내리면서, 바람의 회오리들이 전장을 휩쓸고 다녔다.
광신도와 괴물 들이 그대로 공중으로 떠올라서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울부짖는 비명 소리가 들린다.
땅이 움푹 꺼지고 갈라지면서 수많은 엠비뉴의 군대를 끝을 모를 무저갱으로 집어삼켰다.
"우히히히힛, 이제야 죽겠구나!"
"나는 저 아득한 밑바닥으로 떨어지고 있다. 아주 영광스럽습니다!"
광신도들은 일반 병사들과는 다르게 어떤 재앙에 의해서도 사기가 줄어들지는 않았다.
그러나 위드의 대재앙은 세상의 마지막을 보여 주는 것처럼 어마어마했다.
불어오는 회오리바람이 몸을 가눌 수 없게 만들며 천지사방으로 끌고 다닌다.
괴물들과 광신도들은 이리저리 밀려서 대지의 구멍으로 한꺼번에 쓸려 내려갔다.
땅은 흔들리고 무서운 소리를 내면서 두부처럼 으깨진다.
인간으로서 경험하기 어려운 대재앙의 무시무시한 현장.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평범한 사람들은 앞으로 착하게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만들고, 위드에게는 최소한의 양심이 생기게 되는 그런 광경이었다.
위드는 큰 덩치 때문에 바람의 저항도 많이 받았다.
야만 전사의 맷집도 저주로 인해서 약화되는 바람에 생명력이 제법 감소했다.
"우에에에엑!"
상체를 숙이고 버티고 있는데 괴물들이 굴러 와서 부딪쳤다.
피하려고 했지만 화살 같은 것도 아니고, 바람에 휩쓸려 온 수많은 괴물들을 어떻게 다 피할 수가 있겠는가.
"아, 안 돼!"
위드의 육중한 몸도 거짓말처럼 붕 떠서 날아가기 시작했다.
바람에 휘말리면서 공중에서 광신도와 괴물과 부딪쳤다.
손을 허우적거려도 잡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몸은 속절없이 빙글빙글 돌면서 하늘을 날아다녔다.
어찌할 수가 없는 막막함!
대재앙에 휘말며 버리고 만 것이다.
불사조의 생명력 스킬은 3분간 어떠한 공격에서도 버텨내게 해 주지만, 지금은 맑은 하늘이 아니라서 쓸 수가 없다.
회전이 너무 빨리 이루어져서 위드가 보이는 시야는 땅과 하늘이 계속 뒤바뀌었다.
괴물들이 무서운 속도로 날아다니면서 몸에 부딪쳤다.
충돌로 인한 생명력의 저하야 당장 죽을 정도로 위험한 수준은 아니었지만 이 재앙이 끝나고 나서 연쇄 공격을 당할 것을 감안한다면 충분히 위태로운 상태!
"절대 방어, 눈 질끈 감기!"
방어 스킬을 총동원하고 버티기로 전환!
콰르르르르릉!
바로 근처에서 천둥이 쳤다.
회오리에 휘말려서 하늘 저 높은 곳까지 솟구쳤다.
구름을 뚫고 올라가는 대재앙의 위력!
갑자기 몸을 밀어 올리는 바람도 느껴지지 않았고, 환한 빛에 눈이 부셔 왔다.
"으으음!"
눈을 떠 보니 맑은 하늘, 그리고 태양도 보였다. 먹구름을 돌파하여 평온한 세상에 온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여유도 불과 2~3초!
아래에 있는 회오리바람이 다시 그의 몸을 끌어당겼다.
"으아아아아아!"
이번에는 무시무시한 속도로 지상으로 낙하했다.
놀이공원에 있는 롤러코스터를 타 본 적은 한 번도 없지만, 그걸 탄 기분이 지금과 비슷하리라고 추측할 수는 있었다.
그러나 롤러코스터는 기껏해야 몇백 미터에서 안전하게 내려오는 것이고, 지금은 구름 위에서 어떤 안전장치도 없이 바람에 휘말려서 추락한다는 사소한 부분만이 달랐다.
"볼 것도 없다. 눈 질끈 감기!"
위드는 다시 방어 스킬을 사용했다.
회오리바람이 살갗을 베고 지나가고, 얼마나 많은 광신도와 괴물 들을 집어삼켰는지 알 수 없는 대재앙이 계속 부딪친다.
몸만 부딪친다면 다행이지만 날아다니는 창과 검에 찔리고 베이고 꽂혔다.
끄으으으응!
저 멀리에서 날아와서 위드의 다리를 물고 늘어지는 괴물도 있었다.
악어처럼 입이 아주 길고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괴물은 어떻게든 살려고 주둥이를 열지 않았다.
퍼퍽!
그러나 결국 위드의 발길질을 맞고 아득하게 멀리 날아가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대재앙이 길기도 하구나.'
적들이 당할 때는 몰랐는데 자신이 휘말리게 되니 아주 길게 느껴졌다.
군대에 간 당사자는 그렇게도 시곗바늘이 안 움직이는데, 사회에 있는 친구들은 왜 이렇게 자주 휴가를 나오고 벌써 제대할 때가 되었느냐고 물어보는 것과 같은 이치!
'한참을 내려온 것 같은데. 지금쯤이면 이제 땅에 부딪칠 때가 되지 않았나?'
위드가 방어 스킬을 취소하면서 눈을 떠 보니 갈라진 땅이 보였다.
깊고 어두운 대지의 틈으로 정확히 떨어지고 있는 중이었다.
아찔하게 빠른 속도.
그리고 몸이 옆으로 계속 빙빙 돌았다.
"흐읍, 순간의 괴력!"
체력을 소모하더라도 막대한 힘을 발휘하는 스킬!
몸에 지독하게 걸려 있던 저주들은 그사이에 높은 저항력에 의해 5~6개를 남겨 놓고 모두 풀린 뒤였다.
'어디 한 놈만 걸려라.'
위드는 땅이 아니라 온 사방을 살피기 시작했다.
마침 길고 두꺼운 꼬리를 가진 괴물이 팔다리를 요동치면서 날아오고 있었다.
"통렬한 일격!"
꽤액!
바람에 휩쓸린 괴물은 생명력이 많이 떨어져 있었다.
그러다 거세게 얻어맞고 곧바로 사망했다.
위드는 그 반발력을 이용하여 추락하는 속도를 조금 줄였다.
'이 정도로는 안 돼. 몇 놈만 더.'
바람이 한 방향으로만 불어오는 것이 아니고 곡선으로 휘어지기 때문에 모든 곳을 철저히 살폈다.
날아오는 괴물, 광신도, 마차, 돌덩어리 할 것 없이 연속 공격!
위드의 공격은 빗나갈 때도 있었지만 적중할 때가 훨씬 더 많았다.
그 덕에 간신히 추락하는 속도와 방향을 조금 바꾸기는 했지만, 여전히 대지의 틈을 향해서 떨어지고 있었다.
이대로는 정확하게 땅속으로 빨려 들어가서 모든 게 끝나 버릴 상황!
'대재앙에 대해서 너무 방심했어.'
뒤늦은 후회를 해 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렇게 땅 근처까지 내려왔을 때, 위드는 갑자기 등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커헉!"
청동 거인이 날아와서 부딪친 것이다.
하지만 그 덕에 까마득하게 깊은 곳으로 빨려 들어가지 않고 대지의 틈에 생성된 절벽에 충돌했다.
- 충격으로 인해 생명력이 19,374 감소합니다.
생명력은 문제가 아니었고, 당장 다시 아래로 떨어질 판.
"살아야 돼!"
위드는 팔을 쭉 뻗어서 돌출된 바위들을 붙잡았다.
푸스스슥.
야만 전사의 몸무게를 감당하지 못한 바위들은 두부처럼 으스러졌다.
그렇게 수십 미터를 쭉 내려오닫가 간신히 정지했다.
"사, 살았다."
위드는 겨우 한숨을 돌렸다.
지금까지 진행한 조각술 최후의 비기 퀘스트가 그대로 날아갈 버릴 뻔한 순간이었다.
위쪽을 쳐다보니 대지의 벌어진 틈에서는 광신도와 괴물 들이 계속 떨어지고 있었다.
바람이 얼마나 부는 지 그 소리가 시끄럽게 울렸다.
"시원하게도 죽는군. 뭐, 나로서는 잘된 일이기는 하지만."
위드는 절벽을 기어서 올라갔다.
다시 바람에 휘말리고 싶지는 않으니 지상으로 올라가진 않을 속셈이었다.
10미터 정도 더 낮은 곳에서 휴식을 취하면 되지 않겠는가.
- 대지의 여신 미네의 축복이 함께합니다.
땅이 전해 주는 기운으로 체력과 생명력을 회복합니다.
편안하게 벽에 손을 대고 있으니 체력과 생명력도 빨리 보충되었다.
적진의 한복판에서도 당당할 수 있었던 것은 맷집과 더불어서 이러한 회복력을 믿었기 때문이다.
"몇만 명 정도는 피해를 입었겠지? 혼란스러운 와중에 마녀들과 사제들이 많이 죽어 주면 좋을 텐데."
대략 앞으로 있을 일을 머릿속으로 정리하면서 대재앙이 그치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다가 불현듯 드는 생각.
'유성 소환은 어떻게 되었지?'
이곳에서 벌어지는 일 중에서 대재앙이 예고편이라면, 유성 소환은 그야말로 메인이벤트.
만약 엉뚱한 장소로 낙하하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적중한다면 측정이 불가능할 정도로 강렬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그 위력이야말로 대대대대대대대대재앙 수준!
'대재앙이 벌어지고 나서 겨우 살아남았다고 안도하는데 유성이 떨어진다면 정말 날벼락이겠지. 엠비뉴의 군대는 폭삭 망할 거야.'
하지만 위드도 회심의 미소만 짓고 있을 수는 없었다.
유성이 어디로 어떻게 떨어질지를 누가 알겠는가!
들모레 요새 위나 사막 군단의 머리 위로 떨어져서 그냥 다 전멸하지 말란 법도 없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이 조금씩 줄어들고, 바람도 약간이나마 진정이 되는가 싶었다.
그런데 하늘이 갑자기 붉게 타오르는 듯이 빛났다.
먹구름은 뜨거운 태양에 녹아 버리는 안개처럼 힘없이 흩어졌다.
"설마 이것이 유성 소환?"
위드는 고개가 꺾어져라 위를 올려다봤다.
갑자기 밝아진 하늘에 작은 돌멩이가 있었다.
"저게 유성이라면 좀 작은데, 마법 스크롤은 성공했지만 위력이야 뭐 거의 불량품 수준에 가까운 것인가?"
실망감이 가슴을 쳤다.
하지만 그 작던 돌멩이는 잠깐 사이에 무서운 속도로 커졌다.
처음 봤을 때는 고작해야 손가락 반마디도 안 되었던 것이 금방 손바닥 수준으로 넓어진 것이다.
구체적으로 크기가 가늠이 되지 않는 것으로 보아서 아직도 어마어마한 거리가 남아 있는 것 같은데, 날아올수록 기하급수적으로 확대되고 있었다.
위드의 본능이 마구 경고를 발했다.
'이거 장난이 아냐. 저건 스치기만 해도 사망이 아니라, 흔적도 안 남고 죽겠다.'
온몸의 솜털까지 곤두설 정도의 위기감.
그럼에도 불구하고 섣불리 움직일 수는 없었다.
아직 대재앙이 끝난 것도 아니며 유성이 어디로 추락하게 될지도 알 수 없다는 점 때문이었다.
'딴 데로 가라. 가 버려라.'
위드의 간절한 바람을 무시한 채로 불과 몇 초 사이에 유성의 크기는 갈수록 늘어 갔다.
이럴 때일수록 냉정해져야 했다.
'다시 천천히 사실관계로부터 확인해 보자. 저게 계속 커지고 있다는 점은 가까워지고 있다는 의미지. 유성이 땅으로 추락하는 건 당연한 거니까. 그리고 거의 정확히 내 머리 위에서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지를 않는데, 그 의미는?'
길게 생각해 볼 것도 없이 바로 정확하게 이곳으로 떨어지고 있다는 뜻!
위드를 겨냥하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이 지역 전체가 범위에 들어 있다고 봐야 옳았다.
위드가 있는 장소는 엠비뉴의 군대의 중심부이니 유성 소환이 제대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기뻐하는 것도 잠시.
살지 못하면 그거야말로 최악의 경우가 아닌가.
행운은 항상 비껴가고 마는데 불행은 언제나 정확하게 다가왔다.
"어떻게든 피해야 되겠군."
위드는 주변을 살펴보았다.
대지의 깊은 틈새 안이라고 해도 전혀 안전할 것 같지 않다.
유성 소환의 파괴력이라면 이 부근 전체를 초토화시켜 버리기에 충분하지 않겠는가.
점점 빠르게 커져만 가는 유성은 차분히 생각할 시간적 여유도 주지 않는다.
"이판사판이야."
위드는 대지의 틈을 박차고 뛰어올라서 밖으로 나왔다.
비와 회오리는 여전하였고, 땅은 갈라져서 흔들리면서 춤을 추고 있었다.
그래도 이제 대재앙의 위력은 많이 약해지고 점점 사라져 가고 있는 중이다.
위드는 이미 머리 위가 뜨거워짐을 느낄 수 있었다.
하늘에서 불타오르는 거대한 운석이 직접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하는 것이다.
다른 그 어떤 방법도 없는 상태.
"이판사판이야. 바람의 질주!"
위드는 앞을 향해서 무작정 달렸다.
야만 전사의 다리가 긴 편이고 힘이 워낙에 좋기에 빠른 속력을 낼 수가 있었다.
그보다도 더 다행인 점은, 엠비뉴 교단 측에서도 방해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유성을 본 모든 이들이 도망치려고 하였기 때문이다.
★★★★★★★★★★★★★★★★★★★★★★★★★★
전일과 전이.
사막 군단을 지휘하는 조각 생명체들은 멀리 떨어진 언덕 위에서 전투를 지켜보고 있었다.
"과연 대제시로군."
위드에 대하여는, 어쨌든 감탄밖에는 나오지 않는 월등한 무력이다.
그가 들모레 요새로 들어갔다가 야만 전사로 변해서 나오는 것도 다 알아보았다.
위드가 불가사의한 조각술을 펼치면서 싸우는 것을 충분히 많이 겪어 봐서였다.
그리고 약속한 대로 대재앙이 일어났다.
사막 군단은 대재앙이 끝날 무렵에 돌격하기 위하여 대기중이었다.
전투 노예들도 준비를 갖추고, 코끼리 부대와 뱀파이어 부대들까지 싸움을 개시하기 위하여 전열을 갖췄다.
사막 군단이 대륙을 휩쓸 정도라고는 해도 엠비뉴의 군대에 그냥 부딪쳐서는 승산이 낮다.
위드가 휘저어 주고, 들모레 요새로 일부를 끌어들인다.
대재앙까지 일으켜서 그들을 괴롭혀 놓은 후에 몰아치겠다는 계획!
"돌격 준비를 갖춰라. 기병들은 모두 말과 낙타에 타라."
그런데 저 하늘이 붉게 물든 이후로 출동은 보류하기로 했다.
"퇴각하라!"
오히려 전장에서 더욱 멀리 떨어졌다.
조각 생명체들이 보기에도 어마어마한 유성이 위드와 엠비뉴 교단이 있는 장소로 향하였던 것이다.
위드를 구하기 위하여 가는 것은 무의미했기에 전력을 보존하는 쪽을 택했다.
그리고 엠비뉴의 군대 진영에서 일어난 대폭발!
태양을 직접 보는 것처럼 눈이 먼저 부시고, 그 이후에는 돌과 나무, 모래가 밀어닥쳤다.
몸이 절로 뒤로 밀려날 정도로 바람도 강하게 불어왔다.
전투 노예들에게 다소의 피해가 있었지만 체력이 약한 몇백 명이 죽었을 뿐 심한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대제께서는 생존하셨는가?"
"모릅니다. 보이지 않습니다."
위드의 생사에 대하여 확인하기도 전에 하늘이 다시 붉게 물들었다.
전삼이 손가락을 들어 하늘을 가리켰다.
"또 옵니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유성들.
놀랍게도 유성 소환의 마법은 단 하나만 불러오는 것이 아니라 수십 개의 유성을 낙하시키는 것이었다.
폭발로 인한 먼지구름이 일어난 곳으로, 불타오르는 유성들이 긴 꼬리를 이어 가면서 차례대로 내리꽂힌다.
대지가 놀라서 펄쩍펄쩍 뛰고 있었다.
땅이 아이스크림처럼 깊게 파이고 박살 나는 광경을 여실히 볼 수 있었다.
이윽고 전일이가 말했다.
"대제께서는 편안히 가셨을까?"
전이가 확신을 갖고 대답했다.
"고통은 없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