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달빛조각사 37권 : 5) 위드의 최후 (243/520)

5) 위드의 최후

위드는 첫 번째 유성이 땅에 떨어지기 10여 초 전부터 등줄기가 오싹했다.

'이건 엄살이 아니라 정말 죽겠다.'

방어력을 높여 놓더라도 의미가 없을 정도의 위력.

유성 소환은 마법의 궁극 공격이라고 칭하기에 충분했다.

도무지 비교할 것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도 강한 공격 마법!

최소한 세 가지의 마법 분야에서 거의 마스터에 근접한 마법사만이 발휘할 수 있는 것이 유성 소환이다.

정말 아무나 쓸 수 없는 마법인 것이다.

더구나 개인을 상대로는 발동 시간이 오래 걸리고 정확도가 낮아서 의미가 없는 마법이고, 전투에서 사용하기에도 부담스러운 수준이었다.

다행히 적군에게 떨어지면 좋지만, 아군에게 떨어지지 말란 법이 어디 있겠는가.

위드는 대충 어떻게든 되리라는 생각에 막 스킬을 사용한 감이 있었다.

유성이 사막 군단으로 향하더라도 그들은 전투에 돌입해 있는 상태가 아니기에 말과 낙타를 타고 일찍부터 도망쳐서 피해를 줄일 것이다.

20만이 넘는 전투 노예들이야 죽거나 살거나 어차피 큰 영향을 미치지는 못할 터.

그래서 유성 소환을 대충 저질러 버렸는데 그것이 정확하게 자신이 있는 지역으로 떨어지게 될 건 또 뭐란 말인가.

"비켜라!"

위드는 그냥 마구 달리는 것 외에는 할 게 없었다.

괴물들과 마물들까지 놀라서 다 같이 달아났다.

"오오, 엠비뉴 신이시여! 드디어 이 땅을 파괴해 주시는 것이옵니까."

"저를 어서 죽여 주소서. 제 소원은 저의 죽음입니다!"

광신도들은, 피하는 자들도 있었지만 땅에 엎드려서 감사의 기도를 올리기도 했다.

"엠비뉴의 은총을 이렇게… 꽥!"

위드는 그들을 밟고 지나갔다.

유성이 어디에 있는지 볼 겨를도 없었지만 그리 먼 곳은 아니라는 느낌이 계속 들었다.

등 뒤가 너무나도 뜨겁게 느껴진다.

'앞으로 5~6초 정도.'

유성이 떨어지는 속도로 대충 예상해서 시간을 쟀다.

정확한 건 아니었고, 불과 0.1초 차이로도 삶과 죽음의 갈림길을 오가게 되리라.

불타오르는 유성이 지상으로 낙하하면서 비와 회오리바람은 모두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위드는 대지의 틈을 빠져나와서 최소한 1킬로미터 정도는 그대로 달렸다.

어쩌다 도망치는 방향이 같은 엠비뉴의 사제들을 몇 명 보기도 했지만 그들을 죽일 시간도 없다.

너무나도 밝은 빛에 시야 전체가 환해지고 있었다.

그 의미는 충돌이 머지않았다는 뜻!

어쨌든 확실한 건, 앞쪽이 아니라 뒤쪽으로 떨어진다.

얼마나 먼 거리에서 유성이 떨어지게 될지, 그 파괴력이 어떻게 되는지는 겪어 보면 알 수 있으리라.

"아이고, 죽겠다. 이번에 살아나면 정말 남들 잘 도우면서 착하게 살아야지."

문득 근처에 또 다른 대지의 틈이 있는 것이 보였다.

그렇지만 너무 좁아서 지금의 몸으로는 도저히 들어갈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조각 변신술 해제!"

조각 변신술이 풀리면 야만 전사의 덩치가 원래대로 작아져 갔다.

대지의 틈을 향하여 몸을 날리고 뒹굴면서 갑옷과 방어구들까지 전부 착용.

"눈 질끈 감기, 절대 방어! 그리고 또 쓸 만한 게 뭐가 있나. 강철 피부!"

사막에서 성장하는 퀘스트의 초창기에 배워서 몇 번 쓰고 효과가 미미해서 사용하지 않던 방어 스킬까지 사용했다.

생존을 위한 본능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를 보여 주는 광경이었다.

그리고 유성이 지면에 충돌했다.

맨 처음 위드가 빠져 있던 대지의 틈에서 그다지 떨어지지 않은 위치.

유성이 땅에 떨어지면서 거대한 지진이 일어났다.

파편들이 주변을 휩쓸었으며, 화염 폭풍도 커다랗게 일어났다.

그 직후에는 엄청난 충격파가 해일처럼 지상을 휩쓸고 지나갔다.

 - 영혼이 이탈할 정도의 거센 충격으로 인하여 생명력이 극심하게 감소합니다.

   절대 방어가 굳건한 의지로 정신을 잃어버리는 것을 막습니다.

   전체 생명력 중에서 48%를 한꺼번에 잃어버렸습니다.

   육체에 큰 부상을 입어 전투 스킬들의 효과가 현저히 낮아집니다.

  다리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었습니다. 고통으로 인해 절뚝거리게 됩니다.

평소에 보려고 기를 써도 보기 어려운 메시지 창이 나왔다.

초보자들이 겁도 없이 고레벨 몬스터에 덤벼들었을 때에나 나오는 메시지.

위드의 생명력도 354,000이 한꺼번에 줄어 버렸다.

그동안 전투와 대재앙에 휩쓸렸던 탓에 마지막 남은 생명력은 38,000 정도.

대지의 여신 미네의 축복으로 생명력을 보충하지 않았더라면 정말 위험할 뻔했다.

위드는 대지의 틈 속에서 한숨을 돌렸다.

"겨우 살아난 것 같군. 이건 다 내가 운이 없었던 탓이야. 더 열심히 다른 사람들을 착취하면서 살아가야지. 아르펜 왕국에 무사히 돌아가기만 해 봐라."

충격파가 휩쓸고 지나가고 난 이후에는 뜨거운 열풍이 불었다.

엄청난 화염이 대지를 덮고 있었다.

 - 불의 기운을 통해 생명력을 보충합니다.

 - 대지의 여신 미네의 축복이 함께합니다.

  땅이 전해 주는 기운으로 체력과 생명력을 회복합니다.

 생명력이 20% 이하로 감소한 상태이기에 회복 속도가 4배로 높아집니다.

위드는 대지의 여신 미네의 축복에 넘실거리는 화염 각인 스킬도 다시 발휘하면서 체력과 생명력을 다시 채웠다.

지금 적들에게 발각된다면 정말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는 상황!

'유성 소환으로 놈들도 많이 죽어서 반격은 꿈도 못 꾸겠지. 의외로 정말 엄청난 공격이었어. 대충 적들의 외곽이라도 무너뜨려 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확실하게 쓸어버렸군.'

위드조차도 즉사할 뻔했으니 기대했던 것의 10배 이상의 수확이라고 봐야 하리라.

'아, 아쉽다. 그런 마법 스크롤을 아껴 놨다가 헤르메스 길드 놈들에게 썼어야 하는데.'

좋아한 것도 잠시이고, 마법 스크롤을 소모한 것이 아까워졌다.

아껴 놓으면 다 재산인데 너무 쉽게 사용해 버린 것 아닌가.

'그래도 퀘스트를 마치는 것도 중요하니까.'

생명력이 최대치의 6%까지 회복되고 난 후 위드는 대지의 틈 위로 고개만 내밀었다.

아직 몸 상태가 정상은 아니지만 적들을 살짝 살피기만 하려는 생각에서였다.

"엠비뉴의 우월한 보호는 모든 파괴에서 우리를 구해 준다."

"파괴! 파괴! 파괴!"

유성 낙하의 충격에 의해 인근의 엠비뉴의 군대가 싹 쓸려 갔을 것이라는 예상은 빗나갔다.

징벌의 사제를 비롯하여 고위 사제들은 특수한 보호 마법을 펼쳤다.

 - 파괴신의 신성한 믿음.

보호막 안에 있는 광신도들과 괴물들은 일시적으로나마 모든 공격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있었다.

여러 말이 필요 없이 사기적인 스킬!

주문 외우는 시간이 길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징벌의 사제들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보호 마법을 완성시켰다.

그 결과 사제들은 꽤 많이 살아남았지만, 유성 낙하로 인하여 엠비뉴의 군대가 입은 전체적인 피해는 참혹한 수준이었다.

유성이 군대의 중심부를 정확히 강타하면서 많은 고급 전력이 폭발과 충격에 의해 즉시 먼지로 변하여 사라졌다.

유성 낙하의 힘이 너무나도 큰 나머지, 지형 자체가 부서질 정도의 충격에 의하여 괴물들과 극악의 기사들 중에서 많은 부대가 전멸했다.

설혹 살아남았더라도 많은 이들이 전투 불능에 빠지고 말았다.

위드가 그러했듯 대재앙에 휘말리고 난 직후에 일어난 유성 낙하라서 더욱 피하지 못하고 휩쓸려 나갔다.

사제들의 보호 마법이 없었더라면 엠비뉴의 군대의 핵심 전력도 몰살을 면치 못했으리라.

특히 지옥의 문을 통과해서 나왔던 마물들은 삼분의 일도 남지 못하고 깔끔하게 숫자가 감소했다.

문이 열려 있는 만큼 마물들이 계속 나올 수야 있겠지만 유성 소환에 의하여 멀쩡한 놈들이 몇 없을 테니 당장은 정리가 된 것이다.

위드와 스무 걸음 정도로 제법 가까운 곳에도 보호막이 펼쳐져 있었다.

극악의 기사들 그리고 괴물들과 눈이 마주쳤다.

"제물! 그곳에 숨어 있었구나!"

"아, 안녕?"

위드는 두더지처럼 대지의 틈으로 다시 들어가려고 했다.

생명력이 없으니 바로 전투를 재개하기에는 부담감이 있었다.

그런데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극악의 기사들이나 괴물들이 움직이지 않는 것에 이상함이 느껴졌다.

'저놈들이 왜 그러지?'

눈치를 보아하니 보호 마법의 특성상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것 같았다.

'공격도 끝났으니 신성 마법을 해제하면 될 텐데. 의문이 드는군.'

대재앙도 그 이상의 파괴를 가져온 유성 낙하에 의해서 사라졌다.

여전히 곳곳이 불바다이고 땅이 녹아서 용암처럼 흘러내리고 있긴 하다.

그렇더라도 신성 마법을 풀고 조심해서 돌아다니면 될 텐데 가만히 있는 것이 이상할 따름.

위드의 감각이나 본능은 칼날처럼 날이 서 있었다.

'이놈들이 단체로 미쳤을 리가 없어.'

엠비뉴의 사제들이 집단적으로 멍청한 행동을 할 이유도 없으리라.

'설마…….'

혹시나 해서 하늘을 쳐다보니 어느새 또 붉어져 있었다.

그리고 빼곡하게 들어찬 수많은 작은 돌멩이의 형상들!

그것들이 무지막지하게 빠른 속도로 다가오면서 커지고 있었다.

"1개가 끝이 아니었구나!"

같은 유성 소환 마법을 사용하더라도 효력은 그때그때 다르다.

1개의 중형 유성이 떨어지는 경우도 있었으며, 어쩔 때는 2개가 떨어진다.

소환하는 데에는 마법사의 마력도 중요하지만 운에 좌우되는 면이 큰 것이다.

지금은 마법이 최고조의 위력을 발휘하면서 아예 유성우가 되어서 떨어지고 있는 것.

가장 큰 것이 먼저 일차로 떨어졌지만 수십 개의 유성들이 그 뒤를 따랐다.

위드의 머릿속은 막 윈도우를 설치한 컴퓨터처럼 빨리 돌아갔다. 그리고 계산 완료!

상황 암울.

견적 안 나옴.

유성 소환 마법 스크롤은 어쩌면 자신을 죽이기 위한 미끼 였을지도.

이건 다 대마법사 로드릿 탓.

결론은 역시 남 탓이 최고!

"정말 살아남기가 어렵겠구나."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위드는 대지의 틈에서 기어 나와서 떨어지는 유성으로부터 최대한 멀어지기 위하여 사막 군단이 대기하기로 한 방향을 향하여 다리를 바닥에 끌면서 걸었다.

생명력이 지금은 6% 남짓밖에 남아 있지 않아서 아까와 비슷한 충격이면 제대로 사망이다.

'조금 전처럼 근처에 떨어지면 무조건 죽음이다.'

신성 마법을 펼치고 있는 엠비뉴의 군대는 위드를 막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저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온 사방에 사제들의 보호를 받지 못한 괴물들이 쓰레기 매립장에서 보던 것처럼 널브러져 있었다.

엠비뉴의 대군을 직격해 버린 유성의 충돌.

그 피해를 환산하는 것도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많이도 죽었군. 살아 있는 놈들도 툭 건드리기만 해도 가버릴 텐데.'

위드는 초등학교 때 친구 우유 뺏어 먹던 힘까지 다해서 걸었다.

가능하면 유성의 낙하로 인해서 화염이 일어나고 있는 지역을 택해서 일부로 그 위를 절뚝거리면서 불편하게 걸었다.

사막의 대제, 세계를 구하는 용사로서 불의 기운이 있을수록 생명력의 회복은 더 빠르기 때문이다.

물론 사막의 대제로서 지켜 왔던 명예나 위엄, 겉모습에 대해서는 포기를 해야 했다.

"모두 기뻐하라. 엠비뉴 신께서 직접 저자를 척살할 것이다."

"하늘에서 엠비뉴의 힘이 내려오고 있도다."

엠비뉴의 추종자들은 기뻐하고 있었다.

당장 위험한 건 하늘에서 떨어지는 유성이고, 그것을 불러온 것도 자기 자신이었기에 위드가 누구를 원망할 처지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환호하는 엠비뉴의 하수인들이 괜히 얄밉기 짝이 없었다.

하늘을 보니 이차포 3개의 유성이 한꺼번에 낙하 중!

막상 지상에 떨어지는 방향은 상당히 갈라져서 제각각이었다.

위드가 있는 위치를 기준으로 1개는 한참 뒤쪽에, 하나는 신성한 은이 흐르는 강이 있는 위치로, 다른 하나는 꽤 가까운 오른쪽이었다.

엠비뉴의 대군은 들모레 요새를 공격하기 위해서도 많이 분산되어 있었다.

신성한 은이 흐르는 강으로 떨어지는 유성은 엠비뉴의 군대를 다시 한 번 정확하게 타격하리라.

"어디로 피해야 하지?"

불타는 유성이 이미 눈에 선명하게 보일 정도였기에 머뭇거릴 시간조차 없었다.

"에라, 모르겠다."

위드는 대지의 틈 속으로 몸을 던졌다.

그리고 한참을 낙하하다가 절벽에 달라붙었다.

잠시 후 대지가 울리는 엄청난 충격이 몸으로 전달되었다.

"커헉!"

 - 거센 충격을 연속으로 받았습니다.

   생명력이 48,973 감소합니다.

   절대 방어가 여진으로 인한 피해를 막아 냅니다.

  현재 걸려 있는 '잔혹함에 울부짖게 하는 고통' 저주가 생명력의

   최대치를 낮추고 맷집을 약화시킵니다.

   전체 생명력의 1.6%가 남아 있습니다.

   내구도의 감소로 갑옷의 방어력이 줄어들었습니다.

   다리 부상이 심해집니다.

   출혈의 피해가 있습니다. 1초마다 974의 생명력이 빠져나갑니다.

"사, 살았다. 말도 안 돼."

절뚝거리면서라도 걸으면서 불의 기운을 흡수하지 않았다면 확실히 사망을 하고 말았을 일.

위드는 가파른 절벽을 붙잡고 고개를 올려서 하늘을 쳐다 봤다.

하늘에 6개의 유성들이 보이고 있다.

유성 소환은 최고의 궁극 마법이었지만 벌써부터 지긋지긋해지는 느낌이었다.

이번에는 다행인 점은, 4개는 완전히 멀리 떨어진 다른 방향으로 갔다.

하늘을 가로질러서 베이너 왕국의 수도가 있는 위치로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2개는 위드가 있는 방향으로 정면에서 다가왔다.

정확하게 어디로 낙하할지는 끝까지 지켜보지 않는 한 알 수 없지만 워낙 넓은 지역에 영향을 미치기에 그 피해는 고스란히 입게 되리라.

"가자."

위드는 대지의 틈을 올라와서 다시 걸었다.

이번에는 첫 번째로 유성이 떨어졌던 장소를 향했다.

죽더라도 조금 더 걸어야 하지 않겠는가.

어마어마한 폭발이 일어나고 있는 위치로 가야만 당장 불의 기운을 흡수해서 살 수 있다.

엠비뉴의 군대가 겪은 피해 역시 어마어마할 테니 어떻게든 살아남기만 한다면 전쟁에 승리할 가능성이 훨씬 높아진다.

단지 자기 자신의 생존 가능성이 별로 없다는 점이 제일 큰 문제였지만.

 - 생명력이 계속 감소하고 있습니다.

  저주 '살벌한 유산'이 생명력의 감소 속도를 19.7% 늘립니다.

  저주 '흑색 피부병'이 맷집을 계속 약화시키고 있습니다.

마법 저항에 대한 내성이 약해져서 저주 '어두운 환각'이 시야를 조금씩 흩트립니다.

위드의 부상은 너무 심각하여 빨리 낫지도 않았다.

몇 가지 끈질기게 걸려 있는 저주들은 사라지지 않고 계속 육체를 좀먹었다.

튼튼한 몸과 체력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나마 죽지 않고 걸을 수가 있었다.

엠비뉴의 광신도는 '고통스러운 죽음을 기다려라.'는 내용의 노래를 부르며 축하해 주었다.

지금은 암흑 기사나 괴물 들이 보호막에서 나와서 덤벼들더라도 다리 부상으로 움직이기가 어려워서 싸우기가 힘들다.

그리고 위드에게 진정한 절망이 찾아왔다.

"더 이상 갈 수가 없겠어."

대재앙과 유성이 땅에 떨어진 충격으로 지형이 많이 바뀌어 있었다.

지충이 흔들리면서 대지의 틈은 막히기도 하고, 오히려 더욱 크게 벌어지기도 했다.

위드가 유성을 피하고 생명력을 보충할 수 있는 화염 지대로 가기 위해서는 폭이 20미터는 족히 되는 대지의 틈을 건너가야 했다.

끝없는 바닥으로 내려가서 맞은편으로 건너가기는 불가능하고, 멀리 돌아가기에는 도저히 시간이 되지 않는다.

"이제 끝이야."

출혈의 피해는 계속되고 있었다.

곧 땅에 떨어질 유성의 충격으로부터 최대한 멀리 도망쳐야 하고, 생명력도 보충이 필요했다.

위드는 하늘을 쳐다보고 암울한 눈빛을 했다.

거대해진 불타는 유성이 눈에 선명하게 보였다.

"퀘스트 실패까지, 그리고 내 목숨이 사라지기까지 30초도 남지 않았겠군."

사람들은 최후의 순간에 닥치면 자신이 경험한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고 한다.

위드도 어느 정도는 그랬다.

노들레와 힐데른의 퀘스트를 진행하고 바다와 사막에서 서윤과 함께했던 일들.

노가다로 성장을 하고 사막 군단을 키워서 대륙을 휩쓸어 갔던 시간들이 이제는 추억으로만 남게 되리라.

"이 정도면 내 죽음을 맞이하기에도 괜찮은 무대로군. 쓸쓸하지는 않겠어."

위드는 담담하게 죽음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얼마 남지도 않은 생명으로는 유성의 충격에서 살아남지 못한다.

설혹 그 위험으로부터 무사하더라도, 눈을 번뜩이며 자신이 죽기만을 기다리는 엠비뉴의 군대가 가득한 중심부에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죽음이 되겠군."

위드는 땅에 드러누워서 하늘을 보았다.

기왕 죽는 것, 유성의 낙하를 지켜보면서 멋지게 죽고 싶었다.

하늘은 온통 붉게 물들고, 크고 작은 수십 개의 유성들이 긴 꼬리를 드러내며 지상을 향하여 떨어지고 있다.

이런 장관은 어디서도 구경하기 힘들 것이다.

위드의 머리 위에 축축하고 벌름거리는 무언가의 콧구멍이 닿았다.

"푸흥!"

조금은 참기 힘든 퀴퀴한 냄새.

"쌍봉아, 저리 가."

"푸흐흐흥!"

"쌍봉아, 냄새 난다니까. 넌 어째서 그렇게 씻겨도 계속 냄새가……. 쌍봉이가 왜 여기 있지?"

위드가 벌떡 몸을 일으켜 보니 정말로 거짓말처럼 쌍봉낙타가 주등이를 오물거리면서 서 있는 것이 아닌가.

절망으로 가득하던 눈이 다시 희망으로 불타올랐다.

★★★★★★★★★★★★★★★★★★★★★★★★★★

쌍봉낙타는 위드의 명령에 따라 들모레 요새에서 조각 은신술을 펼치고 있었다.

'음, 열심히들 싸우는군.'

요새의 공방전을 지켜보는 것도 재미가 있었지만, 애틋함을 품은 그의 시선은 저 멀리에 있는 위드에게로 향해 있었다.

그는 사막에서부터 전투를 따라다니면서 한몫 거들었다.

전일, 전이와 같은 조각 생명체들이 각자 전투를 수행한다면 쌍봉낙타는 위드와 한 몸이 되어 움직였다.

몬스터들과 함께 싸우고, 피하고, 뒷발로 걷처찬다.

드넓은 사막에서 물의 냄새와 별을 살펴서 헤매는 일이 없이 길을 찾아 주었다.

"더 빨리! 더 빠르게!"

시간을 아끼려고 항상 목적지까지 최단시간에 도착하기를 원하는 위드를 위해서 경주를 하듯이 쉬지 않고 달렸다.

"아주 잘했어."

쌍봉낙타는 칭찬을 들을 때가 참 좋았다.

그래 봐야 당근 2~3개를 더 먹을 수 있을 뿐이고, 감정 표현이 쉽지 않은 얼굴은 항상 심드렁하니 무언가를 질겅거리는 듯 보일 뿐이지만.

그러나 위드가 사막의 대제로 성장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그를 자신의 목숨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저건 뭐지?'

어두웠던 하늘이 붉게 밝아질 때부터 쌍봉낙타는 특유의 기감으로 위험을 감지했다.

'주인님이 위험하다.'

유성이 떨어지는 것을 알면서도 조각 은신술을 해제하고 위드가 있는 방향으로 날쌔게 뛰었다.

쌍봉낙타는 괴물들과 암흑 기사의 표적이 되었다.

"엠비뉴께서 특별한 자비를 베풀고 계시다. 낙타들은 모두 구워 먹으라는 말씀이 있었다."

"낙타를 붙잡아서 피를 빨아먹자!"

쌍봉낙타는 껑충껑충 뛰면서 엠비뉴의 군대를 돌파했다.

사방에 깔려 있는 적들을 급하게 지나치면서 어쩔 수 없는 상처도 입고, 몇 가지 저주도 걸렸다.

하지만 대재앙과 유성 낙하의 충격으로 초토화가 되어 버린 땅을 무사히 지나, 주인을 찾기 위하여 돌아다녔다.

그리고 마침내 위드를 발견하고, 몸은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척 코를 비벼 댄 것이다.

★★★★★★★★★★★★★★★★★★★★★★★★★★

"음, 내가 싸움 구경하면서 기다리라고 했더니 심심해서 여기까지 온 모양이구나."

"푸흥!"

"아무튼 잘됐다."

위드는 쌍봉낙타의 등에 몸을 실었다.

"최대한 빨리 가자!"

쌍봉낙타는 두세 걸음 뒤로 물러나더니 20여 미터나 되는 대지의 틈을 단번에 뛰어넘었다.

쌍봉낙타를 타고 있으니 그렇게 멀어 보이던 장애물도 하찮게 여겨졌다.

"더 빨리! 우리가 지나왔던 사막의 모래처럼 달려!"

쌍봉낙타도 유성이 떨어지는 것을 알고 있었다.

불과 10여 초도 남지 않았으리라.

위드를 태운 낙타는 바람을 추월하는 무서운 속도로 앞을 향하여 내달렸다.

대지의 틈, 솟아나온 바위, 엠비뉴의 군대를 뛰어넘고, 뚫고 지나갔다.

뜨거운 화염이 일어나고 있는 장소를 통과하면서는 위드를 찾느라 지친 쌍봉낙타의 체력이 보충되기도 했다.

위드도 생명력을 채우는 것은 마찬가지!

위드는 계속 달려 나가다가 낙타 위에서 몸을 돌려서 뒤를 보았다.

긴 꼬리를 달고 내려온 유성이 엠비뉴의 군대를 향하여 막 떨어지고 있었다.

"저기로 들어가!"

"푸흐흥!"

위드를 태운 낙타는 화염 지대를 지나 첫 유성이 떨어졌던 흔적에 도착했다.

유성은 대지를 파헤치며 어마어마한 흔적을 남겨 놓았다.

사방 400미터 정도에 걸쳐서 깊은 구덩이가 형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주변은 온통 불바다!

위드와 낙타가 막 유성의 흔적으로 들어가자마자 대지가 흔들리며 충격이 몸을 뒤흔들었다.

그다음 유성들이 땅에 떨어지고 있는 것이었다.

 - 회복하기 어려운 충격을 받았습니다.

   대지의 요동으로 인해 생명력이 극심하게 감소합니다.

   쌍봉낙타가 피해의 일부를 흡수해 줍니다.

   15,838의 생명력을 잃어버렸습니다.

   절대 방어가 눈부신 투지로 추가적인 피해를 막아 냅니다.

   온몸에 걸쳐 위급한 부상을 입었습니다.

   출혈 피해가 더욱 심해집니다.

   걸을 수 없습니다.

   최대 생명력이 앞으로 이틀간 14% 줄어들게 될 것입니다.

살아도 산 게 아닌 상태!

위드는 거의 시체라고 불리더라도 어쩔 수 없는 상태였지만 생명은 부지하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쌍봉낙타도 피로 누적과 절절한 부상으로 인해서 힘없이 옆으로 쓰러졌다.

그럼에도 만족스러워하는 얼굴 표정은, 위드의 목숨을 구했기 때문.

쌍봉낙타는 임무를 다했다는 생각에 죽음을 기다리기 위해 눈을 감았다.

생명력은 13% 정도가 남았지만 오른쪽 앞발과 왼쪽 뒷다리를 다쳐서 걸을 수가 없게 된 것이다.

낙타에게 더 이상 걷지 못하게 된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했다.

그나마 한 번이라도 위드의 목숨을 구했으니 여한이 없었다.

"이대로 끝낼 수는 없어."

위드는 아까까지만 해도 삶을 포기했었다.

솔직히 도저히 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번도 살아났는데 두 번 살지 못하란 법도 없지. 인생은 그냥 얻어지는 게 없었던 거야."

불의 기운을 흡수하고, 대지의 여신 미네의 축복으로 생명력을 보충하기 위한 시도를 했다.

 - 온몸의 뼈가 서른한 군데 부서졌습니다.

  움직일 때마다 고통을 느낄 것이며 정상적인 행동이 불가능합니다.

   생명력의 회복을 더디게 만듭니다.

"식물인간 신세로군."

위드는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했다.

생명력을 회복하는 속도는 평상시에는 아주 뛰어났지만, 지금은 심각한 부상으로 죽지 않고 버티는 수준에 불과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엠비뉴의 군대도 유성의 낙하로 인해서 잠깐 동안은 움직이지 못한다.

"유성이 다 떨어지고 나면 날 죽이러 오겠지."

불과 몇 분 정도로, 시간 여유는 그저 아주 잠깐이었다.

그럼에도 왠지 살아날 것만 같은 기분.

위드가 실행한 막다른 쥐 계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환경에서도 살아남는 자신의 능력이었다.

대재앙과 유성 소환은 그 한계를 넘어서 위기를 초래했다.

엠비뉴의 군대가 강했던 이유 탓도 있지만, 약간의 자만심이 만들어 낸 결과이리라.

하지만 정작 스스로에 대한 의문도 들었다.

'내가 최선을 다했던 것일까.'

어떤 퀘스트도 발버둥을 치지 않았던 적이 없다.

무엇이든 뚝딱뚝딱 해치웠다기보다는, 적들을 파악하고 그에 맞춰서 주변에서 이용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총동원해서 대응을 해왔다.

오합지졸인 오크들과 다크 엘프들을 이끌고 불사의 군단을 물리치고, 빙설의 폭풍 속에서 북부를 탐험하여 본 드래곤을 해치우던 카리스마는 대체 어디로 갔단 말인가.

사막의 대제로서 크게 성장하고 나서 적들에게 당당히 맞섰다.

물론 마폰 왕국과 베이너 왕국의 입장에서의 반발의 여지가 상당히 크겠지만, 최소한 위드의 관점에서는 야비하지 않고 정직하고 용감하게 싸웠다고 생각했다.

그런 정직함은 위드의 방식이 아니었다.

"내가 잘못해 왔군."

위드의 머리가 냉철하게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다.

상황들을 분석하면서 빠뜨린 것들이 없는지를 찾았다.

어떤 유리한 기회라도 있다면 무조건 이용하여 살아남으리라.

그때 뒤통수를 치는 듯한 깨달음!

"이걸 남겨 두고 있었지."

위드가 품에서 먹을 것을 꺼냈다.

불도마뱀 왕의 마나 심장.

불도마뱀 왕의 심장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쿵쿵 뛰고 있었다.

제대로 요리를 해서 먹으면 효과가 더 좋다기에 요리사들을 알아봤다.

하지만 어설프게 요리를 한다면 역효과가 일어날 수도 있기에 깨끗하게 포기!

지금까지 가지고만 있던 음식이다.

그렇지만 이런 위험한 때에는 보약이 될 수도 있으리라.

그렇지만 꼭 몸 상태가 좋아지란 법도 없으며, 오히려 더 악화될 수도 있다.

"뭐, 죽으면 없어질 텐데. 엄마가 예전에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좋다고 말씀하셨어."

심장에는 소금만 간단히 뿌렸다.

아직 살아 있는 느낌의 심장이라서 비위가 약간 거슬렸지만 충분히 참아 낼 수 있는 정도였다.

몸에만 좋다면 뱀이나 개구리, 곤충, 파리와 모기도 기꺼이 먹을 수 있었다.

"음, 왠지 곱창 맛과 조금 비슷한 것 같군. 고소하고 감칠맛이 나고. 살짝 구워서 고추장을 찍어 먹어도 맛있겠는데."

입안에 넣었더니 얼마 씹지도 않았는데 말 그대로 사르르르 녹았다.

 - 불도마뱀 왕의 마나 심장을 먹었습니다.

   마나의 최대치가 영구적으로 증가합니다.

   화염을 다루는 능력이 3% 높아집니다.

화염 압축 기술이 강화됩니다. 특정 스킬들의 파괴력과 사정거리에 영향을 주게 될 것입니다.

   화염에 대한 면역력이 생깁니다.

   뜨거운 곳에 있더라도 피해를 거의 입지 않을 것입니다.

   스킬 불의 세계가 사용 가능해졌습니다.

   체력이 대부분 회복되었습니다.

   불의 기운을 흡수하여 생명력이 일부 회복됩니다.

스킬 불의 세계 : 불도마뱀 왕의 마나 심장에는 고도로 농축된 화염의 마나가 잠들어 있습니다.

완전히 풀어지지 않은 이 마나를 매개체로 삼아서 정령계에 있는 불의 상급 정령들을 대거 불러와서 날뛰게 합니다.

불의 세계가 펼쳐지면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은 극히 드물 것입니다.

심장에 깃들어 있는 마나로 불의 세계를 3회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주일 이내에 연속으로 사용한다면 2회를 쓰고 화염의 마나는 사라질 것입니다.

6개월간 불의 세계를 한 번도 불러오지 않으면 마나의 최대치가 45,300까지 늘어나게 될 것입니다.

불의 세계를 사용할수록 훗날 얻을 수 있는 마나의 최대치가 감소합니다.

"불의 세계라!"

위드의 주변으로 갑자기 화염의 기운들이 미친 듯이 퍼졌다.

불의 신이 이 땅에 강림한 것처럼 화염이 넘쳐흐르며 발산되었다.

"과연 좋은 걸 먹으니 다르긴 해. 나이가 들수록 몸보신에 예민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지."

 - 대지의 여신 미네의 축복이 함께합니다.

   땅이 전해 주는 기운으로 체력과 생명력을 회복합니다.

 생명력이 20% 이하로 감소한 상태이기에 회복 속도가 4배로 높아집니다.

생명력도 다시 정상적으로 회복이 되기 시작했다.

위드의 현재 생명력은 5%.

마나 심장을 먹고 나서 보충된 것이 대략 30,000을 조금 넘는 정도였다.

하지만 아직 여러 부위에 부상이 있어서 전투는 어려운 상태.

 - 출혈이 멎었습니다.

거친 모래바람을 뚫고 살아온 강인한 신체는 다시 한 번 목숨의 위기를 극복해 냈습니다.

생명력의 회복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불의 기운으로부터도 생명력을 얻기에 몸이 더 활발하게 회복되고 있었다.

과거 사막에서 성장할 때 노들레의 퀘스트 막바지에, 위험 부담은 아주 높았지만 말살의 불도마뱀 왕을 사냥하지 않았었더라면 이러한 회복 수단도 얻지 못하였으리라.

역시 몬스터와 광신도 들은 때려잡아야 제맛!

"놈들이 오기 전에 가야겠어."

위드는 유성으로 깊게 파여 있는 구덩이에서 일어났다.

다리가 정상이 아니었지만 엠비뉴에서 추적자들이 오기 전에 멀리 떨어져야 하리라.

지옥의 마물들도 어찌 되었을지 궁금하기도 했다.

지금의 상태가 알려진다면 마물들도 실컷 덤비게 될 테니.

쌍봉낙타는 불길 속에서 따스함을 느끼며 조용히 옆으로 드러누워 있었다.

"어이, 쌍봉아!"

"푸흐흐흥!"

쌍봉낙타는 툴툴대면서 입술을 실룩였다.

아마도 큰 부상을 입은 자신은 내버려 두고 혼자 가라는 듯.

주인의 마지막 모습을 볼 수 없기에 애처롭게 눈도 뜨지 못했다.

"야, 자냐?"

"푸흥!"

"개념 없이 낮잠 자지 말고 어서 가자."

위드는 쌍봉낙타를 어깨에 들쳐 멨다.

더 부려 먹을 수 있는 조각 생명체를 그냥 놔두고 갈 수야 없지 않은가.

몸에 잔부상이 많고 생명력도 바닥 수준이지만 체력만큼은 건재하다.

위드는 쌍봉낙타를 짊어지고 사막 군단이 있는 장소를 향해서 걷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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