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달빛조각사 37권 : 7) 종착점 (245/520)

7) 종착점

위드의 눈빛은 아직 죽지 않고 살아 있었다.

잡초처럼, 밝힐수록 악착같이 자라나는 근성!

"어디 갈 데까지 가 보자. 뭐, 죽기밖에 더하겠어? 저들에게 처참하게 죽고 나서 퀘스트를 망치면 되는 거지. 어차피 인생이란 게 다 그런 거였잖아."

이판사판!

이번 퀘스트에 대해서 더 이상 승산을 깊게 따지지 않았다.

지옥의 문에 이어 불멸의 광신도 군대까지 나타났다.

그에 맞서 대재앙에, 유성 낙하까지도 시켰으니 이쯤 되면 나올 것은 다 나온 셈.

어려운 의뢰일수록 성공 가능성을 예측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

적당히 할 만하다고 느껴졌을 무렵 뒤통수를 거세게 얻어 맞는 것이 처음도 아니고, 인생에서는 부지기수로 벌어지는 일 아니던가.

단지 실낱같은 희망이 있다면, 잉그리그의 마법에 의해 엠비뉴의 대군이 한꺼번에 바로 다 되살아나는 건 아니라는 부분.

순차적으로 몇백 명 정도씩 부활을 하기 때문에 시간을 주지 않으면 된다.

"빨리 해치워 버리면 되겠군."

위드는 말과는 달리 다리를 절며 쌍봉낙타에게로 걸어갔다.

불의 세계를 펼쳐서 생명력을 흡수하고는 있었지만 마녀 페쳇과의 전투로 인하여 몸 상태가 좋지 않다.

걸려 있는 저주도 수십 가지에 달했으므로 말과는 달리 어서 빨리 도망쳐야 할 때!

쌍봉낙타가 길게 울었다.

"푸흐흐흥!"

머리까지 흔드는 것이, '쓸 만큼 써먹었으면 이젠 제발 날 놔두고 그냥 너 혼자 가라!'라는 의미가 분명했다.

"걱정 마라. 아무렴 널 놔두고 혼자 가겠냐?"

"푸흐흐흐흥!"

"무서워하지 마. 내가 있잖냐."

위드는 쌍봉낙타를 등에 짊어지고 다시 걸었다.

불의 정령들이 그들이 가는 길 앞에 있는 적들을 불태우면서 길을 열어 주었다.

그렇게 200~300미터쯤을 전진했을 무렵, 주위를 호위하고 있던 불의 정려들의 세력이 점점 약해졌다.

상급 불의 정령들이 불러온 자잘한 정령들은 마나 공급이 끊어져서 역소환되었다.

"시간이 없군."

위드는 도망치기 위해 걸음을 재촉했다.

불의 세계가 엠비뉴의 군대에 수천, 혹은 1만ㅇ니 넘는 피해를 입혔다고 하더라도 다시 전부 부활할 것임을 알고 있었다.

거북이 군단도 하늘 높이 날아서 다가오고 있었는데, 그들의 목표는 따져 볼 필요도 없이 위드에 대한 복수일 것이다.

다리를 다쳐서 불편한 위드의 걸음은 거칠었다.

대재앙과 유석 낙하로 인하여 일그러진 땅은 벗어났지만 속도는 쌍봉낙타를 타고 달릴 때처럼 빠르게 낼 수가 없었다.

유성 충돌의 피해를 받은 쌍봉낙타의 부상은 심각한 정도로, 치료 마법을 펼쳐 주지 않는 이상  자연적으로는 잘 낫지 않는다.

위드가 불의 기운을 전달해 줄 수도 있지만 그럴 여력까지는 없는 형편이었다.

 ㅡ 소환자여, 신선한 마나를 듬뿍 받아들여서 기뻤다. 다시 부를 날을 기다리겠다.

상급 불의 정령들도 역소환!

화염이 넓게 펼쳐져 있었지만 엠비뉴의 사제들에 의해서 곧 진화되었다.

"저기 놈이 있다."

"제물로 바칠 가치도 없다. 죽여 버려라!"

기세등등하게 달려오는 극악의 기사단.

괴물들도 뒤를 따라서 질주를 해 오지만, 극악의 기사단만큼 쾌속한 질주를 해 오지는 못했다.

지옥에서 내려온 마물들도 공격 준비를 하고 다가왔다.

그러나 마물들에 대해서는 오히려 조금 안심을 해도 되는 것이, 엠비뉴의 징벌의 사제들 때문이었다.

자신드의 손으로 죽이기 위하여, 마물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신성력으로 견제를 했다.

위드가 다시 쌍봉낙타를 내려놓고 말살의 검을 쥐었다.

"여기가 내 무덤이 될 장소가 되겠군."

기사단만 보이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는 거북이 군단이 날아오고 있다.

청동 거인들도 저마다 던질 것을 들고 있으니 무수히 많은 공격에 난타를 당하지 않겠는가.

"최후라면 최후답게 죽어 주지."

위드는 쌍봉낙타를 뒤에 두고 검을 휘두르면서 극악의 기사단의 돌격을 제자리에서 맞받아쳤다.

가공할 힘에 의하여 그대로 튕겨 나가고 거꾸러지는 극악의 기사들!

진정한 검술이 무엇인지를 보여 주었다.

야만 전사였을 때만큼은 아니더라도 정면에서 기사단을 쓰러뜨렸다.

하짐나 적들의 공격을 세심하게 막지 않았다면 극심한 부상으로 인해 이미 죽었을 것이다.

"우으으으으."

"이교도여, 과연 엠비뉴 신의 뜻을 거스를 만하구나!"

극악의 기사들 150명을 해치우고 나자 기사단장인 하렘우드가 말했다.

놈도 레벨이 600대 초반에 이르는, 엠비뉴의 중간 보스 중의 하나였다.

 - 생명력이 5.8% 남았습니다.

 불안정한 몸 상태로 전투를 치르면서 체력의 저하 속도가 증가합니다.

"얼마든지 덤벼라!"

위드는 호기롭게 외쳤다.

생명력이 보충되기 무섭게 다시 바닥을 기었지만, 이제 와서 친하게 지내자고 화해할 수도 없는 상황!

극악의 기사들은 계속 덤볐고, 몸에는 저주들이 차곡차곡 쌓였다.

정정당당한 승부가 아니라 전형적인 여럿에게 몰매를 맞는 처지에 놓여 있었다.

설상가상, 잉그리그와 모툴스가 다가오면서, 금방 쓰러졌던 극악의 기사들도 멀쩡한 몸이 되어서 다시 일어났다.

끝이 없는 싸움!

위드는 지치지 않고 달려오는 극악의 기사들의 공격을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피하면서 검으로 반격을 가했다.

적을 베고 있는 말살의 검이 점점 무거워짐을 느껴졌다.

'이래서 용사는 안 돼. 역시 나쁜 놈들의 편에 섰어야 하는데…….'

정의로움의 씨가 마른 세상!

그때 힘들어하는 위드의 입가에, 희미하지만 야비한 썩은 미소가 순간적으로 스쳐 지나갔다.

'그래도 이 정도 했으면 시청자들은 내가 최선을 다한 거라고 믿어 주겠지. 이렇게 써려져서 죽더라도 잘 싸웠다고 칭송을 해 줄 거야.'

영웅의 완성은 멋지게 죽는 것으로 끝난다.

슬픈 결말이야말로 시청자들의 심금을 오랫동안 울려 주리라.

'상황이 상당히 괜찮아. 마지막까지 싸우다가 죽는 거지.'

위드가 죽고 나면 엠비뉴 교단ㄴ은 중앙 대륙을 확실히 파괴하지 않겠는가.

가장 가까운 마폰 왕국과 베이너 왕국의 운명도 정해져 있는 것.

직접 도시들을 파괴한 것에 이어서 엠비뉴 교단을 통해서 완벽하게 쓸어버리는 것이다.

이것은 위드의 방식은 아니었지만, 아쉬움과 허전함을 이런 식으로나마 조금은 달랬다.

"집단 살육의 검!"

극악의 기사들은 불을 향하는 날파리처럼 사방에서 덤벼들고 연속으로 쇄도했다.

끊임없이 적들을 상대하며 계속 조금씩 공격을 허용하다 보면 최후를 맞이하게 될 수밖에 없으리라.

상황이 변한 것은 그때였다.

"푸히히히힝!"

누워서 죽은 척하던 쌍봉낙타가 벌떡 일어나더니 옆에 다가와 위드를 등에 태웠다.

 - 모래 폭풍의 질주.

힘이 다할 때까지 달리는 기술.

쌍봉낙타의 몸은 여전히 정상이 아니지만, 그래도 절뚝이면서라도 달릴 수 있는 수준은 되었다.

앞다리 둘과 뒷다리 하나!

휘청거리면서도 사릭 위하여 마지막 사력을 다한 질주를 선택한 것이다.

포위망을 구성한 괴물들 사이를, 쌍봉낙타 특유의 펄쩍 뛰는 걸음으로 지나쳤다.

"쫓아라, 기사들이여!"

극악의 기사단이 곧바로 뒤를 추격해 왔다.

"그래 봐야 안되겠군."

위드는 별로 나아진 것은 없다고 느꼈다.

쌍봉낙타의 몸이 정상이 아니다 보니 일직선으로 달리지도 못하고 비틀거린다.

방해하지 않더라도 평원을 벗어나지도 못할 것이다.

극악의 기사단도 금방 따라잡고 있었다.

"그래도 하나라도 더 죽일 수 있겠지."

등에 메고 있던 전설의 프로스트 보우 요르푸시카를 무장!

뒤쫓아 오는 극악의 기사들을 향하여 얼음 화살들이 퍼부어졌다.

그들의 진격을 조금 늦출 수는 있었지만, 모든 부분을 감당하기에는 적들이 너무나도 많다.

그리고 잉그리그의 명령에 의해 괴물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게다가 청동 거인들은 그런 괴물들까지 그대로 짓밟으며 다가왔다.

적들의 대공세를 보자면 도저히 삶에 대한 애착을 바랄 수가 없는 상태!

이변이 일어난 것은 그때였다.

"엠비뉴의 버러지들아, 이곳을 지나가진 못한다."

온몸이 뼈로 이루어진 기사단.

암흑 군대의 총사령관 반 호크 그리고 그의 친위대 둠 나이트들이 나타난 것이다.

어디 그것뿐이던가.

어두운 그늘과 땅속에 숨어 있던 뱀파이어들!

조용히 잠복해 있던 그들이 추격해 오는 적진의 중심부에서 솟구치듯이 일어나서 괴물을 타고 추격해 오던 징벌의 사제들의 목덜미에 날카로운 송곳니를 꽂았다.

"캬아악!"

반 호크와 토리도.

그들은 유성 낙하에 의하여 큰 충격을 받았다.

10만의 언데드 군단은 태반이 박살이 났음여, 뱀파이어들의 세력도 위축되었다.

어비스 나이트인 반 호크는 조용히 언데드들의 세력을 추스르는 한편 둠 나이트들을 이끌고 위드를 구하러 왔다.

토리도는 뱀파이어 로드였음에도 이곳에서는 그리 강함을 자랑할 수 없는 처지였다.

정면공격으로는 엠비뉴의 군대에 승산이 없으니 매복을 했다.

그들의 목표는 처음부터 맛있는 사제들.

뱀파이어들에게 치명적일 수 있는 사제들의 피가 역설적으로 가장 맛있다.

엠비뉴를 따르는 사제들은 암흑의 권능을 가지고 있기에 뱀파이어들에게는 그야말로 보약 그 자체였다.

부하들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이번만은 위드도 적지 않게 감동했다.

사업에 실패하고 빛 한 줄기 없는 캄캄한 세상에 기꺼이 보증을 서 주는 친구의 존재가 이렇지 않겠는가.

반가움의 외침이 저절로 튀어나왔다.

"이런 무능하고 재수 없는 놈들!"

생각과는 달리 입버릇처럼 나오는 비난!

반 호크는 심연의 힘을 몸에 두르고 극악의 기사단을 막았다.

"나 암흑 군대의 총사령관 반 호크, 진정한 암흑의 율법을 가르쳐 주겠다."

"엠비뉴를 따르지 않는 언데드로군! 이 세상의 죽음과 악을 엠비뉴 신께서 주관하고 있다난 것을 알고 있는가!"

날고뛰는 극악의 기사단이었지만 위드에 이어서 반 호크까지, 상대하는 이들마다 워낙에 강하다 보니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죽어 나갔다.

토리도와 뱀파이어 부대의 경우에는 지금 시점에서 평균 전투력이 아주 뛰어난 편은 아니다.

하지만 징벌의 사제들 가까이에 달라붙어서 괴롭히면서 저주와 공격의 신성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막아 냈다.

"쌍봉아, 가자."

"푸르르릉!"

쌍봉낙타는 기진맥진한 상태로도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반 호크와 둠 나이트 부대는 전투 전문가들로, 청동 거인들에게도 용감하게 덤벼들었다.

청동 거인의 주먹을 맞고 뼈마디가 일부 바스러지더라도 금방 몸을 재구성했다.

언데드들은 불사의 생명력을 자랑한다.

엠비뉴의 사제들이 정화 마법을 펼쳐서 그들을 죽음으로 돌려보낼 수 있지만, 뱀파이어들이 설쳐 대는 바람에 그조차 여의치 않았다.

잉그리그의 신성 마법에 의해서 광신도와 괴물 등이 되살아났는데도 반 호크의 근처에 있는 시체들은 언데드가 먼저 되었다.

급하게 죽음의 속성으로 만들어진 언데드들이라 좀비와 구울 같은 하급들도 꽤 있어지만 지금은 그렇게 예뻐 보일 수가 없었다.

불량 해골이라도 해도 잠깐이라도 버텨 주는 게 어디인가.

"훌륭해!"

삶에 대한 애착을 버렸었지만, 위드는 다시 불꽃처럼 일어났다.

주식 투자에 실패해서 한강에 갔는데 그 순간 로또에 당첨되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면 삶에 대한 열정이야 얼마나 활활 타오르겠는가.

잉그리그가 호위대를 이끌고 다가오며 외쳤다.

"엠비뉴의 적을 없애라!"

반 호크와 토리도가 적들을 많이 저지하였지만 그 옆으로 빠져나온 괴물들이 계속 뒤쫓아 왔다.

하늘을 날아오는 거북이 군단, 지옥의 마물들도 추격을 해 왔다.

잉그리그와 모툴스가 이끄는 엠비뉴의 본진도 밀려오고 있기에, 반 호크가 오랫동안 막아 주진 못할 것이다.

위드는 근접하는 적들에게 얼음 화살을 마구 쏘았다.

쌍봉낙타를 거꾸로 타고 괴물들을 막느라 다른 곳을 살필 겨를도 없을 정도였다.

얼음 덩어리의 벽이 세워져서 괴물들의 돌진을 잠깐이나마 붙잡아 두었지만, 금방 위로 타고 넘어왔다.

"지긋지긋하도록 정말 끝이 없군."

괴물들은 제대로 맞은 얼음 화살 한두 번에 목숨을 잃었다.

위드가 워낙에 강하고, 조각 파괴술까지 써서 힘을 늘려 놓은 덕분!

그러나 이성이 없고 오로지 잉그리그에게만 복종하는 괴물들은 동료들의 죽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쫓아왔다.

그 부근까지 한꺼번에 결빙시켜 버리는 얼음 화살이 아니었더라면 진작 사로잡혀 버렸을 것이다.

"푸르릉!"

"알고 있어!"

얼음 화살로 지상으로 다가오는 지옥의 마물들까지도 견제해야 하다 보니 공격이 분산되어 적들과의 거리는 줄어들기만 했다.

설상가상으로 쌍봉낙타는 갈수록 느려지더니 걷는 것도 제대로 못 했다.

위드가 화살을 시위에 걸며 애처롭게 말했다.

"쌍봉아, 더 달려 봐. 평생 당근 원 없이 먹여 줄게."

"푸히이이잉."

하늘을 향해 쏜 얼음 화살이 마물들을 관통하여 일곱을 한 꺼번에 떨어뜨렸다.

하지만 그러면 뭐하겠는가.

불과 몇 초면 잡히고 말 것인데.

적들과의 거리가 이제 수십 미터밖에는 떨어져 있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더 달려. 어떻게 해서든 이 위기만 벗어난다면 내가 가지고 있는 그 어떤 보물이라도 아깝지가……."

위드가 말을 채 다 잇지도 못했을 무렵이었다.

이제 10미터도 되지 않을 정도로 가까워진 마물 중 1마리의 주둥이가 벌어지나 싶더니 혓바닥치 채찍처럼 날아왔다.

시위에 다른 화살을 걸려는 동작을 취하고 있는데 벌어진 공격이라서 위드도 대처하지를 못했다.

쌍봉낙타의 등 위이니 어디로 피할 수도 없는 노릇!

쿠엑!

그런데 위드를 건드리기 직전, 마물이 갑자기 땅으로 추락하더니 목숨을 잃었다.

위드의 뒤쪽에서 수만 발의 화살이 날아와서 하늘에 떠 있는 마물들과 엠비뉴의 괴물들을 단숨에 휩슬었다.

"뭐야?"

위드가 뒤를 돌아보니 흙먼지를 날리며 질주해 오는 익숙한 낙타병들과 기병들이 있었다.

"대제님을 위협하는 자들을 모두 죽여라!"

"사막의 붉은 칼 부대여, 적들을 무찌르라."

궁술에 특화된 전오가 이끄는 낙타병들이 달리면서 공중으로 활시위를 당기고 있다.

사막 전사들의 화살은 정밀도에서는 많이 떨어지지만 군단 전술에 능숙하다.

한 지역을 집중적으로 타격하여 적들을 섬멸하는 방식에서는 살아남는 이들이 거의 없다.

화살을 쏴서 방어진을 무력화시키고 이동하는 방식은 적 군대의 혼을 쏙 빼 놓는다.

기동력에서 탁월한 전삼이 이끄는 낙타병들은 위드를 스치며 그대로 앞으로 지나갔다.

그들이 주로 내세울 수 있는 장기는 바로 무지막지한 힘!

가까이 따라온 괴물들을 파죽지세로 돌파하면서 제압했다.

전군 총사령관의 직책을 임시로 맡고 있는 전일이 위드에게로 다가왔다.

"대제님, 약속대로 저희가 왔습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위드가 조금 더 멀쩡한 상태에서 적들과 싸우다가 사막 군단이 돌격하기 좋은 지형으로 유인을 했어야 한다.

하지만 살기 위해 허겁지겁 도망을 치다 보니 상황이 여의치가 않았고, 사막 군단도 그들에게로 향한 1개의 유성 때문에 골치를 앓았다.

정면으로 타격한 것은 아니지만 이동 경로에 깊게 파인 고랑이 생겨나서, 통과해 오느라 약간의 시간이 지연되었다.

그렇지만 어쨌든 절묘한 순간에 도착하여 쫓아오는 적들을 물리친 것이다.

물론 엠비뉴의 중앙군도 다가오고 있었다.

위드가 잠시 살펴보니 청동 거인들을 상대로 전삼과 전오의 부대가 전투를 치렀다.

화살과 투창, 불의 기운을 통한 공격을 맹렬하게 퍼붓는다.

청동 거인들 역시 괴력을 발휘하여 땅을 뒤집어 버리거나 돌덩어리들을 던져 낙타를 타고 지나가는 사막 전사들을 쓰러뜨렸다.

박빙의 전투!

남자라면 저곳에 끼어들고 싶을 것이다. 물론 살아남는 자신이 있는 자들만.

위드는 쌍봉낙타에서 굴러떨어지듯이 내려왔다.

"이런 무능한 놈들! 왜 이제야 온 것이냐!"

"……."

"아무튼 수고했다. 반 호크와 토리도와 함께 전선을 구축하고 방어에 치중하도록."

"예, 알겠습니다."

전일이 떠나자마자 주변이 안전한 것을 확인하고 바로 땅에 손을 댔다.

 - 대지의 여신 미네의 축복이 함께합니다.

  땅이 전해 주는 기운으로 체력과 생명력을 회복합니다.

생명력이 20% 이하로 감소한 상태이기에 회복 속도가 4배로 높아집니다.

"으음."

간당간당한 생명력이 다시 빠르게 차오르는 기분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으리라.

또한 위드는 생명력을 채우고 난 이후 다시 전장으로 향해야 할 것이기에 더욱 간절해졌다.

할 일을 다 마친 쌍봉낙타는 힘없이 땅바닥에 쪼그려 앉았다.

"푸흐흐흐흥!"

다리 부상도 심하고 더는 걸을 수도 없을 정도로 지쳤기에 아주 충분한 휴식이 필요했다.

그런데도 쌍봉낙타는 눈을 끔뻑이면서 위드를 보고 있었다.

위드가 조금 전에 하다가 그친 말.

이 위기만 벗어난다면 가지고 있는 어떤 보물도 아깝지가 않다는 부분까지 들었다.

그 뒤에 이어질 말들이 상당히 궁금했던 것이다.

위드도 쌍봉낙타의 그런 음침한 눈초리를 느꼈다.

사막의 대제로서 지금 보유한 보물들의 목록만 하더라도 어마어마했다.

한 국가라도 충분히 살 수 있지 않겠는가.

"흐흠, 그럭저럭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을 해 놓고 자랑스러워할 필요는 없다."

바로 말 바꾸기!

"별 의미는 없는 일이었지만 아무튼 공적을 아주 약간 세웠으니 포상으로 20골드를 내리겠노라. 이 돈이면 사막 한복판에 멋진 마구간도 지을 수 있을 것이다."

물도 풀도 없는 모래 한복판에 마구간을 건설 가능한 금액!

쌍봉낙타는 기분 좋다는 듯이 입술을 실룩거리면서 웃었다.

지능이 이 수준이기에 위드와 아웅다웅하면서도 절대적인 충성을 다 바치고 있는 것이리라.

사막 군단에 뒤이어 전투 노예들과 항복한 귀족들의 군대가 도착하면서 사제들도 대거 몰려왔다.

"악독한 기운이 몸을 잠식했군요. 프레야 여신의 축복이 그대에게 있을 것입니다."

 - 골격 쇠약의 저주가 해소되었습니다.

   뼛속 깊숙한 곳까지 파고드는 약화의 주문이 사라집니다.

   생명력 회복 속도 +27%

 - 파괴 추의 거울 저주가 해소 되었습니다.

 적을 공격하였을 때 일정한 확률로 입던 역피해가 사라집니다.

"리커버리!"

"라운드 힐!"

 - 아트록의 신성 마법에 의해 생명력을 3,872 회복합니다.

 - 티르의 신성 마법에 의해 생명력을 4,199 회복합니다.

위드에게로 저주 해소와 축복, 치료 마법의 집중이 이루어졌다.

몸 상태가 급속도로 정상을 되찾아 갔다.

★★★★★★★★★★★★★★★★★★★★★★★★★★

엠비뉴의 군대와 맞붙은 사막 군단!

사막 전사들이 대열을 이루고 돌격하고 지나간 장소에는 광신도와 괴물의 시체가 산더미처럼 쌓였다.

"계속 움직여라. 적들을 사막의 율법에 따라 처리하라."

"먼저 돌파할 적들의 우선순위를 정하라. 몰려 있는 사제들이 첫 번째이며, 그다음은 모조리 죽이는 것이다!"

극악의 기사들도 사막 전사들에게는 상대가 안 되었다.

그들은 엠비뉴의 신성 마법에 의해 공격력과 방어력을 크게 강화시키고 돌격할 뿐이지만, 사막 전사들은 훨씬 고급화된 집단 전술을 사용한다.

일차로 적들을 화살로 타격하고, 가까워지면서 창과 손도끼를 던진다.

그리고 두꺼운 시미터로 적을 강하게 밀어 쳐서 말에서 떨어뜨렸다.

그 후 후속 부대의 돌격을 통해 낙타로 짓밟아 버리는 전술!

사막 전사들의 강함은 그들 자체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키우고 있는 낙타에도 있었다.

중장갑을 입은 기사들의 경우에는 말이 전투 능력을 좌우하는 것처럼, 사막 전사들에게는 사막과 평원을 횡단할 수 있는 낙타가 필수적이다.

물을 구하거나, 적들을 추적하여 단숨에 끝장을 보기 위해서는 기동력이 필요하다.

위드에 의해 사막 부족들은 몬스터 사냥 시 낙타를 활용한 전투를 자주 치르며 이러한 연쇄 공격 방식에도 단련이 되어 있었다.

서윤이 키운 사막 용병들 또한 집단전에 능숙했다.

거친 사막에서 의뢰를 맡아서 해결하는 용병들은 기본적으로 여러 무기를 다룰 줄 알고, 싸움이 벌어지면 적극적으로 맡은 역할을 할 줄 안다.

병력의 대다수를 이루는 전투 노예들과 투항한 귀족의 포로 군대들은 상황이 달랐다.

"아, 안 돼. 저기로 가면 우리는 죽을 거야."

"왜 싸워야 하지? 무엇을 위해서 싸워야 하는 걸까. 고향으로 가고 싶다."

훈련도와 사기 자체가 낮다 보니 우물쭈물하면서 전투를 주저하고 있었다.

그때 위드의 고함 소리, 아트록의 함성이 들려왔다.

"싸워라! 엠비뉴를 물리친다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놈들이 이긴다면 이 세상은 파멸하고 말 것이다. 집에 있는 가족들을 위해서라도 적들을 물리치고 살아남아라!"

어느 정도 회복을 하자마자 사막 군단을 위하여 전투 병력을 더 보낼 필요성을 느끼고 시전한 것이었다.

겁에 질려 있던 전투 노예들의 표정이 확 바뀌었다.

"저놈들만 해치우면 되는군."

"저렇게 큰 괴물들은 처음 봐. 생김새도 자세히 보니 귀엽게 생겼는걸. 토막을 내 주마!"

아트록의 함성이 일으킨 변화!

고작해야 광신도에게도 휩쓸려 버릴 약한 병력이었지만 전력을 다해서 덤벼들었다.

그들의 임무는 터무니없이 강한 적인 엠비뉴의 군대를 제압하는 것이 아니다.

싸우는 방식의 훈련도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목적은 가까이 다가가서 방패를 겹겹이 쌓고 창으로 견제를 하며 버텨 내는 것!

사막 군단이 활약할 수 있도록 미끼도 되어 주고, 시간을 끌어 주어야 하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뱀파이어들의 방해를 받지 않는 사제들이 바로 세뇌의 수법을 사용했다.

"너희가 진정 믿고 따라야 할 분은 엠비뉴뿐이다. 과연 이 세상이 너를 위해 무엇을 해 주었지? 엠비뉴를 믿으면 힘과 권력을 얻을 것이다. 고통을 다른 이들에게 전해 줄 수 있을 것이야."

"아냐, 대제왕 위드 님에게 복종해야 한다. 그분이 우리의 편이 되어 준다면 얼마든지 적들을 물리칠 수 있을 거야. 그분과 싸워서 이길 수 있는 인간은 없어."

아트록의 함성은 세뇌와 포교 활동에 대한 병사들의 저항력도 키워 주었다.

"엠비뉴를 따르면 모든 고통과 괴로움으로부터 해방되리라."

"오오, 과연, 엠비뉴 신이여!"

"쟤 뭐야, 갑자기 엠비뉴를 외치고, 조금 이상한데."

"죽여 버려!"

"모두 힘을 내서 엠비뉴를 받듣어… 켁!"

"엠비뉴를 말하는 놈들은 볼 것도 없다. 아군이고 뭐고 몽땅 죽여라!"

배신자들이 속출하더라도 옆에 있는 다른 병사들에 의하 즉각 처형!

워낙 약한 자들을 모아 놨기에 엠비뉴의 사제들이 쓰는 신성 마법이 오히려 아깝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사막 전사들은 당연히 엠비뉴의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았다.

본인들의 의지도 단호했지만, 대륙을 약탈하면서 신성력이 부여된 물건이나 각종 보물들을 하나씩 가지고 있었기 때문!

대재앙과 유성 소환은 엠비뉴의 건대에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다.

더구나 죽었던 병력은 순차적으로 멀쩡히 돌아오더라도, 살아남긴 했으나 체력과 마나, 생명력의 손실이 심하고 부상까지 입은 괴물들도 부지기수!

엠비뉴의 군대는 겉보기만큼 강하지는 않은 상태였다.

"지금이 기회다. 이 잠깐 외에는 다시는 놈들을 이길 기회가 없을 거야."

위드는 생명력을 68%까지 채우고 나서 전장으로 다시 나섰다.

엠비뉴의 군대도 엄청난 전력이었으나 궁극적으로 모툴스와 잉그리그를 죽이지 않고서는 해결이 될 리가 없지 않은가.

위드가 다시 조각 변신술을 펼쳐서 야만 전사 투르거가 되었다.

조금 전처럼 모든 것을 혼자 해치우려고 하진 않는다.

그가 선봉에서 길을 뚫어 내면 이후에는 사막 전사들과 협공하는 것까지도 고려한 모습이었다.

단지 불만인 점!

"내가 대륙의 평화를 지키고 정의의 사도 역할을 해야 하다니. 도무지 동기부여가 안 된단 말이야."

수많은 역경을 뚫고 나쁜 짓을 저지르고 만인의 지탄을 받는 악인이 되어 주리라는 굳건한 다짐.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엠비뉴 교단도 밥그릇의 경쟁자였다.

"전이."

"옛."

조각 생명체 전이는 아직 출격을 하지 않았다.

그의 임무는 사막 전사 1,000명과 함께 위드의 호위대를 구성하는 것!

호위대에 속해 있는 200명의 사막 전사들은 노들레의 퀘스트를 하면서 함께 성장한 직속 부하들이다.

소규모 단일 집단으로는 대륙 최고의 전력을 자랑했다.

위드도 그들을 보니 혼자서 다 해야 했던 아까와는 달리 훨씬 든든했다.

최악의 경우가 닥치더라도 같이 싸워 줄 든든한 부하들이 잔뜩 있었으니까.

"가자. 사제들을 철저히 막아라."

"옛!"

사막 전사들로 하여금 징벌의 사제들을 담당하게 하였다.

사제들을 목표로 화살을 쏘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경제가 되었다.

사막에서 전사드이 싸우는 방식은 자유분방한 편이다.

직속부대들은 위드에 의하여 특정한 전술을 수행하기도 하지만, 전사 특유의 용맹함으로 개벼적으로 적진을 파고든다.

약하면 무모하기 짝이 없는 행동일 뿐이지만 강함과 생존력이 있으면 모든 것이 허용되는 전쟁터!

사실 마법사나 주술사, 사제 등을 상대할 때에는 기사단처럼 집단을 이루고 단일 행동을 하는 것이 더 무식한 방법이다.

마법이나 저주의 표적이 되어서 약화되고 결국 깡그리 몰살당하는 일이 비일비재다.

사막 전사들은 기동력을 이용한 돌파 전술에도 능숙하지만, 그들의 진정한 장점은 흩어져서 벌어지는 난전에 있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썩은 시체가 되어서 전장을 헤매고 다닐 것이냐. 엠비뉴를 따른다면 고향으로 다시 돌아가게 해 줄 것이다."

"닥쳐라. 어디서 더러운 수작질이냐. 아내는 진작 바람났고 자식들은 옆집 아저씨를 더 따르고 있다!"

"고향? 전쟁터만 돌아다니다 보니 아무것도 남지 않았어. 너희를 죽이는 것밖에는 할 게 없는 신세다."

사막 전사들은 적진을 파고들어서 흩어져 있는 징벌의 사제들을 목표로 전진했다.

위드는 거대한 덩치를 가진 야만 전사가 되어서 중앙을 돌파했다.

괴물들을 그냥 발로 걷어차 버리고 두 팔로 후려쳐서 길을 만든다.

반 호크와 토리도는 거의 쓰러지기 직전의 상태에서 한 발 두 발 물러나면서도 힘겹게 버티고 있었다.

뱀파이어 군단의 경우에는 특히 피해가 심해서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삼분의 일도 살아남지 못했다.

그들이 다시 회복이 된 위드를 반가워했다.

"주인!"

"무사하셨군요."

목숨을 구한 부하로서 그저 칭찬 몇 마디를 듣고 싶었을 뿐이다.

위드는 그들을 향해서 덤벼드는 극악의 기사들을 길게 연결한 말살의 검으로 가볍게 해치우고 나서 말했다.

"쯧쯧, 이거 하나 똑바로 정리를 못해 가지고 비실대고 있냐."

"……."

"반 호크 넌 명색이 암흑 군대의 총사령관이 되어 가지고 말이야."

"……."

"토리도, 지금까지 네가 마신 피가 한두 방울이냐. 아무튼 부족한 너희 때문에 나 혼자 고생을 한다니까."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용병술!

사회생활을 하며 직위가 올라갈수록 자연스럽게 터득하는 필수과목이었다.

그러나 잠깐의 여유를 부릴 새도 없이 엠비뉴의 군대가 밀집했고 제대로 전투력을 발휘하였다.

잉그리그가 이끄는 본진에서는 사제단과 기사단이 진형을 짜서 대응에 나섰다.

사제들은 저주와 자신들에 대한 축복, 신성력의 장벽으로 방어의 역할을 맡았고, 승리에 대한 믿음으로 사기가 드높은 극악의 기사단은 거침없이 돌격했다.

설혹 사막 전사들의 능력이 탁월해서 어느 정도 그들을 물리친다고 해도 잉그리그가 무한하게 부활을 시키는 한 결국은 차츰 소모되어 줄어들게 될 것이다.

모툴스의 특수 능력도 어마어마했다.

"이곳은 엠비뉴 신께서 다스리는 땅이다. 그 어떠한 이교도들도 이 영역을 넘어오지 못한다. 신성불가침의 영토 선언!"

『 신성불가침의 영토가 선언되었습니다.

엠비뉴의 파괴적인 권능이 이 지대에 퍼지게 됩니다.

엠비뉴를 따르는 모든 이들의 전투와 관련된 스탯이 70% 오릅니다.

스킬의 파괴력이 120% 증가하며 피해를 적게 입습니다.

엠비뉴를 믿지 않는 이들이 이 영토에 들어오게 되면 5초마다 3,892의 생명력을 흡수당합니다.

흡수된 생명력은 대사제 모툴스의 마나로 변화노딜 것입니다.

주의!

신성불가침의 영토에서 마의 장벽이 솟아납니다.

단단한 장벽을 돌파하여 대사제 모툴스를 죽이기 위해서는 진정한 영웅심이 필요할 것 입니다. 』

잉그리그와 모툴스!

엠비뉴의 대사제로, 레벨이 700을 넘다 보니 특수 능력들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전사의 레벨이 700을 넘으면 약한 적들에게는 아득함을 느끼게 할 정도로 강하다.

생명력도 높아서, 여간해서는 잘 죽지 않는다.

마법사나 사제는 특수 능력을 가지게 되어서, 부하들을 지휘한다면 상상 이상의 위력을 발휘했다.

신성불가침의 영토 안에서는 극악의 기사들이 사막 전사 들과 호각으로 싸울 뿐만 아니라, 생명력 흡수로 인하여 이쪽의 병력은 후퇴에 급급했다.

"뼈다귀 파괴, 천벌의 대참화, 깊고 어두운 독 안개!"

모툴스가 흡수한 마나로 마법을 마구 난사했다.

대사제로서 상당히 고위 마법까지 자유자재로 사용을 하는데 마나가 무한정 공급된다.

사제와 마법사를 그래도 상대할 수 있는 건 마나에 한계가 있기 때문인데 이 얼마나 무서운 특수 능력이란 말인가.

"놈들을 해치우려면 최대한 서둘러야 해."

위드는 적이 강할수록 재미가 있었다.

잉그리그와 모툴스.

두 대사제가 모두 특수 능력을 발휘하고 대군을 지휘하는 지금이 기회다.

시간은 오히려 적들에게 훨씬 유리할 것이라는 점을 확실히 파악하고 있었다.

위드의 눈이 주변으로 향하며 전장을 빠르게 훑었다.

밉상인 헤스티거와, 노예로 확실히 자리매김을 한 자하브를 찾는 것이다.

유성우로 황폐화된 땅, 불길이 이글거리면서 도처에서 타올랐다.

"돌파하라. 우리의 용맹은 적들이 막지 못한다."

"우와아앗! 헤스티거 님의 뒤를 따르자!"

헤스티거는 자신의 부대를 이끌고 괴물들을 마구 도륙하고 있었다.

건장하고 큰 키에 잘생긴 외모, 배려심이 깊고 부하들을 아끼는 성격.

검술 실력도 나무랄 데가 없고, 전장에서는 항상 훌륭한 공적을 세운다.

낙타를 몰고 돌격하며 싸우는 모습에서는 나름의 호탕한 멋까지 느껴졌다.

검술 마스터 자하브는 엄청난 괴물들을 가볍게 두 동강을 내 버리는 중이다.

그 역시 조각사이기도 했기 때문에 조각 파괴술을 써서 모든 스탯을 힘으로 몰아넣었다.

긴 세월을 살아오면서 위드를 능가하는 무지막지한 예술 스탯을 쌓았고, 검술과 공격 스킬의 완숙미 역시 절정에 달했기에 그의 주변에는 남아나는 괴물이 없었다.

사제들이 불덩어리를 쏘아도 가볍게 검을 휘둘러서 조각 검술로 튕겨 내 버렸다.

로자임 왕국의 전설, 달빛 아래에서 춤추던 자하브의 현란하고 아름다운 검무가 그대로 재현되고 있었다.

"좋아, 써먹을 만한 동료는 충분하군. 혼자 나설 수는 없지."

위드는 크게 고함을 질렀다.

"헤스티거!"

"예!"

"휘하의 부대를 데리고 나와 함께 싸운다."

"영광입니다."

헤스티거는 항상 위드에게 깍듯하게 예의를 갖춘다.

겸손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기품이 흐른다.

"자하브 님."

"알고 있네."

자하브는 이미 대사제들을 목표로 삼고 있었다.

그는 검술의 마스터답게 가장 강한 자들을 해치우려고 했다.

"전이, 너희는 윌가 싸우는 동안 엠비뉴의 다른 병력이 개입하지 못하도록 막아라."

"목숨을 바치겠습니다."

위드는 엠비뉴의 대사제들 중에서 우선 죽여야 할 대상을 잉그리그로 결정했다.

양쪽 다 어느 하나 오래 내버려 둬서 좋을 것이 없는 상대들이었다.

잉그리그는 엠비뉴의 군대를 계속 다시 일으키고, 모툴스는 막강한 마법으로 사막 군단들에 대규모 피해를 입힌다.

잉그리가 선택된 것은 그저 가깝기 때문이었다.

"갑시다."

위드는 자하브와 헤스티거와 함께 잉그리그를 향하여 달렸다.

어지간한 괴물들은 말살의 검을 휘둘러서 내치고 그 사이로 돌격!

잉그리그의 주변에는 극악의 기사단에서 최상위를 차지하는 강자들과 외모부터 무조건 강할 수밖에 없게 생긴 괴물들이 있었다.

호위대에는 청동 거인들까지 있었으니 그야말로 철벽 수비진!

적어도 수천의 적들을 물리쳐야 잉그리그를 없앨 수 있었다.

위드는 땅을 강하게 밟았다.

"대지의 흔들림!"

단단한 땅이 1미터 이상 위아래로 흔들리니 괴물들을 비롯하여 청동 거인들까지도 제자리에 서 있지 못했다.

청동 거인들이 뒤나 옆으로 쓰러지면서 깔리는 괴물들도 속출했다.

막 저주의 주문을 외우던 사제들도 볼품없이 땅바닥에 나뒹굴었다.

전방 병력의 초토화!

위드는 기회라고 생각했지만 위험도가 높은 선제공격은 기꺼이 양보했다.

"지금이다, 헤스티거!"

"붉은사자단! 출동이다!"

헤스티거가 이끄는 병력이 질풍처럼 내달렸다.

그러자 즉각 주변에서 화살과 마법 공격이 날아들었다.

엠비뉴의 대군이 잉그리그를 지키기 위히여 집중 공격에 나선 것이다.

대지의 흔들림의 범위 밖에 있던 징벌의 사제들 또한 자신들의 수장인 잉그리그를 노리는 적들을 향하여 저주 공격을 날렸다.

헤스티거와 붉은사자단은 굶주린 사자 떼처럼 가로막는 적들을 해치우면서 돌파했다.

사막 군단의 위용은 각자 싸울 때에도 뛰어나지만 이렇게 무작정 돌파를 할 때에는 더욱 빛을 발한다.

개개인이 훌륭한 전사이면서 지휘 능력을 갖추었다.

그렇기에 쓸데없는 움직임이라고는 일절 보이지 않으며 적진을 돌파했다.

숱한 공격에 의하여 낙마하는 이들도 속출했지만 최소한의 피해를 감수하며 거침없는 용맹을 드러냈다.

"자하브 님, 가시죠!"

위드는 자하브와 함께 그 뒤를 따라서 달렸다.

극악의 기사들은 일대일이나 일 대 십이나, 그들을 막지 못한다.

자하브는 적들을 조각 검술로 가볍게 베었고, 위드의 경우에는 그냥 힘으로 압도해 버렸다.

"전부 비켜라!"

말살의 검을 옆면으로 세워서 후려치는 기술!

검이나 방패로 막거나 말거나, 일단 부딪치기만 하면 100미터가 넘게 날아가 버린다.

야구나 골프를 연상시킬 정도의 호쾌함.

위드에게 닿는 손막도 일품이었지만, 옆에서 지켜보기에는 이보다 더 압도적인 광경이 없을 정도였다.

기사단 전체를 후려치며 몇 번 휘저으니 기사들이 쓰러지며 방어벽이 허무하게 뚫리고 말았다.

"잉그리그, 너의 최후의 날이다!"

위드의 눈에 불과 70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넘어져 있는 잉그리그가 보였다.

야만 전사에게는 정말 지척과도 같은 거리다.

들모레 대평원이 아니라, 좁시 고시원에서 같이 북적거리는 정도의 거리감!

"폐혈의 저주!"

잉그리그가 검붉은 마나를 모아서 수인을 맺었다.

그에 따라 저주의 기운이 발출되었지만, 위드는 극악의 기사를 내던져서 막아 냈다.

"캬아아아악!"

저주가 적중된 극악의 기사는 온몸에서 피를 쏟아 내면서 목숨을 잃었다.

'정확히 10여 초밖에는 기회가 없을 것이다.'

위드는 냉정하게 상황을 읽었다.

땅에 쓰러진 호위대가 일어나면 바로 잉그리그를 대피시킬 것이다.

그리고 엠비뉴의 군대 중심부라서 그들을 목표로 사제들이 저주의 마법을 외우고 있다.

야만 전사로서 최고의 전투력을 발휘하고 있지만, 다시금 온갖 저주에 걸려들게 되면 불과 절반의 능력도 발휘하지 못한다.

사막 군단이 쓸모 있게 싸우는 시기를 놓치면 역으로 엠비뉴의 군대에 쫓기다가 전멸하리라.

위드 혼자서는 결국 끝없이 부활하는 엠비뉴의 군대에 안 된다는 것이 조금 전에 증명이 된 셈이기도 했다.

"자하브 님, 기회입니다."

"알겠네!"

위드는 자하브를 붙잡아서 땅에 앉아 있는 잉그리그를 향하여 강하게 던졌다.

인간 화살처럼 일직선으로 날아간 자하브!

"광휘의 검술!"

자하브의 검에서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은 빛의 새들이 나타나서 잉그리그를 경호하는 극악의 기사들에게 작렬했다.

그리고 자하브는 몸을 뒤집으면서 착지하여 바로 잉그리그를 향해 덤벼들었다.

"이베인의 원수!"

뭐, 좋게 보면 순정을 가진 남자이고, 나쁘게 본다면 이미 시집간 여자를 잊지 못하고 불륜을 꿈꾸며 살아온 인생1

"너는 누구냐!"

땅에 주저앉아 있던 잉그리그는 지팡이를 들어서 공격을 막았다.

"제법이구나, 인간."

"널 죽일 것이다."

"인간이 감히 신의 뜻을 대변하는 나를 죽일 수 있을까?"

검과 지팡이가 부딪칠 때마다 신성력과 마나의 충돌로 인한 전류가 흐른다.

대사제로서 상당한 수준의 근접 전투력까지도 갖춘 모습이었다.

눈알이 박혀 있는 해골 지팡이는 적의 기운을 흡수하는 능력도 가지고 있다.

"강한 자여, 너 정도의 실력이라면 엠비뉴 교단에 들어올 자격이 충분하다!"

"닥쳐라. 이베인의 목숨 값을 받아 내고 말 것이다."

물론 이베인 왕비가 태어나고 죽는 것은 지금으로부터 한참 훗날의 이야기가 될 테니 엠비뉴 교단으로서는 억울하기도 하리라.

나이가 들었다고는 해도 전혀 노화를 짐작할 수 없는 자하브의 현란한 몸놀림.

위드는 어쨌든 제대로 상대를 붙여 준 셈이었다.

"조각 검술!"

잉그리그를 자하브가 맡은 잠깐 동안, 위드도 맡은 일거리가 있었다.

대지의 흔들림의 여파로 청동 거인들이나 괴물들이 일어나지 못하는 동안 가까운 징벌의 사제들부터 쓸어버렸다.

나머지는 전이가 지휘하는 부대가 공격을 가하면서 위드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막아 주었다.

"엠비뉴의 뜻을 실행하는 사제님들을!"

청동 거인들이 날뛰었으나 원거리 공격에나 뛰어나지 근접전에는 약점이 많다는 걸 알아차린 위드에게는 관심사 밖!

어떻게든 저주들에만 휩싸이지 않는다면 괴물들이나 청동 거인들 정도는 무시해 버리면 된다.

위드도 자하브와 같이 잉그리그를 공격하는 데에 합류를 했다.

야만 전사의 덩치로 사제를 협공하려니 모양새가 약한 자를 괴롭히는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잉그리그는 지팡이에 담긴 어둠의 힘을 찰나에 날리면서 공격했다.

또한 잉그리그의 위기를 본 모툴스가 휘하의 병력을 데리고 다가오고 있는 중,.

자하브의 공격이 지팡이에 막힌 사이, 노리고 있던 위드의 기다란 검이 잉그리그의 몸을 베고 지나갔다.

 - 잉그리그를 베었습니다.

악신의 보살핌에 의해 말살의 검에 담겨 있는 불의 기운이 16%의 피해만 입힙니다.

  저주받은 생명력의 로브가 87%의 확률로 피해를 복구시킵니다.

 - 치명적인 일격!

악신의 보살핌에 혼란 상태에 대한 면역이 적용되었습니다.

어린 원혼의 울부짖음으로 치명적인 일격이 연속으로 작렬하는 것을 방지합니다.

잉그리그는 자하브와 위드를 동시에 상대하느라 허점을 자주 노출시켰다.

위드의 공격력은 엄청났지만, 온갖 희귀한 축복들을 몸에 두르고 있는 잉그리그!

사제는 근접전에는 취약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이었지만 엠비뉴를 이끌어 가는 대사제 중의 일인답게 간단히 죽어 주지는 않았다.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청동 거인들과 괴물들은 벌 떼처럼 모여들었지만 그들을 무시하거나 가볍게 제쳐 두고 잉그리그만을 공격했다.

모툴스와 휘하의 병력도 전이의 호위대가 막고 있었다.

잉그리그를 지금 처리하지 못한다면, 그의 특수 능력에 의하여 방금 죽은 징벌의 사제들도 되살아나게 될 것이다.

"반 호크, 토리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주인."

"악에 물든 피의 맛은 어떨지 무척 궁금하군!"

반 호크와 토리도 역시 재빨리 전투에 가세했다.

여럿이서 팰 때의 손맛은 더한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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