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블랙 드래곤 아우솔레토
'죽는다.'
'죽겠지.'
'죽을 거야.'
'곧 죽을까?'
위드의 모험을 보는 대부분의 시청자들이 떠올리는 생각이었다.
"사장님, 로열 로드 하게 휴가 주십시오. 그리고 상여금도 좀 지급해 주셨으면 하는데요."
"우리 회사가 잘나가는 건 다 자네 덕분이지. 말만 하게, 뭘 못 해 주겠는가! 법인 카드도 팍팍 긁어 보게!"
물론 이것은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품는 꿈!
현실에서는 과장이나 부장이 자신의 공을 가로채거나 자기가 할 일을 미뤄서 시키더라도 군소리 없이 해내야 한다.
회식 자리에서는 비위도 맞춰야 하고, 야근은 밥 먹듯이 한다.
초과 근로 수당도 제대로 지급되지 않을 때가 많았으니, 사회인이란 꿈보다는 현실을 살아가는 시간이 훨씬 많았다.
꿈이란 주말 아침에 늦잠을 잘 때나 꾸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로열 로드를 통해서 다른 자신과 만날 수 있었다.
직장인들이라서 시간은 넉넉하지 못해도 또 다른 캐릭터를 통해서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그들에게 위드란, 꿈을 걸어가는 영웅과도 같았다.
특히 한때 위드를 원망하고 비난했던 중앙 대륙의 유저들은 말 그대로 회개를 했다.
"위드 님의 깊은 뜻도 모르고... 나처럼 속 좁은 놈은 욕이나 했지."
"헤르메스 길드와는 관계가 아주 안 좋잖아? 그런데 세상 사람들을 위해서 적을 이롭게 하다니, 그런 넓은 마음은 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북부의 촌놈들이 위드가 훌륭한 국왕이며 그분을 믿고 따를 수 있다고 존경한다더니 이젠 그 이유를 알 것 같군."
"모험이 반복될수록 위드의 팬은 늘어만 가고 있었다.
결과를 미리 알지 못하고 가슴을 졸이면서 봐야만하는 데다가 대륙에 변화를 가져오기까지 하는 것이 위드의 모험이기에 더 인기가 있었다.
남들은 어느 정도 강해지거나 하면 안정적으로 사냥을 하고 적당한 퀘스트를 골라서 해결하는데, 위드는 넓은 세상을 돌아다니면서 자유롭게 도전을 한다.
국가를 세우고 예술을 벗 삼아 대륙을 방랑하니 얼마나 멋진 모험가인가!
위드는 불과 1초 만에 살기 위한 방법을 떠올렸다.
탑에서 일하면서 들었떤 소중한 정보!
"그래, 엠비뉴를 믿는 거야. 엠비뉴 신이야말로 우리를 구원해 줄 게 틀림이 없어. 오오, 엠비뉴 신이시여!"
세뇌 마법에 걸리지 않았는데도 일어나는 정신분열 현상.
전화로 치킨을 시켜 놓은 걸 깜박 잊어버리고 라면을 끓이고 있던 사람처럼 정신 붕괴!
그렇지만 위드는 다시 생존을 위해서 눈을 반짝였다.
"아직 끝나도 끝난 것이 아니다. 죽지 말고 살아 보자!"
위드는 기울어지는 탑에 엉덩이를 대고 앉았다.
콰드드드득!
안 그래도 부서지고 있는 탑에서 무언가가 더욱 짓눌려서 깨지는 소리가 났다.
"에라, 가 보자."
탑의 경사도를 이용하여 아래로 미끄러졌다.
미끄럼틀을 탄 것처럼 미끄러지는 초대형 흑곰!
아직은 탑의 경사가 거의 수직에 가까워서, 몇 초 뒤에는 무섭게 가속력이 붙었다.
"영화에서 보면 다들 멋지게 살아나잖아!"
역시 생각과는 너무 다른 상황!
위드가 미끄러져 내려가면서 그 무게로 인해 벽들은 그대로 뭉개지고 터져 나갔다.
하늘로 오르는 탑이 크다고 해도, 조각 변신술을 펼치고 난 위드가 미끄럼틀을 타고 놀기에는 둘레 면적이 좁다.
위드의 엉덩이가 무서운 무기 역할을 하면서 탑을 짓뭉갰다.
-마찰로 인해서 신체의 일부가 손상을 입고 있습니다.
생명력이 3,742 감소합니다.
미칠 듯한 가속력으로 엉덩이가 뜨거운 흑곰!
"더 위험해지기 전에 지금 내 상태부터 확인을 해 봐야겠군. 생명력은... 휴, 일단 체력은 거의 떨어질 염려 없어 보이고 생명력도 80만이 넘는군."
대형 생명체인 만큼 힘과 체력, 생명력은 매우 뛰어났고, 예술, 지혜, 기품 같은 건 일찌감치 밑바닥 수준이거나 사라져 있었다.
다만 약간 의외라면 매력이 상당히 높았는데, 역시 곰은 귀여워야 제맛이기 때문이었다.
'이대로 떨어져서 살아남는다고 해도, 놈들이 가만히 있을까?'
순간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생각.
덩치가 커진 만큼 생명력도 무지막지할 정도로 늘긴 했지만 현재의 속도라면 이 거대한 몸뚱이는
그만큼 넓은 면적에 걸쳐서 더 크게 추락의 피해를 입을 것이 아닌가.
심지어는 그대로 땅에 깊이 쳐막혀 버릴지도 모른다.
몸을 빼내지도 못하고 열 받은 광신도들에게 무차별 공격을 당할 수도 있다.
엠비뉴 교단에 있는 모든 인원들로부터 무한한 미움을 받고 있는 자신이었으니까.
'내가 보통 재수가 없는 게 아니잖아. 이 정도의 열악하고 안 좋은 시나리오라면 충분히 그렇게 될 수 있겠는데?'
그러던 어느 순간, 미끄러져 가는 엉덩이 쪽에서의 느낌이 갑자기 사라지고 몸이 공중에 붕 떠 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착각이 아니라 실제!
탑의 기울기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심해졌다. 하단 부분이 과도한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끊어져 버리고 만 것이다.
"우워어어어어어!"
하늘로 오르는 탑의 65층 부분이 끊어지면서, 기울어져있던 나머지 전체는 그대로 대신전을 덮쳤다.
위드 역시, 탑에서 미끄럼을 타기는 했지만 300층 정도의 높이에서 그대로 추락을 시작했다.
"아이고오!"
공중에서 거대한 몸을 움직이면서 팔다리를 허우적거렸다.
하늘로 오르는 탑은 대신전을 향하여 무너지고, 그 위에는 팔다리를 파닥거리는 위드가 있었다.
날개가 있는 것도 아니고, 추락을 방지할 만한 스킬도 가지지 못한 상태였다.
"여기서 그냥 이렇게 추락하다니, 이건 또 다른 최악의 시나리오로군. 확실히 나에게 일어날 법한 일이었어."
**************
엠비뉴의 대신전은 광신도와 괴물이 우글거리는 천험의 요새이며 성채였다.
사방의 침략으로부터 삼엄한 경비들을 세워 놓고 있었지만 하늘에서 무너지는 탑에는 속수무책!
하늘로 오르는 탑이, 엠비뉴를 향해 기원을 올리고 주춧돌을 쌓던 광신도들이 있는 대신전으로 와르르 무너지고 있었다.
"끄에에엑!"
"엠비뉴께서 우리를 벌하신다. 감사히 죽음을 영접하자!"
탑이 허물어지면서 집채만 한 돌덩어리들이 비처럼 쏟아지며 건물들을 부쉈다.
엠비뉴의 신성력으로 마물들을 생산하는 부화장, 영혼을 팔아서 능력으로 바꾸는 교환소, 일그러진 마물들의 훈련장!
대신전 내부에 밀집해 있던 광신도들과 괴물들을 거침없이 강타했다.
기울어진 탑이 아랫부분에서 끊어지면서 상단이 대신전의 중심부를 향하여 떨어지고 있었다.
"오늘 엠비뉴의 새로운 종속을 받아들여서 성대한 피의 잔치가 벌어질 것이다."
"우오오오오!"
혼돈의 드래곤 아우솔레토가 있는 엠비뉴의 중앙 거대 동상 앞의 광장!
아우솔레토의 세뇌 의식을 끝내기 위한 의식이 한창이었다.
엠비뉴의 징벌의 사제 200명이 드래곤에게 신성력을 집중시키고 있다.
깊게 잠들어 잇는 드래곤은 붉은 신성력의 기운에 뒤덮여 몸 전체에서 크고 작은 충격에 의한 폭발이 일어났다.
드래곤의 강력한 저항력을 뚫기 위한 엠비뉴 교단의 노고가 점점 결실을 맺어 가고 있는 순간.
대신전의 중앙 광장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고개를 들어 보니 하늘로 오르는 탑이 그들을 향하여 무너지고 있었다.
"탑이 쓰러진다."
"오오오!"
대재앙이 도래하고 말았다.
"피하지 말라. 이는 엠비뉴께서 우리를 시험하시는 것이다."
"세상을 평정하기 전의 마지막 시험이고 환상이다. 우리에게 자격이 있다는 것을 보여 주도록 하자."
일어나서 도망치려는 광신도들을 고위 사제들이 말렸다.
"오오, 엠비뉴시여."
철저하고 맹목적인 신앙심에 복종하는 광신도들은 달아나는 대신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렸다.
노인, 어린아이 할 것 없이 엠비뉴를 따르기로 한 자들은 중앙 광장에서 떠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들고 의아한 것은 있었는지, 작은 꼬마가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물었다.
"사제님, 저건 뭐죠?"
시커먼 털로 뒤덮인 거대한 흑곰이 팔다리를 허우적 거리면서 공중에서 떨어지고 잇는 것이 아닌가.
맹목적인 충성심, 엠비뉴라는 이름으로 모든 기적을 설명하던 사제도 말을 잃었다.
"......."
"......."
**************
"아이고오!"
위드는 떨어지는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하여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다.
300층에서 추락한다고 해도 무려 4,000미터가 넘는다.
어떻게든 긍정적인 생각을 해 보려고도 노력했다.
"그래도 돈을 내고 스릴과 해방감을 만끽하려고 번지점프를 하는 사람들보단 낫지. 나는 공짜니까.
그보다 조금 안 좋은 점은, 아무런 안전장치도 없다는 점이랄까."
덩치가 워낙 거대하다 보니 팔다리를 활짝 펴는 것만으로도 바람의 저항을 제법 받을 수가 있었다.
탑에서떨어져 내려오는 돌덩어리를 앞발로 쳐 내면서 반발력도 조금이나마 이용했다.
그렇지만 도무지 지금 더 쓸 만한 수법은 찾아낼 수가 없었다.
"땅에 떨어지고 나면 오징어로 변해 버릴 거야. 아마 곰 발 바닥 요리나 웅담에도 쓰이지 못할 정도로 엉망이 되겠지."
공기의 저항 덕분에 약간 차이를 두고 탑보다는 늦게 떨어지고 있었다.
그렇더라도 거센 바람을 받으며 땅이 급속도로 가까워지고 있다.
어떤 안전장치도 없이 떨어지는 이 기분이야말로 방학 숙제를 하지 않고 개학을 맞이하는 초등학생들과도 같으리라.
째재재잭!
환청인지, 위드의 귓가에 새들이 우는 소리가 들렸다. 1~2마리가 아닌 수천수만 마리 이상의 합창이었다.
사냥터에서나 가끔 요리 스킬을 활용하기 위해서도 새 고기를 필요로 해서 관심을 가질 때가 있었다.
하지만 어차피 땅에 떨어져 죽을 마당에 새 울음소리가 무슨 대수이던가.
위드는 무관심하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런데 지상에서는 거대한 이변이 벌어지고 있었다.
땅과 나뭇가지에 앉아 있던 모든 새들이 날개를 활짝 펼치더니 날아서 일제히 솟구친 것이다.
새들이 가끔 벌이는 군무라고도 볼 수 없었다.
마치 자신의 알을 지키듯이 하늘을 향하여 일제히 비상했다. 그러고는 무서운 속도로 낙하하고 있는 위드에게 와서 부리로 콕 찍었다.
'이런 양심도 없는 새들! 곰 고기가 아무리 맛있다고 하더라도, 죽기도 전에 벌써부터 입맛을 다시다니.'
위드는 생명력을 약간이라도 아끼기 위하여 새들을 한꺼번에 후려치려고 하였다.
그런데 행동을 주저하게 만드는 약간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퀘스트를 진행하기 위해 벌새의 모험을 할 때 새들의 행동에 대하여 관찰한 적이 있다.
요란스럽게 짹짹거리는 것은 위기를 느끼고 아직 날지 못하는 새끼를 보호하기 위해서이다.
지금 새들이 꼭 그렇게 울면서 위드를 향해서 부리를 들이미는 것이다.
'잠깐 내버려 둬 볼까? 새들이 물어 봐야 가죽에 흠집도 제대로 안 날 테니까.'
새들은 부리로 물기만 할 뿐 그를 뜯어 먹는 게 아니라 붙잡으려 끙끙댈 뿐만 아니라,
몸 아래로도 내려가서 등과 머리로 이고 힘겹게 날갯짓을 하며 떠받쳤다.
-프레야 여신의 축복이 발동되었습니다.
풍요로움을 주관하는 프레야 여신의 은총으로 땅에는 곡물들이 자라나고 꽃은 망울을 활짝 터트리며 나무에는 탐스러운 열매들이 맺힙니다.
들판의 곡식과 벌레를 먹는 새들은 프레야 여신의 자식들이며 전령입니다.
프레야 여신을 위해 나선 새 10만 마리가 당신을 도울 것입니다.
-축복으로 인해 생명력이 완전하게 회복되었습니다.
-허기 상태가 충분한 포만감을 느끼는 수준으로 바뀝니다.
하루 동안 최상의 체력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과연 프레야 여신님이야!"
크리스마스에 교회에 나가서 선물을 받아 온 직후처럼 신앙심이 넘쳐흐르는 위드!
새들은 필사적으로 낡샛짓을 하면서 추락하는 위드를 구하려고 했다. 독수리처럼 제법 큼지막한 녀석도 있지만, 참새처럼 정말 작은 것들도 눈에 띈다.
이 부근 전체에서 날아온 새들의 노력 덕분에 맹렬하게 추락하는 속도가 조금이나마 줄어들기는 했다.
하지만 초대형 흑곰은 보통 몸무게가 아니라서, 새들의 도움으로도 추락의 속도를 약간 늦추는 데 그칠 뿐 그를 구할 수는 없었다.
그러는 사이 탑이 먼저 대신전의중심부를 관통하며 완전히 붕괴되었다.
높이가 몇 킬로미터에 달하는 건축물이 옆으로 쓰러지는 대충격!
공중에 있는 위드가 보기에는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일대의 땅 전체가 거세게 흔들렸다.
대신전을 중심으로 하여 사방으로 뻗어 있는 건물들도 탑이 무너지는 충격으로 인하여 폭삭 쓰러지는 것이 보였다.
파괴의 충격으로 성벽이 거친 바람에 밀려 나가는 것처럼 멀어지고, 경비 탑들이 기우뚱하더니 마찬가지로 쓰러진다.
온통 먼지구름이 일어나서 몬스터와 광신도, 사제 들을 뒤덮었다.
위드도 크고 작은 공성전의 경험이 많았지만 이런 식으로 한 방에 요새와 다름없는 대신전이 엉망진창이 되어서 망가지는 것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과연 내 생각이 좋긴 했구나!"
그리고 위드는 떠받치려고 애쓰던 새들은 그 소리에 놀라서 갑자기 사방팔방으로 도망쳐 버렸다.
"안 돼! 돌아와!"
프레야 여신의 축복으로 모여든 새들이었는데, 얼마 돕지도 않고 흩어져 버리고 말았다.
위드는 아쉬워할 사이도 없이 다시 지상이 무섭게 다가오는 장면을 보았다.
작은 힘이라도 모아서 받쳐 주던 새들이 사라지자 다시 가속력이 붙으면서 땅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절체절명의 순간, 충격을 최소화하여 피해를 줄일 수 있는 대상을 발견!
먼지구름이 심하게 일어나고 있었지만 위드와 마찬가지로 워낙에 큰 녀석이라서 눈에 띈 것이다.
'저놈이다.'
위드는 공중에서 몸을 뒤틀고 팔다리를 펼쳐서, 떨어지는 위치를 조절했다.
높은 하늘에서부터 떨어져 내려운 이 거대한 몸에 담긴 충격에너지는 마치 유성 충돌과도 같으리라.
'혼돈의 드래곤과 싸우게 되리라 짐작은 했지. 하지만 이런 방식일 줄이야.'
목표는 지상에 있는 혼돈의 드래곤 아우솔레토!
검이나 마법으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그냥 떨어지면서 부딪쳐 버리는 것이다.
300미터, 160미터, 75미터, 20미터, 3미터!
무섭게 빠르게 떨어지면서 점점 가까워지는 드래곤의 육체.
위드는 몸 전체를 공처럼 웅크렸다.
"꾸에에엑!"
그러고는 혼돈의 드래곤과 몸통 박치기를 하고 말았다.
**************
혼돈의 드래곤 아우솔레토!
의식을 치르고 있던 드래곤은 하늘로 오르는 탑의 붕괴로인하여 갑자기 무너진 건축물에 정통으로 부딪쳤다.
-그오오오오오오오!
드래곤은 엠비뉴의 세뇌에 완전히 걸려 있는 상태는 아니기에 본능만은 살아 있었다.
심한 고통을 느낀 아우솔레토의 광량한 드래곤 피어가 대지를 떨어 울렸다.
"사, 살려 주소서!"
"으아아악!"
진짜드래곤의 피어는 연약한 생명체들의 정신 따위는 그대로 소멸시키기도 한다. 광신도들이 땅바닥을 뒹굴면서 괴로워하였다.
혼돈의 드래곤을 향해 신성력을 집중시키던 사제들은 탑에 깔려서 목숨을 잃고, 충격으로 땅을 뒹굴고 있었다.
아우솔레토는 감겨 있던 눈꺼풀을 서서히 들어 올렸다.
-여기가 어디인가. 그리고 나는 어째서... 무엇을 위하여 있는가.
시커먼 거체!
블랙 드래곤이 기지개를 켜듯이 땅에서 일어나더니 날개를 활짝 펼쳤다.
-내가 왜 여기 있지?
탑이 무너지면서 부딪치는 바람에 아우솔레토가 입은 피해도 생명력의 삼분의 일 이상이 날아가 버릴 정도로 아주 큰 것이었다.
가히 천문학적인 피해를 입었다고 볼 수 있었다.
그때 강력한 마나의 회오리가 일어나면서 드래곤의 몸으로 흡수되었다.
마나의 흐름을 지배하고 자신의 뜻대로 거두는 드래곤의 권능.
흙먼지가 일순간에 걷히면서 드래곤의 모습을 선명하게 볼 수 있게 했다.
광택이 흐르는 검은색 비늘을 가진, 350미터에 달하는 거체!
위압감을 주는 큰 눈과, 쭉 찢어진 주둥이 사이로 드러나는 날카로운 이빨 그리고 위엄을 상징하듯이 좌우로 꼿꼿하게 서 잇는 수염.
유선형의 근육질 상체와 미끈하게 빠진 허리를 지나서 꼬리의 끝 부분까지, 모든 부분이 지극히 아름답지만 위험으로 가득하여 공포심을 자극한다.
베르사 대륙 최강의 생명체 드래곤이 눈을 뜨고 숨을 깊에 들이마셨다.
후우우우욱.
숨을 쉬는 것조차도 무서우면서도 품격이 느껴진다.
주변의 마나가 자연스럽게 드래곤을 향하여 밀려가서 그의 몸에 흡수되고 있었다.
깊은 잠에서 깨어난 지 얼마 안 되엇찌만, 빠르게 몸 상태를 정상으로 되돌리고 잇는 것이다.
드래곤이 주둥이를 쩍 벌리고 포효하였다.
-나는 왜 이곳에 잇는 것이냐. 그리고 버러지 같은 너희는 왜 알짱거리는 것이냐.
드래곤 피어가 담겨 있는 외침.
엠비뉴의 종들은 감히 거역하지 못하고 괴로움과 답답함에 비명을 터트렸다.
가히 역사서에 한두 번 나올까 말까 한 전설적인 위용이었다.
그때에 하늘에서 위드가 뚝 떨어지며 혼돈의 드래곤의 몸통에 부딪쳤다.
"꾸에에엑!"
-크라라롸라라!
위드와 드래곤, 둘 다 고통에 찬 비명을 질렀다.
**************
대부분의 교통사고는 예측할 수 없이 갑자기 일어난다.
어느 정도 대비를 하고 있더라도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의해서 사고가 벌어지고 나면 정신이 멍해지기 마련!
-추락으로 인해 중상을 입었습니다.
생명력의 극심한 감소!
생명력의 74%가 줄어들었습니다
척추와 목뼈에 손상을 입어서 행동반경이 좁아지고 마비와 혼란, 착시증상이 일어납니다.
오른쪽 뒷발, 왼쪽 뒷발, 오른쪽 앞발이 부러졌습니다. 물건을 쥐거나 걷지 못합니다.
어깨와 옆구리에 큰 부상을 입었습니다.
드래곤과 부딪치는 순간 입은 피해의 메시지!
온몸에서 정상인 부위를 찾아내기가 더 어렵다. 가히 죽음 직전에서 살았다고 해도 좋을 정도의 부상이었다.
위드는 드래곤과 부딪치고 나서 땅을 공처럼 굴러갔다.
탑의 잔해인 크고 뾰족한 바위들이 위드의 몸에 깔려서 마구 으스러졌다.
드래곤 피어로 인하여 땅에 엎드려 있던 광신도들도 흑곰의 구르는 몸뚱이에 의하여 대거 사망!
위드는 수백 미터를 굴러가고 나서 땅에 엎드린 채로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머리가 핑핑 도는군. 스탯 창."
캐릭터 이름: 위드
성향: 초대형 야수
레벨: 825
종족: 반달가슴곰
생명력: 813,943
마나: 433
힘: 2,731
민첩: 1,695
체력: 2,184
지혜: 5
지력:4
투지: 3,219
지구력: 662
인내력: 2,133
예술: 3
카리스마: 1,293
통솔력: 2
행운:3
신앙: 283
매력: 382
맷집: 2,391
기품: 6
정신력: 445
용기: 621
*곰 종족 특유의 특성으로 인하여 인내력과 맷집이 매우 높아졌습니다.
윤기가 흐르는 가죽은 마법 저항력을 높여 줍니다. 다만 사냥꾼들의 표적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대형 생명체로서 높은 생명력과 힘을 보유합니다.
전투 스킬은 일부만 사용이 가능합니다.
정교함이 필요한 검술의 숙련도는 최대 고급 1레벨로 조정됩니다.
위드가 사막에서 노들레의 퀘스트를 진행하며 성장시켜 놓은 높은 스탯들!
조각 변신술의 영향이기도 하지만 전투와 던전 탐험으로 얻은 보너스 스탯들로 인하여 캐릭터는 확실하게 강하게 키워 놓았다.
어디에 내놓아도 꿀리지 않을 정도로 자랑스러운 수준이었다.
인간들 중에서는 적수를 찾기가 어려운 능력이었으며, 사막 군단을 데리고 중앙 대륙을 휩쓸던 위풍당당하던 모습들도 잠깐이나마 떠올랐다.
그때에 두려움이 있었던가?
혹은 잠깐이라도 망설여야 할 정도로 위험한 적을 만났던가?
그렇지만 위드는 자신보다 강한 존재가 있으면 기꺼이 바싸가 몸을 엎드릴 수 있었다.
'남은 생명력은... 대략 10만 정도. 이 정도면 상당히 간당간당하군.'
생명력이 수십만이 되더라도 적들이 많으면 상황을 낙관하기 힘들다.
엠비뉴 교단은 저주와 마법 공격 등을 잘하기 때문에 생명력을 금방 깎아 놓는다. 초대형 흑곰은 덩치가 큰 만큼 적들의 표적이 되기에도 좋을 것 아닌가.
위드의 머릿속에 현재 택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전술이 떠올랐다.
"후으으으음."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가만히 있었다.
실제로도 전투 불능 상태에 빠져 잇었기에 별다른 수가 많지는 않았다.
-대지의 여신 미네의 축복이 함께합니다.
땅이 전해 주는 기운으로 체력과 생명력을 회복합니다.
대지의 연신의 축복으로 인해서 생명력을 회복하면서 휴식을 취하는 수밖에 더 있겠는가.
-크라라라라라라라!
성난 드래곤의 포효가 커다랗게 들렸다.
드래곤은 탑의 붕괴와 위드와의 충돌로도 죽거나 전투 불능에 빠지지는 않은 것이다.
아주 가깝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또 멀리 떨어져 있지도 않다. 드래곤의 광역 마법, 혹은 브레스의 사정거리에는 지척이라고 할 수 있었다.
다행인 점은 드래곤이 반대쪽을 보고 있다는 것이었는데, 지금은 엠비뉴 교단에 바로 공격받고 있어서 위드에게 신경 쓸 정신이 없는 듯했다.
"엠비뉴 신께서 내려 주신 충실한 종에 불과하다. 놈을 붙잡아라/"
엠비뉴 교단의 광신도들은 맹목적인 신앙을 가지고 잇는 만큼 충격과 혼란에서 빠져나오는 속도 역시 빨랐다.
하늘로 오르는 탑이 파괴되면서 정예 병력이 꽤나 많이 목숨을 일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대륙 전체를 전자레인지에 돌려 버릴 수 있을 정도로 많은 병력이 넘쳐 났다.
대신전이 있는 당의 틈새에서도 괴물들이 올라오고, 무너진 건물에서도 광신도들이 달려왔다.
-신기하구나. 버러지 같은 인간들, 너희가 나에게 도전을 하다니. 나는... 크아아아! 머리가 아프다.
아우솔레토는 브레스를 내뿜지는 않았다.
아직 자신에 대하여 정확히 자각도 하지 못하는 샅애!
-전부 죽여 주마.
본능에 이끌려서 팔과 다리로 괴물들을 밟아서 터트리고, 꼬리로 건물을 후려쳐서 부쉈다.
"엠비뉴의 마법사들이여, 공격하라!"
그를 향해 수백 개의 마법 공격들이 시전되었지만 날아오는 도중에 높은 마법 저항력으로 인하여 무력화가 되어 버린다.
아우솔레토가 입은 상처들은 트롤과도 같은 불가사의한 치유력에 의해서 조금씩 회복되어 갔다.
마나가 자연스럽게 움직이면서 스스로에게 치료 마법을 펼치기도 했다.
괜히 살아 있는 전설이라고 불리는 드래곤이 아니다.
아우솔레토가 스스로에 대해 완벽하게 자각하기만 한다면 지금보다 전투 능력이 훨씨니 배가될 것은 틀림없는 샅애!
"제물을 향하여 세뇌의 주문을 완성시켜라."
하지만 대사제 헤울러가 주교들을 데리고 나타나면서 드래곤을 상대로 한 조직적인 대응이 이루어졌다.
그들이 등장하자 강화된 엠비뉴의 오라를 통해서 괴물들과 광신도들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생명력도 늘어났다.
"놈을 소중하게 다뤄라."
"엠비뉴 신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니 정신 지배를 통해서 포획하여야 하리라."
극악의 기사들이 미끼가 되어서 드래곤의 시선을 유인했다.
드래곤 아우솔레토는 땅에서 일어났지만 날거나 빠르게 뛰어다니지는 못했다.
하늘로 오르는 탑과 위드. 두 번이나 정통으로 크게 부딪친 충격도 있지만 장기간의 세뇌로 인하여 육체와 정신이 정상적이지 않았다.
-인갅들... 터무니없는 짓을 저지르는구나. 가소롭게도 나에게.......
아우솔레토의 코와 입에서 시커먼 독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만큼 분노하고 있다는 뜻!
-너희는 예전에 진작 멸망시켜 버렸어야 했다. 살아갈 가치가 없는 종족! 벌레처럼 땅을 기어 다니면서 목숨을 구걸하던 너희가 떠오르는데!
크으으으, 머리가 아프다, 내가 누구지? 생각이 나질 않아.
"놈에게는 허점이 많다."
"신앙심을 마법력으로 전환하여 공격하라."
아우솔레토를 향한 사제들의 일제 마법 공격들이 다시 이뤄졌다.
징벌의 사제뿐만이 아니라 헤울러의 직속 사제들, 참악의 사제들까지 등장했다.
신성력과 마법력을 함께 다루면서 특수한 주문들을 시전할 수 있는 최고위 사제이면서 마법사들!
-안 돼. 너희는 나를 해치지 못한다.
본능적으로 공기의 보호막을 펼쳐서 커다란 자신의 몸을 가리려는 드래곤!
하지만 이는 완벽하 마법이 아니었기에 곳곳에 빈틈이 있었고, 상당수의 마법들은 그 사이에서 작렬하였다.
살육자의 궁수들은 강철보다도 관통력이 월등한 트굿 제련된 화살촉으로 드래곤을 가까이에서 쐈다.
"돌격, 돌격!"
극악의 기사단은 말을 타고 드래곤을 향해서 돌진하여 망치와 도끼를 휘둘렀다.
"나의 두 눈과, 두 귀와, 양 팔과, 두 다리를 엠비뉴에게 바칩니다.
나의 생명을 거두어서 이 땅에 엠비뉴의 섭리를 펼치는 위대한 기사가 태어나게 해 주소서!"
극악의 기사들은 최후의 주문까지도 외웠다. 그러자 그들의 몸에 후광처럼 드리워지는 어두운 빛깔!
스스로의 생명을 신에게 바치며 일정 시간 동안이지만 전투력을 5배 이상 끌어내는 신성 마법이었다.
기사단의 경우에는 동료가 이러한 주문을 외우고 있으면 추가적인 응원 효과도 받았다.
-끋없이 무모하구나.
아우솔레토는 그저 본능에만 의징해서 다가오는 적들을 앞발로 짓밟고 꼬리로 후려쳤다.
드래곤의 입에 깨물려서 잡아먹히는 엠비뉴의 괴물들!
극악의 기사들 또한 고결하면서도 그 무엇보다 단단한 드래곤의 비늘에 결정적인 타격을 입히지는 못하나 채로 목숨을 잃어 가고 있었다.
아무리 강해졌다고 해도 드래곤과의 육탄전에서 우위를 점할 정도까지는 아닌 것이다.
"생포해라."
사제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가까이 다가가서 세뇌와 속박의 주문을 외웠다.
-이게 무슨 짓이냐. 크아아아아!
드래곤은 심한 이질감을 느끼며 사제들을 향해 앞발을 휘둘렀다.
그러자 불덩어리가 공중에서 쏘아져서 사제들이 있던 곳에서 큰 폭발이 일어났다.
마나를 지배하고 다루는 능력을 타고난 만큼 점점 사소한 동작에서도 공격 마법이 발동되는 것이다.
마법 보호막을 펼치고 있었지만 폭발이 워낙 커서 엠비뉴의 사제들 수십 명이 죽어 갔다.
드래곤의 정신력이란 수천 년이라는 시간을 버틸 수 잇을 정도로 뛰어나기에, 조금의 여유만 주더라도 다시금 과거의 자신을 자각할 수 있었다.
드래곤이 스스로를 확인하는 순간, 그동안 쓰지 않았던 기술을 사용하게 되리라.
광역 마법으로 이 일대는 초토화가 되고 브레스로 인해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 사실을 엠비뉴 교단에서도 알고 있었기에, 기사들과 사제들은 드래곤을 다시 안정화시키고 세뇌하기 위하여 덤벼들었다.
'음, 나에 대한 관심은 별로 크지 않군.'
위드의 몸은 먼지와 건물의 잔해로 상당 부분 뒤덮인 상태였다.
물론 지금의 사태를 일으킨 장본인이지만 정작 엠비뉴의 인물들이 설치고 있었기 때문에 얌번히 침묵을 지키기로 했다.
"이놈은 엠비뉴를 믿지 않는군. 이곳에는 신을 믿지 않는 놈은 들어올 자격이 없다."
위드가 있는 장소로 엠비뉴의 종교재판관이 다가왔다.
손에는 시뻘겋게 달아오른 인두를 들고 있었다.
-불신자의 낙인!
신을 믿지 않으며 부정하는 자들에게 찍히는 낙인입니다.
생명력과 체력, 모든 스탯들이 27%까지 감소합니다. 행운을 완전히 소멸시키고, 갖가기 불행한 일들이 벌어집니다.
낙인이 지워질 때까지 모든 신도들의 공격을 받게 될 것입니다.
종교재판관의 낙인은 그만큼 치명적이라고 할 수 있다.
"쿠루루루."
위드는 톡 쏘는 음료수를 마시는 곰처럼 귀여운 척을 해봤다.
"역시 엠비뉴를 믿지 않는 천박한 생명체이다 보니 인상도 더럽기 짝이 없군."
"......."
바로 욕먹음!
폭넓은 친밀도 형성과 아부 정신이야말로 위드의 근본과도 같았지만, 엠비뉴의 종교재판관과는 친해질 수가 없는 처지였다.
위드느 주변을 둘러보아 드래곤과의 싸움 때문에 다른 자들은 이곳에 신경을 쓰지 못하는 것을 확인하고는 조용히 앞발로 종교재판관을 지그시 눌렀다.
"꽤애액!"
종교재판관은 곧바로 사망!
위드의 생명력은 현재 24%까지 회복되어 있었다.
'지금은 덩치도 너무 크고 드래곤과의 전투 장소에 가까이 있어서 위험해.'
앞발로 옆구리에 차고 있는 배낭에서 조각품을 꺼내야 하는데 갑자기 극악의 기사단이 일제히 말을 타고 달려왔다.
"사제님들이 사로잡을 수 있도록 드래곤을 포위하라."
"몇 분만 버텨라. 영원히 종속될 노예를 위해 너희의 보잘것없는 생명을 바쳐라!"
극악의 기사단이 광신도들과 같이 드래곤을 향해 달려가면서 지나쳤다.
"......."
너무 큰 움직임을 보이면 저들에게 들킬까 봐 위드느 얌전히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슬금슬금.
땅을 기어서 조금씩 물러났다.
'뭐, 어떻게든 사는 게 중요하지 않겠어?'
아우솔레토와 엠비뉴 교단의 전투는 소리만 들어도 무지막지하기 짝이 없었다.
드래곤도 부담스럽지만 엠비뉴 교단의 총력전이 전부 뭉쳐 있는 지금 발각된다면 일이 어떻게 되겠는가.
이제까지 모험을 하며 늘 멋지고 우아한 모습만 보여 준 것도 아니었으니 땅을 약간씩 기어서 움직이는 것에는 조금의 거리낌도 없었다.
훈련받은 특수부대처럼 신속하면서도 정확하게 눈치를 보면서 기어서 움직였다.
'조금만 더 멀어지는 거야. 그러고는 뒤도 안 돌아보고 돔아쳐야지.'
뒤에서 엠비뉴 교단과 드래곤이 싸우는 소리가 시끄럽게 들리고 있었지만 위든 야금야금 기어가는 데에만 집중했다.
바로 주변에 누군가가 나타나거나 하면 몸을 딱 굳히고 가만히 있다가, 관심이 멀어진 것 같으면 네발을 조금씩 움직여서 기었다.
그러가가 갑자기 벌어진 정적!
지금 이유를 파악하지 않으면 왠지 후회할 것 같아서 살짝 눈을 뜨고 뒤를 돌아보았다.
아우솔레토는 엠비뉴 교단과 싸우느라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처럼 위드가 있는 뒤쪽은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딱 뒤를 돌아보았는데 마침 위드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
-.......
-여기서 부터 관수리 타이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