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달빛조각사 39권 : 3) 가시밭길의 선택 (260/520)

3) 가시밭길의 선택

위드는 드래곤과 함께 뒤엉켜서 추락을 하면서도 뒤통수를 계속 공격했다.

 -드래곤 아우솔레토의 뒷머리를 때렸습니다.

  드래곤의 약점 부분을 공격하여 126,381의 피해를 입힙니다.

  말살의 검이 32,282의 화염 데미지를 가합니다.

  둔중한 타격으로 상대의 민첩과 지혜를 일시적으로 저하시킵니다.

  혼란으로부터의 회복을 지연시킵니다.

어마어마하게 늘어난 공격력!

드래곤의 마법 보호막과 단단한 비늘은 이제 무용지물이 되었다.

위드의 공격력이 이제야 온전하게 들어가고 있는 것이었다.

매번의 공격마다 드래곤의 능력을 감소시키는 특수한 효과까지 작렬!

띠링!

 -강한 공격의 정확도와 연속성에 있어 인간 중에서 가장 뛰어난 업적을 세웠습니다.

위드와 드래곤은 한 덩어리로 엉켜서 땅에 떨어졌다.

마지막 순간에 할 수 있는 것은 드래곤에게 깔리지 않기 위하여 힘껏 공격을 가하고 나서 튕겨 나가는 것이었다.

"커억!"

위드는 건물 위로 떨어져서 지붕을 그대로 뚫고 아래층으로 떨어졌다.

 -몸 전체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25초 동안 온몸에 저릿저릿한 느낌이 돌면서 마비 현상이 발생합니다.

  생명력이 12,938 감소합니다.

초대형 흑곰이었을 때와는 달리 추락의 피해가 그렇게 크지는 않다.

태양의 전사이며 용사인 인간의 몸으로 돌아온만큼 유리한 부분도 있는 것이다.

위드는 가뿐하게 몸을 일으켰다.

"추락도 자주 하니 익숙해지는군."

주변을 둘러보니 어린 아기의 시체가 보글보글 끓고 있는 사제단의 연구실이었다.

사제들은 갑작스러운 전투에 동원되어서인지 보이지 않았고, 대신 이것저것 널려 있는 물건들이 많았다.

위드는 본능적으로 연구실에 있는 물품들을 살폈다.

"감정!"

 『 활력의 물

시체를 오랜 기간 삭혀서 만든 물.

엠비뉴의 신성력과 결합되어 믿을 수 없는 활력을 가져다준다.

사소한 부작용으로는, 돌연변이 세포가 발생하여 자신의 몸에서 괴물을 태어나게 할 수 있다.

태어난 괴물이 공격당하면 자신의 생명력이 감소하게 되며, 사망 시에는 큰 충격을 입게 됨.

효과 : 어떠한 상황에서도 체력과 생명력이 절반 이상 회복됨.

       신앙심이 영구적으로 4 감소.

       한 달간 엠비뉴 외의 다른 신의 축복이 부여되지 못함. 』

"이건… 내가 마시는 대신 다른 사람 먹이면 괜찮겠군."

연구실에 있는 다른 물품들도 효과는 기가 막히지만 어느 정도의 부작용들이 있는 건 비슷비슷했다.

노력 없이 얻어지는 큰 힘은 중대한 희생을 요구하는 법!

창문 근처로 다가가 밖을 살펴보니 엠비뉴 교단의 기사들과 사제들이 아우솔레토를 견제하며 공격하고 있었다.

아우솔레토는 그렇게 심하게 당하고 추락까지 한 뒤라서 움직임이 정상적이지 않았다.

사제들도 활동을 하는 자들이 100명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로 크게 약화되었지만, 세뇌의 능력이 있는 붉은 채찍들이 드래곤을 그물처럼 감싸고 동여매고 있었다.

건물과 대지를 자세히 살펴보니 위에서 내려다볼 때보다 더욱 엉망진창이다.

브레스의 영향으로 인해서 중독되어 죽어 가는 광신도들이 속출하고 있었으며, 연기에만 닿아도 그대로 몸을 녹여버리는 독 웅덩이들이 도처에 널려 있었다.

충격에 의해서 간당간당하던 건물들도 지반과 골조가 부식되어서 차례대로 허물어졌다.

드래곤의 브레스 공격이 초래한 어마어마한 위력!

위드는 조금 전까지 친구라고 부르면서 함께 싸웠던 드래곤을 구하고 싶은 마음은 그다지 들지 않았다.

"저놈은 여기서 다시 당해 줘야지."

세뇌된 드래곤의 유통기한이 워낙에 짧았으니 이쯤에서 손을 놔야 했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고,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것이야말로 바람직한 인생철학!

"적의 습격이다!"

"방해자가 나타났다. 막아라!"

그런데 갑자기 큰 소란이 일어났다.

백발의 창창한 노인이 전장으로 뛰어들어서 엠비뉴의 사제들을 휘황찬란한 빛의 검으로 베는 것이다.

검이 휘둘리면 독수리와 같은 새들이 나타나서 폭발하며 기사들을 한꺼번에 날려 버렸다.

위드에게는 너무나도 익숙한 모습이었다.

"가증스러운 엠비뉴 교단! 이베인을 살해한 원수를 갚겠노라!"

검술 마스터 자하브의 갑작스러운 등장!

그는 혼란에 빠진 대신전으로 들어와서 적당한 장소에 잠복하여 지나가는 사제들을 암살자처럼 해치우면서 활약을 하고 있었다.

드래곤이 날뛰는 장소에서는 자하브라고 하더라도 아무래도 움츠러들기 마련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 제법 잠잠해지고 다들 관심이 드래곤으로 향해 있으니 전장으로 느닷없이 뛰어들어 왔다.

"불신자가 또 있다."

"대업을 방해받지 않기 위해서 어서 처리해야 한다."

"신탁이 내려온 그 역적도 꼭 찾아라!"

극악의 기사들이 자하브를 붙잡으려고 덤벼들었지만 그는 미끄러지듯이 움직여 적들의 공격을 흘려 버리며 사제들을 베었다.

검술 마스터, 위드를 따라서 전쟁의 시대에서 강해진 그의 빛의 검이 지나칠 때마다 기사들과 고위 사제들은 허무하게 생명을 잃었다.

"아, 안 돼! 엠비뉴의 뜻을……."

"세뇌를 끝내지 못하였는데……."

드래곤을 향한 신성 마법을 발현 중이라서 고위 사제들은 무방비 상태였다.

극악의 기사단과 괴물들이 다수 있었지만 그들은 빠르게 움직이는 자하브를 잡지 못했다.

엠비뉴 교단의 사제 집단은 드래곤의 브레스에 의해서 절반 이상이 무력화되고, 또 350명이 넘는 숫자가 목숨을 잃었다.

위드의 화살에 죽은 이들도 상당히 많다.

엠비뉴 교단 전체에서 차지하는 규모는 작았지만 사제 집단이야말로 핵심적인 역량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그들이 한꺼번에 떼죽음을 당했다.

"우오오오오, 악당들을 물리치자."

"인간성을 상실한 자들을 모두 죽여!"

"랄프의 복수를 하겠다."

큰 건물에서 옷차람이 허름한 죄수들이 무기를 들고 우르르 몰려나왔다.

그들의 뒤에서는 온몸에 양념을 바른 전이가 당당하게 걸어왔는데, 죄수들을 구출하고 설득해서 함께 나오는 데 성공한 것이었다.

★★★★★★★★★★★★★★★★★★★★★★★★★★

전이는 제물로 바쳐지기 위해 온몸이 갖은 양념에 절여 졌다.

"크으윽, 나의 복수는 대제님께서 꼭 해 주실 것이다. 명예롭게 죽지 못하고 광신도들의 음식이나 된다니 원통하다. 네놈들은 나를 먹으면 반드시 배탈이 나서 후회할 것이다."

간수들은 그를 비웃었다.

"양념 냄새가 정말 좋군. 바로 구워서 먹고 싶어. 입안에서 살살 녹겠지."

"그랬다가는 우리까지 같이 구워질걸. 곧 죽을 놈이니 말 상대나 해 주자고."

"그래. 어이, 음식 재료, 여기에는 무슨 일로 왔지?"

"너희를 물리치기 위해서 대제님과 함께 왔다. 그리고 나는 질기고 맛도 없다."

"그거야 먹어 보면 알겠지."

이때, 한 무리가 등장하여 전이를 구해 주었다.

"여기에 계셨군요."

"헤스티거!"

헤스티거가 미리 구출한 엘프들과 함께 죄수들이 있는 감옥을 장악한 것이다.

원래 그들은 대신전의 마물 훈련소와 같은 중요한 건물들을 점령하려고 하였지만, 드래곤이 활동을 하면서 목표들이 와르르 무너졌다.

지상에는 엠비뉴의 병력으로 가득 차 있었으며, 잔해들로 인해서 이동할 수 있는 길목까지도 막혀 버리고 말았다.

대신 땅으로 향하는 통로가 보여서 지하 감옥으로 내려 왔다.

헤스티거의 도움으로 굵은 쇠사슬에서 풀려난 전이가 투덜거렸다.

"으흠, 이곳은 나 혼자서 알아서 정리할 수 있었는데 괜한 발걸음을 했군."

"죄송합니다. 대제님은 만나셨습니까?"

"당연하지. 충직한 부하인 나는 이미 대제님을 만나고 그분의 계획을 들었지. 대신전 안에서 만나자고 하셨다."

"저보다 일찍 오셨겠군요."

"그럼. 지금은 대제님이 부르시기만 기다리는 중이었네."

조각 생명체들도 위드의 행동을 따라서 헤스티거를 약간 불편하게 생각했다.

어떤 위험한 임무든 훌륭하게 수행하는 미남자는 어디서든 시기를 당하기 마련!

헤스티거는 그럼에도 정중함을 잃지 않고 남자들마저도 빠져들게 하는 보석 같은 미소를 지었다.

굵은 눈썹과 가지런한 흰 이빨, 크고 맑은 눈빛.

몸 전체는 아름다운 조각상처럼 균형과 비례에 있어서 완벽하다.

헤스티거와 조각 생명체들은 근육과 육체미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근육질의 몸이 가진 매력도 결국 얼굴에서 완성되는 법!

헤스티거의 찢어진 상의 사이로 약간씩 보이는 가슴근육과 팔근육은 매력 그 자체로 엘프들의 시선을 끌었다.

반면에 중요한 부위만 최소한으로 가린 채 기름장까지 발린 전이에게는 아무런 관심도 두지 않았다.

코를 움켜쥐고 근처에도 다가오지도 않는 모습이, 음식물 쓰레기와 비슷하게 여기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과연 전이 님께서는 저보다 일찍 와 계셨을 줄 알고 있었습니다."

"무, 물론이지."

"땅이 거세게 흔들리는군요. 지금의 이 활약은 대제님께서 움직이시는 것 같습니다."

"우리도 어서 준비하고 나가도록 하세."

"예! 저는 엘프들과 함께 다른 곳을 조금 더 둘러보겠습니다."

그리하여 전이는 풀려나고 죄수들과 함께 엠비뉴 교단을 공격할 수 있게 되었다.

★★★★★★★★★★★★★★★★★★★★★★★★★★

"모두 해치워라!"

"야호른의 전사들이여, 이들을 해치우고 고향으로 돌아가자!"

"우와아아아아아!"

긴 시간 갇혀 있던 노예들과 죄수들은 무기를 들고 엠비뉴 교단의 병력과 맞붙었다.

위드가 멸망시킨 여러 왕국들은 명예와 도덕을 아는 정의로운 기사들을 몰래 엠비뉴 교단에 바쳐 왔다.

왕족과 귀족들은 그 대가로 마법 물품과 사제들의 파견 등을 얻을 수 있었고, 또한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폭저을 지속할 수 있었다.

엠비뉴의 포로 사냥꾼들이 데려온 드워프, 엘프, 거인족의 후예, 전설에만 존재하는 전사 부족, 요정 부적까지도 탈출해 나왔다.

엠비뉴 교단에서는 그들을 마력을 증가시키기 위한 실험 대상이나 제물로 닥치는 대로 잡아 왔던 것이다.

위드는 포로들이 활약하는 모습을 잠시 관찰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오래는 못 싸울 것 같군."

기나긴 감금 생활로 인해 부상도 적지 않았고 체력도 많이 떨어졌다.

나름대로 한가락씩은 하는 포로들이었지만 엠비뉴의 지상 병력을 조금 분산시키는 효과밖에는 없으리라.

헤울러와 사제들의 희생은 막대했고, 대부분이 무력화되었다.

신성력이 멀쩡한 사제들도 부득이하게 드래곤에 전념하고 있는 지금이 아니었더라면 단숨에 전멸했을지도 모를 정도였다.

드래곤을 길들이지 못하면 전멸할 수밖에 없는 엠비뉴 교단 측에서는 포로들의 탈출로 방해를 받으니 더욱 다금해진 명령을 내렸다.

"포로들의 존재 가치는 이제 사라졌다. 엠비뉴의 세 번째 팔과 다섯 번째 팔이여, 저들의 피로 이 땅을 적시고 육체는 제물로 바쳐라!"

참악의 사제 고위 간부 중 하나의 명령이 떨어졌다.

할 일을 찾지 못하고 잠잠하던 괴물들이 일제히 출동하고, 엠비뉴 교단의 궁수 부대가 화살을 포로들이 있는 방향으로 돌렸다.

엠비뉴의 8개의 팔은 거느리고 있는 군대의 병과 특성을 나타내기도 한다.

포로들은 엠비뉴의 기사들과 싸우고 있었지만 궁수드은 자기편에게 화살을 쏘는 것에도 주저함이 없었다.

포로와 기사, 누구 할 것 없이 엠비뉴의 궁수들에 의해서 고슴도치 신세가 되었다.

갑옷과 방패도 없고 생명력도 낮은 포로들은 화살을 얻어 맞으면 금방 목숨을 잃었다.

인간들이 나타나자 뿔뿔이 흩어져 있던 괴조들도 그들을 잡아먹기 위해 땅으로 다가왔다.

그때 헤스티거의 고함 소리가 들렸다.

"지금입니다. 어서 저들을 도와줍시다!"

아직 남아 있는 대신전의 높은 건물들에서 궁수들과 사제들을 향하여 일제히 화살이 날아왔다.

유난히 번쩍이는 은빛 화살들을 빠르고 정확했으며, 화살촉에는 정령들까지 매달려 있었다.

불의 정령들은 큰 폭발을 일으키고, 물의 정령들은 부근을 물바다로 만들었다.

몬스터들이 급류에 휩쓸려 가며 제멋대로 엉키게 되면서 풀려난 포로들의 주변에 약간의 여유가 생겼다.

갑작스러운 이 광경만큼은 위드에게도 감명 깊게 다가왔다.

"역시 엘프들을 붙잡아서 부하로 부려 먹었어야 하는데."

사막 전사들은 칼 쓰는 데는 능숙하고 상대가 누구여도 물러서지 않을 만큼 용감하다.

하지만 엘프만큼이나 민첩하거나 특수한 전투에 최적화되어 있진 않았다.

얄밉지만 헤스티거가 엘프들을 지휘하면서 엠비뉴 교단의 궁수대와 사제단에 큰 피해를 입히고 있는 장면은 사뭇 통쾌하기까지 했다.

현재까지 위드가 대부분을 이끌어 왔지만, 그다음의 전투 공적은 단연 헤스티거의 차지였다.

"그러면 아직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건 전일과 전삼뿐인가."

위드가 퀘스트를 함께하기로 하고 데려온 5명의 동료 중에서 자하브, 전이, 헤스티거는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이 무사히 여기까지 와서 활약을 하는 걸 보니 대견하기 짝이 없었다.

그리고 곧 조각 생명체 부하 중의 첫째인 전일도 나타났다.

사방에서 난전이 벌어지는데 혼자 이상한 행동을 하고 있어서 눈에 띄게 된 전일!

그는 비틀거리면서도 버티고 서서 무너지려는 잔해들을 등으로 떠받치고 있었다.

전일은 강력한 독에 중독되어서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상황에 처했다.

생명을 구해 줄 수 있는 신성력을 따라서 온 그는 아헬른을 찾아서 구출하고 있는 것이다.

위드는 잔해 더미 사이에서 아헬른이 발현하는 신성력의 맑은 빛까지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인색한 칭찬!

"이 무능한 놈들! 이걸로 전삼이를 빼고 다 왔군."

동료들만 온 것도 아니었다.

장벽 너머 메마른 울부짖는 폐허에서 우글거리던 몬스터들까지도 대신전으로 걸어왔다.

엠비뉴 교단의 마력에 의하여 왜곡된 불행한 생명들이었지만, 그들은 거침없이 덤벼들었다.

"저리 가라. 안 돼!"

광신도와 사제에게 덤벼들어 마구 뜯어 먹는다.

엠비뉴의 마력을 더 얻으면 몸에서 일어나는 고통이 그치고 더욱 강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대신전을 향하여 사방에서 몬스터들이 끝도 없이 계속 몰려오고 있었다.

"교단을 다시 일으키기 위해서라도 성지를 수호해야 한다."

"몬스터들이 성문을 넘어오지 못하도록 막아야 해!"

"허물어진 성벽을 지나서 계속 몰려들고 있다. 그 너머로는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야!"

 - 크오오오오오!

그를 구속하던 사제들의 제어력이 약해지니 드래곤은 다시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붙잡혔던 아우솔레토에게 다시 자유가 주어지려고 하는건 엠비뉴 교단 사제단의 피해가 워낙에 계속해서 막심하다는 증거.

단 하루 만에 대륙에서 최대˚최고 층의 건물이 옆으로 폭삭 주저앉고, 드래곤이 날뛰어서 브레스까지 뿌려졌으니 이만저만의 손실이 아니었으리라.

"으음, 좋은 광경이야. 엠비뉴 교단이 아주 폭삭 망하고 있군."

하루 전까지만 해도 남부럽지 않던 엠비뉴 교단이 지금은 처참한 상황에 처했다.

 - 너희는 누구냐! 왜 나를 공격하는 것이지? 아프다, 아파! 이 고통은……. 쿠아아아아아아! 견딜 수가 없다.

자하브와 엘프들의 화살 공격에 의해 사제단은 허겁지겁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조금 전이었으면 물샐틈없는 보호막을 펼쳤을 테지만, 지금은 서 있는 사제들 중에서 멀쩡한 이들을 찾기가 어려웠다.

세뇌의 구속이 약해지다 보니 드래곤 아우솔레토가 거칠게 포효하면서 가까이 있는 적들을 잡아먹었다.

생명력이 거듭 손실되어 커다란 육체는 느려지고, 빠르고 정확하게 움직이지도 못해서 계속 휘청거렸다.

태어난 이후로 최악의 날을 경험하고 있다고는 해도 드래곤은 지상 최강의 생명체!

위드에 의해 비늘이 파괴되고 하늘에서 아무 보호 마법도 없이 떨어지면서 막대한 피해를 입었지만, 잠시만 내버려 두면 천천히 원래대로 회복이 되리라.

엘프들도 어느 쪽을 우선 공격해야 할지 다소 혼란을 겪고 있는 모습이었다.

엠비뉴 교단에 깊은 원한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드래곤이 회복되면 전부가 죽게 되고 만다.

헤스티거조차도 이대로 사제들을 공격하는 편이 옳을지 드래곤을 견제하는 쪽이 난을지를 결정짓지 못하고 우물쭈물했다.

"드래곤부터 처리하는 게 우선이겠지."

위드는 창문을 박차고 높이 뛰어올랐다.

현재의 레벨로는 100미터에 달하는 도약도 평범하게 해낼 수 있었다.

하지만 바로 드래곤의 뒤통수를 때리는 대신에, 우선 전일이 있는 주변으로 내려앉았다.

극악의 기사들이 전일을 향해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자기 목숨도 챙기지 못하는 주제에 남을 살리려고 하다니 가소롭군. 엠비뉴를 위해 죽을 시간이다. 커억!"

"아직 교훈이 부족하군. 악당은 그렇게 말이 많으면 당하는 거야."

드래곤의 뒤통수를 때린 진정한 악당답게 극악의 기사들을 단숨에 정리!

독 기운에 의해 얼굴이 시퍼렇게 변한 전일이 반갑게 맞이 했다.

"대제님, 저를 구해 주러 오셨군요."

"어, 그래."

위드는 건성으로 대답을 하고는 잔해들을 치웠다.

그리고 잔해에 뒤덮여서 위험에 빠져 있던 아헬른과 노예들을 구출할 수 있었다.

"우우욱, 깔려서 죽을 뻔했군. 황제여, 나를 구하러 와 주어서 정말 고맙소이다."

"성자 아헬른 님께서 여기에 계시는 줄은 몰랐습니다. 여기에는 왜 갇히게 된 것입니까?"

"포로들 사이에서 지켜보면서 저들의 행사를 방해할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오. 그런데 갑자기 저들의 탑이 무너지는 것이었소."

"……."

아헬른이 초주검이 되었던 것은 따지고 보면 다 위드 탓이었다.

"흠흠, 이렇게 위기에 처해 있다는 걸 알았다면 진작 구해드렸을 텐데요."

"폐를 끼치게 되었구려. 기적을 부르는 신성력의 힘을 모아서 벗어나려고 하였는데, 자꾸 땅이 흔들리고 건물이 무너져서 그 무게가 나를 누르는 바람에……."

그러고 보니 드래곤과 함께 쿵쾅거리면서 싸울 때 이 부근을 몇 번 강하게 밟고 지나쳤던 것 같기도 했다.

괜히 적들의 이동을 방해한다면서 건물을 밟아 버리거나 완전히 부수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지금은 경황이 없습니다. 지나간 일은 넘기시고, 어서 몸부터 추스르시지요."

"알겠소이다. 신께서 아직 이 몸에게 할 일이 남아 있다고 하신다니 움직여야 하겠지요. 찬란한 회복!"

아헬른의 몸에서 광채가 일어나더니 순식간에 멀쩡하게 회복되었다.

자기 스스로를 완전한 상태로 치유할 수 있는 신성 마법 계열 궁극 스킬 중의 하나!

"저, 저도……."

중독 상태가 심각하던 전일은 자신도 치료해 달라고 말하려고 하였다.

여기까지 아픈 몸을 이끌고 온 이유도 아헬른에게 치료를 받기 위함이 아니던가.

위드가 슬쩍 몸으로 전일의 앞을 가리며 말했다.

"전쟁이 급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저에게 강한 축복을 내려 주시지요."

"뒤에 있는 저분이 많이 아파 보이는데 먼저 치료를 하고 돌봐 주어야 하지 않겠소? 그대를 위한 신의 축복을 실현시키기에는 다소의 시간이 필요하다오."

"당장 죽진 않습니다. 저렇게 내버려 둬도 침 좀 바르면 나을 겁니다."

"진심으로 아파 보이는데……."

"엄살입니다. 저도 여러 번 속아 봤지요. 그리고 워낙에 끈질긴 게 사람 목숨이라서요."

찬물 더운물 가리지 않고 항상 위아래가 있는 법이다.

사실 위드도 현대사회인으로서, 격식이나 지위 고하를 그다지 따지며 살아온 편은 아니었다.

그러나 사막의 대제가 되고 나서부터 위계질서를 철저하게 세우게 되었다.

콩 한 쪽이 있다면 나누어 먹는 게 아니라 당연히 권력을 가진 자신의 것!

"그런 생각이라면 황제의 말마따나 급한 전투부터 마무리를 짓는 편이 옳겠소이다. 이 난국을 헤쳐 나갈 수 있는 것은 인간 중의 황제인 그대뿐이라고 할 것이니."

아헬른은 두 손을 모아서 신성 주문을 외우기 시작하였다.

고대에 신이 직접 인간에게 알려 주었다는 신성 주문!

"인간에게 허락된 힘, 지혜, 투지. 깊고 어두운 곳에서 나타나는 악한 이들을 굴복시키고, 옳음을 행할 수 있는 무한한 잠재력을 일깨우게 될지어다."

아헬른의 몸에서 후광이 비치듯 빛무리가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보토 축복이 짧은 주문 이후로 번쩍하고 빛이 일어나고 끝나는 것에 비하면 사전 작업부터가 비할 수 없이 길었다.

"그대의 손은 신이 하사한 검을 휘두를 것이고, 몸의 고통은 신의 두꺼운 갑옷이 막아 주게 되리라. 그 외의 모든 어려움들도 신의 이름으로 파훼하게 될지니… 신성 강림!"

띠링!

 -신성 강림은 당신이 가지고 있는 신앙심에 따라서 그 효과가 다르게 적용됩니다.

  신체가 완벽하게 회복됩니다.

  정신과 육체의 잠재력이 개방됩니다.

  생명력과 체력, 마나의 최대치가 3.5배로 늘어납니다.

  자연 회복 속도가 트롤처럼 빨라집니다.

  추위와 더위, 모든 이상 현상에 대한 내성이 96%에 육박하게 될 것입니다.

  중독에 대해 완전한 면역력을 가집니다.

  공격을 감지하면 마법 저항력이 저절로 발동됩니다.

  1단계 이상 약한 언데드의 경우 상대의 생명력에 무관하게 강제 소멸 시킬 수 있습니다.

  모든 스탯이 최소 250에서 469까지 늘어납니다.

  신의 무기를 사용 가능해집니다.

  신의 갑옷을 사용 가능해집니다.

"이건 또 무슨……."

전투에 유리한 축복 정도를 예상했을 뿐 위드도 이 정도로나 강력한 신성 주문을 기대하진 않았다.

"역시 성자는 전문직이었어. 끝내주는군."

허름한 화장실에서 일을 보다가 처음으로 비데를 쓴 것 같은 벅차오르는 감동도 잠깐이었다.

금세 불평이 나왔다.

"이런 게 있었으면 진작 좀 걸어 줄 것이지."

물에 빠진 사람 구해 주면 예금통장 내놓으라고 하는 세상!

이런 축복이 있었다면 지금까지 죽을 고생도 좀 덜했을 게 아닌가.

지금까지 위드는 말살의 불도마뱀 왕의 가죽으로 만든 정복자를 위한 존엄한 가죽 갑옷과 말살의 검을 착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위드의 앞에 투명하기까지 한 맑은 검과 방패, 갑옷이 신체 부위별로 놓였다.

흉갑에서부터 어깨 보호대, 허리띠 등은 물론이고 부츠까지 완벽한 풀 세트!

등 부위와 부츠에는 특히 천사들이나 착용하는 새하얀 날개까지 달려 있었다.

"이런 건 괜히 시간을 끌면서 머뭇거리면 안 돼. 좋은 악당이 되기 위해서라도 바로 입어 줘야지."

위드는 검을 들고 갑옷을 착용했다. 거의 무게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가벼웠고, 따스한 느낌이었다.

"감정!"

『 군신 토르의 검 : 내구력 210/210. 공격력 232~766.

인간이 상대할 수 없는 적을 없애기 위하여 신이 하사한 검.

신의 뜻과 섭리를 따르는 성자만이 소환하거나, 축복을 통해 검을 사용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할 수 있다.

한차례 출현하게 되면 최소 100년간은 세상에서 모습을 감춤.

제한 : 인간 중에 가장 강한 자.

옵션 : 악에 물든 자, 악마를 공격할 때에는 공격력이 4배로 발휘됨.

       천적이나 유일한 약점에 관계없이 모든 적들을 생명력을 감소 시켜서 죽일 수 있음.

       그 외에 아홉 가지의 특성은 확인 불가능.

       정보 부족으로 알 수 없음. 』

"으으음!"

위드의 입에서, 백화점에서 판매하는 명품 가방의 가격을 알았을 때와 같은 신음 소리가 났다.

무지막지하다 못해서 대출 사기 같은 공격력!

갑옷들은 부위별로 다 확인해 볼 엄두도 나지 않았다.

이런 난전에서 갑옷 부위별로 어떤 특성이 부여되어 있는지 다 알고 외워서 써먹기는 힘든 면이 있다.

하나하나 직접 장만한 것이라면 계산해서 몬스터의 특성이나 공격 패턴에 맞춰서 전투법까지 바꿀 수 있으리라.

하지만 지금은 몸으로 때우면서 알아 가는 편이 현명한 방식.

아헬른이 말했다.

"신께서 계속 그대를 지켜보실 것이오. 황제여, 무운을 빌겠소이다."

"물론입니다. 적들을 이 검으로 제압할 것입니다. 근데 앞으로도 이 검을 좀 가지면 안 되겠습니까? 딱히 다른 의도는 없고, 기념품으로 간직하고 싶은데……."

"신의 물건이 이 세상에 돌아다니면 안 될 일. 전투가 끝나면 회수될 것이오. 아쉽겠지만, 눈앞의 전투에 집중해 주면 좋겠구려."

위드는 세뱃돈을 빼앗긴 어린아이 같은 기분이었다.

"아, 뭐, 그러면 그렇게 하죠."

"그리고 아우솔레토를 조심하여야 하오. 엠비뉴 교단의 대사제 헤울러와 드래곤은 신들이 형성해 놓은 이 세계의 균형을 파괴할 수 있으니까. 만약 드래곤이 제정신을 차려서 모두가 위험해지게 되면 내 영혼과 육체를 바쳐서 봉인을 하겠소이다."

"정말이십니까?"

"그런 일이 벌어져서는 안 되겠지만, 만의 하나 그리되면 그렇게 해야지요."

"과연 훌륭하십니다."

위드는 중요한 정보를 얻어 냈다.

아헬른만 살아 있다면 설혹 드래곤이 폭주를 하더라도 방지할 수 있는 안전장치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목적을 달성한 이후에야 아헬른이 전일을 치료할 수 있도록 자리를 비켜 주었다.

"가야겠군. 이제 나의 목표는……."

그 어떤 장소에서도 적들의 행동들을 파헤치는 넓은 시야.

엠비뉴의 병력은 도처에서 포로들, 노예들과 격렬한 전투를 벌였다.

대신전은 넓은 규모와 큰 건축물들을 유지˚보수하기 위해서도 대량의 노예들을 필요로 했다.

마물들의 먹이로 삼기 위해서도 종족을 가리지 않고 강한 전사들을 많이 붙잡아 왔는데, 분노한 그들이 풀려나서 전투를 펼치고 있었다.

전이와 헤스티거가 절반 정도씩 나누어서 전체를 지휘하고 있는데, 그들의 통솔력은 부대를 면밀하게 다스릴 수 있을 정도로 충분했다.

위드가 없더라도 몬스터를 견제하고 엠비뉴 교단의 병력과 잠시 동안 싸울 수는 있다.

이곳에서 시작과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광신도들과 괴물들이 우글거리지만 그들 전체를 이길 필요는 없지 않은가.

하늘로 오르는 탑이 무너지면서 엄청난 잔해들이 대신전에 쏟아지게 되었다.

다른 건물들까지 붕괴되거나 옆으로 쓰러지면서 장애물 역할을 했다.

수비에 유리한 지형을 장악하고 진입로를 줄인다면 괴물들과 기사들은 함부로 쳐들어오지 못하리라.

위드의 눈이 드래곤과 엠비뉴 교단을 번갈아서 보았다.

드래곤을 선택한다면 앞으로 몇 년간 있을까 말까 한 사냥 기회를 잡을 수 있다.

엠비뉴 교단을 공격한다면 전력이 크게 약화되어 있는 헤울러를 처치하기에 정말 유리한 상황이다.

엠비뉴 교단의 기사들 정도는 원래도 위드에게 거의 있으나 마나 할 정도였는데, 지금은 축복까지 부여되어서 더더욱 눈에도 들어오지 않았다.

퀘스트의 성공 유무가 결정지어질 수도 있는 선택의 순간.

"최악의 경우에도 내가 죽지만 않는다면 아헬른이 알아서 해결해 줄 거야."

위드는 가볍게 땅을 굴러 드래곤 아우솔레토를 향하여 날아갔다.

와이번이 장애물이 없는 높은 하늘에서 최대 속도로 비행하는 것과 비슷한 속도였다.

평소에 조각 변신술을 써서 날갯짓을 하는 새로 변신을 해보지 않았다면 비행에 적응하는 데만도 시간을 상당히 많이 잡아먹었으리라.

 - 전부, 전부 다 먹어 버릴 것이다.

드래곤 아우솔레토는 엠비뉴 교단을 혐오하면서 가까이 있는 인간들을 밟고 몸으로 뭉갰다.

몸 전체에 생긴 부상들은 아주 약간씩은 회복이 되고 있었지만 아까와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엠비뉴의 사제들은 정말 막대한 피해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붉은 채찍을 휘두르며 드래곤을 세뇌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헤울러와 참악의 사제들조차도 아직 활동을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세뇌는 원활하고 빠르게 이루어지지 못했다.

신앙심으로 만든 붉은 채찍이 드래곤의 격렬한 움직임에 의해 자꾸 끊어지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엠비뉴의 기사들도 드래곤에 의해서 다수가 밟혀서 죽어 나갔다.

"지금이로군."

위드는 엠비뉴 교단에서 드래곤의 시선을 끄는 사이에 뒤쪽으로 슬그머니 접근했다.

 - 너, 너는 반드시 죽어야 한다!

드래곤 아우솔레토가 갑자기 몸을 돌리면서 위드를 향하여 분노의 외침을 터트렸다.

대신전에서 가장 나쁜 놈이 누구인지를 정확히 알아차린 상황!

"저자다! 저자가 오늘 모든 일을 그르치게 만든 원흉이다!"

"엠비뉴 신께서 내려 주신 신탁은 역시 옳았다. 신께서 마련해 준 신수는 조금 후에 길들여도 되리라. 모든 일에 앞서 저자를 해치워라!"

엠비뉴 교단 역시 위드에 대한 적대도는 최고 상태였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정말 다 된 밥에 재를 뿌린 격이 아닌가.

엠비뉴의 궁수들, 기사들이 위드를 향해서 일제히 무기를 돌렸다.

드래곤도 두 발로 땅을 울리면서 달려왔다.

"이놈의 인기란!"

위드는 드래곤의 가슴을 향해 수십 미터를 뛰어오르다가 앞발이 날아오자 비행 방향을 바꾸어서 지상으로 뚝 떨어졌다.

하지만 아우솔레토는 그러한 부분까지도 예상을 했다는 듯이 아래에서도 발을 차올린다.

그때에 위드의 부츠에 있는 날개가 맹렬하게 파닥거리면서 가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아슬아슬하게 드래곤의 다리를 비켜 지나갈 수가 있었다.

드래곤이 크고 빨라도 공격이 단순하지 않았더라면 제대로 걷어차였으리라.

"긴 고통의 강화!"

"끈적거리는 숨결."

위드를 향하여 사제들의 저주 마법도 날아왔다.

광범위형 저주라서, 알아차리는 순간 피하더라도 약하게나마 걸릴 가능성이 컸다.

드래곤 아우솔레토는 우월한 종족의 특성에 의해 모든 저주 마법에 면역이었지만, 위드의 경우에는 저주가 쌓이면 금방 취약해진다.

그러나…….

 -방어력을 약화시키고 피해를 늘리는 저주 마법을 축복의 권능으로 단숨에 이겨 냅니다.

 -몸이 느려지고 체력 소모가 빨라지며 힘을 소모시키는 저주가, 축복의 권능과 토르이 부츠로 인해 무용지물이 됩니다.

신성 강림에 의해 저주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만 하더라도 날뛰기에는 최상의 환경이다.

엠비뉴 교단과의 전투에서는 지긋지긋할 정도로 제 실력을 발휘할 수가 없었는데 어깨의 무거운 짐을 덜어 낸 기분.

'궁수들이나 마법사들의 공격은 맞아 준다. 거기까지 신경 쓰면서 싸울 수는 없어.'

위드의 집중력은 온전히 드래곤에게로 향했다.

마법과 비행이 봉쇄된다면 아무리 강하더라도 단순한 대형 도마뱀 생명체!

블랙 드래곤 아우솔레토가 지척에서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 밟아서 죽여 주마!

다시 앞발과 꼬리 공격을 연속으로 피하고 그 틈을 타서 드래곤의 옆구리에 달라붙었다.

"덩치가 크다고 다 좋은 건 아니지. 아무리 강하더라도 이렇게 빈틈도 많거든."

드래곤의 전투 모습을 가까이에서 많이 보고 경험했다.

모든 공격 순서를 어느 정도 예측하고 유도하고 나서 몸에 달라붙는 방식을 취한 것이다.

그러고는 드래곤의 몸을 타고 암벽등반을 하듯이 기어 올라갔다.

 - 인간, 인간! 너 같은 놈이 있기에 인간들은 멸족되어야 마땅하다.

"시끄러. 나도 굳이 인간의 편을 들진 않겠어. 대신에 파리, 모기, 나방, 벼룩부터 먼저 멸족시키고 와서 따지도록해. 걔네들도 얼마나 성가신데."

드래곤은 미친 듯이 꼬리를 자신의 몸 쪽으로 휘두르고 건물을 들이받았다.

흙먼지를 일으키며 사방을 초토화시키는 드래곤의 위력!

위드는 등을 타고 올라갔다.

하늘로 오르는 탑이 무너지는 와중에도 살아남았는데 이런 정도의 소란 속에서 드래곤의 몸을 오르는 게 무슨 대수겠는가.

조각술 최후의 비기 퀘스트를 진행하면서 간은 김치냉장고에 넣어 두고 다니는 기분이었다.

드래곤의 비늘은 매끈매끈했고, 번쩍번쩍 빛이 나는 광택이 예술이었다.

엠비뉴 교단의 세뇌를 위한 붉은 채찍들은 뜯어내 버리거나 지지대로 붙잡고 올라갔다.

 ㅡ 너는 엠비뉴의 충실한 종이다.

 ㅡ 고통의 이유는 엠비뉴를 믿지 않기 때문이다.

 ㅡ 회개하라. 회개하라. 회개하라. 회개하라. 안식을 누리게 해 줄 것이다. 회개하라.

 ㅡ 대사제 헤울러 님은 너를 위한 모든 것을 갖춰 놓고 있다. 불쌍한 인생을 기꺼이 보살펴 주시리라.

붉은 채직을 손에 잡으니 짜릿한 감각과 함께 속삭임들이 들렸다.

세뇌를 위한 감언이설!

"믿을 놈 하나 없는 세상에 엠비뉴를 따르라고? 어림도 없지. 이 세상에 존경받을 사람은 시장 아줌마밖에 없어. 생선 3마리 사고 말을 잘하면 1마리씩 더 주니까. 그리고 가격도 많이 깎아 주시지!"

엠비뉴의 사제들이 쓰는 세뇌를 위한 붉은 채찍은 헛것이 보이는 강렬한 환각과 정신착란까지 동시에 일으킨다.

하지만 위드의 검과 갑옷, 방패가 모든 이상 현상들을 막아 주었다.

 - 아, 안 돼!

위드가 목에 다다르자 드래곤은 급기야 맨땅에 머리를 들이받으면서까지 몸부림을 쳤다.

심지어는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있는 마나 없는 마나 다끌어 쓰는 것인지, 상극인 불과 물의 마법들이 제멋대로 형성되어 부딪치고 터졌다.

 -거센 압력에서 오는 피해를 신의 갑옷이 87% 완화합니다.

  생명력이 3,489 감소합니다.

  일곱 방어 마법이 저절로 발동됩니다.

『유연함의 비술 : 민첩을 87% 늘려서 적의 공격을 회피합니다.

                   정확하지 않은 공격들은 대부분 빗나가게 될 것입니다.

   

   마법 공격 간파 : 위험한 마법이 발동되고 있다면 미리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강제적인 힘 : 세상에는 거인들과 같이 무식한 힘을 가진 종족들이 있습니다.

                 그 어떤 큰 힘이라고 할지라도 맞설 수 있습니다.

   

   정상화 : 신을 따르는 자는 기괴한 주술에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부정적인 상태 이상의 지속을 95% 이상 빨리 원래 상태로 되돌립니다.

   은은한 회복 : 상대방을 공격하거나 공격을 당할 때마다 4%의 생명력을 흡수하여 몸을 치유합니다.

   위급한 탈출 : 체력을 이용하여 마법이나 물리적인 구속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습니다.

   깃든 위엄 : 그 무엇도 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 자리에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도 1초마다 방어력이 2% 증가합니다.

               갑옷과 맷집이 합쳐진 최종적인 방어력이 최대 300%까지 늘어나게 됩니다.』

다른 종족에 비해 부족함이 많은 인간을 위한 신의 갑옷으로, 방어력만큼은 기가 막힐 정도였다.

원래의 위드의 몸이라면 이러한 갑옷을 입었다고 해도 기초 생명력이 적어서 드래곤의 공격에 스치는 것만으로도 너무 쉽게 위험에 처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사막을 일통하고 중앙 대륙을 정복한 대제왕!

든든한 맷집과 위기에서도 버틸 수 있는 생명력을 가졌다.

위드는 곧 드래곤의 몸에서 정상 근처, 즉 목표로 했던 뒤통수까지 오를 수 있었다.

검은색 광택이 흐르는 뒤통수에서 유독 한 부분만이 비어 있었다.

아직도 치료가 되지 않은 드래곤의 결정적인 약점이었다.

드래곤의 현재 남아 있는 생명력은 17%.

절대적인 양으로 보자면 여전히 많지만, 실제로는 그다지 넉넉하지는 않은 생명력이다.

더구나 현재의 위드는 인간 중에서도 가장 강력하며 앞으로도 한동안 나오기가 어려운 무력을 갖춘 존재.

드래곤은 위기를 느껴서인지 계속 머리를 흔들며 발광 했다.

"확실히 상쾌한 기분이군."

위드가 산의 정상에 선 것처럼 드래곤의 뿔을 잡고 지상을 둘러보니 전투가 한창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었다.

갇혀 있던 포로들과 엠비뉴 교단의 싸움으로, 대신전 전역에서 불길이 타오르고 연기가 피어오른다.

사실 적을 맞아 싸우면서도 모든 병력이 드래곤을 더욱 의식하고 있었다.

포로들은 드래곤의 머리에 올라간 위드를 보고는 까무러치듯이 놀랐고, 조각 생명체들도 마찬가지였다.

"전이!"

"전일 형님, 살아 계셨군요."

"대제님은……."

"저 위에 계십니다."

"으음, 드디어……."

"이번에야말로 대제님을 위해 만들어 놓은 묘비와 관을 쓸수 있을 것 같은데요."

전율로 인해 소름이 돋아서 정말 제대로 미칠 것만 같은 상황이었다.

현재 위드가 서 있는 근처로는 화살과 마법도 빗발치듯이 날아들었다.

엠비뉴의 궁수, 전투 가능한 인원이 얼마 안 되는 사제, 모두가 위드를 공격하고 있는 것이다.

세뇌와 전투로 약화된 드래곤, 그리고 세상에 나타나기 힘든 신의 갑옷과 무기를 가진 인간을 보며 앞으로 벌어지게 될 일에 대한 두려운 상상이 일어나게 되었다.

드래곤이 죽을지도 모른다.

위드의 입장으로서는 전투 중에 일이 안 풀리더라도 아헬른이 뒷감당을 해 줄 터이니 얼마든지 건드려 볼 만하다.

엠비뉴의 광신도, 조각 생명체 부하, 끌려온 포로들!

여기에 있는 모두가 지켜보고 있지만 사실 그 인원이 전부는 아니다.

텔레비전을 통해서 지금의 전투와 모험을 최소한 수천만 명, 앞으로 수억 명이 보게 될 것이 아닌가.

'이것으로 충분할까?'

우연히 얻어걸린 기회.

물론 여기까지 오는 게 쉽기만 한 건 아니었다.

조각술 최후의 비기 퀘스트를 찾아내야 했고, 로드릭 미궁을 포함하여 죽을 만큼의 위기도 많이 넘겼다.

사막에서 성장하는 퀘스트는 위드의 적성에 딱 맞았다.

단순 노가다로 여길 수도 있지만, 전혀 외딴 곳에서 적응하면서 강해지는 최단의 길을 찾아내야 했다.

외지인이라고 경계하는 주민들을 대상으로 필요로 하는 모든 정보들을 입수하고, 매번의 전투마다 목숨을 걸고 부딪친다.

싸워서 강해자는 투쟁의 길.

그러면서도 한국인 특유의 빨리빨리를 외치면서 돌아다니다 보니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무력도 갖게 되었다.

일찍부터 간악한 저주와 까다로운 주술을 쓰는 엠비뉴 교단이 아니라면 대륙에서는 상대를 찾기 힘들어서 심심했을 정도다.

위드의 입가에 썩은 미소가 걸렸다.

단단히 사고를 칠 게 아니라면 할 수 없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다.

"이놈이 쉽게 사라지더라도 문제야. 이렇게 해서 여기 넘쳐 나는 나쁜 놈들을 언제 다 죽일 수가 있겠어?"

스스로 납득해 버리고 만 결론.

포로들의 도우밍 있더라도 자하브, 조각 생명체 등으로 엠비뉴 교단의 병력을 다 죽이려면 그들이 저항하지 않더라도 며칠은 걸릴 것이다.

퀘스트를 위해서 남은 시간은 오늘뿐.

게다가 그 전투가 끝나고 나면 위드 외에 아군은 거의 살아남는 게 불가능하리라.

"아우솔레토!"

 - 그 썩은 혓바닥을 놀리며 나를 부르지 말라!

"이름은 알아듣는 모양이네. 혹시 너 자신에 대해서도 알고 있어?"

 - 그 어떤 거짓말에도 이젠 속지 않으리라. 당장 내려오지 않으면 갈기갈기 찢어서 죽이고 시체는 녹여 버릴 것이다.

"장례 문화까지 신경 써 주다니 참 사려 깊은 도마뱀이군."

 - 도마뱀? 내 별명인 것이냐?

"맞아. 덩치만 큰 도마뱀."

 - 불쾌하다!

"당연히 그럴 거야. 너의 정체는 사실 이 땅에서 가장 비싼 몸값을 가지고 있는 드래곤이니까!"

위드는 크게 소리쳐 아우솔레토의 정체를 말했다.

드래곤이라는 이름이 가진 무게는 어마어마했다.

순간 근처에서 전투가 멎으면서 정적이 흐를 정도였다.

엠비뉴 교단의 사제들과 광신도들, 조각 생명체들, 포로들, 모두가 알고 있음에도 자신의 목숨을 넘어서는 무게로 인하여 감히 꺼낼 수가 없었던 그 단어.

"어떻게 저런 말을……."

"무모하구나. 무모해. 겁 없는 인간 때문에 이 세상이 끝장나게 생겼어."

"맥주나 배 터지도록 마시다가 죽었으면 좋았을 텐데 이게 무슨 꼴이란 말인가."

유난히 드래곤을 두려워하는 드워프들은 도끼를 들고 당당히 뛰쳐나왔다가 머리를 땅에 처박고 목숨만 살려 달라고 빌 정도였다.

드래곤이 스스로 자신에 대해 모르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아군과 적군을 막론하고 조심하고 있었다.

어쨌든 서로 죽이지 않으면 안 될 관계이지만 드래곤이라는 말만큼은 꺼내지 않기로 암묵적인 합의가 되어 있던 상황!

그렇지만 위드가 아우솔레토에게 스스로가 드래곤이라고 알려 줘 버린 것이다.

 - 들어 본 적이 있다. 드래곤이라면 가장 존귀하고 위대한… 세상의 땅을 가로지르는 경계이며, 생명들의 시작과 끝을 결정하는 포식자.

아우솔레토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두려움에 의해서 움츠러들어 있던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더욱 크게 보이는 그의 본체!

 - 내가 드래곤이라고? 익숙한 말이다. 더없이 공포 어린 눈동자로 나를 우러러보던 눈빛들이 기억이 난다. 맞다, 나는 지겨운 이 세계를 파괴하려고 했던 드래곤, 아우솔레토다!"

드래곤의 몸에서 맹렬한 마나의 움직임이 일어났다.

쿠그그그긍!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땅이 흔들리면서 흙먼지가 둥글게 물러나며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저 멀리서, 지금까지의 충격으로 아슬아슬하게 기울어 있던 건물들이 와르르 무너졌다.

엠비뉴의 대신전은 이래저래 남아나는 건물이 없을 정도로 처참한 폐허로 변해 가고 있었다.

드래곤 아우솔레토의 눈빛도 서서히 달라졌다.

당혹스러운 곤란을 겪고 있는 것처럼 약간 흐리멍텅하던 눈빛은 날카로운 위엄을 갖춰 갔다.

그를 향해 날아오던 화살과 마법도 허무하게 멈춰 버렸다.

수천 발의 화살은 마치 공중에서 누가 붙잡기라도 한 것처럼 그냥 둥둥 떠 있었으며, 마법들은 천천히 분해되어서 원래의 자연으로 돌아갔다.

드래곤이 자아를 각인하면서부터 종족 특유의 방어 능력이 돌아오고 있는 것이리라.

자신이 드래곤임을 알았을 때와 몰랐을 때의 차이점은 육체가 아닌 정신적인 부분이었다.

곧 대규모 공격 마법 등에 대한 기억까지 떠올리게 되면, 이 부근은 흔적도 남지 않고 초토화가 될 것이다.

"이 정도는 되어야 심장이 쫄깃해지는 재미가 있지."

위드는 이제야 확실히 재밌어지는 느낌이 났다.

"자, 다시 시작해 볼까!"

군신 토르의 검으로 힘차게 드래곤의 뒤통수를 내려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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