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왕의 귀환
위드가 다시 나타난 장소는 아르펜 왕국의 수도인 대지의 궁전이었다.
높은 산들을 끼고 지어진 왕관 형태의 궁전!
다양한 색상의 돌을 쌓아서 지은 궁전에는 크고 작은 건물들이 이미 완공되어 있었다.
띠링!
『 조각술 최후의 비기 연계 퀘스트의 목표 추가 달성에 대한 보상
남쪽 사막에서 일어난 정복자는 모래 폭풍처럼 중앙 대륙을 휩쓸어 버렸다.
그는 7인의 결사대를 조직하여 엠비뉴 교단을 패망으로 이끌고 드래곤의 목숨도 거두었다.
퀘스트에 대한 보상으로 시간의 보너스가 적용됩니다.
*시간의 보너스 : 모두가 우러르던 사막의 대제왕 위드는 기나긴 시간 속에서 사라졌습니다.
팔로스 제국이 물러간 뒤에 중앙 대륙의 왕국들은 그 치욕스러운 흔적을 지우기 위하여 열심이었습니다.
이제는 그 흔적조차 알려지지 않게 되었지만, 대제왕이 남긴 역사적인 발자취의 유산들은 어딘가에 단단히 남아 있을 것입니다.
그것을 발견해 낸다면 '지나간 삶을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 를 얻게 됩니다.
특별한 기억은 당신에게 경험과 노련함을 안겨 줄 것입니다.
사막의 대제왕 위드의 스킬과 장비를 얻을 수 있는 퀘스트가 고요의 사막 어딘가에서 발생합니다.
사막 전사로의 전직이 반드시 필요하며, 퀘스트를 완료하였을 때에는 사막 부족들을 통합한 왕국이 건국됩니다.
이 퀘스트는 유저들만이 진행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사막 지역의 NPC들도 수행할 것입니다.
퀘스트 도중에는 목숨이 오가는 위협을 다수 겪어야 합니다.
퀘스트를 완료하면서 얻는 힘에 대한 보상은 매우 클 수 있습니다.
사막의 전사들은 가장 우러러 존경하는 대제왕의 후인이 되기 위하여 노력할 것이기 때문에, 기회가 주어지는 시간은 길지 않을 것입니다.
NPC에 의해 퀘스트가 종료되면 그는 당신에게 어느 정도의 존경심을 보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가 보여 주는 충성심은 잠깐에 불과하며, 힘과 자유로움을 숭상하는 사막 전사는 진심으로 굴복하지 않는 한 곧 배반할 것입니다. 』
『 대지의 궁전에 도착하셨습니다.
궁전의 건립으로 아르펜 왕국의 국왕으로서 발휘할 수 있는 통치 능력이 349% 늘어납니다.
주민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증대됩니다.
카리스마, 통솔력, 기품, 용기, 명예, 신앙이 120씩 높아집니다.
궁전의 통치 범위 내에서는 명성과 명예가 최대치로 적용 됩니다. 』
시간의 보너스 적용!
위드의 흔적이 이 세상에 더 크게 남을 수 있다는 의미였다.
잊힌 영광이 되돌아오게 된다면 어쨌든 그것도 대단한 일이다.
"그래도 적자야. 퀘스트를 완벽하게 완수하기 위해서 너무 노력했던 것 같군. 차라리 현찰이 더 좋은데 말이야."
대지의 궁전은 국왕이 받을 수 있는 엄청난 특혜였다.
다른 유저들은 주민들에게 기품이 모자란다거나 명예롭지 못한다면서 거래를 거절당하고 퀘스트도 부여받지 못하기도 하는데, 대우가 완전히 다른 것이다.
위드는 작은 목소리로만 중얼거렸다.
"정말 세상은 불공평해. 그래도 뭐, 이대로도 괜찮으니 굳이 바뀔 필요는 없겠지."
남들이 받으면 특혜지만, 자신이 받으면 뿌듯하며 당연한 것이 세상을 살아가는 기본 이치였으니까.
대지의 궁전에서는 바쁘게 뛰어다니는 유저들이 많이 보였다.
궁전 내부의 시설이나 상점을 이용하려는 유저들이다.
상인들도 좌판을 깔고 필요한 물건들을 판매했다.
"하벤 제국 놈들은 어디까지 왔대?"
"누르 평원을 지나고 있는데, 그 지역을 지키기 위해 풀죽신교에서 결사 항전 중이래."
"그 정도면 아마 사흘 거리쯤 되나?"
"응. 누르 평원만 뚫리면 이곳까지는 금방이니까 말이야."
위드가 조각품을 깎으면서 보낸 스무 날의 시간 동안 하벤 제국군은 연전연승을 거두었다.
목표로 하는 대지의 궁전을 코앞에 두었지만, 북부의 유저들도 벌 떼처럼 몰려들어서 싸우고 있는 중이었다.
북부 유저들이 간직하고 있는 것은 불안정한 희망!
ㅡ 전쟁의 신 위드가 우리의 국왕이다.
ㅡ 국왕이 돌아오면 모든 상황은 뒤바뀌게 되리라.
ㅡ 알지 않는가. 세상의 역사는 위드에 의해서 바뀌었다. 드래곤도 목숨을 잃었다. 하벤 제국은 상대도 되지 못하낟.
북부 유저들은 이렇게 떠들고 다녔다.
물론 하벤 제국에서도 가만있지 않았다.
ㅡ 위드는 패배자다. 이미 싸워서 이기지 못하고 목숨을 잃었다. 바드레이는 무적이다.
ㅡ 퀘스트에서는 우연히 쌓여서 드래곤이 죽었을 뿐이다. 하벤 제국은 대륙 전체를 점령할 정도로 강대하다. 북부가 초토화되는 것은 이것이 증명되리라.
위드는 팔은 안쪽으로 굽는다는 말처럼 북부 유저들의 편은 아니었다.
"내 팔자가 그렇게 좋진 않았으니까. 어디 보자, 스탯 창!"
『 캐릭터 이름 : 위드 성향 : 신의 전사
레벨 : 419 직업 : 전설의 달빛 조각사!
칭호 : 세상을 바꾸는 조각사
직위 : 고귀한 혈통을 간직하고 있는 아르펜 왕국의 국왕
명성 : 192,912
생명력 : 54,830 마나 : 23,394
힘 : 1,557 민첩 : 1,178
체력 : 291
지혜 : 402 지력 : 484
투지 : 611 지구력 : 412
인내력 : 1,230
예술 : 3,329 카리스마 : 664
통솔력 : 932 행운 : 255
신앙 : 711+435 매력 : 811+30
맷집 : 621 기품 : 519
정신력 : 303 용기 : 392
명예 : 789 통찰력 : 1
자연과의 친화력 : 1,829
공격력 : 9,102 방어력 : 2,293
마법 저항 불 : 49% 물 : 46%
대지 : 43% 흑마법 : 44%
+모든 스탯에 20개의 포인트가 추가됩니다.
+예술에 추가로 80개의 포인트가 부여됩니다.
+달이 뜨는 밤에는 30%의 능력치의 향상이 있습니다.
+아이템과 특화됨.
+모든 생산 스킬을 마스터의 경지까지 배울 수 있게 됩니다.
모든 아이템 제조와 제련의 스킬에 우대 적용.
최고급 스킬들을 배울 수 있습니다.
+특이하거나 예술적 가치가 높은 조각품을 만들면 명성이 상승합니다.
+조각품과 생산 스킬, 전투 경험, 퀘스트로 인하여 전 스탯이 312 증가합니다. 』
레벨은 419.
전쟁의 시대에서도 서윤과 함께 사냥과 모험을 하면서 레벨을 올렸다.
보덴 마을에 도착해서 포르투의 국왕에게 저주를 받기 직전의 마지막 상태가 438.
하지만 사막에서 조각 생명체들을 탄생시키면서 많은 레벨을 잃었다.
사막의 대제왕으로서 믿기지 않는 모험을 성공시켰지만, 그 무력은 원래의 세상으로 돌아오면서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내가 모험을 하는 도안에 바드레이는 양질의 몬스터들을 듬뿍 해치우고 레벨과 스탯, 장비 등을 얻어서 강해졌겠지."
또한 바드레이만이 강해진 것도 아니고, 위협적인 그의 친위대나 길드원들 역시 덩달아서 강해졌을 것이다.
'베르사 대륙에서 가장 앞서 가는 바드레이라면 거의 레벨 500을 목전에 두고 있지 않을까. 혹은 어떤 좋은 사냥터를 찾아서 이미 넘겼을 수도.'
위드가 모험을 마치고 돌아와서 얻은 스탯이나 사냥 경험이 상당하다 보니 같은 레벨대에서는 적수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강력했다.
앞으로의 몬스터 사냥에서도 레벨을 빨리 올릴 수 있게 해주는 큰 장점이 되리라.
남들이 10시간 고생해서 비슷한 레벨대의 몬스터를 사냥하는 동안, 위드는 거의 절반 정도의 시간이면 충분할 테니까.
하지만 훗날의 이야기가 될 것이고, 지금 당장은 퀘스트에 투자하며 지출한 손해가 여러모로 컸다.
'바드레이가 놀고먹었을 리가 없지. 착실하게 사냥을 했으면, 지금쯤이면 일대일로 붙어도 예전보다 훨씬 더 크게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밀릴 거야.'
위드의 주변에서는 여전히 유저들이 떠들고 있었다.
"사막의 대제왕 위드 님이 나타나면 바드레이 따위는 휘융, 융융 하고 멋지게 검을 휘둘러서 날려 버릴걸."
"……."
"야야, 그럴 필요가 뭐가 있어. 유성 소환 한 번이면 다 끝장인데."
"그렇지? 하벤 제국군의 머리 위로 유성 소환되어 버리면 다 작살나 버리겠다."
위드는 사실대로 말을 해 주고 싶었다.
유성 소환이 애들이 엄마 말 잘 들으면 받는 용돈도 아니고, 그런 스크롤 같은 것은 더 이상 가지고 있지도 않다고.
시간 조각술 배우기는 했지만 지금으로써는 빈털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빛 좋은 개살구라는 말이 딱 어울릴 법한 상황이었다.
당장 전투를 치러 본다면, 사막의 대제왕이었을 때에는 놀면서 해치웠던 몬스터들이 지금은 서둘러 무덤 자리를 알아봐야 할 만큼 강하게 느껴질 테니까.
"뭐, 최악은 아니야. 그래도 내가 가지고 있는 재산은 많이 있지. 비겁함과 비열함, 끈기, 치사한 술수 같은 것 말이야."
위드는 대지의 궁전을 걸었다.
대지의 궁전은 7개의 산 정상에 걸쳐져 있기 때문에 산을 통해서 중요 건물들을 찾아갈 수 있었다.
중앙에 있는 가장 높은 산에는 국왕을 위한 궁전이 세워져 있다.
원래 이 산에는 고블린들이 많이 살아서 난쟁이 습격자의 산으로 불리었지만, 지금은 사람들이 모험과 번영의 산으로 부른다.
왕궁 건물이 있기 때문에 귀족이 아니거나 국가에 공적을 세우지 못한 허락되지 않은 자들은 일절 들어갈 수가 없었으며, NPC 기사들에 의해 삼엄하게 지켜지고 있었다.
니플하임 제국에서부터 살아남은 벤트 성의 기사들.
모라타의 자경단에서부터 성장한 기사들이 1,000명이 넘는다.
위드가 전쟁의 시대로 가면서 국왕으로서 명령을 남겨, 아르펜 왕국군은 전투 행위에 일절 참여하지 못하고 있었다.
국왕이 자리를 비우면 백작 이상의 다른 귀족들이 군대의 지휘권을 이어받기도 하지만, 신생 왕국인 만큼 그런 귀족이 존재하지 않았다.
국왕이 임명 가능한 주요 요직들은 조각 생명체들이 차지하고 있었으니 아르펜 왕국은 군대의 전력을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었다.
"멈춰라! 그런 차림으로는 통과하지 못한다. 또한 여기는 아르펜 왕국에 큰 공을 세워서 허락된 자만 발을 들여놓을 수가… 허억! 어서 오십시오!"
위드가 지나가려고 하자 갑옷을 입고 길목을 지키고 있던 기사들은 막으려다가 서둘러 비켜섰다.
"수고가 많다."
"영예로운 분을 뵙게 되어서 이루 말할 수 없는 영광입니다."
위드는 자신을 위한 왕궁을 향하여 걸었다.
주요 관문과 정원에는 10미터 간격으로 기사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그들은 위드를 막으려다가 검을 뽑아서 가슴에 대며 예의를 취했다.
"성스러운 분을 뵈옵니다."
"신께서 이 땅을 위해 내리신 분께 경배를!"
기사들의 태도는 정중하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국왕이라고 해도 모두 기사들로부터 이런 충성을 받는 건 아니다.
명성이나 명예가 형편없는 국왕은 극진한 대우가 아니라 기사들로부터 모욕가 비난을 당하기 일쑤이며, 배신당하여 등 뒤에서 검에 찔리기도 한다.
그러나 위드의 경우에는, 북부 출신 주민들이 절대적인 충성심을 보일 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떠돌이 자유 기사들조차 자발적인 복종을 위하여 모여들 정도였다.
기사 유저들은 아르펜 왕국에 소속되는 것만으로도 높은 명성과 명예를 유지하여 모험에서 혜택을 입고 병사들을 유리한 입장에서 거느릴 수 있다.
위드가 왕궁을 향하여 걷자 중간에 마주친 기사들은 전부 예를 취한 후에 뒤를 따라서 걸었다.
기사들이 30명이 넘었을 때부터, 왕성에 있는 유저들은 이상하다는 눈빛을 보냈다.
"뭐야, 또 이벤트?"
"모르지. 어디서 보물이라도 발견한 모험가 아니야?"
북부에서는 모험이 적극적으로 권장되다 보니 도시 안에서도 온갖 새로운 일들이 자주 일어나는 편이었다.
엄청난 발견물을 가지고 돌아와서 왕국에 기증을 하겠다고 하면 기사들의 호위를 받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치안을 악화시키는 몬스터를 퇴치하더라도 공적을 인정받아 왕궁에서 신입 기사로 임명되거나 남작 같은 하위 귀족의 작위를 얻기도 한다.
남작이 되면 영주로서 작은 마을이라도 다스릴 수가 있는데, 그러자면 기사들을 고용하거나 친밀도를 올려서 개인 기사로 임명을 해야 한다.
영광스러운 자리인 만큼 왕궁으로 작위를 받으러 오며 자신의 기사들을 데리고 와서 과시하는 경우도 자주 있는 것이다.
하지만 마주치는 기사들마다 극도의 공경과 함께 인사를 하고 뒤를 따라간다.
그 숫자가 50명을 넘어섰을 때는, 유저들 사이에서도 점점 흥분이 커져 갔다.
"그러고 보니 저 평범한 초보 복장은……."
"한때 전쟁의 신 위드 님을 따라 한다고 해서 저 옷차림이 유행이 되긴 했지. 그리고 유행이 지나가고 나니까 저렇게 평범한 복장까지는 이제 누구도 하지 않잖아."
"슬슬 돌아오실 때가 되었다고도 느끼고 있었는데. 정말 왕의 귀환인 거야?"
"친구들한테 알려야겠다. 사실이면 정말 대박!"
"저 외모를 좀 봐. 저 뽀얀 피부와 맑은 눈빛은 평범하다고 할 수는 없는 얼굴인데."
모험을 통해 매력 스탯도 한꺼번에 많이 오르다 보니 피부에도 조그만 변화가 있었다.
어떤 비싼 옷을 입어도 중저가 시장 상품으로 만들어 버리던 얼굴에서 삼겹살을 먹은 것처럼 은은한 기름기가 흐른다.
"기사들의 태도를 봐. 확실해. 게다그 눈곱도 끼어 있잖아."
"아, 그렇구나."
기사들처럼 유저들도 위드의 뒤를 졸래졸래 따라왔다.
사람들의 숫자는 눈덩이를 굴리듯이 더욱 늘어났고, 그들이 지인들에게 알리면서 그 소식은 빠르게 북부 대륙 전체로 퍼져 갔다.
던전에서 사냥을 하던 무리에게도, 퀘스트를 위해서 특이한 지형을 헤매며 독초를 찾던 유저에게도, 북부 대륙을 지키기 위해서 하벤 제국과의 전쟁에 나선 사람에게도.
"저기요, 미안한데 저 사냥 그만하고 마을로 돌아가야겠습니다."
"왜요, 전사가 이렇게 빨리 가면 남은 사람들은 어떻게 하라고요. 완전 민폐잖아요."
"제대로 납득할 만한 이유가 없으면 다음부터는 같이 사냥 못 다니겠네요."
"그게… 위드 님이 돌아왔답니다. 위드 님을 보러 가고 싶어서요."
"정말입니까?"
"진짜요?"
"제 친구에게 들었습니다. 상인으로 꽤 이름이 알려진 유저인데, 과거에 위드 님의 물건을 조금 거래한 적이 있죠. 근데 지금 대지의 궁전에서 직접 자기 눈으로 보고 있다고, 확실하답니다."
"그런 이유라면 진작 말해 주셨어야죠. 다들 위드 님 보러 대지의 궁전으로 갑시다."
"사냥은 어떻게 하시고요?"
"무슨 소리예요. 지금 사냥이 중요해요?"
모든 북부 유저들에게 소식이 전파되는 데에는 불과 3~4분도 필요하지 않았다.
이야기를 들은 사람이 다른 친구들에게, 또 친구들에게, 알음알음 한꺼번에 퍼져 나가고 있는 것이다.
누르 평원에서 하벤 제국과 불리한 전투를 치르고 있던 풀죽신교의 무리도 그 소식을 바로 접했다.
"우와아아아아!"
"만세!"
"그분이 왔노라!"
갑작스러운 함성에, 하벤 제국은은 의아했다.
"저놈들이 무슨 수작을 벌이는 것이지?"
"그러게나 말입니다. 몰살당하기 전에 기뻐하기라도 하는 것인지."
"속보입니다. 전쟁의 신 위드가 돌아왔답니다."
"뭣이?"
헤르메스 길드의 정보망에도 위드의 등장이 빠르게 알려졌다.
라페이와 길드의 수뇌부도 급하게 전해진 위드의 소식을 들었다.
"드디어 나타났군요."
"전쟁의 끝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여겼는데 저항이 다시 거세지겠습니다."
"정벌군에 만반의 대비를 다할 수 있게 해 주세요. 특히 위드가 계획을 세워서 반격을 해 올지 모르니 보급대의 타격을 주의해야 합니다."
"호위 병력을 2배로 늘릴까요?"
"3배로 늘리고, 보급 부대를 더 많이 출발시켜야 합니다."
헤르메스 길드의 수뇌부에서는 조금의 방심도 없었다.
아무리 압도적인 세력을 가졌더라도 위드를 공격할 때에는 결코 무시해서는 안 된다.
라페이는 북부 정벌의 초창기에는 이성적으로 생각하여 두세 번의 전투만 이기면 된다고 여겼다.
'한 번의 패배는 힘의 차이를 느끼게 해 주고, 두 번과 세 번 정도의 패배는 더 이상 덤벼들지 못할 정도로 짓밟아 주는 게 되겠지. 하벤 제국의 전력은 베르사 대륙의 누구도 상대하지 못한다.'
그런데 북부에서는 하벤 제국의 지배에 맞서서 계속 싸우고 있었다.
이미 그것으로 계획은 틀어졌다.
위드는 전장에 나서지 않았지만, 그 또한 퀘스트를 통해서 끊임없이 사투를 벌이는 모습이 극적인 장면들과 함께 텔레비전에 그대로 나왔다.
베르사 대륙을 위해서 이루어 내는 일들이 사람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고 용기와 희망을 불어넣었다.
그럼으로써 북부 유저들의 거센 저항은 갈수록 거세어지고 있었는데, 이제 위드가 돌아온 이상 그 여파는 아직 전쟁에 나서지 않은 유저들에게까지 더 크게 번져 나가리라.
헤르메스 길드의 수뇌부는 북부의 전력 자체에 대해서는 그다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였지만 위드까지 무시하지는 못했다.
어비스 나이트 반 호크와의 전투를 준비하고 있던 바드레이도 소식을 접했다.
"위드가 나타났답니다."
'당연히 올 것이 왔군.'
바드레이는 조용히 검을 뽑았다.
하벤 제국 전역에 걸쳐서 최고의 장비와 사냥터가 그에게 제공된다.
무기와 방어구, 착용 가능한 액세서리까지, 모두가 최고의 것들이다.
과거에도 위드를 이겼지만 그를 보면서 부족한 점도 많이 발견했다.
일점 공격술을 통한 사냥이나, 대형 몬스터를 향해 목숨을 걸고 하는 과감한 돌격.
'나는 이길 수 있는 싸움을 확실히 이기지만, 그에게는 이기지 못할 싸움도 이기는 재주가 있지.'
위드가 퀘스트를 끝내 성공시킬 때, 바드레이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모험으로 그가 받았을 보상, 조각술 최후의 비기가 무엇인지 궁금하기도 하고 인간적으로 두렵기도 했다.
'순수한 예술 스킬이었으면 좋겠는데.'
과거에 이겼다는 건 더 이상 자랑거리가 되지 못한다.
바드레이는 다시 한 번 모두가 보는 앞에서 위드를 죽여 자신과의 차이를 증명할 결심을 했다.
★★★★★★★★★★★★★★★★★★★★★★★★★★
위드는 기사들과 유저들을 줄줄이 따르게 한 채로 거침없이 걸었다.
성큼성큼 내딛는 발걸음 뒤로 유저들의 함성 소리가 들렸다.
"전쟁의 신 위드!"
"위드 님, 맞습니까? 맞으면 고개 한 번만 끄덕여 주세요!"
"보고 싶었어요. 저 기억하시지요, 모험가 레툴입니다!"
"돌아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빙룡 광장 상인 연합의 페나툴이에요."
"위드 님, 저번에 잡템 파시면서 잠깐 쓸 일이 있다고 2골드만 빌려 달라고 하셨는데, 떼먹지 말고 얼른 갚으세요!"
열화와 같은 유저들의 환호!
대지의 궁전에 머무르고 있던 거의 모든 유저들이 모여들면서 난리법석이 일어났다.
기사들이 호위를 하며 접근을 막아 주고 있지만 역부족이라고 느껴질 정더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건축물은 튼튼하고 꼼꼼하게 잘 지어졌군.'
위드도 대지의 궁전에 온 것은 처음이었기에 눈동자를 굴려서 구석구석을 확인했다.
대충 지으면 문제가 생기기 쉬운 건물의 누수나 균열, 이음새의 벌어짐, 마감 상태 불량 등!
건축가들이 자발적으로 성의를 다해서 왕궁 건설에 참여했기 때문에 그런 일은 있을 수가 없었다.
보통 돈은 적게 주고 시공 기간은 빨리해서 지어 달라고 하면서 요구 사항만 잔뜩 들이밀면 건축가들도 불만이 쌓인다.
북부의 건축가들은 비교적 평균 레벨이 낮아서 뛰어난 기술은 갖지 못했다.
건축 스킬이 늘어나면 얻을 수 있는 이점, 즉 기둥의 면적을 최소화하고 투입하는 재료의 양을 줄이더라도 무거운 무게를 견딜 수 있는 건물을 만들 수 있는 그런 기술은 없었다.
하지만 판잣집에서부터 위대한 건축물에 이르기까지의 풍부한 시공 경험을 바탕으로 해서 왕궁을 지었다.
정말 실력이 낮은 건축가들은 도로에 돌을 깔거나, 조경사와 합심해서 작은 화단이라도 만들었다.
자신의 이름을 걸고 하는 작업인 만큼 실수는 용납되지 않았다.
아르펜 왕궁은 200만 골드로 시작되었지만 유저들의 기부와 참여로 인해 멋지게 완광된 것이다.
위드는 왕궁으로 올라가는 계단 앞에 섰다.
금과 은으로 도금된 의전용 갑옷을 입은 왕실 기사단이 백여 칸의 계단에 검을 뽑아 든 채로 서 있었다.
"폐하를 알현합니다."
척!
가슴에 검을 올리며 허리를 숙인다.
"진짜 위드 님이었어!"
"대박이다! 정말 멋지잖아!"
몬스터를 보면 뒤돌아서 전력으로 도망친다는, 부실의 대명사와 같던 왕국의 기사들이 조금은 달라졌다.
문화와 교역으로 인해 왕국의 국경인 확장되며 왕국군은 치안 확보를 위해 투입.
다른 왕국과의 전쟁도 아니었지만, 아르펜 왕국군에게는 몬스터와 도적 떼를 소탕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버거웠다.
용병, 사냥꾼, 유저 등과 함께 도둑으로부터 치안을 유지하고 몬스터로부터 위협받는 마을들을 구원해 냈다.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개척 마을이 수도 없이 생겨나기에 기사들과 병사들은 어려운 전투를 계속해야 했다.
그리하여 어디에 내놓더라도 창피하지 않은 수준의 군대는 갖추게 되었다.
베르사 대륙에서 내로라하는 여러 왕국들이 경쟁을 하던 시절이라면 당당하게 일개 국가로 자리매김을 했으리라.
그러나 하벤 제국의 침공에 정면으로 맞서다가는 그대로 허무하게 전멸하여 사라질 볼안정한 병력이기도 했다.
위드는 기사들이 열어 주는 길을 통해서 왕궁의 계단을 올랐다.
한 계단씩 오를 때마다 유저들의 함성 소리는 더욱더 커져만 갔다.
'내가 도대체 뭘 했다고… 나는 저들의 존경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일까?'
"위드 님!"
'모두가 자신의 일처럼 기뻐해 주는구나. 이게 아르펜 왕국, 그리고 저들은 나의 주민.'
"와아아아!"
'세금을 올리더라도 괜찮겠군. 그 시기는 언제가 좋을까, 내일모레 정도?'
모든 환호가 세금 인상으로 연결되는 독재자의 정신세계!
"폐하의 방문을 환영합니다."
위드가 왕궁의 입구에 도착하자 기사들이 닫혀 있던 정문을 활짝 열었다.
그리고 보이는 왕궁의 실내 모습!
아르펜 왕국은 검소하다 못해서 짠돌이로 불리고 있었지만, 내부에는 금과 보석으로 화려한 장식들이 가득했다.
지방 도시들에서도 들어오는 막대한 세금 수입으로 국왕을 위한 공간을 치장했다.
물론 사치성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이는 고급품을 거래하고 싶어 하는 유저들에게도 필요한 일이었다.
아직 유저들의 귀금속을 기반으로 한 세공품의 자체 생산 실력은 그다지 뛰어나지는 않지만, 모험과 교역의 활동 반경이 넓어지면서 니플하임 제국의 유물들이 계속 발견되고 있다.
이런 고급품들이 상점의 창고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것도 아까운 일.
붉은 양탄자가 깔려 있는 길을 걸어서 대전의 중심부에 위드가 섰다.
대전의 중앙에는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빛의 구슬이 둥둥 떠 있었다.
북부의 모험가들이 발굴한 '니플하임 제국 황제의 눈'.
왕궁에 놔두면 국가 영토 내의 장소를 새가 날아다니는 높이에서 볼 수 있으며, 통치력을 4%나 늘려 주는 귀한 물건이었다.
사용 제한에는 최소한 국왕 이상의 자격이 필요해서, 일반 유저들은 쓰지도 못하기 때문에 기부를 하였다.
띠링!
-아르펜 왕궁이 완공되었습니다.
왕궁이 세워진 이곳을 아르펜 왕국의 수도로 지정하는 것을 허락하시겠습니까?
"허락한다."
『 아르펜 왕국의 수도가 결정되었습니다.
이 왕궁에서 국가의 중요한 정책들이 결정될 수 있습니다.
국가에 필요한 직책들을 모집할 수 있습니다.
각 도시별 발전 상태를 확인하고 내정 부분에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국왕의 고유한 권한인 귀족과 영주의 임명이 이곳에서 가능해집니다.
아르펜 왕국의 귀족들과 영주들은 직책에 걸맞은 명성과 명예를 얻게 됩니다.
왕국에 공을 세우면 가문의 창설이 가능해집니다.
대대로 이름난 충신 가문들은 우수한 혈통의 후계자들을 배출할 것입니다.
국가 명성이 34 증가합니다.
왕국의 외교력이 높아집니다.
주민들의 충성심이 43% 높아집니다.
국가에 대한 향상된 자긍심은 주민들의 최대 중성도를 20% 늘려 줍니다.
아르펜 왕국의 지배 아래에 있는 도시와 성에서 왕궁 완공을 기념하여 공물을 바쳐 올 것입니다. 』
왕실 기사들이 대전으로 따라 들어왔다.
그들은 한쪽 무릎을 꿇은 채 외쳤다.
"폐하께서 기나긴 바깥나들이를 마치고 돌아오심을 많은 국민들이 기뻐할 것입니다. 외부로부터 침략을 당하여 사람들이 불안해하고 있는 지금, 폐하께서 건재하시다는 것을 봉화로 알리고자 하는데 허락하시겠습니까?"
띠링!
『 아르펜 왕국의 국왕 등장
왕실 기사들은 당신이 나타난 것을 기뻐하며 이를 봉화로 다른 도시들에 알리자고 요청하였다.
이를 받아들인다면 다른 도시들에서도 국왕이 나타난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난이도 : F 』
국왕으로서 결정해야 할 수많은 일들 중에서 아주 간단한 부분.
위드는 고민 없이 쉽게 이를 허락했다.
"내가 온 것을 봉화로 알려라."
"옛, 알겠습니다."
곧 대지의 궁전이 있는 산봉우리에서부터 붉은색과 푸른색, 노란색의 연기가 뒤엉켜서 하늘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봉화를 본 다른 산봉우리들에서도 차례로 연기를 피췄다.
시야에 산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넓은 평야에서는, 전령들이 말을 타고 달려서 그다음 봉화대에 이를 알렸다.
정오 무렵부터 시작된 봉화의 행렬은 저녁이 되었을 때에는 아르펜 왕국의 산간벽지에까지 이르러 왕국 전역에서 연기를 뿜어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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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드가 아르펜 왕국에 도착했다는 소식은 사방으로 퍼졌다.
방송국들이 재빠르게 중계를 하다 보니 로열 로드를 하는 사람치고 이 사실을 모르는 이는 없었다.
하벤 제국군의 본대는 대지의 궁전을 향하여 진격하고 있었다.
그리고 대지의 궁전에 아르펜 왕국의 국왕인 위드가 등장했다.
일촉즉발의 위기!
중앙 대륙 전체의 패자로 공인된 하벤 제국은 어마어마한 병력을 이끌고 북부로 진출했다.
신화에 가까운 모험들을 성공시킨 위드라 할지라도 이번에는 날개가 꺾이지 않겠냐 하는 것이 대다수의 의견이었다.
위드도 왕궁에 도착하자마자 북부의 유저들로부터 계속 면담 요청을 받았다.
왕국 각 지방의 영주들에서부터, 풀죽신교를 이끌고 있는 이름이 많이 알려진 유저들.
하지만 가장 다급하게 연락을 해 온 것은 건축가 파보였다.
파보와는 북부가 여러 벌의 두꺼운 옷을 겹쳐 입지 않으면 얼어 죽을 정도로 춥던 시절에 함께 원정대에 속한 적이 있다.
그 이후로 파보가 북부에서 위대한 건축물 등을 만들며 활동하여 친구 등록이 되어 있었다.
- 하벤 제국군을 막기 위해서는 지금 당장 만나야 하네.
"알겠습니다. 오시죠."
파보를 비롯한 건축가들은 마법사의 텔레포트를 통해 단숨에 도착했다.
옷을 갈아입을 틈도 없었는지, 그들은 먼지투성이의 작업복 그대로였다.
"무사히 돌아왔군."
파보는 위드의 손을 덥석 잡았다.
다른 건축가들은 실제로 유명 인사인 위드를 만나게 되어 놀라고 감격해서 눈을 크게 뜨고 있었다.
"북부를 위해 정말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건축가들이 북부를 위해서 하고 있는 행동들은 헌신적이라는 말도 모자랄 정도였다.
요새들을 보수하고, 성벽을 더 높이 쌓았다.
하벤 제국군의 진격을 막아 내는 데에 큰 역할을 하지는 못했어도 시간은 상당히 끌어 주었다.
그들이 없었더라면 이미 대지의 궁전까지 점령당했을지도 모른다.
"시간이 없으니 간단하게 설명하겠네. 자네는 하벤 제국과 싸워서 그들을 물리칠 수 있겠는가?"
파보는 눈빛에 간절함을 담아서 물어 왔다.
함께 온 30명 정도의 건축가들도 그것이 가장 궁금한 기색이었다.
사실 이것은 북부 유저들은 물론이고 헤르메스 길드원들 조차도 알고 싶어 하는 부분이다.
정상적인 전력만 놓고 본다면 당연히 하벤 제국군이 이긴다.
그런데 위드는 매번 불리한 싸움들을 역전시켜 왔다.
절대 안될 것 같은 퀘스트들을 거짓맒처럼 극복해 왔기에, 그냥 쓰러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이번에는 전력 차이에서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이며 같은 유저를 상대로 하기 때문에 그렇게 단순한 비교는 옳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과연 위드가 상황을 반전시킬만한 어떤 꿍꿍이를 가졌는지, 혹은 희망을 갖고 있는지가 궁금했다.
위드는 힘 있게 대답했다.
"놈들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정말인가?"
"뭐, 아마도요."
"……."
아니면 말고 하는 식의 가벼운 태도!
건축가들은 실망감이 들었지만, 금방 좋은 쪽으로 해석했다.
'그래, 확신할 수는 없는 거지. 이렇게 불리한데 어떻게 물리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가 있겠나. 그건 오만이고 욕심이지.'
'아예 포기한 게 아니라면 됐어. 그걸로도 다행이야.'
파보는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망설이던 말을 했다.
"하벤 제국군이 이대로 계속 진군을 해 온다면 이틀이면 도착할 거네. 북부의 유저들이 지금보다 더 열심히 발목을 잡아 준다면 사흘. 놈들이 부대 정비라도 한다면 반나절 정도는 시간이 더 걸릴 수도 있겠지."
"저도 그렇게 예상하고 있습니다."
위드가 돌아온 만큼 전쟁에 나서는 북부 유저들의 질도 대폭 달라질 것이다.
지금까지 실질적으로 하벤 제국을 물리칠 때를 기다리면서 싸우지 않던 중견 유저들, 고레벨 유저들이 슬슬 움직일 때가 된 것이다.
위드가 직접 이끈다면 북부 유저들 중에서 나서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이 오히려 더 드물리라.
양측의 전력을 가늠하여 승산을 따져 본다면 여전히 북부가 불리하겠지만, 위드와 함께 싸운다는 건 더없는 영광이고 또 불리함을 극복해 내는 위드만의 마법을 기다리는 마음도 컸다.
"우리 건축가들은 그들을 최소 사흘 동안 막을 수 있는 비책을 가지고 있다네."
"정말입니까?"
"아울러 상당한 피해도 줄 수 있지."
"그런데 쓰지 않고 저를 만나러 오신 이유라면……."
위드의 눈치가 고속 회전했다.
"북부에도 피해가 있다는 뜻이겠군요."
"맞네. 돌망치 길드에서 건설한 알카사르의 다리에 대해서 어느 정도나 알고 있는가?"
"페실 강의 양측을 이어 주는 다리죠. 강물이 상당히 깊어서 원래 배를 타고 건너야 했지만 다리가 건설되고 나서 여행자들과 상인들이 매우 편해졌다고 봤습니다."
알카사르의 다리는 건축가들의 자부심과도 같은 것이었다.
시공의 어려움도 상당했지만 주변의 풍경과도 잘 어울리도록, 다리를 짓기에는 까다로운 재료인 석조를 이용하여 완공시켰다.
어두운 밤에 알카사르의 다리에 서서 강물에 비친 유셀린 마을과 하늘의 별을 보면 그보다 더 멋질 수가 없었다.
여행자들을 위한 필수 관람 코스로도 이름이 높은 곳이었다.
"하벤 제국에서는 반드시 알카사르를 건너서 이곳까지 오려고 할 것이네."
대군이 이동을 하는데 뗏목이나 소형 배를 건설하여 일부씩 강을 지나오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파보는 사흘 정도 막을 수 있다고 말했지만, 조선술에도 약간의 조예가 있는 위드는 최소한 닷새 이상이라고 생각했다.
공성 무기의 재료나 전투 물자는 상당히 무겁다.
사실 그것도, 어떠한 방해도 받지 않고 도강에 성공하였을 때의 이야기가 아닌가.
위드는 이미 건축가들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짐작했지만 적당히 맞장구를 쳐 줬다.
"일부러 돌아올 필요는 없으니 그렇겠죠."
"그 다리를 놈들이 건널 때에 맞춰서 무너뜨리는 것일세."
"오오오오오오!"
위드는 먹던 사탕을 땅에 떨어뜨린 아이처럼 놀란 얼굴을 했다.
그렇지만 그런 과한 연기는 어색함을 불러일으키는 법!
중년인 파보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자네…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고 있었군."
"워낙 눈칫밥을 오래 먹고 살다 보니까요. 위대한 건축물을 부순다는 부분이 부담스러우신 거로군요."
"맞네. 우리가 열과 성을 다해서 지은 건물인데 우리 손으로 부순다니 이 얼마나 아까운 일인가. 사람들이 편의를 누리게 하고, 그곳에서 다들 얼마나 행복해했는데."
"크으윽, 나는 물속에 들어가서까지 돌기두을 쌓아 올렸는데."
"난 물고기들에게 잡아먹혀 죽을 뻔도 했잖아."
통한의 눈물을 흘리는 건축가들!
위드의 열사의 사막에 붙어 있는 듯한 감수성으로는 그다지 이해가 가지 않는 장면이었다.
자신이 만든 조각품들이 부서지는 느낌이 저러할까.
'물론 본전이 생각나서 아깝겠지. 시간과 돈이 들어갔으니 속도 쓰리겠지. 하지만 다음에 더 세상 물정 모르는 고객을 상대로 바가지를 씌우면 되잖아.'
이럴 때야말로 위드의 정신력은 강인한 면모를 발휘했다.
"아르펜 왕국의 국왕인 제가 대신 결단을 내려 드리죠. 부수십시오!"
"정말 그래도 되겠는가?"
"물론입니다."
그렇게 쉽게, 알카사르의 다리는 부수기로 결정이 났다.
"다만 조심하십시오. 헤르메스 길드에도 눈치가 빠른 자들이 있을 테니까 말이죠."
"허허, 건축가의 솜씨를 알아보진 못할 것이네. 우리가 스스로에게 침을 뱉는 것 같지만, 건축가들은 전쟁이 아니라 사냥에도 잘 끼워 주지 않거든. 최소한 우리에 버금가는 실력자가 있지 않다면 모르겠지."
"확실히 뛰어난 방법이로군요. 어서 실행하시죠."
"바로 가서 준비를 하겠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위드의 기분은 상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렇지만 건축가들이 나가면서 하는 이야기들은 속 쓰림을 동반하게 했다.
"과연 통이 커. 보통 사람이 아니야."
"그러게 알카사르의 다리에 들어간 돈이 얼마인데."
"아르펜 왕국의 예산이 막대하게 들어갔지, 아마."
"내가 정확히 아는데, 200만 골드도 넘어."
부르르.
슬픈 영화를 보면서도 철통같이 무덤덤한 위드의 눈가에 경련이 마구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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뚱땅뚱땅!
위대한 건축물 알카사르의 다리에서 건축가들이 시커먼 망토를 두르고 작업을 했다.
"적당히 부숴. 무너지는 순간에 놈들이 가능한 다리에 많이 올라와 있어야 하니까."
"물론이지!"
"겉은 그대로 놔두고 내부만 잘 파 놓자고. 중요한 버팀목들만 건드리고, 지지대들은 하나가 잘려 나가면 연쇄적으로 해체될 수 있게……."
"그건 내가 계산을 했으니 누구보다 잘 알지. 걱정하지 않아도 되네."
유저들로 북적거리던 알카사르의 다리였지만, 하벤 제국군이 몰려오니 관광객들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사실 이 다리에는 전쟁과 무관하게 살아가는 유저들이 많았다.
심지어는 회사에 휴가를 내 놓고 인생에 대해 생각해 보겠다고 다리에서 먹고 자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위드가 대지의 궁전에 나타났다는 소식을 듣고 모두 그곳으로 몰려갔다.
그 덕에 건축가들은 은밀하게 작업을 할 수 있었다.
"놈들에게 확실한 본보기를 보여 주자고."
"그래도 이렇게 훌륭한 건축물을 부숴야 하다니, 눈물이 앞을 가리는구만."
야밤에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은 북부의 건축가들만이 아니었다.
대륙 최고의 건축가 미블로스.
하벤 제국의 황궁을 건설하고 나서, 또한 그들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몰래 수작을 부려 놓고 나온 그가 북부에 있었다.
하벤 제국의 황궁은 웅장함을 자랑하고 있었지만 속내는 부실 공사의 전형!
사람이 많이 모이는 어떤 행사나 벌어지거나 충격이 가해지면 고스란히 무너지게 될 건축물에 불과하다.
그게 아니더라도 큰비라도 내리면 지반에 스며들면서 기초 공사를 약화시켜서 그대로 폭삭이었다.
워낙에 방대한 면적에 자리한 거대한 건물이니 차례차례 쓰러지는 웅장한 모습을 만들어 내리라.
그는 북부에 대해서는 소문만 들었지 실제로 와 본 건 처음이었다.
"놀랍군. 기가 막혀. 어떻게 도시의 모습이 이렇게 난잡하면서도 활기찰 수가 있는 것이지?"
모라타는 중앙 대륙과는 확연히 다른 맛이 있었다.
도시의 입구는 영업하는 상인들로 인해서 이동이 불편할 정도로 번잡하다.
"좋은 물건 비싸게 팔아요."
"모라타의 고급화를 선도하는 상인 바가지가 인사드립니다. 이제 막 레벨 200이 되신 유저들을 위한 화려한 제품들 위주루 판매합니다. 와서 구경하세요. 구경비로 2실버씩만 받습니다!"
중앙 대륙에서는 상인들이 게으르게 앉아 있는 모습이 흔하다.
상점만 차려 놓고 직원을 써도 유저들이 알아서 잘 사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부에서는 적극적은 호객 행위가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그건 물건이 잘 안팔려서가 아니었다.
잠깐만 지나면 다 팔려 버려서, 마차를 끌고 새로 영업용품을 보충하러 가야 한다.
그러고 나서 다시 돌아와도, 상인들이 워낙에 많이 모여 있다 보니 주변에 알리지 않으면 유저들이 일일이 보기가 어렵기 때문이었다.
과일, 생선, 철광석, 음식, 사냥 도구, 그릇, 무기, 방어구, 마법용품, 퀘스트에 필요한 물건.
성문은 있었지만 사람들이 워낙 많이 드나드는 통에 제대로 쓰지를 않고 빙룡 광장이나 와이번 광장으로 바로 연결된 평지로 다녔다.
모라타는 작은 마을에서부터 발전을 하였기에 그 흔적들도 그대로 남았다.
위대한 건축물들은 도시의 랜드마크처럼 세워져 있고, 빛의 탑과 프레야 여신상, 예술 회관도 도시의 명소로 자리를 잡았다.
예술과 문화, 상업이 발달하고 사람들의 웃음이 공존하는 도시!
하벤 제국의 침공에도 불구하고 모라타에는 여전히 사람이 많았다.
"방금 시작한 초보입니닷. 어디로 가서 일해야 돈 벌 수 있어요?"
"시장에서 사과 닦는 아르바이트가 쏠쏠해요."
"허수아비 같이 때리실 분. 끈기와 노력은 기본! 앞으로 함께 성장하실 수 있는 분만 오세요."
막 시작한 초보자들도 계속 나타났다.
잠깐 사이에 광장마다 수백 명이 나타나서 로열 로드를 처음 하는 유저들이 하는 거의 비슷한 반응들을 내보였다.
"우왁! 몸이 움직여!"
"어머머머, 도시가 정말 예쁘다."
"으으으, 냄새까지 난다. 이 향기는 어디에서 풍기는 것이지? 배낭에 가지고 있는 건… 어디 보자, 보리 빵 10개뿐이군. 아껴서 먹어야지."
막 시작한 초보자들은 친구나 가족처럼 아는 사람을 만나 함께 가거나, 혼자서 도시를 돌아다니기 위해서 서둘러 뛰어 갔다.
이렇게 한 무리의 초보자들이 떠나고 나면 또 다른 유저들이 금방 다시 나타났다.
모라타를 절망적으로 바라보고 있다면 초보자들도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오히려 게시판마다 모라타가 하벤 제국에 파괴되고 나면 당분간 북부에서 시작하지 못할 수도 있으니 더 서두르라고 할 정도의 분위기였다.
"굉장해 이게 사람이 살아가는 도시야."
건축가 미블로스는 도시를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의 분위기를 파악했다.
도시의 역사는 길지 않아도 모라타에 있는 유저들은 이곳이 어떻게 생겨났으며 어떻게 발전했는지 알고 있다.
그 자부심과 긍지 때문에라도 사람들은 포기할 줄을 모른다.
하벤 제국과 맞서 싸울 수 있는 마음도, 모라타의 발전 과정에서 쌓아 올려진 것이었다.
"나도 본격적으로 한 팔 거들어 봐야겠군!"'
중앙 대륙의 자린고비 영주들에게는 질릴 만큼 질렸다.
북부에 위대한 건축물을 실컷 지어 보고 싶었다.
그러자면 일단 하벤 제국을 막아 내야 할 것이 아닌가.
"도시는 나중에 둘러보도록 하고……. 이럴 시간이 없어."
미블로스는 모라타에서 이동용으로 쓰이는 힘 좋은 황소를 타고 하벤 제국의 진격로로 떠났다.
건축가 중에서도 최고의 실력을 가진 그는 특별한 스킬을 갖고 있었다.
산사태!
지반 붕괴술!
편리성과 디자인, 예술을 함께 추구하는 건축가에게 왜 필요한지 도무지 의문이었던 스킬이었지만, 하벤 제국군을 상대로 한번 마구 써 보기로 했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