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달빛조각사 40권 : 6) 알카사르의 다리 (272/520)

6) 알카사르의 다리

영국 런던.

국제투자회사의 고위 임원들과 재력가의 재산관리인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그들이 한꺼번에 운용하는 자금은 한 국가를 들었다 놨다 할 수 있을 만큼 천문학적인 거액이었다.

석유가 나오는 중동의 왕가, 유럽의 귀족 가문, 거대한 부를 쌓은 신흥 재벌과 전통적인 재산가들의 자금이 그들에 의하여 운용되었다.

"다음은 유니콘 본사에 대한 영향력 확대의 건입니다. 먼저, 지난번의 시도는 실패하였습니다."

"우리가 현재 가지고 있는 지분이 얼마낟 됩니까?"

"여러 계좌와 회사들을 총동원하여 약 4% 정도를 확보하였습니다."

"고작 그것밖에 되지 않다니……."

국제투자회사의 임원들이 다 함께 탄식했다.

그들이 가진 돈이라면 안되는 것이 없었다.

원한다면 전쟁도 일으킬 수 있고, 어느 한 국가의 눈부신 경제 발전이나 외환 위기를 이끌어 내는 것도 가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니콘 사를 접수하는 일은 불가능했다.

유니콘 사는 가상현실을 지배하며 현금을 쓸어 담고 있다.

현재도 기업의 주식 가치는 꾸준하게 오르고 있을 뿐만 아니라, 관련 계열사들도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산업계에 혁명을 불러일으켰다.

조선업계는 전반적인 불황이었지만 유니콘 조선에는 향후 15년 치 주문량이 밀려 있다.

기존 선박의 상식을 초월한 연비와 이동속도. 3~4년 만에 배값을 뽑을 정도였다.

해양 플랜트나 석유시추선 등의 경쟁력도 세계에서 최고로 꼽힌다.

화학, 제약, 신소재, 로봇, 정밀기계 분야에서도 돌풍을 불어오고 있으니 전 세계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계열사들이 로열 로드를 서비스하는 유니콘 본사의 시가 총액을 넘어설 지경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유니콘 사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졌다.

"유니콘 계열사의 주식은 시장 거래를 통해 지분율을 확보하기에는 너무 엄청난 가격입니다."

"회사채 발행은 어떤가?"

"전혀 예정에 없으며, 앞으로도 필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유니콘 사의 핵심 계열사들이 차지하고 있는 내부유보 자금만 하더라도 우리가 운용하는 액수와 맞먹을 정도로 파악됩니다."

"설마 그 정도란 말인가."

"과거 J.K.I. 금융그룹의 실패를 교훈으로 삼아야지요. 함부로 건드릴 수는 없는 기업입니다."

"자금 운용을 어떻게 하는지 몰라도 굉장하군."

자본가들은 유니콘 사를 건드려 보고 싶었다.

필요하다면 정치계를 움직여서라도 압력을 가하고 기업을 흔들어 놓을 수 있지만, 그동안 쌓아 놓은 방대한 인맥에도 불구하고 유니콘 사에는 찔러볼 만한 빈틈이 없었다.

또한 전 세계 각국의 대표적인 은행들에도 알게 모르게 유니콘 사의 자금과 지분이 숨어들어 가 있었다.

그들이 그런 움직임을 알아차린 것은 불과 1년 전이다.

J.K.I. 금융그룹은 유니콘 사의 지분율 20% 가까이 모아서 경영권을 위협하려고 했다.

이 작업을 위해서, 당시에도 고공 행진을 하고 있던 주식을 사들이느라 한 나라의 국가 예산으로도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액수가 투입되었다.

자신들이 확보한 20% 정도의 지분, 그리고 다른 기금들과 투자은행들의 지분까지 합쳐서 경영권을 위협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들로서는 안간힘을 다한 것이었지만, 유니콘 사가 심각한 위기에 몰린 건 아니었다.

하지만 뒤늦게 유니콘 사에서 본격적인 반격에 들어갔다.

J.K.I. 금융그룹의 기업 고객들이 연쇄적으로 이탈을 하기 시작했다.

협조 관계에 있던 투자은행들도 비리와 회계 조작이 갑자기 언론을 통해 공개되고, 경영진이 처벌받고 외부에 헐값으로 매각되는 수순을 밟았다.

더 이상 유니콘 사를 노려 볼 수가 없는 처지까지 몰렸지만, 반격은 그쯤에서 멈추지 않았다.

언론을 통한 공격과 투자자들의 자금 회수가 계속 이어지면서 파산!

내부적으로도 부동산과 기업 경기 악화에 대한 손실액이 오랜 기간 누적되어 있었지만, 105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J.K.I. 금융그룹은 그렇게 산산조각 나서 해체되고 말았다.

그때에야 국제투자은행들은 유니콘 사에 대단히 큰 관심을 드러내고 깊숙한 조사에 들어갔다.

그리고 밝혀진 사실로는, 세계를 떠도는 비밀 자금들 중에 많은 부분이 유니콘 사와 관련이 있다는 것이었다.

주요 은행들을 내부적으로 장악하고 있었으며, 정치와 언론계에 영향력도 막대하다.

다국적기업들 중에서도 많은 숫자가 몇 단계를 거치면 유니콘 사와 직간접적인 지배 관계에 놓여 있었다.

유니콘 사가 정식으로 인수를 하지 않았더라도 해도 원한다면 경영권은 그들의 것이 될 수 있었다.

기업과 개인. 실제 주주들의 상당수가 교묘한 은닉 과정에 의해 숨겨져 있을 뿐 그들의 입김이 강하게 닿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부터는 대부분의 국제투자은행들도 포기하고 유니콘 사에 대한 욕심을 버렸다.

위험한 열매일수록 그 맛은 더욱 달 것이다.

하지만 어느새부터인지 모르게 침투한 그들의 자금이 자신의 목줄을 움켜쥐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J.K.I. 금융그룹이 철저하게 해체되는 과정을 보고 나니 그만큼 치밀한 그물망이 자신들에게도 걸쳐져 있었다.

그 이후로도 몇몇 기업체들이 유니콘 사를 노렸지만 제대로 실행도 하기 전에 박살이 났다.

돈의 힘이 얼마나 막강하며 돈 앞에는 어떤 불가능도 없음을,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누구보다 더 잘 알았다.

모든 적대적인 움직임을 꿰뚫고 있는 유니콘 사의 정보력도 두렵기 짝이 없었다.

돈에 의해서 움직이는 자신들이기 때문에 더더욱 동료들도 믿을 수 없었다.

미국 시카고에서 온 자본가는 조금 다르게 생각했다.

'기업은 파고들 여지가 전혀 없지. 그렇다면 로열 로드 내부는 어떤가.'

헤르메스 길드가 대륙을 정복하는 것은 기정사실화가 되었다.

그들은 공로와 능력에 따라서 영토를 관리하게 될 것이다.

앞으로 거두어질 막대한 세금과 발휘할 수 있는 권력.

로열 로드는 무모할 정도로 뛰어난 기술력의 집약체로서, 인류가 만들어 낸 최고의 휴양지이며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장소였다.

현재도 계속 유저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가고 있으니 로열 로드와 하벤 제국의 가치는 더욱 빛날 게 아닌가.

'그렇다면 헤르메스 길드에 투자하는 것은?'

헤르메스 길드의 주식회사화!

자본가들이 돈을 모아서 헤르메스 길드에 돈을 투자하고 수익을 배당받을 수 있는 주식을 갖게 되는 것이다.

하벤 제국을 일구어 낸 헤르메스 길드는 지금까지 크게 아쉬울 것이 없었다.

이미 현재도 은밀하게 막대한 자금을 벌어들이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유리한 입장이니 공로를 통 크게 인정해 주고 상상도 할 수 없는 거액을 제시하여, 베르사 대륙을 지배하며 얻게 될 과실을 나누어 먹는다.

몇몇 주요 투자자들은 이 계획에 대하여 대환영이었다.

헤르메스 길드가 베르사 대륙을 통일하고 난 이후에는 꾸준한 수입을 거둘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미래 전망도 대단히 밝다.

게다가 몇몇 투자자들은 하벤 제국을 통한 베르사 대륙의 권력이라는 부가적인 효과까지도 노리고 있었다.

로열 로드가 대체할 수 없는 새로운 세계가 된 이상 그곳에서 자신의 입지를 높일 수 있다면 얼마간의 돈은 아깝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헤르메스 길드의 수뇌부에서도 구체적인 조건에 대하여 논의해 보자고 하긴 했지만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애초부터 그들이 베르사 대륙을 정복하려는 목적 자체가 돈과 깊은 연관이 있었다.

로열 로드가 모든 연령층과 국가에 걸쳐서 이토록 방대한 인기를 끌게 될 줄은 헤르메스 길드에서도 예측을 못 했다.

남들보다 일찍 시작하고 많은 준비를 하여 대륙 통일의 위업을 달성하기 직전이다.

길드를 통해서 많은 투자를 받는다면 참여한 유저 개개인들이 손쉽게 큰 재산을 얻게 되낟.

통일 이후에도 지속적인 통치가 가능해지니 거부할 필요가 조금도 없는 제안이었다.

★★★★★★★★★★★★★★★★★★★★★★★★★★

검치와 검둘치, 검삼치.

그들은 각자 수련생들로 구성된 부대를 이끌고 파투 성에서 만났다.

파투 성은 하벤 제국에서 북부 침략의 교두보로 르포이 평원에 세워 놓은 곳이었다.

노예들을 동원하여 아직 건설 중인 석조 성으로, 완공되고 난다면 포르우스 강과 르포이 평원을 감시하며 대군을 머무르게 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

검치는 황소를 타고 석양이 저물어 가는 언덕에 섰다.

"우리의 목표는 저곳이다."

"음, 멋지군요."

검둘치, 검삼치, 검사치, 검오치도 따라서 황소를 타고 섰다.

떡 벌어진 어깨와 두꺼운 목, 그리고 세탁 성능이 탁월한 복근!

그 뒤로 도열해 있는 수련생들의 인상은 가관이라는 말 정도로는 형편없이 부족할 만큼 험악했다.

산길이나 어두컴컴한 길가에서는 유저들이 비명을 지르면서 도망치는 경우가 허다했다.

"오늘 내로 저곳을 정리한다. 가자, 얘들아!"

"옛! 스승님을 따르라!"

말이 좋아서 아르펜 왕국의 기사들이었다.

실제로는 몬스터들을 지겹게 사냥하는 게 아니라 유저들과 실컷 싸우니 그것만큼 신 나는 것이 없다.

"끼얏호!"

"으랴으랴으랴!"

검치를 선두로 하여 돌격해 가는 505기 황소 마적단!

싸움에 있어서만큼은 그들도 바보가 아니었다.

로열 로드를 하면서 보리 빵 때문에 굶어 죽어도 봤고,무모하게 드래곤에게 덤비다가 목숨을 잃기도 했다.

'슬슬 우리에 대해 대비를 할 때가 되었어.'

'음, 놈들의 움직임이 시작될 시기인데.'

공부로 배운 전략과 전술이 아니었다.

어릴 때부터 무던히도 사고를 치고 나서 부모님과 선생님에게 욕을 얻어먹으며 쌓인 감각.

'놈들도 알아차렸을 거야.'

검치를 선두로 하여 다들 저마다의 느낌을 나누었다.

"적들이 나타났다!"

"일제 공격 준비!"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파투 성의 성벽에서 궁수들이 일어나서 일제히 활을 겨누었다

2,000여 명에 달하는 저격병!

"그대로 돌진한다."

검치는 타고 있는 황소를 뒤로 물리지 않았다.

전력 질주 중에 피하기엔 이미 늦기도 했지만 그럴 마음도 없었다.

그 뒤를 따라서 수련생들도 맹렬하게 황소를 달렸다.

"발사!"

푸슈슈슈슉!

파투 성의 성벽에서부터 강화된 강철 화살들이 포물선을 그리면서 날아왔다.

궁병들 중에서도 2차 전직을 마친 저격병들.

전쟁에서의 대인 살상력을 탁월하게 높인 부대로, 어지간한 방패와 갑옷은 우습게 꿰뚫었다.

일반 유저들 가운데에는 전신 갑옷이나 방패를 들지 않는 경우가 흔했다.

워리어, 기사의 직업이 아니라면 전신 갑옷을 입을 수가 없는 경우가 많았으며, 체력이 감소하고 활동하기 불편하기 때문이었다.

또 제대로 된 전신 갑옷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비싸고 관리가 어렵기도 하다.

몇천몇만 골드가 넘는 갑옷이 전투 중에 손상되면 수리 비용 역시 많이 들어간다.

그렇기 때문에 경량화된 사슬 갑옷이나 가죽 갑옷은 저격병이 좋아하는 대상이었다.

"각자 분검술을 펼쳐라!"

검치가 황소를 달리면서 명령을 내렸다.

"분검술!"

검술의 비기.

분신을 최대 40개까지도 만들어 내는 스킬이 사용되었다.

"이야하압!"

검치와 사범들, 수련생들마다 분신이 10개에서 30개씩까지 생겨났다.

분신들은 황소를 타지 않고 두 다리의 힘으로 앞을 향하여 달려갔다

순간적으로 늘어나게 되어 버린 엄청난 대군!

화살이 날아왔지만 대부분은 앞서 달리는 분신들에게 맞고 남은 것은 하늘로 쳐 내지는 신세가 되었다.

"이럴 수가!"

"괴물들이다!"

저격병들은 당황하면서도 화살을 연속으로 마구 쏘았다.

돌격해 오는 수련생들 중에서 몇 명이 제대로 당해서 땅에 나뒹굴었다. 하지만 나머지는 그대로 질주했다.

"놈들이 2차 저지선으로 다가왔다. 성문을 열고 기사단 출동하라!"

파투 성에 임시로 설치된 나무 성문이 좌우로 활짝 열렸다.

그리고 등장하는 3,000명의 정예 기사단.

묻뺏죽 부대의 인원이 500여 명인 것을 감안하여 대기하고 있던 제국의 정규 기사단이었다.

뿌우우우우우우!

뿔피리 소리가 나자마자 기사단은 성문을 나오며 가속을 시작했다.

전신 갑옷을 입고 있는 바리트 기사단.

그들은 묻뺏죽 부대를 상대로 돌격하여 정면에서 박살을 내 버릴 작정이었다.

"근본도 알 수 없는 놈들. 헤르메스 길드에 저항하다니, 진짜 기사가 어떤 존재인지 보여 주지."

바리트 기사단은 백스물아홉 번의 전투를 승리로 이끈 경력이 있는 최정예 집단이었다.

칼라모르 왕국을 정복할 당시에도 혁혁한 전공을 세운 정규 기사단.

그들은 전력 질주를 하면서 돌겨하는 힘을 높였다.

기사단에 속해 있는 헤르메스 길드의 유저들은 앞으로 벌어질 상황을 대충 예상하고 있었다.

적들은 바리트 기사단의 등장을 알아보는 순간 겁을 집어먹고 옆으로 피하려고 하거나, 뒤돌아서서 도망친다.

그때가 가장 취약해지는 시기로, 터무니없을 정도의 파괴력으로 적을 짓밟아 버리게 된다.

검치는 평온하게 말했다.

"얘들아."

"예, 스승님."

"연장 들어라!"

동시에 검치는 등에 메고 있던 활을 꺼내서 앞을 조준했다.

파투 성의 궁병들이 쏘아대는 화살이 하늘에서 날아오고 있었짐나 그것들은 싹 무시한 채였다.

화살들이 스치고 지니가거나 몸에 적중되면 위험하기 짝이 없었지만, 전투라면 그래야만 재미가 있는 법!

검치를 따라서 사범들과 수련생들도 모두 각자 메고 있던 활을 꺼냈다.

모험과 사냥, 전투로 획득한 장궁 단궁, 쇠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활들이 있었다.

아쉽지만 분검술로 늘어난 분신들의 경우에는 검 외에는 다른 무기를 쓰지 못한 채로 돌진할 뿐이었다.

"사격!"

기사단을 향한 무차별 사격!

한순간에 쏘아지는 일제사격도 아니고, 제멋대로 궤적을 그리며 화살들이 마구 쏘아졌다.

드물지만 몇몇 화살에는 불과 얼음, 바람의 속성이 뒤섞인 마법도 걸려 있었다.

"크억!"

"방패를 들라!"

바리트 기사단은 몸을 감싸는 방패로 화살을 막아 냈다.

말들이 쓰러지고 일부 기사들이 낙오되었지만 충격을 위해 돌격 속도는 그대로 유지했다

"창을 들고 충돌을 대비… 으아악!"

바리트 기사단에 속해 있는 유저가 명령을 내리려다가 깜짝 놀랐다.

화살 공격이 끝나자 어느새 뭇뺏죽 부대와의 거리가 가까워져 있었다.

돌격을 위해 몸을 감싸고 있던 방패를 치웠는데 이번에는 날아오는 손도끼가 보였던 것이다.

화살과 손도끼, 투창.

거리에 따라서 투척 무기를 바꿔 가며 연속 3단 공격을 하는 검치와 수련생들의 전투 방식!

사막 전사들에게는 능숙한 전투법이었으나 기사들에게는 자주 접해 본 게 아니었다.

불편하고 무거운 전신 갑옷을 입고 있다 보니 여러 종류의 무기를 다루기가 힘들뿐더러 효과도 떨어진다.

사실 명예를 숭상하는 기사들로서는 검과 창 외에 다른 무기를 잡다하게 쓰라고 해도 들으려고 하지 않는 이유도 컸지만.

"마, 막아랏!"

손도끼와 투창 공격이 바리트 기사단을 엄습했다.

화살과는 전혀 다른 무게가 실린 공격.

손도끼는 방패로 막더라도 옆으로 튕겨 나가서 다른 기사들을 상하게 했다.

그 덕에 묻뺏죽 부대가 바로 앞에 도달할 때까지도 대열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

"몽땅 썰어 버려라!"

"예엣!"

검치를 선두로 하여 검둘치, 검삼치 등이 뒤를 따랐다.

"무엇이든 베는 검!"

그들이 검을 휘두르고 찌를 때마다 방패와 갑옷, 말과 사람까지도 단숨에 베여 나갔다.

혼신을 다한 일격이 성공하면 공격력이 55배나 늘어나서 적을 단숨에 죽인다.

필살의 능력을 가진 기술이기는 하지만 제대로 힘이 실리지 않거나 어설프게 막히면 무기가 부러지고 심각한 부상도 입는다.

위험하기 짝이 없는 공격 스킬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검치와 사범들은 과감하게 사용했다.

그러한 사정을 모르는 이들에게는 일검에 기사들이 목숨을 잃어버리게 하는, 엄청난 돌격력을 가진 실력자들로 느껴졌다.

"낄낄낄, 고기다!"

"밥을 먹었으니 낮잠이나 자 볼까?"

"여, 여자다. 다리 좀 봐. 죽이는데!"

"인생 뭐 있나. 한 놈씩 덤비면 헷갈리니 모조리 덤벼라!"

분검술로 늘어난 분신들도 기사단에 달려들었다.

분검술의 스킬 레벨이 오르다 보니 분신들도 말을 할 수 있었다.

평소 검치와 수련생들이 하던 말들을 지껄이면서 기사들을 향하여 검을 휘둘렀다.

"이런 천한 놈들이……."

기사들은 하벤 제국의 준귀족의 작위를 가졌다.

바리트 기사단의 명예와 긍지는 대단한 것이지만, 묻뺏죽 부대를 만나서 시원하게 털리고 있었다.

파투 성의 성벽에서는 군단장 반롬멜 이하 헤르메스 길드의 고레벨 유저들이 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놈들의 전력이 상당하군. 바리트 기사단으로는 부족하단 말인가."

"바리트 기사단이 더 위험해지기 전에 나머지 전력을 움직여야 할 것 같습니다."

"즉시 동원하십시오."

르포이 평원에 8개의 기사단이 등장했다.

5군단장 휘하에 있는 제국 기사단.

묻뺏죽 부대의 완전한 섬멸을 위해 바리트 기사단이 싸우는 사이 포진을 마친 것이다.

"출진!"

기사단이 돌격을 시작했다.

반롬멜의 화염의 기사단은 붉은 갑옷을 입고 있었다.

갑옷에 부여된 마법의 효과 때문에 그들이 지나간 곳에는 화염의 길이 열리게 된다.

바리트 기사단을 뚫고 들어간 성문 앞에는 중장갑 보병들이 나와서 길을 막았다.

성벽에는 저격병들이 더 만이 배치되었다.

초반에는 상대방이 호락호락하게 여기고 더 가까이 오도록 일부만이 모습을 드러냈다.

검치와 수련생들이 둘러보니 온통 기사들!

하벤 제국군 중에서도 최정예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들은 묻뺏죽 부대가 도망칠 것을 우려하여 기사단급으로만 구성된 포위망을 구성했다.

성벽의 저격병들도 이제는 바로 밑에 있는 묻뺏죽 부대를 향하여 일직선에 가깝게 화살을 쐈다.

"크억!"

검둘치의 어깨에 화살이 꽂혔다.

"둘치야."

"스승님, 괜찮습니다."

"아프지 않으냐?"

"스승님이 화나셨을 때 날리시는 따귀보단 십분의 일도 아프지 않습니다."

검치는 즐거움을 느꼈다.

이곳은 전쟁터다. 그가 살아오기를 소망했던 장소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하벤 제국군은 그들이 도주할 것을 우려하여 포위망을 펼치고 있지만 어찌 적들을 놔두고 탈출할 수 있단 말인가.

"모두 들어라."

"옛!"

"우리 한번 실컷 즐겨 보자."

"물론입니다!"

검치와 사범들, 수련생들은 끊임없이 밀려오는 적 기사단을 상대로 분투를 펼쳤다.

등 뒤에서는 화살이 쏘아지고, 중장갑 보병들이 진출하는 와중에 기사단의 돌격을 맞이한다.

최악의 배수진을 펼친 것과 다름없었지만, 약한 적들보다는 이런 전장에서 싸우기를 기꺼이 원했다.

수련생드이 10명, 20명씩 빠르게 죽어 나갔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공격에 의하여 버틸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최후에까지 살아남은 건 검오치!

그는 사형들과 수련생들의 희생 덕분에 가장 오래 목숨을 부지했다.

묻뺏죽 부대를 몰살시키기 위하여 희생된 하벤 제국의 기사단고 무려 6,000명에 달했다.

검치나 수련생들의 무자비한 공격은 기사들로서도 버티기가 힘든 것이었기 때문이다.

반롬멜이 성벽 위에서 나타났다.

저격수와 기사단이 화살과 창을 들고 마지막 생존자인 검오치를 겨누었다

"마지막 생존자여, 남기고 싶은 말은 없는가?"

반롬멜은 휘하의 자랑스러운 병력이 큰 타격을 입어서 속이 쓰렸다.

묻뺏죽 부대의 공격력이 이토록 뛰어난 줄 알았다면 정면승부는 어떻게든 피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마지막에 승자로서 멋진 마무리를 위하여 검오치에게 말을 걸었다.

검오치는 뻐드렁니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었다.

"재밌었다. 나중에 또 싸우자!"

★★★★★★★★★★★★★★★★★★★★★★★★★★

헤르메스 길드는 제국의 주요 도시들에서 유저들을 모아놓고 성대한 만찬을 열었다.

"하벤 제국에서 영원히 이어지게 될 영광을 위하여!"

"하벤 제국 만세!"

길드의 역량을 대대적으로 동원하여 어비스 나이트 반 호크를 해치운 것은 대단한 사건이었다.

보통 유저들은 쉽게 만나기도 힘든 고레벨들이 대거 동원되어서 코쿤 계곡에서 능력을 발휘했다.

위드의 모험은 혼자서 발버둥 치며 야금야금 해치우는 맛이 있다면, 헤르메스 길드에서는 다수의 고레벨 유저들을 바탕으로 탄탄한 전력을 보여 주면서 압승을 거뒀다.

이를 중계한 방송국들의 포장도 곁들어지면서, 헤르메스 길드의 전투 수행 능력에 대해서는 다들 의심할 여지가 없게 되었다.

어비스 나이트 소탕에 따라서 제국 내의 반란군, 저항군의 활동도 갑자기 위축되었고, 주민들도 연달아 말했다.

"마음에 드는 구석은 없지만 하벤 제국을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나."

"칼라모르 왕국도 이젠 옛말이 되어 버렸어. 하벤 제국의 통치가 앞으로 쭉 이어질 테니 그 속에서 적응해서 살아가야지. 혹시 아는가, 좋은 장사 기회가 생기게 될지."

정복 지역의 주민들도 태도가 약간 달라지면서 하벤 제국의 지배에 순응을 하는 것이다.

헤르메스 길드의 입장에서는 어비스 나이트가 출현한 것이 위기일 수 있었지만, 이를 완벽하게 극복해 냄으로써 도약의 기회로 만들었다.

★★★★★★★★★★★★★★★★★★★★★★★★★★

하벤 제국의 황궁에서는 건국 공신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고레벨 유저들끼리의 연회가 열렸다.

이실리 지방의 최고급 브랜디와 이피아 섬의 위스키가 무제한 제공되었다.

헤르메스 길드에서도 한 지방의 영주이거나 레벨이 440을 넘지 못하면 연회에 참석할 자격이 주어지지 않았다.

"이젠 북부만이 남았군요."

"동부와 남부도 있습니다. 엠비뉴 교단이 쇠퇴하면서 동부와 남부도 상당히 욕심나는 음식이 되었습니다."

"그렇긴 하지요. 북부가 항복하면 동부와 남부는 더 쉽게 손에 들어올 것입니다."

동부의 로자임 왕국과 브렌트 왕국이 엠비뉴 교단으로부터 기사회생했다.

무너진 왕궁이 재건되고 주민들이 원래대로 돌아왔지만 예전의 성세까지는 되돌리지 못했다.

엠비뉴 교단에 의해 세라보그 성이 점령당하면서 동부의 유저들이 북부로 많이 이주해 버렸기 때문이다.

남부는 엠비뉴 교단도 진출을 하지 못했다.

사막의 전사들에게는 이글거리는 태양과 모래가 종교였다.

위드가 사막의 대제로서 모험을 하면서 남부에도 오아시스와 강을 바탕으로 도시들이 생겨났으니 하벤 제국에서는 당연히 이를 점령해야 할 대상으로 여겼다.

사막 전사들이 거칠다고는 해도 정식 군대를 파견한다면 어찌 저항을 할 수 있겠느냐는 느긋한 판단이었다.

헤르메스 길드는 엄청난 식성을 자랑하며 중앙 대륙에서 엘프의 숲과 드워프 왕국으로도 영역을 확대해 가고 있었다.

인간들의 왕국과 땅뿐만이 아니라 모든 곳에서의 통치를 하려고 했다.

그 결과는 세금으로 거둘어들이는 천문학적인 부.

하벤 제국의 황궁에는 보석과 황금으로 된 치장이 나날이 늘어났다.

소수의 고레벨 유저들은 여유로운 라페이와 바드레이를 보며 그들끼리 조용히 속닥거렸다.

"그런데 북부에서의 전쟁은 확실히 이길 방법이 있답니까? 전력을 북부로 더 보내지 않고 이렇게 여유를 부려도 되는 것인지."

"위드의 명성이 괜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 헤르메스 길드도 예측하지 못한 반격에 약간은 피해를 입은 적이 있는데 말입니다."

"지골라스와 같은 경우는 상당히 골치가 아픈 것이기는 했습니다."

사람들은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위드를 가볍게 여기는 것은 옳지 못하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귀찮을 뿐, 무섭게 생각하지도 않았다.

위드에게는 잡초처럼 짓밟혀도 되살아나는 근성이 있지만, 자신들은 헤르메스 길드다.

계란으로는 깨뜨릴 수 없는 난공불락의 요새이며, 대제국의 인구와 영토를 바탕으로 군사력이나 경제력에서 다른 이들은 따라잡을 수 없는 위업을 이루어 낸 것이다.

고레벨 유저 중에서 1명이 싱긋 웃었다.

페나툴!

그 역시 베르사 대륙에서 레벨로 상위 300명 안에 꼽힐 수 있을 정도의 랭커였다.

"어비스 나이트를 상대로 한 전투가 끝난 후 라페이가 그랬다는군요. 북부에서의 전쟁은 우리가 지려고 해도 질 수가 없게 되었다고요."

"그 말은……."

"세세한 계획이야 모르겠습니다만 능구렁이가 수십 마리는 들어 있다고 평가를 받는 라페이니까 실제로 그 말이 들어맞을 수밖에 없겠지요."

헤르메스 길드에서는 바드레이를 총수로 인정하고 그를 구심점으로 단단하게 뭉쳤다.

그러나 길드의 내외부 살림을 실질적으로 이끌어 온 라페이의 능력에 대해서도 의심을 하지 않았다.

라페이가 북부에서의 승리를 확신한다면 그만한 몇 가지의 준비쯤은 되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지의 궁전을 정복하거나 부순다면 위드는 최후를 맞이하게 될 것이며, 더 이상 억지로라도 견줄 수 있는 경쟁 세력 자체가 존재하지 않게 되낟.

베르사 대륙은 완벽하게 하벤 제국의 손에 들어오게 되는 것이다.

★★★★★★★★★★★★★★★★★★★★★★★★★★

하벤 제국의 북부 정벌군.

그들은 군대를 정비하면서 대지의 궁전을 향해 진군하고 있었다.

이른 아침에 자욱하게 안개가 끼어 있는 페실 강.

양쪽을 연결하는 웅장한 칼카사르의 다리는 엄청난 규모를 자랑했다.

헤르메스 길드의 유저들이 북부에 와서 가장 크게 놀란 것이 바로 이런 위대한 건축물이었다.

경제적으로는 중앙 대륙이 좀 더 풍요롭지만 이런 대작업은 벌이기가 어렵다.

막대한 돈과 인력,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강만 건너면 대지의 궁전이 눈에 보일 것입니다."

"전쟁을 위한 보금품의 준비도 넘칠 정도로 마쳐 놓았고… 사기도 드높습니다. 뭐, 승리만이 남았지요."

"병사들에게도 충분한 휴식을 주었으니 약간이라도 불안한 요소는 없어요."

헤르메스 길드의 군단장들은 위드가 대지의 궁전에 나타나고 나서 철저하게 군대를 다시 한 번 정비했다.

그동안의 전투로 쌓인 피로도 휴식으로 풀어 주고, 병장기도 보급품으로 가져온 새것으로 바꿔 주었다.

경기병과 기사에게는 마나석을 이용한 1회용 마법 물품까지도 지급했다.

비싼 가격 때문에 자주 쓰이지는 못해도 일단 가지고 있게 해 놓은 것이다.

바로 진군을 해서 전투를 치르고 싶었지만 이러한 업무를 진행하느라 하루하고도 반나절을 소모했다.

하지만 대지의 궁전에서 위드를 상대로 완벽하게 압도적인 승리를 만들어 내기 위한 준비라고 한다면 아까운 기분은 아니었다.

군대를 통솔하는 지휘관이라면 누구나 적은 전력으로 대군을 물리치는 꿈을 꾸곤 한다.

로열 로드의 세계에서는 훌륭한 기사 1명이 부하들을 이끌고 몇 배나 되는 적을 거침없이 격퇴하는 경우가 벌어지곤 했다.

물론 전투의 규모가 국가 간의 수준으로 커지게 되면 기사 몇 명에 의해 승패가 좌우되기란 쉽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도 가끔씩 그런 전투가 일어나면 널리 알려지면서 소무닝 퍼졌다.

방송까지 타게 된다면 지휘관이나 기사는 유명세를 떨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숙련된 지휘관들은 부실한 전력으로 대군과 맞서는 쪽을 원하지 않는다.

어떤 훌륭하고 멋진 전술도 전쟁에서 확신을 줄 수는 없었다.

지휘관들은 더 많은 병력으로 작은 세력을 확실하게 제압하는 쪽에 서기를 원했다.

"게다가 어비스 나이트와 전쟁이 벌어지는 사이에 우리가 위드와 싸우면 안 되었지요. 수뇌부에서는 자신들이 받아야 마땅한 관심을 분산시켰다고 나쁘게 생각할 수가 있으니 말입니다."

"이번에는 우리가 주인공이 될 차례입나다."

어비스 나이트와의 전쟁이 결판나고 난 이후부터 북부 정벌군은 신속하게 진군을 했다.

날파리 떼처럼 덤벼드는 풀죽신교의 공격을 물리치면서 알카사르의 다리에까지 도착한 것이다.

"이 다리가 없었다면 꽤나 돌아가야 했을 텐데. 정말 다행입니다. 북부의 교통망이 발달한 덕을 보는군요."

"휴식을 취하게 했더니 병사들의 이동속도가 빠릅니다. 내일 저녁에는 대지의 궁전 부근까지만 가도록 하고, 본격적인 공성전은 그다음날 아침부터 펼치는 것이 낫겠지요."

"공성 무기들도 조립해야 하니 병사들에게도 밤사이에는 휴식을 많이 줍시다. 위드의 지휘 능력을 감안하면 어떤 수작을 부릴지 모르니 사기를 최대로 올려놓는 편이 좋을 겁니다."

"며칠 후에는 대지의 궁전에서 축배를 들어야지요."

지휘관들은 기마대 병력을 1차로 알카사르의 다리로 올려 보냈다.

마차 열 대가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넓은 폭을 가진 다리이기 때문에 강을 건너가는 것도 순식간에 끝날 것만 같았다.

정찰별 역할을 하는 기마대는 다리의 끝까지 달려가 보고 되돌아와서 보고했다.

"이상 없습니다. 적들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강물 속은?"

북부 유저들이 워낙 지독하다 보니 강물에 매복을 하고 있지 말란 법도 없다.

"맑고 깨끗합니다. 물고기들이 꽤 보이는 게, 낚시를 하면 그만이겠더군요."

"좋군. 그러면 2군단부터 가시죠."

"먼저 가서 자리를 닦아 놓겠습니다."

2군단은 방어에 적합한 중장갑 보병과 마법사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들이 먼저 강 반대편까지 가서 나머지 군대가 건너올 때까지 지역을 확보하는 역할을 맡게 될 것이다.

이윽고 2군단이 다리를 건너가고 난 이후에 북부 정벌군의 본대가 움직였다.

"1군단이 전투 물자를 같이 운반하도록 하십시오."

"보급 부대의 마차들이 먼저 다리를 통과하도록 하죠."

북부 정벌군에서 소모하는 헤아릴 수 없는 많은 물자들이 다리를 통해 반대편으로 이동해 갔다.

위드와의 전쟁에 대비하여 더 많은 물자를 확보할 만큼 1군단이 이동하는 시간도 꽤나 길었다.

본대의 병력 또한 마차 위에 십수 명씩 앉거나 걸어서 알카사르의 다리를 지나갔다.

말이나 마차에 앉아 있는 헤르메스 길드의 유저들은 알카사르의 다리에서 보이는 강의 풍경에 적지 않게 감탄했다.

"이런 큰 강에 다리가 있다니 말이야. 우리 하벤 제국이나 가능한 일일 것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아르펜 왕국도 보통이 아니군."

"그러게 말이야. 이 다리는 꽤나 편하고 튼튼하게 잘 만들어졌어. 다리가 없었다면 북부로 여행하는 사람드이 상당히 멀리 돌아가거나 고생을 했겠는걸."

"그 덕에 우리는 이용하고, 좋잖아. 교통이나 기반 시설이 아무리 좋더라도 약한 자들은 누릴 권리가 없어. 군사력이 약하면 몽땅 빼앗기는 것이지."

"크크크, 우리가 헤르메스 길드 소속이라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니까."

헤르메스 길드의 유저들은 남들보다 강하다면 그만큼의 특혜를 누리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베르사 대륙에서 패권을 잡기 위해서는 결국 힘으로 군림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위대한 건축물이라더니 기둥마다 새겨진 장식들도 꽤 뛰어나긴 하군. 별로 눈에 들어오진 않지만."

"나중에 이 부근에 땅을 사 놓는다면 이득을 제법 보겠어. 중앙 대륙과 북부 사이의 교역이 왕성해지면 저 마을은 금방 커지겠지."

"약탈로 벌어 놓은 돈을 투자해서 상점을 차려 놓으면 두고두고 돈을 벌 수 있겠는데."

유셀린 마을의 불빛을 보며 헤르메스 길드의 유저들은 정복 이후의 달콤한 미래도 상상했다.

띠링!

『 알카사르의 다리를 건너셨습니다.

페실 강을 연결해 주는 알카사르의 다리는 아르펜 왕국력 제1년에 완공되었습니다.

이동 중에 쌓인 피로가 완전히 회복됩니다.

체력의 최대치가 30% 이상 늘어나서 전투를 오랫동안 지속하거나 고된 일을 하더라도 몸살이 날 가능성이 줄어듭니다.

빠른 발걸음의 장화 스킬이 적용됩니다.

사흘간 험지에서의 이동속도가 감소하지 않습니다.

말을 타면 일주일 동안 최소한 중급 이상의 기마술을 발휘할 수 있게 됩니다.

특별한 장소를 경험하여 민첩이 영구적으로 2 오릅니다.

알카사르의 다리는 북부 대륙의 명물 중 하나입니다.

다른 대륙에 가서 이 놀라운 장소를 귀족에게 보고한다면 명성을 얻을 수 있습니다. 』

"오오, 죽이는데?"

"완전 훌륭해."

헤르메스 길드의 유저들은 크게 감탄했다.

위대한 건축물 알카사르의 다리.

총 건축비만 850만 골드에, 돌망치 건축가 조합에서 4개월이 넘는 기간 동안 공을 들여서 만들어 놓은 업적이었다.

"이 다리도 나중에 전부 우리 것이 되는 거지."

"고생만 실컷 해서 만들어 놓으면 힘으로 몽땅 독차지해 버리는 거니까, 정말 마음에 들어."

다리를 건너온 헤르메스 길드의 유저들은 대충 땅에 주저 앉았다.

북부 정벌군의 본대는 아직 절반도 건너오지 못했다.

대군이 전부 강을 건너오려면 그래도 상당한 시간을 필요로 했다.

"근데 이 다리 무너지기라도 하면 대박이겠다."

"멍청아, 무너질 리가 있냐. 명색이 위대한 건축물인데 말이야."

"당연히 그렇겠지?"

쿠그그그그긍.

그 순간, 다리에서 신경을 거슬리는 커다란 소리가 났다.

"뭐, 뭐지?"

잡담을 나누고 있던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의 시선이 일제히 알카사르의 다리로 향했다.

그들은 소리 때문에 깜짝 놀라서 보았지만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잘못 들었나?"

"아냐, 틀림없이 들었다니까."

"나도 들었어. 무슨 돌끼리 비벼지는 소리 같은 것이었는데."

"어떤 바보가 마차로 충돌이라도 한 거야?"

"별거 아니겠지. 낮잠이나 한숨 자고 일어나면 되겠다."

유저들이 한가롭게 떠들고 있는데 알카사르의 다리에서 다시금 커다란 굉음이 1분 이상 길게 이어졌다.

"우리가 건너온 다리에서 소리가 나는 것 같은데."

"다리가 무슨 노래라도 부르는 거야?"

"그러면 재미있겠는데. 위대한 건축물이라니 그런 기능이 있을지도 모르지."

유저들은 이상해서 알카사르의 다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뒤를 이어진 거짓말 같은 광경에 눈을 부릅떴다.

보통 거대한 건축물이 움직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절대 하지 못한다.

견고하고 웅장해서 언덕이나 산과 같은 지형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그 상식이 여지없이 파괴되고 있었다.

중앙에 우뚝 서 있는 기둥에 균열이 발생하더니 강물로 무너지고, 다리를 연결하는 강철로 된 줄들은 가닥가닥 끊어진다.

넓은 페실 강을 연결하는 큰 다리가 파도처럼 출렁거리기 시작했다.

멀리서는 심한 출렁임이 발생하는 정도로 보였지만 알카사르의 다리에 있는 병력에게는 황당함 공포 그 자체.

높은 파도가 치는 것처럼 다리가 오르락내리락하다가 조각나며 부서지고 있었다.

"으아악! 살려 줘!"

전투 물자를 실은 마차들이 휩쓸리다가 뒤엉켜서 다리 밑으로 떨어질 뿐만 아니라, 병력 또한 추락하지 않고 버티기 위해서 무기를 버리고 돌출물들을 붙잡았다.

그리고 잠시 후 알카사르의 다리 전체가 기울어지더니 통째로 강으로 무너져 버리고 말았다.

"저거……."

"……."

강을 무사히 건넌 헤르메스 길드의 유저들이나, 아직 다리를 넘어가기 직전의 유저들이나 얼이 빠진 건 마찬가지

불신과 당황으로 현실을 인정하기가 어려웠다.

"우리가 너무 한꺼번에 올라갔나?"

"이 다리 부실 공사였어?"

잠깐 동안 유저들은 이런 일이 왜 벌어졌는지조차 이해하지 못했다.

강을 건너지 않은 군단장들은 중간 지휘관들로부터 보고를 받아서 피해를 확인했다.

"강물에 빠진 것은 기사단 7개, 궁병 3만 8천 명, 그리고 부대 전체에 보급할 수 있는 전투 물자 엿새분 정도……."

"막대한 피해입니다."

"그렇지만 극복할 수 없는 것도 아니죠. 전투 물자의 재고도 넉넉하고 말입니다."

하벤 제국군은 포르우스 강을 넘는 진군로를 통해서 총 200만 명이 넘는 대군을 끌고 왔다.

북부 유저들의 거센 항전은 물론이고 점령한 영토의 관리까지도 염두에 둔 병력이라서 다리 붕괴에 따른 피해 정도는 감수할 수 있었다.

강물에 빠진 헤르메스 길드의 유저들과 병사들이야 하류로 떠내려간다고 하더라도 헤엄을 쳐서 일부라도 돌아오기는 할 것이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전투에서 전승을 거둔 군단장들의 압맛을 쓰게 만들기는 충분했다.

"길드에 보고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입은 피해가 알려지는 건 시간문제지요. 이런 피해는 최대한 예측할 수 없었다는 점을 미리 강조해야 합니다."

"공을 인정받으려면 한시바삐 대지의 궁전을 철저히 파괴하고 전쟁에서 만회를 하는 수밖에 없어요."

그러나 강을 건넌 하벤 제국군 약 15만 명과 헤르메스 길드의 유저들 2,000여 명처럼 분위기가 무겁고 심각하진 않았다.

 - 북부 정벌군의 본대와 단절되었습니다.

   아군 부대의 재난을 지켜본 병사들이 심하게 동요합니다.

   사기가 45% 감소합니다.

   훈련도의 최대치가 일시적으로 22% 감소합니다.

병사들의 훈련도와 사기 유지는 전쟁에는 필수적인 중요한 요소다.

훈련도가 낮으면 명령을 내려도 잘 듣지를 않고, 사기가 낮으면 대충 싸우다가 부대 전체가 도망을 쳐 버리는 경우마저도 허다하게 발생했다.

"이거 어떻게 되는 거야. 본대는 이제 이쪽으로 못 건너오는 거야?"

"그러면 우리도 저쪽으로 넘어가야 하지 않겠어?"

경치를 구경하며 알카사르의 다리를 느긋하게 건너왔던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의 등줄기가 갑자기 서늘해졌다.

북부로 와서 아직까지는 압도적인 승리만을 거두었다.

전쟁과는 상관없이 마을을 오가는 유저들도 마음껏 학살하고 다니며 행패를 부렸다.

사실상 북부의 경우에는 통치를 하더라도 얻을 것이 크진 않기에, 길드의 수뇌부에서도 철저한 파괴를 진행한 이후에 재건을 하도록 결정이 난 상태였다.

"야, 아무래도 불안한데."

"설마 지금 적이 나타나진 않겠지? 아마도 그럴 거야."

"그래도 설마……."

유저들이 불안한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저 멀리 평원이 들썩이고 있었다.

"우와아아아아! 진짜 다리가 무너졌다."

"헤르메스 길드에 복수를 하자."

"간닷! 거기서 꼼짝 말고 있어라! 내가 바로 독버섯죽 부대의 톳쿵이다. 물론 내가 가더라도 별로 싸울 힘은 없지만 일단 가긴 간다!"

"벌써 일곱 번 죽은 톳쿵 님이 다시 오셨다!"

"톳쿵 님 안 밟도록 다들 조심하세요. 지난번에는 밟혀서 죽으셨어요!"

숨을 죽이고 있던 풀죽신교!

연전연패를 거듭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끈질겼다.

침략자들을 물리칠 수 있는 전력이 아니기에 실망도 하지 않았다.

헤르메스 길드에서 결성한 하벤 제국군은 강해서 무력으로는 자신들을 이기지만, 의지만큼은 꺾이고 싶지 않았다.

풀죽신교에서도 강성 단체인 독버섯죽 부대에서 만든 다양한 명언들이 있었다.

 ㅡ 못 먹으면 패배이고, 먹고 죽으면 승리다.

 ㅡ 인생은 열 사발의 독버섯죽과 같다. 오늘 안 먹으면 내일 먹어야 된다.

 ㅡ 용기는 도전 그 자체에서 나온다. 먹고 죽을 죽은 아직 많다.

 ㅡ 남기지 않고 깨끗이 먹었다면 그것으로 됐다.

독버섯죽 부대는 늘 선봉에 서며 풀죽신교의 구심점 역할을 확실하게 해냈다.

그들의 전멸이야말로 전투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

게다가 북부 유저들 중에서는 매일 삼시 세끼 풀죽을 마시는 원리주의자들까지도 나오고 있었는데, 성지인 아르펜 왕국과 위드는 그들에게 신앙과도 같았다.

헤르메스 길드에 대한 적대감은 당연히 최고였다.

"하필 이런 때에 저놈들이 오다니. 별거 아닌 놈들이지만 상황이 너무 안 좋잖아."

"다리 붕괴까지도 전부 계획하고 있었던 거 아냐?"

"설마 그렇게까지야…. 아니, 우연히 벌어진 게 아니라 진짜 그런 건가?"

그리고 독버섯죽과 함께 선봉에 서 있는 아르펜 왕국의 기사 유저들이 얼굴을 드러냈다.

"드디어 우리까지 나서는구나."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려 왔는지 몰라. 그 복수의 날이 오늘이다!"

아르펜 왕국에서 시작을 한 기사 유저들은 드높은 명예와 주민들과의 높은 친밀도를 가졌다.

국가와 관련된 퀘스트들을 쉽게 진행하며 공적치를 세울 수 있는 기회도 얻는다.

많은 특혜를 누리면서, 평소에는 아르펜 왕국의 병사들과 함께 성장도 하고 퀘스트도 진행했다.

왕국이 커질수록 기사들은 이득을 얻지만, 또한 소속 왕국이 멸망이라도 한다면 모든 명예를 잃어버리고 투지까지 감소하는 불이익을 받았다.

왕국에서 전쟁이나 몬스터 토벌 등을 선포하였을 시에 참여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제약도 있었다.

상인이나 생산, 다른 전투 계열 직업들은 이주를 해 버리면 끝이지만, 기사 직업은 그 왕국에 마지막까지 충성을 다해야 했다.

한마디로 기사가 되면 국왕과 왕국의 운명을 같이해야 하는 복종의 의무가 생긴다.

아르펜 왕국은 침략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위드가 전쟁을 허락하지 않았다.

모든 왕권과 군대에 대한 최종적인 권한을 가진 위드가 국왕의 검을 내려서 왕국군을 이끌고 싸울 기사를 선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사 유저들은 그럼에도 개인적으로 나서서 싸웠지만, 상당수는 울분을 삼키며 각지에서 자신들의 병사들을 훈련시켜 왔다.

기사 1명이 몬스터가 득실거리는 던전이나 마굴로 100명 정도의 병사들을 데리고 들어가면 전체적인 전력을 상당히 빨리 성장시킬 수가 있다.

아르펜 왕국의 취약한 군사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정예 병력이 필수적.

하지만 도저히 참지 못하고 일부 기사들끼리 몽쳐서 기사단을 결성하고 싸우러 나왔다.

"벌레들이 날뛰어 봐야 달라질 게 있겠어? 밟혀 죽게 될 운명이지."

"발끝에도 닿지 못할 실력들 주제에 지겹게도 나타나는군."

헤르메스 길드에서는 적들이 나타난 것을 보며 비웃었다.

하벤 제국군의 사기가 떨어지기는 했지만 어쨌든 지금까지와 같이 맞서 싸워서 격퇴하면 된다.

하지만 평원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흙먼지!

"하벤 제국을 격퇴하자!"

모두 이주한 것처럼 비워져 있던 유셀린 마을에서도 유저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여느 때와 같이 끝을 알 수 없는 인해전술이었다.

누구를 얼마만큼 싸워서 격퇴한다는 차원의 전쟁이 아니다.

바다가 옮겨 오는 것만 같은 풀죽신교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기사단과 독버섯죽의 후미에는 서윤도 있었다.

"언니, 언니는 내 뒤에 숨어요."

"이렇게까지 싸울 필요가 있을까? 넌 어차피 저들을 죽일 수는 없을 텐데."

"한몫이라도 거들어야죠. 그래야 반 친구들한테 자랑도 할 수 있다니까요."

서윤도 하벤 제국과 싸우기 위해 죽순죽 부대에 속해서 왔다.

'이거 조금 불리해지는 것 같은데.'

'이 전투는 안 되겠다. 1,000명씩 죽여도 못 이겨.'

'진형도 가다듬어지지 않았고 공격력도 부족해. 싸우다가 저놈들한테 파묻히겠는걸.'

전쟁 경험이 많은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 중 일부는 슬그머니 강변으로 가까이 갔다.

갑옷을 벗고 헤엄을 쳐서 강을 건너거나 할 속셈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알지 못하고 있을 뿐, 강물 깊은 곳에도 풀죽신교의 유저들이 있었다.

꼬막죽, 해초죽 부대로 통하는 해녀 부대!

그녀들은 작살을 양손에 들고 먹잇감들이 들어오기만을 기다렸다.

또한 페실 강의 하류에도 유저들이 잔뜩 대기 중이었다.

"여기에 있으면 쓸 만한 놈들 많이 걸려 드는 거 맞겠지?"

"그럼요. 그 사람의 정보는 틀림없을 거라니까요."

다크 게이머들.

이득에 밝은 그들은 다크 게이머 연합에 오른 정보 글을 보고 몰려들었다.

누가 쓴 것인지 알 수 없도록 익명으로 올린 글에서는, 페실 강의 하류에 가서 기다리면 오늘 평소에 보기 어려운 헤르메스 길드의 유저들을 쉽게 사냥할 수 있다고 했다.

보통 익명 글은 믿기 어려운 경우가 많지만 이번에는 그렇지 않았다.

다크 게이머 연합에서 익명으로 꽤 오랜 기간 활동을 하며 따로 별명까지 있는 유저가 쓴 글이었다.

금벌레.

그는 비싼 무기나 보석을 얻었다는 사냥 후기 글이 있으면 항상 댓글을 남긴다.

 ㅡ 좋은 이야기와 사냥터 정보 잘 봤습니다. 현재 시세로 따지면… 그리고 바가지를 좀 씌우면 일당은 확실히 남겠는데요. 대단히 부럽네요.

 ㅡ 피자 큰걸로 시켜 드실 수 있겠습니다.

 ㅡ 게오르그에서는 도자기를 구입하셔야죠. 무기 판 돈으로 그냥 돌아오지 마시고 도자기 사서 교욕을 하세요. 시장 뒷골목 겻잠 상점에

    가시면 원하시는 만큼 물건을 구할 수 있습니다. 단, 주인이 성질이 더러운 만큼 흥정에 주의하셔야 됩니다.

돈과 아이템에 대해서 꾸준한 견적을 뽑아내며 관심을 보이는 사람.

그가 남긴 댓글은 시세에 대해 다른 이들이 지적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정확했다.

가끔씩 잘못된 정보 글에 대해서는 그게 아니라는 식으로 보충 설명을 하기도 한다.

특히 몇 쿠퍼의 가격 차이에도 민감하게 반응을 하며 따지고 들었다.

현재 거래되는 장비들의 시세는 물론이고, 귀금속류나 예술품에 이르기까지 상세한 가격대를 알고 있는 자.

유저들에게 능숙하게 바가지를 씌우고, 어떤 고객에게는 어떤 말을 해야 좋을지에 대하여 함께 고민하는 사람.

다크 게이머 연합에서도 지속적으로 등급이 올라가서 신뢰도가 높은 사람이 확신을 갖고 글을 썼다.

 ㅡ 페실 강의 하류로 가서 기다리지 않는다면 오늘 일을 1년 정도는 후회하실 겁니다.

다크 게이머 중에서도 상위 10%의 등급만이 읽을 수 있는 비밀 글이었다.

"금벌레라면 친분은 없어도 믿을 수 있어. 최소한 손해 볼일은 없으니 속는 셈 치고라도 가 보도록 할까."

"돈에 대해서는 왠지 우리 엄마보다 믿을 수 있는 녀석이야."

그리하여 약 600명에 달하는 최고 수준의 다크 게이머들이 하류 곳곳에 흩어져서 먹잇감들이 내려오기만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온다!"

"저게 다 몇 명이야. 그야말로 대박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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