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달빛조각사 40권 : 9) 얄미운 부하의 부활 (275/520)

9) 얄미운 부하의 부활

대지의 궁전에 도착한 위드.

사냥 파티는 공식적으로 해산되고 그때부터는 각자 흩어지기로 했다.

그런데 대지의 궁전은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지나가게 조금만 비켜 주세요."

"무기점에서 일을 다 보신 분은 다음 사람도 이용하게 어서 나오세요!"

"바가지 상인 연합에서 알립니다. 현재 잡화점의 모든 물건들이 품절 상태입니다. 앞으로는 궁전 밖에 있는 상인들을 이용해 주세요."

대지의 궁전의 모든 건물과 도로는 유저들로 인해 빼곡한 상태였다.

"이게 다 뭐요."

파이톤은 얼이 빠져 있었다.

대지의 궁전에 사람이 가득하다 못해 까마득한 아래까지도 전부 가득 찼다.

평원에도 온통 개미 떼처럼 몰려들어서 정신이 하나도 없을 정도였다.

하늘에는 청공의 섬 라비아스가 있었으며, 수십만 마리가 넘는 조인족의 군무가 벌어졌다.

돌벽 위와 나무에도 인기 있는 참새 조인족이 아장아장 걸어 다니고 있다.

이만큼의 인원이 모인 것은 그야말로 사상 초유의 사태.

아르펜 왕국군이 움직이고 라비아스가 이동을 하면서, 북부 유저들은 당연하게 결전을 치르기 위해 대지의 궁전으로 왔다.

위드도 진심으로 감명 깊었다.

"역시 이 세상은 썩을 대로 썩었어. 나를 위해서 사람들이 모여 주다니. 이렇게 거짓과 위선이 판을 치는군!"

현실을 직시하는 객관적인 태도였다.

"하벤 제국군은 어디에 있다고 하니?"

"약 3시간 거리라는데. 지금 그게 중요해?"

"그럼?"

"풀죽, 풀죽, 풀죽이지!"

"풀죽신교 만세!"

대지의 궁전에 있는 수많은 유저들은 곧 다가올 전쟁 따위는 겁나지 않는지 풀죽을 외치면서 기뻐하고 있었다.

광란의 축제와도 같은 분위기였다.

위드는 냉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현대인들이 받는 극심한 스트레스, 그리고 집단 광기의 현장이로군."

자신이 특별히 한 것은 없다.

사람들의 마음이 아르펜 왕국에 있다는 증거였다.

"콩죽 팔아요. 설탕을 듬뿍 넣은 콩죽! 마시고 죽으면 든든합니다."

"던전 사냥에 유용한 횃불. 고기를 구워 드실 때에도 유용한, 오래 타는 횃불이 단돈 4쿠퍼씩입니다."

"전쟁 이후에 여행 같이하실 분요. 목숨 걸고 미개척지 근처까지 갑니다. 소 3마리 구해 놨어요."

이 상황 속에서도 북부의 유저들은 장사도 하고 동료도 찾았다.

번잡한 상황이 익숙해져서인지 이런 분위기를 얼마든지 즐기고 있었다.

"끄아아아아악!"

경치를 구경하다가 가끔식 인파에 밀려나서 절벽에 떨어지는 유저가 생겼지만, 사소한 일로 여길 뿐 누구도 신경쓰지 않았다.

절벽에서 떨어지더라도 조인족이 날개를 펼치고 급강하해서 구해 주거나 마법사들이 비행 마법을 걸어 주었다.

"날아 보자. 으아아악!"

그것을 노리고 또 유저들이 수백 명씩 절벽에서 뛰어내리다가 한꺼번에 죽는 대참사도 발생!

위드는 아르펜 왕국의 장래가 심히 걱정되었다.

"짧고 굵게 살아야 돼. 어차피 아르펜 왕국의 역사는 길지 않을 것 같군."

하벤 제국에 침략을 당한 처지라 상대적으로 약소국으로 보일 뿐, 아르펜 왕국도 광활한 북부 대륙 전역을 국토로 삼고 있다.

하벤 제국에 일부 점령당한 지역이 있긴 하지만 경제와 모험, 문화에 의하여 그보다 더 많은 지역으로 영토가 확대되었다.

내륙의 확장은 거의 다 끝나고 바다로도 진출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었으니 잠재력만큼은 어마어마했다.

니플하임 제국의 붕괴 이후, 수많은 사람들이 추위와 몬스터를 피해서 바다로 탈출했다.

모험가들에 의해 가끔씩 제법 큰 섬들이 발견되어서 교류가 이루어지며 아르펜 왕국의 영향력이 높아지고 있었다.

건축가들은 북부의 상지이 될 만한 건축물들을 단기간에 지어 냈고 교통망을 연결해 놓았다.

하벤 제국의 침략 없이 1년, 혹은 2년의 시간만 주어졌어도 북부의 모습은 지금과는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많은 유저들이 아르펜 왕국을 아끼고 지키려고 하는 것은 위드가 좋아서만은 아닌 것이다.

페일이 근심 어린 표정으로 남쪽을 쳐다보았다.

"위드 님, 벌서 저기 하벤 제국군이 보입니다."

시력이 뛰어난 궁수들은 아직 멀리 있는 하벤 제국군을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육중한 공성 무기를 끌고 천천히 진군을 하는 하벤 제국군.

깃발이 끝도 없이 이어져 있으며 기사단과 보병들이 착용한 갑옷들이 너무나도 웅장했다.

시야를 가득 채우고 다가오는 정예 병력은 대적하고자 하는 마음까지도 버리고 싶게 만든다.

위드의 눈에도 어렴풋이 그들이 보였다.

"개똥도 밟으려면 있다더니, 뭐 얻어먹을 게 있다고 결국 왔군요."

시끄럽게 떠들고 있는 유저들 중에도 하벤 제국군이 있는 방향을 보고 있는 부류가 꽤 되었다.

이 자리에는 북부 유저 중에도 고레벨들이 은근히 상당히 섞여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그들이 어느 정도나 협력하게 될지는 거의 전적으로 위드에게 달려 있다.

일단은 싸우려고 대지의 궁전까지 왔지만 승산이 없는 전투에 뛰어들기에는 잃어버릴 게 너무도 많았다.

불가능을 뒤집어 놓는 위드의 기적이 벌어진다면 모든 이들이 앞장서서 기꺼이 싸우리라.

하지만 하벤 제국에 의하여 위드가 목숨을 잃고 용감하게 돌격한 북부 유저들도 박살이 난다면, 저마다 도망을 치느라 아비규환이 될 수도 있으리라.

"위드 님, 어떻게 하실 겁니까?"

페일이 물어봤지만, 위드는 딱히 대답할 말이 없었다.

"뭐, 될 대로 되겠죠."

"탁월한 전술을 준비해 두셨겠죠?"

"음, 용감하게 싸운다가 전부입니다."

"정말요?"

"1골드를 걸겠습니다."

"……."

위드의 호주머니에 있는 1골드라면 진실 그 자체.

전쟁이 곧 일어나게 될 테지만 정체를 드러내고 군중을 지휘할 생각은 없었다.

대지의 궁전에는 유저들이 너무 많이 몰려 있었다.

하벤 제국군이 육중한 무게의 공성 무기를 앞세우며 느긋하게 온다고 하더라도 군단별로 편성하고 지휘 체계를 세우기에는 시간적으로 무리다.

국왕 위드가 나타났다고 더 난장판이나 벌어지지 않으면 다행.

달려가서 싸우라는 말 외에는 딱히 복잡하게 내릴 명령도 없었다.

위드는 고민을 하다가 중얼거렸다.

"이 정도의 전장을 지휘할 수 있는 인물이… 현 시대의 기사로는 없겠지. 딱 마땅한 녀석이 하나 있긴 한데… 그놈의 얼굴을 다시 봐야 한다니. 그럼 저는 잠시 할 일이 있어서 궁전에 들어가 봐야겠군요."

그 말에 파이톤이 대검을 등에 메더니 먼저 걸어갔다.

"알겠소. 나도 이런 자리에는 빠질 수가 없지. 몸이 뜨거워지는데, 한바탕할 준비나 해야겠군."

"저 역시 가겠습니다. 여기에 사냥감들이 매우 많이 있군요."

이름을 밝히지 않은 남자도 조용히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페일은 활을 꺼내 시험 삼아 가볍게 시위를 튕기며 물었다.

"저는 상점을 방문한 후에 전투를 위해 좋은 자리를 잡아야겠습니다. 이곳에서 모이기로 한 동료들도 만나 봐야 하구요."

"알겠습니다. 전투가 벌어지고 난 후에나 뵙죠."

모두가 떠난 후에, 위드는 멀리서 다가오는 하벤 제국군은 무시하고 조각품을 깎기 위해 궁전의 내부로 들어갔다.

★★★★★★★★★★★★★★★★★★★★★★★★★★

 ㅡ 어디야. 수색 팀 응답하라.

 ㅡ 수색 팀 1. 아직 발견 못 했습니다.

 ㅡ 수색 팀 2.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ㅡ 수색 팀 3. 나타나지 않은 것 같습니다.

헤르메스 길드의 정보대와 암살단도 대거 대지의 궁전으로 파견되어 있었다.

최정예로만 무려 700명의 인원.

그들에게는 아직 헤르메스 길드 수뇌부의 최종 명령이 내려오지 않았다.

수뇌부에서도 여러모로 고민 중이었다.

'전투 시작부터 위드를 암살해?'

'아냐, 그러면 승리의 효과가 떨어진다. 군대를 동원해서 정식으로 싸워서 충분한데. 뼈아픈 패배를 경험하게 하는 편이 더 낫지.'

'그래도 위드를 죽이면 큰 전투를 아주 쉽게 이길 수가 있는데……. 궁전이 파괴되면 왕국 전체에 심각한 악역향이 오게 될 테고 말이야.'

'도망치면 여러모로 귀찮아진다. 북부를 완벽하게 제압하기 위해서는 위드를 죽여야 돼. 그리고 나타나기만 한다면 이번이 최고의 기회고.'

수뇌부에서도 의견이 갈렸다.

전쟁의 신으로까지 불리는 위드는 핵심 중요 인물이다.

전투 중에 암살을 해 버리면 간편하고 쉽지만, 전면전을 벌인다 해도 패배는 조금도 걱정되지 않았다.

 ㅡ 대기한다. 먼저 대지의 궁전을 샅샅이 뒤져서 위드부터 찾아내라.

 ㅡ 놈은 무모한 모험들을 숱하게 성공시킨 만큼 아마도 도망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암살단과 정보대에서는 위드를 찾아낸 후 일단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궁전의 요소요소마다 배치되어 있는 암살단원들, 초보로 복장을 갈아입기도 하고 상인처럼 마차도 끌고 있었다.

최대한 평범한 흉내를 내면서 주변을 살폈다.

전쟁이 개시되면 위드의 처리는 미루어 두더라도 중요 인물들은 암살하기로 약속되어 있었다.

암살단이 내부에서 활약한다면 외부의 공격도 훨씬 수월해질 것이다.

"커억!"

"윽!"

"아, 암습……."

거리 곳곳에서 사람들이 쓰러져서 회색빛으로 변해 갔다.

대지의 궁전은 유저들로 북적거리는 탓에 금방 발견되었다.

"사람이 죽었다!"

"무슨 일이야?"

"암살자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

정보대원들은 당황해서 길드 채널로 말했다.

 ㅡ 무슨 일입니까? 아직 전투가 벌어지지도 않았는데 벌써 움직이다니요.

 ㅡ 사람들을 죽이면 경계를 심하게 만들 뿐입니다. 더구나 저런 상인들을 죽여서 무슨 이득이 있다고…….

정보대원들이 질책을 하는데, 암살단원 중 1명이 급하게 말했다.

 ㅡ 우리가 한 게 아닙니다. 우리가 표적이 되어 죽어 가고… 크윽!

 ㅡ 뭐라고요?

헤르메스 길드의 졍예 암살단원들.

암살단원이 되려면 레벨이 380은 넘어야 했고, 각종 훈련을 거치고 스킬들을 습득해야 했다.

암살자의 특성상 레벨 380이라도 은신술과 위장술로 접근하여 독을 바른 단검이나 석궁을 이용하여 레벨이 훨씬 높은자도 주일 수 있다.

가벼운 몸놀림으로 뛰어다니며, 다수의 협공은 경악에 가까운 위력을 선보인다.

베르사 대륙 전역에 악명이 자자한 암살대가 마구 쓰러지고 있었다.

 ㅡ 무슨 일입니까? 적의 위치와 정체는요?

 ㅡ 모릅니다. 동료들이 어디선가 날아오는 독침에 죽고, 가까이 다가오는 손님이 칼로 찌르고 순식간에 그림자 속으로 사라지고…….

 ㅡ 지금 그게 말이 됩니까!

 ㅡ 우, 우리도 엘리트 암살자들이라 자부하고 있지만 이런 은신술과 치명적인 공격은 처음 겪어 봅니다. 당하자마자 즉사할 정도로 강력한 공격력이에요.

 ㅡ 몇 명의 적이 우릴 노리는지조차도 파악이 안 됩니다.

암살대원들은 평범한 초보로 위장을 하고 있었다.

대지의 궁전에 흔해 빠진 레벨 50 이하의 유저 복장에 그것도 조각사나 화가, 상인과 같은 비전투 계열들의 옷차림을 했다.

거의 무방비 상태나 다름이 없었다.

'흠, 너무나도 쉬운데?'

헤르메스 길드를 공격하는 암살자는 위드와 사냥을 갔던 남자였다.

그가 가지고 있는 스킬은 '진실의 눈'.

진실의 눈은 상대방의 은신이나 위장을 낱낱이 파헤치는 기술.

헤르메스 길드의 암살자들은 예외 없이 엄청난 악명을 가지고 있었으며, 암살자로서 이마에 붉은색의 이름 표시가 뜬다.

각자 위장술을 써서 그걸 가리고 있었지만 그에게는 아무 방해 없이 정상적으로 보였으니 그저 잘 차려 놓은 밥상이었다.

남자는 그림자에서 튀어나와서 목표의 등을 가볍게 단검으로 찔렀다.

위드와의 사냥 때문인지 암살자들을 처리하는 속도 역시 매우 빨라져 있었다.

'후후후, 암살자가 암살자를 사냥하는 게 역시 가장 재미있어.'

경험치와 스킬 레벨도 몇 배로 획득했다.

악명이 높은 암살자들은 일반 몬스터를 상대로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경험치를 제공한다.

 ㅡ 계속 공격을 당합니다.

 ㅡ 꽃을 파는 상인으로 위장한 우리 동료를 지금 멀어지고 있다.

 ㅡ 한꺼번에 덮쳐. 완전한 은신 상태에 빠져들기 전에 처리해야 해.

 ㅡ 벌써 기둥 아래 그림자 사이로 사라졌습니다.

 ㅡ 그 부근을 철저히 수색… 컥!

 ㅡ 부라노스 님도 당했다.

헤르메스 길드의 암살자들은 복장을 바꾸고 뛰어다녔다.

적과 싸우기 위하여 극독을 바른 단검을 꺼내서 오른손에 단단히 쥐었다.

일부는 휴대용 석궁까지 꺼내서 팔에 장착했다.

대지의 궁전에 있는 유저들에게는 이상한 광경이었다.

"뭐야,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야? 저런 장비는 레벨이 아주 높아야 착용하는 건데."

"사람이 막 죽어 나가고 있네."

"왕궁에서 서로 막 싸워도 되는 건가? 이봐요. 밖에서 싸워요."

"저 장비는 암살자만 쓰는 거 아니야?"

갑작스러운 상황의 변화로 헤르메스 길드의 암살자들에게는 일이 크게 잘못되어 가고 있었다.

은밀함과 어둠은 암살자들의 주특기다.

위장술을 통해 정체를 감추고 적들의 진영을 자유롭게 누비며 활동한다.

그런데 그런 장점이 사라지고 온통 적 유저들밖에 없는 한복판에서 고스란히 노출되었다.

상당수는 전혀 아무 관계 없는 척 서 있었지만 그리자 속에 숨어 있는 암살자가 귀신같이 나타나서 공격을 한다.

위장술도 의미가 없어지고, 정체는 곧 탄로 나기 일보 직전의 상태!

북부의 유저들이 시끌벅적하게 떠들었다.

"저들이 누구야."

"음, 우리 북부 출신 중에서 저런 복장을 입고 있는 높은 레벨의 암살자들은 없잖아."

"그럼 뭐, 헤르메스 길드인가?"

"그놈들이라면 가능하지. 딱 비열한 놈들이잖아. 그리고 예전에 방송을 보니깐 저런 식으로 먼저 침투해서 분열을 일으키더라고."

무기를 꺼내고, 마법을 준비하는 북부의 유저들.

이제 헤르메스 길드의 암살자들에게는 강요된 최악의 선택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ㅡ 모르겠다. 주변에 보이는 모든 적들을 공격하라!

 ㅡ 전부 죽여!

대지의 궁전에서 암살자들의 대란이 발생했다.

아무리 헤르메스 길드의 유저들이 강하다고 하더라도 대지의 궁전에도 그들을 상대할 만한 사람은 드문드문 있었다.

본색을 드러낸 암살자들에게는 온갖 공격이 쏟아지게 되었다.

결국 5분도 되지 않아서 완벽하게 전멸.

 ㅡ 암살대가 몰살을 당했습니다.

 ㅡ 어떻게 이런 일이…….

보고를 받자마자 헤르메스 길드의 수뇌부는 공황 상태에 빠졌다.

암살대는 그 특수성 때문에 지금까지 활용도가 높았는데 완전히 전멸을 당하고 말았다.

살인이나 파괴 행위로 인하여 악명이 엄청낙서 죽음으로 인한 피해도 매우 컸다.

 ㅡ 대지의 궁전에서 이제 어떻게 할까요?

 ㅡ 수색 작업은 종료. 정보대는 임무보다는 철수를 우선하여 진행한다.

정보와 암살 담당 스티어가 명령을 내렸다.

금쪽처럼 아까운 정보대까지 잃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얼마 후, 주민들이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자네, 이야기를 들었는가? 대지의 궁전에 죽음의 신이 등장했다는군."

"아, 그 죽음을 몰고 오는 그림자라는 사람?"

"맞아, 바로 그 양념게장 말일세."

★★★★★★★★★★★★★★★★★★★★★★★★★★

"이건 정말 아닌게 말이야."

위드는 입으로는 구시렁거리면서도 조각칼을 부지런히 계속 움직였다.

"놈들이 보인다!"

"저 멀리 하벤 제국군이 몰려오고 있다!"

궁전 밖에서는 유저들이 외치는 소리가 계속 들렸다.

"뭐, 정말 꼴 보기 싫은 놈이더라도 어쩔 수 없지. 인생은 하고 싶은 일만 함녀서 살 수는 없으니까 말이야. 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이란 이야기가 괜히 나온 것도 아니고."

위드는 울적한 기분을 느끼면서 석상을 조각했다.

대지의 겅전에 국왕을 위하여 놓여 있던 열두 가지 색채로 빛나는 천연석 덩어리.

아무래도 국왕이 조각사이기 때문에 특별히 마련해 놓은 천연석이었는데 지금은 사람을 조각하는 데 쓰이고 있었다.

반듯한 눈썹과 오뚝한 콧날, 여인들을 빨아들일 것 같은 크고 맑은 푸른 눈동자, 부드러우면서도 강직한 입매.

얼굴은 두말할 필요가 없는 미남이었지만 몸과 다리의 늘씬한 비율도 도저히 일반인이 아니었다.

거리에 서 있으면 단연 돋보일 수밖에 없는 몸매였다.

아마 어떤 옷을 입고 있더라도 만든 디자이너가 자신의 직업에 자부심을 느낄 수 있게 해 주리라.

천연석의 다채로운 빛깔과 질감은 그 부위마다 보석처럼 느껴지게 했다.

"크흠, 이런 인간이 실제로는 존재할 수 없는 거지. 말도 안 되는 사기고 거짓말이야."

조각을 함녀서도 위드의 입에서는 불평불만이 절로 계속 나왔다.

대한민국 사람의 평범한 신체 비율을 가진 자신에 비하면 실로 엄청난 다리 길이와 넓은 어깨, 작은 머리의 월등한 육체 조건.

세계 최고의 모델 앞에 서 있는 군밤 장수가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몸매가 완벽하고 얼굴까지 잘생긴 남자들은 인류의 민폐가 아닐 수 없었다.

기억을 못 한다면 차라리 마음이 편할 테지만 미운 구석이 많은 놈인 만큼 더 자세히 알고 있었다.

"언젠가 다시 보게 될 줄은 뭐, 알긴 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일찍 만나게 되다니."

위드가 조각을 하는 대상은 바로 전쟁의 시대에 함께 대활약을 펼쳤던 헤스티거!

다행히 부하로 부려 먹기는 했지만 까딱했으면 헤스티거에게 밀려서 들러리 역할을 할 뻔했다.

"이놈이 내 밥그릇을 얼마나 많이 위협했는지, 그 억울함을 제대로 갚아 주지도 못하고 헤어졌는제. 흠, 못다 한 잔소리를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

조각을 하는 동안 밖에서는 헤르메스 길드의 암살대가 활약을 했다는 소식도 언뜻 지나간 듯싶었지만 위드는 상관하지 않았다.

직접적으로 자신에게 공격을 하지 않으면 신경을 쓰지 않는 무관심함!

복잡한 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있어서는 정신 건강을 위한 필수 덕목이라 할 수 있었다.

"구구구구!"

"짹짹!"

대지의 궁전에서 기다리고 있던 은새와 황금새가 위드의 양옆에서 시끄럽게 쫑알거렸다.

은새는 미남을 좋아했고 황금새는 질투하는 것이다.

그렇게 헤스티거의 조각상이 완성되었다.

"음, 완벽하군. 진짜 잘 만들었어, 크후후후. 순수하게 내 조각술 실력이 뛰어나기 때문이지. 그런데 너무 잘 만들어 버린 것 아닌가?"

조각품을 샅샅이 훑어보며 흠을 잡아 보려 했지만 그게 잘 안 되었다.

작은 실수도 저지르지 않았으며, 우연치 않게도 실력 역시 200% 발휘되었다고 해야 옳았다.

헤스티거를 보면서 느꼈던 질투와 부러움의 감정들이 오히려 조각품에 집중해서 더욱 공을 들이는 결과를 낳았던 것이다.

"하긴 뭐, 이 정도는 되었으니까 내 부하를 해 먹었을 테지만 말이지."

 - 만드신 조각품의 이름을 정해 주십시오.

"헤스티거라고 하자. 아니 뭐, 조각품의 이름은 내 마음대로 짓는 거고 곧 생명을 부여할 테니 의미는 없겠지. 그렇다면… 건방진 부하 녀석이라고 짓도록 하지."

 - 건방진 부하 녀석이 맞습니까?

"맞아."

이런 식으로라도 잘난 헤스티거를 향한 분풀이를 하는 위드였다.

띠링!

『 명작! 건방진 부하 녀석을 완성하셨습니다.

베르사 대륙의 길고 긴 역사에는 기록되지 않고 사라진 인물들이 많다.

그러나 영웅 중의 영웅인 헤스티거는 불신과 탐욕, 모략과 부덕이 판을 치던

전쟁의 시대에서 단연 빛나는 별과 같은 존재였다.

그는 기사가 아니지만 약자를 보살피고 존중할 줄 알았다.

어긋난 길을 걷고 있던 기사들의 정신적인 지주가 되었으며, 천재적인 재능으로 한계를 극복하여 시미터를 완전하게 다루었다.

땅봐 바람과 아람다움, 태양의 신이 그가 내딛는 걸음을 축복하였고, 군신의 교단에서는 한때나마 그를 숭배하였다.

주민들을 탄압하는 잔혹한 군주에게는 고개를 숙일 줄 모르는 완전한 전사로서, 부도덕하고 무질서한 대륙에 정의를 바로잡았다.

한 개인으로서 그가 떠돌면서 세운 걸출한 업적들은 국경의 한계를 넘어 기사도의 표본이 되었다고 봐도 옳으리라.

지금 인간 중에서 가장 완벽한 외모를 가진 조각상이 탄생하였다.

예술적 가치 : 7,985.

특수 옵션 : 건방진 부하 녀석상을 본 이들은 생명력과 마나 회복 속도가 하루 동안 42% 증가한다.

            기사와 전사에게 올바른 정신력 스킬을 익힐 수 있게 함.

            기사의 지휘 능력에 많은 숙련도를 제공.

            명예 +120.

            학문과 검술, 마법 스킬의 습득 능력이 일주일 동안 7% 향상됨.

            모든 스텟 41 상승.

            동료나 부하와 함께 사냥을 하면 모든 능력치가 함께 4% 증가.

            건방진 부하 녀석상이 보이는 영역에서 모든 병사들의 사기가 최대치를 유지함.

다른 조각품과 중복 적용되지 않음.

지금까지 완성한 명작의 숫자 : 26. 』

 - 조각술 스킬의 숙련도가 향상되었습니다.

 - 손재주 스킬의 숙련도가 향상되었습니다.

 - 명성이 1,320 올랐습니다.

 - 예술 스텟이 12 상승하셨습니다.

 - 투지가 3 상승하셨습니다.

 - 매력이 7 상승하셨습니다.

 - 명작 조각품을 만든 대가로 전 스텟이 1씩 추가로 상승합니다.

"이놈의 외모지상주의 세상! 재료가 좋고 대상이 좀 잘생겼다고 해서 명작이라니! 뭐, 그렇다고 해서 새삼스럽게 기분이 나쁜 건 아니지만 말이야."

헤스티거의 조각상을 만들어 놓고 보니 새삼 감회가 새로웠다.

전쟁의 시대에서는 시기와 질투로 구박을 했지만 그게 진실의 전부는 아니었다.

'내가 위험에 빠진 적도 많았지.'

조각술 최후의 비기 퀘스트.

사막에서 한정된 시간 동안 성장을 해야 했기 때문에 불리한 점도 많았다.

무리하게 던전을 탐험하다가 위기를 겪어야 했던 게 한두 번이던가.

위드 자신은 물론이고 조각 생명체까지도 위험해졌을 때에 헤스티거가 실력을 발휘하여 빠져나온 적도 많다.

충성심으로 추격해 오는 몬스터들을 막았고, 보스급 몬스터의 미끼가 되었다.

헤스티거가 위드의 몫을 가로채기도 했지만 그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사막의 대제왕의 전설 또한 이루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위드조차 질투하게 만들었던 영웅 헤스티거!

"나타라, 못난 부하 놈아. 조각 부활술!"

 - 조각 부활술 스킬을 사용하셨습니다.

   사막 전사 헤스티거, 예술의 부름을 받아 이 땅에서 다시 움직이게 될 것입니다.

   예술 스텟 45가 영구적으로 사라집니다.

   신앙 스텟이 10이 영구적으로 줄어듭니다.

   레벨이 3 하락합니다.

   생명력과 마나가 18,000씩 소모됩니다.

   조각 부활술에 의하여 되살아나는 인물은 생전의 지식과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해진 짧은 시간이나마 세상을 다시 볼 수 있고 움직일 수 있게 해 주는 것에 고마워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조각 부활술 스킬의 숙련도가 향상되었습니다.

대전의 중앙에 장식되어 있던 천연석 조각상이 변하기 시작했다.

조각상의 머리카락이 고귀한 금발로 변하고, 눈동자가 푸르게 빛났다.

탄탄한 상체의 근육이 물결처럼 출렁이더니 가볍게 숨을 쉬었으며, 단단하게 땅에 붙어 있던 다리도 움직여서 걷기 시작했다.

단지 한 사람이 움직이는 것에 불과한데도 대전의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곧은 콧날과 남자다운 턱 선. 잘생겼다는 말로도 한참 부족하고, 매력도 철철 넘쳐흐른다.

위드보다도 훨씬 왕처럼 느껴지는 그의 외모, 고귀한 기품이 느껴지는 그가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주변을 돌아보았다.

'헤스티거가 살아났다.'

위드는 긴장한 채로 그를 보았다.

상체를 벗고 있는 헤스티거의 근육은 아름다운 예술품과도 같았다.

그 근육에서 발휘되는 불가사의한 힘은 현재의 위드를 가볍게 없애 버리기에 충분할 터!

'내가 무모했던 게 아니었을까.'

헤스티거가 그에게 어떤 독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가 분풀이를 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조각 부활술을 펼친 대상이 꼭 협조적으로 나오라는 법은 없었다.

부활의 기적에도 불구하고 살아난 대상은 자신의 의지와 뜻대로 활동한다.

'나라면 복수할 기회만을 노렸겠지. 약해진 나를 보며 온갖 트집을 잡아서 괴롭히다가 목숨을 빼앗는 것은……! 하벤 제국 이상으로 위험한 적을 불러온 것일 수도 있어.'

위드는 뒤늦게 자신의 실책을 깨닫고 후회하고 있었다.

헤스티거는 주변을 둘러보더니 위드를 발견하고는 정중하게 말했다.

"주군께서 이곳에……! 믿기지가 않는군요. 정말 주군이 맞습니까?"

"마, 맞다."

헤스티거의 잡티 하나 없이 깨끗한 얼굴은 잠깐 의아한 표정을 짓더니 곧 여자들의 마음을 해외로 날려 버릴 정도로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살아 계셨군요. 과거보다 젊어지신 것 같습니다."

낮고 그윽한 목소리까지 더해지니 여자들의 마음을 은하계 너머로까지 날리기에 충분하다.

한눈에 알아보니, 지은 죄가 꽤나 많은 위드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러나 헤스티거는 공손하게 무릎을 꿇고 목을 길게 내밀었다.

"엠비뉴 교단을 물리치고 빠져나온 이후로 주군을 뵙지 못하여 걱정을 만이 했습니다. 그 후로 주군의 소식을 듣기 위하여 대륙을 떠돌아 다녔지만 도저히 알 수가 없어서 애를 태웠는데 이제야 만나게 되었군요. 주군을 끝까지 모시지 못하였으니 저를 벌하여 주십시오."

"아, 아니다. 일어나다."

위드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지금의 나는 너보다 약하다. 알고 있느냐?"

"예. 느껴집니다."

사막 전사들은 힘의 율법에 따라서 강자에게 복종하는 습성이 있었다.

위드는 긴장으로 마른침을 삼켰다.

"그런데도 예전과 똑같이 나에게 충성을 다하겠느냐?"

"저의 목숨은 하나입니다. 비록 목숨을 잃은 이후에 다시 살아난 것이기는 하지만, 제 가슴을 뛰게 했던 심장의 고동 소리는 여전하며 뜨거운 피 역시 그대로 흐르고 있습니다."

멋진 대답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위드의 의심병은 사라지지 않았다.

약간 추잡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지은 죄가 있으니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이 바닥이 워낙 뒤통수를 조심해야 해서 말이야. 노파심에서 다시 물어보는 건데, 정말 너를 믿어도 될까?"

"사막의 모래바람 속에서 주군에서 충성을 다짐하고 긴 시간이 흘렀지만 바뀐 것은 어떤 것도 없습니다. 저의 생명이 이어지고 끝나는 순간까지, 사막의 모래가 모두 사라지는 그날까지 충성의 다짐은 이어지게 될 것입니다."

"과연 나의 부하다."

주말 드라마 남자 주인공과 같은 헤스티거의 든든한 말소리와 말투는 신뢰감을 가득 안겨 주었다.

물론 지닌 무력이야 그때에 비한다면 일천하기 짝이 없었지만.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과거에도 너를 가장 믿고 있었으니라."

"언제나 절 믿으시고 중요한 일들을 맡겨 주신 걸 잘 알고 있습니다. 세상을 구하기 위한 숭고한 임무에 동참시켜 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근데 넌 왜 죽었지?"

위드는 불현듯 궁금증이 일어났다.

그가 엠비뉴 교단을 무찔렀을 당시만 하더라도 부하인 사막 전사들을 어찌해 볼 만한 강자가 대륙에는 없었다.

"엘프들을 고향까지 데려다 주고 나서 대제를 찾기 위해 세상을 방랑했습니다, 그러면서 요정들과 함께 온갖 장소들을 다 가 보았습니다. 남부와 서부, 고요의 사막을 지나고 수몰의 늪과 봉인된 자들의 땅을 지나서 죽은 자의 손톱으로 만든 배를 탔습니다."

"손톱으로 만든 배? 별걸 다 타 봤군. 계속 말해 봐라."

"신들의 영역ㄷ에까지 가서 대제의 흔적을 찾으려고 했습니다만 그곳의 수문장과 싸우고 나서 거인들의 땅에 도착하여……."

"그만. 더는 알고 싶지 않다."

위드는 그것으로 충분했다.

고요의 사막을 건너갔다는 이야기는 흥미를 자극했지만 왠지 모르게 등줄기를 서늘하게 만드는 예감이 들었다.

헤스티거의 모험을 언젠가 자신이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느낌이었다.

"놈들의 마법사 부대가 무언가 심상치 않은 주문을 외우고 있어요!"

"하벤 제국 놈들을 물리쳐라!"

"나가서 싸웁시다, 풀죽 용사들이여!"

대전 밖에서는 계속 시끄러운 소란이 들려왔다.

하벤 제국의 북부 정벌군이 가득 몰려와서 평원에 늘어서 있다.

전쟁이 벌어지기 직전의 상황이었다.

헤스티거의 눈이 번뜩였다.

"이 소리들은 다 무엇이옵니까? 곧 전투가 벌어질 것 같습니다만."

"이건……."

위드는 말을 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전일, 전이, 전삼.

이런 조각 생명체 부하들은 단순해서 싸우는 이유 같은 게 필요하지 않았다.

반면에 헤스티거의 경우 불쌍한 이들을 위하여 시미터를 휘두르고, 때때로는 그들을 지켜 주는 역할도 했다.

위드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타는 불 속에도 뛰어들 헤스티거다.

하짐나 정당하지 못한 명령을 내린다면 정의를 실현한다면서 칼을 뽑아 들어 거꾸로 위드를 향해 휘두를 수도 있는 위험인물이기도 했다.

'아무튼 착한 놈들은 다루기가 까다롭지. 그래도 잘만 치켜세워 주면 정신 못 차리고 충성을 바치기도 해.'

순식간에 계산이 끝났다.

어떻게든 위드가 처해 있는 입장을 알리고, 적극적으로 하벤 제국과 싸우도록 설득을 해야 한다.

헤스티거가 적극적으로 싸울 명분이나 이유를 만들어 줘야 하기 때문이다.

"저들은 나의 왕국을 짓밟으려고 온 자들이다. 과거 팔로스 제국은, 너도 알고 있겠지만 자비롭지는 않았다. 나 역시 엠비뉴 교단을 물리쳐야 한다는 중대한 목적과 사막 부족들을 위해서 더 많은 땅과 도시들을 지배하기를 원했을 뿐, 진정한 통치자로서의 자질은 없었다. 나 하나 때문에 많은 이들이 고통을 받았다고 할 수 있지."

위드는 자기 자신에 대한 비판부터 했다.

전쟁의시대는 어차피 가상의 역사에 개입을 했던 것이므로 특별한 책임감 없이 사막의 대제왕으로서 실컷 활개를 치면서 다녔다.

"내가 저지른 그 죄악이 아직도 생생하구나. 아침에 일어나기 전부터 전쟁의 시대에 벌어진 무수한 사건들이 떠오른다. 그들을 정복하지 않고 칼을 내려놓고 먼저 대화로 해결할 수는 없었을까, 엠비뉴 교단 처치라는 중요한 목적 때문에 나 자신을 잃어버렸던 건 아니었을까. 내가 더 강하지 못했기 때문에 무리할 일들을 많이 벌여야 했다는 죄책감으로 살아가고 있다."

"주군, 당시에 다른 왕국들은 팔로스 제국보다 더 악랄했습니다. 우리가 항상 정의롭지만은 않았지만 설득과 타협만으로는 일을 해결할 수 없었고 칼을 들이대지 않으면 그들을 바꾸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사막 부족들은 대제왕 덕분에 새로운 삶을 얻었습니다. 제국의 지배로 삶이 불편해졌던 자들도 대제왕을 원망할 수만은 없었을 것입니다."

헤스티거는 순진한 만큼 떡밥을 덥석 물었다.

초등학생에게 휴대폰 게임을 시켜 준다고 하니 정신을 못차리는 것과 마찬가지!

고개를 숙였다가 다시 든 위드의 눈에, 고춧가루를 넣었을 때처럼 눈물이 글썽거렸다.

실제로는 고춧가루가 없어서 후추라도 재빨리 눈에 뿌렸다.

"지금은 전쟁의 시대와는 다르다고 믿었다. 모든 이들이 행복해하고, 개개인의 권리가 지켜지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북부를 개척하고 아르펜 왕국을 세웠다. 마음처럼 쉽진 않았지만 예전부터 품고 있던 꿈을 이루기 위하여 노력을 했던 것이다."

"그러셨군요."

"아르펜 왕국은 시작부터 천천히 이루어 갔으니 나 역시 황무지에서 조심스럽게 꽃을 가꾸는 기분이었다고 해야 할까."

위드는 과거를 떠올렸다.

모라타에서 시작하여 영역이 점점 넓어질 때에는 뒷산에서 산삼을 발견한 기분이었다.

남들이 캐어 갈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얼마나 분노와 짜증이 치밀었는지 모른다.

"왕국을 위해서 살아가면서 가슴을 채우는 보람과 기쁨이 있었다. 모두의 땀으로 결실을 만들어 갔다. 하지만 하벤 제국이라는 곳이 침략을 해 왔구나. 과거에 나 역시 힘을 앞세워서 일을 해결하려고 했으니, 지금 강자가 약자를 짓밟는다고 하여 어떻게 원망하거나 미워할 수가 있을까."

"으으음."

"아르펜 왕국의 맥이 여기서 끊어진다고 해도 나는 괜찮다. 목숨을 바쳐서 이루려고 했던 일이니 왕국과 최후를 함께하면 그만. 얼마나 명예로운 일이냐. 그러나 부족한 나를 믿고 따라 준 주민들의 목숨이 슬프고 안타까워서 이 짐을 영원히 내려놓지 못할 것만 같구나."

헤스티거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착한 이들은 왜 이다지도 눈물이 흔한 것인지.

"제가 저들을 막을 것입니다."

"아니다. 내가 마지막까지 힘을 다해 볼 것이다. 내가 너를 부른 이유는 두 가지다. 가장 충성스러웠고 자랑스럽기도 했던 너를 다시 보고 싶은 마음과 왕국이 무너지고 나면 몇몇의 어린아이들과 여인들만이라도 살려 달라는 부탁을 하기 위해서다."

"주군!"

'너무 앞서 간 거 아닌가.'

정말 헤스티거가 어린아이들과 여인들만 구한다면 뒷감당 불가능.

조각 부활술을 사용했던 걸 뼈저리게 후회하게 될 것이다.

"주군, 저는 주군을 통해 사막 전사의 긍지를 배웠습니다. 패배는 없습니다. 저들을 모두 쓸어버릴 것입니다."

"헤스티거야!"

순간, 위드도 약간의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는 했다.

아르펜 왕국의 국왕과 사막의 대제왕을 거치면서 느끼는 바도 있었다.

'좋은 인생 경험이야. 악덕 사장의 꿈을 위해서는 계속 이런 식으로 살아야겠군.'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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