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달빛조각사 41권 : 7) 기울어지는 전쟁 (282/520)

7장 기울어지는 전쟁

"전투준비, 전투준비!"

"초보분들은 이쪽으로 모이세요. 우린 전투에 나서더라도 별 역활을 못 하므로 투석 공격을 준비합시닷!"

"궁수들은 어서 거북이 바위 지점으로 모이세요. 그곳이 아래쪽을 향하여 사격하기 좋은 지점입니다."

"전투물자 필요하신분. 전투소모품 원가보다도 낮은 가격에 팔아요 외상도 받습니다. 아직도 장만못하신분, 어서 사서 싸워주세요!"

대지의 궁전에 있는 바트는 당황스러웠다.

전투 초기, 하벤 제국군은 방어만 하고 있었기 떄문에 높은 지형인 대지의 궁전에 올라서 전쟁을 구경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궁전까지는 들어가지 못하더라도 산으로 올라가는 길가에도 수십만명 이상 몰려서 전투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하벤 제국군의 거의 절반에 달하는 병사들이 신속하게 전개하더니 대지의 궁전을 향하여 진군을 해왔다. 막아내는 북부 유저들을 짓밟아 버리면서 산의 밑부분 까지 도착했다.

"늦기전에 도망칩시다!"

"전투 능력이 없는 유저들은 방해만 되니 어서 궁전을 내려가 주세요!"

상인이나 관광객으로 온 유저들은 대지의 궁전 뒤쪽으로 내려가려 하였지만, 그곳으로도 4군단이 우회하고 있었다.

아르펜 왕국의 수도 역활을 하는 대지의 궁전은 산봉우리에 건설되어 지형적으로 천험의 요새와 다를바가 없기에 앞과 뒤, 합동 공격으로 함락 시키려는 계획이었다.

그 탓에 대지의 궁전 인근에 있던 유저들은 모두 죽기살기로 싸울수 밖에 없게 되었다.

"이건 뭐야. 지키지도 못할 궁전을 위한 개죽음 밖에 안될텐데."

"항복을 한다고 하면 살려줄까? 북부에서 살고있어서 헤르메스 길드팬인데. 원래 강한 놈들이 정의잖아."

전투를 원하지 않는 유저들이 무기를 거두거나 높이 들고 항복 의사를 밝혔다.

4군단장 인스트리움이 외쳤다.

"대지의 궁전에 있었다는 자체만으로도 하벤 제국을 거역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모든 군대는 투항하는 적들을 사로잡지 말고 전부 죽여라!"

몰살 작전!

하벤 제국에 티끝만큼도 거스르지 못하도록 적극적인 본보기를 보인다.

"전부 죽이고 해치워라!"

"생존자, 포로 따위는 한 놈도 필요치 않으리라."

하벤 제국의 각 군단들은 북부 유저와 주민들을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학살하며 산을 올랐다.

"이런 퇴로도 없군."

포위망을 뚫고 나갈수가 없어 보이기에 바트는 대지의 궁전으로 향하였다. 기어이 죽을 수밖에 없다면 전투 구경이나 실컷 하고 대지의 궁전과 함께 최후를 맞이하려는 것이었다.

대지의 궁전의 내부와 외부, 산 전체에 걸쳐서 얼마나 많은 유저들이 모여 있는지는 측정이 불가능했다.

"이쪽으로 빨리요! 우리의 목슴을 이롭게 씁시다."

"저놈들이 쳐들어 오기만을 일주일이나 기다렸는데 지금이 그 순간이라니 무척 떨리면서도 기쁘네요."

그들은 조약하나마 기마병을 상대하기 위한 나무 창틀을 세우고 끓는 기름을 웅덩이에 퍼부었다.

전쟁을 대비하기 위해 모인 유저들이 복새통을 이루면서 저마다 할일을 시작하는 것은 큰 감동을 주었다.

구경만 하기로 했던 유저들도 빠져나갈 길이 막힌 이후로는 싸우다 죽는 쪽을 택했다.

기사단을 중심으로 계단과 도로를 통해 산을 올라오는 길에 하벤 제국군은 온갓 공격들을 받았다. 화살과 마법은 기본이었으며, 큰 바윗덩어리가 땅을 울리며 굴러 내려온다.

"몸으로 막고 계속 진군하라. 사소한 피해에 연연하다가는 자칫 성과를 빼앗길수 있다."

3개의 아군 군단끼리 경쟁이 붙은 하벤 제국군은 전면 돌격으로 대지의 궁전 함락작전을 진행했다.

기사단은 물론이고 보병들조차도 검과 방패를 들고 뛰어올라온다.

병사들의 체력이 소진되고 피로도가 극에 달하더라도 대지의 궁전을 우선 정복하고 나머지는 차근차근 해치우려는 군단장들의 생각에서였다.

"훗, 이런 식이라면 나 혼자서 금방 100명도 넘게 죽일수 있겠군."

페일은 대지의 궁전에 있는 담벼락위에 서있었다.

그는 입으로 물고있던 화살을 시위에 재서 높은 하늘을 겨누었다.

"땅으로의 비산!"

페일이 쏜 화살이 수직으로 하늘을 향하여 치솟았다.

정신없이 날아다니던 조인족들은 화살이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걸 발견 하고는 깜짝 놀라서 피하려고 했지만 그대로 날개 사이로 통과하며 지나쳤다.

"짹짹?"

화살에 맞았는데도 아무 피해도 안 생겼다.

페일이 쏜 화살은 400~500미터 정도의 꽤나 높은 상공까지 올라가더니 폭죽처럼 터졌다.

10개가 넘는 불덩어리로 변해서 다시 지상으로 낙하개시!

조인족들은 이번에도 난리가 난듯이 정신없이 피하려고 했지만 불덩어리들은 몸통과 날개에 닿더라도 그대로 튕겨서 떨어졌다.

"꺄루루루룩?"

화살의 파편은 땅에 떨어지고 나서야 크게 폭발했다.

땅의 기운을 정제하여 만들어낸 특별한 화살과 땅의 정력을 다루는 능력을 터득해야만 쓸수있는 고급 기술이었다.

페일처럼 담벼락에는 궁수들이 일렬로 서서 지상을 향하여, 혹은 하벤 제국군을 집접 겨누어서 화살을 쐇다.

전쟁이 벌어지면 제대로 위치를 잡고있는 궁수들에게는 잔치가 벌어지는 것과도 같다. 대지의 궁전이 전쟁요새는 아니더라도 지형의 특성상 침략자들을 상대로 하기에 궁수들에게는 부족함이 없었다.

북부 유저들 중에는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은둔 고수들도 등장했다.

"34년 솔로인생, 처음으로 들어온 소개팅보다도 영광스러운 날이 오늘이다. 모든 취미 생활을 중단하고 인간관계를 단정하며 로열 로드에서 살아온 내가 너희 하벤제국군의 죄를 묻겠노라!"

"오너라. 중앙 대륙에서는 더러워서 피했지만, 북부에서는 깨끗하게 쓸어주마!"

"단 한번도 높은 명성을 가져 본적이 없으니 아무도 모험가 반, 나를 모르겠지. 이 이름을 알아도 동명이인의 다른 모험가였을 거야. 재수는 더럽게 없지만 자질구레한 모험들을 실패한적 없이 모두 성공시킨 나다!"

혼자서 조용히 사냥을 즐기던 유저들도 나섰다. 북부 전체가 나선 듯한 분위기에,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살아가던 유저들도 전투를 함께했다.

대지의 궁전은 고위 유저들의 밀집도나 실력에 있어서 북부에서 최고였다.

하벤 제국군은 산을 오르면서 예기치 못한 큰 피해를 계속 입었지만, 그럼에도 전면 돌격을 계속 유지했다. 공적을 탐하는 마음이 크기도 했지만 여기서 물러날수는 없다.

헤르메스 길드는 끝없는 전투로 단련이 되어 있었다.

군단 내에 병력적으로 큰 희생이 생기더라도 승전을 거두고 나면 영토와 전리품을 얻는 것만이 아니라 병사들도 경험을 통해 훨씬 정예화된다.

다소 불리한 전투에도 헤르메스 길드의 지휘관들은 후퇴를 하지 않았을 텐데, 얼마든지 싸울만하고 목표가 눈앞에 있는이상 병력을 되돌릴 생각은 더욱 없었다.

그때 위드가 불사조를 타고 대지의 궁전에 나타나며 사자후를 터뜨렸다.

"아르펜 왕국군이여, 전쟁을 시작하라!"

"페하께 영광을!"

헤스티거로부터 지휘권을 받고나서 본격적으로 통솔하는 것이었다.

"세빌 너의 책임아래 5군단을 처리하라!"

"예, 페하."

아르펜 왕국군의 구성도 탄탄해졌다.

북부의 기사 유저들이 대거 포함되어 있었으며, 병력도 상당히 실력이 늘었다.

군사훈련 기관이나 고급 기사단 양성소는 없어도 병사들은 유저들과 함께 넓은 북부 대륙을 떠돌면서 단련 되었다.

위드의 후손으로 북부까지 찾아온 사막 전사, 사막의 대제왕 시절에 챙겨놓은 철오의 후예들까지 하나씩의 부대로 창설되었다.

아르펜 왕국군에는 비교적 만만한 5군단을 공격하도록 지시했다. 빙룡,와이번들도 가세하도록 했으니 밀리진 않을것으로 생각했다.

조각 생명체들이야말로 자유로운 생각을 할줄 알며, 자신의 생명은 금쪽처럼 아끼는 보스급 몬스터들.

븡룡이나 불사조나 레벨이 유저들보다 훨씬 높을뿐만 아니라 광범위 공격과 공중전이 가능했다.

킹 히드라는 괴수 특유의 높은 생명력을 가져서 군단급의 방어력을 발휘할수 있다.

위드가 그들을 집접 지휘하여 5군단을 상대할수도 있겠지만 대지의 궁전의 전투가 급하여 일단 도착한 것이다.

위드는 사자후를 강력하게 터뜨렸다.

"이곳은 북부 핵심과도 같은 곳입니다. 모두 함께 싸워서 침략자들을 물리칩시다!"

거센 항전을 하던 북부 유저들의 반응은 당연히 폭발적!

"끼얏호! 전쟁의 신 위드님이 우리와 함께한다!"

"우린 지지 않았어. 기적처럼 지켜내고 살아서 집으로 돌아갈꺼야."

위드는 사람들의 열광적인 반응을 보며 입가에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역사에 나오는 위대한 지휘관들이 정말 절망적인 끈을 놓지않고 진심으로 격려하며 휘하 부대들을 이끌었을지 의문이 들기도 했다.

'이곳의 전투는 정말 어려워. 정말 기적이라도 벌어지지 않는한 대지의 궁전을 막아내지 못해.'

위드는 보통 사람이었다.

대지의 궁전을 향하여 시시각각 올라오고 있는 하벤 제국군의 정예 군단을 어떠한 수단으로 막을수가 있겠는가.

어떤 꼼수를 발휘하더라도 이 상황은 불가항력이란 말이 가장 잘 어울렸다.

'아무튼 최선을 다해 봐야지.'

1군단의 진영으로부터도 대지의 궁전을 향하여 무사히 많은 화살과 마법공격이 치솟아 날라왔다.

띠링!

-아르펜 왕국의 왕궁, 대지의 궁전에 세워진 28개의 기념탑들이 산과 들, 땅의 기운을 흡수하여 파괴적인 공격에 저항합니다.

모든 원거리 공격의 96%를 차단합니다.

수비 측의 생명력과 체력을 충성와 명성에 따라 최대 240% 까지 증가시킵니다.

주의. 기념탑이 파괴되거나 저장된 기운이 소모된 이후부터는 공격의 차단 비율이 크게 감소하게 될것입니다.

성문과 철탑, 기타 구조물이 대거 파괴되면 수비 측에 주어지는 혜택이 없어집니다.

절반의 기념탑이 차단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빗발치듯이 떨어지는 원거리 공격들은 농성하는 유저들의 목슴을 앗아갔다.

하벤 제국군 총 3개의 군단이 적극적으로 화력을 집중하고 있으니 감당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오늘 하루는 꼬박 싸워야 할줄로 알았는데 전술을 바꾸었더니 1시간이명 되겠구나! 역시 내 판단이 옳았다. 계속 진군하면 대지의 궁전과 위드의 목슴, 모두가 나의 것이다."

드라카는 모든 휘하 병력에 대지의 궁전을 정복하는 일을 최우선으로 하도록 지시했다.

위드까지 등장하였으니 헤르메스 길드 입장에서는 완전히 모든 전력을 기울일 수가 있게 되었다.

아직도 얼어서 녹지않은 땅에서는 낙오된 하벤 병사들이 공격을 당하여 죽어가고 있었지만 전황과는 관련이 없었다.

평원에서 북부 유저들이 대지의 궁전을 구하기 위해서 올라오려고 했지만 2군단장 발바로가 이끄는 제국군에 의해 차단당하여 영향을 주지 못하고 있는 형편.

넓은 평원에 흩어진 북부 유저들은 발을 동동 굴렀다.

"아... 저거 어떻게 하지? 우리는 여기에 있는데 진짜중요한 곳은 역시 대지의 궁전이잖아."

"흑임자죽이여, 어서 저쪽으로 갑시다."

"콩죽, 부추죽, 나물죽, 쑥죽, 들깨죽은 연합하여 구조에 나서자!"

"죽순죽 여러분의 의기를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지금은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아리는 하벤 제국군이 더 이상 대지의 궁전으로 향하지 못하도록 막읍시다. 우리까지 대지의 궁전으로 간다면 뒤엉켜서 이도저도 안될 것입니다."

풀죽신교에서는 민첩하게 움직였다.

최초에는 빨리 달려가기만 해도 성공이라고 보았던 대규모의 유저집단.

전직 군사 전문가들이 각 풀죽 단체들의 고문이 되어서 전황에 따라 판단과 지휘를 내렸다. 그러한 명령 체제가 유저 개개인에게 까지 완젹하게 전달되진 못하더라도, 큰 바다와 같이 거센 흐름을 형성하면서 적에게 부딪쳐 갔다.

-읽지않은 이메일이 39통 있습니다.

"흐음 씁쓸하군. 열흘 이상 가는 꽃이 없다더니, 세상의 한 부분을 군림했던 내 인기도 이 정도인가?"

흑사자 길드의 칼리스.

현실에서는 중국 베이징에서 전통 상점을 운영하고 있는 고덕강이라는 이름의 중국인이었다.

흑사자 길드가 건재할 당시에는 하루에도 수천통의 이메일이 도착했다.

칼리스를 동경하며 그처럼 되고 싶다거나, 흑사자 길드에 가입을 시켜달라는 부탁들.

헤르메스 길드에 맞선 연합 길드에 속해 있을 무렵에도 이메일을 수백통씩 받아봤다.

그러나 대륙의 패권을 건 전투에서 패배하고 난 이후에는 관심도 사라졌다. 며칠만에 로열로드의 홈페이지에 접속해 보았는데 이메일은 불과 39통 뿐이었다.

"수치스럽군. 헤르메스 길드를 제외한 다른 대표들도 마찬가지겠지."

흑사자 길드는 패배하고 나서 뿔뿔히 흩어지게 되었다.

전쟁 패배의 책임으로 칼리스와 길드의 주력을 이루던 유저들이 비판을 받았고 내부적인 갈등도 심해졌다.

흑사자 길드의 전성기에는 10만에 달하는 유저들이 가입되어 있을 정도였으나 상황이 뒤바뀌고 그들을 이끄는 사람들이 사라지자마자 모래알처럼 흩어져 버렸다.

일부는 흑사자 길드원이었던 과거를 숨기고 중앙대륙에서 죄인처럼 살아가고, 또 나머지 일부는 헤르메스 길드에 가입하게 되었다. 그동안 모은 재력이 있으니 유명한 휴양지에서 한가롭게 살아가겠다는 사람들도 많았다.

북부로 떠난 사람들로부터 가끔 소식은 들려왔다.

고덕강은 달리 할일도 없어서 메일함을 클릭해 봤다.

발송인 : 씹다버린떡

칼리스 보아라. 이 썩을놈의 자식아, 과거의 원한을...

발송인 : 제크트

잘 지내고 계십니까?

발송인 : 헤켈

안녕하십니까. 제가 요즘 퀘스트를 하는데 문의드릴 부분이 있습니다.

발송인 : 빈델

좋은 사냥터를 발견하고 정보를 드립니다.

발송인 : 위드

어이, 나와 손잡고 하벤 제국에 복수하고 싶지 않나?

고덕강의 눈이 머무른 곳은 '발송인 : 위드' 위 부분이었다.

"설마... 위드라고?"

로열로드의 홈페이지에서는 자신의 캐릭터 이름으로 메일을 보낼수 있다. 위드라는 이름은 가장 흔하고 많이 사용하는 닉네임이었다.

"전쟁의신 위드! 대지의 궁전에서 그 능력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열세를 극복하고 하벤 제국을 상대로 버티고 있는 것만으로도 대단합니다."

텔레비전에는 북부 전쟁이 방송되고 있다.

위드가 나타난 이상 시청률은 보장되었고 전쟁도 극적으로 치닫고 있다. 시청자들의 반응도 열광적이다.

고덕강도 텔레비전을 보다가 다른 유저들의 게시물을 읽기 위해서 로열로드의 홈페이지에 접속을 한것이다.

"전쟁의 신 위드는 당연히 아니다."

원한을 품은 욕설 글들은 삭제한 후 흑사자 길드 소속 유저들의 메일들을 읽고나서 답장을 썻다.

컴퓨터 커서가 '발송인 : 위드'의 이메일에 올라갔다.

"아니라고는 생각되지만 이 메일도 읽어보지."

제목으로 봐서는 허풍이나 장난같지만 기왕 쉬고있었으니 속는 셈치고 시간 낭비를 하자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메일을 본문을 보는순간, 고덕강은 얼음물을 뒤집어 쓴듯 정신이 들었다.

로열로드의 홈페이지에서 보내는 메일에는 자신의 캐릭터 모습을 이미지화해서 본문에 담아 놓을수 있다. 메일안에 나타난 이미지는 위드였다.

그가 착용하고 있는 다양한 퀘스트 아이템과 여신의 기사 갑옷은 그 누구도 가지지 못한 독보적인 물건이었다.

"진짜 위드의 메일이다."

직접 만나본 일은 없어도, 멜버른 광산에서 바드레이에게 참패를 당한 이후로 그때의 방송을 몇 번이나 시청했다. 흑사자 길드 소속 유저인 헤겔을 통해 위드의 전투 영상도 입수해서 확인을 했다.

특별히 눈여겨볼 부분은 없었지만 위드에 대해서는 당연하게도 상당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뭐, 인사는 생략하지. 서로 먹고살기 힘든 처지에 잘 지내고 있느냐는 상투적인 말을 해 봐야 의미 없지 않겠어?

알다시피하벤 제국은 중앙 대륙을 정복한 이후 군대를 보내서 북부를 노리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와서 도와 달라는 이야기는 아니고...

고덕강은 고개를 갸웃했다.

위드가 그에게 메일을 보내서 할 말이 무엇이 있단 말인가.

사실 북부의 전쟁에 참여해 달라는 제안을 해도 가지 않았을 것이다. 전쟁이 벌어진 지금이 아니라 훨씬 이전에 메일을 읽었더라도, 자기 자신이 뛰어들어 봐야 큰 역활을 해내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흑사자 길드가 아직은 존속하고 있어도 그 전력은 전성기에 비해서 2할에도 미치지 못했다.

과거처럼 유저들이 모여서 지역 전체를 장악하고 던전 사냥에 나서지도 못하는 처지라서 결속력도 미약하다. 북부까지 가서 다 같이 죽자는 제안을 한다면 길드는 아예 해산이 되어 버리고 말것이다.

물론 고덕강 자신도 어떤 이득도 없는 북부 전쟁에 나설 생각은 없었다.

베르사 대륙을 헤르메스 길드가 혼자 다 해 먹게 놔둘 것인가.

그렇지 않다면 때를 기다리고 힘을 모아라.

하벤 제국이 흔들리면 기회가 온다.

상처입은 사자라면 늑대들이 사냥할수 있다.

구체적인 이야기는 북부 전쟁을 승리한 이후에 다시 하도록 하겠다.

이메일은 거기에서 끝났다.

"위드는... 진심으로 포기하지 않았는가?"

고덕강은 정말 크게 예상 밖이라고 생각했다.

명문 길드들이 전부 모인 연합군이 격파된 이후로 헤르메스 길드를 막을수 있는 단체는 사라졌다.

전쟁의 신 위드라고 할지라도 이미 패배감에 빠져서 포기하고 말았으리라고 생각했는데 진심으로 싸울 생각을 하고 있다니 놀라웠다.

"그렇더라도 전쟁이 마음만으로 할수 있는 건 아닐 텐데."

고덕강의 시선이 텔레비전으로 향했다.

북부 전쟁이 방송되는데, 워낙에 많은 방송국들이 중계를 하고 있었다.

채널마다 여러 방면에서 전쟁을 지켜 볼 수 있는데 전황은 말할 것도 없이 불리하다.

속수무책!

하벤 제국군이 대지의 궁전을 지키는 유저들을 도륙해 가며 올라가고 있었다.

대지의 궁전에 있는 유저들은 말이 좋아서 수비군이지 갇혀있는 신세로 보인다.

연합군은 저보다도 훨씬 유리한 상황에서도 돌이키지 못할 큰 피해를 입으며 완벽하게 패배했다. 고덕강이 저곳에 있었어도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으리라.

"틀림없이 불가능한데. 불가능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반전이 벌어지게 된다면... 모든 것이 달라질 수도 있을지도."

앞을 조금도 내다볼수 없는 실정이다.

그렇지만 만의 하나라도 하벤 제국군이 패배한다면 헤르메스 길드의 신화도 밑바닥에서 부터 흔들리게 된다.

"나에게만 이런 메일을 보내지는 않았을테고. 다시 한번 베르사 대륙에 혼란을 볼 생각인 것인가?"

헤르메스 길드는 적이 많다.

그들이 현재의 제국을 건서하는 동안 무수히 많은 적들이 굴욕의 눈물을 흘려야 했다.

위드가 새로운 신화를 쓰고 사람들을 모은다면 갈 곳 없는 이들은 그 깃발 아래 뭉치게 된다. 혹은 그렇지 않더라도 혼란을 틈타서 자신들의 세력을 모으게 될것이다.

"헤르메스 길드는 승리를 확신하고 있을 것이다. 나 역시 그들이 진다는 것은 생각할 수조차 없으므로. 위드가 이 상황을 뒤집어 놓을수 있단 말인가? 여기서 어떻게라는 의문이 남지만... 그게 가능하다면 너무나도 어마어마한 일이다."

고덕강은 흥미를 잃었던 북부 전쟁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자신이 아닌 전쟁의 신 위드라면 저 불리한 전황조차도 뒤집어 놓을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생긴다.

그렇게만 된다면 하벤 제국의 정복을 위한 발걸음이 멈춰지는건 물론이고 큰 변화가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제대로 봐 줘야겠군. 실망을 시키지는 않을테지."

고덕강은 몸을 돌려서 텔레비전의 음량을 높였다.

그보다 먼저 이미 위드의 메일을 받고 읽어본 유저들이 있었다.

로암길드의 로암, 사장성의 군트, 블랙소드 용병단의 미헬, 클라우드 길드의 샤우드.

대륙의 일각을 지배했던 패자들.

그들은 로열로드의 허름한 선술집에서 수정 구슬을 통해서 북부 전쟁을 지켜보았다. 로열로드의 맥주맛은 현실을 이미 아득하게 추월해 버렸기 때문이다.

북부의 유저 펠첼은 숨을 크게 몰아쉬고 있었다.

'전쟁이다 전쟁.'

로열로드를 시작했을 무렵만 하더라도 그는 평범한 유저들과 비슷했다.

자신의 적성이나 희망 직업도 모르고 무조건 로열로드가 좋았다.

로열로드를 접하는 순간부터 다람쥐가 쳇바퀴를 돌다가 지쳐 쓰러져 죽는 일상으로부터 벗어나서 새로운 세상이 열리게 되었다.

모래의 촉감과 바다에서 불어오는 냄새,탁 트인 초원까지, 모든것이 행복했다.

'남들이 없는 곳, 그리고 신선한 세상이 좋아.'

그는 모라타에서 유저들이 시작하게 된 날부터 북부의 주민이 되어서 살아갔다.

그 당시만 해도 현재의 아르펜 왕국정도의 번영은 꿈도 꿀수 없었고 생필품 중에서 없는것이 많았다.

모라타 초기의 유저들은 성 밖으로 멀리 나가는 순간부터 목슴은 자기의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대장장이나 재봉사처럼 도시 내에 거주하는 직업들도 많이 택하였다.

펜첼은 굳이 모험이 아니더라도 세상을 돌아다니고 싶었다.

넓은 베르사 대륙의 모든 도시는 아니더라도 대륙 북부만큼은 자신의 눈으로 담아 두리라는 마음.

'기사가 되자. 말을 타고 돌아다닐수가 있잖아. 약자들을 지켜 주고.'

그는 사냥터와 던전에서 레벨을 올리고 모타라에서 전투 기술들을 습득했다.

검사와 워리어 길드에서도 직업 제한이 없는 통상적인 전투 기술은 배울수 있다. 특히 워리어 기술들은 익혀놓고 나면 저절로 발동되는 경우가 많아서 많은 기사들이 애용했다.

펜첼은 기사가 되고 난 이후 모험가와 상인을 따라서 원하던 대로 북부를 여행하며 다녔다.

사람들을 지키고 때론 몬스터의 위협에 맞서서 최후까지 마을을 지키다 목슴을 잃어버리기도 했다.

풀죽신교의 초창기부터 활동을 하여 아는 사람도 많은 그는 당연하게도 대지의 궁전으로 왔다.

'아르펜 왕국은 황무지 위에 세워지지 않았다. 많은 사람의 노력으로 흘린 땀의 결실위에 건국되었다.'

모라타 초기 유저들이 갖는 충성심은 북부의 발전과 함께해서 그 어떤 대가로도 살수없는 숭고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유저들은 자신이 가진 능력의 한계를 잘 알았다.

헤르메스 길드 유저에게 일대일로 싸움을 걸면 죽음 외에는 남는게 없기에, 여럿이서 1명을 노리거나 부상을 입고 낙오된 자들을 목표로 삼았다.

"타핫!"

펜첼은 뛰어 들어온 제국군 병사 1명을 여섯번의 공격스킬을 사용해서 없앨수 있었다.

하벤 제국군에서 사용하는 커다란 강철 방패가 전리품으로 떨어졌다.

미처 확인할 겨를도 없이 온몸을 타고 흐르는 전율.

'강하다. 그래도 마나를 너무 많이 썻어. 냉정했다면 세 번의 공격만으로도 이길 수 있었는데.'

긴장 때문에 숨이 더욱 가빠졌다.

'내몸은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 아리펜 왕국을 지키기 위해서는 조금이라도 더 버텨서 1명이라도 더 죽여야 한다.'

펜첼은 다음 제국군을 상대하기에 앞서서 잠깐동안 뒤를 돌아보았다.

대지의 궁전 정문에는 그가 우러러 보는 전쟁의 신 위드가 서있었다.

불타오르는 화염의 기운을 몸에 두르고 빛나 보이는 그는 수많은 유저들의 선망을 받고 있다.

"위드여, 투혼의 기사 란테미르가 너에게 도전한다."

"아르펜 왕국의 국왕, 조드 성의 영주 볼탄모호드에 대해서는 많이들어봐서 달 알고 있겠지. 너와 결판을 내겠다."

"나는 살인을 즐기는 추잡... 아니 아무튼 게코라고 한닷!"

몇명의 이름난 랭커들이 제국군의 진영에서 뛰쳐나와서 위드를 향해 돌진했다.

레벨 450,460,470대의 전투능력에 자신있는 인물들.

헤스티거가 없는 이상 위드도 자신과 비슷한 상대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명마를 몰아서 사람과 장애물을 넘어 위드에게 덤벼든다.

그렇지만 위드도 혼자는 아니었다.

워리어 바하모르그!

아르펜 제국에서 조각 생명체 군단을 이끌었던 최강의 워리어가 위드의 곁에서 성문을 함께 지키고 있다.

중앙 대륙에서 넘어온 레벨 높은 북부의 유저들도 철통처럼 호위를 하고 있었다.

조인족으로 변신한 황금새와 은새도 근접해서 날아다니며 지원공격을 하고 있었으며, 위드 자신의 능력도 만만치가 않았다.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을 하나 혹은 둘 정도는 가뿐하게 제거했다.

퀘스트를 통해서 상당한 레벨의 손해가 생겼다고는 하지만, 진정한 잡캐인 위드가 그것으로 심하게 약해진건 아니다.

모험으로 얻은 스텟 등으로 보충을 하고, 만만하면서도 좋은 장비를 착용하고 있는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만 화려하게 격파하고 있었다.

북부 유저들의 사기도 올리며 곶감 빼먹듯이 실속을 올리는 위드!

펜첼의 눈에는 부러움이 가득했다.

'언젠가는 여기가 아니라 저분의 곁에서 싸우리라. 북부 대륙이 아닌 다른 지역에서도 함께할수 있을 정도로 강해지고 싶다.'

펜첼과 같은 마음을 가진 북부 유저들은 이곳에 많았다.

그런 유저들을 또 보고 있는 부류에는 바트도 포함되어 있었다.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따르다니 말이야. 로열 로드에서의 영향력은 정말 놀랍지 않은가.'

어떤 유망한 유저가 도시에서 돌아다니면 주민들 사이에서 떠들썩한 소란이 일어난다. 말을 나누는 경우도 별로 없는 그런 대단한 유저들조차도, 위드  앞에서라면 끔뻑 죽는시늉 까지도 한다.

아르펜 왕국의 국왕이란 지위는 일개 상인 유저인 바트에게는 감히 우러를 수도 없는 경지였다. 위드를 안다는 사실만으로도 어느 정도 행세를 하기에 충분했다.

물론 사람들이 믿어 줘야 말이지만.

'그래도 내 딸은 아까운데...'

바트는 전투 능력이 이런 싸움에 끼어들 수준이 아니라서 그냥 기둥 옆에 우두커니 서서 구경을 하고 있었다.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도 보잘것 없는 상인보다는 위드가 우선 목표이기에 그냥 지나쳐 갔다.

그때 문득 위드와 바트의 눈이 마주쳤다.

"어?"

"위,위드?"

목소리가 들리지도 않을 정도의 먼 거리.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이 위드에게 덤벼들면서 시선은 곧 차단되었다.

바트는 고개를 숙였다.

'내가 누군지 모르겠지.'

비싸지도 않은 상인 복장이 창피해서 알은척을 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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