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헤스티거의 마지막 부탁
파이톤과 양념게장은 하벤 제국과의 전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다.
하벤 제국군과 헤르메스 길드를 상대로, 남부 사막에서 지옥 같은 사냥을 하고 돌아온 분풀이를 유감없이 해치웠다.
파이톤은 대지의 궁전을 지키면서 헤르메스 길드 1군단의 정예 유저들을 상당수 해치웠으며, 그 후에도 전투가 완전히 끝날 때까지 계속 싸웠다.
물러설 줄 모르는 명예의 존속자 파이톤.
암살자 남자는 헤르메스 길드에서도 상당한 강자, 지휘관들만 골라서 해치우며 전장을 휘젓고 다녔다.
"뭐, 고작 이 정도? 내가 목숨을 거두어 가는 데는 아무 장애도 없어."
강추위와 헤일이 일어나는 동안에도 적진 침투와 암살을 반복했다.
그에 의하여 목숨을 잃은 기사단의 단장만 14명, 상위 기사들을 대거 잃고 와해된 기사단도 4개나 되었다.
죽음을 결정하는 양념게장.
그런 큰 공을 세우고 나서 그들은 위드를 만났다.
위드가 먼저 귓속말을 보낸 것으로, 당연히 전투를 끝내고 난 이후의 성대한 뒤풀이를 기대했다.
'허헛, 자랑거리가 좀 생겼군. 너무 노골적으로 이야기하기에는 좀 그렇지? 그럼 어디서부터 자세히 말을 해 주어야 할까.'
'죽음을 결정하는 나 양념게… 아무튼! 이 전쟁에서 나를 빼놓고 이야기하지 못할 것이다. 헤르메스 길드에서도 내 칼을 피한 자가 없었으니까. 비록 전쟁의
소란스러움을 십분 활용했지만 이것도 실력이지.'
두 사람은 위드에게 자랑거리들을 실컷 이야기할 생각이었다.
조각술만큼이나 유명한 그의 요리들을 실컷 맛보면서 지난 전쟁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잔재미가 있으리라.
두 사람은 먼저 도착해 있는 페일을 보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지독한 대지의 궁전 전투에서 살아남았군. 과연 나 파이톤이 인정한 실력자.'
'전쟁의 영웅들이 모인 자리인가. 암살자인 나에게는 쑥스럽지만, 즐겨둬야지.'
그런데 위드가 말했다.
"아직 덜 모였으니 좀 기다리죠."
두 사람은 생각했다.
'하긴, 위드가 아는 사람들이 고작 3~4명은 아니겠지. 원하던 자리다. 북부 대륙 각 분야 최고의 전문가들을 만나서 친해지는 것도 좋아.'
'음, 부끄럽지만 재미있는 자리가 되겠군. 여성 유저가 오면 뭐라고 소개를 해야 하나. 가명을 알려 줘도 실례가 아니려나. 가명은 카푸치노 정도가 무난하겠지.'
기대를 품은 파이톤과 양념게장!
이윽고 헤스티거가 도착했다.
"대제왕, 숨어 있던 적까지 전부 물리쳤습니다. 이 왕국은 이제 안전합니다."
"그래, 수고했다."
두 사람은 헤스티거를 곁눈질로만 보았다.
전쟁터에서 그의 독보적인 무력을 확인했다.
상대가 보통 만나기 힘든 강자가 아니라서, 궁금한 게 산더미 같았어도 자존심 때문에 말을 걸지 못했다.
'검은 내가 더 크다.'
'목숨은 하나뿐이지. 적으로 만났다면 암살을 시도해 볼 텐데. 찰나의 완벽한 기회만 있다면 누구든 죽는다.'
잠시 후에는 프레야 교단의 교황 후보 알베론이 도착했다.
일반 유저들 중에는 그를 모르는 이들도 꽤 많지만 파이톤과 양념게장은 잘 알고 있었다.
사냥에 미친 귀신인 위드의 하수인, 그 저주와도 같은 강력한 회복 마법을!
'커억! 이 인원 구성은 설마……! 아니겠지, 아닐 거야, 아니어야 한다!'
'히, 히익!'
그리고 위드의 말.
"그럼 어서 사냥 가시죠."
위드에게는 단 하루뿐인 헤스티거의 부활일.
최대한 본전을 봅아내야 하는 건 물론이었다.
이리엔과 로뮤나 등의 일행이 감당하기에는 위험한 데다 워낙 피곤해하니 휴식을 주어야 한다.
대신에 아주 잘 싸우고, 심지어는 죽더라도 별로 아쉽지 않은 사냥 동료들을 부른 것이었다.
"……."
"……."
파이톤과 양념게장의 눈이 다급하게 마주쳤다.
눈을 몇 번 깜박이는 것으로 의견 조율도 이루어졌다.
"머리가 어지럽고 몸이 불편해서……."
"집에 급한 일이 있어서 그만 가 봐야 되겠습니다."
왠지 꾀병으로 담임선생님에게 조퇴를 시켜 달라고 엄살을 부리는 학생의 심정.
그러나 위드는 조금도 자상하거나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정말 몸이 안 좋으십니까?"
"그렇소. 남자가 당당하게 살아야지 뭐하러 거짓말을 하겠소."
"정 같이 가기 싫으시다면 어쩔 수 없죠. 그냥 편하게 말씀해 주세요. 앞으로는 저와 사냥을 하지 않으실 겁니까?"
"다른 사람을 구해 보시오. 내가 아니더라도 좋은 사람이 있을 테니까."
"역시 꾀병 맞네요."
"……."
"헤스티거야, 칼 들어라. 오늘 피를 좀 보겠구나."
"예, 대제."
"……."
양념게장은 덩달아서 아무 말도 못하고 끌려가게 되었다.
그렇게 시작된 밤샘 사냥!
헤스티거라는 걸출한 전사가 있는 만큼 평소에는 엄두도 못 내던, 그야말로 최고 난이도를 자랑하는 던전을 두루두루 돌 수 있었다.
사냥법도 자신들의 힘으로 격파하는 것이 아니라 헤스티거에 의존하여 몬스터들을 뚫는다.
"우리 아버지가 도둑을 걱정해서 그곳을 신묘한 삽을 숨겨 놓았다고 해요. 결국 아무도 찾지 못하게 되었지만요."
던전과 관련 있는 퀘스트도 꼼꼼하게 수행했다.
위험도는 피가 마를 정도여으며, 잠깐의 휴식 시간도 없다.
밤샘 사냥에서 잠이나 식사 같은 건 사치에 불과했다.
"다시 말하지만 일분일초도 아깝습니다. 헤스티거가 떠나기 전에 최대한 많은 일을 해내야 합니다. 헤스티거야, 이 대륙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는 더 빨리 움직여야 한다.'
"알겠습니다, 대제. 그 위대하고 고귀한 마음은 역시 조금도 변하지 않으셨군요."
"정의를 수호하기란 원래 힘든 것이다. 그렇기에 내가 더욱 움직여야지. 세상에 잠자고 있는 보물들을… 아니, 정의를 되살려야 한다."
북부 대륙과 중앙, 남부 대륙을 넘나들면서 사냥을 했다.
헤르메스 길드의 영역인 중앙 대륙에서는 그들의 눈치가 보이지 않을 수 없었지만 짧게 치고 빠지는 것인 만큼 상관이 없다.
어중간한 병력 따위는 여차하면 헤스티거가 나서서 몰살을 시켜 버리면 되었지만, 시간이 부족해서 가능한 내버려 두었다.
하벤 제국의 황궁으로 침공하는 것도 고민은 해 보았다.
"헤스티거가 사라지기까지 아직 몇 시간 여유가 있는데. 바드레이에게 한번 제대로 엿을 먹여 봐?"
이미 무너져 버리고 말았지만 하벤 제국의 황궁 터야말로 현재 베르사 대륙에서 최고의 수준에 육박하는 유저들이 구름처럼 모여 있는 장소.
헤스티거가 그곳에 가서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을 마구 학살한다면 상당히 좋은 결과다.
위드의 묵은 체증도 단번에 쑥 내려갈 정도의 쾌감을 안겨 줄 것이다.
그건 헤스티거만이 해낼 수 있는 일이다.
앞으로도 조각 부활술로 역사적인 강자를 데려올 수는 있겠지만 헤스티거처럼 특별한 인연으로 명령에 절대 복종하는 사람은 찾기가 어려운 탓이다.
다른 사막 전사 부하들도 조각 부활술로 데려올 수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그건 상당히 위험한 생각이다.
위드는 사막의 대제왕으로 있으면서 부하를 결코 인덕으로만 대하지 않았다.
마구 굴리고, 힘을 과시했다.
퀘스트에 쫓기다 보니 하루의 시간이라도 단축하기 위해서 부하 몇 명쯤은 가볍게 버렸다.
대제왕 위드에게는 철저히 복종하며 대륙을 휘젓고 다녔지만, 조각 부활술로 불러오면 상당히 완전히 달라진다.
사막 전사들에게는 위드는 더 약한자에 불과한 것이다.
"특히 위험한 몇 놈은 더러운 성질로 아르펜 왕국을 약탈이나 하지 않으면 다행일지도."
곰곰이 생각하던 위드는 결국 하벤 황궁 터 침공 계획은 포기했다.
헤스티거가 하벤 제국의 황궁터로 가서 헤르메스 길드 유저들을 어느 정도 학살할 수 있겠지만 결말을 고려하면 결국은 그것도 위험한 선택이었다.
최고 수준의 유저들 수만 명.
함부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절대 강자들이 직업별로 구성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NPC 기사들도 발길에 차일 정도로 많이 있다.
반 호크를 상대했던 것보다는 훨씬 어렵겠지만, 헤스티거도 불사신은 아닐 것이다.
위드나 알베론이 옆에서 도와줄 수 있는 환경도 되지 못한다.
반 호크에 이어 헤스티거까지도 헤르메스 길드의 고위 유저나 바드레이에게 당한다면 놈들에게는 그것만한 희소식이 없다.
전설적인 영웅을 죽임으로써 군대의 사기를 높이고 제국의 권위를 높일 수 있는 것이다.
어쩌면 반 호크 때처럼 바드레이가 힘 빠진 헤스티거와의 전투에서 이겨서 또 많은 것들을 얻어 내게 되는 배 아픈 결과가 일어날 수도 있다.
하벤 제국군 입장에서는 대처만 잘해낸다면 그야말로 굴러들어 온 돈뭉치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헤르메스 길드의 유저들 중에서 꽤 많은 숫자를 학살하더라도 당사자들이 페널티를 좀 입게 될 뿐 국가 전력이 크게 감소되는 게 아닌점도 감안을 해야 했다.
결국 위드는 헤스티거를 데리고 다니면서 그동안 입은 손실을 보충하는 쪽으로 집중하기로 했다.
사실 위드가 조각술의 비기들을 활용하며 불가능에 가까운 퀘스트들을 성공시켰지만 그로 인해 입은 레벨의 손해 또한 너무 막대했다.
"유린아, 다음 장소로 가자."
"응. 준비하고 있었어. 그림 이동술!"
던전을 격파하고 나가면 어김없이 유린이 있었다.
그녀는 퀘스트상 필요한 다음의 목적지, 사냥터와 사람들을 미리 그려 놓고 그림 이동술을 사용했다.
위드와 일행이 도착만 하면 미리 와넝한 그림과 같은 모습이 되어 순식간에 이동이 가능했다.
'악마의 스킬이다. 화가와 조각사는 진정 악마임에 틀림없다.'
'인류에게 사냥 인권 따위는 없는 건가. 나는 전투 노예란 말인가. 인간은 두뇌와 육체로 발전하는 게 아니라 정신력으로 버텨 내는 것이란 말인가.'
그렇게 밤샘 사냐을 마치고 일행은 마침내 모라타로 돌아오게 되었다.
남부 사막 지대에서의 연속 사냥, 전쟁, 밤샘 사냥까지 하고 난 후라서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완전히 녹초가 되었다.
지금은 레벨 2짜리 초보자가 나타나서 같잖은 칼로 위협하며 돈을 내놓으라고 해도 그냥 내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대부분의 유저들이 하벤 제국과의 전쟁에 맞서기 위하여 대지의 궁전이 있는 남쪽으로 이동한 탓에 모라타의 거리는 전에 없이 한가했다.
성문을 오가는 사람도 거의 없었지만, 곧 이러한 조용함도 잠시 동안의 기적처럼 느껴지게 되리라.
지금은 전쟁의 여파가 채 가시지 않은 데다 승리의 축제가 질펀하게 벌어진 직후의 고요한 시간.
그러나 곧 사람들이 떼를 지어 모라타로 복귀하고 로열 로드에 접속하게 되리라.
북부에서 시작하게 될 신규 유저들 또한 훨씬 더 많아질 것이다.
위드가 동료들과 함께 도착한 잠깐 사이에도, 아직 위험한 성문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초보 유저들이 사과 배달과 같은 퀘스트를 하기 위해 분주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도시의 활기.
주택들의 지붕에 앉아 이는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아침을 활짝 깨웠다.
시원한 바람과 따스한 태양, 꽃의 향기와 맑은 새소리를 들으면서 모험을 할 수 있다는 것도 로열 로드만의 대단히 큰 장점이었다.
"대제왕, 끝도 없는 몬스터를 향해 돌격하던 예전이 너무나 그립습니다. 지금은 너무 평화로운 것 같습니다."
"나 역시 그렇다. 미안하다. 사막에서는 닥치는 대로 쓸고 다닐 수 있었는데 말이다."
"많이 지치셨군요. 과거의 패기 넘치시던 대제왕의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이 세상이 나를 소극적으로 얌전하게 만들었구나."
파이톤과 양념게장은 비몽사몽에 가까운 상태로 위드와 헤스티거를 보았다.
이 둘의 관계는 지나칠 정도로 비정상적이었다.
악랄한 사냥 중에 나누던 그들의 말도 안 되는 대화!
평생 악몽으로 찾아와 꿈자리를 뒤숭숭하게 만들 것 같았다.
동료들에게는 실로 육체의 피로에 이어서 정신적인 충격까지 안겨다 주는 내용이었다.
헤스티거가 마지막 작별 인사를 위해 위드를 향해 정중하게 무릎을 꿇었다.
"다시 모시게 되어서 영광이었습니다. 대제왕의 힘은 과거보다 많이 약해지셨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대제왕의 이름을 부르고 있더군요. 여전히 대륙의 평화를 위하여
헌신하시는 그 모습에 진심으로 감동했습니다.'
"음, 별거 아니다. 그저 바르게 살려고 노력을 할 뿐이다."
위드에게 가식이란 눈가에 붙은 눈곱을 떼어 내는 정도에 불과했다.
헤스티거는 고개를 돌려 모라타의 성문 부근을 한차례 둘러보았다.
"대제왕의 현명한 통치로 사람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합니다. 자세히 돌아보진 못했지만 이것이 우리가 꿈꾸던 왕국이로군요. 이 헤스티거, 평생을 다하여
주군을 모신 것을 후회하지 않겠습니다."
"그래그래."
"부디 평안하시기를. 그 앞에 거칠고 험한 길이 있더라도 이겨 내실 수 있기를."
헤스티거의 몸에서 반짝이는 빛의 가루들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강건한 육체는 점점 희미해졌다.
조각 부활술이 끝날 시간.
전쟁의 시대를 활보했던 영웅 중의 1명이 전설이 되어 완전히 사라지게 되는 순간이었다.
위드의 얼굴에는 흡족함이 가득했다.
과거의 부하를 현 시대로 데려와서 온전히 잘 부려 먹었으며 마지막에는 칭찬까지 들었다.
'역시 나는 인덕이 있었어.'
더 이상 헤스티거가 얄밉게 보이지도 않았다.
'착하고 개념 있는 부하로군.'
조각 생명체들이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극찬!
희미해져 가던 헤스티거가 입을 열었다.
"대제왕이여, 마지막으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말하라 충성스러운 헤스티거야."
"일전에 제가 대제를 찾기 위해 떠난 여행을 말씀드렸을 것입니다."
"그, 그래. 들은 기억이 있다."
"요정들과 함께 방랑을 하면서 큰 발자국의 땅, 인간들에게는 거인의 땅으로 불리는 곳에 도착하였는데 먼저 도착한 모험가 로드시커를 만났습니다."
"호오, 로드시커를 정말 보았단 말이더냐."
모험가 로드시커.
사실 모험가 직업에서는 불세출의 영웅이라고 할 수 있는 전설적인 인물이었다.
베르사 대륙의 역사서에 보면 그는 온갖 희귀한 모험들을 해냈다.
실존이 확인되지 않은 바다 생명체들을 최초로 찾아내서 세상에 알렸으며, 알려지지 않은 땅에 대한 발견도 무수히 많이 했다.
생존과 길 찾기의 달인으로, 대륙 10대 금역에 전부 들어가서 무사히 살아 돌아온 것으로도 유명했다.
그가 기록한 모험 중에는 특히 믿기 어려운 것들, 지저 세계, 신비의 바다, 지옥 탐험도 있었다.
당시에는 귀족들조차 로드시커를 무책임한 허풍쟁이로 여겼지만 가끔 그가 구해 오는 물건은 실제로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들이었다.
그가 직접 쓴 책과 모험 기록들은 아쉽게도 대부분이 현재까지 전해 내려오지 않는다
<< 모험가들이 길을 선택할 때 알아야 할 101가지 지식 >>
<< 어린 새내기 모험가가 유언장을 쓰는 방식 >>
<< 우리가 모험을 해야 하는 이유. 성공한 모험가만이 예쁜 여자를 만날 수 있다. >>
이 세 가지의 책만이 모험가들의 필독서로 남아 있었다.
책을 읽기만 하더라도 길 찾기, 함정에서 피해 줄이기 스킬 숙련도를 대폭 올려 주었다.
모험가 길드에서는 로드시커의 행적이나 보물 창고, 새로운 기록을 발견하는 사람에게는 매우 큰 포상금과 보물을 걸어 놓을 정도였다.
위드의 눈에 순간적으로 탐욕이 어렸다.
"로드시커의 유품에 걸린 현상금이 자그마치 300만 골드가 넘는다는데… 거기다 세상의 모든 진귀한 물건들을 소유하고 있었다던데."
욕심에 눈이 멀어 앞뒤 구분도 할 수 없는 상태!
"로드시커는 저와 함께 거인들의 땅을 돌아다녔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띠링!
- 로드시커의 행적에 대한 정보 일부를 획득하셨습니다.
"으윽, 감각이 희미해지는군요. 이만 떠나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안 된다. 300만 골드! 로드시커에 대해서 마저 말을 하고 가라!"
"대제왕, 시간이 업습니다. 알리움이라는 꽃을 들고 큰 발자국의 땅으로 가신 후에 붉은 비석을 찾으시면 나머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곳은… 어쩌면 대제왕을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띠링!
『 큰 발자국의 땅
세상의 끝을 넘어서 죽은 자의 손톱으로 만든 배를 타라.
신들의 영토 가까운 곳에 거인들이 살고 있는 곳, 붉은 비석에 로드시커에 대해 알 수 있는 단서가 존재한다.
시들지 않는 알리움을 가져가면 로드시커의 영혼을 깨울 수 있다.
난이도 : S
모험가 전용 퀘스트.
보상 : 연계 퀘스트 '로드시커의 약속'.
ㅡ 대서사시 '이 세계의 신화'로 연결될 수도 있음.
퀘스트 제한 : 로드시커에 대한 정보.
모험가 한정 혹은 극지의 탐험가 호칭 보유.
대륙 최고의 모험 명성. 』
- 모험가 전용 퀘스트이지만 현재까지 쌓은 모험 업적이 대단하므로 특별히 의뢰를 진행할 수 있습니다.
"허억."
위드는 비로소 자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를 깨달았다.
'퀘스트다.'
조각사 마스터 퀘스트, 조각술 최후의 비기 퀘스트를 쭉 이어서 하느라 한동안 잊고 있었다.
그렇지만 자신은 원래 대륙을 떠돌며 온갖 생고생을 하지 않았더가.
'난이도 S급의 연계 퀘스트. 그리고 로드시커라면 아마도 모험가 마스터일 것이다.'
로드시커가 사망할 정도위 퀘스트라면 그 난이도는 아마도 끔찍!
모험가도 아닌 자신이 해결하려고 하면 어려움이 산더미 위에 다시 산더미가 쌓인 수준일 것이다.
모험가 퀘스트는 특별히 더 어렵고 머리를 써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퀘스트의 올바른 단서들을 찾지 못하면 다음에 가야 할 곳이나 찾아야 할 물건도 알아낼 수 없다.
모험 전용 스킬들이 없으니 특정한 길을 빠르게 주파한다거나 몬스터들을 현혹시키고 은밀하게 잠입한다거나 하는 일도 불가능.
모조리 강행 돌파를 하거나 조각술 스킬들로 감당해야만 했다.
위드는 고생길이 탁 트인 활주로처럼 훤히 보이는 듯했다.
지금까지의 고생길만 잘 연결해도 명결에 차가막힐 일도 없고 항공모함 몇 척 정도는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해결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자신감이 생기는데.'
어떤 어려움이 다가와도 맨땅에서 부대끼면서 버텨 내고 노가다로 성장하면서 헤쳐 나갔다.
조각술 최후의 비기까지 끝낸 지금 퀘스트는 딱히 겁날 게 없다.
'스킬들을 활용하면 퀘스트를 적극적으로 수행하는 게 더 이익일지도 모르겠어. 정상적인 사냥으로 성장하는 건 한계가 있으니까.'
아직은 조각술 최후의 비기 스킬을 쓸 수 없지만 숙련도를 부지런히 채우면 시간 조각술도 조만간 활용이 가능해질 것이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당분간 위험천만한 모험은 이제 사양하고 싶었다.
'잃어버린 레벨을 올려야지. 왕국 내정도 신경을 써야 되고. 할 일이 산더미야.'
불확실한 미래에 도전하기보다는 철밥통을 원하는 시대!
'뭐, 아쉽지만 기회는 끊임없이 있는 것이니까. 나 정도 명성이라면 말 몇 마디만 하면 왕국 규모의 퀘스트는 금방 얻을 수 있어. 큰 것보단 자잘한 거 여러 개가 더 낫겠지.'
위드는 빠르게 말했다.
"헤스티거야, 그런 이야기는 다른 사람. 예를 드어서 바드레이나 라페이 같은 녀석에게 하는 것이 좋겠구나. 이 시대에서는 꽤나 잘나가는 녀석들이다. 모름지기 진정한 영웅이라고 할 만하지."
그런데 헤스티거가 다행이라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대제왕께 부탁해서 안심이 됩니다. 제 말을 반드시 들어주시겠지요. 부디 로드시커의 염원을 꼭 이루어 주시기를."
- 퀘스트를 수락하셨습니다.
"커어억!"
헤스티거는 땅과 하늘을 이어 주는 강렬한 빛과 함께 사라졌다.
★★★★★★★★★★★★★★★★★★★★★★★★★★
"방금 뭐였지? 도시 내에서 텔레포트 마법을 쓴 거야?"
"아니야. 그보다도 훨씬 대단한 것으로 보이는데."
유저들과 주민들이 웅성거리며 모여들어 왔다.
위드는 사람들이 알아보기 전에 일행과 헤어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조만간에 또 뵙죠. 사냥할 일이 생기면 꼭 부르겠습니다."
"차라리 우릴 죽이시오."
"죽도록 열심히 사냥을 하고 싶으시다는 의지로 알겠습니다. 체력 관리 잘하시고, 건강하셔야 됩니다."
위드는 그 자리를 벗어나서 모라타의 골목길로 향했다.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이어져 있는 골목길.
모라타의 초창기에는 분수대가 있는 중앙 광장이 중심가였다.
와이번 광장, 빙룡 광장, 빛의 광장, 황소 광장을 토대로 도시가 대대적으로 확장되었지만 구도심 지역에 정신없이 이어진 골목들은 여전했다.
싹 밀어 버리고 재개발을 할 수도 있었을 테지만 굳이 그러지 않았다.
'음, 뭐든 오래된 것들에는 사람들의 추억이 남아 있지. 사람들이 살아가며 새긴 흔적들은… 따뜻한 정이 붙게 되는 법이니까.'
현실에서 그가 살던 곳은 비싼 전세 탓에 주로 낙후된 지역이었다.
돌이켜 보면 환경적으로 그다지 살기 좋은 장소는 아니었어도 주민들 사이에 끈끈한 정 같은 건 있었다.
몇십 년을 함께 살아왔으니 동네 사람들이 다들 아는 사이다.
노인들에게 음식을 해서 보내 주거나, 이웃집 어린아이들이 모여 공놀이를 하며 노는 광경을 흔히 볼 수 있었다.
그러다 재개발 열풍이 불면 다들 투기 욕심에 사로잡히게 되고 동네의 분위기도 삭막해진다.
재개발이 끝나고 난 다음에 아르바이트로 전단지를 돌리려고 간 적이 있었는데, 건물은 크고 깨끗해졌지만 예전에 지내던 사람들은 더 이상 살지 않게 되었다.
저녁이면 주민들이 모이던 큰 나무와 평상이 있던 자리에는 백화점이 들어섰고, 사람들과 함께 형성된 동네의 분위기나 특유의 정서라는 것도 사라져 버렸다.
그저 크고 깨끗한 건물들이 들어선게 아니라 주민들을 갈아 내고 도시가 새롭게 바뀐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다시는 예전의 느낌들을 찾지 못하게 되리라.
전봇대와 오래된 건물의 낙서도 사람들의 기억 속에 떠나가게 될 것이다.
모라타에는 가능한 옛 거리를 그대로 남겨 놓고 싶었다.
문화는 억지로 만들어 내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형성해 가는 것이므로 그 가치도 시간에 따라서 누적되어 간다.
'개발에는 돈이 많이 들기도 하지. 어차피 세금만 많이 내면 되잖아. 좁은 거리에 많이 모여살수록 이득이야.'
모라타는 옛 거리와 판자촌, 세련된 상업 건물, 모험가들의 거주지 등 여러 형태의 모습들을 간직한 거대도시가 되어 있었다.
위드의 모험 경험으로 인해서 니플하임 제국, 아르펜 제국 건축양식의 건물들도 지어지면서 특징이 더해졌다.
중앙 대륙의 상업의 중심이 되어 번성하는 무역도시들과는 달리, 끝없이 유저들이 북적대고 성장해 가는 도시였다.
"이제 하벤 제국이 우릴 괴롭히지 않는 거야?"
"그럼. 놈들은 몽땅 전멸했다니까!"
"만세! 정말 이길 줄은 몰랐는데 끝내준다."
"내가 진작부터 앞으로는 북부의 세상, 아르펜 왕국의 세상이 활짝 열리게 될 거라고 말했잖아."
초보 유저들이 거리에서 신 나게 떠들면서 돌아다니고 있었다.
위드의 초보자 복장은 모라타에서만큼은 너무나도 흔했고, 지금 여기에 있으리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
위드는 사람들 사이를 지나서 흑생 거성으로 들어갔다.
왕궁이 무너지고 난 이후에 왕국의 내정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흑생 거성이나 벤트 성으로 와야 했다.
"음, 마음의 각오를 단단히 해야겠어. 전쟁으로 인한 피해가 너무 크겠군."
일단 하벤 제국군은 물리쳤지만 아르펜 왕국이 입은 손실은 막대했다.
수십 개의 마을이 파괴되었고, 곡식을 심고 키워서 수확만 남겨 놓았던 땅은 그대로 황폐화되었다.
"정확히 알아봐야지. 내정 모드!"
『 아르펜 왕국
북부 대륙에서 넓은 영토를 다스리고 있는 왕국.
아르펜 왕국에서는 넓은 땅에 흩어져 살아가고 있는 주민들을 다스리고 있다.
고립되어 살아가던 주민들은 문화적인 교류와 몬스터 퇴치, 교역을 통하여 하나가 된 아르펜 왕국을 환영하고 있다.
마을들은 대부분 아직 크지 않으며 출생과 정착민들을 통해 적극적으로 인구를 늘려 나가고 있는 중.
하지만 다른 제국의 침략으로 인하여 주민들은 심각한 두려움에 떨고 있다.
왕국의 땅은 빼앗겼으며 주민들은 새로운 침략자를 통치자로 받아들였다.
아르펜 왕국의 있으나 마나 한 군사력은 전쟁에 별 도움이 되지 못하면서 불신을 크게 만들었다.
왕궁이 무너지고 난 이후 일부 마을은 자체적으로 치안을 유지하겠다며 독립을 선언했으며, 다른 마을들도 불안하게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주민들은 삼삼오오 모이면 모라타 특산 와인을 마시며 이야기한다.
"우리 왕국에는 많은 것들이 있어. 넉넉한 식량과 조각품, 미술품이 있지. 기술자들은 자기 분야에서 실력을 가다듬고 있어.
하지만 제일 부족한 것은 기사와 병사야."
"언젠가 이런 날이 올 줄 알았지. 우리의 국왕 폐하께서는 너무나도 적극적으로 개발 사업에만 몰두했어. 앞으로 살림살이는 나아질지 모르지만
우리는 당장 오늘이 불안해. 먼 미래의 목표가 무엇인지 모르지만 눈앞의 안전부터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 모두가 포로가 되기 전에 말이지."
"전투에서 큰 승리를 거두었다고? 그거 다행이군. 그렇지만 우리가 편히 마음을 놓을 수 있는 건 아닐테지. 적은 또 쳐들어 올 수 있고, 우리 왕국은
제대로 군사력을 가지고 있지 못하니까."
전쟁이 완전히 종결되고 잃어버린 영토를 절반 이상 되찾기 전에는 지역에 대한 아르펜 왕국의 정치 영향력이 회복되지 않을 것이다.
프레야 교단은 왕국의 주민들이 가장 많이 믿는 종교이며, 풍요로움과 번영으로 인한 혜택을 각 마을들이 입고 있다.
하지만 전쟁으로 인해 불안해진 사람들은 여러 종교에 심취하고 있다.
국왕은 종교적으로 '신성을 받드는 왕' 으로 존중받고 있다.
그의 신앙심은 완전무결한 수준으로, 조금의 의심의 대상도 되지 못한다.
국왕 위드는 매서운 추위에서 북부를 구했을 뿐만 아니라 대도시 모라타를 통하여 왕국을 스스로 일구어 냈다.
북부의 주민들은 자신들을 생존에 대한 불안과 굶주림으로부터의 벗어나게 해 주고 생활을 안정시켜 준 국왕의 은혜를 잊지 않고 있다.
아르펜 왕국 주민들의 최근 성향은 안정과 풍요로움의 추구다.
제국의 침략으로 인한 공포가 널리 퍼지면서 교역과 생산에서 위축이 일어나고 있다.
공공시설과 예술에 대한 투자도 중단되었다.
왕국 내에서는 약 63여 개의 신생 도시와 마을이 성장하고 있다.
출생률은 새로 태어난 아이들에게 붙일 번호표가 부족할 지경.
아르펜 왕국의 수도 역할을 하리라고 기대했던 대지의 궁전이 처참하게 부서지고 나서 많은 것이 엉망진창이 되기 직전이다.
군사력 : 13,389 경제력 : 45,942
문화 : 41,030 기술력 : 63,482
종교 영향력 : 84
왕국 정치 : 45
인근 지역에 대한 영향력 : 71%
왕국 발전도 : 77
위생 : 43 치안 : 81%
북부 지역의 주민들은 아르펜 왕국에 소속되어서 군사적으로는 불안하지만, 비참했던 과거를 떠올리면 아직은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함.
평원과 황무지·범람 지역의 개간, 폐광 재개발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음.
상인들의 적극적인 활동으로 교역 물량은 마차 생산이 뒤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늘어나고 있다.
왕국의 도로 사정은 지방으로 갈수록 열악하다.
무역을 위해서는 안전하고 빠른 도로의 개설이 필수적.
최근 알카사르의 다리가 파괴되면서 상인들은 중요한 교역로를 잃었다.
지방 도시에서 상점을 열고 있는 상인이 말한다.
"요즘 시장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물건이 잘 팔리지 않고 있어. 이게 다 전쟁 때문 아니겠는가!"
"뭐, 더 나빠질 건 없지. 아르펜 왕국이 있기 전에는 다들 나무뿌리를 캐어 먹고 살았는데 말이야. 아직까지는 국왕 폐하를 믿을 만해."
"도둑들을 이대로 계속 놔둘 건가? 그들이 훔쳐 가는 물건은… 흠흠! 나도 잘 모르지만 어쨌든 계속 방치해 둔다면 규모가 큰 도적 떼가 나타나는 것도 금방일 거야!"
원양어업과 해상 교역을 통하여 새로운 섬 도시들이 계속 발견되고 있다.
먼바다로 떠나면 살아 돌아올 확률은 여전히 15% 이하에 불과해서 숙련된 항해사와 선장은 항상 부족한 편.
항구 바르나에는 최근 이상한 소문이 돌고 있다.
"황금이야! 벨라스케스 해역 너머에 황금으로 이루어진 섬이 있다고. 내 말이 믿기지 않아? 나도 주워들은 것이라서 믿기진 않지만…
떠나 볼 생각이야. 세상에 황금이라니, 목숨을 걸 가치가 충분하지 않나?"
농업 분야에서는 농부들이 새로운 작물을 실험하고 있다.
"곡물 생산량은 충분해. 맛과 영양까지 고려한 신종 작물들을 재배해야지."
약초 재배에 성공한 농부들은 경작 지역을 크게 확대하고 있고, 최근 차 마시기 열풍으로 인해 찻잎의 수확량도 급증하는 중이다.
니플하임 제국의 유물과 흔적은 여전히 많은 모험가들을 나서게 하고 있다.
아르펜 왕국의 군사력은 시민들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소규모의 군대이지만 최근에는 진귀한 전쟁 경험을 겪었다.
기사들은 새로운 검술을 익히고 있으며, 기마술에도 능숙해졌다.
병사들은 큰 전투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자신들의 역할에 대해 정확하게 인식했다.
왕국에 대한 높은 충성심으로 전국에서 병사가 되기 위한 지원병들이 늘어나는 중이다.
왕국의 도시 개발은 불안한 정세와 전쟁으로 인해 정체되고 있으며, 평화를 사랑하는 주민들은 가능하면 빨리 이 사태가 마무리되기를 바란다.
왕국 전체 인구 : 39,281,932.
매달 세금 수입 : 18,292,048.
왕국 운영비 지출 내역 : 군사력 32% , 기술 개발 6% , 경제 발전 26% , 문화 투자 비용 6%
의뢰 및 몬스터 토벌 11% , 도로 개설 16% , 종교 3%.
군사력 : 기사 13,214명 , 수련 기사 39,382명 , 병사 538,102명.
아르펜 왕국의 군대에는 신입 병사들이 크게 몰리고 있다.
그들이 입을 갑옷과 방패, 창은 크게 모자라지만 아직은 상관이 없을 것이다.
어차피 신입 병사들은 몬스터들이 빼앗아 갈지도 모를 식량을 축내는 것 외에 할 줄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기사들은 다행히도 탁월한 용맹과 의지를 갖추었다.
그들은 위기에 빠진 왕국을 위해서 빛나는 검을 휘두를 것이다. 』
"으흠."
위드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설마 했지만 지난번에 내정을 확인했을 때보다 경제력이나 인구가 상당히 감소했다.
왕국 소속의 마을들이 이탈했기 때문이다.
세금 징수액을 바탕으로 기술 개발이나 경제 발전에 투자되는 비용도 줄어들었다.
"하벤 제국의 침략 때문에 왕국의 내정이 악화되었군."
눈부시게 발전하던 아르펜 왕국.
그렇지만 전쟁의 여파가 왕국 전체를 뒤흔들고 있는 것이었다.
마을 사이의 간격이 먼 아르펜 왕국의 특성상 정치력 상실로 잃어버린 영토도 대단히 넓었다.
북부에서 다른 왕국이 이탈한 마을을 넘겨받을 염려는 없으니 문화적으로나 경제적인 교류가 계속되면 다시 아르펜 왕국 소속이 될 수 있다.
그렇더라도 당분간 몇몇 마을들의 세금 징수는 원활하지 않게 되었다.
"위대한 건축물이나 도로 개설도 늦춰지고 있고, 그나마 변화라면 군대의 강화인데……."
아르펜 왕국에서는 전력으로 개발 사업에만 치중했다.
그런 덕분에 도시를 확장하고 위대한 건축물들을 마구잡이식으로 지어 댈 수 있었다.
위대한 건축물은 일단 건설하기는 어려워도 완공되고 나면 그 지역 전체를 발전시킨다.
아직 모라타를 중심으로 하여 벤트 성과 바르고 성채 등 몇몇 지역만 번화한 왕국으로 본다면 위대한 건축물이야말로 남들이 따라 하지 못하는 개발 정책의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전쟁으로 인해서 위대한 건축물의 공사가 미루어지게 되었다.
도시가 빨리 발전하지 못하면 지금의 개발 속도를 유지할 수 없게 된다.
필요로 하는 자원을 채취하기 위한 광산 개발, 주민들이 살아가기 위한 도시 규모의 확대도 늦어진다.
위드는 국왕으로서 막중한 책임감을 느꼈다.
"흐음, 이 사태는…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하지?"
국왕의 권한으로 특정 지역에 집중적으로 개발 사업을 진행시킬 수도 있고, 군대와 주민들에게 강제적인 명령을 내리는 것도 가능했다.
방대한 아르펜 왕국을 발전시키기 위한 여러 조치들을 가동할 수 있었다.
위드는 내정 창의 국왕 명령 부분을 살폈다.
국왕의 칙령으로 왕국 차원의 무력과 경제력을 동원할 수 있다.
일종의 국가 퀘스트가 모든 국민들에게 부여되는 것이다.
『 왕국 차원의 몬스터 퇴치
최소 3만 명의 병사를 원정을 보내어 몬스터들을 소굴까지 확실하게 뿌리 뽑는다.
치안을 회복하기 위한 절대적인 방법.
병사들의 훈련도 겸할 수 있다.
소모 비용 29만 골드. 』
"아냐. 비싸, 넘어가자."
『 도적 떼 습격
도둑들은 은근히 보물을 많이 가지고 있는 부자다.
국가에 돈이 부족하다면 도적 떼를 목표로 삼는 것도 좋을 것이다.
치안을 확고하게 하고, 민심도 수습할 수 있다.
하지만 신출귀몰한 도적 떼는 어설픈 군대에 쉽게 당하지 않을 것이다.
정예 병력이 아니라면 병사들의 희생만 클 수 있다.
소모 비용 14만 골드. 』
"확실하지 않아. 웬만큼 레벨이 높은 유저들이라면 도적 떼 소탕 따위는 별로 좋아하지 않지. 그리고 아르펜 왕국에는 도적 떼가 그렇게 많은 편도 아니데.
나중에 도적 떼가 부유해지면 그때 토벌을 해서 보물들을 챙겨야 돼."
『 마도학 연구
마법은 지고한 학문이다.
끊임없는 투자만이 마법을 발달시킬 수 있다.
왕국 내의 마탑들을 통해서 기존의 마법들의 위력을 강화하거나 새로운 마법을 연구할 수 있다.
학자들과 마법사들은 국왕이 미래를 내다본다면서 이 정책을 크게 반길 것이다.
소모 비용 최소 20만 골드. 』
"당장 효과가 안 나와!"
『 방벽 건설
몬스터나 다른 국가의 침략을 막는 장벽을 넓게 이어서 건설한다.
왕국을 안정시키고 주민들의 불안을 없애기에 매우 유용하다.
방벽을 따라서 요새를 지어 줘야 하며 군대가 주둔한다면 몬스터들의 침입과 약탈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소모 비용 최소 260만 골드. 』
"장벽은 무슨… 몬스터가 쳐들어오면 다들 열심히 때려잡으면 되지."
국왕이 칙령을 내려서 징병제를 실시하여 군대를 보충하는 것도 가능했다.
다만 왕궁이 붕괴된 이후이고 국가 명성이 떨어져 있어서 징병제를 강제로 실시할 경우에는 충성심과 치안의 하락이 더욱 크다.
군대를 유지하는 것도 만만치 않다.
입혀 주고 먹여 주고 재워 줘야 된다.
두둑한 봉급까지도 챙겨 줘야 하며 병사들이 죽거나 하면 사망 보상금도 지급해야 한다.
각종 훈련 시설의 설치는 물론이고, 몬스터 퇴치를 위한 원정이라도 떠난다면 자금 소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괜히 군대가 돈 먹는 하마라고 불리는 게 아닌 것이다.
뭘 해도 모조리 돈!
"통치란 정말 힌든 것이로군."
위드는 니플하임 제국이나 아르펜 제국의 건축양식에 따라 건물을 짓는 것도 가능했다.
모라타와 같은 대도시에도 공중목욕탕이나 전차 경기장 같은 시설물을 지어 주면 주민들의 충성심이 오르며, 상업 발달에도 약간의 도움을 준다.
그렇지만 왕국 규모 차원에서 본다면 건물 몇십 개는 지으나 마나였다.
왕궁이 파괴된 피해를 돈으로 복구하려고 한다면 천문학적인 금액을 필요로 한다.
아르펜 왕국의 규모가 크다 보니 위대한 건축물의 공사 재개를 비롯해 앞으로 지출해야 할 돈도 어마어마했다.
부족한 병력의 양성과 질적인 개선, 생산력과 경제력 확대.
그 무엇도 소홀히 할 수가 없었다.
하벤 제국과의 격차를 단기간에 따라잡는다는 건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았다.
"그렇다면 내가 할 일은… 그래, 왕국 개발을 본격적으로 추진해 보는 것이지."
위드는 결론을 내리고 나서 고개를 끄덕였다.
아르펜 왕국은 끊임없이 성장을 하다가 잠시 정체되었을 뿐이다.
눈앞의 사태에 초조해할 필요 없이 다시금 도약할 수 있으리라는 분명한 믿음이 있었다.
"나는 식물로 따지자면 잡초 같은 놈이지. 생물로 따지자면 바퀴벌레고."
잡초는 뽑아도 계속 생기기 마련이다.
바퀴벌레도 끝없이 번식하면서 살아간다.
일단 생겨나고 나면 답이 없다.
단 하나의 도시 모라타가 북부 전체의 왕국이 되었다.
군사력이라고는 아예 없이 프레야 교단에 의존하거나, 지금처럼 북부 유저들의 도움도 없이 폐허가 된 마을을 관리한 적도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지금보다 훨씬 유리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턱봉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