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시간 조각술의 의미
위드는 시간 조각술 스킬을 중급까지 올리고 나서야 스스로에게 눕곱만큼의 믿음이 생겼다.
"다른 사람 신경을 덜 쓰고 나쁜 짓을 할 수가 있겠군."
시간 조각술이 중급이 되었으니 말그대로 시간 정지가 가능하다.
세상을 멈출 수 있는 찰나의 조각술을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강도에게 칼과 복면을 쥐여 준 셈!
"정말 간절히 원했었지."
예술의 세계는 무한했다.
그렇지만 사람마다 생각은 다를 수 있었다.
조금 더 아름다운 조각품을 만들어서 어떤 감동이 있겠는가.
위드에게는 양념 통닭을 시켰는데 닭 다리가 아래쪽에 있느냐 위에 있느냐 정도의 차이에 불과하다.
조각술 최후의 비기 퀘스트를 열심히 했던 이유는 순수한 예술혼보다는 흑심에서 비롯되었다.
위드는 이 부분에 대해서 괜히 양심의 가책을 느끼거나 하진 않았다.
"그럼 어디 보자…시간 조각술 스킬 확인!"
『 시간 조각술 중급 1(2%)
초급 : 세월의 조각술.
조각품이 자연스럽게 긴 시간을 경험하게 합니다.
때때로 조각품들은 시간이 덧씌워지면서 훌륭한 가치를 갖게 될 것입니다.
또한 아주 긴 세월이 지나더라도 자연적으로 입는 손상에 의하여 파괴되는 것을 막아 줍니다.
중급 : 찰나의 조각술.
세상을 멈추게 합니다.
빛도, 바람도, 사람도.
시간 조각술 앞에 모든 사물이 멈추게 될 것입니다.
그 극도의 아름다움에서 혼자만 움직이려면 많은 체력과 정신력이 소모됩니다.
찰나의 조각술을 펼치기 위해서는 특별한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만물과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면 찰나의 에너지를 얻을 수 있습니다.
찰나의 에너지는 많은 이들의 시간을 빼앗을수록 급속하게 소모될 것입니다.
짧은 시간의 연속 사용 등에는 막대한 체력과 마나가 소모됩니다.
고급 : 여행의 조각술.
시간의 흔적을 좇아서 특정한 시점으로 여행할 수 있습니다.
특수한 퀘스트들을 진행할 수 있습니다.
단, 퀘스트와 관계된 것이 아니라 조각사 임의로 과거를 바꾸는 것은 매우 큰 대가를 치르게 될 것입니다.
찰나의 에너지 -492 』
"좋군. 일을 저지를 준비는 확실해."
자연 대작을 만들었던 만큼 시간 조각술이 중급으로 오르고 나서도 2%의 숙련도가 더 쌓였다.
그렇게 원해도 쌓이지 않던 숙련도, 지금은 어떻게 되든 상관없었다.
"찰나의 에너지도 492가 있군. 얼마나 되는 양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써 보면 그 가치를 알 수 있겠지."
아르펜 왕국의 국왕으로서, 그리고 퀘스트를 하면서 꾸준히 쌓인 수치였다.
시간 조각술을 익히고 나니 던전 소탕을 하더라도 가끔씩 얻는 경우가 있었다.
위드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눈에 보이는 것은 새들뿐!
베르사 대륙을 조각하느라 2달에 달하는 시간을 쓰고 있었다.
작업에 집중을 할 때에는 서윤도 자리를 피해 주었기 때문에 완벽히 혼자였다.
무언가를 만들고 있으면 거기에만 빨려 들어갈 것처럼 정신이 집중되어 버린다.
조각품을 만들면서 생긴 버릇이었는데, 현재는 굳이 조각품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노가다나 생산 작업에도 몰입이 잘되었다.
물론 다큐멘터리나 교육 방송을 시청하면 곧바로 잠이 들었다.
"어디 한번, 시험 삼아서 가볍게."
위드는 스킬을 발동시켰다.
"찰나의 조각술!"
- 세상을 정지시킵니다.
파앗!
그 순간 거짓말처럼 흐르던 바람이 멎었다.
새들의 울음소리도 그치고, 하늘에 떠 있는 새들은 날개를 펼친 채로 그 자리에 고정되었다.
처음 느낀 것은 완벽한 정적과 고요함.
숨이 막혀 올 것만 같은 침묵이 흘렀다.
- 찰나의 에너지가 감소합니다.
토끼 1마리가 풀숲에 숨어 있었다.
호기심이 많은 토끼라, 아마도 위드의 근처까지 다가온 모양이었다.
자연과의 친화력이 높은 위드 근처에는 동물들이 자주 맴돌곤 했다.
물론 때때로 가죽과 고기가 필요하면 이것이 비정한 세상이라면서 그대로 잡아 버렸지만.
찰나의 조각술로 세상을 멈추고, 또 주변에 무엇이 있는지 살피지 않았다면 토끼가 있는 것도 모를 수 있었다.
중요한 몬스터가 아니기에 관심을 갖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붉은 눈동자와 뾰족한 귀, 몸을 세운 채 뒷다리로 서 있었다.
"알 수 없군."
위드는 도대체 왜 시간 조각술이 아름다우며, 조각사들이 염원하며 마지막까지 찾아 헤매려고 했던 것인지 의문스러웠다.
찬란한 아름다움의 표현법.
이것은 단지 멈춰 있을 뿐이지 않은가.
죽을 힘을 다해서 산을 올랐더니 이 산이 아닌 것 같은 상황!
"어쨌든 정말로 세상이 멈췄다. 스킬이 순전히 사기는 아니었어."
위드는 실험 삼아서 토끼의 앞으로 걸어 나갔다.
완벽하게 정지된 세상에서 혼자 움직인다.
단지 걸어가고 있는데도 무거운 짐을 온몸에 지고 있는 때와 같이 힘이 들었다.
가벼운 풀을 밟아도 딱딱하게 느껴졌다.
- 체력이 2% 감소합니다.
정지된 동안의 움직임으로 시간 차이에 따른 가속이 발동됩니다.
현재 속도는 목숨을 위협당하는 사슴의 빠르기입니다.
공격력과 방어력에 변화가 발생할 것입니다.
위드는 느긋하게 천천히 걸었는데도 매우 빠르다는 메시지 창이 떴다.
"움직여지는군.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시험은 여기까지만 해 봐야지. 스킬 해제!"
- 찰나의 조각술이 해제되었습니다.
찰나의 에너지가 16만큼 소모되었습니다.
정지된 세상이 풀리면서 바람이 다시 불고 새들이 계속 날아갔다.
휘에에에엥!
위드가 시간 조각술 속에서 움직였기 때문인지 격한 바람이 불어서 풀숲을 흔들었다.
깜짝 놀란 토끼는 서둘러 달아나 버리고 말았다.
"으흠, 소모가 상당하군."
다른 사람이 없는 장소에서 잠깐동안 혼자서 써 본 것이었는데도 찰나의 에너지 소모가 제법 많았다.
"별로 한 것도 없는데 너무하는군. 그래도 좋게 생각하자. 기본적으로 스킬을 발동시키기 위해서 소모되는 최소한의 수치도 있었을 거야."
전투 중에는 상대가 멈춘 동안 움직일 수 있으나 상상이 안 될 정도로 큰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상대방이 막지 못할 공격을 연속으로 펼칠 수 있다.
일점 공격술 같은 것을 치명적인 일격으로 가할 수 있으며, 절대적인 위기에서도 아무 피해도 없이 빠져 나올 수 있다.
전투 중에는 매우 큰 장점이지만 또 어느 순간에나 결정적이진 않을 것이다.
일차적으로는 체력의 소모가 심하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시간을 빼앗을수록 찰나의 에너지는 더 많이 줄어들게 된다.
찰나의 에너지가 다 소모되고 나면 사용하지도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게 왜 조각술을 위한 예술 스킬인지를 모르겠는데 그럭저럭 나쁘진 않아. 잘 쓰기만 한다면 그나마 전투 중의 효과는 확실하겠지. 아무튼 이놈의 세상은 날로 먹는 게 없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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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준은 위드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었다.
넓은 베르사 대륙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다.
그들 중에는 짜릿한 모험을 하고 있는 이들도 있을 것이고,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 선 자들도 많았다.
위드는 10시간, 20시간씩 지독할 정도로 사냥을 하기 때문에 매번 보고 있을 수만은 없다.
그럼에도 유병준이 자주 지켜보는 대상이었고, 조각술 최후의 비기를 사용하는 순간이라면 말할 것도 없었다.
위드가 스킬을 쓰는 순간, 그와 그 주변에 있는 시공간이 흐르지 않고 멈췄다.
완벽하게 고정된 시간.
"으음, 놀라워."
유병준은 태연한 척을 했지만 내심 속으로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각 직업의 최후의 비기란 사실 유저들이 얻으라고 만들어 놓은 것은 아니다.
유저들이 특정한 분야에 한정되지만 신의 능력까지도 넘볼 수 있게 되는 불가사의한 힘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극악의 확률과 무자비한 퀘스트 난이도!
현시점에서 거의 대부분의 직업들이 최후의 비기를 얻을 가능성을 놓쳤다.
로열 로드의 세상이 열렸을 때, 사람들이 많이 선택하는 직업에서 3~4명 정도는 도전은 할 수 있으리라고 보았다.
그런데 뜻하지 않는 조각사가 나타나서 최후의 비기를 획득, 스킬 숙련도를 올려서 마침내 발현하고 말았다.
모니터로 영상을 지켜보고 있던 유병준은 가슴이 벅차올랐다.
위드가 해 왔던 고생들이 떠올랐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가 지금까지 해 온 고생들은 유병준 자신에게는 즐거움이었으며 유희였다.
시간 조각술 중급, 찰나의 조각술이 시전되어 세상이 멈춰진 것을 봤기 때문이다.
"내가 모르고… 있었던 건가? 아름다움이란 주위 어디에나 있음을."
찰나의 조각술이 펼쳐지자 세상은 너무나도 아름답다.
형언할 수 없는 세상의 아름다움이 눈에 가득 들어왔다.
낙엽이 떨어지기 직전이었다.
물방울이 파문을 일으키는 순간, 새가 울음을 터트리려고 한다.
토끼가 귀를 쫑긋 세우고 무언가를 의식한다.
풀잎이 제멋대로 바람이 날린다.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수많은 이들중의 하나.
현재와 미래가 있기에 흘려보내 버리는 수많은 평범한 순간들이 있었다.
시간이 정지되고 시선을 돌리니 주변의 모든 모습들이 아름답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뜨겁게 내리쬐는 햇볕이 강물 위로 비친다.
저 먼 곳에 짙은 구름이 낀 하늘에서 빗방울이 몇 방울씩 떨어지는 것도 얼마나 아름다운가.
"시간이 멈추니까 비로소 이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보이는구나."
유병준은 기억 속에서 풀밭에 누워서 책을 읽으며 지냈던 어릴 때를 떠올렸다.
그때도 돌이켜 보면 눈물이 나올 정도로 지극한 아름다움 속에서 살았다.
세상은 아름다운 것이다.
푸른 하늘과, 꽃과 풀, 나무가 자라는 땅, 사람들까지도 아름답다.
세상이 멈춰 있지 않고, 자신의 마음이 여유롭지 못하기에 변화하는 아름다움을 제대로 보지 못했을 뿐이다.
달과 별이 있는 새벽부터 뜨거운 태양의 낮 그리고 다시 저녁까지, 세상은 아름답지 않을 때가 없다.
"조각사들은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에 대한 존중으로 찬란한 아름다움을 시간 조각술이라고 정의하였구나."
조각술 최후의 비기 퀘스트를 진행한 계기가 되었던 조각사들이 최고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방식에 대한 고민들.
조각사들의 결론은 어쩌면 단순하고도 당연한 점에 있었다.
- 조각사들에게 아름다움이란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지만, 먼저 그것을 제대로 보고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위드가 했던 거창하고, 베르사 대륙의 역사까지 뒤집어엎었던 모험에 비한다면 간단한 결론.
하지만 모든 깨침이란 게 그만한 노력과 과정, 희생을 필요로 한다.
진리를 귀로 듣기는 쉽지만, 몸으로 느끼는 건 그냥 되는 게 아닌 것이다.
평범한 것들조차도 아름답게 볼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조각사로서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도 훌륭해질 것이다.
인생의 깨침까지도 조금은 줄 수 있는 스킬.
자신이 만든 로열 로드였지만 유병준은 이 순간만큼은 진심으로 놀라고 감탄했다.
"어마어마한 기술이다. 감히 값을 매길 수 없을 정도로……."
위드라면 자신보다도 더 큰 감동을 느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이 아니라 모든 모험의 과정들을 직접 수행하고 시간 조각술 스킬까지도 경험했기 때문이다.
옆에서 보는 것과 직접 경험하는 것은 다르다.
곧 위드가 드러낼 반응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
-쓸모가 없어. 고생한 게 아깝고 후회될 정도야. 그나마 전투 중의 효과는 있겠지. 아무튼 이놈의 세상은 날로 먹는 게 없다니까.
"커억!"
유병준이 호흡을 하기 힘들 정도로 실망스러운 위드의 감상.
정신적인 충격이 대단했지만 모니터 속의 영상을 계속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설마하니 이게 전부는 아니리라.
잠시 후에 시간 조각술이 풀렸다.
위드는 아깝다며 도망친 토끼를 끝내 쫓아가서 잡은 후에 굽고 말았다.
-아우, 기껏 스킬 써서 토끼 1마리 건졌네. 시험 삼아 아까운 에너지만 날렸어. 스킬 잘못 쓰면 똥이네, 똥이야.
"이, 이놈은… 원래 이런 놈이었어!"
유병준이 뒷머리를 움켜잡았다.
★★★★★★★★★★★★★★★★★★★★★★★★★★
헤르메스 길드에서는 새로운 검술의 비기를 찾아냈다.
은거하고 있는 파로드라는 노인 검사가 가지고 있는 자연의 검!
중앙 대륙의 역사와 지식을 분석하고, 주민들의 입을 통해서 검술 마스터가 숨어 있는 장소를 알아내고 전투부대를 파견했다.
"대자연의 법칙을 알게 된다면 그 힘을 검에 실을 수 있다. 쿨럭, 그런데 너희는 이 땅을 이롭게 만들지 못할 것 같군. 사람들을 괴롭히는 너희에게는 과분한 힘이다. 돌아가라."
띠링!
- 파로드가 당신을 추방합니다.
만약 계속 그의 눈에 띈다면 적대도가 쌓이게 될 것입니다.
헤르메스 길드의 무력 부대는 파로드가 있는 움막을 에워쌌다.
검술의 비기를 얻게 된다면 길드 내의 강자들이 모두 익히게 된다.
그 가치야 어마어마한 것.
자격이 되지 않는다고 해서 포기할 리가 만무한 것이다.
다리우스.
헤르메스 길드의 사냥개로 이름 높은 그가 말했다.
"노인, 좋은 말로 할 때 가르쳐 주시오. 하벤 제국은 이 땅의 통치자로서 자격이 있지 않소."
"됐다. 너희의 악명은 내가 들을만큼 들었다. 썩 꺼지거라."
"그렇다면 차라리 이야기가 편하겠군. 알려 주지 않으면……."
"협박은 소용없다. 죽더라도 너희에게는 가르쳐 주지 않으리라."
파로드가 검을 뽑았다.
그는 병색이 완연했지만 검술 마스터로서의 위압감은 충분했다.
그가 검을 든 것만으로도 땅이 울리고 바람이 일어났다.
헤르메스 길드에서는 검사와 기사만이 동원된 것이 아니라 마법사와 사제, 주술사까지 전투부대가 대기하고 있기에 그에게는 위험한 전투가 되리라.
파로드를 찾아올 당시에 인근 마을 주민들로부터 정보도 얻었다.
"이런 마을에서는 볼 수 없는 분 같아요. 약 10년 전이었을까. 크게 다치셔서 우리 마을에 오셨지요."
"건강요? 안 좋아요. 병색이 완연해서 아마 올겨울을 넘기기가 어려우실 것 같아요. 그분이 사실 날도 얼마 남지 않았겠지요."
병든 파로드.
헤르메스 길드의 전투부대는 싸움을 준비하였지만 다리우스는 더 편한 방식이 있었기에 그럴 마음이 없었다.
"노인장, 우린 싸우려고 온 게 아니오. 그렇지만 우리에게 검술을 알려 주지 않는다면 죽일 수밖에 없지."
"나 파로드가 목숨이 아까울 것 같으냐?"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데리고 와라."
다리우스가 뒤쪽으로 손짓을 했다.
그러자 인근 마을 주민들이 밧줄에 묶인 채로 줄줄이 다가왔다.
"검술을 알려 주지 않으면 어린아이와 여자부터 죽이겠다."
"이런 비겁한……."
"싫다면 말하시오. 이 아이들부터 목을 쳐 줄 테니까."
다리우스는 악당 역할을 하는 게 재미있었다.
어렵게도 친밀도를 올리면서 퀘스트를 진행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 협박이나 위협으로도 목적을 달성했다.
- 파로드의 적대도가 최대치가 되었습니다.
악명이 796 증가합니다.
상당한 페널티가 있었지만 하벤 제국의 요직에 있는 자신을 누가 건드릴 수 있을 것인가.
중앙 대륙에서는 살인자의 신분으로도 겁날 게 없었다.
하벤 제국의 기사들과 병사들은 공포심에 젖어 그를 향해 고개를 숙인다.
도시에서 이름을 자랑하기에도 훌륭했다.
"시간이 없군. 검술을 가르쳐 주겠소? 바로 대답하지 않으면 내 말이 농담이 아니란 걸 깨닫게 해 주기 위해서라도 정말로 몇 명의 목을 쳐드리지."
"더러운 놈들. 너희의 죄악은 결코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검술을 가르쳐 줄 거요, 말 거요. 시간이 없다니까?"
"알려 주겠다. 그 대신 주민들의 목숨은 보장해라."
"검술만 배우면 내가 없앨 이유가 없지. 이들도 제국의 주민이니 말이오."
파로드의 굴복!
헤르메스 길드에서는 검술 마스터 파로드의 비기를 습득하게 되었다.
★★★★★★★★★★★★★★★★★★★★★★★★★★
대제국의 황제.
절대자!
바드레이는 자신을 향한 극상의 수식어들이 어색하게 들리지 않았다.
"권력과 금력. 남자로서 추구해 볼 만하군. 그리고 개인이 달성할 수 있는 무의 정점에서도… 나는 끝없이 강해지리라."
바드레이는 기존의 하벤 제국의 왕성이 있던 아렌 성에서 내정을 살펴 보았다.
행정 업무는 대부분 라페이에게 맡겨 두었지만 가끔씩은 직접 확인하기도 했다.
변화하던 하벤 왕국의 수도였던 아렌 성은 발전도가 매우 높았다.
[엄정한 감시]
왕성에 부여된 특별한 기능.
원한다면 하벤 제국 소속 관리의 눈과 귀를 빌려서 영토의 곳곳의 모습을 직접 눈으로 살필 수도 있었다.
"쌉니다, 싸요! 장검을 사세요. 뭐, 이유는 묻지 마시고, 남자라면 어디든 꼭 쓸 일이 있지 않겠습니까요!"
"문양을 떼어 낸 갑옷을 팝니다요. 출처는 말씀드릴 수 없지만 꽤 좋은 겁니다. 제국 병사들이 업을 때만 판매합니다. 어서들 오세요!"
톨렌 왕국의 영토였던 안탈리아 성의 거리에서는 상점 주인들도 하벤 제국에 공공연히 거역하고 있었다.
군대를 통한 정복, 민심이 극도로 악화되어 있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뒷골목으로 가면 상황은 더 안 좋았다.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지? 자식들과 올겨울을 넘길 쌀이 없어. 흐흐흑."
"저항군에 합류하자. 그곳에 가면 먹을 것과 입을 옷을 준대."
"정말? 그럴 리가 없잖아."
"쉿. 방법이 있으니 잘 들어. 제국의 보급 물자를 약탈하는 거지."
"그런 짓은……."
"우리에게 거두어 간 걸 돌려받을 뿐이야. 알고 보니 황제 폐하라는 작자도 고결한 명예 따위는 모른다는데 우리 같은 놈들이 신경 쓸 게 뭐야?"
주민들의 심상치 않는 대화들.
바드레이는 화면을 보며 웃음을 지었다.
"국왕의 직업 특성이 영향을 주는군."
흑기사의 직접 특성.
전투적으로는 약점을 찾기 힘들 정도로 매우 훌륭하고, 부하드에 대한 지휘력도 뛰어나다.
특히 야심이 많은 NPC들을 쉽게 설득하여 부하로 만들 수 있었다.
바드레이는 하벤 왕국 시절부터 기사와 고위 귀족 NPC들과의 관계를 매끄럽게 했다.
로열 로드의 초창기, 가장 앞서 나가는 유저라고 해도 NPC 기사들보다 훨씬 못하던 시기다.
기사 지망생들은 기사들의 종자로서 활동을 하고, 그들의 신뢰를 얻으며 함께 전장으로 나간다.
당시에는 국왕이나 귀족들이 내리는 퀘스트가 상당히 많아서 기사들과 함께 사냥이나 몬스터 토벌에 나서는 경우가 잦았다.
유능한 기사를 모시면 전투 중에도 확실히 편하다.
또한 지금은 흔한 검술이나 기마술이라고 할지라도 당시에는 희귀했다.
조금이라도 뛰어난 스킬을 얻기 위해서 기사들에게 선물을 바치고 아부를 하는 일도 흔했다.
바드레이는 하벤 왕국 소속의 말칸 백작 가문의 휘하에서 기사 수련생 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후 비밀 퀘스트가 부여되었다.
"이런 일은 아무에게나 맡길 수가 없는데. 자네라면 믿고 말해 보는 것이네. 고민을 해결해 줄 수 있겠는가?"
"상관없습니다. 저는 백작님을 위해서라면 어떤 일이든 할 수 있습니다."
『 말칸 백작의 고민거리
하벤 왕국의 전통 있는 귀족 가문의 수장인 말칸 백작에게는 남에게 함부로
발설할 수 없는 비밀이 있다.
친부가 가문의 전대 백작이 아니라 떠돌이 기사라는 점이다.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이미 죽은 어머니와, 떠돌이 기사인 진짜 아버지뿐.
말칸 백작의 아버지는 전쟁 중에 부상을 당하여 푸른고래 선술집의 단골이 되었다.
누구에게도 발각되지 않도록 그를 몰래 처단하라.
늦은 밤의 뒷골목이라면 적당할 듯하다.
난이도 : E
퀘스트 보상 : 정식 기사 임명.
말칸 가문 검술의 가르침.
퀘스트 제한 : 말칸 백작의 믿음, 약간의 악명, 흑기사 직업은 퀘스트의 발생 가능성을 높였습니다.
주의.
퀘스트를 수행하는 도중에 실패하거나 목격자가 생기면 매우 많은 악명과 부적절한 호칭이 생겨날 것입니다.
기사 수련생으로서 나쁜 호칭은 향후의 평판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가져오게 될 것입니다. 』
"다시 한 번 묻겠네. 내 이 일을 자네에게 맡길 수 있을까? 성공만한다면 수습 기사 임명은 물론으로 측근으로 중용할 수 있을 텐데. 벌여 놓은 일들은 많은데 믿고 맡길 사람이 너무 부족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백작님을 위하여 수행하겠습니다."
- 퀘스트를 수락하셨습니다.
그리고 깔끔하고 완벽한 퀘스트 성공.
말칸 백작은 바드레이를 정식 기사로 임명하기 위하여 기사 수행을 다녀오라고 했다.
초급 수련장에서 스텟을 얻을 수 있다기에 꾸준한 단련, 몇 명의 동료들과 함께 던전과 사냥터에서 레벨을 올리며 정식 기사 수행을 마쳤다.
그 후부터는 정식 기사가 되어 말칸 백작 가문의 2인자 역할을 하게 되었으며, 그의 기사들을 포섭하여 뜻을 함께하기로 했다.
어느덧 가문 내에서 말칸 백작의 권력은 유명무실하게 되었고, 영문을 알 수 없는 갑작스러운 사망!
사실 그때에도 바드레이에게 연계 퀘스트가 발생했다.
도둑 퇴치의 퀘스트를 성공하고 독약을 입수한 직후였다.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말칸 백작 가문의 기사들은 이제 모두 나를 따른다.
이 기사들이라면 야망을 이루기 위해 큰 힘이 되겠지.
하지만 말칸 백작은 나를 자신의 하수인 정도로만 여기고 있다.
언젠가 쓸모가 없어지면 사냥개처럼 나를 버릴 수도 있지 않을까?
긍지 높은 기사들을 완벽하게 내 명령에 따라 움직이게 할 수 있으면 좋을 것이다.
필요한 방법이 있다면… 적절한 때에 써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 난이도 : C
퀘스트 보상 : 말칸 백작 가문의 부와 기사단.
퀘스트 제한 : 흑기사 한정.
주의.
퀘스트를 실패하고 백작이 생존한다면 기사의 직위가 박탈 될 것입니다.
또한 말칸 백작과의 적대도가 최고가 됩니다.
이 퀘스트는 차후에도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훗날 이 사건이 누군가에게 발각되었을 때는 명성이 매우 크게 저하되고 감소한 만큼 악명이 증가하게 됩니다.
소속 기사들도 떠나게 될 것입니다. 』
백작 가문의 계승자.
정당한 방법도 있을 테지만 바드레이는 굳이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성공 가능성이 워낙 높았고, 허점들은 만들어 낼 수 있다.
'요리사를 매수하고, 하녀 몇 명을 포섭하면 될 뿐이다.'
저택의 요리사와 하녀들은 모두 바드레이를 따르고 있었다.
흑기사 고유의 화술 스킬, 쉽게 타인에게 호감을 사는 직업 성향 때문이다.
바드레이는 퀘스트를 수락하고 어렵지 않게 성공시켰다.
그리고 요리사와 하녀들을 암살자 스티어를 통해서 해치웠다.
말칸 가문의 신임 백작!
배신과 배반을 통해서 권력을 추구하며 남들보다 앞서 나간다.
로열 로드가 시작된지 전부터 헤르메스 길드는 대륙 정복을 위한 체계를 갖추고 있었으며, 처음부터 하벤 왕국을 차지할 준비를 진행했다.
백작으로서 다른 유저들보다 빨리 왕궁을 드나들면서 좋은 정보와 퀘스트를 얻고 국가 공적치를 쌓았다.
대외적으로는 마법사, 기사, 전사, 워리어 등의 동료들과 던전을 탐험하고 명성을 떨치고, 방송국에 출현하면서 이름을 날렸다.
바드레이는 모든 유저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초반에는 걱정도 조금 있었지만 재미가 훨씬 크게 느껴졌지.'
라페이가 계획한 준비의 단계에서부터 헤르메스 길드는 내부적으로 역량을 차근차근 다지고 있었다.
충실하게 힘과 명성을 차곡차곡 쌓아 나가는 과정을 진행할 때의 희열은 무엇과도 바꿀 수가 없다.
지나칠 정도로 완벽한 준비, 결국 하벤 왕국은 바드레이와 헤르메스 길드의 손에 떨어졌고, 그 이후부터 지금의 성공까지는 완벽하게 승승장구였다.
흑기사의 특성은 권력을 추구하며, 국왕에 대한 의리나 충성이 아닌 욕망에 따라 움직인다.
결국 자신이 황제가 된 것도 흑기사에게 부여된 운명.
'지금의 나는 모든 것을 가졌으니까. 조금의 여유를 만끽해도 될 터.'
바드레이는 미소를 지었다.
베르사 대륙에서 절대적인 권력과 군사력, 경제력을 보유하고 있다.
현실에서도 천문학적인 부가 생겼다.
로열 로드를 통해서 앞으로 얻을 수 있는 재력은 더욱 막강한 힘을 발휘하게 해 줄 것이다.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얻을 수 있게 되었으니 이 기분을 조금 더 느긋하게 즐기고 싶었다.